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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800조 반도체 투자에 숟가락 얹지 말라
[경제일보] 800조원. 기업 투자 규모만으로도 한국 산업사의 기록을 새로 쓸 만한 숫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추진하는 서남권 반도체 생산시설 투자 이야기다. 문제는 이 천문학적인 투자계획을 놓고 정치권의 지역 논쟁까지 거세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6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산업통상부 국정감사에서도 입지 선정 과정이 도마에 올랐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정부가 여러 후보지를 제안했고 최종 결정은 기업이 했다는 취지로 답했다. 야당 의원들은 기업들에 확인한 결과 특정 지역을 먼저 제안하거나 투자계획을 확정한 적이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며 정부 설명과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다. 누가 먼저 호남을 거론했느냐를 놓고 진실 공방을 벌이는 상황이다. 아직 확인되지 않은 부분까지 예단할 필요는 없다. 정부가 기업에 특정 지역 투자를 강요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도 아니다. 기업과 정부가 대규모 투자계획을 협의하면서 여러 후보지를 검토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다만 이번 논란은 800조원짜리 반도체 투자를 어떤 원칙으로 다뤄야 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반도체 공장은 지역개발 사업이 아니다. 전력과 용수, 부지와 물류, 인재, 협력업체, 연구개발 생태계를 종합적으로 따져 수십 년 뒤까지 경쟁력을 계산해야 하는 기업 투자다. 더구나 반도체는 한번 공장을 지으면 되돌리기 어려운 대표적인 장치산업이다. 투자액도 수십조원에서 수백조원에 이른다. 그 판단의 최종 책임은 투자하는 기업이 져야 한다. 세계 반도체 경쟁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미국과 대만, 일본, 중국, 유럽은 생산시설과 첨단기술을 자국에 끌어들이기 위해 세제와 보조금, 전력과 용수 등 기반시설을 경쟁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공장을 어디에 지을지를 결정하는 데 시간이 길어지거나 경제성 이외의 변수가 지나치게 개입하면 그 비용은 기업이 떠안는다. 결국 한국 반도체의 경쟁력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고 국가균형발전을 외면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수도권에 산업과 인구가 집중된 한국에서 지방에 첨단산업과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다. 수도권 반도체 클러스터 역시 전력과 용수 확보에 상당한 부담을 안고 있다. 새로운 생산거점을 비수도권에서 찾는 것은 산업정책 측면에서도 충분히 검토할 수 있는 선택지다. 문제는 순서다. 기업에 지방으로 가라고 요구하는 것과 기업이 지방을 선택할 만한 조건을 만들어주는 것은 전혀 다른 정책이다. 반도체 공장이 필요로 하는 것은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안정적인 전력과 막대한 양의 공업용수다. 장비와 소재·부품을 공급할 기업이 가까이 있어야 하고 국내외 고급인력이 일하고 정착할 수 있는 여건도 필요하다. 도로와 철도, 항만 같은 물류망도 갖춰야 한다. 정치와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바로 이런 조건을 만드는 것이다. 전력망과 용수시설을 제때 구축하고 교통·물류 인프라를 확충해야 한다. 대학과 연구기관, 기업을 연결해 인재를 키우고 교육·의료·주거 등 정주환경도 개선해야 한다. 인허가 기간을 줄이고 세제와 연구개발 지원의 예측 가능성도 높여야 한다. 그렇게 해서 기업이 사업성만 따져도 지방을 선택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제대로 된 균형발전이다. 지역끼리 경쟁하는 것도 나쁠 이유가 없다. 오히려 필요하다. 다만 정치적 영향력으로 기업을 끌어가는 경쟁이 아니라 어느 지역이 더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하고 인재를 확보하며 빠르게 인허가를 처리할 수 있는지를 놓고 경쟁해야 한다. 중앙정부도 심판과 지원자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특정 지역에 공장을 배정하는 주체가 아니라 각 지역이 경쟁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 기업의 선택을 지원해야 한다. 이번 800조원 투자를 정치적 성과로 앞세우는 것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 발표된 투자계획이 곧바로 집행되는 것은 아니다. 반도체 경기는 변하고 기술도 바뀐다. 글로벌 수요와 메모리 가격, 금융시장과 기업의 수익성에 따라 투자 시기와 규모가 조정될 수도 있다. 기업 역시 투자계획을 발표하면서 시장·경영상황에 따라 내용이 달라질 가능성을 열어뒀다. 수백조원의 숫자를 먼저 정치적 치적으로 만들어놓으면 나중에 기업의 합리적인 투자 조정까지 정치적 실패나 약속 파기로 몰아갈 위험이 있다. 기업의 투자는 기업이 책임지고 정부 지원에는 정부가 책임지면 된다. 특히 국민 세금이 들어가는 전력망과 용수, 산업단지, 세제지원에는 더 엄격한 경제성 검토와 투명성이 필요하다. 기업 자율을 강조한다고 해서 무조건적인 지원까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기업의 투자 결정을 존중하되 국가가 부담하는 비용과 기대효과를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국회가 할 일도 분명하다. 반도체 특별법과 관련 예산을 어느 지역이 얼마나 가져갈지를 놓고 경쟁하기보다 한국에서 반도체 공장을 짓는 데 무엇이 부족한지를 살펴야 한다. 전력과 용수, 인력과 연구개발, 세제와 인허가 가운데 경쟁국보다 뒤처진 것이 무엇인지 찾아 고치는 것이 먼저다. <관자>에는 “창고가 가득 차야 예절을 알고, 먹고 입는 것이 풍족해야 영욕을 안다(倉廩實而知禮節, 衣食足而知榮辱)”는 말이 있다. 국가의 산업정책도 경제적 토대를 무시한 채 명분만 앞세워서는 오래가기 어렵다. 균형발전이라는 목표가 아무리 옳더라도 산업이 지속될 경제적 기반이 없다면 성공하기 어렵다. 반대로 지방이 기업하기 좋은 곳이 되면 정치가 기업에 내려가라고 요구하지 않아도 투자는 움직인다. 800조원은 정치권의 전리품이 아니다. 특정 지역의 몫으로 미리 떼어놓을 돈도 아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집행하는 민간의 장기 투자다. 동시에 그 투자의 성공 여부가 한국 경제 전체에 영향을 미칠 국가적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때문에 정치의 역할은 더 절제돼야 한다. 기업이 투자할 곳을 정치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투자하고 싶은 곳을 만드는 것. 기업의 결정을 정치적 치적으로 포장하는 대신 전력망 하나, 용수시설 하나라도 제때 완성하는 것. 그것이 800조원 앞에서 정치가 해야 할 일이다. 세계 반도체 전쟁에서 중요한 것은 어느 정치세력이 투자계획에 이름을 올렸느냐가 아니다. 누가 더 빨리 공장을 짓고 더 좋은 반도체를 만들어 시장을 선점하느냐가 승부를 가른다. 정치가 800조원에 숟가락을 얹기보다 반도체가 달릴 길부터 닦아야 한다.
2026-10-07 14: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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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K-황금시대'·정 '개혁 정체성'·송 '분단 극복'…민주 당권주자, 경기서 막판 표몰이
[경제일보] 더불어민주당 당권 주자들이 16일 경기 지역 합동연설회에서 막판 수도권 표심 공략에 나섰다. 김민석 후보는 반도체와 지역화폐, 경기북부 정상화를 앞세워 ‘K-황금시대’를 강조했고, 정청래 후보는 단결과 개혁을 당의 정체성으로 내세웠다. 송영길 후보는 접경지역인 경기도의 특성을 부각하며 한반도 평화와 분단 극복을 전면에 내걸었다. 민주당은 이날 오전 경기 수원종합운동장 실내체육관에서 경기 지역 순회경선 합동연설회를 열었다. 당대표 후보 3명과 최고위원 후보 8명이 정견 발표에 나섰고, 오후에는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서울 지역 합동연설회를 이어간 뒤 경기·서울 권리당원 투표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김민석 “경기 3대 과제 전폭 지원”…선두 굳히기 시도 김민석 후보는 경기도의 핵심 과제로 반도체 산업 육성, 기본소득·지역화폐 등 개혁정책 확산, 경기북부 접경지역 정상화를 제시했다. 그는 “당 대표가 되면 이 과제에 대해 경기도와 추미애 지사를 전폭 지원하겠다”며 경기도 재정 압박과 수익 배분 구조 개선도 약속했다. 김 후보는 “인프라는 경기도가 만드는데 수익은 특정 시·군만 가져가는 편중된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호남권에서 추진되는 3대 메가프로젝트에 대해서도 “처음에는 수도권이 아니라 지방을 살리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결국은 반도체를 시작한 경기도도 살릴 것”이라며 “이미 달리고 있는 경기도의 반도체 기관차가 늦어지지 않도록 챙기겠다”고 말했다. 김 후보는 경기북부 접경지역 문제와 관련해서도 “비정상을 정상화하는 시대를 김민석과 새로운 민주당이 열겠다”고 했다. 이어 이재명 대통령이 언급한 ‘K-황금시대’를 거론하며 “당과 정부의 운명을 걸고 반드시 이겨내겠다”고 강조했다. 관련 보도에 따르면 김 후보는 당 대표가 되면 ‘메가 지방성장특별위원회’를 1호 기구로 만들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정청래 “개혁이 민주당 정체성”…호남 패배 뒤 추격전 정청래 후보는 전날 호남권 경선에서 김 후보에게 큰 표 차로 뒤진 데 대해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며 “동지들의 눈물을 짚신 삼아서 뚜벅뚜벅 길을 가겠다”고 말했다. 호남 경선 이후 벌어진 격차를 인정하면서도 수도권에서 추격의 불씨를 살리겠다는 메시지로 풀이된다. 정 후보는 단결과 개혁을 핵심 메시지로 내세웠다. 그는 “우리는 단결하면 승리했고, 분열하면 패배했다”며 “민주당은 개혁이 정체성이고 개혁하면 승리했고 개혁에 실패하면 외면받았다”고 강조했다. 이는 당정 안정과 통합을 앞세우는 김 후보와 달리, 당의 선명성과 개혁 동력을 부각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정 후보는 경기도 현안과 관련해 수도권 부동산 공급 대책도 언급했다. 그는 “수도권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 공급 대책을 시급하게 마련하고 LH부터 정상화하겠다”고 밝혔다. 또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에 대해서는 “추진력, 돌파력, 속도전으로 반드시 성공시키겠다”고 약속했다. ◆송영길 “접경지 경기서 평화 메시지”…분단 극복 호소 송영길 후보는 경기도가 접경지역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하며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를 강조했다. 그는 “아무리 경제 발전을 하고 AI 강국을 만들어도 남북 관계가 흔들리면 어떻게 되겠느냐”며 “민족의 분단을 극복하는 뜨거운 열정으로 김대중·노무현·문재인이 못다 이룬 역할을 이재명 대통령과 함께 만들어보겠다”고 말했다. 송 후보는 북미정상회담 추진도 언급했다. 그는 “북미정상회담을 성공시켜 한반도 냉전 문제를 바꾸는 선봉장이 되겠다”며 “한반도 평화 구조를 만드는 데 이재명 대통령과 함께 가는 HBM 송영길에 한 표를 부탁한다”고 호소했다. 송 후보의 메시지는 경제·개혁 경쟁으로 압축되는 김민석·정청래 양강 구도 속에서 외교·안보 의제를 부각하려는 차별화 전략으로 풀이된다. 다만 현재까지 누적 득표율에서는 김 후보와 정 후보가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어, 송 후보가 남은 수도권 경선에서 얼마나 반등할지가 관건이다. ◆김민석 누적 52.21% 선두…수도권 결과가 최종 변수 경기 합동연설회는 전당대회를 하루 앞두고 열린 수도권 막판 승부처다. 현재까지 당대표 경선에서는 김민석 후보가 누적 득표율 52.21%, 23만5128표로 선두를 달리고 있다. 정청래 후보는 38.14%, 17만1768표, 송영길 후보는 9.65%, 4만3464표를 기록 중이다. 호남 경선 전까지만 해도 김 후보와 정 후보의 누적 득표율 차이는 1.48%포인트에 불과했다. 그러나 전남·광주와 전북 권리당원 투표에서 김 후보가 57.54%를 얻어 정 후보 32.65%를 크게 앞서면서 누적 격차가 14.07%포인트까지 벌어졌다. 표 차이도 6만3360표로 확대됐다. 정 후보 입장에서는 경기·서울 등 수도권 권리당원 투표가 마지막 반전 카드다. 반대로 김 후보는 호남 압승 흐름을 수도권까지 이어가며 대표직을 굳히려는 상황이다. 당내에서는 경기·서울 투표 결과가 김 후보의 대세론을 확정할지, 정 후보의 추격 여지를 남길지를 가를 분수령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최고위원 후보들도 계파 대리전 양상 최고위원 후보들의 연설도 계파 간 신경전으로 이어졌다. 친명계로 분류되는 박선원 후보는 “2024년 총선과 2025년 대선 연승 불패의 신화에도 낡은 지도부가 우리를 위태롭고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서미화 후보는 “민주당 지도부는 눈빛만 봐도 정부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아차리는 빠르고 유능한 지도부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친청계로 분류되는 한민수 후보는 김민석 후보 측을 겨냥해 “반명과 분열주의, 신천지를 주장하는 자들을 심판해 달라”고 호소했다. 최민희 후보도 “이재명 대통령 만들기에 누구보다 앞장선 정청래 후보가 어느 순간 반명으로 낙인찍혔다”며 “이게 같은 당에 있는 동지들의 도리인가”라고 반문했다. 앞서 민주당 최고위원 경선은 최민희 후보가 누적 1위를 달리는 가운데 박선원·한민수·서미화·김용 후보 등이 당선권 경쟁을 벌이는 흐름으로 전개돼 왔다. 지난 9일 기준 최고위원 경선 누적 득표율은 최민희 20.28%, 박선원 16.74%, 한민수 14.39%, 서미화 14.24%, 김용 12.65% 순으로 집계됐다.
2026-08-16 14:3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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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전대, 선명성보다 절제가 필요한 이유
[경제일보] 전당대회는 목소리가 커지는 자리다. 후보는 차이를 보여야 하고, 당원은 더 선명한 주장을 원한다. 평소라면 한 걸음 물러설 정치인도 경선장에서는 두 걸음 앞으로 나간다. 문제는 그 두 걸음 앞에 헌법기관이 서 있을 때다.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가 막판으로 가면서 조희대 대법원장 탄핵과 이재명 대통령 관련 사건의 공소취소 주장이 정치권의 쟁점으로 떠올랐다. 김민석 당대표 후보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잘못된 기소라면 공소취소가 원칙이라는 취지로 말했고, 전대 과정에서는 조 대법원장 탄핵 주장도 제기됐다. 국민의힘은 12일 이를 두고 “선을 넘지 말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야당의 표현에는 정치적 과장이 섞여 있다. 공소취소 주장을 했다고 곧바로 대통령 탄핵사유가 된다고 단정하거나, 대법원장 탄핵 논의를 곧장 헌정질서 파괴와 동일시하는 것도 신중할 필요가 있다. 탄핵은 헌법이 명시적으로 인정하는 제도다. 헌법 제65조는 법관이 직무집행 과정에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했을 때 국회가 탄핵소추를 의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형사소송법에도 제1심 판결 선고 전까지 공소를 취소할 수 있는 절차가 있다. 제도 자체를 입에 올리는 것까지 금기시할 이유는 없다. 다만 할 수 있는 것과 해도 되는 방식은 다른 문제다. 대법원장도 비판받아야 한다. 사법부 독립이 사법부 무오류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판결이 사회적 상식과 동떨어졌다면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비판할 수 있고, 사법제도에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면 국회가 법을 고쳐야 한다. 명백한 헌법·법률 위반이 있다면 탄핵 절차도 밟을 수 있다. 하지만 탄핵에는 ‘마음에 들지 않는 판결’보다 훨씬 무거운 근거가 필요하다. 헌법은 법관에게 헌법과 법률,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판할 것을 요구한다. 역으로 정치도 그 독립을 존중할 의무가 있다. 판결 결과에 대한 불만이나 당내 정치적 필요가 탄핵의 동력처럼 비쳐지는 순간, 사법개혁은 제도개혁이 아니라 사법부 길들이기라는 의심을 피하기 어렵다. 특히 집권당의 말은 야당의 말과 무게가 다르다. 야당 정치인이 집회 연단에서 던진 구호는 대개 정치적 주장으로 끝난다. 국회 다수 의석과 행정부를 함께 움직일 수 있는 집권당의 대표 후보가 한 말은 다르다. 당선되는 순간 법안이 되고, 당론이 되고, 정부 정책을 압박하는 힘이 될 수 있다. 민주당 당대표 후보들이 12일 마지막 TV토론회에서 검찰·사법개혁 성과, 총선 승리, 당정 화합 등을 각각 강조했다는 점에서도 이번 전대가 단순한 당내 행사가 아니라 향후 국정 운영과 직결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공소취소 문제는 더 조심스럽다. 법에 존재하는 제도라고 해서 특정 사건에 적용하는 것이 자동으로 정당해지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그 사건의 당사자가 현직 대통령이라면 기준은 오히려 더 엄격해야 한다. 정치권이 먼저 “조작 기소”라고 결론을 내리고 공소취소를 요구하면, 수사와 재판의 옳고 그름을 법정이 아니라 정당이 판정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억울한 기소가 있다면 바로잡아야 한다. 정치적 수사나 표적 기소도 민주주의가 경계해야 할 폐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절차가 중요하다. 누가 대통령이든, 어느 당이 집권하든 같은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 ‘우리 편이어서 취소하고 상대편이면 끝까지 재판한다’는 의심을 받는 순간 법치의 권위는 무너진다. 민주당은 사법개혁을 말할 자격이 있다. 실제로 12일 마지막 전대 TV토론에서도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대범죄수사청법,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제 등 지난 사법·검찰개혁 조치가 주요 성과로 거론됐다. 개혁의 필요성에 동의하는 국민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제도를 고치는 것과 사람을 겨냥하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 사법제도를 바꾸겠다면 왜 바꿔야 하는지 법과 원칙으로 설명해야 한다. 특정 판결과 특정 재판을 먼저 놓고 제도를 그에 맞춰 움직이면 개혁의 정당성마저 훼손된다. 경선의 속성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당원 투표가 중요한 선거일수록 후보들은 핵심 지지층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하게 된다. 이번 민주당 전대에서도 후보 간 네거티브와 과거사 공방이 이어지면서 민생과 정책 비전이 뒤로 밀렸다는 비판이 당 안팎에서 제기됐다. 그러나 집권당의 대표를 뽑는 선거라면 당원의 박수 못지않게 그 말을 듣고 있는 국민을 의식해야 한다. 정치는 선명해야 할 때가 있다. 잘못된 권력과 싸울 때 어정쩡한 태도는 비겁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에서 진짜 용기는 목소리를 가장 크게 내는 데 있지 않다. 자기편이 원하는 것에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을 긋는 데 있다. ‘서경’ 홍범편에는 ‘무편무당 왕도탕탕(無偏無黨 王道蕩蕩)’이라는 구절이 있다. 치우침도 없고 사사로운 편당도 없어야 바른 정치의 길이 넓어진다는 뜻이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법과 제도를 자기편의 필요에 맞춰 다루기 시작하면 정치는 좁아지고 국가는 흔들린다. 지금 민주당에 필요한 것은 사법개혁을 멈추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개혁의 원칙을 더 분명히 세우는 일이다. 법관의 책임을 묻되 판결에 대한 보복처럼 보여서는 안 되고, 잘못된 기소를 바로잡되 대통령 개인을 위한 제도처럼 비쳐서는 안 된다. 사법부 독립을 존중하면서도 민주적 통제와 책임성을 높일 길을 찾아야 한다. 대법원장 탄핵은 당원들의 박수를 받기 위한 구호로 소비하기에는 너무 무거운 헌법적 수단이다. 대통령 관련 공소취소 역시 경선장에서 충성심을 겨루듯 다룰 사안이 아니다. 집권당의 말은 실제 권력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더 절제돼야 한다. 전당대회는 17일 끝난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던진 말의 파장은 그 뒤에도 남는다. 민주당 후보들이 기억해야 할 것도 그것이다. 경선에서는 표를 얻기 위해 말할 수 있다. 집권당은 그 말이 국가의 제도가 될 때까지 책임져야 한다.
2026-08-13 09: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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