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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지는 KT, 한화생명은 T1"…LCK 우승 향한 4강 대진 확정
[경제일보] 2026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LCK) 플레이오프가 2라운드에 돌입하면서 우승 경쟁 구도가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정규 시즌 1위 젠지는 플레이오프 2라운드 상대로 KT 롤스터를 선택했고, 정규 시즌 2위 한화생명e스포츠는 T1과 맞붙는다. 특히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KT가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엎고 디플러스 기아를 3-0으로 완파하면서 우승 경쟁의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 31일 라이엇 게임즈는 KT 롤스터와 BNK 피어엑스가 플레이-인을 거쳐 LCK 플레이오프에 합류한 가운데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는 T1과 KT가 승리를 거두며 2라운드에 진출했다고 밝혔다. 이에 내달 1일 젠지와 KT, 2일 한화생명e스포츠와 T1의 승자조 2라운드가 열린다. 가장 큰 이변을 몰고 온 KT 롤스터는 이번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고 있다. KT 롤스터는 지난 30일 열린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디플러스 기아를 세트 스코어 3-0으로 제압했다. 경기 전 공개된 승리팀 예상에서 14명의 전문가 가운데 KT를 선택한 전문가는 한 명도 없었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나왔다. KT 롤스터는 1세트에서 디플러스 기아가 선택한 올라프에 트런들로 대응하며 승리를 가져갔다. 2세트에서는 한때 1만 골드 이상 뒤처지며 패색이 짙었지만 원딜 '지우' 정지우의 칼리스타를 앞세워 역전에 성공했다. 3세트에서는 미드 '비디디' 곽보성의 라이즈가 활약하며 경기를 마무리했다. 곽보성은 이 경기에서 LCK 통산 두 번째로 3000킬을 달성했다. KT 롤스터의 상승세는 플레이오프 1라운드만의 결과도 아니다. KT 롤스터는 플레이-인부터 한진 브리온과 풀세트 접전을 거쳐 살아남았다. 이후 디플러스 기아까지 완파하면서 하위 단계에서 올라온 팀 가운데 가장 강한 기세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KT 롤스터를 상대로 정규 시즌 1위 젠지가 선택권을 행사했다. 젠지는 플레이오프 2라운드 상대팀으로 KT를 지목했다. 젠지 입장에서는 상대 전적과 명분을 모두 고려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젠지는 올해 정규 시즌 KT 롤스터를 상대로 3연승을 거뒀고, MSI 대표 선발전에서도 KT 롤스터를 3-0으로 꺾었다. 지난해 월드 챔피언십 4강에서는 KT에 패하면서 결승 진출이 좌절된 만큼 이번 맞대결은 젠지의 복수전으로 분석된다. 상대 전적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데다 T1을 선택할 경우 변수까지 커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KT 롤스터를 고른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KT 롤스터가 디플러스 기아를 3-0으로 꺾으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정규 시즌과 이전 맞대결에서 젠지가 우위를 보였더라도 플레이오프에서 경기력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KT 롤스터가 직접 보여줬기 때문이다. 특히 전문가 예상이 크게 빗나간 만큼 젠지 역시 KT를 단순한 하위 진출팀이 아닌 것으로 평가된다. 반대편에서는 한화생명e스포츠와 T1이 맞붙는다. T1은 지난 29일 BNK 피어엑스를 3-2로 꺾고 2라운드에 진출했다. T1 역시 KT 롤스터와 마찬가지로 한 차례 위기를 넘겼다. 1세트를 가져갔지만 2·3세트를 내주면서 탈락 위기에 몰렸고, 4세트 미드 '페이커' 이상혁의 애니비아 활약으로 승부를 5세트까지 끌고 갔다. 마지막 세트에서는 원딜 '페이즈' 김수환의 바루스가 펜타킬을 기록하며 승리를 확정했다. 문제는 다음 상대인 한화생명이다. 앞서 한화생명은 정규 시즌 2위를 차지한 바 있으며 최근 T1을 상대로 강한 모습을 보여왔다. T1이 LCK컵에서 BNK에 당한 패배를 되갚고 2라운드에 진출했지만 한화생명과의 맞대결에서는 최근 상대 전적의 흐름을 뒤집어야 한다. 한화생명 입장에서도 정규 시즌 상위권 성적을 바탕으로 결승 시리즈 진출에 유리한 고지를 확보할 기회로 평가된다. 결국 이번 플레이오프 2라운드는 정규 시즌 상위권 팀과 이변을 일으키며 올라온 팀의 맞대결로 압축된다. 젠지는 정규 시즌 1위라는 성적을 바탕으로 상대 선택권을 행사했고, 한화생명 역시 2위로 승자조에서 출발한다. 반면 KT와 T1은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각각 다른 방식으로 위기를 넘기며 2라운드에 진출했다. 플레이오프는 승자조와 패자조를 오가는 구조로 진행돼 1라운드에서 패배한 팀에도 기회가 남아 있다. 내달 3일에는 디플러스 기아와 BNK 피어엑스가 패자조에서 맞붙고, 4일 패자조 2라운드, 5일 승자조 3라운드인 결승 직행전, 6일 패자조 3라운드가 이어진다. 최종적으로 살아남은 세 팀이 내달 12일부터 13일까지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KSPO돔에서 열리는 2026 우리은행 LCK 결승 시리즈에 출전한다. 라이엇 게임즈 관계자는 "2026 LCK 우승컵을 들어올릴 주인공을 가리기 위한 초반 여정이 마무리됐다"며 "2026 우리은행 LCK 플레이오프는 내달 1일부터 6일까지 서울시 종로구 치지직 롤파크의 LCK 아레나에서 진행되며 치지직, SOOP 등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생중계된다"고 말했다.
2026-08-31 17:4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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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2차 제재 압박, 한국 기업이 또 희생양 돼선 안 된다
[경제일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이란과 거래하는 국가와 기업을 겨냥한 2차 제재 가능성을 다시 꺼내 들었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24일 이란과 거래를 계속하는 해외 기업과 금융기관이 미국 중심의 금융시스템에서 배제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은 이날 이란의 석유·해운·항공·금·가상자산·기술 분야와 관련된 개인·기업·선박 60곳을 새로 제재했지만, 당장 가장 강력한 2차 제재까지 전면 시행하지는 않았다. 문제는 앞으로다. 미국이 이란과 거래하는 제3국 기업까지 본격적으로 제재하기 시작하면 그 파장은 중동에 그치지 않는다. 달러 결제망과 미국 금융시장에 대한 접근을 무기로 삼는 2차 제재는 사실상 전 세계 기업에 “이란과 미국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는 압박으로 작용한다. 한국 기업도 예외일 수 없다. 한미동맹은 우리 외교·안보의 핵심축이다. 북한 핵 문제와 첨단기술, 공급망, 안보 분야에서 미국과의 협력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국제사회의 대이란 제재 체제에도 책임 있게 동참해야 한다. 그러나 동맹이라는 이유만으로 한국 기업이 예상하지 못한 손실까지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제재의 목적과 동맹국 기업 보호는 별개의 문제다. 미국의 대이란 압박은 이미 국제 에너지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의 교역 상대에 대한 제재를 경고한 뒤 국제유가는 크게 출렁였다. 지난 21일 브렌트유는 배럴당 94달러를 넘어섰고, 이란산 원유 공급 차질과 호르무즈해협 불안이 계속되면서 시장의 변동성도 커졌다. 한국처럼 원유 대부분을 수입하는 국가는 제재 자체보다 그에 따른 국제유가 상승이 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유가가 오르면 정유와 석유화학뿐 아니라 항공·해운·물류·제조업 전반의 비용이 올라간다. 전기·가스요금과 소비자물가에도 시차를 두고 영향을 준다. 대이란 제재가 강화될수록 한국경제가 감당해야 할 간접 비용도 커질 수밖에 없다. 해운업도 위험하다. 이란은 최근 호르무즈해협 통항 문제를 둘러싸고 외국 선박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24일에는 통항 규칙 위반을 이유로 45척의 선박을 제재 대상으로 지정하면서 벌금과 억류, 화물 압류 가능성을 경고했다. 명단에는 한국 해운사와 관련된 선박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2차 제재와 이란의 맞대응이 동시에 강화되면 기업은 양쪽 위험을 모두 떠안는다. 미국 제재를 피하기 위해 이란과 거래를 끊더라도 이미 체결한 계약과 운송 일정에서 손실이 생길 수 있다. 반대로 기존 계약을 이행하다 미국 금융·결제망에서 제재를 받는다면 피해는 훨씬 커진다. 정부가 지금부터 움직여야 하는 이유다. 첫째, 미국과의 사전 협상을 통해 한국 기업에 필요한 예외와 유예를 최대한 확보해야 한다. 과거 대이란 제재에서도 미국은 동맹국이나 특정 거래에 한시적 예외를 인정한 전례가 있다. 이번에도 이미 체결된 계약이나 인도적 물품, 국제 에너지시장의 안정을 위해 필요한 거래 등에 대해서는 충분한 유예기간을 확보해야 한다. 기업에게 어느 날 갑자기 거래를 끊으라고 요구해서는 안 된다. 최소한 계약 정리와 결제 회수, 화물 운송을 마칠 시간을 줘야 한다. 정부가 미국과 협상해야 할 핵심도 바로 이런 현실적인 피해 방지 장치다. 둘째, 기업에 명확한 제재 가이드라인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2차 제재의 가장 큰 문제는 불확실성이다. 어떤 거래가 제재 대상인지, 어느 시점부터 적용되는지, 이란과 직접 거래하지 않고 제3국을 통해 거래하는 경우 어디까지 문제가 되는지 기업이 정확히 알기 어렵다. 특히 중소기업은 미국 제재 규정을 자체적으로 분석하기 어렵다. 정부와 금융당국, 무역기관이 공동으로 기업별 노출도를 점검하고 제재 대상 거래와 허용 거래를 신속하게 안내해야 한다. 제재를 몰라서 위반하는 기업이 나오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 셋째, 금융권의 과도한 위축도 피해야 할 상황이다. 제재가 시작되면 금융기관은 위험을 피하기 위해 실제 제재 대상이 아닌 거래까지 결제를 거부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른바 ‘과잉 준수’다. 기업 입장에서는 합법적인 거래임에도 돈을 받지 못하거나 송금이 막힐 수 있다. 정부는 미국과 협의해 제재 대상과 예외 거래를 명확히 하고 국내 은행에도 일관된 지침을 제공해야 한다. 기업이 제재보다 금융기관의 지나친 위험 회피 때문에 먼저 피해를 보는 일은 방지하는 게 정부의 책무다. 넷째, 에너지와 물류 공급망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 미국과 이란의 갈등이 장기화하면 유가와 해상운임 상승은 일시적 현상이 아닐 수 있다. 미국의 봉쇄와 제재 강화로 이란산 원유 수출이 크게 감소했고 중국 정유사들도 대체 물량 확보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역시 원유 수입선을 다변화하고 전략비축유 운용 계획을 점검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호르무즈해협 통항이 불안해지는 상황에 대비해 대체 운송 경로와 선박 보험, 해운기업 지원책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한미 간 협상의 원칙이 중요하다. 미국은 자국의 안보와 외교 목표를 위해 제재를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도 자국 기업과 국민의 경제적 이익을 지킬 책임이 있다. 동맹국의 정책에 협력하는 것과 우리의 경제적 손실을 아무 조건 없이 감수하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미국 역시 동맹의 부담을 일방적으로 전가해서는 안 된다. 제재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동맹국의 협력이 필요하다. 동맹국 기업에 충분한 설명과 준비기간 없이 제재를 확대하면 미국 정책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만 떨어질 수 있다. 더구나 이번 제재에서 미국이 이란산 원유 거래에 큰 역할을 하는 중국의 주요 금융기관에는 아직 가장 강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과의 충돌을 의식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렇다면 한국 정부도 미국에 분명히 요구할 것은 요구해야 한다. 제재가 필요하다면 기준은 일관돼야 한다. 경제 규모나 협상력에 따라 어떤 국가는 유예하고 동맹국 기업에는 더 엄격한 부담을 지우는 방식이라면 공정성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정부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미국이 구체적인 제재안을 발표한 뒤에야 대책회의를 여는 사후 대응이다. 제재 대상과 시점이 확정되기 전에 산업별 노출도를 파악하고 미국 재무부와 협의해야 한다. 에너지·해운·금융·건설·수출기업의 기존 계약을 전수 점검하고 피해 가능성을 미리 계산해야 한다. 기업에도 대비가 필요하다. 제재 위험이 높은 거래는 계약 단계부터 미국 제재 발동 시 책임과 손실을 어떻게 나눌지 명확히 해야 한다. 결제통화와 거래은행, 선박과 보험사까지 제재 위험을 사전에 점검하는 시스템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미국과 이란의 충돌이 격화될수록 한국에는 외교와 경제가 분리되지 않는다. 안보동맹을 지키면서 에너지 가격을 안정시키고, 미국의 제재를 준수하면서 한국 기업의 피해도 줄여야 한다. 어느 한쪽만 강조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대외경제 환경이 불안할수록 외교의 실력은 선언이 아니라 손실을 얼마나 줄였는지에서 드러난다. 미국의 2차 제재가 현실화한다면 한국도 국제사회와 보조를 맞춰야 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우리 기업이 예측할 수 없는 피해를 떠안게 해서는 안 된다. 정부는 미국의 최종 결정만 기다릴 것이 아니라 예외와 유예, 결제 안전망과 에너지 공급망 대책을 지금부터 협상해야 한다. 동맹은 국익을 포기하는 관계가 아니다. 공동의 안보 목표를 지키면서 서로의 정당한 경제적 이해를 조정하는 관계다. 대이란 제재에서도 그 원칙은 달라질 수 없다. 제재에는 협력하되 한국 기업의 피해는 최소화하는 선제적 외교전이 지금 필요하다.
2026-08-25 10:5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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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글에 낙인 찍나"…AI 워터마크, '투명성'인가 '감시'인가
[경제일보] “내가 직접 쓴 글인데 인공지능(AI)이 일부 손봤다는 이유만으로 AI 글로 분류되는 것 아닌가.” 생성형 AI를 업무와 학업에 활용하는 이용자들 사이에서 이런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글로벌 AI 기업 앤트로픽(Anthropic)이 자사의 AI 서비스 ‘클로드(Claude)’가 생성한 텍스트에 사람이 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식별 패턴을 넣기 시작하면서다. 단순한 기능 업데이트로만 보기 어려운 이유는 이 기술이 앞으로 AI 콘텐츠의 ‘신분증’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AI 생성 여부는 별도의 탐지 프로그램을 통해 추정하는 방식이 중심이었다. 앞으로는 AI가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순간부터 식별 정보가 함께 따라붙는 구조로 바뀔 수 있다. 앤트로픽은 지난 2일부터 새로 출시되는 클로드 모델의 텍스트에 보이지 않는 워터마크를 적용하고 있다. 기존 모델에도 순차적으로 적용할 계획이며, 유럽연합(EU)뿐 아니라 전 세계 서비스에 적용한다. API(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 클로드 코드 등 개발자용 서비스에도 같은 원칙이 적용된다. ◆ 왜 갑자기 AI 글에 ‘도장’을 찍나 출발점은 유럽연합의 ‘AI법(EU AI Act·유럽연합 인공지능법)’이다. EU AI법 제50조는 AI로 생성된 콘텐츠가 사람이나 다른 콘텐츠인 것처럼 오인되지 않도록 AI 생성·변조 콘텐츠를 기계가 식별할 수 있는 방식으로 표시하도록 하는 투명성 의무를 담고 있다. 이 규정은 지난 2일부터 적용되기 시작했다. AI가 만든 콘텐츠가 허위정보나 사칭 등에 악용되는 것을 막고 정보의 출처를 보다 명확하게 하려는 취지다. 다만 EU가 특정한 하나의 ‘워터마크’ 기술을 의무화한 것은 아니다. 워터마크나 메타데이터, 콘텐츠 출처 인증 등 기술적으로 가능한 방법을 활용해 AI 생성 여부를 식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앤트로픽은 이 가운데 텍스트 자체에 보이지 않는 통계적 패턴을 심는 방식을 선택했다. 앤트로픽이 이를 전 세계에 적용한 것은 유럽과 비유럽 지역의 서비스를 별도로 운영하기보다 하나의 모델과 시스템으로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 사람 눈에는 안 보이는데 어떻게 찾나 앤트로픽이 사용하는 방식은 글에 ‘AI 작성’이라는 문구를 붙이는 기존의 표시와 다르다. AI가 문장을 생성할 때 특정 단어나 토큰(인공지능이 문장을 생성할 때 사용하는 최소 단위)의 선택 확률을 미세하게 조정해 통계적인 패턴을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사람 눈에는 일반적인 문장과 차이가 없지만 별도의 탐지 기술을 이용하면 해당 패턴을 찾아낼 수 있다.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SynthID Text(AI가 생성한 텍스트를 식별하는 기술)’와 같은 방식이 대표적이다. AI가 다음 단어를 선택하는 과정에 일정한 패턴을 남겨 생성 여부를 판별하는 방식이다. 다만 이 기술을 ‘완벽한 AI 탐지기’로 봐서는 안 된다. 워터마크가 발견됐다고 해서 글 전체를 AI가 작성했다는 뜻은 아니며, 반대로 워터마크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해서 사람이 100% 작성했다는 의미도 아니다. 앤트로픽 역시 기술의 한계를 인정하고 있다. ◆ “내가 쓴 글인데 왜 AI 글인가” 이용자들의 반발은 바로 이 지점에서 나온다. AI에게 글 전체를 작성하도록 한 것이 아니라 직접 쓴 글의 오탈자를 수정하거나 문장을 다듬고, 번역하거나 일부 표현을 고치는 데 AI를 활용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미국 커뮤니티 사이트 ‘레딧(Reddit)’ 등에서는 앤트로픽의 발표 이후 “AI를 사용했다는 사실과 AI가 글의 저자라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의견이 이어졌다. 일부 유료 이용자는 구독 취소를 거론했고, 실제로 다른 AI 서비스로 옮기겠다는 이용자도 나타났다. 반면 AI 사용 사실을 투명하게 밝히는 것은 오히려 필요한 조치라는 반론도 나온다. 특히 논란이 되는 것은 학교와 직장이다. 대학이 과제물의 AI 사용을 금지하거나 기업이 업무 결과물의 AI 사용 여부를 관리할 경우 워터마크가 새로운 판단 기준으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앤트로픽은 이에 대해 워터마크가 ‘저자’를 증명하는 기술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사람이 작성한 글을 일부만 가볍게 수정하거나 AI가 작성한 글을 사람이 크게 다시 작성하는 경우에는 식별 성능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 “AI 표시”와 “AI 낙인” 사이 문제는 AI 활용 방식이 이미 ‘AI가 쓴 글’과 ‘사람이 쓴 글’로 깔끔하게 나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사람이 아이디어를 내고 AI에게 초안을 만들게 한 뒤 다시 사람이 고칠 수도 있고, 사람이 작성한 글을 AI가 교정할 수도 있다. 번역과 요약, 자료 정리처럼 인간의 작업을 보조하는 용도로 AI를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워터마크 하나만으로 이 과정을 모두 ‘AI 콘텐츠’로 묶어버리면 실제 창작 과정과 다른 판단이 내려질 가능성이 있다. AI 사용 여부와 부정행위 여부, 저작권 침해 여부는 서로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워터마크의 실효성도 논쟁거리다. 가벼운 편집이나 복사·붙여넣기에도 일부 흔적이 남도록 설계됐지만, 대규모 재작성이나 번역 등을 거치면 식별 성능이 떨어질 수 있다. 이미 해외 개발자 커뮤니티에서는 워터마크를 우회하거나 탐지를 어렵게 만드는 방법에 대한 논의도 나타나고 있다. 연구자들 역시 텍스트 워터마크의 견고성과 탐지 정확도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결국 ‘워터마크를 심는 AI’와 ‘워터마크를 지우는 기술’의 경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클로드에서 끝나지 않을 가능성 앤트로픽의 결정은 특정 서비스의 기능 변경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EU AI법의 투명성 의무는 특정 기업이 아니라 해당 규정의 적용을 받는 AI 시스템 전반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EU 집행위원회도 AI 생성 콘텐츠의 표시와 식별을 위한 실천강령을 마련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주요 AI 기업들이 비슷한 기술을 도입할 경우 AI가 만든 콘텐츠에는 생성 과정에서부터 디지털 흔적이 남는 것이 새로운 표준이 될 수 있다. 관건은 그 흔적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다. 학교가 워터마크를 이유로 과제를 일괄적으로 부정행위로 판단하거나 기업이 채용 과정에서 AI 사용 여부만으로 지원자를 평가한다면 기술의 본래 취지와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AI 워터마크 논쟁의 본질은 결국 ‘AI를 표시할 것인가’가 아니다. AI가 어디까지 개입했을 때 그것을 AI 콘텐츠라고 부를 것인가에 있다. AI가 인간의 작업을 대체하는 단계를 넘어 인간과 함께 결과물을 만드는 도구로 자리 잡은 상황에서 ‘AI 사용’과 ‘AI 작성’을 같은 의미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편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는 분명하다. 하지만 식별 기술이 사회적 기준보다 앞서가면 투명성을 위한 표시가 또 다른 낙인이 될 수도 있다. 앞으로 AI 워터마크가 신뢰를 높이는 ‘디지털 출처 표시’로 자리 잡을지, 아니면 AI를 사용하는 사람을 구분하는 새로운 꼬리표가 될지는 기술보다 이를 해석하고 활용하는 사회의 기준에 달려 있다.
2026-08-17 13:5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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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세제, 상식으로 돌아가자
[경제일보] 부동산 세제는 국민의 삶과 가장 밀접하면서도 가장 복잡한 제도다. 집은 거주 공간인 동시에 가계 자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세금이 조금만 바뀌어도 매매와 보유, 증여와 상속 계획이 흔들린다. 그만큼 부동산 세제는 신중하고 일관되게 설계돼야 한다. 정부가 최근 내놓은 세제개편안은 초고가 주택과 비거주 주택의 보유 부담을 높이고, 양도소득세 장기보유특별공제를 실거주 중심으로 손질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실수요자는 보호하되 투기성 보유에는 더 큰 책임을 묻겠다는 취지다. 주택을 실제 거주 목적이 아니라 시세 차익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행위에 적정한 세 부담을 지우겠다는 방향은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세제는 선의만으로 평가받지 않는다. 세 부담이 커졌을 때 시장에 매물이 늘어날지, 오히려 거래가 잠길지 살펴야 한다. 고가 주택 보유자가 세금을 임대료에 전가할 가능성도 따져야 한다. 장기보유 공제를 실거주 중심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거주하지 못한 고령자나 장기 임대사업자, 지방 근무자 등이 과도한 부담을 지는지도 점검해야 한다. 정책은 의도가 아니라 결과로 평가받는다. 정부는 세제를 발표하는 데서 끝낼 것이 아니라 거래량과 매물, 임대료, 지역별 가격 변화를 지속적으로 살피고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이 나타나면 신속히 보완해야 한다. 한국의 부동산 정책은 오랫동안 집값에 따라 세율과 규제를 바꾸는 일을 반복해 왔다. 집값이 오르면 보유세와 양도세를 높이고 대출을 조였다. 거래가 얼어붙으면 세금을 낮추고 규제를 풀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 취득세의 기준이 달라졌고 공제 방식도 수차례 손질됐다. 그 결과 세법은 전문가조차 해석하기 어려울 만큼 복잡해졌다. 국민은 집을 사거나 팔 때마다 세무 상담부터 받아야 했다. 같은 주택을 보유해도 취득 시기와 지역, 보유 기간, 거주 여부에 따라 세금이 크게 달라졌다. 부동산 세제가 조세 원칙보다 정책 목적에 따라 누더기처럼 덧붙여졌기 때문이다. 시장에 가장 나쁜 것은 높은 세금만이 아니다. 앞으로 세금이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이다. 세율이 다소 높더라도 기준이 명확하고 장기간 유지된다면 국민은 자산 계획을 세울 수 있다. 반대로 정부가 집값 움직임에 따라 세금을 수시로 바꾸면 거래자는 결정을 미루고 시장은 얼어붙는다. 부동산은 공급과 수요, 금리와 유동성, 교통과 교육, 일자리와 지역 선호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시장이다. 세금 하나로 가격을 잡을 수 있다는 접근은 현실과 맞지 않는다. 서울과 수도권의 집값 불안은 원하는 지역에 양질의 주택이 부족하고, 일자리와 교육·문화 인프라가 집중돼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보유세를 올린다고 선호 지역의 주택이 새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양도세를 높인다고 수도권 집중이 해소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세 부담이 과도하면 집주인이 매물을 거둬들이거나 증여를 선택해 거래 가능한 주택이 줄 수 있다. 세금으로 수요를 억누르는 동안 공급 대책이 뒤따르지 않으면 가격 불안은 다시 나타날 수밖에 없다. 특히 보유세와 거래세의 균형을 바로잡아야 한다. 한국은 취득세와 양도세 등 거래 과정의 세 부담이 무거운 편이다. 여기에 보유세까지 급격히 높아지면 집을 보유하기도 어렵고 처분하기도 어려운 구조가 된다. 시장의 이동성이 떨어지고 매물이 잠기면 실수요자의 선택지는 오히려 줄어든다. 보유에 적정한 부담을 지우는 대신 정상적인 거래를 가로막는 세금은 낮추는 방향이 바람직하다. 투기성 단기 거래에는 무거운 책임을 묻되 장기 보유자가 주거와 생애 계획에 따라 집을 옮기는 과정까지 막아서는 안 된다. 세금은 시장을 봉쇄하는 장벽이 아니라 자원의 효율적인 이동을 돕는 장치가 돼야 한다. 1가구 1주택자에 대한 보호 원칙도 분명해야 한다. 소득이 없는 고령자가 오랫동안 거주한 집의 가격이 올랐다는 이유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세금을 내게 하는 것은 조세 정의와 거리가 있다. 과세 이연이나 납부 유예, 고령·장기보유 공제 등 현실적인 보완책이 필요하다. 다주택자라고 모두 투기 세력으로 보는 시각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임대주택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장기 임대인과 단기 시세 차익을 노리는 투기 수요는 구분해야 한다. 주택 수만으로 선악을 나누는 과세는 시장 현실을 왜곡하고 임대 공급을 줄일 수 있다. 부동산 정책은 세제 중심에서 종합 처방으로 전환돼야 한다. 도심 재건축과 재개발을 합리적으로 촉진하고, 역세권과 산업 거점에 양질의 주택을 충분히 공급해야 한다. 인허가만 늘리는 것이 아니라 착공과 준공, 실제 입주까지 이어지는 일정을 제시해야 한다. 교통망과 학교, 의료와 돌봄 시설도 주택 공급과 함께 구축해야 한다. 수도권 주택 문제를 해결하려면 지방에 건물만 짓는 것이 아니라 기업과 대학, 문화와 의료가 함께 있는 생활권을 만들어야 한다. 부동산 문제는 결국 국토와 산업, 교육 정책의 문제이기도 하다. 금융정책도 실수요와 투기를 구분해야 한다. 갭투자와 과도한 차입은 엄격히 관리하되 청년과 신혼부부, 생애 최초 구입자의 내 집 마련 기회까지 막아서는 안 된다. 소득과 상환 능력에 따른 대출 원칙을 지키면서도 획일적인 규제로 실수요자를 시장 밖으로 밀어내지 말아야 한다. 좋은 세금은 많이 걷는 세금이 아니다. 국민이 이해할 수 있고 납득할 수 있으며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는 세금이다. 과세 기준은 단순하고 명확해야 하고 비슷한 경제적 능력에는 비슷한 세 부담이 적용돼야 한다. 제도를 바꿀 때는 충분한 예고 기간을 두고 기존 보유자의 신뢰도 보호해야 한다. 부동산 세제를 정치적 메시지로 활용해서도 안 된다. 집을 가진 사람과 갖지 못한 사람, 다주택자와 무주택자를 편 가르는 방식으로는 시장을 안정시킬 수 없다. 조세는 특정 계층을 응징하는 수단이 아니다. 부담 능력에 따라 공공서비스 비용을 공정하게 나누고 시장의 왜곡을 줄이는 제도다. <논어>에는 “정치는 바르게 하는 것”이라는 ‘정자정야(政者正也)’가 나온다. 부동산 정책도 시장을 억지로 끌어내리거나 떠받치는 데 목적을 두어서는 안 된다. 잘못된 제도를 바로잡고 실수요자가 안정적으로 거주하며 정상적인 거래가 이뤄지도록 만드는 것이 정치와 정책의 역할이다.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집값 등락만으로 평가돼서는 안 된다. 국민이 세제를 신뢰할 수 있게 했는지, 실수요자가 안정적으로 집을 마련할 수 있게 했는지, 공급과 거래가 정상적으로 이뤄지는 시장을 만들었는지가 더 중요한 성적표다. 부동산 정책의 목표는 집값을 인위적으로 올리거나 내리는 것이 아니다. 국민이 안정적으로 거주하고 필요한 사람이 합리적인 가격에 집을 사고팔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세금도 이 원칙 위에서 설계돼야 한다. 세금은 집값을 잡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시장을 바로 세우기 위한 수단이다. 부동산도 세금도 정치적 계산이 아니라 기본과 원칙, 상식으로 돌아가야 한다. 예측 가능한 세제와 충분한 공급, 실수요 중심의 금융정책이 함께 갈 때 국민의 주거 안정과 부동산 시장의 정상화도 가능하다.
2026-08-07 14: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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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 "부동산은 최대 과제"…공급·대출·세금 해법 논의
[경제일보] 이재명 대통령이 주재한 부동산정책 국민 대토론회에서 공급·금융·세제 전반의 해법이 논의됐다. 공급 분야에서는 인허가·착공 감소와 비아파트 공급 위축, 정비사업 이주비 대출 문제가 쟁점으로 올랐고 금융 분야에서는 실수요자 지원과 가계부채 관리의 균형이 다뤄졌다. 세제 분야에서는 초고가 1주택과 주택 수 중심 과세 체계 개편 필요성이 부각됐다. 이 대통령은 23일 서울 여의도 KBS별관에서 열린 ‘부동산정책 국민 대토론회’ 모두발언에서 “이 문제는 대한민국의 최대 과제 중 하나”라며 “최대한 많은 분의 의견을 모으고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국민 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점을 언급하며 가격 안정 대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일본의 부동산 버블 붕괴와 장기 침체 사례를 거론하며 한국 역시 부동산 가격 상승 흐름의 정점을 향해 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고 짚었다. 다만 해법은 간단하지 않다고 봤다.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데는 공감대가 있지만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공급할지를 놓고 이해관계가 충돌하기 때문이다. 그린벨트 해제만 해도 주택 공급 확대를 주장하는 쪽과 녹지 훼손을 우려하는 쪽이 맞선다는 설명이다. 조세와 금융 정책도 주요 쟁점으로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조세 제도를 통해 주택 수요와 공급에 영향을 주는 것이 정당한지 논쟁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금융에 대해서는 국민 자원을 바탕으로 작동하는 만큼 누구에게 대출 기회를 줄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주거 목적과 투자·투기 목적을 구분하지 않으면 집값 상승 피해가 국민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취지다. 토론회에서는 공급·금융·세제 분야 전문가 발제가 이어졌다. 공급 분야 발제를 맡은 진미윤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주택공급 병목 해소와 공급 주체 다변화, 규제지역 제도의 합리적 운영을 제안했다. 위축된 신축 공급을 회복하기 위한 금융·세제 선별 지원과 민간 정비사업 활성화, 전문 임대주체 육성, 공공부문의 시장 조성자 역할 확대가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진 교수는 현재 운영 중인 규제지역의 실효성도 다시 살펴야 한다고 했다. 시장 불안에 대응하는 기능은 유지하되 중첩 규제와 국민 불편을 줄이는 방향으로 제도를 손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세제 분야 발제자인 강성훈 한양대 정책학과 교수는 보유세와 양도세의 합리적 개편 방향을 제시했다. 강 교수는 보유세 부담이 주요국과 비교해 적정한지, 과세표준이 시가를 충분히 반영하고 있는지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주택 수가 아니라 주택 가액을 기준으로 세율을 적용하는 방안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초고가 주택의 세 부담도 쟁점으로 제시됐다. 강 교수는 과세 형평성 차원에서 초고가 주택 보유자의 세 부담이 적절한지, 세액공제에 거주 여부를 반영할지 등을 따져봐야 한다고 했다. 양도세와 관련해서는 비거주 주택의 세 부담, 장기보유특별공제의 거주 요건, 초고가 주택 양도세 부담이 핵심 논의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금융 분야에서는 김영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실수요자 지원과 가계부채 관리를 함께 고려한 정책 설계를 제안했다. 김 연구위원은 청년층 지원 프로그램 확대를 검토하되 임차 수요와 매매 수요를 나눠 지원 방식을 다시 짜야 한다고 했다. 전세대출은 실수요 요건을 엄격히 적용해 점진적으로 줄이고 이주비 대출은 일부 규제를 합리화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새로운 금융 규제 방식도 제안했다. 김 연구위원은 고액 대출을 받는 차주에게 거시건전성 관리부담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했다. 대출 자원을 많이 쓰는 차주에게 비용 부담을 지우고, 해당 재원을 주거 취약계층 지원에 활용하자는 구상이다. 본격적인 토론 과정에서는 민간 장기임대주택과 정비사업 이주비 대출 문제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채상욱 커넥티드그라운드 대표는 공공분양, 공공임대, 민간분양 대책은 있지만 민간임대 공급 계획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민간 장기임대주택 사업자를 육성하고 공급자 금융 등 강한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임대료 전가를 줄이면서 공급을 늘릴 수 있다는 주장이다. 양지영 신한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전문위원은 재건축·재개발 과정에서 이주비 대출 어려움이 사업 지연 요인이 되고 있다고 했다. 강남권과 달리 비강남 지역은 기본 이주비 대출만으로는 조합원 이주가 쉽지 않아 정비사업 속도가 늦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단기 공급 해법으로는 비아파트 공급 확대가 거론됐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 원장은 빌라와 오피스텔 등 비아파트 공급을 늘리면 단기적으로 공급 효과를 낼 수 있다고 했다. 동시에 3기 신도시와 태릉골프장, 용산정비창, 과천경마장 등 대형 공급 후보지에 대해서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정례 협의체를 구성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대통령은 토론 과정에서 이른바 ‘똘똘한 한 채’ 문제도 언급했다. 1가구 1주택 보호 원칙이 초고가 주택 보유에 대한 투자 유인을 키운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거주용과 투자·투기용을 구분하지 않은 데서 시장 압력이 커졌다고 보고 초고가 주택 세 부담 수준을 논의해보자고 제안했다. 이날 대토론회는 부동산 정책이 단일 처방으로 풀 수 없는 복합 과제라는 점을 보여줬다. 공급 확대는 필요하지만 입지와 방식, 규제 완화를 둘러싼 갈등이 크고, 금융 완화는 실수요자 지원과 가계부채 관리 사이에서 균형이 필요하다. 세제 개편 역시 실거주 보호와 투기 억제, 조세 저항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정부가 대토론회 이후 어떤 정책 조합을 제시하느냐에 따라 부동산 시장의 방향도 달라질 전망이다.
2026-07-23 14:0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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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라는 이름의 면죄부, 사법정의는 어디에 있었나
[경제일보] 친족상도례라는 말은 어렵다. 한자로 쓰면 더 멀어진다. 그러나 내용은 어렵지 않다. 가족이나 가까운 친족 사이에서 절도, 사기, 횡령, 배임 같은 재산범죄가 벌어졌을 때 국가가 처벌을 삼가거나, 피해자가 고소해야만 처벌 절차로 갈 수 있도록 한 제도다. 법은 오래전부터 가족 안의 돈 문제에 형벌권을 들이대는 일을 조심스러워했다. 가정의 평온을 지키고, 가족 사이의 일을 가족 내부에서 해결하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그 취지를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다. 부모와 자식, 형제자매 사이의 사소한 금전 다툼까지 모두 경찰서와 법정으로 끌고 가는 사회가 건강하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문제는 가족이라는 말이 언제나 따뜻한 울타리로만 작동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가족은 가장 가까운 신뢰의 이름이지만, 범죄자가 그 신뢰를 이용하면 피해자는 가장 늦게 구조된다. 남이 훔치면 절도이고, 남이 속이면 사기인데, 가족이 훔치고 속이면 “집안일”로 밀려나는 순간이 있었다. 법의 이름으로 그런 일이 가능했다. 친족상도례 논란의 본질은 가족 해체가 아니다. 피해자를 법 밖에 세워 둔 제도의 문제다. 피해자가 가족이라는 이유로 재판절차에서 말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가해자가 가족이라는 이유로 형사책임을 피한다면 사법정의는 출발선에서 멈춘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024년 형법 제328조 제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당시 조항은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친족, 동거가족 또는 그 배우자 사이의 권리행사방해죄에 대해 형을 면제하도록 했다. 형법은 절도, 사기, 공갈, 횡령·배임 등 여러 재산범죄에도 제328조를 준용해 왔다. 다시 말해 친족상도례는 권리행사방해죄 한 조항에 머무르지 않고 친족 간 재산범죄 전반에 영향을 미쳐 온 셈이다. 헌재는 해당 조항이 형사피해자의 재판절차진술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헌재 결정문을 보면 친족상도례가 왜 더 이상 옛 논리로 버틸 수 없게 됐는지 알 수 있다. 청구인 측은 친족상도례가 노인이나 장애인 등 약자를 상대로 한 악질적 재산범죄의 면죄부로 기능한다고 주장했다. 법이 가족 내부의 자율 해결을 기대하는 사이, 현실의 피해자는 고립됐다. 가족 안에서 돈을 빼앗긴 사람은 가족 안에서 침묵을 요구받는다. 가해자는 경찰서 앞에서 가족을 말하고, 법정 앞에서 화해를 말한다. 피해자는 생활비, 주거, 간병, 정서적 의존 때문에 끝까지 싸우기 어렵다. 형사사건 현장에서 자주 보는 장면이다. 친족 간 재산범죄는 폭행처럼 상처가 바로 보이지 않는다. 통장, 인감, 위임장, 법인카드, 가족회사, 명의신탁, 생활비 계좌 같은 이름 뒤로 숨어 있다. 처음에는 부탁처럼 시작된다. “가족인데 믿어라”, “내가 관리해 주겠다”, “나중에 정산하자”는 말이 이어진다. 피해자가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계좌가 비어 있거나, 회사 돈이 빠져나갔거나, 명의가 옮겨져 있다. 그때 가해자는 다시 가족을 앞세운다. “고소까지 할 일이냐”는 말이 나온다. 가족의 이름은 한 번은 범행의 도구가 되고, 또 한 번은 책임 회피의 방패가 된다. 방송인 박수홍 씨 사건이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박 씨 친형은 2011년부터 2021년까지 매니지먼트 회사를 운영하면서 회사 자금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았고, 2026년 2월 대법원에서 징역 3년 6개월이 확정됐다. 이 사건은 법인 자금 횡령이 중심이어서 친족상도례가 그대로 적용된 전형적 사건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대중이 이 사건을 통해 본 것은 가족회사, 가족 간 신뢰, 돈 관리, 내부 감시 부재가 맞물릴 때 재산범죄가 얼마나 오래 숨어 있을 수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항소심은 피해 회사가 가족회사로서 내부 감시체계가 취약했고 형제 관계의 신뢰가 악용됐다는 점을 특별가중 요소로 봤다. 국회도 헌재 결정 이후 움직였다. 2025년 12월 31일 공포된 형법 개정으로 과거의 형 면제 조항은 삭제됐다. 개정 형법 제328조는 피해자의 친족이 재산범죄를 저지른 경우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자기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도 고소할 수 있도록 형사소송법상 직계존속 고소 제한을 배제했다. 친족 아닌 공범에게는 친족 특례를 적용하지 않는다는 내용도 남겼다. 가까운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형을 면제받던 시대는 끝났다. 아버지 돈을 자식이 훔쳐도, 형제의 돈을 다른 형제가 빼돌려도, 배우자가 상대방 재산을 횡령해도 이제 “가족이니까 처벌하지 않는다”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피해자가 고소하면 수사와 재판으로 갈 수 있다. 가족 내부의 자율 해결이라는 이름 아래 피해자의 입을 막던 낡은 문은 닫혔다. 그러나 여기서 칼럼을 끝내면 절반만 본 것이다. 형 면제가 사라졌다고 친족 특례의 문제가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개정법은 친족 간 재산범죄를 원칙적으로 친고죄로 정리했다. 친고죄란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검사가 재판에 넘길 수 있는 범죄를 말한다.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한다는 장점이 있다. 가족 사이의 일률적 처벌을 피하고, 진정한 화해가 이뤄진 사건까지 국가가 끝까지 밀어붙이지 않도록 하는 기능도 있다. 하지만 친고죄는 피해자가 자유롭게 고소하고 자유롭게 고소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가족 내부의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노부모가 자식에게 생활을 의존하고 있다면 어떠한가. 장애가 있는 피해자가 재산 관리를 친족에게 맡겨 왔다면 어떠한가. 배우자나 형제가 집안 여론을 동원해 “네가 가족을 감옥 보낼 셈이냐”고 몰아붙이면, 피해자의 고소 취소가 정말 자유로운 결정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형 면제의 시대에는 법이 피해자를 밀어냈고, 친고죄의 시대에는 가족 내부 압박이 피해자를 다시 밀어낼 수 있다. 대법원의 2026년 4월 판단은 이 대목을 생각하게 한다. 부모의 집에서 금고를 들고 나와 현금, 상품권, 귀금속 등을 훔친 혐의로 기소된 사건에서 피해자인 부모가 처벌불원 의사를 표시하자, 대법원은 개정 형법상 친족 간 절도는 친고죄에 해당하고 1심 판결 선고 전 고소가 취소된 이상 공소기각 판단을 했어야 한다는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 판단은 현행법 체계상 자연스럽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 친고죄 사건에서 법원이 공소를 유지할 수는 없다. 다만 이 사건은 개정 이후의 숙제를 그대로 보여준다. 법은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 동시에 그 의사가 가족 내부의 압박, 두려움, 생계 의존, 정서적 굴레 속에서 만들어진 것은 아닌지도 살펴야 한다. 특히 노인과 장애인 피해자는 이 논의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 보건복지부의 2024년 장애인학대 현황에 따르면 전국 장애인권익옹호기관에 접수된 장애인학대 신고는 6031건이었다. 학대로 판정된 사례는 1449건이었다. 학대 피해자 중 발달장애인의 비율은 71.1%였고, 학대 유형 중 경제적 착취는 18.6%를 차지했다. 숫자가 말하는 장면은 냉정하다. 가족 안에서 돌봄을 받아야 할 사람이 오히려 돈과 노동력을 빼앗기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노인학대도 가정 안에서 많이 발생한다. 법제처 생활법령정보는 2025년 학대피해노인이 7973명으로 전년보다 11.2% 증가했다고 정리하고 있다. 노인학대는 신체적 학대만을 뜻하지 않는다. 정서적 학대, 경제적 학대, 방임, 유기도 포함된다. 재산을 관리한다는 명목으로 통장을 가져가고, 기초연금이나 예금을 생활비라는 이름으로 빼 쓰고, 부동산 처분 권한을 넘겨받은 뒤 돌려주지 않는 일도 가족 안에서 벌어진다. 가족은 법보다 가까운 곳에 있다. 그래서 위험할 때 더 무섭다. 타인의 범죄는 경찰에 신고하면 된다. 가족의 범죄는 신고하기 전부터 설명해야 할 것이 많다. 왜 가족을 고소하느냐는 질문을 먼저 받는다. 피해자는 돈을 잃은 사람인데도 가족을 깨뜨린 사람처럼 몰린다. 가해자는 범행을 설명하기보다 관계를 내세운다. “부모 자식 사이”, “형제 사이”, “부부 사이”라는 말이 피해 사실 위에 덮인다. 사법정의가 어려워지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형사법의 목적은 국가가 벌을 주고 끝내는 데만 있지 않다. 죄에 상응하는 책임을 묻고, 피해자의 말을 공적 절차 안으로 들여오며, 다시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경계를 세우는 일도 형사사법의 역할이다. 응보라는 말도 거칠게만 볼 필요가 없다. 응보는 복수가 아니다. 범죄로 무너진 질서에 대해 공동체가 “그 일은 잘못됐다”고 말하는 절차다. 피해자는 그 선언을 통해 비로소 자신이 당한 일이 집안일이나 운명의 문제가 아니라 범죄였다는 확인을 받는다. 가족 안의 재산범죄에서도 그 확인은 필요하다. 친족 특례를 모두 없애자는 말이 아니다. 가족관계에는 회복 가능성이 있고, 형사처벌이 오히려 분쟁을 키우는 사건도 있다. 부모 지갑에서 소액을 가져간 미성년 자녀 사건과, 장애가 있는 친족의 보조금과 예금을 장기간 빼돌린 사건을 같은 눈으로 볼 수는 없다. 술김에 벌어진 일회성 절도와, 가족회사를 이용해 수년간 돈을 빼낸 횡령도 다르다. 법은 차이를 봐야 한다. 과거 친족상도례의 잘못은 그 차이를 보지 않았다는 데 있다. 가까운 친족이라는 이유 하나로 피해 규모, 범행 기간, 피해자의 처벌 의사, 피해자의 취약성, 가해자의 지배관계, 피해 회복 정도를 뒤로 밀었다. 앞으로의 과제도 그 지점에 있다. 수사기관과 법원은 친족 간 재산범죄에서 고소 취소가 접수됐다고 곧바로 “화해”라고 읽어서는 안 된다. 피해자가 독립된 상태에서 의사를 밝혔는지, 가해자와 주거·생계·돌봄 관계로 묶여 있지는 않은지, 피해 회복이 실제로 이뤄졌는지, 다른 가족의 압박이 있었는지 따져야 한다. 노인, 장애인, 질병이 있는 피해자라면 진술 조력, 국선변호인, 피해자 보호명령, 후견제도, 임시 재산관리 장치까지 함께 검토해야 한다. 고소권을 법전에 적어 두는 일과 피해자가 그 권리를 실제로 행사할 수 있게 하는 일은 다르다. 입법도 한 번 더 손봐야 한다. 친고죄 일원화는 헌재 결정 이후 급한 불을 끈 절충안에 가깝다. 친족 간 재산범죄를 모두 일률적으로 친고죄로 묶는 방식이 적절한지도 계속 따져야 한다. 피해액이 크거나 범행 기간이 길거나, 피해자가 노인·장애인 등 취약한 지위에 있거나, 가해자가 재산관리 권한을 이용한 사건이라면 고소 취소만으로 절차가 끝나지 않도록 별도의 예외를 둘 필요가 있다. 가족 내부 해결을 존중하더라도, 가족 내부에서 해결될 수 없는 범죄까지 가족에게 되돌려 보내서는 안 된다. 언론도 이 문제를 연예인 가족 분쟁이나 자극적인 집안싸움으로 소비해선 안 된다. 친족상도례 논란은 유명인의 불행담이 아니라 우리 형사사법이 가족 안의 피해자를 어디까지 보호할 수 있는지 묻는 사건이다. 고령화가 빨라지고 1인 가구와 재혼가정, 사실상 돌봄 가족, 가족회사, 가족 간 재산관리 관계가 복잡해지는 시대다. 예전처럼 “가족끼리 알아서 하라”는 말로 덮을 수 있는 사건은 줄어들고 있다. 가족의 형태가 달라졌는데 법의 감각만 오래된 사진첩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친족상도례의 형 면제 조항은 역사 속으로 물러났다. 늦었지만 필요한 변화였다. 그러나 사법정의는 조항 하나를 고쳤다고 완성되지 않는다. 피해자가 고소할 수 있어야 하고, 고소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하며, 고소를 취소할 때도 그 결정이 자유로운 의사에서 나온 것인지 확인받을 수 있어야 한다. 가족이라는 말이 피해자의 권리를 지우는 순간, 법은 가장 가까운 곳의 약자를 놓친다. 가족의 평온은 범죄의 침묵 위에 세울 수 없다. 진짜 평온은 가해자의 책임을 덮는 데서 오지 않는다. 피해자가 자신이 당한 일을 말할 수 있고, 국가는 그 말을 절차 안에서 듣고, 법원은 관계가 아니라 행위를 기준으로 판단할 때 가족도 사회도 무너지지 않는다. 친족 특례의 시대가 남긴 교훈은 하나다. 가족이라는 이름이 사법정의보다 앞설 수는 없다.
2026-07-09 07:5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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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정치, 파탄의 의회주의… '도(道)'를 잃은 국회에 고함
[경제일보] 대한민국 국회가 길을 잃었다. 갈등은 민주주의의 숙명이지만, 지금 국회에서 벌어지는 모습은 건강한 경쟁이 아니라 정치의 자기 파괴에 가깝다. 대화는 실종되고 타협은 조롱받으며, 상대는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 제거해야 할 적으로 규정된다. 의회는 민의를 수렴하는 광장이 아니라 다수의 힘과 소수의 저항이 충돌하는 전쟁터로 변질되고 있다. 이는 특정 정당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의회민주주의 전체가 맞닥뜨린 심각한 위기다. 최근 국회 원 구성 과정에서 나타난 다수당의 일방적 강행 처리와 입법 독주, 이에 맞선 소수당의 무기력한 저항은 우리 정치가 의회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가치인 대화와 절제, 타협을 잃어버렸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다수는 숫자의 우위를 절대 권력으로 착각하고, 소수는 국정 운영의 동반자가 아니라 발언권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로 전락하고 있다. 협치는 사라지고 힘만 남았다. 숫자가 정의를 대신하고, 권력이 상식을 밀어내는 순간 민주주의는 이미 병들기 시작한다. 특히 필리버스터마저 무력화하려는 시도는 깊은 우려를 자아낸다. 필리버스터는 단순한 시간 끌기가 아니다. 다수결이 놓칠 수 있는 소수의 목소리를 국민에게 끝까지 전달하기 위한 민주주의의 마지막 안전장치다. 토론이 귀찮다고 토론을 없애고, 반대 의견이 불편하다고 침묵을 강요하는 국회라면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다수의 지배일 뿐이다. 효율은 행정의 가치일 수 있지만, 민주주의의 가치는 숙의와 합의에 있다. 역사는 오만한 권력이 오래가지 못했음을 반복해서 증명해 왔다. 성경 잠언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라고 경고한다. 권력은 영원하지 않고 민심은 숫자로 계산되지 않는다. 오늘 절대다수의 의석을 가진 정당도 내일은 국민의 심판 앞에 설 수 있다. 민심은 배를 띄우는 물이기도 하지만, 배를 뒤집는 거센 파도가 되기도 한다. 노자는 『도덕경』 제9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가득 채우고 또 채우는 것은 적당한 때에 멈추는 것만 못하며, 지나치게 날카롭게 갈면 오래 보존할 수 없다." 오늘의 국회는 바로 이 경고를 되새겨야 한다. 다수당은 의석을 끝까지 채우려 하고, 야당은 상대를 겨누는 창끝만 더욱 날카롭게 벼른다. 그러나 지나친 것은 반드시 모자람만 못하다. 힘은 절제될 때 권위가 되고, 권력은 양보할 때 존경을 얻는다. 끝없이 채우려는 욕망은 결국 스스로를 무너뜨린다. 민주주의는 100 대 0의 승부가 아니다. 서로 다른 이해와 가치를 조정하여 국민 전체의 이익을 찾는 과정이다. 51 대 49로 결정되더라도 나머지 49를 존중하는 것이 민주주의이며, 다수는 소수를 품을 때 비로소 정당성을 얻는다. 다수결은 민주주의의 원칙이지만, 다수의 횡포는 민주주의의 적이다. 국회의 존재 이유도 법안을 빨리 처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토론하고 설득하며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내는 데 있다. 토론 없는 국회는 거수기에 불과하고, 협치 없는 의회는 민주주의의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 국민은 국회가 싸우라고 권력을 준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라고 권한을 위임했다. 오늘날 정치권이 가장 크게 잃어버린 것은 상대를 인정하는 마음이다. 정당은 경쟁하지만 국가는 공동체다. 여야는 선거에서는 경쟁자일지라도 국정에서는 동반자여야 한다. 상대를 악으로 규정하는 순간 정치의 본질은 사라지고 적대만 남는다. 소수당 역시 국민이 선택한 헌법기관이다. 그들의 권한을 무력화하는 것은 그들을 지지한 국민의 목소리를 지우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제 국회는 정치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첫째, 여야가 참여하는 상설 협치협의체를 제도화해 원 구성과 주요 법안은 충분한 협의를 거친 뒤 처리하는 관행을 정착시켜야 한다. 둘째, 필리버스터와 상임위원회 토론권 등 소수 의견을 보장하는 제도를 정치적 편의에 따라 훼손해서는 안 된다. 셋째, 다수당은 숫자의 힘보다 책임의 무게를 먼저 생각하고, 소수당 역시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 대안을 제시하는 책임 있는 야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넷째, 국회의원 개개인은 당리당략보다 헌법과 국민을 우선하는 의회주의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 그것이 국민이 국회에 부여한 책무다. 맹자는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이 그 다음이며, 군주는 가볍다(民爲貴 社稷次之 君爲輕)"고 했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이 말은 더욱 절실하다. 국민 위에 정당이 있을 수 없고, 국민 위에 국회도 있을 수 없다.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잠시 위임받은 것일 뿐이다. 국회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은 멀리 있지 않다. 대결보다 대화를, 독주보다 협치를, 승리보다 국민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다. 의회주의는 힘이 아니라 절제에서 완성되고, 민주주의는 다수결이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에서 꽃핀다. 지금 국회가 되찾아야 할 것은 더 많은 권력이 아니라 더 깊은 겸손이며, 더 큰 목소리가 아니라 더 넓은 포용이다. 대한민국 정치는 지금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오만과 독선의 길을 계속 걸을 것인가, 아니면 상식과 협치의 길로 돌아갈 것인가. 역사는 언제나 힘보다 품격을 기억했고, 국민은 언제나 권력보다 책임을 선택했다. 국회는 이제라도 '도(道)'를 회복해야 한다. 그것이 무너져가는 의회주의를 살리고,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미래를 지키는 유일한 길이다.
2026-07-03 16:3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