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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펌 명가③] 합병 대신 내부 확장…태평양이 종합로펌이 된 방법
1980년 12월 서울 서소문. 서울민사지법 부장판사를 끝으로 법복을 벗은 김인섭 변호사가 자신의 이름을 건 법률사무소를 열었다. 해외 로스쿨이나 외국 로펌 경력은 없었다. 김 변호사가 내세운 목표는 한국 법률시장에서 출발해 국제 경쟁력을 갖춘 로펌을 만드는 것이었다. 6년 뒤 법무부 장관을 지낸 배명인 변호사와 이정훈 변호사 등이 합류하면서 태평양합동법률사무소가 출범했다. 영문명 ‘BKL(Bae, Kim & Lee)’은 배명인·김인섭·이정훈 세 창업자의 성에서 따왔다. 1987년 법무법인으로 전환했고 1995년 지금의 법무법인 태평양이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46년이 흐른 현재 태평양은 김앤장에 이어 국내 매출 2위 로펌이다. 2025년 법무법인 매출은 4402억원, 특허법인과 해외법인을 합친 매출은 4702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상반기에도 전년 같은 기간보다 매출이 약 25% 늘었다. 국내 변호사는 지난 6월 기준 628명으로 김앤장 다음으로 많다. 김앤장이 국제금융과 외국 기업 자문에서 출발했고 광장이 서로 다른 두 로펌의 합병으로 기업자문과 송무를 결합했다면 태평양의 길은 달랐다. 국내 송무에서 시작해 기업자문과 M&A를 붙이고 국제중재와 공정거래, 조세, 노동, 기업형사로 영역을 넓혔다. 외부 로펌과의 대형 합병 없이 필요한 분야를 조직 안에서 키워온 것이 태평양 성장사의 한 축이다. ◆ 법정에서 시작한 ‘한국형 로펌’ 창업자 김인섭 변호사는 1963년 서울지방법원 판사로 법조 생활을 시작했다. 대법원 재판연구관과 서울고법 판사를 거쳐 서울민사지법 부장판사와 사법연수원 교수를 지냈다. 1980년 법원을 떠나 변호사 개업을 할 때 김 변호사가 구상한 조직은 몇 명의 변호사가 사무실을 함께 쓰는 합동사무소와는 달랐다. 당시 한국 법률시장은 개인 변호사의 송무가 중심이었다. 대기업이 성장하면서 기업법무 시장도 열리고 있었지만 지금과 같은 대형 종합로펌은 막 걸음을 떼던 시기였다. 김 변호사는 자신의 법관 경험을 토대로 송무를 맡으면서 기업이 필요로 하는 법률서비스를 조직적으로 제공하는 로펌을 만들기 시작했다. 1986년 태평양합동법률사무소 출범은 개인사무소에서 조직형 로펌으로 넘어가는 계기가 됐다. 배명인·김인섭·이정훈을 비롯해 이재식·황의인 변호사 등이 초기 조직을 만들었고 이후 기업법무를 담당할 변호사들이 잇달아 합류했다. 송무에서 시작한 조직에 기업자문과 금융, 지식재산권 분야가 하나씩 붙었다. 태평양이 당시 내세운 말은 ‘한국적인 국제로펌’이었다. 외국 로펌의 운영방식을 그대로 옮겨오는 대신 국내 법률시장과 법조 실무에 뿌리를 두고 국제 업무까지 처리하는 조직을 만들겠다는 구상이었다. 김인섭 변호사는 훗날 이를 ‘한국적 국제로펌’이라는 말로 설명했다. ◆ 외환위기, 송무 로펌이 기업 안으로 들어갔다 태평양의 업무가 크게 넓어진 시기는 1990년대 후반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기업 매각과 구조조정, 워크아웃이 한꺼번에 진행됐다. 기업의 생존 문제가 법률 문제로 이어지면서 송무뿐 아니라 금융과 M&A, 기업회생을 함께 다룰 변호사들이 필요해졌다. 태평양은 기아자동차 파산 처리와 대우그룹 계열사의 워크아웃 등에 참여했다. 법원에서 분쟁을 처리하던 변호사들이 기업의 재무상태와 채권관계, 구조조정 과정까지 들여다보게 됐다. 이 과정에서 기업회생과 M&A 업무 경험도 쌓였다. 1998년에는 서소문을 떠나 강남 테헤란로로 본사를 옮겼다. 기업과 금융회사들이 모이는 곳으로 로펌의 중심도 이동했다. 태평양이 송무를 중심으로 성장한 법률사무소에서 기업의 거래와 경영 문제까지 다루는 종합로펌으로 몸집을 키우던 때였다. 외환위기는 태평양에 새로운 숙제도 안겼다. 국내 기업을 둘러싼 분쟁의 상대가 외국 기업과 해외 자본으로 넓어지면서 국내 법원만 알아서는 처리하기 어려운 사건이 늘었다. 태평양은 다음 승부처로 국제분쟁을 택했다. ◆ 2002년 국제중재팀 만들고 해외로 태평양은 2002년 국내 로펌 가운데 처음으로 국제중재팀을 만들었다. 당시 국내 기업들의 해외 투자와 수출이 늘면서 계약 분쟁을 해외 중재기관에서 해결하는 사건이 증가하고 있었다. 국제중재가 지금처럼 대형 로펌의 주요 업무로 자리 잡기 전이었다. 2009년에는 현대 측을 대리해 아부다비국영석유투자회사(IPIC)에 넘어갔던 현대오일뱅크 경영권을 국제상업회의소(ICC) 중재를 통해 되찾는 사건에 참여했다. 국제중재팀을 만든 지 7년 만이었다. 기업 간 국제분쟁을 넘어 국가를 상대로 한 투자분쟁으로 업무 범위도 넓어졌다. 대표적인 사건이 론스타 국제투자분쟁(ISDS)이다.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2012년 한국 정부를 상대로 약 6조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하자 태평양은 정부 측 대리를 맡았다. 13년에 걸쳐 진행된 사건은 2025년 원 판정이 취소되면서 한국 정부가 배상 책임에서 벗어나는 결과로 끝났다. 해외 거점도 늘렸다. 2004년 국내 로펌 가운데 처음으로 중국 베이징에 사무소를 열었고 이후 상하이와 홍콩, 하노이, 호찌민, 두바이, 싱가포르 등으로 진출했다. 국내 기업이 해외로 이동하는 곳을 따라 법률서비스의 범위도 넓혔다. ◆ 기업의 싸움이 바뀌자 ‘경영권 분쟁’을 따로 떼냈다 기업분쟁의 양상도 달라졌다. 단순한 계약 위반이나 손해배상 소송을 넘어 기업 지배권을 두고 주주와 경영진, 국내 기업과 해외 펀드가 맞붙는 사건이 늘었다. 태평양이 일찍부터 공을 들인 분야 가운데 하나가 경영권 분쟁이다. 2000년대 초 SK그룹과 소버린자산운용의 경영권 분쟁에서 태평양은 SK 측을 대리했다. 소버린이 최태원 회장을 이사회에서 밀어내기 위해 임시주주총회 소집을 요구하고 법원에 소집 허가까지 신청하자 태평양은 SK 측 변호인단에 참여했다. 법원이 소버린의 신청을 기각하면서 경영권 분쟁은 SK 측에 유리하게 끝났다. 태평양은 2012년 대형 로펌 가운데 처음으로 별도의 경영권 분쟁팀을 만들었다. M&A 변호사와 송무 변호사를 한 조직에 모아 주주총회와 이사회, 가처분, 공개매수 등 경영권 싸움에서 동시에 벌어지는 문제를 처리하도록 했다. 최근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도 참여하며 이 분야를 주요 업무로 이어가고 있다. 경영권 분쟁은 태평양의 출발점이었던 송무와 이후 키운 기업자문이 만나는 분야이기도 하다. 회사법과 자본시장법을 알아야 하고 주주총회를 준비하면서 동시에 법원의 가처분 결정에도 대응해야 한다. 태평양이 오랫동안 두 분야를 함께 키운 효과가 드러나는 시장이다. ◆ 로펌도 회사처럼 운영했다 업무 분야만 넓힌 것은 아니었다. 조직 운영에서도 몇 차례 변화를 먼저 시도했다. 2007년에는 국내 대형 로펌 가운데 처음으로 법무법인(유한)으로 조직을 바꿨다. 법무법인(유한)은 구성원 변호사의 책임을 일정 범위로 제한하고 규모가 커진 로펌을 조직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만든 형태다. 변호사 개인의 사무실을 크게 만든 수준에서 벗어나 수백 명의 전문가가 일하는 조직에 맞는 의사결정 체계를 갖추려는 선택이었다. 공익활동도 조직 안에 넣었다. 2001년 공익활동위원회를 만들었고 2009년에는 공익법률지원 활동을 전담하는 재단법인 동천을 설립했다. 체임버스앤파트너스는 태평양이 국내 로펌 가운데 처음으로 내부 프로보노 조직을 만든 뒤 별도 공익재단까지 설립한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2020년에는 22년간 머물던 강남을 떠나 종로 센트로폴리스로 본사를 옮겼다. 당시 약 650명의 전문가를 포함해 1300여 명이 여러 건물에 나뉘어 근무하던 조직을 한 건물에 모았다. 기업뿐 아니라 정부와 금융기관, 법원 등과의 접근성을 고려한 이전이었다. ◆ 송무와 자문을 함께 키운 46년 태평양의 현재 업무를 보면 처음부터 키워온 송무와 이후 확대한 기업자문이 함께 남아 있다. 체임버스앤파트너스는 2026년 태평양의 기업·M&A와 송무, 조세, 공정거래 등을 국내 주요 분야로 평가하고 있다. 기업·M&A에는 200명이 넘는 변호사가 참여하고 있다. 최근 대형 사건도 한 분야에 몰리지 않는다. 론스타 ISDS와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아일리아 특허 분쟁,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한전KPS 중대재해 사건 등을 맡았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해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형사재판에도 김앤장과 함께 참여해 대법원 무죄 확정까지 변론했다. 실적도 회복됐다. 태평양의 2025년 법무법인 매출은 4402억원으로 2024년 3918억원보다 12.4% 늘었다. 김앤장을 제외한 법무법인 가운데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리며 6년 만에 2위로 올라섰고 올해 상반기 성장률도 약 25%로 주요 대형 로펌 가운데 가장 높았다. 현재 업무집행대표는 이준기 변호사가 맡고 있다. 1996년 태평양에 입사한 이 대표는 M&A와 해외투자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고 삼성·한화 빅딜과 금호타이어 인수 등 대형 거래를 자문했다. 외부에서 경영자를 데려오기보다 조직 안에서 성장한 변호사가 경영을 맡고 있다는 것도 태평양의 세대교체를 보여준다. ◆ 2위 탈환했지만 격차는 사라졌다 매출 2위 복귀만으로 앞으로의 경쟁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2025년 태평양 매출은 4402억원이었지만 세종은 4363억원, 광장은 4309억원이었다. 2위부터 4위까지 불과 93억원 안에 들어와 있다. 한두 건의 대형 사건이나 인재 이동으로 순서가 달라질 수 있는 격차다. 기업 고객의 평가에서도 태평양이 모든 분야를 앞서는 것은 아니다. 한국경제와 한국사내변호사회가 실시한 2025년 조사에서 태평양은 종합과 전문성, 서비스 평가에서 각각 4위를 기록했다. 민사·송무와 형사·수사기관 대응, 조세·관세, 금융 등 주요 분야에서도 4위권이었다. 세종은 최근 공격적인 인재 영입을 바탕으로 매출을 빠르게 늘렸고 광장과 율촌 역시 M&A와 송무, 규제 분야에서 경쟁하고 있다. 대형 로펌 사이의 변호사 이동도 잦아졌다. 태평양이 2025년 되찾은 2위 자리를 지키려면 과거에 쌓은 송무 경쟁력과 최근 확대하는 기업자문을 동시에 끌고 가야 한다. 태평양도 사람을 늘리고 있다. 지난 6월 국내 변호사는 628명으로 1년 전보다 41명 증가해 주요 대형 로펌 가운데 증가 폭이 가장 컸다. AI와 디지털금융, 공급망, 통상, 중대재해 등 새로운 규제 분야에도 별도 조직을 두고 있다. ◆ 국내 법정에서 시작해 바다를 건넜다 태평양의 출발점에는 국제금융 계약서도, 두 대형 로펌의 합병도 없었다. 서울민사지법 부장판사를 지낸 변호사가 1980년 서소문에 연 작은 법률사무소가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송무를 했다. 기업이 커지자 기업자문과 금융, M&A를 붙였고 외환위기가 터지자 구조조정 업무를 키웠다. 국내 기업의 분쟁이 해외로 넘어가자 국제중재팀을 만들었고 기업 경영권을 둘러싼 싸움이 늘자 경영권 분쟁팀을 따로 꾸렸다. 그 과정에서 다른 대형 로펌을 합병하거나 조직을 나눠 새 로펌을 만드는 길을 택하지 않았다. 필요한 분야를 내부에서 만들고 사람을 영입해 조직 안에 쌓았다. 1980년 김인섭 변호사가 말했던 ‘한국적인 국제로펌’도 이런 과정을 거쳐 지금의 태평양으로 이어졌다. 법정에서 출발한 로펌은 이제 국제중재와 M&A, 공정거래, 조세, 기업형사를 함께 다룬다. 태평양이 46년 동안 넓혀온 영역이다.
2026-09-11 09:4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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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도가자 16년] ①16년째 결론 못 낸 '증도가자'…재검증도 '끝낼 날짜' 없다
고려 금속활자 ‘증도가자(證道歌字)’를 둘러싼 국가유산 지정 논란이 16년째 이어지고 있다. 2010년 처음 공개된 뒤 국가유산 지정 신청과 여러 차례 조사를 거쳐 2017년 보물 지정이 부결됐지만 당시 조사와 심의 과정은 이후 다시 감사 대상에 올랐다. 국가유산청은 이제 전국에 흩어진 증도가자 계열 금속활자를 한꺼번에 모아 다시 조사할 계획이다. 9일 본지가 확보한 국가유산청의 「‘증도가자’ 일괄공모를 통한 조사·지정 계획(안) 보고」에는 16년간 이어진 증도가자 논란을 다시 검증하기 위한 전국 단위 조사 계획이 담겼다. 국가유산청은 올해 9월 일괄공모를 시작해 기초조사와 과학·인문조사, 종합평가를 거쳐 국가유산 지정 여부를 다시 검토할 방침이다. 그러나 조사를 언제까지 마치고 국가유산위원회 심의를 거쳐 최종 판단을 내릴지에 대한 일정은 담기지 않았다. 증도가자가 공개된 지 16년, 국가유산 지정 절차가 시작된 지도 15년이 흘렀다. 2017년 한 차례 결론을 냈지만 그 판단 과정까지 다시 검증대에 올랐다. 국가유산청이 새로운 방식의 재조사를 택한 만큼 이번에는 조사 단계에서 머물지 않고 결과에 따른 지정 판단까지 이어지는 시간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직지보다 최소 138년 앞선 시기 증도가자는 고려시대 불교서적 ‘남명천화상송증도가’를 찍는 데 사용됐다는 주장이 제기된 금속활자다. 현재 전하는 증도가는 고려 고종 때인 1239년 목판으로 찍은 책이다. 책에는 앞서 금속활자로 찍은 책을 바탕으로 목판을 다시 새겼다는 취지의 기록이 남아 있다. 문제의 활자가 당시 증도가를 찍는 데 사용된 금속활자로 확인되면 제작 시기는 1239년 이전으로 올라간다.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찍힌 ‘직지심체요절’보다 최소 138년 앞선다. 직지가 금속활자로 인쇄한 책으로 남아 있다면 증도가자는 당시 사용한 금속활자 실물을 놓고 진위와 제작 시기를 따지고 있다는 차이가 있다. 증도가자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2010년이다. 이듬해 다보성 측이 소장한 활자 101점에 대한 국가유산 지정 절차가 시작됐다. 첫 판단은 6년 뒤인 2017년에 나왔다. 문화재위원회는 당시 증도가자 101점의 보물 지정을 부결했다. 글씨체와 활자의 제작 방식, 책을 찍을 수 있도록 활자를 배열하는 ‘조판’ 등을 검토했지만 해당 활자를 증도가 인쇄에 사용한 활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출처와 소장 경위가 충분히 확인되지 않았고 관련성이 거론된 청동 수반과 초두를 함께 비교하지 못한 점도 부결 사유에 포함됐다. ◆ 부결 뒤에도 이어진 문제 제기…결국 다시 감사대로 2017년 부결 이후에도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다보성갤러리 김종춘 회장은 당시 조사와 심의 과정에 문제가 있다며 관련 자료와 연구 결과를 모아 재검증을 요구했다. 2023년 감사원에 감사제보가 접수됐고 감사원은 지난해 이 사안을 국가유산청으로 넘겼다. 국가유산청은 올해 1월 자체감사를 실시해 2월 결과를 통보했다. 자체감사는 2017년 결론 자체보다 그 결론을 만드는 데 사용된 조사 방법과 심의자료를 다시 들여다봤다. 활자가 실제 책을 찍는 데 맞는 크기였는지를 판단한 방법, 비교자료의 수치가 보고서에 제대로 반영됐는지, 문화재위원들이 추가 자료를 충분히 검토했는지 등이 대상에 포함됐다. 감사 관련 문서에는 당시 문화재위원회 보고자료를 놓고 ‘왜곡 설명(치수 차이 등)’이라는 표현도 등장한다. 비교자료인 석보상절 활자본과 번각본 사이의 광곽 수축 수치가 분석보고서에서 빠졌다는 내용도 담겼다. 국가유산청은 감사 과정에서 새로 적용된 통계 분석 역시 적절하지 않다고 보고 다시 분석했다. 2017년 검증 방식에 대한 지적과 이를 다시 살피는 과정에서 사용된 분석 방법을 둘러싼 반론이 맞선 것이다. 이후 국가유산청은 특정 소장품만 따로 살피던 방식에서 벗어나 전국에 있는 증도가자 계열 활자를 한꺼번에 모아 같은 기준으로 비교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한 차례 내린 판단의 과정까지 다시 감사하고 조사 방식을 새로 짰다는 점은 이번 재검증의 성격을 보여준다. 과거 논쟁을 반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16년 동안 이어진 진위와 지정 논란을 정리하는 절차로 이어져야 한다는 요구도 여기서 나온다. ◆ 김종춘 회장이 이어온 16년…다시 열린 국가 검증 증도가자가 다시 국가 차원의 검증 대상에 오르기까지 다보성 갤러리 김종춘 회장의 문제 제기도 계속됐다. 2011년 지정 절차가 시작된 뒤 첫 판단까지 6년을 기다렸고 2017년 부결 이후에는 당시 검증 방식과 심의자료를 다시 살펴달라고 요구했다. 관련 자료를 모으고 연구 결과를 제시하며 재검증 요구를 이어갔다. 한 차례 끝났던 증도가자 문제는 감사원 제보와 국정감사를 거쳐 국가유산청 자체감사로 이어졌다. 국가유산청은 이제 기존 소장품뿐 아니라 전국의 후보 활자를 같은 기준으로 비교하는 방안까지 마련했다. 증도가자가 처음 공개된 지 16년 만에 조사 방식 자체를 바꾼 재검증이 추진되는 것이다. 김 회장 측은 이번 재검증만큼은 장기간 이어지지 않고 조사 결과에 따른 지정 판단까지 신속하게 마무리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16년 동안 문제를 제기해 국가가 다시 검증에 나서는 단계까지 온 만큼 또다시 수년을 조사와 검토에 쓰는 방식으로는 논란을 끝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김 회장이 이어온 16년의 노력에 국가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응답도 결국 시간과 맞닿아 있다. 원하는 결론을 미리 정하는 것이 아니라 남아 있는 검증을 서둘러 마치고 역사적 가치가 확인되면 보물 지정 절차까지 지체 없이 이어가는 것이다. 또다시 긴 기다림을 요구한다면 재검증을 결정한 의미도 작아진다. ◆ ‘조사·지정 계획’ 세웠지만 종료 일정은 빠져 국가유산청의 계획안을 보면 새 조사 방식은 과거보다 구체적이다. 국내에 있는 증도가자 계열 금속활자를 공개 모집한 뒤 공모된 유물에 같은 조사 기준을 적용한다. 국가유산청은 개별 유물 단위 조사만으로 객관적인 검증을 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는 내용도 계획안에 담았다. 과학조사에서는 금속 성분과 미세조직, 주조와 가공 흔적 등을 살핀다. 서지·문헌 조사에서는 글씨체와 제작기법, 실제 인쇄된 책과 활자의 관계를 비교한다. 어느 한 분야의 분석 결과만으로 판단하지 않고 여러 조사 결과를 대조하는 방식이다. 진행 순서도 마련했다. 일괄공모를 거쳐 기초조사와 지정조사, 종합평가를 한 뒤 국가유산 지정 문제를 검토한다. 공모 시점은 올해 9월로 잡았다. 문서 제목도 단순한 조사 계획이 아니라 ‘조사·지정 계획’이다. 조사 결과를 국가유산 지정 검토까지 연결하겠다는 취지가 담겨 있다. 이에 비해 공모 이후 일정은 비어 있다. 기초조사를 언제 시작하고 과학조사와 전문가 검토를 언제까지 마칠지, 종합평가와 국가유산위원회 심의를 어느 시점에 진행할지는 계획안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최종 판단 목표 시점도 제시하지 않았다. 법정 절차를 지키면서도 전체 기간을 줄일 방법은 있다. 공모가 진행되는 동안 조사 기준과 전문가 구성을 확정하고 분석기관의 일정을 잡는 한편 기존 조사자료를 미리 정리할 수 있다. 과학조사와 서지·문헌 조사도 서로 선후관계가 필요하지 않은 부분은 함께 진행하면 검증 기간을 줄일 수 있다. 현행 규정은 지정예고 뒤 6개월 안에 지정 여부를 결정하도록 시한을 두고 있다. 법정 절차 자체보다 공모 이후 각 조사와 심의를 어떤 순서로 배치하고 얼마나 병행하느냐가 전체 기간을 좌우하는 셈이다. 16년간 이어진 논란을 다시 수년간 끌지 않으려면 국가유산청의 조사 운영과 일정 관리가 그만큼 중요하다. 국가유산청은 조사할 대상과 방법을 정했고 9월 일괄공모라는 출발점도 잡았다. ‘조사·지정 계획’에 정작 빠진 것은 종료 시점이다. 16년째 이어진 증도가자 논란을 이번 절차에서 마무리하려면 조사 시작뿐 아니라 조사 완료와 국가유산위원회 심의, 최종 판단의 목표 시점까지 함께 제시해야 한다. ◆ 16년 만의 전면 재조사…관건은 속도와 결론 증도가자는 이제 막 검증을 시작하는 유물이 아니다. 2010년 공개됐고 2011년 국가유산 지정 절차에 들어갔다. 2017년 보물 지정이 부결된 뒤 그 판단 과정까지 다시 감사 대상에 올랐다. 국정감사와 자체감사까지 거쳐 이제 전국 단위 재조사를 앞두고 있다. 그동안 축적된 조사자료와 연구 결과도 있다. 이번 일괄공모를 통해 새로운 비교 대상이 확보되면 기존 자료와 함께 검토할 여건도 마련된다. 과학조사와 인문·서지학 조사를 함께 진행하고 조사 단계마다 다음 절차를 준비한다면 전체 기간을 줄일 여지도 있다. 국가유산청이 이번 재검증을 16년 논란을 정리하는 절차로 가져가려면 시작 일정만큼 완료 목표도 중요하다. 조사 결과 역사적 가치가 확인될 경우 국가유산위원회 심의와 보물 지정 판단까지 이어지는 절차가 다시 장기간 늘어지지 않도록 일정을 관리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는 이유다. 2011년 시작된 지정 절차에서 첫 결론을 내리는 데 6년이 걸렸다. 그 결론을 만드는 과정은 다시 감사 대상에 올랐다. 이제 국가유산청은 새로운 조사 방식까지 마련했다. 남은 과제는 이미 시작하기로 한 재검증을 얼마나 신속하게 마무리하고 지정 판단까지 이어가느냐다. 국가유산청은 올해 9월 일괄공모를 시작점으로 잡고 조사 대상과 방법, 진행 절차까지 마련했다. 남은 것은 종료 시점이다. 조사 완료와 국가유산위원회 심의, 최종 판단을 언제까지 마칠지에 대한 일정도 함께 제시할 필요가 있다. 16년을 이어온 증도가자 논란에서 또다시 시작 일정만 내놓고 끝을 기약하지 않는 방식은 반복돼서는 안 된다.
2026-09-10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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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펌 명가②] 자문 한미·송무 광장, 합병으로 만든 종합로펌
2001년 6월 7일 서울 신라호텔. 기업자문과 금융에 강했던 법무법인 한미와 송무로 이름을 알린 법무법인 광장이 합병을 선언했다. 새 로펌의 이름을 정하는 일부터 쉽지 않았다. 결국 국문 이름은 옛 광장의 ‘법무법인 광장’을 쓰고 영문 이름은 한미가 사용하던 ‘Lee & Ko’를 남겼다. 당시 한미와 광장을 합친 국내외 변호사는 120명을 넘어섰다. 김앤장에 이어 국내 두 번째 규모의 대형 로펌이 등장했다. 기업자문과 금융은 한미가 쌓아온 경험을 가져왔고 송무에는 옛 광장의 강점이 더해졌다. 서로 부족했던 분야를 한 조직 안에 넣으면서 지금의 종합로펌 광장이 출발했다. 광장의 역사를 따라가려면 2001년보다 24년을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기업자문과 송무가 처음부터 한 조직 안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각자 다른 시장에서 성장한 두 로펌이 자신에게 없던 역량을 상대에게서 찾으면서 2001년 합병으로 이어졌다. ◆ 판사 그만두고 기업들이 있는 도심으로 1977년 이태희 변호사가 서울 중구 소공동에 개인 법률사무소를 열었다. 지금 광장의 출발점이다. 이 변호사는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해 서울민사지법과 서울형사지법 판사를 지냈다. 이후 미국 유학을 위해 판사직을 그만두고 하버드대 로스쿨을 거쳐 로스앤젤레스의 로펌에서 4년간 일했다. 국내로 돌아온 이 변호사는 법원 주변이 아니라 기업들이 몰려 있던 서울 도심에 사무실을 냈다. 당시 변호사의 업무는 개인 송사와 재판이 중심이었지만 이 변호사는 기업의 계약과 투자, 해외 거래를 자문하는 서구식 로펌을 염두에 뒀다. 한진그룹과 한국전력, 포항제철, 한국은행, 외환은행 등이 초기 고객으로 이름을 올렸다. 외국 기업의 국내 진출과 국내 기업의 해외 거래도 맡았다. 1981년 고광하 변호사가 합류하면서 한미합동법률사무소로 확대됐다. 이태희의 ‘Lee’와 고광하의 ‘Ko’를 따 영문 이름을 ‘Lee & Ko’로 정했다. 1985년에는 법무법인 한미로 조직을 바꿨다. 훗날 고 변호사가 독립한 뒤에도 Lee & Ko라는 이름은 남았다. ◆ 기업자문만으로는 채우지 못한 송무 한미는 기업자문에서 출발했지만 일찍부터 송무를 보강했다. 부장판사를 지낸 유경희 변호사가 합류해 송무를 맡았고 기업자문과 금융, 송무, 지식재산권, 보험 등으로 업무를 나눴다. 1990년대에는 변호사가 사건을 받아 혼자 처리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업무 분야별 전문팀도 두기 시작했다. 한국 기업이 커지면서 로펌에 들어오는 일도 달라졌다. 외국인 투자와 해외 증권 발행, 금융거래, M&A가 늘었고 외환위기 이후에는 기업 구조조정 업무가 쏟아졌다. 한미가 강점을 보이던 기업자문과 금융 업무에는 좋은 시장이었다. 그러나 고객의 분쟁까지 계속 맡으려면 송무 역량을 더 키워야 했다. 기업에 계약과 거래를 자문하다 분쟁이 생기면 대형 송무를 다른 로펌에 맡겨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기업자문에서 고객을 확보해도 법정 분쟁까지 이어서 맡는 데 한계가 있었다. 종합로펌으로 커지려면 기업자문과 금융만으로는 부족했다. 한미가 찾던 것은 강한 송무였다. 그 무렵 옛 광장에는 정반대의 고민이 있었다. ◆ 자문 85% 한미, 송무 70% 광장 옛 광장은 박우동 전 대법관과 권광중 전 사법연수원장 등 법원 출신 변호사들을 중심으로 송무에서 이름을 쌓았다. 재판 경험과 법원 인력에서는 강했지만 국제거래와 기업자문을 단기간에 키우기는 쉽지 않았다. 기업법무 시장이 빠르게 커지는 상황에서 송무만으로 성장하기에도 한계가 있었다. 2001년 당시 한미의 업무 가운데 자문 비중은 약 85%였다. 반면 광장은 송무 비중이 약 70%였다. 한미에는 대형 송무가 필요했고 광장에는 기업자문과 국제거래 경험이 필요했다. 두 로펌의 강점과 약점이 정확히 반대쪽에 놓여 있었다. 그해 초 양측 대표들의 만남에서 합병 이야기가 나왔다. 법률시장 개방을 앞두고 해외 대형 로펌과 경쟁하려면 자문과 송무를 모두 갖춘 규모도 필요했다. 필요한 분야를 처음부터 키우는 데 시간을 들이기보다 이미 경험을 축적한 조직과 합치는 길을 택했다. 논의가 시작된 지 몇 달 만에 두 로펌은 합병을 결정했다. 한미는 광장의 송무를 얻었고 광장은 한미의 기업자문과 금융, 국제업무를 얻었다. 2001년 신라호텔에서 출범한 통합 광장은 서로 부족했던 부분을 합쳐 만든 로펌이었다. ◆ 합치는 것보다 어려웠던 한 조직 만들기 합병은 변호사 숫자와 고객 명단을 더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사건을 가져온 변호사가 계속 사건을 쥐는 대신 업무 성격에 따라 전문부서가 맡도록 했다. 한미와 광장 출신 변호사 사이의 보수와 사건 배분도 운영위원회를 중심으로 정리했다. 출신 로펌에 따라 이해가 갈리지 않도록 공통의 기준을 만드는 일이 필요했다. 로펌 합병은 일반 기업의 합병과도 차이가 있다. 공장이나 설비보다 사람이 자산인 조직이다. 이름난 변호사가 빠져나가면 사건과 고객도 함께 이동할 수 있다. 합병 뒤 인사와 보수, 사건 배분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통합의 성패가 갈린다. 광장은 1999년 한미에서 도입했던 운영위원회 제도를 통합 법인의 경영체제로 이어갔다. 설립자나 대표변호사 한 사람에게 인사와 사건 배분이 몰리지 않도록 하는 방식이었다. 기업자문 중심의 한미와 송무 중심의 광장이 갖고 있던 조직문화도 운영위원회를 중심으로 맞춰갔다. 2001년 합병은 부족한 업무 분야를 보완했지만 두 조직을 실제로 하나로 만드는 일은 그 뒤에 시작됐다. 광장이 종합로펌으로 자리 잡는 과정에는 합병 자체보다 합병 이후의 조직 통합이 더 긴 시간을 차지했다. ◆ 창업자가 지분을 후배에게 넘겼다 세대교체에서도 광장만의 선택이 있었다. 이태희 변호사를 비롯한 1세대 변호사들은 퇴임하면서 로펌 지분을 남겨두지 않았다. 이 변호사는 2009년 물러나면서 자신이 보유한 지분을 후배들에게 넘기고 경영에서도 손을 뗐다. 설립자가 지분과 경영권을 계속 쥐는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 이런 선택은 후배 변호사들의 경영 참여로 이어졌다. 어쏘시에이트로 입사한 변호사가 파트너를 거쳐 경영대표까지 올라갈 수 있는 조직이 만들어졌다. 현재 경영을 총괄하는 김상곤 대표변호사 역시 광장에서 경력을 쌓아온 내부 인사다. 개인 사무소에서 출발한 조직이 세대를 거치면서 구성원 중심의 로펌으로 바뀌었다. 2001년 합병이 20년 넘게 유지될 수 있었던 배경에도 이런 세대교체가 자리하고 있다. 합병계약은 한 번으로 끝났지만 한미와 광장 출신이 따로 움직이지 않게 만드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창업자의 지분 정리와 운영위원회 중심 경영은 통합을 굳히는 장치가 됐다. 결국 광장은 업무만 합친 것이 아니었다. 기업자문과 송무를 합친 뒤 사람과 지분, 경영방식까지 하나의 조직 안에 다시 배치했다. ◆ M&A와 송무, 지금도 광장의 두 축 합병 당시 두 로펌이 들고 온 강점은 지금도 광장의 주요 업무로 남아 있다. 체임버스앤파트너스는 2026년 광장의 기업·M&A와 금융, 자본시장, 공정거래 분야 등을 국내 상위권으로 평가했다. 기업·M&A와 공정거래는 국내 ‘Band 1’에 올랐다. 송무 분야에도 약 150명의 변호사가 참여하고 있으며 전직 대법관과 법관 출신 인력도 다수 포함돼 있다. 최근 실적에서도 M&A의 비중은 크다. 광장은 2025년 SK스페셜티 매각과 아워홈 인수, SK그룹 리밸런싱 거래 등에 참여했다. 프랑스 에어리퀴드의 4조6000억원 규모 DIG에어가스 인수도 자문했다. 2025년 광장의 M&A 분야 매출은 전년보다 30% 이상 늘었다. 2026년 상반기 블룸버그 집계에서도 광장은 국내 M&A 법률자문에서 47건, 42억1600만달러를 기록했다. 거래금액과 건수 모두 김앤장에 이어 2위였다. 1970년대 한미가 시작한 기업자문과 금융 업무가 반세기 가까이 지난 지금도 광장의 주요 수익원으로 이어지고 있다. 송무와 형사 분야에서도 인력을 늘리고 있다. 최근에는 법원장과 형사재판장, 영장전담판사 출신 변호사를 잇달아 영입했다.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의 SM엔터테인먼트 시세조종 혐의 사건 1심에서도 변호인단으로 참여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옛 광장이 들고 온 송무 역시 통합 법인의 한 축을 맡고 있다. ◆ 익숙했던 2위 자리에도 경쟁 붙었다 광장의 앞길이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2025년 매출은 4309억원으로 전년 4111억원보다 4.82% 늘었다. 외형은 커졌지만 경쟁 로펌의 성장 속도가 더 빨랐다. 태평양이 4402억원, 세종이 4363억원을 기록하면서 광장은 두 로펌에 뒤졌다. 오랫동안 김앤장 다음 자리를 놓고 경쟁했던 광장에도 새로운 경쟁 구도가 만들어졌다. 매출 규모뿐 아니라 M&A와 금융, 송무 등 주력 분야에서 대형 로펌 간 인재 영입 경쟁도 거세지고 있다. 기업 고객이 로펌을 고르는 기준도 전문성과 서비스, 비용까지 세분화되고 있다. 한국경제와 한국사내변호사회가 실시한 2025년 조사에서 광장은 종합과 전문성, 서비스 평가에서 각각 5위를 기록했다. M&A·IPO는 4위, 민사·송무와 형사·수사기관 대응도 5위였다. 오랜 업력과 규모만으로 경쟁 로펌을 앞서기 어려워진 시장이다. 반면 2026년 상반기 M&A 실적은 다시 2위로 올라섰다. 공정거래와 자본시장, 국제통상에서도 국제 평가기관의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한미에서 이어진 기업자문과 옛 광장의 송무를 지금의 시장에 맞게 얼마나 다시 키우느냐가 광장이 풀어야 할 문제다. ◆ 부족한 곳을 합쳐 만든 광장 광장에는 지금도 두 로펌의 흔적이 이름으로 남아 있다. 한국에서는 ‘광장’이고 해외에서는 ‘Lee & Ko’다. 하나는 송무로 성장한 로펌에서 가져왔고 다른 하나는 1977년 기업자문으로 출발한 한미에서 이어졌다. 2001년 합병 때 어느 한쪽의 이름을 지우지 않았다. 이름만 나눠 가진 것도 아니다. 한미는 기업자문과 금융, 국제업무를 가져왔고 광장은 송무 경험을 보탰다. 합병 뒤에는 사건 배분과 보수 체계를 맞췄고 창업자들이 물러나면서 지분과 경영권도 후배들에게 넘겼다. 광장은 처음부터 모든 분야를 잘했던 로펌이 아니었다. 기업자문에 강했던 조직은 송무가 부족했고 송무에 강했던 조직은 기업자문이 부족했다. 두 로펌은 상대의 강점을 자기 조직 안으로 가져오는 방법을 택했다. 2001년 신라호텔에서 시작한 합병은 25년이 지나 광장의 기업자문과 송무라는 두 축으로 남았다. 부족한 분야를 처음부터 새로 만드는 대신 이미 잘하는 조직과 합쳤다. 광장이 종합로펌으로 커진 출발점이었다.
2026-09-09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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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펌 명가 ①] 외국계 은행 자문에서 국내 최대 로펌까지…김앤장 53년
김앤장은 법정이 아니라 기업의 계약서에서 출발했다. 1973년 김영무·장수길 변호사가 문을 연 김·장 법률사무소의 초기 고객은 한국에 진출한 외국계 은행이었다. 국내 은행과 기업이 해외에서 자금을 빌릴 때 계약서를 검토하고 외국 기업의 국내 투자를 자문했다. 변호사의 주된 무대가 법정이던 시절, 김앤장은 기업의 거래 현장으로 먼저 들어갔다. 53년이 지난 지금 김앤장은 국내 최대 로펌이다. 변호사만 1400명이 넘고 변호사를 포함한 법률전문가는 2000명을 웃돈다. 2025년 매출은 업계에서 1조6000억~1조7000억원 수준으로 추산한다. 2위권 대형 로펌과도 상당한 격차를 두고 있다. 처음부터 이런 규모였던 것은 아니다. 김앤장보다 먼저 기업법무 시장에 자리 잡은 법률사무소도 있었다. 김앤장이 선두로 치고 올라온 과정에는 한국 기업이 다음에 필요로 할 법률서비스를 먼저 준비하는 방식이 있었다. ◆ 판·검사 대신 기업법무 택한 김영무 창업자 김영무 변호사의 이력부터 당시 법조계의 통상적인 경로와 달랐다. 1964년 제2회 사법시험에 합격했지만 판사나 검사가 되지 않았다. 서울대 사법대학원을 거쳐 미국으로 건너가 시카고대 로스쿨에서 비교법을 공부했고 하버드 로스쿨에서 J.D. 학위를 받았다. 1970년에는 미국 일리노이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1970년대 한국 기업들은 해외 자본을 끌어들이며 빠르게 성장했다. 차관을 들여오고 외국 회사와 합작법인을 세우면서 계약도 복잡해졌다. 국내법뿐 아니라 외국법과 국제거래에 익숙한 변호사가 필요해지기 시작했다. 김영무 변호사는 이 시장을 파고들었다. 법정에서 이미 벌어진 분쟁을 해결하는 것보다 기업이 거래를 하기 전 계약을 짜고 위험을 줄이는 업무에 무게를 뒀다. 지금은 흔한 기업법무지만 당시에는 새로운 시장이었다. 장수길 변호사의 합류는 김앤장의 빈 곳을 채웠다. 장 변호사는 고등고시를 거쳐 서울민사지법과 서울형사지법원 판사를 지냈다. 김영무 변호사가 국제거래와 기업자문을 맡았다면 장 변호사는 송무와 중재, 지식재산권을 담당했다. 김앤장이라는 이름은 두 사람의 성에서 따왔다. ◆ 기업이 해외로 나가자 로펌도 따라갔다 김앤장의 성장은 한국 기업의 해외 진출과 궤를 같이했다. 1970~1980년대 해외 차관과 외국인 투자가 늘면서 국제금융과 외국인투자 업무가 커졌다. 기업들이 합작회사를 만들고 해외 자본을 끌어들이면서 김앤장이 일찍 쌓은 국제거래 경험을 찾는 기업도 늘었다. 1976년 합류한 정계성 변호사는 금융 분야를 맡았다. 공기업과 기업의 해외 차입, 국제자본시장 업무를 담당했고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때 기업의 외자유치와 금융거래를 자문했다. 1980년 입사한 정경택 변호사는 외국인 투자와 M&A, 공정거래 분야를 키웠다. 1983년 GM과 대우자동차의 합작투자, 1991년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의 쌍용정유 지분 인수, 1997년 미국 P&G의 쌍용제지 인수 등 국내 기업법무 시장의 굵직한 거래에 참여했다. 기업의 거래 방식이 바뀔 때마다 김앤장의 조직도 달라졌다. 기업들이 해외에서 돈을 빌리자 금융 전문가가 늘었고 외국 기업의 국내 진출이 많아지자 외국인투자 분야를 키웠다. M&A가 활발해지자 기업거래 변호사를 늘렸고 공정거래 규제가 강화되자 경쟁법 전문가를 붙였다. 김앤장이 몸집을 키운 과정은 변호사를 무작정 늘린 역사와는 거리가 있다. 시장이 먼저 움직였고 그 시장에 맞춰 사람을 채웠다. ◆ 유명 변호사 한 명보다 팀으로 승부 김앤장의 또 다른 특징은 사건을 맡는 방식이다. 대형 사건을 이름난 변호사 한 명에게 맡기기보다 사건 성격에 따라 여러 분야의 전문가를 한 팀으로 묶는다. M&A 사건이라면 기업법무 변호사뿐 아니라 공정거래와 금융, 조세, 노무 전문가가 함께 들어간다. 규제가 걸린 산업에서는 해당 부처나 감독기관을 경험한 전문가도 참여한다. 현재 김앤장 공정거래 분야에는 국내외 변호사와 경제학자, 산업 전문가, 전직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 등 150명 넘는 전문인력이 참여하고 있다. 자본시장 분야에도 80명 이상의 전문가가 포진해 있다. 기업 입장에서 대형 로펌을 찾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수천억원, 수조원이 오가는 거래나 회사의 존립이 걸린 사건에서는 법률 하나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공정거래와 세금, 노동, 인허가 문제가 동시에 터진다. 김앤장은 이를 한 조직 안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인력을 만들어왔다. 젊은 변호사를 키우는 방식에도 일찍부터 해외 경험을 넣었다. 파트너와 후배 변호사가 함께 사건을 맡게 하고 해외 로펌 연수도 활용했다. 정계성 대표도 1982~1983년 미국 뉴욕 셔먼앤드스털링에서 실무를 익혔다. 사건을 맡아 경험을 쌓고 해외에서 새로운 거래 방식을 익힌 변호사들이 돌아와 다시 큰 사건을 맡았다. 이 과정이 수십 년 반복되면서 분야별 전문인력이 쌓였다. ◆ 외환위기, 김앤장이 한 단계 커진 시기 1997년 외환위기는 한국 기업의 지형을 뒤흔들었다. 기업들이 자산을 팔고 외국 자본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부실기업 구조조정과 기업 매각, 외자유치가 한꺼번에 쏟아졌다. 해외 자본과 국내 기업 사이에서 거래 조건을 만들고 정부 규제를 검토할 법률전문가의 역할도 커졌다. 김앤장은 외환위기 이전부터 국제금융과 외국인투자 업무를 다뤄왔다. 국내 기업들이 급하게 해외 자본을 찾기 시작했을 때 이미 관련 업무를 해본 변호사들이 있었다. 외환위기 이후 국내 M&A 시장이 커지면서 김앤장의 업무도 금융과 외국인투자에서 M&A, 공정거래, 조세, 구조조정으로 빠르게 넓어졌다. 김앤장 연혁에는 이 무렵 국내 로펌 가운데 처음으로 변호사 수가 100명을 넘어섰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대형 거래를 맡으면서 경험이 쌓였고 그 경험을 보고 또 다른 기업이 찾아왔다. 새로운 사건이 들어오면 다시 전문인력을 늘렸다. 김앤장이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국내 기업법무 시장의 선두로 올라선 배경이다. ◆ 계약서에서 시작해 기업 형사사건까지 반세기가 흐른 지금 김앤장이 맡는 사건의 규모는 달라졌다.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과정에서는 14개국 경쟁당국의 기업결합 심사가 필요했다. 김앤장은 4년여에 걸친 기업결합 심사와 항공 관련 인허가 자문에 참여했다. SK하이닉스의 인텔 낸드플래시 사업 인수와 삼성바이오로직스 인적분할, 한앤컴퍼니의 SK스페셜티 인수 등 조 단위 거래에도 이름을 올렸다. 2026년 상반기 국내 M&A 법률자문 시장에서는 자문금액 26조3406억원, 68건으로 1위를 기록했다. 금액 기준 시장점유율은 33.27%였다. 기업자문에서 출발했지만 송무와 기업형사 분야에서도 대형 사건을 맡는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해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형사재판에 참여해 1·2·3심 무죄 판결을 받았다. SK실트론 사건에서는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 처분을 취소하는 대법원 판결을 이끌어냈다. 승소 기록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구글과 메타가 개인정보보호위원회를 상대로 낸 과징금 취소소송에서는 청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973년 외국계 은행의 계약서를 검토하던 법률사무소의 업무는 이제 M&A와 공정거래, 국제중재, 개인정보, 기업형사로 넓어졌다. 기업이 겪는 문제가 복잡해지면서 로펌이 다루는 영역도 함께 넓어진 것이다. ◆ 커진 영향력, 커진 감시 국내 최대 로펌이라는 자리는 사건만 많이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기업이나 기업인이 정부 조사와 형사사건에 직면하면 김앤장을 찾는 경우가 많다. 법원과 검찰, 정부 부처와 규제기관 출신 전문가도 적지 않다. 김앤장의 사건 대응력이 높아지는 만큼 전관과 이해충돌을 둘러싼 논란도 따라붙는다. 2025년 공정거래위원회 직원의 외부인 접촉 보고 가운데 김앤장 관련 보고는 로펌 중 가장 많은 363건이었다. 접촉 보고는 사건 관계인과의 만남 자체를 기록하는 제도여서 이 숫자가 곧 부적절한 접촉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규제기관 출신 인력을 대거 보유한 로펌이 해당 기관의 규제를 받는 기업을 대리하는 문제는 늘 감시 대상이 된다. 김앤장이 커질수록 사건 수임 못지않게 이해충돌 관리와 전관 논란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도 중요해졌다. 고객 평가 역시 전문성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한국경제와 한국사내변호사회가 실시한 2025년 조사에서 김앤장은 종합평가와 전문성 부문에서 1위에 올랐다. 서비스 평가는 3위였고 소송비용의 합리성은 6위였다. 복잡한 사건에 여러 분야의 전문인력을 투입하는 방식은 강점이지만 비용이 높다는 평가도 피하기 어렵다. 압도적인 규모가 항상 고객 만족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 시장이 열리기 전에 사람을 준비했다 김앤장의 53년을 보면 몇 번의 중요한 갈림길이 있었다. 기업이 해외에서 돈을 빌리기 시작할 때 국제금융을 키웠고 외국 자본이 국내로 들어올 때 외국인투자 업무를 늘렸다. 기업 인수·합병이 본격화되기 전에 M&A 전문가를 확보했고 공정거래 규제가 강해지자 경쟁법 인력을 늘렸다. 지금은 AI와 데이터, 공급망, 경제안보, 글로벌 통상, 기업지배구조가 기업법무의 새로운 시장으로 들어오고 있다. 김앤장도 이 분야에 전문조직과 인력을 늘리고 있다. 김앤장이 53년 동안 한 선택을 한 문장으로 줄이면 복잡하지 않다. 기업이 법률 문제에 부딪힌 뒤 변호사를 찾았다면 김앤장은 그보다 먼저 그 문제를 다룰 사람을 준비했다. 1973년 외국계 은행의 계약서에서 시작한 김앤장이 국내 최대 로펌으로 성장한 데에는 그 시간차가 있었다.
2026-09-08 08:3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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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보니 '건물주'…미성년 3233명, 임대소득 556억
태어난 지 두 해도 되지 않은 0~1세 영아 9명이 2024년 부동산 임대소득을 신고했다. 이들이 한 해 동안 신고한 임대소득은 1인당 평균 1470만원이었다. 두 살은 15명, 세 살 33명, 네 살 51명, 다섯 살은 71명이었다. 학교에 입학하기 전인 0~5세 가운데 179명이 부동산에서 임대소득을 얻은 것으로 나타났다. 7일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 소속 문진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세청에서 제출받은 ‘연도별 미성년자 부동산 임대소득 현황’에 따르면 2024년 18세 이하 미성년자 3233명이 총 555억8400만원의 부동산 임대소득을 신고했다. 1명당 평균 1720만원이다. 연령별 평균 임대소득을 보면 2세는 1230만원, 3세 1840만원, 4세 1470만원, 5세 1500만원이었다. 0~5세 미성년자 가운데서도 적지 않은 인원이 취학 전부터 부동산 임대소득을 올리고 있는 셈이다. 말 그대로 ‘태어나보니 건물주’인 경우도 있는 셈이지만 신고자료가 반드시 건물 한 채의 단독 소유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상가나 주택 등 임대용 부동산의 전부 또는 일부를 소유하면서 임대소득이 발생한 경우도 포함될 수 있다. 미성년자의 부동산 임대소득은 최근 몇 년간 비슷한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2020년부터 2024년까지 매년 3000명 이상이 임대소득을 신고했고 1인당 연평균 소득도 1700만원 안팎을 기록했다. 2023년에는 미성년자 3313명이 593억7000만원의 부동산 임대소득을 올렸다. 2024년에는 인원과 금액 모두 전년보다 줄었지만 미성년 임대소득자는 여전히 3000명을 웃돌았다. 취학 전 아동만 보면 감소세가 나타났다. 0~5세 임대소득자는 2020년 252명에서 2021년 238명, 2022년 250명, 2023년 217명으로 움직이다 2024년 179명으로 줄었다. 미성년자가 부동산 임대소득을 얻는 배경에는 부모나 조부모로부터의 상속·증여가 상당 부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된다. 경제활동을 하기 어려운 연령대에서 부동산을 직접 취득할 자금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국세청 자료에서도 미성년 세대로 부동산이 이전되는 흐름은 확인된다.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조부모가 부모 세대를 건너뛰고 미성년 손주에게 직접 증여한 부동산은 9299건, 1조5371억원에 달했다. 2024년 기준 세대생략 증여를 받은 미성년자 가운데 0~6세가 받은 부동산 증여액 비중은 22.8%였다. 돌이 지나지 않은 0세에게 이뤄진 세대생략 부동산 증여도 최근 5년 동안 188건으로 집계됐다. 부동산을 증여하면 재산 이전은 소유권 이전에서 끝나지 않을 수 있다. 증여받은 상가나 주택에서 월세 등 임대수익이 발생하면 해당 부동산은 미성년자 명의의 소득원으로도 기능한다. 상속이나 증여를 통해 미성년자가 부동산을 보유하고 임대소득을 올리는 것 자체는 불법이 아니다. 관련 세금을 신고·납부하고 실제 소유권이 이전됐다면 연령을 이유로 부동산 보유나 임대소득 발생이 제한되지는 않는다. 과세당국이 확인하는 부분은 재산을 취득한 과정과 자금출처다. 미성년자가 고액의 부동산을 취득했는데 증여 신고가 없거나 신고 내용과 실제 자금 흐름이 다르면 증여세 탈루 여부가 문제가 될 수 있다. 조부모가 자녀를 거치지 않고 손주에게 직접 재산을 넘기는 세대생략 증여 역시 세법상 허용된다. 다만 세대를 건너뛰면서 세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만큼 일정 요건에서는 증여세를 할증하는 규정이 적용된다. 문 의원은 미성년자의 부동산 임대소득이 조기 상속·증여와 관련이 있다고 보고 과세당국의 점검 필요성을 제기했다. 미성년자 명의 부동산의 자금출처와 변칙적인 상속·증여가 있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는 취지다. 2024년 취학 전 임대소득자는 4년 전보다 줄었다. 다만 경제활동을 시작하기 전부터 부동산을 보유하고 임대소득을 얻는 미성년자는 5년째 3000명대를 유지하고 있다. 미성년자에 대한 부동산 증여가 임대소득으로 연결되면서 세대 간 자산 이전도 단순한 소유권 이전을 넘어 수익자산을 조기에 넘기는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2026-09-07 15: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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