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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으로 조종하는 딱정벌레 로봇…걷고 집고 접촉까지 감지
[경제일보] 손가락을 굽혀 작은 로봇을 움직이고, 로봇이 보내오는 영상과 접촉 정보를 보며 물건을 집어 옮기는 기술이 나왔다. 딱정벌레의 움직임을 본뜬 인공근육에 카메라와 압력센서를 결합한 ‘비틀봇(BeetleBot)’이다. 걷기와 물체 집기, 감지, 사용자 제어를 한 시스템으로 연결해 소형 소프트로봇의 원격 작업 가능성을 보여줬다. KAIST는 신소재공학과 김상욱 교수 연구팀이 미국 캘리포니아공과대학교(칼텍) 웨이 가오 교수팀, 싱가포르 난양공과대학교(NTU) 히로타카 사토 교수팀과 공동으로 비틀봇을 개발했다고 13일 밝혔다. 연구진은 사용자가 로봇의 카메라 영상과 센서 정보를 확인하며 장애물을 피해 목표 물체에 접근하고, 이를 집어 운반하는 작업을 시연했다. 소프트로봇은 부드럽고 변형 가능한 소재를 이용해 움직이는 로봇이다. 주변 물체와 유연하게 상호작용할 수 있지만, 움직이는 장치와 센서·제어계를 작은 몸체에 함께 넣는 데 어려움이 있다. 이번 연구는 생물의 근육과 감각, 신경계처럼 여러 기능이 맞물려 작동하는 구조를 구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출발점은 실제 딱정벌레의 다리였다. 연구팀은 근육의 배치와 관절 움직임을 분석해 로봇의 다리 구조에 반영했다. 3D 프린팅한 골격에 열을 받으면 수축하는 고분자 소재 ‘액정탄성체(LCE)’로 만든 인공근육을 결합했다. 전기로 열을 발생시키면 인공근육이 수축하며 다리를 움직인다. 어느 부위에 전기를 공급할지와 작동 순서를 조절해 전진과 방향 전환을 구현했다. 모터와 기계식 연결장치의 역할을 소재의 변형으로 수행하고, 인쇄한 유연한 회로로 각 근육을 독립적으로 제어하는 방식이다. 물체를 잡는 집게는 딱정벌레가 먹이를 붙잡는 큰턱에서 착안했다. 부드러운 집게인 ‘소프트 그리퍼’에 인공근육과 압력센서를 함께 넣어 물건을 잡는 동작과 접촉 상태 확인을 연결했다. 압력이 가해지면 센서 내부 전극 사이의 간격과 전기적 특성이 달라져 접촉 정보를 얻는다. 조종 장치는 손가락에 붙이는 신축성 센서 패치다. 손가락을 굽혀 패치가 늘어나면 내부 탄소나노튜브(CNT)의 전도 경로가 변하며 전기저항이 달라진다. 연구팀은 이 신호를 전진·좌회전·우회전·물체 집기 등 네 가지 명령으로 구분해 블루투스로 로봇에 전달했다. 사용자는 소형 카메라의 영상으로 주변을 살피고 집게의 압력 정보로 물체와의 접촉 상태를 확인한다. 그 결과를 보고 손가락으로 다음 명령을 보내는 구조다. 로봇에 명령을 보내는 과정과 로봇이 감지한 정보를 받아 판단하는 과정이 이어지는 ‘양방향 피드백’을 구현했다. 이러한 구성은 로봇이 보내는 정보를 이용해 사람이 작업을 조정하는 원격 조종에 활용될 수 있다. 연구진은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좁은 공간 탐사와 작은 물체 회수, 산업 설비 점검 등을 향후 적용 분야로 제시했다. 실험 구성에는 실제 현장으로 옮기기 위해 개선할 요소도 드러난다. 논문에 따르면 로봇은 외부 전원공급장치에 연결해 구동했으며, 활성화된 인공근육 영역의 국소 표면온도는 100도를 넘었다. 연구진은 더 낮은 온도에서 움직이는 소재나 다른 구동 방식을 도입해 응답 속도를 높이고 열 요구량을 줄이는 방향을 후속 연구로 제시했다. 연구 결과는 지난 8월 19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게재됐다. KAIST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연구 당시 칼텍 박사후연구원으로 재직한 김인호 성균관대 화학과 교수가 제1저자로 참여했다. 김상욱 교수와 웨이 가오 교수는 공동 교신저자를 맡았다. 김상욱 교수는 “이번 연구는 인공근육의 움직임과 감각, 사용자 제어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결해 소프트로봇의 활용 가능성을 넓힌 성과”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구동 속도와 에너지 효율, 전원 공급 방식을 개선하고 실제 작업 환경에서 성능을 검증할 계획이다. 피지컬 AI와 접목해 주변 환경과 물체의 특성에 맞춰 움직이는 로봇으로 발전시키는 연구도 추진한다.
2026-10-13 11: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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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웨어 사고 레슨 받고 미식까지…유통가가 노리는 '골퍼의 하루'
[경제일보] 골프 성수기인 가을을 맞아 유통업계가 골퍼의 하루를 둘러싼 소비 공략에 나서고 있다. 무더위가 한풀 꺾이며 라운딩 수요가 살아나자 패션·백화점·식품업체는 일상에서도 입을 수 있는 골프웨어부터 라운딩 전 쇼핑과 레슨, 골프장에서 즐기는 식사까지 골프 전후의 소비 접점을 넓히며 가을 골프 수요 선점에 나서는 모습이다. 필드에서 일상까지…LF, '입는 시간' 늘린다 LF의 골프웨어 브랜드 헤지스골프는 2026년 가을·겨울(FW) 시즌 '퍼피 아뜰리에' 컬렉션을 출시했다. 이번 컬렉션은 골프웨어의 활용 범위를 필드 밖 일상까지 넓힌 것이 특징이다. 헤지스골프는 이를 위해 팬츠에 전형적인 퍼포먼스 골프웨어에서 주로 사용하는 기능성 소재 대신 자연스러운 표면감과 착용감을 갖춘 스트레치 소재를 적용하고 쿼터집 맨투맨 등 일상에서도 부담 없이 입을 수 있는 제품을 확대했다. 브랜드가 내세운 방향은 '소프트 퍼포먼스(Soft Performance)'다. 골프웨어에 필요한 기능은 유지하면서 평상시에도 어색하지 않은 캐주얼한 디자인을 적용해 필드와 일상 사이의 경계를 낮춘다는 의미다. 헤지스의 상징인 영국 사냥개 '잉글리쉬 포인터'도 아우터·스웨터·티셔츠·맨투맨·팬츠 등으로 확대 적용했다. △자수와 원단 위에 장식을 덧붙이는 '와펜' △색실을 짜 넣어 무늬를 만드는 '인타샤' △원단에 디자인을 직접 인쇄하는 '디지털 텍스타일 프린팅(DTP)' 등 다양한 기법으로 강아지 모티브를 표현하며 골프웨어에도 뚜렷한 시각적 정체성을 입혔다. 이처럼 강아지 모티브를 전 제품군으로 확대한 데에는 앞선 시즌의 긍정적인 판매 반응이 영향을 미쳤다. 헤지스골프가 올해 봄·여름(SS) 시즌 선보인 강아지 그래픽 '로얄 캡슐 컬렉션'이 특히 30대 여성 고객을 중심으로 판매 호조를 보이자 LF는 이를 반영해 26FW 관련 여성 골프웨어 스타일 수를 26SS보다 약 40% 확대했다. LF 관계자는 "헤지스를 대표하는 상징인 잉글리쉬 포인터를 골프웨어만의 방식으로 정교하게 재해석해 헤지스골프만의 디자인 요소와 브랜드 정체성을 지속적으로 축적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장비 사러 갔다 레슨까지…백화점도 '라운딩 준비' 잡는다 가을 골프 수요가 살아나자 백화점도 관련 상품 판매와 체험 콘텐츠를 묶어 골퍼 공략에 나섰다. 신세계백화점은 골프웨어·용품 할인에 프로 골퍼 레슨과 골프 필라테스 등을 더해 쇼핑과 체험 수요를 함께 끌어들이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오는 20일까지 전 점포에서 '골프 페어'를 열고 골프웨어·골프용품 할인과 구매 금액별 사은 혜택 등을 선보이며 행사 물량도 지난 봄 골프 행사보다 30% 확대했다. 가을 골프 수요도 실제 매출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24일부터 이달 6일까지 신세계백화점 골프용품 매출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40.9% 늘었다. 8월 하순까지 이어졌던 무더위가 누그러지면서 미뤄뒀던 라운딩 수요가 본격적으로 움직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행사에는 제이린드버그, 나이키골프, 캘러웨이, 빈폴골프, 데상트골프, 말본골프 등이 참여한다. 강남점에서는 프리미엄 골프 브랜드 마제스티의 55주년 한정판을 글로벌 최초로 선보이고 센텀시티에서는 골프와 아트를 결합한 브랜드 '욜프'의 FW 신상품도 판매한다. 백화점 안에서 골프를 배우는 콘텐츠도 늘렸다. 고진영·임진한·이가영·함정우 프로 등이 참여하는 원포인트 레슨과 필드 레슨, 골프 강연을 마련하고 신세계백화점 아카데미에서는 비거리와 스윙 향상, 부상 예방 등을 다루는 '골프 필라테스 레슨'을 전국 주요 점포 7곳에서 진행한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본격적인 가을 골프 시즌을 맞아 인기 골프 브랜드와 쇼핑 혜택을 한데 모았다"며 "브랜드 할인과 사은 혜택에 프로 골퍼 클래스, 골프 필라테스 등 체험형 콘텐츠까지 더해 가을 골프 수요를 폭넓게 공략하고 있다"고 말했다. 18홀 돌고 '나고야 우동'…골프장 식사도 콘텐츠 라운딩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의류·용품과 체험 소비가 이어진다면 골프장 안에서는 식음 서비스가 또 다른 소비 영역을 형성한다. 아워홈은 국내 골프장에서 운영하는 프리미엄 식음 브랜드 '그린 라운지'를 통해 계절별 메뉴를 선보이며 골퍼의 식사 경험까지 공략하고 있다. '그린 라운지'는 세계 각국의 음식과 전통 한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제공하는 골프장 전용 브랜드다. 이번 가을에는 'The Leaves of Nagoya(다홍빛 색채로 가득한 나고야의 가을)'를 콘셉트로 △한우불고기 니꾸우동 △통새우튀김 미소니모키 우동 △명란 아보카도 덮밥 등 일본 나고야에서 착안한 메뉴 3종을 내놨다. △누룩소금 민물장어구이 △장어탕 한상차림 △낙지 애호박 초무침 △매콤대창 △로제새우 반반 떡볶이 등 제철 식재료를 활용한 한식 신메뉴 8종도 함께 출시했다. 신메뉴는 베뉴지CC, 화성상록GC, 진양밸리CC 등 아워홈이 운영하는 국내 골프장 스타트하우스와 클럽하우스 17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 같은 메뉴 구성은 아워홈이 시즌마다 선보이는 '골프 트립' 콘셉트의 연장선이다. 세계 각국의 음식과 전통 한식을 계절에 맞게 재해석해 라운드 중간이나 전후 허기를 채우는 식사를 넘어 계절감과 여행 분위기까지 즐길 수 있는 미식 경험으로 확장하고 있다. 아워홈 관계자는 "이번 가을 시즌에는 일본 나고야의 가을 분위기를 담은 메뉴와 제철 식재료를 활용한 한식 메뉴를 함께 구성해 골퍼들의 미식 경험을 강화했다"며 "앞으로도 계절별 특색을 반영한 메뉴를 지속적으로 선보이며 그린 라운지만의 프리미엄 식음 경쟁력을 높여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유통업계가 주목하는 골프 소비 시간은 갈수록 길어지는 양상이다. 일상 활용도를 높인 골프웨어부터 백화점의 의류·용품 판매와 체험형 콘텐츠, 골프장 내 식음 서비스까지 관련 소비가 여러 영역으로 세분화되는 모습이다.
2026-09-12 1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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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16년째 결론 못 낸 '증도가자'…재검증도 '끝낼 날짜' 없다
[경제일보] 고려 금속활자 ‘증도가자(證道歌字)’를 둘러싼 국가유산 지정 논란이 16년째 이어지고 있다. 2010년 처음 공개된 뒤 국가유산 지정 신청과 여러 차례 조사를 거쳐 2017년 보물 지정이 부결됐지만 당시 조사와 심의 과정은 이후 다시 감사 대상에 올랐다. 국가유산청은 이제 전국에 흩어진 증도가자 계열 금속활자를 한꺼번에 모아 다시 조사할 계획이다. 9일 본지가 확보한 국가유산청의 「‘증도가자’ 일괄공모를 통한 조사·지정 계획(안) 보고」에는 16년간 이어진 증도가자 논란을 다시 검증하기 위한 전국 단위 조사 계획이 담겼다. 국가유산청은 올해 9월 일괄공모를 시작해 기초조사와 과학·인문조사, 종합평가를 거쳐 국가유산 지정 여부를 다시 검토할 방침이다. 그러나 조사를 언제까지 마치고 국가유산위원회 심의를 거쳐 최종 판단을 내릴지에 대한 일정은 담기지 않았다. 증도가자가 공개된 지 16년, 국가유산 지정 절차가 시작된 지도 15년이 흘렀다. 2017년 한 차례 결론을 냈지만 그 판단 과정까지 다시 검증대에 올랐다. 국가유산청이 새로운 방식의 재조사를 택한 만큼 이번에는 조사 단계에서 머물지 않고 결과에 따른 지정 판단까지 이어지는 시간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직지보다 최소 138년 앞선 시기 증도가자는 고려시대 불교서적 ‘남명천화상송증도가’를 찍는 데 사용됐다는 주장이 제기된 금속활자다. 현재 전하는 증도가는 고려 고종 때인 1239년 목판으로 찍은 책이다. 책에는 앞서 금속활자로 찍은 책을 바탕으로 목판을 다시 새겼다는 취지의 기록이 남아 있다. 문제의 활자가 당시 증도가를 찍는 데 사용된 금속활자로 확인되면 제작 시기는 1239년 이전으로 올라간다.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찍힌 ‘직지심체요절’보다 최소 138년 앞선다. 직지가 금속활자로 인쇄한 책으로 남아 있다면 증도가자는 당시 사용한 금속활자 실물을 놓고 진위와 제작 시기를 따지고 있다는 차이가 있다. 증도가자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2010년이다. 이듬해 다보성 측이 소장한 활자 101점에 대한 국가유산 지정 절차가 시작됐다. 첫 판단은 6년 뒤인 2017년에 나왔다. 문화재위원회는 당시 증도가자 101점의 보물 지정을 부결했다. 글씨체와 활자의 제작 방식, 책을 찍을 수 있도록 활자를 배열하는 ‘조판’ 등을 검토했지만 해당 활자를 증도가 인쇄에 사용한 활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출처와 소장 경위가 충분히 확인되지 않았고 관련성이 거론된 청동 수반과 초두를 함께 비교하지 못한 점도 부결 사유에 포함됐다. ◆ 부결 뒤에도 이어진 문제 제기…결국 다시 감사대로 2017년 부결 이후에도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다보성갤러리 김종춘 회장은 당시 조사와 심의 과정에 문제가 있다며 관련 자료와 연구 결과를 모아 재검증을 요구했다. 2023년 감사원에 감사제보가 접수됐고 감사원은 지난해 이 사안을 국가유산청으로 넘겼다. 국가유산청은 올해 1월 자체감사를 실시해 2월 결과를 통보했다. 자체감사는 2017년 결론 자체보다 그 결론을 만드는 데 사용된 조사 방법과 심의자료를 다시 들여다봤다. 활자가 실제 책을 찍는 데 맞는 크기였는지를 판단한 방법, 비교자료의 수치가 보고서에 제대로 반영됐는지, 문화재위원들이 추가 자료를 충분히 검토했는지 등이 대상에 포함됐다. 감사 관련 문서에는 당시 문화재위원회 보고자료를 놓고 ‘왜곡 설명(치수 차이 등)’이라는 표현도 등장한다. 비교자료인 석보상절 활자본과 번각본 사이의 광곽 수축 수치가 분석보고서에서 빠졌다는 내용도 담겼다. 국가유산청은 감사 과정에서 새로 적용된 통계 분석 역시 적절하지 않다고 보고 다시 분석했다. 2017년 검증 방식에 대한 지적과 이를 다시 살피는 과정에서 사용된 분석 방법을 둘러싼 반론이 맞선 것이다. 이후 국가유산청은 특정 소장품만 따로 살피던 방식에서 벗어나 전국에 있는 증도가자 계열 활자를 한꺼번에 모아 같은 기준으로 비교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한 차례 내린 판단의 과정까지 다시 감사하고 조사 방식을 새로 짰다는 점은 이번 재검증의 성격을 보여준다. 과거 논쟁을 반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16년 동안 이어진 진위와 지정 논란을 정리하는 절차로 이어져야 한다는 요구도 여기서 나온다. ◆ 김종춘 회장이 이어온 16년…다시 열린 국가 검증 증도가자가 다시 국가 차원의 검증 대상에 오르기까지 다보성 갤러리 김종춘 회장의 문제 제기도 계속됐다. 2011년 지정 절차가 시작된 뒤 첫 판단까지 6년을 기다렸고 2017년 부결 이후에는 당시 검증 방식과 심의자료를 다시 살펴달라고 요구했다. 관련 자료를 모으고 연구 결과를 제시하며 재검증 요구를 이어갔다. 한 차례 끝났던 증도가자 문제는 감사원 제보와 국정감사를 거쳐 국가유산청 자체감사로 이어졌다. 국가유산청은 이제 기존 소장품뿐 아니라 전국의 후보 활자를 같은 기준으로 비교하는 방안까지 마련했다. 증도가자가 처음 공개된 지 16년 만에 조사 방식 자체를 바꾼 재검증이 추진되는 것이다. 김 회장 측은 이번 재검증만큼은 장기간 이어지지 않고 조사 결과에 따른 지정 판단까지 신속하게 마무리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16년 동안 문제를 제기해 국가가 다시 검증에 나서는 단계까지 온 만큼 또다시 수년을 조사와 검토에 쓰는 방식으로는 논란을 끝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김 회장이 이어온 16년의 노력에 국가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응답도 결국 시간과 맞닿아 있다. 원하는 결론을 미리 정하는 것이 아니라 남아 있는 검증을 서둘러 마치고 역사적 가치가 확인되면 보물 지정 절차까지 지체 없이 이어가는 것이다. 또다시 긴 기다림을 요구한다면 재검증을 결정한 의미도 작아진다. ◆ ‘조사·지정 계획’ 세웠지만 종료 일정은 빠져 국가유산청의 계획안을 보면 새 조사 방식은 과거보다 구체적이다. 국내에 있는 증도가자 계열 금속활자를 공개 모집한 뒤 공모된 유물에 같은 조사 기준을 적용한다. 국가유산청은 개별 유물 단위 조사만으로 객관적인 검증을 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는 내용도 계획안에 담았다. 과학조사에서는 금속 성분과 미세조직, 주조와 가공 흔적 등을 살핀다. 서지·문헌 조사에서는 글씨체와 제작기법, 실제 인쇄된 책과 활자의 관계를 비교한다. 어느 한 분야의 분석 결과만으로 판단하지 않고 여러 조사 결과를 대조하는 방식이다. 진행 순서도 마련했다. 일괄공모를 거쳐 기초조사와 지정조사, 종합평가를 한 뒤 국가유산 지정 문제를 검토한다. 공모 시점은 올해 9월로 잡았다. 문서 제목도 단순한 조사 계획이 아니라 ‘조사·지정 계획’이다. 조사 결과를 국가유산 지정 검토까지 연결하겠다는 취지가 담겨 있다. 이에 비해 공모 이후 일정은 비어 있다. 기초조사를 언제 시작하고 과학조사와 전문가 검토를 언제까지 마칠지, 종합평가와 국가유산위원회 심의를 어느 시점에 진행할지는 계획안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최종 판단 목표 시점도 제시하지 않았다. 법정 절차를 지키면서도 전체 기간을 줄일 방법은 있다. 공모가 진행되는 동안 조사 기준과 전문가 구성을 확정하고 분석기관의 일정을 잡는 한편 기존 조사자료를 미리 정리할 수 있다. 과학조사와 서지·문헌 조사도 서로 선후관계가 필요하지 않은 부분은 함께 진행하면 검증 기간을 줄일 수 있다. 현행 규정은 지정예고 뒤 6개월 안에 지정 여부를 결정하도록 시한을 두고 있다. 법정 절차 자체보다 공모 이후 각 조사와 심의를 어떤 순서로 배치하고 얼마나 병행하느냐가 전체 기간을 좌우하는 셈이다. 16년간 이어진 논란을 다시 수년간 끌지 않으려면 국가유산청의 조사 운영과 일정 관리가 그만큼 중요하다. 국가유산청은 조사할 대상과 방법을 정했고 9월 일괄공모라는 출발점도 잡았다. ‘조사·지정 계획’에 정작 빠진 것은 종료 시점이다. 16년째 이어진 증도가자 논란을 이번 절차에서 마무리하려면 조사 시작뿐 아니라 조사 완료와 국가유산위원회 심의, 최종 판단의 목표 시점까지 함께 제시해야 한다. ◆ 16년 만의 전면 재조사…관건은 속도와 결론 증도가자는 이제 막 검증을 시작하는 유물이 아니다. 2010년 공개됐고 2011년 국가유산 지정 절차에 들어갔다. 2017년 보물 지정이 부결된 뒤 그 판단 과정까지 다시 감사 대상에 올랐다. 국정감사와 자체감사까지 거쳐 이제 전국 단위 재조사를 앞두고 있다. 그동안 축적된 조사자료와 연구 결과도 있다. 이번 일괄공모를 통해 새로운 비교 대상이 확보되면 기존 자료와 함께 검토할 여건도 마련된다. 과학조사와 인문·서지학 조사를 함께 진행하고 조사 단계마다 다음 절차를 준비한다면 전체 기간을 줄일 여지도 있다. 국가유산청이 이번 재검증을 16년 논란을 정리하는 절차로 가져가려면 시작 일정만큼 완료 목표도 중요하다. 조사 결과 역사적 가치가 확인될 경우 국가유산위원회 심의와 보물 지정 판단까지 이어지는 절차가 다시 장기간 늘어지지 않도록 일정을 관리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는 이유다. 2011년 시작된 지정 절차에서 첫 결론을 내리는 데 6년이 걸렸다. 그 결론을 만드는 과정은 다시 감사 대상에 올랐다. 이제 국가유산청은 새로운 조사 방식까지 마련했다. 남은 과제는 이미 시작하기로 한 재검증을 얼마나 신속하게 마무리하고 지정 판단까지 이어가느냐다. 국가유산청은 올해 9월 일괄공모를 시작점으로 잡고 조사 대상과 방법, 진행 절차까지 마련했다. 남은 것은 종료 시점이다. 조사 완료와 국가유산위원회 심의, 최종 판단을 언제까지 마칠지에 대한 일정도 함께 제시할 필요가 있다. 16년을 이어온 증도가자 논란에서 또다시 시작 일정만 내놓고 끝을 기약하지 않는 방식은 반복돼서는 안 된다. [아주경제 2026년 09월 10일자 14면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2026-09-10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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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반그룹, 프랑스 문화 전문가 정일영 교수 초청 명사특강 개최 外
[경제일보] 호반그룹은 서울 서초구 본사에서 임직원을 대상으로 여름 명사 특강을 개최했다고 27일 밝혔다. 이번 명사특강에는 김대헌 호반그룹 기획총괄사장, 김윤혜 호반프라퍼티 경영총괄사장, 김민형 호반그룹 커뮤니케이션실 상무를 비롯해 임직원 160여 명이 참석했다. 강연에는 프랑스 문화를 쉽고 친근하게 전하며 '파리민수'로 알려진 정일영 인하대학교 영미유럽인문융합학부 초빙교수가 연사로 나섰다. 정 교수는 '성장하는 사람은 무엇이 다른가'를 주제로 급변하는 시대에 필요한 성장의 태도와 미래 경쟁력에 대해 강연했다. 이번 특강은 여름 휴가 시즌을 맞아 구성원들이 잠시 업무에서 벗어나 일과 삶을 돌아보고 성장의 동기를 찾을 수 있도록 기획됐다. 정답을 일방적으로 전달하기보다 질문과 사례를 통해 구성원들이 스스로 변화와 성장의 방향을 고민하도록 돕는 데 초점을 뒀다. 정 교수는 강연에서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는 '평생직장'보다 끊임없이 배우고 변화에 적응하는 '평생성장'이 새로운 경쟁력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질문하는 습관과 도전정신, 신뢰와 협업, 실패를 성장의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개인과 조직의 성장을 좌우한다고 설명했다. 또 AI시대에는 기술을 활용하는 능력과 문제 해결력, 창의성, 공감과 소통 등 사람만의 강점이 더욱 가치 있는 경쟁력이 된다고 전망하며 태도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호반그룹 관계자는 “이번 특강을 통해 임직원들이 변화하는 시대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얻고 스스로의 성장 방향을 고민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기를 바란다”며 “다양한 명사특강과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구성원의 성장을 지원하고 배움 중심의 기업문화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두산건설, ‘브랜드북 시리즈’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2026 2개 부문 수상 두산건설은 자사의 브랜드북 시리즈가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2026’에서 2개 부문을 수상했다고 27일 밝혔다. 이번 브랜드북 시리즈는 브랜드 디자인·아이덴티티 부문과 출판·인쇄 미디어 부문에서 각각 본상을 수상했다.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는 iF 디자인 어워드, IDEA와 함께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로 꼽힌다. 이번 수상작은 기업 철학과 사업 역량을 담은 ‘기업PR북’, 브랜드의 핵심 가치와 더 나은 삶의 모습을 담은 ‘We’ve 북’, 하이엔드 주거브랜드의 방향을 담은 ‘The Zenith 북’ 등 총 3권으로 구성됐다. 두산건설은 세 권의 브랜드북을 각각의 개성이 드러나도록 구성하면서도 전용 폴더를 통해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했다. 이를 통해 기업 철학과 주거 가치, 하이엔드 브랜드의 방향성을 하나의 브랜드 경험으로 전달했다. 브랜드 디자인·아이덴티티 부문에서는 두산건설의 브랜드 자산을 시각적으로 알기 쉽게 풀어낸 점을 인정받았다. 출판·인쇄 미디어 부문에서는 브랜드북의 편집 구성과 인쇄 완성도를 인정받았다. 두산건설은 건설회사로서 건축물이 여러 자재와 공정이 정교하게 맞물려 완성되듯, 브랜드북 역시 종이와 가공, 페이지 구성 등 다양한 요소가 하나의 완성도 있는 결과물로 이어지도록 구성했다. 회사는 입주민이 단지 안에서 생활하며 편리함과 즐거움,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공간과 상품에서 디자인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주최하고 한국디자인진흥원이 주관하는 굿디자인 어워드에서도 입주민의 일상과 맞닿은 다양한 분야에서 GD(Good Design)마크를 지속적으로 획득해 왔다. 두산건설 관계자는 “두산건설이 추구하는 디자인은 단순히 보기 좋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생활 속에서 편리함과 즐거움,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세심하게 고민하는 과정이다”라며 “고객과 만나는 모든 접점에서 더 세심하고 완성도 높은 디자인을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대방건설, ‘한·중·일 여자배구 탑 클럽 슈퍼매치 제주대회’ 공식 스폰서 참여 대방건설은 '2026 한·중·일 여자배구 탑 클럽 슈퍼매치 제주대회'에 공식 스폰서로 참여한다고 27일 밝혔다. 오는 8월 1일부터 2일까지 제주 한라체육관에서 개최되는 이번 대회는 KBS N이 주최·주관하는 국제 여자배구 친선대회다. 한국·중국·일본을 대표하는 여자 프로배구 정상급 클럽들이 참가해 아시아 여자배구의 경쟁력 강화와 스포츠 교류 확대를 위한 무대를 마련한다. 대회에는 V리그를 대표하는 흥국생명과 현대건설, 일본 SV리그 강호 오사카 JT 마블러스, 25-26시즌 중국 리그 우승팀 상하이 브라이트 유베스트가 참가한다. 특히 김연경 선수가 활약했던 팀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만큼 국내외 배구팬들의 높은 관심이 기대된다. 대방건설 관계자는 “이번 슈퍼매치를 통해 스포츠를 통한 문화 교류와 함께 팬들에게 특별한 즐거움을 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며 “다양한 스포츠 후원을 통해 팬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국내 스포츠 발전과 국제 교류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2026-07-27 15:3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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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 '투표자 수 통계 수정 정황' 수사…노태악 책임론 다시 부상
[경제일보]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수사하는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선거관리위원회 직원들의 전산 통계 수정 정황을 포착하고 추가 강제수사에 나섰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국민참정권 침해 진상규명을 위한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경기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실과 서울 송파구선거관리위원회 등에 검사와 수사관을 보내 관련 자료를 확보했다. 합수본은 수사 과정에서 지방선거 당시 중앙선관위와 경기도선관위 관계자들이 투표자 수와 관련된 전산 통계를 임의로 수정한 정황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합수본은 수정 시점과 횟수, 수정 전후 수치, 전산 접속 기록과 내부 보고 자료 등을 확보해 경위를 살펴보고 있다. 이번 압수수색으로 수사는 투표용지 인쇄량 산정과 현장 대응을 넘어 선거 이후 전산 통계가 처리된 과정으로 확대됐다. 누가 어떤 자료를 근거로 수치를 바꿨는지, 정상적인 오류 정정 절차를 거쳤는지, 변경 사실이 상급자에게 보고됐는지가 확인 대상이다. 합수본은 지난달에도 중앙선관위와 서울시선관위, 송파구선관위 등을 압수수색해 투표용지 인쇄 계획과 투표록, 내부 결재 문서 등을 확보했다. 노태악 전 중앙선관위원장과 허철훈 전 사무총장 등 선관위 관계자 10여명은 공직선거법 위반과 직무유기 등의 혐의로 입건됐고 출국금지 조치도 받았다. 투표자 수 통계가 수정됐다는 정황만으로 선거 결과에 손을 댔다고 볼 근거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합수본도 현재는 통계 수정의 목적과 절차,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의 관련성을 확인하는 단계다. 그렇다고 선관위 내부의 통상적인 업무 처리로 가볍게 넘길 사안도 아니다. 투표자 수는 투표용지 교부 수량과 잔여 수량, 투표록의 기록을 대조하는 기초 자료다. 전산 수치를 수정할 필요가 있었다면 근거 자료와 승인 절차, 변경 전후 내역이 남아 있어야 한다. 합수본은 전산 통계가 실제 투표소별 기록과 일치하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투표용지 부족 사실이 발생한 뒤 수치가 변경됐다면 변경 사유와 보고 경로도 살펴야 한다. 부족 수량이나 추가 공급량을 사후에 맞추기 위한 수정이었는지도 수사 대상에서 빠질 수 없다. 수사가 전산 통계로 확대되면서 노 전 위원장의 재임 중 책임도 다시 거론되고 있다. 노 전 위원장은 이번 지방선거까지 중앙선관위를 이끌었고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한 이틀 뒤인 지난달 5일 사의를 표명했다. 이후 합수본은 노 전 위원장을 피의자로 입건하고 출국을 금지했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의 출발점으로 지목된 결정은 인쇄 기준 축소였다. 중앙선관위는 선거인 수 대비 투표용지 최소 인쇄 비율을 기존 60%에서 50%로 낮췄다. 국민의 투표권 행사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는 기준이었지만 중앙선관위원회의 공식 회의나 의결을 거치지 않고 사무총장과 선거정책실장의 전결로 처리됐다. 어떤 사항을 위원회 의결에 부치고 어떤 사항을 사무처 전결로 처리할지 판단하는 내부 기준조차 마련돼 있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선관위 전체회의에서 관련 질문이 나왔지만 선거1국장은 규칙과 편람·지침을 구분하는 별도 기준이 없다고 답했다. 투표용지 인쇄 비율을 10%포인트 낮추는 결정은 비용 절감이나 행정 편의에 머물지 않는다. 예상보다 높은 투표율이 나오거나 지역별 투표율 편차가 커지면 유권자가 투표용지를 받지 못할 수 있다. 실제 송파구의 최종 투표율은 65.8%로 서울 평균보다 높았고 일부 투표소에서는 투표용지 부족으로 투표가 중단되거나 마감 시간이 연장됐다. 중앙선관위원장은 각 투표소의 용지 수량을 직접 계산하는 자리가 아니다. 그러나 선거인의 투표권 행사에 영향을 주는 기준이 어떤 절차로 정해지고 있는지, 사무처의 결정이 현장에서 어떤 위험을 낳을 수 있는지는 감독해야 한다. 노 전 위원장이 인쇄 기준 축소를 언제 보고받았는지, 관련 위험에 관한 검토를 지시했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선거 당일 투표용지 부족 상황도 투표 종료 약 40분 전에야 보고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사실이라면 선거 현장의 중대한 문제가 중앙선관위원장에게 전달되는 보고 체계가 제대로 작동했는지부터 따져야 한다. 노 전 위원장이 인쇄량 축소와 전산 통계 수정에 직접 관여했다는 정황은 현재까지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직접 지시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재임 당시 수장의 지휘·감독 책임까지 없어지지는 않는다. 인쇄 기준 축소를 보고받았다면 결정의 타당성과 위험을 검토한 과정을 밝혀야 한다. 보고받지 못했다면 투표권 행사와 직결된 사안을 사무처가 자체 판단하도록 둔 경위를 설명해야 한다. 선거 당일 전국의 투표소에서 용지가 부족한데 위원장에게 보고가 늦어진 이유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전산 통계 수정 정황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 관계 직원 개인이 임의로 수치를 바꾼 것인지, 지역선관위와 중앙선관위 사이에 보고가 오갔는지, 지휘부가 수정 사실을 알았는지가 밝혀져야 한다. 통계 수정이 여러 기관에서 이뤄졌다면 동일한 지침이나 지시가 있었는지도 조사해야 한다. 노 전 위원장은 사의를 밝히며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대해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취지로 책임을 인정했다. 그러나 임기 종료를 앞둔 사퇴가 선거관리 실패에 대한 사실 규명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 누가 기준을 낮췄고 누가 위험을 검토했으며 사고 발생 뒤 어떤 보고와 조치가 있었는지는 별도로 확인돼야 한다. 중앙선관위는 헌법상 독립기관이다. 정치권이나 행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도록 독립성을 보장받는 대신 선거관리의 공정성과 정확성을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투표용지조차 충분히 준비하지 못하고 사후 전산 통계까지 수정한 정황이 드러났다면 독립성만 내세울 수 없다. 합수본 수사가 통계 수정에 관여한 실무자를 확인하는 데 그쳐서도 안 된다. 투표용지 인쇄 기준을 낮춘 결정 과정과 선거 당일 보고 지연, 전산 통계 수정 경위가 서로 연결돼 있는지 살펴야 한다. 노 전 위원장을 비롯한 당시 지휘부가 각 단계에서 어떤 보고를 받고 어떤 판단을 내렸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투표용지는 선거관리의 가장 기본적인 준비물이다. 투표자 수 통계는 투표용지의 교부와 잔여 수량을 검증하는 자료다. 두 업무에서 동시에 문제가 드러난다면 현장 직원 몇 명의 착오로만 설명하기 어렵다. 노태악 전 위원장 개인의 형사책임은 증거와 수사 결과에 따라 판단할 문제다. 재임 중 선거관리 실패에 대한 책임은 별개로 남는다. 이번 수사는 선관위 직원들이 전산 수치를 왜 고쳤는지만 확인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런 일이 가능했던 의사결정과 보고 체계, 당시 선관위 수뇌부의 관리 책임까지 규명해야 한다.
2026-07-23 10:0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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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 차세대 AI 서버 지연설…'1년 로드맵'에 첫 균열 오나
[경제일보]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서버 로드맵에 지연설이 제기됐다. 핵심은 칩 자체가 아니라 랙 내부를 연결하는 고난도 인쇄회로기판(PCB)이다. AI 반도체 경쟁이 GPU 성능을 넘어 서버 랙, 냉각, 광통신, 전력 인프라까지 묶인 시스템 경쟁으로 바뀌면서 제조 난도가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반도체 분석업체 세미애널리시스는 6일(현지시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랙 시스템 ‘Kyber NVL144’ 출시가 12개월 이상 지연돼 2028년으로 밀렸다고 주장했다. 이 시스템은 차세대 AI 플랫폼 ‘Vera Rubin Ultra’와 함께 2027년 선보일 것으로 예상됐지만, PCB 미드플레인 제조 난항으로 일정이 늦어졌다는 설명이다. Kyber NVL144는 고성능 칩 144개를 하나의 랙 안에서 긴밀하게 연결해 단일 대형 컴퓨터처럼 작동하도록 설계된 시스템이다. AI 모델이 커질수록 개별 GPU 성능보다 수백 개 칩을 얼마나 빠르고 안정적으로 연결하느냐가 중요해진다. 엔비디아가 랙 단위 시스템을 강조해 온 것도 이 때문이다. 세미애널리시스는 대안으로 거론됐던 ‘NVL72x2 백투백’ 구조도 취소됐다고 주장했다. 72개 칩으로 구성된 랙 두 개를 맞붙여 배치하는 방식이었지만, 클라우드 사업자들이 특이한 설계와 운영 부담을 이유로 반발했다는 것이다. 광통신으로 여러 랙을 연결하는 NVL576 역시 기술적 난제로 지연되거나 소량 생산에 그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루빈 울트라 칩 자체에 대한 주장도 나왔다. 세미애널리시스는 연산 다이 4개를 갖춘 고성능 버전이 취소되고 2개 다이 기반 모델만 남았다고 분석했다. 다만 이 역시 엔비디아가 공식적으로 확인한 내용은 아니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엔비디아 측은 로드맵에 변화가 없다는 입장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시장 반응은 엇갈린다. 엔비디아가 AI 인프라 시장을 사실상 장악하고 있는 만큼 차세대 랙 시스템 지연은 클라우드 사업자의 데이터센터 증설 계획과 공급망 업체 실적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반면 단기 매출의 중심은 블랙웰과 루빈 초기 제품군인 만큼 Kyber 지연설이 당장 엔비디아의 지배력을 흔들 정도는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이번 지연설이 사실이라면 반사이익은 AMD와 구글, 맞춤형 AI 반도체 진영에 돌아갈 수 있다. 대형 클라우드 기업은 엔비디아 공급 일정이 불확실해질수록 AMD GPU나 구글 TPU, 자체 ASIC 활용을 늘릴 유인이 커진다. 특히 AI 인프라 투자가 수십조원 규모로 커진 상황에서는 단일 공급자 의존도를 줄이려는 움직임이 더 강해질 수 있다. 더 큰 의미는 엔비디아의 ‘매년 새 플랫폼’ 전략이 제조 현실과 충돌하고 있다는 점이다. GPU 성능이 높아질수록 전력 소비와 발열, 연결 구조, 냉각 비용도 함께 커진다. 차세대 AI 서버는 더 이상 칩을 많이 꽂는 문제가 아니다. PCB, 고속 인터커넥트, 액체냉각, 광통신, 전력 설계가 모두 동시에 풀려야 한다. 한편 엔비디아 지연설은 AI 산업의 병목이 어디로 이동하는지를 보여준다. 모델은 더 커지고 데이터센터는 더 뜨거워지며 서버 랙은 점점 복잡해지고 있다. 칩 설계의 승자가 곧 시스템 제조의 승자라는 보장은 없다. 엔비디아가 공식 로드맵을 지켜내느냐, 아니면 제조 난도가 속도를 늦추느냐에 따라 AI 인프라 시장의 다음 경쟁 구도도 달라질 전망이다.
2026-07-07 07:4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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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엑스, 피지컬 AI 시장 공략 본격화…'피지컬 AI 엑스포'서 日 기업 협력 확대
[경제일보] 초저전력 온디바이스 인공지능(AI) 반도체 기업 딥엑스가 일본 피지컬 AI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일본 최대 피지컬 AI 전문 전시회에서 현지 기업들과 대규모 상용화 상담을 진행한 데 이어 일본 기술 유통기업과 전략적 파트너십까지 체결하며 일본 제조·로봇 시장을 겨냥한 공급망 구축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6일 딥엑스는 최근 일본 도쿄 빅사이트에서 열린 '제1회 피지컬 AI 엑스포'에 참가해 일본 주요 제조·정보기술(IT)·산업 인프라 기업들과 자사 신경망처리장치(NPU)의 제품 적용 가능성과 후속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올해 일본에서 처음 열린 피지컬 AI 엑스포는 현실 세계에서 작동하는 AI와 로봇, 센서 기술 등을 선보이는 전문 전시회다. 행사 기간 하루 평균 3만명 이상의 관람객이 방문했으며, 일본 제조업과 산업 자동화 기업들을 중심으로 피지컬 AI 기술에 대한 관심이 집중된 것으로 평가된다. 딥엑스는 이번 전시회에서 초저전력 NPU와 엣지 AI 개발 환경, 산업용 레퍼런스 플랫폼을 비롯해 글로벌 고객사의 실제 양산 사례를 공개했다. 행사 기간 동안 약 1300건의 상담과 고객 문의가 이어졌으며, 일본 주요 IT·인쇄 기업과 글로벌 종합전기 기업, 통신·장비 및 첨단 소재 기업 관계자들이 제품 도입과 상용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일부 기업은 기존 그래픽처리장치(GPU) 기반 AI 연산 구조를 저전력 NPU 기반으로 전환하는 방안에 관심을 보이며 후속 협의를 요청했다. 전시 기간 진행된 타운홀 세션에서는 천승희 딥엑스 미국법인장 겸 상무가 연사로 나서 딥엑스 NPU 기술과 글로벌 고객사의 제품 적용 사례를 소개했다. 딥엑스는 전시회에서 확인한 현지 수요를 실제 사업으로 연결하기 위해 일본 기술 유통기업 고시다테크와 전략적 파트너십도 체결했다. 양사는 일본 시장에서 엣지 AI 활용 확대를 위해 딥엑스 NPU 제품군의 현지 공급과 사업 확대를 공동 추진하기로 했다. 이번 협약에 따라 고시다테크는 일본 내 고객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프로젝트 발굴과 제품 제안, 고객 대응, 공급 확대를 담당한다. 딥엑스는 NPU 제품군과 소프트웨어 개발 환경(SDK), 레퍼런스 플랫폼, 기술 지원 등을 제공해 현지 고객사의 제품 개발과 양산을 지원할 계획이다. 딥엑스는 이번 협력으로 일본 시장 공급망도 한층 강화하게 됐다. 현재 에브넷, 더블유피지, 마크니카, 시리얼, 디지털 차이나, 디지키 등 20여개 글로벌 유통사와 협력하고 있으며, 고시다테크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일본 시장 내 엣지 AI 상용화를 더욱 확대한다는 전략이다. 일본은 제조와 로봇, 자동차, 산업 자동화, 사회 인프라 분야 경쟁력이 높은 데다 고령화와 인력 부족으로 무인화와 지능화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는 시장이다. IT 업계에서는 공장과 물류 센터, 보안 카메라, 스마트시티 등 데이터를 클라우드가 아닌 현장에서 처리해야 하는 환경이 많아 엣지 AI 반도체 수요가 높은 시장으로 평가한다. 이에 일본 정부 역시 오는 2040년까지 글로벌 피지컬 AI 시장 점유율 30% 달성을 목표로 약 1조엔 규모의 투자를 추진하고 있다. 딥엑스의 주력 제품인 'DX-M1'은 5나노미터(㎚) 공정 기반 초저전력 AI 반도체다. 최대 25TOPS(초당 25조회 연산)의 AI 연산 성능을 제공하는 동시에 3~5W 수준의 저전력 구동을 지원하도록 설계됐다. 보안카메라와 산업용 컴퓨터, 로봇, 드론, 스마트팩토리 장비, 엣지 서버 등 다양한 산업용 기기에 적용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딥엑스는 이번 전시회와 현지 파트너십을 계기로 일본 제조·로봇·산업 인프라 시장에서 상용화 사례를 확대하는 동시에 글로벌 엣지 AI 반도체 시장 공략도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김녹원 딥엑스 대표는 "이번 전시회를 통해 피지컬 AI와 초저전력 NPU에 대한 일본 산업계의 실질적인 수요를 확인했다"며 "현장에서 논의된 프로젝트를 바탕으로 제조·로봇·보안 등 일본 산업 현장에 딥엑스 기술을 적용하고 상용화 사례를 확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2026-07-06 16: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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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악 선관위, 홍명보호보다 더 위험한 실패
[경제일보] 홍명보 감독은 월드컵 32강 진출이 좌절된 뒤 자리에서 물러났다. 대표팀은 결과로 평가받는 조직이고, 감독은 그 결과의 책임을 피할 수 없었다. 한국 축구는 또 한 번의 실패를 기록으로 남겼다. 아프지만 대표팀에는 다음 경기를 준비하고, 전술과 선수 구성을 다시 손 볼 시간이 남아 있다. 노태악 전 중앙선거관리위원장도 투표용지 부족 사태의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선관위 역시 결과로 평가받아야 하는 조직이다. 다만 선관위가 책임져야 할 결과는 경기의 승패가 아니라, 국민이 투표소에서 한 표를 행사할 권리를 제대로 보장했는지에 관한 것이다. 두 사람 모두 물러났다. 그러나 사퇴가 남기는 무게까지 같을 수는 없다. 축구대표팀의 실패는 국민에게 실망을 남기지만, 다음 대회에서 만회할 기회가 있다. 반면 투표용지가 없어 발길을 돌렸거나 언제 투표할 수 있을지 모른 채 투표소 앞에서 기다려야 했던 유권자에게는 다음 경기가 없다. 그 한 표는 선거 당일, 그 투표소에서 보장됐어야 했다. 이번 사태는 몇몇 투표소의 우발적 혼선으로 정리할 수 없다. 진상규명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전국 1만4288개 투표소 가운데 140곳이 부족 가능성 때문에 추가 투표용지를 받았다. 이 가운데 실제 추가 용지를 사용한 곳은 91곳이었고, 26곳에서는 투표가 잠시라도 중단됐다. 선관위가 처음 파악한 범위를 넘어 피해 실태가 계속 드러난 것도 국민 불안을 키웠다. 사태의 시간표는 더욱 답답하다. 송파구선관위는 선거 당일 오전 11시 40~50분께 이미 무번호 투표용지 부족 가능성을 예상해 서울시선관위에 일련번호 부여 방안을 문의했다. 그러나 서울시선관위와 중앙선관위가 함께 대응에 나선 것은 약 5시간 뒤였다. 오후 4시 46분이 되어서야 송파구선관위가 일련번호를 기재하지 않은 투표용지를 투표소에 내보내겠다고 알렸고, 중앙선관위는 오후 5시가 넘어 민원을 계기로 서울시선관위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확인했다. 선거를 총괄하는 기관이 현장의 경고를 제때 받아내지 못하고, 민원과 혼란이 번진 뒤에야 대응에 나섰다면 이는 단순한 전달 실수의 문제가 아니다. 투표소별 투표율과 남은 용지를 누가 점검했는지, 어느 단계에서 위험 신호가 끊겼는지, 중앙 상황실은 왜 먼저 움직이지 못했는지를 따져야 한다. 보고가 올라오지 않았다는 말은 중앙의 책임을 덜어주는 근거가 아니라, 보고와 지휘 체계가 왜 그토록 허술했는지를 묻게 하는 출발점이다. 진상규명위원회도 결론을 흐리지 않았다. 상급위원회에 대한 신속한 보고 체계가 작동하지 않았고, 상급위원회의 지휘권도 발동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서울시선관위는 중앙선관위와 논의하지 않은 채 투표시간 연장을 결정했고, 송파구선관위에서는 투표가 끝나기 전 개표가 시작되는 일도 있었다. 전국 선거를 관리하는 기관이 선거일 하루 동안 같은 지휘선 아래 움직이지 못한 셈이다. 투표용지 인쇄 하한을 유권자 수의 60%에서 50%로 낮춘 결정도 비켜갈 수 없다. 해당 지침은 사무총장 전결로 처리됐다. 노태악 전 위원장은 국정조사에서 이를 알고 있었다고 답했고, 사전 보고에 대해서는 짧은 보고가 있었을 수 있으나 기억나지 않는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인쇄 비율은 서류철 안의 작은 행정 항목이 아니다. 본투표일에 유권자가 몰릴 경우를 대비하는 최소 안전장치다. 보관 공간과 관리 비용을 고려할 수는 있어도, 그 판단이 투표소의 용지 부족으로 이어졌다면 선관위는 그 우선순위를 설명해야 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은 선거관리의 기준과 지휘 체계를 책임지는 자리다. 투표용지 인쇄 기준이 낮아졌다면 그 위험을 점검했어야 하고, 선거일 현장에서 부족 징후가 나타났다면 보고와 대응이 지체되지 않도록 조직을 움직였어야 한다. 최고 책임자의 역할은 현장의 숫자를 대신 세는 데 있지 않다. 현장이 흔들릴 때 조직 전체가 즉시 움직이도록 만드는 데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사태는 노태악 개인의 사퇴로만 마무리될 일이 아니다. 진상규명위원회는 노태악 전 위원장을 비롯한 선관위 수뇌부 12명에 대한 수사의뢰를 권고했고, 관련 실무자 6명에 대한 징계도 권고했다. 이는 유죄 판단이 아니다. 다만 이번 사태를 일선 직원 몇 명의 과실로 돌려 봉합할 수 없다는 뜻은 분명하다. 홍명보 감독의 사퇴는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의 표현이었다. 노태악 전 위원장의 사퇴는 참정권 보장에 실패한 국가기관 수장의 책임과 맞닿아 있다. 그래서 그 뒤에 따라야 할 절차도 달라야 한다. 누가 인쇄 기준을 낮췄는지, 현장의 경고가 어디에서 멈췄는지, 중앙은 왜 위험을 먼저 감지하지 못했는지, 그 판단과 지연에 책임 있는 사람은 누구인지 밝혀야 한다. 선관위의 독립성은 외부 권력이 선거 관리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장치다. 독립기관이라는 지위가 내부 실패에 대한 설명 의무까지 덜어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선거를 관리하는 기관일수록 더 높은 수준의 준비와 책임이 요구된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거창한 개혁 구호가 아니다. 투표소에 가면 투표용지를 받을 수 있어야 하고, 사고가 나면 국가기관이 즉시 수습할 것이라는 당연한 믿음이다. 홍명보호의 탈락은 한국 축구에 숙제를 남겼다. 노태악 선관위의 실패는 민주주의의 기본을 다시 묻게 한다. 축구는 다음 대회를 기약할 수 있다. 하지만 선거는 다르다. 그날 투표소에서 행사되지 못한 한 표는 다음 선거가 아니라, 바로 그날 국가가 지켜냈어야 할 권리였다.
2026-06-30 07:5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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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디브 선거는 배우고, 국내 투표용지는 못 챙긴 선관위
[경제일보]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신뢰를 정면으로 흔든 사건이다. 선거 당일 투표소를 찾은 유권자에게 투표용지를 제때 내주지 못했다. 선거 절차에서 투표용지는 가장 기초적인 준비물이다. 참관인 배치, 개표 관리, 선거운동 단속, 투표함 이송도 중요하지만 유권자에게 건넬 투표용지가 없으면 선거는 그 자리에서 멈춘다. 이번 일을 현장 착오나 일시적 혼선으로 넘길 수 없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노태악 전 중앙선관위원장의 사퇴는 뒤늦은 수습의 시작일 뿐이다. 이번 사태는 한 위원장의 사의 표명으로 덮을 수 있는 행정 사고가 아니라 중앙선관위 운영 전반의 책임을 묻는 사건으로 번지고 있다. 선관위는 헌법상 독립기관이다. 그러나 독립성은 정치권으로부터 선거관리를 지키기 위한 장치이지 국민 앞의 설명 책임을 덜어주는 방패가 아니다. 선관위가 정치권의 영향에서 벗어나 선거를 관리하려면 먼저 국민 앞에 설명 가능한 조직이어야 한다. 선거관리의 기본이 무너졌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번 지방선거 본투표 과정에서 전국 91개 투표소에서 투표용지 7194장이 부족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투표용지 부족으로 투표가 중단된 곳도 26곳에 달했다. 중앙선관위가 애초 밝힌 부족 규모보다 크게 늘어난 수치다. 선관위가 선거 직후 사태의 전모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거나 적어도 국민에게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선거관리의 실패가 투표소 현장에서 그쳤는지, 보고와 대응 과정까지 이어졌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노 전 위원장은 사의를 표명했다. 허철훈 전 사무총장도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사퇴만으로 매듭지을 사안으로 보기 어렵다.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노 전 위원장과 허 전 사무총장 등 선관위 관계자들을 출국금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선관위와 서울시선관위,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한 일부 구 선관위 등에 대한 압수수색도 진행됐다. 수사는 수사대로 진행돼야 하고, 조직 책임은 조직 책임대로 규명돼야 한다. 형사책임 성립 여부와 별개로 선관위가 선거관리의 기본 의무를 다했는지는 반드시 확인돼야 한다. 과로론으로 덮을 수 없는 중앙선관위 책임 선관위 내부 게시판에는 현장 인력 부족을 호소하는 글도 올라왔다. 한 직원은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관련해 “선관위가 잘못한 건 인정하더라도 선거 시스템이 과부하된 현 상황은 알려야 한다”며 “근본적 원인은 살인적 업무량과 적은 인원”이라고 썼다. 또 다른 직원은 “1명이 100곳 이상의 투표소를 관리하는데, 용지가 부족하다는 연락이 동시다발적으로 오면 혼자 처리할 수 있었겠느냐”고 반문했다. 서울 송파구 선관위의 경우 직원 13명 중 3~4명 정도가 관할 투표소 146곳의 투표 상황 관리와 개표 준비까지 맡아 비상 상황에 대응하기 어려웠다는 설명도 나왔다. 현장 직원의 고충은 가볍게 볼 수 없다. 선거 때마다 구·시·군 선관위 직원들이 과도한 업무에 시달린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1명이 100곳 넘는 투표소를 관리해야 했다면 정상적인 인력 운용으로 보기 어렵다. 다만 바로 그 사정 때문에 중앙선관위의 책임은 더 무거워진다. 인력이 부족했다면 선거 전에 보강 방안을 마련했어야 한다. 업무량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면 위험 지점을 미리 점검했어야 한다. 투표용지 배부량 산정, 예비분 확보, 긴급 수송 체계, 보고 라인, 현장 대응 매뉴얼은 선거가 끝난 뒤 내부 게시판에 호소할 문제가 아니라 선거 전에 갖춰야 할 선거관리의 기본 장치다. 유권자 입장에서 따질 대목은 하나다. 왜 투표소에 투표용지가 부족했느냐는 것이다. 업무가 많았다는 말은 설명의 일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책임을 대신할 수는 없다. 선거관리기관이 선거 당일 투표용지를 충분히 준비하지 못했다면 먼저 국민 앞에 책임을 설명해야 한다. 그다음에 인력과 제도 문제를 말해야 한다. 순서가 바뀌면 내부 사정은 국민 눈에 책임 회피로 비칠 수밖에 없다. 몰디브 출장이 부른 국민의 냉소 이번 사태가 더 큰 분노를 부른 데에는 선관위의 기존 논란도 영향을 미쳤다. 성과급, 휴직, 해외 출장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특히 몰디브 대통령 선거 참관 출장은 상징성이 크다. 2023년 9월 선관위 직원 5명은 7박 9일 일정으로 몰디브 대통령 선거를 참관했다. 보고서에는 후보자 선거사무소 방문, 선거운동 참관, 투·개표 참관, 공식 만찬 참석 등이 담겼다. 출장 목적은 ‘변화된 외국 선거환경 파악 및 선거법제 비교 연구’였다. 문구만 놓고 보면 그럴듯하다. 그러나 이번 사태 이후 국민의 시선은 싸늘하다. 몰디브에서 선거 제도를 배우고 왔다는 기관이 정작 국내 지방선거에서는 투표용지를 못 챙겼다. 보고서에 해변 깃발 사진과 섬 지역 선거운동 설명이 실렸다는 대목까지 알려지면서 국민의 냉소는 더 커졌다. 선거 제도를 배우러 몰디브까지 갔다는 설명은 지금 상황에서 희대의 코미디처럼 들린다. 외국 선거제도 연구 자체를 문제 삼을 일은 아니다. 해외 선거 참관도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공공기관의 출장은 성과로 설명돼야 한다. 몰디브 출장 보고서가 국내 선거관리 개선에 어떤 도움을 줬는지는 이번 사태 앞에서 설 자리를 잃었다. 해변의 깃발과 섬 지역 선거운동을 보고 온 기관이 정작 국내 투표소의 용지 부족을 막지 못했다면, 제도 연구라는 설명보다 방만한 조직문화라는 비판이 먼저 나올 수밖에 없다. 선관위는 2024년 총선을 앞두고도 몰디브를 포함해 1년간 33차례 해외 출장을 다녀왔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지난해 9월부터 11월까지 스위스, 스페인 등 유럽을 중심으로 선거 신뢰성 제고 등을 이유로 한 출장도 이어졌다고 한다. 해외의 선거 신뢰성을 살피러 다니는 동안 국내 선거관리의 신뢰는 어디서 새고 있었는지 돌아봐야 한다. 선거 신뢰성은 보고서 제목이 아니라 투표소 현장에서 쌓인다. 유권자가 줄을 서고, 신분을 확인받고, 투표용지를 받아 기표소로 들어가는 과정이 막힘없이 작동해야 신뢰가 생긴다. 독립성은 책임 회피의 방패가 아니다 선관위가 그동안 누려온 독립성과 권한은 작지 않다. 선거를 관리하고 정당·정치자금 업무를 다루며 위법 선거운동을 조사한다. 정치권도 선관위 판단을 무겁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런 기관일수록 내부 통제와 외부 검증은 더 엄격해야 한다. 그런데 선관위는 독립기관이라는 이유로 감사와 인사, 예산, 조직 운영 전반에서 느슨한 감시를 받아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독립기관이라는 지위가 성역처럼 굳어졌다면 이번 사태는 그 벽을 다시 세울지, 허물지 가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국회가 선관위 개혁 법안을 내놓는 흐름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 한동훈 무소속 의원은 선관위에 대한 감사원 외부감사를 가능하게 하는 감사원법 개정과 전국 선거 기간 선관위 직원들의 휴가·휴직 사용을 제한하는 입법을 예고했다. 선거가 없는 시기와 전국 단위 선거가 있는 시기의 휴직자 수 차이를 들어 선관위 조직 운영 문제도 지적했다. 여야 원내지도부 역시 이번 사태의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에 큰 틀에서 공감한 것으로 전해졌다. 감사위원회 설치, 선관위원 연임 제한 등도 논의되고 있다. 선관위 개혁은 정치적 보복이나 특정 진영의 이해관계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 선거관리기관을 정권의 하부기관처럼 만드는 일은 더 큰 위험을 낳을 수 있다. 그렇다고 현 체제를 그대로 두자는 결론으로 갈 수도 없다. 독립성과 책임성은 함께 가야 한다. 책임성이 뒷받침되지 않는 독립성은 국민에게 특권으로 보인다. 국민이 신뢰하지 않는 독립기관은 제도적 권위도 유지하기 어렵다. 이번 사태는 선관위 직원 몇 명의 실수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투표용지 수요 예측, 인쇄·배부 계획, 예비 물량 확보, 현장 보고 체계, 비상 대응, 사후 설명까지 선거관리 전 과정이 제대로 작동했는지 살펴야 한다. 노태악 체제의 중앙선관위는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사의를 표명했다고 책임이 사라지지 않는다. 수사 대상이 됐다고 정치적 논란으로만 몰고 갈 일도 아니다. 선거관리 실패의 원인과 책임자를 구체적으로 가려야 한다. 선관위 내부 직원들이 과로를 호소했다면 그 부분도 함께 조사해야 한다. 누가 그런 인력 배치를 결정했는지, 선거 전 위험 보고는 있었는지, 중앙선관위는 현장 부담을 알고 있었는지, 알고도 방치했는지 확인해야 한다. 현장 직원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겨서는 안 된다. 동시에 현장 고충을 앞세워 조직 책임을 흐려서도 안 된다. 선거관리기관의 책임은 가장 윗선에서 시작된다. 노태악 전 위원장과 중앙선관위 수뇌부가 책임 규명의 중심에 서야 한다. 민주주의의 신뢰는 선거 당일 투표소에서 확인된다. 투표용지가 충분히 놓여 있어야 하고, 유권자가 정해진 절차에 따라 투표할 수 있어야 한다. 문제가 생기면 즉시 해결돼야 한다. 사후에는 정확한 설명과 책임 추궁이 따라야 한다. 선관위가 이 기본을 놓쳤다면 그동안 내세워온 선거관리 전문성도 다시 검증받을 수밖에 없다. 몰디브 선거는 배우고, 국내 투표용지는 못 챙겼다는 비판은 거칠지만 지금 민심의 방향을 잘 보여준다. 선관위가 국민의 분노를 억울하게만 여긴다면 사태의 무게를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이다. 국민이 선관위에 요구한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선거 당일 투표용지가 부족하지 않게 하라는 요구였다. 그 요구조차 충족하지 못한다면 선관위의 권위도 유지되기 어렵다. 선관위 개혁은 더 미루기 어렵다. 외부감사, 인사 검증, 예산 통제, 해외출장 심사, 휴직 관리, 선거 비상 대응 체계까지 다시 봐야 한다. 독립성이라는 이름 아래 방만함이 방치됐다면 걷어내야 한다. 정치권도 이 문제를 정쟁의 도구로만 삼아서는 안 된다. 선거관리기관을 바로 세우는 일은 어느 정당의 유불리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참정권 문제다. 유권자의 한 표를 관리하라고 만든 기관이 유권자에게 줄 종이 한 장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 노태악 전 위원장의 사퇴는 출발점에 가깝다. 책임 규명과 제도 개혁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이번 사태는 선관위 역사에 가장 부끄러운 장면으로 남게 될 것이다.
2026-06-15 09:5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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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악은 그 자리에 무엇을 하러 갔나
[경제일보] 대법관까지 지낸 전직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출국금지됐다.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수사하는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노태악 전 중앙선관위원장과 허철훈 전 사무총장 등 선관위 관계자들을 피의자 신분으로 입건하고 출국금지 조치했다. 합수본은 중앙선관위와 서울시선관위, 송파·서초·강남·광진·동작구선관위 등 7곳을 압수수색했다. 투표용지 인쇄 계획서, 회의록, 예산서, 투표록 등 선거 준비와 당일 대응을 보여줄 자료들이 수사 대상에 올랐다. 출국금지는 유죄 판단이 아니다. 압수수색 역시 혐의를 확인하기 위한 절차다. 그러나 이 사태가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선관위의 공적 권위는 깊은 상처를 입었다. 선거관리의 최종 책임자였던 인물이 대법관 출신 노태악이라는 점은 이 사안을 더 무겁게 만든다. 국민이 묻는 것은 단순하다. 노태악은 그 자리에 무엇을 하러 갔나. 투표용지가 모자랐다는 말은 사소한 행정 실수가 아니다. 유권자가 투표소에 갔는데 국가가 표를 줄 준비를 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선거관리에서 가장 기초적인 물적 준비가 무너진 것이다. 선거는 추상적인 민주주의 의식이 아니다. 유권자 명부, 투표소, 기표대, 투표함, 투표용지가 있어야 작동하는 국가 절차다. 그중 투표용지는 선거의 시작점이다. 그것이 부족했다면 선거관리 기관은 가장 낮은 문턱도 넘지 못한 셈이다. 더 심각한 것은 규모다. 처음에는 일부 투표소의 돌발 상황처럼 알려졌다. 그러나 선관위 자체 조사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전국 50곳으로 늘어났다. 일부 지역에서는 투표가 중단됐다가 재개됐다. 유권자는 줄을 서서 기다렸고, 선거관리 직원들은 현장에서 혼란을 수습했다. 투표소 현장의 실무자만 탓할 일이 아니다. 이런 사태가 선거 당일 전국 곳곳에서 발생했다면 중앙선관위의 준비, 점검, 보고, 대응 체계 전반이 허술했다는 뜻이다. 공직선거법은 투표용지와 투표함 작성·송부의 실무 주체를 구·시·군선관위로 정하고 있다. 그렇다고 중앙선관위원장이 지역 실무 뒤에 숨을 수는 없다. 중앙선관위는 전국 선거관리 기준을 세우고, 위험 요인을 점검하고, 선거 당일 돌발 상황에 대응할 체계를 갖춰야 하는 기관이다. 선거관리의 독립성은 책임을 피하라는 방패가 아니다.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해 공정한 선거를 관리하라는 헌법적 신뢰다. 그 신뢰가 투표소 앞에서 무너졌다. 노 전 위원장의 이력은 화려하다. 법원 주요 보직을 거쳤고, 법원장을 지냈고, 대법관까지 올랐다. 이후 중앙선관위원장에 취임했다. 사법부 엘리트가 밟을 수 있는 요직을 두루 거친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마지막 공직의 장면으로 남긴 것이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출국금지라면, 국민은 그의 공직 생활 전체를 다시 떠올릴 수밖에 없다. 그는 법정에서, 법원에서, 선관위에서 어떤 긴장감으로 일했는가. 물론 이번 사태만으로 과거 판결까지 싸잡아 의심할 수는 없다. 판결은 기록과 법리에 따라 평가돼야 한다. 그러나 최고 법관 출신에게 기대했던 공적 자세와 관리 능력이 이번 사태에서 너무 초라하게 드러난 점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 대법관이라는 이력은 단순한 명예가 아니다. 국가 의사결정의 최상층에서 법과 절차의 무게를 다뤄본 경력이다. 그런 사람이 선거관리 기관의 수장이 됐다면 적어도 선거의 기본 절차만큼은 누구보다 엄격하게 챙겼어야 했다. 그런데 결과는 정반대였다. 선관위는 유권자가 투표소에 온 뒤에야 투표용지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선거 전에 예상 투표율을 어떻게 계산했는지, 인쇄 매수를 어떻게 정했는지, 지역 선관위의 준비 상황을 중앙선관위가 어떻게 점검했는지, 부족 가능성을 보고받고도 묵살한 정황은 없었는지 수사가 밝혀야 한다. 그러나 법적 책임과 별개로 행정적 책임은 이미 분명하다. 선거 당일 투표용지가 모자랐다. 중앙선관위원장은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노 전 위원장에게 이번 일이 처음 맞은 위기는 아니었다. 그는 이른바 ‘소쿠리 투표’ 논란 이후 중앙선관위원장에 취임했다. 사전투표 부실 관리로 선관위 신뢰가 흔들린 뒤 조직을 바로 세우라는 요구 속에서 자리에 올랐다. 그 뒤 선관위 고위직 자녀 특혜채용 의혹이 터졌고, 선관위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이번에는 투표용지 부족 사태다. 사과는 반복됐고 쇄신 약속도 있었다. 그러나 국민이 본 것은 바뀐 선관위가 아니라 또 무너진 선관위였다. 이쯤 되면 문제는 한 번의 실수가 아니다. 책임지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책임지지 않는 조직 문화, 독립성을 말하면서 내부 통제를 미루는 관행, 선거가 끝나면 논란도 지나간다는 안이함이 누적된 결과로 봐야 한다. 중앙선관위는 헌법기관이라는 지위에 기대어 외부 감시에는 예민하게 반응해왔다. 그러나 독립성은 무능을 덮어주는 명분이 될 수 없다. 헌법기관일수록 책임의 기준은 더 높아야 한다. 노 전 위원장의 사퇴도 충분하지 않다. 물러나는 것은 정치적·도의적 책임의 시작일 뿐이다. 사퇴했다고 해서 선거 당일 투표권 행사에 차질을 빚은 유권자의 문제 제기가 사라지지 않는다. 선관위 내부에서 어떤 판단이 있었는지, 누가 보고했고 누가 승인했는지, 어떤 지침이 내려갔는지, 예산과 인쇄 물량 산정에 어떤 오류가 있었는지 끝까지 확인해야 한다. 책임선이 실무자 몇 명에서 끊겨서도 안 된다. 실무자는 지시와 기준에 따라 움직인다. 기준을 세운 사람, 점검하지 않은 사람, 위험 신호를 놓친 사람이 함께 드러나야 한다. 대법관 출신이라는 경력은 이번 사태에서 오히려 더 무거운 질문을 부른다. 법관은 절차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직업이다. 작은 송달 하자 하나, 증거조사 절차 하나, 기일 통지 하나가 재판 전체의 적법성을 흔들 수 있다는 사실을 매일 다루는 사람이 법관이다. 그런 법관 출신이 선거관리 기관의 정점에 있었다면 투표 절차의 작은 허점이 얼마나 큰 불신으로 번지는지 몰랐다고 할 수 없다. 몰랐다면 무능이고, 알면서도 막지 못했다면 더 큰 책임이다. 국민은 선관위원장에게 선거 당일 투표소마다 서 있으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전국 선거가 제대로 돌아가도록 시스템을 만들고, 점검하고, 실패 가능성을 줄이라고 요구한다. 그 자리는 명예직이 아니다. 선거가 끝난 뒤 사과문을 읽는 자리도 아니다.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 절차가 실제 현장에서 작동하도록 책임지는 자리다. 노 전 위원장은 그 책임을 다했는가. 이번 사태가 던지는 질문은 바로 여기에 있다. 수사는 차분하게 진행돼야 한다. 정치권도 이 사안을 정파적 공방으로만 소비해서는 안 된다. 선거관리 실패를 이유로 근거 없는 음모론을 키우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정쟁화를 걱정한다는 이유로 책임 규명을 흐려서도 안 된다. 투표용지 부족은 실제로 발생했다. 선관위가 자체 조사로도 전국 50곳의 문제를 확인했다. 이 정도 사안이라면 조직 내부 감사나 위원장 사퇴만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노태악 개인의 불명예로만 볼 사안도 아니다. 이번 사태는 우리 공직사회 엘리트 시스템의 취약한 단면을 보여준다. 높은 자리에 오른 경력과 실제 관리 능력은 같지 않다. 법복의 권위가 행정 능력을 보증하지 않는다. 요직을 두루 거쳤다는 사실이 현장의 위험을 읽는 감각까지 보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높이 올라간 사람일수록 조직의 보고서와 의전 뒤에 숨어 현장의 균열을 놓치기 쉽다. 그 균열이 선거 당일 투표소 앞에서 터졌다. 국민이 느끼는 허탈감은 여기에 있다. 선관위는 선거를 관리하는 기관이다. 도로 포장도, 재난 구조도, 산업 정책도 아니다. 선거가 본업이다. 그런데 본업의 가장 기본인 투표용지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 국가기관이 자신의 존재 이유에 해당하는 일을 실패한 것이다. 그 실패의 정점에 있던 사람이 대법관 출신 중앙선관위원장이었다. 이것이 이번 사태를 더 부끄럽게 만든다. 노 전 위원장은 사과했고 물러났다. 그러나 사과와 사퇴만으로 끝낼 수 없는 공적 실패가 있다. 이번 일이 그렇다. 합수본 수사는 누가 어떤 법적 책임을 져야 하는지 가려야 한다. 동시에 중앙선관위는 선거관리 시스템을 처음부터 다시 열어야 한다. 투표율 예측, 투표용지 인쇄 기준, 예비 물량 관리, 지역 선관위 보고 체계, 선거 당일 비상 대응, 중앙의 지휘 권한과 책임 구조를 모두 공개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거창한 구호로만 지켜지지 않는다. 투표소 문이 열리고, 유권자가 신분을 확인받고, 투표용지를 받아 기표하고, 투표함에 넣는 절차가 차질 없이 이어질 때 지켜진다. 그 기본 절차가 멈추면 국민은 선거 결과 이전에 선거관리 자체를 의심하게 된다. 선관위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일은 특정 정당의 비판이 아니라 유권자의 신뢰 상실이다. 노태악은 그 자리에 무엇을 하러 갔나. 이 질문은 한 사람을 겨냥한 분노에 그치지 않는다. 헌법기관의 독립성이 책임 공백으로 변질되지 않았는지, 사법 엘리트의 권위가 실제 행정 실패를 가리고 있지는 않았는지, 선관위가 국민 앞에 충분히 낮은 자세로 일해왔는지를 묻는 질문이다. 투표용지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선관위라면 국민에게 신뢰를 요구할 자격부터 다시 세워야 한다. 이번 사태의 결론은 수사기관의 판단으로만 끝나지 않을 것이다. 법적 처벌 여부와 별개로 노태악이라는 이름은 선거관리 실패의 책임자 가운데 하나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대법관에서 중앙선관위원장으로 이어진 화려한 경력의 끝이 왜 이런 모습이어야 했는지, 그 답은 노 전 위원장과 선관위가 스스로 내놓아야 한다. 국민은 이미 묻고 있다. 그 자리가 그렇게 가벼운 자리였느냐고.
2026-06-13 12:3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