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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명 위한 특수분유부터 셀렉스까지…매일유업이 57년간 찾은 '영양의 빈칸'
[경제일보] 매일유업은 지난 57년간 소비자에게 부족한 영양을 찾아 새로운 시장으로 연결해왔다. 1969년 우유가 부족하던 시기 낙농사업으로 출발해 1974년 영유아용 조제분유 생산에 나섰고 이후에는 일반 분유를 먹기 어려운 환아를 위한 특수분유까지 개발하며 영양 수요를 세분화했다. 이러한 방식은 유아식에만 머물지 않았다. 우유 속 유당을 소화하지 못하는 소비자에게는 '락토프리 우유'를 내놓고 중장년층의 단백질 섭취 수요에는 '셀렉스'를 선보였으며 우유 대신 식물성 음료를 찾는 소비자를 겨냥해 두유와 오트음료로 제품군을 넓혀왔다. 질환·연령·소화 능력·식습관에 따라 달라지는 미충족 수요를 찾아 영양 설계와 유가공 기술로 제품화해온 것이다. 우유와 분유에서 시작한 기술이 50여년 뒤 중장년·고령자·환자의 영양관리까지 이어진 배경도 여기에 있다. '낙농보국'에서 시작한 57년…우유·분유로 식품사업 기반 구축 출발점은 우유였다. 매일유업의 전신 한국낙농가공은 1969년 2월 '낙농보국'을 창업정신으로 출범했다. 같은 해 5월 정부와 김복용 창업주가 각각 절반씩 출자해 자본금 3억원으로 사업 기반을 마련했다. 우유를 안정적으로 생산하기 위해서는 원유를 공급할 낙농 기반 확보가 먼저였다. 매일유업은 1972년 미국산 처녀우 850마리와 호주산 임신우 850마리를 들여왔고 이듬해에는 국내 최초로 젖소를 비행기로 수송하며 원유 공급 기반을 넓혔다. 이렇게 확보한 낙농 기반을 바탕으로 1973년 호남공장을 준공해 테트라팩 우유 생산에 들어갔으며 1974년에는 중부공장을 가동해 조제분유까지 사업 영역을 확대했다. 생산 기반을 갖춘 뒤에는 해외로 눈을 돌려 1981년 매일분유를 중동에 수출하며 국내에서 축적한 유가공 역량을 해외시장으로 연결했다. 우유와 분유에서 쌓은 식품 제조·유통 역량은 냉장주스, 발효유, 컵커피와 같은 인접 식품군으로 이어졌다. 1992년 국내 최초 냉장주스 '썬업'을 출시한 데 이어 컵커피·발효유·두유까지 제품군을 넓히며 소비자의 다양한 식음 수요를 공략했다. 이 과정에서 매일유업이 반복해온 방식은 단순히 제품 종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영양과 식생활에서 아직 충족되지 않은 수요를 찾아 새로운 제품으로 연결하는 것이었다. 2017년에는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회사 구조를 재편했다. 기존 매일유업은 그룹의 지주회사인 매일홀딩스로 바뀌고 우유와 분유 등 유가공 사업은 새로 출범한 매일유업이 맡는 방식으로 분리됐다. 회사의 법인 구조는 달라졌지만 생산시설과 브랜드, 유가공 사업의 역사는 1969년 창립 때부터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350명 위한 특수분유부터 락토프리까지…작은 영양 수요도 제품으로 매일유업의 사업 방식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는 매출 규모가 큰 우유나 커피보다 1999년부터 생산하고 있는 선천성 대사이상 질환자용 특수분유에서 찾을 수 있다. 선천성 대사이상 질환자는 특정 아미노산 등을 분해하는 효소가 부족하거나 생성되지 않아 모유와 일반 분유는 물론 고기와 쌀밥 같은 일상적인 식품도 자유롭게 섭취하기 어렵다. 매일유업은 이런 환아가 필요한 영양을 섭취할 수 있도록 문제가 되는 아미노산은 제거하고 비타민과 미네랄 등 필수 영양성분은 보충한 특수 유아식을 자체 기술로 개발했다. 이렇게 시작한 특수분유 생산은 올해로 27년째 이어지고 있으며 현재 8종 12개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시장 규모만 놓고 보면 특수분유는 효율성이 높은 사업과는 거리가 있다. 2024년 기준 국내 선천성 대사이상 환자는 약 350명 수준에 불과한 데다 일반 제품과 성분이 섞이지 않도록 생산 때마다 일반 분유 공정을 멈추고 설비를 별도로 세척한 뒤 소량 생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매일유업은 20년 넘게 특수분유 생산을 이어오고 있다. 수익성보다 반드시 필요한 수요에 대응하는 이 같은 방식은 매일유업이 강조해온 ‘한 명의 아이도 건강한 삶에서 소외되지 않아야 한다’는 철학을 실제 제품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이처럼 특정 소비자가 기존 제품을 섭취하기 어려운 문제를 제품으로 해결하는 방식은 일반 소비자 시장에서도 이어졌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5년 출시한 '소화가 잘되는 우유'다. 우유 속 유당을 소화하기 어려운 소비자를 위해 미세한 필터로 유당을 제거하는 UF(Ultra Filtration) 공법을 적용했다. 출시 당시 국내에서는 락토프리라는 개념이 생소했지만 유당 소화에 어려움을 겪는 소비자 수요가 확인되면서 시장도 빠르게 성장했다. 닐슨 집계 기준 국내 락토프리 우유 시장은 2019년 300억원대에서 2023년 약 870억원으로 두 배 이상 확대됐고 '소화가 잘되는 우유'는 같은 시기 시장점유율 44%로 1위를 기록했다. 2024년에는 출시 19년 만에 누적 판매량 8억개를 넘어서는 등 우유 섭취에 불편을 느끼던 소비자를 새로운 유제품 수요층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2008년 선보인 상하목장은 소비자 선택 기준이 가격에서 원료와 생산 방식, 품질까지 넓어지는 흐름을 겨냥했다. 일반 백색우유와 가격 경쟁을 벌이기보다 유기농 원유와 생산 과정에 가치를 두는 소비자층을 공략하면서 차별화된 시장을 구축했다. 락토프리 우유가 소화 여부에 따른 수요를 겨냥했다면 상하목장은 원료와 생산 방식에 대한 선호를 제품에 반영해 동일한 우유 시장 안에서도 소비 기준을 한층 세분화한 사례다. 분유 기술을 중장년·환자까지…셀렉스·메디웰로 '평생 영양' 공략 인구구조 변화는 매일유업이 공략해야 할 영양 수요의 방향도 바꿨다. 영유아 인구 감소로 우유와 분유 시장의 성장 여력이 줄어드는 사이 고령화와 건강관리 수요는 커졌고 매일유업은 이에 맞춰 분유에서 축적한 영양 설계 역량을 중장년층으로 확장했다. 2018년 선보인 성인영양식 브랜드 '셀렉스'가 대표적이다. 같은 해 식품업계 최초로 근감소증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매일사코페니아연구소를 설립해 중장년층의 근육과 단백질 섭취를 연구했다. 이후 △분말형 단백질 △RTD 음료 △프로틴바 △건강기능식품 등으로 제품군을 넓혔고 셀렉스 누적 매출은 지난해 5월 5000억원을 넘어섰다. 분유가 성장기 영유아에게 필요한 영양을 설계한 제품이었다면 셀렉스는 연령이 높아지면서 부족해지기 쉬운 단백질과 영양 관리에 초점을 맞췄다. 이러한 생애주기별 영양 설계는 고령자와 환자로도 이어져 매일유업은 전문 균형영양식 '메디웰'을 통해 건강 상태에 따라 필요한 영양을 보충하는 시장까지 공략하고 있다. 올해는 이 사업을 한 단계 더 세분화하며 한림대학교의료원, 푸드테크 기업 슈팹과 환자·고령자 맞춤형 영양식 개발을 위한 협력을 시작했다. 의료기관의 임상 역량과 식품 기술을 결합해 건강 상태에 따라 필요한 영양을 설계하는 것이 목표다. 아이의 연령과 상태에 맞춰 분유를 설계했던 방식이 중장년, 고령자, 환자의 상태별 영양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새로운 영양 수요를 공략하는 과정에서는 기존 유가공 기술도 활용되고 있다. 매일유업은 지난 7월 국산 우유를 UF 공법으로 3배 농축한 단백질 RTD 음료 '퓨어틴'을 출시했다. 330㎖ 한 팩에 단백질 23g을 담으면서 유당은 제거했다. 2005년 락토프리 우유에 활용했던 여과 기술을 최근 커지는 단백질 음료 시장에 적용한 것이다. 영양의 빈칸은 식습관에서도 나타났다. 건강과 환경, 소화 문제 등을 이유로 우유 대신 식물성 음료를 선택하는 소비자가 늘면서 매일유업도 콩, 아몬드, 귀리를 기반으로 한 제품군을 구축했다. 기존 매일두유에 아몬드브리즈를 더한 데 이어 2021년 귀리를 활용한 '어메이징오트'를 선보였다. 유제품을 주력으로 해온 매일유업이 우유를 마시지 않는 소비자까지 겨냥해 제품군을 확대한 것이다. 올해 8월에는 상하목장 브랜드의 첫 두유 제품인 '콩물두유' 3종도 출시했다. 국산 서리태를 활용한 제품으로 기존 유기농 유제품 중심이던 상하목장 브랜드를 식물성 음료까지 확장했다. 올해 하반기에도 매일유업이 식물성 음료를 주요 성장 품목으로 꼽고 있다는 점에서 일회성 신제품보다 사업 포트폴리오 확대에 가깝다. 이 흐름을 놓고 보면 매일유업의 고객은 점차 연령과 원료의 경계를 넘어섰다. 매일유업은 영유아용 분유부터 유당불내증 소비자를 위한 락토프리 우유, 중장년층 대상 단백질 제품, 환자·고령자용 균형영양식, 식물성 음료까지 고객별 생애주기와 식습관에 따라 제품군을 세분화하고 있다. 뉴트리션 영업익 338%·수출 26% 증가…백색우유·해외 수익성은 과제 이러한 전략은 올해 실적으로도 나타났다. 매일유업의 2026년 상반기 연결 매출은 949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6% 증가했으며 영업이익은 392억원으로 54.3% 늘었다. 2분기만 보면 매출 4800억원, 영업이익 204억원으로 각각 4.8%, 64.4% 증가했다. 특히 조제분유와 성인영양식 등이 포함된 뉴트리션 사업의 성장세가 두드러졌다. 올해 상반기 뉴트리션 매출은 1204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3.2% 증가했으며 이에 따라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1.6%에서 12.7%로 높아졌다. 수익성 개선 폭은 더 컸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38억원으로 338.3% 늘었고 2분기만 보면 매출 632억원으로 16.4% 증가한 가운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2억원에서 27억원으로 확대됐다. 같은 기간 유가공 부문 매출 증가율이 1%대에 그친 점을 감안하면 뉴트리션 사업이 매일유업의 새로운 성장축으로 부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분유 사업에는 최근 출생아 반등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출생아 수는 14만5804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15.4% 늘었다. 지난 6월 출생아 수도 2만3111명으로 15.6% 증가해 24개월 연속 전년 동월 대비 증가세를 이어갔다. 매일유업도 출생아 증가에 따른 조제분유 판매 호조를 상반기 실적 개선 요인으로 꼽았다. 뉴트리션 사업의 성장세에 맞춰 조직 구조도 재정비했다. 매일유업은 2021년 헬스앤뉴트리션 사업을 분리해 설립한 100% 자회사 매일헬스뉴트리션을 올해 5월 다시 흡수합병했다. 이를 통해 뉴트리션 사업의 글로벌 성장전략을 본사 차원에서 추진하는 동시에 온·오프라인 영업과 상품개발, 마케팅 역량을 한데 묶어 경영 효율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별도 법인에서 키워온 셀렉스 사업을 본체로 편입해 기존 유가공·영양 연구 역량과 판매조직 간 시너지를 확대하려는 것이다. 국내에서 축적한 영양 제품 경쟁력은 해외시장에서도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올해 상반기 매일유업의 수출액은 537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26.4% 늘어 같은 기간 2.5% 증가에 그친 내수 매출보다 빠른 성장세를 보였다. 수출 증가에 힘입어 전체 매출에서 해외가 차지하는 비중도 4.6%에서 5.6%로 높아지면서 해외사업의 중요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이 같은 흐름에 맞춰 해외 소비자와의 접점도 넓히고 있다. 지난 7월에는 매일두유와 셀렉스 등 8개 제품을 미국 올리브영 패서디나점과 온라인몰에 입점시키며 현지 판매 채널을 확대했다. 저당·고단백 두유와 콜라겐 제품 등을 앞세워 국내에서 세분화해온 식물성·건강관리 수요를 미국의 'K-웰니스' 소비로 연결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특수분유 역시 해외시장으로 공급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매일유업은 중국 알리바바그룹의 헬스케어 계열사 알리건강을 통해 선천성 대사질환자용 특수분유를 현지에 공급해왔으며 이를 통해 국내 수백명의 환자를 위해 유지해온 제품을 해외 희귀질환 환자까지 연결하고 있다. 이처럼 제품별 해외 판매 접점은 넓어지고 있지만 이를 안정적인 수익원으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수익성 개선이 뒤따라야 한다. 올해 상반기 수출이 빠르게 증가했음에도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6%에 그쳤고 지난해 해외 종속기업인 북경매일유업유한공사와 매일호주유한회사는 각각 7억원과 65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해외 판매 규모를 확대하는 것과 현지 사업 기반을 안정적인 이익으로 연결하는 것은 별개의 과제인 만큼 향후 해외사업의 이익 창출력을 높이는 것이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뉴트리션과 식물성 음료가 새로운 성장축으로 자리 잡고 있지만 매일유업의 출발점이자 핵심 사업인 백색우유의 부담은 여전히 크다. 회사는 올해 상반기 원유 공급과잉으로 백색우유 부문에서 손실이 발생한 데다 중동 정세 불안에 따른 포장재와 수입 원부자재 가격 상승까지 겹치며 원가 부담이 확대됐다고 설명했다. 올해 상반기 말 매일유업의 원유 매입가격은 ℓ당 1359.97원으로 지난해 말 1357.71원, 2024년 말 1343.9원보다 높아졌다. 백색우유 소비가 구조적으로 감소하는 상황에서도 원유 매입 부담은 쉽게 낮추기 어려워 수익성 압박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매일유업은 하반기 백색우유의 손익 구조를 개선하는 한편 조제분유와 셀렉스 등 뉴트리션, 식물성 음료의 국내외 판매를 확대해 사업 포트폴리오 전반의 수익성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매일유업이 이제 증명해야 할 것은 '영양의 빈칸'을 발견하는 감각보다 그 빈칸을 충분한 규모의 시장으로 키워내는 힘이다. 국내 유업시장의 구조적 한계 속에서 뉴트리션과 식물성 음료의 외형과 수익성을 함께 높이고 해외에서도 국내에서 검증한 제품 경쟁력을 안착시켜야 한다. 지난 57년간 세분화된 소비자 수요를 제품으로 구현해온 역량이 향후 시장 확대와 수익성 제고로 이어질 수 있을지가 매일유업의 다음 성장 곡선을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매일유업 관계자는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본질적인 영양 수요를 발굴해 보다 건강한 식음료로 제품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며 "50년 이상 축적한 영양 설계 기술과 지속적인 연구개발(R&D), 소비자 건강 증진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추구해온 진정성이 고객 신뢰와 브랜드 경쟁력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도 프리미엄 유제품의 경쟁력을 높이는 동시에 식물성 음료와 성인·장노년층 영양식 등으로 제품 포트폴리오를 확대할 것"이라며 "중국에서 조제분유와 식물성 음료, 셀렉스 등을 판매하고 미국에서도 소비자 접점을 넓히는 등 수출 활로를 확보해 해외시장을 확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2026-08-31 17:2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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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억 이하로 몰린 서울 매수세…노원·강서·구로 가격도 따라 올랐다
[경제일보] 서울 아파트 매매시장에서 10억원 미만 주택이 거래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거래가 많이 이뤄지는 지역도 노원·강서·구로구 등 상대적으로 아파트 가격이 낮은 곳에 몰리고 있다. 고가 아파트를 중심으로 움직이던 서울 주택시장의 매수세가 중저가 지역으로 옮겨간 것이다. 대출 규제와 집값 상승으로 자금 부담이 커지면서 매수자들이 살 수 있는 가격대의 주택을 먼저 찾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이달 10일 기준으로 집계한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한 주 동안 0.25% 올랐다. 노원구는 0.50%로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상승률이 가장 높았다. 구로구는 0.45%, 강서구는 0.43% 올랐다. 같은 기간 강남구는 13주 만에 보합을 기록했다. 거래가 많이 이뤄지는 지역과 가격 상승폭이 큰 지역이 겹치면서 중저가 지역으로 이동한 매수세가 가격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올해 초부터 이런 흐름은 이어졌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올해 1월부터 4월 말까지 서울 아파트 2만901건 가운데 1만2491건, 59.8%가 10억원 이하였다. ◆ 대출 한도가 바꾼 매수 가격대 최근 거래 변화에는 금융 규제의 영향이 크다. 현재 수도권·규제지역의 주택 구입 목적 주택담보대출은 주택 가격에 따라 한도가 달라진다. 15억원 이하 주택은 최대 6억원, 15억원 초과 25억원 이하는 4억원, 25억원 초과 주택은 2억원까지다. 실제 대출액은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소득과 기존 부채에 따라 더 줄어들 수 있다. 매수자 입장에서는 집값 차이보다 자기자본 부담의 차이가 더 크게 느껴질 수 있다. 대출 한도가 가격 구간별로 달라지면서 고가 주택일수록 현금 부담이 빠르게 늘어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다른 대출 규제를 모두 충족한다고 가정하면 10억원짜리 아파트는 최대 6억원의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다. 20억원짜리 아파트는 최대 4억원까지다. 대출 한도만 단순 적용하면 필요한 자기자본은 각각 4억원과 16억원이다. 실제 대출 가능 금액은 개인별로 다르지만 가격이 높은 주택일수록 현금 부담이 크게 늘어나는 방향은 같다. 이 때문에 대출을 이용해야 하는 실수요자는 15억원 이하, 그중에서도 10억원 안팎의 주택을 먼저 살피게 된다. 실제 거주 목적으로 집을 찾는 수요가 많은 지역에서 거래가 상대적으로 활발한 배경이다. 올해 2~4월 노원구 아파트 거래량은 1340건으로 서울에서 가장 많았다. 강서구 606건, 구로구 594건 등도 상위권에 들었다. 노원에서는 상계·중계동, 강서에서는 등촌·방화동을 중심으로 거래가 많았다. 젊은 실수요자의 움직임도 비슷하다. 올해 2~3월 서울에서 생애 처음 부동산을 구입해 소유권 이전등기를 신청한 사람 가운데 강서구 매수자가 928명으로 가장 많았다. 노원구는 816명, 송파구 755명, 성북구 724명, 구로구 700명 순이었다. 전체 생애최초 매수자 가운데 30대 비중은 56.1%였다. ◆ 거래 늘어난 외곽, 가격도 따라 올라 중저가 지역으로 이동한 수요는 가격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1~7월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6.29% 올랐다. 같은 기간 성북구가 10.31%로 가장 많이 올랐고 구로구는 8.80%, 강서구는 8.78%, 노원구는 7.62% 상승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송파·강남·서초 등 강남3구의 상승세가 두드러졌던 것과 다른 흐름이다. 최근 주간 통계에서도 노원·구로·강서는 서울 평균보다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전셋값도 노원 0.62%, 구로 0.36% 등으로 올랐다. 대출 규제로 고가 주택에 들어가기 어려워진 수요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지역으로 이동하면 해당 지역의 거래와 가격이 함께 오를 수 있다. 대출 규제가 서울 전체 매수 수요에 똑같이 작용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다만 노원·강서·구로의 가격 상승을 대출 규제 하나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지역별 정비사업 기대와 교통 여건, 신축·대단지 선호도 함께 영향을 준다. 노원구에서는 상계·월계동 재건축 추진 단지를 중심으로 가격이 올랐다. 다른 지역에서도 역세권과 대단지 위주로 상승 거래가 이어지고 있다. 전세가격 상승도 매매 수요에 영향을 준다. 7월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은 한 달 동안 1.28% 올랐다. 노원구는 1.69%, 구로구는 1.06% 상승했다. 전셋값이 계속 오르면 보증금에 자금을 더 보태 아파트를 사려는 무주택자가 늘어날 수 있다. ◆ 지역뿐 아니라 면적도 줄여 가격 부담을 낮추려는 움직임은 아파트 면적에서도 확인된다. 올해 상반기 서울에서 거래된 전용면적 85㎡ 이하 소형·중소형 아파트는 3만5998건이었다. 전체 아파트 거래 4만2186건의 85.3%다. 집값이 오르고 대출 여건이 까다로워지면서 넓은 집보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은 주택을 선택하는 수요가 늘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서울 아파트 매수자는 크게 두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강남권이나 한강변 대신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은 동북·서남권으로 지역을 옮기거나 같은 지역에서도 면적을 줄여 총매입가격을 낮추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노원·강서·구로처럼 10억원 이하 아파트가 많은 지역의 거래가 먼저 늘었다. 거래 증가가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이들 지역의 매입 가격도 차츰 높아지고 있다. 중저가 지역 가격이 계속 오를 경우 지금의 수요 이동이 이어질지도 지켜볼 부분이다. 10억원 이하였던 아파트가 10억원을 넘어가더라도 15억원 이하에서는 주택담보대출 최대 한도 6억원이 유지된다. 하지만 집값이 1억원 오를 때마다 같은 대출을 받는 매수자가 마련해야 할 현금도 그만큼 늘어난다. 서울 외곽을 벗어나 경기 광명·안양 등 서울과 가까운 수도권으로 이동하거나 면적을 더 줄이는 선택이 나올 수 있다. 반대로 서울 내 직장 접근성과 교육·생활 기반시설을 중시하는 수요가 계속 남는다면 중저가 지역의 거래가 쉽게 줄지 않을 수도 있다. 결국 매수자의 자금 여력과 지역별 가격 상승 속도가 다음 이동을 좌우하게 된다. 현재 통계에서 확인되는 것은 서울 아파트 거래의 중심 가격대와 지역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고가 아파트의 거래가 상대적으로 줄어든 동안 10억원 이하 아파트가 전체 거래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고 노원·강서·구로 등에서는 거래와 가격 상승이 함께 나타났다. 대출 규제가 서울의 주택 수요를 얼마나 줄였는지는 전체 거래량으로 따져야 한다. 반면 매수자들이 어떤 집을 선택하게 만들었는지는 거래 가격과 지역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금 서울에서는 매수세의 무게가 10억원 이하 아파트와 중저가 지역으로 옮겨가고 있다.
2026-08-20 10:0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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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계역 도보권·12억대 분양가…'월계 중흥S-클래스 리비에르' 가보니
[경제일보] “실제로 걸어보면 석계역까지 5분이 채 걸리지 않습니다.” 24일 서울 노원구 월계동에 위치한 ‘월계 중흥S-클래스 리비에르’ 견본주택에서 관계자가 가장 먼저 꺼낸 말은 역과의 거리였다. 모형도 앞 설명도 지하철 1·6호선 석계역 접근성에서 시작됐다. 월계 중흥S-클래스 리비에르는 서울 노원구 월계동 487-17번지 일대 월계동 주택재건축정비사업을 통해 공급된다. 지하 3층~지상 최고 20층, 5개 동, 총 355가구 규모로 조성되며 일반분양 물량은 135가구다. 시공사는 중흥토건이며 2029년 5월 입주 예정이다. 청약은 오는 27일 특별공급을 시작으로 28일 1순위 해당지역, 29일 1순위 기타지역, 30일 2순위 순으로 진행된다. 당첨자 발표는 8월 5일, 계약은 8월 18~20일이다. 단지는 지하철 1·6호선 환승역인 석계역 도보권에 있다. 어린이나 노약자 보행까지 감안해 석계역까지 5분 이내로 안내한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광운대역 GTX-C 노선과 역세권 개발, 동부간선도로·내부순환도로 접근성도 상담 과정에서 함께 거론됐다. 전용 59㎡ 타입의 분양가는 12억원대에 책정됐다. 주택형별 최고 분양가는 △36㎡ 6억9590만원 △59㎡A 12억6350만원 △59㎡B 12억4200만원 △84㎡A 14억9910만원이다. 이달 초 장위뉴타운에서 공급된 장위 푸르지오 마크원의 전용 59㎡ 분양가가 14억원대 중반, 전용 84㎡가 17억원대 중반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뚜렷한 가격 차이를 보였다. 분양 관계자도 “최근 분양 단지와 같은 층 기준으로 비교하면 59㎡는 1억원대 후반, 84㎡는 2억원 가량 낮게 책정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장위뉴타운과 직접 입지가 같지는 않지만 강북권 신축 수요가 가격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만큼 분양가는 청약 성적을 좌우할 주요 변수로 꼽힌다. 견본주택에는 전용 59㎡A 유닛만 마련돼 있었다. 방문객들은 거실 폭과 침실 배치, 수납 공간을 살피며 실거주 가능성을 따져봤다. 이날 현장에는 신혼부부로 보이는 관람객과 어린 자녀를 동반한 가족 단위 방문객도 눈에 띄었다. 84㎡ 물량이 적고 59㎡ 중심으로 관심이 쏠리는 만큼 이날 공개된 59A 유닛은 단지 상품성을 가늠하는 중심 공간이 됐다. 학군과 생활 인프라는 30대 실수요층을 겨냥한 요소로 제시됐다. 단지 주변에는 선곡초와 광운중, 대진고가 있다. 초등학교를 큰 도로를 건너지 않고 오갈 수 있다는 점과 이마트·트레이더스 월계점과 석계역 중심 상권, 서울원 아이파크몰 예정지 등도 함께 언급됐다. 주차장은 지하 1~3층을 통합해 조성되며 355가구에 세대당 약 1.6대 수준의 주차공간을 확보했다. 소규모 단지이지만 주차 대수를 충분히 잡고 지상에 차 없는 단지 구성을 적용해 우이천과의 보행 환경을 강화한 것이 특징이다. 동 배치는 남향 위주로 계획됐고, 서로 마주 보는 동 배치가 많지 않아 개방감을 확보한 점이 강조됐다. 단지 전면 장위뉴타운 신축 단지와의 조망 간섭 우려에 대해서는 구간별 차이가 있지만 하천과 도로를 사이에 두고 약 60~70m 떨어져 있어 건물이 답답하게 맞붙은 구조는 아니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주변 개발과 정비사업은 장기 기대 요인이다. 광운대역과 석계역 사이에는 노후 주거지가 남아 있고 인근 월계시영, 동신아파트 등에서는 재건축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광운대역세권 개발과 주변 정비사업이 함께 진행될 경우 월계동 일대 주거 환경도 단계적으로 바뀔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월계 중흥S-클래스 리비에르는 총 355가구 규모로 대단지는 아니다. 강북권 신축 희소성과 12억원대 59㎡ 분양가를 앞세우지만 중흥S-클래스 브랜드가 서울 핵심지 수요자에게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지는 지켜봐야 한다. 견본주택 유닛도 59㎡A 한 가지로 제한돼 36㎡와 84㎡ 수요자는 평면 체감에 한계가 있어 보인다. 견본주택에서 확인된 주 상담층은 신혼부부와 어린 자녀를 둔 30대 실수요자에 가까웠다. 단지는 석계역 도보권과 장위뉴타운보다 낮은 분양가, 학교 접근성, 주차 여건을 앞세웠다. 청약 결과는 강북권 신축 수요가 가격과 입지, 브랜드 사이에서 무엇을 더 크게 보는지 보여주는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2026-07-24 13: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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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정책, 강한 대책보다 흔들리지 않는 규칙이 필요하다
[경제일보] 집값이 오르면 정부는 더 강한 대책을 꺼낸다. 대출 한도를 줄이고 규제지역을 넓힌다. 세금을 올릴 가능성을 내비치고 공급 물량을 앞당기겠다고 발표한다. 시장이 잠시 주춤하면 규제를 풀고 대출 문턱을 낮춘다. 그러다 가격이 다시 뛰면 이전보다 센 대책을 내놓는다. 한국 부동산 정책은 오랫동안 이런 순환을 벗어나지 못했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정책 방향이 달라졌고 같은 정부 안에서도 집값과 여론에 따라 규제가 수차례 바뀌었다. 시장 참여자는 현재의 제도보다 다음 대책을 먼저 계산하게 됐다. 집을 사려는 사람도 팔려는 사람도 건설하려는 기업도 정부가 정한 규칙을 믿고 장기 계획을 세우기 어려워졌다. 지금 시장이 보내는 신호도 가볍게 넘길 상황은 아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2026년 7월 둘째 주 전국 아파트값은 전주보다 0.11% 올랐다. 수도권은 0.21%, 서울은 0.30% 상승했다. 지방 상승률은 0.01%에 그쳤다. 서울 아파트값은 74주째 올랐고 전셋값도 상승세를 이어갔다. 전국이 함께 달아오른 시장이 아니라 서울과 수도권 선호 지역에 수요가 몰리는 양극화 시장에 가깝다. 가계대출도 다시 불어났다. 지난 6월 전 금융권 가계대출은 한 달 동안 8조3000억원 증가했다. 주택담보대출 증가액은 4조5000억원이었다. 5월과 6월 두 달 동안 늘어난 가계대출만 17조6000억원이다. 한국은행은 지난 16일 기준금리를 연 2.50%에서 2.75%로 올리면서 금융안정 위험을 주요 근거로 들었다. 집값과 빚이 통화정책까지 움직이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손을 놓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2025년 6월 수도권과 규제지역의 주택 구입 목적 주택담보대출에 6억원 한도가 도입됐다. 같은 해 9월 규제지역 주택담보인정비율인 LTV가 50%에서 40%로 낮아졌다. 10월에는 주택 가격에 따라 대출 한도를 6억원, 4억원, 2억원으로 차등화했다. 2026년 정부는 가계대출 증가율을 1.5% 이내로 관리하고 2030년까지 국내총생산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80%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대책은 충분히 강했다. 그런데 집값도 대출도 다시 움직이고 있다. 더 센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대목이다. 정책 효과가 약한 원인을 규제의 강도에서만 찾으면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대출을 더 막고 세금을 더 올리는 것밖에 남지 않는다. 정책의 강도와 정책의 신뢰는 다른 문제다. 아무리 센 규제라도 시장이 오래가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면 수요자는 규제가 풀릴 때를 기다린다. 규제가 더 강해질 것으로 예상하면 시행 전에 거래를 서두른다. 특정 지역만 묶으면 인접 지역으로 수요가 이동하고 특정 대출만 막으면 다른 금융상품을 찾는다. 정책이 시장을 이끄는 대신 시장이 다음 규제의 틈을 찾아 움직이게 된다. 한국은행도 같은 점을 지적했다. 지난해 12월 금융안정보고서에서 거시건전성 정책의 잦은 기조 변화는 대출 증가 억제 효과를 제한한다고 분석했다. 단기 경기 상황에 대응하는 수단으로 규제를 활용하기보다 중장기 관점에서 운용해 정책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는 주문이었다. 규제를 반복해서 강화했는데도 가계대출이 다시 늘어난 현실과 맞닿아 있는 진단이다. 주택은 주식처럼 오늘 사고 내일 파는 상품이 아니다. 무주택자가 집을 사기 위해서는 계약금을 마련하고 대출 가능액을 확인한 뒤 잔금 일정을 정해야 한다. 기존 주택을 처분하고 새집으로 옮기는 과정에는 수개월이 걸린다. 재건축과 재개발, 민간 주택사업은 토지 확보부터 입주까지 10년 이상 걸리기도 한다. 그런데 계약을 맺은 뒤 대출 기준이 바뀌고 중도금을 낸 뒤 잔금대출 한도가 줄어들면 정책은 미래 행동을 안내하는 규칙이 아니라 이미 내린 결정을 뒤흔드는 위험이 된다. 법률상 소급입법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국민이 체감하는 효과는 과거 선택에 대한 불이익과 다르지 않다. 법과 제도가 신뢰를 얻으려면 세 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 어떤 조건에서 규제가 적용되는지 미리 알 수 있어야 한다. 같은 조건에는 같은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 제도가 바뀔 때는 기존 계약과 진행 중인 거래를 보호하는 경과조치를 둬야 한다. 부동산 정책도 다르지 않다. 정부가 정한 규칙을 지킨 사람이 뒤늦은 정책 변경으로 손해를 보고 규제의 빈틈을 예상한 사람이 이익을 얻는 구조가 반복되면 성실한 실수요자부터 제도를 믿지 않게 된다. 정책 목적이 아무리 정당하더라도 예측 가능성을 잃은 행정은 오래 유지되기 어렵다. 공급정책도 같은 잘못을 되풀이해 왔다. 정부는 집값이 오를 때마다 수십만호 공급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인허가 물량과 착공 물량, 준공 물량은 서로 다른 숫자다. 인허가를 받았다고 집이 생기는 것은 아니고 착공했다고 곧바로 입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전국 주택 인허가는 98694호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6% 줄었다. 착공은 94367호로 27.0% 늘었지만 준공은 88143호로 46.7% 감소했다. 같은 기간 안에서도 공급의 앞단과 뒷단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5월 말 전국 미분양은 65239호에 달했다. 전국에 미분양이 쌓여 있으면서 서울과 수도권 선호 지역에서는 공급 부족 우려가 커지는 불균형도 이어지고 있다. 정부가 발표한 공급 물량의 크기보다 중요한 것은 어느 지역에서 언제 착공하고 언제 입주할 수 있는가다. 공급 계획은 토지 확보와 인허가, 착공, 준공으로 나눠 공개해야 한다. 일정이 늦어지면 지연 원인과 변경된 입주 시점을 밝혀야 한다. 정권이 바뀌어도 이미 진행 중인 사업은 원칙대로 이어져야 한다. 대출 규제의 기본축도 다시 세워야 한다. 담보가치에 따라 빌릴 수 있는 비율을 정하는 LTV는 집값과 지역에 따라 수시로 바꾸기 쉽다. 반면 소득에서 원리금 상환액이 차지하는 비율을 따지는 DSR은 빚을 갚을 능력을 기준으로 한다. 장기적인 가계부채 관리는 주택 가격이나 행정구역보다 차주의 상환 능력을 중심에 두는 편이 타당하다. 청년과 신혼부부, 생애 최초 구입자를 지원할 필요가 있다면 DSR 원칙을 무너뜨리는 예외 대출을 반복하기보다 장기 고정금리와 이자 지원, 공공주택 공급으로 돕는 편이 낫다. 정책대출을 늘렸다가 가계대출이 증가하면 다시 줄이는 방식은 지원 대상자에게도 안정적인 제도가 아니다. 규제지역 지정도 담당 부처의 판단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 집값 상승률과 거래량, 소득 대비 주택가격, 가계대출 증가율 같은 객관적 기준을 사전에 공개해야 한다. 일정 기준을 넘으면 규제가 강화되고 일정 기간 안정되면 완화된다는 경로를 시장이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세제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 취득세와 양도소득세, 보유세는 거래와 보유에 관한 국민의 장기 선택을 바꾼다. 집값이 오를 때 세금을 올리고 거래가 얼어붙으면 다시 낮추는 방식은 매물 잠김과 거래 쏠림을 반복시킨다. 적어도 3년에서 5년 동안 어떤 세목을 어떤 방향으로 조정할지 로드맵을 제시하고 충분한 유예기간을 둬야 한다. 정책을 바꾸지 말자는 주장이 아니다. 경제 여건과 인구 구조, 금리와 공급 상황이 달라지면 정책도 달라져야 한다. 다만 변경 조건과 절차가 사전에 정해져 있어야 한다. 규칙 안에 변화의 기준을 넣는 것과 시장이 출렁일 때마다 규칙 자체를 바꾸는 것은 전혀 다르다. 강한 대책은 발표 당일의 불안을 잠재울 수 있다. 거래를 줄이고 대출 신청을 늦추는 효과도 낼 수 있다. 하지만 국민이 정책의 지속성을 믿지 않으면 수요는 사라지지 않고 뒤로 밀릴 뿐이다. 공급 사업도 중단되거나 지연되고 임대차시장으로 부담이 옮겨갈 수 있다. 정부가 집값을 원하는 수준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특정 가격을 만들겠다고 나서는 것이 아니라 무리한 차입을 막고 충분한 주택이 꾸준히 공급되도록 제도를 관리하는 일이다. 주거 취약계층을 보호하고 거래 과정의 불공정을 차단하는 일도 정부의 몫이다. 부동산 시장의 신뢰는 대책의 횟수나 발표문의 수위에서 생기지 않는다. 오늘 정한 기준이 내일도 적용되고 정권이 바뀌어도 정책의 기본 틀이 유지될 때 생긴다. 국민이 자신의 소득과 자산, 가족계획에 따라 주거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정부가 지금 내놓아야 할 것은 시장을 놀라게 할 또 하나의 대책이 아니다. 대출과 세제, 공급에 관해 언제 어떤 조건에서 무엇이 바뀌는지 알 수 있는 규칙이다. 부동산 정책에 필요한 힘은 예고 없이 휘두르는 규제에서 나오지 않는다. 오래 지킬 원칙을 세우고 정부부터 그 원칙에 구속될 때 정책은 비로소 시장의 신뢰를 얻는다.
2026-07-23 10:4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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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은 막고 집값은 못 잡았다…서울은 '현금 부자 시장'이 됐다
[경제일보] 주택담보대출 문턱은 거듭 높아졌는데 서울 아파트값은 75주째 올랐다. 7월 둘째 주 상승률만 0.30%다. 전셋값도 한 주 동안 0.28% 뛰었다. 대출을 막으면 매수세가 꺾이고 집값이 내려갈 것이라는 정부의 계산은 시장에서 빗나갔다. 사라진 것은 주택을 사려는 수요가 아니라 대출이 필요한 매수자였다. 정부는 주택가격에 따라 담보대출 한도를 나눴다. 15억원 이하 주택은 최대 6억원, 15억원 초과 25억원 이하는 4억원, 25억원을 넘으면 2억원까지만 빌릴 수 있다. 20억원짜리 집을 사려면 최소 16억원, 30억원짜리 집을 사려면 28억원을 스스로 마련해야 한다. 취득세와 중개보수까지 감안하면 필요한 돈은 더 늘어난다. 대출 한도는 원리금을 갚을 능력보다 지금 보유한 자산의 규모를 앞세운다. 안정적인 소득을 올리는 맞벌이 부부라도 쌓아둔 돈이 부족하면 서울의 선호 주택을 살 수 없다. 반면 소득이 많지 않아도 현금 20억원을 보유한 사람은 매수할 수 있다. 대출규제가 강화될수록 소득보다 보유자산이 주택 구입을 좌우한다. 앞으로 수십 년간 원리금을 갚을 사람은 밀려나고 기존 부동산과 금융자산, 부모 돈을 동원할 수 있는 사람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근로소득으로 주택을 마련하겠다는 기대는 약해지고 상속과 증여, 자산 매각이 서울 주택시장의 입장권이 되고 있다. 한국은행도 같은 현상을 확인했다. 올해 1월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에 따르면 강남 3구와 용산 등 서울 핵심지에서는 현금 등 순수 자기자금으로 거래한 비중이 높아졌고 주택담보인정비율은 낮아졌다. 서울 외곽과 경기지역에서는 금융기관 대출 의존도와 주택담보인정비율이 오히려 올라갔다. 현금을 가진 사람은 핵심지에 남았고 대출이 필요한 사람은 서울 외곽과 경기지역으로 밀려났다. 대출규제가 모든 매수자에게 같은 강도로 작용한 것이 아니다. 자산가에게는 불편에 그쳤지만 무주택 실수요자에게는 시장 진입을 막는 벽이 됐다. 은행 대출이 막히자 주식과 채권을 판 돈이 서울 주택시장으로 들어왔다.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주식과 채권 매각대금 가운데 주택 구입에 사용된 돈은 3조7254억원에 달했다. 약 66%인 2조4000억원이 서울로 향했다. 강남구에 3700억원, 송파구에 3500억원, 서초구에 2900억원이 들어갔다. 강남 3구에만 1조원이 넘는 돈이 몰렸다. 지난해 서울 주택 매입에 투입된 증여·상속 자금도 4조4407억원에 달했다. 전년 2조2823억원의 두 배에 육박한다. 대출이 줄어든 자리를 금융자산과 부모 자산이 메웠다. 정부가 은행 문을 좁힐수록 주식과 부동산을 가진 집안의 자녀가 유리해졌다. 같은 소득을 받는 두 사람이 있어도 부모에게 수억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서울 아파트를 사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외곽으로 밀려난다. 대출규제는 가계의 부채를 줄이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 부모의 재산에 따라 자녀 세대의 주거지가 갈리는 속도를 더 높였다. 15억원이라는 대출 기준선은 가격 움직임까지 바꿨다. 올해 2월부터 5월 중순까지 서울 아파트 거래의 81.6%가 15억원 이하 주택에 몰렸다. 15억원 이하에서는 6억원을 빌릴 수 있지만 가격이 15억원을 조금이라도 넘으면 대출 한도가 4억원으로 줄어든다. 집값이 몇천만원 오르는 순간 매수자가 추가로 준비해야 할 돈은 2억원 이상 늘어난다. 대출을 이용해야 하는 매수자는 15억원 이하 매물로 몰릴 수밖에 없다. 서울 외곽의 중저가 아파트가 15억원을 향해 오르는 이유다. 정부가 만든 기준선이 집값을 누르기보다 그 아래 가격대의 수요를 끌어모으고 있다. 15억원을 넘어선 주택은 현금 동원력이 있는 사람들의 거래 영역으로 넘어간다. 고가 주택시장도 오래 얼어붙지 않았다. 규제 직후에는 거래가 급감했지만 수개월 뒤 다시 살아났다. 현금 매수자는 대출금리와 한도에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핵심지 매물이 부족한 상황에서 자산가가 신고가에 주택을 사면 그 거래가 같은 단지와 인근 지역의 시세가 된다. 거래량이 줄었다고 가격이 내려가는 것도 아니다. 대출을 쓰는 수백 명이 시장에서 이탈해도 현금 거래 몇 건이 최고가를 새로 쓸 수 있다. 매수자의 수는 줄었지만 남은 매수자의 자금력은 더 강해졌다. 서울 핵심지에서는 거래 감소와 가격 상승이 함께 나타날 수밖에 없다. 중산층이 살 수 있는 서울 아파트는 100채 가운데 8채도 되지 않는다. 올해 1분기 중위소득 가구가 구입할 수 있는 서울 아파트는 전체의 7.8%에 그쳤다. 해당 지표는 자기자금 30%와 주택담보인정비율 70%를 전제로 산출됐다. 서울에 실제 적용되는 대출규제는 더 강하다. 무주택 중산층이 체감하는 장벽은 통계보다 높다. 정부는 집값을 낮추겠다며 무주택자의 구매력부터 낮췄다. 공급은 부족하고 선호지역의 매물은 한정돼 있는데 돈줄만 조이면 집값보다 매수자의 얼굴이 먼저 바뀐다. 대출을 받아 집을 사던 사람은 빠지고 대출이 필요 없는 사람이 남는다. 금융규제로 아파트를 지을 수는 없다. 직장과 교통, 교육 여건이 갖춰진 지역에 새 주택을 충분히 공급하지 않은 채 대출만 막으면 희소한 주택은 돈 많은 사람의 몫이 된다. 서울 집값을 떠받치는 공급 부족과 선호지역 쏠림을 그대로 둔 채 금융권만 압박한 대가가 지금의 현금 부자 시장이다. 상환 능력을 따지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과 주택가격만 보고 대출액을 자르는 절대 한도도 같은 잣대로 운용해서는 안 된다. 고소득 무주택자가 실거주 목적으로 처음 집을 사는 경우와 다주택자가 추가 주택을 매수하는 경우를 똑같이 막으면 자산을 이미 가진 사람만 유리해진다. 대출이 막힌 수요는 서울 외곽과 수도권의 대출 가능 주택으로 이동했다. 해당 지역의 집값이 오르자 정부는 다시 규제지역을 확대했다. 수요는 인접 지역으로 옮겨갔고 규제는 뒤를 쫓았다. 정부가 지역을 옮겨 다니며 대출을 조이는 동안 서울 핵심지는 현금 자산가의 시장으로 남았다. 집값을 잡겠다며 대출을 막았지만 집값은 남고 무주택자만 밀려났다. 대출을 받아야 하는 사람에게는 서울 주택시장의 문이 닫혔고 대출이 필요 없는 사람의 구매력은 그대로다. 주식과 채권을 팔 수 있는 사람, 부모에게 수억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 기존 주택을 처분해 거액을 마련할 수 있는 사람만 핵심지 거래에 참여한다. 서울 주택시장에서 소득이 차지하던 자리를 현금과 증여가 대신하고 있다. 대출규제가 이 흐름을 계속 강화한다면 ‘현금 부자 시장’은 뜻하지 않은 부작용에 머물지 않는다. 정부가 정책으로 굳혀 놓은 시장이 된다.
2026-07-22 08: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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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약통장이 버림받는 나라, 주거 사다리가 무너지고 있다
[경제일보] 지난 6월 전국에서 청약통장 10만여개가 사라졌다. 하루 평균 3300개꼴이다. 2022년 6월 2859만9279명까지 늘었던 가입자는 올해 6월 2583만4034명으로 줄었다. 4년 동안 276만명 넘게 청약 대열에서 빠져나갔다. 금융상품 하나의 인기가 떨어진 정도로 넘길 일이 아니다. 청약통장은 오랫동안 무주택자가 국가의 주택정책을 믿고 가입한 통장이었다. 당장 집을 살 돈이 없어도 월급에서 조금씩 떼어 넣고 무주택 기간을 견디면 언젠가는 새 아파트를 마련할 기회를 얻는다는 약속이었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재산이 없어도 오래 일하고 꾸준히 저축하면 내 집에 다가갈 수 있었다. 청약제도는 돈이 부족한 사람에게 시간을 자산으로 바꿔주는 장치였다. 국가는 통장을 만들고 기다리라고 했다. 국민은 10년, 20년씩 돈을 넣었다. 지금 청약통장은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 지난달 서울 민간아파트 평균 분양가는 3.3㎡당 6165만원이었다. 국민평형으로 불리는 전용면적 84㎡의 공급면적을 33평 안팎으로 잡으면 평균 분양가가 20억원을 넘어선다. 분양가의 10%만 계약금으로 내도 2억원이다. 중도금과 잔금까지 치르려면 평범한 직장인의 근로소득과 저축만으로는 부족하다. 청약 가점은 무주택 기간과 가입 기간을 따진다. 실제 입주는 현금 동원 능력이 결정한다. 통장을 오래 유지하고 높은 점수를 받아 당첨돼도 분양대금을 마련하지 못하면 계약을 포기해야 한다. 청약통장이 있던 자리를 부모의 재산이 차지했다. 청약통장 가입자가 줄어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10년 넘게 납입해도 당첨 가능성은 낮고 당첨돼도 살 수 없다. 손에 잡히지 않는 기회를 위해 계속 돈을 묶어두는 편이 비합리적인 선택이 됐다. 장기 가입자까지 통장을 깨는 현상은 청약제도의 효용이 무너졌다는 경고다. 서울의 당첨 문턱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서울 아파트 평균 당첨 가점은 65.81점이었다. 2023년 56.17점, 2024년 59.68점에서 해마다 뛰었다. 일반적인 4인 가구가 받을 수 있는 최고점은 69점이다. 평균 당첨선이 최고점과 불과 3점 차이로 붙었다. 미혼 청년과 결혼 초기 신혼부부는 가점제 경쟁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 부양가족이 적고 무주택 기간도 짧기 때문이다. 정부는 청년에게 결혼과 출산을 권하면서 청약 점수표에서는 결혼하지 않은 청년과 막 가정을 꾸린 부부를 뒤로 밀어낸다. 특별공급 유형을 늘려도 공급 물량이 부족하면 경쟁자의 줄만 나뉜다. 신혼부부, 생애 최초, 다자녀, 노부모 부양, 신생아 특별공급을 계속 덧붙였지만 살 집이 늘어난 것은 아니다. 공급 부족의 책임을 자격 기준 개편으로 가려온 셈이다. 추첨 물량을 늘려도 분양가가 20억원이면 현금이 많은 사람이 계약한다. 가점에서 추첨으로 선정 방식을 바꿔도 입주 문턱은 그대로 남는다. 청약제도는 당첨자를 정할 뿐 당첨자가 집을 살 수 있게 해주지 않는다. 공공분양에서도 자금력이 점수로 바뀌었다. 정부는 2024년 11월 청약저축 월 납입 인정액을 10만원에서 25만원으로 올렸다. 납입총액으로 당첨 순위를 정하는 공공분양에서는 매달 25만원을 넣어야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는다. 월 10만원과 25만원의 차이는 1년에 180만원이다. 10년이면 1800만원이다. 월세와 생활비, 학자금 대출을 감당하는 청년에게 매달 25만원은 결코 가벼운 부담이 아니다. 저축 여력이 부족한 무주택자를 돕기 위해 만든 제도가 돈을 더 많이 넣을 수 있는 사람에게 유리하게 돌아간다. 서울과 지방의 청약시장은 정반대로 움직인다. 올해 상반기 서울 아파트 평균 청약 경쟁률은 92.6대 1에 달했다. 울산과 부산, 강원, 전남, 제주 등에서는 모집 가구 수를 채우지 못한 단지가 이어졌다. 서울에서는 100명 가까이 줄을 서야 한 명이 당첨된다. 지방에서는 청약통장을 쓰지 않아도 살 수 있는 집이 남는다. 서울의 청약통장은 당첨 가능성이 희박한 복권이 됐고 지방의 청약통장은 쓸 곳을 찾기 어려운 통장이 됐다. 서울의 높은 경쟁률을 청약제도의 인기라고 내세울 수도 없다. 수백 명 가운데 한 명에게 수억원의 시세차익이 돌아가는 구조는 정상적인 주택 공급시장이 아니다. 필요한 곳에 집이 부족해 벌어지는 쟁탈전이다. 지방에는 지어놓고도 팔리지 않은 집이 쌓였다. 지난 5월 말 전국 미분양 주택은 6만5239가구였고 준공 후에도 주인을 찾지 못한 주택은 2만9350가구에 달했다. 상당수가 비수도권에 몰려 있다. 사람이 몰리는 곳에는 주택이 부족하고 사람이 떠나는 곳에는 빈집이 늘어난다. 일자리와 대학, 교통망, 의료시설이 수도권에 집중된 상태에서 지방에 아파트만 지어 공급 실적을 채운 결과다. 정부의 공급 통계에서는 서울 도심의 한 채와 수요가 줄어드는 지방의 한 채가 똑같이 계산된다. 전국 공급량이 늘었다고 발표해도 서울 출퇴근권의 무주택자가 들어갈 집은 늘지 않는다.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공급계획서에 적힌 가구 수가 아니라 실제 생활권 안에서 감당할 수 있는 가격의 주택이다. 택지를 발표하고 지구를 지정하는 것만으로 주택이 생기지 않는다. 인허가와 착공이 늦어지고 준공이 몇 년씩 밀리는 동안 전셋값과 분양가는 오른다. 주택정책은 발표 물량이 아니라 착공과 준공, 입주 시점으로 평가해야 한다. 역대 정부는 집값이 오를 때마다 대출을 조이고 청약 요건을 손질했다. 공급 부족은 그대로 둔 채 수요자에게 더 높은 문턱을 세웠다. 대출을 줄이면 현금이 많은 사람은 불편을 감수하고 집을 산다. 저축한 돈 2억∼3억원이 전 재산인 무주택자는 시장에서 밀려난다. 투기를 막는다는 규제가 실수요자의 사다리부터 걷어찼다. 현금 부자에게 유리한 시장을 만든 뒤 청약 기회는 열려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분양가는 20억원을 넘는데 금융 통로는 막혀 있다. 당첨권만 주고 입주할 길을 닫아놓은 셈이다. 청약제도는 복잡해질 대로 복잡해졌다. 혼인 기간, 자녀 수, 소득, 자산, 거주 기간, 세대 구성, 주택 소유 이력을 모두 따진다. 모집공고문은 웬만한 법률 문서보다 어렵다. 한 항목을 잘못 판단하면 부적격 처리를 받고 당첨 기회까지 제한된다. 규칙이 복잡해진 만큼 무주택자의 기회가 넓어졌다면 감수할 수 있다. 현실은 반대다. 규정은 계속 늘었고 집을 살 수 있는 사람은 줄었다. 청약제도 개편은 공급 부족과 고분양가를 가리는 장막이 됐다. 청약통장 금리를 조금 올리고 세제 혜택을 늘리는 처방도 본질을 비껴간다. 청약통장은 예금 이자를 받기 위해 만드는 통장이 아니다. 집을 분양받기 위해 가입한다. 당첨 가능성이 낮고 당첨돼도 잔금을 치르지 못하는데 금리 몇 푼을 더 준다고 국민이 돌아오지 않는다. 청약통장 이탈은 주택도시기금에도 부담을 준다. 청약저축 자금은 공공임대주택 건설과 전세자금 지원에 쓰이는 주요 재원이다. 청약제도에 대한 신뢰가 떨어질수록 서민 주거정책을 떠받칠 자금도 줄어든다. 정책 실패가 다시 정책 기반을 무너뜨리는 구조다. 수요가 몰리는 지역에 무주택자가 감당할 수 있는 가격의 주택을 공급해야 한다. 서울 도심과 주요 일자리 접근성이 높은 지역의 재건축·재개발 사업 기간을 줄이고 실제 착공과 입주로 이어지는 물량을 늘려야 한다. 공공택지에서는 토지비와 개발이익을 낮춰 분양가를 억제해야 한다. 공공이 조성한 땅에서 민간 시세와 다를 바 없는 가격의 아파트를 내놓고 서민 주거정책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생애 최초 무주택자에게는 소득과 상환 능력을 기준으로 장기·고정금리 대출 통로를 열어야 한다. 분양가와 대출한도가 따로 움직이면 청약시장은 현금 부자의 시장으로 남는다. 가점제도 현재의 가구 구조에 맞게 고쳐야 한다. 1인 가구와 결혼 초기 가구가 가입 기간과 납입 실적으로 경쟁할 수 있는 물량을 늘려야 한다. 부양가족 수가 적다는 이유로 청년을 사실상 배제하는 제도는 저출산 시대의 현실과 맞지 않는다. 지방에서는 청약 조건을 다시 손보는 데 그칠 일이 아니다. 미분양을 해소하고 실수요를 만들 수 있도록 산업과 교통, 교육 정책을 주택 공급과 함께 움직여야 한다. 사람이 갈 이유가 없는 곳에 아파트만 짓고 청약 미달을 수요자의 선택 탓으로 돌려서는 해결되지 않는다. 더 심각한 대목은 1순위 가입자까지 빠르게 줄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랫동안 통장을 유지한 사람들이 기다림을 끝내고 있다. 수년간 돈을 넣어온 가입자는 작은 금리 차이 때문에 통장을 깨지 않는다. 당첨되기 어렵고 당첨돼도 살 수 없다는 판단이 섰을 때 떠난다. 4년 동안 276만명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 개인 사정의 합계로 넘길 수 없는 규모다. 청년이 청약통장을 만들지 않고 신혼부부가 서울을 떠나며 장기 무주택자가 통장을 깨는 사회에서는 근로소득보다 상속과 증여가 집의 주인을 결정한다. 집을 가진 부모와 그렇지 못한 부모의 차이가 자녀 세대의 주거와 결혼, 출산까지 갈라놓는다. 국가는 국민에게 통장을 만들고 기다리라고 했다. 국민은 돈을 넣고 무주택 기간을 견뎠다. 그 사이 필요한 곳의 공급은 부족해졌고 분양가는 20억원을 넘어섰으며 현금이 없는 실수요자의 금융 통로는 좁아졌다. 청약통장을 깬 국민이 국가와의 약속을 저버린 것이 아니다. 주택정책이 먼저 신뢰를 잃었다. 276만개의 해지 통장은 정부에 보내는 항의서다. 정부가 읽지 않는다면 다음에 사라지는 것은 청약통장만이 아니다. 일해서 번 돈으로 집을 마련할 수 있다는 믿음, 대한민국 중산층을 만들어온 통로가 함께 사라진다.
2026-07-21 09:12: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