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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금융 127년… 민족은행→ 기업금융 명가→ 종합금융 재건중
우리금융그룹의 역사를 말할 때 2001년 한빛은행(상업은행+한일은행) 중심의 금융지주사1호 탄생은 현대만 들여다본 것이다. 우리금융의 뿌리는 한국 근대 금융의 출발점과 맞닿아 있다. 바로 1899년 설립된 대한천일은행이다. 고종황제의 내탕금과 대한제국 황실 자금, 조선 상인 자본이 더해져 세워졌다. 이 은행은 단순한 금융회사가 아니라 자주적 금융 기반을 지키려는 시대적 산물이었다. 이후 조선상업은행과 한국상업은행으로 이어졌고, 한일은행과 함께 한국 산업화와 기업금융의 한 축을 맡았다.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은 기업 거래와 무역금융, 산업자금 공급의 현장에서 한국 경제의 성장판을 떠받친 은행이었다. 우리금융의 DNA를 한마디로 압축하면 ‘기업금융 명가’다. ◆민족은행·기업금융 DNA…상업·한일 합병으로 한빛은행 출범 우리금융의 첫 번째 성장 동력은 기업금융이었다. 상업은행은 오랜 역사와 거래 기반을 바탕으로 기업 고객과 중소상공인의 금융 창구 역할을 했다. 한일은행 역시 산업화 시기 수출기업, 제조업, 중견기업 금융에서 존재감을 키웠다. 두 은행은 조직 문화는 달랐지만 한국 경제가 필요로 하는 자금을 실물 부문으로 흘려보냈다는 점에서 같은 역할을 했다. 결정적 변곡점은 외환위기였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금융권은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피할 수 없었다. 1998년 정부는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에 예금보험공사를 통해 3조3000억원의 공적자금을 지원했고, 두 은행은 같은 해 12월 한빛은행으로 합병됐다. 부실채권 정리, 인력 구조조정, 영업망 재편이 동시에 진행된 고통스러운 통합이었다. 2001년 4월 우리금융지주가 출범했다. 한빛은행을 중심으로 카드, 종합금융, 자산운용 등 여러 금융 기능을 묶은 국내 1호 금융지주였다. 2002년 한빛은행은 ‘우리은행’으로 이름을 바꾸며 통합 브랜드를 완성했다. ‘우리’라는 이름에는 외환위기 이후 다시 국민과 기업의 은행으로 서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숫자로 본 성장사…95조 금융그룹서 600조 종합금융그룹으로 우리금융의 성장사는 숫자로도 뚜렷하다. 2001년 3월 말 기준 우리금융은 한빛은행·평화은행·광주은행·경남은행을 묶은 은행계열 합산 총자산 95조4000억원 규모로 출발했다. 당시 국민·주택은행 합산 162조6000억원에는 못 미쳤지만, 신한금융 계열 53조2000억원을 크게 웃도는 대형 금융그룹이었다. 수익성도 위기 국면을 지나 회복 단계에 들어섰다. 금융지주의 주포 한빛은행은 2001년 말 총자산 75조4205억원, 당기순이익 7130억원을 기록했다. 24년이 흐른 2025년 말 우리금융의 체급은 달라졌다. 연결 총자산은 601조4573억원으로 불어났다. 출범 초기 은행계열 합산 자산 95조4000억원과 단순 비교하면 약 6.3배 성장한 셈이다. 같은 기간 우리금융은 은행 중심 금융회사에서 카드·캐피탈·저축은행·자산운용·벤처투자·증권·보험을 거느린 종합금융그룹으로 바뀌었다. 이익 체력도 커졌다. 우리금융은 2025년 연결 당기순이익 3조1413억원을 기록했다. 2001년 주력 계열사였던 한빛은행 순이익 7130억원과 비교하면 약 4.4배 규모다. 자산은 100조원 미만 금융그룹에서 600조원대 종합금융그룹으로, 순이익은 수천억원대에서 3조원대로 올라섰다. ◆공적자금과 민영화의 긴 터널…명가의 그림자 그러나 우리금융의 역사에는 성장의 장면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명가의 그림자는 공적자금과 정부 소유 구조였다. 외환위기 이후 투입된 공적자금은 우리금융을 살렸지만, 동시에 오랜 기간 정부 영향력 아래 놓이게 했다. 민영화는 우리금융의 숙원이었다. 정부는 2002년부터 우리금융 지분 매각을 추진했다. 공모, 블록세일, 경영권 매각, 분리 매각이 이어졌지만 시장 여건과 인수 수요 부족으로 여러 차례 좌초했다. 2013년에는 우리금융을 은행계열, 증권계열, 지방은행계열로 나누는 분리 매각 방식이 추진됐고, 증권계열은 NH금융, 경남은행은 BNK금융, 광주은행은 JB금융으로 넘어갔다. 이 대목은 우리금융의 가장 큰 상처이자 현재 전략의 출발점이다. 우리투자증권, 우리아비바생명, 우리캐피탈, 경남은행, 광주은행 등이 매각되면서 우리금융은 한때 ‘증권 없는 금융지주’가 됐다. 은행 중심 수익 구조는 더 굳어졌고, KB·신한·하나금융이 증권·보험·카드·자산운용을 키우는 동안 종합금융 포트폴리오 경쟁에서 뒤처졌다. 민영화의 물꼬는 2016년 과점주주 매각으로 트였다. 정부와 예금보험공사는 우리은행 지분 29.7%를 과점주주 7곳에 매각하며 민영화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이후 잔여 지분 정리와 지배구조 개편을 거치며 우리금융은 정부 그늘에서 벗어나 민간 금융그룹으로서 체질 전환을 본격화했다. ◆증권·보험 복원…비은행 재건은 아직 진행형 현재의 우리금융은 다시 종합금융그룹 복원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2024년 우리투자증권 출범으로 10년 만에 증권업에 재진입했고, 2025년 동양생명과 ABL생명 편입으로 보험업까지 갖췄다. 과거 민영화 과정에서 잃었던 비은행 축을 다시 세우는 작업이다. 하지만 비은행 재건은 아직 완성형이 아니다. 2025년 우리금융의 연간 당기순이익은 3조1413억원으로 2년 연속 3조원대를 유지했다. 비이자이익은 전년 대비 약 25% 늘어난 1조9266억원, 순영업수익은 10조9574억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다만 보험사 인수 과정의 일회성 효과와 높은 은행 의존도는 여전히 과제다. 2026년 1분기 실적도 명암을 동시에 보여준다. 그룹 당기순이익은 6038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2.1% 감소했다. 순영업수익과 비이자이익은 늘었지만, 대손비용 증가와 우리은행 이익 감소가 발목을 잡았다. 금융지주의 기초 체력은 은행에서 나오지만, 미래 기업가치는 은행 바깥에서 결정된다. 우리금융이 풀어야 할 숙제다. ◆생산적 금융·AX·시너지…기업금융 명가의 다음 성장판 우리금융의 미래 성장전략은 △생산적 금융 △전사적 AX(AI 전환) △그룹 시너지로 요약된다. 우리금융은 2030년까지 총 80조원을 생산적 금융과 포용금융에 투입하겠다는 ‘미래동반성장 프로젝트’를 내놨다. 이 중 생산적 금융은 73조원, 포용금융은 7조원이다.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인공지능 △방산 △에너지 △지역 전략산업 등으로 자금이 흘러가야 금융도 성장하고 실물경제도 성장한다는 판단이다. 우리은행의 기업 고객에게 우리투자증권의 IB(투자금융)와 모험자본 기능을 연결하고, 동양생명·ABL생명의 보험 역량을 자산관리와 은퇴설계로 묶는 것이 관건이다. AX도 핵심 과제다. 금융 경쟁은 더 이상 점포 수와 예대마진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심사, 상담, 리스크관리, 내부통제, 자산관리, 소비자보호에 AI를 얼마나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적용하느냐가 새 경쟁력이다. 우리금융 관계자는 “역사를 보면 대한천일은행의 민족금융, 상업·한일은행의 기업금융, 한빛은행의 구조조정, 국내 1호 금융지주의 실험, 공적자금의 그늘, 민영화의 긴 터널을 거쳤다”며 “이제는 종합금융그룹 재건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고 말했다. [아주경제 2026년 06월 02일자 15면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2026-06-02 07:4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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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으로 떠받친 증시 호황, 가계부채 시한폭탄 키워선 안 된다
[경제일보] 국내 가계부채에 또다시 경고등이 켜졌다. 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개인 신용대출이 한 달 만에 2조6000억 원 넘게 증가하며 107조 원에 육박했다. 특히 증가분 대부분이 마이너스통장에서 발생했다는 점은 단순한 생활자금 수요가 아니라 투자 목적의 차입이 급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부의 강력한 규제로 주택담보대출 증가세가 억제되자 자금 수요가 신용대출로 이동하는 풍선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이런 신용대출 급증의 배경에 ‘빚투’ 열풍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반도체 업황 개선과 증시 상승 기대감이 맞물리면서 투자자들의 자금 유입이 크게 늘고 있다. 문제는 상당수가 자기 자본이 아닌 빚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신용거래융자 잔액이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카드론까지 동원해 주식시장에 뛰어드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것은 과열 신호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투자는 미래의 수익을 기대하는 경제활동이지만, 과도한 레버리지는 언제나 위험을 동반한다. 특히 최근 우리 경제를 둘러싼 환경은 결코 낙관적이지 않다. 고물가와 고환율, 고금리가 동시에 지속되는 이른바 ‘3고 현상’이 여전히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세계 경제 역시 지정학적 갈등과 보호무역주의 확산으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일부 산업의 호조가 경제 전체의 체력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만약 금리 인상과 증시 조정이 동시에 발생한다면 그 충격은 개인 투자자와 금융시장 전반에 고스란히 전이될 수 있다. 주가가 급락하면 반대매매가 연쇄적으로 발생하고, 이는 다시 시장 하락을 부추기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미 개인회생 신청자가 급증하고 있다는 사실은 가계의 재무 건전성이 생각보다 취약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자칫 가계부채 부실이 금융권의 건전성 문제로 확산될 경우 우리 경제는 소비 위축과 성장 둔화라는 이중고에 직면할 수 있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지금의 상황을 단순한 시장 활황의 부산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신용대출과 카드론의 용도와 증가 추이를 면밀히 점검하고, 고위험 차입 투자에 대한 관리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 금융회사 역시 단기 실적에만 매몰되지 말고 대출 건전성 관리에 더욱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무엇보다 투자자들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상승장에서는 누구나 수익을 기대하지만, 시장은 언제든 방향을 바꿀 수 있다. 빚을 내 투자하는 행위는 수익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손실도 배가시킨다. 투자 기회를 놓칠까 두려워하는 포모(FOMO) 심리에 휩쓸려 무리한 차입에 나선다면 결국 그 대가는 개인과 가계, 나아가 경제 전체가 떠안게 된다. 빚으로 만든 호황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투기적 낙관론이 아니라 냉정한 위험 관리다. 가계부채라는 시한폭탄의 초침은 이미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더 큰 위기가 오기 전에 정부와 금융권, 그리고 투자자 모두가 경각심을 갖고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할 때다.
2026-06-01 09:3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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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지방선거, 정권 심판보다 생활정치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경제일보] 6.3 지방선거가 눈앞에 다가왔다. 여야는 총력전에 들어갔다. 여당은 국정 안정을, 야당은 정권 견제를 내세우고 있다. 중앙정치의 시각에서 보면 이번 선거는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첫 전국 단위 민심 평가의 성격을 갖는다. 그러나 지방선거의 본령은 따로 있다. 주민의 삶을 누가 더 잘 돌볼 것인가, 지역의 살림을 누가 더 책임 있게 운영할 것인가, 낡은 행정과 무능한 의회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묻는 선거다. 지방선거는 대통령을 다시 뽑는 선거가 아니다. 국회를 새로 구성하는 선거도 아니다. 시장과 도지사, 구청장과 군수, 지방의원과 교육감을 뽑는 선거다. 이들이 결정하는 것은 추상적인 이념이 아니라 생활의 조건이다. 버스 노선 하나, 학교 주변 안전 하나, 노후 주택 정비 하나, 보육과 돌봄 예산 하나가 주민의 하루를 바꾼다. 지역 산업단지 규제 완화와 청년 창업 공간, 전통시장 주차장, 병원 접근성, 하천 정비, 쓰레기 처리, 재난 대응 역시 지방정부의 실력과 직결된다. 지방선거를 중앙정치의 승패표로만 소비하는 것은 유권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물론 이번 선거에 중앙정치의 의미가 없을 수는 없다. 정권 출범 이후 국정 운영에 대한 평가가 투표장에 반영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물가와 집값, 고용과 세금, 복지와 재정, 외교와 안보에 대한 유권자의 판단도 선거에 담긴다. 그러나 모든 지방 의제를 정권 심판론 하나로 덮어버리면 정작 지역은 사라진다. 서울의 교통과 주거, 부산의 산업 재편, 대구·경북의 청년 유출, 호남의 인구 감소, 충청의 행정수도와 산업벨트, 강원의 접경지 경제, 제주 관광과 환경 문제는 모두 다른 해법을 요구한다. 하나의 정치 구호로 해결할 수 없는 과제들이다. 이번 선거에서 가장 먼저 따져야 할 것은 후보의 간판이 아니라 실력이다. 어느 당 소속인가보다 무엇을 해왔는지 누구와 가까운가보다 어떤 문제를 해결했는지가 중요하다. 지방정부는 이제 단순한 행정기관이 아니다. 지역 경제의 기획자이자 복지의 집행자이며 재난과 안전의 최전선이다. 인구가 줄어드는 지역에서는 생존 전략을 짜야 하고 수도권에서는 과밀과 주거비 문제를 풀어야 한다. 인공지능(AI) 산업과 디지털 전환, 기후 대응과 에너지 전환도 중앙정부만의 과제가 아니다. 데이터센터를 어디에 둘 것인지, 전력망과 산업단지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 지역 대학과 기업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가 지방의 미래를 좌우한다. 그런데 선거 현장은 여전히 낡은 정치의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인물 검증보다 진영 동원이 앞서고 정책 경쟁보다 상대 흠집 내기가 더 쉽게 소비된다. 공천만 받으면 사실상 당선이 보장되는 지역도 적지 않다. 이번 6.3 지방선거에서는 무투표 당선자가 500명 안팎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역대 최고 수준에 근접한 규모로 지방자치 경쟁이 얼마나 약화됐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선택지가 없는 선거는 유권자의 권리를 반쪽으로 만든다. 지방의원 선거가 생활정치의 입구가 아니라 정당 조직의 하부 구조로 굳어지면 지방자치는 뿌리부터 흔들릴 수밖에 없다. 교육감 선거 역시 결코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다. 교육은 한 세대의 미래를 결정하는 영역이다. 학력 저하와 사교육비 부담, 학교폭력, 교권 회복, 디지털 교육, 지역 간 교육 격차는 어느 하나 쉬운 과제가 아니다. 그런데도 상당수 유권자는 교육감 후보가 누구인지조차 충분히 알지 못한 채 투표장에 들어선다. 정당 표시가 없다는 이유로 정보는 부족하고 후보들은 이념 구호 뒤에 숨는다. 교육감은 아이들의 학교와 교사의 일터, 학부모의 삶을 바꾸는 자리다. 모른 채 찍는 투표가 반복돼서는 안 된다. 유권자에게도 책임은 있다. 정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투표를 포기하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다. 투표하지 않는 시민의 몫은 언제나 더 조직된 세력이 가져간다. 지방선거에 대한 무관심은 결국 생활정치의 질을 떨어뜨린다. 주민이 묻지 않으면 후보는 답하지 않는다. 공약을 따지지 않으면 선거 이후 책임도 물을 수 없다. 누가 우리 지역 예산을 어떻게 쓸 것인지, 빚을 얼마나 늘릴 것인지, 개발 이익은 누구에게 돌아갈 것인지, 복지는 지속 가능한지, 청년과 노인은 어디에서 살아갈 수 있는지 꼼꼼히 물어야 한다. 정당들도 달라져야 한다. 지방선거를 중앙정치의 전초전으로만 여기는 태도는 이제 버려야 한다. 좋은 후보를 키우지 않고 지역 정책을 준비하지 않고, 선거 때마다 심판론과 방어론만 반복하는 정당은 지방자치를 말할 자격이 없다. 공천은 정당의 가장 중요한 책임이다. 부실한 후보를 내놓고 당만 보고 찍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무책임이다. 지방의회 역시 거수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집행부를 감시하지 못하는 의회, 예산을 읽지 못하는 의원, 주민보다 정당의 눈치를 보는 지방정치는 결국 지역을 병들게 한다. 이번 6.3 지방선거의 기준은 단순해야 한다. 내 삶을 더 나아지게 할 사람인가. 지역의 돈을 제대로 쓸 사람인가. 갈등을 키우기보다 문제를 해결할 사람인가. 중앙정치의 바람에 기대는 후보보다 현장을 아는 후보를, 구호만 외치는 후보보다 숫자와 예산을 설명할 수 있는 후보를, 당색보다 책임을 아는 후보를 선택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거창한 제도가 아니라 반복되는 선택의 축적이다. 지방선거는 그중에서도 가장 생활에 가까운 민주주의다. 이번 선거를 정권 심판의 함성만으로 끝내서는 안 된다. 심판도 필요하고 견제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는 것은 주민의 삶이다. 정치가 다시 주민의 삶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 지방정부가 생활의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로 기능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이번 6.3 지방선거에서 유권자와 정치권 모두가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2026-05-30 12:0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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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NK금융, 은행 NIM 반등에 순익 회복…생산적 금융·비은행 확대가 기회
[경제일보] BNK금융그룹이 올해 1분기 이자이익과 비은행 계열사 성장에 힘입어 실적 반등에 성공했다. 다만 판매관리비 확대와 은행 건전성 저하는 부담 요인이다. BNK금융의 생산적 금융과 지역 주력 산업 지원을 통한 여신 기반 확대, 주주환원 강화와 증시 회복에 따른 비은행 실적 개선은 성장 기회로 평가된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BNK금융의 올해 1분기 지배기업지분 당기순이익은 2114억원으로 전년 동기(1666억원) 대비 26.9% 증가했다. 이는 안정적인 이자이익 확보, 충당금전입액 감소 등의 영향이다. 1분기 BNK금융의 이자이익은 7628억원으로 전년 동기(7355억원) 대비 3.7% 증가했다. 예대금리차 개선, 자산포트폴리오 조정을 통해 그룹 순이자마진(NIM)이 2.11%로 전년 동기(2.06%) 대비 0.05%포인트(p) 상승하며 이자 수익성 성장을 견인했다. 은행별로는 부산은행의 성장이 뚜렷한 가운데 경남은행은 당기순이익이 소폭 감소했다. 1분기 부산은행의 당기순이익은 1081억원으로 전년 동기(856억원) 대비 26.3% 증가했다. 이자·수수료 이익이 모두 늘어난 가운데 충당금전입액도 절반 가까이 줄었다. 반면 같은 기간 경남은행의 당기순이익은 675억원으로 전년 동기(694억원) 대비 2.7% 감소했다. 이자이익은 늘었으나 수수료이익 감소, 기타부문손실 등이 실적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 비은행 계열사도 성장세다. 1분기 BNK캐피탈의 당기순이익은 382억원으로 전년 동기(275억원) 대비 38.9% 증가했다. BNK투자증권의 당기순이익은 93억원으로 전년 동기(57억원)보다 63.2%, BNK자산운용은 80억원으로 전년 동기(5억원) 대비 10배 이상 급증했다. 다만 판매관리비(판관비) 확대와 자산건전성 저하는 부담 요인으로 평가된다. 그룹 판매관리비는 4233억원으로 전년 동기(3765억원) 대비 12.4% 증가했다. 1분기 그룹 연체율은 1.42%로 전년 동기(1.12%) 0.3%p 상승했다. 고정이하여신비율은 1.57%로 전년 동기(1.69%) 대비 0.12%p 하락했으나 전분기(1.42%)보다는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이 중 부산은행 연체율은 1.21%로 전년 동기(0.73%) 대비 0.48%p 상승했고 고정이하여신비율도 1.26%로 전년 동기(1.10%) 대비 0.15%p 올랐다. 같은 기간 경남은행의 연체율은 1.05%로 전년 동기(0.68%)보다 0.37%p, 고정이하여신비율은 0.94%로 전년 동기(0.82%)보다 0.12%p 상승했다. 이는 경기 둔화에 따른 부실 증가의 영향으로 풀이된다. BNK금융은 적극적인 부실자산 사후관리, 우량자산 확대를 통해 건전성 비율 회복에 나설 방침이다. 비은행 부문 성장과 지역 기반 생산적 금융 확대는 향후 성장 동력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BNK투자증권과 BNK자산운용의 실적 개선 흐름이 이어지는 가운데 최근 증시 거래대금 증가와 투자심리 회복이 지속된다면 비은행 부문의 이익 기여도도 확대될 수 있다. BNK금융은 올해 생산적 금융 중심의 여신 포트폴리오 확대 전략을 이어갈 계획이다. 부산은행은 해양산업 중심 금융 지원 확대에 나선다. 선박금융과 항만 물류 인프라 투자 확대, 친환경 해양산업 맞춤형 금융 지원 등을 통해 해양·조선·물류 산업 중심 금융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생산적 금융 기조에 맞춰 중소·중견기업과 지역 혁신기업 대상 금융 지원도 확대하며 지역 제조업 기반 여신 성장에 집중하기로 했다. 경남은행은 전략적 우량자산 확대와 생산적 금융 중심 성장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지역경제 재도약을 위한 상생·포용금융 강화와 함께 인공지능(AI)·디지털금융 혁신, 자산관리(WM)·연금 부문 경쟁력 확대 등을 올해 주요 경영 방향으로 제시했다. 이와 함께 선제적 리스크 관리와 내부통제 체계 강화를 병행해 건전성과 수익성 균형에 초점을 맞춘다. 그룹 차원에서는 'BNK밸류업전략위원회'를 출범하고 그룹체질 개선, 성장 기반 마련을 추진한다. 위원회는 △이사회 운영 선진화 △경영 의사결정 투명성 강화 △컴플라이언스 체계 고도화 등을 통해 그룹 신뢰도 제고에 나선다. 또한 수익성 및 자본효율성 강화, 생산적 금융 확대, 산업금융 지원 강화 방안도 함께 점검한다. BNK금융은 주주환원 정책도 병행한다. 올해 반기 배당 주당 150원과 자사주 매입·소각 600억원을 추진하고 있으며 향후 총주주환원율을 50%까지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박성욱 BNK금융그룹 CFO 부사장은 "기업가치 제고 계획에 따라 주주환원 확대를 위해 자사주 매입·소각 규모를 작년 상반기에 실시한 규모보다 50% 증대하여 600억원 규모로 실시할 예정"이라며 "배당소득 분리과세 고배당기업 요건을 충족할 수 있도록 현금배당을 안정적으로 확대하는 범위 내에서 자사주 매입·소각 비중을 높여 주주가치 제고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2026-05-28 17:3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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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1000만 명의 시대, 실버타운 40곳 뿐
숫자는 냉정하다. 2024년 7월 대한민국 65세 이상 인구가 1000만 명을 넘어섰다. 전체 인구의 19%다. 2030년에는 25%인 1300만 명을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이 1000만 명을 위한 노인 주거 시설, 이른바 실버타운은 전국에 40곳·9000여 가구에 불과하다. 고령 인구 대비 0.13%다. 미국은 4.8%, 일본은 2%다. 한국은 선진국의 30분의 1 수준이다. 이것은 준비 부족의 문제가 아니다. 정책 실패의 문제다. 고령화 속도가 세계 최고라는 사실을 모른 것도 아니고, 예측하지 못한 것도 아니다. 알면서 10년 넘게 규제의 울타리를 치고, 민간의 진입을 막고, 공공 공급은 연간 1000가구 수준에 묶어뒀다. 그 결과가 지금 이 숫자다. 2015년, 정부가 문을 걸어 잠갔다 현재 실버타운의 공급 공백을 이해하려면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정부는 그해 노인복지법을 개정해 분양형 노인복지주택을 전면 폐지했다. 명분은 정당했다. 서울·수도권을 중심으로 부동산 투기에 악용되고, 불법 분양과 부실 운영 사례가 속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 있는 일부 사업자를 규제하는 대신, 정부는 제도 자체를 없앴다. 분양형이 사라지자 임대형 실버타운만 남았다. 운영 경험이 있는 사업자만 진입 가능하도록 장벽을 높였다. 수익성이 낮은 구조에서 신규 공급은 멈췄다. 규제는 투기꾼을 막았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평범한 노인들이 갈 곳을 잃었다. 그 문이 닫힌 채 10년이 흘렀다. '분양형 재도입' — 해법인가, 면피인가 2025년 정부는 9년 만에 분양형 실버타운 재도입을 선언했다. 언론은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발표의 조건을 들여다보면 달라진다. 분양형 실버타운이 허용되는 지역은 행정안전부가 지정한 '인구감소지역 89곳'에 한정된다. 강원, 전남, 경북의 인구 소멸 위기 지역들이다. 문제는 노인들이 살고 싶어 하는 곳은 그곳이 아니라는 점이다. 실버타운 수요는 의료·교통·상업시설이 갖춰진 도심에 집중된다. 업계는 한목소리로 "수요가 있는 곳에 짓게 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정부의 답은 "인구 소멸지역부터 시범 운영"이다. 노인 주거 문제를 해결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지방 소멸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려는 두 마리 토끼 잡기의 산물이다. '더 클래식 500' 보증금 9억 — 중산층 노인은 갈 곳이 없다 현재 운영 중인 실버타운은 양극화돼 있다. 한쪽 끝에는 보증금 9억 원, 월 생활비 472만 원 이상인 최고급 시설이 있다. 삼성 노블카운티의 임대료는 인근 아파트의 2.19배 수준이다. 다른 한쪽 끝에는 저소득층을 위한 정부 지원 시설이 있다. 그 사이, 중산층 노인을 위한 시설은 사실상 전무하다. 은퇴 후 중소도시 아파트를 보유하고, 국민연금을 받으며, 자녀에게 손 벌리지 않고 살고 싶은 노인 — 이 나라 노인의 대다수가 속하는 이 계층을 위한 실버타운은 존재하지 않는다. 정부가 말하는 '중산층 위한 실버스테이'는 아직 계획 단계다. 1000만 노인 시대에 정책은 여전히 미래형이다. 규제를 풀어도 안 짓는 이유 — 수익성의 벽 정부가 위탁 운영 경험 요건을 없애고 호텔·보험사·리츠까지 사업자 범위를 넓혔지만, 민간이 선뜻 뛰어들지 않는 이유가 있다. 실버타운은 초기 투자 비용이 크고, 임대료 인상이 연 5% 이내로 제한돼 수익 구조가 취약하다. 의료·돌봄 서비스를 병행해야 하는 운영 부담도 크다. 이 구조에서 민간이 찾는 출구는 두 곳이다. 고급화해서 마진을 높이거나, 서비스 질을 낮춰 비용을 줄이거나. 중산층을 위한 합리적 가격의 실버타운은 규제를 풀어도 시장이 자동으로 만들어내지 않는다. 그것은 공공 투자와 제도 설계가 함께 가야 가능한 영역이다. 정부는 규제 완화로 책임을 시장에 넘겼지만, 시장은 그 빈자리를 채우지 않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 세 가지 방향이 즉각 논의돼야 한다. 첫째, 분양형 실버타운 허용 지역을 인구감소지역에서 수요 집중 지역으로 단계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수도권 도심 내 역세권, 의료기관 인접 지역을 우선 검토해야 한다. 둘째, 중산층 노인을 위한 공공 주도 공급 모델이 필요하다. LH 고령자복지주택 공급 목표를 연 3000가구에서 대폭 상향하고, 민관 협력 모델을 통해 속도를 내야 한다. 셋째, 서비스 품질 기준을 법제화해야 한다. 분양형 재도입 이후 과거처럼 부실 운영과 투기 악용이 재발하지 않으려면, '얼마에 공급하느냐'보다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대한 구체적 기준 이 먼저 마련돼야 한다. 노인 1000만 명의 나라에 실버타운이 40곳뿐이라는 사실은, 이 사회가 노인의 주거를 얼마나 오랫동안 정책의 변방에 방치해왔는지를 보여준다. 분양형 재도입은 늦었지만 반가운 출발이다. 그러나 노인들이 살고 싶은 곳에 짓지 못하고, 중산층이 감당할 수 있는 가격이 아니라면, 숫자만 바뀔 뿐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2026-05-24 1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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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시 호황'에 취해 미래 투자를 잊은 한국 경제, 2년 뒤 닥칠 '복합 위기'가 두렵다
[경제일보] 삼성전자 노사의 극적인 합의로 총파업이라는 최악의 파국은 일단 면했다. 올해 우리 경제의 성장률을 최대 0.5%포인트 갉아먹을 뻔했던 시한폭탄의 초침이 멈추면서 정부와 재계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이번 사태가 남긴 상흔과 경고는 결코 가볍지 않다. 개별 기업의 노사 갈등이 국가 경제 전체를 마비시킬 뻔한 미증유의 위기는, 반도체라는 단일 업종에 기댄 대한민국 경제의 취약한 민낯을 그대로 드러냈다. 정부가 21년간 사문화되었던 ‘긴급조정권’ 발동까지 만지작거리며 노사 중재에 나섰던 것은 역설적으로 우리 경제의 버팀목이 얼마나 부실한지를 방증할 뿐이다. 눈앞의 파업 리스크가 해소되었다고 해서 경제의 펀더멘털이 회복된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경기 회복은 온전한 자생적 성장이 아닌, 반도체 슈퍼사이클과 일부 완성차 수출에 기댄 ‘착시 호황’이다. 실제로 올해 초 대한민국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35%를 넘어섰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라는 ‘투톱’이 주요 대기업 영업이익의 60%, 코스피 시가총액의 절반을 독식하는 기형적 구조다. 이들 대기업이 거둔 천문학적인 실적의 착시에 가려, 내수 경기는 바닥을 기고 소상공인과 서민들의 지갑은 닫힌 지 오래다. 이른바 산업 간, 소득 간 ‘K자형 양극화’의 심화다. 더 큰 문제는 이 호황이 가져온 고질적인 부작용이다. 반도체 실적이 조금 올랐다고 해서 노사는 벌어들인 수익을 ‘누가 더 많이 나눠 가질 것인가’라는 분배 놀음에만 몰두하고 있다. 성과급의 액수를 두고 벌어지는 소모적인 갈등 속에 미래를 위한 초격차 연구개발(R&D)과 시설 투자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원천 기술 확보와 인재 육성에 사활을 걸어도 모자랄 판에, 당장 손에 쥐어질 성과급 잔치에 한눈을 파는 사이에 대외 경쟁력은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리고 있다. 이런 해이함의 대가는 머지않은 미래에 혹독한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다. 반도체의 호황 사이클은 결코 영원할 수 없다. 글로벌 공급 과잉과 기술 추격이 본격화되는 1~2년 뒤, 반도체 사이클이 하강 국면으로 접어들면 우리 경제를 지탱할 기둥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또 다른 축인 완성차 산업 역시 위태롭기는 매한가지다. 막대한 자본력과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 자동차 기업들의 공습은 이미 글로벌 시장을 넘어 우리 내수 안마당까지 위협하고 있다. 1~2년 내에 반도체의 한계와 자동차의 위기가 동시에 도래하는 ‘퍼펙트스톰(복합 위기)’이 올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엄중한 경고를 허투루 들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만약 이 경고가 현실화된다면 우리 경제는 회복 불능의 타격을 입게 된다. 성장 동력이 꺼진 경제는 고용 절벽과 세수 결손으로 이어져 국가 재정의 건전성을 위협하고, 민생을 파탄으로 몰고 갈 것이다. 특정 강소 산업에 기댄 외풍 취약형 경제 구조를 전면 개혁하지 않는 한, 대한민국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처지를 벗어날 수 없다. 지금 반도체 호황이 벌어다 준 ‘금쪽같은 시간’은 분배의 축제를 벌일 시간이 아니라, 경제의 체질을 뜯어고칠 마지막 골든타임이다. 노사는 당장의 이익 조율을 넘어, 기업의 생존과 미래 경쟁력 확보가 선행되어야 분배도 존재한다는 자명한 시장의 상식을 되새겨야 한다. 정부 역시 노조의 무리한 성과급 요구가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되어 사회적 갈등을 키우지 않도록 법과 원칙에 따른 합리적 조정자 역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정부와 기업은 머리를 맞대고 반도체와 자동차를 이을 포스트 먹거리 육성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로봇, 방산, 원전, 바이오 등 신산업 분야의 규제를 과감히 철폐하고 세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특정 산업의 변수에 국가의 운명이 좌우되는 기형적이고 위태로운 구조를 타파하고, 지속 가능한 다변화된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만이 다가올 2년 뒤의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유일한 활로다. 위기는 경고 없이 찾아오지 않는다. 지금의 착시에서 깨어나지 못한다면 그다음은 파국뿐이다.
2026-05-22 09:5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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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포 3곳서 800조 메가뱅크로…신한금융, 위기때마다 문법 바꿨다
신한금융그룹의 역사는 한국 금융산업의 압축 성장사와 맞닿아 있다. 1982년 7월 7일, 신한은행은 재일동포 주주들의 자본과 ‘금융을 통해 조국에 기여하겠다’는 금융보국 정신을 바탕으로 문을 열었다. 당시 신한은행은 자본금 250억원, 임직원 279명, 점포 3곳으로 출발한 후발은행이었다. 이 작은 출발이 훗날 한국 금융의 판도를 흔든 출발선이 됐다. ◆후발은행의 반란…지주사 전환으로 종합금융그룹 기틀 세우다 신한의 DNA는 처음부터 달랐다. 시중은행의 후발주자였지만 그 한계를 서비스와 속도로 돌파했다. 은행 문턱이 높던 시절 신한은 고객 응대와 업무 처리 방식에서 차별화를 시도했다. 금융기관이 고객 위에 군림하던 관행 대신, 고객을 맞이하고 설명하고 설득하는 은행을 지향했다. 창립 당시 점포 3곳에 불과했던 은행이 2006년 조흥은행과의 통합을 앞두고 점포 945개, 직원 1만1311명, 총자산 163조원 규모의 대형 은행으로 커진 것은 이 같은 영업문화와 조직 DNA가 숫자로 확인된 결과였다. 신한은행은 설립 후 빠르게 성장했다. 1984년 국내 최초 CMF(Customer Master File) 수신 온라인 시스템을 도입했고, 1985년 동화증권을 인수하며 증권업과의 연결고리를 마련했다. 1988년 서울 중구 태평로 본점으로 이전했고 1989년에는 기업공개와 주식상장을 통해 자본시장의 평가를 받는 은행으로 올라섰다. 은행업의 기본인 예금·대출 경쟁력 위에 전산화, 고객서비스, 증권업 진출을 결합한 것이 신한식 성장 모델의 원형이었다. 신한의 1차 도약이 ‘은행업의 혁신’이었다면, 2차 도약은 ‘금융그룹화’였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국내 금융산업은 생존과 구조조정의 소용돌이에 들어갔다. 신한은 이 격변기를 기회로 바꿨다. 2001년 국내 최초의 순수 민간 금융지주회사로 전환하며 은행·증권·카드·보험·자산운용을 아우르는 종합금융그룹의 길을 열었다. 수치로 보면 변화는 더 선명하다. 신한금융은 2001년 지주 출범 당시 총자산 56조3000억원, 당기순이익 2210억원 규모였다. 그러나 2021년 상반기에는 총자산 861조7000억원으로 20년 사이 15.3배 늘었다. 당기순이익의 경우 25년 4조9716억원으로 24년만에 22배 커졌다. ◆조흥은행·LG카드 품고 메가뱅크로…신한사태 뒤 시스템 경영 강화 2004년 조흥은행을 완전자회사로 편입하고 2006년 통합 신한은행을 출범시킨 것은 신한 역사에서 결정적 변곡점이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후발 은행이었던 신한이 전통 대형 은행의 영업망과 고객 기반을 흡수하며 단숨에 ‘메가뱅크’ 반열에 오른 사건”이라고 말했다. 2007년 LG카드 인수와 통합 신한카드 출범은 비은행 포트폴리오 확장의 상징이었다. 굿모닝신한증권, 신한생명,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등으로 이어진 포트폴리오 확장은 신한을 단일 은행에서 복합 금융그룹으로 바꿨다. 그러나 금융명가의 역사에 영광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신한금융은 2010년 이른바 ‘신한사태’라는 혹독한 내홍을 겪었다. 신한사태는 2010년 9월 당시 라응찬 신한금융 회장과 이백순 신한은행장이 신상훈 신한금융 사장을 횡령·배임 혐의로 고소하면서 불거진 경영진 다툼이었다. 이후 법정 공방과 검찰 과거사위 판단 등을 거치며 신한금융은 지배구조 투명성과 내부통제의 중요성을 뼈아프게 확인했다. 특정 인물 중심의 성장 모델에서 시스템 중심의 경영으로 넘어가야 한다는 교훈을 남긴 것이다. 이후 신한금융은 △이사회 중심 경영 △최고경영자 승계 절차 △내부통제 △윤리경영 △소비자보호 체계를 정비하는 데 힘을 쏟았다. ◆리딩금융 재확인…생산 금융·AI·자산관리로 다음 성장판 짠다 현재 신한금융 위기를 돌파하며 리딩금융그룹의 한복판에 서 있다. 신한금융의 연결 당기순이익은 미중 무역전쟁이 발발한 2018년 3조1567억원에서 2025년 4조9716억원으로 늘었다. 7년 사이 순이익이 약 57.5% 증가한 것이다. 같은 기간 주당순이익도 6579원에서 9812원으로 확대됐다. 저금리, 코로나19,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 금융규제 강화 같은 변수를 통과하면서도 이익 체력을 키운 셈이다. 2026년 들어서는 성장세가 한 단계 더 확인됐다. 신한금융은 2026년 1분기 당기순이익 1조6226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9.0% 증가한 수치로 분기 기준 사상 최대 실적이다. 그렇다면 신한금융의 미래 성장전략은 무엇일까. 먼저 생산적 금융이다. 정상혁 신한은행장은 올해 경영전략에서 생산적 금융과 포용금융 확대, 차별화된 금융 경험, 전사적 미래 준비를 강조했다. 앞으로 은행이 성장하려면 △기업금융 △혁신기업 지원 △수출입 금융 △글로벌 네트워크 △자산관리 △디지털 플랫폼을 함께 키워야 한다는 주문이다. 또 디지털과 인공지능(AI) 전환이 주요 전략으로 꼽힌다. △고객 데이터를 얼마나 정교하게 분석하는지 △모바일 앱에서 얼마나 빠르고 안전하게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지 △상담·심사·리스크관리·자산관리 영역에 AI를 얼마나 책임 있게 적용하는지가 관건이다. 자산관리와 은행·증권 복합 모델 고도화도 중요하다. 신한금융은 은행과 투자증권을 결합한 ‘신한 Premier’ 브랜드를 통해 고액자산가와 지역 고객을 겨냥한 복합 자산관리 거점을 확대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상품 판매가 아니라 은행·증권·자산운용 역량을 묶어 고객의 자산 여정을 관리하려는 시도다. 또 글로벌 확장 전략도 핵심 전략이다. 신한금융은 이미 베트남, 일본, 중국, 캐나다, 카자흐스탄 등 17개 국에 해외 네트워크를 구축해 왔다. 마지막 신한금융의 미래성장전략은 신뢰다. 금융회사의 경쟁력은 자본과 기술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신뢰가 무너지면 수십 년의 브랜드도 하루아침에 흔들린다. 신한은행이 올해 경영전략에서 △내부통제 체계 정착 △사고 예방 중심의 금융소비자 보호 시스템 △고객 자산을 지키는 금융 안전망 등을 강조한 것은 이 때문이다. 업계에선 신한금융의 강점은 위기 때마다 성장의 문법을 바꿔왔다는 데 있다고 말한다. 1980년대에는 친절과 전산화로 기존 은행권의 문화를 흔들었다. 2000년대에는 지주사 전환과 대형 인수·합병(M&A)로 금융그룹의 틀을 만들었다. 2010년대에는 내홍을 겪으며 지배구조와 내부통제의 중요성을 체득했다. 2020년대에는 디지털, 글로벌, 비은행, 자본효율, 주주환원,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신한금융 관계자는 “신한사태라는 아픈 내홍을 겪은 뒤에는 지배구조와 내부통제의 중요성을 더 선명하게 인식했다”며 “지금은 리딩뱅크 재탈환을 넘어 ‘일류 금융그룹’이라는 더 높은 목표를 향해 가고 있다”고 말했다. [아주경제 2026년 05월 21일자 15면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2026-05-21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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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조 가계부채와 금리 폭탄의 전방위 압박, '파국' 막을 골든타임 놓치지 말라
[경제일보] 대한민국 경제가 미증유의 복합 위기, 이른바 ‘퍼펙트 스톰’의 초입에 들어섰다.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 장기화로 국제 유가와 물가가 춤을 추자, 미국 국채 금리가 5%를 돌파하는 등 글로벌 채권 금리가 일제히 치솟고 있다. 국내 금융시장 역시 직격탄을 맞았다. 코스피가 하루 만에 3% 넘게 폭락하고 국채 금리가 급등하는 와중에, 민생 경제의 가장 취약한 고리인 가계부채는 마침내 2000조 원 돌파를 눈앞에 둔 1993조 1000억 원까지 불어났다. 고금리와 물가 상승이라는 이중고 속에서도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주택 구입)’과 ‘빚투(대출로 주식 투자)’의 불길이 꺼지지 않은 결과다. 더욱 심각한 것은 부채의 질적 악화다. 정부가 은행권 문턱을 높이자 대출 수요가 제2금융권으로 몰리는 전형적인 ‘풍선 효과’가 확인됐다. 1분기 비은행권 주택 대출은 전 분기보다 배 이상 급증했다. 제1금융권보다 금리가 높고 부실 위험이 큰 저축은행, 상호금융, 새마을금고의 부채가 늘어났다는 것은 가계의 기초체력이 급격히 저하됐음을 뜻한다. 여기에 증권사 신용공여와 마이너스통장을 통한 고위험 레버리지 투자까지 가세했다. 만약 가계부채라는 시한폭탄이 글로벌 긴축 충격과 맞물려 터진다면, 과연 이를 무엇으로 막아낼 것인가.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능가하는 내수 파탄과 시스템 붕괴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경고를 결코 과장으로 치부해선 안 된다. 정부와 금융 당국은 구두 경고나 사후약방문식 대처에서 벗어나 즉각적이고 선제적인 차단책을 집행해야 한다. 첫째, 비은행권으로 향하는 우회 대출 통로를 철저히 차단하는 ‘가계부채 총량 관리’의 고삐를 죄어야 한다. 제2금융권의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를 예외 없이 강화하여 갚을 수 있는 능력 범위를 넘어선 대출은 원천 봉쇄해야 한다. 둘째, 한국은행은 기준금리 인하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명확한 선을 긋고, 필요하다면 추가 인상까지 고려하는 정교한 통화정책의 ‘깜빡이’를 켜 시장의 과열 심리를 진정시켜야 한다. 대출금리가 0.25%포인트만 올라도 가계 이자 부담이 3조 2000억 원 늘어난다는 점을 감안할 때, 한계 차주들을 위한 선별적 채무조정 및 고정금리 대환대출 프로그램의 확대 등 정밀한 미시적 보완책도 병행되어야 마땅하다. 해외 사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00년대 초반 북유럽 국가들이나 가계부채 비율이 높았던 네덜란드의 경우, 주택담보대출 비율(LTV)을 단계적으로 축소하고 소득 대비 부채 비율을 법적으로 엄격히 제한하는 ‘거시건전성 규제’를 선제적으로 도입해 위기를 극복했다. 미국 역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금융소비자보호국(CFPB)을 신설하고 대출 심사의 엄격성을 제도화함으로써 가계 부실이 금융 시스템 전체로 전이되는 것을 막았다. 우리 정부도 이처럼 시장의 자율성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가계와 기업의 자금 조달 리스크를 전방위로 모니터링하고 고위험 금융상품 판매 규율을 선제적으로 강화하는 제도적 제동장치를 구축해야 한다. 정부 스스로의 행보도 되돌아보아야 한다. 민생을 돕겠다며 공언한 확장재정 기조와 올해 예정된 110조 원의 적자국채 발행은 오히려 국채 금리를 밀어 올려 시중 금리를 상승시키는 모순을 낳고 있다. 정부는 초과 세수를 활용해 적자국채 발행을 줄이겠다는 명확한 시그널을 시장에 보냄으로써 재정 건전성에 대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지금은 가계, 기업, 정부 모두가 대외 긴축 장기화를 염두에 두고 뼈를 깎는 위험 관리에 나설 때다. 가계부채 2000조 원이라는 임계점에서 가장 취약한 고리가 끊어지고 난 뒤에 움직이면 이미 늦는다. 파국을 막을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
2026-05-20 10: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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