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총 16건
-
-
-
-
100일의 국회, '국가의 시간' 아껴야
[경제일보] 국회의 시간과 산업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국회에서 법안 한 건이 한 회기 미뤄지는 것은 단지 다음 회의에서 다시 논의하면 될 일처럼 치부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변전소 하나, 산업용수 관로 하나, 공장 인허가 하나가 늦어지는 사이 경쟁국에서는 생산라인이 돌아가고 고객사의 공급망이 굳어진다. 정치에는 다음 회기가 있지만 산업에는 놓치면 돌아오지 않는 시간이 있다. 22대 국회 후반기 첫 정기국회가 지난 1일 막을 올렸다. 12월 9일까지 꼭 100일이다. 8·30 개각에 따른 장관 인사청문회, 부동산 정책과 사법개혁 법안, 세제 개편에 역대 최대 규모인 821조원짜리 2027년도 예산안까지 한꺼번에 국회 문턱을 넘는다. 여당은 국정과제 입법과 확장재정을 뒷받침하겠다고 하고, 야당은 ‘입법 독주’와 ‘포퓰리즘 예산’을 막겠다며 벼르고 있다. 충돌할 사안이 적지 않다. 다툴 것은 다퉈야 한다. 세금과 부동산, 형사사법 체계를 바꾸는 법에는 서로 다른 철학과 이해관계가 걸려 있다. 821조원의 나랏돈을 어디에 얼마나 쓸지도 야당이 매섭게 따져야 한다. 다수당이 숫자로 밀어붙이는 것도, 야당이 반대를 위한 반대로 시간을 끄는 것도 모두 경계할 일이다. 하지만 모든 법안을 같은 정치의 시계 위에 올려놓아야 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조정식 국회의장은 개회사에서 ‘1년을 미룬 법이 10년의 격차를 만든다’며 반도체·AI·첨단바이오 같은 국가전략기술 관련 입법을 서둘러 달라고 했다. 통상과 대외경제 입법에서는 여야가 ‘원팀’으로 움직이자는 주문도 내놨다. 표현이 다소 과장돼 보일 수 있지만 문제의식은 정확하다. 세계의 기술경쟁은 국회의 의사일정을 기다리지 않는다. 더구나 정부는 내년 예산부터 산업의 속도를 크게 높이겠다고 돈을 걸었다. 2027년도 정부 예산안은 올해보다 12.8% 늘어난 821조원이다. 이 가운데 반도체·피지컬AI·AI 데이터센터 등 3대 메가프로젝트와 관련 인프라·기술개발에 21조3000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정부 연구개발 예산안도 39조5000억원으로 올해보다 11.2% 늘렸다. 돈만 놓고 보면 한국이 AI와 첨단산업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겠다는 의지는 분명하다. 문제는 예산의 속도와 법의 속도가 다르면 돈도 기다린다는 것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3대 메가프로젝트만 해도 전력과 용수, 산업단지와 건축 문제를 풀기 위해 전기사업법·수도법·물관리기본법·산업입지 및 개발에 관한 법률·건축법 등의 손질이 주요 과제로 거론되고 있다. 반도체 공장에 수십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기업이 있어도 전력과 물을 공급할 제도와 시설이 제때 따라오지 못하면 장부 위 투자는 공장이 되지 못한다. AI 데이터센터 역시 GPU를 사놓는다고 만들어지는 산업이 아니다. 전력망과 부지, 냉각설비와 인허가가 동시에 움직여야 한다. 여기에 한국 정치의 오래된 습관이 끼어든다. 여야가 크게 충돌하는 법안 하나가 상임위를 붙잡으면 그와 직접 관계없는 법안까지 함께 기다린다. 원내 협상이 틀어지면 본회의 일정 전체가 흔들리고, 서로 상대 당 법안에 조건을 붙이기 시작하면 민생·산업법안도 협상카드가 된다. 정치에는 모든 것을 한 묶음으로 흥정하려는 유혹이 있다. 그 비용은 국회가 아니라 국민과 기업이 낸다. 공장 착공이 늦어지고, 신규 채용이 밀리고, 기업의 투자금은 해외로 옮겨갈 수 있다. 스타트업은 규제가 정리될 때까지 사업모델을 바꾸고, 지역에서는 산업단지 지정만 기다리다 토지가 묶인다. 법안이 국회 서랍에서 보낸 시간은 통계에 잘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국가의 대기시간’도 비용이다. 이번 정기국회가 해야 할 일은 법안을 많이 통과시키는 것이 아니다. 어떤 법은 충분히 싸우고, 어떤 법은 싸움과 분리해 빨리 처리할지를 구분하는 것이다. 여야가 국가전략산업과 민생 인프라에 대해서는 별도의 ‘초당적 신속처리 트랙’을 만드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국회법상 신속처리안건, 이른바 패스트트랙을 남발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여야 원내지도부가 정기국회 초기에 합의 가능한 법안을 추려 상임위 심사와 공청회, 법사위 검토, 본회의 처리 시한을 미리 정하자는 것이다. 기준도 까다롭게 세우면 된다. 첫째, 특정 기업이나 계층에 특혜를 주기보다 국가 전체의 산업 기반과 직결되는 법이어야 한다. 둘째, 여야가 정책목표 자체에는 큰 이견이 없고 방법론만 조정하면 되는 법이어야 한다. 셋째, 처리 지연에 따른 경제적 비용과 해외 경쟁 상황을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넷째, 안전·환경·노동권을 속도라는 이름으로 우회하지 않아야 한다. 신속한 입법은 졸속 입법과 같은 말이 아니다. 전력망 건설을 서두른다고 주민의 재산권과 환경 검토를 생략해서는 안 된다. 반도체 경쟁력을 이유로 노동기준을 백지수표처럼 풀어주는 것도 곤란하다. 필요한 것은 심사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심사의 끝을 알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기업과 국민에게 가장 큰 부담은 엄격한 규제 자체보다 결론이 언제 날지 모르는 불확실성일 때가 많다. 여당의 책임이 먼저 무겁다. 다수 의석을 갖고 있는 만큼 ‘속도’를 ‘독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정부가 내놓은 법이라고 원안 그대로 밀어붙이는 것이 국가의 시간을 줄이는 방법은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도 1일 국무회의에서 ‘정부안이 언제나 옳거나 완벽할 수 없다’며 국회의 지적과 대안을 검토해 필요하면 입법과 예산에 반영하라고 주문했다. 여당이 새겨들을 말이다. 야당도 달라야 한다. 정부 정책을 검증하는 것과 정책을 멈춰 세우는 것은 다르다. 반도체 공장에 필요한 송전망이나 AI 데이터센터의 기반시설까지 정권의 성패와 연결해 지연시키면 정권이 아니라 한국 기업이 경쟁국에 뒤처진다. 잘못된 조항을 고치되 필요한 법은 통과시키고, 그 결과를 다음 선거에서 평가받는 것이 책임 있는 야당의 모습이다. 국회는 벌써 대비되는 두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정기국회 첫날 행정안전위원회에서는 지방자치법·소방기본법 등 여러 법안이 여야 논의를 거쳐 처리된 반면, 중대범죄수사청 관련 법안에서는 여야가 충돌했다. 정치적 이해가 첨예한 법과 합의 가능한 법을 분리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비자’ 심도편에는 ‘법여시전즉치 치여세의즉유공(法與時轉則治 治與世宜則有功)’이라는 구절이 있다. ‘법이 시대와 함께 변하면 다스려지고, 제도가 세상 형편에 맞으면 성과가 난다’는 뜻이다. 2000년도 더 된 문장이지만 기술이 몇 달 단위로 바뀌는 지금의 국회에 오히려 더 절실하다. 법은 산업보다 앞서기 어렵다. 적어도 산업의 발목을 붙잡을 만큼 뒤처져서는 안 된다. 이번 정기국회에는 821조원이라는 사상 최대 예산보다 더 귀한 자원이 하나 있다. 100일이라는 시간이다. 그 시간을 정쟁의 밀도를 높이는 데 쓸 것인지, 대한민국이 기다리는 시간을 줄이는 데 쓸 것인지가 국회의 성적표가 될 것이다. 여야가 모두 합의하는 법만 처리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민주주의에는 갈등이 필요하고, 때로는 오래 토론해야 할 문제도 있다. 다만 반도체와 AI가 세계시장에서 하루를 다투고 있는데 국회가 정치적으로 결론 내지 못한 다른 문제 때문에 전력망과 산업용수 법안까지 세워두는 것은 민주적 숙의가 아니라 행정적 낭비에 가깝다. 법안 처리 건수 몇 백 건을 자랑하는 국회보다 대한민국이 기다리는 시간을 몇 달 줄인 국회가 더 유능하다. 12월 9일 정기국회가 문을 닫을 때 국민이 보고 싶은 것도 그것이다. 여야가 몇 번 이겼는지가 아니라 공장과 기업, 청년과 지역이 얼마나 덜 기다리게 됐는가. 정기국회 100일의 진짜 경쟁은 법안 숫자가 아니다. 국가의 시간을 누가 더 아껴줬느냐의 경쟁이어야 한다.
2026-09-02 12:56:01
-
-
820.9조 '슈퍼예산' 국회로…성장 투자냐, 재정 재량 확대냐
[경제일보] 정부가 820조9000억원 규모의 2027년도 예산안을 편성하면서 국회 심사의 막이 오른다. 올해 본예산보다 93조원, 12.8% 늘어난 사상 최대 규모다. 총지출이 800조원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반도체 호황으로 총수입이 200조원 넘게 늘어나는 특수한 세수 여건을 바탕으로 인공지능(AI), 반도체, 미래산업, 청년, 지방, 민생 분야에 대규모 재정을 투입하겠다는 게 정부 구상이다. 관전 포인트는 분명하다. 정부는 이번 예산안을 잠재성장률 반등과 양극화 완화를 위한 ‘성장 투자 예산’으로 규정하고 있다. 반면 국회 심사 과정에서는 162조원 규모 미래대응기금의 운용 방식, 100조원대 지출 구조조정의 타당성, 지방교육재정교부금과 교부세 개편의 파장, 2030년 총지출 1000조원 시대의 재정 지속 가능성이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정부는 1일 청와대에서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고 ‘2027년 예산안’과 ‘2026~2030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심의·의결했다. 내년도 총수입은 880조8000억원으로 올해보다 205조6000억원, 30.4%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국세수입은 584조4000억원으로 49.8% 늘어날 것으로 봤다. 법인세와 소득세 증가, 반도체 호황에 따른 세입 개선이 수입 확대의 핵심 배경이다. 수입 증가 폭이 지출 증가 폭을 웃돌면서 재정지표는 일시적으로 개선될 전망이다. 정부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이 올해 본예산 기준 3.9%에서 내년 0.1%로 낮아지고, 국가채무비율도 51.6%에서 48.3%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확장 재정 기조가 이어지면서 2030년 총지출은 1005조2000억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첫 쟁점은 162조 미래대응기금 가장 큰 쟁점은 미래대응기금이다. 정부는 최근 10년 내국세 증가 추세선을 웃도는 추가세수를 기금에 적립해 경기 변동과 세수 급감에 대비하는 ‘재정 댐’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내년 추가세수 162조3000억원을 기금에 적립하고, 이 가운데 45조4000억원은 청년, 성장동력, 지방, 교육·인재 등 4대 분야에 투입한다. 또 12조5000억원은 국채 신규 발행 물량을 줄이는 데 활용하고, 104조4000억원은 여유자금으로 비축한다. 정부는 세수가 급격히 줄거나 경기 대응이 필요할 때 추가경정예산 편성 없이 기금 변경으로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국회 심사에서는 기금 운용의 투명성과 국회 통제 문제가 쟁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기금은 일반 예산보다 행정부 재량이 크다. 정부가 미래대응기금의 주요 항목 지출 금액을 일정 범위 안에서 대통령령으로 변경할 수 있도록 국가재정법 개정을 추진하는 점도 논란거리다. 야당과 재정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세수 호황기에 여윳돈이 생기면 우선 국가채무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올 수 있다. ◆AI·반도체에 21조원…미래산업 투자 확대 정부는 잠재성장률 반등을 위해 3대 메가프로젝트와 AI 분야에 21조3000억원을 배정했다. 올해 10조8000억원보다 97.2% 늘어난 규모다. 반도체, 피지컬 AI, AI 데이터센터 등 국가 전략 프로젝트를 집중 지원해 한국 경제의 차세대 성장축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반도체 분야에서는 2조6000억원 규모의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특별회계’를 신설한다. 용인·평택 반도체 생산기지 조기 가동을 위한 기반시설 투자에 1000억원을 배정하고,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의 신속한 착공을 위해 1조5000억원을 지원한다. 반도체 산업단지 전력 공급을 위한 지중 송전망과 고압 변전소 등 전력 인프라에도 881억원을 투입한다. 서남권·충청권 산업단지 용수 공급과 수자원시설 확충에는 1277억원이 배정됐다. AI 분야에는 4조7000억원을 투입한다. 정부는 그래픽처리장치(GPU) 1만 장과 데이터, 인재를 집중 지원해 독자 AI 모델 고도화에 나선다. 이를 기반으로 ‘모두의 AI’를 개발해 대국민 서비스에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미래 성장엔진 확충 예산은 올해 51조2000억원에서 내년 62조8000억원으로 늘어난다. 정부는 우주항공, 바이오, 모빌리티, 원자력, 방산 등 10대 전략기술 분야에 15조원을 투입하고, 소형모듈원자로(SMR), 핵융합, 양자, 우주항공, 첨단바이오 등 미래선도기술 분야 연구 기반도 강화한다. 재생에너지 보급 예산은 9000억원에서 1조8000억원으로 두 배 늘어난다. ◆청년·지방 예산 급증…양극화 대응 전면에 청년 지원 예산은 올해 28조2000억원에서 내년 43조3000억원으로 53.5% 확대된다. 교육, 일자리, 자산, 주거, 혼인·출산·양육, 생활·문화 등 성장단계별 종합 지원에 나서겠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첨단산업 인재양성 부트캠프를 두 배로 늘리고, 대학생 6만 명에게 졸업 전 현장 경험을 제공하는 인턴학기제를 추진한다. K-뉴딜아카데미 등 첨단 분야 직업훈련도 확대한다. 창업안심보험을 신설해 취업 초기 청년에게 보험료의 최대 80%를 지원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자산 형성 지원도 강화된다. 출생부터 18세까지 연 최대 120만원을 지원하는 ‘우리아이자립펀드’를 신설하고, 청년미래적금은 소득요건을 없애 모든 청년이 가입할 수 있도록 개편한다. 주거 분야에서는 청년 공공임대주택 10만6000호를 공급하고, 비아파트 구매 시 월세 수준으로 내 집 마련이 가능한 청년미래보금자리론을 도입한다. 혼인지원금, 출산지원금, 아동기본수당을 묶은 저출생 대응 3종 패키지도 신설한다. 지역균형발전 예산도 대폭 늘어난다. 국토 대전환과 지방주도 성장 예산은 올해 16조1000억원에서 내년 33조원으로 확대된다. 정부는 5극3특 성장엔진특별보조금을 신설해 앵커기업이 지방에 대규모 투자를 할 경우 설비투자액의 최대 50%를 지원할 계획이다. 지방 의료공백 해소를 위한 지역 필수의료 지원 예산은 8000억원에서 1조3000억원으로 늘어난다. 2027년 신입생부터 지방 국립대에 전액 장학금을 지원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소상공인과 취약계층 민생 안정 예산은 10조원에서 15조4000억원으로 늘고, 코로나 피해 소상공인의 장기연체 채무 특별조정에는 7000억원이 투입된다. ◆지출 구조조정 107조…교부금 개편 충돌 가능성 정부는 대규모 확장 재정과 함께 107조6000억원 규모의 지출 구조조정도 병행한다. 소규모·관행적 사업과 불요불급한 경상비, 저성과·유사·중복 사업을 줄여 38조6000억원을 절감하고, 의무지출 조정으로 69조원을 줄인다는 계획이다. 국회 심사에서 특히 논란이 예상되는 부분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과 교부세 개편이다. 정부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의 내국세 연동제 폐지로 32조5000억원을 줄이고, 교부세 산정 방식 개편으로 30조5000억원을 절감한다는 방침이다. 저출생으로 학령인구가 줄어드는 만큼 교육재정 구조를 조정해야 한다는 게 정부 논리다. 그러나 교육계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반발이 나올 수 있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지역 교육재정의 핵심 재원이고, 교부세는 지방정부의 재정 운영과 직결된다. 정부가 지방 투자 예산을 대폭 늘리면서도 기존 지방·교육 재정 배분 방식을 바꾸겠다고 한 만큼, 국회에서는 재원 배분의 형평성과 지역별 영향이 주요 쟁점이 될 전망이다. ◆국회 심사 본격화…12월 2일 법정 시한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을 회계연도 개시 120일 전인 9월 3일까지 국회에 제출한다. 국회는 상임위원회 예비심사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심사, 본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예산안을 확정한다. 국회가 예산안을 의결해야 하는 법정 시한은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인 12월 2일이다. 이번 예산안은 반도체 호황이라는 특수한 세수 여건을 바탕으로 성장과 분배, 미래 투자와 재정 안정성을 동시에 추진하겠다는 성격이 강하다. 정부는 적극 재정을 통해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고 양극화를 완화하겠다는 입장이다.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은 “내년도 적극적인 재정 투자를 통해 V자형 경제 회복을 보다 공고히 견인하고, 성장주도형 재정 선순환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반면 국회에서는 ‘슈퍼예산’의 방향과 재정 운용 방식에 대한 검증이 불가피하다. 820조9000억원이라는 지출 규모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돈이 어디에, 얼마나 효율적으로 쓰이느냐다. AI·반도체·청년·지방 투자처럼 미래 성장과 사회 구조 개선에 필요한 예산은 힘을 받을 수 있지만, 미래대응기금의 행정부 재량 확대와 지방교육재정·교부세 개편은 치열한 공방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2027년도 예산안 심사는 정부가 내세운 ‘성장 투자’ 논리가 국회에서 얼마나 설득력을 얻느냐의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반도체 호황이 만들어낸 일시적 세수 여력을 미래 성장의 마중물로 쓸 것인지, 재정 건전성과 국회 통제를 우선해야 하는지를 둘러싼 논쟁이 정기국회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2026-09-01 14:07:16
-
-
-
-
검찰개혁, 보완수사권부터 없애고 보자는 식이어선 안 된다
[경제일보] 더불어민주당이 검사의 보완수사권을 폐지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채택하고 이달 말 국회 본회의 처리를 추진하고 있다.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일부 범죄에는 전건 송치 제도를 적용하는 보완책도 제시했다. 수사와 기소를 분리해 검찰 권한을 축소하겠다는 것이 개정안의 취지다. 검찰 권한을 민주적으로 통제하고 수사·기소의 집중을 해소해야 한다는 방향에는 이견이 크지 않다. 그러나 제도 개혁은 구호만 옳다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제도가 실제 범죄 피해자를 더 잘 보호할 수 있는지, 부실 수사를 누가 바로잡을지, 수사기관 사이의 책임 공백은 어떻게 막을지를 먼저 따져야 한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그동안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에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시해 왔다. 검찰이 경찰의 1차 수사에 손을 대지 못하게 할 경우 피해자를 보호할 대안이 있는지 물었고 억울한 피해자 한 명이라도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사기관에 대한 견제와 교차 검증이 필요하다는 입장도 밝혔다. 최근에는 정 장관의 사의 논란까지 불거졌다. 청와대는 공식적인 사의 표명이 아니라고 밝혔지만 정 장관이 형사소송법 개정 과정에서 여러 차례 무력감을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주무 장관조차 제도 설계에 충분한 숙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느낀다면 여당은 이를 정치적 반발로만 치부할 일이 아니다. 보완수사는 경찰 수사가 미흡하거나 새로운 증거가 발견됐을 때 검사가 추가로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절차다. 검찰이 이를 수사권 확대의 통로로 악용할 수 있다는 우려는 충분히 제기할 수 있다. 그렇다고 권한 남용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기능 자체를 없애는 것이 유일한 해법은 아니다. 보완수사의 범위와 기간을 제한하고 직접 수사가 가능한 요건을 법률로 엄격히 정하며 모든 과정을 기록·공개하는 방식도 검토할 수 있다. 특히 성범죄와 아동학대, 장애인 대상 범죄, 대형 경제범죄처럼 피해자의 진술과 복잡한 증거 분석이 중요한 사건은 한 차례의 부실 수사가 회복하기 어려운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검사가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하는 권한만 갖고 직접 확인하지 못한다면 사건이 경찰과 검찰 사이를 오가며 장기화할 가능성도 있다. 피해자에게는 수사기관 간 권한 다툼보다 신속하고 정확한 진상 규명이 중요하다. 여당이 제시한 ‘7대 범죄 전건 송치’도 충분한 해답인지 의문이다. 적용 범죄의 기준이 무엇인지, 송치된 사건을 검찰이 어느 범위까지 검토할 수 있는지, 경찰의 수사가 미흡할 경우 누가 최종 책임을 지는지가 명확해야 한다. 일부 범죄만 예외로 두는 방식은 오히려 형사사법 체계를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 검찰개혁의 목표는 검찰이라는 기관의 권한을 줄이는 데만 있지 않다. 수사기관이 서로 견제하면서도 범죄에 제대로 대응하고 국민이 더 신속하고 공정한 수사를 받도록 만드는 것이 본질이다. 검찰의 보완수사권을 폐지한 뒤 문제가 생기면 다시 제도를 고치겠다는 접근은 무책임하다. 형사사법 제도의 시행착오 비용은 정치권이 아니라 범죄 피해자와 국민이 부담한다. 국회는 법안 처리를 서두르기 전에 경찰과 검찰, 법원, 변호사단체, 피해자 지원단체와 일선 수사관의 의견을 공개적으로 들어야 한다. 보완수사권을 폐지했을 때 예상되는 사건 지연과 부실 수사, 책임 소재를 구체적인 사례와 통계로 검증해야 한다. 중대 범죄에 대한 교차 검증 장치와 이의신청 절차, 피해자 구제 수단도 법률에 함께 담아야 한다. 검찰에 기존 권한을 그대로 두자는 것이 아니다. 보완수사권이 필요하다면 그 범위를 최소화하고 외부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 검사의 자의적인 사건 확대와 별건 수사를 차단하고 보완수사 개시 사유와 결과를 기록하게 해야 한다. 반대로 경찰 수사가 부실했을 때 이를 바로잡을 책임 주체도 분명히 해야 한다. 개혁은 빠르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잘못 설계된 제도를 밀어붙였다가 되돌리는 과정에서 국민의 권리와 안전이 훼손될 수도 있다. 이는 개혁이 아니라 또 다른 혼란이다. 여당은 ‘검찰개혁 완수’라는 정치적 시간표보다 피해자 보호와 형사사법 체계의 안정성을 앞에 놓아야 한다. 주무 장관도 납득하지 못하고 일선에서 수사 공백을 우려하는 제도를 충분한 검증 없이 강행해서는 안 된다. 보완수사권을 없애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부실 수사를 막고 억울한 피해자를 구제할 장치를 만드는 일이다. 없애고 나서 생각할 것이 아니라 무엇으로 대신할 것인지부터 국민에게 답해야 한다.
2026-07-27 10:36:15
-
-
-
국회의장 후보, 삼권분립과 협치를 보여줘라
[경제일보] 더불어민주당이 13일 제22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 후보로 6선의 조정식 의원을 선출했다. 조 후보는 5선의 박지원·김태년 의원을 꺾고 결선 없이 1차 투표에서 과반을 얻었다. 원내 제1당 후보가 국회의장으로 선출돼 온 관례를 감안하면, 본회의 표결을 거쳐 후반기 입법부 수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 몫 국회부의장 후보로는 남인순 의원, 국민의힘 몫 국회부의장 후보로는 박덕흠 의원이 각각 선출됐다. 국회의장 후보 선출은 한 정당의 내부 행사가 아니다. 국회 운영의 방향을 가늠하는 정치적 신호다. 더욱이 지금 국회는 대화와 타협의 언어를 잃어가고 있다. 여야는 민생과 경제, 외교·안보, 재정과 세제, 연금과 노동개혁처럼 협상이 필요한 의제 앞에서도 먼저 상대를 공격하고, 나중에 명분을 찾는 정치를 반복하고 있다. 국회의장에게 요구되는 첫 번째 책무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의장은 다수당의 승리 전리품이 아니라 입법부 전체의 균형추여야 한다. 조정식 국회의장 후보는 수락 발언에서 “일 잘하는 이재명 정부와 함께 대한민국 대전환과 도약을 국회도 함께 책임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또 올해 말까지 정부 국정과제 입법을 처리하겠다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 집권세력과 국회 다수당이 국정과제 추진에 책임감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국회의장이 그 책임감을 어떻게 구현하느냐다. 의장이 행정부의 입법 지원 창구처럼 보이는 순간 국회의 권위는 스스로 낮아진다. 국회가 정부와 협력할 수는 있지만 정부의 하위 기관이 돼서는 안 된다. 삼권분립은 교과서 속 장식물이 아니다. 권력이 스스로 절제하지 않을 때 민주주의가 어떻게 흔들리는지를 막기 위해 만든 최소한의 제도적 안전장치다. 입법부는 법을 만들고 행정부는 집행하며 사법부는 법과 권력의 충돌을 심판한다. 이 세 축이 서로 견제하고 균형을 잡을 때 국가 운영은 안정된다. 국회의장은 그중 입법부의 얼굴이다. 여당 출신일 수는 있지만 의장석에 앉는 순간 당의 사람을 넘어 국회의 사람이 돼야 한다. 지금 국민이 국회에 느끼는 피로감은 단순히 말싸움이 많아서가 아니다. 싸움의 방식이 낡았고 결과가 빈약하기 때문이다. 정쟁은 거칠지만 민생 성과는 더디다. 회의장은 열리지만 합의는 닫힌다. 법안은 쏟아지지만 숙의는 줄어든다. 다수당은 의석의 힘을 앞세우고 소수당은 반대의 명분만 쌓는다. 이런 구조에서는 어느 쪽도 국민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국회의장의 역할은 바로 이 악순환을 끊는 데 있다. 첫째, 의장은 본회의와 상임위 운영에서 절차의 공정성을 지켜야 한다. 다수결은 민주주의의 중요한 원리지만 다수결만으로 민주주의가 완성되지는 않는다. 충분한 토론, 소수 의견의 반영, 법안 심사의 투명성, 이해관계자 의견 청취가 함께 있어야 한다. 의장이 의사봉을 빠르게 두드리는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왜 지금 표결해야 하는지 국민이 납득할 수 있게 만드는 일이다. 둘째, 의장은 여야 지도부의 정쟁을 중재할 정치적 권위를 세워야 한다. 지금의 국회에는 싸움을 말릴 어른이 부족하다. 당 대표는 당의 이해를 대변하고, 원내대표는 표결 전략을 짠다. 그래서 국회의장은 더더욱 정파의 계산에서 한 발 물러서야 한다. 여당이 밀어붙일 때는 속도를 조절하고 야당이 발목잡기에 머물 때는 대안을 요구해야 한다. 그것이 의장의 균형이다. 셋째, 의장은 민생 입법의 우선순위를 세워야 한다. 물가, 주거, 고용, 자영업, 금융소비자 보호, 지역경제, 저출생과 연금 문제는 여야가 끝없이 대치할 사안이 아니다. 입장이 다르더라도 합의 가능한 지대는 있다. 모든 법안을 이념 전선으로 끌고 가면 국회는 문제 해결 기관이 아니라 갈등 증폭 장치가 된다. 의장은 여야가 최소한의 공통분모부터 처리하도록 회의 구조와 협상 테이블을 설계해야 한다. 넷째, 의장은 행정부 견제라는 국회의 본령을 회복해야 한다. 여당 정부라고 해서 감시가 약해져서는 안 된다. 예산은 국민의 돈이고 법률은 국민의 삶을 바꾼다. 정부가 잘하면 뒷받침하되, 무리하면 멈춰 세워야 한다. 그것이 협치다. 협치는 야당을 달래는 기술이 아니라 권력이 독주하지 않도록 제도를 작동시키는 일이다. 동양 고전 <논어> 는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한다”는 말이 있다. 군자는 조화를 이루되 무작정 같아지지 않고, 소인은 겉으로 같아 보여도 진정한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뜻이다. 국회가 배워야 할 말이다. 협치는 여야가 생각을 같게 만드는 일이 아니다. 다름을 인정하되 국가와 국민을 위해 함께 결정할 수 있는 영역을 찾는 일이다. 국회의장은 이 ‘화이부동’의 정치가 가능한지 보여주는 자리다. 여당과 뜻이 같다는 이유로 야당을 밀어내면 ‘동이불화’가 된다. 야당의 반대가 두렵다는 이유로 아무 결정도 못 하면 그것 역시 책임 회피다. 의장은 다름을 조정하고, 충돌을 절차 안으로 끌어들이며, 최종 결정에 국민적 정당성을 부여해야 한다. 조 후보에게 따라붙는 정치적 평가는 분명하다. 그는 6선 중진이자 민주당 내 핵심 인사로 꼽힌다. 이재명 대통령의 정무특보를 지냈고, 당내에서는 친명계 인사로 분류된다. 이런 정치적 이력은 강점일 수도 부담일 수도 있다. 강점은 여권 내부를 설득할 힘이 있다는 점이다. 부담은 국회의장이 여권의 입법 드라이브를 관리하는 사람으로 비칠 수 있다는 점이다. 결국 평가는 의장 취임 이후의 행동으로 갈릴 것이다. 후반기 국회는 쉽지 않다. 6·3 지방선거 이후 정국은 더 거칠어질 가능성이 있다. 여야는 선거 결과를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하며 정국 주도권을 잡으려 할 것이다. 경제 상황도 녹록지 않다. 성장, 물가, 가계부채, 부동산, 기업 투자, 연금개혁 등 어느 하나 간단한 문제가 없다. 이럴 때 국회가 정쟁의 무대에 머물면 그 비용은 국민이 치른다. 국회의장은 국회법의 관리자이자 헌정 질서의 수호자다. 박수를 많이 받는 자리보다 욕을 덜 두려워해야 하는 자리다. 여당에는 절제를 요구하고 야당에는 책임을 요구해야 한다. 행정부에는 협력하되 견제해야 하고 국민에게는 국회가 아직 문제를 풀 수 있는 기관이라는 신뢰를 보여줘야 한다. 조 후보가 진정으로 민생 국회를 말하려면 첫 출발은 명확해야 한다. 국회의장석은 정당의 연장선이 아니라 헌법의 자리라는 점을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여당의 속도전과 야당의 반대정치 사이에서 절차와 숙의를 지켜내야 한다. 그것이 삼권분립이다. 그것이 협치다. 국회가 다시 국민의 신뢰를 얻는 길은 거창하지 않다. 덜 싸우라는 것이 아니다. 제대로 싸우라는 것이다. 국민 앞에서 근거를 놓고 다투고 절차 안에서 양보하며 결과에 책임지는 정치가 필요하다. 후반기 국회의장은 그 첫 장면을 만들어야 한다. 조정식 국회의장 후보가 보여줘야 할 것은 당에 대한 충성이 아니라 헌법에 대한 충성이다. 지금 국회에 필요한 의장은 강한 의장이 아니라 공정한 의장이다.
2026-05-14 10:29:32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