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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800조 반도체 투자에 숟가락 얹지 말라
[경제일보] 800조원. 기업 투자 규모만으로도 한국 산업사의 기록을 새로 쓸 만한 숫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추진하는 서남권 반도체 생산시설 투자 이야기다. 문제는 이 천문학적인 투자계획을 놓고 정치권의 지역 논쟁까지 거세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6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산업통상부 국정감사에서도 입지 선정 과정이 도마에 올랐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정부가 여러 후보지를 제안했고 최종 결정은 기업이 했다는 취지로 답했다. 야당 의원들은 기업들에 확인한 결과 특정 지역을 먼저 제안하거나 투자계획을 확정한 적이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며 정부 설명과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다. 누가 먼저 호남을 거론했느냐를 놓고 진실 공방을 벌이는 상황이다. 아직 확인되지 않은 부분까지 예단할 필요는 없다. 정부가 기업에 특정 지역 투자를 강요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도 아니다. 기업과 정부가 대규모 투자계획을 협의하면서 여러 후보지를 검토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다만 이번 논란은 800조원짜리 반도체 투자를 어떤 원칙으로 다뤄야 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반도체 공장은 지역개발 사업이 아니다. 전력과 용수, 부지와 물류, 인재, 협력업체, 연구개발 생태계를 종합적으로 따져 수십 년 뒤까지 경쟁력을 계산해야 하는 기업 투자다. 더구나 반도체는 한번 공장을 지으면 되돌리기 어려운 대표적인 장치산업이다. 투자액도 수십조원에서 수백조원에 이른다. 그 판단의 최종 책임은 투자하는 기업이 져야 한다. 세계 반도체 경쟁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미국과 대만, 일본, 중국, 유럽은 생산시설과 첨단기술을 자국에 끌어들이기 위해 세제와 보조금, 전력과 용수 등 기반시설을 경쟁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공장을 어디에 지을지를 결정하는 데 시간이 길어지거나 경제성 이외의 변수가 지나치게 개입하면 그 비용은 기업이 떠안는다. 결국 한국 반도체의 경쟁력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고 국가균형발전을 외면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수도권에 산업과 인구가 집중된 한국에서 지방에 첨단산업과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다. 수도권 반도체 클러스터 역시 전력과 용수 확보에 상당한 부담을 안고 있다. 새로운 생산거점을 비수도권에서 찾는 것은 산업정책 측면에서도 충분히 검토할 수 있는 선택지다. 문제는 순서다. 기업에 지방으로 가라고 요구하는 것과 기업이 지방을 선택할 만한 조건을 만들어주는 것은 전혀 다른 정책이다. 반도체 공장이 필요로 하는 것은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안정적인 전력과 막대한 양의 공업용수다. 장비와 소재·부품을 공급할 기업이 가까이 있어야 하고 국내외 고급인력이 일하고 정착할 수 있는 여건도 필요하다. 도로와 철도, 항만 같은 물류망도 갖춰야 한다. 정치와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바로 이런 조건을 만드는 것이다. 전력망과 용수시설을 제때 구축하고 교통·물류 인프라를 확충해야 한다. 대학과 연구기관, 기업을 연결해 인재를 키우고 교육·의료·주거 등 정주환경도 개선해야 한다. 인허가 기간을 줄이고 세제와 연구개발 지원의 예측 가능성도 높여야 한다. 그렇게 해서 기업이 사업성만 따져도 지방을 선택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제대로 된 균형발전이다. 지역끼리 경쟁하는 것도 나쁠 이유가 없다. 오히려 필요하다. 다만 정치적 영향력으로 기업을 끌어가는 경쟁이 아니라 어느 지역이 더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하고 인재를 확보하며 빠르게 인허가를 처리할 수 있는지를 놓고 경쟁해야 한다. 중앙정부도 심판과 지원자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특정 지역에 공장을 배정하는 주체가 아니라 각 지역이 경쟁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 기업의 선택을 지원해야 한다. 이번 800조원 투자를 정치적 성과로 앞세우는 것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 발표된 투자계획이 곧바로 집행되는 것은 아니다. 반도체 경기는 변하고 기술도 바뀐다. 글로벌 수요와 메모리 가격, 금융시장과 기업의 수익성에 따라 투자 시기와 규모가 조정될 수도 있다. 기업 역시 투자계획을 발표하면서 시장·경영상황에 따라 내용이 달라질 가능성을 열어뒀다. 수백조원의 숫자를 먼저 정치적 치적으로 만들어놓으면 나중에 기업의 합리적인 투자 조정까지 정치적 실패나 약속 파기로 몰아갈 위험이 있다. 기업의 투자는 기업이 책임지고 정부 지원에는 정부가 책임지면 된다. 특히 국민 세금이 들어가는 전력망과 용수, 산업단지, 세제지원에는 더 엄격한 경제성 검토와 투명성이 필요하다. 기업 자율을 강조한다고 해서 무조건적인 지원까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기업의 투자 결정을 존중하되 국가가 부담하는 비용과 기대효과를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국회가 할 일도 분명하다. 반도체 특별법과 관련 예산을 어느 지역이 얼마나 가져갈지를 놓고 경쟁하기보다 한국에서 반도체 공장을 짓는 데 무엇이 부족한지를 살펴야 한다. 전력과 용수, 인력과 연구개발, 세제와 인허가 가운데 경쟁국보다 뒤처진 것이 무엇인지 찾아 고치는 것이 먼저다. <관자>에는 “창고가 가득 차야 예절을 알고, 먹고 입는 것이 풍족해야 영욕을 안다(倉廩實而知禮節, 衣食足而知榮辱)”는 말이 있다. 국가의 산업정책도 경제적 토대를 무시한 채 명분만 앞세워서는 오래가기 어렵다. 균형발전이라는 목표가 아무리 옳더라도 산업이 지속될 경제적 기반이 없다면 성공하기 어렵다. 반대로 지방이 기업하기 좋은 곳이 되면 정치가 기업에 내려가라고 요구하지 않아도 투자는 움직인다. 800조원은 정치권의 전리품이 아니다. 특정 지역의 몫으로 미리 떼어놓을 돈도 아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집행하는 민간의 장기 투자다. 동시에 그 투자의 성공 여부가 한국 경제 전체에 영향을 미칠 국가적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때문에 정치의 역할은 더 절제돼야 한다. 기업이 투자할 곳을 정치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투자하고 싶은 곳을 만드는 것. 기업의 결정을 정치적 치적으로 포장하는 대신 전력망 하나, 용수시설 하나라도 제때 완성하는 것. 그것이 800조원 앞에서 정치가 해야 할 일이다. 세계 반도체 전쟁에서 중요한 것은 어느 정치세력이 투자계획에 이름을 올렸느냐가 아니다. 누가 더 빨리 공장을 짓고 더 좋은 반도체를 만들어 시장을 선점하느냐가 승부를 가른다. 정치가 800조원에 숟가락을 얹기보다 반도체가 달릴 길부터 닦아야 한다.
2026-10-07 14: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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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지뢰 폭발, 진실 규명과 단호한 안보 원칙이 답이다.
[경제일보] 비무장지대(DMZ)에서 우리 장병들이 지뢰 폭발로 중상을 입은 사건은 단순한 안전사고로 치부할 사안이 아니다. 지난 9월 21일 서부전선 DMZ 수색작전 과정에서 폭발이 발생해 장병 3명이 다쳤고, 이후 군과 유엔군사령부의 현장조사에서는 북한의 수지 반보병지뢰가 추가로 발견됐다. 군은 폭발 원인이 북한군 지뢰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정치적 공방이 아니라 사실과 책임을 명확히 하는 일이다. DMZ는 정전협정이 유지되는 한반도 안보의 최전선이다. 그곳에서 적대 세력의 지뢰가 우리 장병의 생명을 위협했다면, 그 경위와 책임 소재를 한 치의 의혹도 남기지 않고 밝혀야 한다. 특히 북한의 지뢰 매설이 최종 확인된다면 이는 단순한 우발적 사고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우리 장병을 직접 겨냥한 위험 행위인 만큼 정전협정 위반 여부와 북한의 책임을 엄정하게 따져야 한다. 초기 대응 과정도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 사고 직후 군은 현장의 위험성과 작전상 보안 등을 이유로 현장조사에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실제로 군과 유엔사는 지난달 26일부터 기동로 확보와 작전환경 조사를 시작했다. 위험지역에 조사 인력을 투입하는 만큼 안전을 우선해야 한다는 설명에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국민이 납득하려면 왜 조사에 시간이 필요했는지, 사전에 식별된 지형 변화와 지뢰 매설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까지 투명하게 설명해야 한다. 안보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적의 도발 그 자체만이 아니다. 위험 신호를 보고도 판단을 미루거나,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대응을 늦추는 것도 위험하다. 북한의 군사적 행동에 대해서는 과도한 추측도 경계해야 하지만, 반대로 평화를 이유로 의심되는 정황을 가볍게 넘겨서도 안 된다. 사실은 철저하게 확인하고, 확인된 사실에는 원칙에 따라 대응하는 것이 국가안보의 기본이다. 더욱이 이번 현장조사에서 폭발 지점 부근에 북한의 지뢰가 추가로 발견됐다는 사실은 가볍게 볼 수 없다. 군은 해당 지뢰가 사고 당시 장병들이 목격한 지뢰와 다른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현장에 복수의 북한산 지뢰가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가 DMZ 일대의 위험 관리와 작전 안전 체계를 다시 점검해야 할 이유다. 정부와 군은 이제부터라도 대응 원칙을 분명히 해야 한다. 첫째, 사고 원인과 지뢰의 종류·매설 시점·매설 주체를 과학적이고 객관적으로 규명해야 한다. 둘째, 우리 군의 정보·감시·정찰과 위험지역 관리에 허점이 없었는지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 셋째, 북한의 매설 행위로 최종 확인될 경우 정전협정과 관련 규정에 따른 책임을 분명히 묻고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검토해야 한다. 군 당국은 이미 북한에 국경선 요새화 활동 중단과 사과, 책임 있는 조치를 요구했다. 이제 말에 그치지 않는 후속 대응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부상 장병과 가족들에게 국가가 책임을 다하고 있다는 확신을 줘야 한다. 장병들이 위험한 최전선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것은 국가가 그들의 생명과 명예를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사고의 진상을 축소해서도 안 되고, 반대로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정치적으로 확대해서도 안 된다. 진정한 평화는 위험을 외면하는 데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정확한 정보와 강력한 대비태세, 그리고 도발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원칙이 있어야 평화가 지속된다. 정부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DMZ 전반의 지뢰와 군사위협 실태를 재점검하고, 한미동맹과 유엔군사령부와의 공조 아래 빈틈없는 대비태세를 갖춰야 한다. 장병들의 부상은 국가안보 시스템이 어디에서 작동했고 어디에서 보완돼야 하는지를 묻는 경고다. 진실을 밝히는 것이 첫 번째이고, 책임을 묻는 것이 두 번째이며, 같은 희생이 반복되지 않도록 대비태세를 바로 세우는 것이 마지막 책무다. 안보에는 정치적 유불리보다 사실과 원칙이 앞서야 한다.
2026-10-02 10:4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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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은 누구의 것인가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병들고 있다. 국회와 정당이 국민의 삶을 논의하는 공론의 장이 아니라 진영의 결속을 확인하고 상대를 공격하는 전쟁터로 변질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의 말은 거칠어졌고 타협은 배신으로 취급된다. 당내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는 정치인은 어느 진영을 막론하고 ‘내부 총질’이라는 낙인이 찍힌다. 국민을 대표해야 할 정치가 오히려 국민을 진영으로 갈라놓는 역설이 반복되고 있다. 양대 정당의 가장 심각한 병폐는 사당화와 팬덤 정치다. 정당은 본래 다양한 국민의 이해와 요구를 수렴해 정책으로 만들어 내는 민주주의의 핵심 조직이다. 그런데 특정 지도자를 중심으로 권력이 집중되고 열성 지지층의 목소리가 당의 의사결정을 좌우한다면 정당은 공적 조직으로서의 본분을 잃는다. 당원은 주인이 아니라 지도자를 지키는 동원 세력이 되고, 국회의원은 국민보다 공천권을 가진 당 지도부와 강성 지지층의 눈치를 살피게 된다. ‘우리 편이면 무엇이든 옳고, 상대편이면 무엇이든 틀렸다’는 진영 논리가 정치의 기준이 되는 순간 양심과 소신, 타협이 설 자리는 사라진다. 정책의 옳고 그름보다 누가 주장했는지가 중요해지고 법과 원칙보다 우리 진영에 유리한지가 판단의 기준이 된다. 같은 사안을 놓고도 정권이 바뀌면 평가가 뒤집히는 일이 반복되는 이유다. 국민이 정치에 등을 돌리는 것은 정치인들이 싸우기 때문만이 아니다. 싸움의 기준마저 공익이 아니라 진영의 유불리에 있기 때문이다. 강성 팬덤은 이런 구조를 더욱 악화시킨다.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시민의 열정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건강한 민주주의는 시민의 적극적인 참여를 필요로 한다. 문제는 비판과 토론이 사라진 자리를 맹목적 추종이 차지하는 데 있다. 지도자에 대한 합리적인 비판을 배신으로 규정하고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적으로 몰아붙이는 순간 팬덤은 민주적 참여가 아니라 정치적 압력이 된다. 공천을 둘러싼 당내 권력 구조가 팬덤과 결합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정치인이 다음 선거를 위해 국민보다 당원, 당원보다 강성 지지층을 바라보게 된다면 대의민주주의의 기본 구조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이지 특정 정당 지도자의 대리인이 아니다. 정당의 공천권 역시 특정 개인의 정치적 생존을 보장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쓴소리를 배척하는 문화도 경계해야 한다. 민주주의에서 가장 위험한 정치는 반대가 없는 정치다. 지도자의 주변에 찬성하는 사람만 남고 비판하는 사람은 하나둘 밀려난다면 그 조직은 겉으로는 강해 보여도 내부에서는 이미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정치 지도자에게 필요한 것은 박수 부대가 아니라 불편한 진실을 말해 주는 동료다. 당내 소수 의견을 보호하고 공개적인 토론을 보장하는 것이 정당 민주주의를 살리는 출발점이다. 중도와 무당층을 외면하는 정치도 바뀌어야 한다. 선거 때마다 정치권은 국민 통합을 말하지만 선거가 끝나면 자기 진영의 결속부터 챙긴다. 상대 진영의 유권자를 설득하기보다 자극적인 언어로 자기 편의 분노를 키우는 것이 더 손쉬운 정치가 됐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자기 지지자들의 박수를 받는 것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나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까지 설득할 수 있어야 국가를 경영할 수 있다. 보수와 진보 모두 이 원칙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보수는 과거의 영광과 진영적 향수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시장경제의 활력과 개인의 자유를 지키면서도 사회적 약자를 보듬고 변화의 비용을 분담하는 책임 있는 보수로 거듭나야 한다. 진보 역시 과거의 이념과 진영 논리에 갇혀서는 안 된다. 공정과 정의라는 보편적 가치를 바탕으로 성장과 혁신, 노동과 복지를 함께 고민하는 현실적인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결국 정치가 회복해야 할 것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상식이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정치인들이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생각을 인정하고 국가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상대의 정책이라도 받아들일 수 있는 성숙함이다. 잘못했으면 사과하고 옳은 주장이면 상대편의 것이라도 인정하는 최소한의 정치적 양식이 필요하다. 정당은 지도자의 것도, 팬덤의 것도, 국회의원의 것도 아니다. 국민의 것이다. 정당의 존재 이유는 권력 획득 그 자체가 아니라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제도권 안에서 조정하고 국가의 미래를 설계하는 데 있다. 정치권은 상대 진영을 향해 손가락질하기 전에 자신부터 돌아봐야 한다. 우리 당의 지도자가 아니라 상대 당의 지도자가 같은 행동을 했다면 우리는 어떻게 평가했을 것인가. 우리 편의 팬덤이 상대편 팬덤과 똑같은 행동을 했다면 우리는 과연 침묵했을 것인가. 이 질문에 정직하게 답하는 것에서 정치 개혁은 시작된다. 여의도의 위기는 단순히 정치인의 위기가 아니다. 민주주의의 작동 방식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 진짜 위기다. 정치가 국민보다 진영을 먼저 생각하는 순간 민주주의는 껍데기만 남는다. 정치권이 지금 버려야 할 것은 상대방이 아니다. 자기편이면 무조건 옳다는 아집과 지도자에게 맹종하는 팬덤, 쓴소리를 배척하는 패거리 정치, 중도와 상식을 가볍게 여기는 오만이다. 국민은 정치의 승패보다 나라의 미래를 보고 있다. 이제 여의도가 그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정치가 다시 국민의 걱정을 덜어주는 자리로 돌아갈 것인지, 아니면 국민이 정치를 걱정하는 시대를 계속 이어갈 것인지 선택해야 할 때다.
2026-08-27 14: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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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은 국가 대개혁으로 완성된다
[경제일보] 국가의 선진화는 국민소득이나 수출액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경제가 성장하고 인공지능(AI)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법이 공정하게 집행되지 않는다면 선진국이라 부르기 어렵다. 교육이 시대 변화에 뒤처지고 정치와 언론이 신뢰를 잃는다면 그 또한 선진국이 아니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 1년을 맞아 성장과 AI 국가전략을 제시했다면, 이제는 그 성과를 지속 가능하게 만들 국가 시스템의 대개혁에 나서야 한다. 대한민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나라다. 반도체와 자동차, 조선과 배터리, 문화산업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했다. 그러나 사회 내부를 들여다보면 법치에 대한 불신과 교육 격차, 저출산과 지방소멸, 정치적 양극화, 언론 신뢰 하락이 국가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다. 경제 규모는 커졌지만 국가 운영의 기본질서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먼저 바로 세워야 할 것은 법치주의다. 법치는 강한 처벌을 뜻하지 않는다. 권력자와 일반 국민, 대기업과 중소기업, 여당과 야당에 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법치의 본질이다. 수사와 재판이 정치적 이해에 따라 흔들린다는 인식이 퍼지면 어떤 개혁도 국민적 동의를 얻기 어렵다. 수사기관 개편도 기관의 권한을 나누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검찰과 경찰, 중대범죄수사기관과 공소기관 사이의 책임선을 분명히 하고 부실 수사를 바로잡을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권한 남용은 통제하되 범죄 피해자가 기관 간 떠넘기기의 희생자가 돼서는 안 된다. 사법개혁의 성적표는 조직을 몇 개 만들고 없앴는지가 아니라 억울한 사람을 줄이고 범죄에 더 정확하게 대응했는지로 평가해야 한다. 법치는 정부와 공공기관에도 엄격하게 적용돼야 한다. 잘못된 정책과 행정 오류를 감추지 않고 기록과 과정을 공개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독립기관의 독립성도 외부 감시를 피할 권리가 아니다. 정치권의 부당한 압력에서 벗어나 법과 절차를 지킬 책임이다. 기본적인 절차와 상식이 무너지면 국민은 결과가 옳더라도 국가를 신뢰하지 않는다. 교육개혁은 국가 대개혁의 두 번째 축이다. AI 시대에는 지식을 얼마나 많이 외웠는가보다 새로운 문제를 정의하고 기술을 활용해 해결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정부는 AI 보편교육과 지방대학 육성을 2026년 교육정책의 주요 과제로 제시했고, 전문대학과 지역 산업을 연결하는 AI·디지털 전환 교육도 확대하고 있다. 모든 대학생을 위한 AI 기본교육과정과 초·중등 AI 중점학교도 늘리고 있다. 방향은 맞지만 숫자 확대만으로 교육혁신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AI 교육을 몇 시간 이수했는지, 교육과정을 몇 개 만들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학생이 AI를 비판적으로 활용하고 산업현장에서 실질적인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고급 연구자와 현장 엔지니어, 일반 시민의 교육 목표를 구분하고 교사의 역량도 함께 높여야 한다. 교육부가 2029년까지 AI 교육 담당 교원 1만명 연수를 추진하는 것도 이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 교육개혁은 입시제도 몇 가지를 바꾸는 수준을 넘어야 한다. 대학 서열과 수도권 집중, 학령인구 감소, 산업 수요와 교육과정의 불일치를 동시에 풀어야 한다. 지역 대학을 지역 산업·연구기관·기업의 중심으로 키우고 학생이 지역에서 배우고 취업하고 창업하는 경로를 만들어야 한다. 지방대학이 무너지면 지역의 청년과 기업, 의료와 문화도 함께 사라진다. 저출산과 지방소멸 대응도 현금 지원 중심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는 출산지원금이 부족해서만이 아니다. 안정적인 일자리와 주거, 돌봄과 교육, 경력 단절에 대한 두려움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지방을 떠나는 이유도 애향심 부족이 아니라 일자리와 교육·의료·문화 기회의 격차 때문이다. 정부는 인구감소지역에 대한 세제 지원과 지역 성장거점 조성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지방에 건물과 보조금만 내려보내서는 사람이 남지 않는다. 지역별 주력산업과 대학, 금융, 교통, 의료를 묶어 생활과 일자리가 함께 유지되는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저출산 정책 역시 부처별 사업을 나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주거와 고용, 보육과 교육을 하나의 생애주기 정책으로 묶고 정책 효과를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효과가 낮은 사업은 정리하고 일·가정 양립과 주거 안정처럼 실제 출산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분야에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 언론개혁의 핵심은 통제가 아니라 신뢰 회복이다. 허위정보와 조작 콘텐츠, AI 딥페이크가 빠르게 확산하면서 가짜뉴스 대응의 필요성은 커지고 있다. 그러나 정부나 정치권이 진실과 거짓을 직접 판정하는 방식은 표현의 자유를 훼손하고 비판 언론을 위축시킬 수 있다. 가짜뉴스에 대한 가장 강한 대응은 신속한 팩트체크와 투명한 정보 공개, 정정 보도의 실효성 강화다. 플랫폼에는 조작 콘텐츠의 표시와 확산 경로 공개, 광고 수익 제한 등의 책임을 부과할 수 있다. 언론사도 오보를 작게 정정하고 자극적인 제목으로 클릭만 늘리는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 언론의 자유는 오보의 자유가 아니며, 신뢰를 잃은 언론은 권력을 감시할 힘도 잃는다. 정치개혁은 모든 개혁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이다. 여야가 상대를 국정의 경쟁자가 아니라 제거해야 할 적으로 여기는 정치에서는 장기적인 국가전략이 나올 수 없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과 부동산, 에너지와 산업정책이 뒤집히면 기업과 국민은 미래를 계획할 수 없다. 협치는 야당의 요구를 모두 받아들이는 것도, 여당의 국정과제를 무조건 통과시키는 것도 아니다. 국가적 과제에는 최소한의 장기 합의를 만들고 쟁점 법안은 충분한 숙의와 검증을 거치는 것이다. 국회의 속도가 느린 것은 문제지만 다수 의석을 앞세워 토론을 생략하는 것도 민주주의의 효율이라 할 수 없다. 집권당은 야당보다 더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한다. 지지층에게 박수받는 선명한 구호보다 실행 가능한 정책과 결과를 보여줘야 한다. 야당도 반대를 위한 반대에서 벗어나 재원과 실행계획을 갖춘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협치는 양보의 다른 이름이 아니라 국가적 손실을 줄이는 정치 기술이다. 국가 대개혁의 바탕에는 기본원칙과 상식의 회복이 있어야 한다. 잘못했으면 인정하고, 약속했으면 지키며, 공적 권한을 사익에 사용하지 않는 것은 거창한 개혁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기본이 무너졌기 때문에 국민은 정치와 행정, 사법과 언론을 불신한다. <논어>에는 “백성의 신뢰가 없으면 나라가 설 수 없다”는 뜻의 ‘무신불립(無信不立)’이 나온다. 국가 경쟁력의 가장 깊은 뿌리는 기술도 자본도 아닌 신뢰다. 법이 공정하다는 신뢰, 노력하면 기회를 얻는다는 신뢰, 정부와 언론이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는 신뢰, 정치가 최소한의 약속은 지킨다는 신뢰가 있어야 국민이 미래를 위해 투자하고 협력한다. 이재명 정부의 남은 임기가 경제성장률 몇 프로 성장만으로 평가돼선 안된다. 법치와 교육, 인구와 지역, 언론과 정치의 낡은 구조를 얼마나 바꿨는지가 더 오래 남는 성적표가 될 것이다. 개혁은 구호가 아니라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결과에 책임지는 인고의 과정이다. 이재명 정부의 남은 임기는 경제성장률 몇 퍼센트만으로 평가돼서는 안 된다. 법치와 교육, 인구와 지역, 언론과 정치의 낡은 구조를 얼마나 바꿨는지가 더 오래 남는 성적표가 될 것이다. 개혁은 구호를 외치는 일이 아니라 저항을 설득하고 이해관계를 조정하며 결과에 책임지는 일이다. 선진국은 잘사는 나라를 넘어 시스템을 믿을 수 있는 나라다. 교육이 미래의 기회를 만들고 법이 누구에게나 공정하며, 언론이 사실을 지키고 정치가 차이를 조정할 때 대한민국은 비로소 완성된 선진국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재명 정부는 이제 국가 대개혁의 청사진과 우선순위, 실행 일정을 국민 앞에 제시해야 한다. 성장과 AI 전략의 성공도 결국 기본과 원칙, 상식이 살아 있는 국가에서만 가능하다.
2026-08-06 15:5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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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짜리 혁명'의 진실…중국 DUV, ASML 성벽에 첫 균열
[경제일보] 중국이 올해 생산한다는 액침형 심자외선(DUV) 노광장비는 5대다. 네덜란드 ASML이 올해 출하할 것으로 예상되는 액침형 DUV 장비 약 130대와 비교하면 4%에도 미치지 못한다. 최첨단 반도체 공장 한 곳에 필요한 장비 수를 감안하면 생산라인을 바꾸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규모다. 그런데 세계 증시는 이 5대에 크게 흔들렸다. 중국이 자체 개발한 액침형 DUV 장비 생산에 들어갔다는 보도가 나오자 ASML 주가는 장중 8% 넘게 떨어졌다가 5.8% 하락 마감했다. 국내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가 각각 13%, 14% 넘게 급락했다. 중국 메모리 업체 창신메모리(CXMT)의 증시 상장과 AI 산업의 투자 수익성 논란, 외국인 매도와 레버리지 청산이 겹쳤지만 중국산 DUV 소식이 불안을 증폭한 것은 분명하다. 시장의 반응만 보면 중국이 당장 ASML을 대체하고 한국 메모리 산업을 추월할 것처럼 보인다. 이는 과장이다. 반대로 장비 5대를 만들어낸 일을 선전용 행사로만 치부하는 것도 위험하다. 중국산 DUV의 현재 사업 가치는 작지만 그것이 가리키는 산업의 방향은 가볍지 않다. ◆ 노광장비 한 대가 아니라 산업 생태계의 문제 노광은 반도체 회로가 그려진 마스크에 빛을 쏘아 웨이퍼 위 감광액에 회로를 새기는 공정이다. 반도체 제조에서 사진 인화와 비슷한 역할을 하지만 요구되는 정밀도는 전혀 다르다. 머리카락 굵기의 수만분의 1에 해당하는 회로를 웨이퍼 위 수십 개 층에 반복해 정확히 포개야 한다. DUV는 193나노미터 파장의 불화아르곤 레이저를 사용한다. 액침형 DUV는 렌즈와 웨이퍼 사이에 초순수를 채워 빛의 굴절률과 렌즈의 개구수를 높인다. 같은 파장의 빛으로 더 미세한 회로를 그릴 수 있도록 만든 기술이다. ASML의 최신 액침형 DUV 장비는 시간당 300장 이상의 웨이퍼를 처리하면서 1나노미터 이하 수준의 오버레이 정밀도를 목표로 한다. 오버레이는 여러 차례 노광한 회로가 얼마나 정확하게 겹치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해상도가 좋아도 위아래 회로가 어긋나면 칩은 작동하지 않는다. 노광장비의 경쟁력은 ‘몇 나노를 찍었느냐’만으로 판정할 수 없다. 시간당 웨이퍼 처리량, 장비 가동률, 오버레이 오차, 초점 제어, 결함 밀도, 장비 간 편차, 유지보수 시간과 소모품 수명까지 모두 맞아야 한다. 연구실에서 회로 하나를 그리는 것과 매일 수천 장의 웨이퍼를 같은 품질로 생산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ASML의 진입장벽도 장비 설계도 한 장에 있지 않다. 독일 자이스가 공급하는 초정밀 광학계, 레이저 광원과 웨이퍼 스테이지, 계측 장비, 보정 소프트웨어, 수십 년간 축적한 공정 데이터와 글로벌 유지보수망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묶여 있다. 장비가 고장 났을 때 몇 시간 안에 복구할 수 있는 현장 인력과 부품 공급망도 경쟁력이다. ASML의 시장 지위는 기계 한 대가 아니라 거대한 산업 생태계가 만든 결과다. ◆ 863계획에서 아이성나까지 이어진 20년 중국의 노광장비 개발은 최근 시작된 프로젝트가 아니다. 중국 정부는 2000년대 초 국가 첨단기술 개발계획인 ‘863계획’을 통해 노광장비 국산화에 착수했다. 2002년 설립된 상하이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SMEE)는 건식 DUV 장비를 개발한 뒤 액침형 장비로 영역을 넓혀왔다. 초기 중국 장비는 90나노급 공정에 머물렀다. 해상도를 높이더라도 처리량과 오버레이, 장시간 안정성이 부족해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주력 생산라인에 투입하기 어려웠다. 중국은 이후 광학, 정밀 스테이지, 광원, 계측과 제어 소프트웨어를 담당하는 기업과 연구기관을 나눠 육성했다. 이번에 주목받은 아이성나는 2023년 상하이에 설립된 국유자본 지원 기업으로 알려졌다. 설립된 지 2∼3년에 불과한 회사가 갑자기 액침형 DUV를 만들어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SMEE와 별도 장비업체, 연구기관에 축적된 인력과 기술을 결집한 프로젝트에 가깝다. 기업의 나이는 짧아도 기술 계보는 20년 이상 이어진 셈이다. 보도에 따르면 아이성나는 올해 5대, 2027년 20대의 액침형 DUV 장비를 생산할 계획이다. 초기 공급 대상으로는 중국 최대 파운드리 SMIC와 화훙반도체, D램 업체 CXMT가 거론된다. 다만 장비의 공식 성능표와 고객사 양산 인증 결과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생산을 시작했다’는 표현과 ‘상업적 대량생산에 사용할 수 있다’는 평가는 구분해야 한다. ◆ 28나노 장비를 7나노 장비로 부를 수 없는 이유 중국 장비의 목표는 단일 노광 기준 28나노급으로 알려졌다. 28나노는 액침형 DUV가 한 번의 노광으로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는 대표적인 공정 구간이다. DUV로 더 미세한 회로를 그리는 방법도 있다. 한 장의 복잡한 회로를 두 개나 네 개의 단순한 패턴으로 나눈 뒤 노광과 식각을 반복하는 다중 패터닝이다. 이 방법을 사용하면 14나노와 10나노 이하 회로도 구현할 수 있다. 중국이 수입산 DUV를 활용해 7나노급 반도체를 생산한 것도 이러한 공정 기술과 관련돼 있다. 그러나 28나노 장비로 7나노급 회로를 구현할 수 있다는 설명과 7나노 전용 장비를 확보했다는 말은 같지 않다. 노광 횟수가 늘면 마스크와 식각·증착 공정도 증가한다. 생산시간이 길어지고 장비 사용량과 전력, 소재 비용이 커진다. 매번 회로를 정밀하게 포개야 하므로 오버레이 오차가 누적되고 수율도 떨어질 수 있다. 반도체 생산비는 노광장비 가격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한 장의 웨이퍼가 생산라인을 통과하는 데 걸리는 시간과 양품 칩의 비율이 더 중요하다. 동일한 7나노급 칩을 만들더라도 EUV를 활용한 공정과 DUV 다중 패터닝 공정의 원가와 생산성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중국산 DUV가 28나노 회로를 한 번 찍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만으로 최첨단 반도체 양산이 가능해졌다고 평가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 장비 출하 뒤에 기다리는 ‘죽음의 계곡’ 새 장비가 반도체 공장에 들어가면 설치 직후 생산에 투입되지 않는다. 우선 장비가 제시된 해상도와 오버레이 성능을 반복해 구현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다른 장비에서 생산한 웨이퍼와 결과가 일치하는지도 검증한다. 특정 장비만 다른 결과를 내면 전체 공정을 따로 설계해야 해 생산성이 급격히 떨어진다. 결함 검증은 더 까다롭다. 미세한 입자나 온도 변화, 진동, 렌즈 왜곡과 광원 불안정이 웨이퍼 수율에 영향을 미친다. 하루나 일주일 동안 정상 작동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수개월 이상 연속 가동하면서 성능과 부품 수명, 고장 빈도와 복구 시간을 입증해야 한다. 고객사의 공정 레시피와 연결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노광장비는 식각·증착·세정·검사 장비와 맞물려 작동한다. 노광 결과가 달라지면 전후 공정의 조건도 다시 조정해야 한다. 장비 인증에는 제조사뿐 아니라 팹의 공정 엔지니어, 소재 업체, 마스크와 계측 기업이 함께 참여한다. 중국산 장비가 넘어야 할 벽은 최초의 5대를 조립하는 일이 아니라 이 장비를 고객 생산라인에서 장기간 안정적으로 가동하는 일이다. 이 과정을 통과하지 못하면 5대는 연구·시험 장비에 머문다. 반대로 초기 장비에서 발생한 오류와 수율 데이터를 축적해 20대, 50대로 개선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 왜 하필 5대인가 중국이 올해 5대만 생산하는 이유는 수요가 없어서라기보다 공급망과 조립 역량이 아직 제한됐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노광장비에는 수만 개의 정밀 부품이 들어간다. 렌즈와 광원, 스테이지, 모터, 센서, 진동 제어장치와 정밀 계측 부품 가운데 하나만 공급이 늦어져도 완제품을 만들 수 없다. 보도에 따르면 중국산 장비에는 아직 일본 등 해외에서 들여오는 일부 핵심 부품이 사용되고 있으며 중국 내 부품업체의 납기와 품질 문제도 생산 확대를 제약하고 있다. ‘국산 장비’라는 표현이 모든 부품의 100% 중국산화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반도체 장비는 부품만 있다고 대량 조립할 수도 없다. 완성된 장비마다 광학계와 스테이지를 정밀하게 보정해야 한다. 생산량을 늘릴수록 장비 간 편차를 일정 수준 이하로 관리하는 능력이 중요해진다. 이 단계에서 제조 노하우와 숙련 인력의 차이가 드러난다. ASML이 장기간에 걸쳐 공급망과 생산설비를 확충하고도 연간 액침형 DUV 출하량을 100여 대 수준으로 관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국의 목표가 2026년 5대에서 2027년 20대로 늘어난다는 것은 생산능력이 네 배로 커진다는 의미이지만 ASML과의 규모 차이는 여전히 크다. ◆ ‘낡은 28나노’가 중국에는 중요한 까닭 28나노를 최첨단 기술과 비교해 낡은 공정으로 보는 시각도 바로잡아야 한다. 스마트폰의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와 AI 가속기는 3나노·5나노 공정에서 생산되지만 자동차와 산업기기, 통신장비, 가전에는 28나노 이상 성숙 공정 반도체가 대량으로 사용된다. 전력관리반도체, 디스플레이 구동칩, 마이크로컨트롤러, 네트워크칩과 각종 센서는 최신 공정을 사용할 필요가 없거나 최신 공정을 적용했을 때 오히려 비용이 증가한다. 세계 반도체 수요의 상당 부분은 여전히 성숙 공정에서 발생한다. 중국이 28나노급 장비를 안정적으로 양산하면 가장 먼저 달라지는 곳도 이 시장이다. 중국 팹은 수입 장비의 추가 공급과 유지보수가 제한되더라도 국내 장비로 생산설비를 늘릴 수 있다. 중국 정부와 국유기업은 성능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국산 장비를 의무적으로 구매해 초기 시장을 만들어줄 수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통하지 않을 장비가 중국 내수에서는 살아남을 수 있다. 장비업체는 확보한 매출과 생산 데이터를 다시 연구개발에 투입할 수 있다. 중국의 거대한 내수시장이 기술 격차를 줄이는 시험장이 되는 구조다. ◆ 한국을 먼저 압박할 곳은 HBM이 아닌 범용 D램 중국산 DUV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HBM 사업을 단기간에 위협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HBM은 미세공정에서 D램 셀을 만드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여러 개의 D램 다이를 얇게 가공해 수직으로 쌓고 TSV로 연결해야 한다. 적층·접합, 발열 제어와 신호 무결성, 패키징 수율, 고객사의 GPU·가속기 인증이 모두 필요하다. HBM4 이후에는 로직 베이스 다이와 파운드리 공정, 첨단 패키징 기술의 결합이 더욱 중요해진다. DUV 한 종류를 확보했다고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미국의 대중국 HBM 수출통제까지 고려하면 중국이 한국 기업을 곧바로 따라잡기는 쉽지 않다. 한국이 주의 깊게 볼 곳은 일반 D램이다. CXMT는 이미 세계 D램 출하량의 약 8%를 차지하는 4위 업체로 성장했다. 아직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과 기술 및 수익성 격차가 있지만 DDR4와 DDR5, 모바일용 LPDDR 시장에서 생산량을 늘리고 있다. 중국산 DUV가 양산 인증을 통과하면 CXMT는 수입 장비에 대한 불확실성을 낮추고 증설을 지속할 수 있다. 중국 스마트폰과 PC, 서버업체가 자국산 메모리 채택을 늘리면 CXMT는 세계 시장에 진출하기 전에 중국 내수만으로도 규모의 경제를 확보할 수 있다. 이 경우 한국 기업에 나타날 첫 충격은 시장점유율 상실보다 가격 하락일 가능성이 높다. CXMT가 범용 D램 공급을 늘리면 국제 가격의 하단이 낮아진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HBM에서 높은 수익을 거두더라도 일반 D램의 수익성이 악화하면 전체 실적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 중국산 DUV는 HBM 왕좌를 빼앗는 무기라기보다 범용 메모리 시장의 가격 질서를 바꾸는 기반시설로 보는 편이 현실적이다. 미국은 2022년 이후 중국의 첨단 반도체 생산을 제한하기 위해 노광과 식각·증착·계측 장비, 설계 소프트웨어와 첨단 AI 반도체에 대한 통제를 강화했다. 네덜란드와 일본도 일부 장비 수출 제한에 동참했다. 2024년에는 HBM과 장비 생산에 필요한 소프트웨어까지 통제 범위가 확대됐다. 수출통제는 효과가 있었다. 중국은 최첨단 장비를 제때 확보하기 어려워졌고 기존 수입 장비의 유지보수와 부품 공급에도 불확실성이 커졌다. 중국이 EUV를 활용한 대규모 첨단공정을 구축하는 시점도 늦어졌다. 하지만 통제에는 반대 방향의 힘도 작용한다. 해외 장비를 살 수 없게 되면 중국 팹은 성능이 부족해도 국산 장비를 시험해야 한다. 정부는 투자 실패를 감수하면서 자금을 공급하고, 고객사는 초기 제품의 결함을 함께 고친다. 정상적인 시장이라면 선택받기 어려운 장비가 보호된 시장 안에서 성장할 수 있다. 수출통제가 중국의 개발 비용과 시간을 늘릴 수는 있어도 기술 개발 의지 자체를 없애지는 못한다. 오히려 노광장비 국산화를 경제성의 문제가 아닌 국가안보 과제로 바꿨다. 중국 기업은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해도 투자를 지속할 수 있다. 미국과 동맹국도 통제를 강화하는 것만으로는 우위를 지킬 수 없다. 중국의 기술 진전을 늦추는 동안 차세대 기술과 공급망, 고객 생태계의 격차를 더 벌려야 한다. 통제가 시간을 벌어주는 정책이라면 혁신은 그 시간을 가치 있게 만드는 정책이다. ◆ 한국 반도체주 급락, 공포와 현실을 구분해야 중국산 DUV 5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기업가치를 하루아침에 10% 이상 떨어뜨릴 만큼 직접적인 실적 충격을 주는 것은 아니다. 올해와 내년 생산량만 놓고 보면 한국 반도체 공장의 생산능력이나 HBM 수주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다. 지난 28일 주가 급락은 여러 불안이 한꺼번에 반영된 결과에 가깝다. AI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에 비해 빅테크 기업의 수익 창출이 더디다는 우려, CXMT의 자금 조달과 증설 가능성, 중국 장비 국산화, 외국인 대규모 매도와 레버리지 포지션 청산이 겹쳤다. 그럼에도 시장의 과민 반응에는 읽어야 할 메시지가 있다. 투자자들은 장비 5대의 매출 효과가 아니라 ASML 독점과 한국 메모리 지배력이 영구적이지 않을 가능성을 가격에 반영했다. 지금까지 거의 0으로 보던 중국 장비의 성공 가능성을 아주 낮은 확률이나마 계산에 넣기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이번 급락을 전적으로 비이성적 공포라고 단정하는 것도, 중국이 곧 한국을 추월한다는 신호로 받아들이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단기 주가는 과도하게 움직였을 수 있지만 중국 공급망 자립이라는 장기 변수가 현실로 다가온 것은 사실이다.
2026-07-29 16: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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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ACG Studio, 'BIC Festival 2026' 참가…신데리아·항요산기 최신작 공개
[경제일보] 독립 게임 개발사 MyACG Studio가 ‘부산인디커넥트페스티벌 2026(BIC Festival 2026)’에서 자체 지식재산권(IP) 게임 2종의 최신 버전을 선보인다. MyACG Studio는 오는 8월 14일부터 16일까지 부산 벡스코에서 열리는 BIC 2026에 참가해 ‘신데리아(Cinderia)’와 ‘항요산기(Yao-Guai Hunter)’를 출품하고 프라임 부스를 운영한다고 28일 밝혔다. 2016년 설립된 MyACG Studio는 ‘동방프로젝트’ 동인 게임 제작 서클에서 출발한 독립 개발사다. 프로그래머와 아티스트, 게임 디자이너로 개발팀을 구성하고 독창적인 세계관과 비주얼, 액션 시스템을 갖춘 오리지널 게임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이번 행사에서는 두 작품의 최신 버전을 직접 시연할 수 있다. 개발진은 한국 이용자에게 게임을 소개하고 현장에서 수집한 의견을 향후 콘텐츠와 시스템 개선에 반영할 계획이다. ◆ 액션 강화한 다크 판타지 ‘신데리아’ 신데리아는 마녀가 세상을 불태워 문명이 잿더미가 된 다크 판타지 동화풍 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액션 로그라이크 게임이다. 흑마법의 부식을 견뎌낸 생존자가 세계 멸망에 얽힌 진실을 추적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현재 스팀 얼리 액세스로 서비스 중이며 이용자 의견을 반영한 지속적인 업데이트가 진행되고 있다. 최근 3개월 동안 플레이어블 캐릭터 4종을 전면 개편하고 100개 이상의 능력을 추가하거나 개선했다. 신규 맵 24종과 보스 2종, 고급 도전 모드와 도전과제 시스템도 도입했다. 최근 적용된 ‘Isdra V0.6.10’ 업데이트에서는 캐릭터 이스드라의 전투 방식이 대폭 바뀌었다. 기존 방어 후 반격 중심 구조에서 돌진과 방어, 반격을 빠르게 연결하는 공격적인 전투 방식으로 전환했다. 기존 프로스트 자원은 새로운 가드 시스템으로 재구성했다. 완벽 방어와 돌진, 빙결 군중제어, 투척 무기, 처형 등을 중심으로 다양한 전투 빌드를 만들 수 있도록 신규 능력과 모듈도 추가했다. 메모리 최적화와 장시간 플레이 성능 개선, 챕터2 신규 맵 10종 및 보스 밸런스 조정도 함께 이뤄졌다. ◆ 무협과 로그라이크 결합한 ‘항요산기’ 항요산기는 요괴가 들끓는 무협 세계를 배경으로 한 로그라이크 덱빌딩 게임이다. 이용자는 요괴 사냥꾼이 돼 전투 카드를 수집하고 자신만의 덱과 내공을 구성해 강호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 카드 조합과 내공, 연계 효과에 따라 전투 전략이 달라지며 매번 변화하는 상황에 맞춰 덱을 발전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무협 세계관과 로그라이크의 반복 플레이 요소를 결합해 캐릭터별로 서로 다른 성장과 전투 경험을 제공한다. 항요산기는 지난해 4월 정식 출시됐으며 스팀과 플레이스테이션 등에서 서비스되고 있다. 한국어를 비롯한 다국어도 지원한다. MyACG Studio 관계자는 “BIC Festival 2026에서 한국 이용자들에게 신데리아와 항요산기를 직접 선보이게 돼 기쁘다”며 “현장에서 받은 다양한 의견을 바탕으로 차별화된 게임 경험을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2026-07-28 15:5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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