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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 살리고 사람 잃는 전환은 안 된다
[경제일보] 철강의 위기가 공장 담장을 넘어 일자리로 번지고 있다. 충남 당진이 지난 21일부터 ‘고용위기 선제대응지역’이 됐다. 현대제철을 비롯한 철강기업들이 밀집한 이 도시에서 철강업과 금속제품 제조업을 중심으로 고용 감소가 나타나자 정부가 고용 충격이 더 커지기 전에 안전망을 가동한 것이다. 23일 충남도는 정부 지원과 자체 일자리 정책을 연계해 고용 유지부터 직업훈련, 전직·재취업, 생계 지원까지 대응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지정은 단순한 지역 고용대책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대한민국 철강산업의 구조적 위기가 기업 손익계산서를 넘어 지역사회에 청구서를 보내기 시작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당진은 포항·광양과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철강도시다. 공장 하나가 철강만 만드는 것이 아니다. 협력업체와 운송업체, 정비업체가 붙고 식당과 상점이 생긴다. 공장이 벌어들인 돈으로 지방세가 걷히고, 그 돈이 다시 지역의 학교와 도로, 복지에 쓰인다. 주력기업의 생산이 줄면 협력업체 매출이 먼저 꺾이고 채용이 줄며, 그 여파는 골목상권과 지방재정까지 이어진다. 당진은 이미 그 징후를 겪고 있다. 지역 주요 철강기업 5개사의 영업이익은 2023년 2623억원 흑자에서 지난해 444억원 적자로 돌아섰다. 당진의 국세 납부액 역시 2022년 5063억원에서 2024년 1228억원으로 급감했고 법인 지방소득세는 같은 기간 317억원에서 28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철강기업의 실적 악화가 지역경제의 체력을 얼마나 빠르게 떨어뜨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숫자다. 원인은 하나가 아니다. 산업연구원은 국내 철강시장이 건설수요 감소와 글로벌 공급과잉, 수출 부진이 겹치며 20년 만의 최저 수준의 수요를 경험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부 설비의 폐쇄와 가동 중단, 인력 조정 압력에 더해 산업용 전기요금 상승과 탄소중립 비용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철강산업의 체질을 바꿔야 한다는 결론을 피할 수 없는 이유다. 값싼 범용재를 대량 생산해 중국산 철강과 가격으로 경쟁하는 방식에는 한계가 분명하다. 자동차·조선·방산·에너지용 고부가 강재로 올라가고, 수소환원제철과 전기로 확대 등 탄소배출을 줄이는 생산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제조공정에는 인공지능과 자동화를 더 깊이 넣어야 한다. 유럽의 탄소규제와 각국의 보호무역 장벽을 생각하면 선택이라기보다 생존에 가까운 문제다. 정부가 경쟁력이 떨어진 모든 설비와 일자리를 세금으로 영원히 붙들어둘 수도 없다. 시장에서 수요를 잃은 생산시설까지 고용을 이유로 계속 유지하면 기업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결국 더 큰 구조조정을 부를 수 있다. 문제는 산업 전환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비용을 누가 부담하느냐다. 기업은 오래된 설비를 닫으면 재무구조가 좋아질 수 있다. 국가는 산업 전체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친환경 설비를 도입하면 탄소배출도 줄어든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와 공장 주변의 협력업체, 지역 상인에게는 ‘산업 고도화’라는 말이 당장의 생계 문제로 돌아온다. 국가와 기업이 전환의 편익을 얻으면서 비용은 노동자와 지역에만 남기는 구조라면 공정하지도,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이번 당진 고용위기 선제대응지역 지정이 의미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원 대상 노동자의 국민내일배움카드 한도는 300만원에서 500만원으로 늘어나고 생활안정자금 융자 한도도 2000만원에서 2500만원으로 확대된다. 기업의 고용유지지원금 지원 비율은 66.7%에서 80%로 높아진다. 충남도는 내년 최대 60억원 규모의 ‘당진 철강산업 버팀이음프로젝트’ 국비 확보도 추진한다. 필요한 조치다. 다만 생계자금과 훈련비를 늘리는 것만으로 산업 전환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핵심은 숙련을 버리지 않는 전환이다. 철강공장에서 20년을 일한 노동자에게 새로운 직업을 찾으라며 몇 달짜리 일반 직업훈련을 제공하는 것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 없다. 제철소의 설비와 공정, 품질관리, 안전관리 경험은 산업의 자산이다. 이를 수소환원제철과 전기로, 친환경 설비, 산업용 로봇과 스마트팩토리 운영 역량으로 전환시키는 교육이 필요하다. 재교육의 출발점도 실업 이후가 아니라 재직 중이어야 한다. 구조조정 대상자가 확정된 뒤 교육기관을 찾는 것은 너무 늦다. 기업의 설비 전환 계획과 함께 향후 줄어드는 직무와 새로 필요한 직무를 예측하고, 노동자가 기존 일자리에서 일하는 동안 새로운 기술을 익히도록 해야 한다. 기업에도 책임을 요구해야 한다. 국가가 탄소중립 설비에 세액공제와 정책금융을 제공한다면 해당 기업은 고용 전환 계획을 함께 내놓아야 한다. 어떤 일자리가 줄어들고 어떤 직무가 새로 생기는지, 기존 노동자를 얼마나 재배치하고 협력업체 고용에는 어떤 영향이 있는지를 사전에 제시해야 한다. 친환경 설비 투자계획은 수십 년 뒤까지 세우면서 사람에 대한 계획은 구조조정 직전에 만드는 식이어서는 곤란하다. 지역 정책은 더 크게 봐야 한다. 당진의 철강 노동자를 모두 다른 철강회사로 옮기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결국 철강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정책과 함께 지역의 산업구조 자체를 넓혀야 한다. 당진을 저탄소 철강의 거점으로 만들면서 수소·에너지, 철강 자원순환, 친환경 소재, 산업자동화와 같은 연관 산업을 끌어들일 필요가 있다. 산업연구원도 철강 집적지역의 대응 방안으로 수소환원제철과 탈탄소 설비·부품 산업, 제조 AX, 자원순환 분야로의 다각화를 제시했다. 그래야 전환 과정에서 사라지는 일자리와 새로 생기는 일자리가 같은 지역 안에서 연결될 수 있다. 과거 제조업 구조조정의 실패에서 배울 것도 있다. 주력기업이 떠난 뒤에야 도시재생과 창업지원 사업을 시작하면 이미 숙련인력과 젊은 가족은 지역을 떠난 뒤다. 사람과 기업이 빠져나간 도시를 다시 일으키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일자리를 지키고 새로운 산업으로 연결하는 비용보다 훨씬 크다. 정부가 고용 충격이 통계에 완전히 나타나기 전에 당진을 선제대응지역으로 지정한 것은 그래서 평가할 대목이다. 이 제도 자체도 기존 고용위기지역이 실업과 고용 감소가 상당 부분 진행된 뒤에야 작동한다는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지난해 도입됐다. 이제 ‘선제’라는 말을 정책의 시간표 전체에 적용해야 한다. 실직하기 전에 훈련하고, 협력업체가 폐업하기 전에 사업 전환을 돕고, 지역의 청년이 떠나기 전에 새로운 기업을 불러들여야 한다. 정부도 최근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의 상황이 급격히 나빠지면 산업위기대응특별지역으로 신속하게 넘어갈 수 있도록 패스트트랙을 도입하는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위기가 현실이 된 뒤 지원하던 방식에서 위험이 보일 때 움직이는 방식으로 바꾸겠다는 취지다. ‘중용’에는 ‘범사예즉립 불예즉폐(凡事豫則立 不豫則廢)’라는 말이 있다. ‘모든 일은 미리 준비하면 서고, 준비하지 않으면 무너진다’는 의미다. 산업 전환도 그렇다. 철강의 구조조정을 막을 수 있다는 환상을 가져서는 안 된다. 기술도 바뀌고 시장도 바뀐다.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생산방식은 결국 새로운 방식으로 대체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변화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가 누구의 희생 위에서 이뤄질 것인지를 미리 결정하는 일이다. 기업에는 친환경 설비와 고부가 제품 전환을 지원하고, 노동자에게는 숙련을 이어갈 직업과 교육을 제공하며, 지역에는 다음 산업을 심어야 한다. 세 정책이 따로 움직여서는 안 된다. 산업정책의 성공을 공장의 생산성만으로 평가하던 시대도 지나야 한다. 수소환원제철 공장을 지었는데 숙련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고, 기업은 살아났는데 지역 상권과 인구가 무너졌다면 그것을 온전한 산업 전환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철강은 한국 산업화를 떠받친 산업이다. 당진과 포항, 광양의 노동자와 지역사회 역시 그 성장의 비용과 과실을 함께 감당했다. 새로운 철강으로 넘어가는 비용 역시 함께 나눠야 한다. 산업을 살리기 위해 사람을 버리는 전환은 오래갈 수 없다. 공장을 바꾸는 것과 사람의 삶을 이어주는 것, 그 둘을 함께 해내야 진짜 산업 전환이다.
2026-08-24 1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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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금리 인상, 물가 잡다 내수를 더 얼려선 안 된다
[경제일보] 한국은행이 추가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유상대 한국은행 부총재는 11일 특별한 변수가 없다면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이 높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한국은행은 지난 7월 기준금리를 2.75%로 올린 데 이어 국내 수요 회복에 따른 물가 압력을 경계하고 있다. 물가 안정이 중앙은행의 가장 중요한 책무라는 점에서 필요한 대응이다. 그러나 금리를 올리는 데는 언제나 대가가 따른다. 기준금리가 오르면 은행의 대출금리가 상승하고 가계의 이자 부담이 커진다. 기업의 자금 조달 비용도 높아진다. 특히 대출 의존도가 높은 자영업자와 중소기업, 취약차주에게 금리 인상은 단순한 숫자의 변화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지금 한국경제는 금리를 올리기에도, 그대로 두기에도 쉽지 않은 상황에 놓여 있다. 반도체 수출과 AI 투자 확대에 힘입어 성장률 전망은 개선되고 있지만 국민이 체감하는 내수경기는 여전히 차갑다. 소비 회복은 더디고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어려움도 계속되고 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과 건설업의 부실 우려도 완전히 해소됐다고 보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물가만 바라보고 금리를 빠르게 올리면 거시경제 지표는 안정될지 몰라도 내수와 취약 부문의 부담은 그만큼 무거워진다. 반대로 가계와 기업 부담만 걱정해 물가 상승 압력을 방치하면 실질소득이 줄고 서민경제가 더 큰 피해를 입는다. 한국은행이 어려운 선택에 직면한 이유다. 최근의 물가 흐름도 면밀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국제유가와 환율 같은 외부 요인뿐 아니라 내수 회복과 임금, 서비스 가격 등 국내 요인이 물가를 자극하고 있다면 통화당국으로서는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 물가 상승세가 굳어지면 나중에는 더 큰 폭의 금리 인상이 필요해진다. 그렇다고 기준금리를 물가만 잡는 단일 처방전처럼 사용할 수는 없다. 통화정책은 경제 전체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 금리를 0.25%포인트 올리는 순간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 자영업자 대출과 기업 대출에 동시에 충격이 전달된다. 통화정책의 효과가 강력한 만큼 부작용도 폭넓게 살펴야 한다. 가장 우려되는 곳은 가계부채다. 한국의 가계는 이미 상당한 규모의 부채를 안고 있다. 변동금리 대출 비중이 높은 차주에게 추가 금리 인상은 월 원리금 부담 증가로 바로 이어진다. 주거비와 생활물가 부담까지 커진 상황에서 이자 비용이 다시 늘어나면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 소비 감소는 자영업자의 매출 감소로 연결되고 다시 내수 침체를 키우는 악순환으로 번진다. 취약차주에 대한 정교한 대책이 필요한 이유다. 금리 인상 자체를 막기보다 그 과정에서 충격이 특정 계층에 집중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정상적으로 원리금을 상환하고 있지만 일시적인 금리 부담을 겪는 차주에 대해서는 채무조정과 장기·고정금리 전환 등 현실적인 선택지를 넓혀야 한다. 자영업자 대책도 단순한 만기 연장에 그쳐서는 안 된다. 코로나19 이후 누적된 부채에 경기 부진과 고금리가 겹치면서 경쟁력이 있는 사업자와 사실상 상환 능력을 잃은 사업자를 구분할 필요성이 커졌다. 정상 사업자에게는 금융 지원을 제공하되 회생 가능성이 낮은 경우에는 폐업과 재취업, 채무조정을 연결하는 출구 전략이 필요하다. 부동산 PF도 경계해야 한다. 금리가 높아질수록 사업성이 낮은 개발사업의 금융비용은 커지고 부실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진다. 부실을 무조건 금융권이 떠안게 하는 것도, 정부가 세금으로 막아주는 것도 답이 아니다. 사업성이 없는 사업장은 신속하게 정리하고 정상 사업장은 자금이 막혀 쓰러지지 않도록 선별 지원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은행과 정부 정책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가지 않는 것이다. 중앙은행이 물가를 잡겠다며 금리를 올리는데 정부가 재정지출 확대와 각종 지원책으로 수요를 크게 자극한다면 정책 효과는 상쇄된다. 한쪽은 브레이크를 밟고 다른 쪽은 가속페달을 밟는 식이어서는 경제의 불확실성만 커진다. 부동산 정책도 마찬가지다. 집값 불안을 막겠다며 대출을 규제하면서 동시에 특정 계층에 과도한 금융 지원을 제공하면 시장에는 엇갈린 신호가 간다. 실수요자는 보호하되 투기성 레버리지를 억제한다는 명확한 원칙 아래 금융·세제·공급 정책이 같은 방향을 바라봐야 한다. 정부와 한국은행의 역할은 분명히 구분돼야 한다. 금리 결정은 물가와 금융안정을 기준으로 중앙은행이 독립적으로 해야 한다. 정부가 경기나 정치적 이유로 금리 결정에 압력을 가해서는 안 된다. 다만 정책 효과와 위험 요인에 대한 정보 공유와 거시정책 조율은 훨씬 정교하게 이뤄져야 한다. 금리 결정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다. 추가 인상이 필요하더라도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는 속도로 가야 한다. 물가 기대가 급격하게 높아지지 않는다면 한 차례 금리를 올린 뒤 소비와 고용, 부동산과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충분히 확인하는 것도 방법이다. 금리는 한번 올린 뒤 되돌리기도 쉽지 않다. 경제성장률이 높아졌다는 이유만으로 긴축 여력이 충분하다고 판단해서도 안 된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수출 호황과 자영업자·중소기업이 느끼는 경기는 크게 다르다. 평균적인 성장률만 보고 금리를 결정하면 경제 내부의 양극화를 놓친다. 한국경제가 직면한 문제는 이른바 '성장의 역설'이다. 수출과 반도체 투자로 성장률이 높아지면 수요와 물가가 상승해 금리를 올려야 할 가능성이 커진다. 그러나 그 금리 인상의 비용은 반도체 대기업보다 대출이 많은 가계와 자영업자에게 더 크게 돌아간다. 성장의 과실과 긴축의 비용이 서로 다른 곳에 집중되는 셈이다. 이 때문에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통화정책으로 경제 전체의 물가를 관리하되 재정과 금융정책은 취약계층에 정밀하게 집중해야 한다. 모든 국민의 이자를 대신 내주는 식의 보편적 지원은 물가를 다시 자극한다. 상환 능력과 소득, 부채 수준에 따라 지원 대상을 정교하게 선별해야 한다. 물가 안정과 내수 회복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물가가 불안하면 실질소득이 줄고 소비도 위축된다. 반대로 내수가 무너지면 성장과 고용이 흔들린다. 두 목표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것이 경제정책의 실력이다. 한국은행 역시 시장과 충분히 소통해야 한다. 추가 금리 인상의 조건이 무엇인지, 어떤 물가와 금융 지표를 중점적으로 보는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 시장이 금리 경로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어야 가계와 기업도 대출과 투자를 계획할 수 있다. 갑작스러운 정책 변화는 금리 수준 자체보다 더 큰 불안을 부른다. <논어>에는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이 있다. 통화정책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다. 물가를 방치해서도 안 되지만 물가를 잡겠다는 이유로 경제의 약한 고리까지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 한국은행은 물가 안정이라는 원칙을 지키되 금리 인상이 가계와 자영업자, 부동산 PF와 내수에 미칠 충격까지 세밀하게 살펴야 한다. 정부도 중앙은행의 긴축 효과를 상쇄하는 정책을 남발해서는 안 된다. 추가 금리 인상이 필요하다면 국민에게 그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고 취약 부문의 충격을 줄일 안전장치를 동시에 마련해야 한다. 물가를 잡는 것도 결국 국민의 삶을 지키기 위해서다. 물가는 안정됐지만 가계와 자영업자가 먼저 무너지는 정책이라면 성공한 통화정책이라고 할 수 없다.
2026-08-12 10:4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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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공인 대출에 AI 도입, 새로운 기회인가 새로운 차별인가
[경제일보] 매출과 상권, 업력, 고용 등 비금융정보를 인공지능(AI)으로 분석하는 소상공인 특화 신용평가체계가 다음 달 말부터 은행권에서 시범 운영된다. 기존 7개 은행에서 16개 은행으로 참여 범위가 확대되고 약 2조2000억원 규모의 소상공인 대출상품에 AI 기반의 새로운 평가모형이 적용될 예정이다. 금융 이력이 부족하거나 담보가 충분하지 않은 자영업자에게 대출 기회를 넓히겠다는 취지다. 방향은 옳다. 지금까지 소상공인은 사업체의 경쟁력보다 개인의 신용점수와 담보 수준에 크게 의존해 평가받았다. 매출이 꾸준하고 거래처 평판이 좋아도 금융거래 실적이 짧거나 부동산 담보가 없으면 대출 문턱을 넘기 어려웠다. 업력과 사업 평판, 상권의 성장성 같은 정보를 반영하면 금융권이 기존 방식으로는 발견하지 못했던 우량 차주를 찾아낼 수 있다. 금융당국도 사업체가 쌓아온 평판과 업력 등 비정형 정보를 신용평가에 체계적으로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평가에 활용하는 정보가 많다고 반드시 공정한 것은 아니다. 데이터가 편향돼 있거나 평가 기준이 불투명하면 기존의 신용점수보다 더 정교한 차별이 만들어질 수 있다. 같은 매출을 올려도 어느 지역에서 영업하는지, 어떤 업종인지, 종업원이 몇 명인지에 따라 불리한 점수를 받을 수 있다. 상권이 쇠퇴한 지역이나 경기 변동이 큰 업종의 사업자는 자신의 경영 능력과 관계없이 낮게 평가될 가능성도 있다. 알고리즘은 과거의 데이터를 학습한다. 과거 금융시장에서 특정 지역과 업종, 영세 사업자가 불리한 대우를 받았다면 그 결과가 새로운 평가모형에도 그대로 반영될 수 있다. 겉으로는 AI가 내린 객관적인 판단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오래된 금융 관행을 자동화하는 데 그칠 위험이 있다. 무엇보다 대출을 거절당한 소상공인이 이유를 알 수 있어야 한다. 내부 평가 기준에 미달했다거나 AI 모형이 산출한 결과라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매출 변동성이 문제였는지, 상권 정보가 불리하게 반영됐는지, 고용이나 업력 자료가 잘못 입력됐는지를 구체적으로 알려야 한다. 그래야 사업자가 오류를 바로잡거나 재심사를 요구할 수 있다. 금융당국은 소상공인에게 실질적인 설명권을 보장해야 한다. 평가에 사용된 주요 정보의 종류와 점수에 미친 영향을 알리고 대출 거절이나 금리 산정의 핵심 이유를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제공하도록 해야 한다. 영업비밀을 이유로 알고리즘 전체를 공개할 수 없더라도 고객의 금융 조건을 좌우한 주요 판단 근거까지 감춰서는 안 된다. 이의제기 절차도 제도화해야 한다. 매출이나 고용 자료가 실제와 다르거나 폐업한 점포의 정보가 반영됐을 경우 이를 수정할 통로가 있어야 한다. 자동화된 평가 결과를 사람이 다시 검토하는 절차도 필요하다. AI가 한 번 낮은 점수를 부여했다고 해서 은행 직원이 아무런 판단 없이 대출을 거절하는 구조가 돼서는 안 된다. 은행별로 같은 사업자를 지나치게 다르게 평가하는 문제도 살펴야 한다. 평가모형은 은행마다 다를 수 있지만, 유사한 정보를 사용하면서 결과가 극단적으로 엇갈린다면 신뢰를 얻기 어렵다. 금융당국은 시범 운영 과정에서 업종·지역·성별·연령별 승인율과 금리 차이를 분석해 불합리한 편향이 나타나는지 점검해야 한다. 다만 개인정보 보호를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통계와 검증 결과를 공개할 필요가 있다. 비금융정보 활용 범위도 명확히 해야 한다. 매출과 업력처럼 사업과 직접 관련된 정보는 평가의 필요성이 인정된다. 그러나 온라인 후기, 위치정보, 배달앱 활동, 사회관계망서비스 기록까지 무분별하게 활용한다면 개인정보 침해와 감시금융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어떤 정보를 수집하고 누구에게 제공하며 얼마나 오래 보관하는지 명확한 원칙을 세워야 한다. 소상공인 특화 평가가 은행의 위험을 줄이는 수단에만 머물러서도 안 된다. 평가체계가 정교해졌다는 이유로 우량 사업자에게만 자금을 몰아주고 어려운 업종의 금리를 더 높인다면 포용금융과 거리가 멀다. 금융회사는 차주의 상환 능력을 정확히 평가하되, 일시적인 매출 감소를 겪는 사업자에게는 만기 조정과 경영 개선 프로그램을 연계해야 한다. 정부도 새로운 평가모형을 정책대출 확대의 홍보 수단으로만 활용해서는 안 된다. 시범 운영 뒤 실제로 금융 이력이 부족한 소상공인의 승인율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금리가 얼마나 낮아졌는지, 연체율은 어떻게 변했는지를 검증해야 한다. 효과가 확인되지 않거나 특정 집단이 반복적으로 불이익을 받는다면 모형을 즉시 고쳐야 한다. 신용평가 혁신의 목적은 은행이 더 많은 데이터를 확보하는 데 있지 않다. 사업의 가능성은 있지만 기존 금융제도에서 소외됐던 사람에게 정당한 기회를 주는 데 있다. AI는 그 기회를 넓히는 도구가 될 수 있지만 책임을 피하는 방패가 돼선 안 된다. 소상공인에게 필요한 것은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이 세운 또 하나의 문턱이 아니다. 자신의 사업이 어떤 기준으로 평가됐고 잘못된 판단에는 어떻게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금융이다. 대출 문턱은 낮추되 알고리즘의 문턱은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그래야 AI 신용평가가 새로운 기회가 되고 새로운 차별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2026-07-28 10: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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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정상외교의 빛과 그림자…국내 산업 뿌리 남겨야
[경제일보] 대통령이 세계 인공지능(AI) 산업의 중심으로 간다. 이재명 대통령은 24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 다리오 아모데이 앤트로픽 최고경영자, 혹 탄 브로드컴 최고경영자를 차례로 만날 예정이다.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과 SK그룹 최태원 회장, 현대자동차그룹 정의선 회장 등 국내 기업인들도 합류한다. 정부가 주최하는 AI 서밋에서는 양국 기업 간 협약이 체결되고, 글로벌 AI 협력 방향을 담은 선언도 발표될 예정이다. 참석자의 면면만으로도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반도체를 공급하는 엔비디아와 브로드컴, AI 모델을 만드는 오픈AI와 앤트로픽, 메모리와 제조 역량을 가진 삼성전자와 SK, 피지컬 AI의 거대한 실험장이 될 현대차가 한자리에 모인다. 한국이 세계 AI 생태계의 변방이 아니라 핵심 공급망의 한 축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정상외교가 기업 간 장벽을 낮추고 투자와 기술협력의 문을 여는 일은 마땅히 환영할 일이다. AI 산업은 한 나라가 모든 기술을 독자적으로 갖추기 어려운 거대한 결합체다. 그래픽처리장치와 메모리, 파운드리, 데이터센터, 클라우드, 거대언어모델, 전력과 냉각 설비가 맞물려야 한다. 한국이 미국 빅테크와 손잡지 않고 AI 경쟁의 속도를 따라잡겠다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기술동맹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조건에 가까워지고 있다. 하지만 동맹은 악수로 완성되지 않는다. 협력이라는 이름 아래 무엇을 내주고 무엇을 가져오는지, 그 결과가 어느 나라의 공장과 연구소, 일자리와 세수로 남는지를 따져야 한다. 정상외교의 성과를 협약 건수나 투자 금액으로만 평가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해외에서 박수를 받은 양해각서가 국내 산업의 뿌리를 약하게 만든다면 외교적 성과는 산업적 비용으로 돌아온다. 공교롭게도 대통령의 샌프란시스코 방문을 앞두고 산업통상부 장관도 워싱턴으로 향했다. 김정관 장관은 미국 상무·에너지 당국과 한국 기업의 대미 전략투자, 에너지·자원 협력 등을 논의한다. 정부는 한미전략투자특별법에 따라 대미 투자사업을 구체화하고 있고, 현재 논의되는 한국의 대미 투자 약속은 3500억달러 규모다. 같은 시기에 샌프란시스코에서는 AI 기술협력을 넓히고, 워싱턴에서는 한국 자본의 미국 투자를 협의하는 셈이다. 미국에 투자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세계 최대 시장에 공장을 짓고 현지 고객과 가까워지는 것은 기업의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관세와 보조금, 조달 규정이 기업의 입지를 좌우하는 시대에는 현지 생산도 경쟁력의 일부다. 미국 시장을 지키기 위한 투자를 애국심만으로 막을 수도 없고, 막아서도 안 된다. 문제는 균형이다. 해외 공장을 하나 세울 때 국내 공장 하나가 사라지고, 해외 연구소를 키울 때 국내 인재 채용이 줄어드는 구조가 고착돼서는 안 된다. 대기업이 생산시설을 옮기면 협력업체와 장비업체, 물류와 지역 상권도 함께 움직인다. 산업 공동화는 어느 날 공장 문에 붙은 폐업 공고로 시작되지 않는다. 국내 증설이 미뤄지고, 신규 채용이 줄고, 핵심 연구조직이 해외로 이동하는 작은 변화가 쌓여 어느 순간 산업 생태계 전체의 빈자리로 나타난다. 특히 AI는 과거 제조업보다 기술 종속의 위험이 크다. 한국 기업이 반도체와 데이터, 전력, 자본을 제공하더라도 핵심 모델과 플랫폼,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해외 기업이 독점한다면 한국은 고부가가치 사슬의 중심이 아니라 값비싼 기반시설을 제공하는 하청기지에 머물 수 있다. 메모리 반도체를 잘 만드는 것과 AI 시대의 주도권을 갖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따라서 정부는 AI 정상외교의 성과를 국내에 남기기 위한 원칙을 먼저 세워야 한다. 우선 정책금융과 공적 보증이 투입되는 해외 투자에는 국내 투자 연계 조건을 붙여야 한다. 국내 연구개발센터 유지, 핵심 공정 투자, 협력업체 발주, 인재 양성 계획을 함께 따져야 한다. 해외 투자의 수익성뿐 아니라 국내 산업에 남기는 파급효과도 국익 심사의 기준이 돼야 한다. 또한 글로벌 빅테크와 체결하는 기술협약에는 한국 기업의 역할과 지식재산권의 귀속을 명확히 해야 한다. 데이터는 한국이 제공하고, 설비투자는 한국 기업이 부담하면서 핵심 기술과 수익은 해외 플랫폼에 집중되는 계약이라면 기술동맹이라 부르기 어렵다. 공동 연구의 성과가 국내 연구자와 스타트업, 대학으로 확산될 수 있는 통로도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해외 벤처자본과의 협력에는 상호성이 필요하다. 이 대통령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세쿼이아캐피털과 앤드리슨호로위츠 등 글로벌 벤처투자회사 관계자들을 만나고, 국민연금과 이들 투자회사 간 장기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 체결 행사에도 참석한다. 한국 자본이 실리콘밸리의 혁신기업에 투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실리콘밸리의 자본과 네트워크도 한국의 AI 스타트업과 연구 생태계로 들어오게 해야 한다. 정상외교의 성과를 협약 건수가 아니라 국내 잔존 가치로 평가해야할 필요도 있다. 협약 이후 국내 투자액이 얼마나 늘었는지, 몇 명을 새로 고용했는지, 국내 중소기업이 공급망에 얼마나 진입했는지, 공동 연구에서 한국이 확보한 특허와 기술이 무엇인지 공개해야 한다. 양해각서는 출발선일 뿐이다. 이행되지 않는 협약은 외교행사의 장식품에 지나지 않는다. ‘대학’에는 “사물에는 근본과 말단이 있고,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物有本末 事有終始)”는 구절이 나온다. AI 정상외교에서 글로벌 협약과 해외 투자는 뻗어 나가는 가지다. 국내 공장과 연구소, 인재와 협력업체는 뿌리다. 가지가 세계로 뻗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가지를 키우겠다고 뿌리의 물과 양분을 모두 빼내면 나무는 오래 서 있지 못한다. 한국 기업이 세계로 나아가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국내에만 머물라는 요구는 개방경제의 현실과도 맞지 않는다. 하지만 해외 진출을 세계화라는 말로 무조건 미화해서도 안 된다. 기업의 해외 투자는 기업의 판단이지만, 세제와 금융, 외교적 지원이 더해지는 순간부터는 국가 경제에 어떤 이익을 남기는지 물을 수밖에 없다. 정부는 대미 투자사업을 상업적 합리성과 국익을 기준으로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원칙은 옳다. 이제 ‘국익’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정의해야 한다. 해외에서 거둔 수익만 국익이 아니다. 국내 생산능력과 연구인력, 기술자립도, 협력업체의 생존, 청년들이 일할 양질의 일자리도 국익이다. AI 정상외교는 한국에 큰 기회다. 엔비디아와 오픈AI를 만나고 세계의 자본을 연결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다만 진정한 성과는 회담장의 사진이 아니라 몇 년 뒤 국내 산업 현장에서 확인될 것이다. 한국에 연구소가 늘고, 공장이 증설되고, 스타트업이 성장하며, 청년들이 새로운 일자리를 얻을 때 기술동맹은 비로소 국익이 된다. 빅테크와 손을 잡되 산업의 뿌리는 한국에 남겨야 한다. 해외 시장을 넓히되 국내 생산 기반을 비워서는 안 된다. 세계 AI 질서에 깊숙이 들어가되 기술과 플랫폼의 종속국이 돼서도 안 된다. AI 정상외교의 성패를 가를 기준은 단순하다. 협력의 열매가 국내 산업과 국민에게 돌아오는가. 그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기술동맹은 동맹이 아니라 공동화의 통로가 될 수 있다.
2026-07-23 10:4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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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1만700원, 이제는 인상률보다 제도 개혁을 논할 때다
[경제일보] 내년도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3.7% 오른 시간당 1만700원으로 결정됐다. 최저임금 제도 시행 이후 처음으로 1만 원대 중반 시대를 눈앞에 두게 됐다는 상징성은 있지만, 정작 결정 과정과 결과는 또다시 우리 사회의 깊은 갈등만 확인시켰다. 법정 시한을 넘긴 밤샘 협상과 막판 표결, 노사 양측의 극한 대립은 해마다 되풀이되는 풍경이 됐다. 사용자 측은 "더는 버틸 수 없다"고 호소하고, 노동계는 "실질임금 삭감"이라며 반발한다. 누구도 결과를 수용하지 못하는 현실은 현행 최저임금 결정 시스템이 이미 한계에 도달했음을 웅변한다. 최저임금은 저임금 근로자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이다. 그러나 아무리 선한 제도라도 시장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설 경우 부작용은 불가피하다. 지금 우리 경제는 고금리와 내수 부진, 소비 위축이라는 복합 불황 속에 놓여 있다. 특히 골목상권의 편의점과 음식점, 숙박업, 미용업 등 영세 서비스업은 인건비 부담과 임대료, 원자재 가격 상승을 동시에 떠안으며 생존 자체를 걱정하는 처지다. 현실적으로 최저임금조차 지급하지 못하는 사업장이 적지 않은 것은 제도의 실효성과 시장의 수용 능력 사이에 심각한 괴리가 존재한다는 방증이다. 실제로 취약 업종에서는 최저임금 미만율이 30%를 웃도는 것으로 나타난다. 법을 준수하고 싶어도 지급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영세 사업주를 잠재적 범법자로 만드는 제도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최저임금의 목적이 근로자를 보호하는 데 있다면, 그 제도가 오히려 일자리 축소와 폐업 증가를 초래하는 상황 또한 외면해서는 안 된다. 시장이 감당하지 못하는 임금은 결국 고용 감소와 근로시간 축소, 무인화 투자 확대라는 형태로 되돌아오기 마련이다. 피해는 결국 가장 보호받아야 할 취약계층 근로자에게 집중된다. 이제는 정치적 금기처럼 여겨졌던 업종별·지역별 최저임금 차등 적용을 진지하게 검토할 시점이다. 현행 법률 역시 사업의 종류별로 최저임금을 달리 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수십 년 동안 이 조항은 사실상 사문화됐다. 수도권 대기업과 지방 영세기업의 생산성은 물론 물가와 임금 수준, 지불 능력은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동일한 기준을 전국 모든 업종에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형평성보다 불균형을 키울 가능성이 크다. 주요 선진국들도 지역이나 산업별 특성을 반영한 다양한 임금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차등 적용이 곧 노동자 차별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에서 벗어나야 한다. 영세 서비스업과 농림어업, 지방 중소기업의 현실을 고려한 유연한 제도 설계가 오히려 취약계층의 일자리를 지키고 지역경제를 살리는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 획일적 평등보다 지속 가능한 공정이 더 중요하다. 최저임금위원회의 운영 방식 역시 근본적인 혁신이 필요하다. 지금의 결정 구조는 노·사·공익위원이 이해관계를 앞세워 줄다리기를 벌이는 정치적 협상 테이블에 가깝다. 객관적인 경제지표보다 협상력과 여론전이 결과를 좌우하는 구조에서는 사회적 신뢰를 얻기 어렵다. 이제는 물가상승률과 경제성장률, 노동생산성, 고용 여건, 중소기업의 지급 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한 객관적인 산식을 마련하고, 전문가 중심의 독립적인 심의체계로 전환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정치적 흥정이 아닌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결정 시스템만이 반복되는 사회적 갈등을 줄일 수 있다. 최저임금 논쟁의 본질은 숫자 자체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근로자의 삶을 보호하면서도 기업이 지속적으로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균형점을 찾는 일이다. 노동자 없는 기업도 없지만 기업 없는 일자리 역시 존재할 수 없다. 어느 한쪽의 희생만 강요하는 정책은 결국 모두를 어렵게 만든다. 최저임금 제도가 시행된 지 어느덧 40년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동안 우리 경제의 산업구조와 노동시장은 크게 달라졌지만 제도는 과거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이제는 해마다 반복되는 인상률 논쟁을 넘어 시장 현실과 경제 여건을 반영한 제도 개혁에 나설 때다. 업종별·지역별 차등 적용, 객관적 산식에 기반한 결정 구조, 생산성과 지급 능력을 함께 고려하는 합리적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노동자의 삶을 지키고 자영업자의 생존을 보호하며 우리 경제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담보하는 길이다. 최저임금의 미래는 인상률이 아니라 제도의 신뢰에서 결정된다는 사실을 정부와 정치권은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2026-07-19 10:3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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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쪽 국회가 된 7월 임시국회, 국민은 또다시 뒷전인가
[경제일보] 7월 임시국회가 또다시 '반쪽 국회'라는 오명을 안은 채 막을 올릴 것으로 보인다. 거대 여당은 민생 개혁 입법을 신속히 처리하겠다며 속도전을 예고했고, 제1야당은 원 구성 강행에 반발하며 국회 보이콧을 이어가고 있다. 입법부의 양 축인 여야가 출발부터 등을 돌린 채 대치하는 모습은 대한민국 의회민주주의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국민은 민생을 해결하는 국회를 원했지만, 정치권은 또다시 힘겨루기와 감정싸움으로 응답하고 있다. 의회민주주의는 다수결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다수의 결정은 존중받아야 하지만, 그 과정에서 소수 의견을 경청하고 설득하는 절차가 전제될 때 비로소 민주적 정당성을 갖는다. 그러나 최근 국회의 모습은 다수의 힘으로 모든 것을 밀어붙이려는 오만과, 이에 맞서 국회 자체를 거부하는 무책임이 맞부딪치는 최악의 정치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거대 여당은 국민이 부여한 의석을 국정 운영의 책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책임보다 힘을 앞세운 일방통행식 국회 운영은 결코 민주주의의 모습이 아니다. 원 구성부터 주요 법안 처리까지 협의와 조정 대신 숫자의 우위를 앞세워 밀어붙이는 방식은 국회의 존재 이유인 토론과 합의를 스스로 부정하는 일이다. 절차적 정당성을 경시한 입법은 법률의 생명력마저 약화시키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뒤집히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만든다. 야당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 의회민주주의에서 야당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조직이 아니라 권력을 견제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책임 있는 정치세력이다. 그러나 국회 보이콧을 상시적인 정치투쟁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국민이 부여한 책무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국회의원이 국회를 떠나는 순간 손해를 보는 것은 여당이 아니라 국민이다. 민생 현안은 방치되고, 경제는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여야 모두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는 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국회는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 민주주의는 승자독식의 제도가 아니라 서로 다른 의견을 조정하는 정치 시스템이다. 다수는 힘을 절제해야 하고, 소수는 책임 있게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어느 한쪽만 민주주의를 말해서는 민주주의는 작동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 경제는 어느 때보다 어려운 국면에 놓여 있다. 고물가와 고금리의 여파는 여전히 서민의 삶을 짓누르고 있고, 자영업자의 폐업은 이어지고 있으며, 청년들의 취업난과 기업들의 투자 위축도 심화되고 있다. 미국발 관세 정책 변화와 글로벌 공급망 재편, 저성장 고착화라는 대외 변수까지 겹쳐 민생은 한순간도 지체할 여유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가 정쟁으로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직무유기나 다름없다. 이번 임시국회에서 다뤄야 할 법안들은 대부분 국민의 삶과 직결된 사안들이다. 추가경정예산 후속 입법과 경제 활성화 대책, 소상공인 지원, 첨단산업 경쟁력 강화, 노동시장과 연금 개혁 등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는 과제들이다. 그러나 여당은 독주하고 야당은 퇴장하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법안은 졸속 처리되거나 아예 표류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피해는 정치권이 아니라 국민에게 돌아간다. 공자는 『논어』에서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한다"고 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것이 군자의 정치라는 뜻이다. 노자 역시 『도덕경』에서 "강한 것은 부러지고, 부드러운 것이 오래간다"고 가르쳤다. 상대를 굴복시키는 정치보다 상대를 포용하는 정치가 오래간다는 인류의 지혜를 오늘의 정치권은 되새겨야 한다. 국회는 승패를 겨루는 경기장이 아니다.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헌법기관이다. 여당은 숫자의 우위를 겸손으로 다스려야 하며, 야당은 보이콧보다 정책 경쟁으로 존재 이유를 증명해야 한다. 무엇보다 원 구성과 쟁점 법안에 대해서는 여야 원내대표와 상임위원장이 참여하는 상설 협의체를 활성화하고, 일정 기간의 숙의와 공개 토론을 제도화하는 등 협치를 복원할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힘으로 밀어붙이는 정치도, 무조건 거부하는 정치도 이제는 끝내야 한다. 국민은 정치권의 싸움을 구경하기 위해 세금을 내는 것이 아니다. 국회를 구성하라고 표를 준 것도 아니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를 준비하며, 갈등을 조정하라고 권한을 위임한 것이다. 7월 임시국회가 또 하나의 '반쪽 국회'로 끝난다면 국민의 정치 불신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의석이 아니라 더 큰 책임감이며, 더 높은 목소리가 아니라 더 깊은 경청이다. 국회가 협치를 잃는 순간 민주주의는 껍데기만 남는다. 여야는 지금이라도 정쟁의 장막을 걷어내고 국민 앞에 마주 앉아야 한다. 그것이 헌법이 부여한 의회의 책무이며, 국민이 마지막으로 정치에 기대하는 최소한의 상식이다.
2026-07-06 09: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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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은 뒷전, 당권만 좇는 여의도의 씁쓸한 자화상
배가 침몰하고 있는데 선장과 항해사는 서로 조타기를 잘못 잡았다며 멱살잡이만 하고 있다. 갑판 아래에서는 승객들이 물이 차오르는 공포에 떨고 있는데도 말이다. 오늘날 대한민국 정치의 모습이 꼭 그렇다. 6·3 지방선거가 끝난 지 2주가 지났지만 정치권은 여전히 선거의 후유증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선거의 교훈을 되새기기는커녕 선거 결과를 둘러싼 책임 공방과 당권 투쟁에만 몰두하고 있다. 여의도는 민심을 읽는 공간이 아니라 권력을 계산하는 공간으로 변질된 지 오래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예외가 아니다. 선거 결과에 대한 책임론이 제기되자 지도부를 향한 사퇴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그러나 국민이 진정 묻고 있는 것은 누가 대표직을 유지할 것인가가 아니다. 왜 국민이 등을 돌렸는가, 왜 국민의 삶은 나아지지 않는가에 대한 성찰이다. 안타깝게도 정치권은 그 질문을 외면한 채 차기 권력의 향배에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선거 과정에서 드러난 투표용지 부실 관리 사태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심각한 문제였다. 선거 관리 시스템의 허점이 드러났고 국민의 신뢰는 상처를 입었다. 고물가와 경기 침체 속에서 서민들의 삶은 더욱 팍팍해지고 있다. 자영업자들은 폐업을 고민하고 청년들은 취업난에 신음하며 노년층은 생활비 걱정으로 밤잠을 설치고 있다. 그러나 국회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민생 대책이 아니라 계파 갈등과 권력 재편 이야기뿐이다. 정치가 국민을 위한 것인지, 정치인 자신을 위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공자는 논어에서 "정치는 바르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도자가 바르면 백성도 자연히 바르게 따른다는 뜻이다. 그러나 오늘의 정치는 바름보다 유불리를 먼저 따지고 있다. 국민의 고통보다 당내 권력 지형에 더 관심을 보이고, 국가의 미래보다 다음 전당대회와 공천을 더 걱정하는 모습이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성인은 자기 자신을 뒤로하고 백성을 앞세운다"고 했다. 또한 "강한 것은 부러지고 부드러운 것이 살아남는다"고 가르쳤다. 지도자는 권력을 움켜쥐려 할수록 결국 그 권력에 갇히게 되고, 백성의 목소리를 낮은 자세로 듣는 자만이 오래갈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지금의 정치권은 어떠한가. 국민 앞에 고개를 숙이는 대신 상대 진영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데 더 익숙해 보인다. 더 큰 문제는 양당 모두 선거 결과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만 해석한다는 점이다. 국민의 심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기보다 이를 내부 권력투쟁의 무기로 사용하고 있다. 선거 책임론이 본래의 의미를 잃고 정적 제거의 수단으로 변질되는 순간, 정치의 품격은 무너진다. 국민의 채찍질은 쇄신을 위한 것이지 계파 싸움의 명분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대의민주주의의 핵심은 책임 정치다. 권한을 가졌다면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 잘못이 있다면 솔직하게 인정하고 개선책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정치권에서는 책임지는 지도자를 찾기 어렵다. 모두가 남의 탓을 한다. 정부는 야당을 탓하고 야당은 정부를 탓한다. 당 지도부는 전임 지도부를 탓하고 계파는 상대 계파를 탓한다. 국민은 이미 알고 있다. 서로를 향한 비난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성경 잠언에는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라는 구절이 있다. 지도자가 민심을 두려워하지 않고 권력을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는 순간 몰락은 시작된다는 경고다. 역사를 돌아보면 국민의 경고를 무시한 정권과 정당 가운데 오래 살아남은 사례는 없다. 지금 대한민국이 직면한 과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저성장과 고물가, 인구 감소와 청년 실업, 인공지능(AI) 시대의 산업 재편, 국제 질서의 불확실성까지 어느 것 하나 쉬운 문제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이 권력 다툼에만 몰두한다면 국가는 방향을 잃고 국민은 희망을 잃게 된다. 정당은 권력을 얻기 위해 존재하는 조직이 아니다. 국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존재하는 공적 기관이다. 대표직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며, 당권은 국민을 위한 봉사의 도구일 뿐이다. 그런데 수단이 목적이 되고 봉사가 권력욕으로 변질되면 정치는 본래의 존재 이유를 상실하게 된다. 배가 침몰할 때 필요한 것은 서로의 잘못을 따지는 싸움이 아니다. 승객을 구하기 위한 협력이다. 지금 대한민국 정치에도 필요한 것은 상대를 무너뜨리는 기술이 아니라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다. 국민은 더 이상 변명하는 지도자를 원하지 않는다. 국민은 책임지는 지도자, 듣는 지도자, 행동하는 지도자를 원한다. 여야는 이제 당권이라는 독배를 내려놓아야 한다. 선거 결과에 담긴 국민의 경고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민생이라는 본분으로 돌아와야 한다. 쇄신 없는 권력투쟁의 끝은 공멸이다. 반대로 책임 정치와 협치의 정신을 회복한다면 위기는 새로운 도약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정치는 권력을 위한 게임이 아니라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일이다. 그 가장 단순한 진실을 잊지 않는 것, 그것이 오늘 대한민국 정치가 가장 먼저 되찾아야 할 상식이다.
2026-06-18 17:4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