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총 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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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재건축이라는 위험한 착시
[경제일보] 강남 재건축 시장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유독 환상이 많다. 압구정과 반포, 개포와 잠실에서는 신고가 거래가 이어지고 건설사들은 최고급 브랜드 경쟁에 사활을 건다. 스카이브리지와 호텔식 로비, 초대형 커뮤니티 시설과 특화 설계가 등장할 때마다 시장은 열광한다. 조감도만 보면 서울의 미래가 이미 완성된 듯한 분위기다. 그러나 현장 안으로 들어가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공사비 폭등과 추가분담금 갈등, 조합 내 권력 다툼과 소송전, 반복되는 사업 지연이 강남 재건축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겉은 최고급 아파트지만 안에서는 이해관계 충돌과 불신, 피로감이 쌓여간다. 화려한 조감도 뒤에서 실제로 커지고 있는 것은 기대보다 부담이다. 최근 서울 주요 재건축 현장의 공사비는 3.3㎡당 1000만원을 넘기 시작했다. 압구정과 개포 일대에서는 추가분담금이 수억원에서 많게는 10억원 안팎까지 거론된다. 사업이 늦어질수록 금융비용 부담도 함께 커진다. 재건축이 아니라 사실상 현금 동원 경쟁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이런 흐름이 일부 단지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금 강남 재건축 시장은 점점 ‘좋은 집을 짓는 사업’이 아니라 ‘누가 끝까지 버틸 현금을 갖고 있느냐’를 가르는 시장으로 변해가고 있다. 수십년 동안 한집에서 살아온 은퇴 고령층조차 추가분담금 부담 때문에 대출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까지 벌어진다. 집값은 수십억원이라는데 정작 그 집에 살던 사람은 현금 부족 때문에 불안에 내몰리는 셈이다. 원래 재건축은 노후 주거지를 정비하고 생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제도다. 그러나 지금 강남 재건축 시장에서는 도시 정비보다 자산 경쟁과 가격 상승 기대가 훨씬 강하게 움직이고 있다. 건설사는 초고급 브랜드 경쟁에 매달리고 조합은 더 높은 일반분양가와 더 화려한 설계를 원한다. 사업비는 끝없이 불어난다. 결국 그 부담은 다시 조합원에게 돌아간다. 더 심각한 문제는 사업 운영 과정이다. 수조원대 사업이 진행되는데도 상당수 조합원은 공사비 산정 근거와 금융비용 증가 내역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총회 표결에 참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총회 의결은 형식적으로 성립한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일반 조합원이 복잡한 사업 구조와 자금 흐름을 온전히 검증하기 어려운 경우가 반복된다. 이 과정에서 가장 강한 힘을 갖는 쪽은 결국 시공사와 사업 실무를 장악한 세력들이다. 공사비가 오르면 조합은 반발한다. 그러나 사업이 멈추면 금융비용 부담은 더 커진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조합원들은 지쳐가고 결국 추가 공사비를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밀려간다. 계약이라는 형식을 갖췄을 뿐 실제 현장에서는 협상력 균형이 무너진 사례가 적지 않다. 강남 재건축 현장에서 왜 소송과 갈등이 반복되는지 이유는 어렵지 않다. 사업 규모는 수조원대로 커졌는데 이를 견제하고 감시할 장치는 여전히 허술하기 때문이다. 조합 집행부를 둘러싼 충돌과 시공사 선정 논란, 설계 변경과 공사비 증액 다툼이 사업 내내 이어진다. 도시를 정비하는 사업이라기보다 거대한 이해관계 충돌의 장처럼 변해가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잠실 르엘 사례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입주는 시작됐지만 관리처분계획 변경 문제로 등기와 정산이 늦어지면서 입주민들이 재산권 행사에 어려움을 겪었다. 새 아파트에 들어갔는데도 매매와 담보 설정, 대출 실행 등에 차질이 생길 수 있는 상황이 이어진 것이다. 수십억원짜리 고급 아파트인데도 가장 기본적인 권리관계 정리가 매끄럽게 끝나지 못한 셈이다. 그런데도 시장은 여전히 강남 재건축을 ‘불패 신화’처럼 소비한다. 그러나 냉정하게 보면 지금 강남 재건축은 지나치게 비대해진 욕망 위에 올라탄 시장에 가깝다. 더 높게 짓고 더 화려하게 만들고 더 비싸게 팔려는 경쟁 속에서 사업의 본래 목적과 상식은 점점 뒤로 밀리고 있다. 강남 재건축 시장을 보면 지금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의 왜곡이 한곳에 응축돼 있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집은 살아가는 공간이어야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거대한 투자 상품이 됐다. 재건축은 도시를 정비하는 제도여야 하는데 초고가 자산 경쟁의 무대로 변해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갈등과 금융 부담, 권리관계 혼란은 점점 커지고 있다. 물론 재건축 자체를 멈출 수는 없다. 서울의 노후 주거지를 정비하려면 재건축은 필요하다. 다만 지금처럼 초고급 경쟁과 끝없는 사업비 인상에만 매달리는 흐름이 이어진다면 결국 시장 전체가 감당해야 할 위험도 함께 커질 수밖에 없다. 강남 재건축 시장에 필요한 것은 더 화려한 조감도가 아니다. 사업비와 공사비를 둘러싼 투명성, 조합원 권리 보호, 현실적인 사업 관리다. 지금 강남 재건축 현장에서 가장 빠르게 사라지고 있는 것은 집의 본래 가치와 도시 정비의 상식이다.
2026-05-11 09: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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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임위원장 독식론, '승자의 저주'를 부르는 오만한 발상
[경제일보] 국회 후반기 원 구성을 앞두고 정치권에 전운(戰雲)이 감돌고 있다. 집권 여당의 수장 격인 정청래 대표가 상임위원장 자리를 여당이 모두 차지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내놓으면서다. 과거 그의 정치적 궤적과 거침없는 행보를 돌이켜볼 때, 이는 단순한 협상용 엄포나 기싸움으로만 치부하기 어렵다. ‘압승’이라는 성적표를 손에 쥔 여당이 의회 권력의 고삐를 완전히 틀어쥐고 국정 운영의 속도전을 벌이겠다는 노골적인 의지의 표명으로 읽힌다. 물론 여당의 입장에서 보자면 작금의 야당 행태가 눈엣가시 같을 것이다.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 모습이나, 대안 없는 비판으로 국정의 동력을 깎아 먹는 야당의 현실을 보며 "차라리 우리끼리 책임지고 하겠다"는 유혹에 빠질 법도 하다. 국민들 사이에서도 지리멸렬한 정쟁에 지쳐 "일 좀 하게 다 밀어줘라"는 목소리가 나올 법하다. 하지만 정치란 현실의 감정을 배설하는 장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설계하는 고도의 이성적 과정이어야 한다. 노자(老子)는 《도덕경》 제9장에서 '금옥만당 막지능수(金玉滿堂 莫之能守)'라 했다. 금과 옥이 집에 가득해도 이를 능히 지켜낼 수 없다는 뜻이다. 권력의 정점에 섰을 때, 그 힘을 남용하여 모든 것을 독점하려 드는 순간부터 권력은 부패하고 무너지기 시작한다. 의회 민주주의의 핵심은 '견제와 균형'이다. 상임위원장 배분은 단순히 자리를 나누는 밥그릇 싸움이 아니다. 입법부가 행정부를 감시하고, 여야가 서로의 정책적 독주를 막아내기 위해 수십 년간 쌓아온 암묵적인 질서이자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여당이 상임위원장을 독식한다는 것은 야당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입을 봉하겠다는 선언과 다름없다. 이는 정국 운영을 협치(協治)가 아닌 독단(獨斷)으로 끌고 가겠다는 위험한 발상이다. 아무리 야당이 밉고 믿음이 가지 않는다 해도, 그들은 국민의 엄연한 선택을 받은 대의 기관이다. 여당의 정책이 늘 옳을 수는 없으며, 정부의 국정 수행 과정에는 반드시 빈틈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 빈틈을 찾아내고 비판하며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야당의 숙명적 역할이다. 싹을 자르는 식의 원 구성은 결국 여당 스스로 '오류의 수렁'에 빠지게 만드는 자충수가 될 것이다. 고전 《서경(書經)》에는 '원수채수(怨豈在明 隔夷怨在)'라는 말이 나온다. 원망은 밝은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소통이 단절된 막힌 곳에서 생겨난다는 뜻이다. 소수파를 무시하고 다수의 힘으로 몰아붙이는 정치는 당장은 시원해 보일지 모르나, 사회 밑바닥에 불만과 갈등의 에너지를 축적시킨다. 응축된 갈등은 결국 폭발하기 마련이고, 그 비용은 온전히 국민의 몫으로 돌아온다. 정치는 '옳음'을 실현하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다름'을 인정하고 조율하는 예술이기도 하다. 지금 여당에 필요한 것은 '힘의 과시'가 아니라 '포용의 리더십'이다. 강한 자가 자신을 낮추고 상대의 존재 가치를 인정할 때 진정한 권위가 선다. 야당이 부족해 보일수록 여당은 더욱 인내하며 대화의 문을 열어두어야 한다. 상임위원장 자리를 전리품 챙기듯 독식하는 행태는 민주주의의 기본 상식에 어긋날뿐더러, 훗날 정권이 바뀌었을 때 똑같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명분을 만들어주는 꼴이다. 정청래 대표와 여당 지도부는 부디 '승자의 저주'를 경계해야 한다. 칼자루를 쥐었다고 해서 모든 고기를 혼자 썰어 가져가려 해서는 안 된다. 국회는 여당의 전용 안방이 아니라 국민 전체의 공론장이다. 감시받지 않는 권력은 반드시 타락하고, 비판 없는 정책은 반드시 실패한다. 야당의 비판이 비록 가시 돋친 독설일지라도, 그것을 국정의 오답을 수정하는 '쓴 약'으로 삼는 대범함이 필요하다. 독단은 짧고 협치는 길다. 눈앞의 효율성을 위해 의회 민주주의의 근간인 다원성을 훼손하는 우(愚)를 범하지 말길 바란다. 여당 단독의 질주는 파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진정으로 국가를 위한다면, 미운 야당을 끌어안고서라도 함께 가는 가시밭길을 택해야 한다. 그것이 30년 넘게 이 땅의 정치를 지켜본 필자가 확신하는 정법(正法)이자 상식이다.
2026-03-24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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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無知)의 시장과 김어준씨의 선동 정치
[경제일보]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의 언어는 집이 아니라, 누군가를 가두고 불지르는 감옥이자 흉기가 되었다. 그 한복판에 김어준이라는 이름이 서 있다. TBS 시절부터 현재의 유튜브 권력에 이르기까지, 김 씨가 구축한 ‘뉴스공장’이라는 거대한 스튜디오는 사실(Fact)을 선택적으로 가공(Selection)해 특정한 정치적 해석을 강화하는 방송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노자(老子)는 『도덕경』 제81장에서 "신언불미 미언불신(信言不美 美言不信)"이라 했다. 참된 말은 겉치레가 화려하지 않고, 화려하게 꾸민 말은 믿음직스럽지 못하다는 뜻이다. 김어준 씨의 화법은 전형적인 ‘미언(美言)’의 극치다. 여기서의 ‘미’는 도덕적 아름다움이 아니라, 듣고 싶은 것만 듣게 해주는 감각적 쾌락이다. 김 씨는 특유의 음모론적 서사 구조를 빌려 복잡한 세계를 ‘선과 악’의 대결로 단순화한다. 생태탕 의혹부터 사드(THAAD) 전자파 미신, 나아가 각종 선거 국면에서 터져 나온 근거 희박한 의혹 제기들까지. 김 씨가 던진 수많은 ‘설(說)’ 중에서 법원의 판결이나 객관적 물증으로 증명된 것이 과연 몇 퍼센트나 되는가. 사실과 거짓의 비율을 따지는 것조차 무의미하다. 김 씨는 일부 사실과 추측을 결합한 서사를 통해, 대중이 믿고 싶어 하는 해석을 강화하는 서사를 만들어낸다는 비판이 나온다. 공자(孔子)는 정치의 으뜸으로 '정명(正名)', 즉 이름을 바로잡는 것을 꼽았다.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언론은 언론다워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김어준 씨의 방송 방식은 전통적 저널리즘의 기준과 거리가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는 스스로를 '공장장'이라 부르며 객관성이라는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을 조롱한다. 김 씨의 방송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선동 기법은 '프레임의 오염'이다. 상대방을 토론의 대상이 아닌 '청산해야 할 절대 악'으로 규정함으로써 합리적 비판의 통로를 원천 봉쇄한다. 이는 인류 경영의 기초인 '공존의 룰'을 파괴하는 행위다. 도덕경 24장은 "스스로 드러내는 자는 밝지 못하고, 스스로 옳다고 하는 자는 겉모양만 번지르르하다(自見者不明 自是非者不彰)"고 경고한다. 자신의 진영만이 정의롭다는 오만(自是非)이 확성기를 타고 대중에게 전달될 때, 사회적 통합은 요원해지고 증오의 에너지만이 응축된다. 김 씨의 방송 사례를 분석해보면, 사실 관계의 왜곡보다 더 위험한 것은 '맥락의 절단'이다. 특정 발언의 앞뒤를 자르고 의도적인 추측을 덧붙여 거대한 음모의 퍼즐을 맞춘다. 법적으로 처벌받지 않을 정도의 교묘한 수위 조절을 거치기에 법적 책임은 피할지 모르나, 도덕적 책임은 피할 수 없다. 과거 광우병 사태부터 최근의 지정학적 갈등에 이르기까지, 김 씨는 공포와 분노 같은 감정을 자극하는 정치적 서사를 통해 영향력을 확대해 왔다는 평가가 있다. 이것은 저널리즘이 아니라 '분노 마케팅'이다. 사실과 가짜의 비율이 1대 9이든 5대 5이든 그것은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김 씨가 제기한 일부 주장들이 허위정보 논란을 낳았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의 합리적 이성을 마비시키고, 진영 간의 벽을 더욱 높였다는 숙명적인 결과다. 『도덕경』 12장에는 "오색(五色)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오음(五音)은 사람의 귀를 먹게 한다"는 말이 있다. 화려한 음모론과 자극적인 선동의 언어는 대중의 눈과 귀를 멀게 한다. 김어준 씨가 파는 것은 정보가 아니라 '위안'과 '카타르시스'다. 하지만 그 카타르시스의 대가는 너무나 가혹하다. 그것은 공동체의 신뢰 자본을 탕진하고, 민주주의의 토대인 객관적 사실을 증발시킨다. 이제 대중은 스스로 깨어나야 한다. "저 사람 말이 시원하다"는 감각적 만족 뒤에 숨겨진 독단과 오만을 직시해야 한다. 단언컨대 선동으로 일어선 자는 결국 그 선동이 만든 허상 속에 갇히게 마련이다. 우리 사회가 김어준이라는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정치 논객의 그늘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상식과 도덕이 숨 쉬는 진정한 공론의 장이 열릴 것이다.
2026-03-16 09:43: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