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총 64건
-
청년의 분노가 던진 경고, 미래세대는 정치권의 현금인출기가 아니다
[경제일보] 지난해 네팔에서는 청년들의 분노가 정권을 흔들었다. 부패와 특권, 청년 실업에 쌓인 불만이 대규모 시위로 번졌다. 모로코에서도 청년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국제축구대회 개최를 위한 시설에는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면서 병원과 학교는 제대로 돌보지 않는 정부를 향한 항의였다. 두 나라의 사정은 달랐지만 청년들이 겨냥한 것은 자신들의 삶보다 권력의 이해관계를 앞세우는 정치였다. 한국 정치도 이 경고를 가볍게 여길 처지가 아니다. 집값은 청년들의 소득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기도 쉽지 않다. 결혼과 출산을 미루거나 포기하는 청년이 늘어나는 동안 정치권은 현금 지원과 각종 보조금 확대를 경쟁적으로 약속한다. 당장의 부담을 덜어주는 정책은 필요하지만 돈을 어디서 마련할 것인지, 그 비용을 누가 갚을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정치권이 선거를 의식해 지출을 늘리면 그 혜택은 현재의 유권자에게 돌아간다. 그러나 재정 적자가 쌓여 국가채무가 증가하면 원리금을 갚아야 할 부담은 다음 세대까지 이어진다. 선거에서 표를 얻은 정치인은 몇 년 뒤 자리를 떠날 수 있지만 국가가 발행한 국채는 정권이 바뀐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정치권은 오늘의 표를 얻기 위해 돈을 쓰고, 그 빚은 내일의 납세자에게 떠넘기고 있다. 저출생과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한국에서 이러한 재정 운용은 더욱 위험하다. 경제활동에 참여해 세금을 낼 인구는 줄어드는데 연금과 의료, 노인복지에 들어가는 돈은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경제성장률까지 낮아지면 재정 수입은 줄고 지출 압박은 커진다. 지금의 지출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세금을 더 걷거나 빚을 늘리는 선택을 반복할수록 미래세대의 부담은 무거워진다. 정부가 편성한 2027년도 예산안은 총지출 820조9000억원으로 올해보다 12.8% 증가했다. 반도체 호황에 따른 세수 확대에 힘입어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0.1%로 줄고 국가채무비율도 48.3%로 낮아질 전망이다. 그러나 국가채무 총액은 올해 본예산 기준 1413조8000억원에서 1519조8000억원으로 증가한다. 채무비율은 낮아지더라도 빚의 절대 규모는 106조원 늘어나는 셈이다. 세수 증가에 힘입은 재정지표 개선을 장기적인 건전성 회복으로 받아들이기는 이르다. 반도체 산업의 호황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장담할 수 없고 경기 침체로 세수가 줄어들면 재정 여건은 빠르게 악화할 수 있다. 한 번 도입한 복지제도와 지원사업은 수혜자가 늘어날수록 축소하기 어려워진다. 지출을 확대하는 정치적 결정은 쉽지만 이를 줄이는 과정에서는 거센 반발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지난해 발표한 장기재정전망도 심각하다. 당시 법령과 제도가 유지될 경우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2025년 47.8%에서 2072년 173%까지 상승할 것으로 추산됐다. 이후 정책 변화에 따라 실제 수치는 달라질 수 있지만 저출생과 고령화에 대응하지 못하면 국가재정이 얼마나 큰 압박을 받게 되는지 보여준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선거 때마다 새로운 지원책을 쏟아낸다. 여야 모두 재정 건전성을 강조하다가도 자신들이 추진하는 사업에는 예외를 두려 한다. 집권하면 재정 확대의 불가피성을 주장하고 야당이 되면 국가채무 증가를 비판한다. 국가재정을 정권의 이해관계에 따라 운용하면서 그 부담은 다음 세대에 넘기는 행태다. 재정준칙을 법률로 강제해야 하는 이유다. 지난 9월 29일 국민의힘 김상훈 의원이 대표발의한 국가재정법 개정안은 국가채무비율을 GDP 대비 60% 이내로 관리하고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원칙적으로 3% 이내로 제한하도록 했다. 국가채무비율이 60%를 넘으면 적자 한도를 2%로 낮추고 준칙을 지키지 못한 정부에는 재정건전화 대책과 이행계획을 제출하도록 했다. 법률에 기준을 정해 놓는 것으로 재정 운용의 책임까지 확보할 수는 없다. 경기 침체나 대규모 재난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가 지출을 늘려야 할 때도 있다. 다만 예외를 적용한다면 그 사유와 재정 영향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정상화 시한과 계획을 국회에 제출하도록 해야 한다. 독립적인 재정평가를 통해 정부의 세입 전망과 지출계획을 검증하고 시정조치의 이행 여부도 공개해야 한다. 예외와 유예를 반복하면서 준칙을 지켰다고 주장하는 편법부터 막아야 한다. 국회 역시 재정 운용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선거를 앞두고 각종 지원책과 감세 법안을 경쟁적으로 발의하면서 정작 필요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부족하다. 현행 비용추계 제도를 보완해 재정 부담이 발생하는 법률에는 구체적인 재원 조달 방안까지 제시하도록 해야 한다. 새로운 지출에 상응하는 재원을 마련하거나 기존 지출을 조정하는 페이고(Pay-as-you-go) 원칙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국민에게 혜택을 약속할 권한을 가진 국회가 그 비용에 대한 책임까지 회피해서는 안 된다. 국민연금은 정치권의 개혁 지연이 미래세대에 어떤 부담을 남기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해 개정된 국민연금법에 따라 보험료율은 기존 9%에서 올해 9.5%로 올랐고 2033년에는 13%에 도달한다. 명목소득대체율도 올해부터 43%로 높아졌다. 18년 만에 이뤄진 개혁으로 기금 소진 시점은 늦춰졌지만 장기적인 재정 불안은 여전히 남아 있다. 정부 추계에 따르면 이번 개혁을 반영한 국민연금 기금 소진 시점은 2064년이다. 기금운용 수익률이 목표대로 높아지면 2071년까지 늦출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추계는 인구구조와 경제성장률, 투자수익률에 따라 달라진다. 기금 소진 시점을 늦추는 데 성공했더라도 그 이후 연금급여를 어떻게 지급할 것인지, 필요한 재원을 누가 부담할 것인지는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았다. 현행 제도에서는 앞으로 수십 년 동안 보험료를 납부할 청년들이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부담을 더 많이 떠안을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개혁으로 보험료율을 올리면서 소득대체율도 높였지만 세대별로 부담과 혜택이 어떻게 달라지는지에 관한 논의는 충분하지 않았다. 현재 연금을 받는 세대와 앞으로 가입할 청년의 이해관계가 다른 만큼 보험료율과 급여 수준을 정할 때 세대별 영향을 함께 따져야 한다. 정치권이 연금개혁을 미룬 책임도 가볍지 않다. 2007년 개혁 이후 보험료율을 다시 조정하기까지 18년이 걸렸다. 그동안 출생아 수는 줄고 고령인구는 증가했다. 연금 재정의 장기적인 불안이 예고됐지만 국민에게 보험료 인상이나 급여 조정을 요구하는 결정은 번번이 뒤로 밀렸다. 개혁을 늦춘 정치권이 부담해야 할 정치적 비용은 작았지만 그 사이 후속 세대가 감당해야 할 재정적 부담은 커졌다. 국민연금법에도 개혁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도록 후속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현행법은 5년마다 재정계산을 실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재정 전망이 법률에 정한 관리 기준을 벗어나면 정부가 일정 기간 안에 조정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하도록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국회에도 심의 일정과 처리 경과를 공개하도록 해 연금개혁을 지연시킨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국민이 확인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세대별 보험료 부담과 예상 연금급여를 비교해 공개하는 제도도 도입할 만하다. 청년과 중장년, 고령층이 각각 얼마나 부담하고 어떤 혜택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지 같은 기준으로 산출해야 한다. 보험료 인상의 부담이 저소득층과 고용이 불안정한 청년에게 집중되지 않도록 지원책을 마련하는 일도 병행해야 한다. 국가의 연금 지급 보장은 이미 법률에 명시됐다. 이제는 그 약속을 이행할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을 내놓을 차례다. 재정 건전성을 강조한다고 해서 청년 지원이나 필요한 복지까지 무조건 줄여서는 곤란하다. 청년의 주거 안정과 일자리, 교육에 대한 투자는 장기적으로 경제의 성장 기반을 넓히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취약계층을 보호하는 복지 지출 역시 국가의 책무다. 반면 효과가 불분명한 사업이나 선거를 의식한 일회성 지원에는 엄격한 검증이 따라야 한다. 정부가 돈을 쓰기로 결정했다면 그 사업이 어떤 성과를 낼 것인지, 앞으로 얼마나 많은 재원이 필요할 것인지부터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재정준칙과 연금개혁을 법으로 강제하자는 주장은 국회와 정부의 정당한 정책 결정권을 부정하자는 뜻이 아니다.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행사하는 만큼 그에 따르는 책임도 법률에 규정하자는 것이다. 재정준칙을 지키지 못한 정부는 시정계획을 제출하고, 연금 재정이 악화되면 개혁안을 마련하도록 해야 한다. 국회도 선거와 정파적 이해를 이유로 심의를 무작정 미룰 수 없도록 제도적 책임을 져야 한다. 정치권은 어려운 결정을 앞두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말을 되풀이한다. 충분한 논의와 국민적 공감대는 중요하다. 그러나 합의를 이유로 결정을 미루는 동안에도 국가채무의 이자는 쌓이고 연금 재정의 부담은 증가한다. 다음 선거를 의식해 개혁을 연기하는 정치가 반복된다면 그 피해는 정치권이 아닌 미래의 납세자와 연금 가입자에게 돌아간다. 세계 곳곳에서 터져 나온 청년들의 분노는 오늘의 정치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돌아보게 한다. 한국 정치도 당장의 지지율과 선거 승리를 위해 재정을 운용하는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가채무와 연금 지급 의무는 정권이 바뀌어도 사라지지 않는다. 정치권이 회피한 책임을 미래세대가 세금과 보험료로 감당하는 일도 더는 반복해서는 안 된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국민은 선거에서 자신의 이해를 대변할 수 없다. 그렇다고 현재의 정치권이 그들의 몫까지 마음대로 쓸 권한을 가진 것은 아니다. 미래세대에 남길 부담을 결정하는 정치라면 그 책임부터 법으로 지게 해야 한다.
2026-10-20 16:07:11
-
-
달러값 오르는데 원화는 강세…수출 호조에 원·달러 환율 하락
[경제일보] 반도체 수출 호조로 국내 외환시장에 달러 공급이 늘면서 원화 가치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이달 들어 2년 1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내려왔고, 원/엔 재정환율도 약 19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중동 정세와 국제유가, 미국 금리 등 대외 불확실성이 여전한 상황에서 수출 호조와 무역수지 흑자, 한국은행의 긴축 기조가 원화 강세를 뒷받침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18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이달 들어 지난 16일까지 12거래일간 원/달러 환율 평균은 1342.6원으로 집계됐다. 지난 2024년 9월 평균인 1332.8원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지난 16일에는 오후 7시20분께 환율이 1328.9원까지 하락해 지난 2024년 10월 2일 기록한 1317.1원 이후 최저치를 나타냈다. 올해 환율은 중동 전쟁과 국제유가 상승, 외국인 투자자의 국내 주식 매도 등이 겹치면서 상반기 큰 폭으로 상승했다. 월평균 원/달러 환율은 지난 3월 1492.5원에서 6월 1528.0원까지 치솟았다. 이후 달러 공급 여건이 개선되면서 하락세로 돌아섰다. 지난 7월 1488.9원, 8월 1404.4원, 9월 1358.8원으로 낮아졌고 이번달에도 하락 흐름을 이어갔다. 환율 하락의 주요 배경으로는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수출 호조와 이에 따른 달러 공급 확대가 꼽힌다. 수출기업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달러를 원화로 바꾸기 위해 시장에 내놓는 네고 물량이 늘면서 달러 매도 압력이 커진 것으로 풀이된다. 수출 대금이 국내 외환시장으로 유입되는 가운데 무역수지 흑자도 이어지면서 달러 수급이 원화 강세에 유리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실제 수출 실적도 개선 흐름을 보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달 수출액은 1209억 달러(약 161조3700억원)로 전년 동월보다 83.5% 증가해 월간 기준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특히 반도체 수출이 603억 달러(80조4800억원)로 262.8% 늘어나며 전체 수출 증가를 견인했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와 컴퓨팅 인프라 투자 확대에 따른 반도체 수요가 수출 실적을 끌어올린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지난 8월 국제수지에서도 경상수지는 461억1000만 달러(약 61조5400억원) 흑자를 기록했다. 경상수지 흑자는 수출 등으로 벌어들인 외화가 수입과 해외 지급액보다 많았다는 뜻이다. 경제성장 전망과 통화정책도 원화 강세를 뒷받침하는 요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반도체 수출 호조 등을 반영해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3%로 상향 조정했다. 수출을 중심으로 국내 경제가 견조한 흐름을 보일 것이라는 기대가 원화 가치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은행은 지난 7월과 8월 기준금리를 연속 인상해 현재 기준금리를 3.00%로 유지하고 있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12일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원화가 추가 강세를 보일 여지가 있다고 언급했다. 눈에 띄는 대목은 원화가 강세를 보이는 동안 달러 가치가 주요 통화 대비 상승했다는 점이다. 최근 한 달간 미국 금리 상승 등의 영향으로 달러인덱스가 99선에서 102선까지 올랐지만, 원/달러 환율은 반대로 하락했다. 글로벌 달러 흐름보다 국내 수출기업의 달러 매도와 무역수지 등 원화 고유의 수급 요인이 상대적으로 강하게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원/엔 재정환율도 약 19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이달 원/엔 환율 평균은 100엔당 849.0원으로, 지난 2007년 12월 평균인 829.2원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난 12일에는 장중 839.91원까지 내려가 지난 2008년 1월 2일의 833.4원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나타냈다. 원화 강세는 국내 경제에 긍정적 효과와 부담을 동시에 가져온다. 달러로 결제하는 원유와 원자재, 수입 소비재 등의 원화 환산 비용이 낮아져 수입물가와 물가 상승 압력을 완화할 수 있다. 반면 수출기업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달러를 원화로 환산할 때 받는 금액이 줄어들고, 원화 표시 수출가격을 낮추지 않는다면 해외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이 약해질 가능성도 있다. 특히 환율 변동이 빠르게 진행되면 수출기업의 실적과 환헤지 전략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실제로 한국은행이 지난 16일 발표한 지난달 수출입물가지수에서는 원화 기준 수출물가지수가 전월보다 0.8% 하락했다. 원/달러 환율 하락이 수출물가를 끌어내리는 요인으로 작용한 반면, 국제유가 상승으로 수입물가지수는 전월보다 1.7% 올랐다. 환율 하락만으로 수입물가가 안정된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로 보인다.
2026-10-18 17:45:59
-
반도체·AI가 끌어올렸다…IMF, 한국 잠재성장률 2년 연속 상승 전망
[경제일보]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 경제의 장기적인 성장 능력을 나타내는 잠재성장률이 올해와 내년 2년 연속 상승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잠재성장률이 2년 연속 높아지는 것은 지난 1986~1987년 이후 약 40년 만으로, 인공지능(AI) 확산에 따른 투자 확대와 반도체 수출 호조가 성장 여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관측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18일 IMF의 10월 세계경제전망에 따르면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지난해 1.94%에서 올해 2.14%, 내년 2.20%로 높아질 것으로 추산됐다. 올해 0.20%포인트(p) 상승한 뒤 내년에도 0.06%p 추가로 오르는 경로다.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지난 2023년 2.06%에서 지난 2024년 1.96%로 낮아졌다가 올해 다시 2%대를 회복할 것으로 예상됐다. 올해 추산치인 2.14%는 지난 2021년 2.23% 이후 5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IMF의 과거 시계열을 같은 방식으로 계산하면 잠재성장률이 2년 연속 상승하는 것은 이른바 '3저 호황'이 이어졌던 1986~1987년 이후 처음이다. 당시 잠재성장률은 지난 1986년 9.77%에서 다음해 9.91%로 높아졌다. 잠재성장률은 물가를 과도하게 자극하지 않으면서 경제가 지속해서 성장할 수 있는 잠재 국내총생산(GDP)의 증가율이다. 경기 회복이나 수출 호조에 따라 일시적으로 높아질 수 있는 실제 GDP 성장률과 달리 노동·자본 투입과 기술 발전 등 경제의 기초적인 생산 능력을 가늠하는 데 활용된다. 잠재성장률이 반등한다는 것은 경제가 보유한 생산 자원을 더 효율적으로 활용하거나 투자와 생산성이 개선되면서 중장기 성장 여력이 확대될 수 있다는 것으로 평가된다. 한국은 저출생과 고령화로 노동 공급이 줄어드는 구조적 제약에 직면해 있다. 노동 투입을 단기간에 늘리기 어려운 상황에서 잠재성장률 상승세가 이어지려면 자본 축적과 생산성 개선이 뒷받침돼야 한다. 이번 수치는 IMF가 제시한 한국의 실질 GDP 성장률과 GDP갭률을 토대로 역산한 결과다. IMF는 한국의 실질 GDP 성장률을 올해 3.33%, 내년 2.83%로 전망했다. GDP갭률은 올해 0.548%, 내년 1.168%로 추산했다. GDP갭률은 실제 GDP와 잠재 GDP의 차이를 잠재 GDP 대비 비율로 나타낸 지표로, 실제 경제활동이 잠재적인 생산 수준을 얼마나 웃돌거나 밑도는지를 보여준다. 다만 이번 전망만으로 한국 경제의 구조적인 성장 둔화가 끝났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잠재성장률은 노동과 자본, 생산성 등을 바탕으로 추정하는 지표인 만큼 산출 기관과 모형에 따라 차이가 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내년까지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투자 확대가 다른 산업의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고, 고령화에 따른 노동 공급 감소를 얼마나 상쇄할 수 있을지가 중장기 성장 경로를 좌우할 전망이다. 잠재성장률은 직접 관측할 수 있는 값이 아니라 경제 상황과 추정 방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OECD는 지난 6월 한국의 잠재성장률을 지난해 1.85%, 올해 1.66%, 내년 1.52%로 전망했다. IMF의 이번 추산과는 방향부터 차이가 난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달 말 발표한 '2027년 NABO 경제전망'에서 잠재성장률이 지난해 2.14%에서 올해 2.22%, 내년 2.28%로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 주요 선진국 웃도는 잠재성장률…정부 목표 달성은 과제 IMF 자료를 같은 방식으로 계산할 수 있는 27개국과 비교하면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올해와 내년 모두 7위 수준이다. 지난해 12위에서 순위가 상승할 것으로 추산됐다. 올해는 몰타 4.10%, 키프로스 3.39%, 덴마크 2.68%, 슬로베니아 2.53%, 스페인 2.50%, 미국 2.33%에 이어 한국이 뒤를 이었다. 내년에도 몰타 4.04%, 아일랜드 3.88%, 키프로스 3.29%, 슬로베니아 2.53%, 덴마크 2.34%, 미국 2.29% 다음으로 높은 수준이다. 주요 7개국(G7) 가운데 한국보다 잠재성장률이 높은 국가는 미국뿐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올해와 내년 모두 영국(1.29%, 1.26%), 프랑스(0.85%, 0.85%), 일본(0.82%, 0.84%), 독일(0.64%, 0.70%)을 웃돌 것으로 전망됐다. 실제 경제활동이 잠재 생산 수준을 얼마나 웃도는지를 나타내는 GDP갭률도 빠르게 개선되는 것으로 추산됐다. 한국의 GDP갭률 순위는 지난해 20위(-0.610%)에서 올해 6위(0.548%)로 올라서고, 내년에는 1위(1.168%)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내년 2위인 그리스(0.750%), 3위 덴마크(0.737%)와 비교해도 격차가 있다. 정부는 지난 7월 발표한 '하반기 경제성장전략'에서 잠재성장률 3%를 목표로 제시했다. 수출 세계 4강, 1인당 국민소득 5만 달러(약 6700만원)와 함께 '3·4·5 경제 대도약'을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IMF는 한국의 1인당 GDP가 올해 4만3512 달러(약 5800만원)로 내년 4만9277 달러(약 6600만원), 오는 2028년 5만2100 달러(약 7000만원)로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오는 2031년에는 5만9919 달러(약 8000만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 AI·반도체 투자, 성장 여력 끌어올릴까…산업 간 온도 차는 변수 전문가들이 잠재성장률 반등 가능성에서 주목하는 요인은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자본 투자와 AI 확산에 따른 생산성 개선이다. 잠재성장률은 노동과 자본, 총요소생산성(TFP) 등의 영향을 받는다. 총요소생산성은 노동과 자본의 투입량 증가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생산 효율의 개선을 의미하며, 기술 발전과 업무 방식 변화, 자원의 효율적인 배분 등이 영향을 줄 수 있다. AI 산업이 성장하면서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등 관련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확대되면 생산 설비와 자본 축적이 늘어날 것으로 꼽힌다. 기업들이 AI를 실제 업무에 적용해 같은 인력과 자원으로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면 생산성 개선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노동인구 감소가 예상되는 한국 경제에서 자동화와 업무 효율화가 노동 투입 감소의 영향을 일부 상쇄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AI 관련 투자가 늘어난다는 사실만으로 경제 전체의 생산성이 높아졌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설비와 인프라를 구축하는 단계에서 발생한 투자가 지속적인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려면 기업 현장의 활용도가 높아져야 한다. AI 도입 비용과 인력 재교육 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운 기업까지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지도 중요하다. 특정 기업과 산업에 투자가 집중되면 경제 전체의 생산 능력이 개선되는 속도는 기대보다 더딜 수 있다. 반도체 수출 호조가 성장 지표를 끌어올리는 상황에서 성장의 과실이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는지도 과제로 꼽힌다. 반도체 산업의 실적 개선이 투자와 고용, 협력업체의 생산성 향상으로 연결된다면 경제 전반의 성장 기반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된다. 반면 성과가 일부 대기업이나 특정 업종에 집중되면 거시지표와 가계·중소기업이 체감하는 경기 사이의 간극이 커질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고령화와 노동 공급 감소라는 구조적 제약도 남아 있다. AI와 자동화가 노동력 부족을 보완할 수 있지만 모든 산업과 직무에서 같은 효과를 내는 것은 아니다. 기술을 도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업무 재설계와 인력 전환, 산업 간 자원 배분 개선으로 연결해야 생산성 상승 효과가 경제 전반에 축적될 수 있다는 평가다. 이번 IMF 전망은 장기간 하락해 온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반등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AI·반도체 호황이 단기적인 수출 증가를 넘어 산업 전반의 생산성 개선과 노동력 감소 대응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가 한국 경제의 중장기 성장 경로를 가르는 핵심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2026-10-18 14:06:34
-
정의선, 모디 총리 만나 인도 투자 확대…7년간 155억달러 투입
[경제일보]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만나 향후 7년간 155억달러(약 22조원)를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현대차그룹은 현지 생산능력을 바탕으로 연구개발(R&D)과 미래 모빌리티 분야에 투자를 확대하고, 인도를 신흥국 수출의 핵심 거점으로 육성할 방침이다. 14일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정의선 회장은 전날 인도 뉴델리 총리 관저에서 모디 총리와 개별 면담을 갖고 현지 사업 현황과 중장기 성장 전략을 설명했다. 양측은 인도 자동차 산업의 발전 방향과 미래 기술 협력 방안 등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환했다. 정 회장은 이 자리에서 "현대차그룹은 푸네 공장 가동을 통해 연 140만대 생산체제를 확보했다"며 "안정적인 생산으로 인도 자동차 시장의 지속적인 성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신흥국 수출을 확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특히 인도를 그룹의 장기 성장 전략에서 핵심적인 시장으로 제시했다. 정 회장은 "인도는 현대차그룹의 미래 성장과 신흥국 시장 확대를 견인할 전략 국가"라며 "올해부터 7년간 약 155억달러 규모의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투자에는 생산시설 확충을 비롯해 R&D 인프라 강화, 현지 부품 공급망 고도화, 미래 신기술 개발 등이 포함된다. 현대차그룹은 투자 과제를 통합 관리하고 신규 사업을 발굴하기 위한 현지 투자 전문 법인 설립도 추진한다. 현대차그룹이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는 배경에는 인도 자동차 시장의 성장 가능성과 수출 거점으로서의 경쟁력이 있다. 인도는 약 14억7000만명의 인구를 보유한 세계 최대 인구 국가로, 중국과 미국에 이어 세계 3위 자동차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 9월 인도의 올해 경제성장률을 7.1%로 전망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역시 10월 발표한 전망에서 올해와 내년 성장률을 각각 7%로 제시했다. 자동차 수요도 빠르게 늘고 있다. 인도 전체 자동차 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승용차 판매량은 지난해 457만대에서 올해 525만대로 약 15%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수입 완성차에 부과되는 관세가 70~110%에 달해 현지 생산시설 확보가 필수적이다. 상대적으로 낮은 제조 원가와 중동·아프리카 등 신흥 시장에 대한 접근성도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인도 생산을 확대하는 배경이다. 현대차그룹은 현재 첸나이 현대차 1·2공장과 푸네 3공장, 아난타푸르 기아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푸네 공장 가동으로 그룹 전체 생산능력을 연간 140만대까지 확대하면서 내수 공급과 해외 수출을 병행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판매 실적에서도 인도 내 주요 완성차 업체로 입지를 확보했다. 지난해 현대차는 57만1878대, 기아는 28만286대를 판매했다. 양사 합산 판매량은 85만2164대로, 시장 점유율 18.7%를 기록하며 현지 2위를 유지했다. 현대차그룹은 앞으로 생산 규모 확대와 함께 현지 시장에 특화한 차량 개발에도 속도를 낼 계획이다. 연구개발 시설을 확충하고 전문 인력을 확보해 인도 소비자의 주행 환경과 구매 수요에 적합한 상품을 개발한다는 구상이다. 미래 모빌리티 사업에서는 현지 기업과의 기술 협력을 강화한다. 인도 이륜차 제조업체 TVS 모터 컴퍼니와 공동 개발한 전기 삼륜차(i3W)는 시제품 제작을 마쳤으며, 2027년 말 상용화를 목표로 후속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사업 영역도 완성차 제조·판매에서 자동차 금융과 전기차 충전 인프라, 폐차 재활용, 신규 모빌리티 서비스 등으로 넓힌다. 이를 위해 현지 스타트업과 유망 기업에 대한 전략적 투자 기회도 모색할 예정이다. 신설을 추진하는 투자 전문 법인은 그룹 차원의 중장기 투자 계획을 조율하고 집행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연구개발과 신기술 확보에 필요한 자금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동시에 현지 협력사를 발굴하고 산업 정책 변화에 대응하는 기능도 맡는다.
2026-10-14 08:36:19
-
코스피 6400선 붕괴…지수보다 경제의 기초체력을 살펴야 한다
[경제일보] 연휴를 마친 국내 증시가 급락했다. 12일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241.69포인트(3.65%) 내린 6384.24로 마감했다. 종가 기준 6400선이 무너진 것은 약 두 달 만이다. 코스닥도 4.83% 하락한 849.19로 거래를 마쳤다. 외국인이 코스피 시장에서 약 2조원어치를 순매도하며 하락세를 주도했다. 하락 폭을 나흘로 넓혀보면 충격은 더 크다. 지난 2일 7003.74였던 코스피는 4거래일 만에 619.50포인트, 8.85% 떨어졌다. 삼성전자의 양호한 실적과 반도체 수출 호조에도 투자심리가 회복되지 못했다. 12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는 나란히 4%대 하락했다. 이번 급락의 배경에는 외국인 매도세와 미국 인공지능(AI) 산업의 성장성에 대한 우려, 반도체 대형주에 집중된 수급 구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하루의 주가 하락을 곧바로 한국 경제의 구조적 위기로 해석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기업 실적과 경기 전망, 글로벌 자금 흐름을 함께 살펴야 정확한 진단이 가능하다. 문제는 급락 자체보다 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투자자와 기업이 얼마나 충격을 견딜 수 있느냐다. 주식시장은 미래 수익에 대한 기대를 가격에 반영한다. 단기간에 과도하게 오른 주가가 조정받는 것은 시장의 정상적인 기능이기도 하다. 그러나 외국인 매도가 장기화하고 투자심리가 위축되면 기업의 자금 조달과 가계의 소비에도 부담이 생길 수 있다. 특히 자본시장을 통해 성장자금을 확보해야 하는 중소·중견기업에는 주가 하락과 위험회피 심리의 확산이 더 큰 제약으로 작용한다. 금융시장의 불안이 실물경제로 전이되지 않도록 살펴야 하는 이유다. 이럴 때 정부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지수 자체를 정책 목표로 삼는 일이다. 주가가 떨어질 때마다 공적 자금을 동원하거나 단기 부양책으로 시장을 떠받치려 한다면 가격 형성 기능을 왜곡할 수 있다. 정부가 책임져야 할 것은 특정 지수의 유지가 아니라 금융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여건이다. 금융당국은 증권사와 금융기관의 유동성 및 건전성을 점검하고 신용융자와 파생상품 시장의 위험이 과도하게 확대되지 않는지 살펴야 한다. 급격한 가격 변동이 연쇄적인 강제 매도나 자금 경색으로 이어질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 필요한 시장안정 조치는 신속하게 시행하되 개입의 기준과 목적은 명확해야 한다. 불공정거래를 차단하고 시장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과 인위적으로 주가 수준을 높이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 정책 당국의 설명 책임도 중요하다. 시장이 불안할 때 근거 없는 낙관론으로 투자자를 안심시키려 해서는 신뢰를 얻기 어렵다. 그렇다고 단기 급락을 곧바로 경제위기로 규정해 불안을 키워서도 안 된다. 외환시장과 채권시장, 주식시장의 움직임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금융 불안이 실물경제로 번질 가능성을 객관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12일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7.7원 내린 1335.1원으로 마감했다. 주가 급락과 환율 상승이 반드시 동시에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금융시장의 위험을 진단할 때도 막연히 고환율과 고금리를 나열하기보다 실제 지표와 자금 흐름을 근거로 판단해야 한다. 보다 근본적인 과제는 한국 경제의 성장 기반을 강화하는 일이다. 외국인 투자자는 기업의 수익성과 성장 가능성, 시장의 유동성, 제도적 신뢰를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한국 기업의 경쟁력이 높아지고 자본시장의 투명성이 개선된다면 장기 투자자금을 유치할 기반도 넓어진다. 정부는 불합리한 규제를 정비하고 기술혁신과 생산성 향상을 뒷받침해야 한다. 인공지능과 반도체, 바이오, 로봇 등 미래산업의 성장 기반을 확충하는 동시에 노동시장과 교육, 산업구조의 변화에도 대응해야 한다. 단기적인 경기부양만으로는 잠재성장률 둔화라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기업 역시 책임을 다해야 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대표기업의 실적이 개선되더라도 주가는 글로벌 기술 경쟁과 투자 수요에 대한 기대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실적의 지속 가능성을 입증하고 기술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상장기업 전반으로 보면 지배구조의 투명성과 주주와의 소통도 개선해야 한다.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한 노력이 실적과 자본 배분, 주주환원 정책으로 이어질 때 시장의 신뢰도 쌓인다. 정치권은 금융시장 불안을 단기적인 정책 경쟁의 소재로 삼지 말아야 한다. 경기 대응과 취약계층 지원은 필요하지만 재정지출의 효과와 지속 가능성을 함께 따져야 한다. 자본시장 관련 제도 개선과 기업 투자에 필요한 법·제도 정비도 정쟁과 분리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 이번 급락이 한국 경제의 모든 취약성을 드러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반도체 대형주와 외국인 수급에 대한 높은 의존도가 시장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는 점은 다시 확인됐다. 특정 산업의 호황만으로 증시 전체의 안정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뜻이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시장의 정상적인 기능을 지키고, 기업은 수익성과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정치권은 경제주체가 장기적인 투자와 혁신에 나설 수 있도록 제도적 불확실성을 줄이는 데 힘을 보태야 한다. 주가 하락은 투자자에게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모든 하락을 막을 수도, 막아서도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충격이 왔을 때 시장이 질서를 유지하고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갖추는 일이다. 코스피가 언제 7000선을 되찾을지보다 한국 경제가 다음 충격을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지수의 회복은 정책 구호가 아니라 기업의 실적과 경제의 기초체력, 시장에 대한 신뢰가 뒷받침할 때 지속될 수 있다.
2026-10-13 09:40:36
-
세수가 늘 때 재정규율을 세워야 한다
[경제일보] 한국 경제가 모처럼 성장률 반등을 기대하고 있다.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한국은행은 올해 경제성장률을 3.3%, 내년을 2.9%로 전망했다. 정부도 내년 국세수입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경기와 세수가 동시에 개선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국가재정의 앞날을 냉정하게 살펴야 한다. 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2027년도 예산안에 따르면 내년 총지출은 820조9000억원으로 올해보다 12.8% 증가한다. 역대 최대 규모다. 반면 정부는 반도체 호황 등에 따른 세수 증가를 바탕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올해 51.6%에서 내년 48.3%로 낮추겠다고 밝혔다. 관리재정수지 적자도 GDP 대비 3.9%에서 0.1%로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재정건전성 지표가 개선된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다만 여기에는 중요한 전제가 있다. 내년 국세수입이 정부 예상대로 확보돼야 한다는 것이다. 반도체 경기가 꺾이거나 대외 여건이 악화하면 세수 전망부터 달라질 수 있다. 경기 호황에 기대어 개선되는 재정과 제도적으로 건전성을 확보한 재정은 구분해야 한다. 한국 경제의 구조적 과제가 사라진 것도 아니다. 저출산과 고령화, 생산가능인구 감소, 생산성 둔화는 잠재성장률을 압박하고 있다. 올해 성장률이 높아졌다고 장기 성장능력까지 회복됐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연금과 의료·돌봄 등 고령화 관련 지출은 앞으로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국가채무의 부담도 단순히 채무 총액으로만 판단할 수 없다. 경제 규모에 비해 얼마나 빠르게 증가하는지, 세수로 이자를 감당할 능력이 충분한지, 국채 만기가 돌아왔을 때 어떤 금리로 차환해야 하는지 등을 두루 살펴야 한다. 과거 낮은 금리로 발행한 국채를 더 높은 금리로 차환하면 이자 부담이 커질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국채가 당장 높은 금리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만기 구조와 시장금리, 경제성장률에 따라 부담은 달라진다. 중요한 것은 재정에 예상하지 못한 충격을 견딜 여력이 있느냐다. 정치권은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재정 확대를 요구한다. 경기침체기에 정부가 재정을 활용해 취약계층을 보호하고 경제를 뒷받침하는 것은 필요한 역할이다.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지출도 무조건 낭비라고 볼 수 없다. 그러나 경기 대응을 명분으로 시작한 사업이 효과 검증 없이 유지되거나, 선거를 앞두고 재원 마련 방안이 불분명한 공약이 경쟁적으로 쏟아지는 것은 다른 문제다. 재정지출의 필요성과 효과, 지속 가능성을 따지는 절차가 정치적 이해관계에 밀려서는 안 된다. 국가재정은 어느 정권의 전유물이 아니다. 세금은 국민이 부담하고 국채는 미래의 재정 운용에도 영향을 미친다. 지금 지출하는 돈이 생산성을 높이고 미래의 세수 기반을 넓힌다면 다음 세대에도 이익이 돌아갈 수 있다. 반대로 효과가 불분명한 지출을 빚으로 충당한다면 미래세대의 선택지는 그만큼 좁아진다. 따라서 국가채무를 무조건 줄이는 것만이 책임 있는 재정은 아니다. 빚을 내더라도 무엇에 쓰는지, 그 지출이 어떤 경제적·사회적 편익을 만들어내는지가 중요하다. 재정준칙의 법제화가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가채무와 재정적자에 중장기 관리 기준을 두되 경기침체와 재난 등 불가피한 상황에서는 한시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예외를 허용한다면 적용 조건과 기간, 정상적인 재정 운용으로 복귀할 계획까지 분명히 해야 한다. 재정준칙은 정부가 필요한 돈을 쓰지 못하도록 손발을 묶는 장치가 아니다. 평상시에 재정 여력을 확보해 위기가 닥쳤을 때 제대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약속이다. 지출 구조조정도 숫자를 맞추는 작업에 그쳐서는 안 된다. 성과가 낮은 보조금과 중복 사업, 정책 목적을 달성했는데도 관행적으로 유지되는 예산은 과감하게 정리해야 한다. 반면 취약계층의 생계와 기본적인 사회안전망까지 일률적으로 삭감해서는 안 된다. 지출의 성격과 효과를 구분하는 것이 재정개혁의 출발점이다. 절감한 재원은 미래 성장 기반을 넓히는 데 우선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인공지능과 반도체, 바이오, 로봇, 우주항공 등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연구개발과 인재양성, 전력망과 산업 인프라에 장기간 투자해야 한다. 민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기초연구와 공공 기반시설에 정부가 역할을 집중하고 사업화와 시장 경쟁은 기업의 창의성과 자본을 활용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미래산업 지원에도 성과 검증은 예외일 수 없다. 첨단산업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모든 사업에 예산을 배정할 이유는 없다. 지원의 필요성과 민간투자 유발 효과, 중복 여부를 따져야 한다. 재정의 효율성을 높이는 일과 미래산업에 투자하는 일은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 지금은 오히려 재정개혁을 추진하기 좋은 시기다. 정부 전망대로 세수가 크게 늘고 재정수지가 개선된다면 그 성과의 일부를 중장기 재정위험을 줄이는 데 활용할 수 있다. 경기가 나쁠 때는 지출을 줄이기 어렵고, 경기가 좋을 때는 지출을 늘리자는 요구가 커진다. 이런 정치적 유혹을 제어하지 못하면 재정건전성은 경기의 부침에 따라 흔들릴 수밖에 없다. 정치권도 달라져야 한다. 국민에게 무엇을 더 지원할 것인지 설명하는 일만큼 그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고 기존의 어떤 사업을 정비할 것인지 밝히는 일도 중요하다. 여야가 재정준칙과 중장기 지출 개혁을 놓고 책임 있게 논의해야 하는 이유다. 재정은 오늘의 경제를 지탱하면서 내일의 성장 기반도 마련해야 한다. 어느 한쪽을 포기하는 방식으로는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관자>에는 “양입이출(量入而出)”, 들어오는 것을 헤아려 지출한다는 뜻의 말이 전해진다. 국가재정을 가계부처럼 단순하게 운영할 수는 없지만, 재원의 한계를 고려하고 지출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는 원칙은 여전히 유효하다. 한국 경제는 지금 반도체 호황이라는 기회를 맞고 있다. 그러나 특정 산업의 호황이 언제까지나 지속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세수가 늘 때 재정규율을 세우고, 성장의 과실을 미래 경쟁력과 재정 여력으로 연결해야 한다. 정치가 재정으로 국민의 삶을 개선하는 것은 당연한 책무다. 다만 그 성과를 다음 선거의 득표가 아니라 다음 세대가 물려받을 경제적 기반으로 평가받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재정의 책임은 돈을 얼마나 썼느냐가 아니라 그 지출이 무엇을 남겼느냐에서 드러난다.
2026-10-08 11:54:40
-
-
-
-
-
수출은 늘고 고용효과는 줄었다…성장의 성적표를 바꿀 때
[경제일보] 반도체가 날아오르자 수출이 늘고 기업의 이익도 커졌다. 수출이 한국 경제의 생산과 부가가치에서 차지하는 몫 역시 확대됐다. 하지만 일자리의 움직임은 달랐다. 수출이 만들어내는 경제적 성과는 커졌지만, 같은 금액의 수출이 유발하는 고용은 오히려 줄었다. 한국은행이 21일 발표한 2024년 산업연관표가 보여준 한국 경제의 단면이다. 수출 호황이 곧바로 고용과 가계소득의 증가로 이어진다는 익숙한 성장 공식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숫자는 선명하다. 2024년 국내 생산 가운데 수출이 유발한 비중은 전년 32.7%에서 35.1%로, 부가가치 비중은 25.4%에서 28.2%로 높아졌다. 전 산업의 부가가치율도 41.2%에서 42.0%로 상승했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수출 회복과 수출 공산품의 영업잉여 증가, 수입 원자재 가격 하락 등이 영향을 미쳤다. 반면 수출 10억원당 취업유발계수는 5.4명에서 5.0명으로 떨어졌다. 전 산업 평균도 8.2명에서 7.8명으로 낮아졌다. 수출이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커졌는데, 단위 수요가 만들어내는 일자리의 수는 감소한 것이다. 이는 단순히 경기의 좋고 나쁨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변화다. 한국 경제를 이끄는 산업의 성격 자체가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는 대표적인 자본집약 산업이다. 최첨단 공장 하나를 짓는 데 수십조원이 들어간다. 생산량과 수익성을 좌우하는 것은 대규모 설비와 미세공정, 자동화 기술과 수율이다. 숙련된 엔지니어와 연구개발 인력의 중요성은 크지만, 생산이 늘어난다고 고용이 같은 비율로 증가하지는 않는다.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더 적은 노동으로 더 많은 가치를 생산하는 것은 생산성 향상의 본질이다. 이를 거슬러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자동화를 늦추거나 불필요한 인력을 유지한다면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문제는 이러한 산업이 성장을 주도할수록 기업의 실적과 국민이 체감하는 경기 사이에 간격이 벌어질 수 있다는 데 있다. 수출이 급증해도 신규 채용은 그만큼 늘지 않을 수 있다. 늘어난 이익이 설비투자와 연구개발, 임금과 배당으로 배분되더라도 그 혜택이 모든 산업과 지역에 고르게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반도체 공장의 생산성 향상이 주변 협력업체의 매출과 고용, 가계의 구매력으로 이어지는 경로가 얼마나 튼튼한지가 중요해지는 이유다. 여기서 통계를 정확히 읽을 필요가 있다. 2024년 전체 취업자 수는 2857만6000명으로 전년보다 15만9000명 증가했다. 그러나 주 40시간 근무를 기준으로 환산한 전업환산 취업자는 2596만명으로 2만8000명 감소했다. 한국은행은 건설업과 농림수산업의 고용 감소, 근로시간이 짧은 노인 일자리 증가 등을 배경으로 설명했다. 이를 반도체 호황 때문에 전체 일자리가 줄었다는 뜻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짧은 근로시간이 반드시 나쁜 일자리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상용직 비중은 61.0%에서 61.3%로 높아졌다. 그럼에도 취업자 수와 실제 노동 투입량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고용 인원만으로 노동시장의 변화를 온전히 설명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수출의 고용 기여도 역시 마찬가지다. 2024년 전체 취업자 가운데 수출이 유발한 비중은 20.7%에서 22.2%로 상승했다. 수출이 일자리를 만드는 역할까지 줄어든 것은 아니다. 수출 규모가 커지면서 전체 고용에서 차지하는 몫은 확대됐지만, 수출 10억원당 취업유발 인원은 감소했다. 수출의 양적 성장과 고용 창출의 효율을 구분해야 산업구조의 변화가 제대로 보인다. 이제 산업의 성과를 설명하는 숫자도 더 정교해질 필요가 있다. 그동안 첨단산업의 경쟁력은 수출액과 설비투자 규모, 세계시장 점유율을 중심으로 평가돼 왔다. 반도체 수출이 얼마나 늘었는지, 어느 기업이 수십조원을 투자하는지, 글로벌 시장에서 몇 위를 차지했는지가 산업정책의 성적표를 채웠다. 모두 중요한 지표다. 수출과 투자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고용과 소득을 늘릴 기반도 약해진다. 다만 그것만으로 한 산업의 성과가 국민경제에 얼마나 넓고 깊게 전달됐는지는 알기 어렵다. 가령 수출액이 크게 늘었더라도 핵심 소재와 장비를 대부분 해외에서 들여왔다면 국내에 남는 부가가치는 달라질 수 있다. 반대로 국내 설계와 소재·부품·장비, 소프트웨어 기업이 함께 성장했다면 생산과 고용의 파급효과는 더 넓게 나타날 여지가 있다. 반도체 공장 하나의 경제적 의미도 공장 안에서만 계산할 수 없는 까닭이다. 그 공장이 국내 협력업체의 기술을 얼마나 끌어올렸는지, 연구개발과 전문서비스 분야에 어떤 수요를 만들었는지, 생산성이 높아진 성과가 임금으로 얼마나 연결됐는지를 함께 살펴봐야 한다. AI와 자동화의 확산은 이러한 질문을 더욱 중요하게 만든다. AI는 일부 업무를 대체하는 동시에 새로운 직무와 수요를 만들어낼 수 있다. 어떤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날지는 산업의 특성과 기술 도입 방식, 노동자의 직무전환 능력에 따라 달라진다. 자동화 투자가 늘어난다는 이유만으로 고용이 감소한다고 단정할 수도, 첨단산업이 성장하니 양질의 일자리도 저절로 늘 것이라고 기대할 수도 없다. 고용의 양과 질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생산성 향상의 성과가 어디로 흘러가느냐다. 노동자 한 사람이 더 많은 가치를 만들어내고 그 성과가 임금 상승으로 이어진다면 신규 채용이 크게 늘지 않더라도 가계소득은 개선될 수 있다. 반대로 기업의 부가가치는 커지는데 노동소득이 정체된다면 수출 호황이 소비로 이어지는 힘은 약해질 수 있다. 물론 이번 산업연관표만으로 임금 분배나 가계의 체감경기가 악화했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 산업별 임금과 노동소득분배율, 신규 채용과 고용 유지, 가계 소비를 함께 살펴야 확인할 수 있는 문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수출액 하나로 성장의 성과를 설명하는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 ‘논어’ 학이편에서 유자(有子)는 ‘본립이도생(本立而道生, 근본이 서야 길이 열린다)’고 했다. 경제성장의 근본은 더 많은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생산성에 있다. 다만 그 성과가 기업의 장부에서 끝나지 않고 국민의 소득과 생활로 어떻게 이어지는지까지 살펴야 성장의 모습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반도체의 성공을 깎아내릴 이유는 없다.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한 첨단산업은 한국 경제가 가진 소중한 자산이다. 그 산업의 생산성을 낮춰 일자리를 억지로 늘리는 방식도 지속 가능하지 않다. 하지만 수출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는 소식과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는 국민의 체감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현실은 놓쳐서는 안 된다. 기업의 실적이 좋아졌다는 사실과 국민의 삶이 나아졌다는 판단 사이에는 확인해야 할 과정이 남아 있다. 한국은행의 산업연관표는 그 과정을 들여다볼 출발점이다. 수출이 얼마나 늘었는지뿐 아니라 국내에 얼마의 부가가치를 남겼고, 어떤 일자리를 만들었으며, 생산성 향상이 임금과 소득에 어떻게 반영됐는지 함께 살펴볼 때 성장의 성과를 더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다. 반도체가 높이 날아오른 것은 분명하다. 이제 살펴야 할 것은 그 성장의 힘이 한국 경제의 다른 산업과 노동자, 가계에 얼마나 넓게 닿고 있는가다. 수출은 성장의 출발점이다. 그 성과가 국민의 소득과 일자리로 이어지는 과정까지 보여줄 때 비로소 성장의 성적표가 완성된다.
2026-09-22 13:00:00
-
-
-
멕시코선 '불만족'·카자흐선 '반복 위반'…신한은행 해외법인 경고등
[경제일보] 신한은행의 멕시코·카자흐스탄 현지법인이 현지 정부의 은행 평가와 금융당국의 규제 준수 측면에서 잇따라 낮은 성적표를 받아든 것으로 나타났다. 신한은행 멕시코법인은 정부 평가에서 2년 연속 ‘불만족’ 판정을 받은 반면 같은 한국계인 하나은행 현지법인은 2년 연속 ‘만족’을 받았다. 또 신한은행 카자흐스탄법인은 외환규정 위반으로 벌금을 부과받았으며, 현지 당국은 일부 사안을 과거 행정제재 이후 1년 이내 다시 발생한 반복 위반으로 적시했다. 3일 경제일보가 멕시코 재무부(SHCP)의 2024·2025년도 은행 성과평가와 카자흐스탄 중앙은행(NBRK)의 행정제재 자료, 신한금융지주의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제출자료 등을 분석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 멕시코 재무부가 지난 7월29일 발표한 ‘2025년도 복수은행 성과평가(EDB)’ 최종 결과에 따르면 Banco Shinhan de México는 ‘No satisfactorio(불만족)’ 판정을 받았다. 평가 대상 49개 은행 가운데 46곳이 만족 판정을 받았으며 불만족은 멕시코신한은행과 Banco Bancrea, Banco Credit Suisse (México) 등 3곳이었다. 반면 Banco KEB Hana México는 ‘Satisfactorio(만족)’ 판정을 받았다. ◆신한 2년 연속 ‘불만족’…하나는 연속 ‘만족’ 멕시코신한은행의 불만족 평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멕시코 재무부가 지난해 7월30일 발표한 2024년도 평가에서는 49개 은행 가운데 45곳이 만족, 3곳이 ‘조건부 만족’을 받았다. 멕시코신한은행은 당시 49곳 가운데 유일하게 ‘불만족’ 판정을 받았다. KEB하나멕시코은행은 만족 평가를 받았다. 이에 따라 멕시코신한은행은 2024·2025년도 2년 연속 불만족, KEB하나멕시코는 2년 연속 만족이라는 엇갈린 성적표를 받았다. 다만 멕시코 정부의 불만족 판정을 은행의 재무 부실이나 건전성 문제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멕시코 재무부는 EDB가 개별 은행의 재무상태나 유동성, 지급능력을 평가하는 제도가 아니라고 명시하고 있다. 은행이 생산활동과 국가 경제성장에 얼마나 기여하는지를 살펴보는 평가로 신용중개·예금, 금융상품·서비스와 인프라, 서비스 품질, 투자·외환업무, 지속가능금융 등이 평가 대상이다. 따라서 불만족 판정만으로 멕시코신한은행의 자본적정성이나 지급능력 등에 문제가 있다고 볼 근거는 없다. 다만 같은 평가를 받은 KEB하나멕시코은행은 2년 연속 만족 판정을 받은 것과 대조된다. 신한금융의 SEC 제출자료에 따르면 신한은행은 Banco Shinhan de Mexico 지분 99.99%를 보유하고 있다. ◆카자흐서는 외환규정 위반…당국 “1년 내 반복” 카자흐스탄에서는 구체적인 외환규정 위반에 따른 행정제재가 확인됐다. 카자흐스탄 중앙은행의 공식 제재 자료에 따르면 Shinhan Bank Kazakhstan은 지난 3월12일 비현금 외화 매매 과정에서 관련 절차를 위반해 6120만1585텡게의 행정벌금을 부과받았다. 특히 중앙은행은 해당 행위를 앞선 행정제재 이후 1년 이내 다시 발생한 반복 위반으로 적시했다. 같은 날 외환 관련 보고 위반에도 별도의 벌금이 내려졌다. 신한은행 카자흐스탄법인은 고객 외환거래와 관련한 현지 외환시장 수요·공급원 모니터링 보고서를 불완전하거나 부정확하게 제출해 19만4626텡게의 행정벌금을 받았다. 당국은 이 사안 역시 앞선 행정제재 이후 1년 이내 반복된 위반으로 명시했다. 이틀 전인 3월10일에도 외환거래 통지 및 외환시장 수급보고, 수출입 외환계약 보고, 비현금 외화 매매 절차 등과 관련한 경고 조치가 잇따른 것으로 중앙은행 자료에서 확인됐다. 신한금융의 SEC 제출자료에 따르면 신한은행은 Shinhan Bank Kazakhstan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신한은행 측은 멕시코법인 평가와 카자흐스탄법인 제재에 대한 질의에 “관련 내용을 부서에 전달해 확인 중이며 현지 확인이 필요한 사안”이라며 “시차 때문에 확인에 시간이 걸리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법인 확대만큼 중요해진 현지 규제 대응 멕시코와 카자흐스탄 사안은 성격이 다르다. 멕시코는 은행의 경제 기여와 금융서비스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는 정부 평가인 반면 카자흐스탄은 외환규정 위반에 따른 행정제재다. 두 사안을 동일한 규제 위반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서로 다른 두 국가에서 신한은행이 사실상 전부를 소유한 현지법인을 둘러싸고 부정적인 평가와 규정 위반 사례가 각각 확인됐다는 점은 해외법인 관리 측면에서 주목할 대목이다. 국내 금융그룹들이 해외사업을 새로운 성장축으로 확대하면서 현지 규제에 대응하는 컴플라이언스 역량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특히 외환거래와 금융당국 보고는 은행 영업의 기본적인 규제 준수 영역이다. 신한금융의 SEC 자료를 보면 신한은행은 미국·일본·유럽·캄보디아·카자흐스탄·중국·캐나다·베트남·멕시코·인도네시아 등에 해외 은행 자회사를 두고 있다. 해외 네트워크가 넓어질수록 본사가 관리해야 할 현지 법률과 감독규정도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이번 사안의 핵심 역시 해외법인의 재무건전성보다는 현지화와 규제 대응 역량에 있다. 멕시코에서 2년 연속 불만족 평가를 받은 원인이 무엇인지, 카자흐스탄에서 앞선 행정제재 이후 외환규정 위반이 반복된 이유가 무엇인지가 관건이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해외사업의 경쟁력은 자산과 이익을 얼마나 늘리느냐뿐 아니라 현지 금융회사로서 규제를 얼마나 충실히 준수하고 감독당국의 요구에 대응하느냐에도 달려 있다”며 “신한은행이 해외 영토 확대와 함께 현지법인 관리·감독 체계를 얼마나 정교하게 다듬을지가 과제로 남는다”고 말했다.
2026-09-03 16: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