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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병 대신 내부 확장…태평양이 종합로펌이 된 방법
[경제일보] 1980년 12월 서울 서소문. 서울민사지법 부장판사를 끝으로 법복을 벗은 김인섭 변호사가 자신의 이름을 건 법률사무소를 열었다. 해외 로스쿨이나 외국 로펌 경력은 없었다. 김 변호사가 내세운 목표는 한국 법률시장에서 출발해 국제 경쟁력을 갖춘 로펌을 만드는 것이었다. 6년 뒤 법무부 장관을 지낸 배명인 변호사와 이정훈 변호사 등이 합류하면서 태평양합동법률사무소가 출범했다. 영문명 ‘BKL(Bae, Kim & Lee)’은 배명인·김인섭·이정훈 세 창업자의 성에서 따왔다. 1987년 법무법인으로 전환했고 1995년 지금의 법무법인 태평양이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46년이 흐른 현재 태평양은 김앤장에 이어 국내 매출 2위 로펌이다. 2025년 법무법인 매출은 4402억원, 특허법인과 해외법인을 합친 매출은 4702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상반기에도 전년 같은 기간보다 매출이 약 25% 늘었다. 국내 변호사는 지난 6월 기준 628명으로 김앤장 다음으로 많다. 김앤장이 국제금융과 외국 기업 자문에서 출발했고 광장이 서로 다른 두 로펌의 합병으로 기업자문과 송무를 결합했다면 태평양의 길은 달랐다. 국내 송무에서 시작해 기업자문과 M&A를 붙이고 국제중재와 공정거래, 조세, 노동, 기업형사로 영역을 넓혔다. 외부 로펌과의 대형 합병 없이 필요한 분야를 조직 안에서 키워온 것이 태평양 성장사의 한 축이다. ◆ 법정에서 시작한 ‘한국형 로펌’ 창업자 김인섭 변호사는 1963년 서울지방법원 판사로 법조 생활을 시작했다. 대법원 재판연구관과 서울고법 판사를 거쳐 서울민사지법 부장판사와 사법연수원 교수를 지냈다. 1980년 법원을 떠나 변호사 개업을 할 때 김 변호사가 구상한 조직은 몇 명의 변호사가 사무실을 함께 쓰는 합동사무소와는 달랐다. 당시 한국 법률시장은 개인 변호사의 송무가 중심이었다. 대기업이 성장하면서 기업법무 시장도 열리고 있었지만 지금과 같은 대형 종합로펌은 막 걸음을 떼던 시기였다. 김 변호사는 자신의 법관 경험을 토대로 송무를 맡으면서 기업이 필요로 하는 법률서비스를 조직적으로 제공하는 로펌을 만들기 시작했다. 1986년 태평양합동법률사무소 출범은 개인사무소에서 조직형 로펌으로 넘어가는 계기가 됐다. 배명인·김인섭·이정훈을 비롯해 이재식·황의인 변호사 등이 초기 조직을 만들었고 이후 기업법무를 담당할 변호사들이 잇달아 합류했다. 송무에서 시작한 조직에 기업자문과 금융, 지식재산권 분야가 하나씩 붙었다. 태평양이 당시 내세운 말은 ‘한국적인 국제로펌’이었다. 외국 로펌의 운영방식을 그대로 옮겨오는 대신 국내 법률시장과 법조 실무에 뿌리를 두고 국제 업무까지 처리하는 조직을 만들겠다는 구상이었다. 김인섭 변호사는 훗날 이를 ‘한국적 국제로펌’이라는 말로 설명했다. ◆ 외환위기, 송무 로펌이 기업 안으로 들어갔다 태평양의 업무가 크게 넓어진 시기는 1990년대 후반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기업 매각과 구조조정, 워크아웃이 한꺼번에 진행됐다. 기업의 생존 문제가 법률 문제로 이어지면서 송무뿐 아니라 금융과 M&A, 기업회생을 함께 다룰 변호사들이 필요해졌다. 태평양은 기아자동차 파산 처리와 대우그룹 계열사의 워크아웃 등에 참여했다. 법원에서 분쟁을 처리하던 변호사들이 기업의 재무상태와 채권관계, 구조조정 과정까지 들여다보게 됐다. 이 과정에서 기업회생과 M&A 업무 경험도 쌓였다. 1998년에는 서소문을 떠나 강남 테헤란로로 본사를 옮겼다. 기업과 금융회사들이 모이는 곳으로 로펌의 중심도 이동했다. 태평양이 송무를 중심으로 성장한 법률사무소에서 기업의 거래와 경영 문제까지 다루는 종합로펌으로 몸집을 키우던 때였다. 외환위기는 태평양에 새로운 숙제도 안겼다. 국내 기업을 둘러싼 분쟁의 상대가 외국 기업과 해외 자본으로 넓어지면서 국내 법원만 알아서는 처리하기 어려운 사건이 늘었다. 태평양은 다음 승부처로 국제분쟁을 택했다. ◆ 2002년 국제중재팀 만들고 해외로 태평양은 2002년 국내 로펌 가운데 처음으로 국제중재팀을 만들었다. 당시 국내 기업들의 해외 투자와 수출이 늘면서 계약 분쟁을 해외 중재기관에서 해결하는 사건이 증가하고 있었다. 국제중재가 지금처럼 대형 로펌의 주요 업무로 자리 잡기 전이었다. 2009년에는 현대 측을 대리해 아부다비국영석유투자회사(IPIC)에 넘어갔던 현대오일뱅크 경영권을 국제상업회의소(ICC) 중재를 통해 되찾는 사건에 참여했다. 국제중재팀을 만든 지 7년 만이었다. 기업 간 국제분쟁을 넘어 국가를 상대로 한 투자분쟁으로 업무 범위도 넓어졌다. 대표적인 사건이 론스타 국제투자분쟁(ISDS)이다.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2012년 한국 정부를 상대로 약 6조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하자 태평양은 정부 측 대리를 맡았다. 13년에 걸쳐 진행된 사건은 2025년 원 판정이 취소되면서 한국 정부가 배상 책임에서 벗어나는 결과로 끝났다. 해외 거점도 늘렸다. 2004년 국내 로펌 가운데 처음으로 중국 베이징에 사무소를 열었고 이후 상하이와 홍콩, 하노이, 호찌민, 두바이, 싱가포르 등으로 진출했다. 국내 기업이 해외로 이동하는 곳을 따라 법률서비스의 범위도 넓혔다. ◆ 기업의 싸움이 바뀌자 ‘경영권 분쟁’을 따로 떼냈다 기업분쟁의 양상도 달라졌다. 단순한 계약 위반이나 손해배상 소송을 넘어 기업 지배권을 두고 주주와 경영진, 국내 기업과 해외 펀드가 맞붙는 사건이 늘었다. 태평양이 일찍부터 공을 들인 분야 가운데 하나가 경영권 분쟁이다. 2000년대 초 SK그룹과 소버린자산운용의 경영권 분쟁에서 태평양은 SK 측을 대리했다. 소버린이 최태원 회장을 이사회에서 밀어내기 위해 임시주주총회 소집을 요구하고 법원에 소집 허가까지 신청하자 태평양은 SK 측 변호인단에 참여했다. 법원이 소버린의 신청을 기각하면서 경영권 분쟁은 SK 측에 유리하게 끝났다. 태평양은 2012년 대형 로펌 가운데 처음으로 별도의 경영권 분쟁팀을 만들었다. M&A 변호사와 송무 변호사를 한 조직에 모아 주주총회와 이사회, 가처분, 공개매수 등 경영권 싸움에서 동시에 벌어지는 문제를 처리하도록 했다. 최근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도 참여하며 이 분야를 주요 업무로 이어가고 있다. 경영권 분쟁은 태평양의 출발점이었던 송무와 이후 키운 기업자문이 만나는 분야이기도 하다. 회사법과 자본시장법을 알아야 하고 주주총회를 준비하면서 동시에 법원의 가처분 결정에도 대응해야 한다. 태평양이 오랫동안 두 분야를 함께 키운 효과가 드러나는 시장이다. ◆ 로펌도 회사처럼 운영했다 업무 분야만 넓힌 것은 아니었다. 조직 운영에서도 몇 차례 변화를 먼저 시도했다. 2007년에는 국내 대형 로펌 가운데 처음으로 법무법인(유한)으로 조직을 바꿨다. 법무법인(유한)은 구성원 변호사의 책임을 일정 범위로 제한하고 규모가 커진 로펌을 조직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만든 형태다. 변호사 개인의 사무실을 크게 만든 수준에서 벗어나 수백 명의 전문가가 일하는 조직에 맞는 의사결정 체계를 갖추려는 선택이었다. 공익활동도 조직 안에 넣었다. 2001년 공익활동위원회를 만들었고 2009년에는 공익법률지원 활동을 전담하는 재단법인 동천을 설립했다. 체임버스앤파트너스는 태평양이 국내 로펌 가운데 처음으로 내부 프로보노 조직을 만든 뒤 별도 공익재단까지 설립한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2020년에는 22년간 머물던 강남을 떠나 종로 센트로폴리스로 본사를 옮겼다. 당시 약 650명의 전문가를 포함해 1300여 명이 여러 건물에 나뉘어 근무하던 조직을 한 건물에 모았다. 기업뿐 아니라 정부와 금융기관, 법원 등과의 접근성을 고려한 이전이었다. ◆ 송무와 자문을 함께 키운 46년 태평양의 현재 업무를 보면 처음부터 키워온 송무와 이후 확대한 기업자문이 함께 남아 있다. 체임버스앤파트너스는 2026년 태평양의 기업·M&A와 송무, 조세, 공정거래 등을 국내 주요 분야로 평가하고 있다. 기업·M&A에는 200명이 넘는 변호사가 참여하고 있다. 최근 대형 사건도 한 분야에 몰리지 않는다. 론스타 ISDS와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아일리아 특허 분쟁,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한전KPS 중대재해 사건 등을 맡았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해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형사재판에도 김앤장과 함께 참여해 대법원 무죄 확정까지 변론했다. 실적도 회복됐다. 태평양의 2025년 법무법인 매출은 4402억원으로 2024년 3918억원보다 12.4% 늘었다. 김앤장을 제외한 법무법인 가운데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리며 6년 만에 2위로 올라섰고 올해 상반기 성장률도 약 25%로 주요 대형 로펌 가운데 가장 높았다. 현재 업무집행대표는 이준기 변호사가 맡고 있다. 1996년 태평양에 입사한 이 대표는 M&A와 해외투자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고 삼성·한화 빅딜과 금호타이어 인수 등 대형 거래를 자문했다. 외부에서 경영자를 데려오기보다 조직 안에서 성장한 변호사가 경영을 맡고 있다는 것도 태평양의 세대교체를 보여준다. ◆ 2위 탈환했지만 격차는 사라졌다 매출 2위 복귀만으로 앞으로의 경쟁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2025년 태평양 매출은 4402억원이었지만 세종은 4363억원, 광장은 4309억원이었다. 2위부터 4위까지 불과 93억원 안에 들어와 있다. 한두 건의 대형 사건이나 인재 이동으로 순서가 달라질 수 있는 격차다. 기업 고객의 평가에서도 태평양이 모든 분야를 앞서는 것은 아니다. 한국경제와 한국사내변호사회가 실시한 2025년 조사에서 태평양은 종합과 전문성, 서비스 평가에서 각각 4위를 기록했다. 민사·송무와 형사·수사기관 대응, 조세·관세, 금융 등 주요 분야에서도 4위권이었다. 세종은 최근 공격적인 인재 영입을 바탕으로 매출을 빠르게 늘렸고 광장과 율촌 역시 M&A와 송무, 규제 분야에서 경쟁하고 있다. 대형 로펌 사이의 변호사 이동도 잦아졌다. 태평양이 2025년 되찾은 2위 자리를 지키려면 과거에 쌓은 송무 경쟁력과 최근 확대하는 기업자문을 동시에 끌고 가야 한다. 태평양도 사람을 늘리고 있다. 지난 6월 국내 변호사는 628명으로 1년 전보다 41명 증가해 주요 대형 로펌 가운데 증가 폭이 가장 컸다. AI와 디지털금융, 공급망, 통상, 중대재해 등 새로운 규제 분야에도 별도 조직을 두고 있다. ◆ 국내 법정에서 시작해 바다를 건넜다 태평양의 출발점에는 국제금융 계약서도, 두 대형 로펌의 합병도 없었다. 서울민사지법 부장판사를 지낸 변호사가 1980년 서소문에 연 작은 법률사무소가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송무를 했다. 기업이 커지자 기업자문과 금융, M&A를 붙였고 외환위기가 터지자 구조조정 업무를 키웠다. 국내 기업의 분쟁이 해외로 넘어가자 국제중재팀을 만들었고 기업 경영권을 둘러싼 싸움이 늘자 경영권 분쟁팀을 따로 꾸렸다. 그 과정에서 다른 대형 로펌을 합병하거나 조직을 나눠 새 로펌을 만드는 길을 택하지 않았다. 필요한 분야를 내부에서 만들고 사람을 영입해 조직 안에 쌓았다. 1980년 김인섭 변호사가 말했던 ‘한국적인 국제로펌’도 이런 과정을 거쳐 지금의 태평양으로 이어졌다. 법정에서 출발한 로펌은 이제 국제중재와 M&A, 공정거래, 조세, 기업형사를 함께 다룬다. 태평양이 46년 동안 넓혀온 영역이다.
2026-09-11 09:4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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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은 사람 아닌 제도를 보고 해야 한다
[경제일보] 헌법에는 권력을 주는 조항만 있는 것이 아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그 권력을 자신을 위해 고치지 못하도록 막는 조항도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128조 2항이 그렇다. “대통령의 임기연장 또는 중임변경을 위한 헌법개정은 그 헌법개정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하여는 효력이 없다.” 짧은 한 문장이다. 그러나 이 조항에는 권력과 헌법의 관계에 대한 무거운 원칙이 들어 있다. 헌법을 고칠 수는 있어도 자신을 위해 고쳐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다. 프랑스를 국빈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이 9일 파리 동포간담회에서 자신의 임기를 직접 언급했다. 취임 초 정상외교 일정을 많이 잡은 이유를 설명하면서 “저의 임기는 헌법상 명확하게 제한돼 있기 때문에” 정상외교를 빨리 시작해야 효과를 오래 누릴 수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정상외교에 관한 설명이었지만 정치권에서 대통령 4년 중임·연임제 개헌과 현직 대통령의 향후 거취를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나온 발언이라 주목받았다. 대통령의 말은 원칙적으로 옳다. 현행 헌법은 대통령 임기를 5년으로 하고 중임할 수 없도록 규정한다. 더 중요한 것은 앞서 말한 제128조다. 대통령 임기 연장이나 중임 변경을 위한 개헌은 개헌 제안 당시 대통령에게 효력이 없도록 못 박았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개헌이 현직 권력자의 집권 연장 수단으로 변질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안전장치다. 그런데 최근 개헌 논의는 이 단순한 원칙에서 자꾸 벗어난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대통령 임기를 4년 중임 또는 연임제로 바꾸는 권력구조 개편을 언급하면서 개헌을 위해 필요하다면 자신의 임기를 단축할 수 있다는 기존 입장도 재확인했다. 야권에서는 중임제와 임기 단축이 결합할 경우 현직 대통령의 향후 재출마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반대편에서는 연임제 개헌의 경우 현직 대통령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반론이 나온다. 개헌의 필요성보다 ‘이재명 대통령이 다시 출마할 수 있느냐’가 정치적 관심사가 돼버린 셈이다.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개헌은 대통령 한 사람의 임기를 정하는 작업이 아니다. 앞으로 수십 년 동안 대통령과 국회, 정부와 사법부가 어떤 관계를 맺고 국가 권력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를 결정하는 국가의 기본설계다. 지금 개헌한다면 그 기준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유리한가 불리한가가 아니라 2030년, 2040년의 대한민국에 어떤 권력구조가 필요한가여야 한다. 1987년 헌법이 만들어진 지 거의 40년이 흘렀다. 그동안 대한민국은 크게 변했다. 경제 규모도, 인구 구조도, 지방의 현실도 달라졌다. 대통령과 국회의 관계 역시 1987년과 같지 않다. 5년 단임 대통령제의 장단점도 충분히 경험했다.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다음 선거를 의식해야 하고 임기 후반에는 급격한 레임덕이 나타나는 문제, 국회의원 임기와 대통령 임기가 엇갈리면서 선거가 사실상 상시화되는 문제도 있다. 반대로 4년 중임제는 국민에게 대통령을 한 번 더 평가할 기회를 준다는 장점이 있지만 권력 집중이 장기화할 위험도 있다. 그러니 논의할 것은 많다. 대통령 임기만 고칠 일도 아니다. 대통령의 권한을 어디까지 조정할 것인지, 국회의 견제 기능은 어떻게 강화할 것인지, 국무총리의 역할은 어떻게 할 것인지, 감사원과 검찰·경찰 등 권력기관의 독립성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 지방분권과 기본권, 국민투표와 개헌 절차도 논의 대상이다. 대통령 임기를 5년에서 4년으로 바꾸는 것만으로 대한민국의 권력구조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개헌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사람을 먼저 놓고 제도를 설계하는 일이다. 동양 고전 <한비자>에는 “법불아귀(法不阿貴)”라는 말이 나온다. 법은 귀한 사람에게 아첨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법의 적용이 달라져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다. 2000여 년 전의 말이지만 헌법 논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좋은 헌법은 좋은 지도자를 전제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권력이 일정한 범위 안에서 작동하도록 만드는 것이 좋은 헌법이다. 그래서 헌법 제128조 2항의 정신은 중요하다. 헌법을 고치는 사람이 그 결과의 직접적인 수혜자가 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개헌의 정당성을 지키는 일종의 ‘이해충돌 방지장치’다. 헌법을 바꾸는 정치세력과 그 헌법의 혜택을 받는 정치세력을 분리해야 개헌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생긴다. 여야 모두 이 원칙 앞에서는 한발 물러서야 한다. 여권은 개헌 논의를 현직 대통령의 정치 일정과 연결할 여지를 스스로 차단해야 한다. 야권 역시 모든 개헌 논의를 ‘집권 연장 시도’라고 규정하며 정치적 의심부터 앞세우는 태도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실제 현행 헌법에는 현직 대통령의 임기 연장과 중임 변경을 제한하는 조항이 존재한다. 개헌 논쟁은 그 사실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 대통령도 이번 발언을 한 걸음 더 분명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임기는 헌법상 제한돼 있다”는 언급에서 그칠 게 아니라 개헌으로 만들어지는 새로운 권력구조가 자신의 정치적 거취와 연결되지 않는다는 원칙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그래야 불필요한 논란을 줄이고 개헌 논의를 제도의 문제로 되돌릴 수 있다. 개헌에는 더 중요한 관문도 있다. 헌법 제130조에 따르면 개헌안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하고, 이후 국민투표에서 국회의원 선거권자 과반수가 투표해 투표자 과반수가 찬성해야 확정된다. 어느 한 정당이나 대통령 혼자 밀어붙일 수 없는 구조다. 헌법 자체가 개헌을 ‘합의의 정치’로 설계해 놓은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누가 다음 대통령 선거에 나갈 수 있느냐’를 따질 것이 아니라 ‘어떤 대통령제를 다음 세대에 물려줄 것인가’를 논의해야 한다. 4년 연임제와 중임제의 장단점을 공개적으로 비교하고 대통령·국회·사법부 사이의 권력 배분 방안을 국민 앞에 내놓아야 한다. 필요하다면 여야와 헌법학자,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독립적인 개헌 논의기구를 만들어 쟁점을 정리할 수도 있다. 개헌은 정치공학이 되는 순간 실패한다. 현직 대통령에게 유리하도록 설계해도 안 되고, 현직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만들기 위해 설계해서도 안 된다. 헌법은 특정 정치인을 위한 계약서가 아니라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까지 적용받을 국가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이 파리에서 말한 대로 대통령의 임기는 헌법에 의해 제한된다. 그렇다면 이제 정치권도 그 헌법의 정신을 받아들일 차례다. 사람은 임기가 끝나면 떠난다. 헌법은 남는다. 개헌의 출발점은 바로 그 단순한 사실이어야 한다.
2026-09-10 13: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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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LS·효성 등 재계 총수, 프랑스서 미래산업 협력 논의
[경제일보] 삼성전자·LS·효성 등 주요 기업들이 프랑스 기업들과 인공지능(AI), 양자, 에너지, 모빌리티 등 미래산업 전반에서 협력 확대를 모색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프랑스 국빈방문을 계기로 열린 한-프랑스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에서 양국 기업들은 기술 협력뿐 아니라 투자와 글로벌 시장 진출, 공급망 구축 등 구체적인 사업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9일 산업계에 따르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구자은 LS 회장, 조현준 효성 회장, 류재철 LG전자 사장, 성김 현대자동차 사장 등 국내 주요 기업인들은 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한-프랑스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에 참석했다. AI 분야에서는 삼성전자와 프랑스 AI 기업 미스트랄AI 간 전략적 투자협력 추진 방안이 논의됐다. 네이버와 미스트랄AI 역시 글로벌 시장 공동 진출 방안을 모색했다. 한국 기업의 제조·플랫폼 역량과 프랑스의 AI 기술력을 결합해 사업 영역을 해외로 확장하는 협력 모델이다. 양자 분야에서는 프랑스 양자컴퓨팅 하드웨어 기업 콴델라의 원천기술과 한국의 제조 역량을 결합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양국이 각각 보유한 기술 경쟁력을 연결해 양자컴퓨팅 분야의 사업 기회를 확대하는 협력 모델이 논의됐다. 에너지 분야에서는 프랑스의 전력망 현대화 사업과 국내 전력기기 기업의 기술력을 연계하는 방안이 거론됐다. LS와 효성은 첨단 전력기기 분야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양국 간 에너지 공급망 협력을 강화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모빌리티 분야에서는 현대차와 LG전자가 프랑스 기업과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공유했다. 자동차와 전장·전자 분야에서 양국 기업의 기술과 사업 역량을 결합해 새로운 협력 기회를 발굴하는 방안이 논의됐다. 바이오와 뷰티 분야에서도 기업 간 사업 연계 방안이 제시됐다. 셀트리온의 프랑스 헬스케어 사업 지프레 인수 사례가 양국 기업의 협력 사례로 소개됐다. 로레알의 글로벌 브랜드 경쟁력과 코스맥스의 제품 개발 역량을 결합하는 방안도 거론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양국 기업인들의 의견을 들은 뒤 “한국과 프랑스가 협력할 수 있는 분야가 매우 넓고 다양하다”며 “새로운 분야에서 양국이 연구개발(R&D)과 대규모 투자를 함께 추진한다면 개발 기간을 단축하고 투자 효율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첨단산업만이 아니라 문화·예술 분야 역시 새로운 산업으로 성장할 잠재력이 큰 만큼, 양국이 서로의 강점을 결합한다면 새로운 시장과 기회를 함께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며 “기업 간 협력과 함께 양국 정부 차원에서도 R&D를 비롯한 실질적 협력이 더 확대되길 기대한다”고 했다.
2026-09-09 09:4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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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음악·웹툰·영화 한목소리…K-콘텐츠 11개 협회 AI·IP로 220조원 시대 연다
[경제일보] 게임과 대중음악, 영화·드라마, 웹툰, 출판, 애니메이션 등 국내 콘텐츠산업을 대표하는 11개 협·단체가 처음으로 공동 대응에 나선다. 장르별로 각자 목소리를 내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인공지능(AI)과 디지털 전환, 글로벌 경쟁 심화 등 산업 전반의 공통 현안에 공동 대응하고 국가 차원의 성장산업이자 글로벌 IP 산업으로 키운다는 구상이다. 8일 K-콘텐츠산업협의회는 오는 15일 오전 10시 30분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K-컬처 400조·K-콘텐츠 220조 비전선포식'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이재정 위원장이 주최하고 협의회가 주관하는 이번 행사에서는 오는 2030년 콘텐츠산업의 매출과 수출, 일자리, 기업 수 등 4개 지표별 목표와 이를 달성하기 위한 정책 과제가 공개된다. 이번 공동선언에서는 서로 다른 장르가 하나의 산업이라는 관점에서 공통 과제를 제시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동안 게임·영화·방송·음악·웹툰 등은 제작 방식과 수익구조가 다른 만큼 각각 별도의 정책 틀 안에서 대부분 논의됐다. 다만 생성형 AI의 확산으로 저작권과 학습 데이터 문제가 전 산업의 현안으로 떠오르고, 제작비 상승과 인력 확보, 해외 플랫폼 의존 등도 특정 장르만의 문제가 아닌 공통 과제가 된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콘텐츠산업의 경쟁 환경이 국내 시장에서 글로벌 시장으로 빠르게 이동하면서 장르 간 경계를 넘는 협력의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하나의 작품이나 캐릭터를 영화와 드라마, 게임, 웹툰, 음악, 공연 등으로 확장하는 IP 사업이 중요해지면서 특정 장르의 경쟁력만으로는 글로벌 시장에서 장기적인 수익을 확보하기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콘텐츠산업은 이미 상당한 규모로 성장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2월 발표한 '2024년 기준 콘텐츠산업조사'에 따르면 지난 2024년 국내 콘텐츠산업 매출액은 157조4021억원으로 전년보다 2.1% 증가했다. 같은 기간 콘텐츠산업 수출액은 140억7543만 달러(약 18조9000억원)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사업체 수는 12만875개, 종사자 수는 68만8121명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게임산업은 콘텐츠 수출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지난 2024년 게임산업 수출액은 85억347만 달러(약 12조원)로 전체 콘텐츠산업 수출의 60% 이상을 차지했다. 음악산업 수출액도 18억145만 달러(약 1조6000억원)까지 증가하면서 K-콘텐츠의 해외 영향력이 특정 장르에만 국한되지 않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협의회가 제시하는 오는 2030년 매출 220조원은 현재 수준에서 약 62조6000억원을 추가로 만들어야 하는 목표다. 단순 계산으로 오는 2024년 매출 대비 약 40% 확대가 필요하다. 앞으로 6년 동안 연평균 5% 안팎의 성장을 이어가야 하는 것이다. 지난해 콘텐츠산업 전체 매출 증가율이 2.1%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자연적인 시장 성장만으로 달성하기보다는 수출 확대와 신규 IP 발굴, 산업 간 융합 등을 통한 추가 성장동력이 필요하다. 특히 업계가 주목하는 것은 콘텐츠 IP의 활용 범위를 넓히는 전략이다. 국내 콘텐츠산업이 작품 단위의 일회성 흥행에 머무르지 않고 하나의 IP를 여러 장르와 플랫폼으로 확장할수록 콘텐츠 하나에서 만들어내는 부가가치를 키울 수 있다. 웹툰을 원작으로 드라마를 제작하거나 게임 IP를 애니메이션과 캐릭터 사업으로 확장하는 방식처럼 장르 간 결합이 매출과 수출을 동시에 확대할 수 있는 성장축으로 꼽힌다. AI 역시 새로운 성장 변수다. 생성형 AI를 활용한 기획·제작·번역·현지화·마케팅 등이 확대될 경우 콘텐츠 제작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간과 비용을 낮추면서 해외 시장 진출 속도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결국 220조원 목표의 현실성을 좌우할 핵심은 콘텐츠 생산량 자체가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 얼마나 높은 부가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느냐에 있다. 해외 플랫폼에 콘텐츠를 공급하는 데 그치지 않고 IP를 직접 확보한 뒤 게임·웹툰·영상·음악·캐릭터 등으로 확장하는 사업 구조를 얼마나 만들어내느냐가 중요하다. 이를 위해 협의회는 이번 행사에서 세제와 금융, 법·제도 등 공동 정책 과제도 제시할 예정이다. 콘텐츠 제작에 필요한 자금 조달 구조를 개선하고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동시에 AI 시대에 맞춰 저작권 제도를 정비하는 방안 등이 주요 의제로 다뤄질 전망이다. 구체적인 분야별 목표와 산출 근거는 행사 당일 공개된다. 11개 협·단체의 공식 조직화도 향후 정책 논의에서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협의회는 지난해 5월 발족한 뒤 임의단체 형태로 운영됐으며, 오는 15일 창립총회를 열어 정관을 의결하고 공동대표를 선출할 예정이다. 참여 단체는 대한출판문화협회, 한국게임산업협회, 한국대중음악공연산업협회, 한국대중음악산업협회,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한국모바일게임협회, 한국애니메이션산업협회,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한국웹툰산업협회,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 등이다. K-콘텐츠산업협의회 관계자는 "콘텐츠 전 장르의 협·단체가 하나의 목표를 함께 제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개별 장르의 요구가 아니라 콘텐츠산업 전체가 나아갈 방향을 밝히는 자리"라고 말했다.
2026-09-08 15: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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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점식, 정기국회 대여공세 본격화…'정책 전환' 압박
정점식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8일 취임 후 첫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 나서 이재명 정부의 경제·안보·인사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제1야당의 대여 공세 수위를 끌어올렸다. 치안과 부동산, 주식시장, 법치, 국방, 국가 재정, 국민 안전 등 7대 분야를 중심으로 현 정부 국정운영의 문제점을 짚고 ‘정상화 과제’를 제시했다. 정 원내대표는 "이번 정부에서 개헌은 없다"며 "명백하게 위헌을 저지르고, 개헌으로 사적 이익을 도모하는 세력과 절대로 개헌을 논의하지 않겠다"고 단언했다. 그는 "대통령은 중임제 개헌도 언급했다. 그런데 '연임 안 한다', '재판받겠다'는 말은 절대로 안 한다. 혹시 개헌으로 임기를 연장하고, 이를 통해 재판을 미루겠다는 의도냐"며 이같이 밝혔다. 정 원내대표는 "지금 정부와 여당의 국정과제 1호는 대통령의 자기 죄 지우기"라며 "개헌마저 자기 죄 지우기에 도구로 쓰는 것이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민주당과 완전히 다른 길을 가겠다"며 주요 공약을 제시했다. 정 원내대표는 먼저 6·3 지방선거 때 투표용지 부족에서 비롯한 참정권 침해 사태와 관련, "방만하고 오만한 선거관리위원회를 제대로 감시하겠다"며 "관리도 못 하는 사전선거제도를 전면 폐지하고, 본투표 기간 연장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오는 10월 예정된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와 관련해서는 "민주당은 검찰에 대한 증오와 복수심으로, 전당대회 득표를 위한 탐욕으로 지옥문을 기어이 열고야 말았다"며 "사법 체계의 왜곡은 수사 부실로 이어지고 부실한 수사는 국민의 고통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국민의 안전을 지키겠다. 무너진 치안부터 바로 세우겠다"며 "보완수사권을 부활시키겠다"고 강조했다. 정 원내대표는 부동산 문제와 관련해서도 "대통령은 부동산이 아니라 국민을 잡았다. 대통령은 후보 시절 세금으로 부동산을 잡지 않겠다고 공약했는데 집권 후 정책은 정반대다. '공약사기'"라고 비판하며 전세에 대해서도 "우리가 누렸던 제도의 혜택을 왜 청년세대는 누리지 못하게 하느냐"고 지적했다. 이어 "국민의 주거 사다리를 지키겠다. 민간 재개발·재건축 규제부터 폐지해 주택공급부터 확 늘리겠다. 1가구 1주택자는 세금 걱정하지 않도록 하겠다"며 "청년·신혼부부의 생애최초주택은 취득세를 감면하고 초저금리 대출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정 원내대표는 '롤러코스피' 원인으로 지목된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에 대해서는 "투자 손실은 54조 원에서 56조 원 이상까지도 추산된다"며 "국정조사는 물론 특검까지 해야 한다. 상품 도입에 권력의 압박이 있었는지, 그 압박이 김용범 전 정책실장의 독단인지 윗선이 따로 있는지, 왜 지방선거 직전에 출시됐는지 모두 낱낱이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원내대표는 정부 주도의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투자에 대해서는 "최악의 기업 약탈", "재벌 납치"라고 표현하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특정인을 당선시키고 낙선시키기 위한 전격전이었다"고 비판했다. 이후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법)이 걸림돌이 되자 쟁의 기준을 시행 지침으로 적용하기로 한 데 대해서도 "노란고무줄법"이라고 지적하며 "국민의힘이 노란봉투법에서 원청의 사용자성과 교섭 범위를 명확하게 규정하도록 개정하겠다"고 약속했다. 정 원내대표는 국가채무 증가 속 확장 재정 기조도 지적, "휘발유를 뿌려 불을 끄겠다는 소리다. 미래 대응이 아니라 미래 약탈"이라며 "국가의 재정을 지키겠다. 초과 세수가 생기면 나랏빚부터 갚고 미래세대에 빚을 떠넘기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강화해 정부 개입을 차단하고, 수익성과 안전성을 원칙으로 운용될 수 있게 하겠다"며 "근로소득에 따른 노령연금 감액도 폐지하겠다"고 덧붙였다. 정 원내대표는 외교·안보 문제와 관련해서도 "북한의 도발에 맞서 한미 간 핵 공유,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 F-35 전투기 전술핵 탑재 훈련 등으로 핵 억제력을 확보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대북 정책에 대해선 "대북 굴종 노선은 대국민 사기극으로 시작해서 대국민 인질극으로 끝난 것"이라고, 국방 정책에 대해선 방첩사 해체와 사관학교 통합 등을 언급하며 "국방을 안으로부터 썩어들어가게 할수록 환호하는 사람은 북한 김정은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정 원내대표의 이번 연설은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국민의힘이 정기국회에서 어떤 야당의 모습을 보여줄 것인지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이번 연설을 시작으로 오는 9일부터 대정부질문이 이어지고, 이후 개각 인사청문회까지 예정돼 있어 정기국회 초반부터 여야의 충돌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국민의힘은 정부 정책의 허점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반면 민주당은 국정운영의 성과와 민생 정책을 앞세워 맞설 가능성이 크다.
2026-09-08 10:3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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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IDC, 2026 프레스티지 심포지엄서 노화 기전부터 치료제 개발까지 최신 연구 공유
[경제일보] 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가 노화 기전과 관련 질환을 겨냥한 연구개발 분야로 보폭을 넓히고 있다. 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의 혁신신약 연구개발 자회사인 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IDC는 지난 4일 ‘2026 프레스티지 심포지엄’을 개최했다고 8일 밝혔다. 올해 심포지엄의 주제는 ‘노화 기전 및 노화 관련 질환의 최신 동향(Frontiers in Aging Mechanisms and Age-Related Diseases)’이다. 노화의 기초적인 생물학적 원인을 살펴보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실제 치료제 개발로 연결할 수 있는 방법을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노화는 신체 기능이 점차 떨어지는 현상에 그치지 않는다. 세포와 유전자, 단백질, 대사체 등 신체 전반에서 변화가 누적되면서 각종 질환 발생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최근 신약개발 업계에서는 특정 질환 하나를 치료하는 것을 넘어 노화 과정 자체에 개입해 여러 노화 관련 질환을 동시에 관리할 수 있는 치료 전략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번 행사에서는 노화의 기초 기전부터 실제 신약개발 전략까지 폭넓은 논의가 이어졌다. 특히 올리고핵산 치료제의 발전 가능성이 기조강연에서 주요하게 다뤄졌다. 기조강연에 나선 아서 레빈(Arthur A. Levin) 박사는 올리고핵산 치료제의 발전 과정과 향후 가능성을 소개했다. 올리고핵산은 특정 유전자나 단백질의 발현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질환의 원인에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세대 치료 플랫폼으로 주목받고 있다. 노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유전자 발현 변화 등을 정밀하게 조절할 수 있다면 노화 관련 질환 치료에도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정해영 부산대학교 교수와 이승재 KAIST 교수, 윤진호 동아대학교 교수, 이호영 신테카바이오 수석연구원, 강찬희 서울대학교 교수, 류동렬 GIST 교수, 이재원 부산대학교 교수, 권기선 아벤티 대표 등이 참여해 노화와 관련된 다양한 연구성과를 공유했다. 연구 주제도 한 분야에 국한되지 않았다. 노화의 유전적·분자적·대사적 기전에서부터 노화 관련 질환에 대한 연구와 치료제 개발 전략까지 다양한 관점에서 논의가 이뤄졌다. 이는 노화 연구의 특징을 보여준다. 노화는 특정 하나의 원인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만큼 유전자와 세포, 대사 등 여러 분야의 연구를 동시에 결합해야 한다. 신약으로 개발하기 위해서는 기초과학 연구뿐 아니라 후보물질 발굴과 검증, 임상개발까지 이어지는 협력 구조가 중요하다. 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IDC는 이번 심포지엄을 계기로 학계와 산업계 간 연구 협력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고상석 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IDC 대표이사는 “이번 심포지엄은 노화의 근본적인 기전에서부터 실제 신약개발로 이어지는 다양한 연구성과를 한자리에서 공유하고 새로운 치료 가능성을 함께 논의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앞으로도 국내외 연구자 및 산업계와의 교류를 지속적으로 확대해 노화 질환의 연구성과가 혁신적인 치료제 개발로 이어질 수 있도록 협력 기반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2026-09-08 08:5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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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계 은행 자문에서 국내 최대 로펌까지…김앤장 53년
[경제일보] 김앤장은 법정이 아니라 기업의 계약서에서 출발했다. 1973년 김영무·장수길 변호사가 문을 연 김·장 법률사무소의 초기 고객은 한국에 진출한 외국계 은행이었다. 국내 은행과 기업이 해외에서 자금을 빌릴 때 계약서를 검토하고 외국 기업의 국내 투자를 자문했다. 변호사의 주된 무대가 법정이던 시절, 김앤장은 기업의 거래 현장으로 먼저 들어갔다. 53년이 지난 지금 김앤장은 국내 최대 로펌이다. 변호사만 1400명이 넘고 변호사를 포함한 법률전문가는 2000명을 웃돈다. 2025년 매출은 업계에서 1조6000억~1조7000억원 수준으로 추산한다. 2위권 대형 로펌과도 상당한 격차를 두고 있다. 처음부터 이런 규모였던 것은 아니다. 김앤장보다 먼저 기업법무 시장에 자리 잡은 법률사무소도 있었다. 김앤장이 선두로 치고 올라온 과정에는 한국 기업이 다음에 필요로 할 법률서비스를 먼저 준비하는 방식이 있었다. ◆ 판·검사 대신 기업법무 택한 김영무 창업자 김영무 변호사의 이력부터 당시 법조계의 통상적인 경로와 달랐다. 1964년 제2회 사법시험에 합격했지만 판사나 검사가 되지 않았다. 서울대 사법대학원을 거쳐 미국으로 건너가 시카고대 로스쿨에서 비교법을 공부했고 하버드 로스쿨에서 J.D. 학위를 받았다. 1970년에는 미국 일리노이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1970년대 한국 기업들은 해외 자본을 끌어들이며 빠르게 성장했다. 차관을 들여오고 외국 회사와 합작법인을 세우면서 계약도 복잡해졌다. 국내법뿐 아니라 외국법과 국제거래에 익숙한 변호사가 필요해지기 시작했다. 김영무 변호사는 이 시장을 파고들었다. 법정에서 이미 벌어진 분쟁을 해결하는 것보다 기업이 거래를 하기 전 계약을 짜고 위험을 줄이는 업무에 무게를 뒀다. 지금은 흔한 기업법무지만 당시에는 새로운 시장이었다. 장수길 변호사의 합류는 김앤장의 빈 곳을 채웠다. 장 변호사는 고등고시를 거쳐 서울민사지법과 서울형사지법원 판사를 지냈다. 김영무 변호사가 국제거래와 기업자문을 맡았다면 장 변호사는 송무와 중재, 지식재산권을 담당했다. 김앤장이라는 이름은 두 사람의 성에서 따왔다. ◆ 기업이 해외로 나가자 로펌도 따라갔다 김앤장의 성장은 한국 기업의 해외 진출과 궤를 같이했다. 1970~1980년대 해외 차관과 외국인 투자가 늘면서 국제금융과 외국인투자 업무가 커졌다. 기업들이 합작회사를 만들고 해외 자본을 끌어들이면서 김앤장이 일찍 쌓은 국제거래 경험을 찾는 기업도 늘었다. 1976년 합류한 정계성 변호사는 금융 분야를 맡았다. 공기업과 기업의 해외 차입, 국제자본시장 업무를 담당했고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때 기업의 외자유치와 금융거래를 자문했다. 1980년 입사한 정경택 변호사는 외국인 투자와 M&A, 공정거래 분야를 키웠다. 1983년 GM과 대우자동차의 합작투자, 1991년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의 쌍용정유 지분 인수, 1997년 미국 P&G의 쌍용제지 인수 등 국내 기업법무 시장의 굵직한 거래에 참여했다. 기업의 거래 방식이 바뀔 때마다 김앤장의 조직도 달라졌다. 기업들이 해외에서 돈을 빌리자 금융 전문가가 늘었고 외국 기업의 국내 진출이 많아지자 외국인투자 분야를 키웠다. M&A가 활발해지자 기업거래 변호사를 늘렸고 공정거래 규제가 강화되자 경쟁법 전문가를 붙였다. 김앤장이 몸집을 키운 과정은 변호사를 무작정 늘린 역사와는 거리가 있다. 시장이 먼저 움직였고 그 시장에 맞춰 사람을 채웠다. ◆ 유명 변호사 한 명보다 팀으로 승부 김앤장의 또 다른 특징은 사건을 맡는 방식이다. 대형 사건을 이름난 변호사 한 명에게 맡기기보다 사건 성격에 따라 여러 분야의 전문가를 한 팀으로 묶는다. M&A 사건이라면 기업법무 변호사뿐 아니라 공정거래와 금융, 조세, 노무 전문가가 함께 들어간다. 규제가 걸린 산업에서는 해당 부처나 감독기관을 경험한 전문가도 참여한다. 현재 김앤장 공정거래 분야에는 국내외 변호사와 경제학자, 산업 전문가, 전직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 등 150명 넘는 전문인력이 참여하고 있다. 자본시장 분야에도 80명 이상의 전문가가 포진해 있다. 기업 입장에서 대형 로펌을 찾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수천억원, 수조원이 오가는 거래나 회사의 존립이 걸린 사건에서는 법률 하나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공정거래와 세금, 노동, 인허가 문제가 동시에 터진다. 김앤장은 이를 한 조직 안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인력을 만들어왔다. 젊은 변호사를 키우는 방식에도 일찍부터 해외 경험을 넣었다. 파트너와 후배 변호사가 함께 사건을 맡게 하고 해외 로펌 연수도 활용했다. 정계성 대표도 1982~1983년 미국 뉴욕 셔먼앤드스털링에서 실무를 익혔다. 사건을 맡아 경험을 쌓고 해외에서 새로운 거래 방식을 익힌 변호사들이 돌아와 다시 큰 사건을 맡았다. 이 과정이 수십 년 반복되면서 분야별 전문인력이 쌓였다. ◆ 외환위기, 김앤장이 한 단계 커진 시기 1997년 외환위기는 한국 기업의 지형을 뒤흔들었다. 기업들이 자산을 팔고 외국 자본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부실기업 구조조정과 기업 매각, 외자유치가 한꺼번에 쏟아졌다. 해외 자본과 국내 기업 사이에서 거래 조건을 만들고 정부 규제를 검토할 법률전문가의 역할도 커졌다. 김앤장은 외환위기 이전부터 국제금융과 외국인투자 업무를 다뤄왔다. 국내 기업들이 급하게 해외 자본을 찾기 시작했을 때 이미 관련 업무를 해본 변호사들이 있었다. 외환위기 이후 국내 M&A 시장이 커지면서 김앤장의 업무도 금융과 외국인투자에서 M&A, 공정거래, 조세, 구조조정으로 빠르게 넓어졌다. 김앤장 연혁에는 이 무렵 국내 로펌 가운데 처음으로 변호사 수가 100명을 넘어섰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대형 거래를 맡으면서 경험이 쌓였고 그 경험을 보고 또 다른 기업이 찾아왔다. 새로운 사건이 들어오면 다시 전문인력을 늘렸다. 김앤장이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국내 기업법무 시장의 선두로 올라선 배경이다. ◆ 계약서에서 시작해 기업 형사사건까지 반세기가 흐른 지금 김앤장이 맡는 사건의 규모는 달라졌다.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과정에서는 14개국 경쟁당국의 기업결합 심사가 필요했다. 김앤장은 4년여에 걸친 기업결합 심사와 항공 관련 인허가 자문에 참여했다. SK하이닉스의 인텔 낸드플래시 사업 인수와 삼성바이오로직스 인적분할, 한앤컴퍼니의 SK스페셜티 인수 등 조 단위 거래에도 이름을 올렸다. 2026년 상반기 국내 M&A 법률자문 시장에서는 자문금액 26조3406억원, 68건으로 1위를 기록했다. 금액 기준 시장점유율은 33.27%였다. 기업자문에서 출발했지만 송무와 기업형사 분야에서도 대형 사건을 맡는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해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형사재판에 참여해 1·2·3심 무죄 판결을 받았다. SK실트론 사건에서는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 처분을 취소하는 대법원 판결을 이끌어냈다. 승소 기록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구글과 메타가 개인정보보호위원회를 상대로 낸 과징금 취소소송에서는 청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973년 외국계 은행의 계약서를 검토하던 법률사무소의 업무는 이제 M&A와 공정거래, 국제중재, 개인정보, 기업형사로 넓어졌다. 기업이 겪는 문제가 복잡해지면서 로펌이 다루는 영역도 함께 넓어진 것이다. ◆ 커진 영향력, 커진 감시 국내 최대 로펌이라는 자리는 사건만 많이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기업이나 기업인이 정부 조사와 형사사건에 직면하면 김앤장을 찾는 경우가 많다. 법원과 검찰, 정부 부처와 규제기관 출신 전문가도 적지 않다. 김앤장의 사건 대응력이 높아지는 만큼 전관과 이해충돌을 둘러싼 논란도 따라붙는다. 2025년 공정거래위원회 직원의 외부인 접촉 보고 가운데 김앤장 관련 보고는 로펌 중 가장 많은 363건이었다. 접촉 보고는 사건 관계인과의 만남 자체를 기록하는 제도여서 이 숫자가 곧 부적절한 접촉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규제기관 출신 인력을 대거 보유한 로펌이 해당 기관의 규제를 받는 기업을 대리하는 문제는 늘 감시 대상이 된다. 김앤장이 커질수록 사건 수임 못지않게 이해충돌 관리와 전관 논란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도 중요해졌다. 고객 평가 역시 전문성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한국경제와 한국사내변호사회가 실시한 2025년 조사에서 김앤장은 종합평가와 전문성 부문에서 1위에 올랐다. 서비스 평가는 3위였고 소송비용의 합리성은 6위였다. 복잡한 사건에 여러 분야의 전문인력을 투입하는 방식은 강점이지만 비용이 높다는 평가도 피하기 어렵다. 압도적인 규모가 항상 고객 만족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 시장이 열리기 전에 사람을 준비했다 김앤장의 53년을 보면 몇 번의 중요한 갈림길이 있었다. 기업이 해외에서 돈을 빌리기 시작할 때 국제금융을 키웠고 외국 자본이 국내로 들어올 때 외국인투자 업무를 늘렸다. 기업 인수·합병이 본격화되기 전에 M&A 전문가를 확보했고 공정거래 규제가 강해지자 경쟁법 인력을 늘렸다. 지금은 AI와 데이터, 공급망, 경제안보, 글로벌 통상, 기업지배구조가 기업법무의 새로운 시장으로 들어오고 있다. 김앤장도 이 분야에 전문조직과 인력을 늘리고 있다. 김앤장이 53년 동안 한 선택을 한 문장으로 줄이면 복잡하지 않다. 기업이 법률 문제에 부딪힌 뒤 변호사를 찾았다면 김앤장은 그보다 먼저 그 문제를 다룰 사람을 준비했다. 1973년 외국계 은행의 계약서에서 시작한 김앤장이 국내 최대 로펌으로 성장한 데에는 그 시간차가 있었다.
2026-09-08 08:3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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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에 된다고 다 해도 되나…공직자의 '공정 감수성'이 무너지고 있다
[경제일보] 공직은 권리가 아니라 책임이다. 법이 허용한다고 해서 모두 해도 되는 자리도 아니다. 공직자와 공직후보자에게는 법률의 최소 기준을 넘어 국민의 눈높이와 상식이라는 더 높은 잣대가 따라붙는다. 최근 잇따른 논란은 이 당연한 원칙을 다시 묻게 한다. 추미애 경기도지사는 지난달 ‘재정 비상상황’을 선언했다. 경기도는 재정난을 이유로 5465억원 규모의 세출 구조조정에 나섰고, 직원들에게도 고통 분담을 주문했다. 그런데 추 지사가 도청 인근 156㎡ 아파트를 12억2000만원에 전세 계약한 관사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경기도는 업무 효율을 위해 관련 규정에 따라 계약했고, 계약 당시에는 재정 상황의 심각성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규정을 어겼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문제는 상징이다. 직원들에게 허리띠를 졸라매라고 하면서 최고 책임자가 상대적으로 넓고 비싼 관사를 사용하는 모습이 국민에게 어떻게 비칠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된다. 재정 비상이 정말 심각하다면 먼저 줄여야 할 비용이 무엇인지 지도자가 보여주는 것이 순리다. 조직은 말보다 행동을 먼저 본다.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의 비례대표 의원직 겸직 논란도 비슷한 질문을 던진다. 법적으로 겸직이 가능한지 여부와 국민이 이를 공정하다고 받아들이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공직은 가능한 권리를 최대한 누리는 자리가 아니라 스스로 제한할 줄 아는 자리여야 한다.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 치료제 임상시험 승인과 관련해 식약처장에게 신속한 처리를 요청하는 취지의 문자를 보낸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김 후보자는 민원 전달일 뿐 부정한 로비는 없었다는 입장이다. 현 단계에서 위법을 단정해선 곤란하다. 그렇지만 국회의원의 문자 한 통이 평범한 민원인의 전화 한 통과 같은 무게일 리는 없다. 의원은 법을 만들고 예산을 심사하며 정부기관을 감사하는 사람이다. 그 지위에서 “빨리 처리해달라”는 말은 의도와 무관하게 행정기관을 압박하는 신호로 읽힌다. 이 세 사례의 성격은 서로 다르다. 하나는 관사, 하나는 겸직, 하나는 민원 전달 문제다. 공통점은 분명하다. 모두 법 위반 여부를 따지기 전에 공직자의 자기 절제가 충분했는지를 묻게 한다. 정치권은 이런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규정에 따른 것이다” “관행이었다”고 설명한다. 틀린 말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이 공직자에게 요구하는 기준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논어>의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는 뜻이다. 공직 윤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직원들에게 긴축과 희생을 요구한다면 자신부터 절제해야 하고, 국민에게 공정한 절차를 요구한다면 자신도 권력의 지름길을 경계해야 한다. 최근 여론 흐름도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한국갤럽의 지난 1~3일 조사에서 이재명 대통령 직무수행 긍정 평가는 40%, 부정 평가는 51%였다. 20대 긍정 평가는 25%로 전주보다 6%포인트 떨어졌다. 부정평가 이유에서는 ‘인사’가 9%로 올라섰다. 한 번의 조사 결과만으로 인과관계를 단정할 수는 없지만, 최근 인사 논란이 특히 청년층의 공정 감수성을 건드렸다는 정치권의 해석에는 귀 기울일 대목이 있다. 2030 세대가 특권 문제에 민감한 이유는 단순하다. 취업과 주거, 자산 형성에서 치열한 경쟁을 겪는 세대에게 ‘누군가는 자리도 갖고, 혜택도 갖고, 인맥도 활용한다’는 인상은 강한 박탈감으로 돌아온다. 공직자가 이를 “법적으로 가능하다”는 말로 넘기면 민심과 더 멀어진다. 정치는 법률가의 시험 문제가 아니다. 무엇이 합법인지뿐 아니라 무엇이 적절한지를 판단해야 하는 영역이다. 규정상 가능하더라도 국민의 신뢰를 해친다면 스스로 한 발 물러설 줄 알아야 한다. 특히 장관과 도지사, 국회의원처럼 권한이 큰 자리일수록 기준은 엄격해져야 한다. 권력이 크면 책임도 커진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다. 공직 후보자 검증도 달라져야 한다. 재산과 세금, 전과 여부만 확인하는 방식으로는 부족하다. 이해충돌 가능성, 특혜의식, 권한 행사 방식, 공적 자원을 대하는 태도까지 함께 봐야 한다. 결국 국민이 묻는 것은 ‘법을 어겼느냐’만이 아니라 ‘이 사람이 공직을 맡을 자세가 돼 있느냐’이기 때문이다. 정권의 인사는 능력만으로 성공하지 않는다. 도덕성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권력을 어떻게 사용할 사람인가에 대한 신뢰가 함께 있어야 한다. 지금 공직사회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해명이 아니다. 법과 규정을 내세우기 전에 스스로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선택을 하는 문화다. 특권처럼 보이는 관사는 줄이고 이해충돌의 여지가 있는 자리는 내려놓고 권한 있는 사람의 전화 한 통도 조심하는 것이다. 이런 작은 절제가 쌓여 공직의 신뢰가 만들어진다. 공직은 가능한 것을 모두 누리는 자리가 아니다. 할 수 있어도 하지 않는 절제, 누릴 수 있어도 내려놓는 태도에서 공직의 품격이 드러난다.
2026-09-07 14: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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