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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장 없이 시작한 송무 로펌…바른 28년, 이제 동인과 합병
[경제일보] 1998년 3월 서울 서초동. 판사 출신 강훈·홍지욱·김재호 변호사가 바른법률사무소의 문을 열었다. 당시 형사·민사 사건 수임에는 이른바 ‘사무장’이나 브로커가 개입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세 사람은 사건을 소개해주는 브로커를 쓰지 않고 변호사가 직접 의뢰인을 만나겠다는 원칙을 세웠다. ‘바른’이라는 이름에도 그런 생각을 담았다. 1997년 의정부 법조비리 사건으로 법원과 변호사 업계에 대한 불신이 커지던 시기였다. 평판사 출신들이 만든 작은 사무실은 전관의 이름을 앞세우기보다 직접 사건을 맡아 승부하겠다고 나섰다. 검사와 청와대 경제비서관을 지낸 김찬진 변호사도 초기부터 힘을 보탰다. 28년이 지난 지금 바른에는 외국변호사를 포함해 300명 안팎의 변호사가 일한다. 2025년 매출은 1076억원으로 2023년 처음 1000억원을 넘어선 뒤 3년 연속 1000억원대를 유지했다. 하지만 같은 해 YK가 1694억원, 지평이 1327억원을 기록하면서 중대형 로펌 사이의 외형 경쟁에서는 다시 뒤를 쫓는 처지가 됐다. 바른은 결국 다시 큰 선택을 했다. 지난 9월 14일 법무법인 동인과 합병 추진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합병이 성사되면 지난해 기준 합산 매출 1877억원, 변호사 553명 규모로 커진다. 평판사들이 만든 송무 사무실에서 출발한 바른이 28년 만에 국내 로펌 사상 최대 규모의 합병을 추진하고 있다. ◆ 법조비리 뒤 문 연 평판사들의 사무실 바른이 문을 열던 1990년대 말 법률시장은 지금과 달랐다. 개인 변호사 사무실의 비중이 컸고 법원이나 검찰을 갓 나온 전관들이 사건을 소개받아 처리하는 방식도 널리 퍼져 있었다. 브로커와 사무장을 통한 사건 수임이 법조비리로 번지면서 변호사 업계 전체가 비판을 받던 때였다. 강훈·홍지욱·김재호 변호사는 모두 법원에서 10년 안팎 근무한 평판사 출신이었다. 고위 법관 출신도 아니었고 대형 기업자문 조직을 갖고 있지도 않았다. 처음부터 잡은 시장은 송무였다. 법정에서 재판을 해본 경험을 토대로 민·형사 사건을 직접 맡았다. 사무장이 사건을 가져오면 변호사가 이름을 빌려주는 관행도 피했다. 파트너 변호사가 사건을 수임한 뒤 저연차 변호사에게 전부 넘기는 방식도 지양했다. ‘변호사가 직접 의뢰인을 만나고 직접 책임진다’는 방식은 신생 사무실이 고객을 확보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송무 중심의 출발은 이후 바른의 성격을 오랫동안 규정했다. 기업과 금융회사에 계약을 자문하는 대신 이미 벌어진 분쟁을 법정에서 해결하는 사건이 먼저 쌓였다. 지금도 바른을 설명할 때 송무와 기업형사가 먼저 거론되는 배경이다. ◆ 대법관·고법부장들이 신생 로펌으로 설립 이듬해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 1999년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끝으로 법원을 떠난 조중한 변호사가 2대 대표로 합류했다. 같은 해 정귀호 전 대법관도 바른으로 왔다. 2000년에는 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지낸 박인호 변호사가 가세했다. 평판사 세 명이 시작한 사무실에 고위 법관 출신들이 들어오면서 송무 인력의 폭이 넓어졌다. 이후 검사장급 인사와 고법부장, 법원장 출신 변호사들도 잇달아 합류했다. 명로승 전 법무부 차관과 정동기·문성우 전 대검찰청 차장검사, 정인진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 김동건 전 서울고법원장 등이 대표적이다. 성과도 따라왔다. 한국가스공사 통영기지 탱크공사 관련 5500억원대 가처분 사건과 두산중공업 희망퇴직자들의 600억원대 퇴직금 소송 등을 맡았다. 동서식품의 공정거래위원회 과징금 사건에서는 대법원 파기환송 판결을 받아냈다. 2010년에는 대법원 수임 사건 수가 국내 로펌 가운데 가장 많다는 보도도 나왔다. 바른 홈페이지 연혁에도 이 기록이 남아 있다. 송무에서 확보한 사건과 인력이 바른을 100명대 로펌으로 끌어올렸다. ◆ 송무만으로는 종합로펌이 될 수 없었다 바른이 계속 법정에만 머문 것은 아니다. 기업 고객을 상대하다 보면 소송이 터지기 전 계약과 금융, 공정거래 문제부터 자문해달라는 요구가 따라왔다. 송무에서 기업을 만났지만 기업의 일은 법정 밖에서 더 많이 벌어졌다. 2005년 바른은 김·신·유에서 기업자문을 이끌던 박기태 변호사와 자문팀을 영입했다. 같은 해 법인 이름도 지금의 ‘법무법인 바른’으로 바꿨다. 김장리와의 합병을 추진했고 2007년에는 세종과의 합병도 검토했지만 두 건 모두 성사되지는 않았다. 2010년대 들어서는 조세와 부동산금융, 공정거래를 잇달아 보강했다. 2015년 조현관 전 서울지방국세청장을 영입했고 이듬해 법무법인 양헌에서 부동산금융팀을 받아들였다. 2017년에는 법무법인 KCL의 공정거래팀이 합류했다. 바른의 확장은 다른 대형 로펌과 달리 한 번의 대형 합병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송무라는 기존 기반을 두고 필요한 자문팀을 하나씩 붙였다. 법원과 검찰 출신 인력 중심의 조직에 세무와 금융, 공정거래 전문가가 들어오면서 업무 범위도 넓어졌다. ◆ 론스타에서 통상임금까지 법정에서 이름 알려 기업형사 사건에서도 바른의 송무 경험이 이어졌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매각 과정에서 배임 혐의로 기소된 이강원 전 외환은행장을 대리해 1심부터 대법원까지 무죄 판결을 받았다. 신한은행이 450억원 규모의 횡령·배임 혐의로 고발한 신상훈 전 사장 사건에서도 대법원 무죄 확정 판결을 이끌어냈다. 노동과 공정거래 사건에서도 굵직한 판결이 나왔다. 2014년 쌍용자동차 해고무효확인 소송에서는 대법원 파기환송 판결을 받았다. 2016년 액화천연가스 저장탱크 건설공사 입찰담합 사건에서는 SK건설을 대리해 과징금 불복 소송에서 승소했다. 최근 매출을 끌어올린 사건에도 송무가 있었다. 공정거래위원회와 퀄컴 사이의 1조원대 과징금 분쟁에서 공정위를 대리했고 HD현대중공업의 6300억원대 통상임금 소송에서는 근로자 측을 대리했다. 2023년 바른의 매출이 처음 1000억원을 넘어서는 데 이런 대형 사건이 영향을 미쳤다. 설립 당시의 주력이었던 송무가 20년 넘게 바른의 매출과 브랜드를 떠받쳐온 것이다. 다만 대형 로펌 시장이 기업자문과 M&A, 금융, 국제중재 중심으로 커지면서 송무에 강하다는 것만으로는 다음 단계로 올라가기 어려워졌다. ◆ 남들이 덜 보던 상속·도산도 파고들었다 바른은 대형 로펌이 상대적으로 덜 주목하던 분야에도 사람을 붙였다. 대표적인 분야가 상속과 자산승계다. 2013년 상속신탁연구회를 만들었고 2022년에는 대형 로펌 가운데 처음으로 자산관리 업무를 전담하는 EP센터를 출범시켰다. 기업 오너와 고액 자산가의 상속은 유언장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세금과 기업 지분, 경영권, 신탁, 가족 간 분쟁이 한꺼번에 얽힌다. 바른은 조세와 가사, 기업법무 변호사를 묶어 이 시장을 따로 키웠다. 도산에서도 새로운 사건을 맡았다. 2018년 레이크힐스순천 회생에서 서울회생법원의 첫 ‘한국형 프리패키지 제도’ 적용을 이끌고 이후 골프존으로의 매각까지 관여했다. 회생 절차와 인수·합병을 한 조직에서 이어간 사건이었다. 최근에는 국제중재와 지식재산권도 확대하고 있다. 기업의 해외 진출과 기술 분쟁이 늘면서 외국변호사를 영입하고 특허 분야 협업도 강화하고 있다. AI와 디지털자산, 재생에너지 같은 신산업 규제 분야에도 별도 인력을 붙이고 있다. ◆ 1000억원 넘었지만 경쟁자는 더 빨리 컸다 바른은 2023년 매출 1058억원을 기록하며 처음 1000억원을 넘어섰다. 2024년 1064억원, 2025년 1076억원으로 3년 연속 1000억원대 매출을 올렸다. 적어도 외형에서는 중대형 로펌의 문턱을 넘었다. 문제는 경쟁사들이 더 빨리 컸다는 데 있다. 2025년 YK는 1694억원, 지평은 1327억원을 기록했다. 대륙아주도 1027억원으로 바른을 바짝 따라붙었다. 1000억원대 로펌 사이에서도 변호사 영입과 합병 경쟁이 시작됐다. 기업 고객 평가에서도 아직 상위권과 거리가 있다. 한국경제와 한국사내변호사회가 실시한 2025년 평가에서 바른은 종합·전문성·서비스 모두 9위를 기록했다. 송무에서 오랫동안 이름을 쌓았지만 기업 고객을 상대로 한 종합 서비스에서는 빅6와 차이가 남아 있다. 2025년 이동훈 대표 체제가 출범한 뒤 바른은 기업자문과 국제중재, 지식재산권을 다음 성장 분야로 잡았다. 같은 해 기업전략연구소도 세웠다. 법률문제가 생긴 뒤 대응하는 송무에서 기업의 사업과 규제를 미리 들여다보는 쪽으로 업무를 넓히려는 움직임이다. ◆ 28년 만에 다시 꺼낸 합병 카드 바른은 지난 9월 14일 법무법인 동인과 합병 추진 MOU를 체결했다. 양측은 합병추진위원회를 만들고 12개월 안에 본계약을 체결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통합 법인의 가칭은 ‘바른동인’이다. 아직 합병이 완료된 것은 아니다. 두 로펌의 2025년 매출을 합하면 1877억원이다. 외국변호사를 포함한 변호사는 바른 303명, 동인 250명으로 모두 553명이다. 계획대로 합병이 끝나면 매출 기준 국내 7위권으로 올라설 수 있는 규모다. 바른과 동인은 모두 송무와 형사 분야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로펌이다. 양측은 여기에 기업과 금융, 공정거래 등 자문 역량을 합치겠다는 구상이다. 2005년 김장리, 2007년 세종과의 합병을 추진했다가 뜻을 이루지 못했던 바른이 약 20년 만에 다시 대형 합병 카드를 꺼냈다. 합병의 규모가 큰 만큼 풀어야 할 일도 많다. 500명이 넘는 변호사의 보수와 사건 배분, 고객 충돌, 파트너 지분과 경영구조를 하나로 맞춰야 한다. 송무 중심 조직 두 곳이 단순히 사람을 더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업자문까지 함께 키울 수 있는지가 합병 이후의 문제다. ◆ ‘바르게 하자’에서 500명 로펌으로 바른의 출발에는 거창한 기업법무 전략이 없었다. 의정부 법조비리 사건 뒤 법원을 나온 젊은 판사들이 사무장과 브로커 없이 사건을 맡아보겠다고 만든 사무실이었다. 그 조직에 대법관과 고법부장, 검사장 출신들이 들어오면서 송무가 커졌고 뒤이어 조세와 금융, 공정거래, 기업자문을 붙였다. 2011년에는 주요 대형 로펌 가운데 처음으로 자체 사옥인 바른빌딩도 마련했다. 2023년에는 매출 1000억원을 넘어섰다. 변호사 6명 규모로 출발했던 조직은 이제 300명 안팎의 변호사가 일하는 중대형 로펌이 됐다. 그동안 바른은 송무의 힘으로 몸집을 키웠다. 그러나 지금 법률시장에서 더 큰 로펌이 되려면 기업자문과 금융, 국제분쟁까지 함께 가져가야 한다. 바른이 동인과 합병을 추진하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1998년에는 사무장 없이 사건을 맡는 일이 도전이었다. 2026년에는 500명이 넘는 변호사를 한 조직으로 묶는 일이 새로운 도전이 됐다. 바른의 다음 10년은 이번 합병이 실제로 어떤 조직을 만들어내느냐에 달려 있다.
2026-09-28 09:3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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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퇴직연금서 M&A까지…은행권 승계 영업 넓힌다
[경제일보] 은행권이 기업 오너와 최고경영자(CEO)를 겨냥한 승계 영업을 넓히고 있다. 기존 상속·증여 상담을 넘어 퇴직연금, 기업승계, 인수합병(M&A), 법률·세무 자문까지 묶어 개인 자산관리와 법인 영업을 동시에 확보하려는 전략이다. 3일 은행권에 따르면 하나은행은 최근 기업 CEO와 임원을 대상으로 한 'C-Level 퇴직연금 전담 컨설팅'을 시행했다. 이번 서비스는 임원 퇴직금 관련 세무·절세 상담과 퇴직연금 운용, 연금 수령 상담을 제공하는 것이 핵심이다. 여기에 소속 기업의 퇴직연금 제도와 경영성과급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 컨설팅까지 포함했다. 퇴직연금 외 종합자산관리가 필요한 고객에게는 금융자산 포트폴리오, 부동산 투자자문, 상속·증여, 기업승계, 신탁 활용 상속 설계 등도 연계한다. CEO 개인의 은퇴자산 관리에서 출발해 법인의 퇴직연금 제도 컨설팅까지 상담 범위를 넓힌 셈이다. 기업 고객을 대상으로는 별도의 기업승계 컨설팅과 M&A 금융지원도 제공하고 있다. 기업승계 컨설팅은 비상장주식 가치평가와 승계 방법·시기에 따른 세 부담 분석, 납세재원 마련, 법인 전환·기업 지배구조 변경 등을 다룬다. 지난 5월에는 기술보증기금과 기업승계 및 M&A 금융지원 업무협약을 맺고 총 20억원을 출연하기로 했다. 신한은행은 기업승계와 M&A 자문 영역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 5월 삼정KPMG와 중소·중견기업 M&A 및 기업승계 자문서비스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고 기업 오너와 영위 법인의 승계 수요 발굴에 나섰다. 협력 분야는 △기업 경영 컨설팅 △기업가치 평가 △M&A·가업승계 자문 △인수금융 △자산관리 연계 등이다. 신한은행은 거래 기업을 대상으로 수요를 발굴하고 삼정KPMG는 가치평가와 회계·세무, 거래 구조 검토 등을 맡는 구조다. 지난달에는 기술보증기금과 기업승계 및 기술혁신 촉진을 위한 M&A 금융지원 업무협약도 체결했다. 신한은행은 특별출연금과 보증료 지원금을 포함해 총 13억원을 출연하고, 양 기관은 438억원 규모의 협약보증부 여신을 공급할 예정이다. 우리은행은 기업승계지원센터를 중심으로 관련 사업을 먼저 확대했다. 지난 2월 회계·세무·M&A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전담 조직을 신설하고 중소·중견기업의 친족 승계, 임직원 승계, 제3자 매각 등을 지원하고 있다. 센터 신설 이후 우리은행은 554개 기업과 기업승계 업무협약을 체결했고 이 가운데 102개 기업에 컨설팅을 제공했다. 향후에는 연간 500개, 5년간 2500개 이상 기업에 승계 컨설팅을 제공한다는 목표다. KB국민은행은 상속·증여와 법률 자문을 앞세웠다. 지난달 김앤장 법률사무소와 상속 금융 비즈니스 상호협력 업무협약을 맺고 KB골든라이프센터의 종합자산승계 서비스를 강화하기로 했다. 양측은 상속 분쟁 예방을 위한 법률 자문과 상속세법 관련 교육, 세미나 등을 함께 추진한다. 해외 자산을 보유한 고객의 상속 상담과 비금융 분야 법률 자문 서비스도 제공할 계획이다. 은행권에서는 승계 수요가 단순 상속 상담을 넘어 법인 거래와 투자금융 수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기업 오너의 승계 과정에서 개인 자산관리와 법인 자금조달, 세무·법률 검토가 함께 필요해지는 만큼 관련 서비스도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중소기업 경영자 고령화와 후계자 부족도 은행권의 승계 영업 확대를 뒷받침하는 요인이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해 12월 M&A 방식의 기업승계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경영자가 60세 이상인 중소기업 비중이 3분의 1 수준이라고 밝혔다. 60세 이상 경영자 기업의 후계자 부재율은 28.6%로 추정됐다. 정진완 우리은행장은 지난 6월 생산적 기업승계 간담회에서 "기업승계는 단순히 한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임직원의 고용 유지와 기술력 보존, 산업 내 공급망 안정성과 직결되는 중요한 경제 과제"라며 "기업의 폐업이나 사업 축소를 방지하고 일자리와 기술, 산업 기반이 안정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생산적 기업승계 지원에 힘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2026-09-03 15: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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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홈플러스 회생계획안 최종 인가……파산 위기 넘기고 정상화 시동
[경제일보] 법원이 홈플러스의 회생계획안을 최종 인가하면서 홈플러스가 회생절차 폐지와 파산 위기에서 벗어나 경영 정상화를 추진할 수 있게 됐다. 채권자들의 동의를 얻어 회생을 위한 최대 고비는 넘었지만 5000억원이 넘는 미지급 납품대금 상환과 상품 공급 정상화, 점포 매각과 인수합병(M&A) 등은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았다. 서울회생법원 회생4부(정준영 법원장)는 2일 홈플러스 회생계획안 심리·결의를 위한 관계인집회를 열고 회생계획안이 가결되자 곧바로 인가 결정을 내렸다. 법원 인가는 홈플러스가 제출한 계획에 따라 채무를 갚고 경영 정상화를 추진할 수 있도록 공식 승인한 것이다. 법원, 회생안 즉시 인가…회생채권자 75.9% 찬성 이날 표결에서는 △담보가 설정된 채권을 보유한 회생담보권자 △일반 회생채권자 △주주가 각각 회생계획안에 대한 찬반 의사를 밝혔다. 회생담보권자와 주주는 각각 100%가 회생계획안에 찬성했고 회생채권자 찬성률은 75.9%를 기록했다. 회생계획안 가결에 필요한 기준은 회생담보권자 75% 이상, 회생채권자 66.7% 이상, 주주 50% 이상이었다. 재판부는 채권자 3분의 2 이상이 동의하는 등 인가 요건을 충족했다고 판단했다. 이번 인가로 홈플러스는 지난 7월 회생절차 폐지 결정 이후 두 달 만에 다시 정상화의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서울회생법원은 지난 7월 3일 홈플러스가 회생계획을 실행하는 데 필요한 운영자금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회생절차 폐지를 결정했다. 이후 2000억원 규모의 긴급운영자금(DIP) 조달 방안이 마련되면서 같은 달 21일 폐지 결정을 취소했고 홈플러스는 8월 13일부터 전국 67개 주요 점포의 영업을 재개했다. 법원 인가가 곧바로 회생절차 종료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홈플러스가 회생계획에 따라 채무 변제를 시작하고 계획을 정상적으로 이행해야 법원이 회생절차를 종결할 수 있다. 반면 변제가 계획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회생절차가 다시 폐지되고 파산 절차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5032억원 납품대금 상환…인가 이후도 과제 회생계획안이 법원 문턱을 넘었지만 실제 계획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현금 확보가 관건이다. 회생계획을 검토한 조사위원 삼일회계법인은 영업을 통한 현금 창출과 자가점포 매각, 신규 차입 계획 등을 종합할 때 홈플러스가 회생계획을 실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납품업체와 임직원 등 공익채권자들의 분할상환 동의를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공익채권은 기업이 회생절차를 밟더라도 일반 회생채권보다 먼저 갚아야 하는 채무다. 홈플러스가 지급하지 못한 납품대금을 비롯해 임금, 퇴직금, 세금, 4대 보험료, 임대료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공익채권자는 이날 관계인집회에서 회생계획안에 직접 표를 행사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분할상환에 동의하지 않은 채권자가 즉시 지급을 요구하면 홈플러스가 단기간에 마련해야 하는 자금이 늘어날 수 있어 회생계획의 실행 가능성을 좌우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관계인집회를 앞둔 지난 1일 기준 공익채권자의 분할상환 동의율은 64.4%로 집계됐다. 물품대금 채권자 66.2%, 임직원 88%가 분할상환에 동의했으며 정부기관들도 동의에 참여했다. 특히 홈플러스가 납품업체에 지급하지 못한 물품대금은 5032억원에 달한다. 홈플러스는 공익채권을 일정 기간에 걸쳐 전액 상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납품업체들의 협조를 끌어내는 동시에 실제 변제 재원을 확보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납품업체 문제는 매장 정상화와도 직결된다. 현재 일부 상품은 홈플러스가 대금을 먼저 지급해야 공급받을 수 있어 운영자금 범위 안에서 물량을 확보하고 있다. 납품이 원활하지 않으면 상품 구색이 줄어 매출 회복을 제약하고 매출이 충분히 늘지 않으면 다시 납품대금 상환 여력이 떨어질 수 있는 구조로 이어진다. 매출 회복세…점포 매각·M&A로 정상화 추진 영업 지표는 점포 재개장 이후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홈플러스에 따르면 전국 67개 점포가 정식 영업을 재개한 지난달 13일부터 30일까지 매출은 1164억원으로 영업 중단 전 같은 기간보다 57% 증가했다. 이 기간 고객 수는 38%, 구매회원 수는 255% 늘었다. 다만 최근 매출 증가가 재개장과 할인행사에 따른 일시적인 효과인지 지속적인 영업 회복으로 이어질지는 앞으로 지켜봐야 한다. 상품 공급을 정상화하고 안정적인 매출과 현금흐름을 만들어내는 것이 회생계획 이행의 전제가 되기 때문이다. 홈플러스는 회생계획 인가를 계기로 자산 매각과 추가 자금 조달에도 속도를 낼 전망이다. 적자 점포를 정리하고 폐점한 자가점포 가운데 19곳을 매각해 채권 변제 재원을 확보하는 한편 남은 사업을 대상으로 인가 후 M&A(인수·합병)도 추진할 계획이다. 결국 법원 인가로 홈플러스가 당장의 파산 위기는 넘겼지만 실제 회생 여부는 향후 계획 이행에 달렸다. 미지급 납품대금을 계획대로 갚으면서 상품 공급과 매출을 정상화하고 점포 매각과 신규 자금 조달, M&A까지 차질 없이 진행해야 경영 정상화로 이어질 수 있다.
2026-09-02 17:3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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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사장님'…자영업 과잉의 한국경제
[경제일보] 한국 경제의 특징 중 하나는 자영업자가 많다는 점이다. 골목마다 음식점과 카페, 편의점, 미용실, 학원, 배달·운송 사업자가 몰려 있다. 외형상으로는 창업 열기가 강한 사회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양질의 일자리 부족, 조기 퇴직, 재취업 시장의 한계, 사회안전망의 빈틈이 함께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통계청의 2025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비임금근로 및 비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비임금근로자는 655만4000명으로 전체 취업자의 22.6%를 차지했다. 이 가운데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는 143만5000명,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는 424만1000명이었다. 비임금근로자는 자영업자와 무급가족종사자를 함께 포함하는 개념이다. 국제 비교에서도 한국의 자영업 비중은 주요 선진국보다 높은 편으로 분류된다. 다만 국가별 통계는 단순 비교에 주의가 필요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자영업률은 전체 취업자 중 자영업자가 차지하는 비중을 뜻하지만, 국가마다 법인화된 자영업자와 무급가족종사자 처리 방식이 다를 수 있다. 세계은행의 국제노동기구(ILO) 모델 추정치도 고용주, 자기계정근로자, 생산자협동조합원, 무급가족종사자 등을 자영업 범주에 포함한다. 그럼에도 큰 흐름은 분명하다. 한국은 자영업자만 따로 봐도 20% 안팎, 무급가족종사자를 포함한 비임금근로자 기준으로는 20%대 초반 수준이다. 반면 미국은 기준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한 자릿수 중후반에서 10% 안팎으로 집계되고, 독일과 일본도 대체로 10% 안팎으로 한국보다 낮은 수준으로 평가된다. 한국의 높은 자영업 비중은 단순한 개인 선택의 결과라기보다 노동시장 구조가 만들어낸 현상에 가깝다. 경제가 고도화될수록 영세 자영업 비중은 줄어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기업과 프랜차이즈, 전문 서비스 기업이 구매력과 물류, 마케팅, 디지털 시스템을 앞세워 개인 점포를 대체하거나 흡수하기 때문이다. 소비자는 더 낮은 가격과 표준화된 서비스를 선택하고 근로자는 사업 위험을 직접 부담하는 자영업보다 안정적인 임금근로를 선호하게 된다. 미국과 유럽 주요국에서 자영업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임금근로자가 의료보험, 연금, 유급휴가, 실업보험 등 각종 제도 혜택을 받을 수 있고 실직하더라도 실업급여와 재취업 지원을 통해 일정 기간 버틸 수 있다. 약국, 슈퍼마켓, 식당, 자동차 정비, 요양 서비스 등 생활 서비스의 상당 부분도 대형 체인과 기업 중심으로 운영된다. 개인이 점포를 열어 생계를 해결해야 할 압력이 한국보다 낮은 셈이다. 창업과 유지 비용도 차이가 있다. 미국과 유럽은 건축·소방·위생 규정, 장애인 편의시설 기준, 노동법 준수 부담이 크다. 진입 장벽이 높은 만큼 무리한 생계형 창업이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효과도 있다. 다만 유럽도 국가별 차이는 크다. 그리스,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 남유럽 국가는 가족 사업과 관광·소매 서비스 비중이 커 북유럽이나 독일보다 자영업 비중이 높은 편이다. 한국의 경우 사정이 다르다. 압축 산업화 과정에서 농촌 인구가 도시로 빠르게 이동했지만 기업 일자리가 이를 모두 흡수하지 못했다. 제조업과 대기업은 성장했지만 직접 고용의 폭은 제한적이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복지 격차도 커졌다. 안정적인 일자리에 진입하지 못한 인력은 소규모 도소매업, 음식·숙박업, 개인서비스업으로 흘러갔다. 조기 퇴직과 늦은 실질 은퇴도 한국 자영업 구조를 키운 요인이다. 50대 전후로 주된 일자리에서 밀려나는 경우가 많지만 경력을 살릴 재취업 시장은 충분하지 않다. 국민연금 수령 전까지 소득 공백이 발생하고 퇴직금은 생계형 창업의 초기 자금으로 쓰인다. 음식점, 카페, 편의점, 프랜차이즈, 배달·운송업 등은 비교적 진입이 쉽지만, 같은 업종에 창업자가 몰리면서 과당경쟁이 반복된다. 자영업은 한국 경제에서 일종의 완충지대 역할을 해왔다. 기업과 노동시장이 충분히 흡수하지 못한 인력을 받아들이고, 퇴직 이후 소득 공백을 메우는 제2의 노동시장 기능을 해온 것이다. 문제는 이 완충지대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소비 증가보다 점포 수가 빠르게 늘면 매출은 나뉘고, 임대료와 인건비, 원재료비, 플랫폼 수수료 부담은 커진다. 결국 상당수 자영업자는 ‘사장’이라는 이름과 달리 장시간 노동과 낮은 수익성에 노출된다. 동아시아 국가와 비교해도 한국의 구조는 독특하다. 일본은 장기고용 문화와 정년 후 재고용 제도, 대형 유통망 발달로 한국보다 자영업 비중이 낮은 편이다. 중국은 농업 인구와 비공식 경제, 플랫폼 노동 비중이 커 자영업률이 높게 나타날 수 있지만, 이는 OECD 회원국 중심의 선진국 비교와는 별도로 봐야 한다. 대만은 중소기업과 소규모 제조업 생태계가 발달해 자영업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으로 평가되지만, 공식 통계 기준을 따로 확인해 비교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자영업 문제를 창업 지원만으로 풀기는 어렵다고 지적한다. 창업 교육과 금융 지원이 필요하더라도 이미 포화된 업종에 더 많은 창업자를 밀어 넣는 방식은 한계가 크다는 것이다. 핵심은 양질의 임금 일자리 확대, 중장년 재취업 시장 개선, 직업훈련 강화, 실업·연금 안전망 보완으로 꼽힌다. 한 노동시장 전문가는 “한국의 높은 자영업 비중은 창업 정신이 강해서라기보다 노동시장이 충분한 선택지를 제공하지 못한 결과에 가깝다”며 “자영업자는 경제 활력의 한 축이지만, 동시에 임금 노동시장이 흡수하지 못한 인력이 스스로 위험을 떠안는 구조의 반영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자영업 대책은 소상공인 지원 정책인 동시에 고용·복지·은퇴 정책이어야 한다”며 “창업하지 않아도 버틸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와 재취업 기회, 실업·연금 안전망을 넓히는 것이 근본 대책”이라고 강조했다.
2026-08-08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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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퇴직·개인연금 한눈에…Npay, AI 노후진단 시작
[경제일보] 네이버페이(Npay)가 여러 기관과 금융회사에 흩어진 연금 자산을 한곳에서 조회하고 인공지능(AI)으로 노후 준비 수준을 진단하는 ‘Npay 연금’을 출시했다고 23일 밝혔다. 이용자는 마이데이터를 연결해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과 개인연금, 개인형퇴직연금(IRP),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을 한 화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자동 연계가 어려운 확정급여형(DB) 퇴직금은 직접 입력해 통합 관리할 수 있다. 동일 연령대 이용자와 연금 준비 수준을 비교하는 기능도 제공한다. 연금 자산 상위 30%에 해당하는 ‘또래 고수’와 예상 수령액, 누적 평가금액, 월평균 납입액, 투자수익률 등을 비교해 자신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연령별로 많이 보유한 연금상품 정보도 보여준다. AI는 이용자의 연금 종류와 적립액, 납입 현황, 수익률을 분석해 필요한 관리 방안을 메시지 카드로 안내한다. 개인연금이 없는 이용자에게는 국민·퇴직·개인연금으로 구성되는 ‘3층 연금체계’를 설명하고, 예상 수령액이 목표 생활비보다 부족하면 추가 납입 필요성을 알려준다. ‘연금 계산기’에 희망 은퇴 시점과 목표 생활비를 입력하면 목표 달성에 필요한 월 추가 납입액과 목표 수익률을 계산할 수 있다. 포트폴리오 점검이 필요한 이용자는 우리은행과 한국투자증권의 연금 전문가에게 무료 상담도 받을 수 있다. 다만 또래 비교와 AI 진단은 참고 자료다. 같은 연령이라도 소득과 은퇴 시점, 주거비, 부채, 가족 구성에 따라 필요한 노후자금이 달라진다. 공적연금 예상액도 가입 기간과 소득, 제도 변화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상담을 통해 금융상품을 추천받을 경우 수수료와 원금 손실 가능성, 중도해지 조건 등을 별도로 확인해야 한다. 이번 서비스는 네이버페이가 결제 플랫폼에서 AI 기반 종합 자산관리 서비스로 사업을 확대하는 전략의 일환이다. 장기간 관리가 필요한 연금을 중심으로 이용자와의 접점을 넓히고 은행·증권사 상담 및 금융상품으로 연결하려는 구상이다. 조재박 Npay 최고비즈니스책임자(CBO)는 “사용자들이 더 일찍 노후 준비에 관심을 갖고 연금상품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도록 데이터와 AI를 활용해 서비스를 고도화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Npay 연금은 Npay 금융 홈과 ‘내 자산’, 전체 메뉴의 ‘자산관리·MY 연금’에서 이용할 수 있다.
2026-07-23 13:5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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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은 쉬고, 노인은 일한다… 뒤집힌 노동시장의 경고
한 사회의 미래는 노동시장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한다. 일할 사람은 일하지 못하고, 쉬어야 할 사람은 생계를 위해 일터를 떠나지 못한다면 그 사회는 이미 구조적 병에 걸린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이 바로 그 갈림길에 서 있다.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은 취업 문턱 앞에서 좌절한 채 구직을 포기하고, 환갑과 칠순을 넘긴 노년층은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새벽부터 경비실과 청소 현장, 배달과 단순노무 일자리로 향하고 있다. 청년은 쉬고 노인은 일하는 기이한 풍경은 우리 노동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가장 적나라한 증거다. 표면적으로는 고용률이 유지되고 실업률도 안정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통계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사정은 전혀 다르다. 청년층에서는 '쉬었음' 인구와 니트(NEET)족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취업을 준비하다 지쳐 아예 노동시장을 떠나는 청년들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고령층 고용은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생산성이 높은 양질의 일자리가 늘어난 결과가 아니다. 부족한 연금과 불안한 노후를 메우기 위한 생계형 노동이 대부분이다. 숫자는 좋아졌지만 내용은 오히려 악화된 셈이다. 이 같은 현상은 경기 침체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우리 노동시장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이중구조와 산업구조의 변화가 맞물린 결과다. 청년들이 원하는 대기업과 공공기관, 정보기술(IT)·첨단산업 분야의 일자리는 제한적인 반면, 중소기업과 서비스업의 처우는 여전히 열악하다. 임금과 복지, 승진 기회에서 큰 격차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청년들이 중소기업 취업을 쉽게 선택하기 어려운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결과다. 문제는 이러한 격차가 시간이 갈수록 더욱 고착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청년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고도 자신의 역량을 펼칠 무대를 찾지 못하고 있다. 반대로 기업들은 사람을 구하지 못한다고 호소한다. 사람은 넘치는데 일할 사람은 없다는 모순은 노동시장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결국 청년들은 취업 준비 기간만 길어지고, 사회 진출은 늦어지며, 결혼과 출산까지 미루게 된다. 노동시장의 문제가 인구 감소와 저출산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반면 고령층의 현실은 더욱 절박하다. 기대수명은 길어졌지만 노후 준비는 충분하지 못하다. 국민연금만으로는 생활이 어렵고 퇴직금도 오래 버티지 못한다. 은퇴 이후에도 다시 노동시장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러나 이들에게 주어지는 일자리는 대부분 저임금 단순노무직이다. 경비원, 청소원, 공공근로 등 이른바 생계형 일자리가 고령층 고용 증가를 떠받치고 있다. 이는 고령자의 경험과 전문성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 사회적 낭비이기도 하다. 이제 노동시장 개혁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무엇보다 청년들이 도전할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신산업에 대한 과감한 규제 혁신과 기업 투자 활성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인공지능(AI), 반도체, 바이오, 미래 모빌리티 등 성장 산업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지속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동시에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과도한 임금과 복지 격차를 줄이고, 직무와 성과 중심의 임금체계를 확대해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 첫 직장의 선택이 평생의 소득과 계층을 결정하는 구조를 그대로 둔 채 청년들에게 도전만 요구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정년 연장 논의 역시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 고령화 시대에 일정한 정년 연장은 불가피한 흐름이다. 그러나 단순히 정년만 늘리는 방식은 청년 고용을 위축시킬 가능성이 있다. 해법은 세대 간 일자리 나누기에 있다. 정년 연장과 임금피크제, 직무급제를 함께 도입하고 고령 근로자의 숙련과 경험을 활용할 수 있는 적합 직무를 확대해야 한다. 절감된 인건비는 청년 신규 채용으로 연결되는 구조를 제도화해야 한다. 고령자의 안정적인 고용과 청년의 새로운 기회는 상충하는 가치가 아니라 함께 추구해야 할 과제다. 공자는 "정치는 백성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했고, 맹자는 "항산(恒産)이 있어야 항심(恒心)이 생긴다"고 했다. 안정된 일자리는 개인의 생계를 넘어 공동체의 질서를 지탱하는 기반이다. 지금처럼 청년은 미래를 잃고 노인은 노후를 잃는 노동시장을 방치한다면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성은 심각한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정부와 정치권, 노동계와 경영계는 더 이상 기득권 수호와 이해관계만을 앞세워서는 안 된다. 청년에게는 희망을, 장년에게는 존엄을 보장하는 새로운 사회적 계약을 만들어야 한다. 세대가 서로의 일자리를 빼앗는 구조가 아니라 경험과 혁신이 공존하는 노동시장을 구축하는 것, 그것이 초고령 사회를 앞둔 대한민국이 반드시 넘어야 할 시대적 과제다. 노동개혁의 골든타임은 결코 길지 않다.
2026-07-19 1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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