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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다스의 손' 곽재선, KGM 흑자 이어 케이카도 살릴까…유통 확장 시험대
[경제일보] 곽재선 KG그룹 회장이 쌍용자동차 인수 이후 3년 만에 흑자 구조를 안착시키며 경영 성과를 입증했다. 최근 케이카 인수를 추진하며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는 가운데, 제조업에서 확인된 구조조정 성과가 유통 사업에서도 재현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1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KG모빌리티(KGM·구 쌍용자동차)는 2025년 별도 기준 매출 4조2433억원, 영업이익 536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대비 12.2% 증가하며 창사 이래 최대를 기록했고, 영업이익은 335.8% 늘어나며 수익 구조가 개선됐다. KG그룹의 쌍용차 인수 이후 3년 연속 흑자를 유지하는 흐름이다. 쌍용차는 인수 이전 이미 재무 구조가 크게 훼손된 상태였다. 2020년 매출 2조9502억원, 영업손실 4235억원, 당기순손실 4785억원을 기록한 데 이어 2021년에도 매출 2조4293억원, 영업손실 2962억원, 당기순손실 2929억원으로 적자가 지속됐다. 2022년에도 매출 3조4233억원, 영업손실 1120억원, 당기순손실 601억원을 기록하며 수익 구조 정상화에는 이르지 못했다. 재무 건전성도 취약했다. 2020년 말 기준 자본총계는 마이너스 881억원으로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진입했고, 2022년 상반기에도 자본총계 마이너스 1111억원 수준이 이어지며 부채가 자산을 상회하는 구조가 지속됐다. 유동성 위기는 2021년 4월 법원 회생절차로 이어졌고, 채무 재조정을 통해서만 경영 정상화가 가능한 상황이었다. 이후 KG그룹 편입을 계기로 비용 구조 조정과 생산 정상화가 병행되며 손익 체질이 빠르게 개선됐다. 고정비 부담 축소와 생산 효율 개선이 맞물리며 적자 구조에서 벗어났고, 스포츠유틸리티차(SUV) 중심 제품 믹스를 기반으로 판매 회복이 이어지면서 실적 반등이 가능해졌다. 반면 케이카는 비용 구조를 손보는 방식만으로 실적 개선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업 구조를 갖고 있다. 제조업과 달리 고정비 축소 여력이 제한적인 대신, 차량 가격과 재고 회전 속도에 따라 수익이 좌우되는 유통 중심 모델이기 때문이다. 쌍용차는 생산량과 고정비 구조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손익 개선 여지가 존재했지만, 케이카는 이미 직영 체계와 온라인 판매 구조가 정착된 상태다. 추가적인 비용 절감보다는 차량 매입·판매 가격 관리와 재고 운영 효율이 실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구조다. 또한 중고차 사업은 시장 가격 변동이 곧바로 손익에 반영되는 특성을 갖는다. 차량 가격이 하락할 경우 보유 재고의 평가손이 확대되고, 회전 속도가 늦어질수록 마진이 축소되는 구조다. 케이카는 지난해 매출 2조4388억원, 영업이익 760억원을 기록하며 연간 기준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매출은 전년 대비 6.0%, 영업이익은 11.5% 증가했다. 다만 분기 흐름에서는 수익성 둔화가 나타나고 있다. 작년 4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18.9% 감소했고, 중고차 시장 거래 규모 역시 감소세를 보였다. 이는 금리 부담과 소비 위축이 맞물리며 수요가 둔화됐고, 차량 가격 하락 압력이 확대되면서 재고 회전과 마진 구조에 부담이 발생한 상황으로 보인다. 케이카 인수 거래 종결 예정일은 6월 30일이다. 거래 완료 이후 곽 회장의 경영 개입이 본격화될 경우 전략 방향이 성과를 좌우할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비용 구조를 추가로 압축하는 방식보다는 사업 간 결합을 통한 수익 구조 확장 여부가 핵심 과제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KGM과 케이카를 결합할 경우 신차 판매 이후 중고차 유통까지 내재화하는 구조로 확장이 가능하다. 차량 판매 이후 회수·재판매까지 이어지는 구조가 형성될 경우 수익 창출 구간이 차량 생애주기 전반으로 확대된다. 완성차 제조사가 중고차 유통망을 확보할 경우 차량 가격 형성과 잔존가치 관리까지 직접 통제할 수 있다. 신차 판매 이후 발생하는 중고차 거래를 내부로 흡수하게 되면 차량 한 대당 수익 창출 구간이 확대되는 구조가 형성될 수 있다. 다만 중고차 시장 특유의 가격 변동성과 재고 리스크는 부담 요인이다. 차량 가격 하락 국면에서는 재고 평가손이 확대되고, 이는 실적 변동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유통 사업은 재고와 가격 관리 실패 시 손익 구조가 빠르게 악화될 수 있는 특성을 갖는다. 곽 회장의 경영 방식이 제조업에서 유통업으로 확장될 수 있는지 주목된다. 쌍용차에서는 비용 구조 개선을 중심으로 흑자 전환을 이끌었다면, 케이카에서는 데이터 기반 가격 관리와 회전율 개선을 통한 수익 구조 설계가 요구되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완성차 업체가 중고차 유통까지 내재화할 경우 가격 통제력과 수익 구조는 크게 달라질 수 있지만, 실제로는 조직·시스템 통합 과정에서 예상보다 시간이 걸릴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2026-04-16 16:5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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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론 머스크의 파괴적 혁신과 극기(克己)의 리더십
[경제일보] 현대 산업 지형에서 일론 머스크와 테슬라만큼 극단적인 찬사와 우려를 동시에 받는 존재는 드물다. 누군가는 그를 시대를 앞서가는 선구자라 추앙하고, 누군가는 위태로운 도박사라 평한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그가 자동차 산업의 질서를 바꾸고 인류의 시선을 지구 너머로 확장했다는 점이다. 그의 경영은 상품을 파는 행위가 아니라, 불가능이라는 관념을 무너뜨리는 하나의 전쟁에 가깝다. 이 전쟁의 출발점에는 의외로 ‘가정’이라는 가장 작은 공동체가 놓여 있다. 머스크는 이혼한 어머니 아래에서 남동생, 여동생과 함께 성장했다. 외형적 조건만 보면 불안정한 환경이었으나, 그 안에는 철저한 자기 통제와 학습, 그리고 독립적 사고를 중시하는 교육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자녀들에게 안락함보다 자립을, 의존보다 책임을 가르쳤다. 그 결과 세 남매는 각자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기업가, 투자자, 창작자라는 서로 다른 길을 걸었지만 공통점은 하나였다. 외부 환경이 아니라 스스로의 판단과 실행으로 길을 개척했다는 점이다. 경영자의 뿌리는 종종 시장이 아니라 가정에서 형성된다. 조직을 이끄는 힘은 결국 인간을 어떻게 길러냈는가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동양 최고의 군사 전략서인 손자병법은 “선승이후구전(先勝而後求戰)”이라 했다. 이겨 놓은 뒤에 싸운다는 뜻이다. 머스크의 테슬라는 바로 그 원리를 현실에서 구현했다. 전기차가 조롱받던 시절, 그는 단순한 차량이 아니라 에너지 생산과 저장, 소비를 아우르는 생태계를 먼저 설계했다. 충전 인프라와 배터리, 소프트웨어까지 수직 계열화한 구조는 경쟁자들이 따라올 수 없는 ‘승리의 조건’을 미리 만들어 놓은 셈이다. 그는 전쟁에 나가기 전에 이미 전장을 재편했다. 또한 손자는 “병귀신속(兵貴神速)”이라 했다. 전쟁에서 가장 귀한 것은 속도다. 테슬라의 경쟁력은 속도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그 속도는 단순한 빠름이 아니다. 그것은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하는 실행의 속도다. 여기서 머스크 리더십의 본질이 드러난다. 그는 관리자가 아니라 해결사다. 조직이 막힐 때, 회의를 늘리고 책임을 분산하는 대신 스스로 문제의 한가운데로 들어간다. 생산이 지연되면 공장 바닥에서 직접 공정을 점검하고, 기술이 막히면 엔지니어들과 밤을 새워 해결책을 찾는다. 그의 리더십은 지시가 아니라 개입이며, 통제가 아니라 돌파다. 현대 기업이 흔히 빠지는 함정은 문제를 구조로 숨기는 것이다. 보고 체계와 승인 절차 속에서 문제는 흐려지고 책임은 분산된다. 그러나 머스크는 그 반대의 길을 택한다. 문제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고, 그 해결을 조직의 최우선 과제로 만든다. 리더가 해결사가 될 때 조직은 멈추지 않는다. 리더가 관망자가 되는 순간 조직은 정체된다. 결국 리더십의 본질은 사람을 움직이는 기술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에 있다. 그의 집요함은 유교 경전 중용이 말하는 “지성무식(至誠無息)”과 맞닿아 있다. 지극한 정성은 쉬지 않는다는 뜻이다. 파산 직전의 공장에서 잠을 청하며 문제를 해결하던 그의 모습은 단순한 근면이 아니라, 스스로 설정한 사명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극기의 의지였다. 그 멈추지 않는 정성이 기가팩토리라는 불가능을 현실로 바꾸었다. 불가의 화엄경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한다.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든다는 뜻이다. 머스크는 ‘제1원리 사고’를 통해 산업의 전제를 해체했다. 배터리는 비쌀 수밖에 없다는 통념을 거부하고, 원자재 단위에서 다시 계산했다. 한계는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고의 틀 속에 있었다. 그는 그 틀을 부수는 데서 출발했다. 성경 히브리서는 말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 머스크의 경영에서 이 믿음은 단순한 신념이 아니다. 그것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미래를 현재로 끌어오는 힘이다. 화성 이주와 자율주행이라는 비전은 허상이 아니라, 확신이 만들어낸 실체였다. 시장과 자본은 결국 확신의 방향으로 흐른다. 그러나 도덕경은 “지자불언 언자부지(知者不言 言者不知)”라 경계한다. 그의 거침없는 언행과 독단은 때로 이 경계를 넘나든다. 위대한 혁신가의 빛이 강렬할수록, 그 그림자 또한 짙어지는 법이다. 오늘의 대한민국 경영 현장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는 승리의 구조를 먼저 설계하고 있는가. 우리는 문제 앞에서 멈추는가, 아니면 그 문제를 돌파하는가. 길이 없으면 찾아야 하고, 찾아도 없으면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길의 출발점은 거창한 전략이 아니라, 한 사람의 태도에서 시작된다. 가정에서 길러진 자립의 정신, 그리고 현장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리더의 결단이 조직의 운명을 가른다. 승리는 시장에서 얻어지는 결과가 아니라, 가정에서 길러지고 현장에서 완성된다.
2026-04-11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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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권력의 몰락 , 78년 체제의 붕괴
[경제일보] 올해 10월 2일, 1948년 정부 수립과 함께 출범한 검찰청이 78년 만에 간판을 내린다. 대통령을 구속하고 재벌 총수를 소환하며 전직 총리와 장관을 법정에 세웠던 조직이다. 권력의 실체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온 기관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수사권은 중대범죄수사청으로 넘어가고, 기소권은 공소청으로 분리된다. 권력을 만들어낸 것도 법이고, 이를 해체한 것도 법이다. 이번 변화는 조직 개편을 넘어선다. 형사사법 체계 전체의 중심축이 이동하고 있다. 이 흐름은 거꾸로 짚어야 또렷하게 보인다. 한국 검찰은 수사와 기소를 동시에 쥔 드문 체계를 유지해왔다. 사건을 직접 인지해 수사를 시작하고, 기소 여부를 단독으로 판단하며, 공소를 유지하는 전 과정을 장악했다. 경찰이 처리한 사건도 전건 검찰로 넘어갔고, 검사는 그 위에서 지휘권을 행사했다. 이 체계에서는 검찰의 판단 없이는 누구도 법정에 서기 어려웠다. 특수부 검사의 위상은 이 권한 집중에서 비롯됐다.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는 존재만으로 기업을 긴장시키는 조직이었다. 검찰 고위직 출신 변호사의 수임료는 시장의 일반 기준을 벗어났고, 퇴직 직후 특정 사건이 따라 움직이는 관행도 낯설지 않았다. 수사권과 기소권의 결합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변화는 짧은 시간에 이어졌다. 2021년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 개정으로 경찰이 1차 수사권과 종결권을 확보했다. 검사의 수사 지휘권은 사라졌고, 경찰은 혐의가 인정되는 사건만 검찰에 넘기게 됐다. 혐의 없음 사건은 자체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게 됐다. 수십 년 이어진 수직 관계가 이 시점에서 균열을 보였다. 이듬해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는 부패와 경제 범죄로 줄었다. 기존 6개 범죄 영역에서 2개로 축소됐다. 검찰이 사건에 직접 개입할 수 있는 통로가 크게 좁아졌다. 이어 정부조직 개편이 추진되면서 검찰청 폐지가 결정됐다. 수사는 중수청으로, 기소는 공소청으로 나뉜다. 5년 사이 형사사법 체계의 축이 이동했다. 제도 변화 속도는 현장을 앞질렀다. 수사권 조정 이후 수사 지연과 처리 편차 문제가 반복적으로 제기됐다. 보완책이 뒤따랐지만 인력과 조직이 이를 따라가지 못했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사건이 경찰로 집중되면서 처리 기간이 길어지고, 보완수사 요구가 반복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통계는 변화의 단면을 보여준다. 검찰의 무고사범 처리 인원은 수사권 조정 직후 크게 줄었고 이후 일부 회복됐지만 이전 수준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수사 주체가 바뀌면서 사건 처리 방식도 달라졌다. 중수청 출범을 앞두고 남은 과제도 적지 않다. 공소청 검사에게 어느 수준까지 보완수사 권한을 부여할지, 경찰 권한을 어떻게 통제할지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기관 간 관할 충돌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 있다. 검찰 권력 약화는 정치적 선택만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권한 집중에 따른 피로가 누적된 결과다. 수사와 기소가 한 기관에 묶여 있을 때 권력은 빠르게 작동하지만, 통제는 쉽지 않다. 정권 교체 때마다 수사의 방향이 달라진다는 인식이 반복되면서 신뢰 기반이 흔들렸다. 경찰은 준비를 이어왔다. 조직과 인력을 확충하고 전문 수사 영역을 넓혔다. 경제범죄와 사이버 범죄 대응 역량을 키웠고, 군사경찰 사건과 대공수사권까지 넘겨받으며 관할 범위를 확대했다. 권력 이동은 제도 변화와 맞물려 진행됐다. 다만 권력이 이동했다고 해서 문제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정보와 수사가 한 기관에 집중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견제 장치가 충분하지 않다면 기존의 문제가 다른 형태로 반복될 가능성도 있다. 검찰청 이후 형사사법 체계는 세 갈래로 나뉜다. 공소청은 기소를 담당하고, 중수청은 중대범죄 수사를 맡는다. 경찰은 일반 사건을 처리한다. 권력의 중심이 어디로 이동할지는 아직 단정하기 어렵다. 기소권이 수사를 좌우한다는 시각이 있는 반면, 수사권을 쥔 기관이 주도권을 쥘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분명한 변화는 권력이 한 기관에 집중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신 책임의 경계는 더 흐려질 수 있다. 사건을 맡을 기관이 나뉘면서 혼선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형사사법 체계는 지금 재편 과정에 있다. 권력은 이동했고, 새로운 균형은 아직 자리 잡지 않았다.
2026-04-09 10: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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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하는 중동,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 이유
전쟁은 대개 눈에 보이는 순간으로 기억된다. 미사일이 날아오르고, 전투기가 이륙하며, 국경이 긴장으로 요동치는 바로 그 장면이다. 우리는 그때 비로소 “전쟁이 시작됐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 전쟁은 그런 순간에 시작되지 않는다. 겉으로 드러난 충돌은 언제나 마지막 단계일 뿐이며, 그 이전에는 이미 보이지 않는 선택과 계산이 충분히 축적되어 있다. 역사는 반복해서 그 사실을 보여준다. 지금의 중동이 바로 그러한 국면에 있다. 이란과 이스라엘, 그리고 미국이 얽힌 긴장이 반복적으로 고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중동의 핵심 국가들인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는 눈에 띄는 행동을 보이지 않는다. 군사적 개입도, 강한 외교적 발언도 제한적이다. 표면만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이다. 가장 큰 이해관계를 가진 국가들이 오히려 한 발 물러서 있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장면을 단순히 ‘소극성’이나 ‘눈치보기’로 해석하는 것은 전쟁을 평면적으로 보는 오류에 가깝다. 입체로 보면 전혀 다른 그림이 드러난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보이지 않는 것이 실재를 지배한다”고 했고, 손자는 병법에서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이라 했다. 이 두 문장을 겹쳐 놓고 보면, 지금 중동의 침묵은 공백이 아니라 전략이며, 후퇴가 아니라 재배치에 가깝다. 현재 중동 국가들의 선택은 하나의 공통된 구조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것은 전쟁의 성격 자체가 변했다는 점이다. 과거의 전쟁이 영토와 군사력, 즉 물리적 충돌의 문제였다면, 지금의 전쟁은 경제와 에너지, 그리고 공급망이라는 흐름의 문제로 이동했다. 이 구조에서 전쟁은 더 이상 ‘이길 수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감당할 수 있는가’의 문제로 바뀐다. 실제 데이터를 보더라도 이 변화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중동 지역의 긴장이 고조될 때마다 국제 유가는 즉각 반응하고, 해상 물류 비용이 상승하며, 글로벌 금융 시장이 변동성을 키운다. 호르무즈 해협과 같은 전략적 요충지는 단순한 해상 통로가 아니라 세계 경제의 동맥으로 기능한다. 이곳이 흔들리는 순간, 전쟁의 영향은 특정 지역에 머물지 않고 전 세계로 확산된다. 전쟁의 대상이 군대에서 시장으로, 전장에서 시스템으로 이동한 것이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사우디, UAE, 카타르의 선택은 더욱 명확해진다. 이들에게 전쟁은 정치적 선택지가 아니라 경제적 리스크다. 사우디는 국가 경제의 체질을 바꾸는 대전환의 시기에 있으며, UAE는 금융과 물류를 기반으로 한 신뢰 위에서 존재하는 국가이고, 카타르는 갈등을 조정하는 외교적 위치를 통해 영향력을 확보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이 세 국가 모두에게 전쟁은 ‘승리의 기회’가 아니라 ‘손실의 확정’으로 작용한다. 손자는 “전쟁은 국가의 중대한 일이며, 생사의 문제이니 신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의 전쟁은 신중함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전쟁을 확대하면 경제적 충격이 통제 불가능한 수준으로 확산될 수 있고, 반대로 지나치게 억제하면 억지력이 약화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결국 중동의 국가들은 ‘개입’과 ‘비개입’ 사이가 아니라, ‘통제된 긴장’이라는 훨씬 더 복잡한 균형 위에 서게 된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것은, 지금의 침묵이 평화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중동은 안정된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충돌이 지연된 상태에 있다. 갈등의 원인은 사라지지 않았고, 단지 그것을 드러내는 방식이 바뀌었을 뿐이다. 군사적 충돌이 줄어든 자리에는 경제적 압박과 외교적 신경전이 들어섰고, 직접적인 공격 대신 간접적인 영향력 행사가 확대되고 있다. 노자는 또 말한다. “큰 나라는 흐름을 장악하는 데 있다.” 지금의 중동은 바로 그 흐름을 둘러싼 경쟁의 장이다. 누가 더 많은 무기를 가지고 있는가가 아니라, 누가 더 오래 시장을 안정시키고, 혹은 흔들 수 있는가가 중요해졌다.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기준 자체가 바뀐 것이다. 지금의 중동은 싸우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싸우기에는 잃을 것이 너무 많아진 상태에 가깝다. 전쟁은 더 이상 영향력을 확대하는 수단이 아니라, 감당할 수 없는 비용을 발생시키는 위험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목도하는 ‘침묵’의 실체다. 이 침묵을 단순한 절제나 전략으로만 해석하면, 우리는 전쟁을 오해하게 된다. 지금의 전쟁은 눈에 보이는 곳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싸움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손익이 결정된다.
2026-04-08 16: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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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채무 1300조, 재정의 기초 다시 세우자
[경제일보] 국가 재정이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 2년 연속 100조 원대 적자, 1300조 원에 달하는 국가 채무. 여기에 중동발 전쟁 여파로 26조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까지 편성했다. 벌써부터 하반기 추가 추경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나라 살림이 이 지경에 이르렀다면, 이제는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지금의 재정 운용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문제의 본질은 단순한 적자 규모가 아니다. ‘습관화된 적자’와 ‘명분 없는 지출’이 결합돼 있다는 점이 더 심각하다. 전쟁이라는 비상 상황에서 추경은 불가피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지출이 철저히 전쟁 대응과 민생 안정에 집중되지 않고, 과거처럼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누수된다면 이는 재정이 아니라 ‘분배 정치’에 불과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돈을 더 쓰는 기술이 아니라, 돈을 제대로 쓰는 원칙이다. 무엇보다 지출 구조조정이 선행돼야 한다. 모든 부처와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효과가 불분명한 보조금, 선심성 지역 사업, 중복된 정책은 과감히 도려내야 한다. “작은 구멍이 큰 배를 가라앉힌다”는 말처럼, 사소해 보이는 비효율이 누적될수록 재정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된다. 성역 없는 구조조정 없이는 어떤 재정 건전화도 공허한 구호에 그칠 뿐이다. 동시에 재정 규율을 제도화해야 한다. 법으로 정해진 지출 한도와 국가채무 관리 기준을 엄격히 적용하고, 이를 어길 경우 자동으로 지출을 조정하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재정은 정치의 도구가 아니라 국가의 기반이다. 선거를 앞두고 지출이 느슨해지고, 위기가 닥치면 빚으로 메우는 악순환을 끊지 못한다면 미래 세대는 그 대가를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다. 과거 다른 나라들은 위기 앞에서 훨씬 더 냉정했다. 1990년대 재정 위기에 직면했던 캐나다는 대대적인 지출 삭감과 공공부문 개혁을 단행했다. 부처별 예산을 최대 20%까지 줄이고, 불필요한 기능은 과감히 폐지했다. 그 결과 만성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독일 역시 ‘부채 브레이크’ 제도를 도입해 국가 채무 증가를 헌법적으로 제한했다. 그 원칙은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게 지켜졌고, 재정 신뢰도를 높이는 기반이 됐다. 반면 재정 규율을 놓친 나라들의 말로는 뼈아프다. 남유럽 국가들은 경기 부양을 명분으로 지출을 늘리다 결국 국가 신용 위기를 맞았고, 혹독한 긴축과 사회적 갈등을 겪어야 했다. 지금 우리의 상황이 그 단계까지는 아니라고 안심할 수 없다. 위기는 언제나 ‘아직은 괜찮다’는 안일함에서 시작된다. 결국 해법은 명확하다. 첫째, 전쟁 추경은 철저히 목적 예산으로 한정하고 단 한 푼의 정치적 유입도 차단해야 한다. 둘째, 모든 재정 사업에 대한 전면 재평가를 통해 구조적 지출을 줄여야 한다. 셋째, 법과 제도로 재정 규율을 고정시켜 정치의 개입 여지를 최소화해야 한다. 넷째, 성장 기반 확충을 통해 세입을 늘리는 중장기 전략을 병행해야 한다. 성장 없는 긴축은 또 다른 침체를 낳을 뿐이기 때문이다. 노자는 “다스림이 어지러운 것은 욕심이 많기 때문이다(民之難治 以其上之有為)”라고 했다. 재정이 흔들리는 이유 역시 다르지 않다. 쓰고 싶은 욕망이 원칙을 앞설 때 국가는 균형을 잃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책이 아니라, 더 단단한 절제다. 재정은 국가의 마지막 보루다. 이 보루가 무너지면 어떤 정책도, 어떤 성장 전략도 의미를 잃는다. 지금 우리가 선택해야 할 것은 인기 없는 길일지라도 지속 가능한 길이다. 더 늦기 전에, 재정의 기초를 다시 세워야 한다.
2026-04-07 10: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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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주행 사고 책임 공백 메운다…국토부, 기준·보상 재정비
[경제일보] 자율주행차 상용화 일정이 가시화되면서 사고 발생 시 책임 주체와 보상 절차를 둘러싼 제도 공백을 보완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기술 발전 속도에 비해 법·보험 체계가 뒤처졌다는 지적이 이어지자 정부가 범부처 차원의 기준 정립에 착수했다. 7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정부는 ‘자율주행차 사고 책임 태스크포스(TF)’를 출범했다. 이번 TF는 자율주행차 운행 중 사고 발생 시 책임 주체를 명확히 하고, 피해자 보상 절차를 표준화하는 것을 핵심 과제로 설정했다. TF는 국토부가 총괄하고 자동차손해배상진흥원이 간사를 맡는다. 법조계, 공학계, 보험업계, 산업계 등 각 분야 전문가 18명이 참여해 기술·법·보험 전 영역을 포괄하는 논의를 진행할 계획이다. 자율주행 사고는 차량 결함뿐 아니라 소프트웨어 오류, 통신 문제, 운송 플랫폼 운영, 사이버 보안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만큼 단일 기준으로 책임을 규정하기 어렵다는 점이 반영됐다. 정부는 연내 가이드라인 초안을 마련하고 관련 법령 정비 과제까지 도출한다는 일정이다. 사고 유형을 세분화해 책임 판단 기준과 절차를 정립하고, 보험 처리 및 보상 프로세스를 표준화하는 작업이 병행된다. 이를 통해 실제 사고 발생 시 책임 공방으로 인한 보상 지연을 최소화한다는 구상이다. 현행 제도는 일정 수준의 피해 보호 장치를 갖추고 있지만 책임 판단 체계는 미완 상태로 평가된다. 정부는 지난 2020년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 개정을 통해 자율주행차 사고 발생 시 피해자에게 우선 보험금을 지급한 뒤 책임 주체에 구상권을 행사하는 구조를 도입했다. 피해자 보호 측면에서는 진전이 있었지만, 사고 원인 규명 과정에서 책임 분담 기준이 불명확하다는 한계가 지적됐다. 특히 자율주행 단계가 고도화될수록 책임 주체는 다층 구조로 확장된다. 차량 제조사와 부품사,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개발사, 통신 인프라 사업자, 운송 플랫폼 운영사 등이 동시에 관여하는 구조가 형성되면서 사고 원인 규명 자체가 복잡해지고 있다. 동일 사고에서도 시스템 결함과 운전자 개입 여부, 외부 환경 요인이 혼재될 가능성이 높아 분쟁 소지가 확대되는 양상이다. 보험 체계 역시 기술 발전 속도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상태다. 현재는 운전자 책임을 중심으로 설계된 자동차 보험 체계가 유지되고 있어 자율주행 시스템 오류나 소프트웨어 결함에 따른 사고를 정교하게 반영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보험상품 설계와 책임 분담 기준이 연동되지 않을 경우 보상 지연과 비용 전가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정부가 책임 기준 정비에 속도를 내는 배경에는 실증사업 확대가 있다. 국토부는 자율주행 실증도시 사업을 통해 단계적 상용화를 추진 중이며, 하반기부터 광주광역시에서 약 200대 규모의 자율주행차 운행이 예정됐다. 실도로 기반 운행이 확대될수록 사고 발생 가능성도 높아지는 만큼 제도 정비 필요성이 커진 상황이다. 이번 TF는 실증도시 내 사고 대응체계 점검도 병행한다. 보험상품 운영 방식과 보상 절차의 실제 작동 여부를 점검하고, 제도와 현장 간 괴리를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단순 기준 마련을 넘어 실제 적용 가능성을 검증하는 단계까지 포함된 구조다. 박준형 국토부 모빌리티자동차국장은 “이번 TF를 통해 법·기술·보험이 연계된 통합 대응체계를 구축함으로써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일상 속 자율주행 환경을 조성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2026-04-07 08:57: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