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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그룹, 5300개 협력사 대금 안정성 높인다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왼쪽 다섯번째)과 이주태 포스코홀딩스 사장(왼쪽 네번째)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16일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포스코그룹 상생협약 체결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경제일보] 포스코그룹이 협력사에 지급하는 납품대금을 평균 10일 이내 전액 현금성으로 지급하고, 1·2차 협력사의 하위 업체 대금 지급기간도 최대 30일 이내로 단축한다. 1차 협력사에 집중됐던 성과공유제와 금융·기술 지원도 2·3차 협력사까지 확대한다. 16일 포스코그룹은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에서 공정거래위원회와 ‘포스코그룹 상생협약 체결식’을 열고 이 같은 내용의 협력사 지원방안을 발표했다. 행사에는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과 이주태 포스코홀딩스 사장, 이희근 포스코 사장, 이계인 포스코인터내셔널 사장 등 그룹 주요 사업회사 대표와 1·2차 협력사 관계자 등 130여명이 참석했다. 이번 협약의 핵심은 포스코그룹과 직접 거래하는 1차 협력사뿐 아니라 2·3차 협력사까지 안정적으로 납품대금을 받을 수 있도록 결제구조를 개선하는 것이다. 협약에는 △대금 지급조건 개선 △상생결제시스템 활성화 △상생협력에 참여하는 1차 협력사 우대 △협력사 경쟁력 향상 지원 등 4대 실천사항이 담겼다. 포스코그룹은 협력사의 자금 운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납품대금을 평균 10일 이내 전액 현금성으로 지급한다. 1차 협력사는 2차 협력사에, 2차 협력사는 3차 협력사에 각각 최대 30일 이내 대금을 지급하도록 지원한다. 납품대금 지급이 늦어지면 자금력이 약한 중소 협력사는 원자재 구매비와 인건비 등을 충당하기 위해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려야 한다. 반대로 대금을 조기에 회수하면 차입과 이자 부담을 줄이고 생산설비와 기술개발에 투입할 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은 “안정적인 대금 흐름은 투자와 고용, 기술혁신의 출발점”이라며 “규모가 작은 협력사일수록 그 효과가 더욱 클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포스코그룹은 상생결제시스템의 활용도도 높인다. 상생결제는 원청기업이 지급한 납품대금이 공급망 아래 단계까지 안정적으로 전달되도록 만든 결제 방식이다. 1·2·3차 협력사는 약정된 결제일에 현금 지급을 보장받고, 결제일 전에도 원청기업의 신용도를 활용해 비교적 낮은 금융비용으로 대금을 현금화할 수 있다. 이는 포스코그룹이 1차 협력사에 대금을 일찍 지급하더라도 1차 협력사의 자금 사정에 따라 2차 이하 협력사의 대금 회수가 늦어지는 문제를 줄이기 위한 것이다. 포스코그룹은 2019년 민간기업 최초로 하도급 상생결제시스템을 도입했다. 하위 협력사와 공정거래 협약을 체결한 1차 협력사에는 공급사 평가 과정에서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포스코그룹의 직접적인 거래·관리 범위 밖에 있는 2·3차 협력사까지 상생제도가 확산되도록 1차 협력사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겠다는 취지다. 협력사의 기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성과공유제도 확대한다. 성과공유제는 대기업과 협력사가 공동으로 기술개발이나 공정개선 과제를 수행하고, 이를 통해 발생한 원가 절감과 매출 증가 등의 성과를 사전에 정한 방식으로 나누는 제도다. 포스코는 2004년 국내 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성과공유제를 도입했다. 이번 협약을 계기로 적용 대상을 기존 1차 협력사에서 2차 이하 협력사까지 넓힌다. 금융과 기술개발, 해외시장 진출 분야의 지원도 함께 확대할 방침이다. 이날 협약식에서는 상생제도를 활용해 실적을 개선한 협력사 사례도 공개됐다. 포스코퓨처엠의 1차 협력사인 한승케미칼은 포스코퓨처엠과 공동으로 기존 유독물질을 비유독물질로 대체하는 친환경 기술개발 과제를 수행했다. 한승케미칼은 포스코퓨처엠의 생산현장을 시험 공간으로 활용해 운전 조건과 문제점을 개선하고 새로운 표준 관리방안을 마련했다. 이를 통해 약품의 안전성을 높이는 동시에 약 19억5000만원의 매출 증가 효과를 거뒀다. 개발 제품은 3년간 수의계약을 통해 다른 사업장에도 확대 적용됐다. 김상수 한승케미칼 대표는 “공정거래 협약을 통해 투명한 경영과 기술 보호를 지원받았다”며 “성과공유제와 기술임치, 우수공급사 지원제도 등이 동반성장의 기반이 됐다”고 설명했다. 한승케미칼은 공동개발 과정에서 확보한 핵심 기술을 기술임치제도로 보호했다. 기술임치는 중소기업이 핵심 기술자료를 신뢰할 수 있는 기관에 보관하고, 기술 유출이나 탈취 분쟁이 발생했을 때 개발 사실과 보유 시점을 증명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포스코의 2차 협력사인 주식회사 광우는 스마트공장 구축과 현장 컨설팅 지원을 통해 생산성과 비용구조를 개선했다. 광우는 철강·자동차산업에 사용되는 금속가공유와 화학소재 등을 생산하는 중소기업으로, 2016년부터 포스코 1차 협력사들과 공정거래 협약을 체결해 왔다. 광우는 포스코의 대·중소 상생형 스마트공장 사업을 통해 유사업종의 스마트공장 운영 사례를 살펴보고 전문 프로젝트관리자와 함께 생산공정을 진단했다. 이후 합성에스테르 제조공장에 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하고 인공지능을 활용한 디지털 전환을 추진했다. 그 결과 작업자의 실수를 줄이고 생산공정을 개선해 생산성을 12% 높이고 제조경비를 8% 절감했다. 안전과 정보보안, 에너지 관리 분야에서도 포스코 동반성장지원단의 현장 컨설팅을 받았다. 김창섭 광우 경영지원본부장은 “형식적인 지원이 아니라 회사에 필요한 부분을 함께 찾아 개선했다”며 “스마트공장 도입으로 자동화와 생산성 향상이라는 성과를 거뒀다”고 했다. 포스코그룹은 이번 협약으로 그룹 공급망에 포함된 5300여개 협력사가 직·간접적인 혜택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단순히 자금을 지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대금 지급과 기술개발, 생산성 향상, 해외시장 진출을 연결해 협력사의 자생력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이주태 포스코홀딩스 사장은 “협력사 여러분이 곧 포스코그룹의 경쟁력이며 협력사의 성장이 곧 포스코그룹의 미래”라며 “오늘의 약속이 단순한 선언에 그치지 않고 현장에서 살아 숨 쉬는 실천으로 이어지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포스코그룹과 협력사의 협약 이행 여부를 점검하고, 상생협력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기업에 정책적 지원을 제공할 방침이다. 주 위원장은 “오늘의 상생협약이 성실히 이행되는지 면밀히 살펴보고 우수 기업에는 정책적 지원도 아끼지 않겠다”며 “상생협력은 협력사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포스코그룹의 지속적인 혁신을 위한 기반이자 산업 생태계 전체를 한 단계 도약시킬 수 있는 투자”라고 강조했다. 포스코그룹은 이번 협약의 주요 내용을 내년 초 예정된 협력사 공정거래 협약에도 반영할 계획이다. 대금 지급과 성과공유, 공급사 평가 등 실제 거래제도에 상생 원칙을 적용해 2·3차 협력사까지 이어지는 공급망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2026-07-17 13: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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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조선소서 AI 네트워크 검증…피지컬 AI 상용화 속도
[경제일보] 생성형 AI를 넘어 로봇과 자율설비가 산업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움직이는 '피지컬 AI'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AI를 안정적으로 구동할 수 있는 초저지연·고신뢰 네트워크 구축 경쟁도 한층 치열해지고 있다. 이에 KT가 정부 실증사업을 통해 AI 기반 자율 운용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차세대 통신 인프라 경쟁에 속도를 낸다. 14일 KT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이 추진하는 '하이퍼 AI 네트워크 기반 조성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KT는 삼성전자와 HD현대삼호를 비롯한 산학연 컨소시엄과 함께 AI 기반 자율 운용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산업 현장에서 피지컬 AI 서비스를 실증할 계획이다. 하이퍼 AI 네트워크는 AI가 통신망을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제어해 초저지연·대용량 통신 환경을 제공하는 차세대 네트워크다. 단순히 데이터를 전달하는 기존 통신망을 넘어 네트워크 자체가 AI를 활용해 장애를 예측하고 자원을 최적화하는 것이 특징이다. 로봇과 자율주행 설비, 스마트팩토리 등 피지컬 AI 서비스가 확대되면서 AI 네트워크는 차세대 이동통신 시대의 핵심 인프라로 주목받고 있다. 앞서 KT는 AI 네트워크를 6G 핵심 비전으로 제시한 데 이어, 5G 단독모드(SA) 상용망 구축 경험을 기반으로 이번 실증사업에 참여한다. 단순한 네트워크 고도화를 넘어 AI가 통신망을 스스로 운영하는 자율 네트워크 기술을 확보하고, 이를 실제 산업 현장에서 검증해 상용화 기반을 마련한다는 전략이다. 사업은 오는 2027년까지 약 160억원 규모로 추진된다. KT는 AI 기반 자율 운용 네트워크 구축을 비롯해 산업 현장 피지컬 AI 실증, 국내 통신장비 생태계 활성화 등을 핵심 과제로 수행한다. 특히 AI가 네트워크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장애를 자동으로 탐지·조치하는 'AI 코어 오케스트레이터'를 개발해 네트워크 운영 자동화를 구현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코어망의 통신 패턴과 성능 데이터를 분석하는 '네트워크 데이터 분석 기능(NWDAF)'과 AI를 연계한다. AI가 네트워크 상태를 지속적으로 학습하면서 트래픽 변화와 장애 발생 가능성을 예측하고 최적의 운영 방안을 제시하는 구조다. 향후 사람이 직접 수행하던 네트워크 관리 업무 상당 부분을 AI가 자동화할 전망이다. 피지컬 AI 실증도 본격 추진한다. KT는 HD현대삼호와 협력해 조선소 환경에 특화된 AI 기반 자율 시스템을 개발한다. 초저지연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AI가 조선소 내 로봇과 설비 데이터를 실시간 분석·제어하는 환경을 구축하고, 실제 산업 현장에서 운영 효과를 검증할 예정이다. 실증 대상은 AI 용접 로봇과 AI 도장 로봇, 통신국사 자율 운용 로봇 등 3종이다. 고위험 작업 환경에서 로봇이 안정적으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통신 환경을 검증하는 동시에 생산성과 안전성 향상 효과도 확인한다. 피지컬 AI 도입이 제조업 혁신의 핵심 과제로 떠오르는 가운데 조선소를 시작으로 다양한 산업 분야로 적용 범위를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컨소시엄에는 삼성전자와 HD현대삼호 외에도 솔리드, 아리엘네트웍스, 우리넷, 연세대학교 등이 참여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학계가 함께 참여해 AI 네트워크 기술을 공동 개발하고 국내 통신장비 산업 경쟁력도 강화한다는 구상이다. KT는 우면동 연구개발센터에 멀티벤더 테스트베드도 구축한다. 삼성전자와 국내 중소기업의 네트워크 장비를 함께 검증하는 환경을 마련하고 기지국 전력 절감 기술과 저전력 5G 단말 기술 등을 공동 개발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국내 장비 업체들의 기술 검증과 해외 시장 진출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최근 글로벌 통신업계는 AI 데이터센터와 AI 네트워크, 피지컬 AI를 하나의 생태계로 연결하는 경쟁에 속도를 내고 있다. 생성형 AI 서비스 확산으로 데이터 처리량이 급증하는 데다 제조와 물류, 에너지 등 산업 전반에서 AI 기반 자동화 수요가 늘어나면서 네트워크 자체를 AI 중심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KT 역시 이번 실증사업을 계기로 AI 네트워크 기술을 제조와 물류, 에너지 등 다양한 산업으로 확대 적용하며 기업 고객의 AI 전환(AX)을 지원한다는 전략이다. KT는 이번 사업을 통해 확보한 AI 기반 자율 운용 네트워크 기술과 피지컬 AI 실증 경험을 바탕으로 차세대 AI 인프라 경쟁력을 강화하고, 향후 6G 시대 핵심 네트워크 기술 확보에도 속도를 낼 계획이다. 이종식 KT 미래네트워크Lab장 전무는 "국내 최고 수준의 망 운영 역량을 바탕으로 6G 시대를 향한 핵심 기술을 발굴하겠다"며 "하이퍼 AI 생태계 확산을 선도하여 국가 통신 장비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2026-07-14 15: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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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RAN 선도망 구축 나선 SKT…로봇·자율물류 AI 시대 연다
[경제일보] AI 고속도로 구축이 국가 AI 경쟁력의 핵심 과제로 떠오르는 가운데 SK텔레콤이 차세대 네트워크 기술인 'AI-RAN' 실증에 나선다. AI 데이터센터(AI-DC)와 네트워크, 피지컬 AI를 연결하는 인프라를 구축해 로봇과 자율물류 등 산업 현장에서 AI 활용을 본격화한다는 전략이다. 14일 SK텔레콤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이 추진하는 '하이퍼 AI 네트워크 기반조성' 실증사업 수행기관으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SK텔레콤은 이번 사업을 통해 AI-RAN 선도망을 구축하고 피지컬 AI 기반 서비스 개발과 실증을 추진한다. 이번 사업은 정부가 추진하는 'AI고속도로' 구축 정책의 핵심 인프라를 검증하기 위한 프로젝트다. 생성형 AI를 넘어 로봇과 자율주행 설비 등 피지컬 AI 활용이 확대되면서 대용량 데이터를 초저지연으로 처리하고 AI 연산을 실시간 수행할 수 있는 네트워크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AI-RAN은 기존 이동통신 기지국이 통신 기능뿐 아니라 AI 연산 기능까지 함께 수행하는 차세대 네트워크 구조다. 로봇이나 피지컬 AI 단말이 자체적으로 처리하기 어려운 AI 연산을 기지국이 대신 수행해 단말의 연산 부담과 전력 소모를 줄이고 성능을 높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SK텔레콤은 2개년에 걸쳐 AI-RAN과 5G 단독 모드(SA), 네트워크 슬라이싱, 통합 관리 시스템(SMO), AI 기반 네트워크 자율화 기술 등을 선도망에 적용해 성능을 검증할 계획이다. 특히 삼성전자와 HFR, 에릭슨, 노키아 등 4개 제조사의 AI-RAN 장비를 하나의 실증사업에서 동시에 구축·운영하며 다양한 장비 환경에서 성능을 비교 검증한다. AI 연산 인프라 구성 방식도 함께 검증한다. CPU와 GPU 등 서로 다른 연산 자원을 적용하고 AI 서버와 사용자 데이터 처리 장치(UPF)의 배치 구조를 다양하게 구성해 서비스별 최적의 AI-RAN 구축 방식을 도출한다는 계획이다. 실증 대상은 피지컬 AI 서비스 3종이다. 사족보행 순찰로봇은 공장 내 위험지역을 순찰하며 촬영한 영상을 AI-RAN을 통해 실시간 분석해 위험 상황을 탐지하고 통합 관제까지 수행한다. 무인 자율이송 서비스는 공장 내 라이다 데이터를 AI-RAN으로 수집해 디지털 트윈 기반 자율주행 물류 서비스를 구현한다. 휴머노이드 저전력 모드는 복잡한 AI 연산을 기지국으로 분산 처리해 로봇의 배터리 사용 시간을 늘리고 하드웨어 부담을 줄이는 기술이다. 이번 사업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 참여하는 컨소시엄 형태로 추진된다. SK텔레콤을 중심으로 에릭슨코리아와 HFR이 네트워크 장비를 담당하고, 인텔리빅스와 서울로보틱스, 클레비가 피지컬 AI 서비스를 개발한다. 삼성전자와 노키아는 AI-RAN 장비 공급과 기술 협력에 참여하며, SK인천석유화학과 KG모빌리티는 실제 산업 현장에서 실증 결과를 검증하는 수요기관 역할을 맡는다. 1차년도에는 인천과 판교에 AI-RAN 선도망을 구축한다. SK인천석유화학에서는 산업안전 관제를 위한 사족보행 순찰로봇과 이동형 CCTV 서비스를 실증하고, 판교에서는 무인 자율이송 서비스를 검증하는 피지컬 AI 리빙랩을 운영한다. 2차년도에는 실증 범위를 실제 산업 현장으로 확대해 KG모빌리티 평택공장 등에 적용하고 휴머노이드 기반 서비스까지 추가 검증할 계획이다. SK텔레콤은 이번 사업을 통해 확보한 기술을 글로벌 표준화에도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회사는 국내 통신사 가운데 유일하게 AI-RAN 얼라이언스 이사회 회원사로 참여하고 있으며, O-RAN과 3GPP 등 국제 표준화 기구와 연계해 AI-RAN 기술 표준 논의를 주도하고 있다. 다양한 제조사 장비와 서비스 환경에서 확보한 실증 데이터를 기반으로 글로벌 AI-RAN 생태계 확산에도 기여한다는 계획이다. SK텔레콤은 장기적으로 AI-RAN을 AI 데이터센터(AI-DC)와 연계해 'AI고속도로' 핵심 인프라로 발전시킬 방침이다. AI-DC와 AI-RAN, 피지컬 AI를 초저지연·고신뢰 네트워크로 연결해 제조와 물류, 산업안전 등 다양한 분야에서 AI 서비스 상용화를 확대해 나간다는 전략이다. 류탁기 SK텔레콤 네트워크기술 담당은 "국내 유일 AI-RAN 얼라이언스 이사회 회원사로서 축적한 역량을 바탕으로 다양한 AI-RAN 선도망과 피지컬 AI 서비스를 실증할 것"이라며 "'AI고속도로'의 핵심인 AI-RAN 기술을 고도화하는 한편, 대중소 상생을 통해 국내 생태계의 자립도와 글로벌 경쟁력을 함께 높이겠다"고 말했다.
2026-07-14 1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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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3주체를 다시 짜라 ①기업·재벌편
[경제일보] 인공지능(AI) 시대는 한국경제에 기술 도입을 넘어선 전방위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기업은 AI를 비용 절감 수단이 아니라 조직과 사업모델 혁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소비자는 편리함에 머무르지 않고 데이터 주권과 알고리즘 감시 능력을 갖춰야 한다. 정부는 규제 완화와 산업 지원을 넘어 인프라, 인재, 안전망, 신뢰 체계를 함께 설계해야 한다. 이에 본지는 이번 기획을 통해 AI시대 한국경제 3주체의 역할 변화와 개혁 과제를 짚고, 한국경제가 관성의 경제에서 학습의 경제로 전환하기 위한 해법을 모색한다. <편집자주> 한국 대기업들이 인공지능(AI) 전환의 한복판에 섰다. 반도체 기업은 AI 서버의 핵심 부품인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첨단 패키징 경쟁에 뛰어들고 있고, 플랫폼 기업은 초거대 AI와 클라우드 인프라를 강화하고 있다. 자동차·조선·철강·금융권도 생산공정 자동화, 로봇, AI 상담, 리스크 관리 등으로 적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 정부와 기업의 투자 시계도 빨라지고 있다. 최근 한국 정부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을 축으로 대규모 AI·반도체 투자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약 800조원 규모의 신규 반도체 제조시설 투자에 참여하고, 충청권에는 81조원 규모의 반도체 패키징 클러스터가 조성된다. 또 SK·GS·네이버 등이 AI 데이터센터 구축에 참여하고 장기적으로 관련 투자가 1000조원 이상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구상도 내놨다. 실제 정부는 지난달 29일 SK·GS·네이버와 협력해 1단계로 8.4GW 규모의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SK가 5GW, GS가 2.4GW, 네이버가 1GW 규모로 참여하며 관련 투자 규모는 550조원으로 제시됐다. 투자 규모만 놓고 보면 한국 기업들은 다시 한 번 ‘큰 판’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선 “AI 투자가 곧 AI 경쟁력은 아니다”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 대기업 AI 전략 담당자는 “지금은 어느 그룹이나 AI 조직과 태스크포스는 갖추고 있지만 실제 업무에 적용하려면 데이터 접근권, 보안, 법무, 감사, 성과평가가 모두 걸린다”며 “AI 도입보다 어려운 것은 부서 간 칸막이를 허무는 일”이라고 말했다. HBM이 바꾼 증시 서열…AI가 기업가치 기준 흔든다 AI 전환은 이미 국내 증시의 기업가치 평가 기준도 바꾸고 있다. 대표 사례가 SK하이닉스다. SK하이닉스는 AI 반도체 수요 확대와 HBM 시장 선점 효과에 힘입어 지난달 22일 코스피 장중 시가총액에서 삼성전자를 앞질렀다. 이는 단순한 주가 순위 변화가 아니다. 한국 반도체 산업의 무게중심이 범용 메모리 중심에서 AI용 고부가 메모리와 패키징, 고객 맞춤형 공급망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다. 과거에는 생산능력과 원가 경쟁력이 핵심이었다면 이제는 엔비디아 등 글로벌 빅테크·AI 반도체 기업과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지, 차세대 HBM을 얼마나 빨리 개발·공급할 수 있는지가 기업가치를 좌우한다. 다만 AI 반도체 호황이 항상 주가 상승으로만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실제 8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는 미국 반도체주 약세와 AI 붐 지속성에 대한 우려 속에 장중 동반 약세를 보였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AI 반도체가 한국 증시의 핵심 테마가 된 것은 분명하지만 시장은 이제 단순한 실적 증가보다 지속 가능한 가격 결정력과 고객 기반을 본다”며 “AI 사이클이 길어질수록 기업 간 격차는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계열사 울타리에 갇힌 데이터, AI 경쟁력의 병목 AI 경쟁력은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같은 하드웨어 투자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기업 내부의 데이터 활용 구조가 핵심 변수다. 한국 대기업은 제조, 금융, 유통, 통신, 물류 등 방대한 데이터를 갖고 있다. 그러나 계열사별·부서별로 데이터가 분산돼 있고, 보안과 개인정보, 감사 리스크 때문에 실제 활용은 제한적인 경우가 많다. 한 제조업계 관계자는 “공장에는 설비 데이터가 쌓이고, 영업부서에는 고객 데이터가 쌓이며, 구매부서에는 공급망 데이터가 쌓이지만 이를 하나의 모델로 연결하는 일은 쉽지 않다”며 “AI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기술 문제가 아니라 내부 승인 절차에서 시간이 더 걸리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재벌 구조의 강점이던 수직계열화도 AI시대에는 양면성을 갖는다. 위기 때 빠르게 자원을 동원하는 데는 유리하지만 데이터와 인재가 계열사 내부에 갇히면 개방형 혁신에는 불리할 수 있다. 한 스타트업 대표는 “대기업들이 AI 스타트업과 협업을 말하지만 실제 계약 단계에서는 지식재산권, 데이터 소유권, 보안 조항이 지나치게 무겁다”며 “함께 실험하고 성과를 나누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AI 도입보다 어려운 건 일하는 방식의 개혁 기업들이 생성형 AI를 사내 업무에 도입하면서 보고서 초안 작성, 회의록 정리, 시장조사, 고객 응대, 코드 작성, 번역, 계약서 검토 등에서 AI 활용이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AI를 업무 도구로 배포하는 것만으로 생산성 향상이 보장되지는 않는다고 지적한다. 지난 5월 arXiv에 공개된 조원익·김성훈·김근혜의 포지션 페이퍼 ‘Adopting AI in Practice Does Not Guarantee the Productivity Boost’는 AI 도입이 곧바로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논문은 인력 구성, 구성원의 기초 역량, 학습곡선, 인센티브 구조, 목표 설정의 유연성 등이 AI 생산성 효과를 좌우한다고 분석했다. 한 경영학 교수는 “AI는 단순히 업무 시간을 줄이는 기술이 아니라 의사결정 방식을 바꾸는 기술”이라며 “기업이 AI를 제대로 쓰려면 어떤 업무를 AI에 맡기고 어떤 판단은 사람이 책임질지 조직 원칙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중간관리자의 역할 변화도 불가피하다. 지금까지 중간관리자는 자료를 취합하고 보고서를 다듬고 리스크를 걸러내는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생성형 AI가 정보 수집과 문서 작성의 상당 부분을 보조하면서 중간관리자의 경쟁력은 보고서 작성 능력이 아니라 문제 정의, 결과 검증, 부서 간 조정 능력으로 이동하고 있다. AI 전환은 청년 채용과 인재 육성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반복적 사무 업무와 초급 분석 업무가 AI로 대체되면 신입사원이 조직에서 배우는 첫 단계가 줄어들 수 있다. 한 대기업 인사 담당자는 “AI 도입 이후 신입사원에게 맡길 수 있는 단순 업무는 줄어드는 반면, 처음부터 문제 해결형 역량을 요구하는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다”며 “채용 규모를 줄이는 유혹이 생기지만 장기적으로는 인재 풀이 약해질 수 있어 재교육 체계를 함께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AI 거버넌스도 기업 경쟁력 됐다 AI 활용이 확대될수록 기업의 책임도 커진다. 한국은 AI 기본법 시행을 앞두고 있으며, 고영향 AI에 대한 인간 감독과 투명성 확보가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특히 금융, 보험, 의료, 채용, 교육처럼 개인의 권리와 직접 연결되는 분야에서는 AI가 어떤 데이터를 사용했고, 어떤 기준으로 판단했으며, 오류가 발생했을 때 누가 책임질지가 중요해진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AI 상담이나 대출심사는 소비자 편의성을 높일 수 있지만 설명 책임이 약하면 민원과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AI를 많이 쓰는 회사보다 AI 판단을 얼마나 투명하게 관리하는지가 앞으로 더 중요한 평판 요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계에서는 AI 활용이 실제 경쟁력으로 이어지려면 조직 운영 방식의 변화가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거 대기업의 성장 방식은 계열사 내부에서 원료 조달, 부품 생산, 완제품 제조, 금융 지원을 묶는 수직계열화가 중심이었다. 그러나 AI 분야에서는 데이터, 클라우드, 알고리즘, 소프트웨어 인재가 기업 안팎에 분산돼 있어 외부 스타트업과 대학, 협력사와의 공동 개발과 실험이 중요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AI 경쟁력이 투자 규모만으로 결정되지는 않는다고 본다. 반도체 설비 확충과 데이터센터 구축은 AI 전환의 기반에 해당하지만 이후에는 내부 인재 재교육, 중간관리자 역할 재정립, AI 활용 책임 체계, 외부 생태계와의 협업 구조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한국 대기업의 AI 경쟁력은 대규모 투자 이후의 실행 구조에서 갈릴 가능성이 크다”며 “총수의 투자 결정을 현장의 실험과 조직 학습으로 연결하고, 계열사 중심의 폐쇄형 운영을 개방형 협력 모델로 전환할 수 있는지가 향후 AI 전환의 핵심 변수로 꼽힌다”고 말했다.
2026-07-09 16:5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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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RWA의 본질…실물자산이 디지털 신뢰와 만날 때
[경제일보] 금융의 역사는 결국 신뢰를 어떻게 계량화하고 증명할 것인가의 역사였다. 과거에는 국가의 공권력, 중앙은행의 발권력, 금고에 쌓인 금이 신뢰의 근거였다. 자본은 보이지 않는 약속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담보와 제도 위에서 움직였다. 디지털 시대로 접어들며 블록체인은 이 신뢰의 방식을 흔들었다. 암호화된 알고리즘과 분산원장이 새로운 금융 질서를 만들 수 있다는 기대가 커졌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 실체 없는 가상자산이 보여준 극심한 변동성은 시장에 분명한 교훈을 남겼다. 실물 경제의 생산성과 연결되지 않은 디지털 신뢰는 언제든 신기루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실물자산 토큰화, RWA(Real World Assets)는 바로 이 지점에서 등장했다. RWA의 본질은 단순히 부동산, 원자재, 인프라 같은 자산을 디지털 조각으로 쪼개 판매하는 기술이 아니다. 실체 있는 자산이 가진 내재가치에 블록체인이 제공하는 투명성과 추적 가능성을 결합하는 금융 구조의 전환이다. 구리와 희토류 같은 전략 원자재, 태양광 발전소와 전력망 같은 인프라 자산은 그 자체로 물리적 실체와 경제적 가치를 지닌다. 문제는 이들 자산이 대체로 폐쇄적인 거래 구조와 높은 진입장벽 안에 묶여 있었다는 점이다. 자산은 존재하지만 유동성은 제한됐고, 미래 수익은 예상되지만 자본시장에서 실시간으로 평가받기 어려웠다. RWA는 이 경직된 자산 구조를 바꾸려는 시도다. 원자재의 비축 현황, 인프라의 가동률, 장래 수익권, 계약 조건 등을 디지털 장부 위에 기록하고 검증할 수 있다면 자산의 신뢰는 더 이상 일부 기관의 내부 문서에만 머물지 않는다. 자산의 상태와 권리 관계가 투명하게 연결될수록 자본은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 전통 금융 시스템에서는 자산을 평가하고 유동화하기 위해 수많은 중개기관과 법적 절차, 시간과 비용이 필요했다. 반면 정교하게 설계된 RWA 생태계에서는 스마트 계약을 통해 배당, 정산, 권리 이전 절차를 자동화할 수 있다. 물론 법적 소유권, 회계 처리, 규제 기준, 투자자 보호 장치가 함께 정비돼야 한다. 기술만으로 금융의 신뢰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RWA가 주목받는 이유는 명확하다. 이제 디지털 금융의 경쟁은 단순한 토큰 발행이 아니라 어떤 실물자산을 어떤 법적 구조와 어떤 데이터 체계로 연결하느냐에서 갈린다. 투기성 자본을 모으는 코인과 산업 현장의 현금흐름을 담는 토큰은 출발점부터 다르다. 시장이 원하는 것은 더 많은 가상성이 아니라 더 검증 가능한 실체다. 제조 강국 한국에도 이 흐름은 가볍지 않다. 한국 산업은 반도체, 배터리, 조선, 에너지, 인프라 분야에서 막대한 실물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이 자산들은 대기업의 재무제표와 금융권 대출 구조 안에 갇혀 있는 경우가 많다. RWA는 이런 산업 자산을 새로운 방식으로 자본화할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다. 핵심은 기술 도입이 아니라 신뢰 설계다. 원자재라는 업스트림에서 시작된 디지털 신뢰는 발전소, 전력망, 물류, 데이터센터, 산업단지 수익권으로 확장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과장된 장밋빛 전망이 아니다. 자산의 실체, 권리의 명확성, 데이터의 검증성, 규제의 수용성을 하나로 묶는 정교한 금융 설계다. RWA는 실물경제와 디지털 금융이 만나는 접점이다. 실체 없는 신뢰는 오래 버티기 어렵고, 유동성 없는 자산은 성장의 속도를 잃는다. 실물자산이 디지털 신뢰를 만나면 자본은 다시 흐를 수 있다. 산업과 금융이 융합되는 다음 경제 지도에서 RWA가 주목받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선언의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앞으로의 승부는 실제 자산을 얼마나 투명하게 증명하고, 얼마나 안전하게 거래 가능한 구조로 바꾸느냐에 달려 있다. [필자 소개] 구교성 | 클레버스(CLEBUS) 의장 2001년 ‘질문·답변을 통한 정보 제공 방법’ 및 ‘대표 키워드 검색’ 등 원천 특허를 출원하며 일찍이 인터넷을 통한 지식 공유와 빅데이터 기반의 인공지능 시대를 예견했다. 국경 없는 가치 공유와 결제 생태계를 목표로 2006년 클레버스를 설립했다. 이후 2019년 블록체인 기술의 도래와 함께 무형의 지식 자산을 넘어 실물 자산과 에너지 인프라를 토큰화하는 혁신으로 시야를 확장했다. 현재 클레버스를 통해 실물자산(RWA) 거래소를 포괄하는 초연결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으며 선박과 같은 대규모 인프라부터 공공 자산에 이르는 디지털 트윈 및 STO 인증 프로젝트를 전개하며 글로벌 실물자산 금융화 시대를 개척하고 있다. 또한 클레버스 초연결 생태계의 기축자산통화인 클레코인(CLE)은 현재 고팍스(GOPAX) 가상자산거래소에 상장되어 거래 중이다.
2026-07-06 10: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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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을 막겠다는 법이 진실을 정할 수 있나
[경제일보] 거짓뉴스는 가볍게 퍼진다. 한 줄의 자극적인 문장, 짧은 영상, 출처 없는 캡처 하나면 충분하다. 피해는 늦게 온다. 누군가는 명예를 잃고 누군가는 사업을 잃고 사회는 불신을 얻는다. 허위조작정보를 더는 방치할 수 없다는 말에는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내일부터 개정 정보통신망법, 이른바 허위조작정보근절법이 시행된다. 악의적 허위정보 유포에 더 무거운 책임을 묻고, 플랫폼에도 신고 접수와 처리 체계를 요구하는 내용이다. 피해자가 뒤늦게 소송으로 다투는 동안 가해자는 조회수와 수익을 얻는 구조를 그냥 둘 수 없다는 문제의식이다. 여기까지는 크게 틀리지 않다. 남은 문제는 적용이다. 거짓을 막겠다는 법은 늘 어려운 질문을 부른다. 누가 허위와 조작을 판단할 것인가. 언제 판단할 것인가. 무엇을 근거로 판단할 것인가. 그 판단이 틀렸을 때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법의 취지가 선하다고 해서 집행의 위험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허위조작정보근절법의 취지는 분명하다. 온라인에서 고의로 조작된 정보가 확산되고 피해자가 뒤늦게 소송으로 다투는 동안 가해자는 이익을 얻는 구조를 막자는 것이다. 플랫폼에도 신고 접수와 조치 책임을 묻고 악의적 유포에는 더 무거운 배상 책임을 지우겠다는 내용이다. 피해자 보호만 놓고 보면 필요한 장치다. 문제는 기준이다. 허위와 조작은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 명백한 합성 사진이나 조작 영상은 구분이 쉽다. 그러나 권력 감시 보도, 기업 내부 제보, 선거 기간 의혹 제기는 다르다. 처음부터 모든 사실이 완성된 상태로 나오지 않는다. 취재는 의혹에서 시작해 반론과 추가 확인을 거치며 사실에 가까워진다. 이 과정의 일부 오류를 허위조작정보로 몰 수 있다면 언론과 시민의 입은 먼저 얼어붙는다. 가장 큰 위험은 권력자와 자본을 가진 쪽이 이 법을 방패로 쓸 가능성이다. 소송은 이기기 위해서만 제기되는 것이 아니다. 오래 끌기 위해, 취재원을 압박하기 위해, 다음 보도를 망설이게 하기 위해 쓰일 수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은 악의적 조작을 막는 칼이 될 수 있지만 비판 보도를 위축시키는 칼집 없는 무기가 될 수도 있다. 플랫폼의 역할도 간단하지 않다. 신고가 들어오면 사업자는 삭제, 차단, 노출 제한 같은 조치를 고민해야 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위험한 게시물을 남겨두기보다 먼저 내리는 쪽이 안전하다. 그 순간 판단은 법원이 아니라 플랫폼의 위험관리 부서로 넘어간다. 표현의 자유는 거창한 헌법 문구에서만 무너지는 것이 아니다. 신고와 민원, 약관과 알고리즘 속에서 조용히 줄어든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법의 취지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다. 경계선을 분명히 긋는 일이다. 명백한 조작과 공익적 의혹 제기를 구분해야 한다. 고의적 유포와 선의의 오류를 나눠야 한다. 권력자와 대기업이 비판 보도를 봉쇄하는 수단으로 악용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 기준이 흐리면 법은 피해자 보호 장치가 아니라 말의 질서를 관리하는 장치로 오해받을 수밖에 없다. 언론도 예외는 아니다. 표현의 자유를 말하려면 사실 확인의 책임도 함께 져야 한다. 출처 없는 주장, 과장된 제목, 클릭을 노린 단정은 스스로 신뢰를 깎는다. 허위조작정보 규제가 힘을 얻는 이유 중 하나는 언론과 플랫폼이 그동안 정보의 품질을 충분히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원칙은 흔들려선 안 된다. 민주주의는 거짓을 방치해서도 안 되지만 국가가 진실의 최종 판정자가 되는 길도 경계해야 한다. 거짓 정보와 싸우는 일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 싸움이 권력 비판과 공익 제보, 불편한 질문까지 움츠러들게 만든다면 민주주의가 치르는 비용은 더 커진다. 허위조작정보근절법은 이제 시행대에 오른다. 성패는 처벌의 강도가 아니라 적용의 절제에 달려 있다. 거짓을 막겠다는 좋은 명분이 표현의 자유를 좁히는 나쁜 선례가 되지 않게 하려면 기준과 절차, 이의제기와 책임을 더 촘촘히 세워야 한다. 필요한 것은 더 큰 규제가 아니다. 거짓을 막되 질문은 살려두는 설계다.
2026-07-06 10: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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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SK 뒤에 숨은 진짜 수혜주…AI 인프라 밸류체인 다시 짠다
[경제일보] 정부가 추진하는 '3대 메가 프로젝트'의 최대 수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대기업보다 AI 인프라를 떠받치는 소부장(소재·부품·장비)과 전력기기, 냉각, 로봇 부품, 산업용 소프트웨어(SW) 기업으로 확산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반도체와 피지컬 AI, AI 데이터센터를 국가 미래 성장동력으로 육성하는 이번 프로젝트는 반도체 생산을 넘어 데이터센터 구축과 제조업 AI 전환까지 하나의 산업 생태계로 연결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에 따라 산업계의 관심도 대기업 투자 규모보다 실제 발주가 이뤄질 후방 밸류체인으로 옮겨가고 있다. 반도체에서 AI 인프라로…산업정책 무게중심 이동 지난달 29일 정부가 발표한 3대 메가 프로젝트는 단순히 반도체 공장을 늘리는 기존 산업정책과 결이 다르다. AI 반도체를 생산하고 이를 학습시킬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한 뒤 제조 현장에 피지컬 AI를 확산하는 전 과정을 하나의 산업 생태계로 연결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에 따라 기업들의 투자도 반도체 생산시설을 넘어 데이터센터, 전력망, 스마트팩토리, 로봇 등 후방 산업 전반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번 프로젝트는 단순한 반도체 투자 확대를 넘어 'AI 시대 국가 인프라 구축'으로 산업정책의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과거 반도체 투자가 메모리 생산능력 확대에 집중됐다면 앞으로는 AI를 실제 서비스하고 산업 현장에 적용하기 위한 데이터센터와 전력망, 냉각 설비 등 기반 인프라 구축이 새로운 성장축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AI 반도체를 충분히 확보하더라도 이를 운영할 데이터센터와 전력 인프라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산업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부가 제시한 세 가지 축도 각각 독립된 산업이 아니다. 반도체는 AI 연산을 담당하는 핵심 부품이고 AI 데이터센터는 이를 학습·추론하는 공간이며 피지컬 AI는 산업 현장에서 AI를 실제 활용하는 단계다. 세 분야가 하나의 가치사슬로 연결되는 구조인 만큼 투자 효과 역시 특정 기업이 아니라 관련 산업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소부장 넘어 전력·냉각까지…AI 밸류체인 전반 수혜 가장 먼저 주목받는 분야는 반도체 소부장이다. 정부는 기존 용인·평택 생산거점과 함께 서남권 신규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을 추진하며 생산능력 확대를 예고했다. 신규 팹이 들어서면 가장 먼저 움직이는 곳은 반도체 장비와 소재 시장이다. 노광과 식각, 증착, 검사, 패키징 등 공정 전반에서 장비 발주가 늘어나고 웨이퍼와 특수가스, 화학소재 등 핵심 소재 수요도 함께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AI 반도체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첨단 패키징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점도 긍정적이다. HBM 생산에는 기존 D램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적층·패키징 공정이 요구되는 만큼 후공정 장비와 검사 장비 시장도 함께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프로젝트의 더 큰 특징은 반도체 장비기업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AI 데이터센터와 피지컬 AI까지 동시에 추진되면서 기존 반도체 생태계 밖에 있던 산업들도 새로운 수혜 업종으로 떠오르고 있다. 대표적인 분야가 전력 인프라다. AI 데이터센터는 일반 데이터센터보다 훨씬 많은 전력을 소비한다. 생성형 AI 확산으로 GPU 수천~수만 장이 동시에 가동되면서 변압기와 배전반, 차단기, 초고압 케이블,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전력 설비 수요도 함께 증가한다. 데이터센터 구축이 늘어날수록 전력기기와 전선 업체들이 직접적인 수혜를 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전력기기 업계 관계자는 "AI 데이터센터는 GPU 등 고성능 장비가 24시간 가동되는 만큼 과거보다 훨씬 높은 전력 사용량과 전력 밀도를 요구한다"며 "전력 인프라는 더 이상 단순한 부대 설비가 아니라 데이터센터의 성능과 운영 효율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직류(DC) 배전과 고효율 전력변환장치, 에너지관리시스템(EMS) 등 차세대 전력 솔루션 수요도 확대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 역시 전국 단위 AI 데이터센터 구축을 추진하면서 지역별 전력 인프라 확충을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이는 데이터센터 건설이 단순 건축 사업이 아니라 전력 설비와 송배전망 구축까지 포함하는 대규모 인프라 사업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전력과 함께 AI 데이터센터의 또 다른 핵심 요소는 냉각 기술이다. 생성형 AI 서비스 확산으로 고성능 GPU가 대량 집적되면서 데이터센터 내부 발열은 기존 서버보다 훨씬 커지고 있다. 냉각 효율이 떨어질 경우 성능 저하와 전력 손실은 물론 장비 수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냉각 시스템은 AI 데이터센터의 핵심 경쟁력으로 꼽힌다. 이에 따라 공랭식 중심이던 기존 시장도 액침냉각과 수랭식 등 고효율 냉각 기술 중심으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서버 냉각장치와 공조 시스템, 열관리 솔루션 등 관련 시장도 AI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와 함께 성장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피지컬AI가 키울 로봇 생태계…"공급망 경쟁력이 성패" 정부가 이번 프로젝트의 또 다른 축으로 제시한 피지컬 AI 역시 새로운 소부장 시장을 만들어낼 것으로 보인다. 피지컬 AI는 AI가 로봇과 제조설비, 물류장비 등 실제 산업 현장에서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움직이는 기술을 의미한다. 단순한 로봇 보급을 넘어 제조 현장의 자동화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개념이다. 이를 위해서는 AI 반도체뿐 아니라 센서와 카메라, 액추에이터, 감속기, 모터, 제어기 등 다양한 핵심 부품이 필요하다. 정부도 대경권 자동차·가전 부품기업의 로봇 부품기업 전환을 지원하겠다고 밝힌 만큼 기존 제조업 기반을 AI·로봇 산업으로 연결하는 정책도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국내 부품업계에도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자동차와 산업기계 중심으로 성장해온 기업들이 휴머노이드와 산업용 로봇, 스마트팩토리 시장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어서다. AI를 제조 현장에 적용하기 위한 산업용 소프트웨어 시장도 함께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AI 데이터센터에서 학습된 인공지능 모델이 산업 현장으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설비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분석하는 플랫폼이 필요하다. 생산 공정을 최적화하는 스마트팩토리, 디지털 트윈, 설비 예지보전, 공장 자동화 솔루션 등이 대표적이다. 업계에서는 결국 이번 프로젝트의 성패가 대기업의 투자 규모보다 얼마나 많은 국내 중견·중소기업이 밸류체인에 참여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보고 있다. AI 인프라 구축 과정에서 국내 공급망이 충분한 경쟁력을 확보한다면 기술 자립은 물론 지역 산업 육성과 제조업 경쟁력 강화라는 정책 목표도 함께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대기업 중심의 투자 구조가 반복될 경우 중소·중견기업의 실질적인 참여 기회가 제한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대규모 프로젝트가 실제 발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국내 공급망 확대와 기술 검증 기회가 함께 마련돼야 메가프로젝트의 정책 효과도 극대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AI 데이터센터 시대에는 전력 인프라가 더 이상 부대 설비가 아니라 데이터센터의 성능과 운영 효율을 결정하는 핵심 인프라"라며 "데이터센터의 대형화와 피지컬 AI 확산이 맞물리면서 고효율 전력기기와 냉각, 센서, 자동화 솔루션 등 국내 소부장 기업들의 역할도 한층 커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2026-07-0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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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 1000억 달러의 착시(錯視)와 민생 재정 투입의 엄중한 원칙
[경제일보] 우리 경제가 다시 한번 대기록을 세웠다. 반도체 경기 호황과 자동차 등 주력 산업의 선전에 힘입어 지난 6월 한 달간 수출액이 사상 처음으로 1000억 달러 고지를 돌파한 것이다. 단일 월간 수출이 세 자릿수 빌리언(Billion) 달러를 기록한 것은 대한민국 무역사상 전례가 없는 쾌거다. 거시 경제 지표와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 역시 일제히 상향 조정되며 숫자의 잔치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이 화려한 지표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그리 썩 좋아할 수만 없다. 수출 전선의 승전고가 들려오는데도, 서민들이 체감하는 골목상권의 체감온도는 여전히 한겨울 한복판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수출 대기업이 벌어들인 온기가 내수 시장 전체로 흘러가지 못하는 소위 ‘성장의 동조화 단절’ 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낙수효과가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고물가와 고금리의 장기화로 신음하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그리고 실질소득 감소에 지친 평범한 가정의 한숨뿐이다. 이런 괴리를 메우겠다며 최근 정치권과 지방자치단체들이 경쟁적으로 ‘민생회복’을 내걸고 대규모 재정 지원 사업을 쏟아내고 있다. 선심성 현금성 지원부터 지역 화폐 확대, 무분별한 복지성 예산 편성 등 종류도 다양하다. 서민의 어려움을 살피겠다는 취지 자체를 탓할 수는 없으나, 지금 정치권이 보여주는 재정 투입의 속도와 방식은 심각한 우려를 자아낸다. 그 동안 국가 재정과 경제 정책을 지켜보면서 얻은 불변의 상식은 하나다.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며, 위기일수록 ‘기본과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는 점이다. 경제 지표가 좋다는 이유로, 혹은 선거를 앞두고 표심을 잡겠다는 계산으로 국가 곳간을 쉽게 열어서는 안 된다. 현재 대한민국 국가 채무는 이미 경계선을 넘어섰고, 지방자치단체들의 재정 자립도 역시 바닥을 기고 있다. 중앙정부의 세수 결손이 가시화되는 상황에서 지자체마저 빚을 내어 민생회복이라는 단기 처방에 올인한다면, 이는 미래 세대의 자산을 가로채 현재의 고통을 잠시 잊으려는 마약성 처방과 다름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무차별적인 재정 살포가 아니라, 현재의 국가 및 지방 재정 상태에 대한 냉정하고 면밀한 현황 점검이다. 가용한 재원의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고, 어디에 얼마만큼의 예산을 투입해야 가장 효율적인 정책 효과가 나타날지 송곳처럼 날카로운 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 돈을 쓰는 일은 언제 해도 늦지 않다. 그러나 한 번 잘못 흘러간 재정은 다시 회수할 수 없으며, 불필요하게 풀린 유동성은 어렵게 잡아두고 있는 물가를 자극해 서민 경제를 더 깊은 도탄에 빠뜨리는 부메랑이 될 뿐이다. 수출 호조라는 착시 효과에 가려진 내수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정교하고 구조적인 대책이 절실하다. 단순히 1회성 현금을 쥐여주는 미봉책으로는 얼어붙은 소비 심리를 근본적으로 되살릴 수 없다. 자영업자의 한계 상황을 유예해 주는 금융 지원의 정밀화, 취약계층을 겨냥한 핀셋형 선별 복지, 그리고 기업들이 국내 소비 유통망을 활성화할 수 있도록 돕는 규제 완화가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경제의 펀더멘털을 강화하는 구조 개혁 없이 재정 만능주의에 기대는 것은 정책적 태만이자 직무유기다. 정치권과 행정부는 숫자가 주는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수출 1000억 달러는 분명 축하할 일이지만, 그것이 민생의 구원투수가 될 수는 없다. 국가 재정의 건전성을 지키는 것은 나라의 명운이 걸린 마지노선이다. 선심성 정책의 유혹을 과감히 뿌리치고, 상식과 원칙에 기반한 정밀한 경제 정책을 펼칠 때 비로소 진정한 민생회복의 길이 열릴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의 엄중한 각성과 책임 있는 결단을 촉구한다.
2026-07-02 07:4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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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강국의 계산서는 누가 낼 것인가
[경제일보] AI를 둘러싼 말은 대체로 가볍다. 챗봇, 생산성, 자동화, 초격차. 화면에 질문을 넣으면 답이 나오고 보고서를 대신 쓰는 기술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AI가 산업이 되는 순간 풍경은 달라진다. 그 뒤에는 반도체 공장과 데이터센터, 송전망과 냉각 설비, 로봇과 제조라인이 버티고 있다. 정부의 반도체·피지컬 AI·AI 데이터센터 3대 메가프로젝트는 이 지점을 짚었다. AI를 소프트웨어 경쟁으로만 보지 않고 칩과 공장, 데이터센터를 한 묶음으로 보겠다는 것이다. 방향은 틀리지 않다. 챗봇 하나로 AI 강국이 되지는 않는다. 계산할 칩, 돌릴 시설, 현장을 바꿀 제조 역량이 함께 있어야 한다. 남은 문제는 실행이다. 수백조원 투자 계획은 눈길을 끈다. 그러나 데이터센터 하나를 짓는 데 필요한 것은 발표문이 아니다. 전력과 부지, 용수와 냉각 설비, 주민 수용성이다. 반도체 클러스터도 돈만으로 세워지지 않는다. 전기를 끌어오고 물을 확보하고 인력과 협력사를 붙여야 한다. 어느 하나라도 막히면 계획은 숫자로만 남는다. 지방 분산도 마찬가지다. 수도권이 포화 상태인 것은 사실이고 데이터센터를 지방으로 보내야 한다는 주장에도 이유가 있다. 하지만 건물만 내려간다고 지역 산업이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지방이 전기와 땅을 내주고 핵심 인력과 수익은 수도권에 남는다면 균형발전이라 부르기 어렵다. 낡은 집중 구조에 새 이름을 붙인 것에 가깝다. 우리는 비슷한 장면을 여러 번 봤다. 산업단지는 성장의 상징으로 출발했지만 환경 부담과 노동 격차의 현장이 됐다. 발전소와 송전탑은 국가 전력망의 필수 시설이었지만 지역 주민에게는 희생의 상징이었다. 데이터센터라고 다를 이유가 없다. 미래 산업이라는 이름이 붙어도 결국 지역의 땅 위에 세워지고 지역의 전력을 쓰는 시설이다. 피지컬 AI도 구상만으로는 부족하다. 한국 제조업에 AI를 심는 일은 필요하다. 반도체, 자동차, 조선, 기계, 통신망은 우리가 가진 강점이다. 공장을 아는 AI, 숙련공의 경험을 데이터로 바꾸는 AI는 한국이 해볼 만한 승부처다. 그러나 그 기술이 몇몇 대기업 생산라인 안에서만 작동한다면 국가 전략이라고 부르기 어렵다. 협력사와 산업단지, 중소 제조업까지 내려가야 산업 전체의 체질이 바뀐다. 정부가 할 일은 더 큰 그림을 내놓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순서를 정하고 책임을 가르는 일이다. 어디에 먼저 전력을 넣을 것인가. 어느 지역에 어떤 산업을 붙일 것인가. 데이터는 누가 내고 누가 관리할 것인가. 사고가 나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 이 질문이 빠진 메가프로젝트는 크기만 큰 계획으로 끝날 수 있다. AI는 생각보다 무거운 산업이다. 소프트웨어의 속도와 제조업의 무게가 한 몸이 된 산업이다. 빨리 가야 하지만 아무 데나 가서는 안 된다. 크게 해야 하지만 무엇을 남길지 정하지 못하면 안 된다. AI 강국은 선언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전기와 땅, 데이터와 인재, 지역과 기업이 맞물릴 때 가능하다. 그 비용을 누가 부담하고 그 이익을 어디에 남길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는 나라가 AI 시대의 산업 지도를 그린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큰 구호가 아니라 계산서까지 포함한 설계다.
2026-06-30 10: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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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0조 원 AI 메가프로젝트, 선언보다 실행이 국가의 운명을 가른다
[경제일보] 국가의 흥망은 시대가 요구하는 산업을 선점하느냐에 달려 있다. 증기기관이 산업혁명을 이끌었고, 석유가 20세기 세계 질서를 재편했다면, 21세기는 인공지능(AI)과 반도체가 국가 경쟁력을 결정하는 시대다. 정부가 호남권 반도체 기지 조성을 포함한 1600조 원 규모의 'AI 3대 메가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감안할 때 결코 늦지 않은 선택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사업을 챙기며 신속한 집행을 강조한 것도 국가적 절박함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이 기대하는 것은 거대한 숫자가 아니다. 1600조 원이라는 천문학적 투자 규모보다 중요한 것은 그 계획이 실제 국가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 실행력이다. 대한민국은 그동안 수많은 국가 프로젝트를 화려하게 발표했지만, 정치 일정에 밀리고 예산 확보에 실패하거나 지역 이해관계에 발목이 잡혀 용두사미로 끝난 사례를 수도 없이 경험했다. 이번 프로젝트만큼은 같은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 AI와 반도체는 더 이상 특정 산업이 아니다. 제조업은 물론 금융, 의료, 국방, 교육, 물류에 이르기까지 국가 시스템 전체를 움직이는 핵심 기반이다. 미국은 국가 차원의 반도체 지원 정책으로 공급망을 재편하고 있으며, 중국은 막대한 재정을 투입해 AI 자립에 사활을 걸고 있다. 유럽과 일본도 첨단 산업 육성에 국가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이런 국제 경쟁 속에서 대한민국이 머뭇거리는 순간 미래 산업의 주도권은 영원히 다른 나라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무리 방향이 옳다 해도 현실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국가 전략은 공허한 구호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먼저 검증되어야 할 것은 재원 조달 방안이다. 1600조 원이라는 규모는 정부 재정만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민간 투자와 정책금융, 연기금, 해외 투자자본을 어떻게 유치하고 결합할 것인지 구체적인 청사진이 제시되어야 한다. 투자 주체와 재원 조달 방식, 사업 추진 일정이 명확하지 않다면 시장은 숫자만 거창한 계획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역시 정치적 상징성보다 경제적 실효성이 우선되어야 한다. 특정 지역에 공장을 유치했다고 첨단 산업 생태계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반도체 산업은 세계에서 가장 정교한 기반시설을 요구하는 산업이다. 안정적인 전력 공급 없이는 생산이 불가능하며, 초순수 용수 확보는 생산라인의 생명줄과도 같다. 고속도로와 철도, 항만 등 물류망은 물론 연구개발 시설과 전문 인력 양성 체계도 동시에 갖춰져야 한다. 특히 전력 문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 과제다. AI 데이터센터와 첨단 반도체 공장은 막대한 전력을 소비한다. 송전망 확충과 발전 설비 증설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공장만 지어 놓고도 제대로 가동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용수 공급 또한 마찬가지다. 기후변화로 물 부족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안정적인 산업용수 확보 계획은 사업 초기부터 철저하게 마련되어야 한다. 이번 프로젝트의 또 다른 성공 조건은 산업 생태계의 균형이다. 대기업 몇 곳이 공장을 세우는 것만으로는 국가 경쟁력이 완성되지 않는다. 소재·부품·장비 기업과 설계 기업, 연구기관, 대학, 스타트업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혁신 생태계가 구축되어야 한다. 특히 지방 중소기업이 글로벌 공급망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기술 개발과 금융 지원, 인력 양성 정책을 병행해야 한다. 그래야만 지역경제도 살아나고 국가 산업의 경쟁력도 지속될 수 있다. 정치권에도 당부한다. 국가 미래를 좌우할 프로젝트를 정쟁의 소재로 삼아서는 안 된다. 반대를 위한 반대도, 성과를 과장하기 위한 정치적 홍보도 모두 국가 경쟁력을 갉아먹는 일이다. 여야는 사업의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재원 조달과 실행 방안을 냉정하게 검증하는 생산적 경쟁을 해야 한다. 그것이 국민이 정치에 기대하는 책임 있는 모습이다. 국가의 미래는 선언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치밀한 계획과 흔들림 없는 추진, 그리고 초당적인 협력이 있을 때 비로소 거대한 비전은 현실이 된다. AI와 반도체는 대한민국의 다음 50년을 책임질 산업이다. 이번 1600조 원 AI 메가프로젝트가 역사에 남을 국가 대도약의 출발점이 될 것인지, 또 하나의 거창한 청사진으로 끝날 것인지는 결국 실행력에 달려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화려한 구호가 아니라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구체적인 행동이다.
2026-06-30 07:52: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