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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피 6000의 허상…반도체 착시에 가려진 한국 경제의 민낯
[경제일보] 코스피가 장중 7000선을 돌파했다가 급락해 6000선을 겨우 지켰다. 주가지수가 한국 경제의 부활을 보증하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인공지능(AI) 열풍을 타고 반도체 대형주가 지수를 끌어올렸지만 산업 현장의 체감 경기는 여전히 차갑다. 일부 기업의 실적 개선이 마치 한국 경제 전체의 도약인 듯한 착시를 낳고 있다. 지수의 상승과 경제의 체력은 엄연히 다른 문제다. 일부 기업의 눈부신 실적을 국가 경제 전체의 경쟁력으로 포장하는 순간 구조개혁의 절박성은 사라지고 위기의 경고음은 묻힌다. 지금 경계해야 할 것은 주가 하락만이 아니라 주가 상승이 만들어낸 위험한 자기만족이다. 반도체의 저력은 부정할 수 없다.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비롯한 첨단 반도체 수요 확대는 우리 기업에 귀중한 기회다. 그러나 반도체의 호황이 산업 전반의 회복을 뜻하지는 않는다. 석유화학은 공급과잉과 중국발 저가 공세에 시달리고, 철강은 보호무역 장벽과 탄소 규제에 직면해 있다. 배터리와 전기차 산업도 수요와 가격 경쟁, 해외 생산 확대 등 복합적인 과제에 맞서고 있다. 고금리와 인건비, 원자재 부담에 시달리는 중소·중견기업의 투자 여력도 충분하지 않다. 산업마다 회복 속도와 여건이 다른데 증시의 상승만으로 경제 전반이 살아났다고 볼 수는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반도체 호황이 경제정책의 성적표마저 왜곡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반도체 수출과 대형 기업의 실적이 개선되면 정부는 경제가 회복 궤도에 올랐다고 자평하기 쉽다. 그러나 반도체를 제외한 수출과 생산, 설비투자, 고용, 소비가 어떤 흐름을 보이는지 따로 살피지 않는다면 정책 진단부터 빗나간다. 대형 반도체 기업의 호실적이 협력업체의 수익성 개선과 내수 회복, 양질의 일자리 확대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성장의 온기는 경제 전반에 퍼지지 않은 것이다. 지수는 높아도 민생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번영을 선언하기 어렵다. 시장의 숫자와 국민이 체감하는 경기 사이의 간극부터 살펴야 한다. 반도체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국가 경제의 위험을 키운다. 반도체는 기술 변화와 국제 수요, 공급 능력에 따라 호황과 불황이 교차하는 경기순환 산업이다. AI 투자가 둔화하거나 경쟁 기업의 공급 확대와 기술 추격으로 가격과 수익성이 꺾이면 지금의 상승 동력도 약해질 수 있다. 특정 산업이 수출과 기업 실적, 증시를 동시에 떠받치는 구조에서는 업황 변화가 경제 전체의 충격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호황일 때 위험을 분산하지 못한 경제는 불황이 닥친 뒤 더 큰 비용을 치른다. 반도체가 잘나갈 때야말로 다음 위기를 대비해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이 코스피 상승을 치적으로 내세우거나 반도체 투자 확대만으로 미래가 보장된 듯 행동한다면 무책임하다. 필요한 것은 특정 산업에 대한 찬사가 아니라 산업 생태계 전반의 경쟁력을 복원하는 구조개혁이다. 석유화학은 범용제품 중심에서 고부가가치 소재 중심으로 사업구조를 바꾸고, 철강은 저탄소 공정과 고급강 기술에 투자해야 한다. 배터리와 전기차는 원가 절감과 기술 차별화, 공급망 다변화로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AI·로봇·바이오·첨단소재 등 미래 산업도 연구개발과 인재 육성, 시장 창출을 통해 새로운 성장축으로 키워야 한다. 보조금에 의존하는 산업정책이 아니라 기업이 혁신하고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여건을 바꾸는 정책이 필요하다. 규제 개혁은 그 출발점이다. 불합리한 인허가와 중복 규제, 예측하기 어려운 정책은 기업의 투자 결정을 늦추고 자본과 인재의 해외 유출을 부추긴다. 정부는 규제의 존치 필요성을 원점에서 검토하고 노동·세제·입지·연구개발 제도를 산업 현실에 맞게 손질해야 한다. 공정경쟁과 안전, 환경이라는 원칙은 지키되 혁신을 가로막는 낡은 규제는 걷어내야 한다. 기업 역시 정부 지원에 기대기보다 기술 투자와 생산성 향상, 투명한 지배구조로 경쟁력을 입증해야 한다. 경제의 건강성을 판단하는 기준도 달라져야 한다. 코스피와 반도체 수출액만 볼 것이 아니라 반도체를 제외한 수출 증가율, 제조업 가동률, 설비투자, 중소기업 수익성, 고용과 실질소득을 함께 살펴야 한다. 반도체 호황의 과실이 협력업체와 지역경제, 근로자의 소득으로 확산되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성장의 폭이 좁고 과실이 한쪽에 집중된다면 높은 지수는 번영의 증거가 아니라 경제의 취약성을 가리는 가림막일 수 있다. 코스피 6000은 자축할 숫자가 아니라 냉정한 자기 점검을 요구하는 시험대다. 반도체가 한국 경제를 견인하는 것은 축복이지만, 반도체 없이는 경제의 활력을 설명하기 어려운 구조는 위험하다. 반도체의 성공을 한국 경제 전체의 성공으로 착각하는 순간 구조개혁의 골든타임은 사라진다. 정부는 장밋빛 지수에 기대 현실을 미화하지 말고 산업 전반의 경쟁력과 민생 회복을 기준으로 정책을 다시 짜야 한다. 증시의 높이가 아니라 경제의 저변이 국가의 미래를 결정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상승에 취한 환호가 아니라 반도체 이후까지 내다보는 냉철한 결단이다.
2026-10-14 15: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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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노멀 5% 금리'의 경고, 아직도 저금리의 망령에 취해 있나
[경제일보] 돈의 시대가 바뀌었다. 공짜에 가깝던 돈이 사라지고 돈의 가격이 정상화되고 있다. 미국 장기 국채금리가 5% 안팎을 오르내리는 고금리 환경이 새로운 질서로 굳어질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 경제와 정치권은 여전히 저금리 시대의 낡은 사고에 갇혀 있다. 빚을 내 버티고, 재정을 풀어 경기를 떠받치며, 금리가 다시 내려가기만을 기다리는 안이한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 이제 ‘저금리의 망령’에서 깨어나야 한다. 지난 수년간 우리 경제가 누린 초저금리는 값비싼 착시를 만들었다. 가계는 빚을 늘려 집을 샀고, 기업은 싼 자금에 의존했으며, 정부는 재정지출 확대를 성장의 만능 처방처럼 활용했다. 그 결과 가계부채는 경제의 뇌관이 됐고, 한계기업과 자영업자의 부실 위험은 커졌다. 금리가 오르자 감춰졌던 경제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저금리가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니라 문제를 뒤로 미뤄놓았을 뿐이다. 더 큰 문제는 국가재정이다. 고금리 시대에 빚을 늘리는 것은 저금리 때보다 훨씬 위험하다. 국채 이자가 불어나면 미래의 재정 여력이 그만큼 줄어든다. 복지와 연구개발, 산업투자에 쓸 돈이 이자 상환으로 빠져나가고, 정부가 시장의 자금을 과도하게 흡수하면 민간의 투자와 자금 조달을 위축시키는 구축 효과도 커진다. 국가채무가 늘어날수록 미래세대의 선택지는 좁아진다. 그런데 정치권은 이런 냉혹한 산수를 외면하고 있다. 선거와 민심을 앞세워 현금성 지원과 각종 사업을 쏟아내고, 재정 확대를 경제 활성화라는 이름으로 포장한다. 국민에게 지금 돈을 나눠주는 것은 쉽지만 그 청구서는 결국 국민이 미래에 갚아야 한다. 재정에는 공짜가 없다. 세금을 더 걷거나, 국채를 더 발행하거나, 미래의 지출을 포기해야 한다. 이를 외면한 채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말만 반복하는 것은 책임정치가 아니라 미래세대에 대한 청구서 떠넘기기다. 정부와 국회는 이제 재정의 브레이크부터 점검해야 한다. 법적 구속력을 갖춘 재정준칙을 서둘러 마련하고, 의무지출을 포함한 재정사업 전반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효과가 불분명한 보조금과 중복사업,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만들어진 사업부터 과감하게 정리해야 한다. 재정은 인기 경쟁을 위한 지갑이 아니라 국가가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비축해야 할 최후의 안전판이다. 경제의 체질도 바꿔야 한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돈을 풀어 연명시키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투자하고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규제를 걷어내고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완화하며 기술혁신과 생산성 향상을 가로막는 장벽을 제거해야 한다. 경쟁력을 잃은 기업을 무조건 연명시키는 정책 역시 재검토해야 한다. 구조조정을 미루면 부실의 규모만 커질 뿐이다. 가계부채 역시 ‘연착륙’이라는 말만 반복해서는 안 된다. 상환 능력이 떨어지는 차주에 대한 선별적 지원과 함께 대출 규율을 강화하고 금융회사의 건전성 관리도 한층 엄격하게 해야 한다. 부실이 터진 뒤 국민 세금으로 수습하는 방식은 더 이상 용납돼서는 안 된다. 5% 금리의 시대에는 1% 금리 시대의 경제정책을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 빚으로 성장률을 떠받치고 재정으로 민생을 포장하는 시대는 끝내야 한다. 정치권이 국민에게 해야 할 말은 ‘더 드리겠다’가 아니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빚은 만들지 않겠다’여야 한다. 고금리는 우리 경제의 약점을 드러내는 냉혹한 청구서다. 이를 외면하면 국가채무와 가계부채, 기업부실이 한꺼번에 경제의 발목을 잡게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달콤한 재정 살포도, 금리 인하에 대한 막연한 기대도 아니다. 재정의 군살을 도려내고 국가채무의 증가 속도를 낮추며, 생산성과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뼈 를 깎는 구조개혁이다. 정치권은 표를 얻기 위한 포퓰리즘과 결별하고 정부는 인기 없는 개혁이라도 밀어붙여야 한다. 그것이 지금 세대가 미래세대에 져야 할 최소한의 책임이다.
2026-09-30 11:4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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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 1000억 달러의 착시(錯視)와 민생 재정 투입의 엄중한 원칙
[경제일보] 우리 경제가 다시 한번 대기록을 세웠다. 반도체 경기 호황과 자동차 등 주력 산업의 선전에 힘입어 지난 6월 한 달간 수출액이 사상 처음으로 1000억 달러 고지를 돌파한 것이다. 단일 월간 수출이 세 자릿수 빌리언(Billion) 달러를 기록한 것은 대한민국 무역사상 전례가 없는 쾌거다. 거시 경제 지표와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 역시 일제히 상향 조정되며 숫자의 잔치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이 화려한 지표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그리 썩 좋아할 수만 없다. 수출 전선의 승전고가 들려오는데도, 서민들이 체감하는 골목상권의 체감온도는 여전히 한겨울 한복판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수출 대기업이 벌어들인 온기가 내수 시장 전체로 흘러가지 못하는 소위 ‘성장의 동조화 단절’ 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낙수효과가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고물가와 고금리의 장기화로 신음하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그리고 실질소득 감소에 지친 평범한 가정의 한숨뿐이다. 이런 괴리를 메우겠다며 최근 정치권과 지방자치단체들이 경쟁적으로 ‘민생회복’을 내걸고 대규모 재정 지원 사업을 쏟아내고 있다. 선심성 현금성 지원부터 지역 화폐 확대, 무분별한 복지성 예산 편성 등 종류도 다양하다. 서민의 어려움을 살피겠다는 취지 자체를 탓할 수는 없으나, 지금 정치권이 보여주는 재정 투입의 속도와 방식은 심각한 우려를 자아낸다. 그 동안 국가 재정과 경제 정책을 지켜보면서 얻은 불변의 상식은 하나다.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며, 위기일수록 ‘기본과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는 점이다. 경제 지표가 좋다는 이유로, 혹은 선거를 앞두고 표심을 잡겠다는 계산으로 국가 곳간을 쉽게 열어서는 안 된다. 현재 대한민국 국가 채무는 이미 경계선을 넘어섰고, 지방자치단체들의 재정 자립도 역시 바닥을 기고 있다. 중앙정부의 세수 결손이 가시화되는 상황에서 지자체마저 빚을 내어 민생회복이라는 단기 처방에 올인한다면, 이는 미래 세대의 자산을 가로채 현재의 고통을 잠시 잊으려는 마약성 처방과 다름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무차별적인 재정 살포가 아니라, 현재의 국가 및 지방 재정 상태에 대한 냉정하고 면밀한 현황 점검이다. 가용한 재원의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고, 어디에 얼마만큼의 예산을 투입해야 가장 효율적인 정책 효과가 나타날지 송곳처럼 날카로운 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 돈을 쓰는 일은 언제 해도 늦지 않다. 그러나 한 번 잘못 흘러간 재정은 다시 회수할 수 없으며, 불필요하게 풀린 유동성은 어렵게 잡아두고 있는 물가를 자극해 서민 경제를 더 깊은 도탄에 빠뜨리는 부메랑이 될 뿐이다. 수출 호조라는 착시 효과에 가려진 내수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정교하고 구조적인 대책이 절실하다. 단순히 1회성 현금을 쥐여주는 미봉책으로는 얼어붙은 소비 심리를 근본적으로 되살릴 수 없다. 자영업자의 한계 상황을 유예해 주는 금융 지원의 정밀화, 취약계층을 겨냥한 핀셋형 선별 복지, 그리고 기업들이 국내 소비 유통망을 활성화할 수 있도록 돕는 규제 완화가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경제의 펀더멘털을 강화하는 구조 개혁 없이 재정 만능주의에 기대는 것은 정책적 태만이자 직무유기다. 정치권과 행정부는 숫자가 주는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수출 1000억 달러는 분명 축하할 일이지만, 그것이 민생의 구원투수가 될 수는 없다. 국가 재정의 건전성을 지키는 것은 나라의 명운이 걸린 마지노선이다. 선심성 정책의 유혹을 과감히 뿌리치고, 상식과 원칙에 기반한 정밀한 경제 정책을 펼칠 때 비로소 진정한 민생회복의 길이 열릴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의 엄중한 각성과 책임 있는 결단을 촉구한다.
2026-07-02 07:4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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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금리 인상, 한국 경제에 던진 세 가지 경고
[경제일보] 일본은행이 움직였다. 16일 일본은행은 단기 정책금리를 0.75%에서 1.0%로 0.25%포인트 올렸다. 1995년 이후 31년 만의 최고 수준이다. 결정 배경은 분명하다. 미국·이란 전쟁이 남긴 에너지 가격 충격, 호르무즈 해협 불안, 공급망 훼손, 그리고 기업 간 가격 전가가 소비자물가로 번질 가능성이다. 일본은행이 중동발 인플레이션 위험과 엔화 약세를 금리 인상 명분으로 삼은 것이다. 전쟁은 총성과 함께만 오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유조선 항로로 오고 해상보험료로 오고 원유 선물 가격으로 오며 중앙은행 회의장 의사봉 소리로 온다. 미국과 이란 간 긴장이 완화되고 유가가 하락했다는 소식도 있지만 그것이 곧 물가 위험의 종료를 뜻하지는 않는다. 실제 브렌트유가 배럴당 78.96달러까지 떨어졌지만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과 공급 정상화에는 여전히 불확실성이 남아 있다. 문제는 일본의 금리 인상이 일본만의 선택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 경제에는 적어도 세 가지 경고가 담겨 있다. 첫째는 환율 경고다. 둘째는 물가 경고다. 셋째는 금리 경고다. 그동안 한국은 미국 금리와 달러 흐름에 주로 신경을 써왔다. 그러나 일본이 저금리 시대의 끝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동아시아 자금 흐름도 달라진다. 엔화 금리가 오르면 엔 캐리 트레이드의 매력은 약해진다. 낮은 금리의 엔화를 빌려 고수익 자산에 투자하던 돈의 일부는 되돌아갈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신흥시장 통화와 주식, 채권은 변동성을 맞는다. 원화도 예외가 아니다. 물론 일본 금리 1.0%는 여전히 미국이나 한국보다 낮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절대 수준보다 방향이다. 일본은행이 “더 이상 무제한 완화의 시대에 머물지 않겠다”는 신호를 보낸 순간, 시장은 일본 자금의 귀환 가능성을 가격에 반영하기 시작한다. 한국 채권시장에는 장기금리 상승 압력으로, 주식시장에는 외국인 수급 불안으로, 외환시장에는 원·엔, 원·달러 변동성 확대로 나타날 수 있다. 물가에도 경고음을 울렸다. 한국은 일본보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낮다고 말하기 어렵다. 원유와 LNG, 석유제품 가격이 오르면 기업 원가가 먼저 오른다. 이어 전기요금, 운송비, 항공료, 식품 가격, 외식 가격으로 번진다. 이미 한국의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3.1%로 2년여 만의 최고 수준을 기록했고, 석유류 가격과 국제항공료 상승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한국은행이 올해 물가 전망을 2.2%에서 2.7%로 올렸고 향후 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한 것도 이 때문이다. 물가가 무서운 것은 한 번 오르면 제자리로 쉽게 돌아오지 않는 데 있다. 원유 가격이 내려도 물류비와 인건비, 가공비를 거쳐 소비자가격에 붙은 인상분은 남는다. 일본은행이 우려한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기업 간 거래에서 시작된 가격 전가가 소비자 단계의 광범위한 품목으로 번질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일본은행 결정을 보면 원유 가격 상승이 기업 간 가격 전가를 빠르게 만들고 이것이 소비자물가로 파급될 가능성을 언급했다. 한국은행도 같은 길목에 서 있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12일 “물가안정에 중점을 두고 늦지 않게 금리를 인상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글로벌 주요 중앙은행의 긴축 전환은 한국은행의 하반기 금리 결정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경고는 정책의 착시다. 유가가 하루 이틀 떨어졌다고 해서 물가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다. 전쟁 프리미엄이 빠지는 속도보다 공급망의 상처가 아무는 속도는 느리다. 에너지 인프라가 손상됐고 보험료와 운임, 재고 확보 비용은 이미 기업 장부에 반영됐다. 유럽중앙은행 인사들도 중동 긴장이 완화된 뒤에도 에너지 가격 압력이 남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 경제의 딜레마는 여기서 깊어진다. 금리를 올리면 가계부채와 내수에 부담이 간다. 금리를 묶어두면 물가와 환율이 흔들린다. 한국은 가계부채가 크고 자영업 경기의 회복력도 약하다. 그렇다고 물가를 방치할 수도 없다. 중앙은행이 물가 기대를 놓치면 훗날 더 큰 금리 인상으로 되갚아야 한다. 지금의 0.25%포인트는 고통스럽지만 뒤늦은 1%포인트는 더 잔인하다. 기업에도 메시지는 분명하다. 일본 금리 인상은 단순한 금융 뉴스가 아니다. 에너지 조달, 원자재 재고, 환헤지, 차입 구조, 해외 생산망을 다시 점검하라는 경고장이다. 특히 반도체, 석유화학, 철강, 자동차, 항공, 해운 등 에너지와 환율에 민감한 업종은 ‘전쟁 이후’가 아니라 ‘전쟁의 비용이 장부에 남는 시간’을 봐야 한다. 원가 상승분을 가격에 전가할 수 있는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의 실적 격차도 커질 것이다.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선심성 보조금 경쟁이 아니다. 에너지 취약계층과 물류·운송·중소 제조업에 대한 정밀 지원, 전략 비축, 수입선 다변화, 전력망 투자, 환율 급변 대응 장치가 필요하다. 통화정책이 물가 기대를 붙잡는다면 재정정책은 충격이 가장 약한 곳으로 몰리지 않도록 완충해야 한다. 중앙은행은 브레이크를 밟고 정부는 안전벨트를 채워야 한다. 동양 고전 <춘추좌씨전>에는 ‘안거위사(安居危思)’라는 말이 있다. 편안할 때 위태로움을 생각하라는 뜻이다. 지금 한국 경제에 필요한 말이 바로 이것이다. 유가가 조금 내렸다고 안심할 때가 아니다. 일본이 금리를 올렸다는 것은 이웃 나라 중앙은행이 위험을 먼저 본 것이다. 한국이 그 경고를 남의 일로 흘려듣는다면 다음 차례는 원화와 물가와 가계 이자 부담이 될 수 있다. 일본의 금리 인상은 한국 경제에 묻고 있다. 우리는 전쟁이 남긴 비용을 제대로 계산하고 있는가. 물가를 잡겠다는 의지는 충분한가. 환율과 자본시장 변동성에 대비하고 있는가. 답은 어렵지 않다. 지금은 낙관보다 대비가 필요한 시간이다. 전쟁보다 무서운 것은 전쟁이 끝났다고 믿는 착각이다.
2026-06-17 17:4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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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가 줄어든 시장, 안정이 아니라 불안의 신호다
[경제일보] 전세가 줄어드는 시장을 두고 정상화라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세입자의 선택지가 좁아지고, 남은 전세 가격이 뛰며, 월세 부담까지 커지는 시장을 안정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전세 감소는 제도의 변화일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흐름은 주거 안전판이 약해지는 신호에 더 가깝다. 최근 통계는 전세 감소가 일시적 현상이 아님을 보여준다. 올해 들어 전월세 거래에서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70%에 육박했다. 서울 아파트 시장에서도 전세 물건을 찾기 어렵다는 말이 더는 과장이 아니다. 한국부동산원 조사에서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6월 둘째 주 한 주 동안 0.32% 올랐다. 10년여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전세대출 잔액은 줄었지만, 이를 가계부채 안정의 신호로만 읽기도 어렵다. 전세 거래 자체가 줄고 월세 전환이 빨라진 결과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전세는 한국 주택시장의 오래된 안전판이었다. 해외에서 보기 드문 제도이고, 목돈을 맡기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위험도 적지 않았다. 전세사기와 보증금 미반환 사태는 전세제도의 어두운 면을 드러냈다. 과도한 전세대출이 전셋값과 가계부채를 함께 밀어 올렸다는 지적도 피하기 어렵다. 전세가 언제까지나 지금의 비중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전세 감소를 곧바로 바람직한 변화로 볼 수도 없다. 전세는 단순한 임대차 방식이 아니었다. 중산층과 서민이 매달 주거비를 크게 줄이면서 직장과 학교, 생활권을 유지하게 해준 완충 장치였다. 내 집을 사기 전까지 시간을 벌어주는 제도였고, 매매시장과 월세시장 사이에서 충격을 흡수하는 장치이기도 했다. 그 안전판이 줄어드는 과정에서 대체 장치가 충분히 마련됐는지가 문제다. 월세 비중이 높아졌다는 통계는 임대차 방식의 변화만 뜻하지 않는다. 매달 소득에서 주거비가 빠져나가는 가구가 늘었다는 의미도 함께 갖는다. 전세는 목돈 부담이 크지만, 월세는 매달 가처분소득을 직접 깎는다. 소득 증가 속도가 물가와 주거비 상승을 따라가지 못하는 가구에는 월세화가 생활비 압박으로 이어진다. 청년층과 신혼부부, 아이를 키우는 맞벌이 가구, 은퇴 이후 현금흐름이 제한된 고령층일수록 부담은 더 크다. 전세가 줄어든다고 월세가 안정되는 것도 아니다. 전세에서 밀린 수요가 월세로 이동하면 월세 가격도 오른다. 임차인은 전세 품귀와 월세 부담을 동시에 겪는다. 보증금은 낮아지는 대신 매달 내야 할 돈이 늘고, 보증금이 높은 반전세도 적지 않다. 겉으로는 월세 선택지가 많아진 것처럼 보여도 세입자의 협상력은 오히려 약해질 수 있다. 최근 서울 전셋값 상승세는 이 대목을 보여준다. 전세가 줄어드는 시장에서 남은 전세 가격이 오른다. 수요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전세를 원하는 수요에 비해 시장에 나오는 물건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학군, 직장 접근성, 신축 선호, 대단지 선호가 겹치는 지역에서는 가격이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서울 주요 지역의 전세 품귀를 단순한 계절적 현상으로 넘기기 어려운 이유다. 입주 물량 감소도 전세 불안을 키운다. 새 아파트 입주가 충분하면 전세 시장에는 숨통이 트인다. 새집으로 이동하는 수요가 생기고, 기존 주택의 전세 물건도 연쇄적으로 나온다. 반대로 입주 물량이 줄면 시장에 나오는 전세 공급이 막힌다. 기존 세입자는 갈 곳이 마땅치 않아 계약갱신청구권을 쓰고, 집주인은 실거주나 월세 전환을 택한다. 신규 전세 물건은 더 줄어든다. 공급 부족과 전세 감소가 맞물리면 가격 상승 압력은 더 커진다. 전세대출 감소도 착시를 경계해야 한다. 전세대출 잔액이 줄었다는 사실은 겉으로 보면 가계부채 부담 완화처럼 보인다. 그러나 전세 거래가 줄어 대출이 감소했다면 의미가 달라진다. 대출 장부는 가벼워졌지만 세입자의 월 주거비 부담은 커졌을 수 있다. 대출을 못 받아 전세를 포기하고 월세로 이동한 가구도 통계 뒤에 숨어 있다. 부채가 줄었다고 주거비 부담까지 줄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 전세대출은 양면성을 갖는다. 과도한 전세대출은 전셋값을 밀어 올리고 가계부채를 키웠다. 그렇다고 대출을 급격히 조이면 실수요자도 함께 막힌다. 투기성 수요와 고가 전세에는 엄격해야 하지만, 실수요자의 주거 이동까지 막아서는 곤란하다. 대출 규제는 시장 과열을 막는 수단이지 세입자의 이동 사다리를 끊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정책이 전세 감소를 가계부채 축소라는 숫자로만 읽는 순간, 세입자의 부담은 통계 밖으로 밀려난다. 집주인의 선택도 달라졌다. 금리와 세금, 보증금 반환 리스크, 전세사기 이후의 제도 변화가 임대인의 판단에 영향을 주고 있다. 집주인 입장에서는 전세보다 월세가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제공한다. 보증금을 돌려줘야 할 부담도 줄어든다. 임대인의 위험 회피가 임차인의 월 주거비 증가로 이전되는 셈이다. 이 변화를 시장의 자연스러운 조정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전세 감소의 본질은 세입자의 선택권 축소다. 세입자가 자신의 소득과 자산, 직장과 가족 상황에 맞춰 전세와 월세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전세가 없어서 월세로 이동한다면 시장 성숙이라고 보기 어렵다. 가격이 맞지 않아 외곽으로 밀리고, 직장과 학교에서 멀어지고, 매달 주거비 부담이 늘어난다면 주거 안정과 거리가 멀다. 시장 정상화라는 말은 세입자의 체감 현실을 통과해야 한다. 부동산 정책도 매매가격만 보고 움직여서는 안 된다. 집값이 오르면 대출을 조이고, 거래가 줄면 규제를 푸는 방식만으로는 임대차 시장의 변화를 따라가기 어렵다. 전세시장은 매매시장과 연결돼 있고, 월세시장은 가계소득과 맞닿아 있다. 정책이 이 연결고리를 놓치면 전세 불안은 주거비 부담을 거쳐 매수 불안으로 번진다. 전세를 구하지 못한 세입자가 월세 부담까지 커졌다고 느끼는 순간, 무리해서라도 집을 사야 한다는 심리가 되살아날 수 있다. 특히 서울과 수도권에서는 이 연결고리가 더 강하다. 좋은 일자리와 교육, 교통망이 집중된 지역일수록 수요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전세 물건이 줄면 수요가 외곽이나 지방으로 자연스럽게 분산될 것이라는 기대도 현실과 맞지 않는다. 직장이 서울에 있고 아이 학교가 서울에 있으며 생활 기반이 서울에 있는 가구는 쉽게 움직이지 못한다. 수요가 고정된 곳에서 공급이 줄면 가격은 오른다. 해법은 전세를 억지로 되살리는 구호가 아니다. 월세화를 막겠다는 선언만으로도 부족하다. 필요한 것은 세입자가 자신의 형편에 맞게 전세와 월세를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다. 신규 입주 물량을 늘리고, 도심 주택 공급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며, 임대차 물건이 시장에 나오도록 세제와 금융 규제를 정교하게 조정해야 한다. 월세 세액공제와 주거급여, 청년·신혼부부 지원도 실제 월세 부담을 낮추는 방향으로 손질할 필요가 있다. 전세제도의 위험을 줄이는 일도 병행돼야 한다. 보증금 반환 안전장치를 강화하고, 임대인의 상환능력과 권리관계를 더 투명하게 확인하도록 해야 한다. 전세사기를 막는 제도 개선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전세제도의 위험을 줄이는 일과 전세 수요자를 시장 밖으로 밀어내는 일은 다르다. 위험한 전세를 줄이겠다는 정책이 선량한 실수요자까지 월세시장으로 밀어 넣어서는 안 된다. 임대차 통계도 더 촘촘해야 한다. 월세 비중이 높아졌다는 숫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보증금 규모, 월세 수준, 갱신계약 비중, 신규계약 물량, 지역별 입주 예정 물량, 전세대출 제한의 영향까지 함께 봐야 한다. 같은 월세라도 보증금 1억원에 월세 60만원인 가구와 보증금 3억원에 월세 150만원인 가구의 부담은 다르다. 정책은 평균 수치가 아니라 시장 안쪽의 현실을 읽어야 한다. 전세가 줄어드는 시장을 과거로 되돌릴 수는 없다. 제도는 변하고 시장도 변한다. 그러나 변화가 곧 안정은 아니다. 월세화가 불가피한 흐름이라면 그만큼 월세 세입자를 보호할 장치가 따라와야 한다. 전세가 줄어드는 만큼 공공임대와 민간임대의 질도 높아져야 한다. 입주 물량 감소가 예고됐다면 공급 정책은 더 빨라져야 한다. 시장이 바뀌고 있다는 말만으로 세입자의 부담을 설명할 수는 없다. 부동산 시장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불안을 안정으로 오해할 때다. 전세 감소는 언젠가 올 수밖에 없는 변화일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전세 감소는 충분한 대체재와 함께 온 변화가 아니다. 전세 물건은 줄고, 월세 부담은 커지고, 서울 전셋값은 뛰고, 공급은 부족하다. 이런 시장을 두고 정상화라고만 말하면 정책의 초점은 흐려진다. 전세가 줄어든 시장은 이미 우리 앞에 와 있다. 문제는 그 시장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다. 전세가 줄었다는 사실만 보고 안도할 때가 아니다. 숫자 뒤에 있는 세입자의 부담과 공급 부족의 그림자를 봐야 한다. 전세 감소를 정상화로 부르기 전에, 그 변화가 누구에게 비용을 떠넘기고 있는지부터 따져야 한다.
2026-06-15 07:4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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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왜 정원오가 아니라 오세훈을 택했나
[경제일보] 6·3 지방선거 최대 승부처는 결국 서울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이 전국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12곳을 차지하는 흐름 속에서도 서울만은 달랐다.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는 더불어민주당 정원오 후보를 개표 막판 근소한 차이로 누르고 서울시장 사상 첫 5선 고지에 올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오 후보는 49.22%의 득표를 얻어 정 후보(48.07%) 1.15%포인트, 6만259표 차로 이겼다. 지상파 출구조사에서 정 후보가 앞서는 것으로 예측됐던 흐름을 뒤집은 ‘대역전극’이었다. 서울은 민주당이 ‘이겼어야 할 선거’였고, 국민의힘이 ‘반드시 지켜야 할 선거’였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첫 전국 단위 선거에서 수도 서울까지 가져와야 정권 안정론을 완성할 수 있었다. 반대로 국민의힘에는 서울이 마지막 수도권 교두보였다. 경기와 인천이 민주당 쪽으로 기울어진 상황에서 서울마저 내주면 보수 정당의 전국 확장성은 사실상 붕괴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점에서 오 후보의 승리는 단순한 서울시장 1석의 승리가 아니라 보수 진영이 간신히 붙잡은 정치적 생명줄이었다. 전국은 민주당, 서울은 국민의힘…수도 표심은 달랐다 이번 지방선거의 큰 흐름은 민주당 우세였다. 민주당은 16개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12곳을 차지했고, 국민의힘은 서울·대구·경북·경남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다만 민주당은 최대 승부처인 서울시장 탈환에 실패하면서 ‘미완의 승리’라는 평가를 받게 됐다. 서울 유권자는 전국적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지 않았다. 정당 구도보다 후보의 시정 경험, 부동산 기대, 도시 운영 능력을 따로 떼어 판단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번 서울 선거는 정권에 힘을 실어주느냐, 야당에 견제력을 주느냐의 선거이기도 했지만, 막판에는 ‘내 집값과 내 동네 개발을 누가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느냐’의 문제로 좁혀졌다”며 “전국 선거의 바람이 서울의 생활경제 계산을 완전히 덮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전국 승리 흐름에 기대 서울에서도 정권 안정론이 먹힐 것으로 봤다. 그러나 서울은 한국 정치의 상징 공간인 동시에 가장 예민한 생활경제의 현장이다. 부동산 가격, 재건축 속도, 교통망 확충, 세금 부담, 도시개발 방향이 유권자의 일상과 자산에 직접 연결된다. 정권에 대한 호감과 지지는 있었지만, 그것이 곧바로 서울시장 교체 요구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정원오의 생활행정, 서울 전체 시장감으로 확장 못 했다 정원오 후보는 성동구청장 3선 경험을 바탕으로 ‘생활행정형 후보’ 이미지를 내세웠다. 성수동 변화, 지역 행정 경험, 젊고 실용적인 행정가 이미지는 분명 강점이었다. 실제 선거 초중반 정 후보는 민주당 지지층뿐 아니라 일부 중도층에서도 신선한 후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구청장 성공 모델을 서울 전역의 시장감으로 확장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서울은 25개 자치구의 단순한 합이 아니다. 부동산·교통·재건축·재개발·도시계획·복지·일자리·안전이 동시에 작동하는 초대형 생활권이다. 정 후보의 생활행정 이미지는 호감도는 만들었지만, 막판 초박빙 승부에서 “서울 전체를 맡겨도 되느냐”는 질문을 완전히 넘어서지는 못했다. 특히 TV토론을 둘러싼 소극적 대응 논란은 정 후보의 확장성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정 후보는 서울시 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 TV토론에는 참석했지만, 오세훈 후보 측이 요구한 추가 토론에는 적극적으로 응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서울신문은 선거 기간 중 오 후보가 정 후보의 토론 회피를 비판했고, 정 후보가 과거 발언 등을 거론하며 맞받았다고 보도했다. 이후 5월 28일 열린 서울시장 후보 TV토론은 사실상 처음이자 마지막 TV토론이 됐다. 경향신문은 해당 토론에서 후보들이 안전 문제와 부동산 정책 등을 놓고 공방을 벌였다고 전했다. 정 후보 입장에서는 앞선 판세를 지키기 위한 ‘리스크 관리’였을 수 있다. 그러나 서울시장 선거는 인지도와 시정 경험을 검증받는 무대다. 도전자에게 TV토론은 현직의 실정과 자신의 대안을 동시에 부각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정 후보가 추가 토론 공방에서 보다 공세적으로 나섰다면 성동구청장 이미지를 넘어 서울시 전체를 이끌 후보라는 인상을 강화할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정 후보는 생활행정 이미지를 통해 호감도를 높였지만, 막판에는 서울 전체의 비전과 위기 대응 능력을 보여주는 장면이 더 필요했다”며 “TV토론 추가 개최 논란에서 방어적으로 비친 점은 ‘검증을 피한다’는 프레임을 국민의힘에 허용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사정에 밝은 한 인사도 “정 후보가 성동구에서 보여준 성과는 분명 경쟁력이 있었지만, 선거 막판에는 ‘성동구청장 정원오’와 ‘서울시장 정원오’ 사이의 간극을 국민의힘이 집요하게 파고들었다”며 “민주당이 서울 전체의 도시 비전을 더 압축적이고 선명하게 보여줬어야 했다”고 평가했다. 정 후보의 패인은 후보 개인의 문제만으로 좁혀볼 수 없다. 민주당은 서울에서 ‘왜 바꿔야 하는가’는 설명했지만, ‘바꾸면 무엇이 달라지는가’를 충분히 각인시키지 못했다. 생활행정의 성과는 강조했지만 서울시 전체의 재건축·교통·도시경쟁력 구상에서는 오 후보의 경험론을 압도하지 못했다. 여기에 TV토론 추가 공방에서 적극적 검증 무대를 넓히지 못한 점까지 겹치면서, 정 후보는 마지막 국면에서 ‘참신한 구청장’ 이미지를 ‘준비된 서울시장’ 이미지로 완전히 전환하지 못했다. 오세훈의 승부수는 새로움이 아니라 안정감이었다 오세훈 후보에게 새로움은 없었다. 장기 재임 피로감도 분명했다. 그러나 서울 유권자 일부는 바로 그 점을 장점으로 받아들였다. 재건축·재개발, 한강벨트 개발, 교통망 확충, 주택 공급, 도시계획 연속성 같은 의제에서는 실험보다 연속성을 택한 셈이다. 오 후보는 ‘시작된 변화, 압도적 완성’을 내걸고 “4년만 더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서울에서 오세훈 후보가 이긴 것은 당의 승리라기보다 후보 경쟁력과 부동산 민심의 결합에 가까웠다”며 “서울 유권자는 정권 심판이나 정권 지원이라는 큰 구호보다 당장 눈앞의 도시 운영 안정성을 더 따졌다”고 말했다. 이 대목은 국민의힘에도 착시를 경계하게 한다. 오 후보의 승리는 국민의힘 전체의 회복이라기보다 서울에서 작동한 특수한 조합의 결과였다. 오 후보 개인의 인지도, 서울시정 경험, 부동산·도시개발 이슈에서의 비교우위, 그리고 민주당의 전국 승리에 대한 견제 심리가 한꺼번에 맞물렸다. 강남3구·마용성·한강벨트…승부 가른 자산투표 이번 서울시장 선거를 해석하는 핵심 열쇠는 ‘자산투표’다. 서울의 표심은 단순히 보수냐 진보냐로 갈라지지 않았다. 내 집값이 어떻게 될 것인가, 재건축 규제는 풀릴 것인가, 교통망은 빨라질 것인가, 세금 부담은 늘어날 것인가, 도시개발은 멈추지 않을 것인가가 유권자의 선택을 움직였다. 정권에 힘을 실어주자는 구호보다 내 생활과 자산을 지키겠다는 심리가 더 강했던 것이다. 정치컨설팅 업계의 한 전문가는 “서울은 이미 계층·자산·주거 형태에 따라 정치적 반응이 다르게 나타나는 도시가 됐다”며 “강남3구와 마용성, 한강벨트, 재건축 기대지역에서는 정당 호감도보다 자산 방어 심리가 더 강하게 작동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그는 “반대로 민주당이 강점을 기대했던 지역에서도 투표율과 막판 결집이 충분하지 않으면 서울 전체 승부를 가져가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강남3구와 마용성, 한강벨트, 재건축 기대지역의 표심을 따로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서울의 선거는 더 이상 단일한 수도권 민심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같은 서울 안에서도 강남권과 강북권, 아파트 밀집지역과 다세대·임대주택 밀집지역, 재건축 기대지역과 주거 불안 지역의 투표 동기는 다르다. 민주당은 서울 전체의 정권 안정론을 기대했지만, 국민의힘은 부동산과 도시개발의 불안을 파고들었다. 민주당엔 서울형 민심, 오세훈엔 5선 책임 남았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출구조사와 실제 개표 흐름의 차이도 컸다. 지상파 방송 3사 출구조사에서는 정 후보가 오 후보를 앞서는 것으로 예측됐지만, 실제 개표 과정에서는 16시간에 걸친 초접전 끝에 오 후보가 역전했다. 막판 보수층 결집과 지역별 개표 순서, 사전투표와 본투표 간 표심 차이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정치권 관계자는 “서울 선거는 마지막 1%의 조직력과 위기감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 사례”라며 “국민의힘 지지층 입장에서는 경기·인천·부산·충남까지 흔들리는 상황에서 서울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절박감이 컸고, 그 절박감이 본투표와 막판 결집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서울 패배는 뼈아프다. 전국적으로 승리했지만, 수도 서울을 내줬다는 사실은 향후 국정 운영과 정치 구도에서 계속 부담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서울은 단순한 광역단체 하나가 아니다. 정치적 상징성, 언론 집중도, 부동산 시장 파급력, 중산층 민심의 방향을 동시에 보여주는 공간이다. 민주당이 서울에서 다시 승리하려면 정권 안정론만으로는 부족하다. 부동산과 세금, 교통과 재건축, 일자리와 도시경쟁력에 대해 더 정교한 답을 내놔야 한다. 서울 유권자에게 “정권을 도와달라”는 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당신의 집, 당신의 출근길, 당신의 세금, 당신의 동네가 어떻게 나아질 것인가”를 설득해야 한다. 오 후보의 승리도 압승은 아니었다. 0.6%포인트 차 승리는 승자의 자신감보다 경고장을 먼저 읽어야 할 결과다. 서울 유권자는 오 후보를 다시 선택했지만, 무조건적 지지를 보낸 것은 아니다. 장기 재임 피로감, 시정의 관성, 약자 주거와 교통 격차, 강남·비강남 간 불균형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오 시장은 서울시장 사상 첫 5선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기록은 정치적 훈장이면서 동시에 무거운 책임이다. 서울 시민은 오 후보에게 다시 기회를 줬지만, 그 기회는 무한정한 신뢰가 아니다. 재건축과 개발의 속도를 높이되 주거 약자를 배제하지 않는 균형, 한강벨트와 강남권의 경쟁력을 키우되 강북과 외곽의 박탈감을 줄이는 조정 능력이 필요하다. 이번 선거는 서울이 정권의 바람만으로 이길 수 없는 도시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시켰다. 서울 유권자는 정권보다 집값, 후보보다 생활의 안정, 구호보다 도시 운영 능력을 먼저 따졌다. 민주당에는 서울형 민심을 다시 읽으라는 숙제를 남겼고, 국민의힘에는 서울 승리를 전국 승리로 착각하지 말라는 경고를 남겼다. 한 여권 관계자는 “서울의 선택은 명료했는데 전국의 정치 바람보다 내 동네의 집값과 교통, 개발과 세금이 더 가까웠다”며 “이것이 0.6%포인트 역전극의 본질이다. 서울을 얻으려는 정당은 거대한 구호보다 생활의 계산서를 먼저 읽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2026-06-0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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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낮은 투표율…서울·경기·인천 표심 어디로
[경제일보] 6·3 지방선거 투표율이 오후 1시 기준 46.0%를 기록하며 같은 시간대 지방선거 기준 역대 최고 흐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선거 판세의 핵심축인 수도권은 지역별 온도 차가 뚜렷하다. 경기는 43.0%로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가장 낮았고, 인천도 43.4%에 그쳤다. 서울은 46.1%로 전국 평균을 0.1%p 웃돌았지만, 수도권 전체로 보면 투표 열기가 전국 상승세를 강하게 견인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3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집계에 따르면, 이날 오후 1시 현재 전체 유권자 4464만9908명 가운데 2051만8553명이 투표를 마쳤다. 이 수치에는 지난달 29일부터 30일까지 실시된 사전투표율 23.51%와 거소투표 결과가 반영됐다. 오후 1시 기준 투표율 46.0%는 2022년 제8회 지방선거 같은 시간대 투표율 38.3%보다 7.7%p 높은 수준이다. 전국 투표율은 크게 뛰었지만, 수도권의 상승 강도는 상대적으로 약한 모습이다. 경기는 전국 평균보다 3.0%p 낮고, 인천은 2.6%p 낮다. 서울만 전국 평균권을 겨우 웃도는 수준이다. 투표율이 높은 전남 56.1%, 전북 52.2%, 강원 51.8% 등과 비교하면 수도권은 분명히 낮은 축에 속한다. 수도권 투표율이 주목되는 이유는 단순히 지역이 크기 때문만은 아니다. 행정안전부가 확정한 제9회 지방선거 선거인수는 총 4464만9908명이다. 이 가운데 경기도는 1187만8997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고, 서울은 831만9134명으로 두 번째다. 두 지역만 합쳐도 전체 선거인수의 45%를 넘는다. 인천까지 포함하면 수도권 표심은 사실상 전국 선거 판세를 좌우하는 최대 변수다. 수도권 투표율이 낮거나 평균권에 머물 경우 선거의 무게중심은 ‘바람’보다 ‘동원’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크다. 높은 투표율이 전국적 관심과 심판론·안정론의 확산을 뜻한다면, 수도권의 상대적으로 낮은 투표율은 막판 조직력, 지지층 결집, 부동층 투표 참여가 승패를 가르는 구조를 만든다. 특히 서울·경기·인천은 여야 모두 중도층과 무당층 비중이 큰 지역으로 보는 만큼, 오후 시간대 투표율 변화가 최종 득표율에 미칠 파장이 작지 않다. 서울의 경우 46.1%로 전국 평균과 사실상 같은 흐름을 보이고 있다. 이는 어느 한쪽 지지층이 압도적으로 결집했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수치다. 서울시장 선거와 구청장·시의원 선거가 함께 치러지는 만큼, 지역별 생활 이슈와 정권 평가론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강남권, 한강벨트, 서북권, 동북권 등 권역별 투표율 차이가 최종 결과의 관전 포인트가 될 수 있다. 경기는 더 민감하다. 경기도는 전국 최대 유권자 지역이지만 오후 1시 기준 투표율은 43.0%로 가장 낮다. 경기도지사 선거는 물론 기초단체장, 광역·기초의원 선거까지 복잡하게 얽혀 있다. 특정 정당의 일방적 바람보다 후보 경쟁력, 지역 현안, 교통·부동산·일자리 이슈가 촘촘히 작동할 수밖에 없다. 투표율이 낮게 유지될 경우 각 정당의 기초조직과 후보 캠프의 막판 투표 독려력이 결정적 변수가 된다. 인천도 비슷하다. 오후 1시 기준 투표율은 43.4%로 전국 평균보다 낮다. 인천은 원도심과 신도시, 항만·공항 경제권, 검단·송도·청라 등 개발 이슈가 뒤섞인 지역이다. 투표율이 낮을수록 지역별 조직 기반이 강한 후보, 생활밀착형 공약을 앞세운 후보에게 유리한 국면이 만들어질 수 있다. 다만, 낮은 투표율이 특정 정당의 유불리로 곧장 연결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여야의 해석은 엇갈릴 수밖에 없다. 여당은 전국 투표율 상승을 국정 안정론과 지지층 결집의 신호로 해석할 수 있는 반면, 야당은 수도권의 상대적으로 낮은 투표율을 근거로 “아직 투표하지 않은 중도·부동층이 남아 있다”고 보고 막판 견제론 확산에 집중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오후 1시 이후 퇴근 전 시간대와 오후 막판 투표율이 수도권 승부의 마지막 관문이 된다. 이번 선거의 투표는 오후 6시까지 진행된다. 유권자는 신분증을 지참하고 주민등록지 관할 지정 투표소에서 투표해야 한다. 중앙선관위가 공식 발표하는 시간대별 투표율은 전국 256개 구·시·군 선관위에서 취합한 투표 현황을 기준으로 한다. 정치권 관계자는 “수도권은 늘 전국 선거의 축소판이었다”면서 “수도권 투표율이 평균권 또는 하위권에 머물고 있는데 이 차이가 단순한 시간대별 착시인지, 아니면 수도권 유권자의 신중한 관망인지가 이날 밤 선거 결과를 가를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수도권 승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마지막 표를 누가 더 투표장으로 데려오느냐가 승패를 가를 가능성이 커졌다”고 덧붙였다.
2026-06-03 14:4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