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총 12건
-
-
-
-
수출은 뛰는데 왜 서민 경기는 뛰지 않는가
[경제일보] 한국 경제의 성적표만 놓고 보면 요즘처럼 반가운 때도 드물다. 수출이 연일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특히 반도체가 수출 증가를 이끌면서 대외 경쟁력을 다시 한번 입증하고 있다. 지난 6월에는 월간 수출액이 처음으로 1000억 달러를 넘어섰고, 상반기 수출도 같은 기간 기준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7월 수출 역시 988억9000만 달러로 역대 2위였으며 반도체 수출은 410억1000만 달러에 달했다. 숫자만 보면 한국 경제가 힘차게 질주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상하다. 시장과 골목의 표정은 그만큼 밝지 않다.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기 어렵다고 호소하고, 자영업자들은 손님이 줄었다고 말한다. 가계는 월급보다 빠르게 오르는 생활비에 지갑을 닫고 있다. 수출은 역대급인데 왜 국민이 느끼는 경기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가. 문제는 거시경제 지표와 실물경제의 체감 사이에 간극이 벌어지고 있다는 데 있다. 반도체의 선전은 분명 축하할 일이다. AI 산업 확산과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에 따라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늘면서 우리 기업들은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과시하고 있다. 6월 반도체 수출은 448억2000만 달러로 사상 처음 400억 달러를 넘어섰고, 상반기 반도체 수출은 1924억 달러에 이르렀다. 그러나 경제 전체를 반도체 하나의 성적표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반도체는 고도의 자동화와 자본집약적 생산구조를 갖고 있어 수출 증가가 고용과 내수 확대로 그대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반도체 수출이 늘었다고 동네 식당 매출이 함께 증가하는 것도, 대기업의 수출 호황이 청년 일자리로 곧바로 연결되는 것도 아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성장의 미스매치’다. 수출이 늘고 기업 실적이 좋아지는 것은 분명한 호재다. 문제는 성장의 과실이 어디로 흘러가느냐다. 대기업과 첨단산업에 집중된 성과가 중견·중소기업과 서비스업, 자영업자, 근로자에게 충분히 확산되지 않는다면 국민이 체감하는 풍요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결국 수출 호황을 내수 회복으로 연결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첨단산업의 성과가 소재·부품·장비 기업과 중소·중견기업으로 확산되도록 공급망을 강화하고, 기술 개발과 인력 양성, 해외시장 진출까지 이어지는 산업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청년에게도 단기 일자리 숫자보다 AI·반도체·바이오·로봇·에너지 등 미래 산업과 연결된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해야 한다. 내수와 서비스업을 살리는 노력도 빼놓을 수 없다. 자영업자에 대한 일회성 지원을 넘어 임대료와 금융비용 등 고정비 부담을 낮추고 생산성이 낮은 부문의 구조 전환을 지원해야 한다. 관광·문화·의료·콘텐츠·돌봄 등 고용 효과가 큰 서비스 산업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키우는 것도 방법이다. 가계의 실질소득을 높여 소비 여력을 키우는 일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숫자에 취해서는 안 된다. 수출이 잘된다고 경제가 저절로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체감경기가 어렵다고 수출 호조의 가치를 깎아내려서도 안 된다. 두 현실을 함께 보는 것이 경제를 제대로 보는 상식이다. 수출은 우리 경제의 엔진이고 내수는 그 엔진이 움직이는 도로다. 엔진만 아무리 좋아도 도로가 무너지면 자동차는 제대로 달릴 수 없다. 진짜 경제 회복은 수출 통계표에서 끝나지 않는다. 청년이 첫 직장을 얻고, 직장인이 월급의 실질가치를 체감하며, 자영업자가 저녁 장사를 걱정하지 않고, 평범한 가정이 내일을 불안해하지 않을 때 비로소 성장의 의미가 완성된다. 경제는 결국 사람을 위한 것이다. 반도체 수출의 기록을 축하하되 그 기록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수출의 온기가 산업 전반으로, 기업에서 가계로,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퍼져 나가야 한다. ‘수출은 잘되는데 나는 왜 이렇게 힘든가’라는 국민의 질문에 경제정책이 답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화려한 경제지표도 절반의 성공에 불과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큰 성장만이 아니다. 성장의 과실이 더 넓고 깊게 국민에게 돌아가는 성장, 그것이야말로 진짜 경제성장이다.
2026-08-23 17:01:00
-
이재명 지지율 43.3%, 민심의 경고음을 들어야
[경제일보]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취임 후 최저치로 내려앉았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8월 3~7일 전국 18세 이상 2514명을 대상으로 벌인 조사에서 긍정평가는 43.3%, 부정평가는 53.0%로 나타났다. 전주보다 각각 2.6%포인트(p) 떨어지고 2.5%p 오른 수치다. 긍정평가는 4주째 하락세를 이어갔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0%p다. 여론조사 수치 하나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대통령 지지율은 국내외 경제 상황과 정치적 사건, 정책 발표 등에 따라 움직인다. 특정 시점의 수치만으로 국정운영 전체를 평가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그러나 여러 주 연속 하락하고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를 상당 폭 앞서기 시작했다면 그 흐름이 무엇을 말하는지는 냉정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특히 이번 하락세는 단순한 정치적 악재 하나의 결과라기보다 여러 요인이 겹친 것으로 봐야 한다. 부동산과 세제 문제, 사법제도 개편 논란, 경제 불확실성이 동시에 국민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역별로 서울과 대구·경북, 부산·울산·경남에서 하락폭이 컸고, 연령별로도 60대와 70대 이상, 20대에서 지지율이 내려갔다. 정부가 먼저 짚어야 할 것은 정책의 방향 못지않게 추진 방식이다. 개혁 과제는 속도가 중요하지만 속도 자체가 목표가 될 수는 없다. 사회적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충돌하는 사안을 충분한 설명과 조정 없이 밀어붙이면 정책 취지가 옳더라도 국민의 불안은 커질 수 있다. 부동산 정책이 대표적이다. 집값 안정과 투기 억제라는 목표에는 많은 국민이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세제와 대출, 공급 정책이 자주 바뀌면 국민은 정책 방향보다 다음 규제가 무엇일지를 걱정하게 된다. 실수요자와 장기보유자, 청년층이 정책 변화의 부담을 직접 느낀다면 정부가 아무리 선의를 강조해도 정책 신뢰는 약해질 수밖에 없다. 사법개혁 역시 마찬가지다. 검찰권 남용을 막고 수사·기소 구조를 개선하는 것은 중요한 과제다. 그러나 제도를 바꾸는 과정에서 수사 공백이나 사건 지연, 범죄 피해자 보호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을 충분히 설명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기관의 간판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더 공정하고 효율적인 사법 시스템이다. 집권 2년 차에는 국정운영의 중심도 달라져야 한다. 출범 초기에는 개혁의 방향을 제시하고 새로운 정책을 빠르게 추진하는 일이 중요했다. 이제는 발표한 정책이 국민의 삶에서 어떤 성과를 내고 있는지 보여줘야 한다. 경제성장률이 오르고 수출이 증가해도 자영업자의 매출이 줄고 청년이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면 국민이 느끼는 평가는 다를 수 있다. 반도체와 AI 산업이 호황을 맞더라도 내수와 고용, 주거와 물가 부담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거시경제 지표와 체감경기의 간극은 커질 수밖에 없다. 정책의 성과를 만드는 것만큼 설명하는 것도 중요하다. 정부가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지, 왜 지금 이 정책이 필요한지, 국민이 어떤 부담을 져야 하고 어떤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지 분명하게 설명해야 한다. 정책이 실패하거나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나타났다면 이를 인정하고 수정하는 것도 정부의 책임이다. 국민과의 소통은 정책 홍보와 다르다. 반대 의견을 듣고 필요하면 정책을 고칠 수 있다는 신호를 주는 일이 진짜 소통이다. 정부가 이미 답을 정해놓고 국민에게 이해를 요구한다면 설명회가 아무리 많아도 신뢰는 쌓이지 않는다. 중도층과 무당층을 향한 메시지도 중요하다. 모든 정부에는 확고한 지지층이 있다. 그러나 대통령은 특정 정당이나 지지층만을 위한 자리가 아니다.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까지 설득하고 끌어안아야 한다. 지지율이 떨어질 때 가장 경계해야 할 유혹은 핵심 지지층만을 더 강하게 결집시키는 것이다. 강성 지지층이 원하는 메시지를 반복하면 단기적으로 정치적 방어막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중도층과 무당층이 멀어지면 국정운영의 공간은 오히려 좁아진다. 집권당의 역할도 달라져야 한다. 정부 정책을 무조건 옹호하는 것이 여당의 책임은 아니다. 민심이 정부에 전달되지 않는다면 여당이 먼저 경고하고 정책을 조정해야 한다. 반대로 당내 강경론이 국정의 현실성과 충돌할 때는 당 지도부가 지지층을 설득해야 한다. 대통령과 여당 모두 ‘우리 편이 얼마나 결집했는가’보다 ‘우리 편이 아니었던 국민을 얼마나 설득했는가’를 국정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민주주의에서 선거는 지지층의 힘으로 이길 수 있지만 국정은 국민 다수의 신뢰 없이는 성공하기 어렵다. 지지율 43.3%라는 숫자를 지나치게 확대해석할 필요는 없다. 다음 조사에서 오를 수도 있고 또 내려갈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숫자 그 자체가 아니라 여러 주 연속 이어지는 흐름이 보내는 신호다. 국정운영의 속도가 너무 빠르지는 않았는지, 국민에게 충분히 설명했는지, 정책의 비용과 부작용을 과소평가하지 않았는지 돌아봐야 한다. 경제와 민생에서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만들고 중도층까지 포용하는 정치가 필요하다. <논어>에는 “백성의 신뢰가 없으면 나라가 설 수 없다”는 ‘무신불립(無信不立)’이 있다. 대통령 지지율도 결국 정책에 대한 국민 신뢰의 한 단면이다. 신뢰는 강한 메시지나 정치적 동원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공정한 원칙과 일관된 정책, 성과와 책임을 통해 쌓인다. 이재명 정부는 이제 집권 2년 차에 들어섰다. 남은 임기는 새로운 정책을 얼마나 많이 발표했는지가 아니라 국민의 삶을 얼마나 실제로 바꿨는지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 지지율 하락을 야당의 공세나 언론 환경 탓으로만 돌려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몇 번의 여론조사에 흔들려 국정 방향을 수시로 바꿔서도 안 된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민심의 경고를 듣되 원칙을 잃지 않는 것이다.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신뢰다. 지지층 결집보다 필요한 것은 국민 설득이다. 집권 2년 차의 성패는 대통령이 얼마나 강하게 밀어붙이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국민이 그 정책의 방향과 결과를 신뢰하느냐에 달려 있다.
2026-08-11 09:48:51
-
민주당 경선, 선명성 경쟁보다 집권당 책임을 보여라
[경제일보] 더불어민주당 차기 대표 경선이 초박빙으로 흐르고 있다. 정청래 후보는 부산·울산·경남 권리당원 투표에서 김민석 후보의 연승을 저지했다. 앞선 충청권 경선에서도 두 후보의 격차는 1%포인트에 미치지 못했다. 누가 당권을 쥘지 예측하기 어려운 접전이다. 경선이 치열한 것은 정당에 나쁜 일이 아니다. 후보 간 경쟁은 당원의 관심과 참여를 높이고 지도부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이번 경선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표 가치를 같게 한 ‘1인 1표제’가 적용된 것도 당원주권 강화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당비를 내고 당의 활동에 참여한 당원이 대표 선출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지금 민주당 경선에서 더 중요하게 봐야 할 것은 누가 권리당원의 박수를 더 많이 받느냐가 아니다. 누가 집권당을 안정적으로 이끌고 국민의 삶에 책임질 수 있느냐다. 당 대표를 뽑는 선거이지만 민주당은 야당이 아니다. 대통령실과 정부, 국회 다수당을 연결하며 국정의 성패를 함께 책임져야 하는 집권여당이다. 그런데 경선이 과열될수록 후보들의 메시지는 당 안쪽으로 향하기 쉽다. 검찰개혁과 언론개혁, 야당과의 관계, 대통령에 대한 충성도를 놓고 누가 더 강경하고 선명한지를 겨루려는 유혹이 커진다. 적극적으로 투표하는 핵심 당원에게는 강한 구호와 단호한 태도가 효과적일 수 있다. 하지만 당내 경선에서 환호받은 말이 국정 운영에서도 좋은 답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강성 지지층을 겨냥한 선명성 경쟁은 정당의 외연을 좁힌다. 상대보다 한발 더 강한 주장을 내놓고 조금이라도 다른 의견을 ‘개혁 의지 부족’이나 ‘대통령 흔들기’로 몰아붙이기 시작하면 당내 토론은 사라진다. 집권당 내부에서조차 정책의 부작용과 현실적인 한계를 말하기 어려워진다. 그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간다. 당심은 존중해야 하지만 민심과 같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권리당원은 정치 참여도가 높고 당의 가치와 노선에 충실한 집단이다. 그러나 무당층과 중도층,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시민, 당의 정책에 비판적인 국민까지 그대로 대표하지는 않는다. 당원들의 열망을 국민 전체의 요구로 착각하는 순간 집권당은 민심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집권당에는 야당보다 무거운 현실의 제약이 따른다. 야당은 정부 정책을 비판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데 집중할 수 있다. 여당은 재원을 마련하고 이해관계를 조정하며 정책 결과까지 책임져야 한다. 지지층이 원하는 정책이라도 경제와 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법률과 행정 체계에서 실행할 수 있는지 따져야 한다. 보완수사권 폐지 논란이 대표적이다. ‘검찰개혁 완수’라는 구호는 당원들에게 강한 호응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수사 공백과 사건 지연, 범죄 피해자 보호에 대한 대안 없이 권한부터 없앤다면 그 시행착오의 비용은 정치권이 아니라 국민이 부담한다. 개혁의 속도를 과시하는 것보다 무엇으로 빈자리를 채울지 설계하는 일이 집권당의 책임이다. 부동산 정책도 마찬가지다. 집값 안정과 투기 억제라는 명분만 앞세워 대출을 과도하게 조이면 현금 보유자만 유리한 시장이 될 수 있다. 보유세와 거래세를 여론에 따라 반복해서 손질하면 시장의 예측 가능성은 무너진다. 당원에게 박수받는 강한 규제가 반드시 무주택자와 실수요자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경제 문제에서는 더욱 냉정해야 한다. 반도체 수출은 급증했지만 내수와 고용, 자영업자의 체감경기는 여전히 차갑다. 미국의 관세 압박과 중국의 산업 추격, 고유가와 금융시장 변동성도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집권당 대표가 내놓아야 할 것은 상대 진영을 공격하는 언어가 아니라 성장과 일자리, 산업 전환을 위한 구체적인 해법이다. 당정 관계에 대한 후보들의 태도도 중요하다.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뒷받침하는 것과 대통령실의 판단에 무조건 동조하는 것은 다르다. 정부 정책에 문제가 있으면 여당이 먼저 경고하고 조정해야 한다. 반대로 당내 강경론이 국정의 안정성을 흔들 때는 대표가 지지층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여당 대표가 대통령의 지시만 기다리는 전달자가 된다면 국회 다수당의 존재 이유가 사라진다. 강성 당원의 요구를 그대로 대통령실에 전달하는 확성기가 돼서도 안 된다. 대통령과 당원, 국민 사이에서 갈등을 조정하고 잘못된 정책에는 책임 있게 제동을 거는 것이 집권당 대표의 역할이다. 국민 여론조사 30%를 반영한다고 민심과의 간극이 저절로 해소되는 것도 아니다. 경선 규칙상 국민의 의견이 포함돼 있다는 사실보다 후보들이 실제로 누구를 바라보며 무엇을 말하느냐가 중요하다. 국민 여론조사는 민심을 얻기 위한 형식적인 관문이 아니다. 당 밖의 국민에게도 신뢰받을 수 있는지를 묻는 시험이어야 한다. 두 후보는 남은 경선에서 자신이 상대보다 더 강한 개혁가라는 점을 증명하는 데 매달려서는 안 된다. 검찰개혁 이후 수사 공백을 어떻게 막을 것인지, 반도체 호황을 내수와 고용으로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 부동산 공급과 가계부채를 어떤 원칙으로 관리할 것인지 답해야 한다. 야당과 무엇을 놓고 협상하고 어떤 사안에서는 타협하지 않을지도 밝혀야 한다. 정당은 지지층의 요구를 모으는 조직이지만 집권당은 그 요구를 국가 정책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비용과 충돌까지 책임져야 한다. 당원에게 듣기 좋은 말만 되풀이하다가 정책 실패가 발생하면 국민에게 이해를 요구하는 정치는 무책임하다. <논어>에는 “군자는 화합하되 같기만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군자화이부동(君子和而不同)’이 나온다. 건강한 정당은 같은 목표를 향하면서도 다른 의견을 허용한다. 이견을 배신으로 규정하고 선명한 목소리만 남긴 정당은 강한 정당이 아니라 잘못을 바로잡을 능력을 잃은 정당이다. 민주당의 이번 경선은 단순히 당권의 주인을 가리는 선거가 아니다. 집권 1년을 지난 이재명 정부가 남은 임기 동안 국정 성과를 만들 수 있을지를 좌우하는 선택이다. 대표가 강성 지지층의 환호에 기대 당내 주도권만 행사한다면 대통령과 당, 국민 모두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 당원이 대표를 뽑지만 대표가 책임질 대상은 국민 전체다. 당심을 얻고도 민심을 잃는다면 경선에서 이기고 국정에서 지는 결과가 된다. 민주당 후보들이 보여줘야 할 것은 누가 더 선명한지가 아니다. 누가 더 넓게 듣고 더 현실적으로 판단하며 집권당의 결과에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지다.
2026-08-03 15:22:45
-
-
-
-
선거는 끝났고 경제의 계산서가 남았다
[경제일보] 선거가 끝나면 정치권은 승패를 말한다. 어느 지역을 지켰고 어느 지역을 잃었는지 따진다. 표의 흐름을 분석하고 다음 선거의 유불리를 계산한다. 그러나 선거 뒤 정치권 앞에 놓이는 것은 결국 숫자다. 성장률 전망치와 물가 상승률, 가계부채와 재정 여력이 다시 고개를 든다. 선거 때는 약속으로 넘길 수 있었던 문제들이 이제 예산과 금리, 세금과 시장의 반응으로 돌아온다. 6·3 지방선거 이후 한국 경제가 맞닥뜨린 장면도 다르지 않다. 감세와 지원금, 대출 완화와 규제 완화, 부동산 안정과 공급 확대, 민생 회복과 재정 확대가 동시에 거론됐다. 하나하나만 놓고 보면 모두 그럴듯하다. 그러나 정책은 말의 선의가 아니라 결과로 평가된다. 재원이 없는 약속은 결국 다른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간다. 부작용을 말하지 않는 처방은 정책이 아니라 표어에 가깝다. 지표만 보면 낙관의 근거도 있다. 지난 5월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53.2% 늘어난 877억5000만달러를 기록했다. 월 기준 역대 최대 실적이다. 반도체 수출은 169.4% 증가하며 전체 수출 증가세를 이끌었다. AI 투자 확대와 메모리 업황 개선이 한국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수출이 살아나면 기업 실적이 개선되고 증시도 반응한다. 선거 이후 정치권이 경제 회복을 말할 수 있는 배경이다. 그러나 그 숫자만으로 경제 전체가 좋아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반도체 호황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반도체가 잘된다고 해서 골목상권의 계산대와 건설현장의 자금 사정, 자영업자의 이자 부담, 서민의 장바구니 사정까지 함께 풀린 것은 아니다. 수출 대기업의 회복과 내수 현장의 체감경기 사이에는 여전히 거리가 있다. 경제가 좋아졌다는 말이 국민의 생활에서 확인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때로는 시간이 지나도 확인되지 않을 수 있다. 물가는 그 간극을 가장 먼저 드러낸다. 5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3.1% 올랐다. 생활물가지수는 3.3% 상승했다. 숫자는 건조하지만 가계에는 다르게 닿는다. 전기요금과 교통비, 외식비와 식료품 가격은 통계표가 아니라 매일의 지출이다. 선거 때 물가는 구호가 되지만 선거 뒤에는 가계부가 된다. 성장률 전망이 올라갔다는 말만으로 식탁의 부담이 내려가지는 않는다. 가계부채도 한국 경제의 약한 고리로 남아 있다. 금융당국은 올해 관리대상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를 1.5%로 설정하고 2030년까지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80%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방침을 제시했다. 그만큼 가계부채 문제가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라는 뜻이다. 그런데 선거 때마다 대출 완화와 주거 지원은 손쉬운 공약으로 등장한다. 집값이 불안하면 대출을 풀자는 요구가 나오고 경기가 나쁘면 돈을 더 돌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다. 하지만 빚으로 떠받친 민생은 오래가지 못한다. 대출 완화는 당장의 숨통을 틔울 수 있지만 다음 위기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포퓰리즘의 위험은 돈을 쓰자는 주장 자체에 있지 않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재정은 필요하다. 취약계층과 한계 상황에 몰린 소상공인을 외면하는 국가는 존재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 문제는 누구에게 왜 얼마나 지원할 것인지 묻지 않는 정치다. 모든 국민에게 같은 방식으로 돈을 나눠주는 일은 가장 쉬운 선택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쉬운 선택이 곧 책임 있는 선택은 아니다. 재정은 정치권의 현금 인출기가 아니다. 오늘의 지출은 내일의 세금이거나 미래 세대의 부담이다. 선거판의 언어는 짧고 강하다. 깎아주겠다. 풀어주겠다. 지원하겠다. 막아주겠다. 경제의 언어는 훨씬 까다롭다. 재원은 어디서 마련할 것인가. 누가 혜택을 보고 누가 비용을 부담할 것인가. 부작용은 어느 시장에서 나타날 것인가. 정책은 몇 년을 버틸 수 있는가. 선거 이후 정치가 해야 할 일은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선거에서 이겼다는 이유로 계산을 생략해서도 안 된다. 선거에서 졌다는 이유로 책임을 피해서도 안 된다. 부동산 정책은 그 충돌이 가장 선명하게 나타나는 영역이다. 집값을 잡겠다는 말은 늘 반복된다. 공급을 늘리겠다는 약속도 빠지지 않는다. 세 부담을 낮추겠다는 주장과 투기 수요를 억제하겠다는 주장도 동시에 나온다. 그러나 현실의 부동산 시장은 한 문장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공급은 인허가와 금융, 공사비와 지역 민원, 시행 리스크와 시공사 수익성에 묶여 있다. 대출은 가계부채와 직결된다. 세제는 시장 심리와 맞물린다. 선거 구호는 시장의 불안을 잠시 덮을 수는 있어도 주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건설과 부동산 현장의 체감은 더 복잡하다. 공사비는 올랐고 금융 비용은 부담으로 남아 있다. PF 부실 우려는 시장 곳곳에서 신호를 보내고 있다. 주택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정책 방향은 맞다. 그러나 현장은 자금 조달과 수익성, 분양성, 인허가 지연이라는 벽을 만난다. 정치권은 공급 확대를 말하지만 공급은 선언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땅을 확보하고 자금을 조달하고 공사를 진행하고 입주까지 이어지는 긴 과정이 필요하다. 그 과정의 위험을 누가 감당할 것인지 정하지 않은 공급 대책은 구호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규제 완화도 마찬가지다. 기업 활동을 막는 불필요한 규제는 걷어내야 한다. 노동시장과 산업 현장의 변화에 맞지 않는 제도는 손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규제 완화라는 이름으로 안전과 책임까지 함께 낮추려 해서는 안 된다. 특히 건설 현장에서 안전은 비용 항목이 아니라 생명과 직결된 기준이다. 기업 부담을 줄이자는 요구는 경제 현실에서 나온다. 동시에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을 지키자는 요구도 현실에서 나온다. 정책의 성패는 어느 한쪽의 구호를 택하는 데 있지 않다. 비용과 책임을 어떻게 나눌지 설계하는 데 있다. 정책도 공적 약속이다. 공적 약속에는 권한과 책임이 따른다. 선거 공약이라고 해서 책임의 원칙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정책은 선의로 면책되지 않는다. 결과와 부작용까지 함께 심판받는다. 지원금이 필요하다면 대상과 재원을 밝혀야 한다. 감세가 필요하다면 세수 감소분을 설명해야 한다. 대출 완화가 필요하다면 가계부채와 집값에 미칠 영향을 함께 말해야 한다. 규제를 풀겠다면 안전과 공정의 빈틈을 어떻게 메울 것인지 답해야 한다. 민생을 앞세운 포퓰리즘은 늘 선의의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 국민이 어렵다. 소상공인이 힘들다. 청년이 지쳐 있다. 노후가 불안하다. 이 말들은 대체로 사실이다. 그래서 더 조심해야 한다. 고통이 사실이라고 해서 모든 처방이 옳아지는 것은 아니다. 경제적 어려움을 이용해 재원 없는 약속을 경쟁적으로 내놓는 순간 민생은 다시 정치의 도구가 된다. 필요한 것은 더 큰 목소리가 아니라 더 정확한 처방이다. 정책에는 순서가 있다. 물가가 다시 오르는 국면에서 무차별적 현금 살포는 소비 여력을 키우는 동시에 물가 압력을 높일 수 있다. 가계부채가 높은 상황에서 대출 완화는 주거비 부담을 덜어주는 동시에 부동산 가격을 다시 자극할 수 있다. 재정 여력이 제한된 상황에서 감세와 지출 확대를 동시에 말하면 결국 국채 발행이나 다른 세목의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 정치가 이 연결고리를 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정책이 아니라 포장이다. 선거가 없는 시간은 정치권의 휴식기가 아니다. 책임을 미뤄둔 정책을 처리해야 할 시간이다. 선거를 앞두고는 표를 의식해 하기 어려운 말이 많다. 지원이 필요하지만 전 국민 지원은 맞지 않다고 말하기 어렵다. 부동산을 안정시켜야 하지만 대출 완화는 조심해야 한다고 말하기 어렵다. 기업을 살려야 하지만 안전 책임을 낮출 수는 없다고 말하기 어렵다. 선거가 끝난 지금이 그런 말을 해야 할 때다. 정치권은 경제를 지나치게 쉽게 설명하려는 습관을 버려야 한다. 경제가 어려운 이유를 전 정부 탓이나 현 정부 탓으로만 돌리는 방식은 오래가지 못한다. 물가는 국제 원자재와 환율, 유통 비용과 임금, 공공요금과 수요가 함께 움직인 결과다. 부동산은 금리와 공급, 세제와 심리, 지역 개발과 금융규제가 함께 만든 결과다. 가계부채는 주거비와 소득 정체, 금융 관행과 자산 가격 기대가 쌓인 결과다. 복잡한 문제를 한 줄 공약으로 해결하겠다는 말은 편하지만 위험하다. 언론도 이 대목에서 책임이 있다. 선거 이후 정치권의 약속을 단순히 누가 더 많이 지원하느냐의 경쟁으로 중계해서는 안 된다. 언론이 해야 할 일은 선심성 경쟁의 중계가 아니다. 약속의 가격표를 독자 앞에 펼쳐 보이는 일이다. 현금 지원을 말하면 대상과 재원을 물어야 한다. 감세를 말하면 세수 감소분을 물어야 한다. 대출 완화를 말하면 가계부채와 집값 영향을 물어야 한다. 규제 완화를 말하면 안전과 소비자 보호의 공백을 물어야 한다. 선거가 끝난 뒤 언론이 해야 할 일은 승패 해설보다 약속의 검증이다. 한국 경제는 지금 이중적인 얼굴을 보이고 있다. 반도체와 수출은 강하다. 그러나 내수와 체감경기는 여전히 무겁다. 성장률 전망에는 기대가 있지만 가계부채와 물가에는 부담이 있다. 증시는 웃지만 자영업자의 장부는 웃지 못할 수 있다. 이 간극을 외면한 채 경제 회복만 말하면 국민은 설득되지 않는다. 반대로 수출 호조와 산업 경쟁력의 기회를 외면한 채 위기만 말해도 균형을 잃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낙관도 비관도 아니다. 숫자를 있는 그대로 보고 정책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이다. 포퓰리즘은 이 균형을 무너뜨린다. 어려운 사람을 돕겠다는 명분 아래 모든 사람에게 같은 약속을 한다. 미래 부담을 말하지 않고 현재의 혜택만 강조한다. 정책의 우선순위를 흐리고 재정의 한계를 감춘다. 선거 때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집권 이후에는 숫자로 되돌아온다. 물가로 돌아오고 부채로 돌아오고 세금으로 돌아온다. 결국 국민이 계산서를 받는다. 정치권은 이제 더 솔직해져야 한다. 모든 부담을 줄이고 모든 지원을 늘리며 모든 규제를 풀고 모든 안전을 강화하겠다는 말은 성립하기 어렵다. 선택에는 비용이 따른다. 감세를 하면 세수가 줄고 지출을 늘리면 재정 부담이 커진다. 대출을 풀면 부채가 늘 수 있고 대출을 묶으면 실수요자의 고통이 커질 수 있다. 공급을 늘리려면 지역 반발과 인허가 문제를 넘어야 하고 안전을 강화하려면 비용을 분담해야 한다. 정치는 이 불편한 사실을 숨기지 말아야 한다. 선거 이후 경제 현실이 요구하는 것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지원은 더 정밀해야 한다. 감세는 더 신중해야 한다. 대출은 더 책임 있게 관리해야 한다. 부동산 공급은 말이 아니라 실행 일정과 재원, 인허가 개선으로 보여줘야 한다. 규제개혁은 기업의 숨통을 틔우되 안전과 공정의 기준을 훼손하지 않는 방향이어야 한다. 이것이 선거 이후 정책의 최소한이다. 경제는 결국 신뢰의 문제다. 정부가 숫자를 속이지 않는다는 신뢰, 정치권이 재원 없는 약속을 남발하지 않는다는 신뢰, 시장이 정책을 예측할 수 있다는 신뢰, 국민이 고통을 분담하더라도 그 부담이 공정하게 나뉜다는 신뢰가 필요하다. 포퓰리즘은 이 신뢰를 갉아먹는다. 달콤한 약속은 빠르게 퍼지지만 신뢰는 천천히 쌓인다. 한 번 무너진 신뢰는 더 많은 돈으로도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선거는 끝났다. 이제 정치권은 약속의 가격을 말해야 한다. 민생을 돕겠다면 재원을 밝혀야 하고 부동산을 안정시키겠다면 대출과 공급의 부작용까지 설명해야 한다. 기업을 살리겠다면 안전과 책임의 기준도 함께 세워야 한다. 포퓰리즘은 선거에서 박수를 받을 수 있지만 경제는 박수로 움직이지 않는다. 경제는 결국 숫자와 책임으로 돌아온다. 선거의 시간이 끝난 뒤 경제의 시간이 시작됐다. 이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가 다음 선거보다 더 중요하다.
2026-06-08 08:56:23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