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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야드 공항 피격이 울린 경고음…에너지 안보가 곧 국익이다
[경제일보] 중동의 불길이 세계 경제의 급소를 겨누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의 관문인 킹칼리드 국제공항이 예멘 후티 반군의 미사일 공격을 받고 운항이 중단됐다는 소식은 중동 정세의 불안정성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준다. 공항에 대한 공격이 잇따르는 가운데 석유 시설과 주요 해상 수송로까지 위협받으면서 지역의 안보 불안이 세계 경제에 미칠 파장도 커지고 있다. 민간 항공 인프라까지 위협받는 상황에서 에너지 생산과 수송의 핵심 거점 역시 안전을 장담하기 어렵다. 이번 사태를 또 하나의 국지적 무력 충돌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중동의 안보 불안이 국제유가의 변동성과 해상 운임, 보험료 상승 압력을 키우고 글로벌 공급망을 흔들 수 있다는 엄중한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무력으로 민간 시설을 위협하고 국제사회의 안정을 해치는 행위는 용납될 수 없다. 국제사회는 민간인의 안전과 국제법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긴밀히 공조해야 한다. 그러나 규탄 성명만으로 위기를 막을 수는 없다. 중동의 긴장이 고조될 때마다 국제유가는 출렁이고 해상 운임과 보험료는 상승 압력을 받는다. 원유 수송로가 위협받거나 공급 차질 우려가 커지면 에너지 가격은 실제 수급 악화 이전부터 움직인다. 시장의 불안이 물가를 밀어 올리고 기업의 생산비용을 높이며 가계의 구매력을 떨어뜨리는 연쇄 충격이 발생하는 것이다. 한국에 이번 사태가 결코 남의 일이 아닌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나라는 에너지 자급 기반이 취약하고 원유 수입의 상당 부분을 해외에 의존하는 대표적인 자원 빈국이다. 올해 들어 수입선 다변화로 중동산 원유 비중이 낮아졌지만, 여전히 전체 원유 수입의 절반을 웃돈다. 주요 해상 수송로에 대한 의존도 역시 높아 지역 분쟁이 장기화하면 충격을 피하기 어렵다. 국제유가가 오르면 정유·석유화학업계의 원가 부담이 커지고, 운송비와 생산비용을 통해 산업 전반으로 파장이 번진다. 수입물가 상승은 소비자물가를 자극하고 기업의 채산성 악화는 투자와 고용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고환율까지 겹친다면 같은 양의 원유를 들여오는 데 더 많은 원화를 지출해야 한다. 중동의 안보 위기가 우리 경제의 물가와 성장, 민생을 동시에 압박하는 구조다. 그런데도 위기가 터진 뒤 유가 동향을 살피고 임시 대책을 내놓는 데 그친다면 정부의 존재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에너지 안보는 가격이 급등한 뒤 대응하는 사후 관리가 아니라 공급 차질을 가정하고 미리 대비하는 국가 생존 전략이어야 한다. 정부는 국제유가와 해상 운송로의 위험 수준을 상시 점검하고, 비상 상황별 원유 수급 계획과 부처 간 대응 체계를 구체화해야 한다. 전략 비축유의 규모뿐 아니라 방출 기준과 실행 절차, 실제 공급까지 걸리는 시간도 점검해야 한다. 위기 때 꺼내 쓸 수 없는 비축유는 장부상의 숫자에 불과하다. 에너지 수입선 다변화도 더는 미룰 수 없다. 중동 의존도를 단기간에 획기적으로 낮추기는 어렵지만 미국과 다른 산유국 등으로 도입선을 넓히고 공급 계약과 수송 경로를 분산해 특정 지역의 위기가 국가 전체의 공급 위기로 번지는 위험을 줄여야 한다. 액화천연가스(LNG)와 핵심 원자재 역시 공급망 취약성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원전·재생에너지 등 국내 에너지 기반을 안정적으로 확충하는 일도 장기적인 대응책이다. 에너지 전환은 구호나 이념이 아니라 공급 안정성, 경제성, 환경성을 함께 따지는 현실적 원칙 위에서 추진해야 한다. 기업과 시장의 대응을 뒷받침할 정교한 정책도 필요하다. 정부는 정유·석유화학·항공·해운 등 에너지 가격과 수송 차질에 민감한 업종의 위험 노출을 점검하고, 중소기업의 원가 부담과 자금 경색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국제유가 상승을 빌미로 한 담합이나 부당한 가격 인상은 엄정하게 감시하되, 시장 가격을 무리하게 억누르는 방식으로 공급을 위축시켜서도 안 된다. 취약계층 지원은 대상을 명확히 하고 한시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위기 대응을 명분으로 재정 부담을 무작정 늘리는 것은 또 다른 위험을 키우는 일이다. 외교·안보 역시 경제와 분리해 생각할 수 없다. 한국은 한미동맹을 토대로 주요 우방국과 정보 공유, 해상교통로 보호, 공급망 안정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동시에 중동 국가들과의 외교 채널을 유지해 우리 국민과 기업의 안전을 확보하고 에너지 공급 차질을 최소화해야 한다. 어느 한쪽에 대한 정치적 구호에 매달리기보다 국제법과 원칙을 지키면서 실질적인 국익을 확보하는 실용 외교가 중요하다. 에너지 수송로의 안전은 특정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경제가 함께 지켜야 할 공공재다. 정치권도 정쟁을 멈추고 국가 에너지 안보를 초당적 과제로 다뤄야 한다. 비축 시설과 수입선 다변화, 에너지 효율 투자에는 시간과 비용이 든다. 위기가 잠잠해지면 예산과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정부는 위기 때마다 국민에게 절약을 호소하기에 앞서 얼마나 치밀하게 대비했는지부터 설명해야 한다. 리야드 공항을 둘러싼 위기는 중동의 불안이 언제든 한국의 공장과 물류망, 국민의 밥상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일깨운다. 에너지 안보를 시장에만 맡길 수도, 정치적 구호로 해결할 수도 없다. 정부는 비축과 다변화, 외교와 산업정책을 하나의 국가 전략으로 묶어야 한다.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능력이 곧 경제의 경쟁력이고, 위기 속에서도 국민의 삶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이 국가의 실력이다. 위기가 닥친 뒤 허둥대는 나라와 위기를 예상하고 대비한 나라의 차이는 평상시의 준비에서 결정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낙관론이 아니라 실행이고, 임시방편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에너지 안보 체계다.
2026-10-13 10: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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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공항 피습에 321명 사상…미국 참전 가능성에 중동 확전 우려
[경제일보] 미국이 예멘 후티 반군의 공격을 받는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군사 지원을 넘어 직접 참전할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중동 정세가 다시 격랑에 휩싸이고 있다. 사우디 방어를 둘러싼 미국의 선택이 예멘 전쟁의 확전 여부를 가를 변수로 떠오른 가운데, 홍해 해상 물류와 에너지 공급망, 사우디의 글로벌 투자 유치 전략에도 부담이 커질 전망이다. 10일(이하 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는 수도 리야드의 킹칼리드 국제공항이 테러 집단인 후티 미사일 부대의 공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로이터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사우디 민간항공청은 사망자 가운데 사우디 국민 4명과 외국인 8명이 포함됐으며, 부상자 일부는 위중한 상태로 최소 12명이 숨지고 309명이 다친 것으로 집계됐다. 공격 이후 공항 운영이 일시 중단됐고 항공편 취소와 지연이 잇따랐다. 이번 공격은 사우디의 민간 항공 인프라를 겨냥한 연쇄 공격의 일부로 분석된다. 같은 주 리야드 공항이 앞서 두 차례 공격을 받았고, 동부 담맘의 킹파드 국제공항 인근에도 발사체가 떨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후티 반군은 사우디 영공을 군사작전 지역으로 규정하며 항공사들에 해당 영공을 피하라고 경고했다. 민간 공항을 겨냥한 공격이 반복되면서 사우디의 방공 역량과 핵심 기반시설 보호 능력도 시험대에 올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공격 이후 후티 반군을 겨냥한 사우디의 군사작전에 미국이 합류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는 미국이 사우디의 공습에 참여할 것이냐는 질문에 "그럴 수도 있다"며 "검토해보겠다"고 답했다. 사우디에서 발생한 일을 용납할 수 없다며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도 대화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다만 미국의 직접 참전 여부나 구체적인 군사 대응 방식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미국의 선택에 따라 충돌 범위가 확대될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방공 지원이나 정보 공유에 그칠지, 후티 반군의 미사일 발사 시설 등을 겨냥한 직접 타격에 나설지에 따라 전황은 달라질 수 있다. 미국이 군사 행동에 나설 경우 후티 반군의 보복 공격이 사우디 내 주요 시설이나 역내 다른 목표물로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전쟁의 파장은 홍해 해상 물류로도 이어질 수 있다. 홍해와 아덴만을 잇는 바브엘만데브 해협은 유럽과 아시아를 오가는 주요 해상 운송로 가운데 하나다. 앞서 이 일대에서 공격 위협이 커지면 선사들이 항로를 우회하거나 운항을 조정해 왔고, 운송 기간과 보험료 등 물류 비용에도 압력이 생긴 바 있다. 특히 에너지 수송과 관련 산업의 공급망이 영향을 받을 경우 중동 지역을 넘어 국제 교역 전반의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 사우디가 추진해온 국제 투자 유치 전략도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사우디에서는 세계 석유업계 관계자와 정책 당국자가 모이는 세계석유회의(WPC)가 11일부터 오는 15일까지 열릴 예정이며, 오는 26일부터 29일까지는 대형 투자 행사인 미래투자이니셔티브(FII)가 예정돼 있다. 주최 측은 두 행사 모두 계획대로 진행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우디는 관광과 국제 행사, 해외 자본 유치를 통해 석유 의존도를 낮추는 경제 다변화를 추진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공항과 에너지 시설을 겨냥한 공격이 반복되면 투자자들이 사업 기회뿐 아니라 현지의 안전과 운영 위험까지 함께 따져볼 수밖에 없다. 당장 투자 위축을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군사적 긴장이 장기화할수록 사우디가 내세운 안정적인 사업 환경과 국제 행사 개최 역량을 입증해야 하는 부담은 커질 전망이다. 아랍에미레이트 외교부는 성명을 통해 "이번 공격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주권을 명백히 침해하고 안보와 안정을 위협하는 행위"라며 "사우디아라비아와 전폭적인 연대를 표명하며, 사우디의 안보와 안정 유지를 위한 모든 조치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2026-10-11 14:4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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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0.9조 '슈퍼예산' 국회로…성장 투자냐, 재정 재량 확대냐
[경제일보] 정부가 820조9000억원 규모의 2027년도 예산안을 편성하면서 국회 심사의 막이 오른다. 올해 본예산보다 93조원, 12.8% 늘어난 사상 최대 규모다. 총지출이 800조원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반도체 호황으로 총수입이 200조원 넘게 늘어나는 특수한 세수 여건을 바탕으로 인공지능(AI), 반도체, 미래산업, 청년, 지방, 민생 분야에 대규모 재정을 투입하겠다는 게 정부 구상이다. 관전 포인트는 분명하다. 정부는 이번 예산안을 잠재성장률 반등과 양극화 완화를 위한 ‘성장 투자 예산’으로 규정하고 있다. 반면 국회 심사 과정에서는 162조원 규모 미래대응기금의 운용 방식, 100조원대 지출 구조조정의 타당성, 지방교육재정교부금과 교부세 개편의 파장, 2030년 총지출 1000조원 시대의 재정 지속 가능성이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정부는 1일 청와대에서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고 ‘2027년 예산안’과 ‘2026~2030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심의·의결했다. 내년도 총수입은 880조8000억원으로 올해보다 205조6000억원, 30.4%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국세수입은 584조4000억원으로 49.8% 늘어날 것으로 봤다. 법인세와 소득세 증가, 반도체 호황에 따른 세입 개선이 수입 확대의 핵심 배경이다. 수입 증가 폭이 지출 증가 폭을 웃돌면서 재정지표는 일시적으로 개선될 전망이다. 정부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이 올해 본예산 기준 3.9%에서 내년 0.1%로 낮아지고, 국가채무비율도 51.6%에서 48.3%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확장 재정 기조가 이어지면서 2030년 총지출은 1005조2000억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첫 쟁점은 162조 미래대응기금 가장 큰 쟁점은 미래대응기금이다. 정부는 최근 10년 내국세 증가 추세선을 웃도는 추가세수를 기금에 적립해 경기 변동과 세수 급감에 대비하는 ‘재정 댐’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내년 추가세수 162조3000억원을 기금에 적립하고, 이 가운데 45조4000억원은 청년, 성장동력, 지방, 교육·인재 등 4대 분야에 투입한다. 또 12조5000억원은 국채 신규 발행 물량을 줄이는 데 활용하고, 104조4000억원은 여유자금으로 비축한다. 정부는 세수가 급격히 줄거나 경기 대응이 필요할 때 추가경정예산 편성 없이 기금 변경으로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국회 심사에서는 기금 운용의 투명성과 국회 통제 문제가 쟁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기금은 일반 예산보다 행정부 재량이 크다. 정부가 미래대응기금의 주요 항목 지출 금액을 일정 범위 안에서 대통령령으로 변경할 수 있도록 국가재정법 개정을 추진하는 점도 논란거리다. 야당과 재정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세수 호황기에 여윳돈이 생기면 우선 국가채무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올 수 있다. ◆AI·반도체에 21조원…미래산업 투자 확대 정부는 잠재성장률 반등을 위해 3대 메가프로젝트와 AI 분야에 21조3000억원을 배정했다. 올해 10조8000억원보다 97.2% 늘어난 규모다. 반도체, 피지컬 AI, AI 데이터센터 등 국가 전략 프로젝트를 집중 지원해 한국 경제의 차세대 성장축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반도체 분야에서는 2조6000억원 규모의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특별회계’를 신설한다. 용인·평택 반도체 생산기지 조기 가동을 위한 기반시설 투자에 1000억원을 배정하고,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의 신속한 착공을 위해 1조5000억원을 지원한다. 반도체 산업단지 전력 공급을 위한 지중 송전망과 고압 변전소 등 전력 인프라에도 881억원을 투입한다. 서남권·충청권 산업단지 용수 공급과 수자원시설 확충에는 1277억원이 배정됐다. AI 분야에는 4조7000억원을 투입한다. 정부는 그래픽처리장치(GPU) 1만 장과 데이터, 인재를 집중 지원해 독자 AI 모델 고도화에 나선다. 이를 기반으로 ‘모두의 AI’를 개발해 대국민 서비스에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미래 성장엔진 확충 예산은 올해 51조2000억원에서 내년 62조8000억원으로 늘어난다. 정부는 우주항공, 바이오, 모빌리티, 원자력, 방산 등 10대 전략기술 분야에 15조원을 투입하고, 소형모듈원자로(SMR), 핵융합, 양자, 우주항공, 첨단바이오 등 미래선도기술 분야 연구 기반도 강화한다. 재생에너지 보급 예산은 9000억원에서 1조8000억원으로 두 배 늘어난다. ◆청년·지방 예산 급증…양극화 대응 전면에 청년 지원 예산은 올해 28조2000억원에서 내년 43조3000억원으로 53.5% 확대된다. 교육, 일자리, 자산, 주거, 혼인·출산·양육, 생활·문화 등 성장단계별 종합 지원에 나서겠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첨단산업 인재양성 부트캠프를 두 배로 늘리고, 대학생 6만 명에게 졸업 전 현장 경험을 제공하는 인턴학기제를 추진한다. K-뉴딜아카데미 등 첨단 분야 직업훈련도 확대한다. 창업안심보험을 신설해 취업 초기 청년에게 보험료의 최대 80%를 지원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자산 형성 지원도 강화된다. 출생부터 18세까지 연 최대 120만원을 지원하는 ‘우리아이자립펀드’를 신설하고, 청년미래적금은 소득요건을 없애 모든 청년이 가입할 수 있도록 개편한다. 주거 분야에서는 청년 공공임대주택 10만6000호를 공급하고, 비아파트 구매 시 월세 수준으로 내 집 마련이 가능한 청년미래보금자리론을 도입한다. 혼인지원금, 출산지원금, 아동기본수당을 묶은 저출생 대응 3종 패키지도 신설한다. 지역균형발전 예산도 대폭 늘어난다. 국토 대전환과 지방주도 성장 예산은 올해 16조1000억원에서 내년 33조원으로 확대된다. 정부는 5극3특 성장엔진특별보조금을 신설해 앵커기업이 지방에 대규모 투자를 할 경우 설비투자액의 최대 50%를 지원할 계획이다. 지방 의료공백 해소를 위한 지역 필수의료 지원 예산은 8000억원에서 1조3000억원으로 늘어난다. 2027년 신입생부터 지방 국립대에 전액 장학금을 지원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소상공인과 취약계층 민생 안정 예산은 10조원에서 15조4000억원으로 늘고, 코로나 피해 소상공인의 장기연체 채무 특별조정에는 7000억원이 투입된다. ◆지출 구조조정 107조…교부금 개편 충돌 가능성 정부는 대규모 확장 재정과 함께 107조6000억원 규모의 지출 구조조정도 병행한다. 소규모·관행적 사업과 불요불급한 경상비, 저성과·유사·중복 사업을 줄여 38조6000억원을 절감하고, 의무지출 조정으로 69조원을 줄인다는 계획이다. 국회 심사에서 특히 논란이 예상되는 부분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과 교부세 개편이다. 정부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의 내국세 연동제 폐지로 32조5000억원을 줄이고, 교부세 산정 방식 개편으로 30조5000억원을 절감한다는 방침이다. 저출생으로 학령인구가 줄어드는 만큼 교육재정 구조를 조정해야 한다는 게 정부 논리다. 그러나 교육계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반발이 나올 수 있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지역 교육재정의 핵심 재원이고, 교부세는 지방정부의 재정 운영과 직결된다. 정부가 지방 투자 예산을 대폭 늘리면서도 기존 지방·교육 재정 배분 방식을 바꾸겠다고 한 만큼, 국회에서는 재원 배분의 형평성과 지역별 영향이 주요 쟁점이 될 전망이다. ◆국회 심사 본격화…12월 2일 법정 시한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을 회계연도 개시 120일 전인 9월 3일까지 국회에 제출한다. 국회는 상임위원회 예비심사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심사, 본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예산안을 확정한다. 국회가 예산안을 의결해야 하는 법정 시한은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인 12월 2일이다. 이번 예산안은 반도체 호황이라는 특수한 세수 여건을 바탕으로 성장과 분배, 미래 투자와 재정 안정성을 동시에 추진하겠다는 성격이 강하다. 정부는 적극 재정을 통해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고 양극화를 완화하겠다는 입장이다.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은 “내년도 적극적인 재정 투자를 통해 V자형 경제 회복을 보다 공고히 견인하고, 성장주도형 재정 선순환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반면 국회에서는 ‘슈퍼예산’의 방향과 재정 운용 방식에 대한 검증이 불가피하다. 820조9000억원이라는 지출 규모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돈이 어디에, 얼마나 효율적으로 쓰이느냐다. AI·반도체·청년·지방 투자처럼 미래 성장과 사회 구조 개선에 필요한 예산은 힘을 받을 수 있지만, 미래대응기금의 행정부 재량 확대와 지방교육재정·교부세 개편은 치열한 공방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2027년도 예산안 심사는 정부가 내세운 ‘성장 투자’ 논리가 국회에서 얼마나 설득력을 얻느냐의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반도체 호황이 만들어낸 일시적 세수 여력을 미래 성장의 마중물로 쓸 것인지, 재정 건전성과 국회 통제를 우선해야 하는지를 둘러싼 논쟁이 정기국회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2026-09-01 14: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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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 '간판 전기차' EV9, 美 리콜 벌써 10건…조지아 생산 품질관리 시험대
[경제일보] 기아의 플래그십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EV9이 미국 시장에서 출시된 지 3년도 되지 않아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 안전 리콜 캠페인에 10차례 이름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소프트웨어 오류뿐 아니라 기어 구동장치 용접, 좌석 고정 볼트, 배터리 셀, 조수석 탑승자 감지장치 등 생산·조립 및 부품 단계에서 발생한 문제가 상당수를 차지했다. 특히 미국 조지아 공장에서 생산된 EV9 가운데 지난해 구동계 결함으로 리콜됐던 342대는 최근 발표된 2만1290대 규모의 조수석 에어백 관련 리콜 범위에도 모두 포함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같은 차량군이 서로 다른 두 개의 안전 결함 리콜을 받는 셈이다. 1일 본지가 NHTSA 자료와 미국 자동차 정보업체 Cars.com의 EV9 리콜 데이터베이스를 전수 확인한 결과, EV9이 포함된 NHTSA 안전 리콜 캠페인은 현재 10건이다. 2024년 4월 차동기어 볼트 문제를 시작으로 안전벨트, 천장 내장재, 원격주차 시스템, 계기판, 좌석 고정 볼트, 후륜 기어 구동장치(GDU), 계기판, 고전압 배터리, 탑승자 감지 시스템으로 결함 범위가 확대됐다. 10건을 원인별로 다시 분류하면 더 눈에 띄는 대목이 나온다. 원격 스마트주차와 계기판 등 소프트웨어·전자제어 계통을 제외하면 7건이 부품 제조, 체결, 용접, 배선·튜브 배치, 배터리 셀 등 물리적인 부품·생산 관련 문제다. 또 안전벨트, 헤드라이너, 계기판 및 이번 탑승자 감지장치 등 5건은 FMVSS(미 연방자동차안전기준)를 충족하지 못해 실시된 ‘비준수 리콜’이었다. 단순한 신차 소프트웨어 안정화 문제만으로 보기 어려운 이유다. ‘미국산 1호 전기차’ 내세웠는데…조지아산 342대, 두 리콜 겹쳤다 기아가 지난달 21일 NHTSA에 제출한 Part 573 안전리콜 보고서에 따르면 대상은 2025~2026년형 EV9 2만1290대다. 대상 차량은 2024년 5월 17일부터 올해 5월 13일까지 기아 조지아 공장에서 생산된 EV9이다. 2025년형의 경우 조지아 생산분은 전량 대상인 반면 한국에서 생산된 2025년형은 리콜 대상이 아니라고 명시했다. 기아가 실제 결함이 있을 것으로 추산한 비율은 6%다. 원인은 조수석 아래 탑승자 감지 시스템(ODS)에 연결된 블래더 튜브다. 1차 부품 공급업체가 튜브를 적절하게 배치하지 않아 조수석을 최고 높이까지 올릴 경우 튜브가 눌릴 수 있고, 좌석 높이와 각도를 반복해 조절하면 손상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어린이나 어린이용 카시트가 조수석에 있어도 전면 에어백을 정상적으로 억제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NHTSA 보고서에 적시된 1차 공급업체는 조지아주 웨스트포인트의 애디언트(Adient)다. 더 주목되는 것은 조지아 생산분의 이전 리콜과의 관계다. NHTSA 캠페인 25V115000(SC337)은 2024년 10월 11일부터 12월 19일까지 기아 조지아 공장에서 생산된 2025년형 듀얼모터 e-AWD EV9 342대를 대상으로 했다. 후륜 GDU 내부 모터 샤프트가 공급업체의 용접 오류로 손상돼 주행 중 구동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문제였다. 당시 NHTSA에 제출된 보고서에는 부품 생산업체로 조지아주 리치먼드힐의 Mobis N. America Electrified Powertrain이 적시됐다. 두 보고서의 조건을 대조하면 이 342대는 모두 이번 SC379의 범위 안에 들어간다. SC337 대상은 ‘2025년형·기아 조지아 생산·2024년 10월 11일~12월 19일’ 차량이고, SC379는 ‘기아 조지아에서 2024년 5월 17일 이후 생산한 2025년형 전량’을 대상으로 명시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일한 342대는 GDU 모터 샤프트 용접 문제에 이어 ODS 튜브 배치 문제까지 서로 다른 두 건의 리콜 대상이 되는 구조다. 이는 이번 전수분석에서 확인되는 조지아 생산 품질관리의 핵심 지점이다. 앞선 리콜은 현지 전동화 구동계 공급망의 ‘용접 오류’, 이번에는 현지 시트 공급망의 ‘튜브 배치 오류’가 각각 원인으로 적시됐다. 완성차 조립만이 아니라 현지 부품 공급망까지 아우르는 품질관리 체계가 얼마나 안정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기아는 2024년 5월 조지아 웨스트포인트 공장에서 EV9 생산을 시작하면서 EV9을 조지아주에서 생산되는 최초의 양산 전기차라고 소개했다. 기존 텔루라이드·쏘렌토·스포티지에 전기차 생산까지 추가하며 북미 현지화 전략의 상징으로 내세운 모델이다. 한국산도 예외 아니었다…10건 중 절반 ‘연방 안전기준 미충족’ 그렇다고 EV9의 리콜 문제를 조지아 생산 이후의 문제로만 규정하는 것도 사실과 다르다. 미국 현지 생산 이전 한국에서 만들어 수출한 초기 EV9에서도 여러 문제가 확인됐다. 2024년 4월에는 GDU 차동기어 볼트 체결 문제로 구동력 상실이나 차동장치 잠김 가능성이 제기됐다. 당시 부품 공급업체는 한국의 현대트랜시스로 NHTSA 자료에 기록돼 있다. 같은 해 5월에는 조수석 안전벨트 리트랙터 문제, 6월에는 충돌 시 탑승자를 충분히 보호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는 천장 내장재 문제, 9월에는 원격 스마트주차 기능의 정지거리 계산 오류, 10월에는 계기판이 검게 꺼질 수 있는 오류가 연이어 리콜로 이어졌다. 12월에는 규모가 더 커졌다. NHTSA 캠페인 24V962000(SC329)으로 2024~2025년형 EV9 2만2883대가 리콜됐다. 일부 차량의 2·3열 좌석 고정 볼트가 누락됐을 가능성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기아가 NHTSA에 제출한 딜러용 자료에는 해당 차량이 2023년 9월25일부터 2024년 10월15일까지 한국의 기아 조립공장에서 생산된 차량이라고 명시돼 있다. 원인도 ‘공장 조립 작업자의 오류’로 설명됐다. 올해 들어서도 리콜은 이어졌다. 지난 1월 여러 기아 차종에서 계기판이 주행 중 일시적으로 꺼질 가능성이 확인되면서 2026년형 EV9 447대가 포함됐다. NHTSA는 계기판 전원관리 회로에서 발생하는 과도한 신호 잡음 때문에 속도계와 타이어공기압 경고 등이 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역시 FMVSS 101과 138을 충족하지 못하는 사안이었다. 7월에는 훨씬 민감한 문제도 등장했다. 2024년형 EV9 1대를 포함한 기아 전기차에서 고전압 배터리 셀의 전극 정렬 불량 가능성이 확인돼 화재 위험 리콜이 실시됐다. NHTSA는 수리가 끝날 때까지 해당 차량을 건물에서 떨어진 외부에 주차하고 충전량을 최대 80%로 제한하도록 권고했다. EV9의 미국 판매 자체는 오히려 성장하고 있다. 기아 미국법인에 따르면 올해 1~7월 EV9 판매량은 8685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 6675대보다 30% 증가했다. 북미 시장에서 상품 경쟁력이 약화됐다고 단정할 상황은 아니다. 문제는 성장하는 플래그십 차종일수록 품질 문제의 파장이 더 커진다는 점이다. EV9은 기아가 E-GMP 전기차 기술과 대형 SUV 경쟁력을 동시에 보여주기 위해 내세운 대표 모델이다. 현지 생산 역시 단순한 공장 이전이 아니라 북미 전기차 공급망을 구축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업계 관계자는 “NHTSA가 기록한 10개의 리콜 캠페인은 10대의 차량이나 10번의 동일 결함을 뜻하지 않는다”며 “각 캠페인의 대상 연식과 대수는 서로 다르고 동일 차량이 여러 캠페인에 중복될 수도 있다”고 했다. 이어 “그럼에도 공개된 자료를 전수해서 보면 EV9의 품질 과제가 소프트웨어 한 분야에 국한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분명하다”면서 “한국 생산 초기에는 체결·안전장치·소프트웨어 문제가 혼재했고, 미국 현지 생산 이후에는 조지아 완성차 공장과 현지 부품업체가 연결된 GDU 용접 및 ODS 부품 배치 문제가 새로 확인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2026-09-01 10: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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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2차 제재 압박, 한국 기업이 또 희생양 돼선 안 된다
[경제일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이란과 거래하는 국가와 기업을 겨냥한 2차 제재 가능성을 다시 꺼내 들었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24일 이란과 거래를 계속하는 해외 기업과 금융기관이 미국 중심의 금융시스템에서 배제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은 이날 이란의 석유·해운·항공·금·가상자산·기술 분야와 관련된 개인·기업·선박 60곳을 새로 제재했지만, 당장 가장 강력한 2차 제재까지 전면 시행하지는 않았다. 문제는 앞으로다. 미국이 이란과 거래하는 제3국 기업까지 본격적으로 제재하기 시작하면 그 파장은 중동에 그치지 않는다. 달러 결제망과 미국 금융시장에 대한 접근을 무기로 삼는 2차 제재는 사실상 전 세계 기업에 “이란과 미국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는 압박으로 작용한다. 한국 기업도 예외일 수 없다. 한미동맹은 우리 외교·안보의 핵심축이다. 북한 핵 문제와 첨단기술, 공급망, 안보 분야에서 미국과의 협력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국제사회의 대이란 제재 체제에도 책임 있게 동참해야 한다. 그러나 동맹이라는 이유만으로 한국 기업이 예상하지 못한 손실까지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제재의 목적과 동맹국 기업 보호는 별개의 문제다. 미국의 대이란 압박은 이미 국제 에너지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의 교역 상대에 대한 제재를 경고한 뒤 국제유가는 크게 출렁였다. 지난 21일 브렌트유는 배럴당 94달러를 넘어섰고, 이란산 원유 공급 차질과 호르무즈해협 불안이 계속되면서 시장의 변동성도 커졌다. 한국처럼 원유 대부분을 수입하는 국가는 제재 자체보다 그에 따른 국제유가 상승이 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유가가 오르면 정유와 석유화학뿐 아니라 항공·해운·물류·제조업 전반의 비용이 올라간다. 전기·가스요금과 소비자물가에도 시차를 두고 영향을 준다. 대이란 제재가 강화될수록 한국경제가 감당해야 할 간접 비용도 커질 수밖에 없다. 해운업도 위험하다. 이란은 최근 호르무즈해협 통항 문제를 둘러싸고 외국 선박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24일에는 통항 규칙 위반을 이유로 45척의 선박을 제재 대상으로 지정하면서 벌금과 억류, 화물 압류 가능성을 경고했다. 명단에는 한국 해운사와 관련된 선박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2차 제재와 이란의 맞대응이 동시에 강화되면 기업은 양쪽 위험을 모두 떠안는다. 미국 제재를 피하기 위해 이란과 거래를 끊더라도 이미 체결한 계약과 운송 일정에서 손실이 생길 수 있다. 반대로 기존 계약을 이행하다 미국 금융·결제망에서 제재를 받는다면 피해는 훨씬 커진다. 정부가 지금부터 움직여야 하는 이유다. 첫째, 미국과의 사전 협상을 통해 한국 기업에 필요한 예외와 유예를 최대한 확보해야 한다. 과거 대이란 제재에서도 미국은 동맹국이나 특정 거래에 한시적 예외를 인정한 전례가 있다. 이번에도 이미 체결된 계약이나 인도적 물품, 국제 에너지시장의 안정을 위해 필요한 거래 등에 대해서는 충분한 유예기간을 확보해야 한다. 기업에게 어느 날 갑자기 거래를 끊으라고 요구해서는 안 된다. 최소한 계약 정리와 결제 회수, 화물 운송을 마칠 시간을 줘야 한다. 정부가 미국과 협상해야 할 핵심도 바로 이런 현실적인 피해 방지 장치다. 둘째, 기업에 명확한 제재 가이드라인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2차 제재의 가장 큰 문제는 불확실성이다. 어떤 거래가 제재 대상인지, 어느 시점부터 적용되는지, 이란과 직접 거래하지 않고 제3국을 통해 거래하는 경우 어디까지 문제가 되는지 기업이 정확히 알기 어렵다. 특히 중소기업은 미국 제재 규정을 자체적으로 분석하기 어렵다. 정부와 금융당국, 무역기관이 공동으로 기업별 노출도를 점검하고 제재 대상 거래와 허용 거래를 신속하게 안내해야 한다. 제재를 몰라서 위반하는 기업이 나오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 셋째, 금융권의 과도한 위축도 피해야 할 상황이다. 제재가 시작되면 금융기관은 위험을 피하기 위해 실제 제재 대상이 아닌 거래까지 결제를 거부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른바 ‘과잉 준수’다. 기업 입장에서는 합법적인 거래임에도 돈을 받지 못하거나 송금이 막힐 수 있다. 정부는 미국과 협의해 제재 대상과 예외 거래를 명확히 하고 국내 은행에도 일관된 지침을 제공해야 한다. 기업이 제재보다 금융기관의 지나친 위험 회피 때문에 먼저 피해를 보는 일은 방지하는 게 정부의 책무다. 넷째, 에너지와 물류 공급망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 미국과 이란의 갈등이 장기화하면 유가와 해상운임 상승은 일시적 현상이 아닐 수 있다. 미국의 봉쇄와 제재 강화로 이란산 원유 수출이 크게 감소했고 중국 정유사들도 대체 물량 확보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역시 원유 수입선을 다변화하고 전략비축유 운용 계획을 점검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호르무즈해협 통항이 불안해지는 상황에 대비해 대체 운송 경로와 선박 보험, 해운기업 지원책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한미 간 협상의 원칙이 중요하다. 미국은 자국의 안보와 외교 목표를 위해 제재를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도 자국 기업과 국민의 경제적 이익을 지킬 책임이 있다. 동맹국의 정책에 협력하는 것과 우리의 경제적 손실을 아무 조건 없이 감수하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미국 역시 동맹의 부담을 일방적으로 전가해서는 안 된다. 제재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동맹국의 협력이 필요하다. 동맹국 기업에 충분한 설명과 준비기간 없이 제재를 확대하면 미국 정책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만 떨어질 수 있다. 더구나 이번 제재에서 미국이 이란산 원유 거래에 큰 역할을 하는 중국의 주요 금융기관에는 아직 가장 강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과의 충돌을 의식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렇다면 한국 정부도 미국에 분명히 요구할 것은 요구해야 한다. 제재가 필요하다면 기준은 일관돼야 한다. 경제 규모나 협상력에 따라 어떤 국가는 유예하고 동맹국 기업에는 더 엄격한 부담을 지우는 방식이라면 공정성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정부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미국이 구체적인 제재안을 발표한 뒤에야 대책회의를 여는 사후 대응이다. 제재 대상과 시점이 확정되기 전에 산업별 노출도를 파악하고 미국 재무부와 협의해야 한다. 에너지·해운·금융·건설·수출기업의 기존 계약을 전수 점검하고 피해 가능성을 미리 계산해야 한다. 기업에도 대비가 필요하다. 제재 위험이 높은 거래는 계약 단계부터 미국 제재 발동 시 책임과 손실을 어떻게 나눌지 명확히 해야 한다. 결제통화와 거래은행, 선박과 보험사까지 제재 위험을 사전에 점검하는 시스템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미국과 이란의 충돌이 격화될수록 한국에는 외교와 경제가 분리되지 않는다. 안보동맹을 지키면서 에너지 가격을 안정시키고, 미국의 제재를 준수하면서 한국 기업의 피해도 줄여야 한다. 어느 한쪽만 강조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대외경제 환경이 불안할수록 외교의 실력은 선언이 아니라 손실을 얼마나 줄였는지에서 드러난다. 미국의 2차 제재가 현실화한다면 한국도 국제사회와 보조를 맞춰야 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우리 기업이 예측할 수 없는 피해를 떠안게 해서는 안 된다. 정부는 미국의 최종 결정만 기다릴 것이 아니라 예외와 유예, 결제 안전망과 에너지 공급망 대책을 지금부터 협상해야 한다. 동맹은 국익을 포기하는 관계가 아니다. 공동의 안보 목표를 지키면서 서로의 정당한 경제적 이해를 조정하는 관계다. 대이란 제재에서도 그 원칙은 달라질 수 없다. 제재에는 협력하되 한국 기업의 피해는 최소화하는 선제적 외교전이 지금 필요하다.
2026-08-25 10:5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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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나·머크, 맞춤형 mRNA 암 치료제, 첫 3상 성공…국내 바이오도 '백신→항암' 전환
[경제일보] 미국 모더나와 머크가 공동 개발한 개인맞춤형 mRNA 암 치료제가 처음으로 임상 3상에서 주요 평가 지표를 달성했다. 코로나19 백신으로 상용화된 mRNA 기술이 감염병 예방을 넘어 실제 암 치료 영역에서 후기 임상 단계의 유효성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모더나와 머크는 19일(현지시간) 개인맞춤형 mRNA 치료제 ‘인티스메란 오토진(intismeran autogene·개발코드 mRNA-4157/V940)’과 면역항암제 키트루다 병용요법을 평가한 INTerpath-001 3상 중간분석에서 1차 평가지표인 무재발생존(RFS)과 주요 2차 지표인 무원격전이생존(DMFS)을 모두 충족했다고 밝혔다. 임상에는 수술로 종양을 완전히 제거한 고위험 흑색종 2B~4기 환자 1137명이 참여했다. 이번 치료제의 핵심은 ‘환자별 암세포의 돌연변이’를 겨냥한다는 데 있다. 환자의 종양을 유전체 분석한 뒤 암세포에만 존재하는 신생항원(네오안티젠)을 선별하고, 이를 표적으로 하는 mRNA를 개인별로 설계한다. 투여된 mRNA가 체내에서 특정 항원을 만들도록 유도하면 면역체계가 해당 암세포를 인식하고 공격하도록 만드는 방식이다. 기존 면역항암제가 면역세포의 브레이크를 풀어 암 공격력을 높이는 방식이라면, 개인맞춤형 암백신은 환자 암세포의 특징을 면역계에 미리 알려주는 방식에 가깝다. 키트루다와 병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암을 인식하도록 유도하는 백신과 면역세포의 억제 신호를 차단하는 면역항암제를 결합해 치료 효과를 높이는 전략이다. 서울아산병원도 개인맞춤형 mRNA 암백신의 핵심 기술로 종양 유전체 분석과 신생항원 선별, mRNA 제작을 꼽고 있다. 다만 이번 결과를 ‘완전한 3상 성공’으로 단정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회사들은 중간분석에서 두 평가지표가 개선됐다고만 발표했을 뿐 위험비(HR), 신뢰구간, p값 등 구체적인 수치를 공개하지 않았다. 전체생존(OS) 데이터 역시 아직 성숙하지 않았다. 상세 결과는 향후 국제 학회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따라서 실제 치료 효과의 크기는 후속 데이터가 나와야 판단할 수 있다. 그럼에도 시장이 이번 결과를 크게 평가하는 이유는 mRNA 기술의 적용 영역이 한 단계 올라섰기 때문이다. 기존 mRNA 산업의 상업적 성공은 코로나19 백신이 중심이었지만, 이번 임상은 개인별 유전체 정보를 활용해 암이라는 고난도 질환을 겨냥하는 플랫폼으로 기술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줬다. 모더나 주가는 발표 당일 177% 가까이 폭등하며 사상 최대 하루 상승률을 기록했다. 머크 역시 두 자릿수 상승률을 보였다. 국내 제약·바이오업계에도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국내에서 모더나와 같은 후기 임상 단계의 mRNA 암백신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관련 기술을 준비해온 기업들은 이미 존재한다. 테라젠바이오는 유전체 분석과 AI를 결합한 개인맞춤형 암백신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다. 환자의 암 조직에서 신생항원을 찾아내는 ‘DEEPOMICS-NEO’와 암 조직 변이를 분석하는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2024년에는 AI 신약개발 기업 아론티어와 신생항원의 면역원성을 예측하는 암백신 디자인 플랫폼 공동개발에 나섰다. mRNA 플랫폼 기업 SML바이오팜도 개인맞춤형 암백신을 주요 파이프라인으로 두고 있다. 자궁경부암을 대상으로 한 SBP-101과 두경부암을 대상으로 한 SBP-102 등을 개발하고 있으며, mRNA 서열 설계와 LNP 전달체 기술을 자체 플랫폼으로 내세우고 있다. 지난해에는 차백신연구소와 mRNA 백신·치료제 공동개발 협력에도 나섰다. 최근에는 브리즈바이오와 리가켐바이오가 암백신 공동연구에 들어가는 등 국내에서도 mRNA·나노입자·면역항암제를 결합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양사는 mRNA를 탑재한 나노입자와 면역항암제를 결합해 종양항원 특이적 면역반응을 유도하는 전략을 검증할 계획이다. 정부도 관련 기반 구축에 나선 상태다. 국립보건연구원은 mRNA 기술을 감염병 백신뿐 아니라 암을 포함한 치료제로 확대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보고 있으며, 국내에서는 mRNA 기반 신생항원 암백신의 안전성 평가법과 환자 유래 암 오가노이드·동물모델 등을 개발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한편 업계가 주목하는 것은 개인맞춤형 암백신은 환자마다 다른 백신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대량생산 의약품과 달리 유전체 분석→신생항원 선별→mRNA 설계→제조→투여를 얼마나 빠르고 안정적으로 연결하느냐가 사업성의 핵심이다. 국내 기업들이 mRNA와 LNP 기술만 확보해서는 부족하고, 유전체 분석과 AI 기반 신생항원 예측, 임상시험, 맞춤형 제조시설까지 하나의 가치사슬로 묶어야 하는 이유다. 모더나·머크의 이번 결과는 암백신 시장이 당장 국내에서 상용화된다는 의미보다 “mRNA가 암 치료 플랫폼이 될 수 있느냐”는 가장 큰 물음에 처음으로 3상에서 답을 내놓았다는 데 의미가 있다. 국내 바이오업계에도 이제 mRNA를 코로나19 백신 기술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유전체·AI와 결합한 차세대 항암 플랫폼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과제가 던져졌다.
2026-08-20 07:5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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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9440억 재산분할 재상고…SK 지분 지킬까, 현금화 나설까
[경제일보]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최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의 이혼 소송 파기환송심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재상고하면서, 9440억원 규모 재산분할금 마련 방식에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재상고로 판결 확정 시점은 미뤄졌지만, 대법원이 재산분할액을 그대로 확정할 경우 최 회장은 노 관장에게 1조원에 가까운 금액을 현금으로 지급해야 한다. 이번 재상고의 배경에는 재산분할금 지급 방식에 대한 양측 입장차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최 회장 측은 현금과 주식을 섞어 지급하는 방안을 제안했지만, 노 관장 측은 파기환송심 판결 주문대로 전액 현금 지급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 측이 일부 주식 지급을 제안했으나 노 관장 측이 현금 지급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금 9440억’ 부담…재상고로 시간은 벌었지만 16일 업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가사1부는 지난 7월 24일 파기환송심에서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재산분할금 944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최 회장 측은 재상고 기한 만료일인 지난 14일 다시 대법원 판단을 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계에서는 재상고심이 사실관계를 다시 따지는 절차가 아니라 법률 판단을 다루는 절차인 만큼, 파기환송심 결론이 크게 뒤집힐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다만 최 회장 측으로서는 판결 확정 시점이 늦춰지는 동안 지급 방식과 재원 마련 방안을 조율할 시간을 벌게 됐다. 재상고가 기각돼 판결이 확정되면 최 회장은 재산분할금을 지급해야 한다. 지급이 늦어질 경우 연 5% 수준의 지연이자가 붙어 하루 약 1억3000만원, 연간 약 472억원의 부담이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노 관장 측이 9440억원 현금 지급을 고수하면서 최 회장 측이 재상고에 나섰고, 이에 따라 하루 1억3000만원 수준의 지연이자 부담도 일단 현실화하지 않게 됐다. ◆시나리오①, SK㈜ 지분은 지키고 담보대출 확대 재계가 보는 첫 번째 시나리오는 최 회장이 SK㈜ 지분을 직접 팔지 않고 추가 차입과 다른 자산 매각으로 재원을 마련하는 방식이다. 최 회장은 SK그룹 지주사인 SK㈜의 최대주주다. SK㈜ 지분은 그룹 지배구조의 핵심인 만큼, 시장에서는 최 회장이 가능한 한 이 지분을 유지하려 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가장 현실적인 수단은 주식담보대출이다. 주식을 팔지 않고 현금을 확보할 수 있어 경영권 방어 측면에서는 가장 부담이 작은 방식으로 꼽힌다. 다만 이미 상당한 주식담보대출이 설정돼 있다는 점이 변수다. 최 회장은 지난 5월 대량보유상황보고서 기준 한국증권금융에 118만4616주를 담보로 제공해 4000억원을, 하나은행에 34만276주를 담보로 제공해 365억원을 빌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 대출금액이 공개되지 않은 질권설정 주식까지 포함하면 담보 제공 주식은 272만8955주로, 공시상 확인되는 대출만 4365억원 규로모 전해진다. 추가 대출이 가능하더라도 부담은 작지 않다. 부족한 금액을 5000억~6000억원으로 가정하면 총 차입 규모는 1조원 안팎으로 커질 수 있다. 금리를 연 4%로 단순 계산해도 연 이자 부담만 400억원을 넘는다. SK㈜ 주가가 하락할 경우 담보 가치가 줄어 추가 담보 요구나 반대매매 위험도 커질 수 있다. ◆시나리오②, SK실트론 등 개인 자산 매각 두 번째 시나리오는 SK㈜ 지분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SK실트론 지분 등 개인 자산을 현금화하는 방식이다. 최 회장이 보유한 SK실트론 지분은 재산분할금 마련 과정에서 꾸준히 거론돼 왔다. 재계에서는 SK실트론 지분 매각이 성사될 경우 상당한 현금을 확보할 수 있지만, 비상장사 지분인 만큼 매각 시점과 가격을 단정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따라 최 회장의 재산분할금 마련 방안으로 SK㈜ 주식담보대출과 SK실트론 지분 매각 가능성을 함께 거론했다. 다만 비상장 지분은 거래 상대방을 찾아야 하고, 경영권 프리미엄이 붙는 지분이 아닌 경우 기대한 만큼의 현금이 바로 확보되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재산분할금은 현금 지급이 원칙이어서, 지분 가치와 실제 현금화 가능액 사이에 차이가 생길 수 있다. 세금과 거래 비용, 매각 조건 등을 감안하면 지분 평가액이 곧바로 가용 현금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이 때문에 SK실트론 지분을 매각하더라도 부족분은 담보대출이나 배당 수입 등으로 메워야 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시나리오③, SK㈜ 지분 일부 매각…가능성은 제한적 세 번째 시나리오는 SK㈜ 지분 일부를 직접 매각하는 방식이다. 가장 빠르게 현금을 확보할 수 있는 수단이지만, 최 회장 입장에서는 가장 부담이 큰 선택지다. SK㈜는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회사다. 최 회장이 보유 지분을 줄이면 시장은 곧바로 경영권 안정성과 지배구조 변화를 주목할 수밖에 없다. SK그룹은 과거 소버린 사태를 겪으며 경영권 방어의 중요성을 경험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재계에서는 최 회장이 SK㈜ 지분 매각을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둘 가능성이 크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다만 현금 마련이 여의치 않고, 주식담보대출과 비상장 지분 매각만으로 9440억원을 맞추기 어렵다면 일부 지분 현금화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한국CXO연구소도 최 회장의 자금 마련 방안으로 SK㈜ 지분 일부는 담보대출을 받고 일부는 직접 매각하는 방식이 가능한 시나리오 중 하나라고 분석했다. 다만 SK㈜ 지분을 매각할 경우 지배구조와 주가에 미치는 파장이 커 최 회장이 신중하게 접근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주가가 핵심 변수…배당 확대 가능성도 거론 어떤 시나리오를 택하든 핵심 변수는 SK㈜ 주가다. 주가가 높게 유지되면 담보대출 여력이 커지고, 지분 일부를 매각하더라도 확보할 수 있는 현금이 늘어난다. 반대로 주가가 떨어지면 같은 금액을 빌리기 위해 더 많은 주식을 담보로 제공해야 하고, 담보비율 관리 부담도 커진다. SK㈜ 주가는 재산분할 판결 이후 변동성이 커진 상태다. SK㈜의 지분 가치가 크게 올라 담보대출 가능 여력이 커졌다는 분석도 있지만, 최근 주가 급등락은 최 회장의 자금조달 시나리오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배당 확대도 거론된다. SK텔레콤과 SK스퀘어 등 SK㈜가 지분을 보유한 주요 계열사의 배당이 늘어나면 지주사 현금흐름이 개선되고, 최 회장 개인의 배당 수입도 늘어날 수 있다. 다만 배당만으로 9440억원을 단기간에 마련하기는 쉽지 않다는 평가가 많다. ◆재상고 이후에도 남은 과제는 ‘현금 확보’ 이번 재상고로 최 회장은 판결 확정과 지연이자 부담 현실화를 일단 늦추게 됐다. 그러나 대법원이 파기환송심 판단을 유지할 경우 9440억원 현금 마련이라는 과제는 그대로 남는다. 재계에서는 최 회장이 SK㈜ 지분을 최대한 지키는 방향에서 주식담보대출, SK실트론 등 개인 자산 매각, 배당 수입 확대를 조합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최 회장에게 SK㈜ 지분은 단순한 금융자산이 아니라 그룹 지배구조의 핵심”이라며 “지분 매각은 시장에 주는 신호가 크기 때문에 우선은 담보대출과 비상장 자산 현금화, 배당 등을 조합하는 방안을 검토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2026-08-16 17:5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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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을 '소요'라 부른 국회, 역사를 거꾸로 돌릴 순 없다
[경제일보] 46년 전 광주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대한민국은 아직도 모두 밝혀내지 못했다. 누가 최종 발포 명령을 내렸는지처럼 미완의 질문도 남아 있다. 그렇다고 1980년 5월의 역사가 다시 백지가 된 것은 아니다. 법원의 판결이 있었고, 국가 차원의 진상규명이 이어졌으며, 계엄군의 발포와 시민 희생에 관한 숱한 기록이 축적됐다. 역사는 완결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무 이름이나 붙일 수 있는 무주공산도 아니다. 지난 13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5·18 민주화운동 재조명’ 공개포럼이 논란을 일으킨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진숙 국민의힘 의원이 시민단체 새역사국민운동과 공동 주최한 이 행사에서 이영훈 새역사국민운동 대표는 1980년 5월 광주를 ‘소요 사태’라고 표현했다. 또한 이 의원은 5·18이 특정 진영의 소유물이 돼서는 안 된다며 이른바 ‘성역화’ 문제를 제기했다. 국민의힘 원내지도부는 행사 전 취소를 권고했고, 논의 내용은 당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 의원 제명을 거론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현장에서는 고성과 몸싸움이 벌어져 경찰까지 출동했다. 정치권의 반응을 걷어내고 본질부터 볼 필요가 있다. 5·18을 연구하고 토론하는 데 금기가 있어서는 안 된다. 기존 조사에 오류가 있다면 밝혀야 하고, 새로운 자료가 나오면 기존의 역사 서술도 수정할 수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어떤 역사적 사건도 질문할 수 없는 성역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 의원이 제기한 문제의식 가운데 이 대목까지 부정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성역을 허물겠다는 것과 사실의 토대를 허무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학술적 재검토에는 조건이 있다. 기존의 결론을 뒤집으려면 기존보다 강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 새로운 사료를 내놓거나 기존 사료의 해석이 왜 틀렸는지를 논증해야 한다. 그것이 연구다. 국가와 사법부가 수십 년에 걸쳐 확인해 온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둔 채 사건의 명칭만 바꾼다고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특히 ‘소요’라는 표현은 가볍지 않다. 단어에는 시선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같은 사건도 ‘민주화운동’이라고 부를 때와 ‘소요’라고 부를 때 독자가 받아들이는 역사적 주체와 책임은 달라진다. 전자는 국가권력과 시민 저항의 관계를 보게 하고, 후자는 먼저 사회질서의 혼란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특정 단어의 사용만으로 곧바로 불법이라고 규정해서도 안 된다. 정치적·학술적 표현의 법적 허용 범위는 구체적인 발언과 맥락을 놓고 판단해야 한다. 다만 법적으로 말할 수 있다는 것과 역사적으로 타당한 말이라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표현의 자유는 국가가 함부로 입을 막지 못하도록 만든 권리이지, 말한 사람이 사실 검증과 사회적 비판에서 면제된다는 뜻이 아니다. 더구나 이번 토론회가 열린 곳은 국회다. 국회는 개인 방송의 스튜디오가 아니다. 국민의 대표가 입법권을 행사하는 헌정기관이다. 국회의원이 행사를 공동주최하고 국회 공간을 제공하면 그 주장에는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공적 권위가 실린다. 논쟁적인 역사 문제를 국회 안으로 가져오겠다면 그만큼 더 치밀한 근거와 반론의 기회를 준비했어야 한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사전에 토론회 취소를 권고했다는 사실 역시 가볍게 볼 대목은 아니다. 당 지도부 스스로 파장을 우려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행사가 열렸고 예상했던 논란이 현실이 됐다. 당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는 설명만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자유민주주의와 헌정질서를 중요한 가치로 내세우는 정당이라면 5·18에 관한 역사적 인식 역시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반대편의 물리력까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행사 도중 항의와 몸싸움이 벌어졌고 경찰이 출동했다. 5·18 희생자와 유족에게 모욕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주장을 접한 사람들의 분노를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하지만 민주주의에서 잘못된 주장에 대한 답은 상대의 마이크를 빼앗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역사 왜곡에 가장 치명적인 것은 물리력이 아니라 기록이다. 판결문을 펼치고, 당시 군 기록을 꺼내고, 피해자의 증언과 국가 조사보고서를 제시하면 된다. 주장에 오류가 있다면 하나씩 입증하면 된다. 오히려 폭력으로 행사를 중단시키려 하면 논쟁의 초점은 역사적 사실에서 ‘표현을 탄압했느냐’는 문제로 옮겨간다. 왜곡된 주장을 반박하려다 그 주장에 피해자의 지위를 선물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여기에 민주주의의 까다로움이 있다. 듣기 싫은 말을 견뎌야 한다. 동시에 그 말이 틀렸다면 틀렸다고 단호하게 말해야 한다. 자유를 지킨다는 이유로 사실을 포기해서도 안 되고, 사실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자유를 짓밟아서도 안 된다. ‘한서(漢書)’에는 하간헌왕 유덕의 학문 자세를 두고 실사구시(實事求是), 곧 사실에 근거해 옳음을 구했다고 기록돼 있다. 오늘날 흔히 쓰는 이 네 글자의 무게는 역사 논쟁에서 더욱 크다. 5·18을 새롭게 해석하겠다면 ‘새롭게’보다 먼저 ‘사실에 근거했는가’를 물어야 한다. 반대로 그 해석을 잘못됐다고 비판하려면 ‘불쾌하다’보다 먼저 ‘어떤 사실이 틀렸는가’를 보여줘야 한다. 역사를 둘러싼 싸움의 최종 심판자는 목소리의 크기도, 의석수도 아니다. 남아 있는 기록과 검증 가능한 사실이다. 정치권이 5·18을 진영의 무기로 이용하는 태도 역시 이제는 벗어날 때가 됐다. 보수정당이 5·18을 인정하는 것이 보수의 역사를 부정하는 일도 아니고, 진보정당이 5·18을 계승한다고 해서 그 역사를 독점할 권리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5·18은 어느 정당의 사유물이 아니라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어떤 시행착오와 희생을 거쳐 여기까지 왔는지를 보여주는 공동의 역사다. 그렇기 때문에 더 엄격해야 한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사실은 계속 파헤쳐야 한다. 기존 연구의 오류도 얼마든지 비판해야 한다. 하지만 의문이 일부 남아 있다는 사실을 이용해 이미 확인된 역사 전체를 다시 안개 속으로 밀어 넣는 것은 학문의 태도가 아니다. 반대로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다는 이유로 추가 연구 자체를 금기시하는 것도 건강한 역사 인식이 아니다. 역사는 성역이 돼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무한정 다시 쓸 수 있는 정치적 백지도 아니다. 따라서 국회에서 벌어진 일은 그래서 한쪽만의 문제로 정리하기 어렵다. ‘학술 토론’의 이름 아래 역사적 사실을 다룰 때 요구되는 엄격함이 부족했다면 비판받아야 한다. 그 주장에 맞선다는 이유로 물리력을 행사했다면 그것 역시 민주주의의 방식이 아니다. 국회라면 양쪽 모두에 더 높은 기준을 요구해야 한다. 말할 자유는 최대한 넓게 보장하되 그 말에는 근거를 요구하고, 잘못된 주장에는 단호하게 반박하되 상대의 발언권까지 빼앗지는 않는 것. 그것이 자유민주주의가 권위주의와 다른 지점이다. 5·18을 무엇이라고 부르느냐는 단어 하나의 문제가 아니다. 그 이름 속에는 국가권력의 책임과 희생자의 명예,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지나온 길에 대한 평가가 들어 있다. 그러니 다시 묻는다면 답은 단순하다. 역사를 다시 연구할 자유는 있다. 다만 새로운 증거 없이 역사를 과거의 언어로 되돌릴 권리까지 있는 것은 아니다. 표현의 자유는 사실 앞에서 책임을 지는 자유다.
2026-08-14 11: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