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보] 출소한 지 8일 만에 다시 범행을 저지른 사기범, 6700억원대 담합 혐의를 전면 부인한 대기업들, 그리고 피의자조차 특정하지 못한 채 강제수사에 나선 특검까지. 27일 법조계는 사건의 성격은 달랐지만 하나의 공통된 흐름을 드러냈다. 수사는 확대되고 있지만 입증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날 검찰은 중고거래 사기를 저지른 피고인을 구속기소하면서 경찰 단계에서 확인되지 않았던 추가 범행까지 밝혀냈다. 문제는 시점이다. 해당 피고인은 출소한 지 불과 8일 만에 다시 범행을 저질렀다. 형사 사법 체계가 범죄를 억제하기보다 뒤쫓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재범 자체가 이례적인 일은 아니다. 다만 이번 사건은 출소 직후 관리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수사 단계에서 범행이 충분히 확인됐는지를 다시 묻게 한다. 검찰은 보완수사를 통해 추가 범행을 밝혔지만, 그 과정에서 초기 대응의 빈틈도 함께 드러났다.
경제 사건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효성중공업과 현대일렉트릭 등 기업들이 연루된 6700억원대 입찰 담합 사건 첫 재판에서 피고인들은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핵심 쟁점은 ‘담합이 있었느냐’가 아니라 ‘그 사실이 법적으로 입증됐느냐’로 옮겨가는 분위기다.
피고인 측은 공소사실이 특정되지 않았다는 점과 증거의 적법성을 문제 삼고 있다. 최근 형사재판에서 반복되는 흐름이다. 수사기관이 확보한 자료가 많더라도 그것이 법정에서 그대로 증거로 인정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결국 사건의 승패는 사실관계보다 절차와 증거의 경계에서 갈리는 경우가 늘고 있다.
정치 사건에서는 또 다른 장면이 이어졌다. 김건희 씨 관련 의혹을 수사 중인 특검은 압수수색 영장에 ‘성명불상’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 대상은 설정됐지만 핵심 피의자를 특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강제수사가 진행된 셈이다.
이는 직권남용 등 권력형 범죄 수사의 구조적 난점을 보여준다. 의사결정 과정이 복잡하게 얽혀 있고 책임 주체를 특정하기 어려운 사건일수록 수사는 확대되지만 결론에 도달하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정치적 관심이 큰 사건일수록 이 같은 특징은 더 뚜렷해진다.
한편 정치권 인사의 성범죄 사건이 검찰로 송치되면서 법조와 정치의 경계가 다시 한 번 흐려지는 모습도 나타났다. 최근 들어 주요 정치인의 형사 사건이 잇따르면서 법원이 사실상 정치적 갈등의 최종 종착지로 기능하는 양상이 이어지고 있다.
이날 법조계의 장면들을 한데 모으면 흐름은 비교적 선명하다. 범죄는 반복되고 수사는 확대되며 재판은 점점 더 치열한 법리 싸움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건의 크기나 사회적 파장과 무관하게, 마지막 판단은 결국 ‘입증 가능성’이라는 좁은 문을 통과해야 한다는 점도 다시 확인됐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책임의 윤곽이 흐려질 수 있다는 점이다. 피의자를 특정하지 못한 수사, 재범을 막지 못한 사후 대응, 그리고 사실보다 절차를 둘러싼 공방이 중심이 되는 재판까지. 각각은 별개의 사건이지만, 법이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는 닮아 있다.
법정은 오늘도 열렸고 사건은 계속 쌓인다. 다만 그 결론이 어디로 향할지는 여전히 ‘입증’이라는 한 단어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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