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보] 정부가 다시 대규모 주택 공급 계획을 내놨다. 13일 발표한 ‘주택 신속공급 방안’의 핵심 숫자는 수도권 23만호+α다. 신규 공공택지를 찾고 기존 택지의 주택 수를 늘리는 한편 재건축·재개발과 민간 주택사업에도 금융 지원을 확대한다.
23만호는 상당한 물량이다. 그러나 숫자만 보고 공급 문제가 풀렸다고 판단하기는 이르다. 정부가 밝힌 23만호+α 가운데 2030년 이전 추가 착공이 예상되는 물량은 약 12만호+α다.
나머지는 지구 지정과 각종 절차를 거쳐야 구체적인 착공 시점을 알 수 있다. 정부가 발표한 23만호와 국민이 실제 들어가 살 수 있는 23만호 사이에는 긴 시간이 놓여 있다. 공급계획과 실제 공급은 같은 숫자로만 볼 수 없다.
택지를 발표했다고 집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지구를 지정하고 토지를 보상한 뒤 각종 인허가를 거쳐야 한다. 도로와 학교 같은 기반시설도 마련해야 한다.
그제야 공사를 시작할 수 있고 다시 몇 년을 지어야 입주가 가능하다. 어느 단계에서 1년이 늦어지면 입주도 그만큼 밀린다. 주택 공급에서 결국 가장 어려운 문제는 시간을 줄이는 일이다.
정부도 이번 대책에서 이 문제를 의식했다. 공공택지의 후보지 발표부터 주택 착공까지 평균 68개월 걸리던 기간을 최단 37개월로 줄이겠다고 했다. 3기 신도시 등 기존 공공택지에서도 당초 계획보다 착공을 1~2년 앞당기겠다는 목표를 내놨다.
방향은 맞다. 이제 따져야 할 것은 계획표에서 줄인 31개월을 실제 사업 현장에서도 줄일 수 있느냐다. 주택사업의 일정은 정부가 정한 날짜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대규모 택지는 토지보상부터 쉽지 않다. 보상가격을 둘러싼 갈등이 생기고 이주와 철거가 늦어질 수 있다. 환경평가와 교통대책, 지방자치단체 협의도 넘어야 한다.
관련 법을 고쳐야 하는 절차도 있다. 37개월이라는 목표를 세우는 것과 모든 사업장을 그 일정에 맞추는 것은 다른 일이다. 행정계획의 속도와 현장의 속도가 언제나 같지는 않다.
3기 신도시는 이미 이런 어려움을 겪었다. 2018년과 2019년부터 공급계획이 발표됐지만 사업지마다 토지보상과 인허가, 기반시설 문제로 일정이 밀렸다. 공급 물량은 일찍 발표됐지만 실제 입주는 훨씬 뒤로 넘어갔다.
주택 공급에서는 발표 시점보다 착공과 입주 시점이 훨씬 중요하다. 이번 대책의 37개월도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37개월은 입주까지가 아니라 착공까지 걸리는 시간이다.
2026년에 발표한 신규 택지가 정부 계획대로 37개월 만에 착공한다고 해도 첫 삽을 뜨는 시점은 2029년 무렵이다. 그 뒤 아파트를 짓는 데 다시 수년이 필요하다. 상당수 물량은 지금 집을 구하는 무주택자나 세입자가 가까운 시일 안에 체감하기 어려운 공급이다.
문제는 지금 시장에 들어오는 집도 줄고 있다는 데 있다. 올해 상반기 전국 주택 인허가는 11만6611호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8% 감소했다. 수도권 인허가도 줄었다.
실제 입주와 가장 가까운 준공 실적은 더 크게 떨어졌다. 전국 준공 물량은 10만3735호로 49.5% 감소했고 수도권도 47.6% 줄었다. 서울은 절반 넘게 감소했다.
몇 년 뒤 지을 집만 바라볼 상황이 아니다. 지금부터 1~2년 안에 시장에 나올 집이 부족해지고 있다. 2030년에 착공하는 1만호와 내년에 입주하는 1만호는 같은 1만호로 볼 수 없다.
집을 구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장기 공급계획보다 가까운 시기에 실제 입주할 수 있는 집이 더 절실하다. 공급정책에서 물량과 함께 시간을 따져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발표 숫자와 실제 입주 물량 사이의 간격을 얼마나 줄이느냐가 중요하다.
앞으로 정부가 보여줘야 할 것도 달라져야 한다. 몇 만호를 더 공급하겠다는 발표만 되풀이할 것이 아니라 각 사업장의 착공과 입주 시점을 얼마나 앞당겼는지를 내놓아야 한다. 정책의 성과를 물량이 아니라 일정으로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공공택지라면 지구 지정과 토지보상, 환경평가, 인허가 가운데 어디에서 몇 개월을 줄였는지 공개할 필요가 있다. 일정이 늦어졌다면 무엇 때문에 밀렸고 새 입주 시점은 언제인지 밝혀야 한다. 그래야 시장도 정부의 공급계획을 실제 일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민간 주택사업도 빼놓을 수 없다. 수도권 주택 공급의 상당 부분은 결국 민간이 맡는다. 정부가 공공택지의 행정절차를 몇 달 줄이더라도 민간 건설사가 사업성이 없다고 판단해 착공을 미루면 전체 공급 속도는 올라가지 않는다.
공사비와 토지비가 오르고 PF 금융비용이 부담되는 상황에서 금융 지원만 늘린다고 모든 사업장이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재건축·재개발도 조합 갈등과 공사비 분쟁이 장기화되면 일정이 몇 년씩 늦어진다. 공공의 행정절차만 줄여서는 공급 시계를 충분히 앞당기기 어렵다.
정부가 공급 숫자를 발표하는 일보다 어려운 것은 그 숫자를 실제 아파트로 바꾸는 일이다. 더 어려운 것은 그 시간을 몇 년씩 앞당기는 일이다. 이번 23만호 대책도 발표 당시의 숫자만으로 평가할 일이 아니다.
몇 년 뒤 실제로 몇 호가 착공됐는지, 예정했던 입주 날짜를 얼마나 지켰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정부가 68개월 걸리던 착공 기간을 37개월로 줄이겠다고 한 것도 결국 공급 속도를 높이겠다는 약속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주택정책도 발표 물량보다 실제 공급 일정으로 평가해야 한다.
무주택자가 기다리는 것은 23만호라는 보도자료의 숫자가 아니다. 계약서를 쓰고 이삿짐을 들고 들어갈 수 있는 집이다. 주택 공급정책의 성적표도 이제 몇 호를 발표했느냐가 아니라 몇 년을 줄였느냐, 그래서 언제 입주할 수 있느냐로 매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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