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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은 늘고 고용효과는 줄었다…성장의 성적표를 바꿀 때
[경제일보] 반도체가 날아오르자 수출이 늘고 기업의 이익도 커졌다. 수출이 한국 경제의 생산과 부가가치에서 차지하는 몫 역시 확대됐다. 하지만 일자리의 움직임은 달랐다. 수출이 만들어내는 경제적 성과는 커졌지만, 같은 금액의 수출이 유발하는 고용은 오히려 줄었다. 한국은행이 21일 발표한 2024년 산업연관표가 보여준 한국 경제의 단면이다. 수출 호황이 곧바로 고용과 가계소득의 증가로 이어진다는 익숙한 성장 공식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숫자는 선명하다. 2024년 국내 생산 가운데 수출이 유발한 비중은 전년 32.7%에서 35.1%로, 부가가치 비중은 25.4%에서 28.2%로 높아졌다. 전 산업의 부가가치율도 41.2%에서 42.0%로 상승했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수출 회복과 수출 공산품의 영업잉여 증가, 수입 원자재 가격 하락 등이 영향을 미쳤다. 반면 수출 10억원당 취업유발계수는 5.4명에서 5.0명으로 떨어졌다. 전 산업 평균도 8.2명에서 7.8명으로 낮아졌다. 수출이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커졌는데, 단위 수요가 만들어내는 일자리의 수는 감소한 것이다. 이는 단순히 경기의 좋고 나쁨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변화다. 한국 경제를 이끄는 산업의 성격 자체가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는 대표적인 자본집약 산업이다. 최첨단 공장 하나를 짓는 데 수십조원이 들어간다. 생산량과 수익성을 좌우하는 것은 대규모 설비와 미세공정, 자동화 기술과 수율이다. 숙련된 엔지니어와 연구개발 인력의 중요성은 크지만, 생산이 늘어난다고 고용이 같은 비율로 증가하지는 않는다.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더 적은 노동으로 더 많은 가치를 생산하는 것은 생산성 향상의 본질이다. 이를 거슬러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자동화를 늦추거나 불필요한 인력을 유지한다면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문제는 이러한 산업이 성장을 주도할수록 기업의 실적과 국민이 체감하는 경기 사이에 간격이 벌어질 수 있다는 데 있다. 수출이 급증해도 신규 채용은 그만큼 늘지 않을 수 있다. 늘어난 이익이 설비투자와 연구개발, 임금과 배당으로 배분되더라도 그 혜택이 모든 산업과 지역에 고르게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반도체 공장의 생산성 향상이 주변 협력업체의 매출과 고용, 가계의 구매력으로 이어지는 경로가 얼마나 튼튼한지가 중요해지는 이유다. 여기서 통계를 정확히 읽을 필요가 있다. 2024년 전체 취업자 수는 2857만6000명으로 전년보다 15만9000명 증가했다. 그러나 주 40시간 근무를 기준으로 환산한 전업환산 취업자는 2596만명으로 2만8000명 감소했다. 한국은행은 건설업과 농림수산업의 고용 감소, 근로시간이 짧은 노인 일자리 증가 등을 배경으로 설명했다. 이를 반도체 호황 때문에 전체 일자리가 줄었다는 뜻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짧은 근로시간이 반드시 나쁜 일자리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상용직 비중은 61.0%에서 61.3%로 높아졌다. 그럼에도 취업자 수와 실제 노동 투입량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고용 인원만으로 노동시장의 변화를 온전히 설명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수출의 고용 기여도 역시 마찬가지다. 2024년 전체 취업자 가운데 수출이 유발한 비중은 20.7%에서 22.2%로 상승했다. 수출이 일자리를 만드는 역할까지 줄어든 것은 아니다. 수출 규모가 커지면서 전체 고용에서 차지하는 몫은 확대됐지만, 수출 10억원당 취업유발 인원은 감소했다. 수출의 양적 성장과 고용 창출의 효율을 구분해야 산업구조의 변화가 제대로 보인다. 이제 산업의 성과를 설명하는 숫자도 더 정교해질 필요가 있다. 그동안 첨단산업의 경쟁력은 수출액과 설비투자 규모, 세계시장 점유율을 중심으로 평가돼 왔다. 반도체 수출이 얼마나 늘었는지, 어느 기업이 수십조원을 투자하는지, 글로벌 시장에서 몇 위를 차지했는지가 산업정책의 성적표를 채웠다. 모두 중요한 지표다. 수출과 투자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고용과 소득을 늘릴 기반도 약해진다. 다만 그것만으로 한 산업의 성과가 국민경제에 얼마나 넓고 깊게 전달됐는지는 알기 어렵다. 가령 수출액이 크게 늘었더라도 핵심 소재와 장비를 대부분 해외에서 들여왔다면 국내에 남는 부가가치는 달라질 수 있다. 반대로 국내 설계와 소재·부품·장비, 소프트웨어 기업이 함께 성장했다면 생산과 고용의 파급효과는 더 넓게 나타날 여지가 있다. 반도체 공장 하나의 경제적 의미도 공장 안에서만 계산할 수 없는 까닭이다. 그 공장이 국내 협력업체의 기술을 얼마나 끌어올렸는지, 연구개발과 전문서비스 분야에 어떤 수요를 만들었는지, 생산성이 높아진 성과가 임금으로 얼마나 연결됐는지를 함께 살펴봐야 한다. AI와 자동화의 확산은 이러한 질문을 더욱 중요하게 만든다. AI는 일부 업무를 대체하는 동시에 새로운 직무와 수요를 만들어낼 수 있다. 어떤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날지는 산업의 특성과 기술 도입 방식, 노동자의 직무전환 능력에 따라 달라진다. 자동화 투자가 늘어난다는 이유만으로 고용이 감소한다고 단정할 수도, 첨단산업이 성장하니 양질의 일자리도 저절로 늘 것이라고 기대할 수도 없다. 고용의 양과 질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생산성 향상의 성과가 어디로 흘러가느냐다. 노동자 한 사람이 더 많은 가치를 만들어내고 그 성과가 임금 상승으로 이어진다면 신규 채용이 크게 늘지 않더라도 가계소득은 개선될 수 있다. 반대로 기업의 부가가치는 커지는데 노동소득이 정체된다면 수출 호황이 소비로 이어지는 힘은 약해질 수 있다. 물론 이번 산업연관표만으로 임금 분배나 가계의 체감경기가 악화했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 산업별 임금과 노동소득분배율, 신규 채용과 고용 유지, 가계 소비를 함께 살펴야 확인할 수 있는 문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수출액 하나로 성장의 성과를 설명하는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 ‘논어’ 학이편에서 유자(有子)는 ‘본립이도생(本立而道生, 근본이 서야 길이 열린다)’고 했다. 경제성장의 근본은 더 많은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생산성에 있다. 다만 그 성과가 기업의 장부에서 끝나지 않고 국민의 소득과 생활로 어떻게 이어지는지까지 살펴야 성장의 모습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반도체의 성공을 깎아내릴 이유는 없다.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한 첨단산업은 한국 경제가 가진 소중한 자산이다. 그 산업의 생산성을 낮춰 일자리를 억지로 늘리는 방식도 지속 가능하지 않다. 하지만 수출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는 소식과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는 국민의 체감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현실은 놓쳐서는 안 된다. 기업의 실적이 좋아졌다는 사실과 국민의 삶이 나아졌다는 판단 사이에는 확인해야 할 과정이 남아 있다. 한국은행의 산업연관표는 그 과정을 들여다볼 출발점이다. 수출이 얼마나 늘었는지뿐 아니라 국내에 얼마의 부가가치를 남겼고, 어떤 일자리를 만들었으며, 생산성 향상이 임금과 소득에 어떻게 반영됐는지 함께 살펴볼 때 성장의 성과를 더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다. 반도체가 높이 날아오른 것은 분명하다. 이제 살펴야 할 것은 그 성장의 힘이 한국 경제의 다른 산업과 노동자, 가계에 얼마나 넓게 닿고 있는가다. 수출은 성장의 출발점이다. 그 성과가 국민의 소득과 일자리로 이어지는 과정까지 보여줄 때 비로소 성장의 성적표가 완성된다.
2026-09-22 1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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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 58년 만의 파업, '회사가 버틸 수 있는 합의' 찾아야
[경제일보] 포스코의 ‘58년 무분규’ 기록이 끝났다. 지난 9일 창사 이후 처음으로 생산현장에서 부분파업이 벌어진 데 이어 16일 오전 7시부터는 닷새간 120시간의 2차 부분파업에 들어갔다. 15일 노사가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았지만 기본급과 성과보상을 둘러싼 간격을 좁히지 못했다. 회사는 대체인력을 투입해 현재 생산에는 차질이 없다고 밝혔다. 파업의 역사성이 눈길을 끌지만 더 무거운 질문은 따로 있다. “앞으로도 충분히 벌고, 투자하고, 고용할 수 있는 회사로 남을 것인가.” 지난 교섭에서 노조는 기본급 7.1% 인상과 격려금 600%, 우리사주 50주, 명절상여금 200% 등을 요구했다. 회사는 기본급 2% 인상, 목표달성 격려금 350만원, 지역사랑상품권 50만원 등을 제시했다. 회사 측은 노조 요구안을 그대로 수용할 경우 큰 재무 부담이 생긴다고 주장하고 있고, 노조는 요구안은 협상을 통해 조정할 수 있는데 사측이 부담만 지나치게 부각한다고 맞서고 있다. 임금뿐 아니라 현장 인력과 안전, 근무환경에 대한 불만도 쟁점이다. 노동자가 회사의 성과를 나누자고 요구하는 것을 탓할 이유는 없다. 쇳물은 고로가 만들지만 좋은 철강은 결국 사람이 만든다. 포항과 광양제철소를 세계적인 생산기지로 키운 데에는 설비와 기술뿐 아니라 수십 년 동안 현장을 지켜온 숙련 노동자의 몫이 있다. 실적이 좋아졌다면 노동자가 그 과실을 공유하는 것은 시장경제의 원리에도 어긋나지 않는다. 올해 2분기 포스코홀딩스의 연결 영업이익은 8190억~8200억원 수준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4%가량 증가했다. 노동자들이 “회사가 벌었는데 왜 우리의 몫은 작냐”고 묻는 배경을 이해할 만하다. 다만 숫자를 한 꺼풀 벗겨보면 상황은 단순하지 않다. 포스코 철강사업 자체의 2분기 영업이익은 2740억원이었다. 전분기보다는 28.6% 늘었지만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는 46.6% 줄었다. 그룹 전체 이익 증가는 이차전지소재의 흑자전환과 에너지·인프라 사업의 호조가 상당 부분 떠받쳤다. ‘포스코그룹이 돈을 잘 번다’는 말과 ‘국내 철강사업의 체력이 충분하다’는 말은 같은 뜻이 아니다. 바깥 환경은 더 거칠다. OECD는 올해 세계 철강산업의 과잉 생산능력이 2025년 6억4000만톤에서 2028년 7억4500만톤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세계 철강수요 증가율은 2030년까지 연평균 0.9% 정도에 머물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중국 철강업체들은 내수 부진 속에서 2025년 사상 최대인 1억3100만톤을 해외시장에 내보냈다. 2020년보다 153% 늘어난 규모다. 싸고 많은 철강이 세계시장으로 쏟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 철강은 여기에 탈탄소라는 두 번째 파도를 동시에 넘어야 한다. 포스코는 최근 광양제철소에 국내 최대 규모의 전기로를 완공했고, 포항에는 2028년 준공을 목표로 연산 30만톤 규모의 수소환원제철 하이렉스(HyREX) 실증설비를 추진하고 있다. 2030년까지 상용화 기술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유럽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와 국내 탄소감축 압력이 커지는 상황에서 미룰 수 없는 투자다. 결국 지금의 임금협상은 몇 퍼센트를 올릴 것인가만의 싸움이어서는 안 된다. 과거의 성과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와 미래의 경쟁력을 어떻게 남길 것인가를 동시에 협상해야 한다. 여기에는 구분이 필요하다. 좋은 실적으로 생긴 성과는 성과급과 일회성 보상을 통해 노동자와 충분히 나눌 수 있다. 회사가 잘 벌었는데 “산업이 어렵다”는 말만 반복하며 노동자의 몫을 지나치게 줄이는 것 역시 정당하지 않다. 반면 기본급처럼 한번 올라가면 경기가 꺾여도 계속 지급해야 하는 고정비는 다르게 봐야 한다. 철강처럼 경기에 민감한 산업에서 호황기의 이익을 기준으로 고정비를 계속 높이면 불황이 왔을 때 결국 구조조정 압력으로 돌아올 수 있다. 성과는 나누되 고정비는 회사가 불황에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 회사도 같은 책임을 져야 한다. 경쟁력이라는 말을 노동자에게 임금 양보를 요구하는 편리한 명분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비용 절감이 필요하다면 경영진과 조직부터 효율성을 증명해야 하고, 노동자가 양보한 몫이 정말 탈탄소 설비와 고부가가치 강재, 안전과 자동화에 투자되는지도 보여줘야 한다. 무엇보다 노동자에게 산업전환의 비용만 떠넘겨서는 안 된다. 전기로와 수소환원제철, AI와 로봇이 확대되면 제철소의 일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줄어드는 직무가 생기고 새로운 직무도 나타날 것이다. 회사가 자동화를 추진하면서 노동자에게 고용불안만 남긴다면 기술혁신은 노사 갈등을 키울 뿐이다. 임금협상 테이블에 그래서 직무전환과 재교육, 숙련인력 재배치, 신규기술 교육, 안전투자까지 올라와야 한다. 노조도 변화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기존 직무와 인력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을 고용안정이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장기적으로 일자리를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 세계 철강업체가 저탄소 생산과 자동화로 원가를 낮추는데 한국 공장만 변화하지 못하면 기업은 국내 생산을 줄이거나 해외 투자를 확대할 수밖에 없다. 지켜야 할 것은 특정 작업 방식이 아니라 좋은 일자리가 계속 존재할 수 있는 회사다. ‘주역’ 계사하전에는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窮則變 變則通 通則久)’라는 구절이 있다. 상황이 다하면 변해야 하고, 변하면 길이 열리며, 그래야 오래간다는 의미다. 지금 한국 철강산업에 이보다 잘 맞는 말도 드물다. 중국의 과잉생산과 보호무역, 탈탄소 전환은 과거의 경영 방식과 노사관계로 버티기 어려운 변화를 만들고 있다. 회사만 변할 수도 없고 노동자에게만 변하라고 요구할 수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파업을 ‘노조의 무리한 요구’ 또는 ‘회사의 임금 억제’라는 단순한 구도로 볼 수 없다. 노사 모두 자신들의 계산서에는 근거가 있다. 노동자는 지난 성과와 숙련의 몫을 묻는다. 회사는 철강사업의 수익성과 앞으로 들어갈 막대한 투자비를 걱정한다. 둘 가운데 하나만 옳다고 할 수 없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누가 더 가져가느냐’의 협상에서 ‘회사를 어떻게 오래 가게 할 것이냐’의 협상으로 테이블을 넓히는 일이다. 기본급은 물가와 생산성, 철강사업의 지속 가능한 수익성을 기준으로 조정하고, 초과이익은 성과급을 통해 더 적극적으로 공유할 수 있다. 대신 노사는 탈탄소·자동화 투자와 연결된 고용·직무전환 계획을 함께 만들 필요가 있다. 경영성과가 좋아지면 노동자의 몫도 커지고, 생산성이 높아지면 그 성과가 다시 노동자에게 돌아오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회사에도 이익이고 노동자에게도 더 오래가는 안전망이다. 포스코의 58년 무분규가 깨진 것 자체를 실패라고 할 필요는 없다. 노조의 파업권은 법이 보장한 권리이고, 갈등을 드러내는 것 또한 노사관계의 한 과정이다. 진짜 실패는 산업의 구조가 바뀌는데도 노사가 과거 방식의 협상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데 있다. 포스코가 지금 지켜야 할 것은 ‘무분규 58년’이라는 기록이 아니다. 노동자에게는 성과를 공정하게 돌려주고, 회사에는 다음 불황과 산업전환을 견딜 체력을 남기는 합의다. 좋은 임금협상은 어느 한쪽이 많이 얻는 합의가 아니다. 노동자도 버틸 수 있고 회사도 버틸 수 있어 다음 협상 때도 함께 앉을 수 있는 합의다. 창사 58년 만의 첫 파업 뒤 포스코 노사가 찾아야 할 답도 결국 거기에 있다.
2026-09-16 1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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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노사, 임금표 너머 '미래 일자리'를 봐야
[경제일보] 현대자동차 노사가 길었던 줄다리기를 일단 멈췄다. 지난 5월 상견례 이후 111일 만이다. 지난 24일부터 이어진 밤샘 교섭 끝에 마련된 잠정합의안에는 월 기본급 10만원 인상, 성과금 400%와 1270만원, 주식 15주, 복지포인트 50만원 등이 담겼다. 내년 하반기 200명, 2028년 300명 등 기술직 500명을 새로 뽑는 방안에도 합의했다. 오는 31일 조합원 찬반투표를 통과하면 올해 임금협상은 마무리된다. 숫자만 놓고 보면 적지 않은 보상이다. 노조는 올해 조합원 1인당 임금 인상 효과를 4084만원 정도로 추산한다. 좋은 성과를 낸 기업이 그 과실을 노동자와 나누는 것은 시장경제에서도 자연스럽다. 숙련된 노동력과 안정적인 노사관계 역시 기업 경쟁력을 만드는 자산이다. 기업의 성과가 주주와 경영진에게만 돌아가고 현장을 지킨 노동자에게 돌아가지 않는다면 지속 가능한 협력도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이번 합의를 ‘얼마를 더 받았느냐’의 문제로만 읽어서는 곤란하다. 현대차 노사가 마주한 진짜 협상은 오히려 이제부터다. 자동차 산업의 판 자체가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교섭 과정에서 노조는 60시간 파업했고, 생산라인 기준 가동 중단 시간은 120시간에 달했다. 지난 21일에는 2016년 이후 10년 만에 하루 8시간 전면파업까지 벌어졌다. 업계는 약 5만5200대가 생산 차질을 빚었고, 이를 판매단가로 환산한 매출 차질 규모가 2조3000억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한다. 이 수치를 실제 영업손실과 동일시할 수는 없지만, 갈등의 비용이 회사와 조합원만이 아니라 협력업체·고객·지역경제로 번졌다는 점은 분명하다. 노동자가 자신의 몫을 요구하는 것은 권리다. 회사가 비용과 경쟁력을 따지는 것도 경영의 책무다. 문제는 두 요구가 해마다 파업을 거친 뒤에야 절충되는 구조다. 임금협상의 승자가 누구인지 가리는 동안 생산이 멈추고 협력업체가 일감을 걱정한다면 노사 모두가 얻은 것보다 잃는 것이 커질 수 있다. 이번 잠정합의에서 그래서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성과금 400%보다 다른 곳에 있다. 현대차 노사는 피지컬 인공지능(AI)과 로보틱스 같은 미래 기술의 도입이 기업 생존에 필수적이라는 데 공감하고, 신사업과 신기술 추진 경과를 투명하게 공유하며 산업 전환에 공동 대응하기로 했다. 제조 경쟁력 강화와 제도 개선에도 함께 나서기로 했다. 임금표 밖으로 노사협상의 시야가 넓어진 것이다. 이 합의가 제대로 실행된다면 올해 임협에서 가장 값진 부분은 바로 여기에 있을 수 있다. 현대차그룹은 이미 자동차 회사를 넘어 로봇과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중심 제조기업으로 이동하고 있다. 현대차는 2028년부터 미국 조지아 메타플랜트에 보스턴다이내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투입할 계획이다. 초기에는 부품 서열작업부터 시작해 검증을 거쳐 조립 등으로 활용 범위를 넓힌다는 구상이다. 노조 역시 이번 교섭 과정에서 AI·자동화 확산에 따른 고용안정을 주요 문제로 제기했다. 이 변화 앞에서는 ‘자동화를 막을 것이냐, 받아들일 것이냐’는 식의 논쟁부터 낡았다. 자동화를 막으면 일자리가 지켜진다는 보장은 없다. 경쟁기업의 생산성이 높아지고 한국 공장의 원가 경쟁력이 떨어지면 생산물량 자체가 해외로 이동할 수 있다. 반대로 로봇을 많이 넣으면 기업이 자동으로 경쟁력을 얻는 것도 아니다. 공정을 이해하고 로봇을 운용하며 데이터를 분석하고 품질을 관리할 숙련된 사람이 없다면 첨단설비도 비싼 쇳덩이에 불과하다. 결국 미래의 노사협상은 ‘사람이냐 로봇이냐’가 아니라 ‘사람이 로봇과 함께 어떤 더 높은 가치를 만들어낼 것이냐’를 다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생산직 500명 신규채용 합의는 반갑다. 청년들에게 질 좋은 제조업 일자리를 열고 세대교체의 숨통을 틔운다는 의미가 있다. 다만 숫자를 채우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된다. 새로 들어올 인력의 직무가 앞으로 10년 뒤에도 필요한 일인지까지 설계해야 한다. 미래 공장에 필요한 생산직의 모습은 과거와 다를 수밖에 없다.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생산공정을 이해하면서 로봇과 자동화설비를 다루고, 설비 데이터를 읽어 고장을 예측하며 품질 문제를 현장에서 해결하는 노동자가 더 중요해질 것이다. 기존 직원에게도 같은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기술이 바뀔 때마다 일자리 감소부터 걱정하게 만들 것이 아니라 재교육과 직무전환을 통해 새로운 공정으로 이동할 사다리를 마련해야 한다. 고용안정의 가장 좋은 방법은 없어지는 일을 억지로 붙들어두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일을 기존 노동자가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임금 문제 역시 이제 생산성과 떼어놓고 논의하기 어렵다. ‘임금이 오르면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단순 공식은 맞지 않는다. 높은 임금을 받는 숙련인력이 높은 생산성과 품질을 만들어낸다면 기업에는 오히려 이익이다. 노동자가 회사의 성장에 기여하고 그 성과를 공정하게 배분받는 구조는 장기적인 신뢰를 만든다. 반면 생산성과 무관하게 고정비만 계속 높아지고, 파업에 따른 생산중단이 반복되며, 해외 공장보다 국내 생산의 예측 가능성이 떨어진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글로벌 기업은 결국 어디에서 생산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지를 계산한다. 국내 일자리를 지키겠다는 선의만으로 국내 생산을 유지하지는 않는다. 현대차 역시 녹록한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니다. 전기차에서는 중국 업체와 가격·기술 경쟁이 격화되고 있고, 미국에서는 현지 생산 확대가 요구된다. 원자재와 공급망, 관세, 환율까지 경영환경을 흔드는 변수도 적지 않다. 회사와 노조가 임금협상에서 생산성을 함께 말해야 하는 까닭이다. 성과급을 생산성과 기계적으로 연동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자동차 품질과 기술개발, 브랜드 가치처럼 단순한 시간당 생산대수로 계산하기 어려운 성과도 많다. 하지만 노사가 ‘성과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를 협상한다면 동시에 ‘다음 성과를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도 협상해야 한다. 생산성이 얼마나 개선됐는지, 품질 경쟁력을 어떻게 높일지, 신기술 도입으로 줄어드는 직무와 늘어나는 직무가 무엇인지, 직원 재교육에는 얼마를 투자할 것인지, 국내 공장의 역할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까지 노사 테이블 위에 올라와야 한다. 협력업체도 빠져서는 안 된다. 현대차 공장이 파업하면 부품업체 생산라인도 영향을 받는다. 완성차 노동자는 성과금을 받지만 협력업체 노동자는 원청의 생산중단으로 일감을 잃는 구조라면 산업 전체의 노사 상생이라 부르기 어렵다. 노사협상의 비용이 공급망의 가장 약한 곳으로 전가되지 않게 하는 책임도 대기업 노사에게 있다. ‘주역’ 계사전에는 ‘이인동심 기리단금(二人同心 其利斷金)’이라는 구절이 있다. ‘두 사람이 마음을 합하면 그 날카로움이 쇠도 끊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해관계가 다른 노사가 언제나 같은 생각을 할 수는 없다. 그럴 필요도 없다. 다만 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과 좋은 일자리를 다음 세대까지 이어가겠다는 목표만큼은 함께할 수 있다. 올해 임협은 아직 잠정합의다. 조합원 투표라는 마지막 절차도 남아 있다. 가결된다면 노사는 길었던 갈등을 수습하고 다시 자동차를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생산라인이 다시 돌아간다고 협상이 끝났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전기차와 로봇, AI가 공장을 바꾸는 속도는 임금협상 주기보다 빠르다. 앞으로의 노사관계는 매년 기본급 몇 만원과 성과금 몇 퍼센트를 놓고 싸우는 데 머물 수 없다. 청년을 어떤 일자리로 뽑고, 기존 숙련인력을 어떤 기술자로 바꾸며, 자동화로 높아진 생산성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가 더 큰 의제가 돼야 한다. 좋은 성과를 나누는 것은 필요하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나눌 성과가 계속 만들어지는 회사를 함께 만드는 일이다. 현대차 노사의 다음 협상 테이블에는 임금표와 함께 생산성, 직무전환, 청년고용, 로봇과 AI의 시간표가 나란히 놓여야 한다. 그것이 노동자의 몫도 지키고 한국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도 지키는 길이다.
2026-08-26 08:4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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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한화·DL, 여수 석화 통합 승인…에틸렌 140만t 감축
[경제일보] 롯데케미칼과 한화솔루션, DL케미칼 등이 참여하는 전남 여수 석유화학산업단지 사업재편 계획이 정부 승인을 받았다. 지난 2월 충남 대산산단에 이어 국내 석유화학산업에서 두 번째로 승인된 사업재편 사례다. 22일 산업통상부와 한국화학산업협회에 따르면 정부는 여천NCC와 롯데케미칼, 한화솔루션, DL케미칼 등 4개사가 제출한 여수산단 석유화학 사업재편 계획을 최종 승인했다. 전국 기준으로는 석유화학 사업재편 2호 프로젝트이며, 여수산단에서는 첫 승인 사례다. 이번 사업재편은 여천NCC 1~3공장 가운데 이미 가동이 중단된 3공장에 이어 2공장을 추가로 폐쇄하고, 남은 1공장과 롯데케미칼 여수공장을 통합해 신설법인을 설립하는 것이 핵심이다. 여천NCC 2·3공장의 연간 에틸렌 생산능력은 각각 92만t과 47만t이다. 두 공장의 가동이 중단되면 여천NCC 생산능력은 기존 연간 228만t에서 약 90만t으로 줄어든다. 롯데케미칼과 한화솔루션, DL케미칼은 통합법인 지분을 각각 3분의 1씩 보유한다. 이번 재편으로 감축되는 에틸렌 생산능력은 연간 약 140만t이다. 중국과 중동의 대규모 증설로 공급과잉이 장기화한 상황에서 중복 설비를 줄이고 생산체계를 효율화하기 위한 조치다. 범용 제품 생산능력을 감축하는 동시에 각사의 경쟁력 있는 사업을 통합해 수익성을 높인다는 구상이다. 다운스트림 부문에서는 DL케미칼의 폴리에틸렌(PE), 한화솔루션의 PE·석유수지, 롯데케미칼의 기초소재 사업 일부가 통합법인에 편입된다. 통합법인은 의료용 저밀도 폴리에틸렌(LDPE)과 자동차·전선용 폴리올레핀엘라스토머(POE) 등 고부가 제품 비중을 확대할 계획이다.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은 여천NCC의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각각 2725억원씩 총 545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한다. 인프라 구축과 고부가 제품 전환에도 2532억원을 투자하는 등 참여 기업의 자구노력 규모는 총 8000억원 수준이다. 이번 감축이 완료되면 대산과 여수에서 업계가 자율적으로 결정한 에틸렌 감산 규모는 총 250만t에 달한다. 앞서 대산산단에서는 롯데케미칼이 연산 110만t 규모의 NCC 설비 가동을 중단하고 HD현대케미칼과 통합법인을 설립하는 사업재편 계획을 승인받았다. 정부는 여수 사업재편을 뒷받침하기 위해 금융·세제·인허가·연구개발(R&D) 등을 포함한 7000억원 이상의 지원 패키지를 마련했다. 채권금융기관은 설비통합과 고부가 전환에 필요한 신규 자금 4500억원을 공급한다. 사업재편 기간인 2029년 말까지 협약 채무의 상환을 유예하고 기존 금융 조건도 유지한다. 무역보험공사는 보험료 할인과 보증 한도 우대 등을 통해 2000억원 규모의 수입보험을 지원한다. 기업 분할과 합병 과정에서 발생하는 취득세와 등록면허세는 75~100% 감면한다. 기업결합 심사 기간은 기존 120일에서 90일로 단축하고, 사업재편 이전에 취득한 인허가도 통합법인이 승계할 수 있도록 했다. 올해까지 수입 나프타와 나프타 제조용 원유에 무관세를 적용해 약 156억원의 원가 절감을 지원한다. 고용유지지원금 요건 완화와 직무 전환 훈련비 지원, 지역투자촉진보조금 한도 상향 등 고용 안정 대책도 추진한다. 정부는 고부가·친환경 분야 전환을 위해 중장기 유망 R&D 3개 과제에 올해부터 248억원을 지원하고 관련 기술의 신성장·원천기술 지정도 추진할 방침이다. 엄찬왕 한국화학산업협회 상근부회장은 “대산에 이어 여수산단의 사업재편까지 승인되면서 국내 석유화학산업 구조개편이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며 “기업의 자구 노력과 함께 정부의 실효성 있는 정책 지원이 지속돼야 한다”고 했다. 다만 국내 3대 석유화학산단 가운데 울산산단은 아직 구체적인 사업재편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일부 기업의 실적 개선으로 감축 유인이 약해진 데다 에쓰오일의 샤힌 프로젝트 가동이 맞물리면서 기업 간 이해관계가 복잡한 상황이다. 약 9조원이 투입된 샤힌 프로젝트는 연간 180만t의 에틸렌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다. 올해 말까지 시운전을 마치고 내년 본격 가동할 예정이어서 기존 NCC 감축과 신규 생산능력 확대가 동시에 진행될 전망이다. 문신학 산업부 차관은 “석유화학산업 구조개편이 성공하려면 무임승차 없이 모든 산단이 참여해야 한다”며 “대산과 여수에 이어 울산 지역 사업재편 논의도 신속히 추진하겠다”고 했다.
2026-07-22 09:4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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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권 쥔 현대차 노조, 성과급 잔치가 먼저인가
[경제일보] 현대차 노조가 파업권을 쥐었다. 올해 임금협상에서 노조는 기본급 인상과 함께 전년도 순이익의 30%를 성과급으로 요구하고 있다. 조합원 투표는 파업 쪽으로 기울었고, 중앙노동위원회 조정도 멈췄다. 현대차 파업은 낯선 뉴스가 아니지만, 올해의 '공기'는 다르다. 기존 임단협이 '기본급 몇 원, 상여금 몇 퍼센트'의 문제였다면, 지금의 쟁점은 이익 배분 공식이다. '순이익의 30%'라는 숫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서 불붙은 성과급 논쟁이 자동차 산업으로 넘어왔다는 신호다. 대기업 노조의 교섭 언어가 임금 인상률에서 이익 배분율로 바뀌고 있다. 노동의 몫을 말하는 일은 정당하다. 현대차의 실적은 현장의 땀 없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울산·아산·전주 공장의 생산라인, 품질을 붙든 숙련공, 납기를 맞춘 협력사, 해외 시장에서 브랜드를 지켜낸 임직원이 없었다면 오늘의 현대차도 없다. 불황기에는 고통 분담을 말하고, 호황기에는 미래 투자를 이유로 성과 공유를 미루는 기업은 신뢰를 얻기 어렵다. 노조가 성과급의 기준과 투명성을 요구하는 배경에는 그런 불신도 있다. 다만, 순이익의 30%를 성과급으로 요구하는 방식이 과연 지속 가능한지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현대차가 서 있는 자리는 '편안한 잔칫상'이 아니다. 전기차 수요는 예상보다 느리게 움직이고, 하이브리드 호황은 언제든 경쟁 심화에 흔들릴 수 있다. 미국 관세와 통상 불확실성은 손익계산서에 이미 부담을 남겼다. 중국 업체들은 가격으로 밀고 들어오고, 테슬라와 글로벌 완성차들은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 자율주행, 로봇, 배터리 내재화 경쟁에 돈을 쏟고 있다. 현대차의 이익은 올해 성과급의 재원인 동시에 다음 10년 생존을 위한 실탄이다. 성과급 논쟁이 불편한 지점도 바로 이 부분이다. 순이익은 금고 속 현금 더미가 아니고, 이 순이익 안에는 미국 공장 투자, 전기차 플랫폼, 배터리 공급망, 소프트웨어 인력, 로봇과 AI, 협력사 지원, 주주환원, 미래차 연구개발이 포함돼 있다. 오늘 나눌 돈은 내일 싸울 돈이기도 하다. 교섭장에서 이 사실이 지워지면, 성과급은 보상이 아니라 미래 투자와의 경쟁이 된다. 올해 현대차 노조 요구에는 AI와 자동화에 대한 불안도 담겨 있다. 로봇은 더 똑똑해지고, 생산 데이터는 더 촘촘해지며, 소프트웨어가 자동차의 가치를 좌우하는 등 완성차 공장은 빠르게 바뀌고 있다. 이에 회사가 AI와 로봇을 도입해 변화를 꾀하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불안감은 고조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와 같은 불안감이 모든 요구의 정당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AI 전환이 불안하다면 필요한 것은 순이익 30%라는 숫자만이 아니라 직무 전환 계획, 재교육 시간의 유급 보장, 자동화 도입 전 고용영향 평가, 생산성 향상분의 합리적 공유, 협력사 노동자 보호, 고령 숙련공의 역할 재설계 등의 요구들이 나왔어야 한다. 미래차 시대의 노사 교섭은 돈의 크기보다 변화의 설계가 더 중요하다. 대기업 성과급 파업이 더 민감한 이유는 그 울림이 공장 담장을 넘기 때문이다. 현대차가 멈추면 1차 협력사만 흔들리는 것이 아니다. 2차·3차 협력사, 물류, 항만, 지역 상권까지 파장이 간다. 대기업 정규직의 성과급 요구가 커질수록 그 성과를 함께 만든 협력업체 노동자의 몫은 어디에 있는지도 묻게 된다. 성과급 잔치가 원청 정규직의 식탁에서 끝나면 산업 생태계의 신뢰는 약해진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현대차 노조도 더 큰 시야를 가져야 한다. 현대차 노조는 한국 노동운동의 상징 중 하나다. 그만큼 힘이 있고, 그만큼 책임도 크다. 순이익 30%를 요구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요구가 청년 구직자와 협력사 노동자, 주주와 소비자, 지역경제와 국가 산업전략 앞에서 어떻게 들릴지도 생각해야 한다. 권리는 고립돼 존재하지 않는다. 권리는 늘 다른 사람의 몫과 마주 선다. 회사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노조의 요구가 거칠다고만 말하기 전에, 성과 배분의 기준을 얼마나 투명하게 설명했는지 돌아봐야 한다. 경영진 보상과 주주환원은 어떻게 정해지고, 임직원 성과급은 어떤 원칙으로 결정되며, 미래 투자를 위해 얼마를 남겨야 하는지 숫자로 말해야 한다. “어렵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현대차는 이미 세계적 기업이다. 세계적 기업이라면 보상 체계도 세계적 설득력을 가져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서로를 이기는 협상이 아니다. 파업권은 압박 수단일 수 있지만, 그 자체가 성과는 아니다. 실제 파업이 벌어지면 노조는 힘을 보여줄 수 있고, 회사는 원칙을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생산 차질과 브랜드 훼손, 협력사 부담과 고객 신뢰의 균열은 모두의 장부에 남는다. 파업 뒤에 남는 것은 승자의 깃발이 아니라 손실의 명세서일 가능성이 크다. 삼성전자 노사 합의 이후 대기업 노조들은 성과급의 새 기준을 찾고 있다. 이해할 수 있는 흐름이다. 반도체 호황의 과실을 본 노동자들이 보상을 요구하고, 자동차와 조선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산업 호황을 근거로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것은 자연스럽다. 다만 산업마다 체질이 다르고, 이익의 변동성도 다르며, 투자 사이클도 다르다. 삼성의 산식이 현대차의 산식이 될 수 없고, 반도체의 성과급 공식이 자동차와 조선의 표준이 될 수도 없다. 성과는 나눠야 한다. 그것이 시장경제의 신뢰다. 하지만 미래까지 나눠 먹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산업의 상식이다. 이 두 문장 사이의 균형을 찾는 것이 올해 현대차 교섭의 본질이다. 현대차는 지금 단순한 임금협상장에 서 있지 않다. 전기차 캐즘, 중국차 공세, 미국 통상 압박, AI와 로봇 전환, 고령화와 정년 연장 요구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길목에 서 있다. 이런 때 성과급 논쟁이 모든 의제를 삼켜버리면 가장 중요한 질문이 사라진다. 현대차는 다음 10년에도 세계 시장에서 이길 수 있는가. 그 승리 안에 노동자의 자리는 어떻게 보장되는가. 노조는 파업권을 얻었다. 이제 더 어려운 선택이 남았다. 그 권리를 실제 파업으로 쓸 것인가, 아니면 더 나은 합의를 끌어내는 마지막 압박으로 남길 것인가. 회사도 선택해야 한다. 버티기로 시간을 살 것인가, 아니면 투명한 성과 배분과 미래 전환 계획을 내놓을 것인가. 현대차의 성과급 논쟁은 돈의 문제가 맞지만, 돈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국 제조업이 호황을 다루는 방식, 노동이 기술 전환을 받아들이는 방식, 기업이 성과와 미래를 동시에 설명하는 방식의 문제다. 성과급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다. 성과급만으로 미래를 설명할 수 없다는 말이다. 파업권을 쥔 현대차 노조 앞에 놓인 것은 잔칫상이 아니라 갈림길이다. 성과를 나누되 투자의 숨통은 남기는 길, 자동화의 불안을 인정하되 변화 자체를 막지 않는 길, 대기업 정규직의 몫을 키우되 협력사와 미래세대의 몫을 지우지 않는 길이 필요하다. 그 길을 찾지 못하면 이번 파업권 확보는 노조의 힘을 보여준 장면으로는 남을 수 있다. 그러나 한국 자동차 산업의 품격을 높인 장면으로 기억되기는 어렵다. 현대차 노사 모두가 그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아직 늦지 않았다. 파업권을 얻은 지금이야말로 파업을 피할 마지막 기회다.
2026-06-26 08:5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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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 연장과 청년 고용의 정면충돌, 사회적 대타협이 시급하다
[경제일보] 정년 65세 논의가 다시 국회와 노사정의 의제로 올라왔다. 더불어민주당 정년연장특별위원회는 현행 60세인 법정 정년을 2029년부터 단계적으로 올려 2037년 65세에 이르게 하는 방안과 퇴직 후 재고용 제도를 함께 검토하고 있다. 아직 최종 합의안은 아니다. 그러나 정년과 연금 수급 연령의 간극을 더는 방치하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에는 사회적 공감대가 넓어지고 있다. 현행 법정 정년은 60세 이상이다. 반면 1969년 이후 출생자는 65세부터 국민연금 노령연금을 받는다. 직장을 떠난 뒤 연금이 나오기까지 5년을 견뎌야 하는 세대가 생겼다는 뜻이다. 퇴직금과 개인연금으로 메우라는 식으로 넘길 수 있는 간격이 아니다. 주택담보대출과 자녀 지원, 부모 부양을 거친 뒤 노후를 준비해야 하는 세대에게 60세 이후의 소득 단절은 생활 자체를 흔드는 변수다. 정년 연장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을 기존 일자리의 혜택을 더 누리려는 집단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생산현장과 기술직, 영업과 관리 업무에는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숙련이 있다. 인구 감소로 일할 사람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건강과 능력이 있는 근로자를 나이만으로 노동시장 밖으로 밀어내는 방식도 한계에 닿고 있다. 고령층의 계속고용은 노후소득 보장과 인력 활용이라는 두 과제를 함께 안고 있다. 청년층이 바라보는 현실은 다르다. 대기업과 공공기관, 금융회사 등 안정된 일자리의 채용문은 좁아졌다. 공개채용은 줄고 경력직 중심 채용은 늘었다. 학업을 마친 뒤 첫 직장을 구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길어지고, 취업준비와 단기 일자리를 오가는 청년도 많다. 지난 5월 청년층 고용률은 43.8%로 1년 전보다 2.4%포인트 낮아졌고, 실업률은 7.2%로 0.6%포인트 높아졌다. 청년에게 정년 연장은 자신의 취업 순서가 더 뒤로 밀릴 수 있다는 소식으로 들릴 만하다. 세대 갈등으로만 치부할 일이 아니다. 60세 정년 의무화의 영향을 분석한 한국개발연구원 연구는 민간기업에서 정년 연장의 혜택을 받는 고령 근로자가 1명 늘 때 청년 고용이 약 0.2명 감소한 것으로 추정했다. 대규모 사업장과 고용보호가 강한 업종, 기존 정년이 낮았던 사업체에서 그 영향이 더 크게 나타났다. 기업이 인건비와 정원을 조정할 때 해고 대신 신규 채용을 줄이는 선택을 한다면, 정년 연장은 청년에게 채용 감소로 돌아갈 수 있다. 그렇다고 고령층의 일자리를 줄여 청년 채용을 늘리자는 결론도 현실성이 없다. 업종에 따라 고령 근로자의 경험과 청년의 기술 적응력이 결합할 때 생산성이 높아질 수 있다. 인력난을 겪는 중소기업에는 숙련 인력의 계속고용이 경영의 숨통을 틔울 수도 있다. 공공부문에서 청년 의무고용과 임금 조정을 병행한 경우에는 고령층 고용 증가가 청년 고용 감소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분석도 있다. 정년 연장 자체보다 이를 어떤 조건 아래 시행하느냐가 관건이라는 뜻이다. 정년 65세를 추진하려면 청년 채용을 함께 보장하는 약속이 필요하다. 정년 연장의 혜택이 큰 대기업과 공공기관은 단계별 청년 신규채용 계획을 노사 협의에 담고, 그 이행 결과를 공개해야 한다. 고령 근로자의 계속고용을 지원하는 세제와 재정 지원도 청년 채용 유지, 직무훈련 확대, 인턴의 정규직 전환과 연동할 필요가 있다. 정년은 연장됐는데 청년 채용은 줄어드는 상황을 막을 장치가 있어야 한다. 임금체계 개편도 피할 수 없다.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가파르게 오르는 연공급 체계를 그대로 둔 채 정년만 늘리면 기업은 신규 채용보다 기존 인력 유지에 더 많은 비용을 쓰게 된다. 그렇다고 나이를 이유로 임금을 일방적으로 깎는 방식은 갈등만 키운다. 맡은 일의 난도와 책임, 숙련도와 성과를 반영하는 보상체계로 옮겨 가야 한다. 고령 근로자에게는 기술 전수와 품질 관리, 현장 교육처럼 경험을 살릴 수 있는 업무를 맡기고, 청년에게는 새 업무와 승진의 기회를 넓히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중소기업에는 대기업과 같은 처방을 들이밀 수 없다. 인력과 자금 여력이 부족한 사업장에 획일적 정년 연장을 요구하면 조기퇴직과 외주화, 비정규직 확대를 부를 우려가 있다. 정부는 중소기업의 임금 부담과 직무 전환 비용을 지원하되, 청년 채용과 숙련 전수 프로그램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 고령 근로자의 계속고용이 인력난 해소로 이어지는 곳도 있고, 경영 부담으로 작용하는 곳도 있다는 점을 제도에 반영해야 한다. 과도기 대책도 서둘러야 한다. 2037년 65세라는 장기 목표만 내세우고 그 사이 60세 정년을 맞는 세대의 소득 공백을 외면하면 또 다른 불공정이 생긴다. 정년 상향 속도와 재고용 의무 시점,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함께 맞춰야 한다. 제도 전환기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는 5년의 소득 공백을 떠안고, 누군가는 그 부담을 피하는 일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 청년에게 기다리라고만 할 수도 없고, 고령층에게 일터를 비우라고만 할 수도 없다. 정년 연장 논의는 한 세대의 고용을 지키기 위한 법률 개정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고령층의 소득 공백을 줄이고 청년의 첫 일자리 기회를 지키며, 기업이 감당할 수 있는 임금과 직무 체계를 만드는 일까지 함께 풀어야 한다. 정년 65세를 둘러싼 논쟁의 기준은 퇴직 연령을 몇 살로 높였느냐가 되어서는 안 된다. 고령 근로자가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길을 열면서도 청년의 출발선이 더 뒤로 밀리지 않았는지를 따져야 한다. 그 조건을 갖춘 합의라야 세대 갈등을 줄이는 제도 개편으로 남을 수 있다.
2026-06-22 09: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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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의 정년 연장 청구서, 청년 일자리의 답도 담겼나
[경제일보] 정년 연장 논의가 다시 국회 문턱에 섰다. 노동계는 법정 정년을 60세에서 65세로 올리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이 65세까지 밀려나는 상황에서 60세 정년은 은퇴자에게 최대 5년의 소득 공백을 남긴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가 이미 초고령사회에 들어섰고, 노후 소득 기반이 취약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문제 제기를 가볍게 넘길 수는 없다. 그러나 정년 연장 요구가 정당성을 얻으려면 그 청구서에는 빠진 항목이 없어야 한다. 고령층의 생계 불안만 적고 청년 일자리의 대책을 비워둔 채 국회에 법부터 만들라고 압박한다면 그것은 사회적 합의라기보다 한쪽의 요구를 입법 문장으로 옮기는 일에 가까워진다. 정년 연장은 고령 근로자에게는 소득 공백을 줄이는 안전판일 수 있지만, 청년들에게는 닫힌 취업문 앞에 또 하나의 자물쇠가 걸리는 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소득 공백의 현실, 그러나 비어 있는 청년 대책 고령층의 현실은 엄연하다. 60세에 회사를 떠난 뒤 국민연금을 받을 때까지 버텨야 하는 기간이 길어졌다. 은퇴 후에도 생활비는 줄지 않고, 주거비와 의료비 부담은 남아 있다. 60대 초반을 노동시장에서 완전히 물러날 나이로 보기도 어렵다. 건강수명은 길어졌고, 숙련 인력을 더 오래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설득력이 있다. 정년 연장을 세대 이기주의로만 몰아붙일 수 없는 이유다. 그렇다고 법정 정년 숫자만 60에서 65로 바꾼다고 문제가 풀리지는 않는다. 정년 연장은 누군가의 퇴직 시점을 늦추는 제도다. 기업의 인건비 총량과 정원이 그대로인 상황에서는 그 부담이 신규 채용 축소로 옮겨갈 수 있다. 특히 청년들이 선호하는 대기업, 공기업, 금융권, 공공기관일수록 정년 연장의 혜택은 기존 정규직에게 집중되고, 채용 감소의 부담은 취업 준비생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청년들이 답답해하는 지점이 여기에 있다. 이미 청년들은 입시 경쟁, 취업 경쟁, 주거 경쟁을 거쳐왔다. 좋은 일자리는 줄고, 채용 문은 좁아졌고, 서울 집값은 월급만으로 접근하기 어렵다. 부모 세대가 올라탔던 성장의 사다리는 희미해졌는데, 이제는 그 사다리 위쪽에 있는 이들의 체류 기간까지 더 늘리겠다는 말로 들린다. “너희도 나중에 나이 들면 혜택을 본다”는 설명은 지금 취업 문 앞에 서 있는 청년들에게 위로가 되기 어렵다. 그들에게 문제는 30년 뒤의 정년이 아니라 올해의 채용 공고다. 노동계는 이 불편한 질문에 답해야 한다. 65세 정년 연장을 요구하면서 청년 채용 축소 가능성에는 어떤 대책을 내놓을 것인가. 연공형 임금체계를 그대로 두고 정년만 늘리자는 것인가. 임금피크제, 직무 재설계, 근로시간 조정, 신규 채용 유지, 세대 간 고용 배분 문제를 함께 논의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 질문을 피한 채 정년 연장만 입법하라고 요구한다면 그것은 개혁안이 아니라 기득권의 연장 신청서로 읽힐 수밖에 없다. 정년의 혜택은 모두에게 같지 않다 한국 노동시장의 모순은 모두에게 같은 정년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법정 정년의 보호를 실제로 누리는 사람은 안정된 직장에 오래 남아 있는 근로자들이다. 중소기업 근로자, 비정규직, 플랫폼 노동자, 영세 자영업자에게 60세 정년이라는 말은 종종 남의 회사 이야기다. 이들에게는 65세 정년보다 다음 계약 연장, 다음 달 매출, 내년 고용 유지가 더 절박하다. 정년 연장 입법의 직접 수혜자가 노동시장 내부에서도 비교적 강한 위치에 있는 집단으로 쏠릴 수 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 논쟁은 단순한 노년 대 청년의 감정싸움이 아니다. 이미 안정된 자리를 가진 사람과 그 자리에 들어가려는 사람 사이의 충돌이다. 정년 연장 논의에서 가장 약한 사람은 반드시 60대 정규직만은 아니다. 아직 회사 문턱에도 들어서지 못한 청년, 계약 갱신을 기다리는 비정규직, 중소기업에서 정년이라는 말을 체감하지 못하는 근로자도 노동시장 안팎의 약자다. 조직된 노동의 목소리가 크다는 이유로 이들의 불안이 지워져서는 안 된다. 위쪽이 오래 머물면 아래쪽은 늦어진다 법정 정년의 숫자를 바꾸는 순간 인사·임금·승진·채용 질서가 함께 흔들린다. 부장과 차장의 체류 기간이 늘어나면 대리와 사원의 승진은 늦어진다. 정원이 묶인 조직에서는 신규 채용이 줄어든다. 공공기관에서는 청년 채용 확대를 말하면서 내부 인력의 퇴직은 늦추는 모순이 생길 수 있다. 민간기업은 인건비 부담을 이유로 경력직 중심 채용이나 자동화 투자로 대응할 수 있다. 그 결과가 다시 청년에게 돌아간다면 정년 연장은 세대 통합이 아니라 갈등을 법으로 굳히는 일이 된다. 이미 60세 정년 의무화 이후에도 비슷한 경고가 나왔다. 고령층 고용은 늘었지만 청년층 고용이 줄었다는 분석이 있었다. 물론 고령자와 청년이 늘 같은 일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청년들이 선호하는 양질의 일자리, 정원이 제한된 일자리, 승진 사다리가 있는 일자리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위쪽의 체류 기간이 늘어나면 아래쪽의 진입과 이동은 늦어진다. 노동계가 이 대목을 불편해한다고 해서 현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청년 일자리 없는 정년 연장은 미봉이다 정년 연장이 필요하다면 그 방식은 훨씬 정교해야 한다. 연금 수급 연령과 정년 사이의 간극을 줄이는 것은 필요하지만, 일률적 65세 정년 의무화가 유일한 답일 수는 없다. 퇴직 후 재고용, 계속고용, 시간제 전환, 직무 전환, 임금 조정이 함께 검토돼야 한다. 고령층에게 일할 기회를 주되 기업의 부담을 조정하고, 청년에게는 채용 통로를 남겨야 한다. 어느 한쪽의 고통을 다른 한쪽에게 떠넘기는 방식으로는 버틸 수 없다. 임금체계 개편도 피할 수 없다. 연공급이 유지되는 상태에서 정년만 늘리면 기업 부담은 커지고 청년 채용 여력은 줄어든다. 고령 근로자의 숙련을 인정하되 직무와 성과, 근로시간에 맞는 임금 조정이 병행돼야 한다. 노동계가 임금체계 개편을 무조건 공격으로만 받아들이면 정년 연장 논의는 국민적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정년은 늘리고 임금체계는 그대로 두자는 주장은 결국 비용 부담을 기업과 청년에게 넘기는 말로 들릴 수밖에 없다. 청년 채용을 지키는 장치도 필요하다. 정년 연장 혜택을 받는 기업에는 신규 채용 유지 의무나 청년 채용 확대 유인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 공공기관과 대기업에는 더 엄격한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 공공기관이 청년 채용 확대를 말하면서 정작 내부 정년 연장으로 신규 채용 여력을 줄인다면 청년들은 그 말을 믿기 어렵다. 청년 일자리를 줄이지 않는 정년 연장이어야 사회적 합의가 가능하다. 정년 연장 논의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태도는 한쪽의 고통만 말하는 것이다. 고령층의 소득 공백만 말하면 청년의 고용 공백이 지워진다. 청년의 분노만 말하면 은퇴자의 생계 불안이 가려진다.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은 이 균형을 잡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입법 논의는 표 계산과 조직의 압력에 흔들리기 쉽다. 고령층 유권자는 많고, 조직 노동은 목소리가 크다. 반면 청년 구직자는 흩어져 있고, 아직 직장 안의 교섭권도 없다. 국회가 누구의 목소리를 더 크게 들을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정년 연장 논의는 더 엄격해야 한다. 강한 조직을 가진 노동계의 요구가 곧 사회적 약자의 요구로 등치돼서는 안 된다. 노동시장의 약자는 안정된 대기업 정규직만이 아니다. 취업준비생, 계약직 청년, 중소기업 근로자, 경력 단절자, 플랫폼 노동자도 노동시장 안팎의 약자다. 정년 연장 입법이 이들의 몫을 줄이는 방식으로 설계된다면 그 법은 보호가 아니라 배제의 또 다른 이름이 된다. 노동계가 진정으로 일할 권리를 말하려면 청년의 일할 권리도 함께 말해야 한다. 60대의 소득 공백을 메우기 위해 20대의 채용 공백을 키우는 방식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정년 연장이 필요하다면 그 부담을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나눌 것인지까지 답해야 한다. 그 답 없이 국회에 법부터 만들라고 압박하는 것은 책임 있는 사회적 대화가 아니다. 청년들은 이미 많은 것을 양보해왔다. 더 오래 공부했고, 더 늦게 취업했고, 더 늦게 결혼하고, 더 늦게 집을 마련하거나 아예 포기했다. 그런데도 사회는 청년들에게 또 기다리라고 말한다. 앞선 세대가 더 오래 일해야 하니 너희의 차례는 조금 더 뒤로 밀릴 수 있다고 말한다. 그 말을 정책이라고 부르려면 최소한의 공정성이 있어야 한다. 청년 일자리 대책 없는 정년 연장 입법으로는 그 공정성을 설명할 수 없다. 정년 연장은 피할 수 없는 숙제일 수 있다. 그러나 숙제라고 해서 아무렇게나 제출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노동계의 청구서에는 고령층의 생계 불안은 적혀 있지만 청년의 답답함은 충분히 적혀 있지 않다. 국회가 그 청구서를 그대로 받아 적는다면 청년들은 다시 확인하게 될 것이다. 이 사회가 청년에게 요구하는 것은 참여가 아니라 대기이고, 공정이 아니라 순번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정년 65세 논의가 세대 전쟁으로 가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질문을 바꿔야 한다. 몇 살까지 일하게 할 것인가만 물을 일이 아니다. 누가 그 비용을 부담할 것인가, 청년 채용은 어떻게 지킬 것인가, 노동시장 밖의 고령층은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임금체계는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함께 물어야 한다.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정년 연장 입법은 개혁이 아니라 미봉이다. 고령층의 노후를 지키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 이름으로 청년의 출발선을 더 뒤로 밀어서는 안 된다. 정년 연장이 필요하다면 청년 일자리의 답까지 함께 내놓아야 한다. 그것이 빠진 입법은 사회적 합의가 아니라 힘 있는 쪽의 요구를 법률 문장으로 옮기는 일에 그칠 수 있다.
2026-06-17 07:5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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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산업 수도' 외치는 후보들…표심 가를 '실행력'
[경제일보] 6·3 지방선거가 막판으로 접어들면서 광역단체장 선거의 중심 의제는 복지와 교통을 넘어 지역 산업의 생존전략으로 확장되고 있다. 경기에서는 반도체, 경남에서는 우주항공·조선, 울산에서는 자동차·석유화학의 인공지능 전환, 충남에서는 디스플레이·철강·제조업의 AI 접목, 전북에서는 새만금 미래산업 벨트가 승부처로 떠올랐다. 특히 후보마다 ‘미래산업 수도’를 강조하고 있는 가운데 유권자들의 시선은 실제 투자 규모와 기업 유치 가능성, 인프라(전력·용수·부지) 및 전문인력 확보, 규제 권한 등 누가 더 구체적인 실행력을 갖추었느냐에 쏠리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산업 공약이 커진 배경은 지역경제가 더 이상 중앙정부 예산 배분만으로 버티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반도체와 이차전지, 우주항공, 조선, 석유화학, 철강 같은 전략산업은 모두 국가 경쟁력의 축이지만, 실제 공장과 항만, 산단과 주거지는 지방정부 관할 안에 있다. 중앙정부가 큰 방향을 잡아도 인허가, 산단 조성, 도로·철도 연결, 인재 정착, 민원 조정은 광역단체장의 실행력에 좌우되고 있는 상황이다. 경기도 반도체 클러스터, 승패 가를 ‘병목 타개’ 가장 치열한 산업 공약 전장은 경기도지사 선거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후보와 국민의힘 양향자 후보는 모두 경기남부 반도체 클러스터 완성을 선거 공약으로 제시하고 있다. 두 후보는 반도체 클러스터와 GTX 조기 개통, 신도시·구도심 재정비 등 큰 틀에서는 유사한 방향을 보이고 있지만, 접근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추 후보는 여당 후보로서 추진력과 행정 조정 능력을 강조하고, 양 후보는 반도체 현장 경험과 첨단산업 전문성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경기 반도체 공약의 본질은 ‘누가 더 많이 말했느냐’가 아니라 ‘누가 병목을 풀 수 있느냐’다. 추 후보는 경기남부 8개 시·군 후보들과 K-반도체 클러스터 공동 공약을 발표하며 설계·소부장·후공정까지 권역 안에서 완결되는 생태계 청사진을 제시했다. 양 후보는 도민 1인당 GRDP 1억원, 고연봉 일자리 10만개, 권역별 첨단산단 조성 등을 제시하며 ‘돈 버는 경기도’를 강조했다. 다만, 양측 모두 전력망 확충, 용수 확보, 수도권 규제 완화, 인력 주거대책 없이는 공약이 클러스터 구호에 머물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경남, 우주항공·조선-앵커 산업 시너지 경쟁 경남도지사 선거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후보와 국민의힘 박완수 후보는 모두 우주항공청이 있는 사천·진주권을 미래 성장축으로 보고 있다. 김 후보는 전남 고흥, 사천·진주·창원, 여수·광양, 하동까지 연결하는 남해안권 우주항공 산업벨트를 구상하고 있는 반면, 박 후보는 사천을 중심으로 우주항공복합도시를 집중 육성하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창원에는 기계·방산·원전 제조 기반이 있고, 거제에는 조선소가 있다. 또 사천에는 우주항공청과 항공산업 기반이 있다. 박 후보는 경남을 중부·동부·서부·남부·북부 5개 권역으로 나눠 창원은 제조AI·SMR·방산, 동부권은 물류·첨단소재, 서부권은 우주항공, 남부권은 조선·해양플랜트로 육성하겠다는 권역별 전략을 제시했다. 반면, 김 후보는 부울경 메가시티와 청년 일자리, 광역 교통망을 결합해 산업 인력의 정착 조건을 개선하겠다는 쪽에 방점을 찍고 있다. 울산, 신산업 유치보다 절박한 주력산업 ‘AI 전환’ 울산은 산업 공약의 성격이 다른 지역과 다소 차이가 있다. 새로운 산업을 유치하는 문제보다 기존 주력 산업의 생존 및 전환이 더 절박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은 울산을 산업수도로 만든 기반이지만, 중국발 공급 과잉과 글로벌 수요 둔화, 탄소 규제, 전기차 전환이 동시에 밀려오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울산시장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국민의힘 김두겸 후보와 더불어민주당 김상욱 후보는 서로 다른 AI 활용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김두겸 후보는 지난 4년간 기업 투자유치 36조원, 개발제한구역 해제, 분산에너지법 제정 등을 성과로 내세우며 AI 수도, 소버린AI 집적단지, 수중데이터센터, 양자융합원, UAM, K-배터리, 암모니아 벙커링, 북극항로 거점항만을 제시했다. 반면, 김상욱 후보는 노동 중심 산업AX, 울산형 직업전환 보장제, 청년AX아카데미, 숙련노동자 AI 동행사업, 석유화학 안전진단 특화 SLLM 모델 개발을 내세우고 있다. 김두겸 후보의 공약은 현직 시장의 연속성과 대형 프로젝트 추진력이 강점이다. 다만 AI 데이터센터와 전력도시, 항만·에너지 허브 구상은 전력 수급과 주민 수용성, 국가계획 반영 여부가 관건이다. 김상욱 후보의 노동 중심 AX는 산업전환 과정에서 일자리 충격을 줄이는 장점이 있지만, 기업이 실제 설비투자와 데이터 개방에 참여할 유인이 충분한지가 숙제다. 울산의 진짜 승부처는 ‘신산업 유치’보다 ‘구산업의 고부가 전환’이다. 충남, 제조업 AI 접목…기업 유치-지역 정착 간극 ‘숙제’ 충남은 경기와 함께 반도체·디스플레이·철강 공급망의 후방을 맡는 산업권이다. 이에 충남도지사 선거에 나선 민주당 박수현 후보와 국민의힘 김태흠 후보는 모두 AI와 충남·대전 통합을 핵심 공약으로 제시했다. 박 후보는 중소기업과 협력사를 위한 AI 원스톱 지원체계, 직무 전환 노동자 재교육 수당, 생활밀착형 AI 서비스를 내세웠고, 김 후보는 AI 전문인력 3만명 양성, 첨단 반도체 후공정 생산거점, 천안 종축장 글로벌 빅테크 기업 유치, 민선 9기 80조원 투자유치를 제시했다. 구체적으로 박 후보는 천안·아산의 반도체·디스플레이·모빌리티, 당진·서산의 석유화학·제철·제조 등에 AI를 접목하고 AI 오픈랩, GPU·NPU 클라우드 인프라, 현장형 AX 인재 양성을 제시했다. 김 후보는 민선 8기부터 추진해온 투자유치와 베이밸리 구상을 바탕으로 대기업·빅테크 유치를 강조하고 있다. 이들 공약들의 관전 포인트는 AI가 실제 제조 현장에 얼마나 스며들 수 있느냐다. 표면적으로 AI 교육이나 인재 양성을 말하기는 쉽지만, 실제 중소 제조업체들이 데이터를 정리하고 시스템을 바꾸며 인력을 재교육하기까지는 상당한 비용과 시간이 든다. 따라서 충남의 산업 공약은 ‘기업 유치’와 ‘지역소득 정착’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구체적 대안이 마련될 때 완성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전북, ‘기회의 땅’ 새만금 ‘실질적 대안’ 관건 전북도지사 선거는 가장 큰 변동성을 안고 있는 선거판이다. 새만금은 부지와 항만, 공항, 재생에너지, 대규모 산업단지를 한꺼번에 묶을 수 있는 잠재력이 있지만, 동시에 전력망, 기반시설, 인허가, 기업 수요라는 벽을 넘어야 한다. 민주당 이원택 후보와 무소속 김관영 후보는 모두 새만금을 전북 성장의 핵심 무대로 삼는다. 이 후보는 전북성장공사 설립과 체감 성장을 내세웠고, 김 후보는 대기업 15개, 투자 50조원 유치를 목표로 제시했다. 김 후보의 강점은 현직 도정에서 축적한 투자유치 성과를 확장하겠다는 실행 서사다. 그는 피지컬AI, 수소, 방산, 금융중심지, 새만금 미래산업 전진기지를 앞세워 향후 4년간 50조원 투자유치와 대기업 15개 유치를 약속했다. 이 후보는 새만금 200조원 투자유치, 300만평 규모 AI반도체 메가클러스터,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관련 기업 유치 구상을 내세우며 중앙정부·여당과의 연결성을 강조한다. 다만, 두 공약 모두 전북 자체 산업 생태계의 두께와 전문인력 공급 능력을 동시에 증명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정치권 관계자는 “결국 이번 지방선거의 산업정책 승자는 산업 이름을 가장 많이 외친 후보가 아니다”라며 “유권자들은 이미 존재하는 기업 생태계와 연결되는지, 중앙정부 권한이 필요한 규제를 풀 현실적 통로가 있는지, 전력·용수·항만·철도·주거 같은 인프라의 우선순위가 분명한지, 지역 대학과 직업교육이 산업 인력 수요를 따라갈 수 있는지, 투자유치가 지역소득과 청년 정착으로 이어지는 장치를 갖췄는지 등을 꼼꼼히 따져보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번 선거는 사실상 대한민국 산업지도의 다음 4년을 결정하는 선거가 됐다”며 “‘무엇을 유치하겠다’가 아니라 ‘어떻게 가능하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후보들의 막판 설득력이 선거 결과의 향방을 결정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2026-05-31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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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노이드 시대 열린 車 공장…전환 부담은 기업만의 몫인가
[경제일보] 휴머노이드와 인공지능(AI) 확산으로 제조업 생산 현장의 노동 전환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기업들은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해 자동화와 AI 공장 구축에 속도를 높이고 있고, 노동 현장에서는 고용 안정과 역할 변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 역시 AI 전환에 대응한 직업훈련과 노동 전환 정책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산업 변화 속도에 비해 재교육과 사회 안전망 체계 논의는 아직 초기 단계라는 지적이 나온다. 현대자동차 노사는 올해 임금 및 단체협상 과정에서 AI와 자동화 확대에 따른 고용 문제를 쟁점 가운데 하나로 다루고 있다. 생산 현장에서는 휴머노이드 아틀라스와 자동화 시스템 적용 범위가 점차 확대될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긴장감이 커지는 분위기다. 비록 현대차와 기아가 미국 생산거점을 중심으로 휴머노이드 도입 계획을 먼저 추진하고 있지만, 글로벌 생산 체계 특성상 향후 국내 공장으로 확대 적용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노동 현장에서는 반복 작업과 일부 생산 공정 자동화가 확대될 경우 인력 축소와 직무 재편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생산직 중심 제조업 구조 특성상 휴머노이드 도입 이후 기존 숙련 인력 역할 변화와 전환 배치, 재교육 문제 등이 향후 주요 쟁점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기업 입장에서 AI·로봇 중심 생산체계 전환은 선택보다 생존 전략에 가깝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미국 테슬라는 휴머노이드 옵티머스를 생산과 물류 현장에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고, BMW와 메르세데스-벤츠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도 AI 기반 스마트팩토리 구축 경쟁에 속도를 내고 있다. 실제 휴머노이드 적용 범위는 빠르게 넓어지고 있다. 단순 반복 작업뿐 아니라 위험 공정과 부품 운반, 품질 검사 등으로 확대되는 분위기다. 생산 현장에서는 인력 고령화와 안전사고 감소 필요성까지 겹치며 자동화 수요가 커지고 있다. 문제는 변화 이후다. 국내 제조업 노동 논의는 여전히 임금 인상과 정년 연장, 인력 규모 중심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휴머노이드와 AI 확대 이후 어떤 직무가 줄고 어떤 역할이 새롭게 필요해질 것인지에 대한 세부적인 논의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산업 구조 변화 속도가 빨라질수록 단순 반복 업무 비중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반면 설비 운영과 데이터 관리, AI 시스템 대응 역량 중요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제조업 경쟁력 역시 ‘사람을 얼마나 줄이느냐’보다 ‘사람을 어떻게 전환시키느냐’가 중요하다. 하지만 국내 노동 전환 체계는 여전히 초기 단계다. 현장 재교육 시스템과 직무 전환 프로그램, 산업 변화 과정에서의 안전망 구축 논의도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기업들 역시 자체 교육만으로 모든 변화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 역할론이 커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과 유럽 주요국은 AI와 자동화 확대 과정에서 직업 재교육과 산업 전환 지원 정책 강화에 나서고 있다. 제조업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단순 기술 투자뿐 아니라 노동 이동과 재교육 체계까지 함께 설계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AI와 휴머노이드 중심 제조업 시대는 이미 시작됐다. 이제는 기술 도입 자체보다 변화 이후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제조업 전환 부담을 기업만 떠안기는 어려운 만큼 정부와 산업계, 노동계 모두가 노동 전환 체계 구축에 속도를 내야 할 시점이다.
2026-05-21 15:5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