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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X·재개발·청년주거…서울·경기·인천 표심은 집과 출퇴근에 있다
[경제일보] 수도권 유권자의 관심은 생활 문제로 향하고 있다. 집값과 전월세 부담은 여전히 무겁고, 출퇴근 시간은 하루의 질을 좌우한다. 노후 주거지 정비는 더 늦추기 어려운 과제가 됐고, 청년·신혼부부의 주거 불안은 서울·경기·인천 전체의 문제로 번졌다. 6·3 지방선거 수도권 표심의 상당 부분은 이 생활 의제 위에 놓여 있다. 서울·경기·인천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여야 후보들은 주택 공급, 재개발·재건축, GTX와 광역교통망, 청년주거 대책을 앞세우고 있다. 정당 구도와 정권 평가도 선거의 큰 축이지만 수도권 유권자의 생활 현장으로 들어가면 쟁점은 더 구체적이다. 집은 자산이자 생계이고 출퇴근은 하루의 시간을 좌우하는 문제다. 이번 선거에서 서울은 재개발·재건축과 청년주거가 주요 의제로 떠올랐다. 경기는 GTX와 1기 신도시 재정비, 반도체 산업벨트와 주거 기반 확충이 맞물려 있다. 인천은 송도·청라·영종 등 신도시 성장과 제물포·동구·미추홀·부평 등 원도심 회복이 함께 걸려 있다. 수도권 세 지역의 공통 쟁점은 결국 주거와 이동이다. 서울, 공급 속도와 청년주거가 승부처 서울시장 선거의 핵심 경쟁축은 더불어민주당 정원오 후보와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 간 경쟁으로 형성돼 있다. 다만 실제 후보는 두 사람에 그치지 않는다. 개혁신당 김정철 후보와 정의당 권영국 후보 등도 선거전에 참여하고 있어 이 기사는 주요 양당 후보의 주거·교통 공약 경쟁을 중심으로 다룬다. 서울의 쟁점은 주택 공급 속도와 정비사업 방식이다. 주요 언론의 공약 비교 보도에 따르면 정원오 후보와 오세훈 후보는 모두 2031년까지 30만호 이상 주택 공급을 제시했다. 정 후보는 정비사업 기간 단축과 조기 착공을 강조하고 있다. 오 후보는 민간 재개발·재건축을 중심으로 한 공급 확대와 기존 서울시 정비정책의 연속성을 앞세운다. 두 후보 모두 공급 확대를 말하지만 해법은 다르다. 정 후보는 정비사업 절차를 줄이고 조기 착공을 유도하는 데 무게를 둔다. 오 후보는 민간 정비사업의 사업성과 속도를 높이는 쪽에 초점을 맞춘다. 유권자가 봐야 할 대목은 물량 숫자보다 실제 착공 가능성이다. 정비사업은 조합 설립, 사업시행인가, 관리처분, 이주, 공사비 협상, 금융 조달을 통과해야 한다. 공약이 행정 절차와 재원 계획까지 담고 있는지가 관건이다. 청년주거도 서울 선거의 주요 쟁점이다. 청년 1인 가구와 신혼부부는 월세와 전세보증금 부담에 직접 노출돼 있다. 공공임대 확대, 역세권 청년주택, 주거비 지원, 도심 내 소형주택 공급은 모두 필요한 정책 수단이다. 그러나 재원과 입지, 공급 시기가 함께 제시되지 않으면 체감 효과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어느 지역에 어떤 방식으로 얼마의 예산을 들여 언제 입주 가능한 물량을 만들 것인지가 핵심이다. 서울의 교통 공약 역시 주거 공약과 분리되지 않는다. 강북과 서남권의 출퇴근 시간을 줄이지 못하면 주거 선택지는 좁아진다. 철도망 확충, 도로 지하화, 도시철도 연장, 버스체계 개편 등 후보들이 내놓은 교통 공약은 모두 생활권 재편과 맞닿아 있다. 문제는 재원과 중앙정부 협의다. 서울시가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사업과 국토교통부·기획재정부·민간사업자와 협의해야 하는 사업을 구분해 봐야 한다. 경기, GTX와 신도시 재정비가 생활 의제 경기도지사 선거의 주된 경쟁축은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후보와 국민의힘 양향자 후보 간 경쟁으로 짜여 있다. 다만 개혁신당 조응천 후보 등도 출마해 실제 선거는 다자 구도로 진행되고 있다. 이 기사는 수도권 최대 유권자 지역인 경기도에서 주요 양당 후보의 GTX·신도시·반도체 공약이 생활 의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중심으로 살핀다. 경기의 핵심은 출퇴근과 도시 재정비다. 경기도는 서울보다 넓고 도시별 성격도 다르다. 성남·수원·고양·부천 등 기존 대도시, 분당·일산·평촌·산본·중동 등 1기 신도시, 용인·화성·평택의 반도체 산업벨트, 경기 북부와 접경지역의 교통 소외 문제가 한 선거 안에 들어와 있다.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GTX는 선거용 구호가 아니라 도민의 하루 시간을 바꾸는 생활 의제다. 연합뉴스와 지역 언론의 공약 비교 보도에 따르면 경기지사 후보들은 GTX 조기 개통과 확충, 1기 신도시 재정비, 3기 신도시 적기 조성, 반도체 클러스터와 첨단산업 육성을 주요 현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추 후보는 수도권 30분 출근권과 교통 패스 통합, 공공주택과 주거 안정에 무게를 둔다. 양 후보는 반도체·AI·로봇 등 첨단산업 육성과 권역별 산업 기반 조성을 전면에 내세운다. 경기도 유권자에게 출퇴근 시간은 소득과 돌봄의 문제다. 왕복 두세 시간이 걸리는 통근은 불편을 넘어 생활의 부담으로 이어진다. 일과 가정, 육아와 여가를 모두 압박한다. GTX가 실제로 개통되고 환승 체계가 정비되면 경기 외곽의 생활권은 달라질 수 있다. 반대로 사업 일정이 늦어지거나 역세권 개발만 앞서면 교통 개선보다 집값 기대와 임대료 상승이 먼저 나타날 수 있다. 1기 신도시 재정비도 마찬가지다. 분당·일산·평촌·산본·중동은 노후 주거지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지역별 여건은 다르다. 용적률 완화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주대책, 학교와 도로, 상하수도, 공원, 의료시설 등 기반시설 부담을 함께 계산해야 한다. 주민들이 원하는 것은 발표가 아니라 실행 일정이다. 특별법과 마스터플랜이 있어도 인허가와 사업성, 공사비가 맞지 않으면 현장은 움직이지 않는다. 경기 남부의 반도체 산업벨트도 주거·교통과 이어진다. 첨단산업을 키우려면 공장과 연구소만으로는 부족하다. 인재가 살 수 있는 주거지, 통근 가능한 철도·도로망, 교육·의료·문화 기반이 함께 필요하다. 반도체 클러스터 공약이 실제 지역 경제로 이어지려면 산업단지 지정과 기업 유치뿐 아니라 주거 공급과 교통망 확충이 병행돼야 한다. 인천, 신도시 성장과 원도심 회복 사이 인천시장 선거의 핵심 경쟁축은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후보와 국민의힘 유정복 후보 간 경쟁으로 형성돼 있다. 다만 개혁신당 이기붕 후보도 출마해 실제 선거는 3파전 구도다. 인천은 서울·경기와 다른 복합성을 갖고 있다. 송도·청라·영종은 국제도시와 첨단산업을 말하고, 원도심은 재생과 정비, 생활 기반 회복을 요구한다. 검단은 입주 인프라와 교통을 묻고, 강화·옹진은 접근성과 생활서비스를 본다. 인천의 쟁점은 신도시 성장과 원도심 회복의 균형이다. 인천시장 후보 공약 비교 보도에 따르면 박찬대 후보는 인공지능·바이오·콘텐츠·에너지 등 신산업 육성을 내세우고 있다. 유정복 후보는 교통·복지 공약과 도시 경쟁력 강화 구상을 함께 제시하고 있다. 이기붕 후보도 바이오와 청년 정착 등을 주요 의제로 제시하고 있다. 세 후보 모두 첨단산업 육성을 말하지만 산업을 어디에 연결할 것인지에서는 차이가 있다. 인천 유권자가 볼 대목은 공약의 연결성이다. GTX와 도시철도, 공항철도, 경인선 지하화, 제2공항철도, 원도심 재개발은 따로 떨어진 사업이 아니다. 교통망이 늦어지면 검단과 영종의 생활 불편은 길어지고 원도심 정비가 지연되면 인천 내부 격차는 커진다. 반대로 개발 속도만 앞세우면 기존 주민의 이주 부담과 상권 공동화가 커질 수 있다. 원도심 재생 공약은 특히 세밀하게 봐야 한다. 재개발·재건축은 낡은 건물을 새 아파트로 바꾸는 사업에 그치지 않는다. 기존 주민의 정착 가능성, 상가 세입자 대책, 기반시설 확충, 공공기여 활용, 공사비 부담이 함께 따라온다. 원도심을 살리겠다는 말은 쉽지만 실제 행정은 복잡하다. 후보가 제시한 공약이 어느 구역에 어떤 방식으로 적용되는지, 재원과 사업 주체가 누구인지가 중요하다. 공약은 숫자보다 실행 조건을 봐야 한다 수도권 세 지역을 관통하는 쟁점은 같다. 후보들은 미래도시를 말하지만 유권자는 오늘의 생활을 묻고 있다. 출근길이 줄어드는가. 아이를 맡기고 일하러 갈 수 있는가. 월세를 감당할 수 있는가. 오래된 집을 고칠 수 있는가. 청년이 지역을 떠나지 않아도 되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거대 담론도 표심을 붙잡기 어렵다. 선거 때마다 GTX는 반복해서 등장한다. 그러나 GTX는 노선도만 그린다고 달리는 열차가 아니다. 재원 조달, 민자사업성, 역사 위치, 환승 체계, 기존 철도와의 연계, 공사 지연 가능성, 운영비 부담이 함께 검토돼야 한다. 재개발·재건축도 규제 완화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공사비 급등, 금융비용, 이주대책, 학교와 도로 등 기반시설 부담을 함께 설명해야 한다. 청년주거 공약 역시 마찬가지다. 월세 지원은 당장의 부담을 덜 수 있지만 지속 가능한 재원이 없으면 일시 처방에 그친다. 공공임대는 공급 물량과 입지가 중요하고, 역세권 청년주택은 임대료 수준과 실제 입주 가능성이 관건이다. 청년층을 위한 주거 공약은 숫자가 아니라 체감 가능성으로 평가해야 한다. 이번 수도권 선거는 거대 정치 구호와 생활 의제가 겹쳐진 선거다. 서울은 재개발·재건축과 청년주거, 경기는 GTX와 신도시 재정비, 인천은 원도심과 광역교통망이 표심의 중심에 놓여 있다. 후보들이 제시한 공약이 선거 후 예산과 행정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검증의 영역에 남아 있다. 유권자가 볼 기준은 많지 않다. 교통 공약은 노선보다 재원이다. 주택 공약은 물량보다 착공 가능성이다. 청년주거 공약은 구호보다 지속성이다. 원도심 공약은 개발이익보다 정착 대책이다. 6·3 지방선거 수도권 표심은 결국 집과 출퇴근에 있다. 그리고 그 표심은 선거가 끝난 뒤에도 후보들의 공약 이행을 계속 추적할 것이다.
2026-05-30 1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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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대전환' 위성곤 vs '경제 재건' 문성유…부동층 표심 주목
[경제일보] 6·3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 중 하나로 부상한 제주도지사 선거가 본격적인 ‘가치 대결’의 막을 올렸다.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후보가 인공지능(AI)과 신재생에너지를 도민의 ‘기본권’으로 규정하며 거대한 담론을 선점하자, 국민의힘 문성유 후보는 정통 경제 관료의 전문성을 앞세워 ‘실현 가능한 소득 증대’로 맞불을 놨다. 단순한 정당 간 대결을 넘어 제주의 향후 10년 먹거리 설계를 두고 벌이는 두 후보의 정책 전쟁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15일 정치권에 따르면, 두 후보는 전날 나란히 제주도선거관리위원회에서 후보 등록을 마치고 본격 선거전에 들어갔다. “AI와 에너지는 도민의 공공재”…“구호 대신 숫자로 승부” 기선을 제압한 쪽은 3선 국회의원 출신의 위성곤 후보가 내건 ‘미래 주권론’이다. 위 후보는 후보 등록과 동시에 ‘1조원 규모 도민주권 혁신펀드’와 ‘AI 기본권’을 전면에 내세웠다. 제주의 바람과 햇빛이 도민의 자산이듯, 생성형 AI를 비롯한 첨단 기술 또한 모든 도민이 누려야 할 권리로 보장돼야 한다는 논리다. 위 후보의 구상은 AI를 교육과 복지, 산업 전반에 이식해 제주의 산업 지도를 새로 그리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특히 그는 “제주의 자원을 도민의 소득으로 돌려주겠다”며 골목상권 프로젝트와 민생추경을 결합한 입체적 공세를 펼치고 있다. 이는 경선 과정에서 흩어진 지지층을 ‘미래 비전’ 아래 결집시키는 전략적 포석으로도 풀이된다. 이에 맞선 문 후보는 ‘경제도지사’ 프레임을 확고히 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기획조정실장과 한국자산관리공사 사장을 지낸 그의 경력은 공약의 무게감을 더한다. 문 후보는 “제주 경제의 근본 체질을 바꿔야 한다”며 ‘도민 소득 10만 달러 시대’를 선포했다. 관광과 1차 산업에만 기댄 현재의 취약한 구조로는 청년 이탈과 지역 침체를 막을 수 없다는 진단이다. 문 후보의 공격 칼날은 위 후보 공약의 ‘실현 가능성’을 향해 있다. 특히 위 후보의 10GW 해상풍력 사업과 HVDC 구축 구상에 대해 “재원 조달 방식이 불투명한 현혹적 구호”라고 비판하며, 정교한 재정 설계와 기업 투자 유치를 통한 ‘현실적 성장’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단순한 비판을 넘어 전문가적 관점에서 정책의 허점을 파고들어 부동층을 흔들겠다는 계산이다. 제주의 가장 오래된 난제인 제2공항 건설을 두고도 두 후보의 시각은 선명하게 엇갈린다. 위 후보는 ‘도민 자기결정권’과 ‘투명한 정보 공개’를 강조하며 갈등을 관리하는 프로세스에 방점을 찍었다. 반면, 문 후보는 제2공항을 미룰 수 없는 ‘성장 인프라’로 규정하고, 결정 지연에 따른 기회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책임 있는 추진력을 강조하고 있다. 40% 부동층의 표심…‘체감 민생’이 승패 가른다 현재 판세는 위 후보가 여론조사상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39%에 달하는 ‘태도 유보층’이 변수다. KBS제주방송총국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한 여론조사(KBS제주방송총국 의뢰, 한국리서치 조사, 2026년 4월 13~14일, 제주도내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 대상, 무선전화 안심번호 추출, 면접원에 의한 전화면접조사 방식, 응답률 27.9%,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 위 후보가 민주당 후보로 본선에 나서는 가상대결의 후보 지지도는 위성곤 47%, 문성유 6%로 나타났다. 다만, ‘지지하는 사람이 없다’ 36%, 모름·무응답 3%까지 합치면 태도 유보층이 39%다. 위 후보의 우위가 뚜렷하지만, 문 후보 입장에서는 아직 마음을 정하지 않은 유권자층이 크다는 점이 추격의 공간이다. 이에 제주 정치권에서는 민생경제 정책이 이번 선거의 승패를 가를 승부처로 주목하고 있는 분위기다. 위 후보가 민생추경과 골목상권, 도민주권 혁신펀드로 생활경제 회복을 약속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 후보가 도민 소득 10만불, 경제 구조 개편, 투자 유치를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이번 제주도지사 선거는 ‘검증된 정치인의 미래 전환론’과 ‘실력 있는 경제 관료의 현실 재건론’ 중 도민들이 어느 쪽을 더 신뢰하느냐에 달려 있다”며 “제주 유권자에게 물가, 일자리, 상권 침체, 주거비, 의료 접근성 등 당장 체감할 수 있는 민생정책이 부동층의 표심을 이끌며 승부를 결정질 것”이라고 했다.
2026-05-15 1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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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풍력 100조 대전환' vs '30년 재정통의 경제 회복'…미래와 현실 격돌
[경제일보] 이번 지방선거에서 제주특별자치도는 단순한 변방의 섬이 아니다. 인구 70만명의 소규모 광역자치단체이지만, 제주의 선거판은 대한민국이 직면한 굵직한 난제들이 얽혀 있는 거대한 용광로다. 제2공항 건설을 둘러싼 개발과 보전의 딜레마, 관광산업의 체질 개선,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에너지 전환과 청년 일자리 문제까지, 제주는 대한민국의 균형발전과 미래 정책이 시험대에 오르는 최전선이다. 이번 제주도지사 선거는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후보와 국민의힘 문성유 후보의 명운을 건 양자 대결로 압축됐다. 위 후보는 치열했던 당내 경선 결선 투표에서 문대림 의원을 꺾고 최종 본선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반면 국민의힘은 일찌감치 문성유 전 한국자산관리공사(KAMCO) 사장을 단수 공천하며 대항마로 내세웠다. 정치적 중량감과 거대 담론을 앞세운 '정치인'과, 실물 경제와 예산 구조에 밝은 '행정·재정가'의 대결. 이들의 상반된 이력만큼이나 제주를 향한 비전과 해법도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위성곤, 여당 프리미엄과 'AI·해상풍력' 거대 플랜 '승부수' 위 후보의 가장 큰 무기는 탄탄한 지역 기반과 '여당 후보'로서의 정책 실행력이다. 서귀포시를 지역구로 20·21·22대 내리 3선을 지낸 그는 제주 민심의 기저를 누구보다 잘 읽어내는 정치인으로 꼽힌다. 앞서 위 후보는 예비후보 등록 기자회견에서 오영훈 현 지사, 문대림 의원과 손을 맞잡고 "하나 된 힘으로 본선 승리를 이루겠다"고 천명했다. 이는 경선 과정에서 빚어진 파열음을 조기에 불식시키고 여권의 조직력을 극대화하려는 고도의 정치적 포석으로 읽힌다. 위 후보가 그리는 제주의 미래는 이른바 '에너지·AI 대전환'이다. 국가 AI 데이터센터 유치, 10GW 규모의 해상풍력 단지 조성, 초고압직류송전(HVDC) 망을 통한 전력 공급 구상이 핵심이다. 제주의 거센 바람을 전력과 도민 소득(바람연금)으로 환원하고, 섬이라는 지리적 한계를 '물류등가제'와 스마트 물류거점 조성으로 돌파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공약의 스케일이 큰 만큼 맹점도 뚜렷하다. 막대한 재원 조달과 환경 파괴 논란, 주민 수용성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문 후보 측이 "100조원 규모에 달하는 사업의 구체적인 자금 조달 계획을 밝히라"고 정조준한 것도 위 후보의 거대 담론이 자칫 '선거용 장밋빛 청사진'에 그칠 수 있다는 날 선 비판이다. ◆30년 '예산통' 문성유, 실용주의와 관광 구조 개편 이에 맞서는 문 후보는 철저히 '실물 경제'와 '민생'에 방점을 찍고 있다. 기획재정부 예산실과 한국자산관리공사 사장을 거치며 국가 경제의 밑그림을 그려온 30년 관료의 경험이 그의 가장 큰 자산이다. 앞서 제주MBC와의 인터뷰에서 문 후보는 "국가 경제정책과 예산을 다뤄온 전문성을 바탕으로 위기에 처한 제주 경제를 반드시 회복시키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거창한 이념이나 구호 대신 실질적인 도민 삶의 질 개선에 집중하겠다는 전략이다. 문 후보의 핵심 타깃은 위기에 처한 '제주 관광'이다. 양적 팽창에 매몰되어 도민의 실질 소득으로 이어지지 않는 구조적 모순을 깨겠다는 것이다. 문 후보는 축제·행사 음식의 '가격 및 중량 사전등록제', '24시간 관광 불편 환불센터' 운영 등을 공약하며 이른바 '바가지·지루함·수익 유출 없는 3무(無) 관광'을 주창했다. 관광객 수라는 허수 대신 도민의 지갑을 채우고 지역 상권의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실용적 접근이다. 하지만 문 후보 앞에도 험난한 과제가 놓여 있다. 낮은 초기 인지도와 불리한 정당 지형이다. 제주에서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이는 민주당의 아성을 단기간에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보수층의 결집을 넘어 중도층을 견인할 '한 방'이 절실하다. ◆여론조사 공정성 논란, 그리고 침묵하는 39% 현재 겉으로 드러난 여론의 지표는 위성곤 후보의 압도적 우세를 가리킨다. KBS제주방송총국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한 여론조사(KBS제주방송총국 의뢰, 한국리서치 조사, 2026년 4월 13~14일, 제주도내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 대상, 휴대전화 안심번호 추출, 면접원 전화면접 방식, 지역·성별·연령별 가중치 부여, 응답률 27.9%,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 위 후보는 47%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6%에 그친 문 후보를 크게 앞섰다. 하지만 이 수치를 본선 경쟁력으로 직결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무엇보다 '지지하는 사람이 없다'(36%)거나 '모름·무응답'(3%)으로 답한 태도 유보층, 이른바 부동층이 무려 39%에 달한다. 유권자 10명 중 4명이 아직 마음을 정하지 않고 관망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조사 방식에 대한 공정성 논란도 변수로 작용했다. 여론조사 발표 당시 문 후보 측은 해당 여론조사의 가상대결 문항에서 자신을 국민의힘 소속으로 명시하지 않았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에 KBS제주 측은 선거법상 선관위에 등록된 경력을 사용했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향후 본선 레이스가 본격화되고 정당 간 대립 전선이 명확해지면, 숨죽이고 있는 39%의 민심이 어느 쪽으로 쏠릴지가 이번 선거의 최종 승패를 가를 전망이다. 이번 선거의 승패를 가를 핵심 의제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제주 사회의 가장 큰 뇌관인 '제2공항' 문제다. 최근 국토교통부가 주민투표 실시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차기 도지사의 갈등 조정 능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또한 '관광 경제의 질적 전환' 문제도 주요 변수다. 지난해 제주 방문 관광객은 전년 대비 소폭 증가했지만, 내국인은 줄고 외국인이 급증하는 기형적 구조를 보였다. 양적 지표와 도민 체감 경기 사이의 괴리를 메울 해법이 절실한 상황이다. 아울러 섬이라는 태생적 한계로 인한 물류비와 생활비 부담 문제도 승패를 가를 승부처 중 하나다. 정치권 관계자는 "진영 논리에 갇힌 맹목적 투표가 아니라 상식과 원칙에 입각해 제주의 미래를 책임질 적임자를 찾고 있다"며 "제2공항을 둘러싼 소모적 갈등에 마침표를 찍고, 팍팍한 도민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리더십이 요구되는 분위기"라고 했다.
2026-05-10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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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의 심장'서 벌어지는 경제 재건 경쟁
[경제일보] 대구시장 선거가 이번 지방선거의 핵심 승부처로 떠오르고 있다. 대구는 오랫동안 보수 정당의 강세 지역으로 분류돼 왔지만,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후보와 국민의힘 추경호 후보가 오차범위 안팎의 접전을 벌이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국민의힘은 지난 4월 26일 추 후보를 대구시장 후보로 확정했고, 이로써 김 후보와의 본선 대진이 완성됐다. 주호영 국회부의장과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무소속 출마를 접으면서 보수 표심 분산 가능성도 상당 부분 정리됐다. 이번 선거의 표면은 정당 대결이지만, 본질은 경제다. 대구 시민이 묻는 질문은 단순하다. ‘누가 대구 경제를 다시 움직일 수 있는가’, ‘누가 청년을 붙잡을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가’, ‘누가 신공항, 행정통합, 미래산업, 민생경제를 구호가 아니라 실행계획으로 바꿀 수 있는가’ 등이다. 지난 2024년 국가데이터처의 지역소득 잠정 자료에서도 대구는 제조업과 건설업 부진 등으로 실질 지역내총생산이 전년보다 0.8% 감소한 지역으로 나타났다. 대구 경제의 체감 위기가 이번 선거의 중심 의제가 된 이유다. 현재 여론은 혼전이다. SBS가 입소스에 의뢰한 여론조사(SBS 의뢰, 입소스 수행, 2026년 5월 1~3일, 대구 거주 만 18세 이상 유권자 801명 대상, 무선 전화면접조사, 성·연령·지역 할당 후 무선 가상번호 추출, 응답률 12.6%,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5%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또는 SBS 홈페이지 참조)에서 김 후보는 41%, 추 후보는 36%의 지지율을 보였다. 두 후보의 격차는 5%포인트로 오차범위 안이며, 부동층은 21%였다. 중도층에서는 ‘김부겸 54%·추경호 23%’로 김 후보가 우세했지만, 정권 지원론 41%, 정권 견제론 44%로 선거 구도 자체는 팽팽했다. 차기 대구시장의 최우선 과제로는 일자리와 서민경제 지원이 50%로 가장 높았고, 미래산업 육성 19%, 대구경북 신공항 건설 14% 순이었다. 대구MBC가 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한 여론조사(대구MBC 의뢰, 에이스리서치 수행, 2026년 5월 2~3일, 대구 거주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 1004명 대상, ARS 조사, 응답률 6.1%,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는 ‘김부겸 45.9%·추경호 42.4%’로 나타났다. 격차는 3.5%포인트로 역시 오차범위 안이다. 특히 4월 중순 1차 조사에서 14.1%포인트였던 두 후보 격차가 국민의힘 후보 확정 뒤 크게 줄었다는 점은 보수층 결집이 시작됐음을 보여준다. 같은 조사에서 정당 지지도는 국민의힘 39.5%, 민주당 31.1%로 국민의힘이 앞섰고, 최우선 현안은 일자리 창출 51.9%, 신공항 이전 15.2%, AI 등 미래 신산업 육성 13.9%였다. 다만, 여론조사는 방식에 따라 다르게 읽을 필요가 있다. 실제 KBS대구·한국리서치 전화면접 조사(KBS대구총국 의뢰, 한국리서치 조사, 2026년 4월 27~29일, 대구 거주 만 18세 이상 시민 800명 대상, 휴대전화 가상번호를 활용한 면접원 전화면접조사 방식, 응답률 20.5%,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5%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는 ‘김부겸 38.4%·추경호 31.2%’였지만, 매일신문·한길리서치 ARS 조사에서는 ‘추경호 46.1%·김부겸 42.6%’로 결과가 엇갈린 바 있다. 같은 지역, 비슷한 시기의 조사라도 전화면접과 ARS, 재질문 여부, 응답률, 표본 구성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구 판세는 ‘김부겸 우세’나 ‘추경호 역전’으로 단정하기보다 김 후보의 개인 경쟁력과 추 후보의 보수 결집력이 충돌하는 초접전 구도로 보는 것이 정치권의 중론이다. ◆‘인물’은 합격점·‘간판’은 약점…GRDP 150조·일자리 10만개 ‘현실성’ 관건 김 후보의 강점은 대구에서 축적한 정치적 확장성이다. 그는 민주당 후보이지만 대구 유권자에게 완전히 낯선 인물이 아니다. 또한 김 후보는 행정안전부 장관과 국무총리를 지낸 경험, 여당과 중앙정부를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을 자신의 핵심 자산으로 내세우고 있다. 약점도 분명하다. 대구에서 민주당 간판은 여전히 무겁다. SBS 조사에서 정당 구도는 정권 지원론보다 정권 견제론이 근소하게 높았고, 대구MBC 조사에서도 정당 지지도는 국민의힘이 민주당을 오차범위 밖에서 앞섰다. 김 후보 개인 지지율이 민주당 지지율보다 높다는 것은 강점이지만, 동시에 민주당에 대한 지역 불신을 후보 개인이 계속 돌파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기회는 산업 전환 공약에 있다. 김 후보는 ‘대구 산업 대전환’을 1호 공약으로 내세우며 경제 재도약, 민생경제 활성화, 균형발전을 3대 비전으로 제시했다. 김 후보는 오는 2035년까지 대구 GRDP를 150조원 규모로 키우고, 양질의 일자리 10만개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또 대구를 ‘남부권 판교’, 양자산업과 AI 로봇 수도, AX 도시로 만들겠다는 구상도 제시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김 후보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은 공약의 현실성 검증이다. GRDP 150조원, 일자리 10만개, AI·양자·로봇 수도라는 목표는 크다. 하지만 대구 시민에게 필요한 것은 큰 단어보다 실행 경로다. 어느 산업단지에 어떤 기업을 유치할 것인지, 청년 임금은 얼마나 높일 것인지, 신공항과 산업단지를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가 따라붙지 않으면 미래산업 공약은 추상론으로 흐를 수 있다. ◆‘경제 해결사’ 자임…공천 피로감·‘12·3 계엄 수사’ 암초 추 후보의 강점은 경제관료 출신이라는 점이다. 그는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냈고, 대구 달성에서 3선을 한 현역 정치인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추 후보는 대구 경제를 살릴 적임자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고, 대구 주력 산업을 AI와 미래 모빌리티 등 첨단산업으로 전환하고 반도체 클러스터와 국가대표 창업도시를 조성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추 후보의 약점은 공천 과정의 피로감과 보수 정당에 대한 책임론이다. 국민의힘 후보 확정 전까지 대구 공천을 둘러싼 갈등이 노출됐고, 추 후보 본인도 후보 확정 전 당내 혼선과 민심 이반을 인정하는 취지의 설명한 바 있다. 대구가 보수의 강세 지역이라는 사실은 추 후보에게 기반이지만, ‘어차피 보수’라는 인식은 오히려 유권자의 피로감을 키울 수 있다. 기회는 보수 결집과 경제 프레임이다. 이에 추 후보는 대구 경제 회복과 청년 유출 방지를 위해 첨단산업 육성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하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반도체 공장 유치를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추 후보에게 있어 가장 큰 위협은 중도층 열세다. SBS 조사에서 중도층만 놓고 보면 ‘김부겸 54%·추경호 23%’였다. 대구 선거에서 국민의힘 지지층 결집은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보수층을 결집하면서도 중도층에 ‘경제를 맡길 수 있는 후보’라는 신뢰를 줄 필요가 있다. 또한 12·3 비상계엄 관련 수사와 정치적 공방이 선거 쟁점으로 커질 경우, 경제 메시지가 흐려질 위험도 있다. ◆‘이념’보다 ‘일자리’…중도층·보수 결집 강도 핵심 변수 김 후보의 히든카드는 여당 후보의 실행력이다. 그는 중앙정부와의 협력, 대구·경북 행정통합, 신공항, 기업은행 이전, AI 산업전환을 하나의 패키지로 묶으려 한다. 대구 시민에게 ‘이번에는 예산과 권한을 가져올 수 있다’는 신뢰를 주는 것이 핵심 전략이다. 반면, 추 후보의 히든카드는 경제부총리 경험과 보수 결집이다. 그는 경제를 아는 후보, 기업을 유치할 후보, 대구 산업구조를 바꿀 후보라는 이미지를 전면에 세우고 있다. 특히 반도체 공장 유치, AI·미래 모빌리티 전환, 창업도시 구상은 대구의 청년 유출 문제를 정면으로 겨냥한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대구 선거의 승부처를 크게 ‘일자리’, ‘중도층’, ‘보수 결집 강도’ 세 가지로 전망하고 있다. SBS, 대구MBC 등의 여론조사에서는 모두 일자리와 서민경제가 최우선 과제로 꼽였고, 김 후보와 추 후보는 각각 ‘중도 우위 유지’, ‘중도 열세 회복’의 숙제를 안고 있다. 아울러 대구라는 지역의 특성상 보수 결집의 강도는 두 후보의 희비가 가르는 여전히 막강한 변수다. 다만, 대구는 이번 선거에서 이념만 묻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치권 관계자는 “대구 시민은 이미 오래 기다렸다. 청년은 떠났고, 제조업은 늙었고, 신공항은 아직 체감되지 않는다고들 한다”며 “선거 과정에서 김 후보의 경우 ‘중앙정부를 움직일 수 있는 시장’임을 증명해야 하고, 추 후보는 ‘경제를 실제로 살릴 수 있는 시장’임을 각각 증명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2026-05-09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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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낡은 '엄포', 기름값 잡는 도깨비방망이 아니다
2026년 3월, 남녘에는 벚꽃이 만개했다는 소식이 들려오지만 서민들의 경제 기상도는 여전히 혹한기다. 장바구니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그 정점에는 언제나 그렇듯 ‘기름값’이 자리하고 있다. 주유소 미터기에서 맹렬한 속도로 올라가는 숫자를 바라보는 운전자들의 심정은 한숨을 넘어 분노에 가깝다. 국제 유가가 들썩인다는 뉴스가 나오기가 무섭게 동네 주유소의 가격표는 즉각 반응한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전광판의 숫자가 바뀐다. 반면 국제 유가가 하락세로 돌아섰다는 소식에는 묵묵부답이다. 내릴 때는 깃털처럼 천천히, 올릴 때는 로켓처럼 솟구친다는 이른바 ‘비대칭 전가’ 현상이다. 수십 년째 반복되어 온 한국 석유 시장의 고질적인 불신 구조가 2026년 봄에도 어김없이 재연되고 있다. 국민적 비난 여론이 비등점을 향해 치닫자 정부는 익숙한 카드를 꺼내 들었다.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합동 점검반을 가동하고 “위기를 틈탄 편승 인상과 매점매석을 엄단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주유소와 정유사를 향한 강력한 경고 메시지다. 그러나 우리는 이 장면을 너무나 자주 목격해 왔다. 유가 급등기마다 정부는 ‘엄정 대응’을 외쳤고 업계는 납작 엎드리는 시늉을 했으며 결국 가격은 시장의 논리대로 움직였다. 정부의 엄포가 실효성 있는 대책이라기보다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한 일종의 ‘행정적 의식(儀式)’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이 오래된 촌극 속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목소리는 제각각이다. 최일선에 있는 주유소 업주들은 “우리는 동네북이 아니다”라고 항변한다. 정유사가 공급 가격을 올리는데 소매상이 무슨 재주로 가격을 억제하느냐는 것이다. 임대료와 인건비 상승, 전기차 확산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 속에서 마진을 줄이라는 것은 생존권을 위협하는 처사라고 주장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국내 주유소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이며 알뜰주유소와의 경쟁으로 박리다매 구조가 고착화된 지 오래다. 공은 자연스럽게 정유사로 넘어간다.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 HD현대오일뱅크 등 정유 4사의 논리는 견고하다. 한국은 원유를 전량 수입하는 국가이며 국내 공급가는 싱가포르 국제 석유제품 가격과 환율에 연동되어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폭리는 오해”라며 영업이익률이 높지 않음을 강조한다. 오히려 유류세 등 세금 비중이 가격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구조적 문제를 지적한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느끼는 괴리감은 ‘재고 관리의 마법’에 있다. 유가 상승기에는 비싸게 들여올 원유를 대비해 미리 가격을 올린다는 ‘선반영’ 논리를 펴고 하락기에는 과거에 비싸게 사 둔 재고 소진을 이유로 인하를 늦춘다. 기업 입장에서야 리스크 관리겠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이익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화하는 불공정 게임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과점 체제인 정유 업계가 가격 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는 한, 이러한 불신은 영원히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문제의 본질은 정부의 대응 방식에 있다. 가격은 기본적으로 수요와 공급 그리고 원가 구조에 의해 결정되는 시장의 변수다. 정부가 관치(官治)의 칼을 빼 든다고 해서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파고를 막을 수는 없다. 과거 이명박 정부 시절의 ‘기름값 묘한 발언’이나 박근혜 정부의 알뜰주유소 정책, 문재인 정부의 유류세 인하 등 역대 정권마다 갖가지 처방을 내놨지만 시장의 가격 결정 메커니즘을 인위적으로 통제하려던 시도는 대부분 단기 미봉책에 그쳤다. 더욱이 정부의 경고가 공허하게 들리는 것은 가격 구조의 가장 큰 지분을 정부 자신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휘발유 가격의 상당 부분은 유류세(교통세·주행세·교육세)와 부가가치세다. 국제 유가가 오르면 정유사의 매출도 늘지만 정부가 거둬들이는 세수도 함께 늘어나는 구조다. 서민들의 고통을 진정으로 분담하고자 한다면 민간 기업의 팔을 비틀어 가격을 누르라고 호통칠 것이 아니라 세금 구조의 탄력성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에 대한 정교한 정책 대안을 먼저 내놓아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낡은 방식의 단속이나 엄포가 아니다. 시장의 투명성과 경쟁을 촉진하는 ‘시스템’이다. 소비자는 스마트폰 앱으로 10원이라도 싼 주유소를 찾아 헤매는데 정유사의 공급 가격 산정 방식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영업비밀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가격 결정의 블랙박스를 유지하는 한, 시장의 신뢰는 요원하다. 정부는 윽박지르는 심판자가 아니라 시장 참여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투명한 룰을 만드는 설계자가 되어야 한다. 에너지 전환의 시대로 가고 있다지만 여전히 석유는 서민 경제의 혈관을 흐르는 피와 같다. 유가 급등은 물가 상승을 부채질하고 이는 곧 실질 소득 감소로 이어져 민생을 옥죄게 된다. 이 엄중한 시기에 정부가 보여줘야 할 것은 보여주기식 현장 점검 사진이 아니다. 유류세 탄력 세율의 적기 운용, 알뜰주유소의 실질적 경쟁력 강화, 그리고 정유사 유통 마진 구조에 대한 투명한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이다. 시장은 권력의 목소리보다 명확한 원칙에 반응한다. 요란한 경고장은 잠시 소나기를 피할 우산은 될지언정 비를 멈추게 할 수는 없다. 2026년의 대한민국 정부가 1970년대식 물가 단속반의 추억에 젖어 있어서는 안 된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화려한 엄포가 아니라 주유기 앞에서 느끼는 박탈감을 해소해 줄 합리적이고 정교한 시장 질서다. 그것이 정부가 존재하는 이유다.
2026-03-08 09: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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