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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국가책임' 9년, 끝까지 책임진 건 가족이었다
[경제일보] 생활고와 간병 부담에 짓눌린 50대 남성이 친형을 살해하고 80대 어머니에게도 흉기를 휘둘렀다. 수원지법은 살인과 존속살해미수 혐의로 기소된 이 남성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범죄의 결과만 놓고 보면 무거운 형이 선고될 만한 사건이다. 그러나 법원이 형을 정하면서 적시한 사정은 따로 읽어볼 필요가 있다. 남성은 부친이 숨진 뒤 치매를 앓는 어머니와 정신질환이 있는 형을 혼자 부양했다. 직장까지 그만두면서 생계가 어려워졌고 간병 스트레스도 극심해졌다. 재판부는 이런 사정을 양형에 참작했다. 형사재판은 피고인의 책임을 묻는 절차다. 법원이 간병 부담과 생활고를 참작했다고 해서 살인의 책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판결문에 적힌 양형사유는 한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 무너졌는지를 사법부가 공식적으로 기록한 대목이다. 정부가 읽어야 할 부분은 바로 여기에 있다. 2017년 문재인 당시 대통령은 치매환자를 본인과 가족에게만 맡겨서는 안 된다며 국가와 사회가 함께 책임지겠다고 했다. 정부는 ‘치매 국가책임제’라는 이름까지 붙였다. 치매안심센터를 전국에 설치하고 의료비 부담을 낮추며 장기요양 지원을 확대했다. 치매를 더 이상 한 집안의 문제로 두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이름부터 무거웠다. ‘지원 확대’도 아니고 ‘관리 강화’도 아닌 ‘국가책임’이었다. 정부가 스스로 책임의 범위를 넓혀 국민에게 약속한 것이다. 그렇다면 9년이 지난 지금 그 약속이 실제 가정에서 어디까지 작동했는지를 따져보는 것은 당연하다. 문재인 정부가 물러나고 윤석열 정부를 거쳐 이재명 정부가 들어섰다. 정권은 두 번 바뀌었고 치매 관련 조직과 사업, 예산은 계속 늘었다. 그런데 치매환자를 먹이고 씻기고 병원에 데려가고 밤새 지켜보는 마지막 책임은 아직도 가족에게 남아 있다. 정부 조사에서도 치매환자를 돌보는 가족의 절반 가까이가 돌봄 부담을 호소했다. 경제적 부담과 정신적 소진도 반복해서 확인됐다. 정부가 몰랐던 문제가 아니다. 수년 전부터 통계에도 잡히고 정책보고서에도 적혀 있던 문제다. 이번 용인 사건은 그 숫자가 현실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를 보여준다. 치매 노모와 정신질환 형을 한 사람이 동시에 돌봤다. 간병 때문에 직장을 그만뒀고 경제적 어려움까지 겹쳤다. 복지행정의 관점에서 보면 위험신호가 한두 개가 아니었다. 치매환자와 정신질환자가 한 집에 있고 보호자는 한 명뿐이다. 그 보호자가 생업까지 포기했다. 소득도 줄고 외부와의 접촉도 줄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 정도 상황을 국가의 돌봄망이 붙잡지 못했다면 제도가 어디에서 끊겼는지부터 따져야 한다. 치매안심센터가 몇 곳인지, 상담을 몇 건 했는지는 행정 보고서에 필요한 숫자다. 국가책임제의 성적표는 다른 곳에 있어야 한다. 보호자 한 사람이 간병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고 생계까지 흔들릴 때 국가가 그 집 안으로 들어갔는지, 하루 몇 시간이라도 돌봄을 대신했는지, 버틸 수 없는 상태에 이른 보호자를 다른 제도와 연결했는지가 성적표가 돼야 한다. 국가는 치매환자를 등록하고 검진하고 상담하는 일에는 상당한 체계를 갖췄다. 정작 가족이 무너지지 않도록 책임을 나눠 갖는 부분은 여전히 허술하다. 국가가 책임진다고 했지만 밤을 새운 사람은 가족이었고 직장을 그만둔 사람도 가족이었다. 생활비와 간병비를 걱정하며 끝까지 버틴 사람 역시 가족이었다. 그래서 ‘치매 국가책임제’와 지금의 현실 사이에는 간단히 넘길 수 없는 간극이 있다. 국가는 환자를 관리했지만 가족은 환자의 삶을 떠안았다. 국가가 제도를 만들었지만 가족은 자신의 직업과 소득, 일상을 내놓았다. 책임의 가장 무거운 부분이 여전히 가족에게 남아 있다면 간판만 국가책임제인 셈이다. 이재명 정부도 이 문제에서 전임 정부를 바라볼 처지가 아니다. 정부가 바뀌면 장관과 정책 이름은 바뀌지만 국가의 약속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치매 국가책임제를 계승하고 지역사회 통합돌봄을 확대하겠다면 문재인 정부가 내건 ‘국가책임’이라는 미완의 약속도 함께 넘겨받은 것이다. 새로운 종합계획을 발표하고 지원 대상자가 몇 명 늘었다고 설명하는 것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혼자 중증환자를 돌보는 사람, 간병 때문에 생업을 포기한 사람, 생활비가 끊긴 가정부터 찾아내야 한다. 도움을 신청하러 찾아오는 사람만 지원하는 복지로는 이미 지쳐 쓰러진 사람을 잡아낼 수 없다. 법의 시간과 복지의 시간도 다르다. 형법은 범죄가 벌어진 뒤 책임을 묻는다. 복지행정은 범죄나 극단적인 선택, 가족 붕괴가 벌어지기 전에 움직여야 한다. 사후에 정확하게 처벌하는 국가보다 사전에 한 가정을 붙잡는 국가가 훨씬 어렵지만 ‘국가책임’을 내걸었다면 그 어려운 일을 하겠다는 뜻이어야 한다. 이번 사건에서 범행이 벌어진 뒤 국가 시스템은 정확하게 작동했다. 경찰은 피고인을 체포했고 검찰은 기소했으며 법원은 증거와 양형사유를 따져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형사사법기관은 각자의 절차에 따라 역할을 했다. 문제는 그 전에 작동했어야 할 국가의 돌봄망이다. 살인사건의 판결문에 ‘치매를 앓는 모친과 정신질환이 있는 형을 홀로 부양했다’는 문장이 남았다. 간병 때문에 직장까지 그만둔 한 사람이 가족을 죽이는 순간까지 갔다. ‘치매는 국가가 책임진다’고 선언한 지 9년이 된 나라에서 벌어진 일이다. 정책은 발표할 때가 아니라 국민이 가장 어려울 때 평가받는다. 센터의 숫자도, 예산의 규모도, 지원 실적도 한 가정이 무너지는 것을 막지 못했다면 다시 따져봐야 한다. ‘국가책임제’라는 이름만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국가가 책임진다던 9년 동안, 끝까지 버티고 끝내 무너진 것은 가족이었다.
2026-08-30 12: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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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셈법만 바꾸는 개헌, 국민은 왜 찬성해야 하나
[경제일보] 개헌 논의가 다시 출발선에 섰다. 조정식 국회의장은 28일 여야가 참여하는 국회 개헌특별위원회를 구성해 2027년 개헌 논의를 본궤도에 올리고, 22대 국회 임기 안에 제10차 개헌을 마무리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1987년 헌법 이후 39년 만에 국가의 기본 설계도를 다시 그리자는 제안이다. 하지만 개헌의 첫 장면부터 국민의 삶은 보이지 않았다. 국회의장이 현직 대통령의 연임 가능성을 “국민 선택의 문제”라고 언급하자 정치권의 관심은 순식간에 대통령 임기로 쏠렸다. 논란이 커지자 조 의장은 29일 “현직 대통령의 연임은 개헌 논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현행 헌법 제128조 2항은 대통령의 임기 연장이나 중임 변경을 위한 개헌이 제안 당시 대통령에게는 효력이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법문이 분명한 문제를 둘러싸고 하루 동안 정치권 전체가 소모전을 벌인 셈이다. 이 장면은 앞으로 개헌 논의가 어디에서 실패할지를 미리 보여준다. 대통령을 5년 단임으로 둘지, 4년 연임으로 바꿀지, 총리에게 얼마나 권한을 나눌지는 물론 중요하다. 대통령의 계엄 선포권을 어떻게 통제하고 국회·정부·사법기관 사이의 견제 장치를 어떻게 보완할지도 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조 의장도 권력구조 개편과 계엄권 제한, 선거관리 개혁 등을 주요 의제로 제시했다. 다만 그것이 개헌의 전부라면 국민은 다시 묻게 된다. 대통령 임기와 국회의 권한을 조정하는 일이 내 월급과 집값, 아이의 미래와 지역의 소멸, 플랫폼 노동과 개인정보 침해를 어떻게 바꾸느냐고 말이다.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개헌은 정치인들끼리 권력의 방 크기를 다시 재는 공사로 보일 수밖에 없다. 1987년 헌법은 위대한 민주화의 성취였다. 대통령 직선제를 되찾고 헌법재판소를 설치했고, 국가권력에 맞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키는 토대를 세웠다. 하지만 그 헌법이 만들어진 시절에는 스마트폰도, 생성형 인공지능도, 플랫폼 노동도 없었다. 기후위기는 먼 미래의 환경문제로 여겨졌고, 지방소멸과 초고령사회라는 말도 익숙하지 않았다. 헌법은 낡았기 때문에 고쳐야 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삶이 헌법의 언어보다 훨씬 앞으로 나아갔기 때문에 보완해야 한다. 먼저 디지털 시대의 기본권을 논의해야 한다. 인공지능이 채용과 대출, 보험과 행정처분에 영향을 미치고, 개인의 행동과 취향이 데이터로 축적되는 사회에서 인간의 존엄과 사생활의 자유를 과거의 문장만으로 충분히 지키기 어렵다. 현행 헌법에는 개인정보 자기결정권과 알고리즘에 의한 차별, 자동화된 결정에 대한 설명 요구권을 직접 규정한 조항이 없다. 학계에서도 디지털 정보의 활용과 개인의 결정권 사이에 새로운 헌법적 기준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기후위기와 미래세대의 권리도 헌법의 중심 의제가 돼야 한다. 헌법재판소는 2024년 정부가 2031년 이후 온실가스 감축 경로를 제대로 제시하지 않은 것은 국민의 기본권 보호 의무에 어긋난다며 탄소중립기본법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현재 세대가 편익을 누리고 미래세대에 위험과 비용을 넘겨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 헌법적 판단으로 확인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헌 논의가 대통령 임기에만 머문다면 정치는 이미 헌법재판소가 던진 질문보다 뒤처지는 셈이다. 환경권을 국가의 추상적 노력 의무로 남겨둘 것인지, 기후위기로부터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와 미래세대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더 구체적으로 담을 것인지 논의해야 한다. 국가의 백년대계를 말하면서 다음 선거의 권력 배분만 따지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지방분권도 더 이상 부속 의제가 아니다. 현행 헌법의 지방자치 장은 제117조와 제118조 두 조문으로 구성돼 있고, 자치의 구체적인 범위를 대부분 법률에 맡기고 있다. 국회와 지방자치 분야의 연구에서는 주민자치권의 기본권화, 보충성 원칙, 자치입법권과 자치재정권의 강화를 개헌 과제로 제시한다. 지역이 스스로 산업과 교육, 의료와 교통정책을 설계하지 못한 채 중앙정부의 예산 배분만 기다리는 구조로는 지방소멸을 막기 어렵다. 수도권 집중을 걱정하면서 모든 결정권과 세원을 중앙에 붙들어 두는 것은 병의 원인을 그대로 둔 채 해마다 진통제만 처방하는 것과 같다. 지방분권 개헌은 지방 정치인을 위한 권한 확대가 아니라, 국민이 사는 곳에 따라 삶의 기회를 차별받지 않게 하는 기본권의 문제다. 노동과 돌봄의 변화도 담아야 한다. 현행 헌법이 상정한 노동자는 일정한 사업장에서 사용자와 근로계약을 맺는 전통적인 노동자에 가깝다. 하지만 오늘의 국민은 플랫폼을 통해 일하고, 여러 직업을 오가며, 가족의 돌봄과 생계를 동시에 감당한다. 고용 형태가 달라졌다는 이유로 사회보험과 노동권의 바깥으로 밀려나지 않도록 새로운 사회권의 원칙을 세울 필요가 있다. 초고령사회에서 돌봄을 가족만의 책임으로 남길 것인지도 헌법적 토론의 대상이다. 개헌 과정도 달라져야 한다. 헌법개정안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거친 뒤 국민투표에서 선거권자 과반수가 투표하고, 투표자 과반수가 찬성해야 확정된다. 결국 정치권의 합의만으로는 한 글자도 바꿀 수 없다. 국민이 개헌의 필요성을 자기 삶의 문제로 받아들여야만 문턱을 넘을 수 있다. 조 의장이 국민 참여용 디지털 플랫폼을 구축하겠다고 밝힌 것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다만 국민 참여가 정치권이 만든 초안을 설명하고 찬반을 묻는 절차에 그쳐서는 안 된다. 개헌 의제를 정하는 단계부터 시민과 전문가, 청년과 노동자, 장애인과 지역 주민, 미래세대의 목소리가 들어가야 한다. 숙의 없는 국민투표는 선택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승인 절차에 불과하다. 맹자 ‘진심 하’에는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이 그다음이며, 임금은 가볍다(民爲貴 社稷次之 君爲輕)”는 말이 나온다. 헌법 역시 대통령과 국회의 권한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존엄과 자유, 안전과 행복을 지키기 위해 권력이 어디까지 행사될 수 있는지를 정한 약속이다. 권력구조 개편을 피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줄이고, 행정부와 국회가 협력하면서도 서로 견제할 수 있는 체제를 찾아야 한다. 비상권한이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도구로 악용되지 않도록 안전장치도 강화해야 한다. 다만 권력구조는 개헌의 한 장이지 표지와 본문 전체가 아니다. 정치권이 대통령의 임기와 권한 배분부터 앞세우는 순간 국민은 개헌을 현직 권력과 차기 권력 사이의 거래로 의심한다. 그 의심을 탓할 수 없다. 대한민국의 개헌사는 권력을 연장하거나 통치구조를 바꾸려는 정치적 계산과 자주 얽혀 있었다. 이번 개헌이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정치가 먼저 권력의 셈법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민이 찬성할 개헌은 대통령이 한 번 더 출마할 수 있는지를 정하는 헌법이 아니다. 내 정보가 인공지능에 함부로 이용되지 않고, 어느 지역에 살든 교육과 의료의 기회를 누리며, 기후재난의 비용을 아이들에게 떠넘기지 않고, 어떤 형태로 일하든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는 헌법이다. 대통령 임기만 고치기 위해 국민을 투표장으로 부르는 개헌은 성공하기 어렵다. 국민의 삶을 고치는 개헌이어야 국민이 움직인다. 권력의 자리를 다시 배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앞으로 40년을 살아갈 시민의 권리와 국가의 책임을 새로 쓰는 것. 그것이 10차 개헌이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2026-07-29 10:4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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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이냐 인물이냐…이원택 '정통성' vs 김관영 '실용 성과'
[경제일보] 전북특별자치도지사 선거가 더불어민주당 이원택 후보와 무소속 김관영 후보의 양자 대결로 압축되면서 막판까지 예측하기 어려운 승부로 흐르고 있다. 전북은 오랫동안 민주당의 절대 우세 지역으로 분류돼 왔던 지역이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현직 도지사인 김 후보가 민주당을 떠나 무소속으로 출마했고, 민주당은 이 후보를 내세워 ‘당의 정통성’과 ‘전북 도정 교체’를 동시에 외치면서 전국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이번 선거 판세의 공통된 흐름은 김 후보가 무소속임에도 민주당 후보와 정면 승부를 벌일 만큼 개인 경쟁력을 확보했고, 이 후보는 민주당 조직력과 정권 연계성을 앞세워 막판 추격전을 벌이고 있다는 점이다. 전라일보가 조원씨앤아이에 의뢰한 여론조사(전라일보 의뢰, 조원씨앤아이 조사, 2026년 5월 25~26일, 전북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1001명, 휴대전화 가상번호 ARS 방식, 성별·연령별·지역별 비례할당 무작위 추출 방식 표본 선정, 응답률 12.4%,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p.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및 전라일보 홈페이지 참조)에서 김 후보는 51.9%의 지지율로 35.3%의 지지율을 보인 이 후보를 16.6%p 앞섰다. 이번 전북도지사 선거의 구조는 단순한 여야 대결이 아니다. 실제 김 후보는 “전북 발전에는 정당보다 실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고, 이 후보는 “전북 도정은 민주당 정부·국회와 한 몸으로 움직여야 한다”며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하고 있다. 이원택 ‘내부 생태계·SOC 완성’ vs 김관영 ‘외자 유치·RE100’ 김 후보의 무기는 현직 프리미엄과 투자 유치 성과다. 반면, 이 후보의 무기는 민주당 간판과 지역 조직력이다. 전북 유권자 입장에서는 어느 쪽도 가볍지 않다. 낙후와 소외를 오래 겪은 전북에서 ‘누가 더 중앙정부 예산과 기업 투자를 끌어올 수 있느냐’는 질문은 곧 생계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김 후보의 핵심 공약은 새만금과 투자 유치다. 그는 대기업 15개, 투자 50조원 유치를 목표로 내걸고 금융도시 조성 구상을 제시했다. 새만금을 전북의 미래산업 수도로 키우겠다는 구상도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다. 김 후보는 ‘새만금 7대 공약’을 통해 새만금 지도를 다시 그리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고, 전북의 오랜 숙원인 새만금 개발을 행정 구호가 아니라 기업 투자와 산업 생태계로 연결하겠다고 밝혀왔다. 이 후보는 김 후보의 외부 투자 유치론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있다. 그는 민선8기 전북도정이 집중한 외부 투자 유치 방식은 체감 효과가 제한적이었다고 보고, 전북 경제 내부 생태계를 키우는 ‘전북성장공사’ 설립을 1호 공약으로 제시했다. 자영업자, 소상공인, 전문직종을 체계적으로 지원해 지역 안에서 성장 기반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이 후보는 또 도지사 직속 ‘내발적 발전위원회’ 신설을 통해 전북의 자체 성장전략을 구체화하겠다고 밝혔다. 새만금을 보는 시각도 다르다. 이 후보는 새만금을 재생에너지와 첨단산업 거점으로 키우고, 현대차 투자와 새만금공항 등 SOC 완성을 전북 성장의 핵심 축으로 삼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반면, 김 후보는 RE100 산업단지와 대기업 투자 유치를 앞세워 새만금을 글로벌 기업이 들어오는 실질적 산업지대로 만들겠다는 쪽이다. TV토론에서는 정책보다 정치적 책임 공방이 더 날카로웠다. 지난 19일 JTV전주방송 토론회에서 이 후보와 김 후보는 지역경제와 미래 먹거리 전략을 두고 맞붙었고, 특히 김 후보를 둘러싼 ‘12·3 비상계엄 내란 동조 의혹’ 무혐의 처분 문제를 놓고 충돌했다. 이 후보가 사법기관의 무혐의 판단과 도지사로서의 역사적·도의적 책임은 별개라고 지적했고, 김 후보 측은 정치 공세라고 맞서는 흐름이었다. ‘성과의 전북’인가 ‘정당의 전북’인가…결국 승패는 ‘실행계획’과 ‘투표율’ SWOT 분석 결과 김 후보의 강점은 현직 프리미엄과 투자 유치 성과다. 특별자치도 출범 이후 전북의 위상을 끌어올렸다는 점, 새만금과 기업 유치 의제를 구체적 숫자로 제시한다는 점은 유권자에게 비교적 선명하게 전달된다. 반면, 약점은 민주당 제명 이후 무소속 출마가 낳은 정치적 부담이다.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한 전북에서 ‘당을 떠난 현직’이라는 이미지는 마지막까지 방어해야 할 지점이다. 정당보다 인물과 성과를 보는 중도·무당층 확장은 김 후보의 기회 요소이지만, 민주당 조직표의 결집과 각종 책임론 공세는 위협 요소로 꼽힌다. 이 후보의 강점은 민주당 후보라는 정통성과 중앙정치 연결성이다. 전북은 여전히 민주당 지지 기반이 강하고, 지방정부와 중앙정부·국회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여야 예산과 제도 개선이 가능하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있다. 이 후보의 약점은 김 후보에 비해 현직 도정 성과를 직접 제시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민주당 조직력의 막판 결집과 김 후보의 무소속 출마에 대한 거부감은 이 후보의 기회 요소이고, 김 후보의 개인 지지율, 현직 성과론, 전북 발전을 위해서는 실용적 선택이 필요하다는 여론은 위협 요소가 된다. 전북도지사 선거의 막판 승부처는 새만금·민주당 조직표·김 후보의 현직 평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전북에서 새만금은 단순한 개발사업이 아니라 지역의 자존심이다. 누가 더 현실적인 새만금 산업화 전략을 내놓느냐가 군산·김제·부안뿐 아니라 전주권 표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민주당 조직표는 이 후보가 마지막까지 ‘민주당 후보’라는 정체성을 선명하게 가져갈 경우 전통적 민주당 지지층은 결집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마지막으로 김 후보가 도정 성과를 생활 체감으로 연결하지 못하면 ‘큰 숫자 공약’은 추상적 약속으로 남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북 지역 정치권 관계자는 “‘정당의 전북’과 ‘성과의 전북’이 맞붙었다는 점에서 이번 전북도지사 선거가 주목을 받고 있다”며 “김 후보가 전북 발전을 위해 당적보다 실행력을 봐야 한다고 말하고, 이 후보는 전북이 다시 민주당의 중심축 안에서 정부·국회와 함께 움직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고 했다. 이어 “전북 유권자들은 새만금, 일자리, 청년 정착, 농생명 산업, 교통망 확충을 실제 결과로 만들 후보가 누구인가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진 모습”이라며 “남은 승부는 더 구체적인 실행계획과 투표장에 실제로 나오는 조직력에서 갈릴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2026-05-31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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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판에 매물로 나온 공공기관, '정의(正義)'는 어디에 있는가
[경제일보]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국 산하가 다시금 ‘이전 공약’의 현수막으로 뒤덮이고 있다. 수도권 공공기관을 자기 지역으로 가져오겠다는 여야 후보들의 외침은 사자후(獅子吼)를 넘어 비이성적인 광기마저 느껴진다. 하반기 예정된 정부의 ‘2차 공공기관 이전 로드맵’을 앞두고, 유권자의 표심을 낚기 위해 기관의 존립 근거와 효율성은 안중에도 없는 ‘묻지 마 유치’가 횡행하고 있다. 필자의 눈에 비친 작금의 풍경은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가 아니라, 국가의 근간을 떼어 파는 ‘표 도둑들의 장터’와 다를 바 없다. 공자의 가르침을 담은 『논어(論語)』 「안연 편」에는 정치의 근본을 묻는 제자 자공에게 공자가 답한 유명한 구절이 있다. 바로 ‘족식(足食), 족병(足兵), 민신(民信)’이다. 경제를 풍요롭게 하고 국방을 튼튼히 하되, 가장 중요한 것은 백성의 신뢰라는 뜻이다. 공자는 신뢰가 없으면 나라가 설 수 없다(民無信不立)고 단언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정치권이 보여주는 공공기관 이전 공약은 ‘민신’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민심’을 기만하여 사익(표)을 취하려는 술책에 가깝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가 건의한 40여 개의 기관 명단과,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의 광주 이전 법안 발의는 그 정점이다. 예술 교육의 특수성과 인프라, 강사진의 접근성을 완전히 무시한 채 오직 ‘지역구 챙기기’식 법안을 던져놓고 보는 행태는 전문 예술인 양성이라는 국가적 백년대계를 흔드는 처사다. 학생들과 교수진이 거리로 나와 반대 성명을 내는 것은 집단 이기주의가 아니라, 본질을 잃어버린 정치에 대한 처절한 저항이다. 대구의 상황은 더 점입가경이다. 기업은행 본점 유치를 넘어 이제는 국가 최고 사법기관인 대법원까지 대구로 옮기겠다고 한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일부 의원이 발의한 대법원 이전 법안은 사법 서비스의 접근성이나 법치주의의 상징성보다는 오로지 ‘지역 민심 달래기용’ 매물로 전락했다. 『맹자(孟子)』는 “어질지 못한 자가 높은 지위에 있으면, 그 악을 대중에게 퍼뜨리게 된다(不仁者在高位 是播其惡於衆也)”고 경고했다. 국가 기구의 효율적 배치는 고도의 통치 행위이자 전문적인 행정의 영역이다. 이를 선거철의 단기 수익 모델로 삼는 것은 정치의 ‘불인(不仁)’함이 대중에게 미치는 악영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재명 대통령은 일찌감치 2차 공공기관 이전을 ‘국가 생존의 문제’로 규정하며 효율적인 배치를 강조해 왔다. 노무현 정부 시절의 1차 이전이 ‘뿌리기식 분산’으로 인해 지역 성장 거점을 만드는 데 한계를 보였다는 뼈저린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공공기관은 지역에 떨어지는 ‘떡고물’이 아니다. 관련 산업과의 시너지를 내어 국가 전체의 파이를 키우는 전략적 요충지가 되어야 한다. 서양의 고전인 플라톤의 『국가론』에서 소크라테스는 통치자의 덕목으로 ‘지혜’와 ‘절제’를 꼽았다. 자신의 욕망(재선과 당선)을 절제하지 못하고 국가의 자원을 사적으로 유용하려 드는 후보자는 이미 통치자의 자격이 없다. 특히 최근에는 공공기관을 넘어 민간 기업까지 이전시키겠다는 공약이 일상화되고 있다. 이는 자유시장 경제의 기본 원칙마저 망각한 오만한 발상이다. 기업이 어디에 둥지를 틀지는 시장의 논리와 인프라가 결정할 문제지, 정치인의 펜 끝이 결정할 일이 아니다. 정부는 현재 추진 중인 행정통합특별법이 특정 지역에만 혜택이 집중되지 않도록 형평성을 기해야 한다. 전남·광주뿐만 아니라 대구·경북, 충남·대전의 통합 논의에도 속도를 내어 균형 잡힌 국토 발전의 틀을 짜야 한다. 정치권은 당장의 표를 위해 국가의 미래를 가불(假拂)해 쓰는 행태를 즉각 중단하라. 유권자들 역시 깨어있어야 한다. 감언이설로 무장한 공약이 우리 지역에 당장 이익이 될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준비 없는 이전이 가져올 행정 비용의 낭비와 비효율은 결국 우리 자녀 세대가 짊어져야 할 부채다. 『도덕경』에 이르기를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굽는 것과 같다(治大國若烹小鮮)”고 했다. 너무 자주 뒤집고 휘저으면 생선살은 으깨지고 만다. 국가 기관의 배치는 신중하고도 일관된 원칙 아래 진행되어야 한다. 유권자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공공기관 이전을 ‘로또 당첨권’처럼 휘두르는 후보들을 엄격히 심판해야 한다. 정치적 포퓰리즘이라는 독배(毒杯)를 마시고 국가의 미래를 망치는 우(愚)를 범하지 않길 바란다.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 그것이 우리가 갈구하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모습이다.
2026-04-30 16:5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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