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총 13건
-
-
경찰에 더 큰 수사권 줬다면 통제장치도 함께 세워야
[경제일보] 수사권 조정의 핵심은 권한을 나누는 데 있었다. 검찰에 집중됐던 수사·기소 권한을 분산하고 경찰의 독립적 수사 역량을 키우자는 취지였다. 방향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 문제는 권한을 넘긴 만큼 책임과 통제 장치도 함께 세웠느냐다. 최근 제주에서 벌어진 실종사건 허위 종결은 그 질문을 정면으로 던진다. 제주서부경찰서 실종팀에서 근무한 한 경찰관은 자신이 처리한 실종사건 298건 가운데 27건을 부적절하게 처리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중 11건은 허위 종결로 확인됐다. 실제로 연락하지 않고 소재가 확인된 것처럼 처리하거나, 실종자가 사망했다는 허위 내용을 시스템에 입력해 관리 대상에서 해제한 사례도 드러났다. 기존 허위 종결 사건 당사자 2명은 이후 숨진 채 발견됐다. 다만 이 사건에서 말하는 ‘실종사건 종결’과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이 행사하는 형사소송법상 ‘불송치 결정’은 같은 제도가 아니다. 전자는 실종신고 관리와 관련된 경찰 업무이고, 후자는 범죄 혐의가 없다고 판단한 형사사건을 검찰에 송치하지 않는 절차다. 두 제도를 동일선상에 놓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이번 사건이 형사사법 개혁과 맞닿는 지점은 분명하다. 경찰의 판단 영역이 넓어지는 만큼 그 판단을 점검하고 바로잡는 장치도 정교해져야 한다는 점이다. 문제가 된 초기 사건들은 해당 경찰관의 야간 1인 당직 때 처리됐다. 당시 별도의 보고·검토 절차가 있더라도 전산상 실종 해제는 담당자가 직접 할 수 있었다. 경찰은 논란 이후 관리자가 해제 사유와 입력 내용을 다시 확인한 뒤 최종 승인하도록 이중장치를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개인의 일탈로만 정리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찰은 수사기관이면서 거대한 행정조직이다. 내부 위계와 동료 관계가 강한 조직에서는 부실 판단이나 잘못된 관행이 내부에서 충분히 걸러지지 않을 위험이 존재한다. 실제 더불어민주당 경찰개혁추진단도 제 식구 감싸기, 사건 암장, 무단 종결, 증거 은폐·조작, 수사정보 유출, 개인정보 침해를 ‘6대 폐단’으로 지목했다. 외부 감사 확대와 수사 제척사유 강화, 피해자 설명 책임, 부실 수사의 법적 책임 강화도 대책으로 거론되고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을 거치면서 경찰은 일반 형사사건의 1차 수사에서 훨씬 큰 역할을 맡게 됐다. 앞으로 검찰의 직접수사 영역이 더 줄어들수록 경찰 판단의 무게는 커진다. 수사를 시작할지, 더 이어갈지, 불송치할지에 대한 결정 하나가 국민의 권리와 직결된다. 물론 형사사건에는 이미 통제 장치가 있다. 경찰이 불송치 결정을 하면 고소인이나 피해자 등은 이의를 신청할 수 있고, 검사는 위법하거나 부당한 불송치에 대해 재수사를 요청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제도가 실제 현장에서 얼마나 충실히 작동하느냐와, 실종사건처럼 형사 불송치 절차가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 영역의 공백이다. 그래서 논의의 초점은 ‘경찰에게 권한이 많다’는 데서 멈춰서는 곤란하다. 어떤 판단을 내렸고, 그 판단이 어떻게 기록되며, 누가 다시 들여다볼 수 있는지를 촘촘하게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첫째, 사건 종결에는 충분한 이유가 남아야 한다. ‘혐의 없음’이나 ‘소재 확인’ 같은 결과만 기록하는 방식으로는 부족하다. 어떤 자료를 확인했고, 어떤 절차를 거쳤으며, 왜 추가 조치가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했는지 남겨야 한다. 특히 실종·성범죄·아동·가정폭력처럼 생명과 안전에 직결되는 사건은 종결 기준을 더 엄격하게 둘 필요가 있다. 둘째, 고위험 사건에는 내부 결재를 넘어선 점검 장치가 필요하다. 모든 사건을 외부기관이 다시 심사하는 방식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그러나 장기 실종이나 중대한 피해 사건, 담당자 단독 판단 비중이 큰 사건은 일정 비율을 표본 감사하거나 외부위원회가 사후 검증하는 방식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셋째, 신고자와 피해자에게 종결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는 절차를 강화해야 한다. 형사사건의 불송치에는 법정 이의신청 절차가 있지만 실종사건 등 다른 경찰 업무에서는 재검토 요구 통로가 상대적으로 약한 경우가 있다. 사건이 왜 끝났는지 설명하고, 이의가 있을 때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다시 판단을 요구할 수 있는지 명확히 알려야 한다. 넷째, 부실 처리의 책임도 분명히 해야 한다. 단순 실수와 고의적 은폐는 구분해야 하지만 허위 기록, 사건 암장, 증거 삭제처럼 중대한 행위는 징계만으로 끝낼 문제가 아니다. 형사책임과 지휘 책임의 경계를 분명히 해야 조직도 긴장한다. 고대 로마 공화정은 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것을 경계했다. 집정관을 두 명으로 두고 임기를 제한한 것도 상호 견제를 제도화하려는 장치였다. 권력은 선의만으로 통제되지 않는다는 경험에서 나온 제도였다. 현대 형사사법 역시 다르지 않다. 좋은 경찰관이 많다는 믿음과 경찰 권한을 제도적으로 통제하는 일은 별개의 문제다. 견제 장치는 경찰을 불신해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경찰의 판단을 더 신뢰할 수 있도록 만드는 장치다. 이번 제주 사건을 계기로 ‘성인실종법’ 제정 필요성도 다시 제기되고 있다. 일반 성인 실종은 아동·치매환자 등에 적용되는 별도 법률의 보호 대상에서 빠져 있어 제도적 공백이 있다는 지적이 이어져왔다. 실종사건 종결 때 객관적 증빙을 남기고 제3기관이 수사·수색 과정을 점검하는 방안도 논의할 만하다. 검찰의 과도한 권한을 줄였다는 이유로 경찰의 역할 확대 자체를 문제 삼을 일은 아니다. 권력분산의 목적은 한 기관의 힘을 다른 기관에 옮겨 싣는 데 있지 않다. 국민의 기본권이 어느 한 조직의 자의적 판단에 좌우되지 않도록 견제와 책임의 구조를 만드는 데 있다. 경찰개혁은 경찰을 약하게 만드는 작업이 아니다. 정당한 수사는 흔들림 없이 할 수 있게 하고, 잘못된 판단은 조직 내부와 외부에서 신속하게 걸러내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검찰 권한을 줄이고 경찰의 역할을 키웠다면 책임의 기준 역시 달라져야 한다. 사건을 왜 끝냈는지 기록이 남고, 그 판단이 잘못됐을 때 다시 들여다볼 통로가 작동해야 국민도 경찰의 판단을 신뢰한다. 제주 실종사건이 보여준 것은 한 경찰관의 일탈만이 아니다. 담당자의 잘못된 판단을 제때 걸러내지 못한 시스템의 허점이다. 경찰권이 커지는 시대라면 개혁의 다음 순서는 분명하다. 더 많은 권한에 걸맞은 더 촘촘한 책임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2026-09-09 12:30:00
-
-
-
검찰개혁의 비용을 국민에게 떠넘긴 국회
[경제일보] 국회가 검사의 보완수사권을 없앴다. 검찰개혁이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보완해야 할 수사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경찰이 다시 맡고 사건 당사자는 더 오래 기다리게 됐다. 권한을 없애는 데만 서두른 입법이 국민에게 그 비용을 청구하고 있다. 경찰이 수사를 마쳐 검찰에 넘긴 사건이라고 해서 모두 기소할 수 있는 상태인 것은 아니다. 계좌 추적이 빠지기도 하고 핵심 참고인을 조사하지 않은 채 송치되기도 한다. 범죄 혐의는 포착했지만 적용할 죄명을 잘못 판단한 사건도 있다. 지금까지 검사는 기록을 검토한 뒤 필요한 조사를 직접 해 빈틈을 메울 수 있었다. 앞으로는 경찰에 다시 수사를 요구해야 한다. 보완수사는 검찰의 권력을 지키기 위한 장치가 아니다. 경찰 수사의 미진한 부분을 보충해 기소 여부를 가리는 실무 절차다. 검사가 하지 않으면 누군가는 해야 한다. 그 일을 맡을 경찰 인력과 전문성을 먼저 갖춘 뒤 제도를 바꾸는 것이 순서였다. 국회는 거꾸로 갔다. 권한부터 없애고 대책은 시행 뒤에 마련하겠다는 식이다. 올해 상반기에만 검찰이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한 사건이 6만5913건이다. 경찰 수사관 한 명에게 접수되는 사건은 지난해 평균 133.8건에 달했다. 사건은 이미 쌓여 있고 처리 기간도 길어지고 있다. 이런 경찰에 연간 10만건이 넘는 보완수사를 더 맡겼다. 인력을 얼마나 늘릴지, 법률 전문성을 어떻게 보강할지, 처리 기간이 얼마나 더 늘어날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검사의 보완수사가 없어진다고 사건 처리가 빨라지는 것도 아니다. 경찰 수사가 부족하면 공소청은 보완수사를 요구하고 경찰은 사건을 다시 조사해야 한다. 돌아온 기록이 여전히 미흡하면 같은 절차가 반복된다. 검사가 직접 확인하면 끝날 일을 두 기관이 기록을 주고받으며 처리하게 된다. 수사와 기소를 나눴다는 정치적 성과 뒤에서 사건 당사자의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간다. 형사사건에서 시간은 단순한 지연이 아니다. 폐쇄회로TV 영상은 지워지고 통신·금융 자료의 확보는 어려워진다. 참고인의 기억도 흐려진다. 사기와 횡령 피해자는 형사사건 결과를 기다리느라 손해배상과 재산 환수에 필요한 대응을 미루게 된다. 피의자도 결론 없이 수사 대상에 묶이면 직업과 영업, 사회생활에서 손실을 입는다. 입법자가 잃는 것은 없지만 사건 당사자는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잃는다. 경찰의 첫 판단을 다른 법률가가 다시 살피는 절차가 필요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강화도 유기 사건은 검찰의 보완수사를 거쳐 유기 혐의가 유기치상으로 바뀌었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에서도 보완수사를 통해 성폭행 목적이 확인됐다. 처음 수사한 기관이 놓친 증거와 법리를 다시 검토하면서 사건의 실체가 드러난 사례다. 국회는 이 검증 절차를 없애면서 이를 대신할 수단을 내놓지 못했다. 검사에게 새로 준 ‘사실관계 확인’ 권한은 대안이 되기 어렵다. 검사가 사건 관계인의 말을 듣고 자료를 받을 수는 있지만 그 과정에서 확보한 진술과 자료는 재판에서 증거로 쓸 수 없다. 검사가 중요한 진술을 확인해도 경찰이 같은 사람을 다시 조사해야 한다. 피해자는 경찰과 검찰을 오가며 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사건 기록도 다시 움직인다. 보완수사의 이름만 없앴을 뿐 필요한 일과 시간은 고스란히 남겼다. 검찰청은 10월 2일 문을 닫고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이 출범한다. 중수청의 직급과 인사, 검찰 수사관 6000여명의 배치, 경찰과 중수청의 관할, 공소청과 경찰의 업무 절차를 정해야 한다. 손질해야 할 하위 법령도 900여개에 이른다. 72년간 이어진 형사사법 체계를 뒤엎으면서 현장에서 사건을 맡을 사람과 업무 기준조차 정하지 못한 채 시행일을 못 박았다. 수사기관의 간판을 바꾸고 관할을 나누는 일은 어렵지 않다. 사건이 어느 기관 소관인지 다툼이 생겼을 때 누가 신속히 결론을 내릴지, 잘못 이첩된 사건을 어떻게 되돌릴지, 보완수사 요구가 지연될 때 누가 책임질지를 정하는 일이 훨씬 어렵다. 정부와 국회는 가장 어려운 일은 뒤로 미룬 채 법률 통과를 개혁의 완성처럼 내세웠다. 경찰의 부실 수사를 통제할 장치도 허술하다. 개정법은 경찰이 정당한 이유 없이 보완수사 요구를 따르지 않으면 공소청장이 징계나 직무배제를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비슷한 제도는 2021년부터 있었지만 실제 직무배제 요구는 한 건에 그쳤다.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제도를 다시 법전에 적어놓고 책임 통제가 가능하다고 할 수는 없다. 이런 법안에 국회는 ‘중대한 위법 수사’와 ‘소추재량권의 현저한 일탈’을 공소기각 사유로 추가했다. 무엇이 중대한 위법이고 어느 정도가 현저한 일탈인지 기준도 두지 않았다. 앞으로 정치인과 대형 형사사건 피고인들은 수사 위법과 공소권 남용을 내세워 공소기각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법원은 유무죄에 앞서 수사와 기소 과정부터 따로 심리해야 한다. 공소기각 판단이 상급심에서 뒤집히면 사건은 다시 하급심으로 돌아간다. 공소기각 사유 확대는 수사와 기소를 분리한다는 법안의 취지와도 맞닿아 있지 않다. 그런데도 법사위 심사 막판에 들어갔다. 왜 별도 공론화 없이 끼워 넣었는지, 현재 중단된 이재명 대통령 관련 재판에는 어떻게 적용되는지 국회는 설명하지 않았다. 여당은 기존 대법원 판례를 법률에 옮겼다고 하지만 판례로 처리할 수 있었던 사안이라면 굳이 지금 조항을 신설한 이유부터 밝혀야 한다. 방탄 입법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입법 과정이 그 의심을 키웠기 때문이다. 검찰개혁은 검찰청 간판을 내렸다는 사실만으로 평가할 일이 아니다. 수사가 더 정확해지고 사건 처리가 빨라졌는지가 기준이 돼야 한다. 경찰의 업무는 늘고 사건은 늦어지며 잘못된 수사를 바로잡을 수단마저 약해진다면 그것을 개혁의 성과로 내세울 수 없다. 국민이 형사사법에 요구하는 것은 제대로 된 수사와 제때 나오는 결론이다. 수사권을 옮기려면 그 업무를 맡을 인력과 예산을 확보하고 부실 수사를 바로잡을 절차부터 마련했어야 한다. 국회는 경찰을 얼마나 보강할지, 사건이 얼마나 늦어질지, 그 책임을 누가 질지 답하지 않은 채 법부터 통과시켰다. 검찰청을 없앤 날짜는 정치권의 기록에 남을 것이다. 그러나 사건이 늦어져 피해 회복의 기회를 놓친 국민에게는 그 날짜가 아무 의미도 없다. 국회가 없앤 것은 검사의 권한이지만 국민이 잃는 것은 권리를 구제받을 시간이다. 그 시간을 되돌려줄 방법부터 마련하지 않았다면 이번 입법은 개혁이 아니라 책임의 전가다.
2026-08-01 06:00:00
-
보완수사권부터 없앤 국회…경찰 인력·통제 장치는 미완
[경제일보] 검사가 경찰 수사의 빈틈을 직접 보완할 수 없도록 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3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앞으로 경찰이 송치한 사건의 증거나 법리가 부족하면 검사는 직접 조사하지 못하고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해야 한다. 지난해 경찰 수사관 한 명에게 접수된 사건은 평균 133.8건, 검찰의 보완수사 요구는 11만623건이었다. 수사 인력과 기관 간 업무 절차가 정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보완수사권부터 폐지돼 사건 처리가 더 늦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법조계와 경찰 안팎에서 나온다. 현재 검사는 경찰이 송치한 기록을 검토한 뒤 필요한 증거를 직접 확보하거나 경찰에 추가 수사를 요구할 수 있다. 계좌 추적이 덜 됐거나 참고인 조사가 빠진 사건은 검사가 보완해 기소 여부를 결정한다. 개정법이 시행되면 검사는 의견을 내고 사건 관계인에게 자료를 받을 수 있을 뿐 수사는 할 수 없다. 부족한 부분을 발견할 때마다 경찰에 다시 수사를 요구해야 한다. 경찰 사건 처리 이미 56일 넘어 보완수사 요구는 이미 빠르게 늘고 있다. 2021년 8만6916건이던 보완수사 요구 사건은 지난해 11만623건으로 27.2% 증가했다. 올해 상반기에는 6만5913건이 경찰로 돌아갔다. 지금 추세라면 연간 보완수사 요구 건수는 지난해보다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경찰 수사관이 맡는 사건도 2020년 평균 108.4건에서 지난해 133.8건으로 23.4% 증가했다. 경찰이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해 미제로 분류한 사건은 지난해 22만241건, 올해 상반기 10만2567건이었다. 검찰이 처리하던 보완수사까지 경찰 업무에 더해지면 수사관 한 명이 같은 사건을 여러 차례 다시 들여다보는 일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사건 처리 기간은 벌써 길어지고 있다. 경찰이 사건을 접수해 송치 또는 불송치 결정을 내리기까지 걸린 기간은 지난해 평균 54.5일에서 올해 상반기 56.4일로 늘었다. 불송치 사건은 평균 61.1일이 걸렸다. 여기에 검찰의 기록 검토와 보완수사 요구, 경찰의 추가 조사, 검찰의 재검토가 이어지면 고소부터 기소까지 필요한 시간은 훨씬 길어진다. 피해자에게 수사 지연은 달력에 며칠이 더해지는 문제가 아니다. 범행을 입증할 자료가 사라지고 참고인의 기억이 흐려질 수 있다. 민사소송이나 피해 회복 절차도 형사사건 처분을 기다리느라 늦어진다. 피의자 역시 수사가 끝날 때까지 취업과 영업, 금융 거래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검찰의 보완수사를 거쳐 혐의가 달라진 사건도 적지 않다. 강화도 유기 사건에서는 검찰의 추가 수사를 거쳐 유기 혐의가 유기치상으로 변경됐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도 검찰 보완수사 과정에서 성폭행 목적이 확인됐다. 처음 수사한 기관과 다른 법률가가 증거를 다시 살피는 과정에서 놓친 범죄가 드러난 사례들이다. 검사가 확인해도 증거로 못 쓴다 개정법은 보완수사를 없애는 대신 검사에게 ‘사실관계 확인’ 권한을 줬다. 검사가 피의자와 피해자 등 사건 관계인의 의견을 듣고 자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한 제도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얻은 진술과 자료는 재판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 검사가 피해자를 만나 중요한 진술을 확인해도 증거로 제출하려면 경찰이 같은 사람을 다시 조사해야 한다. 피해자는 검사실에서 한 말을 경찰서에 가서 되풀이해야 한다. 경찰이 다시 작성한 조서가 검찰로 넘어온 뒤에야 기소 판단이 가능하다. 보완수사를 없애면서 만든 대체 절차가 출석 횟수와 처리 기간을 늘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여당은 아동학대와 가정폭력, 성범죄, 스토킹, 장애인·노인 학대 등 7개 범죄에 전건송치를 도입할 방침이다. 경찰이 불송치한 사건까지 모두 공소청에 보내 한 번 더 살피게 하겠다는 것이다. 보완수사 폐지로 피해자 보호가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반영한 조치다. 전세사기와 보이스피싱 같은 다중 피해 범죄는 전건송치 대상에서 빠졌다. 같은 피해라도 경찰이 어떤 죄명을 적용하느냐에 따라 공소청의 재검토를 받을 수 있는지가 달라질 수 있다. 피해자 보호가 필요해 예외를 두면서도 범죄 유형을 제한해 또 다른 사각지대를 만들었다. 수사 책임은 커졌지만 통제 수단은 약해 경찰 수사가 부실하거나 검찰의 보완수사 요구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을 때 책임을 묻는 방법도 문제다. 개정법은 경찰이 정당한 이유 없이 보완수사 요구를 이행하지 않으면 공소청장이 해당 경찰관의 징계나 직무배제를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비슷한 제도는 2021년 검경 수사권 조정 때부터 시행됐다. 이후 검사가 경찰관의 직무배제를 요구한 사례는 한 건에 그쳤다. 징계와 직무배제 요구권을 법에 적어두더라도 실제로 작동하지 않으면 부실 수사를 막기 어렵다. 검찰에서는 경찰이 보완수사를 늦게 하거나 부실하게 처리한 경우 인사평가에 반영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경찰은 검찰의 처분 결과를 경찰 인사에 반영하면 수사 독립성이 훼손된다고 맞서고 있다. 검찰의 직접 개입은 차단하면서 경찰 수사의 오류를 누가 확인하고 책임을 물을지에 대한 답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새 기관 출범 두 달 앞두고 하위 법령 900개 손질 검찰청은 오는 10월 2일 폐지된다. 공소청이 기소와 공소 유지를 맡고 중대범죄수사청은 부패·경제·방위산업·마약·내란·외환·사이버범죄 등 6대 중대범죄를 수사한다. 1954년 형사소송법 제정 이후 72년 만에 형사사법체계가 전면 개편된다. 출범까지 남은 시간은 두 달 남짓이다. 중수청은 2000∼3000명 규모로 꾸릴 예정이지만 수사관 직급과 임용 방식은 확정되지 않았다. 기존 검찰 수사관 6000여명을 공소청과 중수청에 어떻게 나눠 배치할지도 남아 있다. 경찰과 중수청 가운데 어느 기관이 사건을 맡을지, 관할이 겹칠 때 누가 먼저 수사할지에 관한 실무 기준도 마련해야 한다. 정부가 개정해야 할 하위 법령은 900여개에 이른다. 경찰과 중수청, 공소청,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사건을 나누고 넘기는 절차도 새로 정해야 한다. 수사기관이 늘면 관할을 판단하고 사건을 이첩하는 데 드는 행정 절차도 늘어난다. 그동안 수사는 멈추거나 담당 기관을 찾아 오갈 수 있다. 검사의 직접 영장 청구를 막은 조항도 논란을 낳고 있다. 개정법에 따르면 체포·구속·압수수색 영장은 경찰이 신청해야 검사가 법원에 청구할 수 있다. 헌법은 체포·구속·압수·수색 영장을 ‘검사의 신청에 의해’ 법관이 발부하도록 규정한다. 대검은 헌법이 경찰 신청을 거치지 않은 검사의 직접 영장 청구까지 보장한다며 위헌 소지를 제기했다. 공소기각 기준까지 넓혀 재판 장기화 우려 개정법은 공소기각 사유도 기존 6개에서 8개로 늘렸다. ‘중대한 위법수사를 근거로 공소가 제기된 경우’와 ‘소추재량권을 현저히 일탈한 경우’ 법원이 혐의에 대한 판단 없이 재판을 끝낼 수 있도록 했다. ‘중대한 위법’과 ‘현저한 일탈’을 가르는 기준은 법에 적혀 있지 않다. 정치인과 특검 사건 피고인들이 표적 수사나 공소권 남용을 주장하며 공소기각을 요구하면 재판부는 수사 과정의 위법성부터 별도로 심리해야 한다. 1심의 공소기각 판단이 상급심에서 뒤집히면 사건은 파기환송돼 다시 재판을 받아야 한다. 야권은 이 조항이 이재명 대통령의 재판을 끝내기 위한 우회로라고 주장하고 있다. 여당은 기존 대법원 판례를 법률에 옮긴 것이라고 설명한다. 기존 판례로 해결하던 사안을 별도 조항으로 만들면서 적용 기준을 두지 않은 탓에 형사재판에 새로운 다툼을 더했다. 국회는 검사의 수사권을 폐지하는 데 속도를 냈다. 그러나 보완수사를 넘겨받을 경찰의 사건은 이미 쌓여 있고 공소청과 중수청의 인력과 업무 기준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경찰 수사가 잘못됐을 때 이를 바로잡을 제도도 실효성이 검증되지 않았다. 형사사법 절차에서 한 기관의 업무를 없애면 그 일을 맡을 사람과 필요한 시간을 먼저 계산해야 한다. 이번 개정은 검사에게서 보완수사권을 떼어냈지만 그 업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경찰이 떠안고 사건 당사자가 기다려야 할 시간이 늘어났다.
2026-07-31 17:21:11
-
-
-
메이플 쇼케이스 정보로 캐릭터명 선점…법원 "5000만원 배상"
[경제일보] 넥슨의 대표 온라인게임 ‘메이플스토리’에서 미공개 업데이트 정보를 이용해 캐릭터명을 사전 선점한 협력업체 직원과 소속 대행사에 5000만원의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됐다. 게임 업데이트 정보가 단순한 홍보 자료를 넘어 게임 내 희소 자산의 가치와 직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넥슨 메이플스토리 운영진은 12일 공식 공지를 통해 지난해 12월 13일 열린 ‘CROWN’ 쇼케이스 관련 후속 조치 결과를 안내했다. 넥슨에 따르면 쇼케이스에서 소개될 예정이었던 업데이트 콘텐츠명을 활용해 캐릭터명을 사전에 선점한 대행사 인원이 확인됐고 법원은 해당 대행사와 직원에게 5000만원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넥슨은 해당 대행사와의 거래를 영구적으로 금지하기로 했다. 회사 측은 공식 채널을 통해 공개되지 않은 정보를 외부에 전파하거나 이를 시도하는 행위, 또는 해당 정보를 활용해 개인적 이득을 취하는 행위에 대해 앞으로도 강경하게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번 사건은 이용자들이 쇼케이스에서 처음 공개된 퀘스트와 보스 등 콘텐츠명과 같은 캐릭터명이 이미 다수 생성돼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알려졌다. 온라인게임에서 캐릭터명은 단순한 표시 이름이 아니다. 장기간 게임을 즐기는 이용자에게는 정체성과 팬덤, 거래 가치가 결합된 희소 자산에 가깝다. 메이플스토리는 과거 ‘뉴네임 옥션’을 통해 캐릭터 이름을 메이플포인트로 경매할 수 있는 시스템을 운영한 적이 있다. 공식 경매 구조가 존재했다는 점은 희귀 캐릭터명에 이용자 수요와 경제적 가치가 형성돼 있음을 보여준다. 미공개 콘텐츠명을 먼저 알고 선점했다면 일반 이용자와의 정보 비대칭을 이용한 행위로 볼 수 있는 이유다. 넥슨이 강경 대응에 나선 배경에는 반복된 쇼케이스 정보 유출 논란도 있다. 앞서 2024년 12월 ‘NEXT’ 쇼케이스 주요 내용이 협력업체 직원을 통해 사전에 외부 커뮤니티에 유출된 사건이 있었다. 당시 법원은 유출 당사자와 소속 업체 등에 1억원 상당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넥슨은 형사 고소와 민사 소송을 병행하고 협력사 보안교육과 기밀정보 접근 통제, 로그 모니터링 체계를 강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게임업계에서 쇼케이스는 단순 발표 행사가 아니다. 신규 보스, 직업, 지역, 시스템 개편 등 대형 업데이트 정보가 한꺼번에 공개되는 핵심 마케팅 무대다. 사전 유출은 이용자의 기대감을 훼손할 뿐 아니라 개발사와 이용자 사이의 신뢰를 흔든다. 특히 업데이트명이 캐릭터명, 아이템명, 길드명 등 게임 내 자산과 연결될 수 있는 게임에서는 정보 유출의 파급력이 더 크다. 이번 판결은 협력업체 관리 책임을 다시 묻는 계기도 됐다. 대형 게임사는 쇼케이스, 영상 제작, 이벤트 운영, 마케팅, 번역, QA 등 여러 외부 업체와 협업한다. 이 과정에서 미공개 자료에 접근하는 인력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내부 직원뿐 아니라 외주 인력까지 같은 수준의 보안 의무와 추적 체계를 적용해야 하는 이유다. 한편 이제 앞으로의 넥슨의 사후 대응이 실제 통제 강화로 이어질지에 쏠린다. 손해배상 판결과 거래 금지는 강한 신호지만 재발을 막으려면 접근 권한 최소화, 자료 열람 기록 관리, 협력사 계약상 보안 책임 강화, 위반 시 제재 조항 명확화가 뒤따라야 한다. 정보 유출은 한 번의 일탈처럼 보이지만 반복되면 운영 시스템의 허점으로 읽힌다. 게임 서비스에서 공정성은 확률형 아이템이나 밸런스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누가 먼저 정보를 알고 그 정보로 어떤 이익을 얻을 수 있었는지도 이용자 신뢰의 문제다. 메이플스토리 캐릭터명 선점 사건은 게임 안의 작은 이름 하나가 왜 법적 책임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라이브 서비스 게임의 경쟁력은 콘텐츠 업데이트만이 아니라 그 정보를 공정하게 공개하고 지키는 능력에서도 판가름난다.
2026-06-12 16:49:48
-
"PC 꺼져도 일은 계속됐다"… 신한銀 '공짜 노동' 논란 재점화
신한은행 내부의 ‘공짜노동’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2019년 주52시간제가 본격화되면서 장시간 노동을 막기 위한 PC관리시스템이 도입됐지만, 현장에서는 올해 초까지 시스템을 우회해 야근을 이어가는 관행이 지속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일은 했지만 노동시간으로 기록되지 않고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에 수당도 지급되지 않는 구조가 반복됐다는 지적이다. 금융노조 신한은행지부가 문제 삼는 핵심은 단순한 전산 편법이 아니다. 은행권 전반에 남아 있는 ‘눈치 야근’과 ‘무임금 초과근무’의 조직문화다. PC가 꺼지면 퇴근한 것으로 기록되지만 실제 업무는 다른 방식으로 계속되는 구조가 굳어졌다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신한은행 노조는 지난해부터 PC 우회 사용 문제를 사측에 제기했고 올해 들어서는 사례 수집과 노사협의회 의제화를 통해 공짜노동 근절을 전면에 내걸었다. 노조가 장시간 노동과 대가 없는 노동 문제 해결을 위해 PC 우회 사용 실태 파악을 요구했고 회사의 태도 변화가 더디자 직접 사례 수집에 나서기도 했다. ◆PC관리시스템 도입 뒤에도 계속된 ‘기록 없는 노동’ 신한은행은 주52시간제 시행 이후 PC관리시스템을 운영해왔다. 표면상으로는 정해진 시간 이후 PC 사용을 제한해 초과근무를 막는 장치였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시스템을 피하는 방식이 다수 등장했다. 본지의 취재 결과 우회 방식은 십수 개에 달했고, 이 가운데 하나가 현장에서 ‘정리하기·돌려쓰기’로 불린 방식이었다. 10일 신한은행 노조에 따르면 정상적인 시간외근무 신청과 승인 절차를 밟으면 초과근무 시간이 기록되고 수당 지급 근거가 남는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업무량이 많고 관리자 눈치를 봐야 하는 분위기 때문에 직원들이 정당한 야근 신청을 주저했다. 그 결과 PC 사용 기록을 남기지 않거나 다른 방식으로 시스템을 우회해 업무를 이어가는 관행이 생겼다. 실제 지난 3월 신한은행 본부 부서 24곳에 대한 노조의 불시 점검 결과, 근무시간 관리 시스템을 우회해 초과근무를 이어가는 사례가 확인됐다. 노조는 이른바 ‘알트+탭’ 방식 등 계정 전환을 통한 PC 사용시간 우회 사례를 지적했다. 또 자율출퇴근제 등록 시간을 반복 수정하거나 보상휴가를 실제로 쓰지 않고 전산상으로만 소진 처리하는 사례 등도 거론됐다. 문제는 이런 편법이 직원 개인의 일탈로만 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업무는 줄지 않았고 인력은 부족했으며 정식 초과근무 신청에는 눈치가 보였던 것이다. PC는 꺼졌지만 일은 끝나지 않았다. 제도는 노동시간을 줄이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현장에서는 노동을 보이지 않게 만드는 장치로 변질됐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노조 “노동시간 문제는 노동 주권 문제” 신한은행 노조는 올해 ‘공짜노동 근절’을 핵심 사업으로 내세웠다. 김용환 금융노조 신한은행지부 위원장은 지난 3월 제67년차 정기전국대의원대회에서 “절대 인력이 부족한 현장의 장시간 노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력 충원, 공짜노동 근절을 목표로 달려가겠다”며 “노동시간의 문제는 노동 주권의 문제”라고 밝혔다. 노조는 지난해부터 사측에 PC 우회 사용 문제를 제기하고, PC를 사용하면 자동으로 시간외근무가 등록되는 시스템 구축을 요구해왔다. 핵심은 간단하다. 퇴근 시간 이후 PC를 켜고 업무를 했다면 그 시간은 노동시간으로 기록돼야 한다는 것이다. 노조는 이를 통해 직원 개인이 관리자 눈치를 보며 초과근무 신청을 해야 하는 구조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사측은 자동등록 방식에 동의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대신 노사는 지난 3월 말 1분기 노사협의회를 통해 오전 8시 50분부터 오후 5시 50분까지를 기준 근무시간으로 정하고, 그 외 시간의 노동은 시간외근무로 등록하는 내용에 합의했다. 또 금요일 1시간 조기퇴근제 시행에도 합의했다. 신한은행지부는 이 합의를 “왜곡된 노동시간 구조를 정상 상태로 되돌리는 첫걸음”이라고 평가했다. ◆문제 제기 뒤 차단 나섰지만 쟁점은 남았다 신한은행 노조에 따르면 지속적인 문제 제기 후 사측은 올해 들어 PC 우회 사용 차단에 나섰다. 현재 상당수 편법 사용 방식은 막힌 상태라는 게 노조 측 설명이다. 다만 노조는 이것만으로 공짜노동 문제가 끝났다고 보지 않는다. 전산상 우회 수단을 막더라도 정당한 야근을 신청하기 어려운 조직문화가 남아 있다면 공짜노동은 다른 형태로 되살아날 수 있기 때문이다. 노조가 계속해서 요구하는 것도 ‘PC 사용 시 시간외근무 자동등록’이다. 초과노동을 직원 개인의 신청과 관리자의 승인에만 맡기지 말고 실제 PC 사용 기록을 기준으로 노동시간을 객관적으로 남기자는 주장이다. 노조는 특히 시간외근무가 회의나 교육 명목으로 편법 운용되거나, 제도의 취지를 흐리는 사례가 확인될 경우 적극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본부부서, 지역본부, 영업점 어디든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신한은행 노조는 “모든 초과노동에 대한 정당한 시간외근무 보상”을 강조하며 제도 정착 여부를 지속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단기성과주의가 공짜노동 부른다” 노조는 공짜노동의 배경에 단기성과주의도 있다고 본다. 김 위원장은 경영진을 향해 “임기 연장을 위한 보여주기식 실적 쥐어짜기로 현장 직원들은 고통스럽다”고 비판했다. 직원들이 자괴감이 아니라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일터가 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신한은행은 △디지털 전환 △내부통제 강화 △금융소비자보호 △비대면 영업 확대 △고령층 창구 수요 대응 등으로 업무가 복합화되고 있다. 그러나 인력 운용과 영업시간, 성과평가 체계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 노동시간 단축 제도는 현장에서 형식화될 수밖에 없다. 국회 정무위원회 한 관계자는 “신한은행 공짜노동 논란은 ‘PC를 몇 시까지 켰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일한 시간이 기록되고 기록된 노동에 정당한 대가가 지급되는가의 문제다”며 “주52시간제의 취지는 노동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노동을 줄이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PC관리시스템이 노동시간 관리 장치라면 그 시스템은 노동을 지우는 방식이 아니라 노동을 정확히 드러내는 방식으로 작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관계자는 또 “정당한 초과근무 신청을 막는 눈치 문화, 부족한 인력, 과도한 업무량, 단기성과 압박이 그대로라면 공짜노동은 이름만 바꿔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며 “노조의 투쟁이 단순한 임금 보전 요구를 넘어 노동시간의 정상화, 지속가능한 일터 만들기로 확장되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아주경제 2026년 06월 11일자 15면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2026-06-11 08:55:04
-
-
-
특별감찰관 순기능이 크다면 그 길을 가야 한다
[경제일보] 권력은 스스로를 감시할 때 비로소 정당성을 얻는다. 그 점에서 특별감찰관 제도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대통령의 가족과 측근, 권력 핵심을 상시적으로 감찰하는 장치는 권력의 오만을 제어하고 국정의 투명성을 담보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년 가까이 특별감찰관이 공석으로 방치된 현실은 우리 정치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준다. 최근 대통령이 다시금 특별감찰관 후보 추천을 국회에 요청한 것은 늦었지만 의미 있는 행보다. 반복된 요청 자체가 이 제도의 필요성과 시급성을 방증한다. 과거 국정농단 사태나 권력 주변의 사적 영향력 논란은 감시 장치 부재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이미 경험으로 확인된 바 있다. 권력은 견제받지 않을 때 반드시 균열이 생기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가와 국민에게 돌아간다. 그럼에도 절차가 지연되는 원인은 분명하다. 첫째, 정치적 이해관계다. 특별감찰관은 권력 핵심을 겨누는 자리인 만큼 어느 정권, 어느 정당도 완전히 자유롭기 어렵다. 여야 모두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실행’에는 소극적인 이중적 태도를 보여왔다. 둘째, 제도의 정치화다. 추천권을 쥔 국회가 정략적 셈법에 매몰되면서 제도의 본래 취지가 훼손되고 있다. 셋째, 책임 회피다. 서로 상대를 탓하며 시간을 끄는 사이, 결국 아무도 결단하지 않는 구조가 고착화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지연은 결코 중립적 결과를 낳지 않는다. 감찰이 없는 권력은 방치된 권력이며, 방치는 곧 위험이다. 우리는 이미 ‘관리할 때’와 ‘관리하지 않을 때’의 차이를 수차례 경험했다. 완전한 제도는 없지만, 최소한의 통제 장치가 존재할 때 권력의 일탈 가능성은 현저히 줄어든다. 역기능을 이유로 기능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책임 있는 정치의 태도가 아니다. 해결의 방향은 명확하다. 우선 국회는 정쟁을 중단하고 추천 절차를 신속히 진행해야 한다. 법이 정한 틀 안에서 기한을 설정하고, 투명한 기준에 따라 후보를 선정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둘째, 대통령 역시 임명권 행사에 있어 독립성과 중립성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야 한다. 셋째,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 보완도 병행되어야 한다. 감찰 권한의 범위와 절차, 보고 체계 등을 명확히 해 정치적 논란의 여지를 줄여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치권 전반의 인식 전환이다. 특별감찰관은 특정 정권을 겨냥한 도구가 아니라, 어떤 권력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헌정 질서의 일부다. 이를 정략적으로 접근하는 순간 제도는 무력화되고, 그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간다. 이제 선택의 문제만 남았다. 불완전하더라도 작동하는 견제 장치를 둘 것인가, 아니면 아무 장치 없이 권력의 자율에 맡길 것인가. 상식은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조금이라도 순기능이 크다면 그 길을 택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소한의 책임이며, 정치가 국민 신뢰를 회복하는 첫걸음이다.
2026-04-21 09:5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