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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기다리는 시간도 규제다
[경제일보] 정부가 규제와 인허가에 발이 묶인 7조9000억원 규모의 기업 투자를 앞당기기로 했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의 전기차 생산라인 전환을 비롯해 청정수소, 이차전지, 첨단센서 등 현장에서 대기 중인 투자 프로젝트의 행정절차를 줄이는 것이 골자다. 반도체 공장을 지을 때 따로 발주하던 전기·통신공사의 통합발주도 허용하기로 했다. 방향은 옳다. 정부가 기업에 보조금을 주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산업정책은 이미 투자할 의사가 있는 기업의 발목을 잡는 장애물을 걷어내는 일이다. 이번 대책에서 눈여겨볼 대목이 현대차 울산공장이다. 현대차는 약 4조원을 들여 기존 내연기관차 생산라인을 자율주행 전기차 중심 공장으로 재건축할 계획이다. 문제는 시간이다. 사업계획 심의와 환경·교통·재해 영향평가, 건축·안전 관련 인허가 등을 거치면 행정절차에 3년 이상 걸릴 우려가 있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정부와 울산시는 전담 프로젝트매니저(PM)를 두고 각종 영향평가와 인허가를 동시에 진행해 이를 1년 이내로 줄이겠다고 했다. 여기서 생각해볼 대목이 있다. 필요한 심사를 생략하지 않고도 1년 안에 처리할 수 있다면 지금까지 3년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됐던 이유는 무엇인가. 환경과 안전을 무시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공장을 빨리 짓겠다고 환경영향평가를 없애거나 산업안전 기준을 낮춰서는 안 된다. 주민의 재산권과 생활환경도 보호해야 한다. 이번 대책 역시 관련 심사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여러 절차를 동시에 진행하고 사전 컨설팅을 통해 시간을 줄이는 방식이다. 없애야 할 것은 안전장치가 아니라 행정의 군더더기다. 부처와 기관마다 비슷한 자료를 요구하고 앞 단계의 절차가 끝나야 다음 심사를 시작하는 관행이 있다면 이를 그대로 둘 이유가 없다. 행정기관끼리 협의할 일을 기업이 서류를 들고 돌아다니며 해결하도록 하는 것도 정상적인 행정이라고 보기 어렵다. 규제의 비용은 행정수수료만으로 계산되지 않는다. 기업에는 시간이 곧 비용이다. 특히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배터리, 바이오처럼 기술 변화가 빠른 산업에서는 그렇다. 경쟁국 기업이 공장을 짓고 제품을 시장에 내놓는 동안 국내 기업이 인허가를 기다리고 있다면 1~2년의 차이가 시장점유율을 바꿀 수 있다. 한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산업경쟁력의 문제가 된다. 세계 각국이 기업 유치에 사활을 거는 이유다. 미국과 중국, 일본, 유럽은 반도체와 AI, 배터리 등 전략산업을 자국에 끌어들이기 위해 보조금과 세제지원, 산업 인프라를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 한국은 애국심 때문에 반드시 투자해야 하는 시장이 아니다. 인건비와 세금, 인재, 시장 접근성, 규제 그리고 정책의 예측 가능성을 따져 투자처를 정한다. 한국이 경쟁해야 할 것도 결국 이런 조건이다. 그런 점에서 규제개혁의 성적표부터 바꿀 필요가 있다. 역대 정부는 출범할 때마다 규제혁신을 내걸었다. 폐지하거나 개선한 규제의 숫자를 성과로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기업에는 규제 몇 건을 없앴느냐보다 투자 결정에서 공장 가동까지 몇 달이 걸리는지가 훨씬 중요하다. 규제개혁의 성적표를 ‘폐지 건수’보다 ‘줄어든 투자 대기시간’으로 매겨보자는 것이다. 오래된 규제를 정기적으로 다시 살펴보는 장치도 필요하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 환경, 공정한 시장질서를 지키는 규제는 엄격하게 유지해야 한다. 반면 기술과 산업구조가 바뀌었는데 과거의 이해관계나 행정편의 때문에 남아 있는 규제라면 존치 이유부터 다시 따져야 한다. 기업에 규제 철폐의 필요성을 입증하라고 요구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정부도 그 규제를 계속 유지해야 할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첨단산업의 기반시설은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책임져야 한다. 반도체 공장은 기업이 지을 수 있지만 송전망과 용수망까지 기업 혼자 해결하기는 어렵다. AI 데이터센터 역시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없다면 들어설 수 없다. 산업용지와 전력·용수·통신망, 연구개발 기반과 인재 공급은 개별 기업의 능력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정부의 역할은 이런 곳에서 더 커져야 한다. 노동시장도 달라진 산업환경을 따라갈 필요가 있다. 제조업과 연구개발, 정보기술 기업의 일하는 방식이 모두 다른 만큼 노사 합의를 전제로 업종과 업무 특성에 맞는 근로시간 선택권을 넓히는 방안을 논의할 수 있다. 생산성과 직무의 가치를 보다 잘 반영하는 임금체계에 대한 사회적 논의도 필요하다. 다만 노동 유연화가 노동자의 권리를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흘러서는 오래가기 어렵다. 기업의 인력 운용에 선택지를 넓혀준다면 실직과 전직 과정에서 노동자를 보호할 고용안전망과 재교육 체계도 함께 강화해야 한다. 유연성과 보호를 서로 반대편에 세워놓고 어느 하나만 선택해서는 개혁의 지속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세제에서는 무엇보다 예측 가능성이 중요하다. 반도체를 비롯한 국가전략기술과 연구개발에 대한 세액공제는 기업의 장기 투자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 지원 규모 못지않게 제도가 얼마나 안정적으로 유지되는지도 중요하다. 수조원에서 수십조원이 들어가는 생산시설을 짓는 기업이라면 몇 년 뒤 투자환경이 어떻게 달라질지 가늠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가 어떤 기업과 기술이 성공할지를 대신 결정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시장과 기업가의 몫이다. 정부는 기업이 공정하게 경쟁할 운동장을 만들고 민간이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기반시설과 기초 연구개발을 책임하는 데 집중하면 된다. ‘기업을 지원하는 정부’보다 ‘기업이 뛰기 좋은 정부’가 필요한 이유다. 규제완화의 목적도 기업의 비용을 줄이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된다. 기업 투자가 늘고 생산성이 높아져 좋은 일자리가 만들어져야 한다. 기업이 거둔 성과가 임금과 가계소득, 소비로 이어질 때 규제개혁은 국민의 지지를 얻는다. 기업 활력과 민생은 따로 떨어진 문제가 아니다. <한비자>에는 “법불아귀(法不阿貴)”, 법은 귀한 사람에게 아첨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규제개혁에도 적용할 만한 원칙이다. 힘 있는 대기업이 민원을 제기할 때마다 예외를 만들어주는 것이 규제개혁이어서는 안 된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같은 기준 아래 필요한 행정서비스를 예측 가능한 시간 안에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번 7조9000억원 투자지원 대책은 그런 의미에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정부가 기업 현장의 애로를 찾아 규제와 행정절차를 손보기 시작했다는 점은 평가할 만하다. 문제는 다음이다.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여러 행정절차를 동시에 진행할 수 있다면 다른 공장에서는 왜 안 되는가. 반도체 팹에서 불필요한 공정 지연을 줄일 수 있다면 다른 첨단산업에도 비슷한 규제가 남아 있지는 않은가. 기업이 정부에 어려움을 호소할 때마다 하나씩 해결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행정 시스템 자체를 들여다봐야 한다. 규제는 필요한 곳에서는 단단해야 하고 필요 없는 곳에서는 과감히 걷어내야 한다. 안전과 환경, 시장의 공정성을 지키는 기준은 낮춰서는 안 된다. 대신 투자와 혁신을 가로막으면서도 정책 목적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절차는 오래됐다는 이유만으로 남겨둘 필요가 없다. 기업에 투자하라고 주문하기 전에 기업이 투자하기 어렵게 만든 정부 자신의 절차부터 살펴야 한다. 한국 경제에 지금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거창한 성장 구호가 아니다. 투자할 기업이 제때 공장을 짓고 기술을 개발하며 사람을 고용할 수 있게 만드는 일이다. 규제개혁의 성패는 없앤 규제의 숫자가 아니라 앞당겨진 투자와 높아진 생산성, 새로 생긴 일자리로 평가받아야 한다. 7조9000억원의 현장대기 투자를 움직이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기업이 기다리는 시간을 줄이는 행정으로 바꿔야 한다. 경제의 속도를 정부의 절차가 늦추는 일부터 없애야 한다.
2026-10-02 11: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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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격전'도 좋다, 대통령이 모든 길을 뚫을 순 없다
[경제일보] 대통령이 다시 기업들의 투자 일정표를 펼쳐 들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10일 청와대에서 ‘메가프로젝트’ 제2차 민관합동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반도체 클러스터를 비롯한 대형 투자사업의 진행 상황을 직접 챙겼다. 지난달 첫 회의를 연 지 한 달여 만이다. 광주 군공항 이전에서 반도체 산업단지 조성, 전력과 용수 공급, 각종 인허가와 규제 개선까지 대통령 앞에 올라왔다. 이 대통령은 “속도전을 넘어서 전격전을 치러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세계 산업전쟁의 시계에 한국 행정의 느린 걸음을 맞출 수 없다는 주문일 것이다. 맞는 진단이다. 반도체와 인공지능, 피지컬AI에서 1~2년은 단순히 달력 몇 장이 넘어가는 시간이 아니다. 기술 세대가 바뀌고 고객사가 공급망을 다시 짜고, 경쟁국이 새로운 공장을 먼저 돌릴 수 있는 시간이다. 기업이 수십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나섰는데 부지와 전력, 용수, 환경영향평가를 놓고 정부 부처를 몇 년씩 오가게 한다면 국가가 기업의 발목을 잡는 꼴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메가특구특별법’도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나왔다. 각종 인허가 기간을 줄이고 전력·용수·교통 등 기반시설을 함께 구축하며, 여러 부처에 흩어진 사안을 범정부 차원에서 신속하게 조정하겠다는 것이다. 광주 군공항의 기능을 조기에 분산 배치해 반도체 산업단지 조성을 앞당기고, 필요한 전력도 사업 일정에 맞춰 공급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충청권과 영남권에서도 수백조원 규모의 민간 투자가 예정돼 있다. 대통령이 나서자 오래 얽혀 있던 실타래가 풀리기 시작했다. 기업으로서는 반가운 일이다. 이런 일이라면 대통령이 몇 번이고 회의를 열어도 좋다는 목소리가 나올 만하다. 하지만 박수를 치고 끝내기에는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왜 대통령이 직접 챙겨야 일이 움직이는가.’ 군공항 이전 시점부터 산업단지 착공, 송전망과 용수 공급까지 대통령이 일일이 일정표를 확인해야 비로소 부처가 움직인다면 그것은 대통령의 추진력을 보여주는 장면인 동시에 우리 행정의 허약함을 드러내는 장면이기도 하다. 대통령이 처음 길을 뚫는 것은 필요하다. 군과 지방자치단체, 여러 정부 부처와 기업의 이해관계가 수십 년간 뒤엉킨 사업이라면 최고 책임자의 결단 없이는 첫 삽을 뜨기조차 어려울 수 있다. 누구도 책임지고 먼저 움직이지 못하는 사안에서 대통령이 “이 방향으로 가라”고 정리하는 것은 지도자의 역할이다. 대통령이 첫 문을 열었다면 두 번째 문부터는 장관들이 열어야 한다. 산업부 장관은 투자 일정을 책임지고, 국토·환경 행정은 부지와 교통망, 환경과 용수를 맡아야 한다. 전력 당국은 송전망의 완공 시점을 책임져야 하고, 지방자치단체장은 주민을 설득하고 정주 여건을 갖추는 일을 자신의 이름으로 해내야 한다. 약속한 날짜를 지키지 못했다면 왜 늦었는지 설명하고, 필요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면 책임도 져야 한다. 그것이 정상적인 행정이다. 한국 행정의 고질적인 문제는 책임자가 없어서라기보다 책임이 너무 잘게 쪼개져 있다는 데 있다. 대형 공장 하나를 짓는 데 산업·국토·환경·전력·지방행정이 모두 관여한다. 하지만 각 기관은 자기 업무만 처리하면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하기 쉽다. 산단 지정에는 문제가 없고, 환경 절차에도 문제가 없고, 전력 공급도 규정대로 검토했다고 한다. 모든 기관이 자기 몫을 했다는 데 정작 공장 착공은 늦어진다. 기업 눈에는 정부가 여러 개가 아니다. 하나다. 이 단순한 상식을 행정이 자주 잊는다. 기업인은 어느 부처의 어느 과가 무엇을 맡았는지 알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다. “언제 공장을 지을 수 있는가”라는 한 가지 답을 원한다. 하지만 그 답을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니 결국 대통령 앞까지 사안이 올라간다. 대통령 주재 회의가 열리면 분위기는 달라진다. 그동안 “어렵다”고 하던 사안에 대안이 붙고, “검토 중”이던 사업에 날짜가 생긴다. 법이 갑자기 바뀐 것이 아니다. 책임지고 결정할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여기에 ‘대통령 직할 행정’의 효용과 위험이 함께 있다. 초기에는 빠르다. 강력한 정치적 권위가 부처의 칸막이와 오래된 이해관계를 단숨에 넘어설 수 있다. 이런 방식이 일상화되면 다른 문제가 생긴다. 대통령이 관심을 가진 사업은 빨리 가고, 대통령의 회의 안건에 올라가지 못한 사업은 다시 평소의 속도로 돌아간다. 기업 입장에서 법과 제도보다 대통령의 관심 여부가 더 중요한 변수가 된다면 그것은 좋은 투자 환경이라고 할 수 없다. 더구나 대통령에게도 시간은 하루 24시간뿐이다. 반도체 공장의 물길과 송전선까지 대통령이 끝까지 챙기는 동안 외교와 안보, 복지와 교육, 저출생과 재정도 대통령을 기다린다. 메가프로젝트가 늘어날수록 대통령실이 거대한 민원조정실이 되는 구조는 오래갈 수 없다. 이번 ‘전격전’의 진짜 성과는 특정 공장의 착공 시점을 몇 년 앞당기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된다. 대통령이 챙기지 않아도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정부를 만드는 데까지 가야 한다. 먼저 대형 전략투자에는 한 사람이 전체 일정을 책임지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원스톱 창구’를 설치했다고 해놓고 접수만 한 곳에서 받은 뒤 서류가 다시 여러 기관을 순회한다면 간판만 바꾼 것이다. 일정 규모 이상의 국가전략 프로젝트에는 총괄 책임자를 두고 부지·전력·용수·환경·교통 문제를 한꺼번에 관리하도록 해야 한다. 행정 방식도 바꿔야 한다. 환경 검토가 끝난 뒤 전력을 논의하고, 전력 문제가 정리된 뒤 용수를 검토하는 식으로 순서대로 일을 처리해서는 세계 산업경쟁의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다. 사업 초기부터 환경·전력·용수·교통 문제를 동시에 들여다봐야 한다. 이것은 환경 기준을 낮추자는 얘기가 아니다. 절차를 없애는 것과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주민의 권리와 노동 문제도 마찬가지다. 국가전략산업이라는 이유로 주민 의견을 건너뛰거나 노동·환경 기준을 일괄적으로 풀어서는 안 된다. 처음에는 빨라 보일지 몰라도 갈등이 쌓이면 소송과 반발로 더 많은 시간을 잃는다. 빠른 정부는 절차를 무시하는 정부가 아니라, 필요한 절차를 정해진 시간 안에 끝내는 정부다. 공무원이 결정을 피하지 않게 만드는 일도 중요하다. 새로운 사업에는 언제나 위험이 따른다. 성공하면 정치권의 성과가 되고 실패하면 실무자의 책임이 되는 구조에서는 누구라도 전례를 찾고 결재를 미룬다. 명백한 특혜나 위법이 아니라면 당시의 자료와 절차에 따라 내린 합리적인 정책 판단은 보호할 필요가 있다. 적극행정은 구호가 아니라 감사와 인사제도에서 시작해야 한다. ‘맹자’에는 “도선부족이위정 도법불능이자행(徒善不足以爲政 徒法不能以自行)”이라는 말이 있다. 좋은 뜻만으로 정치를 할 수 없고, 법도 스스로 실행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결국 사람이 움직여야 제도가 움직인다. 지금 메가프로젝트에 대통령의 힘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래 굳어버린 행정을 처음 움직이려면 최고 책임자의 결단이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좋은 국가는 뛰어난 지도자 한 사람의 독촉에 오래 의존하지 않는다. 지도자의 의지를 제도로 바꾸고, 제도를 조직의 습관으로 만드는 나라가 강한 나라다. 대통령의 역할은 방향을 정하고 처음 막힌 길을 여는 데 있어야 한다. 그다음부터는 총리가 부처를 조정하고 장관이 일정에 책임을 지며, 지자체장이 현장의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 사업이 늦어질 때마다 대통령이 다시 등장하는 구조가 아니라, 대통령이 없어도 담당자가 움직이고 정해진 날짜에 답을 내놓는 구조가 필요하다. 메가프로젝트의 성적표도 그렇게 바꿔야 한다. 대통령이 몇 차례 회의를 열었는지가 아니라 그 뒤 대통령이 회의를 열지 않아도 사업이 일정대로 진행됐는지를 봐야 한다. 대통령에게 보고하기 전에 장관이 문제를 풀었는지, 지자체장이 기업과 주민을 설득했는지, 담당 기관이 약속한 날짜 안에 결정을 내렸는지를 따져야 한다. ‘전격전’은 시작할 때 필요하다. 다만, 국가가 언제까지나 전격전으로 움직일 수는 없다. 지금은 대통령이 직접 뛰어 막힌 길을 열어야 할 때일 수 있다. 그 길이 열렸다면 이제 장관과 지자체장이 달려야 한다. 대통령은 방향을 정하고, 장관은 일정과 결과에 책임지며, 공무원은 법과 원칙 안에서 결정을 내리는 정부. 그것이 메가프로젝트 속도전의 다음 단계다. 대통령의 속도는 임기와 함께 끝난다. 시스템의 속도는 정권이 바뀌어도 남는다. 이번 ‘전격전’의 가장 값진 성과는 공장 몇 곳을 빨리 세우는 데 있지 않다. 대통령이 직접 챙기지 않아도 제시간에 움직이는 정부를 남기는 데 있다.
2026-08-11 09: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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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벨트 해제 고민하는 정부…공급 해법 되려면 '시간차' 줄여야
[경제일보] 정부가 수도권 주택 공급을 늘리기 위해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해제 카드를 다시 고민하고 있다. 서울에서 대규모 택지를 확보하기 어려운 만큼 보존 가치가 낮은 지역을 활용해 공급 기반을 넓히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지구 지정과 토지 보상, 주민 이주, 인허가를 거쳐야 해 해제된 땅이 적기에 실제 공급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31일 국토교통부와 서울시 등에 따르면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27일 열린 부동산정책 국민대토론회에서 “필요하다면 그린벨트를 일부 해제해서라도 주택을 공급하는 방향을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린벨트는 도심 정비사업과 달리 정부가 공급 규모와 기반시설을 계획해 택지를 조성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재개발·재건축처럼 조합 설립이나 조합원 간 이해관계 조정을 거치지 않아도 돼 정부가 공급 의지를 보여줄 때마다 우선 검토되는 수단이다. 현재 서울에 남아 있는 그린벨트는 149.09㎢로 전체 행정구역의 24.6%를 차지한다. 서초구가 23.89㎢로 가장 넓고 강서구 18.91㎢, 노원구 15.90㎢, 은평구 15.21㎢, 강북구 11.67㎢, 도봉구 10.20㎢ 순이다. 시장에서는 서초구 내곡동 예비군훈련장과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선수촌 인근, 강서구 김포공항 주변, 강남구 세곡·자곡동 등이 주요 후보지로 거론되고 있다. 주택 수요가 많은 지역이거나 기존 시가지와 맞닿아 있어 교통·생활 기반을 활용할 수 있는 곳들이다. 다만 구체적인 대상지와 공급 규모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역대 정부도 집값 불안과 공급 부족이 겹칠 때 그린벨트를 활용했다. 노무현 정부는 은평구 진관동 일대를 풀어 은평뉴타운을 조성했고 이명박 정부는 강남 세곡·내곡지구 등에 보금자리주택을 공급했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서초구 원지·신원·염곡·내곡·우면동 일대가 서리풀 공공주택지구로 선정됐다. 과거 사례는 그린벨트 해제와 주택 공급 사이에 긴 시차가 존재한다는 점도 보여준다. 개발제한이 풀리더라도 환경영향평가와 공공주택지구 지정, 지구계획 승인, 토지 보상, 이주를 차례로 밟아야 한다. 주민이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방향에 반대하면 행정소송과 보상 협의까지 겹치면서 사업 일정이 밀릴 수 있다. 이 같은 문제는 정부가 2만가구 공급을 추진하는 서리풀지구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원지·신원·염곡·내곡동 일대 201만8000㎡ 규모의 서리풀1지구에는 1만8000가구, 우면동 일대 19만3000㎡ 규모의 서리풀2지구에는 2000가구가 계획됐다. 서리풀1지구는 지난 2월, 2지구는 지난 6월 공공주택지구로 지정됐다. 정부는 통상 56개월가량 걸리는 지구 지정 이후의 행정절차를 줄여 서리풀2지구를 2028년 12월 착공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지구 지정이 끝났지만 주민과의 갈등은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서리풀1지구에서는 보상과 원주민 이주 대책을 둘러싼 반발이 이어지고 있으며 2지구 주민들은 우면동 성당과 송동·식유촌 마을을 사업구역에서 제외하거나 기존 형태로 보존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특히 2지구에서는 지정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행정소송도 제기됐다. 공급 속도를 높이려는 정부와 생활 터전 및 재산권을 지키려는 주민의 이해관계가 충돌한 것이다. 정부가 지구 지정을 서둘러도 주민 협의가 늦어지면 보상과 지구계획 단계에서 다시 시간이 걸린다. 추가 후보지를 발표하기 전에 개발 범위와 원주민 재정착, 기존 시설 존치 원칙을 구체화가 필요한 이유다. 토지시장 관리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후보지가 공개되면 개발 기대가 주변 땅값을 끌어올리고 보상비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서울시는 2024년 정부의 그린벨트 해제 검토 당시 투기 수요를 막기 위해 서울 내 개발제한구역 대부분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했다. 공급 계획과 거래 규제를 동시에 내놓지 않으면 사업비 부담만 키울 가능성도 존재한다. 서울에서 대규모 택지를 확보하기 어려운 만큼 정부가 그린벨트 해제를 검토하는 배경에는 공감할 만한 이유가 있다. 그러나 공급 규모를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보상과 이주, 기존 마을 존치 문제를 풀어 실제 착공과 입주까지 걸리는 시간을 줄여야 한다. 갈등을 조정할 기준 없이 후보지만 추가한다면 그린벨트 해제는 공급을 앞당기는 해법이 아니라 장기 계획을 하나 더 늘리는 선택에 그칠 수밖에 없어 보인다.
2026-07-31 09:2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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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지는 한 달이면 정한다는데…반도체 공장은 언제 돌아가나
[경제일보] 정부가 반도체 첨단산업단지 지정 요청이 들어오면 한 달 안에 후보지를 정하기로 했다. 통상 10년 이상 걸리는 산업단지 조성 기간을 기업 투자 일정에 맞춰 대폭 줄이겠다는 것이다. 용인 반도체 국가산업단지의 전체 조성 일정도 당초 2047년에서 2040년으로 최대 7년 앞당길 방침이다. 그러나 후보지 지정은 공장이 가동되기까지 거쳐야 할 긴 절차의 출발점일 뿐이다. 반도체 산업은 시간 싸움이다. 미국과 일본, 대만은 생산시설을 자국에 끌어들이기 위해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앞세우고 있다. 기술이 있어도 공장 건설과 양산이 늦어지면 시장을 선점하기 어렵다. 기업의 투자를 느린 행정절차가 붙잡아서는 안 된다는 정부의 문제의식은 타당하다. 문제는 정부가 내세운 ‘한 달’이 전체 산단 조성기간 가운데 극히 일부라는 점이다. 후보지 선정 이후 산업단지계획 수립과 관계기관 협의, 주민 의견 수렴, 환경영향평가, 토지보상, 이주대책, 부지 조성공사가 이어진다. 전력과 용수, 도로와 철도까지 제때 갖춰져야 생산라인을 돌릴 수 있다. 후보지를 빨리 정해도 나머지 절차가 뒤따르지 못하면 기업이 체감하는 투자 시계는 달라지지 않는다. 산업단지 인허가를 줄이기 위한 제도도 이미 있다. 산업단지 인허가 절차 간소화 특례법은 관계기관 협의를 동시에 진행하고 일정한 기간 안에 의견을 내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부가 다시 패스트트랙을 꺼내 들었다면 기존 제도가 현장에서 기대만큼 작동하지 않은 원인부터 밝혀야 한다. 법을 하나 더 만들고 전담 조직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부처 간 이견과 주민 갈등을 해소하기 어렵다. 용인 국가산단은 정부가 풀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정부는 2023년 3월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과 남사읍 일대를 국가산단 후보지로 선정했고 2024년 12월 산업단지계획을 승인했다. 후보지 선정에서 산단 승인까지 1년9개월이 걸렸다. 통상적인 국가산단 사업과 비교하면 빠른 편이지만 정작 사업 현장에서는 토지보상이 다음 관문으로 남아 있다. 용인 국가산단 예정지 727만4000㎡ 가운데 지난달 말까지 토지 보상 협의가 끝난 면적은 274만1000㎡로 37.7% 수준이다. 상당수 토지 소유자가 보상액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수용재결 절차도 진행되고 있다. 정부는 연내 보상을 마무리한 뒤 부지 조성공사에 들어가겠다고 했지만 보상과 이주가 계획대로 끝날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사업기간을 줄인다는 이유로 보상과 주민 의견 수렴을 형식적으로 처리해서도 안 된다. 보상 기준과 이주대책을 둘러싼 갈등이 길어지면 공사 지연과 소송으로 이어질 수 있다. 주민을 설득하는 데 드는 시간을 행정 낭비로 볼 것이 아니라 전체 사업기간을 줄이기 위한 과정으로 봐야 한다. 초기 단계부터 보상 기준과 생활대책을 공개하고 이견을 조정하는 편이 결과적으로 더 빠르다. 토지보상보다 더 까다로운 문제는 전력이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는 장기적으로 10GW가 넘는 전력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된다. 발전소와 변전소를 산단 안에 짓는 것만으로 부족하고 외부 전력을 끌어오기 위한 장거리 송전망도 새로 설치해야 한다. 송전선로의 노선 선정과 부지 확보, 환경 검토, 주민 협의를 감안하면 산단 승인과는 다른 차원의 난제다. 산단 부지 조성만 7년 앞당기고 송전망이 뒤따르지 못하면 공장 가동 시점은 앞당겨지지 않는다. 어느 지역에서 전기를 가져오고 송전선로가 어느 지방자치단체를 지나며 변전소를 어디에 설치할 것인지가 먼저 확정돼야 한다. 첫 번째 생산라인이 필요로 하는 전력을 언제부터 공급할 수 있는지도 공개해야 한다. ‘전력 공급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는 원론적인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용수 문제도 다르지 않다. 정부가 추진하는 용인 반도체 산업단지 통합용수공급 사업은 하루 107만2000t의 공업용수를 공급하는 대형 사업이다. 팔당댐에서 용인까지 46.9㎞에 이르는 전용 관로와 가압시설을 새로 설치해야 하고 사업비도 2조원을 웃돈다. 1단계 용수 공급 목표 시점은 2031년이다. 용인 국가산단과 인근 일반산단의 전체 용수 수요는 하루 약 133만t으로 예상된다. 기존 댐의 여유 물량만으로는 부족해 하수 재이용수와 발전용 댐의 물까지 활용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물을 확보하는 것과 수십㎞의 관로를 제때 설치하는 일은 별개 문제다. 관로가 지나는 지역과의 협의가 늦어지면 공장 완공 이후에도 용수 공급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정부는 용인 국가산단의 최종 완공 시점을 2040년으로 앞당기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기업에 중요한 시점은 마지막 공장이 들어서는 2040년이 아니라 첫 번째 생산라인을 언제 착공하고 가동할 수 있느냐다. 첫 팹에 필요한 토지를 언제 넘기고 공사용 도로를 언제 개통하며 전력과 용수를 어느 시점부터 얼마나 공급할 것인지가 투자 판단을 좌우한다. 배후 교통망도 산단 공사와 따로 움직여서는 안 된다. 정부는 이동 공공주택지구 인허가를 내년 초까지 마치고 국도 45호선 확장사업도 오는 8월 발주할 계획이다. 주택과 도로 건설이 산단보다 늦으면 출퇴근 혼잡과 주거난이 불가피하다. 공장만 먼저 지어 놓고 근로자에게 장거리 출퇴근을 감수하라고 할 수는 없다. 호남권에 새로 조성하겠다는 반도체 국가산단은 용인보다 불확실성이 더 크다. 정부는 광주 군공항 이전 부지를 중심으로 팹 4기가 들어서는 국가산단과 연구·창업·주거 기능을 갖춘 첨단도시를 조성하겠다고 했다. 기업 투자 규모로 800조원을 제시했지만 투자 주체와 투자 시기, 공장별 착공 일정은 아직 구체적으로 공개되지 않았다. 산단 부지로 거론된 광주 군공항 이전 부지는 군공항 이전과 종전부지 개발, 재원 조달 문제가 먼저 풀려야 한다. 군공항 이전이 늦어지면 산단 부지 확보도 늦어진다. 후보지 지정만 한 달 안에 마치겠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군공항 이전부터 토지 인도와 산단 조성, 기반시설 공급까지 하나의 일정으로 관리해야 한다. 정부가 내세운 ‘출퇴근 30분, 수출입 물류 1시간’이라는 목표도 구체성이 부족하다. 도로와 철도의 노선, 사업비, 착공과 개통 시점이 함께 제시돼야 한다. 무안국제공항의 기반시설과 기능을 강화한다는 계획도 어떤 물류를 얼마나 처리할 것인지가 나와야 한다. 반도체 물류에 필요한 보안과 온습도 관리, 신속한 통관 체계를 어떻게 갖출 것인지도 설명해야 한다. 산업단지 조성기간을 줄이는 방법이 환경영향평가를 건너뛰거나 주민 권리를 축소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개발계획 수립과 환경조사, 기반시설 설계를 사업 초기부터 동시에 진행하고 부처 간 이견을 신속히 조정하는 것이 핵심이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관계부처 회의를 여는 방식으로는 기업 시간표를 맞출 수 없다. 단계별 책임 기관과 최종 결정권자를 정해 둬야 한다. 정부가 내놓아야 할 것은 ‘한 달 안에 후보지 지정’이라는 숫자보다 공장 가동일까지 이어지는 전체 공정표다. 후보지 선정과 산단 승인, 토지보상, 부지 조성, 송전망과 용수관로, 도로와 철도 건설을 하나의 일정표에 담아야 한다. 각 단계의 완료 시점과 책임 부처를 공개하고 일정이 늦어질 경우의 대응책도 마련해야 한다. 반도체 공장은 산업단지 지정 고시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땅과 전기, 물, 도로가 필요한 시점에 함께 준비돼야 생산라인이 움직인다. 후보지를 한 달 안에 정하는 것은 의미 있는 출발이다. 정부의 속도전이 성과를 내려면 그다음 10년을 어디에서 어떻게 줄일 것인지부터 보여줘야 한다.
2026-07-13 16: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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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단 10년을 5년으로…기업형 첨단도시, 결국 '사람'이 답이다
[경제일보] 정부가 '산단 조성 10년' 시대를 끝내겠다고 선언했다. 반도체와 피지컬 AI, AI 데이터센터를 대한민국 미래 산업의 3대 축으로 육성하기 위해 기업이 원하는 부지를 신속하게 공급하고 공장과 연구시설이 집적된 첨단산업 거점을 조성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산업계에서는 이번 프로젝트의 성패가 인허가 기간 단축보다 우수 인재의 정착과 지속 가능한 산업 생태계 구축 여부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도체와 AI 산업은 공장만 세운다고 경쟁력이 확보되는 산업이 아니다. 세계적인 연구개발(R&D) 인력과 협력기업, 대학, 병원, 교육·문화시설이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지속적인 투자와 기술 혁신이 가능하다. 첨단산업 경쟁의 무게중심이 생산시설 확충에서 인재와 산업 생태계를 갖춘 도시 조성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반도체·피지컬 AI·AI 데이터센터를 국가 미래 성장동력으로 제시하며 기업형 첨단도시 조성을 핵심 정책으로 내세웠다. 정부는 산단 기획부터 공장 가동까지 통상 10년 이상 걸리던 절차를 5년 이하로 단축하고 기업과 인재가 함께 모이는 새로운 산업도시를 조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산단에서 첨단도시로…정부가 바꾸려는 산업 지도 이번 구상의 핵심은 산업단지를 단순한 생산기지가 아닌 생활권과 결합한 첨단도시로 조성하겠다는 데 있다. 정부는 기업 맞춤형 입지 공급과 함께 주거·교육·문화·의료 시설을 확충하고 정주지까지 30분, 공항과 항만 등 물류 거점까지 1시간 이내 이동할 수 있는 교통망 구축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역 거점 국립대와 연계한 인재 양성 체계도 함께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정부가 이처럼 '도시'를 강조하는 이유는 첨단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요소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과거 제조업 시대에는 공장을 빠르게 건설하고 생산능력을 확대하는 것이 경쟁력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AI 시대에는 반도체 공장과 데이터센터, 피지컬 AI 생산시설이 하나의 산업 생태계로 연결되고 이를 운영할 고급 인력이 지속적으로 유입돼야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 실제 반도체 기업들의 투자 판단 기준도 달라지고 있다. 단순한 부지 확보를 넘어 엔지니어가 장기간 근무할 수 있는 주거 환경과 교육 여건, 의료 서비스, 교통 접근성, 협력사와 연구기관이 밀집한 연구개발 기반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된다. 최첨단 공장을 구축하더라도 우수 인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지 못하면 생산성과 연구개발 역량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투자 경쟁력은 공장 자체보다 우수 인력이 장기간 머물 수 있는 정주 여건에서 갈린다는 것이 산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TSMC·인텔이 보여준 교훈…공장만으로는 생태계 못 만들어 이 같은 변화는 해외 주요 반도체 클러스터에서도 확인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 애리조나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 기업 TSMC는 미국 정부의 반도체 육성 정책에 맞춰 대규모 생산시설을 건설하고 있지만 초기에는 반도체 설비를 설치할 숙련 기술인력 부족으로 공장 가동 일정이 연기됐다. 현지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대만 엔지니어를 파견해 교육을 병행하는 등 인력 문제가 사업 추진의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대규모 투자만으로 첨단산업 생태계가 완성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 대표 사례로 평가된다. 인텔 역시 미국 오하이오주에 대규모 반도체 생산단지를 조성하며 '실리콘 하트랜드(Silicon Heartland)' 구축에 나섰지만 시장 환경 변화와 투자 일정 조정, 기반시설 조성 등의 영향으로 당초 계획보다 공장 완공 시점이 늦춰졌다. 업계에서는 대규모 첨단산업 클러스터는 생산시설 건설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인재 확보와 협력기업 유치, 도시 기반시설 확충이 함께 이뤄져야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사례로 보고 있다. 국내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삼성전자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와 평택캠퍼스는 세계 최대 규모의 생산거점으로 성장하고 있지만 상당수 연구개발 인력은 용인과 분당, 수지, 동탄 등 수도권 생활권을 기반으로 근무하고 있다. 연구개발 인력과 협력기업, 대학, 교통망이 이미 집적돼 있다는 점이 수도권 반도체 클러스터의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요소로 꼽힌다. '빠른 산단'보다 '머물고 싶은 도시'가 경쟁력 반면 앞으로 조성될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와 AI 데이터센터, 피지컬 AI 거점은 생산시설과 함께 새로운 생활권을 구축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산업계에서는 우수 인력이 장기간 정착하려면 주거·교육·의료·문화 등 생활 인프라가 함께 구축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런 점에서 정부가 이번 메가 프로젝트에서 기업형 첨단도시를 별도 축으로 제시한 것은 기존 산업단지 정책과 결이 다르다는 평가가 나온다. 과거 국가산업단지나 혁신도시 정책이 생산시설 공급이나 공공기관 이전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에는 산업과 주거, 연구개발, 교육, 교통을 하나의 생태계로 연결하는 데 방점을 찍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과 대학, 연구기관, 협력사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혁신 거점을 구축하겠다는 것이 정책의 핵심이다. 다만 정부 구상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정주 여건뿐 아니라 산업 기반시설 확보라는 과제도 해결해야 한다. 기업들이 요구하는 수준의 전력망과 용수 확보, 환경영향평가, 주민 수용성, 교통 인프라 구축 등이 계획대로 이뤄질지가 사업 추진 속도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지역 거점 대학이 반도체와 AI 산업이 요구하는 고급 인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을지도 기업형 첨단도시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핵심 변수다. 산업계에서는 이번 정책이 단순히 산단 조성 기간을 절반으로 줄이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기업이 원하는 것은 빠른 인허가가 아니라 연구개발과 생산, 생활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지속 가능한 산업 생태계라는 것이다. 결국 정부가 제시한 '산단 10년에서 5년'이라는 목표의 진짜 의미는 공장을 더 빨리 짓는 데 있지 않다. AI 시대 국가 경쟁력은 생산시설의 규모보다 우수 인재와 기업이 지속적으로 모여 혁신을 이어갈 수 있는 기반을 얼마나 갖추느냐에 달려 있다. 기업형 첨단도시 역시 '빠른 산단'이 아니라 기업과 인재가 머물고 성장하는 혁신 거점으로 자리 잡을 때 비로소 800조원 규모 메가 프로젝트를 뒷받침하는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산업은 결국 사람이 모여야 하는 산업인 만큼 주거·교육·의료·문화 등 정주 여건이 전력과 용수 못지않게 중요한 투자 요소"라며 "협력사와 소부장 기업이 함께 집적되고 지역 대학과 연계한 인재 양성 체계가 구축돼야 지속 가능한 반도체 생태계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2026-07-10 17: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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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화력 닫힌 자리, 해상풍력 거점으로…태안 500MW 사업 시동
[경제일보] 석탄화력발전소가 멈춘 자리에 해상풍력 발전단지가 들어선다. 폐쇄된 발전소의 송전선로와 부두를 재활용해 개발비용을 낮추고, 기존 석탄화력 인력을 해상풍력 운영 인력으로 전환하는 모델이다. 다만 정부는 이 같은 방식이 모든 석탄화력 폐지 지역에 일괄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9일 에너지업계에 따르면 한국서부발전은 전날 서울 영등포구 한국전력공사 남서울본부에서 뷔나에너지, 코펜하겐인프라스트럭쳐파트너스(CIP)와 태안해상풍력 공동개발협약을 체결했다. 태안해상풍력은 충남 태안군 서측 해상에 2030년 준공을 목표로 500MW 규모 해상풍력 발전단지를 짓는 사업이다. 가동 이후에는 연간 약 35만 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전력을 생산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사업의 핵심은 기존 석탄화력 인프라 재활용이다. 서부발전은 지난해 말 폐쇄한 태안화력 1호기의 여유 송전계통을 태안해상풍력 사업에 활용할 계획이다. 서부발전 관계자는 “한전 변전소까지 가는 345kV 송전선로를 이용하는 것”이라며 “부두도 접안시설이 어느 정도 갖춰져 있어 이를 활용하는 구조”라고 했다. 해상풍력은 발전단지를 짓는 것만큼 생산한 전력을 육상 계통에 연결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신규 송전선로 건설에는 비용과 시간이 들고, 주민 수용성 문제가 뒤따를 수 있다. 폐지 석탄화력의 기존 송전망을 활용하면 계통연계 부담을 줄일 수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이번 사업이 송전선로 건설비용 절감과 주민수용성 제고 측면에서 의미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정부는 태안 모델을 다른 지역으로 확대하려면 조건이 맞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태안이 가진 특성과 다른 해상풍력 단지가 가진 특성이 맞아야 한다”며 “주변에 풍력 자원이 있어야 하고, 폐지되는 석탄화력 인프라와 남는 송전선로가 있어야 하며, 지리적으로 해상풍력 단지와 전력 수요처가 맞아떨어져야 한다”고 했다. 석탄발전소가 폐지되면 모두 해상풍력으로 전환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다. 부두 활용도 사업성을 높이는 요소다. 서부발전은 태안화력발전소 내 소형 부두를 해상풍력 운영·정비(O&M) 거점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해상풍력은 준공 이후에도 터빈 점검, 부품 교체, 해상 작업선 운영 등 유지관리 수요가 장기간 발생한다. 사업은 현재 인허가 절차를 밟고 있다. 에너지 업계에 따르면 “환경영향평가는 거의 완료 단계”라고 했다. 2030년 준공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변수로는 기자재 공급을 꼽았다. 이어 “인허가나 계통연계도 중요하지만 기자재 공급을 중요하게 보고 있다”며 “변압기 같은 기자재가 병목이라 밀린 부분이 많다”고 덧붙였다. 지역 일자리 전환도 관건이다. 서부발전과 서부발전 노동조합, CIP는 석탄화력 인력의 해상풍력 분야 전환교육을 지원하는 업무협약도 체결했다. 기후부 관계자는 “해상풍력은 조성 이후 20년 넘게 운영·관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일자리가 늘어나는 구조”라며 “어느 정도는 석탄발전소 폐쇄로 발생하는 인력을 커버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CIP는 덴마크와 대만 등에서 해상풍력 인력양성 과정을 운영한 경험이 있으며, 향후 2년간 서부발전 석탄화력 인력을 대상으로 전환교육이 진행될 예정이다. 어업권과 주민수용성은 남은 과제다. 기후부 관계자는 “어업인 지원이나 주민복지, 보상 관련 부분은 지자체가 주로 담당한다”며 “어업인 보상과 관련해서는 기준을 세우기 위해 내부적으로 지침을 통일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라고 했다. 해상풍력은 입지 특성상 어민 협의와 주민 수용성 확보가 사업 속도를 좌우한다. 정부가 제도를 정비하더라도 현장 협의가 지연되면 착공 일정은 늦어질 수 있다. 서부발전은 이번 사업을 시작으로 태안권역에서 총 1.4GW 규모 해상풍력 개발사업에 투자할 계획이다. 기후부는 서부발전이 지난해 말 폐쇄한 태안 1호기를 포함해 11개 석탄화력발전소 가운데 8개를 2037년까지 폐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석탄화력 감축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발전공기업이 기존 설비와 인력을 재생에너지 사업으로 옮기는 것이 새 과제가 된 셈이다. 태안해상풍력은 석탄화력 폐지 지역의 전환 가능성을 보여주는 첫 시험대다. 풍황, 송전 여유, 항만 인프라, 수요처와의 거리, 주민수용성이 맞아떨어질 때 폐지 발전소는 비용 부담이 큰 유휴부지가 아니라 재생에너지 거점이 될 수 있다. 반대로 이 조건이 맞지 않으면 같은 모델을 반복하기 어렵다. 태안의 성패가 향후 석탄화력 폐지 지역의 전환 방식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이유다.
2026-07-09 10:5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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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 확대 꺼냈지만 실행은 곳곳서 암초…공공주택 속도전 흔들
[경제일보] 정부가 주택 공급 속도를 끌어올리고 있지만 주요 후보지마다 주민 반발과 기관 간 이견이 이어지면서 실행 단계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집값 안정을 위해 공급 확대가 필요하다는 데에는 이견이 크지 않지만 기존 마을과 생활권을 밀어내는 방식의 개발은 곳곳에서 충돌을 낳고 있다. 공급 속도 못지않게 주민 수용성과 기반시설 대책이 중요해졌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3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수도권 공공주택 6만2000가구 착공을 추진하고 있다. 내년에는 7만가구 이상 착공을 목표로 공급 속도를 더 높인다는 방침이다. 수도권 공공주택 착공 물량이 2023년 1만6000가구 수준까지 줄었던 점을 감안하면 단기간에 착공 규모를 크게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다. 문제는 속도전이 본격화될수록 사업지별 갈등도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 서초구 서리풀 공공주택지구와 용산국제업무지구, 태릉CC, 과천 경마장 부지 등이 대표적이다. 정부가 공급 확대 대상지로 제시한 곳마다 기존 주민, 지자체, 관계기관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일정 조정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가장 논란이 큰 곳은 서리풀 공공주택지구다. 서리풀지구는 서울 서초구 원지·신원·염곡·내곡동 일대 1지구와 우면동 일대 2지구로 구성된다. 정부는 이곳에 총 2만가구를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강남권에 위치하면서도 녹지가 많고 기존 전원주택 마을이 형성돼 있어 공급 효과가 큰 만큼 주민 반발도 큰 사업지다. 서리풀1지구 신원동 새정이마을 주민들은 마을 존치를 요구하고 있다. 주민대책위원회는 국민권익위원회에 집단 고충민원을 접수하고 지구계획 확정 전 마을 존치 가능성을 검토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앞서 국토교통부 장관을 상대로 지구지정 처분 취소를 요구하는 행정소송도 제기하는 등 환경영향평가와 의견 수렴 절차에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주민들이 반발하는 이유는 보상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생활 기반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새정이마을은 서리풀1지구 전체 면적의 일부에 불과하지만 주민들은 수십 년간 형성된 주거 환경과 공동체를 개발 과정에서 일괄 철거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새정이마을에서는 전체 주택 56채의 소유주 가운데 약 80%가 마을 존치를 원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반발은 서리풀2지구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우면동 송동마을과 식유촌 주민들은 대책위원회를 꾸리고 마을과 우면동 성당 존치를 요구하고 있다. 주민들은 공공주택지구 지정이 재산권과 주거권, 종교 활동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행정소송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갈등은 서리풀에만 그치지 않는다. 정부가 제시한 다른 도심 공급 후보지에서도 공급 규모와 개발 방식, 기반시설 부담을 둘러싼 이견이 제기되고 있다. 용산국제업무지구는 공급 규모를 두고 정부와 서울시의 시각 차가 있다. 정부는 용산국제업무지구에 주택 1만가구 공급을 검토하고 있지만 서울시는 기존 계획보다 늘리더라도 8000가구 안팎이 현실적이라는 입장을 보여 왔다. 공급 물량을 과도하게 늘리면 교육과 교통, 생활 인프라를 다시 검토해야 한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태릉CC 개발에서는 문화유산과 교통 문제가 겹쳤다. 태릉CC 인근에는 조선왕릉인 태릉과 강릉이 자리한다. 서울시는 세계유산 가치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이미 주변 주거지가 밀집한 데다 인근 갈매역 일대 개발까지 맞물려 교통 대책이 필요하다는 점도 쟁점이다. 과천에서는 경마장 부지 이전과 개발 문제가 갈등 요소다. 정부는 과천 일대에 9800가구 공급을 추진하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이전 비용과 대체 부지 확보, 말 산업 종사자 생존권 문제가 함께 제기되고 있다. 한국마사회 노동조합은 공공기관과 충분한 협의 없이 이전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며 반발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공급 확대가 지연될 경우 정부의 시장 안정 구상에도 부담이 생길 수 있다. 주택시장은 공급 계획보다 실제 착공과 입주 시점을 더 민감하게 본다. 후보지를 발표해도 주민 협의와 보상, 인허가, 기반시설 대책이 늦어지면 시장이 체감하는 공급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공급 확대는 필요하지만 주민 수용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빠른 추진 전략이 오히려 지연 요인으로 돌아올 수 있다”며 “사업 초기부터 보상과 이주, 존치 가능성, 교통·교육 인프라 대책을 같이 제시해야 실제 착공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2026-07-03 08:4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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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만에 원전 후보지 선정…건설업계, 중장기 플랜트 먹거리 부상
[경제일보] 정부가 15년 만에 신규 원전 건설 부지를 정하면서 건설업계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대형 원전과 소형모듈원전(SMR)이 동시에 추진되기 시작한 만큼 원전 시공 경험을 보유한 건설사들의 중장기 사업 기회가 넓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19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신규 원전 건설 부지선정평가위원회는 지난 17일 경북 영덕군을 총 2.8GW 규모의 1.4GW급 대형 원전 2기 후보지로, 부산 기장군을 0.7GW 규모 SMR 1기 후보지로 각각 선정했다. 신규 원전 부지 선정은 2011년 강원 삼척 대진원전과 경북 영덕 천지원전 후보지 선정 이후 약 15년 만이며 대형 원전 2기는 오는 2037~2038년, SMR 1기는 2035년 준공을 목표로 추진된다. 원전 건설은 토목과 건축 등 복합 공종이 장기간 투입되는 대형 플랜트 사업이다. 원자로와 증기발생기 등 핵심 기자재는 원전 주기기 업체의 몫이지만 실제 발전소를 짓는 과정에서는 원전 시공 경험을 갖춘 대형 건설사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특히 부지 조성부터 원자로 건물, 부대시설 등까지 공사 범위가 넓어 건설사의 수주잔고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이번 계획 가운데 영덕에 조성될 대형 원전은 한국형 원전인 APR-1400으로 건설될 예정이다. APR-1400은 국내 원전과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에 적용된 노형이다. 부산 기장에 들어설 SMR은 국내 첫 SMR 프로젝트라는 상징성도 갖췄다. 인허가와 설계, 시공 단계가 진행되면 국내 건설사들은 글로벌 SMR 시장 진출을 위한 초기 레퍼런스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형 원전보다 공사 규모는 작더라도 향후 산업단지, 데이터센터, 해외 소형 전력망 시장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작지 않다. 신규 원전 조성의 수혜 후보로는 현대건설과 삼성물산, 대우건설 등이 거론된다. 현대건설은 국내 첫 원전인 고리 1호기 건설을 시작으로 신한울 1·2호기와 신한울 3·4호기 등 다수의 국내 원전 시공 경험을 갖고 있다. 해외에서는 2009년 UAE 바라카 원전 사업을 수주한 후 수행했다. 최근에는 불가리아 코즐로두이 원전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유럽 원전 시장에 대한 공략을 확대하는 중이다. 삼성물산은 새울 3·4호기 프로젝트에 참여한 바 있다. 최근에는 루마니아 SMR 사업에서 미국 뉴스케일을 비롯한 글로벌 엔지니어링 기업들과 기본설계 단계에 참여하며 차세대 원전 시장도 겨냥하고 있다. SMR이 AI 데이터센터와 산업단지 전력원으로 주목받는 만큼 국내 첫 SMR 후보지 선정은 삼성물산 등 플랜트·에너지 사업을 확대하는 건설사들에게도 중요한 신호로 읽힌다. 대우건설도 원전 관련 경험을 갖춘 건설사 중 하나이며 신월성 1·2호기를 준공했다. 체코 원전 수주 과정에서는 한수원과 함께 팀코리아에 참여하며 역량을 입증했다. 향후 신규 원전 주설비공사 발주가 본격화될 경우 원전 시공 실적을 갖춘 건설사들을 중심으로 컨소시엄 구성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다만 사업이 곧바로 수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원전은 부지 확정 이후에도 환경영향평가와 인허가, 설계·발주 절차 등을 거쳐야 한다. 사업기간도 10년 이상 소요돼 실제 매출 반영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건설사 입장에서는 당장 올해 실적에 반영될 수주보다 중장기 플랜트 파이프라인으로 보는 게 현실적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부지 선정은 원전 생태계에 분명한 신호를 주고 있다. 탈원전 이후 장기간 위축됐던 국내원전 발주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고 대형 원전과 SMR이 동시에 추진되면서 시공·기자재·정비를 아우르는 산업 기반도 재가동될 수 있어 보인다. 인공지능(AI) 확산과 데이터센터 증가로 안정적인 전력 수요가 확대되고 있는 점도 원전 생태계 회복에 대한 기대를 키우는 요인 중 하나다. 주택 경기 불확실성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이번 신규 원전은 대형 건설사들이 플랜트와 에너지 인프라로 중장기 사업 축을 넓히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후보지가 정해졌다고 곧바로 공사가 시작되는 것은 아니지만 원전 사업을 다시 장기 프로젝트로 검토할 수 있는 출발점이 마련된 셈”이라며 “대형 원전과 SMR이 함께 추진되는 만큼 단순 시공 경쟁을 넘어 설계 이해도, 안전관리 역량, 장기 공정 관리 능력이 향후 경쟁의 핵심일 것 같다”고 말했다.
2026-06-19 09:4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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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건설부, 남북고속도로 확장 추진…특별제도 도입 검토
베트남 건설부가 남북고속도로 동부 구간의 일부 노선을 확장하기 위한 예비타당성조사 보고서를 마련하고, 관련 지방정부의 의견 수렴에 나섰다. 아울러 사업 추진 속도를 높이기 위해 토지 보상과 건설자재 공급, 투자 방식 전환 등에 관한 특별제도 도입도 검토하고 있다. 건설부는 최근 동나이(Đồng Nai), 닌빈(Ninh Bình), 타인호아(Thanh Hóa), 응에안(Nghệ An), 하띤(Hà Tĩnh), 꽝찌(Quảng Trị), 꽝응아이(Quảng Ngãi), 자라이(Gia Lai), 닥락(Đắk Lắk), 카인호아(Khánh Hòa), 럼동(Lâm Đồng) 등 11개 성·시에 공문을 보내 남북고속도로 동부 구간 확장 사업에 대한 의견을 요청했다. 이번 사업은 2026~2030년 중기 공공투자계획의 일환으로 추진된다. 현재 폭 17m 규모의 제한적 4차로 고속도로를 완전한 6차로 고속도로로 확장하는 방안이 핵심 내용이다. 건설부는 현재 예비타당성조사 보고서 작성을 대부분 마무리한 상태다. 건설부는 각 지방정부에 사업의 필요성과 경제·사회적 효과를 평가하는 한편 공공투자 방식과 민관협력(PPP) 방식 중 적합한 투자 모델을 제안해 줄 것을 요청했다. 또한 토지 수용, 건설자재 확보, 사업 시행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특별 메커니즘도 함께 제안하도록 했다. 앞서 쩐 홍 민(Trần Hồng Minh) 건설부 장관은 관련 회의를 주재하며 현재 제한적 4차로로 운영 중인 남북고속도로를 장기적으로 6차로 체계로 확장하는 방향에 원칙적으로 동의했다. 그는 반복적인 확장 공사를 방지하고 예산 낭비를 줄이는 동시에 노선 운영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건설부는 또한 까오방에서 까마우까지 이어지는 남북고속도로 전체 구간을 종합 점검한 뒤 △까오방~하노이 △하노이~호찌민시 △호찌민시~닷무이(Đất Mũi) 등 3개 권역으로 구분해 투자 우선순위를 정하기로 했다. 우선순위는 교통 수요와 재원 조달 능력을 기준으로 결정된다. 이에 따라 교통량이 많은 2017~2020년 사업 구간을 우선 확장해 2027년 착공을 목표로 하고 나머지 구간은 2028년 착공해 2030년까지 전 구간 확장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PPP 방식으로 운영 중인 디엔쩌우~바이봇(Diễn Châu–Bãi Vọt), 냐짱~깜럼(Nha Trang–Cam Lâm), 깜럼~빈하오(Cam Lâm–Vĩnh Hảo) 등 3개 구간에 대해서는 베트남 도로국이 기존 BOT 투자자들과 협의를 진행해 확장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한편 국비로 건설된 기존 구간에 대해서는 국가 예산을 활용한 확장 방안과 PPP 방식의 경제성을 비교 검토한 후 최종 투자 방식을 결정하게 된다. 정부는 공공투자 방식으로 확장할 경우 완공 이후 통행료를 부과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예비타당성조사를 수행한 탕롱 프로젝트관리위원회는 두 가지 확장 방안을 제시했다. 첫 번째 안은 마이선(Mai Sơn)~바이봇(Bãi Vọt) 구간과 냐짱(Nha Trang)~저우저이(Dầu Giây) 구간 등 총 534km를 우선 확장하는 것으로 총사업비는 약 63조4110억 동으로 추산된다. 두 번째 안은 마이선~깜로(Cam Lộ) 구간과 꽝응아이(Quảng Ngãi)~저우저이 구간 등 총 1144km를 확장하는 방안으로 총사업비는 약 154조2460억 동에 달한다. 투자 방식과 관련해서는 기존에 국가 예산으로 건설된 15개 구간은 공공투자를 유지하고 PPP 방식으로 추진된 3개 구간은 정부 지원을 병행하는 PPP 모델을 유지하는 방안이 제안됐다. 사업의 신속한 추진을 위해 연구진은 두 가지 특별제도 도입도 건의했다. 첫 번째는 국회가 이미 주요 국가 인프라 사업에 허용한 투자정책 변경 및 재원 심사 절차 간소화 등 기존 특례를 적용하는 방안이다. 두 번째는 신규 특례 도입으로 환경영향평가 절차를 간소화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에 따르면 투자 승인 과정에서는 별도의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지 않되, 시공 단계에서는 기존에 승인된 환경영향평가 보고서에 따라 환경보호 조치를 이행하도록 했다. 또한 PPP 방식의 사업이 투자자 선정에 실패할 경우 건설부가 해당 사업을 공공투자 방식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투자 방식 변경 권한을 부여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베트남 정부는 이번 남북고속도로 확장 사업을 통해 국가 물류 경쟁력을 높이고 지역 간 연결성을 강화하는 한편 향후 급증할 교통 수요에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2026-06-10 19: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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