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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전직 대통령의 법정, 체통과 책임의 마지막 시험대
[경제일보]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재판은 1심을 지나 항소심으로 넘어왔지만 사건의 무게는 줄지 않았다. 1심 법원은 윤 전 대통령에게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했고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는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항소심에서는 사실관계와 법리, 형량이 다시 다퉈질 전망이다. 그러나 이 재판이 묻는 것은 유무죄와 형량만이 아니다. 전직 대통령이 자신의 권한 행사로 발생한 결과를 법정에서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도 함께 놓여 있다.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 등의 내란 사건 항소심은 재판부 기피신청과 재항고 절차가 이어지면서 본격 심리에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은 항소심 첫 공판에 출석하지 않았고 김 전 장관과 일부 피고인들도 재판부 기피신청을 냈다. 법원은 기피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피고인 측은 이에 불복했다. 피고인에게는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고 법관 기피신청 역시 형사소송 절차 안에 있는 제도다. 다만 내란 사건처럼 헌정질서와 군 지휘 체계가 함께 다뤄지는 사건에서는 절차적 다툼의 방식과 시점도 공적 평가의 대상이 된다. 전직 대통령의 법정은 일반 피고인의 법정과 같으면서도 다르다. 혐의를 다투고 증거를 반박하며 법률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같다. 그러나 대통령은 군 통수권자였고 계엄 선포권자였다. 그 권한은 개인에게 주어진 권력이 아니라 헌법이 맡긴 공적 권한이다. 그 권한 행사로 국회와 선거관리위원회, 군과 경찰, 행정부가 영향을 받았다면 법정에서의 태도 역시 개인 방어권의 차원을 넘어선다. 방어권은 보장돼야 한다. 피고인이 혐의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곧바로 불리하게 평가돼서는 안 된다. 재판부 기피신청이나 증거 다툼도 법이 인정한 절차다. 그러나 전직 대통령과 전직 국방부 장관처럼 국가권력의 정점 또는 그에 가까운 위치에 있던 인물들의 절차적 대응은 그 자체로 별도의 메시지를 남긴다. 특히 그 재판이 군과 경찰, 헌법기관을 움직인 계엄 사건이라면 더욱 그렇다. 전직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체통은 침묵을 뜻하지 않는다. 혐의를 다투지 말라는 뜻도 아니다. 자신의 결정을 둘러싼 법적 책임을 다투더라도 그 결정이 국가기관과 하급 공직자에게 남긴 부담을 외면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부하와 실무자들이 수사와 재판의 부담을 나누어 지는 상황에서 최고 결정권자가 절차적 대응만을 앞세우는 모습으로 비치면 책임의 방향은 다시 아래로 흘러갈 수 있다. 법정 태도도 공적 평가의 대상 윤 전 대통령 측은 계엄이 국헌문란 목적의 내란이 아니라 경고성 조치였다는 취지의 주장을 이어왔다. 항소심에서도 이 주장은 다시 다뤄질 전망이다. 그러나 법원이 살필 부분은 계엄을 어떻게 불렀느냐가 아니라 실제로 무엇이 움직였느냐이다. 군 병력이 국회와 선관위 등 헌법기관을 향해 이동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명령이 내려갔는지,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 군·경 수뇌부가 어떤 인식을 공유했는지가 판단의 중심에 놓일 수밖에 없다. 전직 대통령의 법정 태도는 바로 이 대목에서 중요해진다. 계엄을 경고성 조치로 설명하더라도 실제 병력 이동과 기관 장악 시도 의혹이 있었다면 그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문제다. 법정에서는 혐의를 다툴 수 있다. 그러나 군과 경찰, 행정부 공직자들이 그 결과로 수사와 재판에 서게 된 현실까지 외면하기는 어렵다. 대통령의 권한은 결과가 발생한 뒤에도 책임을 동반한다. 김용현 전 장관의 위치도 이와 맞물려 있다. 김 전 장관은 대통령의 판단이 군 지휘 계통으로 전달되는 자리였다. 1심 법원은 김 전 장관의 책임을 중대하게 판단했다. 항소심에서는 김 전 장관이 단순 전달자였는지, 아니면 군사적 실행을 구체화한 인물이었는지가 다시 쟁점이 될 전망이다. 이 재판에서 윤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의 책임은 서로를 지우는 관계가 아니다. 대통령의 권한과 장관의 실행 관여는 각자의 지위에 따라 함께 평가돼야 한다. 충암고 출신 핵심 인맥 논란도 마지막까지 남는 대목이다. 학연 자체가 형사책임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다만 같은 인맥에 속한 인물들이 계엄 국면에서 핵심 직책을 맡았고 실제 지시와 실행 과정에 관여했다면 그 역할은 재판에서 검토될 수밖에 없다. 전직 대통령 주변의 사적 신뢰 관계가 공식 절차를 대신했는지, 국방부와 군 지휘 체계가 어떤 경로로 움직였는지도 항소심의 주요 판단 대상이 될 수 있다. 군에 남은 부담 이 시리즈가 반복해 짚은 대목은 군 전체를 계엄의 책임 주체로 몰아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대다수 군인은 계엄을 설계하지 않았다. 현장의 장병과 실무 간부 상당수는 명령 체계 안에서 움직였다. 이들이 위법성을 어느 정도 인식했는지는 개별 사정에 따라 다르게 판단될 수 있다. 그러나 계엄을 기획하고 지시한 사람들과 같은 선상에서 평가할 수는 없다. 계엄은 군에 오래 남을 부담을 남겼다. 일부 지휘관은 피고인석에 앉았고 일부는 증언대에 섰다. 수많은 장병은 자신이 수행한 명령의 의미를 뒤늦게 평가받는 위치에 놓였다. 군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국민 신뢰도 흔들렸다. 이 부담은 자연스럽게 생긴 것이 아니다. 국가 최고 권한자의 판단과 국방부 장관, 핵심 지휘 라인의 결정이 군 조직을 정치적 논란의 한복판으로 끌어들인 결과다. 전직 대통령의 책임 문제는 이 지점에서 다시 제기된다. 대통령은 군을 움직일 수 있는 권한을 가졌지만 그 권한이 군 전체의 신뢰를 흔드는 방식으로 행사됐다면 그 결과도 감당해야 한다. 전직 대통령의 체통은 법정 밖 의전의 문제가 아니다. 군과 국가기관에 남긴 부담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방어권을 행사하는지에서 드러난다. 군인들에게 남은 억울함은 감정적 표현으로 소비할 문제가 아니다. 계엄에 동원된 군인 상당수는 정치적 판단의 주체가 아니었다. 그들은 명령을 받았고 조직 안에서 움직였으며 이후 수사와 재판의 그림자 속에 놓였다. 이 차이를 인정해야 책임의 경계가 바로 선다. 명령받은 사람과 명령한 사람, 실행을 지시받은 사람과 실행을 설계한 사람을 구분하는 것이 남은 재판의 출발점이다. 헌정질서와 형사책임의 접점 내란 재판은 일반 형사사건보다 무거운 헌정적 의미를 갖는다. 형사재판은 피고인의 행위와 책임을 판단하는 절차다. 그러나 내란 사건에서는 그 판단이 헌법기관의 권한, 군 통수권의 한계, 비상권한 행사 요건과 맞물린다. 윤 전 대통령 재판이 단지 한 개인의 형량 문제에 그치지 않는 이유다. 항소심에서 법원은 공모관계와 지시 경로, 실행 관여 정도, 국헌문란 목적 인정 여부를 다시 살피게 된다. 형량 판단에서는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이라는 지위, 군·경 수뇌부의 권한 행사, 계엄이 헌법기관과 군 조직에 남긴 결과가 함께 고려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전직 대통령이라는 지위는 자동 감경 사유가 되기 어렵다. 권한이 컸던 만큼 그 권한의 사용 방식도 엄격하게 평가될 수밖에 없다. 다만 항소심이 정치적 심판의 장으로 흐르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법정은 여론을 확인하는 자리가 아니라 증거와 법리에 따라 책임을 가리는 곳이다. 윤 전 대통령에게도 방어권은 보장돼야 하고 김 전 장관 등 다른 피고인들도 각자의 혐의와 증거에 따라 판단받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책임의 범위를 넓게 흐리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권한과 행위에 맞게 정확히 나누는 일이다. 그 점에서 전직 대통령의 재판 태도는 법정 안팎에서 계속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방어권 행사는 권리다. 그러나 대통령의 권한 행사로 군과 국가기관이 움직였고 그 결과 수많은 공직자가 수사와 재판의 부담을 지게 됐다면 최고 결정권자의 태도도 함께 기록된다. 전직 대통령이 법정에서 보여야 할 최소한의 체통은 절차를 포기하는 데 있지 않고 책임의 방향을 흐리지 않는 데 있다. 남은 재판이 남길 것 윤 전 대통령 재판의 마지막 판단은 아직 내려지지 않았다. 항소심과 이후 절차에서 유무죄와 형량은 다시 다퉈질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드러난 법정 쟁점만으로도 이 사건이 남긴 숙제는 적지 않다. 대통령의 비상권한은 어디까지 허용되는지, 국방부 장관과 군 지휘부는 위법한 지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명령을 받은 군인과 명령을 내린 권력의 책임은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지가 그것이다. 이 사건은 군 전체를 비난하는 방식으로 정리돼서는 안 된다. 군은 국가의 명령 체계 안에서 움직이는 조직이다. 그 조직이 정치적 판단의 실행 수단으로 불려 나왔을 때 가장 먼저 따져야 할 대상은 현장에 투입된 장병이 아니라 그 병력을 움직이도록 만든 의사결정 과정이다. 윤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 핵심 지휘 라인의 책임 문제는 바로 그 지점에서 다뤄져야 한다. 전직 대통령의 법정은 개인의 방어권과 공적 책임이 동시에 드러나는 자리다. 법률상 권리는 보장돼야 한다. 그러나 대통령의 권한을 행사했던 사람에게는 그 권한이 남긴 결과를 감당하는 태도도 요구된다. 군과 국가기관에 남은 부담을 외면하지 않고 책임의 경계를 흐리지 않는 것, 그것이 전직 대통령의 법정에서 요구되는 최소한의 기준이다. 남은 재판은 계엄을 둘러싼 정치적 논란을 넘어 공식 권한을 가진 사람들이 어떤 판단을 했고 그 판단이 군과 헌법기관에 어떤 결과를 남겼는지를 가려내는 절차가 될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 대다수 군인에게 남은 부담과 억울함도 함께 정리돼야 한다. 명령받은 사람과 명령한 사람의 책임을 구분하는 일은 윤석열 재판의 중간 결산을 넘어 한국 헌정질서가 다시 확인해야 할 기준이다.
2026-05-30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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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투스홀딩스, 코인원 지분 일부 매각…한투·OKX와 글로벌 동맹
[경제일보] 컴투스홀딩스(대표 정철호)가 코인원(대표 차명훈)의 글로벌 도약과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한국투자증권, OKX벤처스와 전략적 협력 관계를 구축했다. 전통 금융사와 글로벌 가상자산 플랫폼이 동시에 코인원 주주로 합류하면서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의 사업 확장 구도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컴투스홀딩스는 보유 중인 코인원 주식 6만8894주를 처분하기로 결정했다고 29일 공시했다. 처분 금액은 총 346억원 규모다. 이번 처분은 코인원, 컴투스홀딩스, 한국투자증권, OKX벤처스가 체결한 전략적 지분투자 계약에 따른 것이다. 투자는 코인원 최대주주인 차명훈 대표와 2대 주주 컴투스홀딩스가 보유한 구주 일부, 코인원의 신규 발행 주식을 한국투자증권과 OKX벤처스가 인수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투자 이후 차명훈 대표는 지분율 30.36%로 경영권을 유지하고, 컴투스홀딩스는 자회사 보유분을 포함해 지분율 24.54%로 2대 주주 지위를 이어간다. 한국투자증권과 OKX벤처스는 각각 20%의 지분을 확보해 공동 3대 주주로 합류한다. 이번 거래는 컴투스홀딩스 입장에서는 코인원 지분 일부를 현금화하면서도 전략적 주주 지위를 유지하는 선택이다. 코인원에는 전통 금융의 컴플라이언스 역량과 글로벌 거래소의 운영 경험을 동시에 끌어들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토큰증권, 스테이블코인 등 디지털 금융 신사업과의 연계를 기대하고 있다. OKX벤처스는 글로벌 가상자산 시장 운영 경험과 네트워크를 제공할 수 있는 파트너로 평가된다. 다만 코인원의 기업가치 제고가 곧바로 확정된 것은 아니다. 코인원은 앞서 특정금융정보법 위반 문제로 금융정보분석원(FIU)으로부터 영업 일부정지 3개월과 과태료 52억원 처분을 받은 바 있다. 행정소송과 규제 절차, 대주주 변경 신고 수리 여부 등은 향후 사업 확장의 변수로 남아 있다. 이번 파트너십의 성패는 단순 지분투자를 넘어 실제 사업 시너지로 이어지느냐에 달려 있다. 한국투자증권의 제도권 금융 역량, OKX의 글로벌 인프라, 컴투스홀딩스의 블록체인 사업 경험이 코인원의 신뢰도와 수익성 개선으로 연결될 경우 국내 가상자산 시장의 경쟁 구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 정철호 컴투스홀딩스 대표는 “코인원과 긴밀히 협력하며 글로벌 도약과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이번 계약 체결을 위해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며 “앞으로도 신규 전략적 투자자들과 함께 코인원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적극적으로 힘을 보탤 것”이라고 밝혔다.
2026-05-29 17:3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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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김용현의 계엄, 국방부는 어디까지 움직였나
[경제일보]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재판에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핵심 피고인 가운데 한 명이다. 김 전 장관은 대통령의 판단이 군 지휘 계통으로 전달되는 위치에 있었다. 국방부 장관은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과 군 지휘부 사이에서 결정적 연결 고리 역할을 하는 자리다. 계엄처럼 국가비상권한이 군을 통해 실행되는 사건에서는 그 지위 자체가 책임 판단의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의 내란 중요임무 종사 등 사건은 1심에서 징역 30년이 선고된 뒤 항소심 절차로 넘어갔다. 김 전 장관 측은 1심 판단에 불복해 항소했다. 항소심에서는 계엄 준비 과정과 실행 지시 여부, 각 군 지휘관에게 전달된 명령의 성격, 윤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 사이의 의사 교환 내용이 다시 쟁점이 될 전망이다. 1심 재판부는 김 전 장관이 윤 전 대통령과 함께 비상계엄을 주도적으로 준비했다고 판단했다. 김 전 장관이 군의 국회와 선거관리위원회 등 출동을 사전에 계획했고 부정선거 수사와 관련한 별도 계획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는 판단도 제시했다. 김 전 장관 측은 항소심에서 이 같은 판단을 다툴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가 다시 살필 부분은 김 전 장관이 단순히 대통령의 지시를 전달한 것인지, 아니면 계엄 실행 과정에서 독자적 역할을 수행했는지다. 김 전 장관 사건이 중요한 이유는 그가 군 조직 전체와 대통령 권력 사이에 놓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계엄 선포권자이고 국방부 장관은 그 판단을 군사적 실행 가능성의 영역으로 옮기는 위치에 있다. 대통령의 뜻이 곧바로 일선 장병에게 도달하는 것은 아니다. 국방부와 합참, 각급 사령부, 현장 지휘관을 거쳐 명령은 구체화된다. 김 전 장관의 책임을 따지는 일은 계엄이라는 정치적 판단이 어떤 과정을 거쳐 군의 작전 명령처럼 전달됐는지를 살피는 일이다. 군 전체를 향한 비난과 김 전 장관 책임론은 구분돼야 한다. 일선 장병과 실무 간부는 명령 체계 안에서 움직였지만 김 전 장관은 그 명령 체계가 작동하는 상층부에 있었다. 하급자가 명령을 받는 자리였다면 장관은 명령이 내려가기 전에 그것이 헌법과 법률의 경계 안에 있는지 따져야 하는 자리였다. 그 판단을 하지 않았거나 위법한 실행을 가능하게 했다면 책임의 무게는 달라진다. 대통령과 군 사이의 연결 고리 김 전 장관은 윤 전 대통령과 가까운 거리에서 계엄 국면을 맞았다. 그 가까움 자체가 곧바로 형사책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대통령의 판단을 군사적 실행 계획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장관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재판의 핵심 쟁점이다. 계엄은 대통령이 선포하지만 군은 장관과 지휘 계통을 통해 움직인다. 이 사이에서 김 전 장관이 제동 장치였는지, 실행 통로였는지가 항소심에서도 다뤄질 수밖에 없다. 국방부 장관에게는 두 가지 책임이 동시에 있다. 하나는 대통령의 명을 받아 군을 관리하고 지휘 체계를 운용하는 책임이다. 다른 하나는 그 명령이 헌법과 법률의 한계를 벗어날 때 군이 정치적 수단으로 사용되지 않도록 막아야 하는 책임이다. 계엄은 헌정질서의 예외 상황을 전제로 한 제도다. 그래서 더 엄격한 요건과 절차가 요구된다. 장관이 그 문턱을 낮추거나 비상권한의 남용 가능성을 외면했다면 단순한 참모 역할로 설명되기 어렵다. 김 전 장관 측은 재판 과정에서 계엄의 성격과 목적을 다투고 있다. 윤 전 대통령 측도 계엄이 실제 국헌문란 목적의 내란이 아니라 경고성 조치였다는 취지의 주장을 이어왔다. 그러나 법원이 살필 부분은 표현보다 실행이다. 실제로 병력이 어디로 이동했는지, 어떤 기관을 대상으로 했는지, 어떤 명령이 내려갔는지, 그 명령을 받은 지휘관들이 무엇을 인식했는지가 판단의 중심에 놓일 수밖에 없다. 계엄을 경고라고 설명하더라도 군이 헌법기관을 향해 움직였다면 그 실행의 의미는 법정에서 따로 평가된다. 김 전 장관의 책임론은 이 지점에서 커진다. 대통령의 정치적 판단이 있었다고 해도 국방부 장관은 이를 군사 명령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독자적 판단을 해야 했다. 장관은 단순 전달자가 아니다. 군 조직을 움직일 수 있는 공적 권한을 가진 국무위원이다. 대통령의 결심을 이유로 장관의 책임이 사라질 수 없고 장관의 실행 관여를 이유로 대통령의 책임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두 사람의 책임은 각자의 지위와 역할에 따라 따로 평가돼야 한다. 계엄의 명령은 어디서 구체화됐나 12·3 비상계엄 사건에서 재판부와 수사기관이 주목한 부분은 계엄 선포 자체만이 아니다. 계엄이 선포된 뒤 군이 어떤 방식으로 움직였는지, 그 이전에 어떤 준비와 논의가 있었는지도 중요하다. 국회와 선거관리위원회 등 헌법기관을 향한 병력 투입, 주요 인사 체포·구금 의혹, 방첩사와 정보사 등 특정 부대의 역할은 모두 계엄이 추상적 선언에 그치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다뤄졌다. 김 전 장관은 이 과정에서 군 지휘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장관의 말은 지휘관에게 단순한 의견으로 들리지 않는다. 특히 계엄과 같은 비상 상황에서는 장관의 지시와 전달 사항이 작전 판단의 기준으로 작동할 수 있다. 장관이 어느 정도까지 알고 있었는지, 누구에게 어떤 지시를 했는지, 지시 내용이 법률상 허용되는 범위를 넘었는지는 김 전 장관의 유무죄와 형량 판단에서 핵심 변수가 된다. 하급 지휘관들이 처한 위치도 이와 맞물려 있다. 지휘관들은 장관과 상급 부대의 지시를 받는 동시에 현장에서 부하를 움직여야 한다. 이들이 어떤 명령을 받았고 그 명령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는 중요하다. 그러나 책임의 출발점이 현장 지휘관에게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명령을 설계하고 전달한 윗선의 책임이 제대로 가려지지 않으면 계엄의 부담은 군 조직 내부로만 흘러 들어간다. 그 경우 군은 정치적 결정을 수행한 조직이라는 부담을 떠안고 정작 정치적 결정을 만든 이들의 책임은 뒤로 밀릴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항소심에서 다툴 수 있는 쟁점은 적지 않다. 내란의 고의가 있었는지, 국헌문란 목적을 인식했는지, 각 지시가 실제 실행 가능성을 가진 명령이었는지, 윤 전 대통령의 판단과 자신의 행위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었는지 등이 쟁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장관이라는 지위는 그 자체로 양형에서 중요하게 고려될 가능성이 크다. 계엄 관련 결정이 군 조직을 통과해 현실의 병력 이동으로 이어졌다면 그 연결 지점에 있던 사람의 책임은 가볍게 보기 어렵다. 재판 절차와 책임 있는 태도 항소심 첫 공판 과정에서 윤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 등은 재판부 기피신청을 냈다. 피고인에게는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고 법관 기피신청 역시 형사소송 절차 안에 있는 제도다. 법원은 이후 윤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 등의 기피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항소심 심리가 지연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피고인의 방어권은 보장돼야 한다. 다만 전직 대통령과 전직 국방부 장관의 법정 태도는 개인 방어권을 넘어 공적 평가의 대상이 된다. 두 사람은 계엄 당시 국가권력과 군 지휘 체계의 정점 또는 그에 가까운 위치에 있었다. 그런 이들이 법정에서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는 계엄에 동원됐던 군인들에게도 영향을 준다. 책임 있는 위치에 있던 사람들이 절차적 다툼만 앞세우는 모습으로 비칠 경우, 명령을 받아 움직였던 군인들이 느끼는 부담은 더 커질 수 있다. 윤 전 대통령에게도 같은 기준이 적용된다. 대통령은 군 통수권자였다. 국방부 장관이 계엄 실행의 통로였다면 대통령은 그 권한의 출발점에 있었다. 전직 대통령이라면 법정에서 혐의를 다툴 수는 있어도 자신의 결정이 군 조직에 남긴 부담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부하와 실무자들이 법정과 수사 과정에서 감당해야 하는 압박을 생각한다면 책임의 방향을 아래로 돌리는 듯한 인상은 피해야 한다. 김 전 장관 사건은 윤 전 대통령 재판과 분리해 볼 수 없지만 윤 전 대통령 책임을 덮는 방식으로 다뤄져서도 안 된다. 김 전 장관에게 책임이 무겁다는 말은 대통령의 책임이 줄어든다는 뜻이 아니다. 두 사람의 관계는 계엄 책임의 경로를 보여준다. 대통령의 결심이 있었고 장관이 이를 군 지휘 체계로 옮겼으며 그 아래에서 지휘관과 장병들이 움직였다면 책임은 각자의 지위와 권한에 따라 위에서부터 규명돼야 한다. 김용현 재판이 남길 기준 김 전 장관에 대한 형량 분석에서 법원이 살필 요소는 계엄 준비 관여 정도, 병력 투입과 기관 장악 시도에서의 역할, 대통령과의 공모관계, 하급 지휘관에게 전달된 지시 내용, 재판 과정에서의 태도 등이다. 국방부 장관이라는 지위도 중요한 요소다. 권한이 컸던 만큼 그 권한이 어떻게 행사됐는지에 따라 책임의 무게도 달라질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항소심에서 1심 판단을 뒤집으려면 단순히 대통령의 뜻을 따랐다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다. 장관은 대통령의 참모이지만 동시에 국가기관의 책임자다. 군이 헌법기관을 향해 움직이는 상황에서 장관이 어떤 판단을 했는지는 그의 독자적 책임과 직결된다. 계엄이 실제로 무엇을 목표로 했고 어느 수준까지 실행됐는지는 항소심 재판부가 다시 살필 부분이다. 그러나 장관이 군 조직을 정치적 위기 대응의 수단으로 연결한 통로였는지 여부는 남은 재판의 핵심 쟁점으로 남아 있다. 이 사건의 피해자는 군 전체에 대한 신뢰이기도 하다. 계엄에 동원된 대다수 군인은 정치적 결정을 만든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지시를 받았고 조직 안에서 움직였으며 이후 수사와 재판의 부담 속에 놓였다. 반면 김 전 장관은 그 지시가 군으로 내려가는 길목에 있었다. 이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면 책임은 넓게 퍼지고 핵심은 흐려진다. 김용현 재판은 한 전직 장관의 유무죄와 형량만을 따지는 절차에 그치지 않는다. 대통령의 비상권한이 군 지휘 체계로 이동할 때 국방부 장관이 어디까지 막아야 하는지, 어디서부터 함께 책임져야 하는지를 살피는 재판이다. 대다수 군인에게 남은 부담을 덜어내기 위해서도 책임의 경계는 정확히 그어져야 한다. 남은 항소심은 군을 움직인 의사결정 과정과 그 과정에 관여한 사람들의 책임 범위를 다시 가려내는 절차가 될 전망이다.
2026-05-29 09:5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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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마 경영권 분쟁 봉합…윤상현 체제, 이제 성과로 답할 때
[경제일보] 국내 화장품 제조자개발생산(ODM) 대표 기업인 콜마그룹이 1년여간 이어진 오너가 경영권 분쟁을 사실상 마무리했다. 창업주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이 장남 윤상현 콜마홀딩스 부회장을 상대로 낸 주식반환 청구소송을 취하하면서다. 표면적으로는 가족 간 법정 다툼의 종결이다. 그러나 산업계가 주목하는 지점은 따로 있다. 콜마그룹이 윤상현 체제를 확정한 뒤 북미 시장 확대와 건강기능식품 사업 재정비라는 숙제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지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윤 회장은 지난 22일 서울중앙지법에 윤 부회장을 상대로 낸 주식반환 청구소송 취하서를 제출했다. 윤 부회장 측도 소 취하에 동의하면서 증여 주식을 둘러싼 부자 간 법정 다툼은 법원 판단 없이 끝났다. 윤 부회장은 콜마홀딩스 최대주주 지위를 유지하게 됐다. 오너 일가 내부의 지분 갈등이 회사 경영의 불확실성으로 번지는 국면은 일단 정리됐다. 이번 분쟁의 출발점은 콜마비앤에이치였다. 윤 부회장은 지난해 4월 동생 윤여원 대표가 이끌던 건강기능식품 계열사 콜마비앤에이치의 실적 부진을 이유로 임시주주총회 소집허가를 신청했다. 자신과 이승화 전 CJ제일제당 부사장을 사내이사로 선임해 경영을 재편하겠다는 취지였다. 윤 대표 측은 이를 경영권 개입으로 받아들였고 윤 회장이 딸의 편에 서면서 남매 갈등은 부자 갈등으로 번졌다. 윤 회장이 제기한 주식반환 소송은 그 상징적 장면이었다. 윤 회장은 윤 부회장이 합의된 승계 구도를 흔들었다고 보고 2019년 12월 증여한 콜마홀딩스 지분 반환을 요구했다. 콜마그룹 내부 갈등은 특정 계열사의 대표이사 자리를 둘러싼 문제가 아니었다. 지주회사 지분과 핵심 계열사 경영권, 창업주가 설계한 승계 방식이 한꺼번에 충돌한 사건이었다. 분수령은 지난해 9월 콜마비앤에이치 임시주총이었다. 윤상현 부회장과 이승화 전 부사장의 사내이사 선임안이 통과되면서 윤 부회장 측은 콜마비앤에이치 이사회에서 우위를 확보했다. 윤 부회장이 요구했던 경영 개입의 길이 열린 것이다. 이후 콜마비앤에이치는 윤여원 단독 대표 체제에서 윤상현·윤여원·이승화 각자대표 체제로 바뀌었다. 올해 들어서는 양측이 한발씩 물러나는 모양새가 만들어졌다. 윤 부회장은 올 3월 말 콜마비앤에이치 대표이사와 사내이사에서 물러났다. 윤여원 대표도 4월 대표이사직을 내려놓고 사내이사직만 유지하는 쪽으로 정리됐다. 콜마비앤에이치는 이승화 단독 대표 체제로 이동했다. 윤 부회장은 핵심 계열사의 직접 경영에서 물러나는 대신 그룹 전체를 총괄하는 위치를 굳혔다. 윤 대표는 콜마비앤에이치 경영 전면에서 후퇴했다. 윤 회장의 소송 취하는 이 같은 연쇄 조정의 마지막 장면에 가깝다. 창업주가 법적 분쟁을 계속 끌고 갈 경우 그룹 전체의 대외 신뢰가 훼손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콜마그룹은 올해 자산 5조원을 넘기며 처음 공시대상기업집단에 편입됐다. 중견기업의 경계를 넘어선 순간에 오너 일가 분쟁이 계속되는 것은 투자자와 거래처, 해외 고객사 모두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콜마그룹에 올해 대기업집단 지정은 성장의 훈장인 동시에 새로운 관리 부담이다. 공시 의무가 강화되고 내부거래와 사익편취 규제에 대한 감시도 높아진다. 윤 부회장이 동일인으로 지정된 것은 그의 실질 지배력이 제도적으로 확인됐다는 뜻이다. 동시에 그룹 경영 성과와 지배질서에 대한 책임도 윤 부회장에게 집중된다는 의미다. 윤상현 체제의 성적표가 나쁘다고 보기는 어렵다. 윤 부회장이 본격적으로 경영에 참여한 2019년 이후 콜마그룹은 외형을 키웠다. 2019년 2조2345억원 수준이던 그룹 매출은 지난해 3조4912억원으로 늘었다. 자산도 4조423억원에서 5조2429억원 규모로 증가했다. 창업주 윤동한 회장이 1990년 직원 4명으로 시작한 회사를 국내 화장품 ODM 기업 중 처음 대기업집단 반열에 올려놓은 데는 K뷰티 성장세와 윤상현 체제의 확장 전략이 맞물린 영향이 컸다. 문제는 다음 단계다. 콜마그룹의 본업인 화장품 ODM은 글로벌 고객사 확보와 현지 생산망 경쟁이 동시에 중요해졌다. K뷰티 수출이 커질수록 제조사는 납품처를 넘어 브랜드 성장의 파트너로 평가받는다. 연구개발 역량, 빠른 제품화, 현지 규제 대응, 납기 안정성이 경쟁력을 가른다. 콜마가 북미 생산기지를 확대한 것도 이런 시장 변화와 맞닿아 있다. 한국콜마는 지난해 7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 콜마USA 제2공장을 준공하고 가동에 들어갔다. 제2공장은 연면적 1만7805㎡ 규모로 연간 약 1억2000만개 제품 생산이 가능하다. 기존 1공장과 합치면 미국에서만 연간 약 3억개, 캐나다 법인을 포함하면 북미 전체 기준 연간 약 4억7000만개의 생산능력을 갖추게 된다. 회사는 이를 북미 ODM 기업 중 최대 규모라고 설명한다. 북미 생산기지는 윤상현 체제의 핵심 승부처다. 미국은 세계 최대 화장품 시장이다. 동시에 관세와 물류비, 현지 규제, 고객사 대응 속도가 기업 경쟁력에 직접 영향을 주는 시장이다. 콜마가 미국 현지에서 기초 스킨케어와 선케어 제품까지 생산할 수 있게 된 것은 K뷰티 브랜드와 글로벌 고객사를 동시에 끌어들일 수 있는 기반이다. 다만 생산능력 확대가 곧바로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설비 투자 이후 가동률을 얼마나 빨리 끌어올리는지가 관건이다. 건강기능식품 사업도 윤 부회장에게 남은 숙제다. 이번 경영권 분쟁의 출발점이 콜마비앤에이치였다는 점에서 이 회사의 실적 회복은 상징성이 크다. 콜마비앤에이치는 한때 그룹 신사업의 핵심 축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실적 부진과 경영진 교체 논란이 겹치면서 그룹 내 갈등의 진원지가 됐다. 이승화 단독 대표 체제로 전환된 뒤 제품 경쟁력과 영업망, 수익성 회복을 얼마나 빠르게 보여줄지가 중요하다. 윤 부회장 체제는 창업주가 만들어 놓은 연구개발 중심 제조사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제약과 건기식, 해외 ODM을 동시에 키워야 한다. 이 과정에서 과도한 확장보다 사업별 수익성을 점검하는 경영이 요구된다. 대기업집단 편입 이후에는 내부거래와 계열사 지원 방식도 이전보다 더 정교해야 한다. 규모가 커질수록 가족기업 방식의 의사결정은 시장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이번 분쟁 종식은 콜마그룹에 기회다. 법정 다툼이 끝나면서 지분과 경영권을 둘러싼 불확실성은 줄었다. 해외 고객사와 투자자에게도 긍정적 신호가 될 수 있다. 창업주의 결단은 그룹이 가족 간 대립보다 회사의 장기 성장을 우선했다는 메시지를 줄 여지가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하지는 않다. 분쟁이 남긴 상처는 실적과 지배질서 개선으로만 회복된다. 윤상현 부회장은 이제 오너 일가 갈등의 승자가 아니라 대기업집단 총수로 평가받게 됐다. 북미 공장은 매출과 이익으로 증명해야 하고 콜마비앤에이치는 분쟁의 무대에서 성장의 축으로 돌아와야 한다. 제약과 건기식 투자는 구호가 아니라 숫자로 확인돼야 한다. 콜마그룹의 경영권 분쟁은 끝났지만 윤상현 체제의 검증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2026-05-29 09: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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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착시와 '그들만의 잔치'… 도덕경에서 찾는 경제 정의
[경제일보] 대한민국 경제가 거대한 착시(錯視)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주도하는 반도체 ‘수퍼 사이클’ 덕에 올해 1분기 수출액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고 초과 세수가 70조 원에 육박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쏟아진다. 외견상으로는 유례없는 풍요다. 그러나 이 화려한 지표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한국 경제의 허리는 무섭게 휘어지고 있다. 전체 수출 증가액의 80% 이상을 상위 5대 기업이 독식하는 ‘K자형 수출 양극화’가 심화하는 와중에, 철강·석유화학 등 전통 제조업은 중국의 공세에 밀려 활력을 잃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 일시적 호황이 야기한 사회적 박탈감과 갈등이다. 최근 타결된 삼성전자 노사의 특별성과급 합의는 불평등에 신음하던 국민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영업이익의 10% 안팎을 고정해 개인 성과와 무관하게 ‘일괄 지급’하는 방식은 글로벌 기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성인 남녀의 78%가 불공정한 사회구조에 분노하는 시점에서 터져 나온 이 고액 성과급 잔치는, 담장 밖 대다수 노동자와 청년들에게 깊은 허탈감과 소외감을 안겨주고 있다. 바야흐로 반도체가 가린 착시 속에서, 대한민국은 내부에서부터 서서히 균열하고 있다. 『도덕경(道德經)』 제77장에는 천지도(天之道)와 인지도(人之도)를 대비하는 명언이 나온다. "하늘의 길은 남는 데서 덜어내어 부족한 데를 보태주지만, 사람의 길은 그렇지 아니하여 부족한 데서 취하여 남는 데를 더해준다(天之道 損有餘而補不足 人之道則不然 損不足以奉有餘)." 지금 대한민국 산업 현장에서 벌어지는 성과급 논란은 정확히 '인지도', 즉 있는 자에게 더 얹어주고 없는 자의 기회를 빼앗는 탐욕의 질서와 닮아있다. 삼성전자의 천문학적인 반도체 이익은 소속 근로자들의 땀방울만으로 일궈낸 것이 아니다. 수많은 중소 협력업체의 단가 희생, 국가적 차원의 인프라 지원, 그리고 온 국민이 감내한 세제 혜택이 융합된 결과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초과 이익을 특정 대기업 노사가 독점적 배타적으로 배분하는 것은 사회적 상식과 기본 원칙에 어긋난다. 당장 기업 내부에서부터 모순이 폭발하고 있다. 비반도체 부문의 흑자 사업부는 성과급에서 배제된 반면, 정작 적자를 낸 반도체 사업부는 거액을 챙기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이로 인해 '노노(勞勞) 갈등'이 법적 소송으로 비화하며 기업의 결속력을 해치고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경영계의 대응이다. 노란봉투법 등 노사 리스크가 커지고 임금 압박 이 거세지자, 기업들은 단순 생산직부터 석·박사 연구직까지 인공지능(AI)과 로봇으로 대체하는 경영계획을 서두르고 있다. 대기업의 성과급 잔치가 청년 세대의 일자리 씨를 말리는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형국이다. 고용 유발 효과가 큰 전통 제조업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반도체 홀로 독주하는 구조는 고용 시장의 이중구조를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고착화할 것이다. 성경 구절에도 "지혜 있는 자는 들으라, 공의를 굽게 하는 자는 파멸에 이를 것"이라는 경고가 있다. 주주의 권익을 침해하고, 협력업체의 헌신을 외면한 채, 오직 힘을 가진 거대 노조의 요구에 밀려 퍼주기식 합의를 감행한 경영진 역시 '주주 충실 의무' 위반이라는 법적·도덕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주주는 기업이 어려울 때 자본 손실의 위험을 고스란히 짊어진다. 위험은 주주와 사회가 나누고, 이익은 대기업 노동자만 선취하는 비대칭적 이익 배분 구조는 자본주의의 기본 규칙을 왜곡하는 행위다. 반도체 특수라는 환각에 취해 우리 사회가 미래를 위한 투자와 규제 개혁, 기존 주력 산업의 구조조정 타이밀을 놓친다면 그 대가는 가혹할 것이다. 반도체 호황이 가져온 착시 현상과 이익 배분을 둘러싼 갈등은 이제 막 시작된 대한민국 전체의 숙제다. 이번 수요일 국회에서 열리는 본지(경제일보)의 긴급간담회 ‘삼성반도체 문제, 이제 시작이다’ 역시 이러한 시대적 위기의식에서 출발했다. 각계 전문가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특정 집단의 이익 독점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해악을 집중 해부해야 한다. 정부 역시 팔짱만 끼고 있어서는 안 된다. 당장 내년 예산안 수립 과정에서 올해 발생할 초과 세수를 철저히 추계하고, 이를 대기업 중심의 생태계를 넘어 양극화 완화와 신성장동력 확충, 그리고 무너지는 민생을 돌보는 데 어떻게 쓸지 구체적인 계획을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 유대인의 지혜서인 『탈무드』는 "승자가 되기 위해 타인을 패자로 만들지 말라"고 가르친다. 대기업 노사는 자신들의 풍요가 타인의 허탈감과 청년들의 기회 박탈 위에 서 있지 않은지 성찰해야 한다. 글로벌 기준과 국민적 상식에 부합하는 합리적 보상 원칙을 재정립하고, 독소적인 노동관계법을 손질하는 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적 과제다. 착시에서 깨어나 공존의 길을 모색할 때다.
2026-05-25 13:4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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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씨, 허위사실 유튜버 사과로 소송 취하…'사이버 렉카' 향한 강력 경고
[경제일보] 엔씨가 자사 게임 ‘아이온2’ 관련 허위사실을 유포한 유튜버의 공식 사과를 받아들이고 법적 조치를 취하했다. 단순한 선처로 끝난 사안이 아니다. 게임 출시 초반 여론을 좌우하는 유튜브·커뮤니티 콘텐츠의 영향력이 커진 상황에서, 엔씨가 허위사실과 악의적 비방에 더는 소극적으로 대응하지 않겠다는 기준선을 그은 사건으로 평가된다. 이번 사건은 유튜브 채널 ‘겜창현’이 ‘아이온2’와 관련해 사실과 다른 내용을 반복적으로 게시했다는 엔씨의 판단에서 시작됐다. 엔씨는 지난해 12월 해당 유튜버를 상대로 형사 고소와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동시에 제기했다. 당시 엔씨는 해당 채널이 “무과금 이용자만 제재한다”, “매크로를 끼워서 팔고 있다”, “엔씨 관계자가 작업장 사장이다” 등의 주장을 했고, 이는 사실이 아니거나 모욕적 표현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이후 해당 유튜버는 지난 21일 자신의 채널을 통해 사과 영상을 올렸다. 그는 방송에서 사실과 다른 내용을 말하고 과도한 비방을 했다는 취지로 고개를 숙였다. 엔씨는 해당 유튜버가 잘못을 인정하고 지속적으로 사과 의사를 전했으며,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한 점 등을 고려해 민·형사상 법적 조치를 취하했다. 엔씨의 대응은 이번 한 건에 그치지 않는다. 회사는 지난 4월에도 ‘리니지 클래식’ 관련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며 유튜브 채널 ‘영래기’ 운영자를 허위사실 유포와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했다. 당시 엔씨는 해당 유튜버가 리니지 클래식에서 불법 프로그램 사용자를 방치하고, 오히려 신고한 정상 이용자들을 제재했다는 주장을 했지만 내부 데이터 분석과 사내외 전문가 검토 결과 명백한 허위사실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처럼 엔씨가 잇따라 법적 대응에 나선 배경에는 신작 성패를 좌우하는 초반 여론의 민감성이 자리한다. 게임은 출시 직후 이용자 반응과 커뮤니티 평판, 스트리머·유튜버 영상이 곧바로 매출과 접속자 지표에 영향을 준다. 특히 MMORPG는 운영 신뢰가 핵심이다. 매크로, 과금, 제재, 작업장, 내부자 연루 같은 의혹은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확산되는 순간 이용자 불신을 키운다. 엔씨 입장에서 ‘아이온2’와 ‘리니지 클래식’은 단순한 신작이 아니다. 사명 변경 이후 실적 회복과 브랜드 신뢰 회복을 보여줘야 하는 핵심 타이틀이다. 이런 상황에서 확인되지 않은 의혹이 자극적 썸네일과 단정적 표현으로 퍼질 경우, 이용자뿐 아니라 주주와 임직원, 개발 조직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엔씨가 “고객, 주주, 임직원 보호”를 법적 대응 명분으로 내세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게임업계에서는 이번 사건을 이른바 ‘사이버 렉카’형 게임 유튜버에 대한 경고로 보고 있다. 게임 이슈를 빠르게 다루는 콘텐츠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이용자 불만을 전달하고 운영 문제를 비판하는 것은 정당한 감시 기능이다. 그러나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사실처럼 말하거나, 특정 기업·개발자·이용자를 겨냥해 반복적으로 비방하는 방식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글로벌이코노믹은 최근 게임업계가 유튜버 등 1인 미디어를 상대로 법적 대응에 나서고 있으며, 엔씨 고소 사례가 팬덤과 1인 미디어의 양면성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과거에도 게임 커뮤니티와 유튜브를 둘러싼 명예훼손·모욕 논란은 있었다. 다만 대형 게임사가 특정 게임 유튜버를 상대로 형사 고소와 민사 손해배상 소송을 동시에 제기하고, 이후 공개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을 받아낸 사례는 게임업계에서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연합뉴스도 엔씨의 겜창현 법적 대응을 두고 게임사가 특정 유튜버를 상대로 법적 대응을 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업계 반응을 전했다. 법·제도 환경도 콘텐츠 생산자에게 더 큰 책임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는 구독자 10만명 이상 또는 일정 조회수 이상 콘텐츠 생산자가 고의로 허위·조작정보를 유포해 타인에게 손해를 입힐 경우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배상 책임을 지우는 정보통신망법 시행령 개정안을 보고한 바 있다. 실제 입법과 적용 과정에서는 표현의 자유 논란이 남아 있지만, 허위정보 유통에 대한 사회적 책임 요구가 커지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엔씨의 이번 선처는 ‘봐주기’라기보다 경고장에 가깝다. 회사는 해당 유튜버가 공개적으로 잘못을 인정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기 때문에 소송을 취하했다. 동시에 허위사실 유포와 악의적 비방에 대해서는 원칙적이고 적극적인 대응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사과하면 끝난다는 의미가 아니라, 허위 콘텐츠가 법적 책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긴 것이다. 앞으로 게임사들의 대응 방식도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과거에는 논란이 커지는 것을 우려해 유튜버나 커뮤니티발 의혹에 침묵하거나 공지로만 해명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신작 흥행과 기업 신뢰에 직접 타격을 주는 허위사실에는 고소, 손해배상, 영상 삭제 요청, 정정보도 요구 등 실질적 대응이 늘어날 수 있다. 콘텐츠 생산자들도 기준을 다시 세워야 한다. 의혹 제기는 가능하지만, 사실 확인 없는 단정은 위험하다. 내부자 연루, 불법 프로그램 방치, 과금 조작, 특정 이용자 차별 제재 같은 주장은 게임사의 신뢰와 직결되는 사안이다. 근거가 부족한 내용을 조회수 경쟁을 위해 반복적으로 확대하면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이번 사건은 엔씨가 ‘두들겨 맞는 회사’에서 ‘법적으로 반격하는 회사’로 태도를 바꿨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이용자 비판은 수용하되, 허위사실과 악의적 비방은 더 이상 방치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겜창현 사과와 소송 취하는 게임 유튜버 전체, 특히 자극적 폭로와 단정적 비방으로 조회수를 얻어온 사이버 렉카형 채널에 분명한 메시지를 남겼다. 게임 여론은 이제 게임 안에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유튜브 영상 하나가 신작의 이미지를 만들고, 커뮤니티 게시글 하나가 운영 신뢰를 흔든다. 그래서 비판은 더 필요해졌고, 동시에 사실 확인도 더 중요해졌다. 엔씨의 강경 대응은 게임업계가 콘텐츠 생태계의 책임 문제를 더는 방치하지 않겠다는 출발점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2026-05-23 13:5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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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분쟁도 보험으로…손보사 법률 리스크 보장 확대
[경제일보] ※ 은행과 보험권에서는 새로운 상품과 이벤트가 꾸준히 나오지만 조건과 혜택을 한눈에 파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머니포켓'은 금융권에서 눈여겨볼 신상품과 이색 상품, 주요 이벤트를 짚어봅니다. 놓치기 쉬운 혜택과 유의할 점을 꼼꼼히 살펴 전달하겠습니다. <편집자주> 손해보험사들이 질병·상해 중심 보장을 넘어 생활 속 법률 리스크까지 보장 영역을 넓히고 있다. 학교폭력 피해와 가정폭력 법률비용, 민사소송 출석비용, 운전자 사고 이후 변호사 지원 등 일상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분쟁 상황에 대비한 상품과 특약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카카오페이손해보험은 초등학생과 중학생을 위한 '무배당 초중학생보험'을 개정하고 학교생활 중 발생할 수 있는 위험 보장을 강화했다. 학교 중심 생활이 본격화되는 초·중학생 시기의 특성을 고려해 학교폭력과 법적 분쟁 관련 담보를 추가한 것이 특징이다. 새롭게 추가된 보장은 '학교폭력 피해 보장'과 '민사소송 법률비용' 담보다. 학교폭력 피해 시 치료비는 최대 100만원, 민사소송 법률비용은 최대 2000만원까지 지원한다. 주요 보장 항목은 응급실 내원 진료비, 학교폭력 피해 보장, 민사소송 법률비용, 골절 진단비, 자동차사고 부상 치료비, 교통상해 입원비 등이다. 한화손해보험은 '한화 시그니처 여성 건강보험 4.0'에 법률 관련 담보와 서비스를 탑재했다. 새롭게 선보인 '가정폭력 등으로 인한 법률비용' 담보와 'Lady 변호사 상담' 서비스는 여성 고객이 생활 속에서 마주할 수 있는 법률 리스크 대응에 초점을 맞췄다. '가정폭력 등으로 인한 법률비용'은 가정폭력 피해자가 가해자를 상대로 법적 대응을 진행할 때 변호사 선임비 등 소송비용을 보장한다. 해당 소송과 병합되는 위자료, 양육비, 재산분할 등 관련 법률비용까지 보장하며 심급별 1000만원, 최대 3000만원까지 실손 보장한다. 'Lady 변호사 상담' 서비스는 대한변호사협회와의 업무협약을 바탕으로 해당 담보 가입 고객에게 1회 제공된다. 가정폭력뿐 아니라 상속, 전세사기 등 일상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변호사 상담을 받을 수 있다. 고객은 대한변호사협회가 운영하는 전용 플랫폼에서 원하는 변호사를 선택해 전화상담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메리츠화재는 민사소송 절차 중 발생한 출석비용을 보장하는 '민사소송출석비용보장' 특약을 운영하고 있다. 이 특약은 소송비용 확정 결정서에 따라 부담하는 출석비용을 보장한다. 출석비용은 소송 당사자인 원고 또는 피고가 법원의 요구나 요청에 따라 법원에 직접 출석할 때 발생하는 비용이다. 민사소송비용규칙에 따라 일당, 국내 운임, 식비, 숙박료 등을 합산해 산정된다. 메리츠화재 특약은 본인뿐 아니라 소송 상대방 최대 10명의 출석비용까지 보장하는 점이 특징이다. 하나손해보험은 운전자보험에서 변호사 지원을 현물로 제공하는 특약을 내놨다. 사고 발생 이후 보험금 청구와 비용 지급 절차를 거쳐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이 아닌 제휴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를 직접 연결해 주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해당 특약은 1사고당 500만원 한도로 변호사 지원을 제공하며 자기부담금 없이 이용할 수 있다. 경찰 조사 단계부터 1심, 2심, 3심까지 최대 4회 법률 지원을 받을 수 있어 운전자 사고 이후 대응 부담을 낮추는 데 초점을 맞췄다. 법률비용 보장은 상품별로 보장 대상과 지급 조건, 지원 방식이 다르다. 실제 가입 전에는 보장 한도와 면책 사유, 현금 지급인지 현물 서비스인지 등을 함께 확인할 필요가 있다.
2026-05-23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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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은 기념이 됐지만, 진실과 배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경제일보] 5·18민주화운동이 46주년을 맞았지만 오월의 과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국가기념일로 자리 잡고 기념식은 매년 열리고 있지만 발포명령자 규명, 행방불명자 확인, 피해자와 유족에 대한 온전한 배상, 왜곡·폄훼 대응, 5·18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은 아직 풀리지 않은 숙제로 남아 있다. 가장 큰 미완의 과제는 진상규명이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2024년 종합보고서를 내고 4년여 활동을 마무리했다. 조사위는 민간인 학살과 희생자 사망 경위, 일부 왜곡 주장의 허구성을 확인하는 성과를 냈지만, 핵심 쟁점인 발포명령자와 행방불명자 문제는 끝내 규명하지 못했다. 활동 종료로 추가 조사는 중단됐고, 조사위는 국가 차원의 후속 조치를 권고하는 데 그쳤다. 발포명령자 규명은 5·18 진실의 마지막 퍼즐로 꼽힌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계엄군의 집단 발포가 이뤄졌다는 사실은 여러 조사와 판결을 통해 확인됐지만, 누가 최종적으로 발포를 명령했는지에 대한 법적·역사적 결론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 행방불명자와 암매장 의혹 역시 유족들에게는 ‘끝나지 않은 5월’로 남아 있다. 배상 문제도 새 국면을 맞고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올해 1월 5·18 피해자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정신적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소멸시효가 지났다고 본 원심을 깨고 사건을 돌려보냈다. 1990년대 보상금을 받았더라도 국가폭력으로 인한 정신적 피해에 대한 별도 위자료 청구 길을 연 판단이다. 이번 판결은 기존 보상 체계의 한계를 드러낸다. 그동안 5·18 피해 보상은 사망·부상·구금 등 물리적 피해 중심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계엄군 폭력과 고문, 가족의 사망과 실종, 오랜 낙인과 침묵이 남긴 정신적 피해는 충분히 평가되지 못했다. 유족과 생존자들은 단순 보상이 아니라 국가가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의 성격을 다시 규정해야 한다고 요구해 왔다. 왜곡과 폄훼 대응도 여전히 난제다.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개정으로 허위사실에 근거해 5·18을 악의적으로 왜곡하거나 폄훼하면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 도입됐지만, 실제 적용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법은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형을 규정하지만, 예술·학문·연구·보도 목적 등에 대한 면책 조항이 넓어 실효성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북한군 개입설과 희생자 모욕, 유공자 특혜 주장 같은 허위 정보가 반복적으로 재생산된다. 5·18기념재단 등은 온라인 커뮤니티와 댓글 모니터링을 확대하고 삭제 요청에 나서고 있지만, 플랫폼 확산 속도와 익명성을 따라잡기 어렵다. 왜곡은 단순한 표현 문제가 아니라 피해자와 유족에 대한 2차 가해이자 민주주의 역사에 대한 공격이라는 점에서 제도적 보완 요구가 커지고 있다. 헌법 전문 수록 문제도 올해 다시 쟁점이 됐다. 5·18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을 추진해 온 시민사회단체들은 최근 개헌안 국회 의결이 무산된 데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5·18 46주년을 앞두고 국립5·18민주묘지 앞에서는 헌법 전문 수록 표결 불참과 무산 책임을 묻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시민사회는 5·18정신의 헌법 수록이 특정 지역의 요구가 아니라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헌정사적 정당성을 확인하는 절차라고 주장했다. 5·18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은 단순한 상징 논쟁이 아니다. 1980년 광주의 저항을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 과정의 핵심 가치로 명문화하느냐의 문제다. 4·19혁명과 부마민주항쟁, 6월항쟁과 함께 5·18을 헌법 질서 안에 분명히 새겨야 한다는 요구는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그러나 정치권의 합의 부족과 개헌 절차의 난맥 속에 매번 문턱을 넘지 못했다. 46주년을 맞은 광주의 과제는 세 갈래로 압축된다. 첫째, 진상규명은 조사위 보고서로 끝낼 수 없다. 발포명령자와 행방불명자, 암매장 의혹 등 남은 쟁점에 대한 국가 차원의 후속 조사와 자료 공개가 필요하다. 둘째, 배상은 금전 지급을 넘어 국가폭력 피해의 실체를 인정하는 방식으로 보완돼야 한다. 셋째, 왜곡·폄훼 대응과 헌법 전문 수록은 5·18을 현재의 민주주의 가치로 지켜내는 제도적 장치가 돼야 한다. 5·18은 이미 국가기념일이 됐고 광주는 매년 추모의 광장이 된다. 그러나 기념이 제도화됐다고 해서 진실이 완성된 것은 아니다. 누가 명령했고, 누가 사라졌으며, 누가 아직도 고통 속에 있는지에 대한 답은 충분하지 않다. 오월이 광장으로 돌아왔다면 이제 국가는 그 광장 앞에서 남은 질문에 답해야 한다.
2026-05-18 12: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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