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쇄신 동력 잃은 여당, 당청의 수직적 관성에서 벗어나야
정권의 위기는 대개 야당의 공세 때문에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내부에서 문제가 생겼는데도 이를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알아차리고도 제때 고치지 못할 때 위기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집권 중반기에 접어든 이재명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지금 경계해야 할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장관 후보자들의 잇따른 낙마에 이어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까지 사의를 표명했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낙마한 장관 후보자가 5명에 이르면서 인사 검증 시스템에 대한 재점검 필요성이 제기됐고, 강 실장은 인사위원장으로서 종합적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사의를 밝혔다. 문제는 책임자의 사퇴 그 자체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왜 같은 유형의 문제가 반복됐는지, 그리고 집권 여당이 그 과정에서 무엇을 했느냐는 것이다. 김민석 대표 체제의 민주당은 출범 때부터 ‘당청 원팀’을 강조했다. 취임 직후 대통령실과의 관계 복원에 무게를 두면서 전임 지도부와는 다른 당정 관계를 만들어가겠다는 의지도 보였다. 당정 간 긴장을 낮추고 국정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문제는 ‘원팀’이 ‘무비판적 일체화’로 변질될 때다. 집권 여당의 가장 중요한 존재 이유는 대통령실의 박수부대가 되는 데 있지 않다. 대통령에게 힘을 보태되 잘못된 판단에는 제동을 걸고, 국민이 느끼는 불만을 가감 없이 전달하며, 야당과의 협상에서 국정의 출구를 만드는 것이 여당의 본령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민주당에 필요한 것은 대통령실과의 거리를 좁히는 것만이 아니라 오히려 건전한 긴장 관계를 제도화하는 일이다. 대통령실이 인사 후보자를 검토할 때 여당이 정무적 검증을 하고 청문회 이전에 민심의 반응을 냉정하게 점검하는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인사청문회가 시작된 뒤 새로운 의혹이 쏟아지고 후보자가 낙마한 뒤 책임자를 찾는 방식으로는 국정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다. 더구나 집권 중반기에는 여당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대통령의 국정 동력은 시간이 갈수록 약해질 수밖에 없다. 초기에는 대통령의 지지와 국정 추진력이 당을 이끌지만 중반기에 접어들면 여당이 독자적인 정치력을 갖고 민심과 국정을 연결해야 한다. 그런데 여당이 대통령실의 판단을 사후적으로 설명하거나 방어하는 데 머물면 당정 관계는 수직적으로 굳어진다. 대통령실이 정책을 만들고 여당이 국회에서 관철하는 구조만 남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효율적인 당정 관계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견제 기능이 약화된 상태다. 최근 부동산과 증시 정책을 둘러싼 민심 이반과 인사 논란, 여권 내부의 갈등은 여당이 단순한 전달자가 아니라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할 이유를 보여준다. 김 대표 취임 이후 당정 관계가 진전됐다는 평가가 있는 반면 핵심 지지층의 약화와 여권 내부 갈등, 중도층과의 거리 등도 과제로 거론되고 있다. 이런 신호를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 야당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국회 다수 의석을 가진 여당이라 하더라도 모든 것을 힘으로 밀어붙일 수는 없다. 특히 인사와 사법, 경제정책처럼 국민 생활과 직결되는 사안에서는 야당과의 협의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넓히는 정치가 필요하다. 협치는 약한 여당이 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 있는 여당이 하는 것이다. 물론 야당 역시 무조건적인 반대와 정쟁으로 일관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집권 여당이 먼저 협상의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여야가 서로의 존재 이유를 인정하지 않는 순간 국회는 법안을 만드는 곳이 아니라 정치적 진영 대결의 경기장이 되고 만다. 김민석 대표에게 요구되는 리더십도 여기에 있다. 대통령과 가까운 당 대표가 되는 것과 대통령에게 필요한 말을 하는 당 대표가 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대통령의 성공이 곧 여당의 성공이라는 점에서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여당이 오히려 강한 여당이다. 이번 인사 파동을 몇몇 후보자의 개인적 흠결이나 비서실장의 책임 문제로만 끝내서는 안 된다. 인사 추천·검증·정무 판단·당정 협의가 따로 움직이는 구조부터 손봐야 한다. 대통령실과 여당 사이에 상시적인 인사·정책 협의 채널을 만들고, 여당 지도부가 민심과 국회의 판단을 대통령실에 정례적으로 전달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당 내부에서도 계파와 강성 지지층의 목소리에 휘둘리지 않는 토론 구조를 복원해야 한다. 여당이 국민 전체를 바라보지 않고 자기 진영의 박수에만 의존하기 시작하면 국정 운영은 현실과 멀어진다. 정치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반대 의견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정권 중반기는 위기이면서 동시에 쇄신의 기회다. 지금 필요한 것은 사람 몇 명을 바꾸는 인적 쇄신에 그치지 않는다. 대통령실과 여당의 관계를 다시 설계하고 여당이 국정의 공동 책임자이자 민심의 전달자, 야당과의 협상자로 제 역할을 해야 한다. ‘원팀’은 같은 목소리를 내는 조직이 아니다.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도 하나의 목표를 향해 갈 수 있는 조직이다. 김민석 대표가 진정한 리더십을 보여주려면 대통령실의 방패가 아니라 국정의 균형추가 돼야 한다. 그것이 집권 중반기 여당이 쇄신의 동력을 되찾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출발점이다.
2026-09-23 16:3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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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법적 겸직'보다 무거운 공직의 책임
[경제일보]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비례대표 의원직을 유지하겠다는 뜻을 거듭 분명히 밝혔다. 용 후보자는 지난 10일 기자회견에서 의원과 국무위원의 겸직은 “법률이 허용하는 것”이라며 사퇴 요구를 일축했다. 야당 현역 의원을 장관으로 지명한 데에는 연합정치의 의미가 있다는 설명도 내놨다. 틀린 말은 아니다. 국회법 제29조는 국회의원이 국무총리나 국무위원을 겸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용 후보자가 장관에 임명된 뒤 의원직을 유지한다고 해서 위법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정치의 질문은 법전의 마지막 조항에서 끝나지 않는다. 할 수 있느냐와 해야 하느냐는 다른 문제다. 이번 논란의 핵심도 여기에 있다. 장관은 대통령을 보좌해 한 부처의 정책과 예산, 인사를 책임지는 행정부의 핵심 구성원이다. 국회의원은 정부를 감시하고 법과 예산을 심사한다. 우리 헌법과 국회법이 두 직책의 겸직을 인정하고 있으니 그 자체를 제도적 모순이라고 몰아붙일 일은 아니다. 의원 출신 장관이 국회와 정부 사이의 소통을 돕는 장점도 있다. 다만 비례대표 의원이라면 사정이 조금 달라진다. 지역구 의원이 의원직을 내려놓으면 일정 기간 해당 지역의 대표가 사라지고 보궐선거가 필요할 수 있다. 비례대표 의원은 사퇴하더라도 명부의 후순위 후보자가 의석을 승계한다. 국회의 의석 자체가 비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비례대표 의원이 국무위원으로 입각할 때 의원직을 내려놓는 관행이 이어져 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근에는 아예 비례대표 의원이 국무위원으로 임명될 경우 의원직에서 퇴직하도록 하는 국회법 개정안까지 발의됐다. 개별 후보자를 겨냥한 입법이 돼서는 안 되겠지만, 이번 논란이 현행 겸직 제도의 원칙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 것은 분명하다. 용 후보자에게는 특수한 사정이 있다. 그가 의원직을 내려놓으면 기본소득당은 원내 의석을 잃는다. 용 후보자 스스로도 자신이 당의 유일한 현역 의원이고, 사퇴할 경우 기본소득당이 원외정당이 되는 어려움이 있다며 양해를 구했다. 2024년 총선 당시 더불어민주연합의 비례명부를 통해 당선됐기 때문에 후순위 승계자가 기본소득당 소속이 되는 것도 아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정치적 고민이다. 소수정당에서 국회의원 한 명이 갖는 무게는 거대정당의 한 석과 다르다. 원내 발언권과 입법 활동, 정당의 존재감이 그 한 석에 걸릴 수 있다. 다당제와 정치적 다양성이라는 관점에서도 작은 정당의 원내 활동을 가볍게 볼 이유는 없다. 하지만 그 사정이 오히려 선택을 더 분명하게 만든다. 기본소득당의 원내 지위를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면 의원으로 남으면 된다. 성평등가족부를 이끌어 정부 정책을 책임지는 일이 더 중요하다면 장관직을 선택하면 된다. 소수정당의 어려움은 두 선택 가운데 어느 쪽을 택할지 고민하게 하는 이유일 수는 있어도, 두 자리를 모두 가져야 하는 이유가 되기는 어렵다. 연합정치라는 설명 역시 마찬가지다. 야당 정치인이 정부에 참여하는 것은 충분히 의미 있는 정치 실험이다. 서로 다른 정당이 정책 목표를 공유하고 정부 운영에 참여하는 것은 협치의 한 방식이 될 수 있다. 다만 연합정치의 의미는 장관으로 정부에 참여하는 데서 이미 구현된다. 의원직까지 반드시 함께 보유해야 연합정치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장관으로 국무회의에 들어가 정부 정책을 함께 책임지면서 동시에 야당 의원의 지위를 그대로 유지할 경우 책임의 경계가 흐려질 수 있다. 정부 정책이 성공하면 장관의 성과이고, 정치적 부담이 생기면 야당 의원의 위치로 돌아가는 구조여서는 곤란하다. 공직에서 중요한 것은 선택지가 많은 것이 아니라 책임의 위치가 분명한 것이다. 때문에 이번 문제를 법률상 ‘이해충돌’이라는 단어 하나로 재단할 필요도 없다. 현행법이 허용하는 직책인 만큼 불법적인 이해충돌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지나치다. 더 정확한 문제는 역할의 충돌과 정치적 책임이다. 의원은 정부를 묻는 자리이고 장관은 정부의 답을 내놓는 자리다. 한 사람이 두 역할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도록 법은 허용했지만, 그렇다고 모든 경우에 겸직이 바람직하다는 뜻까지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비례대표 의석은 개인의 정치적 재산으로 보기 어렵다. 유권자는 후보 개인에게 직접 한 표를 준 것이 아니라 정당과 명부에 투표했다. 앞 순번 후보가 다른 길을 선택하면 후순위 후보가 이어받도록 제도를 만든 것도 비례대표 의석의 이런 성격 때문이다. 이번 사안을 용 후보자 개인의 문제로만 끝내지 말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누구에게는 겸직을 허용하고 누구에게는 사퇴를 요구한다면 결국 논란은 반복된다. 비례대표 의원의 국무위원 겸직을 계속 허용할 것인지, 아니면 입각할 경우 의원직을 내려놓도록 할 것인지 국회가 일반적인 원칙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다만 제도를 고치기 전까지는 선택의 책임이 당사자에게 돌아간다. 현행법이 겸직을 허용하기 때문에 대통령도 사퇴를 강제할 수 없고 국회 역시 의원직을 빼앗을 수 없다. 그렇기에 더욱 중요한 것이 정치적 판단이다. ‘예기’ 예운편에는 ‘대도지행야 천하위공(大道之行也 天下爲公)’이라는 말이 나온다. 큰 도가 행해지면 천하는 공공의 것이라는 의미다. 공직도 그렇다. 장관 자리도, 국회의원 자리도 특정 정치인이나 특정 정당의 소유물이 아니다. 모두 국민으로부터 일정 기간 맡겨진 자리다. 용 후보자가 기본소득당의 유일한 의원으로 남는 것이 자신의 정치적 책임이라고 판단한다면 그 선택은 존중받아야 한다. 대신 장관직을 맡지 않으면 된다. 반대로 성평등가족부 장관으로서 국정을 책임지는 길을 택한다면 그 역시 존중해야 한다. 대신 비례대표 의석을 내려놓는 것이 자연스럽다. 두 선택 모두 정치적 비용이 따른다. 공직을 맡는다는 것은 원래 그 비용까지 감수하는 일이다. 법이 두 자리를 허용한다는 사실이 두 자리를 모두 가져야 할 이유는 아니다. 이번 논란에서 국민이 묻는 것도 법률 조문 하나가 아니다. 장관이 되겠다는 사람이 무엇을 내려놓을 준비가 돼 있는가 하는 문제다. 장관도 하고 의원도 하겠다는 선택보다 어느 한쪽을 택하고 그 책임을 온전히 지는 정치가 더 설득력 있다. 책임정치는 자리를 얼마나 많이 갖느냐가 아니라, 어떤 자리를 선택하고 그 선택의 대가를 얼마나 분명하게 감당하느냐에서 시작한다.
2026-09-11 1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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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공원을 아파트로 채울 것인가
[경제일보] 주택 문제만큼 우리 사회의 감정을 쉽게 자극하는 정책도 드물다. 집값이 오르면 공급 확대를 외치고, 공급 대책이 나오면 개발 논란이 뒤따른다. 청년 주거 안정을 위해 공공임대주택을 늘리자는 주장에도 반대가 있고, 도심의 빈 땅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자는 목소리에도 환경과 역사 보존이라는 반론이 제기된다. 그만큼 주택 문제는 단순한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터전과 도시의 미래를 결정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최근 용산공원 부지 내 청년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둘러싼 논란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 정부·여당이 청년층의 주거 안정을 위해 관련 법 개정을 추진하는 가운데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와 규제 완화, 도심 공급 방식 등을 놓고 마찰이 이어지고 있다. 여야의 정치적 공방까지 겹치면서 정작 중요한 질문은 뒤로 밀리는 모양새다. 그 질문은 간단하다. 청년들의 주거 불안을 해소하면서도 용산공원이 가진 역사적·환경적 가치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있다면 그것을 찾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용산공원은 평범한 국유지가 아니다. 오랜 기간 외국군이 주둔했던 공간이 시민의 품으로 돌아오는 상징성이 큰 곳이다. 서울 한복판에 남은 대규모 녹지 공간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도시의 허파이자 근현대사의 흔적을 간직한 공간으로서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가치가 충분하다. 그렇다고 주택이 절실한 청년들의 현실을 외면할 수도 없다. 오늘날 청년들에게 집은 단순한 부동산이 아니다. 결혼과 출산, 취업과 독립, 삶의 계획을 결정하는 출발점이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월급만으로 서울에서 안정적인 주거를 마련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되면 사회 전체의 미래에 대한 신뢰도 흔들린다. 청년 공공임대주택을 확대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는 이유다. 따라서 용산공원을 둘러싼 논쟁을 ‘집이냐 공원이냐’라는 이분법으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 주택을 공급하기 위해 공원을 희생해야 한다는 주장도 단순하고, 공원은 절대로 손대서는 안 된다는 주장 역시 현실과 동떨어질 수 있다. 도시에는 주거와 환경, 역사와 개발, 현재와 미래가 함께 존재한다. 정책은 이 가치들의 충돌을 조정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더욱이 서울의 주택 문제는 특정 부지 하나를 개발한다고 해결될 성격이 아니다. 서울의 집값과 전월세 불안에는 공급 부족뿐 아니라 교통망, 직주근접, 교육, 금융, 세제, 재건축·재개발 규제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정부가 도심의 귀한 땅을 활용한다면 무엇보다 ‘얼마나 많이 지을 것인가’보다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누구를 위해 지을 것인가’를 먼저 따져야 한다. 특히 공공주택 정책에서 숫자 경쟁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 몇 호를 공급하느냐는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정책의 성공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서울 한복판의 비싼 땅에 지은 상징적인 주택 몇 천 호가 아니라 합리적인 비용으로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양질의 주택이다. 공급 지역과 교통, 생활 인프라, 임대료, 관리비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용산공원 주변을 포함한 도심 공급 전략도 보다 넓은 시야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 공공기관 이전 부지, 유휴 국공유지, 철도·차량기지, 저이용 공공시설 부지, 역세권 복합개발 등 도심 곳곳에는 주택 공급과 도시 재생을 함께 추진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기존 주거지의 재건축·재개발을 지나치게 어렵게 만드는 규제를 합리적으로 정비하는 것도 중요하다. 다만 개발 가능한 곳을 찾았다고 무조건 아파트를 올리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도시의 녹지와 역사문화 자산은 한번 훼손하면 다시 되돌리기 어렵다. 특히 용산공원처럼 상징성이 큰 공간이라면 개발 여부뿐 아니라 장기적인 도시계획과 세대 간 형평성까지 따져야 한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정치의 절제다. 주택 공급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반대 의견을 ‘공급을 막는 발목잡기’로 몰아서는 안 된다. 공원 보존을 주장하는 쪽 역시 주거난을 호소하는 청년들을 개발 논리에 희생되는 대상으로만 취급해서는 안 된다. 양쪽 모두 자기 주장만 옳다고 생각하는 순간 합리적인 해법은 사라진다. 특히 국가의 중요한 공간을 놓고 중앙정부와 서울시가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다. 중앙정부는 국가 차원의 주택 공급 필요성을 설명하고, 서울시는 도시계획과 환경에 관한 전문적 판단을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두 기관이 공개적인 검증과 협의를 통해 최선의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독립적인 전문가 검증위원회를 구성해 용산공원의 역사·환경적 가치와 주택 공급의 필요성을 동시에 평가할 수도 있다. 어느 한쪽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아니라 객관적인 자료와 장기적인 도시계획을 토대로 판단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원칙은 한번 결정하면 되돌리기 어려운 것은 신중하게 결정하고, 필요하면 언제든 수정할 수 있는 정책은 과감하게 실행하는 것이다. 공원은 한번 훼손하면 복원에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든다. 반면 청년 주거 문제는 용산공원 하나에 모든 해법을 걸지 않고도 여러 지역과 수단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 그렇다면 더욱 치밀한 비교와 검토가 필요하다. 동시에 정부는 용산공원 논란을 핑계로 청년 주택 공급을 미뤄서도 안 된다. 청년 주거 안정은 시급한 국가적 과제다. 도심 곳곳의 유휴부지를 찾아 공급을 확대하고, 역세권 고밀 개발과 재건축·재개발을 합리적으로 활성화하며, 공공과 민간이 함께 참여하는 공급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정책에는 늘 비용이 따른다. 중요한 것은 그 비용을 누가 부담하고, 그 편익을 누가 누리는지를 투명하게 밝히는 것이다. 용산공원을 지키는 것은 과거를 보존하는 일이면서 동시에 미래를 위한 투자다. 청년에게 안정적인 집을 제공하는 것 역시 미래 세대를 위한 투자다. 따라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는 발상부터 버려야 한다. 정치가 해야 할 일은 갈등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갈등 속에서 공통분모를 찾아내는 것이다. 용산공원이 정쟁의 무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청년 주거 문제가 정치적 구호에 머물러서도 안 된다. 필요한 것은 숫자를 앞세운 밀어붙이기도, 보존이라는 명분 뒤에 숨은 무조건적인 반대도 아니다. 청년에게는 집을, 시민에게는 공원을, 도시에는 미래를 남기는 해법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어렵기 때문에 정치가 필요하다. 서로 다른 가치가 충돌할 때 한쪽을 짓누르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타협점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 민주주의의 본령이고 협치의 출발점이다. 용산공원을 둘러싼 논쟁이 또 하나의 소모적인 정치 싸움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이번 기회에 서울의 주택 공급과 도시계획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다시 설계해야 한다. 집값을 잡겠다는 조급함 때문에 도시의 소중한 자산을 잃어서도 안 되고, 공원을 지킨다는 명분 때문에 청년들의 절박한 현실을 외면해서도 안 된다. 과거를 지키면서 미래를 준비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도시정책이고, 지금 우리 정치가 보여줘야 할 상식이다.
2026-08-23 15: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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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號' 민주당, 민심 일치가 먼저다
[경제일보] 김민석 전 국무총리가 집권여당의 새 대표가 됐다. 지난 17일 김 대표는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최종 54.08%를 얻으며 정청래 후보를 꺾었다. 이재명 정부 초대 총리에서 집권당 대표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정부의 작동 방식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인물이 이제 청와대와 국회 사이에 섰다. 당청 관계의 안정이라는 측면에서는 더없이 익숙한 조합이다. 김 대표가 내놓은 첫 메시지도 통합과 민생이었다. ‘먹고사는 문제(Affordability)’, ‘외연 확장(Broadening)’, ‘유능함(Competence)’을 묶은 이른바 ‘ABC 플랜’을 제시했고, 당청 관계는 ‘전면 협력의 창조적 수평 관계’로 만들겠다고 했다. 또한 민주당의 언어, 정책, 태도와 문화까지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전당대회 과정에서 갈라진 당을 수습하고, 강성 지지층 밖으로 외연을 넓히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집권 2년차 여당에 필요한 문제의식이다. 국정의 성패를 놓고 대통령과 여당이 매일 다른 목소리를 내는 정권이 안정적으로 굴러갈 리 없다. 부동산, 민생, 산업정책, 지역균형발전처럼 정부와 국회의 손발이 맞아야 하는 과제도 산적해 있다. 김 대표가 총리 경험을 살려 정부와 국회 사이의 불필요한 마찰을 줄인다면 그것 자체로 국정에는 분명 도움이 된다. 다만 당청이 ‘안정된다’는 것과 당청이 ‘한 몸이 된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집권당은 대통령의 응원단이 아니다. 정부가 올바른 정책을 추진할 때는 누구보다 강한 지원군이어야 하지만, 민심과 정책 사이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경고음을 울려야 할 조직이기도 하다. 대통령실과 정부 부처에는 대통령의 결정을 설명하고 집행하는 사람이 이미 충분하다. 집권당까지 그 역할만 한다면 국민의 불만과 현장의 경고를 권력의 중심으로 전달할 정치적 통로 하나가 사라진다. 여당에는 정부가 갖지 못한 ‘귀’가 있다. 지역구 의원은 시장에서 상인을 만나고, 아파트 단지에서 주민을 만나며, 기업과 노동자, 자영업자와 매일 부딪친다. 통계가 움직이기 전에 생활물가의 압박을 듣고, 정책 당국이 부작용을 인정하기 전에 현장에서 불만을 접한다. 그 목소리를 걸러내지 않고 대통령에게 전하는 것이 집권당의 중요한 존재 이유다. 김 대표가 말한 ‘창조적 수평 관계’의 진정성은 바로 이 대목에서 시험받을 것이다. 첫 시험대는 부동산이다. 새 지도부 앞에는 정부의 부동산 세제개편안 보완과 주택 공급 문제가 놓여 있다. 장기보유특별공제 등 세제 문제를 놓고 당내에서도 의견이 갈리고 있으며, 국회 심사 과정에서 수정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당내 통합과 야당과의 협치 역시 새 지도부의 당면 과제로 꼽힌다. 부동산은 특히 청와대의 정책을 여당이 그대로 받아 적어서는 곤란한 분야다. 무주택자에게 집값은 절망의 크기이고, 1주택자에게 집은 생애 가장 큰 자산이며, 청년에게는 월세와 대출이 곧 생활비다. 같은 정책도 세대와 계층에 따라 전혀 다른 충격을 준다. 현장에서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이 나타난다면 여당은 정부보다 먼저 이를 발견하고 수정안을 요구해야 한다. 그것을 당청 갈등이라고 부를 이유는 없다. 대통령에게 불편한 말을 하는 것과 대통령의 국정을 흔드는 것은 다르다. 오히려 문제가 커진 뒤 대통령이 직접 수습하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집권당의 직무유기에 가깝다. 작은 균열일 때 발견하고 고치는 것이 대통령을 돕는 길이다. 대통령이 듣고 싶은 말을 전달하는 것은 참모도 할 수 있다. 대통령이 듣고 싶지 않은 민심까지 전달하는 일은 정치적 신뢰를 가진 여당 대표가 해야 한다. 김 대표에게는 그 역할을 할 조건도 있다. 그는 이재명 정부의 초대 총리였고 대통령과 오랫동안 정치적 신뢰를 쌓아왔다. 김 대표 스스로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 ‘토론하고, 직언하고, 방패가 되는’ 정당을 말하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세 단어의 순서다. 방패가 되기에 앞서 토론하고 직언해야 한다. 직언 없는 방패는 대통령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로부터 고립시킬 수 있다. 당 밖으로 시선을 돌리면 과제는 더 선명해진다. 이번 대표 선거에서 김 대표는 54.08%, 정 후보는 45.92%를 얻었다. 최고위원 다섯 자리 가운데 정 후보와 가까운 인사 세 명이 당선돼 지도부 내부의 정치적 색깔도 한쪽으로 정리되지 않았다. 압승한 대표가 모든 것을 밀어붙일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는 뜻이다. 당내에서부터 다른 목소리를 조정하는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김 대표가 내건 외연 확장 역시 말보다 어려운 과제다. 중도층은 ‘중도’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자신의 삶에 실제 도움이 되는 정책을 내고, 자신과 다른 생각까지 들으려는 정치세력에 움직인다. 핵심 지지층이 박수치는 정책이라도 중산층과 자영업자, 청년에게 과도한 부담을 준다면 다시 살펴보는 태도가 필요하다. 야당과의 관계도 같은 기준으로 봐야 한다. 협치는 야당 요구를 절반씩 받아주는 정치가 아니다. 국가적으로 합의할 수 있는 사안은 먼저 합의하고, 끝내 합의하지 못한 문제는 다수결로 결론을 내는 과정이다. 여당이 숫자의 우위만 앞세우기 시작하면 국회는 토론의 공간이 아니라 표결의 공간으로 쪼그라든다. 새 지도부를 두고 경색된 여야 관계를 풀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당 태종 때 위징은 군주가 어떻게 해야 현명해질 수 있느냐는 물음에 ‘겸청즉명 편신즉암(兼聽則明 偏信則暗, 여러 의견을 두루 들으면 밝아지고 한쪽 말만 믿으면 어두워진다)’고 답했다. ‘자치통감’ 당 태종 정관 2년조에 전하는 말이다. 1400년 전 황제에게 필요했던 경계가 민주주의의 대통령에게 필요하지 않을 리 없다. 오히려 권력 주변에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아질수록 다른 목소리의 가치는 커진다. 김 대표가 청와대의 뜻을 국회에 전달하는 데만 능하다면 총리에서 당대표로 자리를 옮긴 의미는 크지 않다. 이제 해야 할 일은 반대 방향이다. 시장과 골목, 지방과 국회에서 올라온 민심을 대통령에게 전달해야 한다. 때로는 정책의 속도를 높이라고 요구하고, 때로는 멈춰 다시 보자고 말해야 한다. ABC 플랜의 성패 역시 거기에서 갈릴 것이다. 먹고사는 문제를 풀려면 보고서보다 생활 현장을 봐야 하고, 외연을 넓히려면 자기편의 환호보다 반대편의 우려를 들어야 한다. 유능함을 증명하려면 정부가 내놓은 정책을 신속하게 통과시키는 능력뿐 아니라 잘못된 정책을 제때 고치는 능력도 보여줘야 한다. 유능한 집권당은 대통령과 가장 가까이 서 있는 정당이 아니다. 민심이 대통령에게서 멀어지기 시작할 때 가장 먼저 알아차리는 정당이다. ‘김민석호(號)’ 민주당이 ‘대통령의 당’을 넘어 국민의 집권당으로 평가받으려면 그 역할부터 증명해야 한다. 대통령의 성공을 바란다면 언제나 같은 말을 할 필요는 없다. 필요할 때 가장 먼저 ‘이건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것. 그것이 ‘당청 일치’보다 어려운 정치이고, 집권당 대표에게 맡겨진 더 무거운 책임이다.
2026-08-18 10: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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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은 국가 대개혁으로 완성된다
[경제일보] 국가의 선진화는 국민소득이나 수출액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경제가 성장하고 인공지능(AI)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법이 공정하게 집행되지 않는다면 선진국이라 부르기 어렵다. 교육이 시대 변화에 뒤처지고 정치와 언론이 신뢰를 잃는다면 그 또한 선진국이 아니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 1년을 맞아 성장과 AI 국가전략을 제시했다면, 이제는 그 성과를 지속 가능하게 만들 국가 시스템의 대개혁에 나서야 한다. 대한민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나라다. 반도체와 자동차, 조선과 배터리, 문화산업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했다. 그러나 사회 내부를 들여다보면 법치에 대한 불신과 교육 격차, 저출산과 지방소멸, 정치적 양극화, 언론 신뢰 하락이 국가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다. 경제 규모는 커졌지만 국가 운영의 기본질서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먼저 바로 세워야 할 것은 법치주의다. 법치는 강한 처벌을 뜻하지 않는다. 권력자와 일반 국민, 대기업과 중소기업, 여당과 야당에 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법치의 본질이다. 수사와 재판이 정치적 이해에 따라 흔들린다는 인식이 퍼지면 어떤 개혁도 국민적 동의를 얻기 어렵다. 수사기관 개편도 기관의 권한을 나누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검찰과 경찰, 중대범죄수사기관과 공소기관 사이의 책임선을 분명히 하고 부실 수사를 바로잡을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권한 남용은 통제하되 범죄 피해자가 기관 간 떠넘기기의 희생자가 돼서는 안 된다. 사법개혁의 성적표는 조직을 몇 개 만들고 없앴는지가 아니라 억울한 사람을 줄이고 범죄에 더 정확하게 대응했는지로 평가해야 한다. 법치는 정부와 공공기관에도 엄격하게 적용돼야 한다. 잘못된 정책과 행정 오류를 감추지 않고 기록과 과정을 공개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독립기관의 독립성도 외부 감시를 피할 권리가 아니다. 정치권의 부당한 압력에서 벗어나 법과 절차를 지킬 책임이다. 기본적인 절차와 상식이 무너지면 국민은 결과가 옳더라도 국가를 신뢰하지 않는다. 교육개혁은 국가 대개혁의 두 번째 축이다. AI 시대에는 지식을 얼마나 많이 외웠는가보다 새로운 문제를 정의하고 기술을 활용해 해결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정부는 AI 보편교육과 지방대학 육성을 2026년 교육정책의 주요 과제로 제시했고, 전문대학과 지역 산업을 연결하는 AI·디지털 전환 교육도 확대하고 있다. 모든 대학생을 위한 AI 기본교육과정과 초·중등 AI 중점학교도 늘리고 있다. 방향은 맞지만 숫자 확대만으로 교육혁신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AI 교육을 몇 시간 이수했는지, 교육과정을 몇 개 만들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학생이 AI를 비판적으로 활용하고 산업현장에서 실질적인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고급 연구자와 현장 엔지니어, 일반 시민의 교육 목표를 구분하고 교사의 역량도 함께 높여야 한다. 교육부가 2029년까지 AI 교육 담당 교원 1만명 연수를 추진하는 것도 이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 교육개혁은 입시제도 몇 가지를 바꾸는 수준을 넘어야 한다. 대학 서열과 수도권 집중, 학령인구 감소, 산업 수요와 교육과정의 불일치를 동시에 풀어야 한다. 지역 대학을 지역 산업·연구기관·기업의 중심으로 키우고 학생이 지역에서 배우고 취업하고 창업하는 경로를 만들어야 한다. 지방대학이 무너지면 지역의 청년과 기업, 의료와 문화도 함께 사라진다. 저출산과 지방소멸 대응도 현금 지원 중심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는 출산지원금이 부족해서만이 아니다. 안정적인 일자리와 주거, 돌봄과 교육, 경력 단절에 대한 두려움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지방을 떠나는 이유도 애향심 부족이 아니라 일자리와 교육·의료·문화 기회의 격차 때문이다. 정부는 인구감소지역에 대한 세제 지원과 지역 성장거점 조성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지방에 건물과 보조금만 내려보내서는 사람이 남지 않는다. 지역별 주력산업과 대학, 금융, 교통, 의료를 묶어 생활과 일자리가 함께 유지되는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저출산 정책 역시 부처별 사업을 나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주거와 고용, 보육과 교육을 하나의 생애주기 정책으로 묶고 정책 효과를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효과가 낮은 사업은 정리하고 일·가정 양립과 주거 안정처럼 실제 출산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분야에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 언론개혁의 핵심은 통제가 아니라 신뢰 회복이다. 허위정보와 조작 콘텐츠, AI 딥페이크가 빠르게 확산하면서 가짜뉴스 대응의 필요성은 커지고 있다. 그러나 정부나 정치권이 진실과 거짓을 직접 판정하는 방식은 표현의 자유를 훼손하고 비판 언론을 위축시킬 수 있다. 가짜뉴스에 대한 가장 강한 대응은 신속한 팩트체크와 투명한 정보 공개, 정정 보도의 실효성 강화다. 플랫폼에는 조작 콘텐츠의 표시와 확산 경로 공개, 광고 수익 제한 등의 책임을 부과할 수 있다. 언론사도 오보를 작게 정정하고 자극적인 제목으로 클릭만 늘리는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 언론의 자유는 오보의 자유가 아니며, 신뢰를 잃은 언론은 권력을 감시할 힘도 잃는다. 정치개혁은 모든 개혁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이다. 여야가 상대를 국정의 경쟁자가 아니라 제거해야 할 적으로 여기는 정치에서는 장기적인 국가전략이 나올 수 없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과 부동산, 에너지와 산업정책이 뒤집히면 기업과 국민은 미래를 계획할 수 없다. 협치는 야당의 요구를 모두 받아들이는 것도, 여당의 국정과제를 무조건 통과시키는 것도 아니다. 국가적 과제에는 최소한의 장기 합의를 만들고 쟁점 법안은 충분한 숙의와 검증을 거치는 것이다. 국회의 속도가 느린 것은 문제지만 다수 의석을 앞세워 토론을 생략하는 것도 민주주의의 효율이라 할 수 없다. 집권당은 야당보다 더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한다. 지지층에게 박수받는 선명한 구호보다 실행 가능한 정책과 결과를 보여줘야 한다. 야당도 반대를 위한 반대에서 벗어나 재원과 실행계획을 갖춘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협치는 양보의 다른 이름이 아니라 국가적 손실을 줄이는 정치 기술이다. 국가 대개혁의 바탕에는 기본원칙과 상식의 회복이 있어야 한다. 잘못했으면 인정하고, 약속했으면 지키며, 공적 권한을 사익에 사용하지 않는 것은 거창한 개혁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기본이 무너졌기 때문에 국민은 정치와 행정, 사법과 언론을 불신한다. <논어>에는 “백성의 신뢰가 없으면 나라가 설 수 없다”는 뜻의 ‘무신불립(無信不立)’이 나온다. 국가 경쟁력의 가장 깊은 뿌리는 기술도 자본도 아닌 신뢰다. 법이 공정하다는 신뢰, 노력하면 기회를 얻는다는 신뢰, 정부와 언론이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는 신뢰, 정치가 최소한의 약속은 지킨다는 신뢰가 있어야 국민이 미래를 위해 투자하고 협력한다. 이재명 정부의 남은 임기가 경제성장률 몇 프로 성장만으로 평가돼선 안된다. 법치와 교육, 인구와 지역, 언론과 정치의 낡은 구조를 얼마나 바꿨는지가 더 오래 남는 성적표가 될 것이다. 개혁은 구호가 아니라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결과에 책임지는 인고의 과정이다. 이재명 정부의 남은 임기는 경제성장률 몇 퍼센트만으로 평가돼서는 안 된다. 법치와 교육, 인구와 지역, 언론과 정치의 낡은 구조를 얼마나 바꿨는지가 더 오래 남는 성적표가 될 것이다. 개혁은 구호를 외치는 일이 아니라 저항을 설득하고 이해관계를 조정하며 결과에 책임지는 일이다. 선진국은 잘사는 나라를 넘어 시스템을 믿을 수 있는 나라다. 교육이 미래의 기회를 만들고 법이 누구에게나 공정하며, 언론이 사실을 지키고 정치가 차이를 조정할 때 대한민국은 비로소 완성된 선진국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재명 정부는 이제 국가 대개혁의 청사진과 우선순위, 실행 일정을 국민 앞에 제시해야 한다. 성장과 AI 전략의 성공도 결국 기본과 원칙, 상식이 살아 있는 국가에서만 가능하다.
2026-08-06 15:5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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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정치, 파탄의 의회주의… '도(道)'를 잃은 국회에 고함
[경제일보] 대한민국 국회가 길을 잃었다. 갈등은 민주주의의 숙명이지만, 지금 국회에서 벌어지는 모습은 건강한 경쟁이 아니라 정치의 자기 파괴에 가깝다. 대화는 실종되고 타협은 조롱받으며, 상대는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 제거해야 할 적으로 규정된다. 의회는 민의를 수렴하는 광장이 아니라 다수의 힘과 소수의 저항이 충돌하는 전쟁터로 변질되고 있다. 이는 특정 정당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의회민주주의 전체가 맞닥뜨린 심각한 위기다. 최근 국회 원 구성 과정에서 나타난 다수당의 일방적 강행 처리와 입법 독주, 이에 맞선 소수당의 무기력한 저항은 우리 정치가 의회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가치인 대화와 절제, 타협을 잃어버렸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다수는 숫자의 우위를 절대 권력으로 착각하고, 소수는 국정 운영의 동반자가 아니라 발언권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로 전락하고 있다. 협치는 사라지고 힘만 남았다. 숫자가 정의를 대신하고, 권력이 상식을 밀어내는 순간 민주주의는 이미 병들기 시작한다. 특히 필리버스터마저 무력화하려는 시도는 깊은 우려를 자아낸다. 필리버스터는 단순한 시간 끌기가 아니다. 다수결이 놓칠 수 있는 소수의 목소리를 국민에게 끝까지 전달하기 위한 민주주의의 마지막 안전장치다. 토론이 귀찮다고 토론을 없애고, 반대 의견이 불편하다고 침묵을 강요하는 국회라면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다수의 지배일 뿐이다. 효율은 행정의 가치일 수 있지만, 민주주의의 가치는 숙의와 합의에 있다. 역사는 오만한 권력이 오래가지 못했음을 반복해서 증명해 왔다. 성경 잠언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라고 경고한다. 권력은 영원하지 않고 민심은 숫자로 계산되지 않는다. 오늘 절대다수의 의석을 가진 정당도 내일은 국민의 심판 앞에 설 수 있다. 민심은 배를 띄우는 물이기도 하지만, 배를 뒤집는 거센 파도가 되기도 한다. 노자는 『도덕경』 제9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가득 채우고 또 채우는 것은 적당한 때에 멈추는 것만 못하며, 지나치게 날카롭게 갈면 오래 보존할 수 없다." 오늘의 국회는 바로 이 경고를 되새겨야 한다. 다수당은 의석을 끝까지 채우려 하고, 야당은 상대를 겨누는 창끝만 더욱 날카롭게 벼른다. 그러나 지나친 것은 반드시 모자람만 못하다. 힘은 절제될 때 권위가 되고, 권력은 양보할 때 존경을 얻는다. 끝없이 채우려는 욕망은 결국 스스로를 무너뜨린다. 민주주의는 100 대 0의 승부가 아니다. 서로 다른 이해와 가치를 조정하여 국민 전체의 이익을 찾는 과정이다. 51 대 49로 결정되더라도 나머지 49를 존중하는 것이 민주주의이며, 다수는 소수를 품을 때 비로소 정당성을 얻는다. 다수결은 민주주의의 원칙이지만, 다수의 횡포는 민주주의의 적이다. 국회의 존재 이유도 법안을 빨리 처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토론하고 설득하며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내는 데 있다. 토론 없는 국회는 거수기에 불과하고, 협치 없는 의회는 민주주의의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 국민은 국회가 싸우라고 권력을 준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라고 권한을 위임했다. 오늘날 정치권이 가장 크게 잃어버린 것은 상대를 인정하는 마음이다. 정당은 경쟁하지만 국가는 공동체다. 여야는 선거에서는 경쟁자일지라도 국정에서는 동반자여야 한다. 상대를 악으로 규정하는 순간 정치의 본질은 사라지고 적대만 남는다. 소수당 역시 국민이 선택한 헌법기관이다. 그들의 권한을 무력화하는 것은 그들을 지지한 국민의 목소리를 지우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제 국회는 정치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첫째, 여야가 참여하는 상설 협치협의체를 제도화해 원 구성과 주요 법안은 충분한 협의를 거친 뒤 처리하는 관행을 정착시켜야 한다. 둘째, 필리버스터와 상임위원회 토론권 등 소수 의견을 보장하는 제도를 정치적 편의에 따라 훼손해서는 안 된다. 셋째, 다수당은 숫자의 힘보다 책임의 무게를 먼저 생각하고, 소수당 역시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 대안을 제시하는 책임 있는 야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넷째, 국회의원 개개인은 당리당략보다 헌법과 국민을 우선하는 의회주의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 그것이 국민이 국회에 부여한 책무다. 맹자는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이 그 다음이며, 군주는 가볍다(民爲貴 社稷次之 君爲輕)"고 했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이 말은 더욱 절실하다. 국민 위에 정당이 있을 수 없고, 국민 위에 국회도 있을 수 없다.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잠시 위임받은 것일 뿐이다. 국회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은 멀리 있지 않다. 대결보다 대화를, 독주보다 협치를, 승리보다 국민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다. 의회주의는 힘이 아니라 절제에서 완성되고, 민주주의는 다수결이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에서 꽃핀다. 지금 국회가 되찾아야 할 것은 더 많은 권력이 아니라 더 깊은 겸손이며, 더 큰 목소리가 아니라 더 넓은 포용이다. 대한민국 정치는 지금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오만과 독선의 길을 계속 걸을 것인가, 아니면 상식과 협치의 길로 돌아갈 것인가. 역사는 언제나 힘보다 품격을 기억했고, 국민은 언제나 권력보다 책임을 선택했다. 국회는 이제라도 '도(道)'를 회복해야 한다. 그것이 무너져가는 의회주의를 살리고,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미래를 지키는 유일한 길이다.
2026-07-03 16:3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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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시대를 여는 두 바퀴, 지방의 자치와 내각의 협치
7월 1일, 대한민국은 또 하나의 정치적 전환점 앞에 섰다. 전국에서는 민선 9기 지방정부가 일제히 출범했고, 중앙에서는 이재명 대통령이 한성숙 신임 국무총리 임명안을 재가하며 역대 두 번째 여성 총리 체제가 문을 열었다. 지방정부의 출범은 권력의 공간적 분산을 뜻하고, 새 총리의 등장은 행정부 운영의 내실을 다지는 출발점이다. 이 두 흐름은 따로 움직이는 수레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두 바퀴다. 새 출발의 순간에 가장 먼저 새겨야 할 가치는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기본과 원칙, 그리고 상식이다. 《도덕경》은 “강과 바다가 모든 골짜기의 왕이 되는 것은 스스로를 낮추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도자의 권위는 높은 자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낮은 곳으로 흐르는 자세에서 비롯된다. 민선 9기 단체장들과 신임 총리가 가장 깊이 새겨야 할 대목이다. 권력은 군림의 도구가 아니라 국민의 삶을 받드는 책임의 자리다. 지방정부의 과제는 분명하다. 보여주기식 개발과 축제성 행정에서 벗어나 지방자치의 내실을 다지는 일이다. 그동안 적지 않은 지자체가 화려한 공약과 대형 사업을 앞세웠지만, 주민에게 돌아온 것은 늘어난 부채와 인구 소멸의 그림자였다. 《대학》은 “근본이 어지러운데 끝이 다스려지는 경우는 없다”고 했다. 지방자치의 근본은 주민의 안전, 일자리, 복지, 교육, 의료 같은 생활 행정에 있다. 도로 하나 더 놓는 것보다 청년이 머물 수 있는 일자리 하나를 만드는 일이 더 절실하다. 지역 경제 역시 중앙정부의 지원만 바라보는 의존형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 각 지역이 가진 문화, 산업, 지리적 특성을 살려 스스로 먹고사는 힘을 길러야 한다. 농어촌은 미래 식품과 관광 산업으로, 산업도시는 첨단 제조와 연구개발 거점으로, 역사와 문화가 있는 도시는 콘텐츠 산업으로 길을 찾아야 한다. 임기 안에 치적을 남기겠다는 조급증은 경계해야 한다. 한성숙 총리 체제에 대한 기대도 작지 않다. 지금 대한민국은 환율 불안, 고물가, 고금리, 가계부채, 산업 경쟁력 약화라는 복합 위기 속에 있다. 이런 난제는 어느 한 정파의 힘만으로 풀 수 없다. 새 내각이 먼저 보여줘야 할 태도는 협치의 상식이다. 야당과 대화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전문가의 경고를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 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는 데 그치지 않고 행정 각부를 조율하며 민심을 가감 없이 전달하는 소통의 창구가 되어야 한다. 특히 한 총리는 여성 총리라는 상징성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자영업자, 청년, 취약계층, 지역 주민의 절박한 목소리를 국정의 중심에 올려놓는 ‘민심의 총리’가 되어야 한다. 강성 지지층이나 정파적 이해에 흔들리지 않고 국민 전체의 상식과 국익을 기준으로 정책을 조율해야 한다. 정치의 본령은 국민을 편안하게 하는 데 있다. 공자는 정치를 두고 “정자정야”, 곧 바르게 하는 일이라고 했다. 바름을 잃은 정치는 권력투쟁으로 전락하고, 상식을 잃은 행정은 국민의 신뢰를 잃는다. 중앙은 지방에 권한을 과감히 이양하되 책임 행정을 요구해야 하고, 지방은 자율성을 남용하지 말고 성과와 투명성으로 답해야 한다. 중앙과 지방은 경쟁자가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를 함께 떠받치는 동반자다. 새로운 시작은 늘 희망과 책임을 동시에 품고 있다. 민선 9기 지방정부와 한성숙 내각이 다투지 않고 오직 민생을 이롭게 하는 정치로 국민 앞에 서기를 바란다. 《도덕경》의 마지막 구절처럼 “하늘의 도는 이롭게만 하고 해치지 않으며, 성인의 도는 행하되 다투지 않는다.” 오늘의 지도자들이 이 말을 가슴에 품고 낮은 곳에서 국민을 섬긴다면, 지방의 자치와 내각의 협치는 대한민국 새 시대를 여는 든든한 두 바퀴가 될 것이다.
2026-07-01 18: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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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은 뒷전, 당권만 좇는 여의도의 씁쓸한 자화상
배가 침몰하고 있는데 선장과 항해사는 서로 조타기를 잘못 잡았다며 멱살잡이만 하고 있다. 갑판 아래에서는 승객들이 물이 차오르는 공포에 떨고 있는데도 말이다. 오늘날 대한민국 정치의 모습이 꼭 그렇다. 6·3 지방선거가 끝난 지 2주가 지났지만 정치권은 여전히 선거의 후유증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선거의 교훈을 되새기기는커녕 선거 결과를 둘러싼 책임 공방과 당권 투쟁에만 몰두하고 있다. 여의도는 민심을 읽는 공간이 아니라 권력을 계산하는 공간으로 변질된 지 오래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예외가 아니다. 선거 결과에 대한 책임론이 제기되자 지도부를 향한 사퇴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그러나 국민이 진정 묻고 있는 것은 누가 대표직을 유지할 것인가가 아니다. 왜 국민이 등을 돌렸는가, 왜 국민의 삶은 나아지지 않는가에 대한 성찰이다. 안타깝게도 정치권은 그 질문을 외면한 채 차기 권력의 향배에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선거 과정에서 드러난 투표용지 부실 관리 사태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심각한 문제였다. 선거 관리 시스템의 허점이 드러났고 국민의 신뢰는 상처를 입었다. 고물가와 경기 침체 속에서 서민들의 삶은 더욱 팍팍해지고 있다. 자영업자들은 폐업을 고민하고 청년들은 취업난에 신음하며 노년층은 생활비 걱정으로 밤잠을 설치고 있다. 그러나 국회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민생 대책이 아니라 계파 갈등과 권력 재편 이야기뿐이다. 정치가 국민을 위한 것인지, 정치인 자신을 위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공자는 논어에서 "정치는 바르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도자가 바르면 백성도 자연히 바르게 따른다는 뜻이다. 그러나 오늘의 정치는 바름보다 유불리를 먼저 따지고 있다. 국민의 고통보다 당내 권력 지형에 더 관심을 보이고, 국가의 미래보다 다음 전당대회와 공천을 더 걱정하는 모습이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성인은 자기 자신을 뒤로하고 백성을 앞세운다"고 했다. 또한 "강한 것은 부러지고 부드러운 것이 살아남는다"고 가르쳤다. 지도자는 권력을 움켜쥐려 할수록 결국 그 권력에 갇히게 되고, 백성의 목소리를 낮은 자세로 듣는 자만이 오래갈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지금의 정치권은 어떠한가. 국민 앞에 고개를 숙이는 대신 상대 진영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데 더 익숙해 보인다. 더 큰 문제는 양당 모두 선거 결과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만 해석한다는 점이다. 국민의 심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기보다 이를 내부 권력투쟁의 무기로 사용하고 있다. 선거 책임론이 본래의 의미를 잃고 정적 제거의 수단으로 변질되는 순간, 정치의 품격은 무너진다. 국민의 채찍질은 쇄신을 위한 것이지 계파 싸움의 명분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대의민주주의의 핵심은 책임 정치다. 권한을 가졌다면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 잘못이 있다면 솔직하게 인정하고 개선책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정치권에서는 책임지는 지도자를 찾기 어렵다. 모두가 남의 탓을 한다. 정부는 야당을 탓하고 야당은 정부를 탓한다. 당 지도부는 전임 지도부를 탓하고 계파는 상대 계파를 탓한다. 국민은 이미 알고 있다. 서로를 향한 비난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성경 잠언에는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라는 구절이 있다. 지도자가 민심을 두려워하지 않고 권력을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는 순간 몰락은 시작된다는 경고다. 역사를 돌아보면 국민의 경고를 무시한 정권과 정당 가운데 오래 살아남은 사례는 없다. 지금 대한민국이 직면한 과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저성장과 고물가, 인구 감소와 청년 실업, 인공지능(AI) 시대의 산업 재편, 국제 질서의 불확실성까지 어느 것 하나 쉬운 문제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이 권력 다툼에만 몰두한다면 국가는 방향을 잃고 국민은 희망을 잃게 된다. 정당은 권력을 얻기 위해 존재하는 조직이 아니다. 국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존재하는 공적 기관이다. 대표직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며, 당권은 국민을 위한 봉사의 도구일 뿐이다. 그런데 수단이 목적이 되고 봉사가 권력욕으로 변질되면 정치는 본래의 존재 이유를 상실하게 된다. 배가 침몰할 때 필요한 것은 서로의 잘못을 따지는 싸움이 아니다. 승객을 구하기 위한 협력이다. 지금 대한민국 정치에도 필요한 것은 상대를 무너뜨리는 기술이 아니라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다. 국민은 더 이상 변명하는 지도자를 원하지 않는다. 국민은 책임지는 지도자, 듣는 지도자, 행동하는 지도자를 원한다. 여야는 이제 당권이라는 독배를 내려놓아야 한다. 선거 결과에 담긴 국민의 경고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민생이라는 본분으로 돌아와야 한다. 쇄신 없는 권력투쟁의 끝은 공멸이다. 반대로 책임 정치와 협치의 정신을 회복한다면 위기는 새로운 도약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정치는 권력을 위한 게임이 아니라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일이다. 그 가장 단순한 진실을 잊지 않는 것, 그것이 오늘 대한민국 정치가 가장 먼저 되찾아야 할 상식이다.
2026-06-18 17:4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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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은 멈춰 있는데 정치는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경제일보] 정치의 존재 이유는 권력이 아니라 국민이다. 선거는 국민의 뜻을 확인하는 과정일 뿐 목적이 아니며, 정당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정치 현실은 이런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잊고 있는 듯하다. 각종 정치 일정과 세미나, 당권 경쟁과 계파 갈등은 연일 뉴스의 중심을 차지하지만 정작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민생 대책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경제는 녹록지 않다. 고물가와 고금리의 후유증은 여전히 서민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고, 자영업자들은 소비 침체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청년들은 취업난과 주거난 속에서 미래를 설계하지 못하고, 중소기업은 인력난과 경기 둔화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기업들은 세계적인 공급망 변화와 인공지능(AI) 시대의 급격한 산업 재편 속에서 생존 전략을 고민하고 있다. 국민의 삶은 하루하루가 절박한데 정치권은 정쟁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정치적 소모전이 경제 활성화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점이다. 투자와 소비는 불확실성을 가장 싫어한다. 정치가 안정되어야 기업도 과감하게 투자하고, 국민도 미래를 믿고 소비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여야가 사사건건 대립하고 상대를 협상의 대상이 아닌 적으로 규정한다면 시장은 불안해지고 경제는 활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정치적 갈등의 비용은 결국 국민이 부담하게 된다. 경제를 살리는 길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실질적인 정책에서 시작된다. 첨단산업 육성과 함께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고,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경쟁력을 높이며, 청년들에게 미래를 준비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우선이다. 지역경제를 살리고 규제를 합리적으로 개선하며, 기업이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도 중요하다. 이러한 과제는 어느 한 정당의 전유물이 아니라 국가 전체가 함께 해결해야 할 공동의 숙제다. 정치권은 이제 승패의 정치에서 성과의 정치로 전환해야 한다. 상대를 무너뜨리는 데 힘을 쏟기보다 국민을 위한 정책 경쟁에 나서야 한다. 국회는 갈등을 증폭시키는 공간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내는 곳이어야 한다. 국민은 서로를 향한 비난과 책임 공방이 아니라 민생을 살리는 입법과 예산, 그리고 미래를 준비하는 비전을 기대하고 있다. 협치는 선택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필수 조건이다.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이거나 소수의 반대를 위한 반대로 국정을 마비시키는 것은 어느 쪽도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서로 다른 생각을 인정하고 공통분모를 찾아가는 과정이야말로 성숙한 정치의 모습이다. 국민은 정당 간의 적대가 아니라 문제 해결 능력을 보고 평가한다. 책임정치 또한 반드시 복원되어야 한다. 잘한 정책에는 책임 있게 성과를 설명하고, 실패한 정책에는 솔직하게 인정하며 개선책을 제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책임 없는 비판과 근거 없는 공세는 정치 불신만 키울 뿐이다. 권한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르며,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은 국민을 위해 사용될 때만 정당성을 얻는다. 공자는 “정치는 바르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정치가 바르면 백성은 자연스럽게 그 길을 따른다는 뜻이다. 오늘날 우리 정치가 되새겨야 할 말도 다르지 않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화려한 수사나 보여주기식 행사가 아니다. 안정된 일자리, 예측 가능한 경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 노후를 걱정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실질적인 정책이다. 선거는 끝나면 과거가 되지만 민생은 하루도 멈추지 않는다. 정당은 선거의 승패를 넘어 국민의 삶을 먼저 고민해야 하며, 정부와 국회는 협치를 통해 경제 활성화와 민생 회복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더 큰 목소리가 아니라 더 큰 책임이며, 더 치열한 대립이 아니라 더 성숙한 협력이다. 정치가 본연의 자리로 돌아갈 때 비로소 국민의 삶도 희망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2026-06-16 08:5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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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부동산 시계, 속도보다 설득의 시간이 왔다
[경제일보] 서울 유권자는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5선을 허락했지만 서울시의회 권력은 더불어민주당에 넘겼다. 시장은 국민의힘이 지켰고 예산과 조례의 문은 민주당이 쥐게 됐다. 이번 선거 결과는 서울시정 전반의 변화이기도 하지만 건설부동산 시장에는 더 직접적인 신호로 읽힌다. 앞으로 4년 서울의 재개발·재건축과 도심 개발, 청년 주거정책은 속도보다 설득을 먼저 요구받게 됐다. 5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집계에 따르면 민주당은 6·3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서울시의회 118석 가운데 80석을 확보했다. 지역구 73석과 비례대표 7석이다. 전체 의석의 67.8%에 이른다. 국민의힘은 지역구 30석과 비례대표 8석을 합쳐 38석을 얻었다. 2022년 지방선거 이후 국민의힘이 주도했던 서울시의회 권력 지형이 4년 만에 뒤집혔다. 오 시장 입장에서는 복잡한 결과다. 개인적으로는 5선에 성공했다. 서울시장 선거만 놓고 보면 정치적 생명력을 다시 입증했다. 그러나 시정을 실제로 움직이게 하는 예산과 조례의 관문은 야당 다수 의회가 쥐게 됐다. 시장 선거의 승리와 시정 운영의 안정성이 반드시 같은 말은 아니라는 점을 이번 선거가 보여줬다. 서울 부동산 정책은 시장의 의지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서울시장은 도시계획과 인허가의 큰 방향을 쥐고 있다. 그러나 실제 사업은 예산과 조례, 도시계획 관련 의회 논의와 맞물려 간다. 정비사업 규제 완화, 역세권 개발, 공공기여, 임대주택 비율, 청년 주거 지원, 기반시설 부담 같은 사안은 어느 하나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기 어렵다. 시장의 추진력과 의회의 동의가 맞물려야 정책은 현장에서 작동한다. 오 시장은 그동안 서울의 개발 시계를 다시 빠르게 돌리겠다는 메시지를 내왔다. 재개발·재건축 정상화, 한강변 도시경쟁력 강화,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세운지구 정비, 청년안심주택 확대 등이 그 흐름 안에 있다. 국민의힘이 다수를 차지했던 제11대 서울시의회는 오 시장의 역점 사업 추진에 비교적 우호적인 의회 환경이었다. 그러나 새 시의회에서는 상황이 달라진다. 사업의 필요성과 속도만으로는 부족하다. 재정 부담, 공공성, 주민 수용성, 도시 경관, 공급 효과를 함께 설명해야 한다. 이미 비슷한 장면은 있었다. 오 시장은 2021년 보궐선거로 서울시에 복귀한 뒤 민주당이 우위였던 시의회와 여러 차례 충돌했다. 지천르네상스 사업 예산은 대폭 삭감됐다. 서울의 지천을 생활권 수변공간으로 조성하겠다는 구상이었지만 당시 시의회는 기본 구상과 시급성을 문제 삼았다. 상생주택 사업도 예산 삭감 논란을 겪었다. 민간 토지를 활용해 장기전세주택을 공급하겠다는 취지였지만 당시 시의회는 사업 절차와 재정 투입의 적정성을 문제 삼았다. 의회 문턱을 넘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당시 갈등은 앞으로의 예고편에 가깝다. 서울 부동산 정책은 언제나 개발과 보존, 공급과 공공성, 속도와 절차 사이에서 움직인다. 시장은 공급 확대와 도시 경쟁력을 앞세우고 의회는 예산과 절차, 공공성을 따진다. 어느 한쪽만 옳다고 보기 어렵다. 다만 대형 개발사업일수록 정치적 동의 없이 오래 가기 어렵다는 점은 분명하다. 사업성이 높아도 설명이 부족하면 논란이 커지고 공공성이 강조돼도 현실성이 떨어지면 현장은 움직이지 않는다. 새 시의회 출범 이후 가장 먼저 주목할 곳은 세운4구역이다. 종묘 인근 세운4구역 개발은 서울 도심 재편의 상징적 사업이다. 낡은 도심을 정비하고 업무·상업 기능을 회복시켜야 한다는 요구가 크다. 반면 종묘 경관과 역사문화 보전 문제도 가볍게 다룰 수 없다. 이 사안은 개발을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서울 도심의 노후 공간을 어떻게 바꾸되 역사적 경관을 어디까지 지킬 것인가의 문제다. 새 시의회가 이 문제를 정쟁으로 끌고 가면 해법은 멀어진다. 서울시도 사업성만 앞세우는 방식으로는 동의를 얻기 어렵다. 용산국제업무지구 역시 서울 부동산 시장의 핵심 변수다. 용산은 서울의 마지막 대규모 개발지로 불린다. 국제업무 기능과 주택 공급, 교통 인프라, 공공기여가 한꺼번에 얽혀 있다. 공급 물량을 얼마나 늘릴 것인지, 학교와 도로 등 기반시설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개발 이익을 어디까지 공공에 환원할 것인지가 쟁점이다. 숫자 경쟁으로 풀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서울시가 도시 경쟁력을 말한다면 시의회는 생활 기반과 공공성을 따질 것이다. 이 둘을 조정하지 못하면 용산 개발은 다시 정치적 논란의 장으로 들어갈 수 있다. 재개발·재건축도 예외가 아니다. 서울 주택 공급의 핵심은 결국 정비사업이다. 노후 주거지를 정비하지 않고 서울의 주택난을 풀기는 어렵다. 그러나 정비사업에는 집값 상승 기대와 세입자 보호, 임대주택 확보, 공사비 부담, 조합 갈등이 동시에 따라붙는다. 오 시장이 정비사업 활성화를 강조할수록 민주당 시의회는 공공성과 주거 안정 장치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이 과정이 생산적인 견제가 되면 정책은 정교해진다. 반대로 정치적 충돌로 흐르면 공급 일정만 늦어진다. 청년안심주택도 새 시의회의 검증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청년과 신혼부부에게 시세보다 낮은 임대료의 주택을 공급한다는 취지는 부정하기 어렵다. 문제는 재원과 공급 방식, 보증금 지원의 안전성이다. 주거 취약층을 위한 정책일수록 더 정밀해야 한다. 실제 수혜자가 누구인지, 임대료 부담은 얼마나 낮아지는지, 민간사업자와 공공의 부담은 어떻게 나뉘는지 따져야 한다. 청년 주거정책은 선의만으로 평가받기 어렵다. 지속 가능한 재원과 집행의 투명성이 따라야 한다. 민주당 시의회의 책임도 작지 않다. 의석이 많다는 것은 제동을 걸 권한이 커졌다는 뜻만은 아니다. 대안을 제시해야 할 책임도 함께 커졌다는 의미다. 서울의 주택 공급 부족은 이미 시민 생활의 압박으로 돌아오고 있다. 전세와 월세 부담, 청년 주거 불안, 노후 주거지의 안전 문제는 정당의 유불리보다 앞선다. 다수 의회가 견제라는 이름으로 모든 개발사업을 막아선다면 시민은 이를 균형으로 보지 않을 것이다. 삭감과 반대만으로는 다수당의 존재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오 시장도 달라져야 한다. 5선 시장의 경험은 강점이지만 동시에 부담이다. 오래 시정을 이끌었다는 것은 더 많은 성과를 요구받는다는 뜻이다. 서울 부동산 정책은 구호가 아니라 일정과 숫자, 재원과 인허가로 평가된다. 재건축 규제 완화와 도심 개발은 필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공공성의 언어가 빠지면 의회의 벽을 넘기 어렵다. 이제 필요한 것은 발표가 아니라 설득이고 속도전이 아니라 조율이다. 서울 부동산 시장은 정치적 신호에 민감하다. 시의회 구도가 바뀌었다고 당장 사업이 멈추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업 인허가와 예산, 조례 논의가 길어질 수 있다는 전망만으로도 시장은 반응한다. 개발 기대가 큰 지역은 속도 조절 가능성을 따질 것이고 정비사업장은 공공기여와 임대주택 비율, 기반시설 부담 논의를 더 예민하게 볼 것이다. 정치의 변화는 결국 현장의 비용과 시간으로 이어진다. 이번 선거의 서울 민심은 한쪽에 백지위임을 한 것이 아니다. 오 시장에게는 계속 일할 기회를 줬고 민주당 시의회에는 견제의 힘을 실었다. 이 선택은 불편한 동거를 뜻한다. 그러나 지방자치에서 불편한 동거가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제대로 작동하면 정책은 더 정교해지고 잘못 작동하면 사업은 늦어지며 시민 부담은 커진다. 서울시정의 첫 시험대는 부동산이다. 세운4구역과 용산국제업무지구, 재개발·재건축, 청년안심주택은 모두 서울의 미래와 시민의 주거비를 동시에 건드리는 사안이다. 시민이 보고 싶은 것은 승자의 목소리나 다수당의 힘자랑이 아니다. 서울의 집값과 주거 안정, 도시 경쟁력을 어떻게 함께 관리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답이다. 오 시장은 이겼지만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됐다. 민주당은 이겼지만 반대만으로는 평가받을 수 없게 됐다. 이번 선거가 남긴 메시지는 여기에 있다. 서울 부동산 시계는 이제 속도보다 설득의 시간이 왔다. 협치는 구호로 증명되지 않는다. 예산과 조례, 정비사업의 우선순위에서 증명된다. 서울의 다음 4년은 그 증명의 시간이다.
2026-06-06 13: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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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선택의 날…6·3 지방선거가 바꾼 정치지형
[경제일보] 6·3 지방선거는 이재명 정부 출범 1년 민심을 확인한 첫 전국 단위 선거였다. 결과는 더불어민주당의 지방권력 탈환이었다. 다만 최대 승부처였던 서울을 국민의힘이 지켜내면서 여당의 압승이라기보다는 ‘미완의 승리’에 가까운 성적표가 나왔다. 최종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민주당은 16곳 중 12곳을 차지했다. 국민의힘은 서울과 대구, 경북, 경남 등 4곳을 지켰다. 민주당은 경기·인천을 포함한 수도권 2곳과 부산·울산, 충청권, 강원, 제주, 전북, 전남·광주를 가져가며 전국적 확장성을 확인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서울을 수성하고 TK와 경남을 방어하면서 전면 붕괴는 피했다. 수도권 결과는 이번 선거의 정치적 성격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서울에서는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가 정원오 민주당 후보와 박빙 승부 끝에 5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경기에서는 추미애 민주당 후보가, 인천에서는 박찬대 민주당 후보가 각각 승리했다. 서울은 부동산과 자산, 도시개발 이슈가 강하게 작동했고 경기·인천은 정권 안정론과 생활 행정 교체 요구가 더 크게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PK 지형 변화도 이번 선거의 핵심이다. 부산에서는 전재수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며 8년 만에 민주당이 부산시정을 되찾았다. 울산에서도 김상욱 민주당 후보가 승리했다. 다만 경남은 박완수 국민의힘 후보가 김경수 민주당 후보를 꺾고 재선에 성공했다. 따라서 PK 전체가 민주당으로 넘어간 것이 아니라 부산·울산은 변화, 경남은 보수 방어로 정교하게 봐야 한다. 충청권과 강원은 민주당이 국정 동력 확보의 기반을 넓힌 지역이다. 대전 허태정, 세종 조상호, 충남 박수현, 충북 신용한, 강원 우상호 후보가 승리하면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정책 연계가 한층 쉬워졌다. 지역 산업 재편, 교통망, 균형발전 사업에서도 여당 주도력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 이번 결과로 이재명 정부는 부동산, 복지, 지역산업, 균형발전 정책을 지방정부와 함께 추진할 여지를 확보했다. 광역단체장이 같은 정치적 방향을 공유할 경우 국비 사업 유치, 지역 산업단지 조성, 공공주택 공급, 돌봄·복지 정책 집행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 반대로 서울처럼 시장과 시의회 다수당이 다른 지역에서는 협치가 핵심 변수가 된다. 지방의회 권력 구도도 주목된다. 특히 서울에서는 오세훈 시장이 당선됐지만 서울시의회 다수당은 민주당으로 바뀌었다. 앞으로 주택 공급, 도시개발, 교통, 복지 예산을 둘러싼 시와 의회의 힘겨루기가 불가피하다. 이는 지방권력이 단순히 단체장 승패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교육감 선거에서는 진보 성향 후보가 10곳, 보수 성향 후보가 6곳에서 승리했다. 교육정책의 무게추는 다시 진보 쪽으로 기울었다. 인공지능 시대 교육과정, 대입 평가, 기초학력, 교권 회복, 교육격차 해소를 둘러싼 논쟁이 각 시·도 교육청에서 본격화할 전망이다. 국민의힘에는 책임론이 불가피하다. 서울과 TK·경남을 지켰지만 지방권력 전체 구도에서는 밀렸다. 민주당 역시 서울 탈환 실패라는 숙제를 안게 됐다. 이번 선거는 어느 한쪽의 일방적 승리라기보다 지역별 민심이 세밀하게 갈라진 선거였다. 지방권력은 재편됐고 여야 모두 다음 총선과 대선을 향한 정치 지형 재설계에 들어가게 됐다.
2026-06-06 13: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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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 심판한 민심의 엄중한 명령, 여당은 자만 버리고 민생·통합에 올인하라
[경제일보] 6·3 지방선거의 결과는 준엄했고 거침이 없었다. 민심은 불법 비상계엄의 상흔과 퇴행적 정쟁에 매몰되어 있던 제1야당 국민의 힘을 향해 매서운 회초리를 들었고, 출범 1년을 맞은 이재명 정부에는 국정 동력을 전폭적으로 밀어주는 선택을 했다. 개표 결과 더불어민주당은 인천, 대전, 충청, 강원 등 지난 선거에서 잃었던 격전지를 대거 탈환했을 뿐 아니라, ‘보수의 심장’이라 불리는 대구와 부·울·경 등 영남권에서도 경이로운 선전을 펼치며 사실상 전국을 아우르는 압승을 거두었다. 이로써 집권여당은 입법과 행정에 이어 지방 권력까지 거머쥐며 명실상부한 무한 책임의 정치 무대에 서게 되었다. 이번 선거는 본질적으로 제1야당의 무능과 무책임에 대한 유권자들의 철저한 심판이었다. 국민의힘은 비상계엄 내란 사태라는 헌정사적 비극을 겪고도 성찰하기는커녕, ‘윤 어게인’의 늪에서 허우적대며 다수 국민의 상식과 동떨어진 정권 심판론만을 무한 반복했다. 심지어 당의 변화를 요구하는 합리적 목소리를 내치고 극우 성향의 강성 세력에 휘둘리는 자멸적 분열을 자초했다. 유권자들이 이번 투표를 통해 보수 진영의 파괴적 혁신과 인적 쇄신을 명령한 이유다. 반면 이재명 정부는 최근 코스피 최고치 경신과 수출 호조 등 경제 회복의 청신호와 실용주의 노선을 바탕으로 60%대의 견조한 국정 지지율을 증명해 내며 안정적인 국정 운영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러나 여당의 압승이 곧 현재 삶에 대한 국민의 완전한 만족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민주당과 이재명 정부는 승리의 기쁨에 도취하기보다 그 결과가 지닌 무게감을 무섭게 인식해야 한다. 우리 정치사에서 지방선거와 총선의 압승 뒤 오만에 빠져 독주하다가 순식간에 정권을 내주거나 참패했던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정부의 전례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권력이 한곳으로 과도하게 집중될 때 견제 장치가 사라진 집권 세력이 스스로 제어력을 잃고 독선에 빠지는 순간, 민심의 역풍은 언제든 다시 불어닥칠 수 있다. 내란 청산이나 과거 지우기 같은 이념적 과제에만 과도하게 매몰된다면 피로감을 느낀 중도층과 지지층마저 제일 먼저 등을 돌릴 것이다. 이제 이재명 정부와 여당 앞에 놓인 최우선 과제는 선거 과정에서 갈라진 민심을 하나로 묶어내는 ‘국민 통합’과 고달픈 삶을 현장에서 보듬는 ‘경제 살리기’다. 지표상으로 경제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고는 하지만, 서민들이 체감하는 경기 냉골은 여전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자산가와 저소득층 간의 격차가 벌어지는 이른바 ‘K자형 양극화’는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키는 시한폭탄과 같다. 고물가와 고금리, 고환율이라는 삼중고 속에 하루하루를 버티는 자영업자와 취약 계층의 고통을 덜어주지 못한다면 어떤 화려한 거시경제 지표도 허명에 불과하다. 다행히 2028년 총선까지 앞으로 2년간은 전국 단위의 선거가 없다. 나라 전체를 소모적인 정치적 블랙홀로 밀어 넣을 표 계산과 정쟁의 유인이 사라진, 그야말로 국정에만 전념할 수 있는 금쪽같은 기회다. 이재명 정부의 첫해 가 비전과 방향성을 제시하는 준비 기간이었다면, 집권 2년 차부터는 손에 잡히는 정책적 성과로 실력을 입증해야 하는 본격적인 실행의 시간이다. 거대 여당인 민주당은 일방적인 법안 처리라는 독선적 행태를 지양하고, 법치와 협치의 정신을 바탕으로 야당을 국정 파트너로 포용하는 성숙함을 보여야 한다. 국민이 실어준 압도적인 힘을 오직 민생을 따뜻하게 보듬고 국가의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데만 쏟아붓기를 기대한다. 성과 없는 독주는 준엄한 심판을 부른다는 것이 이번 선거가 남긴 가장 엄중한 교훈이다.
2026-06-04 07:4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