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보] 미국이 신약 개발 초기 단계의 규제 장벽을 낮추는 방향으로 제도를 손질하고 있다. 임상시험 승인 절차를 간소화해 글로벌 바이오 경쟁에서 주도권을 되찾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중국과 호주 등 경쟁국의 급부상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라는 해석도 나온다.
8일 한국바이오협회 바이오경제연구센터에 따르면 미국 의회는 2027 회계연도 예산법을 통해 식품의약국(FDA)에 임상시험계획 승인신청(IND) 절차 간소화를 요구했다. 이는 초기 신약 개발을 촉진하기 위한 조치로 행정 부담을 줄이고 임상 진입 속도를 높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앞서 지난 4일 미국 하원은 농업·농촌개발·식품의약국 관련 예산법을 찬성 213표, 반대 210표로 통과시켰다. 해당 법안에는 위험도가 낮은 신약 후보물질에 대해 보다 신속한 임상 승인 절차를 적용하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향후 상원 심의와 대통령 서명을 거칠 경우 2026년 10월부터 시행될 전망이다.
핵심은 ‘속도’다. 미 의회는 보고서를 통해 “미국 외 지역에서 초기 신약 개발이 증가하는 추세에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초기 인체 안전성 연구 수행의 어려움이 기업들을 해외로 내몰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FDA에 불필요하거나 과학적 타당성이 낮은 요건을 정비하고 IND 제출 절차를 단계·위험도 기반으로 재설계할 것을 주문했다.
주목되는 대목은 호주식 임상시험 모델 도입 검토다. 미국은 현재 ‘신속 IND 파일럿 프로그램’을 추진 중이며 저위험 임상에 대해 규제기관의 사전 심사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는 호주의 임상시험 신고제(CTN)를 참고한 것으로 해당 제도는 윤리위원회 승인만으로 임상시험을 즉시 시작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호주 규제기관은 대부분의 임상시험에 대해 직접 심사를 하지 않고 신고 방식으로 운영한다. 반면 고위험 신약에 대해서는 별도의 승인 절차(CTA)를 적용해 안전성을 확보한다. 이러한 이원화 구조는 신속성과 안전성을 동시에 확보한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미국의 제도 개편 움직임은 글로벌 임상시험 경쟁 구도 변화와 맞물려 있다. 최근 중국과 호주는 규제 완화와 지원 정책을 바탕으로 임상시험 유치 경쟁에서 빠르게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실제로 다수 글로벌 제약사들이 초기 임상을 해외에서 진행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한국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혁신 역량이 높은 바이오 국가로 평가되지만 임상시험 추진력은 정체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진행 중인 임상시험 건수는 2024년 2307건에서 2025년 2175건으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업계 관계자는 “임상 승인 속도와 비용은 글로벌 제약사의 투자 결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미국이 규제 개혁에 나설 경우 글로벌 임상 흐름이 다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결국 이번 FDA의 제도 개편은 단순한 행정 절차 개선을 넘어 글로벌 바이오 패권 경쟁의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속도와 유연성을 앞세운 국가들이 시장을 선점하는 가운데 한국 역시 제도 혁신 없이는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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