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총 21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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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도 'AI·인재 전쟁'…LG엔솔, 최연소·외국인 연구위원 앞세워 기술 판 재편
[경제일보] 글로벌 배터리 기업 LG에너지솔루션이 역대 최대 규모의 연구·전문위원을 선임하며 '인재 중심 기술 경쟁'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단순 생산 능력 확대를 넘어 AI·소프트웨어 기반 연구 역량을 전면에 배치하는 방식으로 배터리 산업 경쟁의 축을 바꾸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은 2026년 신규 연구·전문위원 17명을 선임했다. 이는 역대 최대 규모로 어려운 업황 속에서도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한 핵심 인재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결정이다. 이번 인사의 특징은 명확하다. 최연소 연구위원(1989년생), 분사 이후 첫 외국인 연구위원, AI 분야 첫 연구위원 선임 등 '젊음·다양성·AI' 세 축이 동시에 부각됐다. 평균 연령도 만 44세로 낮아지며 세대 교체 흐름이 뚜렷해졌다. 배경에는 배터리 산업의 경쟁 구조 변화가 자리한다. 과거 배터리 산업은 생산능력(캐파)과 원가 경쟁력이 핵심이었다. 대규모 설비 투자와 규모의 경제를 확보한 기업이 시장을 주도하는 구조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경쟁의 초점이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배터리 성능을 좌우하는 요소가 소재·공정에서 데이터·알고리즘까지 확장되면서 '얼마나 많이 만드느냐'보다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하고 예측하느냐'가 중요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AI의 역할이 급격히 커지고 있다. 배터리 개발은 수천 번의 실험과 검증을 거쳐야 하는 복잡한 과정이지만, AI를 활용하면 설계·성능 예측·수명 분석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다. 특히 충전 조건 최적화, 열화 예측, 불량 분석 등에서 AI는 개발 기간 단축과 비용 절감 효과를 동시에 제공한다. 이번에 선임된 AI 연구위원 역시 배터리 설계부터 검증까지 전 과정에 AI 모델을 적용하는 연구를 맡게 된다. 이는 배터리 산업이 ‘경험 기반 제조’에서 ‘데이터 기반 설계’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다양성 확대 역시 전략적 선택으로 읽힌다. 특히 외국인 연구위원 선임은 글로벌 인재 확보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배터리 산업은 소재, 전기화학, 공정, AI 등 다양한 기술이 융합되는 분야로 특정 국가 인력만으로는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다. 특히 글로벌 고객사 대응과 기술 표준 경쟁까지 고려하면 연구 조직의 다국적화는 필수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이 같은 변하는 '엘리트 연구자 중심 체계' 강화로 이어지고 있다. 연구·전문위원은 단순 고급 인력이 아니라 기술 방향을 결정하는 리더 역할을 맡는다. 미래 전략 수립, 핵심 기술 개발, 생산 혁신 프로젝트를 주도하며 조직 전체의 기술 수준을 끌어올리는 축이다. 이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운영하는 '테크니컬 펠로우(Technical Fellow)' 제도와 유사한 구조로 연구자가 관리직이 아닌 기술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는 별도의 트랙을 강화하는 흐름이다. 주목할 지점은 '토탈 솔루션 프로바이더' 전략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단순 배터리 셀 제조를 넘어 AI, 소프트웨어, 시스템까지 결합한 통합 솔루션 기업으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이번 인사는 그 방향성을 인재 구조에서 구현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셀 개발뿐 아니라 AI·SW 인력을 대폭 확대했다는 점은 배터리 기업이 제조업에서 기술 플랫폼 기업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핵심 인재 선발이 실제 사업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연구 성과를 양산 공정과 연결하는 실행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또한 엘리트 중심 체계가 조직 전체 혁신으로 확산될 수 있는지도 중요한 변수다. AI 도입 역시 데이터 확보와 공정 적용, 조직 적응까지 복합적인 과제를 동반한다. 배터리 산업의 경쟁 기준은 더 이상 '설비'가 아니라 '사람과 데이터'로 이동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이 선택한 전략은 그 변화에 대한 선제적 대응이다.
2026-04-15 15:4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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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당국, 학생 폭력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교단이 무너지고 있다. 그것도 서서히가 아니라, 노골적이고 반복적으로 붕괴되고 있다. 최근 또다시 학생이 교사를, 그것도 학교장실에서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는 소식은 충격을 넘어 참담함을 안긴다. 더 심각한 것은 이것이 단 한 번의 일탈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제 ‘또’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붙는 현실,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 교육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교육 현장의 논쟁은 ‘교사의 체벌’에 집중돼 있었다. 과도한 체벌과 인권 침해에 대한 비판 속에 사회는 일정 부분 이를 바로잡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교사가 학생을 폭행했다는 소식은 찾아보기 어렵지만, 학생이 교사를 때리고 모욕하며 위협하는 사건은 끊이지 않고 있다. 균형은 무너졌고, 교단의 권위는 사실상 붕괴 직전에 놓여 있다. 이 사태의 본질은 단순한 학생 개인의 일탈이 아니다. 시스템의 붕괴이며, 교육당국의 무능이 낳은 구조적 결과다. 그럼에도 교육부는 뚜렷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사건이 반복될 때마다 ‘재발 방지 대책’을 내세우지만, 현장은 달라진 것이 없다. 도대체 교육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교사의 기본적인 교육권조차 보호하지 못하는 행정이라면 그 존재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논어』에서 공자는 “君君臣臣父父子子(군군신신부부자자)”라 했다. 각자의 자리가 바로 서야 질서가 유지된다는 뜻이다. 교사는 교사다워야 하고, 학생은 학생다워야 한다. 그러나 지금 교실에서는 이 기본 질서가 무너졌다. 교사는 지도자가 아니라 ‘민원 대상자’가 되었고, 학생은 배움의 주체를 넘어 통제하기 어려운 존재로 변해가고 있다. 역할이 전도된 공간에서 교육이 제대로 설 리 없다. 『도덕경』 역시 경고한다. “法令滋彰 盜賊多有”, 법과 규정이 많아질수록 오히려 혼란이 커진다는 의미다. 지금이 바로 그렇다. 규정은 넘쳐나지만, 정작 현장에서 작동하는 권한과 책임은 사라졌다. 교사는 학생을 제지할 실질적 수단이 없고,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만 떠안는다. 이런 구조에서 누가 교단에 서려 하겠는가. 이제는 분명히 방향을 바꿔야 한다. 교사의 권위를 회복하지 못하면 교육은 무너진다. 권위는 억압이 아니라 질서의 기반이다. 이를 위해 몇 가지 근본적 전환이 필요하다. 교권 보호를 선언에 그칠 것이 아니라 실질적 제도로 강화해야 한다. 교사에 대한 폭행과 협박에는 즉각적인 분리 조치와 강력한 법적 대응이 가능해야 한다. 교육청과 수사기관이 연계된 대응 체계를 구축해 교권 침해를 중대한 사안으로 다뤄야 한다. 문제 학생에 대한 분리 교육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반복적인 폭력이나 위협 행위를 보이는 학생은 별도의 교육 프로그램으로 전환해 상담과 교정을 병행해야 한다. 이는 다른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학부모 책임 역시 분명히 해야 한다. 지금처럼 학교가 모든 부담을 떠안는 구조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교권 침해 사안에 대해 학부모의 책임을 제도적으로 명확히 하고, 필요한 경우 합당한 책임을 묻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아울러 교사의 정당한 생활지도 권한을 복원해야 한다. 모든 지도가 ‘아동학대’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는 환경에서는 어떤 교사도 적극적으로 나설 수 없다. 명확한 기준과 보호 장치를 통해 교사가 안심하고 교육 활동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육당국의 태도다. 형식적인 대책을 넘어 책임 있는 결단과 실행이 필요하다. 위기가 반복되는 것은 대응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더 이상 미봉책으로 시간을 끌어서는 안 된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다. 그러나 그 출발점은 교실의 질서다. 교사가 두려움 속에서 수업을 하고, 학생이 이를 조롱하는 교실에서 미래를 말하는 것은 공허하다. 지금의 현실은 단순한 교육 문제가 아니라 사회 기초 질서의 균열을 보여주는 신호다. 더 늦기 전에 바로잡아야 한다. 교단을 지키는 일은 곧 사회를 지키는 일이다. 교육당국이 책임을 외면한다면 그 피해는 다음 세대에 고스란히 전가될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선언이 아니라 행동이다. 그리고 그 행동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2026-04-15 14:4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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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기기도 '경험' 경쟁…LS일렉트릭, 디자인으로 산업 경쟁력 확장
[경제일보] 전력기기 기업 LS일렉트릭이 글로벌 디자인 어워드 수상을 계기로 산업용 제품 경쟁의 축이 기능에서 ‘사용 경험’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단순 기술 경쟁을 넘어 직관성·사용성·디지털 경험까지 포함하는 ‘산업 디자인’이 새로운 차별화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LS일렉트릭은 독일 'iF 디자인 어워드 2026'에서 제품·서비스 디자인 부문 등 총 3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스마트 차단기 'Compact ACB', 자동화 솔루션 'XGT Integrated Safety PLC', 에너지 컨설팅 플랫폼 'Beyond X - Enable'이 각각 본상을 받았다. 이번 수상은 단순 디자인 성과를 넘어 산업용 전력기기와 플랫폼 전반에서 사용자 중심 설계 역량을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과거 산업용 기기 시장은 성능이 경쟁의 핵심이었다. 전력 설비와 자동화 장비는 안정성과 내구성, 제어 성능이 최우선 가치였고 디자인은 부차적인 요소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 구매 의사결정 역시 기술 스펙과 가격, 납기 중심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최근 산업 환경이 변화하면서 기준이 달라지고 있다. 핵심은 사용자 경험이다. 스마트팩토리와 디지털 전환이 확산되면서 산업 현장의 작업자는 더 많은 데이터를 다루고 복잡한 시스템을 동시에 관리해야 하는 환경에 놓였다. 이에 따라 장비 조작의 직관성, 유지보수 편의성, 데이터 접근성 등이 생산성과 직결되는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LS일렉트릭이 수상한 제품들도 이러한 흐름을 반영한다. NFC·블루투스를 통해 원격 설정과 모니터링이 가능한 차단기, 설치와 배선 효율을 높인 모듈형 PLC, 대시보드 기반 의사결정 지원 플랫폼 등은 모두 ‘사용 편의성’과 ‘데이터 활용’을 중심에 둔 설계다. 특히 주목되는 지점은 디지털 플랫폼 디자인이다. Beyond X - Enable은 AI와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에너지 사용 데이터를 분석하고 탄소 관리까지 지원하는 플랫폼이다. 단순 장비 판매를 넘어 데이터 기반 서비스까지 사업 영역이 확장되는 흐름 속에서, 사용자 인터페이스(UI)와 경험 설계가 핵심 경쟁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는 전력기기 기업이 하드웨어 공급자에서 에너지 관리 솔루션 기업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배경에는 산업 구조 변화가 있다. AI 데이터센터, 스마트팩토리, 탄소중립 정책 등으로 전력과 자동화 시스템의 복잡성이 크게 증가하면서, 기술 성능만으로는 차별화가 어려워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누가 더 쉽게 쓰게 만드느냐’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글로벌 시장에서는 안전 규제와 표준이 강화되면서, 사용자의 오류를 최소화하는 직관적 설계가 필수 조건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전력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과거에는 전력 설비가 ‘보이지 않는 인프라’였다면, 이제는 운영 효율과 비용 절감을 직접적으로 좌우하는 핵심 시스템으로 인식되면서 사용자 경험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는 전력기기 기업들이 디자인 역량을 전략 요소로 끌어올리는 배경이다. 다만 과제도 존재한다. 산업용 제품은 안전성과 신뢰성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디자인 혁신이 기능적 안정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이뤄져야 한다. 또한 다양한 산업 환경과 국가별 규제를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만큼 표준화와 차별화 사이의 균형도 중요하다. 산업용 기기 역시 소비재처럼 사용 경험 경쟁에 들어섰다. LS일렉트릭의 이번 수상은 기술 중심 산업에서도 디자인이 전략적 자산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LS일렉트릭 관계자는 "산업 현장에서 요구되는 안전성, 직관성, 사용성을 디자인적으로 정교하게 구현한 결과가 이번 수상으로 이어졌다"며 "앞으로도 전력과 자동화 사업 전반에서 스마트그리드 · 스마트팩토리 시대에 부합하는 제품 · 서비스 디자인 혁신을 지속하겠다"고 말했다.
2026-04-15 13:3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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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휴전을 말하지만, 아무도 끝내지 못하는 이유
전쟁은 시작보다 끝내는 일이 더 어렵다. 포성이 울릴 때는 결심만 있으면 된다. 그러나 멈출 때는 계산이 필요하다. 무엇을 얻었는지, 무엇을 잃었는지, 여기서 물러서면 누가 약해 보이는지, 끝낸 뒤 질서를 누가 책임질 것인지까지 따져야 한다. 그래서 많은 전쟁은 이기지 못해서 길어지는 것이 아니라, 멈추는 방법을 찾지 못해 길어진다. 지금의 이란 전쟁이 그렇다. 미국과 이란은 휴전 협상에 실패했고, 그 직후 미국은 이란 항만을 겨냥한 해상 봉쇄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겉으로 보면 대화가 깨지고 다시 힘이 나선 모양새다. 그러나 한 꺼풀만 벗겨 보면, 이것은 승리를 향한 돌진이라기보다 출구를 찾지 못한 강대국 정치의 답답한 우회에 가깝다. 총알보다 계산이 앞서고, 전장보다 시장이 먼저 흔들리는 전쟁에서 모두가 휴전을 말하면서도 누구 하나 먼저 끝내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본래 휴전은 평화를 위한 문이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의 휴전은 대개 체면의 문제와 맞물린다. 먼저 손을 내미는 쪽은 양보한 것처럼 보이고, 먼저 한발 물러서는 쪽은 밀린 것처럼 비친다. 더구나 이번 충돌은 영토 몇 곳의 문제가 아니다. 핵 문제, 제재, 해상 통제권, 동맹의 신뢰, 중동 질서의 주도권이 한데 얽혀 있다. 하나를 접으면 다른 하나가 흔들린다. 이러니 휴전은 말처럼 쉽지 않다. 진퇴양난이다. 손자는 말한다. “군대는 국지대사요, 사생지지요, 존망지도라.” 전쟁은 나라의 중대한 일이며, 살고 죽는 길목이고, 흥하고 망하는 갈림길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전쟁의 진짜 무게는 공격의 순간보다 종료의 순간에 더 무겁게 실린다. 시작할 때는 명분이 사람을 밀어붙이지만, 끝낼 때는 책임이 사람을 붙잡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오늘의 전쟁이 더 이상 전선 안에서만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이 봉쇄를 예고하자 유가가 뛰고, 선박은 항로를 다시 계산하고, 시장은 위험을 가격에 반영했다. 미사일 한 발의 충격은 화면을 흔들지만, 해협의 불안은 세계 경제 전체를 흔든다. 호르무즈 해협은 단지 지도가 표시한 좁은 바닷길이 아니다. 세계의 기름값과 물가, 금리와 심리를 흔드는 동맥이다. 그런 곳에서 누구도 쉽게 결전을 택할 수 없다. 이긴 쪽도 상처를 입고, 버틴 쪽도 대가를 치른다. 양패구상의 그림자가 짙어질수록 휴전은 필요해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휴전을 위한 정치적 결단은 더 어려워진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베트남의 보응우옌잡(武元甲) 장군이 남긴 말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그는 전쟁에서 이기는 방법을 “적이 생각하지 않는 시간에, 적이 생각하지 않는 장소에서, 적이 생각하지 않는 방식으로 싸우는 것”이라 했다. 약자가 강자를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힘의 크기가 아니라 전장의 기준을 바꿨기 때문이다. 정면 충돌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 방식을 뒤틀어 전쟁의 판 자체를 바꿨다. 오늘의 호르무즈 해협이 바로 그런 전장이다. 군함과 전투기가 맞서는 공간이지만, 실제 승부는 해상 봉쇄라는 방식, 에너지라는 대상, 그리고 ‘시장’이라는 보이지 않는 전장에서 갈린다. 총을 쏘지 않아도 세계 물류를 흔들 수 있고, 전투를 하지 않아도 상대의 비용을 급격히 끌어올릴 수 있다. 이는 전통적인 의미의 전투가 아니라, 흐름을 겨냥한 전쟁이다. 보응우옌잡 장군의 말대로라면, 지금의 전쟁은 이미 “적이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는 셈이다. 중동의 주요 국가들이 신중한 것도 같은 이유다. 지금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총성 자체만이 아니다. 전쟁이 길어졌을 때 닥칠 유가 급등, 물류 차질, 금융 불안, 그리고 자국 발전 전략의 후퇴다. 싸우지 않는 것이 비겁해서가 아니라, 싸우는 비용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커졌기 때문이다. 오늘의 전쟁은 적을 제압하는 문제이기 전에, 자기 손실을 통제하는 문제다. 노자는 “지지자불태(知止者不殆)”라 했다. 멈출 줄 아는 자는 위태롭지 않다는 뜻이다. 그러나 지금 국제정치가 보여주는 장면은 정반대다. 모두가 멈춰야 한다는 사실은 알지만,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는 합의하지 못한다. 원칙 없는 강경론은 사태를 키우고, 계산 없는 유화론은 더 큰 불안을 부른다. 결국 필요한 것은 허세가 아니라 질서이며, 감정이 아니라 원칙이다. 전쟁을 끝내는 힘은 더 센 폭격에서 나오지 않는다. 상대를 완전히 무너뜨릴 수 있다는 착각을 버리고, 더 늦기 전에 손실의 한계를 인정하는 데서 나온다. 전쟁을 오래 끌수록 강해지는 국가는 드물다. 대개는 시장이 먼저 지치고, 국민이 먼저 흔들리며, 외교가 먼저 빚을 진다. 그런 점에서 지금 중동의 위기는 군사 충돌의 위기이면서 동시에 정치의 부재가 부른 위기다. 휴전은 말로 되는 것이 아니다. 서로 체면을 세우면서도 물러설 수 있는 최소한의 질서를 만들 때 비로소 가능하다. 모두가 휴전을 말하지만 아무도 끝내지 못하는 이유는, 아직 그 질서가 없기 때문이다. 전쟁은 포성으로 시작될 수 있다. 그러나 끝은 언제나 상식과 원칙이 결정한다. 그리고 지금의 전쟁은, 누가 더 강한가가 아니라 누가 더 다른 방식으로 싸우는가에 의해 이미 방향이 정해지고 있다.
2026-04-14 08:5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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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을 예술로 번역하다…LG, 'AI 아트'로 문화 브랜드 실험
[경제일보] 글로벌 전자기업 LG가 세계 주요 도시 전광판을 활용해 인공지능(AI) 기반 미디어아트를 선보이며 기술 기업을 넘어 '문화·예술 브랜드'로의 확장에 나섰다. 단순 마케팅을 넘어 기술과 예술을 결합한 브랜드 전략으로 글로벌 소비자 접점을 넓히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LG는 뉴욕 타임스스퀘어, 런던 피카딜리 서커스, 서울 광화문광장 등 주요 랜드마크에서 'LG 구겐하임 어워드' 2026년 수상자인 트레버 페글렌의 작품을 상영하고 있다. 이번 영상은 AI의 시선에서 인식하는 풍경을 담은 미디어아트로 기술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전 세계 유동 인구가 밀집된 공간에서 장기간 상영된다는 점에서 단순 전시를 넘어 대중과의 접점을 극대화한 공공형 콘텐츠 전략으로 볼 수 있다. 이번 프로젝트는 세계적 현대미술 기관인 구겐하임 미술관과의 협업을 통해 진행되는 'LG 구겐하임 아트 & 테크 파트너십'의 일환이다. LG는 해당 파트너십을 통해 기술 기반 예술을 지속적으로 지원하며 브랜드 이미지를 혁신 기술 기업에서 창의적 혁신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확장하고 있다. 이는 글로벌 기업들이 최근 강화하고 있는 '문화 마케팅'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 단순 제품 광고를 넘어 예술·전시·콘텐츠를 통해 브랜드 가치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특히 기술 경쟁이 심화되면서 제품 성능만으로는 차별화가 어려워지자 기업들은 소비자와의 정서적 접점을 확대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술관 협업, 공공 전시, 미디어아트 프로젝트 등을 통해 브랜드를 경험으로 전달하고 기술이 지향하는 가치와 철학까지 함께 보여주려는 시도가 늘고 있다. 이는 브랜드를 단순 소비 대상이 아닌 문화적 아이콘으로 끌어올리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주목할 점은 LG가 선택한 예술의 방향성이다. 트레버 페글렌은 AI와 감시, 데이터 권력 구조를 주제로 작업해온 미디어 아티스트로 기술의 밝은 면뿐 아니라 그 이면까지 탐구하는 작품 세계를 구축해왔다. 이는 단순히 기술을 홍보하는 콘텐츠가 아니라 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질문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기업이 기술 비판적 시각을 담은 예술을 후원한다는 점은 브랜드 신뢰와 사회적 책임 이미지를 동시에 강화하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 과거에는 성능과 가격 경쟁력이 브랜드의 핵심이었다면 현재는 기술과 사회의 연결방식에 대한 서사가 중요해지고 있다. 특히 AI와 같은 첨단 기술은 윤리, 데이터, 감시 등 복합적인 이슈를 동반하는 만큼 해석 방식과 전달 방법이 기업 이미지에 큰 영향을 미친다. LG가 예술을 매개로 기술을 설명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으로 풀이된다. 또 다른 포인트는 공간 전략이다. 타임스스퀘어, 피카딜리 서커스, 광화문광장은 각각 미국·유럽·아시아를 대표하는 상징적 공간으로 글로벌 브랜드 메시지를 동시에 전달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이는 단순한 전시가 아닌 도시 단위 미디어 전략으로 브랜드 노출과 메시지 전달을 극대화하는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다만 기업과 예술의 결합에는 한계도 존재한다. 브랜드 메시지와 예술적 자율성 사이의 균형, 상업성과 공공성의 경계 등은 지속적인 논쟁으로 떠오르는 지점이다. 특히 기업이 후원하는 프로젝트의 경우 작품이 기업 이미지와 전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기획되면서 예술적 표현의 독립성이 제약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또한 공공 공간에서 진행되는 전시가 사실상 브랜드 홍보 수단으로 기능할 경우 문화 콘텐츠의 공공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기술 기업이 예술을 활용할 때에는 기술의 긍정적 측면만을 부각시키고 감시, 데이터 윤리 등 부정적 이슈는 상대적으로 희석될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기업과 예술의 협업은 단순 후원을 넘어 창작의 자율성과 사회적 메시지 보장이 핵심 과제로 꼽힌다. 기술 경쟁이 심화될수록 브랜드는 기능을 넘어 의미를 전달해야 한다. LG가 AI 예술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기술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제품이 아닌 경험, 기능이 아닌 메시지. 글로벌 시장에서 브랜드를 차별화하는 방식도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2026-04-13 11:3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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