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총 10건
-
무지(無知)의 시장과 김어준씨의 선동 정치
[경제일보]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의 언어는 집이 아니라, 누군가를 가두고 불지르는 감옥이자 흉기가 되었다. 그 한복판에 김어준이라는 이름이 서 있다. TBS 시절부터 현재의 유튜브 권력에 이르기까지, 김 씨가 구축한 ‘뉴스공장’이라는 거대한 스튜디오는 사실(Fact)을 선택적으로 가공(Selection)해 특정한 정치적 해석을 강화하는 방송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노자(老子)는 『도덕경』 제81장에서 "신언불미 미언불신(信言不美 美言不信)"이라 했다. 참된 말은 겉치레가 화려하지 않고, 화려하게 꾸민 말은 믿음직스럽지 못하다는 뜻이다. 김어준 씨의 화법은 전형적인 ‘미언(美言)’의 극치다. 여기서의 ‘미’는 도덕적 아름다움이 아니라, 듣고 싶은 것만 듣게 해주는 감각적 쾌락이다. 김 씨는 특유의 음모론적 서사 구조를 빌려 복잡한 세계를 ‘선과 악’의 대결로 단순화한다. 생태탕 의혹부터 사드(THAAD) 전자파 미신, 나아가 각종 선거 국면에서 터져 나온 근거 희박한 의혹 제기들까지. 김 씨가 던진 수많은 ‘설(說)’ 중에서 법원의 판결이나 객관적 물증으로 증명된 것이 과연 몇 퍼센트나 되는가. 사실과 거짓의 비율을 따지는 것조차 무의미하다. 김 씨는 일부 사실과 추측을 결합한 서사를 통해, 대중이 믿고 싶어 하는 해석을 강화하는 서사를 만들어낸다는 비판이 나온다. 공자(孔子)는 정치의 으뜸으로 '정명(正名)', 즉 이름을 바로잡는 것을 꼽았다.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언론은 언론다워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김어준 씨의 방송 방식은 전통적 저널리즘의 기준과 거리가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는 스스로를 '공장장'이라 부르며 객관성이라는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을 조롱한다. 김 씨의 방송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선동 기법은 '프레임의 오염'이다. 상대방을 토론의 대상이 아닌 '청산해야 할 절대 악'으로 규정함으로써 합리적 비판의 통로를 원천 봉쇄한다. 이는 인류 경영의 기초인 '공존의 룰'을 파괴하는 행위다. 도덕경 24장은 "스스로 드러내는 자는 밝지 못하고, 스스로 옳다고 하는 자는 겉모양만 번지르르하다(自見者不明 自是非者不彰)"고 경고한다. 자신의 진영만이 정의롭다는 오만(自是非)이 확성기를 타고 대중에게 전달될 때, 사회적 통합은 요원해지고 증오의 에너지만이 응축된다. 김 씨의 방송 사례를 분석해보면, 사실 관계의 왜곡보다 더 위험한 것은 '맥락의 절단'이다. 특정 발언의 앞뒤를 자르고 의도적인 추측을 덧붙여 거대한 음모의 퍼즐을 맞춘다. 법적으로 처벌받지 않을 정도의 교묘한 수위 조절을 거치기에 법적 책임은 피할지 모르나, 도덕적 책임은 피할 수 없다. 과거 광우병 사태부터 최근의 지정학적 갈등에 이르기까지, 김 씨는 공포와 분노 같은 감정을 자극하는 정치적 서사를 통해 영향력을 확대해 왔다는 평가가 있다. 이것은 저널리즘이 아니라 '분노 마케팅'이다. 사실과 가짜의 비율이 1대 9이든 5대 5이든 그것은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김 씨가 제기한 일부 주장들이 허위정보 논란을 낳았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의 합리적 이성을 마비시키고, 진영 간의 벽을 더욱 높였다는 숙명적인 결과다. 『도덕경』 12장에는 "오색(五色)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오음(五音)은 사람의 귀를 먹게 한다"는 말이 있다. 화려한 음모론과 자극적인 선동의 언어는 대중의 눈과 귀를 멀게 한다. 김어준 씨가 파는 것은 정보가 아니라 '위안'과 '카타르시스'다. 하지만 그 카타르시스의 대가는 너무나 가혹하다. 그것은 공동체의 신뢰 자본을 탕진하고, 민주주의의 토대인 객관적 사실을 증발시킨다. 이제 대중은 스스로 깨어나야 한다. "저 사람 말이 시원하다"는 감각적 만족 뒤에 숨겨진 독단과 오만을 직시해야 한다. 단언컨대 선동으로 일어선 자는 결국 그 선동이 만든 허상 속에 갇히게 마련이다. 우리 사회가 김어준이라는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정치 논객의 그늘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상식과 도덕이 숨 쉬는 진정한 공론의 장이 열릴 것이다.
2026-03-16 09:43:38
-
선 넘은 김어준, 민주주의의 근간 흔들기 멈춰라
[경제일보] 작금의 대한민국 정치는 이성(理性)의 실종과 선동의 광풍 속에 표류하고 있다. 지난 11일 한 인터넷 방송에서 제기된 이른바 ‘검찰 공소취소 거래설’은 우리 헌정 질서와 사법 체계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경악스러운 주장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가 특정 사건을 두고 거래를 제의했다는 확인되지 않은 폭로가 공론장을 뒤흔드는 현실은, 이제 '스피커' 하나가 국가 시스템 전체를 인질로 잡고 흔드는 기형적인 시대에 도래했음을 자명하게 보여준다.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점은 이 선동의 발원지인 김어준 씨가 단순한 논객의 수준을 넘어, 공당(公堂)의 의사결정에 개입하고 국정 운영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며 ‘상왕(上王)’처럼 군림하려 든다는 지점이다. 과거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특정 진영의 결집을 주도하며 성장해온 그는, 이제 민주당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거대한 권력으로 변모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표를 의식해 그의 방송을 ‘성지’처럼 드나들며 체급을 키워주었고, 그 결과 그가 던지는 말 한마디에 제1야당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비정상적인 구조가 고착되었다. 노자(老子)의『도덕경』제9장에는 ‘금옥만당 막지능수(金玉滿堂 莫之能守), 부귀이교 자유기구(富貴而驕 自遺其咎)’라는 말이 있다. 금과 옥이 집에 가득해도 이를 지키기 어렵고, 부귀함에 취해 교만하면 스스로 허물을 남기게 된다는 뜻이다. 김 씨는 진영 논리의 비호 아래 막강한 영향력을 얻었으나, 그 권세에 취해 국가적 위기 상황마저 정쟁의 도구로 삼는 오만을 부리고 있다. 미-이란 전쟁의 포화 속에서 세계 경제가 미증유의 위기로 치닫고 있다. 우리 정부가 연일 비상 대책 회의를 열고 민생 안보에 총력을 기울이는 엄중한 시국이다. 그런데도 그는 '대책 회의조차 없었다'는 취지의 주장을 서슴지 않더니, 이제는 사법적 정의를 거래의 대상으로 폄훼하는 음모론까지 들고 나왔다. 이는 국론을 분열시켜 국력을 소모하게 하는 명백한 해국(害國) 행위다. 인류의 경전인『성경』은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경고한다. 더불어민주당은 지금의 이 혼란이 자신들이 키워온 '괴물'로부터 비롯되었음을 통감해야 한다. 사법 3법 입법과 무분별한 국정조사 추진 등 당력을 사법 리스크 방어에만 쏟아부으니, 길거리 선동가가 그 틈을 타 국가 원수를 협박하고 헌법 기관을 농단하는 판이 깔린 것 아닌가. 언론의 자유는 진실의 토대 위에서만 보호받을 수 있다.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폭로로 정부를 흔들고 국가의 기강을 어지럽히는 행태는 자유가 아닌 방종이자 폭거다. 특히 전직 대통령 시절부터 이어온 그의 행태가 이제는 현직 대통령의 사법적 권위까지 침해하려 드는 것은 묵과할 수 없는 선을 넘은 것이다. 이제라도 정치권은 장외 선동가의 입술에 휘둘리는 구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공당이 특정 유튜버의 하명(下命)을 받는 듯한 모습은 '문명국의 수치'다. 법치는 거래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국정은 음모론자의 놀이터가 되어서는 안 된다. 김 씨 역시 자신의 영향력이 공익을 해치고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만약 이대로 독단과 교만을 멈추지 않는다면, 결국 그가 심은 불신의 씨앗은 본인과 그를 추종하는 세력 모두를 파멸로 이끄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임을 엄중히 경고한다. 정부는 흔들림 없이 경제 위기 극복에 매진하되, 근거 없는 허위사실로 국가 기강을 흔드는 행위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히 대처해야 마땅하다. 민주주의의 근간인 사법 정의와 국정의 신뢰를 지키는 일에는 타협이 있을 수 없다.
2026-03-13 10:44:28
-
유튜브 괴담에 춤추는 정국, 민의의 전당이 '김어준 놀이터'인가
[경제일보] 대한민국 헌정사가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해괴하고 망측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구체적인 물증도, 실무적인 근거도 없는 유튜버의 ‘입’ 하나에 집권 여당이 탄핵을 입에 올리고, 국정이 마비될 정도로 요동치고 있다. 이른바 ‘이재명 대통령 공소 취소 거래설’이다. 발단은 이번에도 강한 정치적 성향으로 논쟁의 중심에 서온 김어준 씨의 유튜브 방송이었다. 의혹의 요체는 단순하다. 정부 고위 관계자가 검찰의 수사권을 보장해 주는 대가로 이 대통령의 과거 사건 공소를 취소하라고 압박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중차대한 의혹을 뒷받침하는 것은 ‘익명의 제보’와 ‘카더라’ 식의 전언뿐이다. 법치 국가에서 사법 체계의 근간을 뒤흔드는 거래가 있었다면, 그 일시와 장소, 구체적인 문건이나 물증이 제시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김 씨의 방송은 늘 그래왔듯 검증되지 않은 의혹 제기을 ‘단독’이라는 포장지로 감싸 안방에 배달했다. 더 개탄스러운 것은 이 허무맹랑한 ‘찌라시’ 수준의 의혹을 받아 물고 늘어지는 정치권의 행태다. 야권은 기다렸다는 듯 일제히 “특검 사안”이라며 총공세에 나섰다. 심지어 “사실일 경우 탄핵까지 가능하다”는 극언을 서슴지 않는다.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국회의원들이 일개 유튜버의 발언을 헌법적 절차인 탄핵의 근거로 삼으려 하는 모습은 우리 정치의 수준이 어디까지 추락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한동훈 전 대표를 비롯한 여권 일각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지만, 그 이면에는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그간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인들은 자기 입맛에 맞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지지층을 결집하고 세를 과시해 왔다. 특히 야당 의원들은 김 씨의 방송 출연을 훈장처럼 여기며, 그곳에서 나오는 선동적 메시지를 의정 활동의 지침으로 삼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치인이 민의의 전당인 국회가 아닌, 특정 유튜버의 스튜디오를 정치적 고향으로 삼고 있으니 가짜뉴스가 국정을 집어삼키는 것은 시간문제였던 셈이다. 유튜브라는 공간은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할 곳이지만, 책임 없는 방종이 국가 시스템을 파괴하는 단계에 이르렀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김어준 씨는 과거 일부 방송 내용이 사실과 다른 것으로 확인되면서 논란이 된 사례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그의 입에 기생하며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정치 자영업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당국은 언제까지 이 무책임한 ‘생중계 음모론’을 지켜만 볼 것인가. 방심위와 검찰은 이번 의혹의 진위를 신속히 파악해야 한다. 만약 이것이 근거 없는 날조로 밝혀진다면, 김 씨와 그 유포자들에게는 엄중한 사법적 책임을 물어 본보기를 삼아야 한다. 허위 사실 유포로 국정을 혼란에 빠뜨린 대가가 얼마나 혹독한지 보여주는 것만이 무너진 법치주의를 바로 세우는 길이다. 아울러 정치권의 뼈저린 자성이 필요하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더 이상 특정 유튜버의 방송에 출연해 박수받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 정치가 길거리 선동과 유튜브 조회수에 휘둘리는 순간, 대의민주주의는 실종되고 ‘중우정치’만 남게 된다. 정치권은 이제 그 독이 든 성배와도 같은 유튜브와의 유착 관계를 끊어내야 한다. 지금의 정국은 상식과 원칙이 실종된 ‘무속 정치’보다 못한 ‘유튜브 정치’의 늪에 빠져 있다. 이 늪에서 빠져나올 방법은 오직 하나다. 가짜뉴스에 대해서는 무관용 원칙으로 대응하고, 정치인은 마이크 앞이 아닌 민생의 현장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김어준의 ‘뉴스 공장’이 국정을 설계하는 공장이 되도록 방치하는 국가에 미래는 없다.
2026-03-12 16:05:22
-
-
-
권노갑의 큰 정치, 한국 정치의 새로운 이정표다
[경제일보] 권노갑 김대중재단 이사장의 『권노갑 백인평전』 출판기념회는 단순한 출판 행사를 넘어 한국 정치가 다시 돌아보아야 할 한 장면을 보여 주었다. 국회박물관에 모인 인사들의 면면도 예사롭지 않았지만 무엇보다 주목할 대목은 권노갑이라는 인물이 한국 정치사에서 어떤 의미로 남아 있는가를 다시 확인하게 했다는 점이다. 그는 오랜 세월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곁을 지킨 정치인이자 민주화의 굴곡진 현장을 통과해 온 산증인이다. 그러나 그를 단지 ‘영원한 비서실장’으로만 부르는 것은 부족하다. 권노갑은 한국 정치가 잃지 말아야 할 기본과 원칙, 상식의 가치를 상징하는 인물로 기억될 만하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이날 축사에서 회고한 2000년 청와대 만찬장의 장면은 그 상징성을 압축적으로 보여 준다. 당시 정 장관은 김대중 대통령 앞에서 권 고문의 퇴진을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정치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매우 냉혹한 장면이었다. 그 자리에 앉아 있던 누구라도 격앙되거나 반격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권노갑은 달랐다. 그는 “내가 퇴진함으로써 대통령과 당이 편안해질 수 있다면 그것이 나의 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순명’이라는 두 글자를 남겼다. 세월이 흐른 뒤 자신을 향해 칼을 겨누었던 후배를 다시 품고 “더 큰 정치를 하라”고 말한 대목은 더욱 인상적이다. 이것은 권력의 기술이 아니라 정치의 품격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는 장면이다. 오늘의 한국 정치가 특히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대목도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 정치는 과도한 진영 대립과 적대적 언어, 그리고 단기적 이해관계에 지나치게 흔들리고 있다. 정치는 본래 공적 책임의 영역인데도 현실에서는 상대를 쓰러뜨리는 기술이나 지지층을 결집하는 선동의 언어로 축소되는 일이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권노갑의 삶은 정치의 본령이 무엇인지를 되묻게 한다. 정치는 사람을 소모하는 수단이 아니라 공동체를 지탱하는 공적 행위이며 권력은 사유의 대상이 아니라 절제와 책임의 대상이라는 점을 일깨운다. 권노갑의 정치가 특별한 까닭은 오랜 세월 권력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권력의 탐욕에 함몰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는 자신을 앞세우기보다 대의를 앞세웠고 직함보다 역할을 중시했으며 사적 이익보다 공적 질서를 소중히 여겼다. 실제로 많은 인사들이 그를 두고 ‘선당후사’의 표상, 사람과 신의를 중심에 둔 정치의 실천자라고 평가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는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오랜 시간 축적된 관찰의 결과일 것이다. 한국 정치에서 이런 평가를 여야를 넘어 함께 받는 인물은 결코 많지 않다. 그는 또한 정치의 가장 근본을 지킨 인물로 평가할 수 있다. 정치의 근본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사실을 직시하는 진리의 태도, 사적 이해보다 공적 기준을 앞세우는 정의의 감각, 서로 다른 의견과 세력이 공존할 수 있도록 공간을 넓히는 자유의 정신이 정치의 근본이다. 권노갑의 삶에는 이러한 요소가 비교적 분명하게 배어 있다. 그가 한국 민주주의의 질곡 속에서도 끝내 사람을 잃지 않았고 적지 않은 후배 정치인에게 울타리와 버팀목으로 기억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번 출판기념회가 던지는 메시지는 그래서 개인 찬양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 정치가 권노갑이라는 한 인물을 통해 무엇을 배울 것인가다. 정치는 결국 기본과 원칙, 그리고 상식 위에 서야 한다. 순간의 유불리에 따라 흔들리는 정치가 아니라 긴 호흡에서 공공성을 지켜내는 정치가 필요하다. 또한 정치적 갈등은 불가피하더라도 그것을 다루는 방식에는 품격이 있어야 한다. 권노갑이 보여 준 절제와 용서, 그리고 대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태도는 지금 정치권 전체가 되새겨야 할 덕목이다. 정치의 역할 역시 과거를 끝없이 응징하는 데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미래를 다시 묶는 데 있어야 한다. 갈등을 넘어 화해와 공존의 길을 찾지 못하는 정치는 결국 사회적 에너지를 소모하는 데 그치기 쉽다. 권노갑의 삶을 지나치게 미화할 필요는 없다. 정치인은 누구나 시대의 한계와 논란 속에 존재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의 긴 정치 여정이 오늘의 한국 정치에 하나의 기준점을 제시한다는 사실이다. 권력의 중심에 있을 때보다 권력을 내려놓는 순간 더 크게 보이는 정치인, 자신을 겨눈 후배마저 품어 더 큰 정치를 하라고 말할 수 있는 정치인, 직위보다 도리로 기억되는 정치인은 드물다. 그런 점에서 권노갑의 큰 정치는 과거의 미담이 아니라 오늘의 정치가 다시 세워야 할 이정표라 할 만하다. 한국 정치는 지금 새로운 기준을 필요로 한다. 거친 언어보다 절제된 판단이 진영의 흥분보다 공적 책임이 순간의 승리보다 오래 남는 품격이 절실하다. 권노갑이라는 이름이 다시 호명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의 백년 인생은 단순한 개인사의 기록이 아니라 민주주의가 어떤 사람들에 의해 지탱되는가를 보여 주는 한 사례다. 정치가 다시 국민의 신뢰를 얻고자 한다면 권노갑이 남긴 기본과 원칙, 상식의 유산부터 차분히 돌아봐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한국 정치가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가장 현실적이고도 무거운 출발점일 것이다.
2026-03-08 08:10:19
-
-
-
말의 책임을 잃은 사회 — 황교안 사태가 남긴 말의 교훈
전직 국무총리 황교안 씨가 내란 선동 혐의로 구속되고, 특별 내란수사팀의 조사를 받고 있다. 자택과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까지 발부된 이번 사태는 단순히 한 정치인의 법적 문제를 넘어, 우리 사회의 언어 윤리와 책임 의식을 깊이 되묻게 한다. 황 전 총리는 정치적 견해를 넘어선 격한 발언과 확인되지 않은 주장을 반복하며 사회의 분열과 불신을 키워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의 말은 단순한 의견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고 행동을 자극하는 선동의 도구로 변질되었다. 그 결과, 진실은 왜곡되고 사회적 평화는 상처 입었다. 다석 유영모 선생은 “말은 생명이다”라고 하셨다. 말은 사람의 마음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한다. 불경(佛經)에서도 말의 그릇됨을 큰 죄로 경계한다. 거짓말(妄語), 이간질(兩舌), 남을 비난하는 악구(惡口), 헛된 말을 일삼는 기어(綺語)는 모두 공동체의 믿음을 무너뜨리는 ‘입의 죄’, 곧 구업(口業)이라 했다. 거짓된 말은 단지 남을 상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 자신의 마음을 어둡게 만든다. 지금 우리 사회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총이나 칼이 아니라, 진실을 가리는 말의 폭력이다. 분노와 혐오, 왜곡과 선동이 넘치는 시대에 우리가 되찾아야 할 것은, 생명을 살리고 마음을 잇는 말이다. 진정한 지도자라면 자신의 말 한마디가 사회의 생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먼저 성찰해야 한다. 언론과 시민 또한 그 말의 진위를 분별하고, 진실에 무게를 두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말은 흘러가지만, 그 말의 결과는 오래 남는다. 이번 사태가 남긴 교훈은 분명하다. 거짓과 선동의 말은 결코 사람을 살릴 수 없다. 이제는 모든 말이 다시 생명으로 돌아가야 한다. 진실을 향한 말, 사랑을 품은 말만이 우리 사회를 바로 세울 수 있다.
2025-11-13 11:11:28
-
보수의 원로 조갑제 선생 "진영 논리 넘어 法과 事實이 유일한 기준 돼야"
[이코노믹데일리] 오후 5시 무렵, 서울 종로구 세안문로 남서쪽 덕수궁을 내려다보는 오피스텔 고층 사무실 안은 일반 가정의 거실처럼 고즈넉했다. 벽면을 가득 채운 책장에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에 족적을 남긴 인물들의 전기와 국내 정치·국제 정세를 다룬 서적들이 빽빽히 꽂혀 있었다. 일부는 바닥과 책상 위에까지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조갑제닷컴과 조갑제TV를 운영하는 조갑제 선생의 공간이다. 1945년생, 기자 생활 55년. 이제 ‘선생’이라는 호칭이 더 자연스럽다. 그는 “내 글방이 곧 내 전선”이라며 “책은 역사의 흔적, 기자는 그 흔적을 기록하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곤 하는 그의 면면이 한번에 느껴진다. 보수와 진보 구도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 사회에서 조갑제 선생은 오랫동안 보수의 핵심에 있어온, 보수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다. 그러던 그가 지난달 발간된 저서 ‘윤석열 몰락의 기록―대통령이 대한민국을 공격했다’에서 전임 대통령의 재임 중 벌인 군사 쿠데타에 대해 “국가 파괴 행위”라 규정하며 날카로운 비판을 쏟아냈다. 그는 보수 출신 대통령을 정면으로 겨냥해 냉철하게 비판했고 단호하게 쿠데타 세력과도, 부정선거와 같은 음모론과도 칼같이 거리를 뒀다. 어줍잖은 인물이 이미 실권 잃은 전직 대통령 한번 더 패대기치기하는 정도였다면 그리 관심 갖진 않을 게다. 그간 보수의 기치를 지켜온 그였기에 그가 버린 것, 그가 취한 것에 관심을 갖게 만든다. 보수·진보를 지나 극우·극좌가 난무하며 종교인지 정치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이념 과잉이 광신처럼 뒤범벅이 된 지금의 우리 사회에서 자신을 있는 대로 드러낸 채 공개적으로 뭔가를 취하고 버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선택인가. 이념의 미친 굿판 같은 이 사회를 향해 조갑제는 이제 보수·진보란 용어에서 탈피해 사실과 법치를 우선시할 것을 제안하며 음모론과 극단주의에 선을 그었다. “지금 (글로벌 사회) 전체적인 분위기가 굉장히 극단화돼 있다. 둘러보면 우리나라만의 문제도 아니고, 여러 나라에서 이제 유사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조갑제 선생은 얼마 전 미국 조지아주에서 미국 이민당국이 한국인 300여명을 일주일간 구금한 사건을 예를 들었다. “우리 근로자들이 그 피해자가 돼 비루한 구금시설 시설에서 일부는 쇠사슬까지 찼고, 임산부도 구금되는 그런 막무가내 상황이었다. 일부 업무용 비자를 가진 사람들도 있었지만 일방적으로 다 구금시설에 집어 넣어버렸다.” 그는 “이 사건은 일종의 ‘본보기’였다”며 “세계 곳곳이 이 같은 불안정성을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왜 이 같은 경향들이 나타난다고 보는가. “지금 세계 전체가 극단화돼 있다.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미국, 브라질, 유럽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치가 진영 논리에 갇히고, 언론은 자극적 이슈를 확대 재생산하며, 사회 전체가 불신과 분노에 휩싸였다. 한국 역시 예외일 수 없다. 조금만 자극을 줘도 터질 만큼 신경이 곤두서 있는 상태다.” -특히 우파의 극단화 원인은 무엇에서 찾을 수 있나. “부정선거 음모론에 그 뿌리가 있다. 한국의 2020년 4월 총선 부정선거론자들과 미국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브라질의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이 연계된 일종의 부정 선거 삼각 동맹이 형성됐다. 근거 없는 주장인데도 한국의 보수 내부를 깊이 분열시켰다. 음모론은 한 번 뿌리 내리면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인터넷과 유튜브, 일부 교회가 이를 증폭시키며 사실처럼 퍼뜨려 극우화가 심화됐다.” -왜 유독 한국 보수가 큰 타격을 받고 궁지에 몰린 상황이 됐나. “지금도 우리 사회에 보수층으로 불릴 수 있는 국민은 약 45% 수준으로 건재하다. 하지만 이를 대표하던 보수 세력은 거의 궤멸적 타격을 입었다. 국민의힘은 이미 극우화했고, ‘보수당’으로서의 존재 가치는 사라졌다. 그 시작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서 비롯됐다. 탄핵까지 안 갔을 수도 있는 일을 비박 세력과 민주당 세력이 손을 잡고 선동적인 가짜 뉴스에 기초해 탄핵을 시킨 것이다. 그 혼란 속에서 보수는 윤석열이란 검찰총장을 영웅화했고, 그가 대통령이 된 뒤 그의 폭주를 견제하지 못했다. 지금 보수 세력의 괴멸은 윤석열의 폭주를 견제하지 않고 오히려 진영 논리에 빠져 박수부대가 되고 팬클럽이 된 대가다. 윤석열이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걸 봤을 때 브레이크를 걸었어야 했다. 탄핵 이후에는 이념보다 감정이 앞섰고, 결국 합리적 토론의 장을 스스로 버린 셈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가장 큰 실책은 무엇이라 보는지. “청와대에서 대통령실을 국방부 청사로 옮긴 결정부터가 법과 경호 상식을 무시한 처사였다. 그때부터 불안했다. 한국 현대사를 부정을 하고 어떻게 청와대를 ‘제왕적 권력의 상징’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건 모독이다. 그 말을 했다는 것은 윤석열의 머릿속에는 보수적 역사관이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후 이준석 전 대표를 치사한 방식으로 몰아내며 내부 총질을 시작했다. 의료정원 확대와 의사 집단 적대화, 지난해 12·3 계엄령 선포까지 모두 내부를 향한 공격이었다. 윤 전 대통령은 좌파와 싸운 적이 없다. 항상 자기편을 향해 총을 겨눴다. 이런 행보가 보수 세력의 붕괴를 재촉했다.” -지난해 12·3 계엄령의 배경은 무엇이었다고 보는가. “김건희 여사를 보호하려는 목적이 핵심이었다고 본다. 윤 전 대통령의 음주 문제, 부인과의 비정상적 관계, 주술적 영향, 그리고 부정선거 음모론이 뒤엉킨 결과였다. 저는 이를 ‘망상적·발작적 결정’이라 표현한다. 한 국가의 수장이 개인적 불안과 가족 문제를 국가 운영에 투영한 전례 없는 사례다.” -부정선거 음모론의 해악을 거듭 강조하셨는데. “대통령이 직접 부정선거를 언급하면 국민은 믿을 수밖에 없다. 이는 한국인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악령’과 같다. 한국 개신교 일각이 이를 퍼뜨리며 교인들을 현혹했는데 이는 종교를 빌미로 삼은 범죄다. 전 국민의 30%, 국민의힘 지지층의 60%가 한때 이 음모론을 믿었다. 공산주의가 한반도를 분단시킨 것만큼이나 오랜 후유증을 남길 것이다.” -음모론에서 벗어날 해법은 무엇이라고 보나. “철저한 수사와 형사처벌이 필요하다. 단순히 특검이 외관죄를 수사할 것이 아니라, 부정선거 음모론의 발원과 유포 경로를 규명해야 한다. 이를 뿌리 뽑지 않으면 보수는 물론 한미동맹까지 흔들린다.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거짓 주장을 바로잡기 위해 수년간 법적 절차가 이어졌듯이, 한국도 단호해야 한다.” -우리나라 보수 세력 재건 가능성은. “보수는 지난 80년간 우리나라 산업화와 문명 건설의 주인공이었다. 군, 기업, 의료보험, 중화학 공업, 사회 인프라 모두 보수가 만든 업적들이다. 그러나 박근혜·윤석열 사태를 거치며 보수 세력의 절반은 좀비화·컬트화됐다. 이제는 법치와 사실을 기준으로 ‘국가 중심 세력’으로 재편해야 한다. 국민의힘 해체 수준의 혁신이 필요하다 이준석·한동훈 세력 등은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 보수의 이름을 되찾으려면 ‘보수’라는 말 자체보다 실질적 가치와 원칙을 회복해야 한다.” -그간 사회 전반의 지적(知的) 기반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해왔는데. “한국어의 70%는 한자어다. 이를 몰라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면 어휘력·판단력이 떨어지고, 고급 학문도 어려워진다. 저는 이를 ‘국가적 치매화’라고 부른다. 국민의 분별력이 약해지니 부정선거 음모론이 먹히는 것이다. 한자 교육을 강화하지 않으면 국민적 사고력이 점차 퇴화해 민주주의 운영도 불안정해질 것이다.” -젊은 세대가 통일 필요성에 회의적이란 점에 대해서도 우려를 갖고 계신 걸로 안다. “그 책임은 기성세대에 있다. 우리 한민족은 ‘일민족 일국가(一民族 一國家)’의 전통을 갖고 있다. 헌법 제4조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을 명령하고 있다. 평화 공존은 임시일뿐, 통일을 포기하면 한국은 역사적 정통성을 잃고 결국 식민지화될 수 있다. 과거 서독처럼 실력을 기르며 기회를 기다려야 한다. 통일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다.” 조갑제 선생은 “보수와 진보, 진영 논리를 넘어 법과 사실이 유일한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한국 사회의 극단화와 보수 진영의 몰락을 “분별력의 붕괴”로 진단했다. 이어 그는 우리 국민이 사고력을 높이고 분별력을 찾고 역사의 향방을 찾아내는 방안의 하나로 ‘회고록 쓰기’를 권장했다. “개개인의 회고록들이 모여 역사의 흐름을 만들어 내고, 그 안에서 자연스레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아내는 집단지성을 발휘하게 될 것”이라고 회고록 쓰기를 다시 한 번 당부했다. 그의 말 속에는 55년 기자 생활이 남긴 집요한 현실 감각과, 국가를 향한 냉철한 애정이 동시에 묻어 있었다.
2025-09-25 06: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