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총 3건
-
"청문회, 검증의 출발선" 청와대 사전 검증은 무엇을 했나
[경제일보] 인사청문회는 대통령의 인사검증을 대신하는 절차가 아니다. 국회가 후보자를 공개적으로 검증하는 마지막 문턱에 가깝다. 그 문턱에 누구를 세울 것인지를 먼저 가려내는 일은 인사권자의 몫이다. 이 둘의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 청문회는 검증 장치가 아니라 잘못된 인사를 뒤늦게 수습하는 무대가 된다.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와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에 청와대가 내놓은 설명은 그래서 곱씹어볼 대목이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인사청문 제도 자체가 후보자에 대한 국민적 검증 과정”이라며 두 후보자가 “인사위원장의 책임 아래 인사 시스템을 거쳐 지명된 후보”인 만큼 청문회를 거쳐야 한다고 밝혔다. 동시에 “국민 눈높이에 부족함이 없도록 인사 검증체계를 갖추고 강화하겠다”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인사청문회는 국민을 대신한 국회의 공개 검증 절차다. 아직 사실관계가 확정되지 않은 의혹만으로 후보자를 낙마시키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야당이 제기하는 의혹이 모두 사실이라는 보장도 없고, 청문회를 정치적 공격 수단으로 사용하는 일도 경계해야 한다. 다만 인사 시스템을 거쳐 지명했다면서 왜 곧바로 검증체계를 강화하겠다는 것인가. 김 후보자에게는 코로나19 치료제 임상시험 승인과 관련한 청탁 의혹과 과거 음주운전 문제가 제기됐다. 김 후보자는 부정한 청탁은 없었다고 반박하면서도 민원 전달 과정에는 신중했어야 했다고 밝혔고, 음주운전에 대해서는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용 후보자에게는 비례대표 의원직과 장관직의 겸직 문제, 당 운영을 둘러싼 공정성 논란 등이 제기되고 있다. 각각의 의혹과 적격성은 청문회에서 사실관계를 더 따져야 한다. 중요한 것은 지명 전 어디까지 검토됐느냐는 것이다. 이미 알고도 장관직 수행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면 청와대가 그 판단에 책임을 지면 된다. 반대로 확인하지 못했다면 사전 검증에 구멍이 있었다는 뜻이다. 둘 중 어느 경우든 “청문회에서 검증하자”는 말만으로 끝낼 문제는 아니다. 국회법은 국무위원 후보자 등에 대해 국회가 인사청문회를 열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대통령에게서 후보자를 고르는 책임을 넘겨받기 위한 제도가 아니다. 대통령의 인사권 행사 이후 국회가 공직 수행 능력과 도덕성 등을 공개적으로 다시 검증하는 견제 장치다. 사전 검증과 인사청문은 순서만 다른 같은 검증이 아니다. 책임의 주체부터 다르다. 청와대 검증은 대통령의 책임이고, 국회 청문회는 국회의 책임이다. 이 단순한 구분을 놓쳐서는 안 된다. 청와대가 후보자의 재산과 세금, 범죄·징계 이력, 이해충돌 가능성, 과거 행적과 정무적 리스크를 충분히 확인한 뒤 “이 정도 문제를 감안해도 국정을 맡길 사람”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지명이다. 청문회는 그 판단에 누락이나 왜곡이 없는지 국민 앞에서 다시 따지는 과정이어야 한다. 하지만 사전 단계에서 걸러졌어야 할 문제가 지명 직후 쏟아지고, 그때마다 “청문회에서 보자”는 답이 반복되면 인사의 책임 구조가 거꾸로 선다. 대통령이 고르고 청와대가 검증했는데, 최종적으로 후보자의 적격 여부를 발견하고 판단하는 책임은 국회와 언론, 국민이 떠안게 되는 것이다. 더 위험한 것은 이런 방식이 반복될 때 생기는 ‘지명의 관성’이다. 후보자를 발표한 뒤에는 철회 비용이 커진다. 인사 실패를 인정해야 하고 야당의 공세도 감수해야 한다. 결국 이미 지명했다는 이유 자체가 후보자를 지켜야 하는 이유가 되기 쉽다. 검증의 판단 기준이 ‘공직에 적합한가’에서 ‘청문회를 버틸 수 있는가’로 바뀌는 순간이다. 제대로 된 사전 검증은 흠결을 하나도 없는 사람을 찾아내는 일이 아니다. 그런 사람은 현실 정치에 거의 없다. 핵심은 어떤 흠결까지 받아들일 것인지 기준을 미리 세우는 것이다. 음주운전이나 세금 체납, 부동산 투기, 연구윤리 위반, 갑질, 이해충돌, 수사·징계 이력처럼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검증 항목부터 표준화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문제가 있느냐 없느냐’를 확인하는 데 그쳐서는 부족하다. 공직의 성격에 따라 어느 정도의 흠결을 결격으로 볼 것인지도 정해야 한다. 법무부 장관에게 요구하는 기준과 산업부 장관에게 요구하는 전문성의 기준이 똑같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어제는 탈락 사유였던 문제가 오늘은 해명 가능한 문제가 되는 것도 곤란하다. 법적 결격과 정치적·윤리적 부적격을 구분하는 기준도 필요하다. 법을 어기지 않았다고 해서 곧바로 장관 자격을 얻는 것은 아니다. 장관은 형사재판에서 유죄인지 무죄인지만 따지는 자리가 아니다. 국민에게 정책의 준수를 요구하고 국가권력을 행사하는 자리다. 법률상 임명 가능성과 국민이 기대하는 공직 윤리 사이에는 분명한 간격이 있다. 그 간격을 그때그때 여론을 보며 판단해서는 인사 원칙이 생기지 않는다. 책임선도 분명히 해야 한다. 현재 청와대 인사는 인사위원회를 중심으로 후보 추천과 검증, 정무적 판단이 단계적으로 이뤄지는 구조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인사수석실까지 신설됐지만 후보자 논란이 반복되면서 시스템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누가 후보자를 추천했는지까지 모두 공개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인사에는 보안이 필요하다. 후보군의 개인정보를 보호해야 할 이유도 충분하다. 하지만 지명 이후 중대한 문제가 드러났다면 최소한 내부적으로는 추천 단계에서 놓쳤는지, 검증 과정에서 확인하지 못했는지, 알고도 정무적으로 수용했는지를 구분하고 책임을 남겨야 한다. 알고도 선택했다면 대통령과 인사위원회가 정치적 책임을 지면 된다. 몰랐다면 검증 시스템을 고쳐야 한다. 가장 좋지 않은 것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것이다. ‘상서’ 고요모에는 ‘지인즉철 능관인(知人則哲 能官人)’이라는 말이 나온다. 사람을 알아보는 것이 지혜이며, 그래야 사람을 제대로 벼슬에 쓸 수 있다는 의미다. 수천 년 전에도 국정의 어려움 가운데 하나를 ‘사람을 알아보는 일’에서 찾았다. 인사가 어려운 것은 시대가 달라져도 마찬가지다. 사람에게는 과거가 있고 완벽한 후보자는 없다. 사생활과 공적 검증의 경계를 어디에 둘지도 쉽지 않다. 지나치게 가혹한 검증은 유능한 인재가 공직을 피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기준이 필요하다. 정권에 가까운 사람에게는 느슨하고 반대편 사람에게는 엄격한 잣대가 아니라, 어느 정부에서든 대체로 예측할 수 있는 기준 말이다. 청와대가 이번에 인사 검증체계를 강화하겠다고 한 것은 필요한 조치다. 그러나 ‘강화하겠다’는 말만 반복해서는 같은 문제가 다음 개각에서 다시 돌아온다. 검증 항목을 표준화하고, 중대한 결격 사유와 해명 가능한 사안을 구분하며, 추천·검증·정무 판단의 책임선을 명확히 해야 한다. 지명 뒤 예상하지 못한 중대 문제가 드러났을 때는 어떤 단계에서 놓쳤는지 복기하는 절차도 필요하다. 또 분명히 할 것이 있다. 인사청문회는 청와대 검증의 실패를 대신 책임지는 곳이 아니다. 국회가 후보자를 검증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대통령이 지명하기 전에 제대로 검증하는 것은 그보다 먼저 존재하는 권한이자 책임이다. 청문회에서 모든 것을 확인하겠다면 사전 검증은 형식이 된다. 반대로 청와대가 자신 있게 검증을 마쳤다면 논란이 불거졌을 때 “청문회에서 보자”에 앞서 왜 그 문제를 감수하고도 지명했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인사의 신뢰는 흠결 없는 사람을 찾아내는 데서 생기지 않는다. 어떤 사람을 왜 골랐고, 무엇을 확인했으며, 어디까지 책임질 것인지 분명할 때 생긴다. 청문회는 검증의 시작이 아니다. 대통령의 인사검증이 제대로 이뤄졌는지를 국민 앞에서 확인하는 마지막 문턱이어야 한다.
2026-09-08 09:41:03
-
선진국은 국가 대개혁으로 완성된다
[경제일보] 국가의 선진화는 국민소득이나 수출액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경제가 성장하고 인공지능(AI)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법이 공정하게 집행되지 않는다면 선진국이라 부르기 어렵다. 교육이 시대 변화에 뒤처지고 정치와 언론이 신뢰를 잃는다면 그 또한 선진국이 아니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 1년을 맞아 성장과 AI 국가전략을 제시했다면, 이제는 그 성과를 지속 가능하게 만들 국가 시스템의 대개혁에 나서야 한다. 대한민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나라다. 반도체와 자동차, 조선과 배터리, 문화산업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했다. 그러나 사회 내부를 들여다보면 법치에 대한 불신과 교육 격차, 저출산과 지방소멸, 정치적 양극화, 언론 신뢰 하락이 국가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다. 경제 규모는 커졌지만 국가 운영의 기본질서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먼저 바로 세워야 할 것은 법치주의다. 법치는 강한 처벌을 뜻하지 않는다. 권력자와 일반 국민, 대기업과 중소기업, 여당과 야당에 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법치의 본질이다. 수사와 재판이 정치적 이해에 따라 흔들린다는 인식이 퍼지면 어떤 개혁도 국민적 동의를 얻기 어렵다. 수사기관 개편도 기관의 권한을 나누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검찰과 경찰, 중대범죄수사기관과 공소기관 사이의 책임선을 분명히 하고 부실 수사를 바로잡을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권한 남용은 통제하되 범죄 피해자가 기관 간 떠넘기기의 희생자가 돼서는 안 된다. 사법개혁의 성적표는 조직을 몇 개 만들고 없앴는지가 아니라 억울한 사람을 줄이고 범죄에 더 정확하게 대응했는지로 평가해야 한다. 법치는 정부와 공공기관에도 엄격하게 적용돼야 한다. 잘못된 정책과 행정 오류를 감추지 않고 기록과 과정을 공개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독립기관의 독립성도 외부 감시를 피할 권리가 아니다. 정치권의 부당한 압력에서 벗어나 법과 절차를 지킬 책임이다. 기본적인 절차와 상식이 무너지면 국민은 결과가 옳더라도 국가를 신뢰하지 않는다. 교육개혁은 국가 대개혁의 두 번째 축이다. AI 시대에는 지식을 얼마나 많이 외웠는가보다 새로운 문제를 정의하고 기술을 활용해 해결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정부는 AI 보편교육과 지방대학 육성을 2026년 교육정책의 주요 과제로 제시했고, 전문대학과 지역 산업을 연결하는 AI·디지털 전환 교육도 확대하고 있다. 모든 대학생을 위한 AI 기본교육과정과 초·중등 AI 중점학교도 늘리고 있다. 방향은 맞지만 숫자 확대만으로 교육혁신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AI 교육을 몇 시간 이수했는지, 교육과정을 몇 개 만들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학생이 AI를 비판적으로 활용하고 산업현장에서 실질적인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고급 연구자와 현장 엔지니어, 일반 시민의 교육 목표를 구분하고 교사의 역량도 함께 높여야 한다. 교육부가 2029년까지 AI 교육 담당 교원 1만명 연수를 추진하는 것도 이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 교육개혁은 입시제도 몇 가지를 바꾸는 수준을 넘어야 한다. 대학 서열과 수도권 집중, 학령인구 감소, 산업 수요와 교육과정의 불일치를 동시에 풀어야 한다. 지역 대학을 지역 산업·연구기관·기업의 중심으로 키우고 학생이 지역에서 배우고 취업하고 창업하는 경로를 만들어야 한다. 지방대학이 무너지면 지역의 청년과 기업, 의료와 문화도 함께 사라진다. 저출산과 지방소멸 대응도 현금 지원 중심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는 출산지원금이 부족해서만이 아니다. 안정적인 일자리와 주거, 돌봄과 교육, 경력 단절에 대한 두려움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지방을 떠나는 이유도 애향심 부족이 아니라 일자리와 교육·의료·문화 기회의 격차 때문이다. 정부는 인구감소지역에 대한 세제 지원과 지역 성장거점 조성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지방에 건물과 보조금만 내려보내서는 사람이 남지 않는다. 지역별 주력산업과 대학, 금융, 교통, 의료를 묶어 생활과 일자리가 함께 유지되는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저출산 정책 역시 부처별 사업을 나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주거와 고용, 보육과 교육을 하나의 생애주기 정책으로 묶고 정책 효과를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효과가 낮은 사업은 정리하고 일·가정 양립과 주거 안정처럼 실제 출산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분야에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 언론개혁의 핵심은 통제가 아니라 신뢰 회복이다. 허위정보와 조작 콘텐츠, AI 딥페이크가 빠르게 확산하면서 가짜뉴스 대응의 필요성은 커지고 있다. 그러나 정부나 정치권이 진실과 거짓을 직접 판정하는 방식은 표현의 자유를 훼손하고 비판 언론을 위축시킬 수 있다. 가짜뉴스에 대한 가장 강한 대응은 신속한 팩트체크와 투명한 정보 공개, 정정 보도의 실효성 강화다. 플랫폼에는 조작 콘텐츠의 표시와 확산 경로 공개, 광고 수익 제한 등의 책임을 부과할 수 있다. 언론사도 오보를 작게 정정하고 자극적인 제목으로 클릭만 늘리는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 언론의 자유는 오보의 자유가 아니며, 신뢰를 잃은 언론은 권력을 감시할 힘도 잃는다. 정치개혁은 모든 개혁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이다. 여야가 상대를 국정의 경쟁자가 아니라 제거해야 할 적으로 여기는 정치에서는 장기적인 국가전략이 나올 수 없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과 부동산, 에너지와 산업정책이 뒤집히면 기업과 국민은 미래를 계획할 수 없다. 협치는 야당의 요구를 모두 받아들이는 것도, 여당의 국정과제를 무조건 통과시키는 것도 아니다. 국가적 과제에는 최소한의 장기 합의를 만들고 쟁점 법안은 충분한 숙의와 검증을 거치는 것이다. 국회의 속도가 느린 것은 문제지만 다수 의석을 앞세워 토론을 생략하는 것도 민주주의의 효율이라 할 수 없다. 집권당은 야당보다 더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한다. 지지층에게 박수받는 선명한 구호보다 실행 가능한 정책과 결과를 보여줘야 한다. 야당도 반대를 위한 반대에서 벗어나 재원과 실행계획을 갖춘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협치는 양보의 다른 이름이 아니라 국가적 손실을 줄이는 정치 기술이다. 국가 대개혁의 바탕에는 기본원칙과 상식의 회복이 있어야 한다. 잘못했으면 인정하고, 약속했으면 지키며, 공적 권한을 사익에 사용하지 않는 것은 거창한 개혁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기본이 무너졌기 때문에 국민은 정치와 행정, 사법과 언론을 불신한다. <논어>에는 “백성의 신뢰가 없으면 나라가 설 수 없다”는 뜻의 ‘무신불립(無信不立)’이 나온다. 국가 경쟁력의 가장 깊은 뿌리는 기술도 자본도 아닌 신뢰다. 법이 공정하다는 신뢰, 노력하면 기회를 얻는다는 신뢰, 정부와 언론이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는 신뢰, 정치가 최소한의 약속은 지킨다는 신뢰가 있어야 국민이 미래를 위해 투자하고 협력한다. 이재명 정부의 남은 임기가 경제성장률 몇 프로 성장만으로 평가돼선 안된다. 법치와 교육, 인구와 지역, 언론과 정치의 낡은 구조를 얼마나 바꿨는지가 더 오래 남는 성적표가 될 것이다. 개혁은 구호가 아니라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결과에 책임지는 인고의 과정이다. 이재명 정부의 남은 임기는 경제성장률 몇 퍼센트만으로 평가돼서는 안 된다. 법치와 교육, 인구와 지역, 언론과 정치의 낡은 구조를 얼마나 바꿨는지가 더 오래 남는 성적표가 될 것이다. 개혁은 구호를 외치는 일이 아니라 저항을 설득하고 이해관계를 조정하며 결과에 책임지는 일이다. 선진국은 잘사는 나라를 넘어 시스템을 믿을 수 있는 나라다. 교육이 미래의 기회를 만들고 법이 누구에게나 공정하며, 언론이 사실을 지키고 정치가 차이를 조정할 때 대한민국은 비로소 완성된 선진국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재명 정부는 이제 국가 대개혁의 청사진과 우선순위, 실행 일정을 국민 앞에 제시해야 한다. 성장과 AI 전략의 성공도 결국 기본과 원칙, 상식이 살아 있는 국가에서만 가능하다.
2026-08-06 15:52:26
-
노태악은 그 자리에 무엇을 하러 갔나
[경제일보] 대법관까지 지낸 전직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출국금지됐다.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수사하는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노태악 전 중앙선관위원장과 허철훈 전 사무총장 등 선관위 관계자들을 피의자 신분으로 입건하고 출국금지 조치했다. 합수본은 중앙선관위와 서울시선관위, 송파·서초·강남·광진·동작구선관위 등 7곳을 압수수색했다. 투표용지 인쇄 계획서, 회의록, 예산서, 투표록 등 선거 준비와 당일 대응을 보여줄 자료들이 수사 대상에 올랐다. 출국금지는 유죄 판단이 아니다. 압수수색 역시 혐의를 확인하기 위한 절차다. 그러나 이 사태가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선관위의 공적 권위는 깊은 상처를 입었다. 선거관리의 최종 책임자였던 인물이 대법관 출신 노태악이라는 점은 이 사안을 더 무겁게 만든다. 국민이 묻는 것은 단순하다. 노태악은 그 자리에 무엇을 하러 갔나. 투표용지가 모자랐다는 말은 사소한 행정 실수가 아니다. 유권자가 투표소에 갔는데 국가가 표를 줄 준비를 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선거관리에서 가장 기초적인 물적 준비가 무너진 것이다. 선거는 추상적인 민주주의 의식이 아니다. 유권자 명부, 투표소, 기표대, 투표함, 투표용지가 있어야 작동하는 국가 절차다. 그중 투표용지는 선거의 시작점이다. 그것이 부족했다면 선거관리 기관은 가장 낮은 문턱도 넘지 못한 셈이다. 더 심각한 것은 규모다. 처음에는 일부 투표소의 돌발 상황처럼 알려졌다. 그러나 선관위 자체 조사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전국 50곳으로 늘어났다. 일부 지역에서는 투표가 중단됐다가 재개됐다. 유권자는 줄을 서서 기다렸고, 선거관리 직원들은 현장에서 혼란을 수습했다. 투표소 현장의 실무자만 탓할 일이 아니다. 이런 사태가 선거 당일 전국 곳곳에서 발생했다면 중앙선관위의 준비, 점검, 보고, 대응 체계 전반이 허술했다는 뜻이다. 공직선거법은 투표용지와 투표함 작성·송부의 실무 주체를 구·시·군선관위로 정하고 있다. 그렇다고 중앙선관위원장이 지역 실무 뒤에 숨을 수는 없다. 중앙선관위는 전국 선거관리 기준을 세우고, 위험 요인을 점검하고, 선거 당일 돌발 상황에 대응할 체계를 갖춰야 하는 기관이다. 선거관리의 독립성은 책임을 피하라는 방패가 아니다.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해 공정한 선거를 관리하라는 헌법적 신뢰다. 그 신뢰가 투표소 앞에서 무너졌다. 노 전 위원장의 이력은 화려하다. 법원 주요 보직을 거쳤고, 법원장을 지냈고, 대법관까지 올랐다. 이후 중앙선관위원장에 취임했다. 사법부 엘리트가 밟을 수 있는 요직을 두루 거친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마지막 공직의 장면으로 남긴 것이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출국금지라면, 국민은 그의 공직 생활 전체를 다시 떠올릴 수밖에 없다. 그는 법정에서, 법원에서, 선관위에서 어떤 긴장감으로 일했는가. 물론 이번 사태만으로 과거 판결까지 싸잡아 의심할 수는 없다. 판결은 기록과 법리에 따라 평가돼야 한다. 그러나 최고 법관 출신에게 기대했던 공적 자세와 관리 능력이 이번 사태에서 너무 초라하게 드러난 점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 대법관이라는 이력은 단순한 명예가 아니다. 국가 의사결정의 최상층에서 법과 절차의 무게를 다뤄본 경력이다. 그런 사람이 선거관리 기관의 수장이 됐다면 적어도 선거의 기본 절차만큼은 누구보다 엄격하게 챙겼어야 했다. 그런데 결과는 정반대였다. 선관위는 유권자가 투표소에 온 뒤에야 투표용지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선거 전에 예상 투표율을 어떻게 계산했는지, 인쇄 매수를 어떻게 정했는지, 지역 선관위의 준비 상황을 중앙선관위가 어떻게 점검했는지, 부족 가능성을 보고받고도 묵살한 정황은 없었는지 수사가 밝혀야 한다. 그러나 법적 책임과 별개로 행정적 책임은 이미 분명하다. 선거 당일 투표용지가 모자랐다. 중앙선관위원장은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노 전 위원장에게 이번 일이 처음 맞은 위기는 아니었다. 그는 이른바 ‘소쿠리 투표’ 논란 이후 중앙선관위원장에 취임했다. 사전투표 부실 관리로 선관위 신뢰가 흔들린 뒤 조직을 바로 세우라는 요구 속에서 자리에 올랐다. 그 뒤 선관위 고위직 자녀 특혜채용 의혹이 터졌고, 선관위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이번에는 투표용지 부족 사태다. 사과는 반복됐고 쇄신 약속도 있었다. 그러나 국민이 본 것은 바뀐 선관위가 아니라 또 무너진 선관위였다. 이쯤 되면 문제는 한 번의 실수가 아니다. 책임지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책임지지 않는 조직 문화, 독립성을 말하면서 내부 통제를 미루는 관행, 선거가 끝나면 논란도 지나간다는 안이함이 누적된 결과로 봐야 한다. 중앙선관위는 헌법기관이라는 지위에 기대어 외부 감시에는 예민하게 반응해왔다. 그러나 독립성은 무능을 덮어주는 명분이 될 수 없다. 헌법기관일수록 책임의 기준은 더 높아야 한다. 노 전 위원장의 사퇴도 충분하지 않다. 물러나는 것은 정치적·도의적 책임의 시작일 뿐이다. 사퇴했다고 해서 선거 당일 투표권 행사에 차질을 빚은 유권자의 문제 제기가 사라지지 않는다. 선관위 내부에서 어떤 판단이 있었는지, 누가 보고했고 누가 승인했는지, 어떤 지침이 내려갔는지, 예산과 인쇄 물량 산정에 어떤 오류가 있었는지 끝까지 확인해야 한다. 책임선이 실무자 몇 명에서 끊겨서도 안 된다. 실무자는 지시와 기준에 따라 움직인다. 기준을 세운 사람, 점검하지 않은 사람, 위험 신호를 놓친 사람이 함께 드러나야 한다. 대법관 출신이라는 경력은 이번 사태에서 오히려 더 무거운 질문을 부른다. 법관은 절차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직업이다. 작은 송달 하자 하나, 증거조사 절차 하나, 기일 통지 하나가 재판 전체의 적법성을 흔들 수 있다는 사실을 매일 다루는 사람이 법관이다. 그런 법관 출신이 선거관리 기관의 정점에 있었다면 투표 절차의 작은 허점이 얼마나 큰 불신으로 번지는지 몰랐다고 할 수 없다. 몰랐다면 무능이고, 알면서도 막지 못했다면 더 큰 책임이다. 국민은 선관위원장에게 선거 당일 투표소마다 서 있으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전국 선거가 제대로 돌아가도록 시스템을 만들고, 점검하고, 실패 가능성을 줄이라고 요구한다. 그 자리는 명예직이 아니다. 선거가 끝난 뒤 사과문을 읽는 자리도 아니다.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 절차가 실제 현장에서 작동하도록 책임지는 자리다. 노 전 위원장은 그 책임을 다했는가. 이번 사태가 던지는 질문은 바로 여기에 있다. 수사는 차분하게 진행돼야 한다. 정치권도 이 사안을 정파적 공방으로만 소비해서는 안 된다. 선거관리 실패를 이유로 근거 없는 음모론을 키우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정쟁화를 걱정한다는 이유로 책임 규명을 흐려서도 안 된다. 투표용지 부족은 실제로 발생했다. 선관위가 자체 조사로도 전국 50곳의 문제를 확인했다. 이 정도 사안이라면 조직 내부 감사나 위원장 사퇴만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노태악 개인의 불명예로만 볼 사안도 아니다. 이번 사태는 우리 공직사회 엘리트 시스템의 취약한 단면을 보여준다. 높은 자리에 오른 경력과 실제 관리 능력은 같지 않다. 법복의 권위가 행정 능력을 보증하지 않는다. 요직을 두루 거쳤다는 사실이 현장의 위험을 읽는 감각까지 보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높이 올라간 사람일수록 조직의 보고서와 의전 뒤에 숨어 현장의 균열을 놓치기 쉽다. 그 균열이 선거 당일 투표소 앞에서 터졌다. 국민이 느끼는 허탈감은 여기에 있다. 선관위는 선거를 관리하는 기관이다. 도로 포장도, 재난 구조도, 산업 정책도 아니다. 선거가 본업이다. 그런데 본업의 가장 기본인 투표용지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 국가기관이 자신의 존재 이유에 해당하는 일을 실패한 것이다. 그 실패의 정점에 있던 사람이 대법관 출신 중앙선관위원장이었다. 이것이 이번 사태를 더 부끄럽게 만든다. 노 전 위원장은 사과했고 물러났다. 그러나 사과와 사퇴만으로 끝낼 수 없는 공적 실패가 있다. 이번 일이 그렇다. 합수본 수사는 누가 어떤 법적 책임을 져야 하는지 가려야 한다. 동시에 중앙선관위는 선거관리 시스템을 처음부터 다시 열어야 한다. 투표율 예측, 투표용지 인쇄 기준, 예비 물량 관리, 지역 선관위 보고 체계, 선거 당일 비상 대응, 중앙의 지휘 권한과 책임 구조를 모두 공개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거창한 구호로만 지켜지지 않는다. 투표소 문이 열리고, 유권자가 신분을 확인받고, 투표용지를 받아 기표하고, 투표함에 넣는 절차가 차질 없이 이어질 때 지켜진다. 그 기본 절차가 멈추면 국민은 선거 결과 이전에 선거관리 자체를 의심하게 된다. 선관위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일은 특정 정당의 비판이 아니라 유권자의 신뢰 상실이다. 노태악은 그 자리에 무엇을 하러 갔나. 이 질문은 한 사람을 겨냥한 분노에 그치지 않는다. 헌법기관의 독립성이 책임 공백으로 변질되지 않았는지, 사법 엘리트의 권위가 실제 행정 실패를 가리고 있지는 않았는지, 선관위가 국민 앞에 충분히 낮은 자세로 일해왔는지를 묻는 질문이다. 투표용지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선관위라면 국민에게 신뢰를 요구할 자격부터 다시 세워야 한다. 이번 사태의 결론은 수사기관의 판단으로만 끝나지 않을 것이다. 법적 처벌 여부와 별개로 노태악이라는 이름은 선거관리 실패의 책임자 가운데 하나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대법관에서 중앙선관위원장으로 이어진 화려한 경력의 끝이 왜 이런 모습이어야 했는지, 그 답은 노 전 위원장과 선관위가 스스로 내놓아야 한다. 국민은 이미 묻고 있다. 그 자리가 그렇게 가벼운 자리였느냐고.
2026-06-13 12:3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