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총 16건
-
-
베트남 북부 산업단지, 공급 확대 속 첨단 제조·물류 투자 유치 경쟁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이어지면서 베트남 북부가 전자·전자부품과 첨단 제조업, 물류 기업을 유치하기 위한 산업 인프라 확충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하이퐁(Hải Phòng)과 박닌(Bắc Ninh)을 중심으로 산업용지와 임대형 공장 공급이 늘고 있으며, 도로·항만·공항 등 물류 인프라 개선도 투자 입지를 결정하는 주요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다만 산업단지 공급이 빠르게 증가하는 만큼 모든 지역에서 입주 수요가 같은 속도로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신규 산업단지가 실제 투자 유치와 가동으로 이어지려면 입지 경쟁력뿐 아니라 기반시설의 완성도, 물류 접근성, 운영 비용 등을 종합적으로 확보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 북부 산업용지 2만5200ha 돌파…하이퐁·박닌이 공급 주도 글로벌 부동산 컨설팅업체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Cushman & Wakefield)의 2026년 2분기 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베트남 북부의 산업용지 누적 공급량은 2만5200ha를 넘어섰다. 전년 동기보다 15.7% 증가한 규모다. 지역별로는 하이퐁이 전체 공급량의 26%를 차지해 가장 많았고, 박닌이 21%로 뒤를 이었다. 흥옌(Hưng Yên)과 닌빈(Ninh Bình)도 각각 약 13%를 차지했다. 2026년 상반기에는 하이퐁·박닌·닌빈의 산업단지 6곳에서 1200ha가 넘는 신규 산업용지가 공급됐다. 제조업 투자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산업단지 개발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공장 공급도 확대되고 있다. 북부의 임대형 기성 공장(RBF) 공급 규모는 2026년 2분기 기준 약 580만㎡로, 전년 동기보다 16.9% 증가했다. 평균 입주율은 86%로 집계됐다. 기성 창고(RBW)의 공급 규모는 약 360만㎡였으며, 평균 입주율은 85.7%를 기록했다. 특히 기성 창고 입주율은 물류 수요와 제조업 확장에 힘입어 전년 동기보다 12.1%포인트 상승했다.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는 전자·전자부품과 첨단 제조업, 물류 분야의 수요가 산업용 부동산 시장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생산시설을 신속하게 가동하려는 기업에는 공장을 직접 건설하는 대신 기성 공장을 임차하는 방식이 대안이 될 수 있다. 다만 산업용지 자체의 평균 입주율은 64%로 전년보다 2.7%포인트 낮아졌다. 신규 공급이 빠르게 늘면서 전체 입주율에 조정 압력이 발생한 것이다. 보고서는 이를 기초 수요의 악화보다는 신규 산업단지의 공급 확대와 초기 입주에 필요한 시간의 영향으로 분석했다. 산업용지와 기성 공장은 서로 다른 시장이므로 공장 입주율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산업단지 전체의 수요가 충분하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 공항·도로·항만 연결성, 투자 입지 경쟁의 핵심 변수 산업단지를 선택하는 기업들은 토지 가격과 임대료뿐 아니라 원자재 조달과 제품 수출에 필요한 물류 여건을 중요하게 고려한다. 특히 전자·부품 산업처럼 공급망 내 여러 기업과 긴밀하게 연결되는 업종에서는 생산시설과 항만·공항, 주요 소비시장 사이의 이동 시간과 운송 비용이 경쟁력에 영향을 미친다. 베트남 북부에서는 기존 항만과 도로망에 더해 대형 교통 인프라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업 중 하나가 박닌 지역의 자빈 국제공항(Gia Bình International Airport)이다. 베트남 정부의 사업계획에 따르면 자빈 국제공항은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기준 4F급으로 추진되며, 2030년까지 연간 여객 3000만명과 화물 160만t을 처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2025~2027년에는 2027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필요한 시설을 우선 건설하고, 2030년까지 1단계 사업을 완성하는 일정이다. 공항과 주요 산업도시를 연결하는 도로망이 계획대로 확충되면 하노이(Hà Nội)와 박닌 등 내륙 산업 거점의 국제 물류 접근성이 개선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이러한 효과는 실제 시설 완공 시점과 연결 교통망의 구축 속도, 운영 효율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하이퐁은 항만을 기반으로 한 물류 여건과 기존 산업 생태계를 갖춘 지역으로, 박닌과 함께 북부 산업단지 시장의 주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에 흥옌·닌빈·푸토(Phú Thọ) 등 주변 지역에서도 산업용지와 공장 공급이 늘면서 기업들은 생산시설의 입지와 비용을 비교해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지고 있다. ◆ 안팟5 산업단지, 신규 투자 수요 확보에 나서 이러한 산업단지 개발 흐름 속에서 하이퐁의 안팟5(An Phát 5) 산업단지도 신규 공급 사례로 주목된다. 안팟홀딩스(An Phát Holdings) 계열사가 개발하는 안팟5는 하이퐁시 껌장(Cẩm Giàng) 지역의 르엉디엔(Lương Điền)·응옥리엔(Ngọc Liên) 일대에 조성되는 150ha 규모의 산업단지다. 사업자 측에 따르면 2025년 12월 19일 착공했으며, 2026년 말까지 기반시설을 완성하고 2027년 1분기부터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안팟5는 전기·전자, 정보기술(IT), 기계·장비 제조, 자동화, 산업용 부품과 소재 등 제조업 분야의 투자 유치를 추진하고 있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를 고려한 산업단지 개발도 사업 방향으로 내세우고 있다. 사업자 측은 2026년 9월 기준 주요 기반시설 공사가 상당 부분 진행돼 입주 예정 기업들이 공장 건설을 준비할 수 있는 단계라고 밝혔다. 다만 기반시설 완공 일정과 투자 유치 계획은 사업자 측이 밝힌 목표다. 실제 경쟁력을 판단하려면 기반시설의 완성도와 입주 기업 확보 현황, 물류 비용, 인력 수급 및 운영 여건 등을 추가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안팟5와 같은 신규 산업단지는 북부 지역의 생산시설 공급을 확대하고 기업의 입지 선택지를 넓힐 수 있다. 그러나 산업단지 개발 자체가 곧바로 외국인직접투자(FDI) 증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 투자 유치 성과는 기업의 입주 결정과 생산시설 가동, 공급망 내 연계 효과 등을 통해 확인해야 한다. ◆ 공급 확대에서 실질적인 투자 성과로 베트남 북부 산업단지 시장은 산업용지와 기성 공장 공급이 늘어나는 동시에 지역별 입주율과 수요가 차이를 보이는 단계에 들어섰다. 하이퐁과 박닌은 기존 제조업 기반과 물류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주요 거점 지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주변 지역도 상대적으로 넓은 개발 공간과 비용 경쟁력을 내세워 투자 유치에 나서고 있다. 앞으로는 산업단지 규모만큼이나 교통 인프라와의 연결성, 공장 가동 준비 수준, 운영 비용, ESG 기준 대응 능력이 중요해질 전망이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따른 투자 기회를 실제 생산과 고용으로 연결하려면 신규 산업단지들이 공급 확대를 넘어 입주 기업의 안정적인 운영을 뒷받침할 수 있어야 한다.
2026-10-13 17:22:24
-
의무지출에 포박된 나라살림, 이제 정치가 아니라 국가를 선택해야 한다
[경제일보] 대한민국 재정이 거대한 ‘의무지출의 덫’에 걸렸다. 한번 법으로 못 박힌 지출은 경기가 나빠져도, 세수가 줄어도, 국가채무가 늘어도 줄이기 어렵다. 복지지출과 국채 이자 등 의무지출이 국가 예산의 절반을 넘어서는 상황에서 정부가 재량으로 쓸 수 있는 재정 여력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관리재정수지는 만성 적자에 빠져 있고 국가채무는 1500조원을 향해 늘고 있다. 이대로라면 다음 경제위기가 닥쳤을 때 정부가 꺼내 들 수 있는 카드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재정위기가 갑자기 닥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저출생과 고령화가 몰고 올 재정 충격을 수년 전부터 경고했지만 정치권은 애써 외면했다. 국민에게 인기 없는 개혁은 뒤로 미루고 당장 표를 얻을 수 있는 복지와 현금성 지원은 경쟁적으로 늘렸다. 그 결과 오늘의 정치가 내일의 청구서를 미래 세대에게 떠넘기는 구조가 굳어졌다. 특히 1981년에 만들어진 만 65세 노인 기준을 지금까지 성역처럼 유지하는 것은 상징적인 사례다. 기대수명이 크게 늘고 고령층의 건강 상태와 경제활동 여건도 달라졌다. 그런데도 기초연금과 교통복지 등 주요 제도의 기준은 수십 년 전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연령만으로 복지 대상을 획일적으로 정하기보다 소득과 건강, 경제활동 여부 등을 함께 고려해 제도를 현실에 맞게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이 문제에 손대면 ‘노인 복지 축소’라는 프레임에 갇힐까 두려워한다. 정부 역시 개편 필요성을 말하다가 선거와 민심을 의식해 슬그머니 물러서기 일쑤다. 이것이 한국 정치의 고질병인 ‘개혁 회피’다. 개혁을 하지 않는 데 드는 비용은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결국 국민 전체와 미래 세대가 세금과 국가채무로 부담하게 된다. 이제는 인기 없는 개혁이라도 해야 한다. 노인 연령 기준을 단순히 일률적으로 높이는 방식이 아니라 건강수명과 소득, 경제활동 여부 등을 종합해 복지제도를 재설계해야 한다. 기초연금 역시 재정 여건과 복지의 형평성을 고려해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을 보다 두텁게 하는 방향으로 손질할 필요가 있다. 정년과 복지 수급 연령의 불일치도 해소해야 한다. 60세 전후에 직장을 떠나고 65세부터 각종 복지 혜택을 받는 현재의 구조는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시대와 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 정년 연장과 계속고용을 연계하고 임금체계도 연공서열 중심에서 직무·성과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고령층이 노동시장에 더 오래 남을 수 있도록 제도를 고치는 것이 단순히 복지지출을 줄이는 것보다 근본적인 해법이다. 의무지출에 제동을 거는 장치도 필요하다. 새로운 복지제도를 만들 때는 재원과 함께 종료 또는 재검토 조건을 제시하고, 일정 기간마다 정책 효과와 재정 부담을 검증하는 일몰제나 재평가제를 확대해야 한다. 기존 사업이라고 해서 자동으로 계속되는 ‘복지의 관성’도 깨야 한다. 새로운 지출을 늘리기에 앞서 기존 지출의 효율성을 따지고 구조조정하는 원칙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재정준칙 역시 실효성 있게 작동해야 한다. 경제가 좋을 때 세수가 늘었다고 지출을 확대하고 경기가 나빠지면 적자재정으로 다시 돈을 푸는 식의 반복은 지속 가능한 재정 운용이라 할 수 없다. 국가채무와 관리재정수지를 일정 범위 안에서 관리하고 이를 벗어날 경우 정부가 구체적인 정상화 계획을 국회에 제출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복지의 방향도 바꿔야 한다. 단순한 현금성 지원을 확대하는 데 그치기보다 취약계층의 자립과 근로를 지원하는 생산적 복지에 재정을 집중해야 한다. 복지와 일자리를 따로 볼 것이 아니라 직업훈련과 재취업, 의료·돌봄, 주거 지원을 하나의 체계로 연결해야 한다. 그래야 복지가 단순한 비용이 아니라 경제활동을 회복시키는 투자로 기능할 수 있다. 재정개혁은 단순히 숫자를 맞추는 문제가 아니다. 성장의 문제이기도 하다. 의무지출이 계속 늘어나면 정부는 미래 산업에 투자할 여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첨단 제조업, 에너지 인프라, 연구개발 등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분야에 재정을 투입하려 해도 기존 복지와 이자 비용에 발목이 잡히게 된다. 결국 재정의 경직성이 성장잠재력을 갉아먹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정치권은 이제 솔직해져야 한다. 국민에게 ‘더 주겠다’고 약속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누가 그 돈을 부담할 것인지 설명하는 것은 어렵다. 바로 그 어려운 일을 하는 것이 정치의 책임이다. 지금처럼 복지 확대에는 여야가 경쟁하면서 재원 마련과 제도 개혁은 서로 미루는 행태를 계속한다면 국가재정은 머지않아 경제위기에 대응할 능력을 잃을 수 있다. 재정은 한 세대의 전유물이 아니다. 오늘의 정치인이 마음대로 쓰고 미래의 청년들이 갚는 돈도 아니다. 국가는 미래 세대에 대한 채무자이면서 동시에 재정을 맡아 관리하는 신탁관리자다. 그렇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표를 의식한 임시방편이 아니라 냉정한 구조개혁이다. 65세라는 숫자에 묶여 있는 복지제도를 현실에 맞게 고치고, 일할 수 있는 고령층의 경제활동을 늘리며, 의무지출에 제동을 걸고 재정준칙을 실효성 있게 작동시켜야 한다. 복지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동시에 미래세대의 성장 기반을 지키는 방향으로 나라살림의 구조를 바꿔야 한다. 개혁의 골든타임은 이미 지나가고 있다. 더 늦으면 재정개혁의 선택지가 아니라 재정위기의 선택지만 남을 수 있다. 정치권이 다음 선거를 계산하는 동안 국가의 시계는 멈추지 않는다. 이제는 표가 아니라 나라살림을 선택해야 한다. 미래 세대에게 빚더미를 물려주는 정치는 책임 있는 정치가 아니다. 지금 정치권이 감당해야 할 가장 시급한 책무는 ‘더 주는 정치’가 아니라 ‘더 이상 무너지지 않는 국가재정’을 만드는 일이다.
2026-09-03 10:40:01
-
'52시간'이라는 낡은 틀에 미래를 가둘 것인가
세계 산업지도가 다시 그려지고 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로봇, 바이오, 양자기술 등 첨단산업의 경쟁은 이제 기술 하나의 우열을 넘어 누가 더 빨리 연구하고, 제품화하고, 시장을 선점하느냐의 싸움으로 바뀌었다. 기술 패권 경쟁에서 1년은 길고 하루는 짧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노동시장 제도는 과연 이런 속도전에 맞춰져 있는가. 최근 일본의 노동시간 제도와 연구개발 분야의 규제 완화 움직임은 우리에게 적지 않은 질문을 던진다. 일본 역시 전체 노동자에게 월 100시간의 초과근무를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 원칙적으로 월 45시간·연 360시간의 상한을 두고,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도 월 100시간 미만, 연 720시간 등의 제한을 둔다. 다만 신기술·신상품·신서비스의 연구개발 업무에 대해서는 일반적인 시간외근로 상한 규정의 적용을 제외하는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핵심은 숫자가 아니다. 모든 노동을 똑같은 잣대로 재단하지 않는다는 발상의 차이다. 연구개발 현장은 일반적인 생산라인과 다르다. 반도체 설계자가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실험 결과가 나오는 순간이 따로 있고, 새로운 알고리즘을 완성하기 위해 집중력이 최고조에 달하는 시간이 따로 있다. 경쟁사의 신제품이 발표되거나 기술적 돌파구가 눈앞에 나타났을 때 연구개발팀이 일정 기간 집중적으로 일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를 장시간 노동의 미화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과로는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창의성을 훼손한다. 건강을 잃은 근로자에게 혁신을 요구할 수도 없다. 노동시간 규제가 존재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근로자의 건강과 휴식권을 보호하고 기업이 무분별한 장시간 노동에 의존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보호와 경직성은 같은 말이 아니다. 문제는 우리 노동시장 제도가 근로자의 건강을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산업별·직무별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특히 AI와 반도체처럼 연구개발의 속도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분야에서 획일적인 시간 규제는 기업과 연구자 모두에게 제약이 될 수 있다. 한국의 주 52시간제는 장시간 노동을 줄이는 데 일정한 역할을 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 성과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 단계의 제도로 진화시키는 일이다. 정부도 AI 연구개발 현장의 특성을 고려해 특별연장근로 확대 등을 검토하고 있다. 현장의 현실과 제도 사이에 간극이 있다는 점을 정부 역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이제 논의의 방향을 바꿀 필요가 있다. 연구개발과 일반 생산업무를 구분하고 업무의 성격과 위험, 전문성, 자율성에 따라 합리적으로 제도를 차등화해야 한다. 모든 근로자를 동일한 시간표로 묶어 놓는 것이 반드시 공정한 것은 아니다. 고도의 전문성을 가진 연구자와 반복 업무 종사자에게 똑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노동 보호라기보다 규제의 획일화가 될 수 있다. 노사 자율성도 확대해야 한다. 정부가 일률적으로 근무 형태를 정하기보다 기업과 근로자가 업종과 업무 특성에 맞춰 근로시간을 설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만 자율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라야 한다. 근로자의 명시적 동의와 적절한 보상, 건강 보호, 휴식권 보장, 근로시간 기록과 사후 점검 등을 전제로 해야 한다. 노동정책의 기준도 ‘얼마나 오래 일했느냐’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어떤 방식으로 일하고 어떤 성과를 냈는지도 함께 봐야 한다. AI 시대의 연구개발은 장소와 시간의 경계가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출근해 앉아 있는 시간이 길다고 생산성이 높은 것도 아니고, 정시에 퇴근한다고 혁신적인 것도 아니다. 노동의 질과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제도를 바꿔야 한다. 기업의 책임 역시 분명해야 한다. 규제 완화가 무제한 노동을 허용하는 면허증이 돼서는 안 된다. 전문 연구인력에게 예외를 인정한다면 그만큼 높은 수준의 임금 보상과 건강관리, 충분한 휴식, 근로시간 기록과 사후 점검이 뒤따라야 한다. 규제 완화와 노동자 보호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제대로 설계하면 두 가지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 무엇보다 정치권의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만이 선이고 더 유연하게 일하는 것은 곧 노동권 후퇴라는 이분법으로는 미래를 준비할 수 없다. 반대로 기업의 경쟁력을 위해 노동자의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낡은 사고 역시 받아들일 수 없다. 세계는 이미 ‘더 오래 일하는 나라’와 ‘덜 일하는 나라’의 경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더 효율적으로 일하면서 필요한 순간에는 신속하게 집중할 수 있는 나라가 경쟁에서 앞서간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기업을 보유하고 있고 AI와 첨단 제조업에서도 상당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세계 최고 기업을 갖고 있다고 해서 세계 최고의 노동제도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기술과 산업의 변화 속도가 빠를수록 법과 제도 역시 그 속도에 맞춰 진화해야 한다. 일본의 사례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월 100시간’이라는 숫자가 아니다. 연구개발이라는 특수한 영역에 획일적인 규제를 그대로 적용하지 않고 예외와 자율성을 제도 안에 설계한 유연성의 철학이다. 우리도 이제 주 52시간제의 성역을 허물자는 논쟁을 넘어야 한다. 지켜야 할 것은 ‘52시간’이라는 숫자 자체가 아니라 근로자의 건강과 휴식이라는 본질이다. 그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연구개발, 스타트업, 첨단 제조업 등 미래산업의 특성에 맞는 유연한 노동시간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AI 시대에는 기술이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경쟁국의 기업도 우리 기업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세계 시장의 투자자 역시 한국의 복잡한 규제체계를 이해해 줄 의무가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노동권의 후퇴가 아니라 노동제도의 선진화다. 보호할 것은 확실히 보호하되 기업과 연구자가 필요한 순간 집중할 수 있도록 제도를 유연하게 만들어야 한다. 대한민국이 기술 패권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연구개발의 속도를 높여야 한다. 연구개발의 속도를 높이려면 사람의 창의성을 가두는 낡은 규제부터 다시 살펴봐야 한다. 이제 질문을 바꿀 때다. ‘몇 시간 일하게 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일해야 대한민국의 생산성과 혁신을 가장 높일 수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그것이 AI 시대에 맞는 노동개혁의 출발점이다.
2026-08-30 13:13:29
-
-
-
미중 정상회담 뒤에도 중국 변수…대만·월드컵 판권·소비시장으로 이어진다
[경제일보] 미중 관계가 정상회담 이후에도 대만과 기술, 무역 문제를 둘러싸고 복잡한 긴장을 이어가고 있다. 중국은 외교 현안에서는 대만 문제를 양보할 수 없는 사안으로 내세우고, 시장에서는 월드컵 중계권과 소비재 수요를 앞세워 글로벌 기업의 전략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5월 베이징을 방문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했다. 양국은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자는 데 뜻을 모았지만, 대만 문제를 비롯한 핵심 현안의 간극까지 좁힌 것은 아니다. 중국 외교부는 최근에도 대만 문제를 중국 핵심 이익의 핵심이라고 규정했다. 린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대만 독립과 양안 평화는 양립할 수 없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중국은 대만 문제를 미중 관계의 정치적 기초로 보고 있고, 미국은 대만관계법에 따라 대만의 방위 역량을 지원하고 있다. 미중 정상회담이 열렸다고 해서 갈등 요소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반도체와 인공지능, 첨단 제조업 공급망, 대만해협 안보는 두 나라가 쉽게 물러서기 어려운 사안이다. 정상 간 대화가 충돌을 관리하는 장치가 될 수는 있어도, 경쟁의 성격까지 바꾸기는 쉽지 않다. ◆ 월드컵 중계권도 드러낸 중국의 협상력 중국 시장의 영향력은 스포츠 산업에서도 확인된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2026 북중미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중국 중계권 계약을 마무리했다. 중국 국영 중국미디어그룹(CMG)이 중계권을 확보하면서 중국 팬들은 월드컵을 공식 방송으로 볼 수 있게 됐다. 협상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FIFA는 중국 시장의 규모와 월드컵 흥행 가능성을 고려해 높은 가격을 제시했지만, 중국 측은 그 수준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협상이 길어지자 FIFA가 가격을 조정했고, 결국 대회 개막을 앞두고 계약이 체결됐다. 중계권료는 단순히 축구를 얼마나 좋아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방송사는 광고시장과 시청률, 경기 시간대, 온라인 중계권의 수익성을 따져야 한다. 2026 월드컵은 북미에서 열려 중국에서는 심야와 오전 시간대 경기가 많다. 중국 시장이 크더라도 방송사 입장에서는 흥행을 장담하기 어려운 조건이다. FIFA가 중국과 계약을 마무리한 것은 세계 최대 규모의 소비시장을 놓칠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은 월드컵 본선에 나가지 못해도 축구 중계와 광고, 스포츠용품 판매, 온라인 플랫폼 이용자 수에서 중요한 시장이다. 국제 스포츠 단체가 중국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다. ◆ 소비시장은 회복과 경쟁이 교차 글로벌 소비기업들도 중국 시장을 계속 주시하고 있다. 다만 중국 소비시장을 한 방향으로만 보기 어렵다. 고가 화장품과 기능성 제품, 향수, 피부과학 기반 제품에는 수요가 남아 있지만, 경기 불확실성과 현지 브랜드 성장으로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로레알은 올해 1분기 전체 매출 성장세를 이어갔지만 북아시아 지역 매출은 감소했다. 중국 시장이 세계 최대 화장품 시장 가운데 하나라는 점은 변하지 않았지만, 글로벌 브랜드가 과거처럼 브랜드 인지도만으로 성장하기는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중국 소비자는 가격만 보는 시장도, 고가 브랜드만 선호하는 시장도 아니다. 기능과 성분, 사용 경험, 온라인 후기, 할인 조건을 함께 따진다. 중국 로컬 화장품 브랜드와 전자상거래 플랫폼이 빠르게 성장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글로벌 기업들은 중국에서 매장을 늘리는 방식보다 온라인 판매와 현지 맞춤형 제품, 라이브커머스, 빠른 배송 체계를 강화하는 데 더 많은 힘을 쏟고 있다. 중국 시장은 여전히 크지만, 그 안에서 살아남는 방식은 달라지고 있다. ◆ 외교와 시장에서 계속되는 중국 변수 중국은 미중 관계에서는 대만 문제를 앞세워 미국에 분명한 선을 긋고 있다. 스포츠 산업에서는 거대한 시청자 기반을 바탕으로 중계권 협상력을 행사한다. 소비시장에서는 글로벌 브랜드에 기회와 부담을 동시에 준다. 세 분야는 서로 다른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보여준다. 외교에서는 미국과 전략 경쟁을 벌이고, 시장에서는 세계 기업과 국제기구가 쉽게 외면하기 어려운 규모를 갖고 있다. 미중 관계가 안정적으로 관리될수록 중국 시장을 둘러싼 경쟁은 더 치열해질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대만과 기술, 통상 갈등이 다시 커지면 기업과 국제 스포츠 단체도 외교 변수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중국은 외교와 산업, 소비시장 모두에서 세계 경제의 주요 변수로 남아 있다.
2026-07-07 17:49:46
-
중국 경제, 소비는 더디고 전자상거래·첨단산업은 커졌다
[경제일보] 중국 경제가 전자상거래와 첨단산업을 중심으로 성장 동력을 보강하고 있다. 소비 회복 속도는 빠르지 않다. 백화점과 브랜드 전문매장 매출은 줄었고, 자동차 판매 부진도 전체 소비를 눌렀다. 그러나 온라인 소비와 외식, 크로스보더 전자상거래가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산업 부문에서는 발명특허와 고기술 제조업 투자가 늘며 성장의 무게중심이 전통 제조업에서 첨단 제조업으로 옮겨가는 모습이다. 푸둥공항 전자상거래 수출입 월간 최대 상하이 푸둥국제공항의 크로스보더 전자상거래 수출입 규모가 월간 기준 최고치를 기록했다. 5월 푸둥공항 항구의 크로스보더 전자상거래 수출입 신고 건수는 8137만건, 거래액은 85억9200만위안으로 집계됐다. 각각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8.4%, 37.4% 증가했다. 신고 건수와 거래액 모두 월간 기준 역대 최대다. 올해 1~5월 누계로도 증가세가 이어졌다. 푸둥공항 항구의 크로스보더 전자상거래 수출입 신고 건수는 3억4500만건, 거래액은 364억1500만위안이었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44.8%, 10.6% 늘었다. 품목을 보면 중국 전자상거래의 방향이 드러난다. 수출에서는 플라스틱 제품, 의류·신발·가방, 생활용품이 여전히 주력이다. 수입에서는 개인관리·화장품, 패션 의류, 경량 사치품이 중심을 이뤘고 게임기, 캠핑 장비, 스포츠용품 같은 여가 상품 수요도 늘었다. 푸둥공항 실적은 중국 소비와 무역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중국 전자상거래 플랫폼은 해외 판매를 늘리고 있고, 중국 소비자는 해외 소비재를 온라인으로 사들이고 있다. 대형 오프라인 유통이 예전만큼 힘을 쓰지 못하는 상황에서 항공 물류와 전자상거래가 결합한 소비 흐름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내수 회복은 완만, 온라인과 외식이 버팀목 내수 소비는 회복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속도는 완만하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올해 1~5월 사회소비품 소매판매 총액은 20조6031억위안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 증가했다. 자동차를 제외한 소비품 소매판매액은 19조22억위안으로 2.7% 늘었다. 자동차를 빼면 증가율이 높아진다는 점은 눈여겨볼 부분이다. 자동차 판매 부진이 전체 소비 지표를 끌어내렸다는 뜻이다. 중국 소비가 모두 약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고가 내구재 소비가 강하게 살아나지 못하면서 전체 회복세가 제한되고 있다. 소비 유형별로는 외식이 상품 판매보다 나았다. 1~5월 상품 소매판매액은 18조2543억위안으로 1.2% 증가한 반면 외식 매출은 2조3488억위안으로 3.1% 늘었다. 소비자들이 큰 돈이 드는 상품 구매에는 신중하지만, 외식과 생활 서비스 소비는 일정 부분 유지하고 있다는 의미다. 온라인 소비도 소비시장을 받치고 있다. 1~5월 중국의 온라인 상품·서비스 소매판매액은 8조3177억위안으로 5.9% 늘었다. 온라인 상품 판매는 5조2718억위안으로 5.0% 증가했고, 온라인 서비스 판매는 3조459억위안으로 7.6% 늘었다. 먹거리와 의류, 생활용품의 온라인 판매도 증가세를 보였다. 다만 오프라인 유통의 부진은 남아 있다. 일정 규모 이상 유통업체 가운데 편의점과 슈퍼마켓 매출은 각각 6.8%, 3.6% 증가했지만 전문점과 백화점, 브랜드 전문매장은 각각 1.2%, 1.8%, 7.6% 감소했다. 생활필수형 소비는 버티지만, 브랜드 중심의 선택 소비는 힘을 받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중국 소비의 현재 모습은 선명하게 엇갈린다. 온라인, 외식, 생활밀착형 유통은 살아있지만 백화점과 브랜드 전문매장, 자동차 소비는 부진하다. 소비 회복이 진행 중이라기보다 소비의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특허·고기술 제조가 산업 성장 이끌어 산업 부문에서는 기술 혁신이 성장의 중심으로 들어오고 있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올해 1~5월 중국의 발명특허 등록 건수는 37만2000건으로 전년 대비 12.1% 증가했다. 고기술 제조업은 산업 성장의 상당 부분을 담당했고, 장비 제조업도 제조업 회복을 이끄는 역할을 했다. 투자 증가세도 첨단 분야에 집중됐다. 1~5월 전자회로 제조업 투자는 전년 동기 대비 50.9% 늘었다. 리튬이온전지 제조업 투자는 24.9%, 항공기 제조업 투자는 19.7% 증가했다. 전자회로와 배터리, 항공기 제조는 중국이 전략산업으로 키우는 분야다. 내수만으로 성장세를 설명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첨단 제조업 투자가 경제의 하단을 받치고 있다. 인공지능과 양자기술 등 신산업 육성도 이어지고 있다. 중국은 제조 현장에 인공지능을 도입하고, 데이터와 자동화 기술을 생산 과정에 결합하는 방식으로 산업 고도화를 추진하고 있다. 양자기술도 통신, 반도체, 보안, 연산 분야와 연결되는 전략기술로 분류된다. 소비시장에서도 기술 제품의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 1~5월 스마트 안경을 포함한 스마트 웨어러블 기기 소매판매액은 지난해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 아직 전체 소비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제한적이지만, 소비 둔화 속에서도 신기술 제품에는 지갑을 여는 수요가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성장 방식 바꾸는 중국 경제 중국 경제를 둘러싼 부담은 여전하다. 부동산 경기 부진은 가계 심리를 누르고 있고, 청년 고용과 소득 기대도 소비 회복을 제약하고 있다. 5월 한 달 사회소비품 소매판매 총액은 4조1090억위안으로 전년 동월보다 0.6% 감소했다. 누계 지표는 플러스를 유지했지만 월간 지표에는 약한 소비 심리가 반영됐다. 그럼에도 중국 경제가 멈춰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성장의 축이 바뀌고 있다. 예전에는 부동산과 인프라, 전통 제조업이 성장의 큰 부분을 떠받쳤다. 지금은 전자상거래, 첨단 제조, 배터리, 인공지능, 웨어러블 기기 같은 분야가 그 자리를 조금씩 메우고 있다. 푸둥공항의 크로스보더 전자상거래 증가는 중국 플랫폼과 물류망이 해외 소비자와 중국 소비자를 동시에 겨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회소비품 소매판매 지표는 중국 내수가 아직 강한 회복세에 올라서지 못했음을 말해준다. 발명특허와 고기술 제조업 투자는 중국이 경기 둔화 속에서도 첨단산업 투자를 줄이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국 당국이 첨단 제조업과 기술 혁신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내수 소비가 빠르게 살아나기 어렵다면 산업 경쟁력으로 성장의 기반을 보강해야 한다. 전자상거래는 소비와 수출을 잇고, 첨단 제조업은 산업 고도화와 수출 경쟁력을 뒷받침한다. 문제는 시간이다. 기술 혁신과 산업 전환은 단기간에 소비 부진을 모두 메우기 어렵다. 특허와 투자가 늘어도 기업 수익과 고용, 가계소득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전자상거래가 활발해져도 백화점과 자동차 판매 부진을 곧바로 상쇄하기는 쉽지 않다. 중국 경제는 지금 과거의 성장 방식에서 벗어나 새 동력을 찾는 과정에 있다. 소비는 천천히 회복되고, 전자상거래는 국경을 넘어 커지고 있으며, 첨단 제조업은 투자와 특허를 바탕으로 몸집을 키우고 있다. 앞으로의 관건은 이 변화가 통계상의 성장에 그치지 않고 기업 실적과 고용, 가계소득으로 이어질 수 있느냐다.
2026-06-16 17:10:17
-
-
'9천피' 눈앞의 코스피, 거품 경계하고 기초체력 다질 때다
[경제일보] 코스피가 마침내 9000포인트 시대를 눈앞에 두게 됐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 방한 소식과 뉴욕증시 강세에 힘입어 코스피는 하루 만에 3.68% 급등하며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삼성전자 시가총액은 2000조 원을 넘어섰고, 코스피 전체 시가총액도 7000조 원을 돌파했다. 한국 자본시장의 역사에 기록될 만한 의미 있는 성과다. 오랫동안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오명을 안고 있던 우리 증시가 글로벌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으며 새로운 도약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은 분명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환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시장이 최고치를 경신할수록 냉정한 점검도 병행돼야 한다. 역사는 과도한 낙관론이 언제나 거품의 씨앗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지금의 상승세가 한국 경제의 전반적인 체질 개선을 반영한 결과인지, 아니면 일부 초대형 기술주에 대한 기대감이 만들어낸 착시효과인지를 면밀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현재 증시 상승을 이끄는 핵심 동력은 반도체와 인공지능(AI) 산업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한 반도체 기업들의 실적 개선 기대감이 시장 전체를 견인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우리 증시의 구조적 취약성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특정 산업과 소수 대형 종목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것은 해당 산업의 경기 변동이나 글로벌 공급망 충격에 시장 전체가 흔들릴 수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과거에도 반도체 업황 악화가 한국 경제와 증시에 큰 충격을 준 사례는 적지 않았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외국인 투자자들의 움직임이다. 지수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는 상황에서도 외국인은 매도세를 이어가고 있다. 개인과 기관이 시장을 떠받치고 있지만, 국제 자본의 시각은 여전히 신중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외국인 자금은 국내 투자자보다 훨씬 냉정하게 국가 경제의 성장성, 기업의 수익성, 정책의 일관성을 평가한다. 외국인의 지속적인 매도는 현재의 상승세가 탄탄한 기초체력 위에서 이뤄지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진정한 증시 선진화는 단순히 지수 숫자를 높이는 데 있지 않다. 기업의 경쟁력과 투자 매력을 높여 지속 가능한 성장을 만드는 데 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과감한 규제 혁신이 필요하다. 신산업에 대한 불필요한 규제를 줄이고 기업의 연구개발 투자와 혁신을 촉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또한 자본시장의 신뢰를 높이기 위한 기업 지배구조 개선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소액주주 권익 보호, 투명한 의사결정 구조 확립, 주주가치 제고 정책 확대는 글로벌 투자자들이 요구하는 기본 조건이다. 정부 역시 단기적인 증시 부양책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시장의 활황이 실물경제 성장과 양질의 일자리 창출로 이어질 수 있도록 산업 경쟁력 강화와 생산성 향상에 정책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특히 반도체와 AI에 편중된 성장 구조를 넘어 바이오, 에너지, 첨단 제조업, 문화 콘텐츠 등 미래 성장 산업을 육성하는 균형 잡힌 전략이 요구된다. 9000포인트 돌파는 분명 축하할 일이다. 하지만 숫자가 높아질수록 시장은 더욱 냉정해져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들뜬 기대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다지는 일이다. 거품은 순간의 환호를 남기지만, 체질 개선은 오랜 번영을 만든다. 한국 증시가 진정한 선진 시장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기록 경신의 기쁨에 취하기보다 시장의 기초체력을 키우는 데 국가적 역량을 모아야 할 때다.
2026-06-02 09:27:53
-
-
반도체 생태계 구축에 나서는 중국 지방정부 : 한국도 반도체 초과세수를 생태계 구축에 활용해야 한다
[경제일보] 중국이 무섭게 변하고 있다. 이제 중국은 더 이상 단순한 ‘세계의 공장’이 아니다. 값싼 노동력으로 글로벌 기업의 하청 생산기지 역할을 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가고 있다. 지금 중국 지방정부들이 벌이고 있는 가장 치열한 전쟁은 바로 ‘반도체 생태계 전쟁’이다. 최근 중국 장쑤성 소주(蘇州) 장자강(張家港)에서 열린 한·중 경제무역협력 교류회 현장을 둘러보며 새삼 놀란 것은, 중국 지방도시들의 태도가 과거와 완전히 달라졌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단순히 공장 하나 유치하는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도시 전체가 반도체 산업단지와 첨단 제조업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그들은 이미 알고 있다. AI 시대의 패권은 결국 반도체에서 결정된다는 사실을. 특히 중국 지방정부들은 지금 한국의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을 사실상 ‘국가 전략 자산’ 수준으로 대우하고 있다. 한국 안에서는 중소기업 취급을 받는 기업들이 중국에 가면 귀빈이 된다. 지방정부 간부들이 직접 공항 영접을 나오고, 세제 혜택과 공장 부지 제공은 기본이며, 연구개발 자금과 인력 지원까지 패키지로 제안한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가. 반도체 산업은 이제 단순 제조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의 첨단 문명 생태계다. AI 반도체, HBM(고대역폭 메모리), 첨단 패키징, 전력반도체, 차량용 반도체, 산업용 센서, 로봇칩, 양자컴퓨팅까지 미래 산업의 핵심은 모두 반도체와 연결된다. 그리고 반도체 산업의 진짜 경쟁력은 단순히 삼성전자나 TSMC 같은 대기업 하나로 완성되지 않는다. 소재, 화학, 특수가스, 웨이퍼, 정밀가공, 초정밀 부품, 산업용 로봇, 테스트 장비, 패키징, 설계 인력, 대학 연구소, 금융, 물류까지 유기적으로 연결된 거대한 산업 생태계가 있어야 한다. 중국은 지금 바로 그 생태계를 만들고 있다. 중국 지방정부들의 움직임을 보면 놀라울 정도다. 상하이권은 AI 반도체와 설계 생태계 구축에 집중하고 있고, 장쑤성과 저장성은 첨단 제조 및 패키징 분야를 키우고 있다. 광둥성은 화웨이와 BYD를 축으로 차량용 반도체와 AI 기기 생태계를 강화하고 있으며, 쓰촨성과 충칭은 후공정 및 테스트 산업에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속도다. 중국은 중앙정부가 방향을 정하면 지방정부가 곧바로 움직인다. 산업단지 조성, 세금 감면, 금융 지원, 공장 인허가, 연구소 설립, 대학 협력까지 거의 전시 체제 수준으로 밀어붙인다. 지금 중국 지방도시들 사이에서는 “한국 반도체 기업 하나라도 더 유치하라”는 경쟁이 치열하다. 왜냐하면 한국 기업들이 들어오면 그 도시의 산업 수준 자체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기술과 인재, 공급망과 글로벌 네트워크가 함께 들어온다. 중국은 이미 단순 추격 단계를 넘어섰다. 이제는 생태계 전체를 삼키려 한다. 문제는 한국이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메모리 반도체 강국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세계 시장을 이끌고 있다. HBM 경쟁에서도 앞서 있다. 그러나 정작 국내 산업 구조를 들여다보면 우려되는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대기업은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지만, 소부장 중소기업들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인력난은 심각하고, 지방 산업단지는 비어가고 있으며, 규제와 비용 부담은 계속 커진다. 특히 수도권 집중 현상으로 인해 지역 제조업 생태계가 빠르게 약화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국가 전략의 부재다. 반도체는 이미 국가 안보 산업이 되었는데도 한국은 아직도 개별 기업의 경쟁력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 생태계 전체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에 대한 국가적 비전과 장기 전략은 상대적으로 약하다. 중국은 도시 단위로 움직이고 있는데 우리는 기업 단위로 버티고 있는 셈이다. 더 우려되는 것은 인재 문제다. 이제 반도체 전쟁은 단순 기술 전쟁이 아니다. 인재 전쟁을 넘어 생태계 전쟁으로 넘어가고 있다. 중국은 한국과 대만, 일본의 기술 인력을 공격적으로 영입하고 있다. 대학과 연구소, 기업을 연결한 대규모 지원 체계를 만들고 있다. 주택 제공, 연구비 지원, 세제 혜택은 물론이고 가족 정착까지 지원한다. 반면 한국은 어떤가. 반도체 학과를 늘린다고 하지만 정작 현장 인력은 부족하다. 청년들은 제조업을 기피하고, 지방 대학은 무너지고 있다. 중소 소부장 기업들은 사람을 구하지 못해 아우성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지방정부들이 한국 기업들을 향해 손을 내밀고 있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 지금 우리는 역사적 기회를 맞고 있다. 중국은 한국 반도체 생태계를 필요로 한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국을 전략 파트너로 본다. 일본 역시 반도체 부활을 위해 한국과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영원하지 않다. “물이 들어왔을 때 배를 띄워야 한다”는 말은 지금 같은 시대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일본은 이미 국가 차원의 생태계 전략에 들어갔다. TSMC 구마모토 공장에 막대한 보조금을 투입했고, 라피더스(Rapidus)를 통해 차세대 반도체 국산화에 나섰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대학과 기업이 사실상 국가 총동원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미국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은 반도체지원법(CHIPS Act)을 통해 수십조 원 규모의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단순 공장 지원이 아니다. 연구개발, 인재 양성, 공급망 재편, 안보 전략까지 모두 포함된 국가 산업 전략이다. 결국 미국과 일본은 반도체를 단순 기업 산업이 아니라 국가 문명 경쟁력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한국도 이제 결단해야 한다. 최근 반도체 호황으로 세수가 크게 늘고 있다면, 그 초과세수를 단순 재정 메우기에 사용할 것이 아니라 반도체 생태계 구축에 전략적으로 투입해야 한다. 첫째, 지방 반도체 클러스터를 강화해야 한다. 수도권 중심 구조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충청권, 전북, 경북, 동해안권까지 연결한 국가 반도체 벨트를 구축해야 한다. 둘째, 소부장 기업을 국가 전략산업 수준으로 대우해야 한다. 이 기업들이 무너지면 삼성전자도, SK하이닉스도 혼자 살아남을 수 없다. 셋째, 대학과 연구소를 산업 생태계와 직접 연결해야 한다. 이공계 인재들이 제조업과 지역 산업으로 유입되도록 파격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넷째, 장기 산업 금융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반도체는 단기간 수익 산업이 아니다. 10년, 20년을 보고 투자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적 각오다. 지금 세계는 AI 혁명 시대의 새로운 산업 질서를 재편하고 있다. 반도체는 그 중심이다. 반도체를 잃는 국가는 미래 산업 패권을 잃는다. 중국 지방정부들의 움직임은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그들은 이미 다음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한국도 이제 단순히 “잘나가는 반도체 기업 몇 개 있는 나라”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반도체 생태계 국가로 진화해야 한다. 그것이 AI 시대를 살아남는 길이다.
2026-05-23 18:21:33
-
중국, 금리는 묶고 6G·AI는 키운다…첨단 산업으로 성장축 이동
[경제일보] 중국이 기준 대출금리를 1년째 동결하며 금융 안정 기조를 이어가는 가운데 6G와 인공지능(AI), 첨단 제조업 육성에는 속도를 내고 있다. 대규모 경기 부양보다는 기술 경쟁력 강화와 산업 체질 전환에 정책 무게가 실리는 모습이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이달 대출우대금리(LPR)를 다시 동결했다. 1년물 LPR은 3.0%, 5년물 이상은 3.5%로 유지됐다. 두 금리 모두 12개월 연속 같은 수준이다. 시장에서는 중국 경제가 예상보다 견조한 흐름을 보인 점이 금리 동결 배경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1분기 중국 경제성장률은 5.0%를 기록했다. 국제 유가 상승과 물가 부담까지 겹치면서 추가 금리 인하 필요성이 다소 낮아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은 최근 과거와 같은 대규모 유동성 공급보다는 금융 시스템 안정과 전략 산업 중심의 성장 구조 재편에 집중하는 분위기다. 특히 인민은행은 단순 금리 인하보다 대출 체계 개편에 무게를 두고 있다. 기업 규모와 업종 특성을 반영한 차등 금리 체계를 검토하며 첨단 제조업과 전략 산업 중심으로 자금 공급 효율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통신 산업에서는 6G 경쟁 선점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중국 공업정보화부는 최근 6GHz 대역을 6G 시험용 주파수로 승인했다. 6GHz는 넓은 대역폭과 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어 차세대 통신 핵심 주파수로 평가된다. 중국은 이미 300개 이상의 6G 관련 기술을 확보했다고 밝힌 상태다. 당국은 2030년 전후 초기 상용화, 2035년 대규모 상용화를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6G 경쟁이 단순 통신 산업을 넘어 반도체와 통신장비, 자율주행, 스마트 공장, 산업용 로봇 등 첨단 산업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AI 산업 성장세도 이어지고 있다. 중국 국가세무총국 자료에 따르면 올해 1~4월 전자 소재와 반도체, 스마트 차량 장비, 로봇 분야 매출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 생성형 AI 확산과 첨단 제조업 투자 확대가 맞물리며 산업 전반 성장세를 이끌고 있다는 분석이다. 중국 정부는 최근 AI와 디지털 산업을 핵심 성장 축으로 삼고 관련 정책 지원도 강화하고 있다.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로봇, 스마트 제조 분야 투자 역시 동시에 확대되는 흐름이다. 시장에서는 중국 경제가 부동산 중심 성장 모델에서 벗어나 첨단 산업과 디지털 경제 중심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내수 회복 속도와 청년 실업, 지방정부 부채 부담 등은 여전히 부담 요인으로 남아 있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업계 한 관계자는 “중국은 금리 인하를 통한 단기 경기 부양보다 첨단 산업 경쟁력 강화에 정책 역량을 집중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며 “향후 중국 경제의 핵심 변수는 부동산보다 AI와 반도체, 차세대 통신 같은 기술 산업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2026-05-20 17:41:48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