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총 1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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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관 인선 '밀실 합의', 사법독립 위해서라도 끝내야
[경제일보] 대법관을 뽑는 절차는 법에 정해져 있다. 후보를 천거받아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심사하고, 대법원장이 그 가운데 한 사람을 대통령에게 제청한다. 국회가 동의하면 대통령이 임명한다. 그런데 법에는 없는 절차 하나가 마지막 관문처럼 작동해 왔다. 대법원과 대통령실이 최종 후보를 놓고 사전에 의견을 맞추는 물밑 협의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지난 18일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으로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를, 다음 달 퇴임하는 이흥구 대법관 후임으로 김성수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이재명 대통령에게 서면 제청했다. 그동안 대법원장이 대통령실과 후보를 조율한 뒤 대통령을 만나 제청해 온 관행과 달랐다. 청와대는 “협의를 건너뛴 유례없는 일방 통보”라며 반발했고, 손 후보 제청을 어떻게 처리할지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 이번 일을 조희대 대법원장과 이재명 대통령 가운데 누가 맞느냐는 싸움으로 보면 본질을 놓친다. 헌법 제104조는 대법관을 대법원장이 제청하고 국회의 동의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했다. 제청권과 동의권, 임명권을 세 기관에 나눠 놓은 것이다.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후보를 미리 합의해야 한다는 절차는 헌법에도 법률에도 없다. 오래됐다는 이유만으로 관행이 헌법상 절차가 될 수는 없다. 법에 없는 관행이 실제 인선에서는 법정 절차만큼이나 강하게 작동해 왔다. 양측이 뜻을 맞추면 문제가 드러나지 않는다. 합의가 깨지면 지금처럼 제청과 임명 절차가 멈춘다. 누가 언제까지 양보해야 하는지, 대통령이 제청된 후보를 돌려보낼 수 있는지, 대법원장이 다시 후보를 골라야 하는지 정해진 기준도 없다. 관행은 합의가 될 때 편리하다. 갈등이 생겼을 때 작동하는 것이 제도다. 앞단의 절차는 오히려 꽤 공개돼 있다. 후보자를 천거받고 심사 대상자의 학력과 주요 경력, 재산 관계를 공개한다. 국민 의견도 받는다. 후보추천위가 검증 자료를 살펴 후보를 압축한다. 대법원도 이런 절차를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장치라고 설명해 왔다. 그렇게 공개 검증을 거친 후보들이 마지막 단계에 들어가면 문이 닫힌다. 대통령실이 누구를 반대했는지, 대법원은 왜 특정 후보를 고집했는지, 어떤 기준에서 이견이 생겼는지는 국민이 알기 어렵다. 앞에서는 후보자의 재산까지 내놓고 검증받으면서 정작 마지막 한 사람을 고를 때만 물밑 협의에 맡겨 온 셈이다. 그 결과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 자리는 다섯 달 넘게 비었다. 후보추천위는 지난 1월 후보 4명을 추천했다. 그런데도 대법원과 대통령실의 의견 조율은 끝나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 18일 조 대법원장이 손 후보를 서면 제청하면서 갈등이 밖으로 터져 나왔다. 법에 없는 협의가 풀리지 않으면서 헌법기관 구성원의 공석이 길어진 것이다. 노경필 법원행정처장은 제청이 이뤄지기 전 기존 후보들을 상대로 후보추천 절차를 다시 진행하는 방안까지 타진했다. 대통령실과 대법원의 협의가 풀리지 않자 이미 끝난 추천 절차를 처음부터 되돌리는 방안이 검토된 것이다. 일부 후보가 반대하면서 현실화되지는 않았다. 법에 따라 후보추천위가 후보를 골랐는데 물밑 협의가 막혔다는 이유로 법정 절차를 다시 돌리려 했다면 본말이 뒤집힌다. 후보추천위보다 대통령실과 대법원의 비공식 합의가 더 높은 단계에 놓였다는 얘기가 된다. 법에 정해진 절차가 관행에 밀려서는 안 된다. 청와대도 대법원도 이 관행에 기대 왔다. 청와대가 오랜 관행을 근거로 사전 협의를 당연한 권한처럼 요구하면 대통령의 임명권이 대법원장의 제청 단계까지 뻗게 된다. 대법원도 대통령실과 협의를 이어오다가 합의가 깨진 뒤에야 독립된 제청권을 내세운다면 그동안 왜 법에 없는 절차에 기대 왔는지 설명해야 한다. 지금의 충돌은 바로 그 모순에서 시작됐다. 사법독립은 대통령의 개입을 막는 동시에 대법원장의 권한도 절차 안에 묶어 두는 일이다. 대법관은 대통령의 사람도, 대법원장의 사람도 아니다. 법률과 헌법을 최종적으로 해석하고 국민의 권리를 판단하는 자리다. 그런 사람을 뽑는 절차라면 누가 어떤 권한을 행사하는지부터 분명해야 한다. 사전 협의가 반드시 필요하다면 법에 넣으면 된다. 누가 의견을 낼 수 있는지, 어느 범위까지 협의할 수 있는지, 언제까지 제청과 임명 절차를 끝내야 하는지 정하면 된다. 헌법상 제청권과 임명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는 절차라면 없애야 한다. 지금처럼 법 밖에 둔 채 합의가 될 때는 관행이라고 따르고, 틀어지면 서로 헌법상 권한을 들고나오는 방식은 더 두고 볼 일이 아니다. 앞으로 대법관 인선은 더 잦아진다. 대법관 정원이 단계적으로 26명까지 늘어나면서 현 대통령 임기 동안 새로 임명되는 대법관 수도 크게 늘어난다. 현행 일정대로라면 이재명 대통령이 임기 중 최대 22명의 대법관 임명에 관여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대법원의 구성이 크게 바뀌는 시기에 최종 인선 방식을 비공식 합의에 계속 맡겨 둘 수는 없다.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바뀔 때마다 인선 방식까지 달라져서는 안 된다. 두 기관장이 뜻을 맞출 때만 굴러가는 절차라면 제도라고 하기 어렵다. 사법독립을 사람의 선의나 두 사람의 관계에 맡길 수는 없다. 헌법은 대법원장에게 제청권을 주고 국회에 동의권을, 대통령에게 임명권을 줬다. 각자 자신의 권한을 행사하고 그 결과에 책임지라는 뜻이다. 헌법이 나눠 놓은 권한을 밀실에서 다시 합칠 이유는 없다.
2026-08-24 09: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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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전대, 선명성보다 절제가 필요한 이유
[경제일보] 전당대회는 목소리가 커지는 자리다. 후보는 차이를 보여야 하고, 당원은 더 선명한 주장을 원한다. 평소라면 한 걸음 물러설 정치인도 경선장에서는 두 걸음 앞으로 나간다. 문제는 그 두 걸음 앞에 헌법기관이 서 있을 때다.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가 막판으로 가면서 조희대 대법원장 탄핵과 이재명 대통령 관련 사건의 공소취소 주장이 정치권의 쟁점으로 떠올랐다. 김민석 당대표 후보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잘못된 기소라면 공소취소가 원칙이라는 취지로 말했고, 전대 과정에서는 조 대법원장 탄핵 주장도 제기됐다. 국민의힘은 12일 이를 두고 “선을 넘지 말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야당의 표현에는 정치적 과장이 섞여 있다. 공소취소 주장을 했다고 곧바로 대통령 탄핵사유가 된다고 단정하거나, 대법원장 탄핵 논의를 곧장 헌정질서 파괴와 동일시하는 것도 신중할 필요가 있다. 탄핵은 헌법이 명시적으로 인정하는 제도다. 헌법 제65조는 법관이 직무집행 과정에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했을 때 국회가 탄핵소추를 의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형사소송법에도 제1심 판결 선고 전까지 공소를 취소할 수 있는 절차가 있다. 제도 자체를 입에 올리는 것까지 금기시할 이유는 없다. 다만 할 수 있는 것과 해도 되는 방식은 다른 문제다. 대법원장도 비판받아야 한다. 사법부 독립이 사법부 무오류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판결이 사회적 상식과 동떨어졌다면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비판할 수 있고, 사법제도에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면 국회가 법을 고쳐야 한다. 명백한 헌법·법률 위반이 있다면 탄핵 절차도 밟을 수 있다. 하지만 탄핵에는 ‘마음에 들지 않는 판결’보다 훨씬 무거운 근거가 필요하다. 헌법은 법관에게 헌법과 법률,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판할 것을 요구한다. 역으로 정치도 그 독립을 존중할 의무가 있다. 판결 결과에 대한 불만이나 당내 정치적 필요가 탄핵의 동력처럼 비쳐지는 순간, 사법개혁은 제도개혁이 아니라 사법부 길들이기라는 의심을 피하기 어렵다. 특히 집권당의 말은 야당의 말과 무게가 다르다. 야당 정치인이 집회 연단에서 던진 구호는 대개 정치적 주장으로 끝난다. 국회 다수 의석과 행정부를 함께 움직일 수 있는 집권당의 대표 후보가 한 말은 다르다. 당선되는 순간 법안이 되고, 당론이 되고, 정부 정책을 압박하는 힘이 될 수 있다. 민주당 당대표 후보들이 12일 마지막 TV토론회에서 검찰·사법개혁 성과, 총선 승리, 당정 화합 등을 각각 강조했다는 점에서도 이번 전대가 단순한 당내 행사가 아니라 향후 국정 운영과 직결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공소취소 문제는 더 조심스럽다. 법에 존재하는 제도라고 해서 특정 사건에 적용하는 것이 자동으로 정당해지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그 사건의 당사자가 현직 대통령이라면 기준은 오히려 더 엄격해야 한다. 정치권이 먼저 “조작 기소”라고 결론을 내리고 공소취소를 요구하면, 수사와 재판의 옳고 그름을 법정이 아니라 정당이 판정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억울한 기소가 있다면 바로잡아야 한다. 정치적 수사나 표적 기소도 민주주의가 경계해야 할 폐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절차가 중요하다. 누가 대통령이든, 어느 당이 집권하든 같은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 ‘우리 편이어서 취소하고 상대편이면 끝까지 재판한다’는 의심을 받는 순간 법치의 권위는 무너진다. 민주당은 사법개혁을 말할 자격이 있다. 실제로 12일 마지막 전대 TV토론에서도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대범죄수사청법,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제 등 지난 사법·검찰개혁 조치가 주요 성과로 거론됐다. 개혁의 필요성에 동의하는 국민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제도를 고치는 것과 사람을 겨냥하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 사법제도를 바꾸겠다면 왜 바꿔야 하는지 법과 원칙으로 설명해야 한다. 특정 판결과 특정 재판을 먼저 놓고 제도를 그에 맞춰 움직이면 개혁의 정당성마저 훼손된다. 경선의 속성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당원 투표가 중요한 선거일수록 후보들은 핵심 지지층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하게 된다. 이번 민주당 전대에서도 후보 간 네거티브와 과거사 공방이 이어지면서 민생과 정책 비전이 뒤로 밀렸다는 비판이 당 안팎에서 제기됐다. 그러나 집권당의 대표를 뽑는 선거라면 당원의 박수 못지않게 그 말을 듣고 있는 국민을 의식해야 한다. 정치는 선명해야 할 때가 있다. 잘못된 권력과 싸울 때 어정쩡한 태도는 비겁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에서 진짜 용기는 목소리를 가장 크게 내는 데 있지 않다. 자기편이 원하는 것에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을 긋는 데 있다. ‘서경’ 홍범편에는 ‘무편무당 왕도탕탕(無偏無黨 王道蕩蕩)’이라는 구절이 있다. 치우침도 없고 사사로운 편당도 없어야 바른 정치의 길이 넓어진다는 뜻이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법과 제도를 자기편의 필요에 맞춰 다루기 시작하면 정치는 좁아지고 국가는 흔들린다. 지금 민주당에 필요한 것은 사법개혁을 멈추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개혁의 원칙을 더 분명히 세우는 일이다. 법관의 책임을 묻되 판결에 대한 보복처럼 보여서는 안 되고, 잘못된 기소를 바로잡되 대통령 개인을 위한 제도처럼 비쳐서는 안 된다. 사법부 독립을 존중하면서도 민주적 통제와 책임성을 높일 길을 찾아야 한다. 대법원장 탄핵은 당원들의 박수를 받기 위한 구호로 소비하기에는 너무 무거운 헌법적 수단이다. 대통령 관련 공소취소 역시 경선장에서 충성심을 겨루듯 다룰 사안이 아니다. 집권당의 말은 실제 권력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더 절제돼야 한다. 전당대회는 17일 끝난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던진 말의 파장은 그 뒤에도 남는다. 민주당 후보들이 기억해야 할 것도 그것이다. 경선에서는 표를 얻기 위해 말할 수 있다. 집권당은 그 말이 국가의 제도가 될 때까지 책임져야 한다.
2026-08-13 09: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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