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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2차 제재 압박, 한국 기업이 또 희생양 돼선 안 된다
[경제일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이란과 거래하는 국가와 기업을 겨냥한 2차 제재 가능성을 다시 꺼내 들었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24일 이란과 거래를 계속하는 해외 기업과 금융기관이 미국 중심의 금융시스템에서 배제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은 이날 이란의 석유·해운·항공·금·가상자산·기술 분야와 관련된 개인·기업·선박 60곳을 새로 제재했지만, 당장 가장 강력한 2차 제재까지 전면 시행하지는 않았다. 문제는 앞으로다. 미국이 이란과 거래하는 제3국 기업까지 본격적으로 제재하기 시작하면 그 파장은 중동에 그치지 않는다. 달러 결제망과 미국 금융시장에 대한 접근을 무기로 삼는 2차 제재는 사실상 전 세계 기업에 “이란과 미국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는 압박으로 작용한다. 한국 기업도 예외일 수 없다. 한미동맹은 우리 외교·안보의 핵심축이다. 북한 핵 문제와 첨단기술, 공급망, 안보 분야에서 미국과의 협력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국제사회의 대이란 제재 체제에도 책임 있게 동참해야 한다. 그러나 동맹이라는 이유만으로 한국 기업이 예상하지 못한 손실까지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제재의 목적과 동맹국 기업 보호는 별개의 문제다. 미국의 대이란 압박은 이미 국제 에너지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의 교역 상대에 대한 제재를 경고한 뒤 국제유가는 크게 출렁였다. 지난 21일 브렌트유는 배럴당 94달러를 넘어섰고, 이란산 원유 공급 차질과 호르무즈해협 불안이 계속되면서 시장의 변동성도 커졌다. 한국처럼 원유 대부분을 수입하는 국가는 제재 자체보다 그에 따른 국제유가 상승이 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유가가 오르면 정유와 석유화학뿐 아니라 항공·해운·물류·제조업 전반의 비용이 올라간다. 전기·가스요금과 소비자물가에도 시차를 두고 영향을 준다. 대이란 제재가 강화될수록 한국경제가 감당해야 할 간접 비용도 커질 수밖에 없다. 해운업도 위험하다. 이란은 최근 호르무즈해협 통항 문제를 둘러싸고 외국 선박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24일에는 통항 규칙 위반을 이유로 45척의 선박을 제재 대상으로 지정하면서 벌금과 억류, 화물 압류 가능성을 경고했다. 명단에는 한국 해운사와 관련된 선박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2차 제재와 이란의 맞대응이 동시에 강화되면 기업은 양쪽 위험을 모두 떠안는다. 미국 제재를 피하기 위해 이란과 거래를 끊더라도 이미 체결한 계약과 운송 일정에서 손실이 생길 수 있다. 반대로 기존 계약을 이행하다 미국 금융·결제망에서 제재를 받는다면 피해는 훨씬 커진다. 정부가 지금부터 움직여야 하는 이유다. 첫째, 미국과의 사전 협상을 통해 한국 기업에 필요한 예외와 유예를 최대한 확보해야 한다. 과거 대이란 제재에서도 미국은 동맹국이나 특정 거래에 한시적 예외를 인정한 전례가 있다. 이번에도 이미 체결된 계약이나 인도적 물품, 국제 에너지시장의 안정을 위해 필요한 거래 등에 대해서는 충분한 유예기간을 확보해야 한다. 기업에게 어느 날 갑자기 거래를 끊으라고 요구해서는 안 된다. 최소한 계약 정리와 결제 회수, 화물 운송을 마칠 시간을 줘야 한다. 정부가 미국과 협상해야 할 핵심도 바로 이런 현실적인 피해 방지 장치다. 둘째, 기업에 명확한 제재 가이드라인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2차 제재의 가장 큰 문제는 불확실성이다. 어떤 거래가 제재 대상인지, 어느 시점부터 적용되는지, 이란과 직접 거래하지 않고 제3국을 통해 거래하는 경우 어디까지 문제가 되는지 기업이 정확히 알기 어렵다. 특히 중소기업은 미국 제재 규정을 자체적으로 분석하기 어렵다. 정부와 금융당국, 무역기관이 공동으로 기업별 노출도를 점검하고 제재 대상 거래와 허용 거래를 신속하게 안내해야 한다. 제재를 몰라서 위반하는 기업이 나오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 셋째, 금융권의 과도한 위축도 피해야 할 상황이다. 제재가 시작되면 금융기관은 위험을 피하기 위해 실제 제재 대상이 아닌 거래까지 결제를 거부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른바 ‘과잉 준수’다. 기업 입장에서는 합법적인 거래임에도 돈을 받지 못하거나 송금이 막힐 수 있다. 정부는 미국과 협의해 제재 대상과 예외 거래를 명확히 하고 국내 은행에도 일관된 지침을 제공해야 한다. 기업이 제재보다 금융기관의 지나친 위험 회피 때문에 먼저 피해를 보는 일은 방지하는 게 정부의 책무다. 넷째, 에너지와 물류 공급망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 미국과 이란의 갈등이 장기화하면 유가와 해상운임 상승은 일시적 현상이 아닐 수 있다. 미국의 봉쇄와 제재 강화로 이란산 원유 수출이 크게 감소했고 중국 정유사들도 대체 물량 확보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역시 원유 수입선을 다변화하고 전략비축유 운용 계획을 점검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호르무즈해협 통항이 불안해지는 상황에 대비해 대체 운송 경로와 선박 보험, 해운기업 지원책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한미 간 협상의 원칙이 중요하다. 미국은 자국의 안보와 외교 목표를 위해 제재를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도 자국 기업과 국민의 경제적 이익을 지킬 책임이 있다. 동맹국의 정책에 협력하는 것과 우리의 경제적 손실을 아무 조건 없이 감수하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미국 역시 동맹의 부담을 일방적으로 전가해서는 안 된다. 제재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동맹국의 협력이 필요하다. 동맹국 기업에 충분한 설명과 준비기간 없이 제재를 확대하면 미국 정책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만 떨어질 수 있다. 더구나 이번 제재에서 미국이 이란산 원유 거래에 큰 역할을 하는 중국의 주요 금융기관에는 아직 가장 강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과의 충돌을 의식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렇다면 한국 정부도 미국에 분명히 요구할 것은 요구해야 한다. 제재가 필요하다면 기준은 일관돼야 한다. 경제 규모나 협상력에 따라 어떤 국가는 유예하고 동맹국 기업에는 더 엄격한 부담을 지우는 방식이라면 공정성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정부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미국이 구체적인 제재안을 발표한 뒤에야 대책회의를 여는 사후 대응이다. 제재 대상과 시점이 확정되기 전에 산업별 노출도를 파악하고 미국 재무부와 협의해야 한다. 에너지·해운·금융·건설·수출기업의 기존 계약을 전수 점검하고 피해 가능성을 미리 계산해야 한다. 기업에도 대비가 필요하다. 제재 위험이 높은 거래는 계약 단계부터 미국 제재 발동 시 책임과 손실을 어떻게 나눌지 명확히 해야 한다. 결제통화와 거래은행, 선박과 보험사까지 제재 위험을 사전에 점검하는 시스템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미국과 이란의 충돌이 격화될수록 한국에는 외교와 경제가 분리되지 않는다. 안보동맹을 지키면서 에너지 가격을 안정시키고, 미국의 제재를 준수하면서 한국 기업의 피해도 줄여야 한다. 어느 한쪽만 강조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대외경제 환경이 불안할수록 외교의 실력은 선언이 아니라 손실을 얼마나 줄였는지에서 드러난다. 미국의 2차 제재가 현실화한다면 한국도 국제사회와 보조를 맞춰야 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우리 기업이 예측할 수 없는 피해를 떠안게 해서는 안 된다. 정부는 미국의 최종 결정만 기다릴 것이 아니라 예외와 유예, 결제 안전망과 에너지 공급망 대책을 지금부터 협상해야 한다. 동맹은 국익을 포기하는 관계가 아니다. 공동의 안보 목표를 지키면서 서로의 정당한 경제적 이해를 조정하는 관계다. 대이란 제재에서도 그 원칙은 달라질 수 없다. 제재에는 협력하되 한국 기업의 피해는 최소화하는 선제적 외교전이 지금 필요하다.
2026-08-25 10:5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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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소비자물가 2.8%…석유류·농축수산물 오름폭 축소
[경제일보]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석유류와 농축수산물의 오름폭 둔화로 3개월 만에 2%대로 낮아졌다. 전월 대비 소비자물가는 정부의 민생물가 안정대책과 석유류 가격 인하 등의 영향으로 8개월 만에 하락했다. 국가데이터처가 4일 발표한 '2026년 7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2.8% 상승했다. 지난 6월 상승률 3.2%보다 0.4%포인트(p) 낮은 수준이다. 전월 대비로는 0.2% 하락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 1월과 2월 각각 2.0%를 기록한 뒤 △3월 2.2% △4월 2.6% △5월 3.1% △6월 3.2%로 확대됐다. 다만 지난달에는 2% 후반대로 내려왔다. 정부는 농축수산물과 석유류의 전년 동월 대비 오름폭이 줄어든 점을 전체 물가 상승률 둔화의 주요 배경으로 봤다. 농축수산물 상승률은 지난 6월 3.2%에서 지난달 0.9%로 낮아졌다. 같은 기간 석유류 상승률도 24.7%에서 15.5%로 둔화했다. 전월 대비로는 농축수산물과 석유류 가격이 각각 0.7%, 5.3% 하락했다. 이에 따라 전체 소비자물가지수도 전월보다 0.2% 떨어졌다. 소비자물가가 전월 대비 하락한 것은 8개월 만이다. 정부는 지난 6월 26일 발표한 민생물가 안정대책과 최고가격 인하 등이 물가 상승세 완화에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했다. 지난 6월 27일부터 시행한 리터(L)당 150원의 7차 최고가격 인하는 지난달 물가 상승률을 약 0.3%p 낮춘 것으로 추정했다. 변동성이 큰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는 전년 동월보다 2.6% 올랐다. 지난 6월 2.5%보다 상승 폭이 0.1%p 커졌다. 농산물과 석유류를 제외한 지수도 2.5% 상승해 전월 상승률인 2.4%를 웃돌았다. 가계가 자주 구매하는 품목을 중심으로 산출하는 생활물가지수는 2.5% 상승했다. 식품 가격은 1.6%, 식품 이외 품목은 3.2% 올랐다. 신선식품지수는 2.3% 하락했다. 신선어개 가격이 4.4% 올랐지만 신선채소와 신선과실 가격은 각각 4.3%, 4.7% 떨어졌다. 농축수산물 가격은 전년 동월보다 0.9% 상승했다. 농산물 가격이 2.2% 하락한 반면 축산물과 수산물은 각각 4.4%, 3.9% 올랐다. 품목별로는 수입 쇠고기가 8.7%, 쌀이 7.9%, 국산 쇠고기가 5.7% 상승했다. 배추와 수박 가격은 각각 18.4%, 11.1% 하락했다. 석유류 가격은 중동전쟁 영향과 기저효과 등으로 15.5% 급등했다. 종류별 상승률은 △경유 21.5% △등유 20.5% △휘발유 12.6%로 집계됐다. 다만 전월과 비교하면 경유와 휘발유 가격은 각각 6.7%, 6.2% 떨어졌다. 가공식품 가격은 전년 동월보다 1.0% 상승했다. 시리얼과 차 가격은 각각 16.9%, 8.9% 하락했다. 조제약과 건강기능식품도 각각 1.2%, 1.1% 내렸다. 개인서비스 물가는 3.5% 상승했다. 외식 물가는 2.6% 올랐고 외식을 제외한 개인서비스 가격은 4.1% 상승했다. 이 외 보험서비스료는 13.4%, 해외 단체여행비는 20.0%, 자동차 수리비는 6.1% 올랐다. 정부는 물가 상승세가 완화했지만 높은 물가 수준에 따른 민생 부담이 여전하다고 진단했다. 중동전쟁의 불확실성과 폭염 등 이상기후, 식품 가격 상승 가능성도 물가의 상방 위험 요인으로 꼽았다. 지난해 8월 한 달간 시행된 일시적인 휴대전화비 할인도 기저효과로 작용할 전망이다. 정부는 이 영향으로 올해 8월 휴대전화비 상승률이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약 0.8%p 높일 것으로 예상했다. 정부는 석유류 가격 안정을 위해 4일 '착한 주유소'를 추가 선정하고 원유 도입과 비축 여력을 확보하기로 했다. 지난달 시작한 농축수산물 전 품목 할인 행사도 이달까지 이어간다. 계란과 고등어 수입도 추진한다. 갈치와 오징어 등 수산물 가격이 오르면 정부가 직접 사들여 할인 방출할 계획이다. 채소류와 양식어류 등 폭염·폭우에 민감한 품목의 가격과 수급 상황도 집중적으로 점검한다. 정부는 성수품 물가 안정과 취약계층 부담 완화 방안을 담은 '추석 민생안정대책'을 다음달 발표할 예정이다.
2026-08-04 08:4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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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생산자물가 보합…석유제품 내리고 축산물 올랐다
[경제일보] 지난달 생산자물가지수가 전월과 같은 수준을 유지했다. 22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6년 6월 생산자물가지수'에 따르면 지난달 생산자물가지수는 전월 대비 보합을 나타냈다. 지난해 9월부터 생산자 물가 지수가 지속 상승했으나 9개월 만에 상승세가 멈췄다. 생산자물가지수는 국내 생산자가 국내시장에 공급하는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 변동을 측정한 지표다. 통상 소비자물가에 시차를 두고 영향을 줄 수 있는 선행 지표로 활용된다. 품목별로는 농림수산품이 전월보다 0.7% 올랐다. 농산물은 0.2%, 수산물은 0.6% 내렸지만 축산물이 2.1% 상승하면서 전체 지수를 끌어올렸다. 공산품은 전월보다 0.3% 하락했다. 석탄 및 석유제품이 5.3%, 화학제품이 1.8% 내린 영향이다. 주요 품목별로는 나프타와 제트유가 각각 23.5%, 23.4% 하락했고 에틸렌과 폴리에틸렌수지도 각각 18.9%, 10.2% 내렸다. 반면 컴퓨터·전자 및 광학기기는 2.4% 상승했다. 컴퓨터기억장치가 10.3%, 공업계기가 18.2% 올랐다. 반도체 가격 상승 영향으로 정보기술(IT) 지수도 전월보다 1.2% 상승했다. 전력·가스·수도 및 폐기물은 전월 대비 1.0% 올랐다. 이 중 산업용 도시가스가 10.6%, 증기가 7.3% 상승했다. 서비스 물가는 0.2% 올랐다. 금융 및 보험서비스가 2.5% 상승했고 금융·보험 보조서비스 중 위탁매매수수료가 6.0% 올랐다. 운송서비스는 국제항공여객과 항공화물 가격 하락 영향으로 0.3% 내렸다. 특수분류별로는 식료품이 0.4% 상승했고 신선식품은 0.5% 하락했다. 에너지는 전월과 같았고 식료품 및 에너지 이외 지수도 보합을 나타냈다. 국내공급물가지수는 전월보다 0.7% 상승했다. 전년 동월 대비로는 13.2% 올랐다. 원재료가 2.1%, 중간재가 0.5%, 최종재가 0.5% 오르며 생산단계별 지수가 모두 상승했다. 원재료는 수입과 국내출하가 각각 2.4%, 0.5% 올랐다. 중간재는 수입을 중심으로 상승했고 최종재도 수입과 국내출하가 모두 올랐다. 용도별로는 자본재와 소비재가 각각 1.2%, 0.8% 상승했다. 총산출물가지수는 전월보다 0.4% 상승했다. 공산품은 국내출하가 0.3% 내렸지만 수출이 1.3% 상승하면서 전체적으로 0.4% 올랐고 서비스도 0.2% 상승했다. 한은은 이달 생산자물가에 대해서는 상하방 요인이 혼재돼 있다고 봤다. 지난 1~20일 평균 두바이유 가격이 지난달 평균보다 10% 하락했으나 미국과 이란 간 무력 충돌 재개, 산업용 도시가스 도매요금 인상 등이 물가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생산자물가의 전월 대비 오름세는 멈췄지만 중동 전쟁에 따른 2차 파급 효과는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에 따라 생산자물가는 당분간 소비자물가에 상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2026-07-22 08:4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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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90달러 유가…유류세만 만지는 물가 대책으론 부족하다
[경제일보] 국제유가가 다시 세계 경제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미국과 이란의 충돌이 이어지고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면서 브렌트유는 한때 배럴당 90달러를 넘어섰다. 20일(현지시간) 국제 원유시장에서 브렌트유는 장중 배럴당 88.63달러,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82.61달러에 거래됐다. 이후 브렌트유는 89.22달러, WTI는 83.23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4.604%까지 올라섰다. 유가 상승이 에너지 가격에 머물지 않고 물가와 시장금리, 달러 가치, 주가를 동시에 흔드는 복합 충격으로 번지고 있는 것이다. 유럽 금융시장의 반응은 더 예민하다. 이날 금리 파생상품 시장은 현재 연 2.25%인 유럽중앙은행(ECB)의 예금금리가 2026년 말 2.66%, 2027년 2월에는 2.73%까지 오를 가능성을 반영했다. 통상적인 0.25%포인트 인상 기준으로 사실상 두 차례의 추가 금리 인상을 예상한 셈이다. 에너지 가격이 다시 소비자물가를 밀어 올리면 금리를 낮추기는커녕 추가 인상해야 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지정학적 충돌이 유조선의 항로를 막고 오른 기름값이 채권금리를 끌어올리며 높은 금리가 기업과 가계의 금융비용을 늘리는 악순환이 재연될 조짐이다. 한국은 이런 충격에 유난히 취약하다. 국내에서 소비하는 원유를 사실상 전량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데다 산업 부문의 에너지 사용 비중도 주요 선진국 가운데 높은 편이다. 국제에너지기구는 한국의 에너지 구조가 화석연료와 해외 수입에 크게 의존하고 있어 외부 공급 충격에 취약하다고 진단한다. 유가가 오르면 정유·석유화학은 물론 항공과 해운, 자동차, 철강, 농수산물과 택배비까지 비용 압력을 받는다. 기업은 오른 원가를 제품 가격에 전가하고 그 부담은 결국 소비자의 장바구니로 돌아간다. 그런데도 정부의 고유가 대책은 여전히 유류세 인하와 주유소 가격 점검이라는 익숙한 처방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유류세를 낮추는 것은 급격한 가격 상승을 완충하는 데 필요하다. 정유사와 주유소가 국제유가 상승분을 빌미로 가격을 과도하게 올리지 않는지 점검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이런 조치는 이미 오른 가격의 일부를 세금으로 보전하고 유통 과정의 부당행위를 막는 사후 대책일 뿐이다. 원유 공급이 실제로 줄거나 해상 운송이 장기간 차질을 빚을 경우에는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 정부는 유가가 일정 수준을 넘으면 세금을 얼마나 낮출 것인지보다 공급이 끊겼을 때 어떤 순서로 대응할 것인지부터 국민과 시장에 밝혀야 한다. 전략 비축유 방출의 가격·수급 기준과 규모, 민간 비축분 동원 방식, 정유사별 원유 도입 차질에 대한 대응체계를 구체화해야 한다. 비축유는 보유량 자체보다 언제, 어떤 조건에서, 얼마나 신속하게 꺼내 쓸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원유 도입선도 더 넓혀야 한다. 중동산 원유가 가격과 정제 효율 면에서 유리하더라도 특정 지역과 해협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국가경제 전체를 지정학적 위험에 노출시킨다. 북미와 남미, 아프리카 등 대체 공급처와 장기 계약을 확대하고 유종 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정유설비의 유연성도 높여야 한다. 평상시 다소 비용이 들더라도 공급망을 분산하는 것은 보험료와 같다. 위기가 발생한 뒤 비싼 현물 원유를 구하러 다니는 것보다 훨씬 싸다. 해상운송과 보험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호르무즈 해협의 위험이 높아지면 유조선 운임과 전쟁보험료가 급등한다. 원유가 확보돼도 배가 움직이지 못하면 국내에는 들어올 수 없다. 정부는 국적선사와 정유사, 무역보험기관이 참여하는 비상 운송체계를 점검하고 전쟁 위험 때문에 민간 보험이 사실상 중단될 경우를 대비한 한시적 보증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에너지 안보는 유전에서 정유공장까지 이어지는 운송망 전체의 문제다.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도 유류세 인하 일변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유류세를 일괄적으로 낮추면 차량을 많이 운행하고 연료를 많이 소비하는 계층이 더 큰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대중교통 이용자나 난방비 부담이 큰 저소득층에는 효과가 제한적이다. 고유가가 장기화한다면 에너지바우처와 대중교통 지원, 영세 자영업자·화물운송 종사자에 대한 선별 지원을 강화하는 편이 재정의 효율성과 형평성에 맞는다. 무엇보다 재정·통화·에너지 정책의 엇박자를 막아야 한다. 국제유가 상승은 수요가 과열돼 발생한 물가와 다르다. 금리를 올린다고 호르무즈 해협이 열리거나 원유 공급량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유가 상승으로 물가 기대가 확산되고 임금과 서비스 가격까지 오르면 중앙은행은 금리를 올려 수요를 억누를 수밖에 없다. 유럽에서 에너지 가격을 이유로 추가 금리 인상 전망이 확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물가와 환율 안정을 위해 긴축 기조를 강화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경기 부양을 명분으로 광범위한 현금 지원과 정책대출을 늘린다면 한쪽은 브레이크를 밟고 다른 쪽은 가속페달을 밟는 꼴이 된다. 재정 지원은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직접 피해를 본 계층과 업종에 집중하고 물가를 다시 자극할 수 있는 보편적 수요 부양은 자제해야 한다. 통화정책에만 물가 안정의 부담을 떠넘기지 말고 에너지 정책은 공급 충격을 줄이고 재정정책은 취약 부문을 선별 지원하는 방식으로 역할을 나눠야 한다. 국제유가가 다시 90달러 선을 위협하고 있다. 아직 물리적 공급 부족이 전면화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안심할 때가 아니다. 최근 유가가 과거의 극단적인 전망보다 안정된 것은 미국의 생산 확대와 전략비축유 방출, 중국의 수요 감소, 일부 해상운송 재개 등이 충격을 완화했기 때문이다. 이런 완충 장치가 언제까지 작동할지는 장담할 수 없다. 정부는 국제유가가 오를 때마다 유류세율을 조정하는 임시 처방에서 벗어나야 한다. 원유 도입선 다변화와 전략 비축유 방출 기준, 비상 운송·보험 지원, 취약계층 보호, 재정·통화정책 간 조율을 아우르는 국가 차원의 고유가 대응체계를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에너지 안보는 단순히 주유소 가격을 낮추는 일이 아니라 국가경제의 생명선을 지키는 일이다. 다시 배럴당 90달러 선을 넘나드는 유가는 정부에 묻고 있다. 다음 위기도 세금으로 버틸 것인가, 아니면 이번에는 에너지 대응의 구조 자체를 바꿀 것인가.
2026-07-21 18:05: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