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기사
-
-
-
-
-
-
주택에 20조 쓰자는 與…어디에 얼마 써 몇 채 짓나
정부의 8·13 주택 공급 대책 이후 여당에서 추가 재정을 투입해 공공주택 공급을 더 늘리자는 제안이 나왔다. 추가 세수 가운데 10조~20조원을 주거 안정에 쓰고 용산공원 일부에는 청년 임대주택을 공급하자는 구상도 거론됐다. 정부 대책보다 한발 더 나간 공급 방안을 주문한 것이다. 서울처럼 새 택지를 찾기 어려운 지역에서 공공이 가진 땅과 재정을 적극 활용하자는 취지다. 다만 20조원을 어느 사업에 얼마씩 투입할지, 용산에 주택을 몇 채 지을지, 언제 입주가 가능한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정부가 13일 발표한 주택 신속공급 방안에는 수도권에 23만호 이상을 추가 공급하는 내용이 담겼다. 신규 공공주택지구와 공공택지, 도심 유휴부지, 비아파트 등을 활용한다. 국토교통부는 기존 공급 계획과 겹치지 않는 추가 물량이라고 설명했다. 여당에서는 여기에 재정 투입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서울 지역 국회의원·시의원 간담회 뒤 추가 세수 가운데 10조~20조원을 주거 안정에 사용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공공주택과 주거복지에 정부 재정을 더 넣자는 제안이다. ◆ 20조원 어디에 쓸지는 아직 안 정해져 20조원이라는 금액만으로 공급 효과를 계산하기는 어렵다. 돈을 어디에 쓰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공공주택을 직접 짓는 데 사용할 수도 있고 토지를 확보하거나 사업비를 지원하는 데 넣을 수도 있다. 청년과 신혼부부의 월세나 전세대출 부담을 낮추는 주거복지에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각각 효과가 다르다. 공공주택 건설에 재정을 넣으면 주택 수를 늘릴 수 있지만 부지 확보와 인허가, 공사를 거쳐야 한다. 주거비 지원은 상대적으로 빠르게 체감할 수 있지만 시장에 새 주택을 추가하는 정책은 아니다. 현재 10조~20조원 투입안은 구체적인 예산 사업으로 확정된 단계가 아니다. 사업별 배분액이나 추가 공급 물량도 나오지 않았다. 얼마를 쓰느냐보다 어디에 써서 어떤 효과를 내겠다는 것인지가 먼저 정리돼야 한다. 공공주택에 돈을 넣더라도 예산 투입과 입주는 동시에 이뤄지지 않는다. 부지를 정하고 사업계획을 세운 뒤 인허가와 착공, 공사를 거쳐야 한다. 택지를 새로 조성하는 곳에서는 토지 보상과 기반시설 설치도 필요하다. ◆ 용산공원 카드도 넘어야 할 절차 많아 용산공원 활용 방안도 아직 구상 단계에 가깝다. 여권에서는 공원 대부분을 유지하면서 어린이정원과 미군 장교숙소 등 일부 공간에 청년·신혼부부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시장에서는 최대 2만호 안팎을 공급할 수 있다는 추산도 나온다. 정부가 확정한 공급량은 아니다. 대상 부지의 면적과 용적률, 주택 크기를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실제 물량은 달라진다. 법적 문제도 있다. 현행 용산공원 조성 특별법은 미군기지 본체 부지를 공원으로 조성하도록 정하고 있다. 해당 부지에 주택을 짓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요한 경우가 생길 수 있다. 토양 오염 문제도 사업 일정과 비용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용산 일대는 오랫동안 미군기지로 사용됐고 일부 반환 부지에서 토양 오염이 확인됐다. 주택을 짓기 전에 어느 범위까지 정화할지와 비용을 어떻게 부담할지도 따져야 한다. 서울시는 용산공원 개발에 부정적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서울 도심의 대규모 녹지를 주택 공급 부지로 사용하는 데 반대하면서 재건축·재개발 규제를 추가로 풀어 공급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여당과 서울시 모두 주택 공급 확대 필요성에는 같은 입장이지만 공급 수단에서는 차이가 있다. 정부·여당은 공공부지와 재정 투입을 강조하고 서울시는 민간 정비사업의 속도를 높이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 예산보다 먼저 나와야 할 공급 일정 추가 재정을 투입하면 공공주택 사업의 자금 조달 부담을 낮출 수 있다. 서울 도심의 국공유지를 활용하면 민간 토지를 새로 사들이는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반대로 재원이 확보됐다고 곧바로 공급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주택을 지을 부지와 사업자가 정해져야 하고 인허가와 공사를 거쳐야 한다. 용산공원처럼 법 개정과 토양 정화, 지방자치단체와의 협의까지 필요한 부지는 절차가 더 길어질 수 있다. 정부가 발표한 수도권 23만호 공급과 여당이 제안한 20조원 투입도 구분해야 한다. 20조원을 추가로 쓸 경우 기존 23만호 외에 몇 채가 더 공급되는지, 기존 사업을 앞당기는 데 쓰는지, 주거비 지원에 사용하는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공급 정책은 발표한 예산과 물량만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예산을 확보한 시점, 착공한 시점, 준공한 시점, 입주가 시작된 시점은 모두 다르다. 실제 주택시장의 공급 부족을 완화하는 시점은 사람이 들어가 살 수 있는 집이 나왔을 때다. 여당이 제안한 20조원 투입과 용산공원 활용은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추가 공급 수단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큰 숫자를 하나 더 제시하는 일이 아니다. 20조원 가운데 얼마를 주택 건설에 쓸지, 어느 지역에 몇 채를 지을지, 착공과 입주를 언제 시작할지까지 나와야 공급 대책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
2026-08-20 09:33:51
-
-
"요양원부터 오피스까지"…LG유플러스, AI로 공간관리 시장 정조준
초고령사회 진입으로 요양·돌봄시설의 체계적인 건강관리와 운영 효율화에 대한 수요가 커지는 가운데 LG유플러스가 인공지능(AI)을 활용한 건물 관리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 첫 적용 무대는 시니어 케어시설로 입주자의 건강 데이터부터 건물 내 출입·공간 이용 정보까지 각종 데이터를 한데 모아 AI로 분석하고, 이를 시설 운영에 활용하는 방식이다. 20일 LG유플러스는 AI와 유무선 통신 기술을 결합한 통합 건물 관리 솔루션 'AI빌딩넷 by ixi'를 출시했다고 밝혔다. 건물 안에 설치된 센서와 폐쇄회로(CCTV), 로봇 등 다양한 사물인터넷(IoT) 기기를 통신망으로 연결하고 데이터를 통합·수집한 뒤 AI로 분석하는 것이 특징이다. 첫 번째 적용 서비스로는 시니어 케어시설 전용 솔루션 '웰니스노트'를 선보인다. 건강 모니터링 센서 등 돌봄 IoT 기기를 통해 수집한 정보를 AI가 실시간으로 분석해 입주자의 건강 상태와 생활 패턴 변화를 파악하고, 이상 징후를 보다 빠르게 확인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현재 신한라이프케어의 프리미엄 요양원 '쏠라체 홈 미사'에서 시범 운영하고 있다. LG유플러스는 다양한 건강 데이터를 통합해 입주자별 상태 변화를 지속적으로 확인할 수 있고, 이를 기반으로 맞춤형 건강관리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해당 AI는 건강 모니터링뿐만 아니라 시설 관리자가 전용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입주자별 업무 할당 현황과 업무 완료 여부, 인수인계 사항 등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돌봄 종사자들의 기록·보고 업무도 자동화해 반복 업무를 줄이고 표준화된 업무 프로세스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구성됐다. LG유플러스가 AI빌딩넷을 통해 궁극적으로 노리는 영역은 요양시설 하나에 국한되지 않는다. 건물 안에서 발생하는 각종 데이터를 하나의 플랫폼으로 묶어 건물 자체를 AI로 관리하는 하나의 공간 사업으로 확대하겠다는 구상이다. 예를 들어 출입 시스템과 위치 인식 센서를 연계하면 공간별 이용 현황과 혼잡도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출입 인원을 조정하거나 비인가 출입과 이상 체류 등을 감지하는 등 건물 안전·보안 관리에도 활용할 수 있다. 공간 관리에도 AI를 적용한다. 건물 내 통신망과 업무 시스템, IoT 기기에서 확보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공간별 체류 패턴과 시설 가동 현황을 분석하고, 실제 이용량에 맞춰 조명과 냉난방 공조 설비를 제어하는 방식이다. 회의실이나 공용시설의 혼잡도를 이용자에게 제공하는 것도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소와 시설 점검 등 관리 인력 운영에도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다. 사람이 정해진 시간마다 일률적으로 시설을 점검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실제 공간 이용량과 시설 상태를 바탕으로 관리 인력을 배치하는 방식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LG유플러스 AI빌딩넷은 각각 따로 움직이던 건물 내 센서와 CCTV, 출입 시스템, 업무 시스템, 로봇 등을 연결하는 플랫폼으로 평가된다. 앞서 확보한 AI 분석 기술을 결합해 건물 운영 자체를 지원하는 사업으로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LG유플러스는 향후 AI빌딩넷과 연동할 수 있는 IoT 기기와 외부 서비스를 확대하고 적용 영역도 넓힐 예정이다. 시니어 케어시설을 시작으로 레지던스, 오피스, 상업시설 등으로 적용 범위를 확대해 'AI 기반 공간 플랫폼' 사업을 본격화한다는 방침이다. 주엄개 LG유플러스 유선사업담당 상무는 "AI빌딩넷 by ixi를 통해 케어·안전·공간 솔루션을 단계적으로 제공하며, 통신망부터 플랫폼, 디바이스, 운영 서비스를 통합 제공할 수 있는 전문 파트너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며 "앞으로도 다양한 공간의 운영 혁신을 지원하는 AI 서비스로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
2026-08-20 09:25:53
-
-
[경제일보] LS전선 구본규 리더십…'초고압·해저케이블' 날개 달고 2030년 매출 10조 목표
LS전선이 일반 전선 중심 사업에서 초고압·HVDC·해저케이블 등 고부가 전력 인프라 사업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구본규 대표는 기존 전선 사업에서 축적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대형 전력망 프로젝트 수주와 해외 생산거점 확대에 힘을 싣고 있다. AI 데이터센터 확산과 재생에너지 발전 확대에 따라 전력망 투자 수요가 커지면서 북미를 중심으로 사업 기회도 늘고 있다. LS전선은 국내외 생산능력 확대와 해외 거점 확보를 통해 수주 기반을 넓히고 있지만, 대규모 선행 투자로 높아진 부채 부담과 수익성 관리는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았다. 초고압·HVDC 기술력 확보…대형 전력망 수주로 연결 LS전선은 전력·통신 케이블을 생산하며 국내 전선 시장에서 사업 기반을 확대해왔다. 이후 일반 전력케이블에서 초고압케이블로 기술 영역을 넓혔고, 장거리·대용량 송전에 적합한 HVDC 케이블까지 사업 범위를 확장했다. LS전선은 지난 2007년 세계에서 네 번째로 HVDC 케이블 개발에 성공하며 관련 사업에 본격적으로 진입했다. 구본규 대표가 LS전선의 경영 전면에 선 이후에는 이 같은 기술력을 해저케이블과 글로벌 전력 인프라 사업 확대로 연결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구 대표는 2024년 대표 취임 이후 해저케이블과 AI 데이터센터 전력 사업을 주요 성장 분야로 제시하고, 오는 2030년 매출 10조원 달성을 목표로 내걸었다. 해저케이블 생산능력 확대도 구 대표 체제에서 속도를 냈다. LS전선은 2024년 약 1000억원을 추가 투자해 동해 해저케이블 공장 5동 증설에 나섰고, 지난해 7월 준공했다. 이번 증설로 HVDC 해저케이블 생산능력은 기존 대비 4배 이상 확대됐다. LS전선은 해저케이블 제조와 시공을 연결하는 사업 구조도 강화했다. 구 대표는 2024년 LS마린솔루션 대표를 겸임하며 케이블 제조와 해상 시공 부문의 연계를 강화했다. LS마린솔루션의 해저케이블 포설 역량을 활용해 단순 케이블 공급을 넘어 프로젝트 수행 범위를 확대하는 방식이다. 현재 LS전선이 집중하는 분야는 초고압케이블과 HVDC, 해저케이블을 중심으로 한 전력 인프라다. AI 데이터센터 확대와 노후 전력망 교체가 진행되는 북미에서는 대규모 송전망 투자가 예상되는 만큼 고부가 케이블 수주를 확대할 여지가 커지고 있다. 사업 규모도 커지고 있다. LS전선의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은 7조5882억원, 영업이익은 2798억원으로 집계됐다. 2023년 매출 6조2171억원과 비교하면 2년 만에 외형이 약 22% 커졌다. 수주 기반도 확대됐다. 지난해 말 기준 수주잔액은 7조6300억원으로 전년 말보다 약 22% 증가하며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대형 전력망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수주 물량이 늘면서 향후 매출로 전환될 사업 기반도 확대되고 있다. 미국·아시아로 생산망 확대…높아진 재무 부담은 과제 LS전선은 국내에서 키운 고부가 전력케이블 사업을 해외 시장으로 확장하기 위해 현지 생산거점 확보에 나서고 있다. 미국에서는 버지니아주 체서피크시에 약 6억8100만달러를 투자해 해저케이블 공장 LS그린링크를 건설하고 있다. 공장은 2027년 하반기 완공, 2028년 1분기 상업 생산을 목표로 한다. 미국 내 생산기지를 확보해 현지 전력망과 해상풍력 프로젝트 수주에 대응하고 북미 시장에서 공급망 경쟁력을 높인다는 전략이다. 아시아 생산거점 확대도 추진하고 있다. LS전선과 LS에코에너지는 지난해 8월 베트남 국영 에너지기업 페트로베트남과 해저케이블 조인트벤처(JV) 설립을 위한 공동개발협약(JDA)을 체결했다. 양측은 베트남 서남부 푸미항에 해저케이블 공장과 전용 부두 건설을 검토하고 있으며, 인허가 절차와 투자 규모, 지분 구조 등을 협의하고 있다. 해외 생산거점 확대에는 상당한 자금이 필요하다. 해저케이블과 HVDC 사업은 대형 프로젝트 수주가 많은 만큼 생산설비와 관련 인프라를 확보해야 한다. 미국 공장 건설 등 해외 투자가 이어지면서 LS전선의 투자 부담도 커지고 있다. LS전선의 연결 기준 부채총계는 2021년 3조6915억원에서 작년 6조8467억원으로 85.5% 증가했다. 부채비율은 2024년 296.9%에서 2025년 317.5%로 높아졌으며, 올해 1분기 말에는 349.9%까지 상승했다. 총차입금도 작년 말 2조9666억원에서 올해 3월 말 3조6436억원으로 늘었다. 부채비율 상승에는 생산시설 투자에 따른 차입 증가 외에도 계약부채와 파생부채 증가 등이 영향을 미쳤다. LS전선이 대형 전력망 프로젝트를 수주하면서 받은 선수금이 계약부채로 반영됐고, 교환사채 발행 과정에서 발생한 파생부채와 전기동 가격·환율 변동에 따른 파생상품부채도 부채 규모에 영향을 줬다. 대규모 투자가 이어지는 만큼 재무 안정성을 관리하는 것도 과제로 남는다. 업계 관계자는 "해저케이블과 HVDC 사업은 대형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수주가 이뤄지는 만큼 생산설비 확대가 이어질 경우 자금 운용 부담이 추가로 커질 수 있다"며 "수주 규모를 확대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고부가 제품 비중을 높여 수익성을 개선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고 했다.
2026-08-20 09:15:14
-
[경제일보] 럭키크림서 배터리까지…'79년 전환 DNA' LG화학, 3대 엔진 가동
LG화학의 출발점은 거대한 석유화학 공장이 아니었다. 1947년 부산에서 만든 화장품 ‘럭키크림’이었다. 잘 팔리던 크림의 뚜껑이 쉽게 깨지자 창업주 구인회는 플라스틱에서 해법을 찾았다. 고객의 불편을 새로운 소재와 기술로 해결하려던 시도가 오늘날 LG화학으로 이어지는 시발점이 됐다. 락희화학공업사는 이후 플라스틱 빗과 비눗갑을 생산하며 소재기업으로 영역을 넓혔다. 생활용품을 팔던 회사가 제품을 구성하는 원료와 소재로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 같은 변화는 이후 79년 동안 되풀이됐다. 생활화학에서 플라스틱과 석유화학으로, 다시 전지와 정보전자소재·첨단소재·바이오로 주력 사업을 끊임없이 옮겼다. 석유화학 키우고, 배터리 준비한다 산업화가 본격화되면서 성장의 중심은 석유화학으로 이동했다. PVC와 ABS 등 합성수지 사업을 확대했고 여수 석유화학 단지를 중심으로 생산체계를 구축했다. 2000년대에는 LG대산유화와 LG석유화학을 잇달아 합병하며 석유화학의 수직계열화도 강화했다. 하지만 석유화학이 성장하는 동안 이미 다음 먹거리도 준비하고 있었다. LG화학은 1995년 2차전지 연구를 시작해 1997년 리튬이온전지 시제품을 만들었고, 1999년 국내 최초로 대량생산 체제를 구축했다. 외환위기로 상당수 기업이 투자를 접던 시기에도 연구를 이어간 결과였다. 이후 2009년에는 GM의 양산형 전기차 볼트에 배터리를 단독 공급하며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입지를 넓혔다. 배터리가 독자적인 대형 사업으로 성장하자 회사는 다시 구조를 바꿨다. 2020년 전지사업을 분할해 LG에너지솔루션을 출범시켰다. 완제품 배터리는 떨어져 나갔지만 LG화학은 양극재 등 핵심 소재를 남겼다. 2024년에는 GM과 2035년까지 50만톤 이상의 양극재를 공급하는 24조7000억원 규모 장기계약을 체결했다. 배터리를 직접 만드는 회사에서 배터리 성능을 좌우하는 소재를 공급하는 회사로 역할을 다시 바꾼 셈이다. 바이오도 새로운 축으로 편입했다. LG생명과학을 합병한 데 이어 2023년 미국 항암제 기업 AVEO를 인수하며 글로벌 항암 신약 시장으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석유화학에 뿌리를 두면서도 성장산업이 등장할 때마다 축적한 기술과 자본을 새로운 시장으로 옮겨온 것이다. ‘전환의 DNA’가 이끈 컨버팅 LG화학은 올해 이 같은 사업 방식을 ‘기술이 강한 컨버팅(Converting) 회사’라는 비전으로 구체화했다. 다만 회사가 말하는 컨버팅은 단순히 업종을 바꾸거나 기존 사업을 신사업으로 대체한다는 의미와는 다르다. LG화학 관계자는 “고객과 시장, 기술이 변화하는 영역에서 회사가 보유한 모든 기술과 역량을 결집해 사업을 가장 빠르게 변화시키는 활동”이라며 “단순한 소재 공급자를 넘어 고객의 제품 성능과 제조 공정까지 함께 설계하는 ‘통합 솔루션 기업’으로 진화하겠다는 의미”라고 했다. 이어 “오랜 시간 축적한 원천 기술과 공정 노하우, 제품 기획·설계 단계부터 고객과 함께 맞춤형 기술과 공정 솔루션을 제안하는 역량이 경쟁력”이라며 “축적된 기술을 새로운 산업과 시장으로 빠르게 연결하는 기반이 된다”고 덧붙였다. 과거 럭키크림의 깨지는 뚜껑을 플라스틱으로 해결했던 방식과 맞닿아 있다.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단순히 공급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문제를 기술로 해결한 뒤 그 기술을 새로운 시장으로 연결한다는 것이다. LG화학이 79년 동안 반복해 온 사업 방식에 ‘컨버팅’이라는 이름을 붙인 셈이다. LG화학 역시 공식적으로 컨버팅을 단순 사업 전환이 아닌 고객의 제품 성능과 제조 공정까지 함께 설계하는 전략으로 설명하고 있다. 석화의 LG에서 반도체·로봇·항암으로 다음 전환의 목적지도 구체화됐다. LG화학은 2035년까지 연구개발(R&D)에 15조원을 투입하고 이 가운데 70%를 반도체·인프라, 모빌리티·로봇, 항암 신약 등 3대 핵심 사업에 집중할 계획이다. 전통 화학사업 의존도를 낮추면서 기술 장벽과 성장성이 높은 사업으로 자원을 옮기겠다는 구상이다. 반도체·인프라에서는 AI 반도체 성장에 맞춰 첨단 패키징 소재를 집중 육성한다. 패키징용 접착제와 저유전·열관리 소재, 유리기판 등이 대상이다. 기존 PID·DAF·CCL 등 전자소재 경쟁력을 토대로 2030년 관련 사업을 매출 2조원 규모로 키우겠다는 목표다. 모빌리티는 전기차에서 로봇으로 영역을 넓힌다. 로봇 구조 소재와 정밀 구동·접합 소재를 개발하고 고객사와 공동개발을 통해 진입장벽을 높인다는 구상이다. 항암 신약에서는 글로벌 임상과 파트너십을 확대하는 동시에 기술이전과 인수합병(M&A)을 활용해 파이프라인의 사업화를 앞당긴다는 전략이다. 문제는 다음 사업을 키우는 동시에 회사를 성장시킨 석유화학의 체질도 바꿔야 한다는 점이다. 국내 석유화학 산업은 중국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증설과 수요 부진이 겹치면서 장기간 공급과잉에 시달리고 있다. 정부와 업계는 국내 NCC 생산능력을 연간 270만~370만톤, 전체의 최대 25%가량 줄이는 사업재편을 추진하고 있다. LG화학도 지난해 12월 정부에 석유화학 사업재편안을 제출했지만 세부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LG화학은 국내 최대 에틸렌·프로필렌 생산업체인 만큼 석유화학 구조조정의 한복판에 있다. 결국 범용제품의 규모 경쟁보다 자동차·전자·반도체 등 고객 산업과 밀착된 고부가 제품으로 얼마나 빠르게 이동하느냐가 향후 경쟁력을 가를 가능성이 크다. LG화학은 한 가지 사업을 79년간 지켜온 회사라기보다 기술을 들고 성장하는 산업으로 계속 이동해 온 회사에 가깝다. 화장품에서 출발한 플라스틱 기술은 석유화학으로 이어졌고, 화학과 소재 기술은 배터리와 전자소재로 뻗었다. 이제 그 끝은 AI 반도체와 로봇, 항암 신약을 향하고 있다. 과거의 성공이 다음 전환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발 석유화학 공급과잉과 전기차 시장 변화 속에서 기존 사업을 재편하는 동시에 새로운 사업의 수익성을 증명해야 한다. LG화학이 말하는 ‘컨버팅’의 진짜 시험대도 여기다. 79년간 회사를 키운 전환의 DNA가 또 한 번 LG화학의 주력 사업을 바꿀 수 있을지가 승부처다.
2026-08-20 09:12: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