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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점식, 정기국회 대여공세 본격화…'정책 전환' 압박
정점식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8일 취임 후 첫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 나서 이재명 정부의 경제·안보·인사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제1야당의 대여 공세 수위를 끌어올렸다. 치안과 부동산, 주식시장, 법치, 국방, 국가 재정, 국민 안전 등 7대 분야를 중심으로 현 정부 국정운영의 문제점을 짚고 ‘정상화 과제’를 제시했다. 정 원내대표는 "이번 정부에서 개헌은 없다"며 "명백하게 위헌을 저지르고, 개헌으로 사적 이익을 도모하는 세력과 절대로 개헌을 논의하지 않겠다"고 단언했다. 그는 "대통령은 중임제 개헌도 언급했다. 그런데 '연임 안 한다', '재판받겠다'는 말은 절대로 안 한다. 혹시 개헌으로 임기를 연장하고, 이를 통해 재판을 미루겠다는 의도냐"며 이같이 밝혔다. 정 원내대표는 "지금 정부와 여당의 국정과제 1호는 대통령의 자기 죄 지우기"라며 "개헌마저 자기 죄 지우기에 도구로 쓰는 것이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민주당과 완전히 다른 길을 가겠다"며 주요 공약을 제시했다. 정 원내대표는 먼저 6·3 지방선거 때 투표용지 부족에서 비롯한 참정권 침해 사태와 관련, "방만하고 오만한 선거관리위원회를 제대로 감시하겠다"며 "관리도 못 하는 사전선거제도를 전면 폐지하고, 본투표 기간 연장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오는 10월 예정된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와 관련해서는 "민주당은 검찰에 대한 증오와 복수심으로, 전당대회 득표를 위한 탐욕으로 지옥문을 기어이 열고야 말았다"며 "사법 체계의 왜곡은 수사 부실로 이어지고 부실한 수사는 국민의 고통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국민의 안전을 지키겠다. 무너진 치안부터 바로 세우겠다"며 "보완수사권을 부활시키겠다"고 강조했다. 정 원내대표는 부동산 문제와 관련해서도 "대통령은 부동산이 아니라 국민을 잡았다. 대통령은 후보 시절 세금으로 부동산을 잡지 않겠다고 공약했는데 집권 후 정책은 정반대다. '공약사기'"라고 비판하며 전세에 대해서도 "우리가 누렸던 제도의 혜택을 왜 청년세대는 누리지 못하게 하느냐"고 지적했다. 이어 "국민의 주거 사다리를 지키겠다. 민간 재개발·재건축 규제부터 폐지해 주택공급부터 확 늘리겠다. 1가구 1주택자는 세금 걱정하지 않도록 하겠다"며 "청년·신혼부부의 생애최초주택은 취득세를 감면하고 초저금리 대출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정 원내대표는 '롤러코스피' 원인으로 지목된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에 대해서는 "투자 손실은 54조 원에서 56조 원 이상까지도 추산된다"며 "국정조사는 물론 특검까지 해야 한다. 상품 도입에 권력의 압박이 있었는지, 그 압박이 김용범 전 정책실장의 독단인지 윗선이 따로 있는지, 왜 지방선거 직전에 출시됐는지 모두 낱낱이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원내대표는 정부 주도의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투자에 대해서는 "최악의 기업 약탈", "재벌 납치"라고 표현하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특정인을 당선시키고 낙선시키기 위한 전격전이었다"고 비판했다. 이후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법)이 걸림돌이 되자 쟁의 기준을 시행 지침으로 적용하기로 한 데 대해서도 "노란고무줄법"이라고 지적하며 "국민의힘이 노란봉투법에서 원청의 사용자성과 교섭 범위를 명확하게 규정하도록 개정하겠다"고 약속했다. 정 원내대표는 국가채무 증가 속 확장 재정 기조도 지적, "휘발유를 뿌려 불을 끄겠다는 소리다. 미래 대응이 아니라 미래 약탈"이라며 "국가의 재정을 지키겠다. 초과 세수가 생기면 나랏빚부터 갚고 미래세대에 빚을 떠넘기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강화해 정부 개입을 차단하고, 수익성과 안전성을 원칙으로 운용될 수 있게 하겠다"며 "근로소득에 따른 노령연금 감액도 폐지하겠다"고 덧붙였다. 정 원내대표는 외교·안보 문제와 관련해서도 "북한의 도발에 맞서 한미 간 핵 공유,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 F-35 전투기 전술핵 탑재 훈련 등으로 핵 억제력을 확보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대북 정책에 대해선 "대북 굴종 노선은 대국민 사기극으로 시작해서 대국민 인질극으로 끝난 것"이라고, 국방 정책에 대해선 방첩사 해체와 사관학교 통합 등을 언급하며 "국방을 안으로부터 썩어들어가게 할수록 환호하는 사람은 북한 김정은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정 원내대표의 이번 연설은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국민의힘이 정기국회에서 어떤 야당의 모습을 보여줄 것인지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이번 연설을 시작으로 오는 9일부터 대정부질문이 이어지고, 이후 개각 인사청문회까지 예정돼 있어 정기국회 초반부터 여야의 충돌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국민의힘은 정부 정책의 허점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반면 민주당은 국정운영의 성과와 민생 정책을 앞세워 맞설 가능성이 크다.
2026-09-08 10:3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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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 누적 49.91% 선두…민주 전대 후유증 봉합 시험대
[경제일보] 더불어민주당 8·17 전당대회 당대표 경선에서 김민석 후보가 서울·경기 순회 경선 권리당원 투표에서도 정청래 후보를 근소하게 앞서며 누적 1위를 유지했다. 전날 호남권에서 큰 표 차로 승리한 데 이어 최대 승부처로 꼽힌 수도권에서도 박빙 승부 끝에 앞서면서 당권 경쟁에서 한층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민주당 중앙당 선거관리위원회는 16일 경기 수원과 서울·경기 합동연설회를 마친 뒤 수도권 지역 권리당원 투표 결과를 발표했다. 김 후보는 서울·경기 투표에서 46.66%를 얻어 46.28%를 기록한 정 후보를 0.38%포인트(p) 차로 앞섰다. 송영길 후보는 7.06%를 얻었다. 김 후보의 누적 득표율은 49.91%로 집계됐다. 전날 호남권 압승 직후 기록했던 52.21%에서는 다소 내려왔지만, 정 후보 누적 득표율 41.51%와는 8.40%p 차이를 유지했다. 송 후보는 한 자릿수대 득표율에 머물렀다. ◆호남 압승 이어 수도권도 신승…김민석 ‘대세론’ 유지 이번 서울·경기 경선은 사실상 권리당원 투표의 마지막 승부처였다. 민주당 순회 경선은 8월 1일 충청권을 시작으로 영남, 제주·인천, 강원·대구·경북, 호남, 서울·경기 순으로 진행됐다. 17일 대전에서 열리는 전당대회에서는 전국대의원 투표와 국민 여론조사 결과까지 합산해 최종 당대표가 결정된다. 민주당 전당대회는 대의원·권리당원 투표 70%, 국민 여론조사 30%를 반영하는 방식으로 치러진다. 김 후보는 전날 전체 당원의 3분의 1가량이 몰린 호남 경선에서 정 후보를 크게 앞서며 누적 득표율을 과반 위로 끌어올렸다. 호남 전까지 두 후보의 누적 격차는 근소했지만, 호남 결과로 김 후보가 선두권을 확실히 다졌다. 이날 수도권에서는 정 후보와 0.38%p 차 접전을 벌였지만, 전체 누적 득표율에서는 여전히 앞서며 최종 승부를 앞두고 유리한 위치를 유지했다. 김 후보는 경기도 합동연설회에서 반도체 산업, 지역화폐, 경기북부 접경지역 정상화 등을 앞세워 수도권 표심을 공략했다. 그는 “반도체로 미래와 세계를 이끌고, 기본소득과 지역화폐 같은 개혁정책으로 대한민국과 세계의 개혁을 이끌겠다”며 “경기북부 접경지역의 비정상을 정상화하는 시대를 열겠다”고 밝혔다. 또 당정 협력과 이재명 정부 성공을 강조하며 “K-황금시대”를 열겠다고 호소했다. ◆정청래, 수도권서 추격했지만 역전은 실패 정 후보는 수도권에서 김 후보와 초접전을 벌이며 추격세를 보였지만, 누적 득표율 격차를 뒤집지는 못했다. 정 후보는 전날 호남 경선 패배 뒤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며 당원들에게 지지를 호소했고, 이날도 민주당의 정체성으로 ‘개혁’을 전면에 내세웠다. 정 후보는 “우리는 단결하면 승리했고, 분열하면 패배했다”며 “민주당은 개혁이 정체성이고, 개혁하면 승리했고 개혁에 실패하면 외면받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수도권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한 공급 대책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정상화,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의 속도감 있는 추진도 약속했다. 다만 정 후보는 남은 국민 여론조사와 대의원 투표에서 큰 폭으로 앞서야 역전 가능성을 살릴 수 있는 상황이다. 이번 전당대회는 권리당원 1인1표제가 처음 적용되는 선거다. 전체 반영 비율은 대의원·권리당원 70%, 국민 30%이며, 지역 순회 경선에서는 권리당원 투표 결과만 공개됐다. 대의원 투표와 국민 여론조사 결과는 17일 전당대회에서 함께 발표된다. ◆선호투표제 변수…과반 미달 땐 2순위 표 합산 최종 변수는 선호투표제다. 당대표 경선은 전체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상위 2인을 제외한 최하위 후보를 1순위로 선택한 유권자의 2순위 선택을 합산해 최종 승자를 가리는 방식으로 치러진다. 김 후보의 누적 득표율이 49.91%로 과반에 근접한 만큼, 17일 최종 합산에서 과반을 넘길지 여부가 첫 관전 포인트다. 김 후보가 최종 합산에서 과반을 넘기면 곧바로 당대표로 선출된다. 반면 과반에 미달할 경우 송 후보 지지층의 2순위 선택이 승부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다만 현재 누적 격차가 8%p 이상 벌어진 만큼, 정 후보가 역전하려면 국민 여론조사와 대의원 투표에서 상당한 우위를 보여야 한다. 송 후보는 경기도 연설회에서 접경지역 특성을 앞세워 한반도 평화와 분단 극복을 강조했다. 그는 “아무리 경제 발전을 하고 AI 강국을 만들어도 남북 관계가 흔들리면 어떻게 되겠느냐”며 “김대중·노무현·문재인이 못다 이룬 역할을 이재명 대통령과 함께 만들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권리당원 투표 흐름에서는 김·정 양강 구도를 흔들 만큼의 반등은 만들지 못했다. ◆계파 공방 격화…새 지도부 첫 과제는 ‘통합’ 이번 전당대회는 막판으로 갈수록 당내 갈등 양상도 짙어졌다. 김 후보와 정 후보 측은 ‘배신’과 ‘반명’ 프레임을 놓고 충돌했고, 신천지 경선 개입 의혹과 불법 전화방 의혹 등도 제기되며 선거전이 과열됐다. 최고위원 경선에서도 친명계와 친청계 후보들 사이의 신경전이 이어지며 계파 대리전 양상으로 번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 지도부는 전당대회 이후 통합 필요성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한병도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전당대회를 앞둔 마지막 최고위원회의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되 그 경쟁 끝에서 우리는 반드시 하나가 돼야 한다”며 “경쟁의 열기는 통합의 동력으로, 각 후보자의 비전은 민주당의 자산으로 모아야 한다”고 밝혔다. 당권 주자들도 전당대회 이후 원팀을 강조하고 있다. 김 후보는 마지막 TV토론에서 “전대가 끝나면 당을 하나로 잘 화합시켜 든든하게 국정을 뒷받침하고 총선 승리의 길을 이끌겠다”고 말했다. 정 후보도 “선당후사, 대승적 차원에서 김 후보를 품어안겠다”고 했고, 송 후보 역시 경선 후유증을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며 포용적 리더십을 언급했다. 정치권에서는 새 지도부의 첫 과제가 당내 갈등 수습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김 후보가 누적 선두를 유지하며 당권 경쟁에서 앞서가고 있지만, 정 후보 지지층의 결집과 계파 간 감정 대립이 전당대회 이후에도 이어질 경우 당 운영의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어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이번 경선은 정책 경쟁보다 지지층 간 감정전이 더 부각된 측면이 있다”며 “새 대표가 누가 되든 이재명 정부를 안정적으로 뒷받침하려면 당내 통합과 인사 균형이 첫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26-08-16 19:3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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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 호남서 57.54% 압승…누적 과반 넘어 격차 14%p
[경제일보]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 후보가 15일 호남 순회경선에서 과반을 득표하며 승리했다. 최대 승부처로 꼽히던 지역에서 정청래 후보와의 격차를 크게 벌리면서 오는 17일 전당대회를 앞두고 유리한 고지를 잡았다. 민주당 중앙당 선거관리위원회가 이날 발표한 호남 권리당원 투표 결과 김 후보는 13만9307표(57.54%)를 얻었다. 정 후보는 7만9033표(32.65%), 송영길 후보는 2만3749표(9.81%)였다. 두 후보 간 격차는 24.89%포인트다. 지역별로도 김 후보가 모두 앞섰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에서는 권리당원 31만4184명 중 15만1756명이 투표해 김 후보가 8만6558표(57.04%), 정 후보가 4만8324표(31.84%), 송 후보가 1만6874표(11.12%)를 얻었다. 전북특별자치도에서는 19만2020명 중 9만333명이 투표해 김 후보 5만2749표(58.39%), 정 후보 3만709표(34.00%), 송 후보 6875표(7.61%)로 집계됐다. 투표율은 각각 48.3%, 47.04%다. 정 후보는 앞선 지역 경선에서 승리를 거둔 곳이 있었으나 이번에는 두 곳 모두 내줬다. 이로써 누적 득표율은 김 후보 52.21%, 정 후보 38.14%로 벌어졌다. 직전까지 3086표였던 표차는 6만3360표가 됐다. 현재 누적 득표율에는 경남·대구·경북 지역 가중치가 반영되지 않았다. 전략지역 가중치는 순회경선이 끝난 뒤 전당대회 최종 집계 때 적용된다. 여기에 수도권 순회경선과 대의원 투표, 전체의 30%가 반영되는 국민여론조사가 남아 있다. 정 후보가 남은 일정에서 큰 폭으로 앞서지 못하면 김 후보의 과반이 유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최고위원 경선에서도 순위가 뒤집혔다. 이날 호남에서 박선원 후보가 8만9728표(18.03%)로 1위에 올랐고 서미화 후보가 8만1651표(16.46%)로 뒤를 이었다. 그동안 전체 1위를 지켜온 최민희 후보는 7만1595표로 3위에 머물렀다. 누적 집계에서 박 후보는 15만9462표(17.7%)로 최 후보(15만6061표·17.33%)를 3401표 차로 앞서며 수석최고위원에 다가섰다. 김용·이성윤·한민수·임미애·김영호 후보가 뒤를 이었다. 김 후보는 결과 발표 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감사하다. 호남의 큰 지지는 민주주의와 도약성장에 대한 열망이고, 이재명 정부에 대한 응원과 격려임을 안다"며 "겸손히 마지막까지 전력을 다해, 오직 국정성공을 위해 절박하게 뛰겠다"고 적었다. 정 후보는 SNS를 통해 "호남에서 크게 졌다. 호남의 선택은 항상 옳다. 겸허하게 존중하고 수용한다"며 "저의 승패와 관계없이 민주당의 승리와 이재명 정부의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2026-08-15 21:3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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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의 실수보다 무서운 것은 조직적 은폐다
[경제일보]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수사하는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최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서울 송파·강남·서초구 선관위 등을 압수수색했다. 합수본은 선관위 실무자들이 투표자 수를 잘못 입력한 뒤 정식 보고와 승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전산 통계를 임의로 수정한 정황을 수사하고 있다. 압수수색 영장에는 공전자기록위작과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가 적시된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기관은 직원들이 오입력 사실을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수치를 나눠 입력하자는 취지의 내부 대화를 나눈 정황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는 아직 수사기관이 확인 중인 혐의다. 실제로 누가 어떤 수치를 왜 수정했는지, 투표 결과나 최종 집계에 영향을 미쳤는지는 압수물 분석과 관계자 조사를 통해 규명돼야 한다. 성급한 부정선거 주장이나 정치적 예단은 경계해야 한다. 그럼에도 이번 의혹은 단순한 전산 입력 실수로 넘길 일이 아니다. 선거 현장에서 숫자를 잘못 입력할 수 있다. 그러나 오류를 발견하고도 정해진 보고·승인 절차를 피한 채 전산상 숫자를 임의로 맞췄다면 문제의 차원이 달라진다. 실수는 고칠 수 있지만 은폐는 선거관리 시스템에 대한 신뢰 자체를 무너뜨린다. 선관위는 앞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지역별 분배 실패에서 비롯된 실수라고 설명했다. 송파구 전체로는 투표용지가 남았지만 일부 투표소에 충분히 배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투표용지 관리 부실에 이어 투표율 통계까지 임의로 수정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이번 사태는 현장 직원 몇 명의 착오가 아니라 조직의 보고·통제 체계가 작동하지 않은 사건으로 봐야 한다. 선거관리의 핵심은 결과뿐 아니라 과정에 대한 신뢰다. 국민은 자신의 한 표가 정확히 발급되고 집계되며 모든 수정 과정이 기록으로 남는다고 믿어야 투표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다. 선거기관 직원이 필요에 따라 통계 수치를 바꿀 수 있고 그 과정이 사후 검증되지 않는다면 선거 결과가 정확하더라도 불신과 음모론을 막기 어렵다. 합수본은 통계 수정이 이뤄진 범위와 지시·보고 체계를 철저히 밝혀야 한다. 특정 지역이나 시간대에 한정된 일인지, 비슷한 방식이 다른 선거나 다른 통계에도 사용됐는지 확인해야 한다. 최종 투표자 수와 개표 결과에 영향을 미쳤는지도 객관적인 전산 자료를 통해 설명해야 한다. 정치권 역시 수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 의혹을 정략적으로 확대하거나 축소해서는 안 된다. 수사와 별개로 선거관리 시스템의 전면 개편도 필요하다. 첫째, 투표자 수와 투표율을 수정할 때 입력자와 승인자, 수정 전후 수치, 변경 사유와 시간이 자동으로 기록되도록 해야 한다. 수정 기록은 담당자가 삭제하거나 덮어쓸 수 없는 방식으로 보존해야 한다. 둘째, 통계 오류는 숨길 일이 아니라 즉시 공개할 일이라는 원칙을 세워야 한다. 선관위는 오류 발생 지역과 원인, 수정 시각과 절차를 홈페이지에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잘못된 숫자를 잠시 공개한 것보다 그 사실을 감추려 한 것이 더 큰 불신을 낳는다. 셋째, 전산 수치 수정에는 이중 승인제를 적용하고 일정 규모 이상의 변경은 중앙선관위 감사·감찰 부서에 자동 통보하도록 해야 한다. 현장 직원 한두 명이 수치를 임의로 조정할 수 있는 구조라면 내부통제라고 부를 수 없다. 넷째, 선관위의 독립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외부 검증을 제도화해야 한다. 정당과 정보기술·통계·보안 전문가가 참여하는 독립적인 검증기구를 구성해 선거가 끝난 뒤 전산 로그와 수정 내역을 점검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선관위의 정치적 중립성과 외부 감시가 서로 충돌하는 가치라는 주장도 설득력을 잃었다. 독립은 견제를 받지 않을 권리가 아니라 정치권의 부당한 압력에서 벗어나 법과 절차를 지킬 책임이다. 다섯째, 오류와 비위를 스스로 신고한 직원은 보호하되 은폐나 무단 수정에는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실수를 처벌할까 두려워 보고하지 못하는 조직문화가 있다면 바꿔야 한다. 반대로 조직의 체면을 위해 오류를 감춘 행위까지 관행으로 용인해서는 안 된다. 이번 수사는 부정선거 논란을 부추기는 방식이 아니라 사실과 기록으로 불신을 해소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수사기관은 혐의를 입증할 자료와 그렇지 않은 자료를 구분해 설명하고 선관위도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침묵해서는 안 된다. 확인된 사실과 기존 절차의 문제점, 개선 계획을 국민에게 단계적으로 공개해야 한다. 선관위는 헌법상 독립기관이다. 그 독립성은 선거를 권력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부여된 것이다. 관리 부실과 내부 비위를 외부 검증에서 보호하기 위한 방패가 아니다. 선거 통계까지 임의로 손댄 사실이 확인된다면 몇몇 직원의 징계로 끝낼 수 없다. 지휘·감독 책임과 전산 통제 체계, 조직문화까지 모두 수술해야 한다. 선거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한 번의 실수가 아니다. 실수를 숨기기 위해 숫자를 바꾸고 조직이 이를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선관위가 신뢰를 되찾는 길은 의혹을 방어하는 데 있지 않다. 모든 기록을 공개하고 누구도 함부로 손댈 수 없는 제도를 만드는 데 있다.
2026-07-24 11: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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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 '투표자 수 통계 수정 정황' 수사…노태악 책임론 다시 부상
[경제일보]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수사하는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선거관리위원회 직원들의 전산 통계 수정 정황을 포착하고 추가 강제수사에 나섰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국민참정권 침해 진상규명을 위한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경기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실과 서울 송파구선거관리위원회 등에 검사와 수사관을 보내 관련 자료를 확보했다. 합수본은 수사 과정에서 지방선거 당시 중앙선관위와 경기도선관위 관계자들이 투표자 수와 관련된 전산 통계를 임의로 수정한 정황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합수본은 수정 시점과 횟수, 수정 전후 수치, 전산 접속 기록과 내부 보고 자료 등을 확보해 경위를 살펴보고 있다. 이번 압수수색으로 수사는 투표용지 인쇄량 산정과 현장 대응을 넘어 선거 이후 전산 통계가 처리된 과정으로 확대됐다. 누가 어떤 자료를 근거로 수치를 바꿨는지, 정상적인 오류 정정 절차를 거쳤는지, 변경 사실이 상급자에게 보고됐는지가 확인 대상이다. 합수본은 지난달에도 중앙선관위와 서울시선관위, 송파구선관위 등을 압수수색해 투표용지 인쇄 계획과 투표록, 내부 결재 문서 등을 확보했다. 노태악 전 중앙선관위원장과 허철훈 전 사무총장 등 선관위 관계자 10여명은 공직선거법 위반과 직무유기 등의 혐의로 입건됐고 출국금지 조치도 받았다. 투표자 수 통계가 수정됐다는 정황만으로 선거 결과에 손을 댔다고 볼 근거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합수본도 현재는 통계 수정의 목적과 절차,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의 관련성을 확인하는 단계다. 그렇다고 선관위 내부의 통상적인 업무 처리로 가볍게 넘길 사안도 아니다. 투표자 수는 투표용지 교부 수량과 잔여 수량, 투표록의 기록을 대조하는 기초 자료다. 전산 수치를 수정할 필요가 있었다면 근거 자료와 승인 절차, 변경 전후 내역이 남아 있어야 한다. 합수본은 전산 통계가 실제 투표소별 기록과 일치하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투표용지 부족 사실이 발생한 뒤 수치가 변경됐다면 변경 사유와 보고 경로도 살펴야 한다. 부족 수량이나 추가 공급량을 사후에 맞추기 위한 수정이었는지도 수사 대상에서 빠질 수 없다. 수사가 전산 통계로 확대되면서 노 전 위원장의 재임 중 책임도 다시 거론되고 있다. 노 전 위원장은 이번 지방선거까지 중앙선관위를 이끌었고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한 이틀 뒤인 지난달 5일 사의를 표명했다. 이후 합수본은 노 전 위원장을 피의자로 입건하고 출국을 금지했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의 출발점으로 지목된 결정은 인쇄 기준 축소였다. 중앙선관위는 선거인 수 대비 투표용지 최소 인쇄 비율을 기존 60%에서 50%로 낮췄다. 국민의 투표권 행사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는 기준이었지만 중앙선관위원회의 공식 회의나 의결을 거치지 않고 사무총장과 선거정책실장의 전결로 처리됐다. 어떤 사항을 위원회 의결에 부치고 어떤 사항을 사무처 전결로 처리할지 판단하는 내부 기준조차 마련돼 있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선관위 전체회의에서 관련 질문이 나왔지만 선거1국장은 규칙과 편람·지침을 구분하는 별도 기준이 없다고 답했다. 투표용지 인쇄 비율을 10%포인트 낮추는 결정은 비용 절감이나 행정 편의에 머물지 않는다. 예상보다 높은 투표율이 나오거나 지역별 투표율 편차가 커지면 유권자가 투표용지를 받지 못할 수 있다. 실제 송파구의 최종 투표율은 65.8%로 서울 평균보다 높았고 일부 투표소에서는 투표용지 부족으로 투표가 중단되거나 마감 시간이 연장됐다. 중앙선관위원장은 각 투표소의 용지 수량을 직접 계산하는 자리가 아니다. 그러나 선거인의 투표권 행사에 영향을 주는 기준이 어떤 절차로 정해지고 있는지, 사무처의 결정이 현장에서 어떤 위험을 낳을 수 있는지는 감독해야 한다. 노 전 위원장이 인쇄 기준 축소를 언제 보고받았는지, 관련 위험에 관한 검토를 지시했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선거 당일 투표용지 부족 상황도 투표 종료 약 40분 전에야 보고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사실이라면 선거 현장의 중대한 문제가 중앙선관위원장에게 전달되는 보고 체계가 제대로 작동했는지부터 따져야 한다. 노 전 위원장이 인쇄량 축소와 전산 통계 수정에 직접 관여했다는 정황은 현재까지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직접 지시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재임 당시 수장의 지휘·감독 책임까지 없어지지는 않는다. 인쇄 기준 축소를 보고받았다면 결정의 타당성과 위험을 검토한 과정을 밝혀야 한다. 보고받지 못했다면 투표권 행사와 직결된 사안을 사무처가 자체 판단하도록 둔 경위를 설명해야 한다. 선거 당일 전국의 투표소에서 용지가 부족한데 위원장에게 보고가 늦어진 이유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전산 통계 수정 정황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 관계 직원 개인이 임의로 수치를 바꾼 것인지, 지역선관위와 중앙선관위 사이에 보고가 오갔는지, 지휘부가 수정 사실을 알았는지가 밝혀져야 한다. 통계 수정이 여러 기관에서 이뤄졌다면 동일한 지침이나 지시가 있었는지도 조사해야 한다. 노 전 위원장은 사의를 밝히며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대해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취지로 책임을 인정했다. 그러나 임기 종료를 앞둔 사퇴가 선거관리 실패에 대한 사실 규명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 누가 기준을 낮췄고 누가 위험을 검토했으며 사고 발생 뒤 어떤 보고와 조치가 있었는지는 별도로 확인돼야 한다. 중앙선관위는 헌법상 독립기관이다. 정치권이나 행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도록 독립성을 보장받는 대신 선거관리의 공정성과 정확성을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투표용지조차 충분히 준비하지 못하고 사후 전산 통계까지 수정한 정황이 드러났다면 독립성만 내세울 수 없다. 합수본 수사가 통계 수정에 관여한 실무자를 확인하는 데 그쳐서도 안 된다. 투표용지 인쇄 기준을 낮춘 결정 과정과 선거 당일 보고 지연, 전산 통계 수정 경위가 서로 연결돼 있는지 살펴야 한다. 노 전 위원장을 비롯한 당시 지휘부가 각 단계에서 어떤 보고를 받고 어떤 판단을 내렸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투표용지는 선거관리의 가장 기본적인 준비물이다. 투표자 수 통계는 투표용지의 교부와 잔여 수량을 검증하는 자료다. 두 업무에서 동시에 문제가 드러난다면 현장 직원 몇 명의 착오로만 설명하기 어렵다. 노태악 전 위원장 개인의 형사책임은 증거와 수사 결과에 따라 판단할 문제다. 재임 중 선거관리 실패에 대한 책임은 별개로 남는다. 이번 수사는 선관위 직원들이 전산 수치를 왜 고쳤는지만 확인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런 일이 가능했던 의사결정과 보고 체계, 당시 선관위 수뇌부의 관리 책임까지 규명해야 한다.
2026-07-23 10:0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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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선거 신뢰, 선관위는 환골탈태해야 한다
[경제일보] 민주주의의 생명은 선거이고, 선거의 생명은 국민의 신뢰다. 그 신뢰는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가 빈틈없이 지켜질 때 비로소 쌓인다. 그런데 지난 6·3 지방선거 과정에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믿기 어려운 장면들이 잇달아 드러났다. 일부 투표소에서는 투표용지가 부족해 유권자들이 장시간 대기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고, 투표함 보관시설에는 CCTV 사각지대가 존재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심지어 투표지가 쇼핑백에 담겨 이동하는 모습까지 공개되면서 국민은 충격과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세계적인 수준의 선거 관리 시스템을 자부해 온 대한민국에서 이 같은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은 참담함을 넘어 국가적 수치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선거관리위원회는 헌법이 보장한 독립기관이다. 그러나 독립성은 특권이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지키기 위한 책임이다. 아무리 독립된 기관이라 하더라도 기본적인 선거 관리조차 허술했다면 그 책임을 피할 수 없다. 투표용지 수급은 선거 관리의 가장 기초적인 업무이며, 투표함 보관과 운송은 공정성을 담보하는 핵심 절차다. 이러한 기본조차 제대로 관리되지 못했다면 이는 단순한 실무 착오나 현장 직원의 과실만으로 치부할 문제가 아니다. 조직 전체의 기강과 관리 체계, 위기 대응 시스템을 근본부터 되돌아봐야 할 사안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국민의 신뢰가 크게 흔들렸다는 점이다. 선거는 결과뿐 아니라 과정에 대한 신뢰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유권자가 결과를 받아들이는 이유는 절차가 공정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투표용지가 부족하고, 보관 절차에 허점이 드러나며, 관리 과정이 허술하게 비쳐지는 순간 선거의 권위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선거의 공정성에 대한 의심은 특정 정당이나 후보의 이해관계를 넘어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하는 문제다. 따라서 이번 사태는 단순한 행정 실패가 아니라 민주주의에 대한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동안 선관위는 헌법기관이라는 독립성을 이유로 외부의 비판과 견제를 지나치게 방어적으로 받아들였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고위직 자녀 특혜 채용 논란 등 조직 운영과 관련한 여러 문제가 제기됐을 때도 국민이 납득할 만한 쇄신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번 선거 관리 부실은 그러한 구조적 문제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조직은 견제와 감시가 작동할 때 건강해진다. 스스로를 성역으로 여기고 책임보다 권한을 앞세우는 조직은 결국 국민의 신뢰를 잃게 마련이다. 감사원과 수사기관은 이번 사태의 원인과 경위를 철저하고 객관적으로 규명해야 한다. 투표용지 부족은 왜 발생했는지, 관리 체계는 적절하게 작동했는지, 법령과 규정 위반이나 관리상 중대한 과실이 있었는지를 국민 앞에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 사실관계가 확인된다면 관련자에게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정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것이 헌법기관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첫걸음이다. 아울러 선관위는 이번 사태를 조직 존립을 좌우하는 마지막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선거 관리 전 과정을 디지털 기술과 국제적 기준에 맞게 전면 재설계하고, 투표용지 관리, 보관 및 운송 체계, CCTV 감시 시스템, 내부 감사 기능까지 근본적으로 혁신해야 한다. 독립성은 책임성과 투명성이 함께할 때 비로소 존중받는다. 책임을 외면한 독립성은 독선으로 비칠 뿐이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는 국민의 신뢰이며, 그 신뢰를 회복하는 길은 철저한 진상 규명과 과감한 개혁 외에는 없다. 선관위가 스스로 환골탈태하지 못한다면 국민은 보다 근본적인 제도 개혁을 요구할 수밖에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2026-07-08 14:3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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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악 선관위, 홍명보호보다 더 위험한 실패
[경제일보] 홍명보 감독은 월드컵 32강 진출이 좌절된 뒤 자리에서 물러났다. 대표팀은 결과로 평가받는 조직이고, 감독은 그 결과의 책임을 피할 수 없었다. 한국 축구는 또 한 번의 실패를 기록으로 남겼다. 아프지만 대표팀에는 다음 경기를 준비하고, 전술과 선수 구성을 다시 손 볼 시간이 남아 있다. 노태악 전 중앙선거관리위원장도 투표용지 부족 사태의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선관위 역시 결과로 평가받아야 하는 조직이다. 다만 선관위가 책임져야 할 결과는 경기의 승패가 아니라, 국민이 투표소에서 한 표를 행사할 권리를 제대로 보장했는지에 관한 것이다. 두 사람 모두 물러났다. 그러나 사퇴가 남기는 무게까지 같을 수는 없다. 축구대표팀의 실패는 국민에게 실망을 남기지만, 다음 대회에서 만회할 기회가 있다. 반면 투표용지가 없어 발길을 돌렸거나 언제 투표할 수 있을지 모른 채 투표소 앞에서 기다려야 했던 유권자에게는 다음 경기가 없다. 그 한 표는 선거 당일, 그 투표소에서 보장됐어야 했다. 이번 사태는 몇몇 투표소의 우발적 혼선으로 정리할 수 없다. 진상규명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전국 1만4288개 투표소 가운데 140곳이 부족 가능성 때문에 추가 투표용지를 받았다. 이 가운데 실제 추가 용지를 사용한 곳은 91곳이었고, 26곳에서는 투표가 잠시라도 중단됐다. 선관위가 처음 파악한 범위를 넘어 피해 실태가 계속 드러난 것도 국민 불안을 키웠다. 사태의 시간표는 더욱 답답하다. 송파구선관위는 선거 당일 오전 11시 40~50분께 이미 무번호 투표용지 부족 가능성을 예상해 서울시선관위에 일련번호 부여 방안을 문의했다. 그러나 서울시선관위와 중앙선관위가 함께 대응에 나선 것은 약 5시간 뒤였다. 오후 4시 46분이 되어서야 송파구선관위가 일련번호를 기재하지 않은 투표용지를 투표소에 내보내겠다고 알렸고, 중앙선관위는 오후 5시가 넘어 민원을 계기로 서울시선관위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확인했다. 선거를 총괄하는 기관이 현장의 경고를 제때 받아내지 못하고, 민원과 혼란이 번진 뒤에야 대응에 나섰다면 이는 단순한 전달 실수의 문제가 아니다. 투표소별 투표율과 남은 용지를 누가 점검했는지, 어느 단계에서 위험 신호가 끊겼는지, 중앙 상황실은 왜 먼저 움직이지 못했는지를 따져야 한다. 보고가 올라오지 않았다는 말은 중앙의 책임을 덜어주는 근거가 아니라, 보고와 지휘 체계가 왜 그토록 허술했는지를 묻게 하는 출발점이다. 진상규명위원회도 결론을 흐리지 않았다. 상급위원회에 대한 신속한 보고 체계가 작동하지 않았고, 상급위원회의 지휘권도 발동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서울시선관위는 중앙선관위와 논의하지 않은 채 투표시간 연장을 결정했고, 송파구선관위에서는 투표가 끝나기 전 개표가 시작되는 일도 있었다. 전국 선거를 관리하는 기관이 선거일 하루 동안 같은 지휘선 아래 움직이지 못한 셈이다. 투표용지 인쇄 하한을 유권자 수의 60%에서 50%로 낮춘 결정도 비켜갈 수 없다. 해당 지침은 사무총장 전결로 처리됐다. 노태악 전 위원장은 국정조사에서 이를 알고 있었다고 답했고, 사전 보고에 대해서는 짧은 보고가 있었을 수 있으나 기억나지 않는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인쇄 비율은 서류철 안의 작은 행정 항목이 아니다. 본투표일에 유권자가 몰릴 경우를 대비하는 최소 안전장치다. 보관 공간과 관리 비용을 고려할 수는 있어도, 그 판단이 투표소의 용지 부족으로 이어졌다면 선관위는 그 우선순위를 설명해야 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은 선거관리의 기준과 지휘 체계를 책임지는 자리다. 투표용지 인쇄 기준이 낮아졌다면 그 위험을 점검했어야 하고, 선거일 현장에서 부족 징후가 나타났다면 보고와 대응이 지체되지 않도록 조직을 움직였어야 한다. 최고 책임자의 역할은 현장의 숫자를 대신 세는 데 있지 않다. 현장이 흔들릴 때 조직 전체가 즉시 움직이도록 만드는 데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사태는 노태악 개인의 사퇴로만 마무리될 일이 아니다. 진상규명위원회는 노태악 전 위원장을 비롯한 선관위 수뇌부 12명에 대한 수사의뢰를 권고했고, 관련 실무자 6명에 대한 징계도 권고했다. 이는 유죄 판단이 아니다. 다만 이번 사태를 일선 직원 몇 명의 과실로 돌려 봉합할 수 없다는 뜻은 분명하다. 홍명보 감독의 사퇴는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의 표현이었다. 노태악 전 위원장의 사퇴는 참정권 보장에 실패한 국가기관 수장의 책임과 맞닿아 있다. 그래서 그 뒤에 따라야 할 절차도 달라야 한다. 누가 인쇄 기준을 낮췄는지, 현장의 경고가 어디에서 멈췄는지, 중앙은 왜 위험을 먼저 감지하지 못했는지, 그 판단과 지연에 책임 있는 사람은 누구인지 밝혀야 한다. 선관위의 독립성은 외부 권력이 선거 관리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장치다. 독립기관이라는 지위가 내부 실패에 대한 설명 의무까지 덜어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선거를 관리하는 기관일수록 더 높은 수준의 준비와 책임이 요구된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거창한 개혁 구호가 아니다. 투표소에 가면 투표용지를 받을 수 있어야 하고, 사고가 나면 국가기관이 즉시 수습할 것이라는 당연한 믿음이다. 홍명보호의 탈락은 한국 축구에 숙제를 남겼다. 노태악 선관위의 실패는 민주주의의 기본을 다시 묻게 한다. 축구는 다음 대회를 기약할 수 있다. 하지만 선거는 다르다. 그날 투표소에서 행사되지 못한 한 표는 다음 선거가 아니라, 바로 그날 국가가 지켜냈어야 할 권리였다.
2026-06-30 07:5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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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용지 없는 선거가 남긴 상처, 음모론과 정략을 넘어 시스템 개혁이 먼저다
[경제일보] 민주주의는 투표로 시작해 투표로 완성된다. 국민이 한 표를 행사하는 순간 주권은 현실이 되고, 선거는 국민의 뜻을 국가 운영에 반영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신성한 절차가 된다. 그렇기에 선거는 무엇보다 공정해야 하며, 유권자가 불편함 없이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철저하게 관리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최근 6·3 지방선거 과정에서 발생한 이른바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중대한 사건이다. 일부 지역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해 유권자들이 장시간 대기하거나 투표에 차질을 빚었고, 개표 과정에서도 혼란이 발생해 개표소가 봉쇄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선거 관리의 기본 중 기본인 투표용지 수급과 운영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선거관리위원회는 국민 앞에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한다. 선거의 결과와 무관하게 국민의 참정권 행사에 불편과 혼란을 초래했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는 명백한 행정 실패이자 관리 부실이다. 국민이 가장 분노하는 것은 실수 자체보다도 반복되는 무능과 무책임이다. 선관위는 그동안 각종 채용 비리 논란과 관리 부실 문제로 국민의 신뢰를 잃어 왔다. 그럼에도 조직 혁신과 내부 개혁은 지지부진했고, 결국 이번 사태를 통해 그 허술한 관리 체계가 다시 드러났다. 선거 관리 기관에 대한 신뢰가 흔들린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이 흔들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여야가 오는 18일 본회의에서 선관위에 대한 국정조사 계획서를 처리하기로 합의한 것은 그런 점에서 불가피한 선택이다. 국정조사는 특정 정파의 이해관계를 위한 정치적 수단이 아니라 국민의 의혹을 해소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헌법적 장치여야 한다. 이번 기회에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왜 발생했는지, 사전 대응 체계는 제대로 작동했는지, 책임 소재는 어디에 있는지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 잘못이 확인된다면 관련 책임자에 대한 엄중한 문책도 뒤따라야 한다. 그러나 국정조사의 목적이 정치 공세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일부 정치권에서 제기하는 '전국 재선거' 주장이나 이를 둘러싼 정략적 논쟁은 사태의 본질을 흐릴 우려가 있다. 선거 관리의 부실을 비판하는 것과 선거 결과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명확한 증거와 법적 근거 없이 국민의 선택을 통째로 부정하는 주장은 오히려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을 증폭시킬 수 있다. 특히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부정선거 음모론은 사회적 갈등만 키울 뿐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실에 근거한 비판은 필요하지만, 근거 없는 의혹 제기와 정치적 선동은 민주주의를 병들게 한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정쟁이 아니라 진실이며, 음모론이 아니라 제도 개선이다. 보수와 진보를 떠나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출발점은 같아야 한다. 국민의 투표권은 침해되어서는 안 되며, 선거 관리의 허점은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를 정치적 유불리의 관점에서 접근할 것이 아니라 국가 시스템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점이다. 선관위의 독립성은 보장하되 책임성은 강화하고, 선거 운영 전반에 대한 점검과 디지털 관리 체계 개선, 위기 대응 매뉴얼 정비 등 근본적인 개혁에 나서야 한다. 공자는 "백성의 신뢰를 잃으면 나라가 설 수 없다"고 말했다. 민주주의 역시 국민의 신뢰 위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선거는 국민과 국가를 연결하는 가장 중요한 약속이다. 그 약속이 흔들릴 때 민주주의도 흔들린다.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단순한 행정 착오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큰 상처를 남겼다. 그러나 그 상처를 정치적 이익을 위한 도구로 악용하는 것 또한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음모론도, 정략적 구호도 아니다.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 있는 사과, 그리고 국민이 안심하고 투표할 수 있는 선거 시스템의 전면적 개혁이다. 그것이야말로 이번 사태가 남긴 교훈을 헛되이 하지 않는 길이며,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2026-06-17 09:2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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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의 뼈를 깎는 혁신 없이는 민주주의의 미래도 없다
[경제일보] 6·3 지방선거 당시 서울 일부 지역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의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법원의 현장검증이 전격적으로 실시되고 정치권의 날 선 공방이 연일 이어지는 가운데, 정부마저 이례적으로 강한 유감을 표명하고 나섰다. 주권자의 신성한 권리 행사를 담보해야 할 선거관리위원회가 도리어 국민의 참정권을 가로막았다는 비판은 결코 과하지 않다. 지난 40여 년 동안 수많은 선거와 정치적 격변을 목도해 왔지만, 국가 선거 행정의 근간인 투표용지가 모자라 유권자가 발을 동동 구르게 만든 이번 사태는 실로 충격적이다. 이는 단순한 행정 착오나 돌발 악재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민주주의의 초석인 선거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통째로 흔들어 버린 엄중한 사태다. 논어(論語)에 나오는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는 말은 국가나 조직이 신뢰를 잃으면 바로 설 수 없음을 뜻한다. 선거 관리의 기본 원칙은 단 한 명의 유권자도 자신의 주권을 행사하는 데 불편함이나 막힘이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선관위가 과연 이 기본적인 상식을 인지하고 있었는지조차 의심케 한다. 투표용지 부족으로 인해 직장인들이 발길을 돌리거나 긴 대기 행렬 속에서 참정권을 포기해야 했던 상황은, 사실상 국가가 국민의 헌법상 권리를 침해한 것과 다름없다. 선거 결과의 정당성은 한 치의 의혹도 없는 투명하고 철저한 관리에서 비롯된다. 투표 프로세스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그 선거를 통해 선출된 권력의 정당성마저 도마 위에 오르고, 결국 민주주의 체제 자체가 흔들리게 된다. 이제 우리는 냉정하게 물어야 한다. 이번 사태가 과연 몇몇 실무자의 안일함이 부른 일시적 사고인가, 아니면 선관위 조직 내부에 깊숙이 자리 잡은 구조적 무능의 발로인가. 불행히도 본질은 후자에 가깝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동안 선관위는 헌법상 독립기관이라는 지위 뒤에 숨어 외부의 정당한 감시와 비판에 지나치게 폐쇄적인 태도를 취해왔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비대해지고 안주하기 마련이다. 급변하는 디지털 시대에 발맞추어 행정의 정밀도를 높이고 예측 가능성을 확보하려는 노력 대신, 타성에 젖은 과거의 방식을 답습하다가 이 같은 대형 참사를 자초한 것이다. 선관위가 잃어버린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고 헌법기관으로서의 권위를 다시 세우기 위해서는 환골탈태 수준의 세 가지 혁신이 시급하다. 첫째, 선거 행정의 전문성을 근본부터 재정립해야 한다. 유권자 수 예측, 투표율 변동 추이 감안, 비상 상황 시의 즉각적인 용지 수급 체계 등은 고도의 전문 행정 영역이다. 주먹구구식 예측에서 벗어나 통계적 엄밀성과 물류 관리의 전문성을 갖춘 인력을 전면에 배치하고 원인 규명과 책임 소재를 명확히 가려야 한다. 둘째, 독립기관이라는 지위에 걸맞은 엄중한 책임성을 확립해야 한다. 독립성은 선거 관리의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특권이지, 부실 행정의 방패막이가 될 수 없다. 사후 검증 시스템을 전면 개방하고, 실패에 대해 확실하게 책임지는 엄격한 문책 제도를 도입해야 마땅하다. 셋째, 시대적 요구에 부합하는 디지털 선거관리 체계를 획기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투·개표의 전 과정뿐만 아니라, 실시간 투표용지 잔여 수량 파악과 수요 예측을 자동화하는 스마트 물류 시스템 도입이 시급하다. 정보기술(IT) 강국이라는 대한민국에서 투표용지가 모자라 선거가 파행을 겪었다는 사실은 국제적인 망신이자 수치다. 민주주의는 거창한 구호로 유지되지 않는다. 국민이 던지는 한 표 한 표가 정확히 투표함에 담기고 정당하게 계수될 것이라는 아날로그적 신뢰와 상식에서 출발한다.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선관위의 인적·구조적 쇄신 없이는 우리의 민주주의 미래도 기약할 수 없다는 마지막 경고다. 선관위는 이번 파동을 일과성 소동으로 넘기려 하지 말고, 뼈를 깎는 자성과 과감한 인적·시스템 혁신에 나서야 한다. 신뢰를 잃은 선관위에게 내일은 없다.
2026-06-10 10: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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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용지 부족한 선거, 정신 나간 선관위
민주주의는 선거로 시작해 선거로 완성된다. 주권을 가진 국민이 자신의 의사를 평화적으로 표출하고, 국가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를 엄숙하게 확인하는 성스러운 과정이 바로 선거다. 그렇기에 선거는 단순한 정치적 이벤트나 행정 절차가 아니다. 국가의 정당성을 담보하고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떠받치는 가장 견고한 기둥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번 6·3 지방선거에서 도저히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운, 있어서는 안 될 대형 참사가 벌어졌다. 서울 송파구와 광진구를 비롯한 일부 수도권 핵심 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바닥나 투표가 중단되거나 무한정 지연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행정 시스템과 정보통신 기술을 자랑하는 대한민국 선거 역사에서 이처럼 황당하고 부끄러운 오점이 언제 있었던가. 소식을 접한 많은 국민은 처음엔 제 귀를 의심했다. 선거 당일 흉흉하게 떠도는 가짜뉴스가 아닐까 생각했을 정도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는 엄연한 사실이었다. 신성한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일터와 가정에서 시간을 쪼개 투표소를 찾은 유권자들은 투표용지가 없다는 황당한 안내를 받으며 수십 분, 길게는 몇 시간씩 줄을 서서 대기해야 했다. 참다못한 일부 유권자들은 결국 소중한 한 표를 포기한 채 분통을 터뜨리며 발길을 돌렸다. 국가가 국민의 참정권을 폭력이나 강압이 아닌, ‘준비 부족’이라는 한심한 행정 무능으로 박탈한 셈이다. 도대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사태가 커지자 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가 내놓은 해명은 더욱 가관이다. 선관위 측은 “예상보다 투표율이 너무 높게 나와 현장에서 수요를 맞추지 못했다”고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이 해명은 법치국가의 기본 상식은 물론이고 보통의 일반 국민이 가진 보편적 이성으로도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 투표율이 예상보다 높아지거나 낮아지는 것은 선거 행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변수다. 더욱이 선거관리라는 고유의 목적을 지닌 헌법기관의 핵심 업무는 바로 그러한 모든 예외적 상황과 최악의 시나리오에 완벽하게 대비하는 것이다. 비가 올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우산을 준비하는 것이 상식이듯, 투표율이 100%에 육박하더라도 모든 유권자가 표를 던질 수 있도록 충분한 투표용지를 선제적으로 확보하는 것은 선거 행정의 초보적인 의무다. 더구나 우리에게는 이미 확정된 유권자 명부가 존재한다. 어느 동네, 어느 투표소에 몇 명의 유권자가 적을 두고 있는지 선관위는 시스템을 통해 누구보다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그럼에도 특정 지역 투표소에 유권자 수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투표용지만 공급했다는 사실은 어떤 핑계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명백한 직무유기다. 일각에서 나오는 “남아서 폐기되는 투표용지의 예산을 아끼려다 벌어진 일”이라는 식의 변명은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단언컨대, 투표지 몇 장을 폐기하는 비용보다 단 한 명의 국민이 가진 참정권의 가치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무겁고 소중하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단순히 현장 공무원 몇 명의 행정 착오나 실수가 아니다. 국민의 기본권 중의 기본권인 헌법상 참정권이 국가기관에 의해 침해당한 중대한 민주주의 훼손 사건이다. 민주주의 체제 아래서 투표권은 주권자가 국가 권력을 통제하고 참여하는 유일무이한 열쇠다. 한 표의 가치는 곧 국민주권의 크기와 같다. 그런데 국가 권력의 정당성을 감시해야 할 선관위가 오히려 부실한 준비로 국민의 투표권 행사를 가로막고 방해했다면, 이는 결코 가볍게 웃어넘길 해프닝이 아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반복되는 부실 관리가 선거라는 제도 자체에 대한 신뢰를 근본적으로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는 점이다. 선거는 결과의 공정함보다 과정의 투명성과 절차적 신뢰가 선행되어야 한다. 아무리 완벽하고 공정한 개표 결과가 도출된다 한들, 국민이 그 과정을 믿지 못하고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다면 민주주의의 기초는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다. 실제로 최근 몇 년간 선관위가 보여준 행보는 실망의 연속이었다. 지난 선거에서의 이른바 '소쿠리 투표' 논란부터 시작해 투표지가 외부로 반출되는 인재가 발생했고, 조직 내부적으로는 고위직 자녀들의 특혜 채용 비리 의혹까지 터져 나오며 국민적 신뢰를 이미 바닥까지 잃은 상태였다.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 속에서 또다시 투표용지 부족이라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대형 사고가 터지니, 사회 일각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부정선거 음모론과 각종 의혹을 제기하는 것도 어찌 보면 자업자득이다. 물론 필자는 아무런 근거도 없이 제기되는 맹목적인 부정선거 음모론에는 절대 동의하지 않는다. 건강한 민주주의는 차가운 사실과 객관적인 증거 위에서만 올바르게 작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하게 짚고 넘어갈 점은, 선관위가 보여준 연속적인 실책과 안일함이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유발하는 의혹의 가짜뉴스들이 자라날 비옥한 토양을 지속적으로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근거 없는 의혹을 양산하는 세력도 문제지만, 그 의혹에 땔감을 던져주며 빌미를 제공한 국가기관의 책임 역시 결코 가볍지 않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천하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일에서 시작된다(天下難事 必作於易)”고 역설했다. 거대한 댐이 무너지는 것은 정밀한 균열이 아니라 사소한 틈새 하나를 방치했을 때다. 투표용지를 인쇄하고 수량을 맞춰 현장에 배부하는 일은 거창한 고도의 정치적 판단이나 첨단 인공지능 기술을 요하는 작업이 아니다. 선거 행정의 가장 밑바닥에 존재하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런데 그 가장 기초적인 기본이 허망하게 무너져 내렸다. 『논어』에서도 공자는 “그 자리에 있으면서 그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그 직분에 있지 않은 것과 같다”고 꾸짖었다. 막강한 권한과 독립성에는 그에 상응하는 무거운 책임과 의무가 따르는 법이다. 선관위는 선거의 공정성을 위해 헌법이 엄격하게 독립성을 보장해 준 초연적 기관이다. 권한이 강한 만큼 그들이 가져야 할 책임 의식은 일반 행정 부처보다 몇 배는 더 무겁고 철저해야 마땅하다. 이번 사태는 선관위가 관례대로 사과문 한 장 발표하고 적당히 구렁이 담 넘어가듯 뭉개고 끝낼 사안이 결코 아니다. 독립적인 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철저한 진상조사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도대체 어느 선에서 어떤 기준으로 투표용지 발행 수량을 제한했는지, 현장에서 용지가 부족하다는 비명이 터져 나왔을 때 왜 제때 보고와 추가 보급이 이루어지지 않았는지, 비상 대응 매뉴얼은 작동했는지 전 과정을 국민 앞에 한 치의 의혹도 없이 낱낱이 밝혀야 한다. 아울러 이번 기회에 선관위의 운영 시스템 전반을 완전히 뜯어고치는 구조적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헌법상 독립기관’이라는 견고한 방패 뒤에 숨어, 감사원의 감사를 거부하거나 외부의 정당한 비판을 무력화하면서 책임은 지지 않는 지금의 비대하고 비효율적인 관료주의 구조를 전면 점검해야 한다. 국민의 신뢰를 상실한 독립기관은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진짜 적은 한 번의 실수가 아니다. 그 실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반성하지 않고, 결국 같은 실수를 부끄러움 없이 반복하는 나태함이다. 신뢰라는 탑은 수십 년의 세월 동안 눈물겹게 쌓아 올려야 하지만, 무너져 내리는 것은 단 하루, 한순간의 방심으로 족하다. 이번 6·3 지방선거에서 울린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순진한 행정 착오가 아니라,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근간이 썩어가고 있다는 엄중한 경고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선관위는 이번 참사를 계기 삼아 조직의 명운을 걸고 뼈를 깎는 자기 혁신과 인적 쇄신에 나서야 한다. 그것만이 유권자의 소중한 참정권을 지키고 부서진 선거의 신뢰를 간신히 회복하는 유일한 길이다. 민주주의는 정치인들의 거창한 구호나 헌법 조문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줄을 서서 내 표를 기다리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소중한 참정권을 단 하나도 흘리지 않고 빈틈없이 받아내 지켜내는 현장의 땀방울에서 시작된다. 선관위는 이번 사태의 치욕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위대한 대한민국 유권자들 역시 선관위의 향후 행보를 두 눈 부릅뜨고 똑똑히 지켜볼 것이다.
2026-06-04 07:5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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