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쇄신 동력 잃은 여당, 당청의 수직적 관성에서 벗어나야
정권의 위기는 대개 야당의 공세 때문에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내부에서 문제가 생겼는데도 이를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알아차리고도 제때 고치지 못할 때 위기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집권 중반기에 접어든 이재명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지금 경계해야 할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장관 후보자들의 잇따른 낙마에 이어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까지 사의를 표명했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낙마한 장관 후보자가 5명에 이르면서 인사 검증 시스템에 대한 재점검 필요성이 제기됐고, 강 실장은 인사위원장으로서 종합적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사의를 밝혔다. 문제는 책임자의 사퇴 그 자체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왜 같은 유형의 문제가 반복됐는지, 그리고 집권 여당이 그 과정에서 무엇을 했느냐는 것이다. 김민석 대표 체제의 민주당은 출범 때부터 ‘당청 원팀’을 강조했다. 취임 직후 대통령실과의 관계 복원에 무게를 두면서 전임 지도부와는 다른 당정 관계를 만들어가겠다는 의지도 보였다. 당정 간 긴장을 낮추고 국정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문제는 ‘원팀’이 ‘무비판적 일체화’로 변질될 때다. 집권 여당의 가장 중요한 존재 이유는 대통령실의 박수부대가 되는 데 있지 않다. 대통령에게 힘을 보태되 잘못된 판단에는 제동을 걸고, 국민이 느끼는 불만을 가감 없이 전달하며, 야당과의 협상에서 국정의 출구를 만드는 것이 여당의 본령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민주당에 필요한 것은 대통령실과의 거리를 좁히는 것만이 아니라 오히려 건전한 긴장 관계를 제도화하는 일이다. 대통령실이 인사 후보자를 검토할 때 여당이 정무적 검증을 하고 청문회 이전에 민심의 반응을 냉정하게 점검하는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인사청문회가 시작된 뒤 새로운 의혹이 쏟아지고 후보자가 낙마한 뒤 책임자를 찾는 방식으로는 국정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다. 더구나 집권 중반기에는 여당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대통령의 국정 동력은 시간이 갈수록 약해질 수밖에 없다. 초기에는 대통령의 지지와 국정 추진력이 당을 이끌지만 중반기에 접어들면 여당이 독자적인 정치력을 갖고 민심과 국정을 연결해야 한다. 그런데 여당이 대통령실의 판단을 사후적으로 설명하거나 방어하는 데 머물면 당정 관계는 수직적으로 굳어진다. 대통령실이 정책을 만들고 여당이 국회에서 관철하는 구조만 남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효율적인 당정 관계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견제 기능이 약화된 상태다. 최근 부동산과 증시 정책을 둘러싼 민심 이반과 인사 논란, 여권 내부의 갈등은 여당이 단순한 전달자가 아니라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할 이유를 보여준다. 김 대표 취임 이후 당정 관계가 진전됐다는 평가가 있는 반면 핵심 지지층의 약화와 여권 내부 갈등, 중도층과의 거리 등도 과제로 거론되고 있다. 이런 신호를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 야당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국회 다수 의석을 가진 여당이라 하더라도 모든 것을 힘으로 밀어붙일 수는 없다. 특히 인사와 사법, 경제정책처럼 국민 생활과 직결되는 사안에서는 야당과의 협의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넓히는 정치가 필요하다. 협치는 약한 여당이 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 있는 여당이 하는 것이다. 물론 야당 역시 무조건적인 반대와 정쟁으로 일관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집권 여당이 먼저 협상의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여야가 서로의 존재 이유를 인정하지 않는 순간 국회는 법안을 만드는 곳이 아니라 정치적 진영 대결의 경기장이 되고 만다. 김민석 대표에게 요구되는 리더십도 여기에 있다. 대통령과 가까운 당 대표가 되는 것과 대통령에게 필요한 말을 하는 당 대표가 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대통령의 성공이 곧 여당의 성공이라는 점에서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여당이 오히려 강한 여당이다. 이번 인사 파동을 몇몇 후보자의 개인적 흠결이나 비서실장의 책임 문제로만 끝내서는 안 된다. 인사 추천·검증·정무 판단·당정 협의가 따로 움직이는 구조부터 손봐야 한다. 대통령실과 여당 사이에 상시적인 인사·정책 협의 채널을 만들고, 여당 지도부가 민심과 국회의 판단을 대통령실에 정례적으로 전달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당 내부에서도 계파와 강성 지지층의 목소리에 휘둘리지 않는 토론 구조를 복원해야 한다. 여당이 국민 전체를 바라보지 않고 자기 진영의 박수에만 의존하기 시작하면 국정 운영은 현실과 멀어진다. 정치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반대 의견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정권 중반기는 위기이면서 동시에 쇄신의 기회다. 지금 필요한 것은 사람 몇 명을 바꾸는 인적 쇄신에 그치지 않는다. 대통령실과 여당의 관계를 다시 설계하고 여당이 국정의 공동 책임자이자 민심의 전달자, 야당과의 협상자로 제 역할을 해야 한다. ‘원팀’은 같은 목소리를 내는 조직이 아니다.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도 하나의 목표를 향해 갈 수 있는 조직이다. 김민석 대표가 진정한 리더십을 보여주려면 대통령실의 방패가 아니라 국정의 균형추가 돼야 한다. 그것이 집권 중반기 여당이 쇄신의 동력을 되찾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출발점이다.
2026-09-23 16:3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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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문보고서 통과 이틀 만에 사퇴…인사검증은 어디서 멈췄나
[경제일보] 국회가 적격이라고 보고서를 채택한 후보자가 이틀 뒤 물러났다. 대통령은 그사이 인사 시스템을 재점검하겠다고 밝혔다. 후보자의 자질을 둘러싼 공방은 끝났지만, 그를 지명하고 검증했던 과정에 대한 질문은 오히려 커졌다. 청와대와 국회가 차례로 후보자를 살폈는데도 임명 직전까지 적격성을 둘러싼 판단이 달라졌다면 어느 단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지난 19일 자진 사퇴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지명한 지 20일 만이다. 앞서 13일 물러난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에 이어 이번 개각에서 두 번째 낙마자다. 장관 후보자 6명 가운데 2명이 임명 문턱을 넘지 못한 셈이다. 특히 김 후보자의 사퇴에 이르는 과정은 인사검증 절차를 되짚어볼 중요한 사례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15일 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를 열고 이틀 뒤인 17일 적격 의견의 청문경과보고서를 채택했다. 국민의힘은 의혹이 해소되지 않았다며 퇴장했고, 더불어민주당은 청문 과정에서 상당 부분 소명됐다며 보고서 채택을 주도했다. 18일 이 대통령은 임명 여부에 최종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면서 국민의 눈높이를 고려해 신중하게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튿날 후보자는 사퇴했다. 적격 보고서 채택과 후보자 사퇴가 이틀 간격으로 이어졌다. 보고서 채택이 대통령의 임명을 강제하는 것은 아니다. 국회의 판단과 인사권자의 최종 결정이 다를 수도 있다. 다만 이번처럼 짧은 시간에 결론이 달라진 경우에는 그 사이 새롭게 확인된 정보가 있었는지, 기존 자료를 다시 평가한 것인지 구분해 살펴볼 여지가 있다. 김 후보자의 전직 보좌진이 추가 의혹을 담은 탄원서를 17일 청와대에 전달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에 청와대는 탄원서 전달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고, 김 후보자는 사퇴가 새로운 의혹 때문이냐는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탄원서가 사퇴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다고 단정할 수 없는 이유다. 그렇기에 더욱 중요한 것이 정보의 인지 시점과 처리 경로다. 새로운 자료가 접수됐다면 언제 누구에게 전달됐고 어떤 추가 확인을 거쳤는가. 기존에 파악한 사안이었다면 최초의 적격성 판단과 최종 판단 사이에 무엇이 달라졌는가. 그 경위를 알아야 이번 사례를 제도 개선의 자료로 삼을 수 있다. 용혜인 전 후보자 사례는 또 다른 문제를 보여준다. 용 전 후보자는 비례대표 의원직과 장관직을 겸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논란이 이어진 끝에 청문회 전에 물러났다. 국회법상 국회의원의 국무위원 겸직은 허용된다. 쟁점은 법률상 가능 여부와 별개로, 후보자의 의원직 유지 의향과 그에 따른 정치적 논란을 지명 전에 충분히 확인했느냐는 것이었다. 앞서 청와대는 용 전 후보자의 겸직 의사를 사전에 파악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이라면 검증 과정에서 확인해야 할 사항 자체가 누락됐는지가 문제다. 의향을 파악하고도 지명했다면 당시 판단의 근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두 후보자의 사퇴는 같은 결과로 이어졌지만, 드러낸 과제는 다르다. 용 전 후보자 사례에서는 지명 전에 무엇을 물었는지가 중요하다. 김 전 후보자 사례에서는 무엇을 알고 있었으며 그 정보를 어떻게 평가했는지가 중요하다. 단순한 정보 누락과 정보를 확보한 뒤의 판단 차이를 모두 '검증 부실'이라는 말로 묶어버리면 정작 고쳐야 할 절차를 찾기 어려워진다. 인사검증의 핵심은 흠결을 찾아내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확인한 정보를 적격성 판단으로 연결하고, 그 판단의 근거를 남기는 데 있다. 대통령의 인사는 추천에서 시작한다. 후보군을 발굴하고 경력과 전문성을 살피는 과정이다. 이어 검증 단계에서는 재산과 세금, 범죄경력 등 법정 제출사항을 포함해 해당 직책과 관련된 이해충돌 가능성과 과거 행적을 확인한다. 최종 지명에서는 전문성과 정책 방향, 검증 결과를 종합해 판단한다. 인사청문회는 그 결정에 대해 국회가 공개적으로 검증하는 별도의 절차다. 실제로 인사청문회법 제5조는 국회에 제출하는 임명동의안 등에 경력과 재산, 세금 납부 실적, 범죄경력 등에 관한 증빙서류를 첨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회의 검증에 필요한 기초자료를 임명권자 또는 지명권자가 제출하도록 한 것이다. 각 단계의 기능은 분명하지만 실제 인선에서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외부에서 확인하기 어렵다. 추천 단계에서 우려가 제기됐는데도 충분히 전달되지 않았을 수 있다. 검증 조직이 사실관계를 확인했지만 적격성 판단 과정에서 중요도가 낮게 평가됐을 수도 있다. 지명 당시에는 없던 정보가 청문 과정에서 새롭게 드러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런 가능성 가운데 무엇이 이번 사례에 해당하는지는 현재 공개된 자료만으로 알 수 없다. 대통령이 18일 인사 시스템 재점검을 언급한 것도 이와 맞닿아 있다. 이 대통령은 나름의 시스템과 노력이 있었지만 추가로 발견되는 문제도 있고, 정부의 판단과 다른 판단이 제기되기도 한다며 미처 대비하지 못한 부족함을 인정했다. 재점검의 범위에 따라 얻을 수 있는 결과도 달라질 것이다. 추천의 문제였다면 후보 발굴과 평판 확인 절차를 살펴봐야 한다. 검증에서 정보를 놓쳤다면 자료 수집과 교차확인 방식이 대상이다. 이미 알고도 지명했다면 당시 적용한 적격성 기준과 최종 판단 과정을 검토해야 한다. 청문회 이후 새로운 문제가 나왔다면 정보가 접수돼 인사권자에게 전달되기까지의 경로가 쟁점이다. 책임을 따지기 전에 판단의 경위를 복원하는 일이 선행돼야 하는 이유다. 인사검증 조직이 모든 의혹을 사전에 찾아낼 수는 없다. 수사기관과 같은 조사권을 갖고 있지 않은 데다 개인정보 보호와 사생활의 경계도 지켜야 한다.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이유로 후보자를 무조건 배제한다면 유능한 인재의 공직 진출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따라서 검증을 강화한다는 말이 모든 후보자에 대한 무제한 조사로 이어져서는 곤란하다. 확인된 사실과 미확인 의혹, 법률상 결격 사유와 정치적·윤리적 판단을 구분하는 기준이 함께 논의돼야 한다. 국회 청문 절차의 역할도 돌아볼 대목이 있다. 여당은 정부의 인사를 뒷받침하려 하고 야당은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검증하려는 정치적 이해를 가질 수 있다. 이번에도 민주당은 의혹이 소명됐다고 판단했지만 국민의힘은 그렇지 않다고 맞섰다. 의견 차이 자체가 청문 절차의 실패를 뜻하지는 않는다. 다만 청문보고서에 확인된 사실과 다투는 의혹, 추가 확인이 필요한 사항을 구분해 남기면 대통령의 최종 판단에도 더 명확한 자료가 될 수 있다. 인사청문회는 정부가 선택한 후보자를 검증하는 자리이지, 청와대가 해야 할 사전 판단을 대신하는 자리는 아니다. 반대로 사전 검증을 마쳤다는 이유만으로 청문회에서 새롭게 제기된 문제를 외면해서도 안 된다. 두 절차가 서로의 책임을 넘겨받는 관계가 아니라 판단을 보완하는 관계가 되려면, 무엇이 언제 확인됐고 어떤 결론을 거쳤는지 추적할 수 있어야 한다. '중용'에는 '범사예즉립 불예즉폐(凡事豫則立 不豫則廢)'라는 말이 있다. 모든 일은 미리 준비하면 이루어지고, 준비하지 않으면 무너진다는 뜻이다. 인사에서도 준비란 서류를 빠짐없이 모으는 행정 절차만을 뜻하지 않는다. 문제가 제기됐을 때 누가 판단하고 그 근거를 어디에 남길 것인지까지 정해두는 일이다. 후보자 두 명이 사퇴한 뒤 후임을 찾는 일과 이번 인선 과정을 되짚는 일은 별개의 과제다. 다음 후보자를 지명한다고 앞선 인사에서 어떤 정보가 누락됐는지 저절로 밝혀지지 않는다. 검증 담당자를 바꾸더라도 적격성 판단의 기준과 기록 방식이 그대로라면 같은 질문이 다시 제기될 수 있다. 이번 개각이 남긴 물음은 김승원과 용혜인이라는 두 이름에만 머물지 않는다. 추천자는 무엇을 보고 후보자를 올렸는가. 검증 조직은 어떤 사실을 확인했는가. 인사권자는 무엇을 근거로 지명을 결정했는가. 청문회에서 판단이 달라졌다면 새로 밝혀진 것은 무엇인가. 인사검증의 신뢰는 후보자가 물러난 뒤 누가 잘못했는지 다투는 것만으로 회복되지 않는다. 추천부터 최종 판단까지 무엇을 알고 어떻게 결정했는지 확인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개선의 출발점을 찾을 수 있다. 청문보고서가 채택된 지 이틀 만에 후보자가 사퇴한 이번 사례는 그 기록과 설명 체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2026-09-21 1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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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세 장관 청문회, 이게 제대로 된 인사검증인가
[경제일보] 국회가 15일 이형일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김승원 법무부 장관, 이소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를 동시에 연다. 경제정책과 사법행정, 중소기업·벤처정책을 책임질 세 장관 후보자가 같은 날 국회의 검증대에 오르는 것이다. 이번 주에는 전날 김성수 대법관 후보자를 시작으로 16일 국방부·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 18일 특별감찰관 후보자 청문회까지 이어진다. 말 그대로 ‘인사청문 슈퍼위크’다. 문제는 청문회가 많다는 데 있지 않다. 하루에 장관 후보자 세 명을 동시에 검증하는 방식으로 국민이 원하는 제대로 된 인사검증이 가능하느냐는 것이다. 세 후보자에게는 각각 검증해야 할 쟁점이 적지 않다. 이형일 후보자는 부동산 문제와 미래대응기금·세제개편 등 경제정책, 김승원 후보자는 신약 관련 청탁 의혹과 형사사법체계 개편, 이소영 후보자는 부동산·용역계약 논란과 중소기업 정책 전문성 등이 청문회 쟁점으로 꼽힌다. 그러나 청문회가 이런 의혹을 확인하는 데만 그쳐서도 안 된다. 경제부총리 후보자에게는 고유가와 금융시장 불안, 재정 운용과 부동산·세제 정책을 물어야 한다.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게는 형사사법체계 개편과 검찰·경찰 관계, 법치주의와 정치적 중립에 대한 철학을 확인해야 한다. 중기부 장관 후보자에게는 소상공인 부채와 벤처투자, 창업 생태계와 중소기업 경쟁력을 어떻게 살릴 것인지 따져야 한다. 장관 청문회의 본질은 과거의 흠결을 찾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국가의 중요한 정책을 맡길 능력과 판단력을 검증하는 데 있다. 세 청문회는 각각 다른 상임위원회에서 진행된다. 그렇다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청문회가 같은 날 몰리면 언론과 시민사회의 감시, 국민의 관심은 분산될 수밖에 없다. 한 후보자의 중요한 정책 답변이나 새로운 의혹이 다른 청문회의 정치적 공방에 묻힐 가능성도 커진다. 결국 자극적인 한두 장면이나 여야 충돌만 부각되고 정작 정책과 자질에 대한 깊이 있는 검증은 뒷전으로 밀릴 우려가 있다. 인사청문회의 목적은 흠을 많이 찾는 것이 아니라 적임자인지를 제대로 가려내는 데 있다. 증인 채택을 둘러싼 여야의 줄다리기도 문제다. 이번 청문회를 앞두고도 야당은 다수의 증인 채택을 요구했고 여당은 정치공세라며 맞섰다. 증인을 무더기로 불러 세우는 것도 문제지만 필요한 증인마저 정쟁 때문에 부르지 못한다면 청문회는 후보자의 일방적인 해명만 듣는 자리가 될 수 있다. 증인은 여당이 후보자를 보호하거나 야당이 공격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후보자를 둘러싼 의혹과 정책적 판단의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필요한 사람이어야 한다. 자료 제출을 둘러싼 공방도 달라져야 한다. 청문회 때마다 야당은 후보자가 핵심 자료를 내지 않았다고 비판하고 후보자 측은 개인정보나 자료 부존재 등을 이유로 맞서는 일이 반복된다. 청문회 당일 새로운 자료를 들이밀고 즉답을 요구하는 방식만으로도 제대로 된 검증은 어렵다. 후보자가 제출해야 할 자료의 범위와 기한을 보다 명확히 하고 정당한 이유 없이 핵심 자료를 제출하지 않을 경우 책임을 묻는 장치가 필요하다. 국회 역시 검증과 직접 관계없는 가족의 사생활이나 정치적 공격을 위한 자료까지 무차별적으로 요구하는 관행을 고쳐야 한다. 자료 제출을 놓고 며칠씩 싸우다 정작 정책 검증 시간을 잃는다면 청문제도의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 도덕성 검증과 정책 검증의 균형도 되찾아야 한다. 장관은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만큼 재산 형성 과정과 이해충돌, 법 위반 여부, 공직 윤리를 철저히 따져야 한다. 그러나 도덕성 검증이 정책 검증을 대신해서는 안 된다. 흠결이 없는 사람을 찾는 것과 국가를 제대로 운영할 사람을 찾는 것은 다른 문제다. 국민이 궁금한 것은 후보자가 과거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만이 아니라 장관이 된 뒤 무엇을 할 사람인지다. 우리 인사청문회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비슷한 장면을 되풀이해 왔다. 여당은 대통령이 지명한 후보자를 지켜야 할 대상으로 여기고 야당은 어떻게든 낙마시켜야 할 대상으로 보는 일이 적지 않았다. 청문보고서 채택 여부까지 후보자의 능력보다 여야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갈리는 경우가 반복됐다. 이래서는 청문회가 고위공직자를 검증하는 제도가 아니라 정치적 승패를 겨루는 무대로 변질될 수밖에 없다. 청문회 일정 역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정부의 조속한 내각 구성이 중요하다고 해서 핵심 장관 후보자들을 같은 날 한꺼번에 검증하는 것이 관행이 돼서는 곤란하다. 일정의 효율성보다 검증의 충실성이 우선이다. 최소한 경제·사법·산업처럼 국민 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핵심 부처 장관들의 청문회는 국민이 충분히 지켜보고 평가할 수 있도록 일정을 분산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인사청문회는 대통령이 지명한 후보자를 국회가 ‘통과시켜 주는’ 절차가 아니다. 야당이 후보자를 흠집 내는 정치무대도 아니다. 국민을 대신해 고위공직자의 도덕성과 전문성, 정책 역량을 확인하는 국회의 중요한 견제 장치다. 오늘 세 청문회에서 여야가 누구를 더 몰아붙였고 누가 더 잘 방어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세 후보자가 경제부총리와 법무부 장관, 중기부 장관으로서 어떤 원칙과 능력을 갖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하루에 장관 세 명을 불러놓고 몇 시간씩 공방을 벌인 뒤 ‘청문회를 했다’고 해서는 안 된다. 인사청문회의 성패는 몇 명을 통과시키고 몇 명을 낙마시켰느냐가 아니라, 국민이 그 사람에게 국가의 중요한 권한을 맡겨도 되는지를 얼마나 제대로 밝혀냈느냐로 평가해야 한다.
2026-09-15 09:5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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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 참사가 경제를 망친다, 검증 시스템부터 뜯어고쳐라
[경제일보] 또 인사 참사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인사가 만사”라고 외치지만 돌아오는 것은 “인사가 망사”라는 국민의 냉소다. 장관 후보자들을 둘러싸고 부동산 투기, 편법 절세, 세금 문제, 도덕성 논란이 꼬리를 물고 있다. 대통령이 지명하기 전에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던 사안들이다. 그런데도 걸러내지 못했다면 대통령실 인사 검증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부터 묻지 않을 수 없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런 일이 반복된다는 점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검증 시스템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똑같은 논란이 재연된다. 후보자의 결격 사유를 사전에 걸러내기보다 언론 보도와 야당의 문제 제기로 드러난 뒤 해명하고 방어하기에 급급하다. 이것은 검증이 아니라 사후 수습이다. 그런데도 여권은 “인사청문회를 지켜보자”는 말만 되풀이한다. 청문회가 대통령실의 부실 검증을 대신하는 장치인가. 국민이 묻는 것은 청문회에서 무엇이 밝혀질지가 아니라 왜 이런 사람이 애초에 후보자 명단에 올랐느냐는 것이다. 특히 법무부 장관처럼 법치와 사법 질서를 책임지는 자리는 더욱 엄격해야 한다. 국민에게 법과 원칙을 요구하는 사람이 자신을 둘러싼 준법·도덕성 논란조차 명확하게 해소하지 못한다면 정부가 어떻게 공정과 법치를 말할 수 있겠는가. 고위공직자에게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은 흠잡기가 아니라 국가 운영의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인사 실패는 정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경제와 시장의 문제이기도 하다. 정부 정책은 결국 사람이 집행한다. 장관의 전문성과 리더십에 따라 정책의 방향과 속도가 달라지고 기업의 투자와 고용 판단에도 영향을 미친다. 인사가 흔들리면 정책의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고 기업은 투자를 늦출 수밖에 없다. 한국 경제가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통상 압력, 인공지능(AI) 패권 경쟁, 저성장 등 복합 위기에 놓인 상황에서 정부가 인사 논란으로 국정 역량을 소진해서는 안 된다. 시장에 치명적인 것은 잘못된 정책만이 아니라 예측하기 어려운 정책이다. 장관이 바뀌고 정책이 흔들리며 대통령실이 해명에 매달리는 일이 반복되면 기업은 정부를 신뢰하기 어렵다. 외국인 투자자 역시 정책의 지속성과 행정 능력을 따질 수밖에 없다. 관료사회도 위축된다. 책임 있는 결정을 내리기보다 정치권과 대통령실의 눈치를 보게 된다. 경제가 속도전을 벌여야 할 때 정부 조직이 인사 논란에 발목 잡히면 그 비용은 결국 기업과 국민에게 돌아간다. 따라서 후보자 몇 명을 교체하는 땜질식 처방으로 끝내서는 안 된다. 인사 검증 시스템을 처음부터 다시 뜯어고쳐야 한다. 부동산·세금·병역·논문뿐 아니라 이해충돌, 직무 전문성, 정책 역량, 공직 수행 능력까지 종합적으로 검증해야 한다. 검증 과정에서 결격 사유를 발견하고도 묵인하거나 축소했다면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무엇보다 코드 인사를 버려야 한다.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 정치적으로 충성하는 사람이 아니라 능력과 전문성, 도덕성을 갖춘 인물을 찾아야 한다. 대통령에게 듣기 좋은 말을 하는 참모가 아니라 “이 사람은 안 됩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참모가 필요하다. 그것이 대통령과 국정을 지키는 길이다. 대통령도 결단해야 한다. 한번 지명한 사람을 끝까지 감싸는 것이 대통령의 권위는 아니다. 잘못된 인사를 인정하고 철회하는 것이 오히려 강한 리더십이다. 반복되는 검증 실패라면 최종 인사권자에게도 책임이 있다. 기업은 정부에 특혜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일관된 정책과 예측 가능한 행정을 요구한다. 시장도 마찬가지다. 인사의 실패가 정책의 실패로 이어지고 정책의 실패가 시장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이번 인사 논란을 또 하나의 정치적 소란으로 넘긴다면 같은 문제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사람만 바꿔서는 달라지는 것이 없다. 시스템과 책임 구조, 인사의 기준을 함께 바꿔야 한다. 대통령실은 더 이상 변명과 방어에 매달려서는 안 된다. 부실 검증의 책임을 인정하고 인사 시스템을 전면 개편해야 한다. 흠결 있는 후보자는 과감히 철회하고 검증 책임자에게 책임을 묻는 한편, 인재 풀도 백지에서 다시 짜야 한다. 경제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시장의 신뢰도 무한정 용서하지 않는다. 인사에서 무너지면 정책이 흔들리고 정책이 흔들리면 시장의 신뢰도 무너진다. 지금이 인사 시스템을 환골탈태시킬 마지막 기회다.
2026-09-09 11: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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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문회, 검증의 출발선" 청와대 사전 검증은 무엇을 했나
[경제일보] 인사청문회는 대통령의 인사검증을 대신하는 절차가 아니다. 국회가 후보자를 공개적으로 검증하는 마지막 문턱에 가깝다. 그 문턱에 누구를 세울 것인지를 먼저 가려내는 일은 인사권자의 몫이다. 이 둘의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 청문회는 검증 장치가 아니라 잘못된 인사를 뒤늦게 수습하는 무대가 된다.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와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에 청와대가 내놓은 설명은 그래서 곱씹어볼 대목이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인사청문 제도 자체가 후보자에 대한 국민적 검증 과정”이라며 두 후보자가 “인사위원장의 책임 아래 인사 시스템을 거쳐 지명된 후보”인 만큼 청문회를 거쳐야 한다고 밝혔다. 동시에 “국민 눈높이에 부족함이 없도록 인사 검증체계를 갖추고 강화하겠다”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인사청문회는 국민을 대신한 국회의 공개 검증 절차다. 아직 사실관계가 확정되지 않은 의혹만으로 후보자를 낙마시키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야당이 제기하는 의혹이 모두 사실이라는 보장도 없고, 청문회를 정치적 공격 수단으로 사용하는 일도 경계해야 한다. 다만 인사 시스템을 거쳐 지명했다면서 왜 곧바로 검증체계를 강화하겠다는 것인가. 김 후보자에게는 코로나19 치료제 임상시험 승인과 관련한 청탁 의혹과 과거 음주운전 문제가 제기됐다. 김 후보자는 부정한 청탁은 없었다고 반박하면서도 민원 전달 과정에는 신중했어야 했다고 밝혔고, 음주운전에 대해서는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용 후보자에게는 비례대표 의원직과 장관직의 겸직 문제, 당 운영을 둘러싼 공정성 논란 등이 제기되고 있다. 각각의 의혹과 적격성은 청문회에서 사실관계를 더 따져야 한다. 중요한 것은 지명 전 어디까지 검토됐느냐는 것이다. 이미 알고도 장관직 수행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면 청와대가 그 판단에 책임을 지면 된다. 반대로 확인하지 못했다면 사전 검증에 구멍이 있었다는 뜻이다. 둘 중 어느 경우든 “청문회에서 검증하자”는 말만으로 끝낼 문제는 아니다. 국회법은 국무위원 후보자 등에 대해 국회가 인사청문회를 열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대통령에게서 후보자를 고르는 책임을 넘겨받기 위한 제도가 아니다. 대통령의 인사권 행사 이후 국회가 공직 수행 능력과 도덕성 등을 공개적으로 다시 검증하는 견제 장치다. 사전 검증과 인사청문은 순서만 다른 같은 검증이 아니다. 책임의 주체부터 다르다. 청와대 검증은 대통령의 책임이고, 국회 청문회는 국회의 책임이다. 이 단순한 구분을 놓쳐서는 안 된다. 청와대가 후보자의 재산과 세금, 범죄·징계 이력, 이해충돌 가능성, 과거 행적과 정무적 리스크를 충분히 확인한 뒤 “이 정도 문제를 감안해도 국정을 맡길 사람”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지명이다. 청문회는 그 판단에 누락이나 왜곡이 없는지 국민 앞에서 다시 따지는 과정이어야 한다. 하지만 사전 단계에서 걸러졌어야 할 문제가 지명 직후 쏟아지고, 그때마다 “청문회에서 보자”는 답이 반복되면 인사의 책임 구조가 거꾸로 선다. 대통령이 고르고 청와대가 검증했는데, 최종적으로 후보자의 적격 여부를 발견하고 판단하는 책임은 국회와 언론, 국민이 떠안게 되는 것이다. 더 위험한 것은 이런 방식이 반복될 때 생기는 ‘지명의 관성’이다. 후보자를 발표한 뒤에는 철회 비용이 커진다. 인사 실패를 인정해야 하고 야당의 공세도 감수해야 한다. 결국 이미 지명했다는 이유 자체가 후보자를 지켜야 하는 이유가 되기 쉽다. 검증의 판단 기준이 ‘공직에 적합한가’에서 ‘청문회를 버틸 수 있는가’로 바뀌는 순간이다. 제대로 된 사전 검증은 흠결을 하나도 없는 사람을 찾아내는 일이 아니다. 그런 사람은 현실 정치에 거의 없다. 핵심은 어떤 흠결까지 받아들일 것인지 기준을 미리 세우는 것이다. 음주운전이나 세금 체납, 부동산 투기, 연구윤리 위반, 갑질, 이해충돌, 수사·징계 이력처럼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검증 항목부터 표준화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문제가 있느냐 없느냐’를 확인하는 데 그쳐서는 부족하다. 공직의 성격에 따라 어느 정도의 흠결을 결격으로 볼 것인지도 정해야 한다. 법무부 장관에게 요구하는 기준과 산업부 장관에게 요구하는 전문성의 기준이 똑같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어제는 탈락 사유였던 문제가 오늘은 해명 가능한 문제가 되는 것도 곤란하다. 법적 결격과 정치적·윤리적 부적격을 구분하는 기준도 필요하다. 법을 어기지 않았다고 해서 곧바로 장관 자격을 얻는 것은 아니다. 장관은 형사재판에서 유죄인지 무죄인지만 따지는 자리가 아니다. 국민에게 정책의 준수를 요구하고 국가권력을 행사하는 자리다. 법률상 임명 가능성과 국민이 기대하는 공직 윤리 사이에는 분명한 간격이 있다. 그 간격을 그때그때 여론을 보며 판단해서는 인사 원칙이 생기지 않는다. 책임선도 분명히 해야 한다. 현재 청와대 인사는 인사위원회를 중심으로 후보 추천과 검증, 정무적 판단이 단계적으로 이뤄지는 구조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인사수석실까지 신설됐지만 후보자 논란이 반복되면서 시스템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누가 후보자를 추천했는지까지 모두 공개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인사에는 보안이 필요하다. 후보군의 개인정보를 보호해야 할 이유도 충분하다. 하지만 지명 이후 중대한 문제가 드러났다면 최소한 내부적으로는 추천 단계에서 놓쳤는지, 검증 과정에서 확인하지 못했는지, 알고도 정무적으로 수용했는지를 구분하고 책임을 남겨야 한다. 알고도 선택했다면 대통령과 인사위원회가 정치적 책임을 지면 된다. 몰랐다면 검증 시스템을 고쳐야 한다. 가장 좋지 않은 것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것이다. ‘상서’ 고요모에는 ‘지인즉철 능관인(知人則哲 能官人)’이라는 말이 나온다. 사람을 알아보는 것이 지혜이며, 그래야 사람을 제대로 벼슬에 쓸 수 있다는 의미다. 수천 년 전에도 국정의 어려움 가운데 하나를 ‘사람을 알아보는 일’에서 찾았다. 인사가 어려운 것은 시대가 달라져도 마찬가지다. 사람에게는 과거가 있고 완벽한 후보자는 없다. 사생활과 공적 검증의 경계를 어디에 둘지도 쉽지 않다. 지나치게 가혹한 검증은 유능한 인재가 공직을 피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기준이 필요하다. 정권에 가까운 사람에게는 느슨하고 반대편 사람에게는 엄격한 잣대가 아니라, 어느 정부에서든 대체로 예측할 수 있는 기준 말이다. 청와대가 이번에 인사 검증체계를 강화하겠다고 한 것은 필요한 조치다. 그러나 ‘강화하겠다’는 말만 반복해서는 같은 문제가 다음 개각에서 다시 돌아온다. 검증 항목을 표준화하고, 중대한 결격 사유와 해명 가능한 사안을 구분하며, 추천·검증·정무 판단의 책임선을 명확히 해야 한다. 지명 뒤 예상하지 못한 중대 문제가 드러났을 때는 어떤 단계에서 놓쳤는지 복기하는 절차도 필요하다. 또 분명히 할 것이 있다. 인사청문회는 청와대 검증의 실패를 대신 책임지는 곳이 아니다. 국회가 후보자를 검증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대통령이 지명하기 전에 제대로 검증하는 것은 그보다 먼저 존재하는 권한이자 책임이다. 청문회에서 모든 것을 확인하겠다면 사전 검증은 형식이 된다. 반대로 청와대가 자신 있게 검증을 마쳤다면 논란이 불거졌을 때 “청문회에서 보자”에 앞서 왜 그 문제를 감수하고도 지명했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인사의 신뢰는 흠결 없는 사람을 찾아내는 데서 생기지 않는다. 어떤 사람을 왜 골랐고, 무엇을 확인했으며, 어디까지 책임질 것인지 분명할 때 생긴다. 청문회는 검증의 시작이 아니다. 대통령의 인사검증이 제대로 이뤄졌는지를 국민 앞에서 확인하는 마지막 문턱이어야 한다.
2026-09-08 09:4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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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자유 뒤에 숨을 수 없는 공직자의 책임
[경제일보] 말은 가볍게 나가지만 그 말이 도착하는 곳은 가볍지 않다. 특히 공직자의 말은 더 그렇다. 한 개인의 의견처럼 보이지만 국민은 그것을 정부의 태도, 권력의 감수성, 국가의 품격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공직자는 말할 자유를 갖되 그 자유보다 먼저 말의 무게를 알아야 한다. 이병태 대통령 직속 규제합리화위원회 부위원장이 결국 자리에서 물러났다. 배재고 야구부의 5·18 민주화운동 조롱성 응원 논란과 관련해 이 부위원장은 SNS에 “5·18이 성역이 됐다”, “북한의 모습”이라는 취지의 글을 올렸고 이후 “표현의 자유”를 거론하며 자신의 입장을 이어갔다. 청와대는 해당 발언이 “혐오와 조롱에 대한 정부의 단호한 거부 기조와 달리 오해의 소지가 있다”며 엄중 경고했다. 이후 이 부위원장의 사퇴 의사를 수용했다. 이번 사안을 단순히 한 공직자의 돌출 발언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쟁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표현의 자유가 어디까지 보호돼야 하는냐다. 또 하나는 공직자가 사적 공간에서 한 말도 공적 책임의 대상이 되느냐다. 결론부터 말하면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뿌리지만 공직자의 언행은 그 뿌리를 흔들지 않는 방식이어야 한다. 표현의 자유는 넓게 보장돼야 한다. 불편한 말, 거친 비판, 권력에 대한 조롱까지도 민주사회가 감당해야 할 비용이다. 국가가 듣기 싫은 말을 막기 시작하면 자유는 순식간에 허가제로 변한다. 그런 점에서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는 문제 제기 자체를 금기시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모든 자유에는 경계가 있다. 타인의 존엄을 훼손하고 역사적 폭력의 피해자를 다시 상처 입히며 특정 지역과 공동체를 조롱하는 행위까지 자유의 이름으로 덮을 수는 없다. 표현의 자유가 중요하지만 타인의 존엄과 인권을 훼손하는 것까지 옹호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 문제는 학생들의 미성숙한 응원 구호에서 끝나지 않았다. 학생들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과정에서 어른의 역할은 갈등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교육적 수습을 돕는 것이어야 했다. 그런데 부총리급으로 불리는 정부 고위직 인사의 말이 논란을 정치적 전선으로 확장시켰다. 배재고 논란의 본질은 청소년의 잘못된 역사 인식과 공동체 감수성을 어떻게 바로잡을 것이냐다. 하지만 이 부위원장의 발언 이후 논란은 징계의 적절성, 표현의 자유, 5·18의 역사적 의미, 정부 인사 검증 문제로 번졌다. 공직자는 시민과 다르다. 시민은 자신의 말에 대해 사회적 비판을 받을 수 있지만 공직자의 말은 행정과 정책의 신뢰를 함께 움직인다. 규제합리화위원회는 말 그대로 규제를 합리화하고 경제 활력을 높이기 위한 기구다. 그 자리에 앉은 사람의 책무는 기업과 시장, 국민 사이의 신뢰를 조율하는 일이다. 그런 인사가 사회적 상처가 깊은 역사 문제를 두고 절제되지 않은 언어를 사용했다면 시장 친화적 규제 개혁의 메시지조차 불필요한 정치 논란에 묻힐 수밖에 없다. 경제도 결국 신뢰 위에서 굴러간다. 정책은 숫자로 설계되지만 실행은 신뢰로 움직인다. 정부가 규제를 풀겠다고 해도 국민이 그 정부의 판단을 믿지 못하면 정책은 저항에 부딪힌다. 기업이 투자하려 해도 사회적 갈등이 커지면 비용이 늘어난다. 공직자의 부주의한 말 한마디는 단순한 설화가 아니라 정책 추진력을 갉아먹는 비경제적 비용이다. 규제 합리화라는 좋은 명분도 사회 통합의 감수성을 잃으면 설 자리가 좁아진다. 이번 사퇴는 개인의 낙마로 끝나서는 안 된다. 정부 인사의 기준을 다시 세우는 계기가 돼야 한다. 전문성은 중요하다. 경제를 알고 시장을 알고 규제의 폐해를 아는 인재는 필요하다. 그러나 고위 공직에 필요한 자격은 전문성만이 아니다. 헌법 가치에 대한 이해, 역사적 상처에 대한 감수성, 공적 언어를 다루는 절제도 전문성 못지않게 중요하다. 특히 국민 통합을 내세운 정부라면 더 그렇다. 통합 인사는 진영을 넓히는 일이지만 상처를 헤집는 언행까지 감싸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 논어 이인편에는 “군자는 말은 어눌하게 하려 하고 행동은 민첩하게 하려 한다(君子欲訥於言而敏於行)”는 구절이 있다. 말을 못하라는 뜻이 아니다. 말이 앞서면 책임이 뒤따르지 못한다는 경계다. 공직자의 말은 더 그렇다. 많이 말하는 것이 소통은 아니다. 빨리 반응하는 것이 용기는 아니다. 국민의 상처 앞에서 한 박자 늦추고 자기 확신 앞에서 한 걸음 물러서는 것이 때로는 더 큰 책임이다. 물론 이번 논란을 빌미로 공직자의 모든 사적 발언을 감시하고 처벌하는 사회로 가서도 안 된다. 그것은 또 다른 위축과 검열을 낳는다. 중요한 것은 금지가 아니라 기준이다. 공직자는 비판할 수 있다. 정책을 두고 다른 의견을 낼 수 있다. 역사 문제에 대해서도 토론할 수 있다. 그러나 피해자의 존엄을 건드리고 사회적 혐오와 조롱으로 읽힐 수 있는 언어를 선택했다면 그에 따른 정치적·도덕적 책임을 져야 한다. 정부도 숙제를 안게 됐다. 청와대는 초기 경고 이후 사퇴 의사를 수용했지만 앞으로는 사후 수습보다 사전 검증이 중요하다. 과거 발언과 SNS 이력만 기계적으로 훑는 수준을 넘어 고위 공직 후보자가 공적 갈등을 다룰 만한 균형감과 언어 감각을 갖췄는지 살펴야 한다. 전문가는 많지만 공직자는 드물다. 전문성을 공공성으로 번역할 수 있는 사람이 공직자다. 이병태 부위원장의 사퇴가 남긴 메시지는 분명하다. 공직자의 말은 개인의 것이 아니다. 직함을 가진 순간 말은 제도와 연결되고 정부와 연결되며 국민의 기억과 연결된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공기다. 그러나 공직자의 언어는 그 공기를 탁하게 하지 않을 책임을 함께 진다. 정치는 갈등을 먹고 살 수 있지만 행정은 신뢰를 먹고 산다. 경제정책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시장은 불확실성을 싫어하고 국민은 오만한 권력을 싫어한다. 공직자의 말이 신중해야 하는 이유다. 말은 한 사람의 생각을 드러내지만 공직자의 말은 한 정부의 수준을 드러낸다. 이번 논란을 통해 정부가 배워야 할 교훈은 하나다. 인사는 넓게 하되 공직의 기준은 낮추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2026-07-07 15: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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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디브 선거는 배우고, 국내 투표용지는 못 챙긴 선관위
[경제일보]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신뢰를 정면으로 흔든 사건이다. 선거 당일 투표소를 찾은 유권자에게 투표용지를 제때 내주지 못했다. 선거 절차에서 투표용지는 가장 기초적인 준비물이다. 참관인 배치, 개표 관리, 선거운동 단속, 투표함 이송도 중요하지만 유권자에게 건넬 투표용지가 없으면 선거는 그 자리에서 멈춘다. 이번 일을 현장 착오나 일시적 혼선으로 넘길 수 없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노태악 전 중앙선관위원장의 사퇴는 뒤늦은 수습의 시작일 뿐이다. 이번 사태는 한 위원장의 사의 표명으로 덮을 수 있는 행정 사고가 아니라 중앙선관위 운영 전반의 책임을 묻는 사건으로 번지고 있다. 선관위는 헌법상 독립기관이다. 그러나 독립성은 정치권으로부터 선거관리를 지키기 위한 장치이지 국민 앞의 설명 책임을 덜어주는 방패가 아니다. 선관위가 정치권의 영향에서 벗어나 선거를 관리하려면 먼저 국민 앞에 설명 가능한 조직이어야 한다. 선거관리의 기본이 무너졌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번 지방선거 본투표 과정에서 전국 91개 투표소에서 투표용지 7194장이 부족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투표용지 부족으로 투표가 중단된 곳도 26곳에 달했다. 중앙선관위가 애초 밝힌 부족 규모보다 크게 늘어난 수치다. 선관위가 선거 직후 사태의 전모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거나 적어도 국민에게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선거관리의 실패가 투표소 현장에서 그쳤는지, 보고와 대응 과정까지 이어졌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노 전 위원장은 사의를 표명했다. 허철훈 전 사무총장도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사퇴만으로 매듭지을 사안으로 보기 어렵다.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노 전 위원장과 허 전 사무총장 등 선관위 관계자들을 출국금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선관위와 서울시선관위,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한 일부 구 선관위 등에 대한 압수수색도 진행됐다. 수사는 수사대로 진행돼야 하고, 조직 책임은 조직 책임대로 규명돼야 한다. 형사책임 성립 여부와 별개로 선관위가 선거관리의 기본 의무를 다했는지는 반드시 확인돼야 한다. 과로론으로 덮을 수 없는 중앙선관위 책임 선관위 내부 게시판에는 현장 인력 부족을 호소하는 글도 올라왔다. 한 직원은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관련해 “선관위가 잘못한 건 인정하더라도 선거 시스템이 과부하된 현 상황은 알려야 한다”며 “근본적 원인은 살인적 업무량과 적은 인원”이라고 썼다. 또 다른 직원은 “1명이 100곳 이상의 투표소를 관리하는데, 용지가 부족하다는 연락이 동시다발적으로 오면 혼자 처리할 수 있었겠느냐”고 반문했다. 서울 송파구 선관위의 경우 직원 13명 중 3~4명 정도가 관할 투표소 146곳의 투표 상황 관리와 개표 준비까지 맡아 비상 상황에 대응하기 어려웠다는 설명도 나왔다. 현장 직원의 고충은 가볍게 볼 수 없다. 선거 때마다 구·시·군 선관위 직원들이 과도한 업무에 시달린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1명이 100곳 넘는 투표소를 관리해야 했다면 정상적인 인력 운용으로 보기 어렵다. 다만 바로 그 사정 때문에 중앙선관위의 책임은 더 무거워진다. 인력이 부족했다면 선거 전에 보강 방안을 마련했어야 한다. 업무량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면 위험 지점을 미리 점검했어야 한다. 투표용지 배부량 산정, 예비분 확보, 긴급 수송 체계, 보고 라인, 현장 대응 매뉴얼은 선거가 끝난 뒤 내부 게시판에 호소할 문제가 아니라 선거 전에 갖춰야 할 선거관리의 기본 장치다. 유권자 입장에서 따질 대목은 하나다. 왜 투표소에 투표용지가 부족했느냐는 것이다. 업무가 많았다는 말은 설명의 일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책임을 대신할 수는 없다. 선거관리기관이 선거 당일 투표용지를 충분히 준비하지 못했다면 먼저 국민 앞에 책임을 설명해야 한다. 그다음에 인력과 제도 문제를 말해야 한다. 순서가 바뀌면 내부 사정은 국민 눈에 책임 회피로 비칠 수밖에 없다. 몰디브 출장이 부른 국민의 냉소 이번 사태가 더 큰 분노를 부른 데에는 선관위의 기존 논란도 영향을 미쳤다. 성과급, 휴직, 해외 출장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특히 몰디브 대통령 선거 참관 출장은 상징성이 크다. 2023년 9월 선관위 직원 5명은 7박 9일 일정으로 몰디브 대통령 선거를 참관했다. 보고서에는 후보자 선거사무소 방문, 선거운동 참관, 투·개표 참관, 공식 만찬 참석 등이 담겼다. 출장 목적은 ‘변화된 외국 선거환경 파악 및 선거법제 비교 연구’였다. 문구만 놓고 보면 그럴듯하다. 그러나 이번 사태 이후 국민의 시선은 싸늘하다. 몰디브에서 선거 제도를 배우고 왔다는 기관이 정작 국내 지방선거에서는 투표용지를 못 챙겼다. 보고서에 해변 깃발 사진과 섬 지역 선거운동 설명이 실렸다는 대목까지 알려지면서 국민의 냉소는 더 커졌다. 선거 제도를 배우러 몰디브까지 갔다는 설명은 지금 상황에서 희대의 코미디처럼 들린다. 외국 선거제도 연구 자체를 문제 삼을 일은 아니다. 해외 선거 참관도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공공기관의 출장은 성과로 설명돼야 한다. 몰디브 출장 보고서가 국내 선거관리 개선에 어떤 도움을 줬는지는 이번 사태 앞에서 설 자리를 잃었다. 해변의 깃발과 섬 지역 선거운동을 보고 온 기관이 정작 국내 투표소의 용지 부족을 막지 못했다면, 제도 연구라는 설명보다 방만한 조직문화라는 비판이 먼저 나올 수밖에 없다. 선관위는 2024년 총선을 앞두고도 몰디브를 포함해 1년간 33차례 해외 출장을 다녀왔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지난해 9월부터 11월까지 스위스, 스페인 등 유럽을 중심으로 선거 신뢰성 제고 등을 이유로 한 출장도 이어졌다고 한다. 해외의 선거 신뢰성을 살피러 다니는 동안 국내 선거관리의 신뢰는 어디서 새고 있었는지 돌아봐야 한다. 선거 신뢰성은 보고서 제목이 아니라 투표소 현장에서 쌓인다. 유권자가 줄을 서고, 신분을 확인받고, 투표용지를 받아 기표소로 들어가는 과정이 막힘없이 작동해야 신뢰가 생긴다. 독립성은 책임 회피의 방패가 아니다 선관위가 그동안 누려온 독립성과 권한은 작지 않다. 선거를 관리하고 정당·정치자금 업무를 다루며 위법 선거운동을 조사한다. 정치권도 선관위 판단을 무겁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런 기관일수록 내부 통제와 외부 검증은 더 엄격해야 한다. 그런데 선관위는 독립기관이라는 이유로 감사와 인사, 예산, 조직 운영 전반에서 느슨한 감시를 받아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독립기관이라는 지위가 성역처럼 굳어졌다면 이번 사태는 그 벽을 다시 세울지, 허물지 가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국회가 선관위 개혁 법안을 내놓는 흐름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 한동훈 무소속 의원은 선관위에 대한 감사원 외부감사를 가능하게 하는 감사원법 개정과 전국 선거 기간 선관위 직원들의 휴가·휴직 사용을 제한하는 입법을 예고했다. 선거가 없는 시기와 전국 단위 선거가 있는 시기의 휴직자 수 차이를 들어 선관위 조직 운영 문제도 지적했다. 여야 원내지도부 역시 이번 사태의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에 큰 틀에서 공감한 것으로 전해졌다. 감사위원회 설치, 선관위원 연임 제한 등도 논의되고 있다. 선관위 개혁은 정치적 보복이나 특정 진영의 이해관계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 선거관리기관을 정권의 하부기관처럼 만드는 일은 더 큰 위험을 낳을 수 있다. 그렇다고 현 체제를 그대로 두자는 결론으로 갈 수도 없다. 독립성과 책임성은 함께 가야 한다. 책임성이 뒷받침되지 않는 독립성은 국민에게 특권으로 보인다. 국민이 신뢰하지 않는 독립기관은 제도적 권위도 유지하기 어렵다. 이번 사태는 선관위 직원 몇 명의 실수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투표용지 수요 예측, 인쇄·배부 계획, 예비 물량 확보, 현장 보고 체계, 비상 대응, 사후 설명까지 선거관리 전 과정이 제대로 작동했는지 살펴야 한다. 노태악 체제의 중앙선관위는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사의를 표명했다고 책임이 사라지지 않는다. 수사 대상이 됐다고 정치적 논란으로만 몰고 갈 일도 아니다. 선거관리 실패의 원인과 책임자를 구체적으로 가려야 한다. 선관위 내부 직원들이 과로를 호소했다면 그 부분도 함께 조사해야 한다. 누가 그런 인력 배치를 결정했는지, 선거 전 위험 보고는 있었는지, 중앙선관위는 현장 부담을 알고 있었는지, 알고도 방치했는지 확인해야 한다. 현장 직원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겨서는 안 된다. 동시에 현장 고충을 앞세워 조직 책임을 흐려서도 안 된다. 선거관리기관의 책임은 가장 윗선에서 시작된다. 노태악 전 위원장과 중앙선관위 수뇌부가 책임 규명의 중심에 서야 한다. 민주주의의 신뢰는 선거 당일 투표소에서 확인된다. 투표용지가 충분히 놓여 있어야 하고, 유권자가 정해진 절차에 따라 투표할 수 있어야 한다. 문제가 생기면 즉시 해결돼야 한다. 사후에는 정확한 설명과 책임 추궁이 따라야 한다. 선관위가 이 기본을 놓쳤다면 그동안 내세워온 선거관리 전문성도 다시 검증받을 수밖에 없다. 몰디브 선거는 배우고, 국내 투표용지는 못 챙겼다는 비판은 거칠지만 지금 민심의 방향을 잘 보여준다. 선관위가 국민의 분노를 억울하게만 여긴다면 사태의 무게를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이다. 국민이 선관위에 요구한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선거 당일 투표용지가 부족하지 않게 하라는 요구였다. 그 요구조차 충족하지 못한다면 선관위의 권위도 유지되기 어렵다. 선관위 개혁은 더 미루기 어렵다. 외부감사, 인사 검증, 예산 통제, 해외출장 심사, 휴직 관리, 선거 비상 대응 체계까지 다시 봐야 한다. 독립성이라는 이름 아래 방만함이 방치됐다면 걷어내야 한다. 정치권도 이 문제를 정쟁의 도구로만 삼아서는 안 된다. 선거관리기관을 바로 세우는 일은 어느 정당의 유불리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참정권 문제다. 유권자의 한 표를 관리하라고 만든 기관이 유권자에게 줄 종이 한 장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 노태악 전 위원장의 사퇴는 출발점에 가깝다. 책임 규명과 제도 개혁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이번 사태는 선관위 역사에 가장 부끄러운 장면으로 남게 될 것이다.
2026-06-15 09:5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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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 새 총장, 현 이사회 체제로 뽑는다
[경제일보] 1년 넘게 차기 총장 선임이 지연된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현 이사회 체제에서 새 총장을 선출할 전망이다. 총장 후보 3명이 확정되면서 이르면 다음 달 임시이사회에서 총장 선임 절차가 마무리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20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과학계에 따르면 KAIST 총장후보선임위원회는 지난 15일 류석영 전산학부 교수, 배충식 기계공학과 교수, 이도헌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등 3명을 제18대 총장 후보로 확정해 이사회에 추천했다. 앞서 총장후보선임위는 6명 후보를 대상으로 면접 심사를 진행한 뒤 최종 3배수를 압축했다. 최종 후보 3명은 정부 인사 검증을 거친 뒤 KAIST 이사회 표결에 부쳐진다. 이사회에서 출석 이사 과반을 얻은 후보가 나오면 교육부 장관 동의를 거쳐 과기정통부 장관 승인으로 차기 총장이 최종 확정된다. KAIST는 지난해부터 총장 선임 절차가 장기 표류했다. 이광형 현 총장의 임기는 지난해 2월 끝났지만 이사회 일정 지연 등으로 후임 선임이 늦어졌다. 올해 2월 이사회에서는 이광형 현 총장, 김정호 전기및전자공학부 교수, 이용훈 전 울산과학기술원 총장 등 3명을 놓고 표결했지만 모두 과반 득표에 실패해 총장 선임안이 부결됐다. 총장 선임안 부결은 KAIST 개교 이후 처음 있는 일로 알려졌다. 이후 학내에서는 리더십 공백과 이사회 책임론을 둘러싼 반발이 이어졌고, 이광형 총장이 사임 의사를 밝혔다가 철회하는 등 혼란도 있었다. 이번에는 현 이사회 체제에서 총장을 먼저 선출한 뒤 이사장 선임 절차를 밟는 방식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김명자 KAIST 이사장은 지난 8일 임기가 끝났지만, 정관상 후임 이사장이 선출되는 차기 이사회까지 직을 유지할 수 있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도 현 이사회 체계에서 총장을 뽑을 수 있다는 취지로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총장과 이사장을 같은 이사회에서 함께 선출할 가능성도 있다. KAIST 이사장은 이사 중 호선 방식으로 선출된다. 다만 총장 선임 일정과 정부 인사 검증 절차가 남아 있어 구체적인 이사회 개최 시점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과학기술계에서는 이르면 다음 달 총장 선임을 위한 임시이사회가 열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KAIST 관계자는 “세 명의 후보가 나온 상황이지만 아직 이사회 일정은 결정된 바 없다”고 밝혔다. 이번 총장 선임은 KAIST의 리더십 정상화뿐 아니라 국가 전략기술 경쟁력과도 맞물려 있다. AI, 반도체, 바이오, 첨단 제조 등 핵심 분야에서 대학의 연구·교육 전략을 새롭게 세워야 하는 시점인 만큼 차기 총장이 학내 통합과 글로벌 경쟁력 강화 과제를 동시에 안게 될 전망이다.
2026-05-20 08:1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