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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수출은 웃는데 일자리는 운다…'고용 없는 성장'의 늪에서 벗어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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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설] 수출은 웃는데 일자리는 운다…'고용 없는 성장'의 늪에서 벗어나야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경제일보
2026-06-15 09:23:12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구직자들이 일자리정보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구직자들이 일자리정보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경제일보] 반도체를 비롯한 우리나라의 주력 산업은 연일 수출 신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인공지능(AI)과 첨단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기술 혁신은 국가 경쟁력의 새로운 원동력이 되고 있으며 기업들의 실적 또한 개선되고 있다. 

겉으로만 보면 한국 경제는 순항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화려한 성적표 뒤에는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될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다. 제조업 취업자는 급감하고 전체 취업자 증가세마저 둔화하거나 감소로 돌아서면서 ‘고용 없는 성장’이 현실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의 궁극적인 목적은 국민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데 있다. 수출이 늘고 기업의 이익이 증가해도 국민이 일자리를 잃고 미래를 불안해한다면 그 성장을 성공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특히 AI와 자동화 기술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생산성은 높아졌지만 사람의 노동을 대체하는 속도 또한 빨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공장이 늘어나면 일자리도 함께 늘어났지만 이제는 첨단 반도체 공장 하나가 수십 년 전 수백 개 공장이 만들어내던 생산량을 훨씬 적은 인력으로 달성하는 시대가 됐다.

문제는 이런 구조적 변화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AI와 디지털 전환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며 앞으로도 금융·유통·물류·언론·교육·의료 등 거의 모든 산업으로 확산될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경쟁력 확보를 위해 자동화와 효율화를 선택할 수밖에 없지만 사회 전체적으로는 일자리 감소와 고용 불안이라는 새로운 과제를 떠안게 된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일자리 자체의 부족보다 ‘일자리 미스매치’가 심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업은 AI 전문가와 데이터 분석가, 반도체 설계 인력,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찾지 못해 어려움을 호소하지만 청년들은 원하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채 취업난에 시달리고 있다. 필요한 인재와 구직자의 역량이 맞지 않는 구조적 괴리가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노동시장의 실패이자 교육 시스템의 한계를 그대로 드러낸다.

정부 정책도 이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수출 증가율과 GDP 성장률만으로 경제를 평가하는 시대는 지났다. 성장의 과실이 국민에게 어떻게 돌아가는지 양질의 일자리가 얼마나 창출되는지가 더 중요한 지표가 되어야 한다. 

단순히 기업 투자에 세제 혜택을 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AI 시대에 맞춘 대대적인 인재 재교육(Reskilling)과 직무 전환 프로그램을 국가 차원에서 구축해야 한다. 대학과 직업교육기관, 기업이 함께 참여하는 평생학습 체계를 마련하고 기존 제조업 종사자들이 디지털 역량을 갖춰 새로운 산업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청년층을 위한 맞춤형 대책도 시급하다. 단순한 취업 지원금을 넘어 AI와 반도체, 바이오, 로봇 등 미래 산업 현장에서 실제 필요한 기술을 익힐 수 있는 교육과 현장 실습을 확대해야 한다. 학벌이나 스펙보다 실무 능력을 인정하는 채용 문화도 정착시켜야 한다. 청년들이 변화하는 산업 구조 속에서 기회를 찾을 수 있도록 국가가 길을 열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업 역시 사회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AI를 도입해 비용을 절감하고 생산성을 높였다면 그 혜택의 일부는 근로자의 역량 강화와 재교육에 투자해야 한다. 사람을 단순히 비용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미래 경쟁력을 함께 만들어갈 자산으로 인식해야 지속 가능한 성장이 가능하다.

맹자는 “백성이 생업을 잃으면 항심도 잃는다”고 했다. 안정된 삶의 기반이 무너지면 사회 전체의 질서도 흔들릴 수 있다는 뜻이다. 기술 혁신이 아무리 눈부셔도 일하는 사람이 설 자리를 잃는다면 그 발전은 온전한 진보가 아니다. AI 시대의 진정한 경쟁력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기술과 사람이 함께 성장하는 사회를 만드는 데 있다.

수출 호조에 취해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숫자로 포장된 성장의 환상이 아니라 국민이 체감하는 성장이다. ‘고용 없는 성장’을 방치한다면 경제는 커질지 몰라도 사회는 더욱 불안해질 것이다. 정부와 기업, 교육기관이 함께 미래 인재를 키우고 일자리의 질과 양을 동시에 높이는 국가적 전략을 마련할 때 비로소 AI 전환기는 위기가 아닌 새로운 도약의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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