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총 212건
-
-
100조 미래대응기금, 미래투자 명분이 '정부 쌈짓돈' 돼선 안 된다
[경제일보] 정부가 반도체 호황으로 늘어난 세수를 미래 산업과 청년 등에 장기 투자하는 '미래대응기금'을 추진한다. 기획예산처가 지난 21일 밝힌 구상에 따르면 내국세가 최근 10년 안팎의 평균 증가율을 웃돌 경우 초과분을 기금에 적립한다. 세수가 부진할 때는 기금을 재정 안전판으로 활용해 변동성을 완화한다는 구상이다. 초과세수와 세계잉여금, 여유자금 운용수익 등도 재원으로 활용한다. 구체적인 규모는 다음 달 예산안과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확정되지만 첫해부터 100조원을 넘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정부의 문제의식에는 일리가 있다. 반도체 호황으로 세수가 크게 늘었을 때 이를 단기 소비성 지출에 모두 써버리기보다 인공지능(AI), 첨단산업, 청년, 지방, 인재 등 미래 성장에 투자하자는 방향은 평가할 만하다. 경기 호황기에 세입이 늘었다고 지출을 급격히 확대했다가 불황기에 세수가 줄면서 다시 긴축에 나서는 재정 운용의 반복도 줄어들 수 있다. 정부가 미래대응기금을 일종의 '재정 저수지'로 설명하는 이유다. 문제는 규모가 커질수록 통제장치도 강해져야 한다는 점이다. 100조원 안팎의 자금을 정부가 장기간 운용한다면 사실상 또 하나의 거대한 재정계정이 생기는 셈이다. 미래투자라는 명분만 앞세우고 사용처와 의사결정 과정이 불투명하다면 정부가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는 '쌈짓돈'이나 '슈퍼 예비비'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국회의 예산심의권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정부 설명대로 연간 기금운용계획 자체는 국회의 심사를 받는다. 다만 국가재정법 제70조는 일정 요건 아래 기금운용계획의 주요항목 지출금액을 국회에 변경안을 제출하지 않고 조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비금융성 기금은 주요항목 지출금액의 20%, 금융성 기금은 30% 범위다. 미래대응기금처럼 대규모 기금이 신설될 경우 이 운용상 재량이 국회의 사전 통제를 약화시키지 않도록 별도의 안전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미래대응기금에는 일반 기금보다 강화된 재정통제 장치를 두는 편이 맞다. 일정 규모 이상의 사업 변경이나 신규 사업 편성에는 국회의 사전 동의를 받도록 하고 국회 심의 없이 조정할 수 있는 범위도 일반 기금보다 엄격하게 설정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분야별 투자 한도와 사용 목적도 법률로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 미래라는 이름만 붙이면 무엇이든 투자할 수 있는 구조가 돼서는 안 된다. 사업 평가도 엄격해야 한다. 정부는 청년과 성장동력, 지방, 교육·인재 등에 집중 투자한다는 방침이다. 모두 중요하고 필요한 분야다. 그러나 범위가 넓을수록 각 부처가 기존 사업을 미래투자라는 이름으로 기금에 얹을 가능성도 커진다. 기존 예산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사업이나 단순 현금성 지원까지 미래대응기금으로 돌린다면 기금 신설의 의미가 없다. 특히 AI와 첨단산업 투자는 성과를 냉정하게 측정하는 일이 관건이다. 투입된 정부 재원이 얼마나 많은 민간투자를 끌어냈는지, 기술 수준과 생산성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일자리와 수출에 어떤 효과를 냈는지를 공개할 필요가 있다. 성과가 없는 사업은 과감하게 지원을 끊는 일몰제도 함께 검토할 만하다. 청년 지원 역시 마찬가지다. 청년 주거와 교육, 자산형성은 장기적으로 필요한 정책이지만 일회성 세수 호황을 영구적인 복지 지출의 재원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한번 시작한 지원은 중단하기 어렵다. 반도체 경기가 꺾여 기금 적립이 줄었을 때도 계속 지급해야 하는 사업이라면 결국 일반재정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재원의 지속 가능성은 미래대응기금의 가장 큰 숙제다. 정부 구상은 최근 10년 안팎의 내국세 증가 추세보다 세수가 더 늘었을 때 초과분을 적립하는 방식이다. 현재처럼 반도체 기업의 실적이 좋고 법인세가 크게 늘어날 때는 기금이 빠르게 쌓일 수 있다. 반도체는 대표적인 경기순환 산업이다. 3~5년 주기로 호황과 불황이 반복될 수 있고, 세계 경기나 기술 경쟁에 따라 세수 전망이 급변할 수도 있다. 정부는 호황 때 적립하고 불황 때 꺼내 쓰는 구조이기 때문에 지속 가능성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이 때문에 어느 수준까지 적립하고 어느 상황에서 얼마를 사용할 것인지 명확한 규칙이 필요하다. 세입이 줄었다는 이유만으로 기금을 일반회계 적자 보전에 광범위하게 사용하기 시작하면 미래투자기금이라는 성격도 흐려질 수 있다. 국가채무와의 관계도 따져볼 대목이다. 세수가 예상보다 많이 들어왔을 때 그 돈을 모두 투자에 돌리는 것이 항상 최선은 아니다. 국가채무가 빠르게 늘어난 상황이라면 일부는 빚을 갚아 미래의 이자 부담을 줄이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미래투자와 재정건전성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기금에 들어오는 추가세수 가운데 일정 비율을 국가채무 상환에 우선 배분하거나, 국가채무비율과 재정수지에 따라 적립과 상환 비율이 자동으로 조정되는 준칙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그때그때 판단하는 방식보다 사전에 정해진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 편이 재정 신뢰를 높인다. 기금 운용의 투명성도 중요하다. 투자 대상과 수익률, 손실, 사업별 집행 내역을 정기적으로 국민에게 공개하는 것이 순리다. 민간 전문가가 참여하는 독립적인 평가기구를 두고 국회와 감사원이 상시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 수십조원의 돈이 움직이는데 의사결정 과정이 정부 내부에만 머문다면 정치적 사업이나 지역 나눠주기 예산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 정권이 바뀌어도 원칙이 유지되는 구조가 필요하다. 미래대응기금은 본질적으로 10년, 20년을 내다보는 재정장치다. 특정 정부의 국정과제나 공약사업을 지원하는 계정이 돼서는 곤란하다. 어느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기술과 시장성, 국가 경쟁력이라는 동일한 기준이 흔들리지 않아야 기금이 신뢰를 유지한다. 반도체 호황으로 벌어들인 세수를 미래에 재투자한다는 발상 자체는 나쁘지 않다. 오히려 저출생과 생산성 하락, 잠재성장률 둔화에 직면한 한국경제에는 이런 장기 투자가 필요하다. 재정도 단기 경기 대응을 넘어 성장의 토대를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한다. 다만 좋은 목적이 좋은 제도를 자동으로 보장하지는 않는다. 100조원 규모의 기금을 만들면서 통제장치가 약하다면 미래투자보다 재정 낭비의 통로가 될 위험이 더 크다. 반대로 국회 통제와 성과 평가, 재정준칙을 지나치게 경직되게 설계하면 정부가 강조하는 신속한 미래투자의 장점이 사라질 수도 있다. 결국 필요한 것은 유연성과 통제의 균형이다. 정부가 신속하게 미래 산업에 투자할 수 있는 길은 열어주되 큰 돈이 움직일 때는 국회의 감시와 국민의 검증을 반드시 거치도록 해야 한다. 미래대응기금은 이름 그대로 미래를 위한 돈이어야 한다. 정부가 쓰기 편한 돈이 돼선 안 된다. 반도체 호황이 가져온 세수를 청년과 AI, 지역과 인재에 투자하겠다면 그만큼 더 엄격한 회계와 평가, 국회 통제를 받아야 한다. 미래를 위한 100조원이 정부의 쌈짓돈이 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기금 조성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다.
2026-08-24 12:02:00
-
-
-
-
-
전작권 환수, 정치 일정 아닌 군사적 준비가 기준돼야
[경제일보] 이재명 대통령이 전시작전통제권의 임기 내 환수 방침을 다시 확인했다. 이 대통령은 18일 을지 국무회의에서 한미동맹을 굳건히 유지하면서도 독자적인 국방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며 전작권 전환을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핵추진 잠수함 사업에 속도를 내고 미래 전장에 맞는 통합 지휘 역량도 키워야 한다고 주문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 연합훈련의 대폭 축소를 지시한 직후 나온 발언이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전작권 환수는 언젠가 완성해야 할 과제다. 자국 군대의 전시 작전을 자국이 주도하는 것은 주권국가로서 자연스러운 방향이다. 한미동맹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한국군이 한반도 방위를 주도할 능력을 갖추는 것 역시 바람직하다. 그러나 전작권 전환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대통령 임기가 아니다. 실제 전쟁이 발생했을 때 한국군이 연합전력을 지휘하고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느냐가 기준이어야 한다. 현재 한미가 추진하는 전작권 전환도 원칙적으로는 '시기'가 아니라 '조건'에 기반한다. 이재명 정부 역시 임기인 2030년까지 전환을 마무리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지만, 한미가 합의한 군사적 능력 조건을 충족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미국 측도 전작권 전환은 위기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능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그렇다면 정부가 먼저 국민에게 보여줘야 할 것은 날짜가 아니라 준비 수준이다. 첫째는 정보·감시·정찰 능력이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징후와 핵 위협을 얼마나 신속하고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지가 현대전의 승패를 좌우한다. 위성과 정찰기, 무인기, 각종 감시체계에서 미국의 정보자산 의존도가 여전히 높다면 한국군이 전시 지휘를 주도하더라도 실질적인 작전 자율성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둘째는 북한 핵·미사일 대응 능력이다. 북한은 핵전력을 계속 확대하고 탄도미사일 능력도 고도화하고 있다. 전작권 전환 이후 한국군이 연합방위를 주도하려면 탐지와 요격, 지휘통제, 정밀타격까지 연결되는 대응체계가 충분히 갖춰져야 한다. 전환 일정에 맞추느라 검증 기준을 낮추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 셋째는 연합지휘 능력이다. 전작권 환수는 주한미군이 철수하거나 한미동맹이 끝난다는 뜻이 아니다. 전환 이후에도 한미연합방위체제는 유지된다. 오히려 한국군 장성이 연합전력을 실질적으로 지휘해야 하는 만큼 육·해·공군은 물론 우주와 사이버 영역까지 통합적으로 운용할 역량이 중요하다. 이 대통령이 통합작전 역량을 갖춘 지휘관 육성을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넷째는 독자적인 군사기술과 방위산업 역량이다. 핵추진 잠수함이나 정찰위성, 미사일방어체계 같은 전략자산은 단기간에 확보할 수 없다. 예산을 늘리는 것만으로 끝날 문제도 아니다. 핵심 기술과 운영 인력, 유지·정비 체계를 오랜 기간 축적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전작권 환수를 '자주 대 동맹'의 구도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자주국방과 한미동맹은 서로 반대되는 개념이 아니다. 한국의 독자적인 방위 능력이 강해질수록 동맹에서 한국의 역할과 협상력도 커진다. 이 대통령 역시 강한 동맹과 독자적 국방 역량은 서로 보완하는 관계라는 점을 강조했다. 다만 최근 한미동맹을 둘러싼 환경 변화는 전작권 문제를 더욱 신중하게 다룰 것을 요구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연합훈련을 대폭 줄이라고 지시했다. 훈련 비용과 함께 한국이 이란 비핵화 동참 요청에 응하지 않은 점도 이유로 들었다. UFS 훈련도 이미 야외기동훈련 건수를 줄이는 방식으로 규모가 조정됐다. 전작권 전환을 준비하는 시기에 연합훈련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는다면 한국군의 연합지휘 능력을 검증할 기회도 줄어들 수 있다. 실제 한미 연합훈련은 전작권 전환 준비와 군사능력 검증을 지원하는 중요한 과정으로 활용돼왔다. 올해 봄 실시된 프리덤실드 훈련에서도 한미 양국은 전작권 전환 준비를 주요 훈련 목적 가운데 하나로 제시했다. 이 때문에 한미훈련 축소와 전작권 조기 전환을 동시에 추진할 경우에는 더욱 정교한 보완책이 필요하다. 야외기동훈련 규모가 줄어든다면 지휘소훈련과 시뮬레이션, 다영역 작전 훈련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실전능력을 유지해야 한다. 전작권 전환 검증 역시 정치적 상황에 따라 완화해서는 안 된다. 대북 대화와 긴장 완화도 중요하다. 이 대통령은 최근 북한과의 대화를 통해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구상도 제시했다. 한반도에서 전쟁 위험을 낮추려는 노력은 필요하다. 그러나 북한이 핵무기와 미사일 능력을 계속 강화하는 현실을 외면한 채 군사적 대비태세를 먼저 약화시키는 방식으로 평화를 만들 수는 없다. 평화정책과 국방태세는 함께 가야 한다. 대화를 추진할수록 오히려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대비한 군사적 능력은 더 탄탄해야 한다. 정부는 전작권 전환을 정치적 성과로 만들려는 유혹부터 경계해야 한다. 어느 정부가 전작권을 가져왔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그 뒤 대한민국의 안보가 더 강해졌느냐다. 임기 내 환수를 위해 조건을 서두르거나 평가 기준을 낮춘다면 자주국방의 취지 자체가 훼손된다. 반대로 능력이 충분히 갖춰졌는데도 정치적 부담 때문에 전환을 계속 미루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필요한 것은 객관적인 검증이다. 한국군의 핵심 군사능력이 어느 수준까지 왔는지, 부족한 분야는 무엇인지, 언제까지 보완할 수 있는지를 국민에게 투명하게 설명해야 한다. 전작권 전환은 선언이 아니라 실력의 문제다. 지휘권을 넘겨받는 순간부터 한국군은 전시에 한미 연합전력을 주도할 책임을 진다. 그 책임을 감당할 정보력과 무기체계, 지휘능력과 인재부터 갖춰야 한다. 스스로를 지킬 힘을 갖춘 상태에서 동맹과 협력하는 것이 자주국방의 본뜻이다. 정부는 임기 내 환수라는 시간표보다 '준비가 끝나면 전환한다'는 원칙을 앞세워야 한다. 전작권은 정치 일정에 맞춰 가져오는 상징물이 아니라 국민의 생명과 국가의 존립을 책임질 군사 지휘권이다. 준비된 자주국방이 먼저고, 전환의 날짜는 그다음이다.
2026-08-19 11:09:37
-
당권 잡은 김민석…'명심·확장·2순위표'가 만든 승리
[경제일보] 김민석 전 국무총리가 더불어민주당의 새 당대표로 선출됐다. 1차 투표에서 과반을 확보하지 못하며 선호투표까지 간 끝에 54.08%를 얻으며 45.92%에 그친 정청래 후보를 꺾었다. 최고위원에는 최민희·박선원·서미화·이성윤·한민수 후보가 선출됐다. 이 가운데 최민희·이성윤·한민수 최고위원은 친정청래계, 박선원·서미화 최고위원은 친이재명계로 분류된다. 전당대회에서 맞붙었던 두 진영이 이제 하나의 지도부 안에서 공존해야 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이번 전당대회를 단순한 김 대표 개인의 승리로만 볼 수는 없다. 당정 관계를 둘러싼 노선 경쟁, 이재명 대통령과의 거리, 정청래 전 대표를 둘러싼 평가, 친명·친청 간 계파전, 지역별 당심과 세대별 선호, 선호투표제에서 나타난 ‘2순위 확장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기 때문이다. 김 대표가 당선 직후 수락연설에서 가장 먼저 꺼낸 말 역시 승리보다 ‘정부의 성공’과 ‘통합’이었다. 그는 “당은 이재명 대통령과 국민 주권 정부의 성공을 위해 뛸 것”이라며 “당청의 관계는 국정의 중심인 대통령과 정부를 지원하는 전면 협력의 창조적인 수평 관계가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김민석 체제’가 어디를 향할지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명심’만으로 이긴 선거 아니었다…지역서 버티고 2순위까지 넓혔다 김 대표의 선거전략은 비교적 명확했다. 첫 번째 축은 ‘당정 일치’였다. 이재명 정부 초대 국무총리를 지낸 경험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자신을 대통령의 국정철학과 정부 운영을 가장 잘 이해하는 후보로 자리매김했다. 단순한 친명 후보가 아니라 정부와 당 사이를 실제로 연결할 수 있는 ‘집권당형 대표’라는 이미지를 구축한 것이다. 반대편에 선 정 후보는 강한 개혁성과 당 정체성을 앞세웠다. 검찰개혁 등 민주당 핵심 지지층이 원하는 선명한 의제를 전면에 배치하면서 ‘강한 민주당’을 강조했다. 결국 두 후보의 대결은 ‘안정적 당정 운영’과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 가운데 당원들이 무엇에 더 무게를 둘 것인가의 싸움으로 흘렀다. 김 대표의 두 번째 전략은 지역별 ‘승리’보다 ‘손실 최소화’였다. 초반 순회경선부터 압도적인 선두를 달린 것은 아니었다. 충청권에서는 김 후보 45.05%, 정 후보 44.61%로 불과 0.44%포인트 차였다. 사실상 초접전이었다. 부울경에서는 오히려 정 후보가 46.65%, 김 대표가 43.85%로 앞섰다. 1주차 누적에서도 정 후보 45.51%, 김 대표 44.52%로 정 후보가 근소하게 우세했다. 하지만 김 대표에게 중요한 것은 초반에 승부를 끝내는 것이 아니었다. 전체 권리당원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호남과 수도권까지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불리한 지역에서 크게 지지 않고, 우호적인 지역에서 격차를 벌리는 방식이다. 특히 호남에서는 김 대표가 상대적으로 높은 경쟁력을 보여왔다.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부터 민주당 정치에 몸담아 온 경력과 이재명 정부 초대 총리라는 상징성이 동시에 작용할 수 있는 지역이었다. 세대별 흐름에서도 김 대표의 강점은 핵심 민주당 지지층과 중도적 이미지 사이에 있었다. 전당대회 직전 실시된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김 대표는 40·50대에서 비교적 높은 선호를 보였다. 반면 20·30대에서는 특정 후보로의 강한 쏠림보다 유보층이 많아 세대별 표심을 한쪽으로 단정하기 어려운 양상이 나타났다. 정치권 관계자는 “이번 선거에서 김 대표의 승리를 단순히 특정 연령층이 만들어냈다고 해석하기보다는 핵심 당원층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면서 상대적으로 넓은 유권자층에서 거부감을 낮춘 전략이 효과를 발휘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고 했다. 세 번째 결정적 변수는 선호투표제였다. 이번 당대표 선거에서는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으면서 후보들의 2순위 선호까지 반영하는 방식으로 최종 승자가 결정됐다. 여기서 김 대표의 ‘확장성’이 힘을 발휘했다는 평가가 정치권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송영길 후보를 1순위로 선택한 당원 가운데 상당수가 2순위 후보로 김 대표를 선택할 수 있는 정치적 구조가 형성돼 있었다. 김 대표와 송 후보는 모두 큰 틀에서는 이재명 정부 성공과 당정 협력을 강조했고, 정 후보와는 차별화된 선택지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선거는 ‘누가 가장 강한 1순위 지지층을 확보했는가’에서 끝나지 않았다. 탈락한 후보의 지지자를 누가 더 많이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느냐가 최종 승패를 갈랐다. 김 대표의 54.08%라는 최종 득표율에는 이 같은 2순위 확장 전략이 반영돼 있다고 볼 수 있다. ‘명청대전’ 끝낼 수 있나…수락연설부터 통합 메시지 하지만 김 대표 체제의 진짜 승부는 전당대회 이후다. 이번 경선은 정책 경쟁 못지않게 계파 대결이 거칠었다. 김 대표 측은 정청래 대표 체제에서 불거졌던 당정 간 긴장과 ‘자기 정치’ 논란을 부각하며 ‘명청대전’을 끝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대로 정 후보 측에서는 김 대표의 과거 정치 행적과 탈당 전력 등을 집중적으로 문제 삼았다. 후보 간 논쟁은 당대표 선거를 넘어 최고위원 선거로까지 번지면서 친명과 친청의 사실상 ‘팀 대결’ 양상을 보였다. 최고위원 선거 결과는 그 갈등의 흔적을 그대로 보여준다. 최민희·이성윤·한민수 등 친청계로 분류되는 인사 3명이 지도부에 입성했고, 박선원·서미화 등 친명계 2명이 함께 선출됐다. 김 대표가 최고위원회를 일방적으로 장악할 수 없는 구조다. 반대로 보면 계파 통합을 실제로 시험할 수 있는 구성이기도 하다. 김 대표도 이를 의식한 듯 당선 직후부터 경쟁자와의 화합을 강조했다. 그는 수락연설에서 “(낙선한) 정청래·송영길 후보와도 함께 뛸 것”이라며 “제가 그 장을 넓게 열고 함께 열고 함께 모실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어려운 당내외 상황을 맞이하고 있는데, 이를 동지들과 함께, 신임 지도부와 함께 반드시 돌파해 내겠다”고 강조했다. 경선 과정에서 정 후보를 향해 날을 세웠던 것과는 확연히 달라진 메시지다. 이제 김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상대를 이기는 정치가 아니라 상대를 지도부 운영 안으로 끌어들이는 정치이기 때문이다. 지도부 인선과 의사결정 과정에서 친명계만을 전진 배치한다면 전당대회에서 불거진 갈등이 최고위원회의 내부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반대로 친청계 최고위원들에게 실질적인 역할을 부여하고 정청래·송영길 후보까지 당 운영에 참여시킨다면 이번 전대를 계파 경쟁의 정점이 아닌 종착점으로 만들 가능성도 있다. 김 대표가 ‘명청대전의 종식’을 주장했던 만큼 이제 그 책임도 고스란히 김 대표에게 돌아왔다. 수락연설에서 제시한 당청관계의 개념 역시 주목된다. 김 대표는 대통령과 정부를 지원하겠다고 하면서도 그 관계를 단순한 수직적 관계가 아닌 “전면 협력의 창조적인 수평 관계”라고 규정했다. 이어 이재명 정부의 성공을 위해 “직언하고, 방패가 되고, 민심의 창구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당정 일치를 주장하면서도 정부의 결정을 그대로 추인하는 정당에 머무르지는 않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방패’는 정부를 외부 정치공세로부터 지키겠다는 의미이고, ‘직언’과 ‘민심의 창구’는 국민 여론을 대통령과 정부에 전달하는 집권여당의 기능을 수행하겠다는 의미다. 결국 김민석식 당정관계의 성패는 이 세 가지 기능 사이에서 얼마나 균형을 잡느냐에 달려 있다. 정부를 보호하는 역할만 커지면 여당의 독립성이 약화될 수 있고, 반대로 차별화만 강조하면 다시 당정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ABC 플랜’ 즉각 가동…민주당을 ‘생활 책임 정당’으로 김 대표는 수락연설에서 당 운영의 방향도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그는 민주당을 변화시키기 위한 ‘ABC 플랜’을 즉각 가동하겠다고 선언했다. 핵심은 민주당의 정치 의제를 거대 담론에서 국민의 일상으로 더 깊숙이 옮기겠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먹고사는 민생 정치, 생활비 정치, 크고 넓은 덧셈 정치, 확장 정치, 유능한 민생 중심 다수 정당인 민주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오늘부터 민주당은 역사정당, 민주 정당을 넘어 국민의 삶에 대한 책임 정당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당대회 기간 내세웠던 ‘민생·실용·확장’ 전략을 당대표 취임과 동시에 실제 당 운영 원칙으로 전환하겠다는 의미다. 여기에는 정치적으로 중요한 계산도 깔려 있다. 민주당의 핵심 지지층을 결집하는 것만으로는 향후 전국 단위 선거에서 안정적인 우위를 확보하기 어렵다. 이념이나 계파보다 물가와 주거, 일자리, 생활비처럼 국민의 일상과 맞닿은 문제를 전면에 내세워 중도층까지 지지 기반을 넓히겠다는 것이다. ‘덧셈 정치’와 ‘확장 정치’를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전당대회 과정에서는 상대 진영의 문제점을 공격해 지지층을 결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표가 된 순간부터는 자신을 찍지 않은 당원과 중도 유권자까지 끌어들이는 것이 더 중요해진다. 김 대표의 선거전략이 2순위 표까지 확보하는 ‘확장’에 있었다면, 당 운영에서도 같은 전략을 적용하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경선 과정에서 갈라진 친명과 친청을 하나의 지도부로 묶어야 한다”며 “대통령과 긴밀하게 협력하면서도 민심을 가감 없이 전달해야 하고, 민주당의 정치적 의제를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로 이동시켜 외연을 넓혀야 한다”고 했다. 김 대표는 선거에서 ‘당정 일치’를 내세워 승리했다. 수락연설에서는 여기에 직언·방패·민심, 그리고 통합·민생·확장을 더했다. 전당대회에서 승리하는 데 필요했던 것은 경쟁력이었다면, 집권당 대표로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조정력이다. 친명과 친청, 당과 대통령실, 강성 당원과 중도층 사이의 거리를 얼마나 좁힐 수 있느냐가 김민석 체제의 성패를 결정할 전망이다.
2026-08-17 20:05:25
-
김민석, 민주당 새 대표 선출…'명청대전' 끝내고 당정 원팀 세울까
[경제일보] 김민석 전 국무총리가 더불어민주당의 새로운 당대표로 선출됐다. 이재명 정부 초대 국무총리에서 물러나 당으로 돌아온 지 한 달 반 만에 집권여당의 지휘봉을 잡게 됐다. 경선 과정에서 정청래 전 대표 측과 김 대표 측이 이른바 ‘친청(친정청래) 대 친명(친이재명)’ 구도로 격하게 충돌했던 만큼 새 지도부의 첫 시험대는 승리의 여세보다 갈라진 당을 얼마나 빠르게 다시 묶어내느냐가 될 전망이다. 또한 최근 이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김 대표는 국정 동력을 살려야 하는 중책도 함께 맡게 됐다. 민주당은 17일 대전컨벤션센터에서 제3차 정기전국당원대회를 열고 김민석·정청래·송영길 후보 가운데 김 후보를 신임 당대표로 선택했다. 민주당은 이번 전대에서 대의원·권리당원 투표 70%와 국민여론조사 30%를 반영하고, 당대표 선거에는 선호투표제를 적용했다. 이번 전대는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표 가중치를 사실상 없앤 1인1표제가 적용된 첫 정기 전당대회이기도 하다. 앞선 1차 투표에서 과반을 얻지 못해 선호투표를 통한 결선투표가 진행된 끝에 김 대표는 최종 득표율 54.08%를 얻어 정 후보(45.92%)를 꺾고 승리했다. 선호투표제는 선호도에 따라 1∼3순위 후보를 명기하고, 과반 득표자가 없을 경우 최하위 득표자를 1순위로 투표한 유권자의 2순위 후보를 합산해 당선자를 가리는 방식이다. 함께 치러진 최고위원 선거에서는 최민희·박선원·서미화·이성윤·한민수 의원이 새로운 지도부로 당선됐다. 본선에는 이들을 포함해 김용·김영호·임미애 후보까지 모두 8명이 올라 5개의 최고위원 자리를 놓고 경쟁했다. 본선 초반부터 최고위원 경쟁 역시 친명·친청 진영 간 세 대결 양상으로 전개됐다. ‘DJ 키즈’에서 초대 총리 거쳐 당대표까지 김 대표는 민주당 정치사에서 부침이 특히 컸던 정치인 중 한 명이다. 1964년생인 김 대표는 서울대 총학생회장과 전국학생총연합 의장을 지낸 86세대 운동권 출신이다. 1990년 정계에 입문한 뒤 김대중 전 대통령을 가까이에서 보좌하며 이른바 ‘DJ 키즈’의 대표 주자로 성장했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 32세의 나이로 당선돼 당시 최연소 국회의원에 이름을 올렸고, 16대 총선에서도 승리했다. 현재까지 15·16·21·22대 국회의원을 지낸 4선 의원이다. 정치 인생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2002년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로 나섰다가 이명박 후보에게 패했고, 같은 해 대선을 앞두고 노무현 후보 대신 정몽준 후보 측으로 이동한 이른바 ‘후단협’ 사태는 이후 오랫동안 정치적 부담으로 따라다녔다. 김 대표는 이번 전당대회 과정에서도 이 문제를 다시 거론하며 사과했다. 국회를 떠난 뒤 긴 정치적 공백을 겪은 그는 2020년 21대 총선에서 영등포을에 당선되며 18년 만에 국회로 복귀했다. 정치적 재기의 결정적인 계기는 이 대통령과의 결합이었다. 김 대표는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초대 국무총리에 올라 2025년 7월부터 올해 7월까지 약 1년간 내각을 이끌었다. 총리직을 떠나는 자리에서는 “새 정부 출범 당일 지명돼 1년의 임무를 마쳤다”며 당과 국회로 돌아가겠다고 밝혔다. 이후 당권 도전에 나서면서 ‘당정 일치’와 이재명 정부의 성공을 핵심 구호로 내걸었다. 이번 당대표 선출은 1990년 정계 입문 이후 36년, 첫 국회의원 당선 이후 30년 만에 집권여당의 최고 책임자 자리에 오른다는 의미도 있다. 2008년 민주당 최고위원에 선출된 적은 있지만 당대표로 당을 이끄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 대표 앞에는 2028년 총선이라는 더 큰 정치 일정도 놓여 있다. 이번에 선출된 지도부가 차기 총선 공천권을 행사하게 되는 만큼 당대표의 권한은 단순한 당무 관리를 넘어 향후 여권의 권력 지형과도 직결된다. ‘반명’ ‘자기 정치’까지 등장한 경선…승자보다 봉합이 중요 문제는 경선 과정에서 생긴 상처다. 이번 전당대회는 정책과 노선 경쟁 못지않게 ‘친명 대 친청’이라는 계파 구도가 강하게 작동했다. 김 대표 측과 정청래 후보 측 최고위원 후보들이 사실상 팀을 이뤄 움직이면서 당대표와 최고위원 선거가 하나의 ‘팀전’처럼 전개됐다. 김 대표는 경선 초반부터 정 후보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그는 첫 합동연설회에서 “명청대전을 끝내야 한다”며 “자기 정치와 사당화로 당정 갈등을 일으키는 당대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정 후보가 이재명 정부와 엇박자를 냈다는 프레임을 전면에 세운 것이다. 정 후보 측도 물러서지 않았다. 정 후보와 친청계 후보들은 김 대표의 과거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의 행적을 집중적으로 문제 삼았다. 김 대표가 제기한 ‘신천지의 전당대회 개입 가능성’을 두고서도 친청계는 근거를 제시하라며 사과와 책임을 요구했고, 친명계는 특정 종교집단의 정치 개입 가능성을 경계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맞섰다. 공방은 ‘누가 진짜 이재명 대통령을 지키는가’라는 경쟁으로까지 번졌다. 김 대표는 정 후보 측을 향해 반명 세력의 공격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다고 비판했고, 정 후보는 자신이 대통령을 지켜왔다며 맞섰다. 최고위원 후보들도 “당정 엇박자”와 “자기 정치”, “반명 프레임”을 놓고 공개적으로 충돌했다. 때문에 김 대표가 당선 직후 가장 먼저 풀어야 할 과제도 당내 통합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치권 관계자는 “경선에서 승리한 친명 진영이 당직과 의사결정 구조까지 독점하는 방식으로 움직일 경우 전당대회에서 드러난 계파 갈등이 오히려 장기화할 수 있다”며 “반대로 정 후보를 지지했던 세력을 지도부 운영과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시키고, 경선에서 나온 공격적 표현을 더 이상 소환하지 않는다면 이번 전대를 계기로 계파 갈등을 정리할 수 있다”고 했다. 특히 최고위원 지도부에는 친명계와 친청계로 분류된 인사들이 골고루 들어간 만큼 지도부 자체가 두 진영의 공존 능력을 시험하는 무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김 대표가 후보 시절 스스로 “명청대전을 끝내야 한다”고 주장했던 만큼 이제는 그 말을 당 운영으로 증명해야 하는 위치가 됐다. 이 과정에서 ‘당정 일치’ 역시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대통령과 집권당이 주요 국정과제에서 긴밀하게 협력하는 것은 국정 추진력을 높일 수 있지만, 여당이 대통령실의 입장을 그대로 따르는 데 머물 경우 민심을 전달하고 정책을 조정해야 할 집권당의 역할이 약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대표가 강조해 온 ‘당정 원팀’을 정부에 대한 일방적인 지원이 아니라 민심을 대통령실에 전달하고 필요한 정책 조정을 이끌어내는 관계로 설계할 수 있느냐가 리더십의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될 전망이다. 李대통령이 강조했던 ‘경쟁 뒤 역량 확대’…이제 김민석의 숙제 이 대통령은 전당대회가 본격화되기 전부터 당권 경쟁에 직접 개입하기보다 ‘경쟁을 통한 전체 진영의 성장’을 강조해 왔다. 이 대통령은 지난 3월 민주당 초선 의원들과의 만찬에서 전당대회를 언급하며 “능력 있는 많은 분이 경쟁했으면 좋겠다”, “진영 전체 역량이 커졌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참석자들은 이를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가 아니라 선의의 경쟁을 강조한 원론적 발언으로 설명했다. 김 대표를 향해서는 총리 퇴임을 앞둔 지난 6월 공개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김민석 당시 총리를 두고 “단기간 내에 구체적 성과를 많이 낸 내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잘해줬다”고 평가하면서 “이제는 또 다른 역할을 맡는 게 더 적정하다고 보이기 때문에 역할을 바꾸게 됐다”고 말했다. 이후 김 총리의 당 복귀와 당권 도전이 이어지면서 정치권에서는 이 발언이 적지 않은 관심을 받은 바 있다. 이 대통령은 앞서 당내에서 ‘친명’과 ‘친청’, ‘명청대결’이라는 표현이 확산됐을 때도 공개적으로 경계한 바 있다. 지난 1월 민주당 지도부와의 만찬에서는 ‘반명’, ‘명청 대결’ 등 표현을 거론하며 이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말했고, 현장의 민심과 세상 이야기를 당 지도부를 통해 자주 듣고 싶다고 강조했다. 결국 대통령의 기존 메시지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특정 계파의 승리보다 경쟁 이후의 통합과 여당의 역량 강화에 가깝다. 전당대회는 김 대표의 승리로 끝났지만 정치적으로 더 어려운 승부는 이제 시작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경선 과정에서 갈라진 친명·친청 세력을 다시 묶고, 대통령실과 긴밀하게 호흡하면서도 민심을 가감 없이 전달하며, 2028년 총선을 준비할 수 있는 확장성을 보여줘야 한다. ‘명청대전을 끝내겠다’고 선언했던 김 대표가 실제로 민주당의 계파전을 끝내고 집권 2년차 이재명 정부의 안정적인 국정 파트너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가 새 지도부의 첫 시험대가 됐다.
2026-08-17 19:36:50
-
'유명해서 입점'에서 '입점해서 유명'으로…올리브영이 키운 K-뷰티 '발견의 힘'
[경제일보] 1999년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문을 연 작은 화장품 매장은 2026년 한국인의 뷰티 소비 지도를 뒤집었다. 특정 브랜드와 제품을 정해 구매하던 소비자는 이곳에서 여러 브랜드를 한눈에 비교하고 이름조차 낯선 제품을 직접 써본 뒤 선택하기 시작했다. 국내 첫 헬스앤뷰티(H&B) 스토어로 출발한 CJ올리브영은 해외 드럭스토어를 그대로 옮기는 대신 뷰티를 중심에 둔 한국형 모델을 만들었다. 27년이 지난 지금은 단순한 화장품 유통점을 넘어 소비자가 새로운 브랜드와 제품을 접하고 신생 브랜드는 고객과 만남의 기회를 얻는 K뷰티 '발견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올리브영의 성장사를 관통하는 DNA도 이 '발견'에 있다. 이미 검증된 인기 상품에만 의존하기보다 가능성 있는 브랜드와 제품을 발굴하고 매대와 랭킹·행사·체험 등을 통해 소비자의 관심을 구매로 연결해왔다. 구매할 제품을 정한 뒤 매장을 찾던 소비 방식을 매장을 둘러보며 새로운 선택지를 발견하는 방식으로 바꾼 것이다. 이 과정에서 올리브영은 단순한 화장품 판매점을 넘어 소비자 선택 폭을 넓혀주는 큐레이터이자 신생 브랜드가 시장 반응을 검증하는 테스트베드로 변했다. 과거 해외 브랜드와 국내 소비자를 연결하는 역할에 가까웠다면 현재는 국내 중소·인디 브랜드를 발굴해 한국은 물론 해외 소비자에게 소개하는 K뷰티 플랫폼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낯선 브랜드를 '발견'으로…올리브영이 만든 K뷰티 성장 공식 올리브영은 신사점 이후 수도권과 지방으로 점포망을 넓혔다. 2008년 부산에 첫 지방 매장을 열며 전국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했고, 닥터자르트와 메디힐 등 중소 브랜드의 판로 역할을 하며 상품군을 넓혔다. 2017년에는 전국 매장 수가 1000개를 넘어섰다. 경쟁자도 잇따랐다. GS리테일은 랄라블라를, 롯데쇼핑은 롭스를 운영했고 이마트도 영국 드럭스토어 부츠를 들여와 H&B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부츠는 2020년 국내 매장을 모두 철수했고 랄라블라도 2022년 사업을 접었다. 롭스 역시 가두점에서 철수하고 롯데마트 내 숍인숍 형태로 사업을 재편했다. 경쟁사들이 잇따라 철수하거나 사업을 축소하면서 올리브영 중심의 시장 구도가 굳어졌다. 경쟁자도 잇따랐다. GS리테일은 랄라블라를, 롯데쇼핑은 롭스를 운영했고 이마트도 영국 드럭스토어 부츠를 들여와 H&B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부츠는 2020년 국내 매장을 모두 철수했고 랄라블라도 2022년 사업을 접었다. 롭스 역시 가두점에서 철수하고 롯데마트 내 숍인숍 형태로 사업을 재편했다. 경쟁사들이 잇따라 철수하거나 사업을 축소하면서 올리브영 중심의 시장 구도가 굳어졌다. 다만 H&B 전문점 중심의 경쟁이 약화된 것과 달리 최근 경쟁 구도는 오히려 다변화되고 있다. 다이소가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화장품 시장을 확대하고 무신사와 컬리 등 패션·커머스 플랫폼도 각자의 고객층과 큐레이션 역량을 기반으로 뷰티 사업을 키우고 있다. 소비자가 새로운 브랜드를 접하는 유통채널도 올리브영을 넘어 다양한 플랫폼으로 확대되는 모습이다. 올리브영이 매장 수를 늘리는 동안 함께 축적한 경쟁력은 새로운 상품과 브랜드를 발굴해 소비자에게 제안하는 선별 역량이었다. 유명 화장품 회사의 베스트셀러만 채우기보다 새로운 제형과 콘셉트, 소비자가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카테고리를 발굴해 매대에 선보였다. 이후 올영세일과 올리브영 어워즈, 페스타, 온라인 랭킹과 리뷰 등 다양한 마케팅 장치를 더해 소비자의 관심을 한 데 모았다. 성과는 입점 브랜드의 성장에서도 나타난다. 2025년 올리브영 온·오프라인에서 연 매출 100억원 이상을 기록한 입점 브랜드는 116개로 2020년 36개에서 5년 만에 세 배 이상 늘었다. 이 가운데 닥터지와 달바, 라운드랩, 메디힐, 클리오, 토리든 등 6개 브랜드는 올리브영 내 연 매출 1000억원을 넘어섰고 메디힐은 입점 브랜드 가운데 처음으로 2000억원을 돌파했다. 매장 줄이고 경험 키웠다…온라인과 연결된 옴니채널 진화 두 번째 변곡점은 온라인이었다. 화장품 구매가 빠르게 온라인으로 이동하자 기존 오프라인 유통업체에는 매장이 비용으로 바뀔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올리브영은 반대로 매장을 온라인 경쟁력을 만드는 자산으로 활용했다. 2014년 모바일 앱을 출시하고 2017년 공식 온라인몰을 열었다. 이듬해에는 화장품업계 최초 당일배송 서비스인 ‘오늘드림’을 선보였다. 온라인몰과 오프라인 매장을 연결하면서 매장은 상품을 체험하고 구매하는 공간을 넘어 온라인 주문을 뒷받침하는 옴니채널 거점으로 역할이 확대됐다. 이는 '발견'과 '구매' 사이의 시간을 단축했다. 매장에서 테스트한 제품을 앱으로 주문하고 온라인 랭킹이나 리뷰에서 처음 본 제품을 가까운 매장에서 직접 테스트할 수 있게 됐다. 고객에게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별개의 채널이 아니라 하나의 쇼핑 과정으로 묶인 셈이다. 최근에는 점포 전략도 양적 확대에서 매장 대형화와 기능 강화로 옮겨가고 있다. 올리브영 국내 매장은 지난해 2분기 1393개에서 올해 2분기 1367개로 줄었다. 지난해 3분기 1394개를 정점으로 4분기 1381개, 올해 1분기 1369개, 2분기 1367개로 3개 분기 연속 감소했다. 대신 기존 소형 점포를 통합하거나 더 넓은 공간으로 확장 이전하고 체험·특화 기능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점포망을 재편하고 있다. 지난 3월 문을 연 '센트럴 명동 타운'이 대표적이다. 3개 층 약 950평 규모에 1000여개 브랜드와 약 1만5000개 상품을 갖춰 올리브영 매장 중 최다 상품을 선보인다. '마스크 라이브러리'에는 마스크팩 800여개를 모아 피부 타입과 기능별로 구분하며 소비자가 다양한 제품을 쉽게 비교·탐색할 수 있도록 진열을 세분화했다. 방한 쇼핑 명소에서 미국 현지로…해외 유통망 확장 올리브영의 발견 기능은 K뷰티의 해외 확산과 맞물리며 새로운 성장축이 됐다. 과거 올리브영이 해외 화장품과 새로운 뷰티 트렌드를 한국 소비자에게 소개했다면 이제는 반대로 세계 소비자가 한국의 새로운 브랜드를 찾기 위해 올리브영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2025년 1~11월 전국 올리브영 오프라인 매장에서 발생한 방한 외국인 누적 구매금액은 1조원을 달성했다. 2022년 연간 실적과 비교하면 약 26배 커진 규모다. 전체 오프라인 매출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도 2022년 약 2%에서 2025년 25% 이상으로 뛰었다. 외국인 고객의 58%는 6개 이상의 브랜드를 구매했고 10개 이상의 브랜드를 구매한 고객도 33%에 달했다. 이는 특정 K뷰티 히트상품 몇 개만 구매해가는 현상과는 차이가 있다. 올리브영 매장 자체가 여러 국내 브랜드를 비교하고 새 제품을 찾는 쇼룸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중소 브랜드 입장에서 올리브영은 국내에서 성장 가능성을 확인하는 관문인 동시에 세계 각국 소비자에게 브랜드를 알리는 글로벌 쇼케이스가 됐다. 올리브영은 이제 외국인이 한국을 찾아오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직접 해외 소비자 곁으로 가고 있다. 지난 5월 29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패서디나에 미국 1호점을 열었고 6월 13일에는 로스앤젤레스(LA) 웨스트필드 센추리시티에 2호점을 냈다. 패서디나점은 개점 당시 약 400개 뷰티·웰니스 브랜드의 상품 5000여종을 구성했으며 현지 트렌드를 빠르게 반영하기 위해 짧게는 2주 단위로 매대 상품 큐레이션을 업데이트한다는 운영 방침도 세웠다. 한국 매장을 그대로 복사하지도 않았다. 센추리시티점은 미국에서 수요가 높은 스킨케어 매대를 국내 표준점보다 약 1.5배 크게 구성하고 피부 상태 진단과 제품 추천을 결합한 체험형 서비스를 도입했다. 미국 전용 온라인몰과 멤버십도 함께 운영해 오프라인 매장과 온라인을 연결하는 옴니채널 기반을 구축했다. 현지 운영 기반도 확대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블루밍턴에는 약 3600㎡ 규모의 미국 서부 물류센터를 구축해 통관과 보관·재고 관리·배송 등을 지원한다. 올리브영이 발굴·큐레이션한 브랜드가 세포라 등 현지 유통채널에 공급될 경우 해당 물류센터를 활용해 현지 물류도 지원할 계획이다. 자체 매장에서 제품을 판매하는 유통사를 넘어 국내 브랜드가 다른 해외 채널에 진입하는 과정까지 연결하겠다는 전략이다. 상품 아닌 생활방식 제안…올리브영, 웰니스까지 영역 확대 올리브영은 올해 1월 웰니스 전문 플랫폼 '올리브베러'를 출범시키고 서울 광화문에 첫 매장을 열었다. 약 130평 규모의 공간에 500여개 브랜드와 3000여종의 상품을 구성하고 영양제와 건강식품을 비롯해 운동·휴식·셀프케어 등 일상적인 건강관리와 관련된 상품을 한데 모았다. 상품을 단순히 품목별로 진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소비자의 생활 방식과 건강관리 목적에 따라 다양한 웰니스 상품을 탐색할 수 있도록 카테고리의 범위를 넓힌 것이 특징이다. 온라인에서도 기존 올리브영의 옴니채널 전략을 접목했다. 올리브영 앱 내 별도 서비스를 통해 웰니스 상품을 탐색하고 추천받을 수 있도록 하고 섭취 알림 기능과 오늘드림·매장 픽업 등 기존 배송 서비스를 연계했다. 오프라인에서는 새로운 상품을 직접 살펴보고 온라인에서는 관련 정보를 확인한 뒤 구매와 재구매까지 이어지는 구조를 구축한 셈이다. 접근 방식은 1999년 H&B 시장에 진입했던 당시와 닮아 있다. 당시 소비자에게 생소했던 H&B라는 범주를 다양한 브랜드와 상품, 체험을 통해 하나의 소비 영역으로 구체화했다면 이번에는 건강기능식품과 운동, 휴식, 셀프케어 등 여러 산업에 분산된 상품을 '웰니스'라는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재구성하고 있다. 기존 시장에 상품을 추가하는 방식보다 새로운 소비 범주를 제시하고 그 안에서 브랜드와 제품의 발견을 유도해 온 올리브영의 성장 공식을 재적용하는 시도다. 커진 영향력만큼 무거워진 책임 올리브영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입점·납품 브랜드와의 관계도 숙제다. 플랫폼에서의 노출이 브랜드 성장에 미치는 영향이 커질수록 행사 참여와 판매 조건, 수수료 등 거래관계에 대한 책임도 갑과 을 관계로 번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실제 올리브영과 납품업체 간 거래관계는 이미 공정당국과 법원의 판단 대상이 된 바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23년 CJ올리브영이 납품업체의 경쟁사 행사 참여를 제한하고 판촉행사 종료 후 정상 납품가격을 환원하지 않은 행위, 정보처리비를 받은 행위 등을 대규모유통업법 위반으로 보고 시정명령과 과징금 18억9600만원을 부과하고 법인을 고발했다. 이후 행정소송에서 경쟁사 행사 참여 제한과 관련한 처분은 취소됐고 대법원도 2025년 9월 공정위의 상고를 기각하면서 과징금은 약 14억원 수준으로 줄었다. 다만 법원은 올리브영이 납품업체에 대해 거래상 우월적 지위를 가진다는 점 자체는 인정했다.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여부는 이와 별개의 문제다. 공정위는 2023년 올리브영의 일부 거래정책이 공정거래법상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에 해당하는지도 검토했지만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아우르는 화장품 유통시장의 범위와 올리브영의 시장지배적 사업자 해당 여부를 명확히 판단하기 어렵다며 무혐의가 아닌 심의절차종료 결정을 내렸다. 당시 공정위 역시 올리브영의 화장품 소매유통 채널 내 위치가 강화되고 있다는 점을 들어 관련 거래행위가 시장 경쟁에 미치는 영향을 지속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1999년 낯선 브랜드와 제품을 소비자에게 소개하며 시작된 올리브영의 '발견' 스토리는 이제 브랜드와 시장의 연결 방식 자체를 재편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앞으로의 경쟁력은 신제품을 발굴하는 선별 역량을 넘어 입점 브랜드와의 동반 성장 및 유망 브랜드의 시장 안착을 지원하는 플랫폼 역량에 달려 있다. 올리브영 관계자는 "올리브영은 다양한 브랜드와 상품을 발견하고 경험할 수 있는 체험형 매장과 온·오프라인을 연결하는 옴니채널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다"며 "앞으로는 국내에서 축적한 카테고리 육성과 큐레이션 역량을 바탕으로 K뷰티의 글로벌 확산과 K웰니스 생태계 육성을 함께 추진하고 지역과 브랜드가 함께 성장하는 글로벌 K뷰티·웰니스 플랫폼으로 성장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2026-08-13 17:40:57
-
-
네이버웹툰, 해외 불법 유통 '상류 공급망' 정조준…사이트 폐쇄 이어 운영자 검거
[경제일보] 네이버웹툰이 해외 불법 웹툰 유통망의 '상류 공급망'을 직접 겨냥하고 나섰다. 자체적으로 웹툰을 스캔·번역해 최초 유포하는 대형 불법 사이트를 국제공조로 추적해 폐쇄한 데 이어 운영자 검거까지 이끌어내는 등 단순히 불법 사이트를 차단하는 데 그치지 않고 불법 콘텐츠가 생산·확산되는 구조 자체를 끊는 방식으로 저작권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13일 네이버웹툰은 문화체육관광부, 인터폴, 북아프리카 현지 법집행기관과의 국제공조를 통해 글로벌 영어 불법 웹툰·만화 유통 사이트 3곳을 최종 폐쇄하고 운영자를 검거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폐쇄된 사이트들은 북아프리카를 기반으로 동일 운영자가 운영해온 것으로 파악됐다. 미국과 유럽 등 서구권 이용자를 대상으로 한국 웹툰을 포함한 콘텐츠를 불법 유통했으며, 네이버웹툰 인기작 300여개를 무단으로 스캔하고 번역해 제공한 것으로 확인됐다. 네이버웹툰은 해당 사이트들이 단순히 다른 불법 사이트의 콘텐츠를 가져와 제공하는 중계 역할에 그치지 않았고 자체적으로 웹툰을 스캔하고 번역한 뒤 최초로 업로드하는 '1차 공급원'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해당 사이트에서 만들어진 불법 복제물은 다른 해적 사이트로 다시 확산되는 구조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밀러웹 집계에 따르면 폐쇄된 3개 사이트의 합산 연간 방문 수는 1억3000만회를 넘는다. 최근 3개월 동안에도 2000만회 이상의 방문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불법 웹툰 유통망에서도 상당한 규모를 갖춘 사이트였던 것으로 평가된다. 이에 네이버웹툰이 해외 저작권 침해에 대응하는 방식도 개별 사이트를 찾아 차단하는 단계에서 불법 콘텐츠의 생산과 유통 구조를 추적하는 방향으로 확대되고 있다. 네이버웹툰은 불법 웹툰 유통 대응 전담 조직인 '안티 파이러시'를 중심으로 해당 사이트들의 운영 구조와 저작권 침해 정황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했다고 설명했다. 기존에 운영되던 복수의 사이트가 새로운 사이트로 통합되거나 리브랜딩되면서 단속을 회피하려 한 정황도 포착했다. 이후 운영 단서와 저작권 침해 증빙, 피해 자료 등을 수집해 관계 기관에 제공했고, 문화체육관광부와 인터폴, 현지 법집행기관 간 국제공조가 진행됐다. 그 결과 세 사이트 모두 접속이 불가능해졌으며 운영자도 현지 법집행기관에 검거돼 사법 절차가 진행 중이다. 최근 한국 웹툰의 글로벌 시장 확대와 함께 해외 불법 유통망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특히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로 번역된 불법 복제물이 대규모 이용자를 확보하면서 한국 웹툰의 해외 인지도가 오히려 불법 콘텐츠의 수요로 연결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앞서 네이버웹툰은 올해 5월 베트남 기반 글로벌 대형 영어 불법 웹툰·만화 유통 사이트 3곳을 폐쇄한 바 있다. 당시 폐쇄된 사이트들의 합산 연간 방문 수는 11억회 이상으로 이번에 폐쇄된 북아프리카 기반 사이트보다도 규모가 컸다. 두 사례를 합치면 해외에서 상당한 규모의 이용자를 확보한 영어 불법 웹툰 유통망이 잇따라 적발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웹툰의 글로벌 사업이 확대되면서 해외 시장에서의 저작권 보호 역시 플랫폼의 핵심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불법 유통은 창작자와 플랫폼의 직접적인 수익을 침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정식 플랫폼에서 유료로 소비돼야 할 콘텐츠가 불법 사이트를 통해 무료로 유통되면 콘텐츠 제작과 해외 서비스 확대에 투입되는 수익 기반이 약화될 수 있다. 특히 불법 사이트가 번역과 유통을 자체적으로 수행할 경우 정식 번역 콘텐츠와 경쟁하는 구조까지 만들어진다. 네이버웹툰은 기술을 활용한 불법 콘텐츠 추적도 강화하고 있다. 자체 개발한 웹툰 불법 유통 차단 기술 '툰레이더'를 통해 불법 복제물 추적과 유출자 식별, 사전 차단 등의 기능을 고도화하고 있다. 툰레이더와 같은 기술 기반 탐지 체계가 불법 콘텐츠의 확산 경로를 빠르게 파악하는 역할을 한다면, 실제 사이트 폐쇄와 운영자 검거에는 각국 수사기관과의 공조가 필요하다. 이에 따라 향후 글로벌 저작권 보호 경쟁에서는 플랫폼의 기술력뿐 아니라 현지 법집행기관과 연결되는 국제공조 체계가 중요한 경쟁력으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특히 생성형 인공지능(AI)과 자동 번역 기술의 발전으로 콘텐츠의 복제와 번역, 재유통 속도가 빨라질 가능성이 있는 만큼 웹툰 플랫폼의 저작권 대응도 기술과 수사 공조를 결합하는 방향으로 고도화될 것으로 분석된다. 네이버웹툰은 운영자 검거 이후에도 현지 수사 당국과 협력해 사법 절차에 필요한 지원을 이어갈 계획이다. 유사 사이트의 재등장이나 기존 콘텐츠의 우회 유통을 막기 위한 모니터링도 강화한다. 또한 해외 수사기관 및 유관 기관과의 협력 범위를 확대해 글로벌 불법 유통망에 대한 대응력을 높인다는 방침이다. 김규남 웹툰 엔터테인먼트 및 네이버웹툰 CRO는 "이번 조치는 대규모 불법 유통 사이트를 폐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체 스캔·번역본을 유포하던 1차 공급원을 차단하고 운영자 검거까지 이어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불법 웹툰 사이트는 창작자의 정당한 수익을 침해하고 글로벌 웹툰 생태계의 성장을 저해하는 심각한 문제인 만큼, 앞으로도 각국 수사기관 및 유관 기관과의 공조를 강화해 창작자의 권리와 작품 가치를 보호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2026-08-13 16:27:48
-
-
한국경제 3주체를 다시 짜라 ③정부편
[경제일보]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정부의 역할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 정부 역할이 산업 지원과 규제 정비에 집중됐다면, AI 시대에는 데이터, 전력망, 인재, 안전망, 소비자 보호, 공공서비스, 국가 안보까지 포괄하는 종합 설계 능력이 중요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AI가 기업의 생산 방식과 소비자의 생활 방식을 동시에 바꾸면서 정부도 단순한 규제자나 투자자를 넘어 국가 운영체제의 설계자로서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산업 진흥, 규제 설계, 인프라 구축, 인재 양성, 소비자 보호를 따로 볼 것이 아니라 하나의 국가 전략으로 묶어야 한다는 것이다. 11일 정부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AI는 이미 산업정책의 핵심 축으로 올라섰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달 16일 청와대 업무보고에서 AI 데이터센터(AIDC), 피지컬 AI, K-반도체를 3대 메가프로젝트로 제시하고, 해외 투자 유치를 포함해 총 550조원 규모의 민간투자로 기가와트급 초거대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내년부터는 예약과 결제 등 실제 업무를 수행하는 AI 에이전트로 서비스를 고도화해 ‘1인 1 AI 에이전트’ 시대를 열겠다는 목표도 내놨다. AI 제도 정비도 본격화되고 있다. 한국은 올해 1월 22일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AI 기본법)을 시행했다. 이 법은 AI 연구개발과 학습용 데이터 구축, AI 활용 확산, 창업 지원, 인재 양성, 데이터센터 구축 지원 등의 근거를 담고 있다. 동시에 고영향 AI에 대한 투명성, 안전성, 인간 감독 등 신뢰 확보 장치도 포함했다. 한 AI업계 관계자는 “AI 산업은 속도가 생명인 만큼 과도한 규제는 부담이 될 수 있다”면서도 “설명 책임과 안전장치가 없으면 소비자와 시장의 신뢰를 잃을 수 있어 산업 진흥과 신뢰 구축을 동시에 설계하는 정부 역할이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AI 산업정책, 지원금 경쟁으로 끝나선 안 돼 정부의 AI 산업정책은 대규모 투자 계획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반도체는 AI 서버와 데이터센터의 핵심 인프라이고, 피지컬 AI는 로봇과 자율주행, 제조 자동화와 연결된다. AI 데이터센터는 모든 AI 서비스의 기반이 되는 컴퓨팅 인프라다. 정부가 이 세 분야를 묶어 국가 프로젝트로 제시한 것은 AI를 단순한 소프트웨어 산업이 아니라 제조업, 에너지, 지역경제, 안보가 결합된 복합 산업으로 보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다만 대형 프로젝트가 성과로 이어지려면 재정 투입과 세제 지원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가 많다. 데이터센터 입지, 전력망 확충, 용수 확보, 지역 주민 수용성, 전문 인력 공급이 함께 해결돼야 한다는 것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21일 정부가 수도권 밖 호남에 조성하려는 반도체 산업단지를 두고 대규모 전력·용수 수요와 지역 주민 반발이 주요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고 보도했다. 해당 산업단지 조성에는 800조원 이상이 투입될 것으로 추산되며, 계획대로면 4개 반도체 공장의 전력 수요만으로도 광주·전북·전남 지역의 현재 연간 전력 소비량의 70∼80%에 이를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클러스터는 기업 투자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며 “전력망, 용수, 도로, 대학 인력, 지역 민원 조정까지 정부가 함께 풀어야 실제 착공과 운영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데이터·전력·인재가 새 국가 인프라로 부상 AI 시대의 국가 인프라는 도로와 항만, 공항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데이터, 클라우드, GPU, 전력망, 고급 인재가 새로운 국가 인프라로 떠오르고 있다는 평가다. AI 모델을 개발하고 운영하려면 대규모 학습 데이터와 안정적인 컴퓨팅 자원, 막대한 전력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AI 정책은 과학기술 정책인 동시에 에너지 정책, 교육 정책, 지역균형 정책의 성격을 함께 띠고 있다. 특히 데이터센터는 전력 수요와 직결된다. AI 연산은 기존 인터넷 서비스보다 훨씬 많은 전력을 필요로 한다. 정부가 권역별 데이터센터 구축을 추진하더라도 전력망 보강과 재생에너지, 원전, 송전선로 문제를 동시에 조정하지 못하면 투자 계획이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인재 문제도 핵심 과제로 꼽힌다. AI 전문인력은 글로벌 빅테크와 국내 대기업, 스타트업이 동시에 확보 경쟁을 벌이는 분야다. 대학 교육만으로는 산업 현장의 수요를 따라가기 어렵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과기정통부는 올해 12개 부처와 함께 514만명을 대상으로 AI 교육을 실시하고, AI디지털배움터를 전국 69개 거점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한 서울 소재 대학 교수는 “AI 인재 정책은 박사급 연구자 양성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중소기업 직원, 공무원, 교사, 금융·제조 현장 인력까지 AI를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재교육 체계를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규제 완화와 신뢰 구축 병행 요구 AI 기본법 시행으로 한국은 AI 산업 진흥과 신뢰 기반 조성을 함께 추진할 법적 틀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법은 고영향 AI에 대해 투명성과 안전성 확보를 요구하고, 생성형 AI 결과물에 대한 표시 의무 등도 규정하고 있다. 의료, 금융, 교통, 채용, 교육처럼 국민의 생명과 기본권, 재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분야에서는 AI 활용에 더 높은 수준의 설명 책임과 인간의 감독이 요구된다. 기업 입장에서는 규제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AI 기본법과 시행령이 현장에 적용되는 과정에서 인증, 문서화, 영향평가 부담이 과도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반면 소비자와 시민사회에서는 AI가 신용평가, 채용, 보험, 의료 판단에 활용될 경우 설명 가능성과 이의제기 절차가 반드시 보장돼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한 스타트업 업계 관계자는 “AI 기본법의 취지는 공감하지만 초기 기업에 대기업 수준의 문서화와 검증 부담이 부과되면 서비스 출시 속도가 늦어질 수 있다”며 “위험도가 낮은 서비스와 고영향 AI를 구분해 규제를 차등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소비자단체 관계자는 “AI가 금융 심사나 채용, 보험료 산정에 쓰일 경우 소비자는 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 알기 어렵다”며 “기술 발전을 이유로 설명 책임과 이의제기 절차가 약화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과제는 이 균형을 어떻게 맞출지에 있다. AI 산업을 키우기 위해 규제를 무조건 늦추면 신뢰가 약해질 수 있고, 신뢰 확보를 이유로 규제를 과도하게 설계하면 혁신 속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동시에 제기된다. 분야별 위험 수준에 따라 규제를 달리 적용하는 정교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공공부문 AI, 행정 혁신의 시험대 정부 자체도 AI 전환의 대상이다. 행정 민원, 복지 심사, 세금 신고, 재난 대응, 교통 관리, 보건의료, 교육 행정 등 공공서비스 전반에서 AI 활용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AI를 활용하면 반복 민원을 줄이고 행정 처리 속도를 높이며, 사각지대에 놓인 국민을 더 빨리 찾아낼 수 있다는 기대가 있다. 다만 공공부문 AI에는 민간보다 더 엄격한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정부의 AI 판단은 국민의 권리와 직접 연결될 수 있어서다. 복지 수급 대상 선정, 세무 조사, 채용·평가, 치안·감시 분야에서 AI가 활용될 경우 오류나 편향이 발생하면 피해가 클 수 있다. 공공 AI는 효율성뿐 아니라 투명성, 책임성, 감사 가능성을 함께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처별 정책 넘어 국가 조정 능력이 관건 AI 시대 정부의 역할은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산업을 키우면서도 소비자를 보호해야 하고, 투자를 촉진하면서도 전력과 지역 갈등을 조정해야 한다. 기업의 혁신을 막지 않으면서도 고영향 AI의 위험을 관리해야 하고, 청년에게는 새 일자리를 만들고 기존 노동자에게는 전환 교육과 안전망을 제공해야 한다는 요구도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AI 전환의 성패가 개별 부처의 정책 경쟁이 아니라 정부 전체의 조정 능력에 달려 있다고 본다. 과학기술, 산업, 금융, 교육, 노동, 복지, 에너지 정책이 따로 움직이면 AI 전환이 성장보다 갈등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반대로 인프라, 인재, 규제, 안전망, 신뢰 체계를 하나의 전략으로 묶을 경우 AI가 한국경제의 새로운 성장 기반이 될 수 있다는 기대도 있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AI 시대 정부는 돈을 나눠주는 투자자나 기업을 단속하는 규제자에 머물 수 없다”며 “국가 데이터 인프라와 전력망, 인재 양성, 소비자 보호, 일자리 전환을 함께 설계하는 운영체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2026-08-11 11:2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