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보] 포스코의 ‘58년 무분규’ 기록이 끝났다. 지난 9일 창사 이후 처음으로 생산현장에서 부분파업이 벌어진 데 이어 16일 오전 7시부터는 닷새간 120시간의 2차 부분파업에 들어갔다.
15일 노사가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았지만 기본급과 성과보상을 둘러싼 간격을 좁히지 못했다. 회사는 대체인력을 투입해 현재 생산에는 차질이 없다고 밝혔다.
파업의 역사성이 눈길을 끌지만 더 무거운 질문은 따로 있다. “앞으로도 충분히 벌고, 투자하고, 고용할 수 있는 회사로 남을 것인가.”
지난 교섭에서 노조는 기본급 7.1% 인상과 격려금 600%, 우리사주 50주, 명절상여금 200% 등을 요구했다. 회사는 기본급 2% 인상, 목표달성 격려금 350만원, 지역사랑상품권 50만원 등을 제시했다. 회사 측은 노조 요구안을 그대로 수용할 경우 큰 재무 부담이 생긴다고 주장하고 있고, 노조는 요구안은 협상을 통해 조정할 수 있는데 사측이 부담만 지나치게 부각한다고 맞서고 있다. 임금뿐 아니라 현장 인력과 안전, 근무환경에 대한 불만도 쟁점이다.
노동자가 회사의 성과를 나누자고 요구하는 것을 탓할 이유는 없다.
쇳물은 고로가 만들지만 좋은 철강은 결국 사람이 만든다. 포항과 광양제철소를 세계적인 생산기지로 키운 데에는 설비와 기술뿐 아니라 수십 년 동안 현장을 지켜온 숙련 노동자의 몫이 있다. 실적이 좋아졌다면 노동자가 그 과실을 공유하는 것은 시장경제의 원리에도 어긋나지 않는다.
올해 2분기 포스코홀딩스의 연결 영업이익은 8190억~8200억원 수준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4%가량 증가했다. 노동자들이 “회사가 벌었는데 왜 우리의 몫은 작냐”고 묻는 배경을 이해할 만하다.
다만 숫자를 한 꺼풀 벗겨보면 상황은 단순하지 않다. 포스코 철강사업 자체의 2분기 영업이익은 2740억원이었다. 전분기보다는 28.6% 늘었지만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는 46.6% 줄었다. 그룹 전체 이익 증가는 이차전지소재의 흑자전환과 에너지·인프라 사업의 호조가 상당 부분 떠받쳤다. ‘포스코그룹이 돈을 잘 번다’는 말과 ‘국내 철강사업의 체력이 충분하다’는 말은 같은 뜻이 아니다.
바깥 환경은 더 거칠다. OECD는 올해 세계 철강산업의 과잉 생산능력이 2025년 6억4000만톤에서 2028년 7억4500만톤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세계 철강수요 증가율은 2030년까지 연평균 0.9% 정도에 머물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중국 철강업체들은 내수 부진 속에서 2025년 사상 최대인 1억3100만톤을 해외시장에 내보냈다. 2020년보다 153% 늘어난 규모다. 싸고 많은 철강이 세계시장으로 쏟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 철강은 여기에 탈탄소라는 두 번째 파도를 동시에 넘어야 한다.
포스코는 최근 광양제철소에 국내 최대 규모의 전기로를 완공했고, 포항에는 2028년 준공을 목표로 연산 30만톤 규모의 수소환원제철 하이렉스(HyREX) 실증설비를 추진하고 있다. 2030년까지 상용화 기술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유럽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와 국내 탄소감축 압력이 커지는 상황에서 미룰 수 없는 투자다.
결국 지금의 임금협상은 몇 퍼센트를 올릴 것인가만의 싸움이어서는 안 된다. 과거의 성과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와 미래의 경쟁력을 어떻게 남길 것인가를 동시에 협상해야 한다.
여기에는 구분이 필요하다. 좋은 실적으로 생긴 성과는 성과급과 일회성 보상을 통해 노동자와 충분히 나눌 수 있다. 회사가 잘 벌었는데 “산업이 어렵다”는 말만 반복하며 노동자의 몫을 지나치게 줄이는 것 역시 정당하지 않다.
반면 기본급처럼 한번 올라가면 경기가 꺾여도 계속 지급해야 하는 고정비는 다르게 봐야 한다. 철강처럼 경기에 민감한 산업에서 호황기의 이익을 기준으로 고정비를 계속 높이면 불황이 왔을 때 결국 구조조정 압력으로 돌아올 수 있다.
성과는 나누되 고정비는 회사가 불황에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
회사도 같은 책임을 져야 한다. 경쟁력이라는 말을 노동자에게 임금 양보를 요구하는 편리한 명분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비용 절감이 필요하다면 경영진과 조직부터 효율성을 증명해야 하고, 노동자가 양보한 몫이 정말 탈탄소 설비와 고부가가치 강재, 안전과 자동화에 투자되는지도 보여줘야 한다.
무엇보다 노동자에게 산업전환의 비용만 떠넘겨서는 안 된다.
전기로와 수소환원제철, AI와 로봇이 확대되면 제철소의 일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줄어드는 직무가 생기고 새로운 직무도 나타날 것이다. 회사가 자동화를 추진하면서 노동자에게 고용불안만 남긴다면 기술혁신은 노사 갈등을 키울 뿐이다. 임금협상 테이블에 그래서 직무전환과 재교육, 숙련인력 재배치, 신규기술 교육, 안전투자까지 올라와야 한다.
노조도 변화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기존 직무와 인력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을 고용안정이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장기적으로 일자리를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 세계 철강업체가 저탄소 생산과 자동화로 원가를 낮추는데 한국 공장만 변화하지 못하면 기업은 국내 생산을 줄이거나 해외 투자를 확대할 수밖에 없다.
지켜야 할 것은 특정 작업 방식이 아니라 좋은 일자리가 계속 존재할 수 있는 회사다.
‘주역’ 계사하전에는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窮則變 變則通 通則久)’라는 구절이 있다. 상황이 다하면 변해야 하고, 변하면 길이 열리며, 그래야 오래간다는 의미다. 지금 한국 철강산업에 이보다 잘 맞는 말도 드물다.
중국의 과잉생산과 보호무역, 탈탄소 전환은 과거의 경영 방식과 노사관계로 버티기 어려운 변화를 만들고 있다. 회사만 변할 수도 없고 노동자에게만 변하라고 요구할 수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파업을 ‘노조의 무리한 요구’ 또는 ‘회사의 임금 억제’라는 단순한 구도로 볼 수 없다.
노사 모두 자신들의 계산서에는 근거가 있다. 노동자는 지난 성과와 숙련의 몫을 묻는다. 회사는 철강사업의 수익성과 앞으로 들어갈 막대한 투자비를 걱정한다. 둘 가운데 하나만 옳다고 할 수 없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누가 더 가져가느냐’의 협상에서 ‘회사를 어떻게 오래 가게 할 것이냐’의 협상으로 테이블을 넓히는 일이다.
기본급은 물가와 생산성, 철강사업의 지속 가능한 수익성을 기준으로 조정하고, 초과이익은 성과급을 통해 더 적극적으로 공유할 수 있다. 대신 노사는 탈탄소·자동화 투자와 연결된 고용·직무전환 계획을 함께 만들 필요가 있다. 경영성과가 좋아지면 노동자의 몫도 커지고, 생산성이 높아지면 그 성과가 다시 노동자에게 돌아오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회사에도 이익이고 노동자에게도 더 오래가는 안전망이다.
포스코의 58년 무분규가 깨진 것 자체를 실패라고 할 필요는 없다. 노조의 파업권은 법이 보장한 권리이고, 갈등을 드러내는 것 또한 노사관계의 한 과정이다.
진짜 실패는 산업의 구조가 바뀌는데도 노사가 과거 방식의 협상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데 있다. 포스코가 지금 지켜야 할 것은 ‘무분규 58년’이라는 기록이 아니다.
노동자에게는 성과를 공정하게 돌려주고, 회사에는 다음 불황과 산업전환을 견딜 체력을 남기는 합의다.
좋은 임금협상은 어느 한쪽이 많이 얻는 합의가 아니다. 노동자도 버틸 수 있고 회사도 버틸 수 있어 다음 협상 때도 함께 앉을 수 있는 합의다.
창사 58년 만의 첫 파업 뒤 포스코 노사가 찾아야 할 답도 결국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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