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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반도체·AI의 돈은 어디서 왔나
[경제일보]주룽지 전 중국 총리가 지난 12일 97세로 세상을 떠났다. 1991년 부총리에 오른 뒤 경제정책을 이끌었고 1998년부터 2003년까지 총리를 지냈다. 국유기업을 대대적으로 정리하고 세제를 개편했으며 금융권의 부실을 털어냈다.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이끈 인물이기도 하다. 중국을 세계의 공장으로 밀어 올린 개혁가라는 평가가 있는가 하면 대규모 실업과 지방재정 악화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비판도 따른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 주룽지를 다시 들여다볼 이유는 중국 경제의 과거를 평가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중국이 반도체와 인공지능(AI)에 막대한 돈을 장기간 쏟아부을 수 있는 국가의 자금 동원 능력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의 개혁과 만나게 된다. 원문이 중국 반도체 산업의 연원을 추적하면서 분세제와 국유기업·금융 개혁에 주목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1994년 분세제(分税制) 개혁 전까지 중국 중앙정부의 재정 형편은 지금의 이미지와 크게 달랐다. 1993년 중앙정부가 가져가는 재정수입은 전체의 22%에 그쳤다. 지방이 세금의 대부분을 거둬 쓰면서 중앙정부는 전국 단위의 경제정책을 밀어붙일 돈이 부족했다. 주룽지는 중앙세와 지방세를 다시 나누고 부가가치세에 해당하는 증치세의 75%를 중앙 몫으로 돌렸다. 이듬해 중앙정부의 세입 비중은 55.7%로 뛰었다. 중앙정부의 곳간이 커지자 경제를 움직이는 힘도 달라졌다. 지역별 이해관계에 끌려다니지 않고 전국을 상대로 산업정책을 펼칠 재정 능력이 생겼다. 중앙의 재정력이 커진 만큼 지방정부가 짊어진 부담도 늘었다. 세입은 중앙으로 넘어갔는데 교육·의료를 비롯해 지방이 맡아야 할 지출은 그대로 남은 분야가 많았다. 세계은행도 1994년 개혁이 중앙정부의 세입 비중을 끌어올리는 데 성공한 반면 중앙과 지방 사이의 재정 불균형을 키웠다고 평가했다. 지방정부는 부족한 돈을 다른 곳에서 찾아야 했다. 토지와 부동산 개발에 기대고 각종 예산외 수입을 늘리는 방식이 뒤따랐다. 오늘날 중국을 짓누르는 지방부채와 부동산 문제를 1994년 개혁 하나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지만, 지방정부의 재정 운용을 바꾼 중요한 계기였던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중앙정부가 강력한 산업정책을 펼칠 힘을 얻는 동안 지방에서는 다른 문제가 자라난 셈이다. 주룽지의 개혁은 재정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큰 것은 잡고 작은 것은 놓는다’는 ‘좡다팡샤오(抓大放小)’ 정책 아래 경쟁력이 떨어지는 국유기업을 정리하고 대형 국유기업에 국가 역량을 집중했다. 이 과정은 혹독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국유기업에서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약 1600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비효율을 걷어낸 대가를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고스란히 떠안았다. 은행도 바꿨다. 지방정부의 영향 아래 있던 금융기관의 자금 배분 권한을 중앙으로 가져오고 부실채권을 정리했다. 세금을 중앙으로 모으고 금융의 돈줄도 중앙정부가 관리하는 체제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주룽지가 특정 반도체 기업이나 AI 산업을 염두에 두고 이런 개혁을 했다고 볼 근거는 없다. 그가 만든 것은 중앙정부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분야에 장기간 돈을 투입할 수 있는 국가의 능력이었다. 그 힘이 20여 년 뒤 반도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중국은 2014년 국가집적회로산업투자기금, 이른바 ‘반도체 대기금’을 만들었다. 2019년 2기에 이어 2024년에는 등록자본 3440억 위안 규모의 3기 펀드가 출범했다. 중국 재정부가 최대 주주로 참여했고 공상은행·건설은행·농업은행·중국은행·교통은행 등 대형 국유은행도 자금을 댔다. 1기 1387억 위안, 2기 2040억 위안에 이어 국가 차원의 투자가 계속되고 있다. 반도체처럼 투자 규모가 크고 자금 회수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산업에서는 이런 힘이 무섭다. 한두 해 적자가 났다고 투자를 끊지 않고 국가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10년 이상 돈을 넣을 수 있다. 민간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위험을 정부와 국유금융기관이 떠받친다. 지방정부들도 토지와 보조금, 투자기금을 들고 뛰어들었다. 중국 반도체 산업을 중앙정부 하나의 작품으로 보기 어려운 이유다. 원문에서 CXMT와 YMTC, SMIC 등의 성장 과정에 지방정부의 역할을 함께 살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제도 뒤따랐다. 중앙정부가 특정 산업을 키우겠다고 하면 지방정부들이 비슷한 사업에 한꺼번에 뛰어들었다. 기술과 인력이 부족한 지역까지 공장 건설에 나섰고 부실과 중복투자가 생겼다. 반도체 투자 과정에서는 기술 사기와 파산 사례까지 나왔다. AI에서도 각 지역이 데이터센터와 지능형 컴퓨팅 시설 유치 경쟁에 나서면서 비슷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정부가 장기 투자를 밀어붙일 수 있다는 장점이 투자 방향을 잘못 잡으면 손실까지 키울 수 있다는 얘기다. 주룽지 시대와 지금의 중국은 사정도 많이 달라졌다. 당시 중국에는 값싼 노동력과 빠른 성장, 해외 자본 유입이라는 조건이 있었다. 지금은 부동산 침체와 지방정부 부채를 안고 있고 미국의 첨단기술 수출 규제에도 맞서야 한다. 돈을 모아 한 산업에 집중하는 방식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늘었다. 과거에 효과를 냈던 국가 주도의 투자 방식이 앞으로도 같은 결과를 낼 것이라고 장담하기 어려운 이유다. 중국의 경험은 한국에도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 역시 반도체와 AI, 첨단 제조업을 국가전략산업으로 정하고 막대한 정책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들은 기업과 공장, 데이터센터를 유치하려고 경쟁한다. 규모와 체제는 다르지만 정부가 전략산업을 정하고 재정과 금융을 동원한다는 점에서는 중국이 겪었던 성공과 실패를 살펴볼 가치가 있다. 원문이 중국 산업정책의 흐름을 한국의 반도체·AI·제조업 전략과 연결한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에서 가져올 것은 투자 규모를 키우는 방법이 아니다. 반도체와 AI처럼 오랫동안 돈이 들어가는 산업에 자금이 끊기지 않게 할 제도가 있는지부터 따져야 한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서로 비슷한 사업에 돈을 붓는 일은 없는지, 기술도 없는 사업이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살아남고 있지는 않은지도 살펴야 한다. 실패가 확인된 사업을 정리하지 못하면 지원금은 산업을 키우는 돈이 아니라 부실기업을 연명시키는 돈으로 바뀐다. 주룽지의 개혁은 중국 정부가 국가의 돈을 모으고 움직이는 방식을 바꿨다. 그 힘은 제조업 성장과 반도체 투자에 밑천이 됐지만 지방부채와 부동산 의존, 과잉투자라는 문제도 함께 남겼다. 국가가 산업을 키운 성공 사례만 보고 투자 규모부터 따라갈 일이 아니다. 반도체와 AI에 국가의 미래를 건 한국이라면 중국이 어디에 돈을 썼는지만 볼 것이 아니라 어디서 돈을 잃었는지도 봐야 한다. 산업정책의 실력은 예산을 크게 잡는 데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오래 투자할 곳과 그만둘 곳을 제대로 가려내는 데서 드러난다.
2026-08-14 17: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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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금리 인상, 물가 잡다 내수를 더 얼려선 안 된다
[경제일보] 한국은행이 추가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유상대 한국은행 부총재는 11일 특별한 변수가 없다면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이 높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한국은행은 지난 7월 기준금리를 2.75%로 올린 데 이어 국내 수요 회복에 따른 물가 압력을 경계하고 있다. 물가 안정이 중앙은행의 가장 중요한 책무라는 점에서 필요한 대응이다. 그러나 금리를 올리는 데는 언제나 대가가 따른다. 기준금리가 오르면 은행의 대출금리가 상승하고 가계의 이자 부담이 커진다. 기업의 자금 조달 비용도 높아진다. 특히 대출 의존도가 높은 자영업자와 중소기업, 취약차주에게 금리 인상은 단순한 숫자의 변화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지금 한국경제는 금리를 올리기에도, 그대로 두기에도 쉽지 않은 상황에 놓여 있다. 반도체 수출과 AI 투자 확대에 힘입어 성장률 전망은 개선되고 있지만 국민이 체감하는 내수경기는 여전히 차갑다. 소비 회복은 더디고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어려움도 계속되고 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과 건설업의 부실 우려도 완전히 해소됐다고 보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물가만 바라보고 금리를 빠르게 올리면 거시경제 지표는 안정될지 몰라도 내수와 취약 부문의 부담은 그만큼 무거워진다. 반대로 가계와 기업 부담만 걱정해 물가 상승 압력을 방치하면 실질소득이 줄고 서민경제가 더 큰 피해를 입는다. 한국은행이 어려운 선택에 직면한 이유다. 최근의 물가 흐름도 면밀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국제유가와 환율 같은 외부 요인뿐 아니라 내수 회복과 임금, 서비스 가격 등 국내 요인이 물가를 자극하고 있다면 통화당국으로서는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 물가 상승세가 굳어지면 나중에는 더 큰 폭의 금리 인상이 필요해진다. 그렇다고 기준금리를 물가만 잡는 단일 처방전처럼 사용할 수는 없다. 통화정책은 경제 전체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 금리를 0.25%포인트 올리는 순간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 자영업자 대출과 기업 대출에 동시에 충격이 전달된다. 통화정책의 효과가 강력한 만큼 부작용도 폭넓게 살펴야 한다. 가장 우려되는 곳은 가계부채다. 한국의 가계는 이미 상당한 규모의 부채를 안고 있다. 변동금리 대출 비중이 높은 차주에게 추가 금리 인상은 월 원리금 부담 증가로 바로 이어진다. 주거비와 생활물가 부담까지 커진 상황에서 이자 비용이 다시 늘어나면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 소비 감소는 자영업자의 매출 감소로 연결되고 다시 내수 침체를 키우는 악순환으로 번진다. 취약차주에 대한 정교한 대책이 필요한 이유다. 금리 인상 자체를 막기보다 그 과정에서 충격이 특정 계층에 집중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정상적으로 원리금을 상환하고 있지만 일시적인 금리 부담을 겪는 차주에 대해서는 채무조정과 장기·고정금리 전환 등 현실적인 선택지를 넓혀야 한다. 자영업자 대책도 단순한 만기 연장에 그쳐서는 안 된다. 코로나19 이후 누적된 부채에 경기 부진과 고금리가 겹치면서 경쟁력이 있는 사업자와 사실상 상환 능력을 잃은 사업자를 구분할 필요성이 커졌다. 정상 사업자에게는 금융 지원을 제공하되 회생 가능성이 낮은 경우에는 폐업과 재취업, 채무조정을 연결하는 출구 전략이 필요하다. 부동산 PF도 경계해야 한다. 금리가 높아질수록 사업성이 낮은 개발사업의 금융비용은 커지고 부실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진다. 부실을 무조건 금융권이 떠안게 하는 것도, 정부가 세금으로 막아주는 것도 답이 아니다. 사업성이 없는 사업장은 신속하게 정리하고 정상 사업장은 자금이 막혀 쓰러지지 않도록 선별 지원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은행과 정부 정책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가지 않는 것이다. 중앙은행이 물가를 잡겠다며 금리를 올리는데 정부가 재정지출 확대와 각종 지원책으로 수요를 크게 자극한다면 정책 효과는 상쇄된다. 한쪽은 브레이크를 밟고 다른 쪽은 가속페달을 밟는 식이어서는 경제의 불확실성만 커진다. 부동산 정책도 마찬가지다. 집값 불안을 막겠다며 대출을 규제하면서 동시에 특정 계층에 과도한 금융 지원을 제공하면 시장에는 엇갈린 신호가 간다. 실수요자는 보호하되 투기성 레버리지를 억제한다는 명확한 원칙 아래 금융·세제·공급 정책이 같은 방향을 바라봐야 한다. 정부와 한국은행의 역할은 분명히 구분돼야 한다. 금리 결정은 물가와 금융안정을 기준으로 중앙은행이 독립적으로 해야 한다. 정부가 경기나 정치적 이유로 금리 결정에 압력을 가해서는 안 된다. 다만 정책 효과와 위험 요인에 대한 정보 공유와 거시정책 조율은 훨씬 정교하게 이뤄져야 한다. 금리 결정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다. 추가 인상이 필요하더라도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는 속도로 가야 한다. 물가 기대가 급격하게 높아지지 않는다면 한 차례 금리를 올린 뒤 소비와 고용, 부동산과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충분히 확인하는 것도 방법이다. 금리는 한번 올린 뒤 되돌리기도 쉽지 않다. 경제성장률이 높아졌다는 이유만으로 긴축 여력이 충분하다고 판단해서도 안 된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수출 호황과 자영업자·중소기업이 느끼는 경기는 크게 다르다. 평균적인 성장률만 보고 금리를 결정하면 경제 내부의 양극화를 놓친다. 한국경제가 직면한 문제는 이른바 '성장의 역설'이다. 수출과 반도체 투자로 성장률이 높아지면 수요와 물가가 상승해 금리를 올려야 할 가능성이 커진다. 그러나 그 금리 인상의 비용은 반도체 대기업보다 대출이 많은 가계와 자영업자에게 더 크게 돌아간다. 성장의 과실과 긴축의 비용이 서로 다른 곳에 집중되는 셈이다. 이 때문에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통화정책으로 경제 전체의 물가를 관리하되 재정과 금융정책은 취약계층에 정밀하게 집중해야 한다. 모든 국민의 이자를 대신 내주는 식의 보편적 지원은 물가를 다시 자극한다. 상환 능력과 소득, 부채 수준에 따라 지원 대상을 정교하게 선별해야 한다. 물가 안정과 내수 회복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물가가 불안하면 실질소득이 줄고 소비도 위축된다. 반대로 내수가 무너지면 성장과 고용이 흔들린다. 두 목표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것이 경제정책의 실력이다. 한국은행 역시 시장과 충분히 소통해야 한다. 추가 금리 인상의 조건이 무엇인지, 어떤 물가와 금융 지표를 중점적으로 보는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 시장이 금리 경로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어야 가계와 기업도 대출과 투자를 계획할 수 있다. 갑작스러운 정책 변화는 금리 수준 자체보다 더 큰 불안을 부른다. <논어>에는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이 있다. 통화정책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다. 물가를 방치해서도 안 되지만 물가를 잡겠다는 이유로 경제의 약한 고리까지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 한국은행은 물가 안정이라는 원칙을 지키되 금리 인상이 가계와 자영업자, 부동산 PF와 내수에 미칠 충격까지 세밀하게 살펴야 한다. 정부도 중앙은행의 긴축 효과를 상쇄하는 정책을 남발해서는 안 된다. 추가 금리 인상이 필요하다면 국민에게 그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고 취약 부문의 충격을 줄일 안전장치를 동시에 마련해야 한다. 물가를 잡는 것도 결국 국민의 삶을 지키기 위해서다. 물가는 안정됐지만 가계와 자영업자가 먼저 무너지는 정책이라면 성공한 통화정책이라고 할 수 없다.
2026-08-12 10:4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