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총 3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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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농협은행, AI·기업금융으로 성장전략 확대
[경제일보] 강태영 행장이 이끄는 NH농협은행이 인공지능(AI)과 기업금융을 중심으로 성장전략을 넓히고 있다. 올해 상반기 순이익은 1조1629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2.1% 감소했지만 기업여신은 183조8112억원으로 6.7% 증가했고 순이자마진(NIM)은 1.74%로 0.04%포인트(p) 상승했다. 강 행장은 올원뱅크사업부장과 디지털전략부장, DT부문장 등을 거친 디지털 전문가다. 취임 이후 AI 전환을 조직과 영업 현장으로 확대하는 한편 향후 5년간 65조3000억원 규모의 생산적 금융을 공급해 첨단산업과 지역특화산업을 중심으로 기업금융 기반을 넓힐 계획이다. ◆‘디지털 전문가’ 강태영…AI 은행 전환 속도 강 행장은 올해 AI 전환을 주요 경영전략으로 추진한다. 조직개편을 통해 기존에 분산돼 있던 AI전략과 데이터 분석, 로봇프로세스자동화(RPA) 기능을 묶은 AI데이터부문도 신설했다. 지난 6월에는 ‘NH AGENTIC AI BANK’ 비전을 선포했다. 직원이 업무에 활용할 수 있는 AI 플랫폼 ‘NHAIS’를 구축하고 금융업무 전반에 AI를 적용하는 한편 외부 AI기업과 투자·사업협력을 확대하는 것이 주요 목표다. 실행 조직도 별도로 꾸렸다. 농협은행은 77명 규모로 ‘AX프런티어’를 출범해 AI 기반 업무 전환 과제를 발굴하고 있다. AI 전문기업 애자일소다를 인수해 AI 기반 사업협력을 본격화했고 지난달에는 차세대 AI 컨택센터를 열었다. 고객 데이터와 AI를 활용한 초개인화 금융서비스 개발도 추진하고 있다. 강 행장은 지난 1991년 농협중앙회에 입사한 뒤 농협은행 종합기획부 전략기획단장과 올원뱅크사업부장, 디지털전략부장 등을 거쳤다. 이후 DT부문장과 농협금융 디지털금융부문을 맡았고 NH농협캐피탈 지원총괄 부사장을 거쳐 지난해 농협은행장에 올랐다. ◆생산적 금융 65조…기업금융 중심 성장축 확대 AI와 함께 강 행장이 힘을 싣는 분야는 생산적 금융이다. 농협은행은 지난 3월 은행장 직속 생산적 금융 추진위원회를 꾸리고 향후 5년간 65조3000억원을 공급하기로 했다. 지원 대상은 △반도체·AI 등 첨단전략산업 △농식품·애그테크 △지역특화산업 △창업·벤처기업 △기술금융 등이다. 포용금융 등을 포함한 전체 신규 금융공급 계획은 76조8000억원이다. 지원도 빠르게 집행됐다. 지난 5월 기준 생산적 금융 지원액은 8조5363억원으로 연간 목표의 67.6%에 도달했다. 이 가운데 첨단전략산업에 3조421억원, 창업·벤처기업에 2조1962억원이 공급됐다. 기업금융 거점도 넓혔다. 판교에서는 AI·데이터·IT·반도체, 송도에서는 제약·바이오 기업을 대상으로 금융지원을 강화했다. 기업과의 직접 협력도 이어졌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3년간 1조원 규모의 금융협력을 체결했고 OCI와도 3년간 5000억원 규모의 금융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기업여신 184조…NIM 개선에도 ROE 9.01% 기업금융 확대는 자산 구성에서도 확인된다. 올해 상반기 말 농협은행 총여신은 342조2243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4.2% 증가했다. 이 중 기업여신은 172조2060억원에서 183조8112억원으로 6.7% 늘었다. 같은 기간 가계여신은 1.6% 증가한 148조8540억원을 기록했다. 수익 기반도 확대됐다. NIM은 1.70%에서 1.74%로 상승했고 원화예대금리차는 1.94%에서 1.98%로 높아졌다. 은행계정 기준 순이자손익은 3조9145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8.2%, 순수수료손익은 4531억원으로 16.6% 증가했다. 반면 수익성 지표는 하락했다. 올해 상반기 총자산이익률(ROA)은 0.55%에서 0.51%, 자기자본이익률(ROE)은 9.43%에서 9.01%로 낮아졌다. 같은 기간 신용손실충당금 전입액도 1882억원에서 2960억원으로 57% 넘게 늘었다. 은행계정 기준 영업이익은 1조8047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감소했다. 건전성 지표도 일부 후퇴했다. 고정이하여신(NPL)비율은 0.47%에서 0.52%로 상승했고 대손충당금적립률은 214.26%에서 172.07%로 낮아졌다. 다만 기업대출 연체율은 0.61%에서 0.59%로 하락했다. 자본비율은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상반기 말 보통주자본(CET1)비율은 15.83%, 기본자본비율은 17.41%, 총자본비율은 18.79%를 기록했다. ◆농업·지역금융 정체성에 디지털 입힌다 기업금융과 AI를 확대하는 동시에 기존 농업·지역금융에도 디지털을 접목한다. 지난 4월에는 농업정책자금 가운데 처음으로 후계농육성자금의 영업점 무방문 대출을 도입했다. 고객이 올원뱅크에서 신청부터 실행까지 처리할 수 있도록 한 방식이다. 농식품 기업 대상 금융도 늘렸다. 농식품 관련 162개 업종을 대상으로 하는 ‘NH특화 기술금융’ 공급액은 올해 5000억원을 넘어섰다. 농식품·푸드테크·애그테크 분야에서는 8개 펀드 3441억원을 운용하며 향후 3년간 5000억원 이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포용금융도 병행한다. 농협은행은 지난 6월 말까지 서민과 소상공인, 폐업자 등을 대상으로 1조9126억원을 지원했다. 지난달에는 전국 지역신용보증재단에 100억원을 특별출연해 마을기업 등 지역기반 기업에 1500억원 규모의 금융지원도 추진했다. 강 행장은 농업·지역금융이라는 농협은행의 기존 사업 기반에 AI와 첨단산업 기업금융을 새로운 성장축으로 더하고 있다. 기업여신 확대와 NIM 개선을 이어가는 동시에 자산 성장 과정에서 수익성과 건전성을 함께 높이는 것이 향후 과제로 남았다. [아주경제 2026년 09월 22일자 15면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2026-09-22 08:3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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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 지역 개발자 교육도 '에이전틱 AI'로…인재 넘어 창업 생태계 키운다
[경제일보] 카카오가 비수도권 개발자 교육의 무게중심을 웹·앱 개발에서 에이전틱 AI로 옮긴다. 단순 코딩 교육에 그치지 않고 학생들이 직접 문제를 정의하고, AI가 스스로 판단·실행하는 서비스를 만들어보도록 커리큘럼을 바꾼 것이다. 지역 인재를 현장형 AI 개발자로 키운 뒤 창업과 기업 성장까지 연결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카카오는 ‘카카오테크 캠퍼스 아이디어톤’을 열고 강원대·경북대·부산대·전남대·충남대 등 5개 지역 거점 국립대 학생 145명과 에이전틱 AI 서비스 개발에 착수했다고 4일 밝혔다. 카카오테크 캠퍼스는 2023년부터 비수도권 기술 교육 격차를 줄이기 위해 운영해온 ESG 프로그램이다. 올해는 기존 프론트엔드·백엔드 중심의 웹·앱 개발 교육을 통합하고, AI 서비스 기획부터 개발·배포까지 경험하는 에이전틱 AI 과정으로 전면 개편했다. 카카오가 교육 방향을 바꾼 배경에는 산업 현장의 변화가 있다. 생성형 AI가 단순 답변을 제공하는 단계를 넘어 여러 도구를 활용해 업무를 수행하는 에이전트 형태로 빠르게 발전하면서 기업이 요구하는 개발자 역량도 달라지고 있다. 카카오 역시 카나나와 AI 에이전트를 중심으로 서비스 전환을 추진하는 만큼 실제 사업 현장에서 필요한 역량을 지역 대학 교육에 빠르게 반영하려는 것이다. 교육 과정도 실무형으로 구성했다. 5월부터 11월까지 AI 개발 기초를 익히는 프리코스와 에이전틱 AI 실습, 문제 정의부터 서비스 기획·개발·배포까지 이어지는 프로젝트를 단계별로 진행한다. 이번 아이디어톤은 실제 개발에 앞서 해결할 문제와 핵심 기능을 구체화하는 과정이다. 송재하 카카오 CTO를 비롯한 현업 임직원 11명도 직접 멘토로 참여했다. 아이디어의 참신함보다 실제 구현 가능성과 서비스 차별성, 이용자 관점에서의 완성도를 점검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최우수상은 전남대 팀의 ‘맞춤형 개발자 모의면접 AI’가 받았다. 지원자가 작성한 코드를 분석해 면접 꼬리질문을 생성하는 서비스다. 소상공인 폐업 절차 안내, AI 커리어 정리, 육아 판단, 개인사업자 종합소득세 지출 판독 등 생활 속 문제를 해결하는 AI 서비스도 우수작으로 선정됐다. 카카오가 이 프로그램을 단순 교육사업으로만 보지 않는 이유는 ‘카카오 AI 돛’과의 연결에 있다. 카카오는 지난해 5년간 500억원 규모의 지역 AI 육성 기금을 조성하고, 올해 KAIST·GIST·DGIST·UNIST와 지역 AI 인재·기업 육성 기구인 AI 돛을 출범시켰다. 2030년까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AI 혁신기업 100개를 발굴하는 것이 목표다. 카카오테크 캠퍼스가 지역 대학생의 실무 역량을 키우는 입구라면 AI 돛은 우수 인재와 아이디어를 창업과 기업 성장으로 연결하는 다음 단계인 셈이다. 수도권으로 이동해야만 AI 교육과 창업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구조를 줄이고, 지역 안에서도 인재와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겠다는 메시지가 깔려 있다. 서은희 카카오 기술인재양성 리더는 “에이전틱 AI 서비스를 직접 기획하고 구현할 수 있는 역량에 대한 산업 현장의 수요가 빠르게 커지고 있다”며 “지역 학생들이 실무 역량을 갖춘 기술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카카오가 이번 사업을 통해 보여주려는 것은 ‘교육을 했다’는 성과보다 지역에서 AI 인재를 키우고, 그 인재가 실제 서비스와 기업을 만들도록 연결하는 구조를 만들 수 있느냐다. 향후 카카오테크 캠퍼스 수료생이 AI 돛의 창업·투자 프로그램까지 이어지고 실제 지역 AI 기업으로 성장하는 사례가 나오느냐가 이 사업의 성패를 가를 전망이다.
2026-09-04 16:4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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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퇴직연금서 M&A까지…은행권 승계 영업 넓힌다
[경제일보] 은행권이 기업 오너와 최고경영자(CEO)를 겨냥한 승계 영업을 넓히고 있다. 기존 상속·증여 상담을 넘어 퇴직연금, 기업승계, 인수합병(M&A), 법률·세무 자문까지 묶어 개인 자산관리와 법인 영업을 동시에 확보하려는 전략이다. 3일 은행권에 따르면 하나은행은 최근 기업 CEO와 임원을 대상으로 한 'C-Level 퇴직연금 전담 컨설팅'을 시행했다. 이번 서비스는 임원 퇴직금 관련 세무·절세 상담과 퇴직연금 운용, 연금 수령 상담을 제공하는 것이 핵심이다. 여기에 소속 기업의 퇴직연금 제도와 경영성과급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 컨설팅까지 포함했다. 퇴직연금 외 종합자산관리가 필요한 고객에게는 금융자산 포트폴리오, 부동산 투자자문, 상속·증여, 기업승계, 신탁 활용 상속 설계 등도 연계한다. CEO 개인의 은퇴자산 관리에서 출발해 법인의 퇴직연금 제도 컨설팅까지 상담 범위를 넓힌 셈이다. 기업 고객을 대상으로는 별도의 기업승계 컨설팅과 M&A 금융지원도 제공하고 있다. 기업승계 컨설팅은 비상장주식 가치평가와 승계 방법·시기에 따른 세 부담 분석, 납세재원 마련, 법인 전환·기업 지배구조 변경 등을 다룬다. 지난 5월에는 기술보증기금과 기업승계 및 M&A 금융지원 업무협약을 맺고 총 20억원을 출연하기로 했다. 신한은행은 기업승계와 M&A 자문 영역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 5월 삼정KPMG와 중소·중견기업 M&A 및 기업승계 자문서비스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고 기업 오너와 영위 법인의 승계 수요 발굴에 나섰다. 협력 분야는 △기업 경영 컨설팅 △기업가치 평가 △M&A·가업승계 자문 △인수금융 △자산관리 연계 등이다. 신한은행은 거래 기업을 대상으로 수요를 발굴하고 삼정KPMG는 가치평가와 회계·세무, 거래 구조 검토 등을 맡는 구조다. 지난달에는 기술보증기금과 기업승계 및 기술혁신 촉진을 위한 M&A 금융지원 업무협약도 체결했다. 신한은행은 특별출연금과 보증료 지원금을 포함해 총 13억원을 출연하고, 양 기관은 438억원 규모의 협약보증부 여신을 공급할 예정이다. 우리은행은 기업승계지원센터를 중심으로 관련 사업을 먼저 확대했다. 지난 2월 회계·세무·M&A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전담 조직을 신설하고 중소·중견기업의 친족 승계, 임직원 승계, 제3자 매각 등을 지원하고 있다. 센터 신설 이후 우리은행은 554개 기업과 기업승계 업무협약을 체결했고 이 가운데 102개 기업에 컨설팅을 제공했다. 향후에는 연간 500개, 5년간 2500개 이상 기업에 승계 컨설팅을 제공한다는 목표다. KB국민은행은 상속·증여와 법률 자문을 앞세웠다. 지난달 김앤장 법률사무소와 상속 금융 비즈니스 상호협력 업무협약을 맺고 KB골든라이프센터의 종합자산승계 서비스를 강화하기로 했다. 양측은 상속 분쟁 예방을 위한 법률 자문과 상속세법 관련 교육, 세미나 등을 함께 추진한다. 해외 자산을 보유한 고객의 상속 상담과 비금융 분야 법률 자문 서비스도 제공할 계획이다. 은행권에서는 승계 수요가 단순 상속 상담을 넘어 법인 거래와 투자금융 수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기업 오너의 승계 과정에서 개인 자산관리와 법인 자금조달, 세무·법률 검토가 함께 필요해지는 만큼 관련 서비스도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중소기업 경영자 고령화와 후계자 부족도 은행권의 승계 영업 확대를 뒷받침하는 요인이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해 12월 M&A 방식의 기업승계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경영자가 60세 이상인 중소기업 비중이 3분의 1 수준이라고 밝혔다. 60세 이상 경영자 기업의 후계자 부재율은 28.6%로 추정됐다. 정진완 우리은행장은 지난 6월 생산적 기업승계 간담회에서 "기업승계는 단순히 한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임직원의 고용 유지와 기술력 보존, 산업 내 공급망 안정성과 직결되는 중요한 경제 과제"라며 "기업의 폐업이나 사업 축소를 방지하고 일자리와 기술, 산업 기반이 안정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생산적 기업승계 지원에 힘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2026-09-03 15: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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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 살리고 사람 잃는 전환은 안 된다
[경제일보] 철강의 위기가 공장 담장을 넘어 일자리로 번지고 있다. 충남 당진이 지난 21일부터 ‘고용위기 선제대응지역’이 됐다. 현대제철을 비롯한 철강기업들이 밀집한 이 도시에서 철강업과 금속제품 제조업을 중심으로 고용 감소가 나타나자 정부가 고용 충격이 더 커지기 전에 안전망을 가동한 것이다. 23일 충남도는 정부 지원과 자체 일자리 정책을 연계해 고용 유지부터 직업훈련, 전직·재취업, 생계 지원까지 대응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지정은 단순한 지역 고용대책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대한민국 철강산업의 구조적 위기가 기업 손익계산서를 넘어 지역사회에 청구서를 보내기 시작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당진은 포항·광양과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철강도시다. 공장 하나가 철강만 만드는 것이 아니다. 협력업체와 운송업체, 정비업체가 붙고 식당과 상점이 생긴다. 공장이 벌어들인 돈으로 지방세가 걷히고, 그 돈이 다시 지역의 학교와 도로, 복지에 쓰인다. 주력기업의 생산이 줄면 협력업체 매출이 먼저 꺾이고 채용이 줄며, 그 여파는 골목상권과 지방재정까지 이어진다. 당진은 이미 그 징후를 겪고 있다. 지역 주요 철강기업 5개사의 영업이익은 2023년 2623억원 흑자에서 지난해 444억원 적자로 돌아섰다. 당진의 국세 납부액 역시 2022년 5063억원에서 2024년 1228억원으로 급감했고 법인 지방소득세는 같은 기간 317억원에서 28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철강기업의 실적 악화가 지역경제의 체력을 얼마나 빠르게 떨어뜨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숫자다. 원인은 하나가 아니다. 산업연구원은 국내 철강시장이 건설수요 감소와 글로벌 공급과잉, 수출 부진이 겹치며 20년 만의 최저 수준의 수요를 경험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부 설비의 폐쇄와 가동 중단, 인력 조정 압력에 더해 산업용 전기요금 상승과 탄소중립 비용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철강산업의 체질을 바꿔야 한다는 결론을 피할 수 없는 이유다. 값싼 범용재를 대량 생산해 중국산 철강과 가격으로 경쟁하는 방식에는 한계가 분명하다. 자동차·조선·방산·에너지용 고부가 강재로 올라가고, 수소환원제철과 전기로 확대 등 탄소배출을 줄이는 생산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제조공정에는 인공지능과 자동화를 더 깊이 넣어야 한다. 유럽의 탄소규제와 각국의 보호무역 장벽을 생각하면 선택이라기보다 생존에 가까운 문제다. 정부가 경쟁력이 떨어진 모든 설비와 일자리를 세금으로 영원히 붙들어둘 수도 없다. 시장에서 수요를 잃은 생산시설까지 고용을 이유로 계속 유지하면 기업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결국 더 큰 구조조정을 부를 수 있다. 문제는 산업 전환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비용을 누가 부담하느냐다. 기업은 오래된 설비를 닫으면 재무구조가 좋아질 수 있다. 국가는 산업 전체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친환경 설비를 도입하면 탄소배출도 줄어든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와 공장 주변의 협력업체, 지역 상인에게는 ‘산업 고도화’라는 말이 당장의 생계 문제로 돌아온다. 국가와 기업이 전환의 편익을 얻으면서 비용은 노동자와 지역에만 남기는 구조라면 공정하지도,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이번 당진 고용위기 선제대응지역 지정이 의미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원 대상 노동자의 국민내일배움카드 한도는 300만원에서 500만원으로 늘어나고 생활안정자금 융자 한도도 2000만원에서 2500만원으로 확대된다. 기업의 고용유지지원금 지원 비율은 66.7%에서 80%로 높아진다. 충남도는 내년 최대 60억원 규모의 ‘당진 철강산업 버팀이음프로젝트’ 국비 확보도 추진한다. 필요한 조치다. 다만 생계자금과 훈련비를 늘리는 것만으로 산업 전환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핵심은 숙련을 버리지 않는 전환이다. 철강공장에서 20년을 일한 노동자에게 새로운 직업을 찾으라며 몇 달짜리 일반 직업훈련을 제공하는 것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 없다. 제철소의 설비와 공정, 품질관리, 안전관리 경험은 산업의 자산이다. 이를 수소환원제철과 전기로, 친환경 설비, 산업용 로봇과 스마트팩토리 운영 역량으로 전환시키는 교육이 필요하다. 재교육의 출발점도 실업 이후가 아니라 재직 중이어야 한다. 구조조정 대상자가 확정된 뒤 교육기관을 찾는 것은 너무 늦다. 기업의 설비 전환 계획과 함께 향후 줄어드는 직무와 새로 필요한 직무를 예측하고, 노동자가 기존 일자리에서 일하는 동안 새로운 기술을 익히도록 해야 한다. 기업에도 책임을 요구해야 한다. 국가가 탄소중립 설비에 세액공제와 정책금융을 제공한다면 해당 기업은 고용 전환 계획을 함께 내놓아야 한다. 어떤 일자리가 줄어들고 어떤 직무가 새로 생기는지, 기존 노동자를 얼마나 재배치하고 협력업체 고용에는 어떤 영향이 있는지를 사전에 제시해야 한다. 친환경 설비 투자계획은 수십 년 뒤까지 세우면서 사람에 대한 계획은 구조조정 직전에 만드는 식이어서는 곤란하다. 지역 정책은 더 크게 봐야 한다. 당진의 철강 노동자를 모두 다른 철강회사로 옮기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결국 철강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정책과 함께 지역의 산업구조 자체를 넓혀야 한다. 당진을 저탄소 철강의 거점으로 만들면서 수소·에너지, 철강 자원순환, 친환경 소재, 산업자동화와 같은 연관 산업을 끌어들일 필요가 있다. 산업연구원도 철강 집적지역의 대응 방안으로 수소환원제철과 탈탄소 설비·부품 산업, 제조 AX, 자원순환 분야로의 다각화를 제시했다. 그래야 전환 과정에서 사라지는 일자리와 새로 생기는 일자리가 같은 지역 안에서 연결될 수 있다. 과거 제조업 구조조정의 실패에서 배울 것도 있다. 주력기업이 떠난 뒤에야 도시재생과 창업지원 사업을 시작하면 이미 숙련인력과 젊은 가족은 지역을 떠난 뒤다. 사람과 기업이 빠져나간 도시를 다시 일으키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일자리를 지키고 새로운 산업으로 연결하는 비용보다 훨씬 크다. 정부가 고용 충격이 통계에 완전히 나타나기 전에 당진을 선제대응지역으로 지정한 것은 그래서 평가할 대목이다. 이 제도 자체도 기존 고용위기지역이 실업과 고용 감소가 상당 부분 진행된 뒤에야 작동한다는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지난해 도입됐다. 이제 ‘선제’라는 말을 정책의 시간표 전체에 적용해야 한다. 실직하기 전에 훈련하고, 협력업체가 폐업하기 전에 사업 전환을 돕고, 지역의 청년이 떠나기 전에 새로운 기업을 불러들여야 한다. 정부도 최근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의 상황이 급격히 나빠지면 산업위기대응특별지역으로 신속하게 넘어갈 수 있도록 패스트트랙을 도입하는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위기가 현실이 된 뒤 지원하던 방식에서 위험이 보일 때 움직이는 방식으로 바꾸겠다는 취지다. ‘중용’에는 ‘범사예즉립 불예즉폐(凡事豫則立 不豫則廢)’라는 말이 있다. ‘모든 일은 미리 준비하면 서고, 준비하지 않으면 무너진다’는 의미다. 산업 전환도 그렇다. 철강의 구조조정을 막을 수 있다는 환상을 가져서는 안 된다. 기술도 바뀌고 시장도 바뀐다.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생산방식은 결국 새로운 방식으로 대체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변화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가 누구의 희생 위에서 이뤄질 것인지를 미리 결정하는 일이다. 기업에는 친환경 설비와 고부가 제품 전환을 지원하고, 노동자에게는 숙련을 이어갈 직업과 교육을 제공하며, 지역에는 다음 산업을 심어야 한다. 세 정책이 따로 움직여서는 안 된다. 산업정책의 성공을 공장의 생산성만으로 평가하던 시대도 지나야 한다. 수소환원제철 공장을 지었는데 숙련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고, 기업은 살아났는데 지역 상권과 인구가 무너졌다면 그것을 온전한 산업 전환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철강은 한국 산업화를 떠받친 산업이다. 당진과 포항, 광양의 노동자와 지역사회 역시 그 성장의 비용과 과실을 함께 감당했다. 새로운 철강으로 넘어가는 비용 역시 함께 나눠야 한다. 산업을 살리기 위해 사람을 버리는 전환은 오래갈 수 없다. 공장을 바꾸는 것과 사람의 삶을 이어주는 것, 그 둘을 함께 해내야 진짜 산업 전환이다.
2026-08-24 1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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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금리 인상, 물가 잡다 내수를 더 얼려선 안 된다
[경제일보] 한국은행이 추가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유상대 한국은행 부총재는 11일 특별한 변수가 없다면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이 높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한국은행은 지난 7월 기준금리를 2.75%로 올린 데 이어 국내 수요 회복에 따른 물가 압력을 경계하고 있다. 물가 안정이 중앙은행의 가장 중요한 책무라는 점에서 필요한 대응이다. 그러나 금리를 올리는 데는 언제나 대가가 따른다. 기준금리가 오르면 은행의 대출금리가 상승하고 가계의 이자 부담이 커진다. 기업의 자금 조달 비용도 높아진다. 특히 대출 의존도가 높은 자영업자와 중소기업, 취약차주에게 금리 인상은 단순한 숫자의 변화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지금 한국경제는 금리를 올리기에도, 그대로 두기에도 쉽지 않은 상황에 놓여 있다. 반도체 수출과 AI 투자 확대에 힘입어 성장률 전망은 개선되고 있지만 국민이 체감하는 내수경기는 여전히 차갑다. 소비 회복은 더디고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어려움도 계속되고 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과 건설업의 부실 우려도 완전히 해소됐다고 보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물가만 바라보고 금리를 빠르게 올리면 거시경제 지표는 안정될지 몰라도 내수와 취약 부문의 부담은 그만큼 무거워진다. 반대로 가계와 기업 부담만 걱정해 물가 상승 압력을 방치하면 실질소득이 줄고 서민경제가 더 큰 피해를 입는다. 한국은행이 어려운 선택에 직면한 이유다. 최근의 물가 흐름도 면밀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국제유가와 환율 같은 외부 요인뿐 아니라 내수 회복과 임금, 서비스 가격 등 국내 요인이 물가를 자극하고 있다면 통화당국으로서는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 물가 상승세가 굳어지면 나중에는 더 큰 폭의 금리 인상이 필요해진다. 그렇다고 기준금리를 물가만 잡는 단일 처방전처럼 사용할 수는 없다. 통화정책은 경제 전체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 금리를 0.25%포인트 올리는 순간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 자영업자 대출과 기업 대출에 동시에 충격이 전달된다. 통화정책의 효과가 강력한 만큼 부작용도 폭넓게 살펴야 한다. 가장 우려되는 곳은 가계부채다. 한국의 가계는 이미 상당한 규모의 부채를 안고 있다. 변동금리 대출 비중이 높은 차주에게 추가 금리 인상은 월 원리금 부담 증가로 바로 이어진다. 주거비와 생활물가 부담까지 커진 상황에서 이자 비용이 다시 늘어나면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 소비 감소는 자영업자의 매출 감소로 연결되고 다시 내수 침체를 키우는 악순환으로 번진다. 취약차주에 대한 정교한 대책이 필요한 이유다. 금리 인상 자체를 막기보다 그 과정에서 충격이 특정 계층에 집중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정상적으로 원리금을 상환하고 있지만 일시적인 금리 부담을 겪는 차주에 대해서는 채무조정과 장기·고정금리 전환 등 현실적인 선택지를 넓혀야 한다. 자영업자 대책도 단순한 만기 연장에 그쳐서는 안 된다. 코로나19 이후 누적된 부채에 경기 부진과 고금리가 겹치면서 경쟁력이 있는 사업자와 사실상 상환 능력을 잃은 사업자를 구분할 필요성이 커졌다. 정상 사업자에게는 금융 지원을 제공하되 회생 가능성이 낮은 경우에는 폐업과 재취업, 채무조정을 연결하는 출구 전략이 필요하다. 부동산 PF도 경계해야 한다. 금리가 높아질수록 사업성이 낮은 개발사업의 금융비용은 커지고 부실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진다. 부실을 무조건 금융권이 떠안게 하는 것도, 정부가 세금으로 막아주는 것도 답이 아니다. 사업성이 없는 사업장은 신속하게 정리하고 정상 사업장은 자금이 막혀 쓰러지지 않도록 선별 지원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은행과 정부 정책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가지 않는 것이다. 중앙은행이 물가를 잡겠다며 금리를 올리는데 정부가 재정지출 확대와 각종 지원책으로 수요를 크게 자극한다면 정책 효과는 상쇄된다. 한쪽은 브레이크를 밟고 다른 쪽은 가속페달을 밟는 식이어서는 경제의 불확실성만 커진다. 부동산 정책도 마찬가지다. 집값 불안을 막겠다며 대출을 규제하면서 동시에 특정 계층에 과도한 금융 지원을 제공하면 시장에는 엇갈린 신호가 간다. 실수요자는 보호하되 투기성 레버리지를 억제한다는 명확한 원칙 아래 금융·세제·공급 정책이 같은 방향을 바라봐야 한다. 정부와 한국은행의 역할은 분명히 구분돼야 한다. 금리 결정은 물가와 금융안정을 기준으로 중앙은행이 독립적으로 해야 한다. 정부가 경기나 정치적 이유로 금리 결정에 압력을 가해서는 안 된다. 다만 정책 효과와 위험 요인에 대한 정보 공유와 거시정책 조율은 훨씬 정교하게 이뤄져야 한다. 금리 결정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다. 추가 인상이 필요하더라도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는 속도로 가야 한다. 물가 기대가 급격하게 높아지지 않는다면 한 차례 금리를 올린 뒤 소비와 고용, 부동산과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충분히 확인하는 것도 방법이다. 금리는 한번 올린 뒤 되돌리기도 쉽지 않다. 경제성장률이 높아졌다는 이유만으로 긴축 여력이 충분하다고 판단해서도 안 된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수출 호황과 자영업자·중소기업이 느끼는 경기는 크게 다르다. 평균적인 성장률만 보고 금리를 결정하면 경제 내부의 양극화를 놓친다. 한국경제가 직면한 문제는 이른바 '성장의 역설'이다. 수출과 반도체 투자로 성장률이 높아지면 수요와 물가가 상승해 금리를 올려야 할 가능성이 커진다. 그러나 그 금리 인상의 비용은 반도체 대기업보다 대출이 많은 가계와 자영업자에게 더 크게 돌아간다. 성장의 과실과 긴축의 비용이 서로 다른 곳에 집중되는 셈이다. 이 때문에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통화정책으로 경제 전체의 물가를 관리하되 재정과 금융정책은 취약계층에 정밀하게 집중해야 한다. 모든 국민의 이자를 대신 내주는 식의 보편적 지원은 물가를 다시 자극한다. 상환 능력과 소득, 부채 수준에 따라 지원 대상을 정교하게 선별해야 한다. 물가 안정과 내수 회복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물가가 불안하면 실질소득이 줄고 소비도 위축된다. 반대로 내수가 무너지면 성장과 고용이 흔들린다. 두 목표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것이 경제정책의 실력이다. 한국은행 역시 시장과 충분히 소통해야 한다. 추가 금리 인상의 조건이 무엇인지, 어떤 물가와 금융 지표를 중점적으로 보는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 시장이 금리 경로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어야 가계와 기업도 대출과 투자를 계획할 수 있다. 갑작스러운 정책 변화는 금리 수준 자체보다 더 큰 불안을 부른다. <논어>에는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이 있다. 통화정책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다. 물가를 방치해서도 안 되지만 물가를 잡겠다는 이유로 경제의 약한 고리까지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 한국은행은 물가 안정이라는 원칙을 지키되 금리 인상이 가계와 자영업자, 부동산 PF와 내수에 미칠 충격까지 세밀하게 살펴야 한다. 정부도 중앙은행의 긴축 효과를 상쇄하는 정책을 남발해서는 안 된다. 추가 금리 인상이 필요하다면 국민에게 그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고 취약 부문의 충격을 줄일 안전장치를 동시에 마련해야 한다. 물가를 잡는 것도 결국 국민의 삶을 지키기 위해서다. 물가는 안정됐지만 가계와 자영업자가 먼저 무너지는 정책이라면 성공한 통화정책이라고 할 수 없다.
2026-08-12 10:4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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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공인 대출에 AI 도입, 새로운 기회인가 새로운 차별인가
[경제일보] 매출과 상권, 업력, 고용 등 비금융정보를 인공지능(AI)으로 분석하는 소상공인 특화 신용평가체계가 다음 달 말부터 은행권에서 시범 운영된다. 기존 7개 은행에서 16개 은행으로 참여 범위가 확대되고 약 2조2000억원 규모의 소상공인 대출상품에 AI 기반의 새로운 평가모형이 적용될 예정이다. 금융 이력이 부족하거나 담보가 충분하지 않은 자영업자에게 대출 기회를 넓히겠다는 취지다. 방향은 옳다. 지금까지 소상공인은 사업체의 경쟁력보다 개인의 신용점수와 담보 수준에 크게 의존해 평가받았다. 매출이 꾸준하고 거래처 평판이 좋아도 금융거래 실적이 짧거나 부동산 담보가 없으면 대출 문턱을 넘기 어려웠다. 업력과 사업 평판, 상권의 성장성 같은 정보를 반영하면 금융권이 기존 방식으로는 발견하지 못했던 우량 차주를 찾아낼 수 있다. 금융당국도 사업체가 쌓아온 평판과 업력 등 비정형 정보를 신용평가에 체계적으로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평가에 활용하는 정보가 많다고 반드시 공정한 것은 아니다. 데이터가 편향돼 있거나 평가 기준이 불투명하면 기존의 신용점수보다 더 정교한 차별이 만들어질 수 있다. 같은 매출을 올려도 어느 지역에서 영업하는지, 어떤 업종인지, 종업원이 몇 명인지에 따라 불리한 점수를 받을 수 있다. 상권이 쇠퇴한 지역이나 경기 변동이 큰 업종의 사업자는 자신의 경영 능력과 관계없이 낮게 평가될 가능성도 있다. 알고리즘은 과거의 데이터를 학습한다. 과거 금융시장에서 특정 지역과 업종, 영세 사업자가 불리한 대우를 받았다면 그 결과가 새로운 평가모형에도 그대로 반영될 수 있다. 겉으로는 AI가 내린 객관적인 판단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오래된 금융 관행을 자동화하는 데 그칠 위험이 있다. 무엇보다 대출을 거절당한 소상공인이 이유를 알 수 있어야 한다. 내부 평가 기준에 미달했다거나 AI 모형이 산출한 결과라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매출 변동성이 문제였는지, 상권 정보가 불리하게 반영됐는지, 고용이나 업력 자료가 잘못 입력됐는지를 구체적으로 알려야 한다. 그래야 사업자가 오류를 바로잡거나 재심사를 요구할 수 있다. 금융당국은 소상공인에게 실질적인 설명권을 보장해야 한다. 평가에 사용된 주요 정보의 종류와 점수에 미친 영향을 알리고 대출 거절이나 금리 산정의 핵심 이유를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제공하도록 해야 한다. 영업비밀을 이유로 알고리즘 전체를 공개할 수 없더라도 고객의 금융 조건을 좌우한 주요 판단 근거까지 감춰서는 안 된다. 이의제기 절차도 제도화해야 한다. 매출이나 고용 자료가 실제와 다르거나 폐업한 점포의 정보가 반영됐을 경우 이를 수정할 통로가 있어야 한다. 자동화된 평가 결과를 사람이 다시 검토하는 절차도 필요하다. AI가 한 번 낮은 점수를 부여했다고 해서 은행 직원이 아무런 판단 없이 대출을 거절하는 구조가 돼서는 안 된다. 은행별로 같은 사업자를 지나치게 다르게 평가하는 문제도 살펴야 한다. 평가모형은 은행마다 다를 수 있지만, 유사한 정보를 사용하면서 결과가 극단적으로 엇갈린다면 신뢰를 얻기 어렵다. 금융당국은 시범 운영 과정에서 업종·지역·성별·연령별 승인율과 금리 차이를 분석해 불합리한 편향이 나타나는지 점검해야 한다. 다만 개인정보 보호를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통계와 검증 결과를 공개할 필요가 있다. 비금융정보 활용 범위도 명확히 해야 한다. 매출과 업력처럼 사업과 직접 관련된 정보는 평가의 필요성이 인정된다. 그러나 온라인 후기, 위치정보, 배달앱 활동, 사회관계망서비스 기록까지 무분별하게 활용한다면 개인정보 침해와 감시금융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어떤 정보를 수집하고 누구에게 제공하며 얼마나 오래 보관하는지 명확한 원칙을 세워야 한다. 소상공인 특화 평가가 은행의 위험을 줄이는 수단에만 머물러서도 안 된다. 평가체계가 정교해졌다는 이유로 우량 사업자에게만 자금을 몰아주고 어려운 업종의 금리를 더 높인다면 포용금융과 거리가 멀다. 금융회사는 차주의 상환 능력을 정확히 평가하되, 일시적인 매출 감소를 겪는 사업자에게는 만기 조정과 경영 개선 프로그램을 연계해야 한다. 정부도 새로운 평가모형을 정책대출 확대의 홍보 수단으로만 활용해서는 안 된다. 시범 운영 뒤 실제로 금융 이력이 부족한 소상공인의 승인율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금리가 얼마나 낮아졌는지, 연체율은 어떻게 변했는지를 검증해야 한다. 효과가 확인되지 않거나 특정 집단이 반복적으로 불이익을 받는다면 모형을 즉시 고쳐야 한다. 신용평가 혁신의 목적은 은행이 더 많은 데이터를 확보하는 데 있지 않다. 사업의 가능성은 있지만 기존 금융제도에서 소외됐던 사람에게 정당한 기회를 주는 데 있다. AI는 그 기회를 넓히는 도구가 될 수 있지만 책임을 피하는 방패가 돼선 안 된다. 소상공인에게 필요한 것은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이 세운 또 하나의 문턱이 아니다. 자신의 사업이 어떤 기준으로 평가됐고 잘못된 판단에는 어떻게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금융이다. 대출 문턱은 낮추되 알고리즘의 문턱은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그래야 AI 신용평가가 새로운 기회가 되고 새로운 차별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2026-07-28 10:07: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