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총 8건
-
중국이 주문한 '전략적 자율성', 한국식 답은 따로 있다
[경제일보] 왕이 외교부장이 서울을 떠나며 숙제 하나를 남겼다.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진정한 전략적 자율성’을 갖고 진영 대결이나 편 가르기에 나서지 않았으면 한다는 주문이다. 중국과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과의 관계를 서로 충돌하지 않게 발전시키라는 말도 덧붙였다. 세계 2위 경제대국의 외교 수장이 한국 땅에서 한국 외교의 좌표를 거론한 셈이다. 표면만 보면 틀렸다고 할 이유는 많지 않다. 강대국의 요구에 끌려다니지 않고 스스로 국익을 판단하는 것은 주권국가 외교의 기본이다. 미·중 전략경쟁이 격렬할수록 한국에는 오히려 더 많은 선택지와 더 정교한 계산이 필요하다. 문제는 중국이 말하는 ‘전략적 자율성’과 한국이 가져야 할 전략적 자율성이 반드시 같은 뜻은 아니라는 데 있다. 왕 부장은 위성락 국가안보실장과 만나 한국이 진영 대결과 ‘편들기’를 피하길 희망한다고 했다. 동시에 한반도 긴장을 푸는 근본적 방법으로 미국이 북한에 대한 ‘적대정책’을 포기해야 한다는 중국의 기존 입장도 되풀이했다. 중국의 시각에서 전략적 자율성은 한국이 미국의 대중국 견제에 깊숙이 들어가지 않는 것과 맞닿아 있다. 한국이 받아들여야 할 자율성은 조금 달라야 한다. 미국의 요구가 국익에 맞지 않을 때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듯, 중국의 요구에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과 거리를 두는 것만 자율이고 중국의 전략적 요구를 수용하는 것이 자율일 수는 없다. 자율성의 주어는 미국도 중국도 아닌 대한민국이어야 한다. 출발점은 한미동맹의 위치를 분명히 하는 것이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 현실의 위협으로 존재하는 한 한미동맹은 대한민국 안보의 중심축이다. 이를 미·중 관계의 온도에 따라 조절할 거래 카드로 만들 이유가 없다. 그렇다고 동맹을 모든 정책에 대한 자동 동의서로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 최근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시 이후 한미는 을지 자유의 방패 연합훈련 기간을 11일에서 5일로 줄이고 야외기동훈련도 축소했다. 한국 외교부 장관은 이 과정에서 한국 정부는 물론 미국 정부 관계자 상당수도 사전에 알지 못했다고 밝혔다. 미국 역시 북미대화와 이란 문제, 한국의 대미 투자 등 자신의 전략적 이해를 계산하며 움직인다는 의미다. 동맹도 국익을 계산한다. 그렇다면 한국이라고 계산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한미동맹을 튼튼하게 유지하되 한국의 안보와 산업에 직접 영향을 주는 결정에는 충분한 협의와 상호 존중을 요구해야 한다. 그것은 동맹을 약하게 만드는 태도가 아니라 오래가게 만드는 태도다. 중국과의 경제협력 역시 감정이 아니라 계산의 영역에 놓아야 한다. 왕 부장과 조현 외교부 장관은 한중 자유무역협정 서비스·투자 후속협상, 공급망 안정, 인적·문화 교류 확대 등에 협력하기로 했다. 중국은 오는 11월 선전 APEC을 계기로 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의 정상회담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양국 인적 교류가 올해 1000만명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관계의 정상화는 한국 경제에도 필요한 일이다. 중국은 여전히 한국의 주요 시장이고 반도체·배터리·화학·소비재 기업에는 거대한 생산·판매 거점이다. 희토류와 배터리 소재를 비롯한 공급망에서도 중국을 지워놓고 산업전략을 세우기 어렵다. 정치적 선명성을 얻겠다고 경제적 현실을 외면하는 것은 실용외교가 아니다. 다만 중국과 협력하는 것과 중국에 의존하는 것은 구별해야 한다. 희토류와 흑연, 배터리 소재처럼 한 국가의 정책 변화가 한국 공장을 멈춰 세울 수 있는 품목이라면 거래는 지속하되 공급선은 넓혀야 한다. 중국에서 안정적으로 조달하면서 호주·캐나다·동남아·중남미의 대체 공급망을 확보하고, 국내 비축과 재활용도 함께 키워야 한다. 중국과 잘 지내는 가장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는 중국이 공급을 멈춰도 견딜 수 있는 힘을 갖는 것이다. 첨단기술은 더욱 세밀해야 한다. 범용 반도체와 소비재에는 시장의 논리를 최대한 존중하되 첨단 AI 반도체와 군사 전용 가능 기술에는 안보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중국과의 FTA 서비스·투자 협상에서도 한국 시장을 여는 만큼 중국 시장에서 우리 기업이 받는 규제와 차별을 줄이라는 상호주의가 따라야 한다. ‘관계 개선’ 자체가 외교의 목표가 아니라 관계 개선을 통해 무엇을 얻었는지가 목표여야 한다. 북한 문제에서는 중국의 이번 메시지를 더 냉정하게 읽을 필요가 있다. 왕 부장은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포기를 한반도 긴장 완화의 근본 해법으로 제시했다. 북미 사이의 불신과 군사적 긴장이 한반도 문제를 악화시킨 측면을 부인할 수는 없다. 대화가 끊긴 채 제재와 군사 대응만 반복한다고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한반도 긴장의 원인을 미국에만 돌리는 진단은 불완전하다. 왕 부장이 서울에 있던 20일 북한은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잇달아 발사했다. 북한의 핵무력 강화와 미사일 개발은 평양 스스로 내린 선택이다. 중국이 미국에는 정책 변화를 요구하면서 북한에는 같은 수준의 책임 있는 행동을 요구하지 않는다면 중재자로서의 설득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중국의 역할은 필요하다. 조 장관이 북한을 대화로 돌려세우는 데 중국의 건설적 역할을 요청한 것도 그래서다. 왕 부장 역시 남북의 평화적 공존과 대화 재개를 위해 역할을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다만 베이징이 원하는 ‘한반도 안정’과 서울이 추구해야 할 ‘비핵화된 평화’가 완전히 같은 목표라고 가정해서는 안 된다. ‘맹자’ 공손추 하에는 ‘천시불여지리 지리불여인화(天時不如地利 地利不如人和)’라는 말이 나온다. 국제정세가 아무리 유리해도 스스로의 전략과 내부 합의가 없으면 국익을 지키기 어렵다. 미·중 경쟁이라는 ‘천시’와 한반도라는 ‘지리’ 사이에서 한국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자산은 어느 나라의 요구에도 흔들리지 않는 국익의 기준이다. 미국과 동맹이라고 모든 정책에서 같아질 필요는 없다. 중국과 협력한다고 중국이 원하는 외교적 좌표에 설 이유도 없다. 협력할 것은 협력하고, 이해가 충돌하는 곳에서는 우리의 선을 긋는 것이 외교다. 왕 부장의 ‘전략적 자율성’ 주문을 굳이 배척할 필요는 없다. 대신 한국식으로 다시 정의하면 된다. 안보는 한미동맹을 중심에 두되 동맹 내부에서도 국익을 말한다. 중국과는 시장과 공급망, 북핵 문제에서 적극 협력하되 기술과 경제안보의 경계는 지킨다. 미국이든 중국이든 한국 기업에 일방적인 비용을 요구하면 문제를 제기하고, 양쪽 모두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과감하게 얻는다. 오는 11월 선전 APEC과 한중 정상회담이 성사된다면 이 원칙의 첫 시험대가 될 수 있다. 정상회담 사진보다 중국 시장의 문턱이 실제 낮아졌는지, 공급망이 더 안전해졌는지, 문화·인적 교류의 비정상적인 장벽이 사라지는지, 북한을 대화로 돌려세우는 데 중국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했는지를 봐야 한다. 전략적 자율성은 미국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졌느냐로 측정하는 것이 아니다. 중국에 얼마나 가까워졌느냐로 잴 일은 더욱 아니다. 미국에도 중국에도 필요한 협력은 하되, 지켜야 할 국익 앞에서는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힘. 그것이 한국식 전략적 자율성이다. 중국이 주문한 답을 그대로 제출할 필요는 없다. 답안지는 대한민국이 스스로 쓰면 된다.
2026-08-21 11:44:49
-
미국과 중국 사이, 한국 외교의 좌표는 국익이다
[경제일보]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이 서울에 왔다. 중국 외교 수장의 단독 방한은 약 5년 만이다. 조현 외교부 장관과 왕 부장은 19일 서울에서 마주 앉아 한중 관계와 한반도 정세, 경제협력을 논의했다. 중국은 오는 11월 선전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중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서비스·투자 후속협상, 공급망 안정, 인적·문화 교류 확대에도 협력하기로 했다. 양국을 오가는 인적 교류가 올해 1000만명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얼어붙었던 관계가 정상궤도로 돌아오는 것은 반길 일이다. 중국은 지리적으로 옮길 수 없는 이웃이고, 한국 기업의 거대한 시장이며, 반도체·배터리·핵심광물 공급망에서도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려운 상대다. 북한 문제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조 장관이 북한의 조속한 대화 복귀를 위해 중국의 건설적 역할을 요청했고, 왕 부장이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해 역할을 하겠다고 답한 것도 이런 현실을 반영한다. 문제는 한중 관계가 움직일 때마다 되살아나는 질문이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 가운데 어느 쪽에 설 것인가.” 질문부터 잘못됐다. 대한민국이 한미동맹을 외교·안보의 근간으로 삼는 것과 중국과 경제·외교 협력을 확대하는 것은 반드시 양자택일해야 할 일이 아니다. 미국과 중국의 전략경쟁이 거세질수록 선택을 강요받는 영역이 늘어나는 것은 현실이다. 그렇다고 한국 외교가 모든 사안을 ‘친미냐 친중이냐’의 두 칸짜리 표에 넣는 순간 스스로 운신의 폭을 좁히게 된다. 과거 한중 관계를 설명할 때 흔히 쓰던 ‘안미경중(安美經中, 안보는 미국에 의존하고 경제는 중국과 협력한다)’는 공식도 이제는 충분하지 않다. 안보와 경제의 경계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반도체는 수출상품이면서 안보자산이고, 배터리는 산업이면서 공급망 전략이다. 희토류와 핵심광물은 원자재인 동시에 외교적 지렛대가 됐다. 인공지능과 데이터센터, 첨단 장비와 소프트웨어에는 수출통제와 동맹정책이 얽혀 있다. 경제와 안보를 각각 워싱턴과 베이징이라는 두 서랍에 나눠 담을 수 있었던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 외교에도 새로운 문법이 필요하다. 우선 안보의 축은 분명히 해야 한다. 한미동맹은 지난 수십 년간 대한민국 안보의 기초였고,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그 전략적 가치는 여전히 크다. 이를 미중 사이의 단기적 거래대상처럼 다루는 것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중국과 관계를 개선한다고 한미동맹의 신뢰에 의문을 만들 이유도 없다. 다만 동맹이라고 두 나라의 이해관계가 모든 문제에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공교롭게도 왕 부장이 서울에 도착한 19일 조 장관은 국회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한미연합훈련 규모와 기간이 축소되는 과정에서 한국 정부뿐 아니라 미국 정부 관계자들조차 사전에 이를 알지 못했다고 밝혔다. 한국과 미국은 당초 11일 일정이던 연합훈련을 5일로 줄이고, 일부 야외기동훈련도 축소하기로 했다. 동맹도 각자의 국익을 계산한다는 뜻이다. 미국 대통령은 북한과의 대화, 중동 문제, 한국의 대미 투자 등 여러 이해관계를 함께 고려한다. 한국 역시 미국의 정책을 무조건 따라가는 것이 동맹 관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동맹은 서로의 국익을 솔직하게 조정할 수 있을 때 오래간다. 중국에는 또 다른 기준이 필요하다. 중국과 경제협력은 확대하되 상호주의와 공급망 안전이라는 선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번 외교장관회담에서 양국이 FTA 서비스·투자 협상과 공급망 안정에 협력하기로 한 것은 실용적인 접근이다. 우리 기업이 중국 시장에서 불필요한 규제를 덜 받고 서비스와 투자 분야의 문턱을 낮출 수 있다면 협상을 적극적으로 진행할 필요가 있다. 다만 공급망 안정이라는 말이 중국 의존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해서는 곤란하다. 반도체 소재 하나, 배터리 원료 하나가 특정 국가의 정책 변화로 막혀 공장이 흔들리는 일은 이미 충분히 경험했다. 중국과 안정적인 공급선을 유지하는 것과 공급원을 중국 하나에 맡기는 것은 정반대의 전략이다. 필요한 것은 탈중국도, 재중국화도 아니다. 중국과 거래하되 중국이 멈춰도 버틸 수 있는 공급망이다. 반도체도 같은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 중국은 한국 반도체에 중요한 시장이고 한국 기업 역시 중국에 대규모 생산기반을 갖고 있다. 이와 같은 현실을 무시한 채 정치적 구호만으로 관계를 끊을 수는 없다. 반면 첨단 반도체 기술과 장비가 미중 전략경쟁의 최전선에 놓인 상황에서 안보와 기술유출 문제를 무시한 사업 확대 역시 위험하다. 때문에 분야별 기준이 필요하다. 범용 메모리와 소비재에서는 시장 논리를 최대한 존중하고, 첨단 AI 반도체와 군사적 전용 가능성이 있는 기술에는 보다 엄격한 안보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배터리는 중국과 거래하면서 원료 조달국을 넓히고, 핵심광물은 구매계약과 동시에 비축·재활용·대체소재 개발을 추진해야 한다. 북한 문제에서도 중국에 ‘기대할 것’과 ‘기대하지 말 것’을 구분해야 한다. 중국은 북한의 중요한 우방이고 한반도 문제의 핵심 당사국이다. 왕 부장은 이번 회담에서 한국과 북한이 평화와 공존의 기회를 찾아가길 바란다며 중국이 건설적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가 북한의 대화 복귀에 중국의 협조를 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중국의 역할을 요청하는 것과 북한 문제를 중국에 맡기는 것은 다르다. 베이징의 대북정책에는 중국 자신의 전략적 이해가 있다. 중국이 원하는 한반도의 안정과 한국이 원하는 비핵화·평화체제가 모든 지점에서 같을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중국의 도움을 요청하되, 결과에 대해서는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왕 부장 역시 이번 방한에서 한국이 ‘근본적 이익’에 따라 독립적인 외교정책을 추진하고 다른 국가들과의 관계를 조화롭게 발전시키길 희망한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을 통해 공개된 발언이다. 이 말 역시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미국이 한국에 선택을 요구해서는 곤란하듯 중국 역시 한미동맹이나 한국의 대외정책에 사실상의 선택지를 제시해서는 안 된다. 한국의 ‘독립적인 외교’가 필요하다면 그 독립성은 워싱턴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베이징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돼야 한다. 국익에 따라 미국에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중국에도 ‘안 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자주외교다. ‘논어’ 자로편에는 ‘군자화이부동 소인동이불화(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라는 구절이 있다. ‘군자는 조화를 이루되 같아지려 하지 않고, 소인은 같아지려 하지만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뜻이다. 지금 한국 외교에 필요한 태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과 동맹이라고 모든 정책이 같을 필요는 없다. 중국과 협력한다고 중국의 전략을 받아들일 이유도 없다. 다른 이해관계를 인정하면서 합의할 수 있는 영역을 넓히는 것이 외교다. 모든 사안에서 같은 편을 증명하라는 요구는 동맹에도, 협력관계에도 건강하지 않다. 오는 11월 선전 APEC은 이를 시험할 무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은 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의 정상회담을 적극 검토하고 있고, 왕 부장은 조현 장관의 중국 방문도 제안했다. 관계 복원을 정상회담 사진 한 장으로 끝내지 말고 무엇을 주고 무엇을 얻을 것인지 미리 정리해야 한다. 대중 외교의 성적표는 정상회담 횟수가 아니다. 우리 기업의 시장 접근성이 나아졌는가. 핵심광물과 부품 공급이 더 안정됐는가. 중국 내 한국 기업이 부당한 차별을 덜 받게 됐는가.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고 대화를 복원하는 데 중국이 실제로 역할을 했는가. 문화와 관광 분야의 비정상적 장벽이 줄었는가. 이런 구체적인 결과로 평가해야 한다. 한미관계에도 같은 원칙을 적용하면 된다. 주한미군과 확장억제는 얼마나 안정적인가. 첨단기술 협력에서 한국 기업이 어떤 몫을 얻는가. 막대한 대미 투자가 국내 산업과 일자리에 어떤 결과를 남기는가. 미국의 정책 변화가 한국 기업에 과도한 비용을 떠넘길 때 정부가 얼마나 당당하게 문제를 제기하는가를 봐야 한다. 한국 외교에 필요한 것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절묘하게 가운데 서는 기술이 아니다. 사안마다 어디에 서야 국익이 커지는지를 판단할 기준이다. 안보에서는 동맹의 신뢰를 지키고, 경제에서는 시장을 넓히며, 공급망에서는 의존을 줄이고, 기술에서는 지킬 것을 지켜야 한다. 북핵 문제에서는 미국과 공조하면서 중국의 역할도 끌어내야 한다. 하나의 문장으로 모든 외교 문제를 설명하려는 순간 현실은 그 문장보다 복잡해진다. 왕 부장의 방한을 친중 외교의 신호로 읽을 필요도, 한미동맹의 균열로 볼 이유도 없다. 중국과 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은 해야 할 외교이고, 한미동맹을 굳건히 관리하는 것 역시 해야 할 외교다. 둘 가운데 하나를 골라야 비로소 외교 노선이 선명해지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편은 미국도 중국도 아닌 대한민국이어야 한다. 원칙이 분명하다면 미국에는 동맹으로 당당할 수 있고 중국에는 이웃으로 실용적일 수 있다. ‘미국이냐 중국이냐’라는 오래된 질문을 버리고, ‘이 선택이 대한민국에 무엇을 남기는가’를 묻는 것. 왕 부장의 5년 만의 방한이 한국 외교에 던진 가장 중요한 숙제다.
2026-08-20 09:06:55
-
MASGA 재본격화… 미국 조선 재건 누가 이끄나
[사진=ChatGPT] [경제일보] 미국 조선업 재건을 둘러싼 한화오션, HD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의 경쟁이 다시 본격화하고 있다. 중동 정세 불안과 통상 불확실성으로 한동안 수면 아래에 있던 한미 조선협력 프로젝트 ‘마스가(MASGA)’가 미국 정부의 정보요청(RFI)을 계기로 실무 검토 단계로 옮겨가는 분위기다. RFI로 본격화된 한미 조선 협력 11일 방산업계에 따르면, 최근 미국 국방부와 해군은 국내 조선사들에 전투함과 급유함 건조·설계 역량을 묻는 RFI를 보냈다.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은 전투함 관련 역량을 미 국방부에 전달했고, 미 해군의 중형급 급유함 RFI에는 삼성중공업까지 포함해 국내 조선 3사가 회신한 것으로 전해졌다. RFI는 곧바로 발주를 뜻하지 않는다. 다만 미국 정부가 한국 조선사의 건조 실적, 설계 인력, 연간 생산능력, 현지 협력 구도 등을 공식적으로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이재명 대통령에게 “미국 군함 10척을 빠르게 건조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는 발언과 맞물리면서 마스가가 구호를 넘어 실제 사업 검토 단계로 진입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마스가는 미국 조선업 재건을 목표로 한 한미 제조업·안보 협력 프로젝트다. 미국 백악관은 지난해 4월 ‘미국 해양 지배력 회복’ 행정명령을 통해 조선업과 해양 산업, 관련 인력 기반을 되살리는 것이 국가안보와 경제 번영을 위한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이 한국 조선업에 손을 내미는 배경에는 중국과의 조선 역량 격차가 있다. 미국은 해군력과 상선 건조 능력을 동시에 끌어올려야 하지만, 자체 조선소만으로는 단기간에 생산능력을 회복하기 어렵다. 한국 조선사들이 보유한 설계·건조·공정관리 역량이 미국 조선 재건의 현실적인 보완재로 떠오른 이유다. 조선 3사 전략 경쟁 본격화 가장 앞서 있는 곳은 한화오션이다. 한화오션은 한화시스템과 함께 미국 필라델피아의 필리조선소를 인수하며 현지 거점을 확보했다. 한화는 2024년 필리조선소 인수에 1억 달러를 투자했고, 이후 시설과 인력, 생산능력 개선을 위한 추가 투자도 진행해왔다. 한화오션의 강점은 ‘미국 안에 있는 조선소’와 ‘한국의 함정 건조 역량’을 함께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화는 미 해군 함정 발주와 관련한 법·제도 개정 흐름을 주시하면서, VARD, 한화필리조선소, 한화디펜스USA와의 협업을 기반으로 미 해군 차세대 군수지원함(NGLS) 개념설계 사업에 참여하는 등 주요 프로젝트에 공동으로 뛰어들고 있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한국의 건조 역량과 미국 현지 생산 거점을 유기적으로 결합해 비용·납기·정책 리스크 측면에서 경쟁력 있는 사업 모델을 구축하고 있다”며 “이를 통해 미국 해양방산 시장에 선제적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다만 현재까지 한화오션의 미 함정 MRO는 군수지원함을 중심으로 진행돼왔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현재는 관련 규제 내에서 수행이 가능한 MRO 사업을 다각도로 검토 및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현지 생산 기반을 확보한 만큼 향후 법·제도 변화에 따라 MRO와 신조 사업의 확장 가능성을 함께 열어두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HD현대중공업은 미국 방산 조선사와의 협력망을 넓히는 방식으로 승부를 걸고 있다. 2024년 미국 해군보급체계사령부와 함정정비협약(MSRA)을 체결해 향후 5년간 미 해군과 해상수송사령부 소속 함정 MRO 사업 입찰 자격을 확보했고, 이후 미 7함대 소속 4만1000톤급 화물보급함 ‘앨런 셰퍼드’함과 ‘세사르 차베즈’함 정비 사업을 잇달아 수주했다. 지난해 4월에는 미국 최대 방산 조선사인 헌팅턴 잉걸스와 선박 생산성 향상 및 첨단 조선 기술 협력을 위한 MOU를 체결했다. 양사는 함정 건조 비용과 납기 개선, 조선소 디지털화, 공정 자동화, 로봇·AI 도입, 생산인력 교육, 기자재 공급망 참여 등을 함께 추진하기로 했다. GE에어로스페이스, L3해리스, 안두릴, ABS 등과의 협력까지 감안하면 HD현대중공업은 미국 현지 조선소를 직접 보유한 한화오션과 달리 미국 방산·기술·선급·기자재 기업을 촘촘히 묶는 네트워크형 전략에 가깝다. 삼성중공업은 급유함과 군수지원함 분야에서 미국 시장 접점을 넓히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제너럴다이내믹스 산하 미국 조선사 나스코와 차세대 군수지원함 기본설계 사업에 참여했고, 미국 비거 마린 그룹과는 미 해군 MRO 사업 협력을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LNG선과 해양플랜트, 자동화 조선소 기술에서 강점을 가진 만큼 전투함보다 지원함과 상선 성격의 군수 분야에서 역할을 찾는 구도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삼성중공업은 전투함 사업을 해온 회사는 아니기 때문에 전투함보다는 급유함이나 군수지원함 쪽에서 역할을 찾고 있다”며 “미국에서는 군수지원함이 전투함과 달리 상선 성격에 가까운 영역으로 분류돼 삼성중공업도 접근 가능한 분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조선사들이 보유한 자동화·로봇 기술도 미국 조선업의 인력 부족 문제를 보완하는 방향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들 세 기업의 전략은 다르다. 한화오션은 필리조선소와 MRO 경험을 앞세운 ‘현지 거점형’이다. HD현대중공업은 미 해군 MRO 실적과 헌팅턴 잉걸스 협력을 기반으로 한 ‘방산 네트워크형’이다. 삼성중공업은 전투함보다 급유함·군수지원함에 초점을 맞춘 ‘비전투 지원함형’ 전략에 가깝다. 결국 관건은 누가 미국의 제도 장벽을 먼저 넘고, 한국식 생산 시스템을 미국 조선 재건 과정에 실제로 이식하느냐다. 마스가가 여는 조선 생태계 확장 수혜는 조선소에만 머물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마스가가 본격화되면 엔진, 전장, 통신체계, 친환경 기자재, 선박관리, MRO 서비스 등으로 파급 효과가 확산될 수 있다. 한화엔진, 한화시스템, HD현대마린솔루션, HD현대마린엔진 등 한화·HD현대 계열 밸류체인뿐 아니라 국내 기자재업체에도 기회가 열릴 수 있다. 다만 넘어야 할 산도 많다. 미국 함정 건조는 법·제도와 보안, 원산지, 노조, 인력 양성, 현지 조달망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RFI가 실제 발주로 이어지려면 미국 내 건조 규정 완화, 현지 조선소 투자, 한국 인력·기술 투입 방식에 대한 정치적 합의가 필요하다. 단순히 “한국이 빨리 지을 수 있다”는 능력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뜻이다. 결국 마스가의 본질은 조선소 투자 경쟁이 아니다. 미국 안보 공급망 재편 속에 한국 조선 생태계가 얼마나 깊이 편입될 수 있느냐의 문제다. 한화오션은 미국 안에서 생산 거점을 확보했고, HD현대중공업은 미국 최대 방산 조선사와 협력망을 구축했으며, 삼성중공업은 지원함·MRO 시장에서 접점을 넓히고 있다. 미국 조선 재건의 첫 실전 무대에서 조선 3사의 승부가 시작됐다.
2026-07-11 09:00:00
-
오찬을 넘어 국정 협력으로, 지금은 대한민국을 재설계할 때다
[경제일보] 이재명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의 오찬은 전·현직 대통령의 예우를 넘어 우리 정치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상징적 자리다. 여권 내부에서는 당 대표 선출을 앞두고 다양한 의견과 노선이 제기되고 있다. 집권 여당에서는 정책 방향과 국정 운영 방식을 둘러싼 토론이 이어지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이 마주한 현실을 생각하면 정치의 중심은 내부 경쟁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 강화에 맞춰져야 한다. 세계는 거대한 전환기에 들어섰다. 생성형 AI는 산업과 일자리, 교육과 행정, 국방과 금융까지 국가 시스템 전반을 바꾸고 있다. 여기에 미·중 전략 경쟁, 중동 정세의 불안,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 공급망 재편, 저출생과 고령화, 지방 소멸 등 복합 위기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과거의 정치 문법만으로는 이러한 도전에 대응하기 어렵다. 이제 대한민국은 부분적인 보수나 미세한 조정보다는 국가 운영 시스템을 시대 변화에 맞게 다시 설계하는 수준의 혁신을 고민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용어가 아니라 내용이다. 국민이 체감하는 성장 전략을 마련하고, AI를 국가 경쟁력의 핵심 축으로 육성하며, 산업과 교육, 행정과 규제를 미래 환경에 맞게 혁신하는 것이 시대적 과제다. 집권 세력도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 선거를 치르는 정당과 국정을 운영하는 집권 세력은 역할이 다르다. 집권 이후에는 지지층의 기대를 존중하는 동시에 국민 전체의 삶을 책임지는 균형감각이 필요하다. 국정 운영은 통합과 협력, 그리고 실용적 해법을 통해 성과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 역시 민주개혁 진영의 중요한 정치적 자산이다. 국정 경험을 가진 전직 대통령의 조언과 협력은 국가적으로도 의미가 있다. 이재명 대통령 또한 전임 정부의 성과와 경험을 존중하면서 새로운 시대에 맞는 정책과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정치적 연속성과 시대적 혁신은 상충하는 가치가 아니라 함께 추구할 수 있는 목표다. 민주당 역시 내부 경쟁을 미래 비전 경쟁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다양한 의견은 민주주의의 힘이지만, 그것이 소모적 갈등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집권당의 책무는 정권의 성공이 아니라 국민의 성공이며, 국정의 안정이 곧 국민의 안정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AI 시대 국가 경쟁은 더 이상 특정 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소프트웨어와 피지컬 AI, 교육 혁신과 규제 개혁, 지역 균형발전과 인재 양성은 하나의 국가 전략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이러한 과제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여당은 물론 사회 각계의 협력이 절실하다. 오늘의 오찬이 단순한 정치 일정으로 끝나지 않기를 기대한다. 국정 운영을 위한 신뢰를 쌓고, 미래를 위한 협력의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지금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과거를 둘러싼 논쟁보다 미래를 향한 공동의 비전이다. 정치는 갈등을 확대하는 기술이 아니라 국가의 역량을 하나로 모으는 지혜여야 한다. 대한민국은 지금 새로운 도약의 문 앞에 서 있다. 정치가 시대의 변화를 읽고 국민을 하나로 모을 때, AI 시대의 국가 경쟁력도 비로소 힘을 얻게 될 것이다.
2026-07-01 15:24:00
-
-
법은 흔들리지 않아야 하고, 국익은 놓쳐서도 안 된다.
[경제일보] 국가의 품격은 이 두 축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에 달려 있다. 최근 방시혁 HYBE 의장을 둘러싼 자본시장법 위반 의혹은 바로 그 시험대 위에 대한민국을 올려놓고 있다. 검찰은 방 의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반려하고 보완수사를 요구했다. 이는 무죄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구속이라는 강제처분을 정당화할 만큼 범죄 소명과 필요성이 현 단계에서 충분하지 않다는 판단이다. 형사사법의 기본은 불구속 수사다. 특히 경제범죄는 대부분 문서와 계약, 회계자료와 내부 보고 체계 속에 흔적이 남는다. 도주 우려나 명백한 증거인멸 가능성이 없다면 구속은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는 원칙은 흔들려서는 안 된다. 의혹의 핵심은 상장 이전 기존 주주들에게 기업공개 계획이 없다고 설명하고 특정 사모펀드에 지분을 넘기게 한 뒤, 이후 상장을 통해 거액의 차익을 실현했느냐는 점이다. 사실이라면 이는 결코 가볍지 않다. 자본시장은 신뢰로 움직인다. 공시와 계약,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이 무너지면 시장은 도박판으로 전락한다. 명성과 성공이 법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누구도 법 위에 설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이 사건을 단순한 한 기업인의 사법 리스크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방시혁이라는 이름은 개인을 넘어 BTS 라는 세계적 문화 자산의 설계자라는 상징성을 가진다. BTS는 더 이상 하나의 아이돌 그룹이 아니다. 그들은 대한민국 문화 주권의 살아 있는 증거이며, K-팝을 넘어 K-드라마, K-시네마, K-푸드, K-뷰티, K-방산까지 이어지는 K시리즈의 심장부다. 2026년은 특별한 해다. 군 복무를 마친 멤버들이 완전체로 복귀하며 세계는 다시 BTS를 기다리고 있다. 팬덤 아미는 단순한 팬클럽이 아니라 국경을 초월한 거대한 문화 공동체다. 서울의 공연장은 물론이고 멕시코, 미국, 베트남, 유럽, 중동까지 공연 유치 경쟁은 이미 외교의 영역이 됐다. 공연 한 번이 관광과 항공, 호텔, 유통, 화장품, 패션, 플랫폼 산업 전체를 흔든다. 이는 단순한 콘서트가 아니라 국가 경제 이벤트다. 실제로 오늘의 외교는 더 이상 조약과 무기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정상회담의 테이블 위에는 반도체와 방산만이 아니라 드라마와 영화, 음악과 음식이 함께 올라가야 한다. 산업은 이해관계를 만들고 문화는 우호를 만든다. 이해관계는 바뀌지만 우호는 오래 남는다. 세계의 많은 정상들이 BTS를 알고, 한국 드라마를 보고, 한국 영화를 이야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히 미·중 전략경쟁, 공급망 재편, 중동 불안, 고유가와 환율 압박 속에서 한국 경제는 새로운 성장 서사를 요구받고 있다. 제조업만으로는 부족하고, 문화만으로도 부족하다. 기술과 감성, 산업과 서사가 함께 가야 한다. 그 접점에 BTS와 K시리즈가 있다. 대한민국의 미래 경쟁력은 공장만이 아니라 감동을 생산하는 능력에도 달려 있다. 그렇다고 국익을 이유로 법 집행을 멈추자는 뜻은 아니다. 그것은 더 위험하다. 법을 선택적으로 적용하는 순간 국익도 무너진다. 진짜 국익은 정의 위에 세워질 때만 지속 가능하다. 그러나 반대로 국익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법 집행 역시 현명하지 않다. 국가는 처벌 기계가 아니다. 법의 목적은 공동체의 안정과 지속 가능성에 있다. 공자는 군자에게 의를 먼저 보라고 했고, 주역은 후덕재물(厚德載物)이라 했다. 두터운 덕으로 만물을 싣는다는 뜻이다. 지도자의 길도, 국가의 길도 마찬가지다. 법을 세우되 나라를 살피고, 원칙을 지키되 미래를 보아야 한다. 보여주기식 강경함은 정의가 아니다. 냉정한 법리와 성숙한 국가 판단이 진짜 정의다. 지금 대한민국은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방시혁 개인의 유무죄를 넘어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국가의 자산을 지키고 어떤 방식으로 정의를 실현할 것인가를 묻고 있다. BTS 완전체의 귀환은 단순한 컴백이 아니다. 그것은 K-시리즈 전체가 다시 세계 중심으로 나아가는 출발점이다. 법정에서 죄는 끝까지 다투어야 한다. 그러나 구속이 반드시 정의는 아니다. 법의 엄정함과 국가 전략은 충돌하는 개념이 아니라 조화되어야 할 가치다. 감정보다 원칙을, 원칙 속에서도 국익을 함께 보는 것. 그것이 지금 대한민국에 필요한 진정한 법치이며, 성숙한 국가 운영이다.
2026-04-26 09:49:08
-
압구정·신반포·목동 재건축 '빅데이'…대형 건설사 '별들의 전쟁' 성사되나
[경제일보] 한강 이남 재건축 시장에서 이른바 ‘별들의 전쟁’이 펼쳐질 조짐이다. 압구정과 반포, 목동 핵심 사업지들이 같은 날 시공사 선정 입찰을 마감하면서 국내 주요 건설사들이 총출동하는 대형 수주전이 개막될 예정이다. 상징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갖춘 사업들이 한꺼번에 맞물리면서 경쟁 구도 형성 여부에 따라 상반기 정비사업 시장의 흐름이 갈릴 것으로 보인다. 10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이날 압구정3구역, 압구정5구역, 신반포19·25차, 목동6단지 재건축 사업의 시공사 선정 입찰이 일제히 마감된다. 강남 핵심 입지에서 대형 사업이 동시에 진행되는 만큼 건설사 간 전략과 경쟁 구도가 한꺼번에 드러날 전망이다. 압구정3구역은 이번 입찰의 최대어로 불린다. 공사비는 약 5조5610억원 규모로 단일 정비사업 가운데서도 손꼽히는 수준이다. 사업은 최고 65층 안팎, 약 5175가구 규모로 계획된 초대형 단지로 한강변 입지와 맞물려 상징성이 크다. 규모와 사업성 모두 뛰어나지만 입찰보증금이 2000억원에 달해 금융 부담도 큰 편이다. 이에 경쟁 입찰보다는 단독 입찰 가능성이 거론되며 현재로서는 현대건설 참여가 유력하게 언급된다. 압구정5구역은 규모 대비 수익성이 높은 사업지로 평가된다. 공사비는 약 1조4960억원이며 사업은 최고 68층, 약 1397가구 규모로 추진된다. 3.3㎡당 공사비가 높은 수준으로 알려지면서 건설사 입장에서는 사업성 확보 측면에서 매력도가 높은 곳이다. 이곳에서는 현대건설과 DL이앤씨 간 경쟁 입찰이 유력한 상황이다. 두 회사 모두 압구정5구역을 핵심 사업지로 보고 수주 준비를 강화하고 있다. 현대건설은 압구정 전역을 하나의 브랜드 타운으로 구축한다는 전략 아래 3·5구역 동시 수주를 노리고 있다. ‘오운 더(OWN THE)’라는 통합 비전을 내세워 설계·브랜드·도시 상징성을 동시에 강화하는 전략이다. 특히 글로벌 설계 협업과 금융 경쟁력을 결합해 ‘프리미엄 주거의 완성형’을 제시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미 압구정2구역을 확보한 만큼 연속 수주를 통해 ‘압구정=현대건설’ 이미지를 굳히겠다는 의도가 읽힌다. 이에 맞서는 DL이앤씨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택했다. 압구정 전체가 아닌 5구역에 전사 역량을 집중하며 승부수를 띄웠다. 세계적 설계·엔지니어링 기업인 아르카디스, 에이럽(ARUP), 도카(DOKA) 등과 협업을 진행하며 기술 경쟁력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신반포19·25차 재건축은 입지 경쟁력이 뛰어난 사업지다. 공사비는 약 4434억원 규모로 계획돼 있다. 반포 한강변 인접 입지라는 점에서 주거 선호도가 높고 희소성도 크다. 규모를 넘어 상징성과 사업성이 동시에 고려되는 사업지로 평가된다. 이 사업지에서는 삼성물산과 포스코이앤씨가 맞붙는다. 양사는 이미 입찰 참여를 공식화하며 경쟁 구도를 형성했다. 이번 대결은 단순한 수주전을 넘어 ‘리턴매치’ 성격이 강하다. 삼성물산은 지난 2024년 부산 촉진2-1구역 재개발 사업에서 패한 경험을 만회해야 하고 포스코이앤씨는 하이엔드 브랜드 ‘오티에르’의 경쟁력을 수주전에서 입증해야 하는 상황이다. 삼성물산은 설계 완성도와 브랜드 경쟁력을 중심으로 접근하고 있으며 포스코이앤씨는 사업 조건과 비용 부담 완화 측면을 함께 고려한 제안을 준비하는 모습이다. 서로 다른 강점을 기반으로 한 경쟁이 전개될 전망이다. 목동6단지 재건축도 같은 날 입찰을 마감하며 시장의 또 다른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공사비는 약 1조2000억원 수준으로, 지하 2층~지상 최고 49층, 14개 동, 총 2173가구 규모로 계획돼 있다. 목동6단지는 강남권 사업과는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목동 전체 재건축의 ‘첫 단추’ 역할을 하는 사업지로 시공사 선정 결과가 향후 나머지 단지 수주전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대형 건설사 다수가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경쟁 여부 역시 주목되는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입찰이 상반기 정비사업 시장의 분수령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핵심 입지 사업지에서의 성과가 브랜드 경쟁력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건설사 간 경쟁 강도도 한층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비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압구정과 신반포, 목동 입찰은 단순한 시공사 선정이 아니라 올해 정비사업 주도권을 가르는 분기점이 될 것이다”며 “경쟁 성립 후 진행될 수주전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느냐에 따라 하반기 분위기는 달라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2026-04-10 08:28:3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