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총 1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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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에 더 큰 수사권 줬다면 통제장치도 함께 세워야
[경제일보] 수사권 조정의 핵심은 권한을 나누는 데 있었다. 검찰에 집중됐던 수사·기소 권한을 분산하고 경찰의 독립적 수사 역량을 키우자는 취지였다. 방향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 문제는 권한을 넘긴 만큼 책임과 통제 장치도 함께 세웠느냐다. 최근 제주에서 벌어진 실종사건 허위 종결은 그 질문을 정면으로 던진다. 제주서부경찰서 실종팀에서 근무한 한 경찰관은 자신이 처리한 실종사건 298건 가운데 27건을 부적절하게 처리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중 11건은 허위 종결로 확인됐다. 실제로 연락하지 않고 소재가 확인된 것처럼 처리하거나, 실종자가 사망했다는 허위 내용을 시스템에 입력해 관리 대상에서 해제한 사례도 드러났다. 기존 허위 종결 사건 당사자 2명은 이후 숨진 채 발견됐다. 다만 이 사건에서 말하는 ‘실종사건 종결’과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이 행사하는 형사소송법상 ‘불송치 결정’은 같은 제도가 아니다. 전자는 실종신고 관리와 관련된 경찰 업무이고, 후자는 범죄 혐의가 없다고 판단한 형사사건을 검찰에 송치하지 않는 절차다. 두 제도를 동일선상에 놓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이번 사건이 형사사법 개혁과 맞닿는 지점은 분명하다. 경찰의 판단 영역이 넓어지는 만큼 그 판단을 점검하고 바로잡는 장치도 정교해져야 한다는 점이다. 문제가 된 초기 사건들은 해당 경찰관의 야간 1인 당직 때 처리됐다. 당시 별도의 보고·검토 절차가 있더라도 전산상 실종 해제는 담당자가 직접 할 수 있었다. 경찰은 논란 이후 관리자가 해제 사유와 입력 내용을 다시 확인한 뒤 최종 승인하도록 이중장치를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개인의 일탈로만 정리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찰은 수사기관이면서 거대한 행정조직이다. 내부 위계와 동료 관계가 강한 조직에서는 부실 판단이나 잘못된 관행이 내부에서 충분히 걸러지지 않을 위험이 존재한다. 실제 더불어민주당 경찰개혁추진단도 제 식구 감싸기, 사건 암장, 무단 종결, 증거 은폐·조작, 수사정보 유출, 개인정보 침해를 ‘6대 폐단’으로 지목했다. 외부 감사 확대와 수사 제척사유 강화, 피해자 설명 책임, 부실 수사의 법적 책임 강화도 대책으로 거론되고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을 거치면서 경찰은 일반 형사사건의 1차 수사에서 훨씬 큰 역할을 맡게 됐다. 앞으로 검찰의 직접수사 영역이 더 줄어들수록 경찰 판단의 무게는 커진다. 수사를 시작할지, 더 이어갈지, 불송치할지에 대한 결정 하나가 국민의 권리와 직결된다. 물론 형사사건에는 이미 통제 장치가 있다. 경찰이 불송치 결정을 하면 고소인이나 피해자 등은 이의를 신청할 수 있고, 검사는 위법하거나 부당한 불송치에 대해 재수사를 요청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제도가 실제 현장에서 얼마나 충실히 작동하느냐와, 실종사건처럼 형사 불송치 절차가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 영역의 공백이다. 그래서 논의의 초점은 ‘경찰에게 권한이 많다’는 데서 멈춰서는 곤란하다. 어떤 판단을 내렸고, 그 판단이 어떻게 기록되며, 누가 다시 들여다볼 수 있는지를 촘촘하게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첫째, 사건 종결에는 충분한 이유가 남아야 한다. ‘혐의 없음’이나 ‘소재 확인’ 같은 결과만 기록하는 방식으로는 부족하다. 어떤 자료를 확인했고, 어떤 절차를 거쳤으며, 왜 추가 조치가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했는지 남겨야 한다. 특히 실종·성범죄·아동·가정폭력처럼 생명과 안전에 직결되는 사건은 종결 기준을 더 엄격하게 둘 필요가 있다. 둘째, 고위험 사건에는 내부 결재를 넘어선 점검 장치가 필요하다. 모든 사건을 외부기관이 다시 심사하는 방식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그러나 장기 실종이나 중대한 피해 사건, 담당자 단독 판단 비중이 큰 사건은 일정 비율을 표본 감사하거나 외부위원회가 사후 검증하는 방식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셋째, 신고자와 피해자에게 종결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는 절차를 강화해야 한다. 형사사건의 불송치에는 법정 이의신청 절차가 있지만 실종사건 등 다른 경찰 업무에서는 재검토 요구 통로가 상대적으로 약한 경우가 있다. 사건이 왜 끝났는지 설명하고, 이의가 있을 때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다시 판단을 요구할 수 있는지 명확히 알려야 한다. 넷째, 부실 처리의 책임도 분명히 해야 한다. 단순 실수와 고의적 은폐는 구분해야 하지만 허위 기록, 사건 암장, 증거 삭제처럼 중대한 행위는 징계만으로 끝낼 문제가 아니다. 형사책임과 지휘 책임의 경계를 분명히 해야 조직도 긴장한다. 고대 로마 공화정은 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것을 경계했다. 집정관을 두 명으로 두고 임기를 제한한 것도 상호 견제를 제도화하려는 장치였다. 권력은 선의만으로 통제되지 않는다는 경험에서 나온 제도였다. 현대 형사사법 역시 다르지 않다. 좋은 경찰관이 많다는 믿음과 경찰 권한을 제도적으로 통제하는 일은 별개의 문제다. 견제 장치는 경찰을 불신해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경찰의 판단을 더 신뢰할 수 있도록 만드는 장치다. 이번 제주 사건을 계기로 ‘성인실종법’ 제정 필요성도 다시 제기되고 있다. 일반 성인 실종은 아동·치매환자 등에 적용되는 별도 법률의 보호 대상에서 빠져 있어 제도적 공백이 있다는 지적이 이어져왔다. 실종사건 종결 때 객관적 증빙을 남기고 제3기관이 수사·수색 과정을 점검하는 방안도 논의할 만하다. 검찰의 과도한 권한을 줄였다는 이유로 경찰의 역할 확대 자체를 문제 삼을 일은 아니다. 권력분산의 목적은 한 기관의 힘을 다른 기관에 옮겨 싣는 데 있지 않다. 국민의 기본권이 어느 한 조직의 자의적 판단에 좌우되지 않도록 견제와 책임의 구조를 만드는 데 있다. 경찰개혁은 경찰을 약하게 만드는 작업이 아니다. 정당한 수사는 흔들림 없이 할 수 있게 하고, 잘못된 판단은 조직 내부와 외부에서 신속하게 걸러내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검찰 권한을 줄이고 경찰의 역할을 키웠다면 책임의 기준 역시 달라져야 한다. 사건을 왜 끝냈는지 기록이 남고, 그 판단이 잘못됐을 때 다시 들여다볼 통로가 작동해야 국민도 경찰의 판단을 신뢰한다. 제주 실종사건이 보여준 것은 한 경찰관의 일탈만이 아니다. 담당자의 잘못된 판단을 제때 걸러내지 못한 시스템의 허점이다. 경찰권이 커지는 시대라면 개혁의 다음 순서는 분명하다. 더 많은 권한에 걸맞은 더 촘촘한 책임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2026-09-09 12: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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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완수사권부터 없앤 국회…경찰 인력·통제 장치는 미완
[경제일보] 검사가 경찰 수사의 빈틈을 직접 보완할 수 없도록 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3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앞으로 경찰이 송치한 사건의 증거나 법리가 부족하면 검사는 직접 조사하지 못하고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해야 한다. 지난해 경찰 수사관 한 명에게 접수된 사건은 평균 133.8건, 검찰의 보완수사 요구는 11만623건이었다. 수사 인력과 기관 간 업무 절차가 정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보완수사권부터 폐지돼 사건 처리가 더 늦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법조계와 경찰 안팎에서 나온다. 현재 검사는 경찰이 송치한 기록을 검토한 뒤 필요한 증거를 직접 확보하거나 경찰에 추가 수사를 요구할 수 있다. 계좌 추적이 덜 됐거나 참고인 조사가 빠진 사건은 검사가 보완해 기소 여부를 결정한다. 개정법이 시행되면 검사는 의견을 내고 사건 관계인에게 자료를 받을 수 있을 뿐 수사는 할 수 없다. 부족한 부분을 발견할 때마다 경찰에 다시 수사를 요구해야 한다. 경찰 사건 처리 이미 56일 넘어 보완수사 요구는 이미 빠르게 늘고 있다. 2021년 8만6916건이던 보완수사 요구 사건은 지난해 11만623건으로 27.2% 증가했다. 올해 상반기에는 6만5913건이 경찰로 돌아갔다. 지금 추세라면 연간 보완수사 요구 건수는 지난해보다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경찰 수사관이 맡는 사건도 2020년 평균 108.4건에서 지난해 133.8건으로 23.4% 증가했다. 경찰이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해 미제로 분류한 사건은 지난해 22만241건, 올해 상반기 10만2567건이었다. 검찰이 처리하던 보완수사까지 경찰 업무에 더해지면 수사관 한 명이 같은 사건을 여러 차례 다시 들여다보는 일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사건 처리 기간은 벌써 길어지고 있다. 경찰이 사건을 접수해 송치 또는 불송치 결정을 내리기까지 걸린 기간은 지난해 평균 54.5일에서 올해 상반기 56.4일로 늘었다. 불송치 사건은 평균 61.1일이 걸렸다. 여기에 검찰의 기록 검토와 보완수사 요구, 경찰의 추가 조사, 검찰의 재검토가 이어지면 고소부터 기소까지 필요한 시간은 훨씬 길어진다. 피해자에게 수사 지연은 달력에 며칠이 더해지는 문제가 아니다. 범행을 입증할 자료가 사라지고 참고인의 기억이 흐려질 수 있다. 민사소송이나 피해 회복 절차도 형사사건 처분을 기다리느라 늦어진다. 피의자 역시 수사가 끝날 때까지 취업과 영업, 금융 거래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검찰의 보완수사를 거쳐 혐의가 달라진 사건도 적지 않다. 강화도 유기 사건에서는 검찰의 추가 수사를 거쳐 유기 혐의가 유기치상으로 변경됐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도 검찰 보완수사 과정에서 성폭행 목적이 확인됐다. 처음 수사한 기관과 다른 법률가가 증거를 다시 살피는 과정에서 놓친 범죄가 드러난 사례들이다. 검사가 확인해도 증거로 못 쓴다 개정법은 보완수사를 없애는 대신 검사에게 ‘사실관계 확인’ 권한을 줬다. 검사가 피의자와 피해자 등 사건 관계인의 의견을 듣고 자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한 제도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얻은 진술과 자료는 재판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 검사가 피해자를 만나 중요한 진술을 확인해도 증거로 제출하려면 경찰이 같은 사람을 다시 조사해야 한다. 피해자는 검사실에서 한 말을 경찰서에 가서 되풀이해야 한다. 경찰이 다시 작성한 조서가 검찰로 넘어온 뒤에야 기소 판단이 가능하다. 보완수사를 없애면서 만든 대체 절차가 출석 횟수와 처리 기간을 늘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여당은 아동학대와 가정폭력, 성범죄, 스토킹, 장애인·노인 학대 등 7개 범죄에 전건송치를 도입할 방침이다. 경찰이 불송치한 사건까지 모두 공소청에 보내 한 번 더 살피게 하겠다는 것이다. 보완수사 폐지로 피해자 보호가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반영한 조치다. 전세사기와 보이스피싱 같은 다중 피해 범죄는 전건송치 대상에서 빠졌다. 같은 피해라도 경찰이 어떤 죄명을 적용하느냐에 따라 공소청의 재검토를 받을 수 있는지가 달라질 수 있다. 피해자 보호가 필요해 예외를 두면서도 범죄 유형을 제한해 또 다른 사각지대를 만들었다. 수사 책임은 커졌지만 통제 수단은 약해 경찰 수사가 부실하거나 검찰의 보완수사 요구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을 때 책임을 묻는 방법도 문제다. 개정법은 경찰이 정당한 이유 없이 보완수사 요구를 이행하지 않으면 공소청장이 해당 경찰관의 징계나 직무배제를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비슷한 제도는 2021년 검경 수사권 조정 때부터 시행됐다. 이후 검사가 경찰관의 직무배제를 요구한 사례는 한 건에 그쳤다. 징계와 직무배제 요구권을 법에 적어두더라도 실제로 작동하지 않으면 부실 수사를 막기 어렵다. 검찰에서는 경찰이 보완수사를 늦게 하거나 부실하게 처리한 경우 인사평가에 반영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경찰은 검찰의 처분 결과를 경찰 인사에 반영하면 수사 독립성이 훼손된다고 맞서고 있다. 검찰의 직접 개입은 차단하면서 경찰 수사의 오류를 누가 확인하고 책임을 물을지에 대한 답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새 기관 출범 두 달 앞두고 하위 법령 900개 손질 검찰청은 오는 10월 2일 폐지된다. 공소청이 기소와 공소 유지를 맡고 중대범죄수사청은 부패·경제·방위산업·마약·내란·외환·사이버범죄 등 6대 중대범죄를 수사한다. 1954년 형사소송법 제정 이후 72년 만에 형사사법체계가 전면 개편된다. 출범까지 남은 시간은 두 달 남짓이다. 중수청은 2000∼3000명 규모로 꾸릴 예정이지만 수사관 직급과 임용 방식은 확정되지 않았다. 기존 검찰 수사관 6000여명을 공소청과 중수청에 어떻게 나눠 배치할지도 남아 있다. 경찰과 중수청 가운데 어느 기관이 사건을 맡을지, 관할이 겹칠 때 누가 먼저 수사할지에 관한 실무 기준도 마련해야 한다. 정부가 개정해야 할 하위 법령은 900여개에 이른다. 경찰과 중수청, 공소청,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사건을 나누고 넘기는 절차도 새로 정해야 한다. 수사기관이 늘면 관할을 판단하고 사건을 이첩하는 데 드는 행정 절차도 늘어난다. 그동안 수사는 멈추거나 담당 기관을 찾아 오갈 수 있다. 검사의 직접 영장 청구를 막은 조항도 논란을 낳고 있다. 개정법에 따르면 체포·구속·압수수색 영장은 경찰이 신청해야 검사가 법원에 청구할 수 있다. 헌법은 체포·구속·압수·수색 영장을 ‘검사의 신청에 의해’ 법관이 발부하도록 규정한다. 대검은 헌법이 경찰 신청을 거치지 않은 검사의 직접 영장 청구까지 보장한다며 위헌 소지를 제기했다. 공소기각 기준까지 넓혀 재판 장기화 우려 개정법은 공소기각 사유도 기존 6개에서 8개로 늘렸다. ‘중대한 위법수사를 근거로 공소가 제기된 경우’와 ‘소추재량권을 현저히 일탈한 경우’ 법원이 혐의에 대한 판단 없이 재판을 끝낼 수 있도록 했다. ‘중대한 위법’과 ‘현저한 일탈’을 가르는 기준은 법에 적혀 있지 않다. 정치인과 특검 사건 피고인들이 표적 수사나 공소권 남용을 주장하며 공소기각을 요구하면 재판부는 수사 과정의 위법성부터 별도로 심리해야 한다. 1심의 공소기각 판단이 상급심에서 뒤집히면 사건은 파기환송돼 다시 재판을 받아야 한다. 야권은 이 조항이 이재명 대통령의 재판을 끝내기 위한 우회로라고 주장하고 있다. 여당은 기존 대법원 판례를 법률에 옮긴 것이라고 설명한다. 기존 판례로 해결하던 사안을 별도 조항으로 만들면서 적용 기준을 두지 않은 탓에 형사재판에 새로운 다툼을 더했다. 국회는 검사의 수사권을 폐지하는 데 속도를 냈다. 그러나 보완수사를 넘겨받을 경찰의 사건은 이미 쌓여 있고 공소청과 중수청의 인력과 업무 기준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경찰 수사가 잘못됐을 때 이를 바로잡을 제도도 실효성이 검증되지 않았다. 형사사법 절차에서 한 기관의 업무를 없애면 그 일을 맡을 사람과 필요한 시간을 먼저 계산해야 한다. 이번 개정은 검사에게서 보완수사권을 떼어냈지만 그 업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경찰이 떠안고 사건 당사자가 기다려야 할 시간이 늘어났다.
2026-07-31 17: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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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개혁, 보완수사권부터 없애고 보자는 식이어선 안 된다
[경제일보] 더불어민주당이 검사의 보완수사권을 폐지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채택하고 이달 말 국회 본회의 처리를 추진하고 있다.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일부 범죄에는 전건 송치 제도를 적용하는 보완책도 제시했다. 수사와 기소를 분리해 검찰 권한을 축소하겠다는 것이 개정안의 취지다. 검찰 권한을 민주적으로 통제하고 수사·기소의 집중을 해소해야 한다는 방향에는 이견이 크지 않다. 그러나 제도 개혁은 구호만 옳다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제도가 실제 범죄 피해자를 더 잘 보호할 수 있는지, 부실 수사를 누가 바로잡을지, 수사기관 사이의 책임 공백은 어떻게 막을지를 먼저 따져야 한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그동안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에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시해 왔다. 검찰이 경찰의 1차 수사에 손을 대지 못하게 할 경우 피해자를 보호할 대안이 있는지 물었고 억울한 피해자 한 명이라도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사기관에 대한 견제와 교차 검증이 필요하다는 입장도 밝혔다. 최근에는 정 장관의 사의 논란까지 불거졌다. 청와대는 공식적인 사의 표명이 아니라고 밝혔지만 정 장관이 형사소송법 개정 과정에서 여러 차례 무력감을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주무 장관조차 제도 설계에 충분한 숙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느낀다면 여당은 이를 정치적 반발로만 치부할 일이 아니다. 보완수사는 경찰 수사가 미흡하거나 새로운 증거가 발견됐을 때 검사가 추가로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절차다. 검찰이 이를 수사권 확대의 통로로 악용할 수 있다는 우려는 충분히 제기할 수 있다. 그렇다고 권한 남용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기능 자체를 없애는 것이 유일한 해법은 아니다. 보완수사의 범위와 기간을 제한하고 직접 수사가 가능한 요건을 법률로 엄격히 정하며 모든 과정을 기록·공개하는 방식도 검토할 수 있다. 특히 성범죄와 아동학대, 장애인 대상 범죄, 대형 경제범죄처럼 피해자의 진술과 복잡한 증거 분석이 중요한 사건은 한 차례의 부실 수사가 회복하기 어려운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검사가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하는 권한만 갖고 직접 확인하지 못한다면 사건이 경찰과 검찰 사이를 오가며 장기화할 가능성도 있다. 피해자에게는 수사기관 간 권한 다툼보다 신속하고 정확한 진상 규명이 중요하다. 여당이 제시한 ‘7대 범죄 전건 송치’도 충분한 해답인지 의문이다. 적용 범죄의 기준이 무엇인지, 송치된 사건을 검찰이 어느 범위까지 검토할 수 있는지, 경찰의 수사가 미흡할 경우 누가 최종 책임을 지는지가 명확해야 한다. 일부 범죄만 예외로 두는 방식은 오히려 형사사법 체계를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 검찰개혁의 목표는 검찰이라는 기관의 권한을 줄이는 데만 있지 않다. 수사기관이 서로 견제하면서도 범죄에 제대로 대응하고 국민이 더 신속하고 공정한 수사를 받도록 만드는 것이 본질이다. 검찰의 보완수사권을 폐지한 뒤 문제가 생기면 다시 제도를 고치겠다는 접근은 무책임하다. 형사사법 제도의 시행착오 비용은 정치권이 아니라 범죄 피해자와 국민이 부담한다. 국회는 법안 처리를 서두르기 전에 경찰과 검찰, 법원, 변호사단체, 피해자 지원단체와 일선 수사관의 의견을 공개적으로 들어야 한다. 보완수사권을 폐지했을 때 예상되는 사건 지연과 부실 수사, 책임 소재를 구체적인 사례와 통계로 검증해야 한다. 중대 범죄에 대한 교차 검증 장치와 이의신청 절차, 피해자 구제 수단도 법률에 함께 담아야 한다. 검찰에 기존 권한을 그대로 두자는 것이 아니다. 보완수사권이 필요하다면 그 범위를 최소화하고 외부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 검사의 자의적인 사건 확대와 별건 수사를 차단하고 보완수사 개시 사유와 결과를 기록하게 해야 한다. 반대로 경찰 수사가 부실했을 때 이를 바로잡을 책임 주체도 분명히 해야 한다. 개혁은 빠르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잘못 설계된 제도를 밀어붙였다가 되돌리는 과정에서 국민의 권리와 안전이 훼손될 수도 있다. 이는 개혁이 아니라 또 다른 혼란이다. 여당은 ‘검찰개혁 완수’라는 정치적 시간표보다 피해자 보호와 형사사법 체계의 안정성을 앞에 놓아야 한다. 주무 장관도 납득하지 못하고 일선에서 수사 공백을 우려하는 제도를 충분한 검증 없이 강행해서는 안 된다. 보완수사권을 없애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부실 수사를 막고 억울한 피해자를 구제할 장치를 만드는 일이다. 없애고 나서 생각할 것이 아니라 무엇으로 대신할 것인지부터 국민에게 답해야 한다.
2026-07-27 10:3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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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완수사권 공방, 검찰도 경찰도 아닌 국민을 보라
[경제일보] 수사는 처음부터 완전하지 않다. 확보하지 못한 영상 하나, 조사하지 않은 참고인 한 명, 잘못 해석한 진술 한 줄이 사건의 결론을 바꾼다. 경찰이 송치한 기록을 검사가 다시 들여다보고 부족한 부분을 확인해 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검사의 보완수사권 폐지를 추진했지만 당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수사와 기소를 완전히 분리하려면 검사의 직접 보완수사도 없애야 한다는 주장과 경찰 수사를 교정할 최소한의 권한은 남겨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성폭력과 아동학대, 스토킹, 보이스피싱 같은 범죄에는 예외적으로 보완수사를 허용하자는 법안도 나왔다. 형사사법제도는 한번 바꾸면 수많은 사건과 국민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문제는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의 출범 시점을 오는 10월 2일로 정해 놓고도 형사절차의 핵심인 보완수사 구조를 아직 확정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조직을 먼저 나눈 뒤 그 조직들이 어떻게 사건을 처리할 것인지를 뒤늦게 논의하는 순서가 됐다. 보완수사권과 보완수사요구권은 구별해야 한다. 보완수사권은 경찰이 송치한 사건을 검사가 직접 추가 조사하는 권한이다. 보완수사요구권은 검사에게 부족한 부분을 발견했을 때 경찰에 추가 수사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권한이다. 전면 폐지론은 검사에게 직접 조사권을 남기면 수사·기소 분리 원칙이 무너진다고 본다. 검사가 보완수사를 내세워 송치된 혐의와 관계없는 사실까지 들여다보거나 별건 수사로 확대할 위험도 지적한다. 검찰은 이런 불신을 스스로 키웠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함께 행사하면서 표적수사와 별건수사, 과도한 압수수색, 피의사실 유출 논란을 반복했다. 직접수사권을 축소하고 수사와 기소를 분리해야 한다는 요구는 검찰권 남용에 대한 사회적 반작용이었다. 과거와 같은 포괄적 수사권을 검사에게 돌려줄 수는 없다. 그러나 검찰의 직접수사권을 폐지하는 문제와 경찰 수사의 오류를 교정하는 기능을 없애는 문제는 같지 않다. 보완수사요구권만 남기면 충분하다는 주장은 실제 수사 과정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처음 수사를 부실하게 한 수사관에게 같은 사건을 다시 조사하라고 요구한다고 해서 빠진 증거가 저절로 발견되지는 않는다. 수사팀이 사건을 축소하거나 특정한 방향으로 결론을 내렸다면 같은 조직에 보완수사를 맡기는 방식만으로 잘못을 바로잡기 어렵다. 검사가 경찰 수사기록만 검토해서는 기록 밖에 있는 증거를 찾을 수도 없다. 경찰이 확보하지 않은 영상, 조사하지 않은 참고인, 누락한 압수물은 기록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 피해자나 참고인을 직접 만나 몇 가지 사실을 확인해야 수사의 빈틈이 드러나는 사건도 있다. 전남광주 여고생 살인사건은 이런 우려를 보여줬다. 경찰은 피의자를 단순 살인 혐의로 송치했지만 검찰의 보완수사 과정에서 성범죄 목적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추가로 확인됐다. 이후 경찰 수사팀 내부에서 중요 증거 확보와 보고를 막고 수사 내용을 축소한 정황까지 드러났다. 개별 사건 하나로 모든 제도를 설계할 수는 없다. 다만 경찰 내부에서 수사 축소나 증거 누락이 발생했을 때 같은 경찰 조직에 다시 수사를 맡기는 것만으로 충분한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검찰이 검찰 비리를 제대로 수사하지 못했던 것처럼 경찰의 내부 감찰도 경찰 수사에 대한 외부 통제를 대신하기 어렵다. 보완수사권 문제를 검찰과 경찰 사이의 권한 다툼으로만 보면 가장 중요한 당사자가 사라진다. 성폭력과 가정폭력, 아동학대, 장애인 대상 범죄 피해자는 처음부터 모든 사실을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가해자에게 경제적·정서적으로 종속돼 있거나 보복을 두려워하기도 한다. 수사기관이 피해자의 진술만 기계적으로 비교하면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기 어렵다. 주변 정황과 디지털 증거, 반복되는 범행의 구조를 함께 확인해야 한다. 경찰 수사가 부실하면 피해자는 같은 일을 여러 번 진술해야 한다. 수사기관이 바뀔 때마다 피해 사실을 다시 설명하고, 뒤늦게 발견된 증거가 이미 사라지는 일도 생긴다. 보완수사권 폐지는 검사 한 사람의 권한을 줄이는 문제가 아니라 피해자가 수사 오류를 바로잡을 기회를 잃을 수 있는 문제다. 피의자의 권리도 다르지 않다. 경찰이 혐의를 과도하게 구성하거나 불리한 진술만 골라 기록했다면 검사의 재검토 과정에서 기소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올 수 있다. 보완수사는 유죄 증거를 추가로 찾는 절차에 그쳐서는 안 된다. 경찰 수사가 공판에 넘길 만큼 충분하고 적법한지 다시 확인하는 절차여야 한다. 검사가 기소권을 가진 채 직접 보완수사까지 하면 유죄 판단에 치우칠 위험이 있다. 반대로 기소를 결정하는 검사가 증거의 신빙성과 수사 과정의 문제를 확인할 수 없다면 부실한 경찰 수사가 그대로 재판으로 넘어갈 수 있다. 입법자는 두 위험을 함께 줄일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선택지는 전면 폐지와 현행 유지뿐이 아니다. 검사의 독자적인 수사 개시는 금지하되 경찰이 송치한 사건 가운데 제한된 범위에서만 직접 보완수사를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성폭력과 아동학대 등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 피의자가 구속된 사건, 공소시효가 임박한 사건, 대규모 민생침해 범죄, 경찰 수사 과정에서 증거 누락이나 인권침해가 의심되는 사건을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예외 범위는 법률에 구체적으로 적어야 한다. ‘필요한 경우’처럼 폭넓게 해석될 수 있는 문구를 두면 보완수사권이 검찰의 직접수사권을 우회적으로 복원하는 통로가 된다. 수사 범위도 경찰이 송치한 범죄사실과 기본적 사실관계가 같은 범위로 제한해야 한다. 압수수색과 같은 강제수사에는 공소청장이나 상급자의 사전 승인을 받도록 하고, 보완수사의 사유와 범위, 조사 내용은 모두 기록에 남겨 피의자와 변호인이 다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수사 기간과 횟수도 제한해야 한다. 위법한 별건 수사로 취득한 증거는 재판에서 배제하고 수사 담당자에게 책임을 묻는 장치도 필요하다. 전면 폐지를 선택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통제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 경찰이 불송치한 사건까지 공소청에 보내 다시 검토받도록 하는 전건송치가 대안으로 거론된다. 하지만 모든 사건을 공소청이 다시 심사하면 사건 처리가 지연되고 기록을 형식적으로 훑는 데 그칠 가능성이 있다. 전건송치는 중대범죄와 사회적 약자 대상 범죄부터 적용하거나 피해자가 이의를 제기한 사건을 중심으로 운용하는 방안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치권의 논의도 구호에서 벗어나야 한다. 민주당은 보완수사권 폐지에 우려를 제기하는 목소리를 검찰 기득권 옹호나 개혁 후퇴로 몰아서는 안 된다. 수사 실무를 경험한 법조인과 범죄피해자 지원단체가 지적하는 문제는 검찰 조직을 지키자는 요구가 아니다. 경찰 수사가 잘못됐을 때 피해자가 기댈 절차가 있는지를 묻는 것이다. 국민의힘도 경찰의 부실수사 사례를 검찰권 복원의 근거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경찰이 잘못했다고 과거 검찰의 수사권 독점이 정당해지는 것은 아니다. 보완수사권을 유지하자고 주장하려면 별건 수사와 과잉수사를 막을 구체적인 통제 방안부터 내놓아야 한다. 검찰개혁은 검찰 조직에 대한 응징이 아니다. 경찰에 더 많은 권한을 주는 일도 아니다. 잘못된 수사를 줄이고 피해자와 피의자의 권리를 지키는 형사절차를 만드는 일이다. 수사기관의 권한은 어느 기관이 더 신뢰받느냐에 따라 배분할 일이 아니다. 검찰과 경찰 모두 잘못할 수 있다는 전제 아래 서로의 판단을 검증하고 법원과 변호인이 그 과정을 통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특정 기관의 선의를 기대하는 대신 권한의 범위와 책임을 법률로 정해야 한다. 정치권은 공소청과 중수청 출범일을 정해 놓고도 보완수사 구조를 두고 합의하지 못했다. 시행일이 다가온다는 사정이 졸속 입법의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입법이 늦어진 책임을 피하려고 충분한 검토 없이 전면 폐지나 현행 유지를 선택한다면 그 부담은 수사기관이 아니라 국민이 떠안는다. 검찰개혁의 성과는 검사에게서 몇 개의 권한을 빼앗았는지로 평가할 수 없다. 경찰의 부실수사가 줄었는지, 억울하게 묻힌 사건을 다시 살펴볼 수 있는지, 무고한 사람이 잘못 기소되는 일을 막았는지로 평가해야 한다. 보완수사권 공방에서 기준이 돼야 할 사람은 검사도 경찰도 아니다. 수사 결과에 따라 일상과 명예, 때로는 삶 전체가 달라지는 피해자와 피의자다. 정치권이 그들의 권리를 외면한 채 수사기관의 권한만 나눈다면 검찰청의 이름을 바꾸고 조직을 둘로 나누더라도 개혁의 목적은 달성되지 않는다.
2026-07-16 11: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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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법연령은 낮추고, 국가는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
[경제일보] 소년범죄 피해자에게 가해자의 나이는 첫 번째 질문이 아니다. 흉기에 다쳤다면 상처가 남고, 집단폭행을 당했다면 학교에 다시 가는 일부터 두려워진다. 성범죄 피해를 입은 아이와 가족에게는 일상이 무너진다. 가해자가 열세 살이라는 사정이 피해의 크기를 줄여주지는 않는다. 현행 형법은 14세가 되지 않은 사람에게 형사책임을 묻지 않는다. 10세 이상 14세 미만의 촉법소년은 소년부 심리를 거쳐 보호관찰이나 소년원 송치 같은 보호처분을 받을 수 있다. 그렇다고 형사재판을 받는 것과 같은 무게의 책임이 따르는 것은 아니다. 피해자와 가족의 눈에는 법이 가해 소년의 나이부터 살피고, 자신들이 겪은 고통은 뒤로 미루는 것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촉법연령은 낮춰야 한다. 살인과 강도, 성폭력, 흉기 사용, 집단폭행처럼 타인의 생명과 신체를 심각하게 침해한 범죄라면 더욱 그렇다. 보호처분을 받고도 폭력과 절도를 반복하는 소년에게도 마찬가지다. 범행의 결과를 알면서도 타인에게 중대한 해악을 입히는 행위까지 나이 하나만으로 형사사법의 바깥에 둘 이유는 약하다. 소년에게 성인과 똑같은 처벌을 하자는 뜻은 아니다. 열세 살의 판단력과 책임 능력을 성인과 동일하게 볼 수는 없다. 수사와 재판, 형의 집행도 소년의 발달 단계와 회복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그렇더라도 책임의 경계는 분명해야 한다. 자신이 저지른 일이 누군가의 삶을 어떻게 훼손했는지, 그 행동에 왜 법적 책임이 따르는지를 가르치지 않는 교화는 훈계에 그치기 쉽다. 형벌에는 재범을 막고 사회를 지키는 기능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응보 역시 형벌의 중요한 목적이다. 응보는 피해자의 분노를 대신 풀어주는 보복이 아니다. 국가가 범죄의 위법성과 피해의 무게를 공식적으로 확인하고, 가해자에게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묻는 일이다. 법원이 책임을 선언할 때 피해자는 자신이 겪은 일이 사적인 불운이나 아이들 사이의 다툼으로 축소되지 않았음을 확인한다. 소년범죄 논의에서는 가해 소년의 성장 가능성과 교화 필요성이 자주 강조된다. 그 원칙은 필요하다. 그러나 가해 소년의 장래를 살핀다는 이유로 피해자의 상처와 불안을 주변으로 밀어낼 수는 없다. 피해자 보호는 소년사법의 부수적 과제가 아니다. 소년사법이 시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가장 먼저 지켜야 할 기준이다. 촉법연령 하향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법의 문턱만 낮춰 놓고 소년을 다시 방치한다면, 제도는 또 다른 실패를 낳는다. 가해 소년은 더 깊은 비행으로 들어가고, 피해자는 계속 늘어난다. 소년분류심사원의 현실은 국가가 소년범죄에 얼마나 임시방편으로 대응해 왔는지를 드러낸다. 지난해 새로 위탁된 소년은 5489명이었다. 4년 전보다 42% 증가했다. 2025년 하루 평균 수용 인원은 460명으로 정원 410명을 넘어섰다. 원칙상 한 달인 위탁 기간도 절반가량이 연장됐다. 심사원은 이미 정원을 넘긴 인원을 안고 돌아가고 있다. 소년분류심사원은 단순히 소년을 머물게 하는 시설이 아니다. 법원이 처분을 정하기 전 가정환경과 학교생활, 또래관계, 정신건강, 중독 문제를 살피고 재비행 위험을 판단하는 기관이다. 심사관이 작성한 분류심사서는 소년의 처분을 정하는 재판부 판단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그런데 전국 심사관은 22명에 불과하다. 한 사람이 해마다 250건 안팎을 맡아야 한다. 정신질환과 약물·도박 문제, 가정 해체와 학대 경험, 학교 부적응까지 겹친 소년을 짧은 기간에 파악하고 적절한 처우를 정하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심사원에 들어오는 소년 세 명 중 한 명이 정신질환을 안고 있다는 현장 진단까지 나온다. 상담과 치료, 교육을 맡을 인력은 부족하고, 심사관들은 사건 처리와 행정 업무, 야간근무까지 감당해야 한다. 심사원 안에서 달라지는 소년도 적지 않다. 규칙적인 생활을 배우고, 끼니를 챙겨 먹으며, 상담을 통해 자신의 문제를 들여다본다. 밖에서 굶거나 약물에 손댔던 소년이 생활을 회복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평균 44일의 변화는 심사원 문을 나서는 순간 흔들리기 쉽다. 소년은 다시 가출을 반복하던 집으로 돌아간다. 학교에서는 이미 낙오자로 취급받고, 범행을 함께했던 또래는 연락을 기다린다. 도박과 폭력, 성착취와 마약에 닿는 온라인 공간도 그대로 남아 있다. 심사원에서 재비행 위험을 진단해 놓고도 가정과 학교, 보호관찰소와 지역사회가 뒤를 잇지 못하면 심사 결과는 보고서에 머문다. 재위탁률이 40%를 넘는 현실도 같은 맥락에서 읽어야 한다. 심사원에 여러 차례 드나드는 소년이 생기는 이유를 개인의 의지 부족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보호관찰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학교 출석이 무너진 소년에게는 그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생활 기반부터 없는 경우가 많다. 부모는 돌볼 여력이 없고, 학교는 손을 놓으며, 보호관찰관은 지나치게 많은 사건을 맡는다. 지역사회 상담기관은 도움을 청하는 소년에게만 문을 연다. 가장 먼저 손을 내밀기 어려운 소년에게 스스로 찾아오라고 요구하는 방식이다. 국가의 관리 실패는 결국 새로운 피해로 돌아온다. 재비행은 숫자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두 번째 폭행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처음 겪는 공포다. 가해 소년을 제대로 붙들지 못한 국가는 다음 피해자를 막을 기회도 놓친다. 재범 방지는 가해 소년만을 위한 정책이 아니다. 가장 현실적인 피해자 보호 정책이다. 촉법연령을 낮춘다면 처벌 뒤의 관리도 함께 강화해야 한다. 중대 범죄나 반복 비행으로 보호처분 또는 형사처분을 받은 소년에게는 전담 사례관리자가 필요하다. 보호관찰소와 학교, 지방자치단체, 상담기관이 각자 공문만 주고받는 방식으로는 부족하다. 한 명의 담당자가 소년의 출석과 치료, 가정환경, 또래관계, 직업교육을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필요한 기관을 연결해야 한다. 보호자 책임도 분명히 해야 한다. 부모의 방임과 폭력, 중독과 가정 붕괴가 비행의 배경이라면 소년만 교육해서는 달라질 것이 없다. 보호자 상담과 교육, 필요한 경우 가정에 대한 개입이 병행돼야 한다. 아이를 심사원에 맡긴 뒤 집안은 예전과 다름없이 두고 “다시 잘해 보라”고 돌려보내는 방식은 재비행을 막지 못한다. 학교도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 재적만 유지한 채 교실에서 사실상 밀려난 소년이 적지 않다. 일반 학교로 돌아가기 어렵다면 대안교육과 직업교육으로 이어져야 한다. 수업을 듣지 않고, 일할 곳도 없으며, 집에서도 돌봄을 받지 못하는 소년에게 보호관찰 준수만 요구하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처방이다. 촉법연령 하향은 소년을 포기하자는 말이 아니다. 더 이른 시점에 책임을 가르치고, 그 책임이 다음 범죄로 이어지지 않도록 국가가 더 오래 관리하자는 요구다. 피해자에게는 “당신이 겪은 피해를 법은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가해 소년에게는 “나이가 책임을 지워주지는 않지만, 국가는 당신을 다시 범죄로 밀어 넣지도 않겠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촉법연령을 낮추는 일은 출발일 뿐이다. 심사원에서 44일을 보낸 뒤에도 국가가 소년의 삶을 붙들 수 있어야 한다. 책임을 묻되 방치하지 않고, 피해자를 보호하되 소년의 재기를 포기하지 않는 제도. 그 두 가지를 함께 해내지 못한다면 촉법소년 논쟁은 언제까지나 같은 자리만 맴돌게 된다.
2026-07-05 14:3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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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뿌리 민주주의 흔들…전과 이력에 무투표 당선까지
[경제일보] 지방선거는 민주주의의 말단이 아니라 뿌리다. 대통령 선거가 국가의 방향을 묻는다면, 지방선거는 주민의 삶을 묻는다. 중앙정치의 거창한 구호보다 시민의 하루에 더 가까운 선거가 지방선거다. 그런데 6·3 지방선거를 앞둔 지금, 이 뿌리가 흔들리고 있다. 정책 경쟁은 뒤로 밀리고 정쟁과 네거티브가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후보자의 지역 비전보다 중앙당의 심판론과 진영 구호가 더 크게 들린다. 일부 지역에서는 공천 갈등과 흠집 내기가 선거 초반부터 정책 논의를 밀어냈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제는 정쟁만이 아니다. 후보자의 전과 이력, 무투표 당선 증가, 낮은 경쟁률이 겹치면서 지방선거 직선제 자체에 대한 회의론까지 고개를 들고 있다. 물론 직선제를 흔들자는 말은 위험하다. 선거의 문제가 있다고 해서 선거를 줄이는 것은 민주주의의 치료가 아니라 후퇴다. 그러나 지금의 지방선거가 주민에게 충분한 선택권과 검증권을 보장하고 있는지는 냉정하게 물어야 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집계에 따르면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후보 등록 결과, 총 2349개 선거구에 7829명이 등록해 평균 경쟁률은 1.8대 1에 그쳤다. 지방선거 무투표 선거구는 307곳, 무투표 당선 대상자는 513명으로 알려졌다. 기초단체장 3명과 지방의원 510명이 사실상 투표 없이 당선되는 구조라는 것이다. 적지 않은 지역에서 유권자의 선택지가 사라진 셈이다. 무투표 당선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제도다. 후보자가 선출 정수와 같거나 그보다 적으면 투표를 치르지 않아도 된다는 취지다. 행정 비용을 아낀다는 논리도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비용은 회계장부로만 계산할 수 없다. 선거는 단순히 당선자를 정하는 절차가 아니다. 후보가 주민 앞에 나와 공약을 설명하고, 상대 후보와 토론하며, 지역 언론과 시민사회의 검증을 받는 과정 전체가 민주주의다. 무투표 당선이 늘어난다는 것은 이 검증 과정이 통째로 생략되는 지역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더 심각한 것은 이것이 특정 지역의 예외가 아니라 구조적 현상으로 굳어질 조짐을 보인다는 점이다. 지역 정치가 특정 정당의 텃밭으로 고착되면 공천이 곧 당선이 된다. 유권자는 본선에서 선택하지 못하고 정당 내부 공천 결과를 사후 승인하는 위치로 밀려난다. 이 경우 지방자치는 주민자치가 아니라 정당자치가 된다. 주민의 눈치를 봐야 할 지방정치가 중앙당과 지역 조직의 눈치를 보게 된다. 후보자 전과 문제도 가볍지 않다. 물론 모든 전과를 같은 잣대로 볼 수는 없다. 민주화운동이나 노동운동, 집회 관련 전과처럼 시대적 맥락을 따져야 할 사안도 있다. 오래전 경미한 사건을 이유로 공직 진출 자체를 봉쇄하는 것도 옳지 않다. 그러나 음주운전, 사기, 폭력, 성범죄, 선거범죄 등은 다르다. 공직자는 권한을 위임받는 사람이다. 법을 만드는 사람, 예산을 다루는 사람, 인허가와 감사를 감시하는 사람에게 법 경시의 이력이 반복된다면 유권자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 중앙선관위 선거관리통계시스템에 등록된 지방의원 예비후보 6867명 중 2477명, 즉 36.1%가 전과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과가 있는 광역의원 예비후보의 범죄 경력 중 교통 관련 범죄가 50.4%로 가장 많았고, 폭행·상해 등 폭력 범죄, 집시법 위반, 재산 범죄, 선거 범죄 등이 뒤를 이었다. 이 숫자는 유권자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정당은 공천 과정에서 무엇을 검증했는가. 지역사회는 후보자의 이력을 충분히 알고 있는가. 후보자는 전과 사실을 단순히 신고 의무로만 처리할 것이 아니라 주민 앞에서 설명했는가. 공직 후보자의 전과 공개는 낙인을 찍기 위한 제도가 아니다. 유권자가 판단할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장치다. 그렇다면 정당과 후보자는 그 정보가 공보물 한쪽의 작은 글씨로 묻히지 않도록 더 적극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지방선거의 정쟁화도 이 문제를 키운다. 선거가 정책 경쟁으로 흐르면 후보자의 역량, 도덕성, 공약 이행 가능성이 자연스럽게 비교된다. 그러나 선거가 중앙정치의 대리전이 되면 지역 후보는 진영의 깃발 뒤로 숨는다. 유권자도 사람을 보기보다 당을 보게 된다. 그러는 사이 전과 이력은 정당 색깔에 가려지고, 무투표 당선은 지역주의의 그늘 속에서 정상처럼 지나간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지방정부는 이제 단순한 행정기관이 아니다. 지역 산업전략을 짜고, 기업 유치를 설계하고, 도시 인프라와 주거 정책을 집행한다. 인구 감소, 지방 소멸, 청년 유출, 고령화, 산업 전환은 모두 지방정부의 역량과 직결된다. 이런 시대에 지방선거가 정쟁과 무관심 속에 치러진다면 지역경제의 미래도 흔들린다. 유권자가 후보자의 공약을 따져 묻지 못하고, 후보자가 경쟁 없이 의회에 들어가면 예산 감시와 정책 검증의 힘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해법은 직선제 축소가 아니다. 오히려 직선제를 제대로 작동시키는 일이다. 먼저 정당 공천의 책임성을 높여야 한다. 전과 이력이 있는 후보를 무조건 배제하자는 것이 아니라, 중대 범죄와 반복 범죄에 대해서는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특히 음주운전, 성범죄, 사기, 폭력, 선거범죄 등 공직 윤리와 직접 충돌하는 전과는 정당이 먼저 설명 책임을 져야 한다. 무투표 당선 지역에 대한 제도적 보완도 필요하다. 무투표 당선 자체를 모두 금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무투표 당선 예정자라도 주민 공개 질의, 정책자료 제출, 지역 언론 토론 또는 설명회 참여를 의무화하는 방안은 검토할 수 있다. 투표가 없더라도 검증까지 없어져서는 안 된다. 특정 정당 독점 지역에서 경쟁이 사라지는 문제를 줄이기 위해 지방의회 선거구와 공천 구조도 손봐야 한다. 유권자도 책임을 나눠야 한다. 후보자의 전과, 재산, 병역, 세금 체납, 공약은 선관위 정보공개 시스템과 공보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지방선거는 ‘잘 모르는 사람을 찍는 선거’가 되어선 안 된다. 중앙정치에 대한 호불호만으로 지방 권력을 위임하면 그 피해는 중앙이 아니라 지역이 받는다. 이번 지방선거는 풀뿌리 민주주의가 살아 있는지 묻는 시험대다. 정쟁은 선거의 소음일 수 있지만, 그것이 선거의 전부가 돼선 안 된다. 전과 이력은 법적 신고사항일 수 있지만, 그것이 도덕적 검증을 대신할 수는 없다. 무투표 당선은 법적 절차일 수 있지만, 그것이 주민의 선택권 상실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민주주의는 한 번에 무너지지 않는다. 무관심한 선거, 경쟁 없는 선거, 검증 없는 공천이 반복될 때 서서히 약해진다. 지금 필요한 것은 직선제 회의론이 아니라 직선제 정상화다. 주민에게 선택권을 돌려주는 것, 후보에게 설명 책임을 묻는 것, 정당에 공천 책임을 지우는 것. 그것이 풀뿌리 민주주의를 다시 세우는 출발점이다.
2026-05-20 11:1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