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총 6건
-
-
100일의 국회, '국가의 시간' 아껴야
[경제일보] 국회의 시간과 산업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국회에서 법안 한 건이 한 회기 미뤄지는 것은 단지 다음 회의에서 다시 논의하면 될 일처럼 치부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변전소 하나, 산업용수 관로 하나, 공장 인허가 하나가 늦어지는 사이 경쟁국에서는 생산라인이 돌아가고 고객사의 공급망이 굳어진다. 정치에는 다음 회기가 있지만 산업에는 놓치면 돌아오지 않는 시간이 있다. 22대 국회 후반기 첫 정기국회가 지난 1일 막을 올렸다. 12월 9일까지 꼭 100일이다. 8·30 개각에 따른 장관 인사청문회, 부동산 정책과 사법개혁 법안, 세제 개편에 역대 최대 규모인 821조원짜리 2027년도 예산안까지 한꺼번에 국회 문턱을 넘는다. 여당은 국정과제 입법과 확장재정을 뒷받침하겠다고 하고, 야당은 ‘입법 독주’와 ‘포퓰리즘 예산’을 막겠다며 벼르고 있다. 충돌할 사안이 적지 않다. 다툴 것은 다퉈야 한다. 세금과 부동산, 형사사법 체계를 바꾸는 법에는 서로 다른 철학과 이해관계가 걸려 있다. 821조원의 나랏돈을 어디에 얼마나 쓸지도 야당이 매섭게 따져야 한다. 다수당이 숫자로 밀어붙이는 것도, 야당이 반대를 위한 반대로 시간을 끄는 것도 모두 경계할 일이다. 하지만 모든 법안을 같은 정치의 시계 위에 올려놓아야 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조정식 국회의장은 개회사에서 ‘1년을 미룬 법이 10년의 격차를 만든다’며 반도체·AI·첨단바이오 같은 국가전략기술 관련 입법을 서둘러 달라고 했다. 통상과 대외경제 입법에서는 여야가 ‘원팀’으로 움직이자는 주문도 내놨다. 표현이 다소 과장돼 보일 수 있지만 문제의식은 정확하다. 세계의 기술경쟁은 국회의 의사일정을 기다리지 않는다. 더구나 정부는 내년 예산부터 산업의 속도를 크게 높이겠다고 돈을 걸었다. 2027년도 정부 예산안은 올해보다 12.8% 늘어난 821조원이다. 이 가운데 반도체·피지컬AI·AI 데이터센터 등 3대 메가프로젝트와 관련 인프라·기술개발에 21조3000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정부 연구개발 예산안도 39조5000억원으로 올해보다 11.2% 늘렸다. 돈만 놓고 보면 한국이 AI와 첨단산업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겠다는 의지는 분명하다. 문제는 예산의 속도와 법의 속도가 다르면 돈도 기다린다는 것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3대 메가프로젝트만 해도 전력과 용수, 산업단지와 건축 문제를 풀기 위해 전기사업법·수도법·물관리기본법·산업입지 및 개발에 관한 법률·건축법 등의 손질이 주요 과제로 거론되고 있다. 반도체 공장에 수십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기업이 있어도 전력과 물을 공급할 제도와 시설이 제때 따라오지 못하면 장부 위 투자는 공장이 되지 못한다. AI 데이터센터 역시 GPU를 사놓는다고 만들어지는 산업이 아니다. 전력망과 부지, 냉각설비와 인허가가 동시에 움직여야 한다. 여기에 한국 정치의 오래된 습관이 끼어든다. 여야가 크게 충돌하는 법안 하나가 상임위를 붙잡으면 그와 직접 관계없는 법안까지 함께 기다린다. 원내 협상이 틀어지면 본회의 일정 전체가 흔들리고, 서로 상대 당 법안에 조건을 붙이기 시작하면 민생·산업법안도 협상카드가 된다. 정치에는 모든 것을 한 묶음으로 흥정하려는 유혹이 있다. 그 비용은 국회가 아니라 국민과 기업이 낸다. 공장 착공이 늦어지고, 신규 채용이 밀리고, 기업의 투자금은 해외로 옮겨갈 수 있다. 스타트업은 규제가 정리될 때까지 사업모델을 바꾸고, 지역에서는 산업단지 지정만 기다리다 토지가 묶인다. 법안이 국회 서랍에서 보낸 시간은 통계에 잘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국가의 대기시간’도 비용이다. 이번 정기국회가 해야 할 일은 법안을 많이 통과시키는 것이 아니다. 어떤 법은 충분히 싸우고, 어떤 법은 싸움과 분리해 빨리 처리할지를 구분하는 것이다. 여야가 국가전략산업과 민생 인프라에 대해서는 별도의 ‘초당적 신속처리 트랙’을 만드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국회법상 신속처리안건, 이른바 패스트트랙을 남발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여야 원내지도부가 정기국회 초기에 합의 가능한 법안을 추려 상임위 심사와 공청회, 법사위 검토, 본회의 처리 시한을 미리 정하자는 것이다. 기준도 까다롭게 세우면 된다. 첫째, 특정 기업이나 계층에 특혜를 주기보다 국가 전체의 산업 기반과 직결되는 법이어야 한다. 둘째, 여야가 정책목표 자체에는 큰 이견이 없고 방법론만 조정하면 되는 법이어야 한다. 셋째, 처리 지연에 따른 경제적 비용과 해외 경쟁 상황을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넷째, 안전·환경·노동권을 속도라는 이름으로 우회하지 않아야 한다. 신속한 입법은 졸속 입법과 같은 말이 아니다. 전력망 건설을 서두른다고 주민의 재산권과 환경 검토를 생략해서는 안 된다. 반도체 경쟁력을 이유로 노동기준을 백지수표처럼 풀어주는 것도 곤란하다. 필요한 것은 심사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심사의 끝을 알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기업과 국민에게 가장 큰 부담은 엄격한 규제 자체보다 결론이 언제 날지 모르는 불확실성일 때가 많다. 여당의 책임이 먼저 무겁다. 다수 의석을 갖고 있는 만큼 ‘속도’를 ‘독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정부가 내놓은 법이라고 원안 그대로 밀어붙이는 것이 국가의 시간을 줄이는 방법은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도 1일 국무회의에서 ‘정부안이 언제나 옳거나 완벽할 수 없다’며 국회의 지적과 대안을 검토해 필요하면 입법과 예산에 반영하라고 주문했다. 여당이 새겨들을 말이다. 야당도 달라야 한다. 정부 정책을 검증하는 것과 정책을 멈춰 세우는 것은 다르다. 반도체 공장에 필요한 송전망이나 AI 데이터센터의 기반시설까지 정권의 성패와 연결해 지연시키면 정권이 아니라 한국 기업이 경쟁국에 뒤처진다. 잘못된 조항을 고치되 필요한 법은 통과시키고, 그 결과를 다음 선거에서 평가받는 것이 책임 있는 야당의 모습이다. 국회는 벌써 대비되는 두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정기국회 첫날 행정안전위원회에서는 지방자치법·소방기본법 등 여러 법안이 여야 논의를 거쳐 처리된 반면, 중대범죄수사청 관련 법안에서는 여야가 충돌했다. 정치적 이해가 첨예한 법과 합의 가능한 법을 분리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비자’ 심도편에는 ‘법여시전즉치 치여세의즉유공(法與時轉則治 治與世宜則有功)’이라는 구절이 있다. ‘법이 시대와 함께 변하면 다스려지고, 제도가 세상 형편에 맞으면 성과가 난다’는 뜻이다. 2000년도 더 된 문장이지만 기술이 몇 달 단위로 바뀌는 지금의 국회에 오히려 더 절실하다. 법은 산업보다 앞서기 어렵다. 적어도 산업의 발목을 붙잡을 만큼 뒤처져서는 안 된다. 이번 정기국회에는 821조원이라는 사상 최대 예산보다 더 귀한 자원이 하나 있다. 100일이라는 시간이다. 그 시간을 정쟁의 밀도를 높이는 데 쓸 것인지, 대한민국이 기다리는 시간을 줄이는 데 쓸 것인지가 국회의 성적표가 될 것이다. 여야가 모두 합의하는 법만 처리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민주주의에는 갈등이 필요하고, 때로는 오래 토론해야 할 문제도 있다. 다만 반도체와 AI가 세계시장에서 하루를 다투고 있는데 국회가 정치적으로 결론 내지 못한 다른 문제 때문에 전력망과 산업용수 법안까지 세워두는 것은 민주적 숙의가 아니라 행정적 낭비에 가깝다. 법안 처리 건수 몇 백 건을 자랑하는 국회보다 대한민국이 기다리는 시간을 몇 달 줄인 국회가 더 유능하다. 12월 9일 정기국회가 문을 닫을 때 국민이 보고 싶은 것도 그것이다. 여야가 몇 번 이겼는지가 아니라 공장과 기업, 청년과 지역이 얼마나 덜 기다리게 됐는가. 정기국회 100일의 진짜 경쟁은 법안 숫자가 아니다. 국가의 시간을 누가 더 아껴줬느냐의 경쟁이어야 한다.
2026-09-02 12:56:01
-
권력 셈법만 바꾸는 개헌, 국민은 왜 찬성해야 하나
[경제일보] 개헌 논의가 다시 출발선에 섰다. 조정식 국회의장은 28일 여야가 참여하는 국회 개헌특별위원회를 구성해 2027년 개헌 논의를 본궤도에 올리고, 22대 국회 임기 안에 제10차 개헌을 마무리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1987년 헌법 이후 39년 만에 국가의 기본 설계도를 다시 그리자는 제안이다. 하지만 개헌의 첫 장면부터 국민의 삶은 보이지 않았다. 국회의장이 현직 대통령의 연임 가능성을 “국민 선택의 문제”라고 언급하자 정치권의 관심은 순식간에 대통령 임기로 쏠렸다. 논란이 커지자 조 의장은 29일 “현직 대통령의 연임은 개헌 논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현행 헌법 제128조 2항은 대통령의 임기 연장이나 중임 변경을 위한 개헌이 제안 당시 대통령에게는 효력이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법문이 분명한 문제를 둘러싸고 하루 동안 정치권 전체가 소모전을 벌인 셈이다. 이 장면은 앞으로 개헌 논의가 어디에서 실패할지를 미리 보여준다. 대통령을 5년 단임으로 둘지, 4년 연임으로 바꿀지, 총리에게 얼마나 권한을 나눌지는 물론 중요하다. 대통령의 계엄 선포권을 어떻게 통제하고 국회·정부·사법기관 사이의 견제 장치를 어떻게 보완할지도 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조 의장도 권력구조 개편과 계엄권 제한, 선거관리 개혁 등을 주요 의제로 제시했다. 다만 그것이 개헌의 전부라면 국민은 다시 묻게 된다. 대통령 임기와 국회의 권한을 조정하는 일이 내 월급과 집값, 아이의 미래와 지역의 소멸, 플랫폼 노동과 개인정보 침해를 어떻게 바꾸느냐고 말이다.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개헌은 정치인들끼리 권력의 방 크기를 다시 재는 공사로 보일 수밖에 없다. 1987년 헌법은 위대한 민주화의 성취였다. 대통령 직선제를 되찾고 헌법재판소를 설치했고, 국가권력에 맞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키는 토대를 세웠다. 하지만 그 헌법이 만들어진 시절에는 스마트폰도, 생성형 인공지능도, 플랫폼 노동도 없었다. 기후위기는 먼 미래의 환경문제로 여겨졌고, 지방소멸과 초고령사회라는 말도 익숙하지 않았다. 헌법은 낡았기 때문에 고쳐야 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삶이 헌법의 언어보다 훨씬 앞으로 나아갔기 때문에 보완해야 한다. 먼저 디지털 시대의 기본권을 논의해야 한다. 인공지능이 채용과 대출, 보험과 행정처분에 영향을 미치고, 개인의 행동과 취향이 데이터로 축적되는 사회에서 인간의 존엄과 사생활의 자유를 과거의 문장만으로 충분히 지키기 어렵다. 현행 헌법에는 개인정보 자기결정권과 알고리즘에 의한 차별, 자동화된 결정에 대한 설명 요구권을 직접 규정한 조항이 없다. 학계에서도 디지털 정보의 활용과 개인의 결정권 사이에 새로운 헌법적 기준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기후위기와 미래세대의 권리도 헌법의 중심 의제가 돼야 한다. 헌법재판소는 2024년 정부가 2031년 이후 온실가스 감축 경로를 제대로 제시하지 않은 것은 국민의 기본권 보호 의무에 어긋난다며 탄소중립기본법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현재 세대가 편익을 누리고 미래세대에 위험과 비용을 넘겨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 헌법적 판단으로 확인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헌 논의가 대통령 임기에만 머문다면 정치는 이미 헌법재판소가 던진 질문보다 뒤처지는 셈이다. 환경권을 국가의 추상적 노력 의무로 남겨둘 것인지, 기후위기로부터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와 미래세대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더 구체적으로 담을 것인지 논의해야 한다. 국가의 백년대계를 말하면서 다음 선거의 권력 배분만 따지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지방분권도 더 이상 부속 의제가 아니다. 현행 헌법의 지방자치 장은 제117조와 제118조 두 조문으로 구성돼 있고, 자치의 구체적인 범위를 대부분 법률에 맡기고 있다. 국회와 지방자치 분야의 연구에서는 주민자치권의 기본권화, 보충성 원칙, 자치입법권과 자치재정권의 강화를 개헌 과제로 제시한다. 지역이 스스로 산업과 교육, 의료와 교통정책을 설계하지 못한 채 중앙정부의 예산 배분만 기다리는 구조로는 지방소멸을 막기 어렵다. 수도권 집중을 걱정하면서 모든 결정권과 세원을 중앙에 붙들어 두는 것은 병의 원인을 그대로 둔 채 해마다 진통제만 처방하는 것과 같다. 지방분권 개헌은 지방 정치인을 위한 권한 확대가 아니라, 국민이 사는 곳에 따라 삶의 기회를 차별받지 않게 하는 기본권의 문제다. 노동과 돌봄의 변화도 담아야 한다. 현행 헌법이 상정한 노동자는 일정한 사업장에서 사용자와 근로계약을 맺는 전통적인 노동자에 가깝다. 하지만 오늘의 국민은 플랫폼을 통해 일하고, 여러 직업을 오가며, 가족의 돌봄과 생계를 동시에 감당한다. 고용 형태가 달라졌다는 이유로 사회보험과 노동권의 바깥으로 밀려나지 않도록 새로운 사회권의 원칙을 세울 필요가 있다. 초고령사회에서 돌봄을 가족만의 책임으로 남길 것인지도 헌법적 토론의 대상이다. 개헌 과정도 달라져야 한다. 헌법개정안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거친 뒤 국민투표에서 선거권자 과반수가 투표하고, 투표자 과반수가 찬성해야 확정된다. 결국 정치권의 합의만으로는 한 글자도 바꿀 수 없다. 국민이 개헌의 필요성을 자기 삶의 문제로 받아들여야만 문턱을 넘을 수 있다. 조 의장이 국민 참여용 디지털 플랫폼을 구축하겠다고 밝힌 것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다만 국민 참여가 정치권이 만든 초안을 설명하고 찬반을 묻는 절차에 그쳐서는 안 된다. 개헌 의제를 정하는 단계부터 시민과 전문가, 청년과 노동자, 장애인과 지역 주민, 미래세대의 목소리가 들어가야 한다. 숙의 없는 국민투표는 선택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승인 절차에 불과하다. 맹자 ‘진심 하’에는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이 그다음이며, 임금은 가볍다(民爲貴 社稷次之 君爲輕)”는 말이 나온다. 헌법 역시 대통령과 국회의 권한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존엄과 자유, 안전과 행복을 지키기 위해 권력이 어디까지 행사될 수 있는지를 정한 약속이다. 권력구조 개편을 피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줄이고, 행정부와 국회가 협력하면서도 서로 견제할 수 있는 체제를 찾아야 한다. 비상권한이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도구로 악용되지 않도록 안전장치도 강화해야 한다. 다만 권력구조는 개헌의 한 장이지 표지와 본문 전체가 아니다. 정치권이 대통령의 임기와 권한 배분부터 앞세우는 순간 국민은 개헌을 현직 권력과 차기 권력 사이의 거래로 의심한다. 그 의심을 탓할 수 없다. 대한민국의 개헌사는 권력을 연장하거나 통치구조를 바꾸려는 정치적 계산과 자주 얽혀 있었다. 이번 개헌이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정치가 먼저 권력의 셈법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민이 찬성할 개헌은 대통령이 한 번 더 출마할 수 있는지를 정하는 헌법이 아니다. 내 정보가 인공지능에 함부로 이용되지 않고, 어느 지역에 살든 교육과 의료의 기회를 누리며, 기후재난의 비용을 아이들에게 떠넘기지 않고, 어떤 형태로 일하든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는 헌법이다. 대통령 임기만 고치기 위해 국민을 투표장으로 부르는 개헌은 성공하기 어렵다. 국민의 삶을 고치는 개헌이어야 국민이 움직인다. 권력의 자리를 다시 배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앞으로 40년을 살아갈 시민의 권리와 국가의 책임을 새로 쓰는 것. 그것이 10차 개헌이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2026-07-29 10:46:16
-
국회 원구성 답보…법사위 싸움에 민생경제 볼모 잡혔다
[경제일보] 22대 국회 하반기 원구성이 또다시 멈춰 섰다. 국회 의장단은 선출됐지만 정작 국회를 굴러가게 할 상임위원장 배분은 법제사법위원회 문턱에서 막혀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집권 여당으로서 국정과제와 민생입법을 뒷받침하려면 법사위원장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민의힘은 입법의 최종 관문인 법사위를 야당이 맡아야 견제와 균형이 가능하다고 맞선다. 여기에 정무위원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등 주요 경제 상임위원장 배분까지 얽히면서 협상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국회가 또 자리 싸움에 갇혔다. 여당은 책임정치를 말하고, 야당은 견제정치를 말한다. 말만 놓고 보면 둘 다 그럴듯하다. 그러나 국민 눈에는 다르게 보인다. 법사위원장 자리를 누가 차지하느냐는 정치권의 권력 계산일 뿐이다. 국민에게 더 절박한 것은 대출금리, 장바구니 물가, 전기요금, 일자리, 집값, 세금이다. 국회가 상임위원장 명패를 놓고 힘겨루기를 하는 사이 가계의 이자 부담은 줄지 않고 기업의 투자 결정은 미뤄지며 정부 정책은 국회 문턱에서 멈춰 선다. 법사위는 국회 입법의 수문장이다. 각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은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를 거쳐 본회의로 간다. 그래서 여야가 법사위원장을 놓고 물러서지 않는 것이다. 여당은 법사위를 야당에 넘기면 국정과제 입법이 막힐 수 있다고 본다. 야당은 여당이 법사위까지 장악하면 입법 독주를 막을 장치가 사라진다고 우려한다. 양쪽 모두 나름의 논리는 있다. 그러나 법사위가 입법 품질을 높이는 관문이 아니라 정쟁의 병목으로 변질된다면 그 논리는 국민 앞에서 설 자리를 잃는다. 더 심각한 것은 경제 상임위 공백이다. 정무위는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공정거래위원회 등 금융시장과 공정거래 질서를 다루는 핵심 상임위다. 재경위는 세제와 재정, 거시경제 정책을 좌우한다. 산자위는 반도체, 에너지, 통상, 산업경쟁력의 최전선이다. 예결위는 정부 예산의 마지막 문턱이다. 지금 한국 경제는 구조개혁과 경기 대응이 동시에 필요한 시점이다. 자본시장 밸류업, 가계부채 관리,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 부실 정리, 금융소비자 보호, 소상공인 지원, 반도체·AI·에너지 투자, 세수 관리, 민생 예산 조정이 모두 국회 논의와 맞물려 있다. 국회가 멈추면 경제정책도 멈춘다. 그 피해는 가장 먼저 가계로 간다. 금융 취약계층 지원, 서민금융 보강, 전세사기 피해 지원, 소상공인 채무조정, 통신비·에너지비 부담 완화 같은 민생 법안은 상임위가 열려야 논의된다. 여야가 법사위 명패를 두고 기 싸움을 벌이는 동안 서민은 이자 고지서를 먼저 받는다. 국회의 하루 공전은 정치권에는 협상 전략일지 몰라도 가계에는 생활비 압박이다. 민생을 입에 달고 사는 정치가 정작 민생의 시간을 갉아먹고 있다. 기업도 피해자다. 기업은 불확실성을 가장 싫어한다. 세법이 어떻게 바뀔지, 산업지원 예산이 유지될지, 금융규제가 풀릴지 조여질지, 노동·환경·공정거래 규정이 어느 방향으로 갈지 알 수 없으면 투자를 미룬다. 투자가 늦어지면 고용도 늦어진다. 특히 반도체, 배터리, 조선, 방산, AI 데이터센터, 에너지 인프라처럼 대규모 자본 투자가 필요한 산업은 국회와 정부의 정책 신호에 민감하다. 정치권이 상임위 배분을 놓고 시간을 허비하는 동안 해외 경쟁자는 투자 속도를 높인다. 국회의 정쟁은 기업에는 비용이고 국가경제에는 기회 손실이다. 정부도 발목이 잡힌다. 정부는 예산과 법률이라는 두 바퀴로 움직인다. 아무리 좋은 경제정책도 국회 상임위에서 논의되지 않으면 종이 위 계획에 머문다. 경기 대응책을 내놓아도 입법과 예산 뒷받침이 없으면 효과는 반감된다. 정부가 국회를 우회하려 하면 행정 독주 논란이 생기고 국회가 정부를 무조건 막으면 국정 마비가 된다. 여당은 다수의 힘을 절제해야 하고 야당은 견제의 이름으로 국회 정상화를 볼모로 삼아서는 안 된다. 지금의 대치는 어느 한쪽만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다. 양쪽 모두 국민경제 앞에서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 <논어>에는 “군자는 의로움에 밝고, 소인은 이익에 밝다”는 말이 있다. 국회가 지금 밝아야 할 것은 자리의 이익이 아니라 국민의 고통이다. 상임위원장 자리가 권력 배분의 전리품처럼 취급되는 순간 국회는 민의를 대표하는 기관이 아니라 정당 간 점령지가 된다. 법사위가 누구 손에 들어가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법사위가 국민을 위해 작동하느냐다. 정무위가 어느 당 몫이냐보다 중요한 것은 금융시장 안정과 소비자 보호, 공정거래 질서가 제대로 논의되느냐다. 정치권은 원구성 협상이 어려운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국민이 보기에는 어렵다기보다 염치가 없어 보인다. 국회는 다수결만으로 움직여서도 안 되지만 소수의 발목잡기로 멈춰서도 안 된다. 다수당은 책임 있게 의제를 추진하되 야당의 견제 공간을 보장해야 한다. 야당은 견제하되 국회 공백을 협상 카드로 써서는 안 된다. 상임위원장 배분은 정치적 협상의 대상일 수 있지만 국회 마비는 협상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정치권이 계산해야 할 것은 의석수가 아니라 손실이다. 국회가 하루 늦어질 때 민생 법안은 얼마나 밀리는가. 금융시장 불확실성은 얼마나 커지는가. 기업 투자 결정은 얼마나 지연되는가. 정부 예산 심사는 얼마나 압박받는가. 이런 비용표를 국민 앞에 내놓는다면 여야가 지금처럼 쉽게 강대강 대치를 이어갈 수 있겠는가. 국민은 법사위원장 이름보다 자신의 대출금리를 더 걱정한다. 정무위원장 배분보다 금융사고와 불완전판매 방지를 더 원한다. 예결위원장 몫보다 내년 예산이 어디에 쓰일지를 더 궁금해한다. 기업은 어느 당이 상임위를 차지했는지보다 정책의 예측 가능성을 원한다. 정부는 정쟁의 승리가 아니라 실행 가능한 국정 동력을 필요로 한다. 국회는 싸우라고 있는 곳이다. 그러나 싸움에도 순서가 있다. 먼저 문을 열고 회의를 열고 법안을 올리고 예산을 따져야 한다. 그다음에 치열하게 다투면 된다. 문도 열지 않은 채 열쇠를 누가 쥘지만 다투는 정치는 국민에게 설명할 수 없다. 국회를 열지 않는 정치는 견제가 아니라 직무유기다. 22대 국회 하반기 원구성 협상은 단순한 자리 싸움이 아니다. 한국 경제가 정치 리스크를 얼마나 더 견딜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시험대다. 여야가 법사위와 경제 상임위를 놓고 끝까지 힘겨루기를 벌인다면 그 비용은 국회가 아니라 국민이 낸다. 가계는 이자로 내고 기업은 투자 지연으로 내며 정부는 정책 실기라는 이름으로 낸다. 경제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국회가 멈춰도 시장은 움직이고 국회가 싸워도 국민의 청구서는 날아온다. 여야가 정말 민생을 말하려면 원구성부터 끝내야 한다. 권한을 나누는 협상보다 책임을 나누는 합의가 먼저다. 국회의 주인은 정당이 아니라 국민이다. 그 상식을 잊는 순간, 원구성 싸움은 정치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의 위험이 된다.
2026-06-29 16:08:29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