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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은 뒷전, 정쟁에 갇힌 국정감사
[경제일보] 국정감사가 반환점을 향해 가고 있지만 국회 곳곳에서 들리는 것은 정책을 둘러싼 토론보다 여야의 거친 공방이다. 지난 15일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에서는 공공기관장 인사자료 제출 문제로 여야가 충돌하면서 감사가 여러 차례 중단됐다. 같은 날 법제사법위원회에서도 대법관 재제청 문제 등을 둘러싸고 고성과 막말이 오갔다. 국정감사가 국민에게 보여줘야 할 장면인지 되묻게 한다. 국정감사는 헌법 제61조에 근거한 국회의 권한이다. 행정부와 공공기관의 정책 집행을 살피고 예산 낭비와 제도적 문제를 밝혀내는 것이 본래 목적이다. 정부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정책을 추궁하고 잘못된 행정을 바로잡는 일에는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올해 국감에서도 정치적 공방이 감사의 실질적인 진행을 가로막는 장면이 반복되고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에서 불거진 공공기관장 인사자료 제출 논란은 그 자체로 검증할 가치가 있는 사안이다. 기관장의 전문성과 직무 수행 능력을 확인하기 위한 자료 요구는 국회의 정당한 감시 활동에 속한다. 동시에 개인정보 보호와 자료 제출 범위에 관한 법적 기준도 존중해야 한다. 문제는 이런 쟁점을 합리적인 절차로 조정하지 못해 본질의가 지연됐다는 점이다. 자료 제출의 필요성과 범위를 명확히 판단하고 감사가 정상적으로 진행되도록 하는 것 역시 국회의 책임이다. 법제사법위원회의 대법관 재제청 논란도 사법부의 독립과 국회의 감시권이 맞닿은 중요한 사안이다. 여야가 치열하게 논쟁할 이유는 충분하다. 그러나 고성과 막말이 앞서면 정작 확인해야 할 법적 쟁점과 제도 개선 과제는 흐려진다. 국정감사에서 충돌이 발생했다는 사실만으로 이를 모두 정쟁이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 정부의 부당한 행위를 밝혀내기 위한 강한 추궁은 필요하다. 문제는 논쟁의 목적이 사실 확인과 정책 개선인지, 상대 진영에 정치적 타격을 주는 데 있는지다. 여당은 정부의 잘못을 무조건 방어해서는 안 된다. 국정 운영을 뒷받침하는 것과 정책 실패를 감싸는 것은 다르다. 야당 역시 의혹 제기만으로 견제의 책임을 다했다고 볼 수 없다. 비판에는 근거가 있어야 하고, 정책을 문제 삼았다면 실행 가능한 대안도 제시해야 한다. 국민이 국정감사에서 확인하고 싶은 것은 분명하다. 세금이 제대로 쓰였는지, 정부의 정책이 당초 목표를 달성했는지, 잘못된 행정으로 누가 피해를 봤으며 이를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지다. 이번 국감에서도 금융권 해킹과 고객정보 보호, 국립대병원 인력난 등 국민 생활과 직접 연결되는 현안이 다뤄졌다. 이러한 문제는 국회가 감사 이후까지 추적해야 할 과제다. 금융기관의 정보보호 체계가 얼마나 개선됐는지, 의료인력 부족으로 발생한 진료 공백을 어떻게 줄일 것인지 구체적인 결과를 확인해야 한다. 국정감사의 가치는 의원이 얼마나 날카롭게 질문했느냐보다 그 질문이 어떤 변화를 이끌었느냐에서 드러난다. 경제적 관점에서도 국회의 책임은 무겁다. 한국 경제는 저출생과 고령화, 생산성 둔화라는 구조적 과제에 직면해 있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인공지능을 둘러싼 기술 경쟁은 기업의 투자와 혁신을 재촉하고 있다. 국회가 관련 법률과 제도 개선을 장기간 미룬다면 기업과 국민의 정책 예측 가능성도 약화될 수밖에 없다. 물론 모든 경제적 어려움을 정치권의 정쟁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기업 투자에는 경기와 금리, 글로벌 수요 등 여러 요인이 작용한다. 그러나 국회가 해결해야 할 제도적 불확실성을 방치하는 것은 경제에 불필요한 부담을 더하는 일이다. 정치적 갈등이 불가피하다면 그 갈등을 정책의 우열을 가리는 생산적인 경쟁으로 바꿔야 한다. 서로 다른 해법을 놓고 논쟁하되 효과와 비용을 비교하고, 국민에게 판단의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 의회정치의 역할이다. 국정감사의 운영 방식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상임위원회별로 핵심 감사 과제와 정책 성과 지표를 명확히 정하고, 정부가 제출한 자료와 답변을 체계적으로 검증해야 한다. 자료 제출을 둘러싼 분쟁은 법률과 절차에 따라 신속하게 처리하고, 필요한 경우 비공개 열람 등 합리적인 대안도 활용할 수 있다. 감사 이후의 사후 관리도 강화해야 한다. 국정감사에서 제기된 지적 사항이 정부의 시정 조치로 이어졌는지, 예산과 제도가 실제로 개선됐는지 지속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이미 존재하는 국정감사 결과보고와 시정요구 처리 절차가 형식적인 문서 제출에 그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회의 감시권은 강해야 한다. 동시에 그 권한을 행사하는 과정에도 절제와 책임이 따라야 한다. 정부의 자료 제출 거부와 부실 답변에는 엄정하게 대응하되, 국회의원 역시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사실처럼 단정하거나 감사 시간을 정치적 공방에 소모하는 일을 경계해야 한다. 공자는 <논어> ‘안연’편에서 정치의 본질을 바름에 두었다. 오늘의 국회에도 필요한 기준이다. 상대를 이기는 것만으로 정치를 잘했다고 평가받을 수는 없다. 국민의 삶을 개선할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 여야가 서로 다른 정치적 입장을 갖는 것은 민주주의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그러나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정감사에서 최소한의 공통 목표마저 잃어서는 안 된다. 국정감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남은 기간 국회가 보여줘야 할 것은 더 자극적인 폭로나 더 큰 목소리가 아니다.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고 국민 생활의 문제를 해결하는 실질적인 성과다. 정쟁에서 이기는 국회보다 국정의 잘못을 고치는 국회가 필요하다. 국정감사의 성적표는 여야의 승패가 아니라 국민에게 남긴 변화로 평가받아야 한다.
2026-10-16 09: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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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수가 늘 때 재정규율을 세워야 한다
[경제일보] 한국 경제가 모처럼 성장률 반등을 기대하고 있다.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한국은행은 올해 경제성장률을 3.3%, 내년을 2.9%로 전망했다. 정부도 내년 국세수입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경기와 세수가 동시에 개선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국가재정의 앞날을 냉정하게 살펴야 한다. 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2027년도 예산안에 따르면 내년 총지출은 820조9000억원으로 올해보다 12.8% 증가한다. 역대 최대 규모다. 반면 정부는 반도체 호황 등에 따른 세수 증가를 바탕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올해 51.6%에서 내년 48.3%로 낮추겠다고 밝혔다. 관리재정수지 적자도 GDP 대비 3.9%에서 0.1%로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재정건전성 지표가 개선된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다만 여기에는 중요한 전제가 있다. 내년 국세수입이 정부 예상대로 확보돼야 한다는 것이다. 반도체 경기가 꺾이거나 대외 여건이 악화하면 세수 전망부터 달라질 수 있다. 경기 호황에 기대어 개선되는 재정과 제도적으로 건전성을 확보한 재정은 구분해야 한다. 한국 경제의 구조적 과제가 사라진 것도 아니다. 저출산과 고령화, 생산가능인구 감소, 생산성 둔화는 잠재성장률을 압박하고 있다. 올해 성장률이 높아졌다고 장기 성장능력까지 회복됐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연금과 의료·돌봄 등 고령화 관련 지출은 앞으로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국가채무의 부담도 단순히 채무 총액으로만 판단할 수 없다. 경제 규모에 비해 얼마나 빠르게 증가하는지, 세수로 이자를 감당할 능력이 충분한지, 국채 만기가 돌아왔을 때 어떤 금리로 차환해야 하는지 등을 두루 살펴야 한다. 과거 낮은 금리로 발행한 국채를 더 높은 금리로 차환하면 이자 부담이 커질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국채가 당장 높은 금리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만기 구조와 시장금리, 경제성장률에 따라 부담은 달라진다. 중요한 것은 재정에 예상하지 못한 충격을 견딜 여력이 있느냐다. 정치권은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재정 확대를 요구한다. 경기침체기에 정부가 재정을 활용해 취약계층을 보호하고 경제를 뒷받침하는 것은 필요한 역할이다.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지출도 무조건 낭비라고 볼 수 없다. 그러나 경기 대응을 명분으로 시작한 사업이 효과 검증 없이 유지되거나, 선거를 앞두고 재원 마련 방안이 불분명한 공약이 경쟁적으로 쏟아지는 것은 다른 문제다. 재정지출의 필요성과 효과, 지속 가능성을 따지는 절차가 정치적 이해관계에 밀려서는 안 된다. 국가재정은 어느 정권의 전유물이 아니다. 세금은 국민이 부담하고 국채는 미래의 재정 운용에도 영향을 미친다. 지금 지출하는 돈이 생산성을 높이고 미래의 세수 기반을 넓힌다면 다음 세대에도 이익이 돌아갈 수 있다. 반대로 효과가 불분명한 지출을 빚으로 충당한다면 미래세대의 선택지는 그만큼 좁아진다. 따라서 국가채무를 무조건 줄이는 것만이 책임 있는 재정은 아니다. 빚을 내더라도 무엇에 쓰는지, 그 지출이 어떤 경제적·사회적 편익을 만들어내는지가 중요하다. 재정준칙의 법제화가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가채무와 재정적자에 중장기 관리 기준을 두되 경기침체와 재난 등 불가피한 상황에서는 한시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예외를 허용한다면 적용 조건과 기간, 정상적인 재정 운용으로 복귀할 계획까지 분명히 해야 한다. 재정준칙은 정부가 필요한 돈을 쓰지 못하도록 손발을 묶는 장치가 아니다. 평상시에 재정 여력을 확보해 위기가 닥쳤을 때 제대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약속이다. 지출 구조조정도 숫자를 맞추는 작업에 그쳐서는 안 된다. 성과가 낮은 보조금과 중복 사업, 정책 목적을 달성했는데도 관행적으로 유지되는 예산은 과감하게 정리해야 한다. 반면 취약계층의 생계와 기본적인 사회안전망까지 일률적으로 삭감해서는 안 된다. 지출의 성격과 효과를 구분하는 것이 재정개혁의 출발점이다. 절감한 재원은 미래 성장 기반을 넓히는 데 우선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인공지능과 반도체, 바이오, 로봇, 우주항공 등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연구개발과 인재양성, 전력망과 산업 인프라에 장기간 투자해야 한다. 민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기초연구와 공공 기반시설에 정부가 역할을 집중하고 사업화와 시장 경쟁은 기업의 창의성과 자본을 활용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미래산업 지원에도 성과 검증은 예외일 수 없다. 첨단산업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모든 사업에 예산을 배정할 이유는 없다. 지원의 필요성과 민간투자 유발 효과, 중복 여부를 따져야 한다. 재정의 효율성을 높이는 일과 미래산업에 투자하는 일은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 지금은 오히려 재정개혁을 추진하기 좋은 시기다. 정부 전망대로 세수가 크게 늘고 재정수지가 개선된다면 그 성과의 일부를 중장기 재정위험을 줄이는 데 활용할 수 있다. 경기가 나쁠 때는 지출을 줄이기 어렵고, 경기가 좋을 때는 지출을 늘리자는 요구가 커진다. 이런 정치적 유혹을 제어하지 못하면 재정건전성은 경기의 부침에 따라 흔들릴 수밖에 없다. 정치권도 달라져야 한다. 국민에게 무엇을 더 지원할 것인지 설명하는 일만큼 그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고 기존의 어떤 사업을 정비할 것인지 밝히는 일도 중요하다. 여야가 재정준칙과 중장기 지출 개혁을 놓고 책임 있게 논의해야 하는 이유다. 재정은 오늘의 경제를 지탱하면서 내일의 성장 기반도 마련해야 한다. 어느 한쪽을 포기하는 방식으로는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관자>에는 “양입이출(量入而出)”, 들어오는 것을 헤아려 지출한다는 뜻의 말이 전해진다. 국가재정을 가계부처럼 단순하게 운영할 수는 없지만, 재원의 한계를 고려하고 지출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는 원칙은 여전히 유효하다. 한국 경제는 지금 반도체 호황이라는 기회를 맞고 있다. 그러나 특정 산업의 호황이 언제까지나 지속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세수가 늘 때 재정규율을 세우고, 성장의 과실을 미래 경쟁력과 재정 여력으로 연결해야 한다. 정치가 재정으로 국민의 삶을 개선하는 것은 당연한 책무다. 다만 그 성과를 다음 선거의 득표가 아니라 다음 세대가 물려받을 경제적 기반으로 평가받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재정의 책임은 돈을 얼마나 썼느냐가 아니라 그 지출이 무엇을 남겼느냐에서 드러난다.
2026-10-08 11:5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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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800조 반도체 투자에 숟가락 얹지 말라
[경제일보] 800조원. 기업 투자 규모만으로도 한국 산업사의 기록을 새로 쓸 만한 숫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추진하는 서남권 반도체 생산시설 투자 이야기다. 문제는 이 천문학적인 투자계획을 놓고 정치권의 지역 논쟁까지 거세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6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산업통상부 국정감사에서도 입지 선정 과정이 도마에 올랐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정부가 여러 후보지를 제안했고 최종 결정은 기업이 했다는 취지로 답했다. 야당 의원들은 기업들에 확인한 결과 특정 지역을 먼저 제안하거나 투자계획을 확정한 적이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며 정부 설명과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다. 누가 먼저 호남을 거론했느냐를 놓고 진실 공방을 벌이는 상황이다. 아직 확인되지 않은 부분까지 예단할 필요는 없다. 정부가 기업에 특정 지역 투자를 강요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도 아니다. 기업과 정부가 대규모 투자계획을 협의하면서 여러 후보지를 검토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다만 이번 논란은 800조원짜리 반도체 투자를 어떤 원칙으로 다뤄야 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반도체 공장은 지역개발 사업이 아니다. 전력과 용수, 부지와 물류, 인재, 협력업체, 연구개발 생태계를 종합적으로 따져 수십 년 뒤까지 경쟁력을 계산해야 하는 기업 투자다. 더구나 반도체는 한번 공장을 지으면 되돌리기 어려운 대표적인 장치산업이다. 투자액도 수십조원에서 수백조원에 이른다. 그 판단의 최종 책임은 투자하는 기업이 져야 한다. 세계 반도체 경쟁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미국과 대만, 일본, 중국, 유럽은 생산시설과 첨단기술을 자국에 끌어들이기 위해 세제와 보조금, 전력과 용수 등 기반시설을 경쟁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공장을 어디에 지을지를 결정하는 데 시간이 길어지거나 경제성 이외의 변수가 지나치게 개입하면 그 비용은 기업이 떠안는다. 결국 한국 반도체의 경쟁력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고 국가균형발전을 외면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수도권에 산업과 인구가 집중된 한국에서 지방에 첨단산업과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다. 수도권 반도체 클러스터 역시 전력과 용수 확보에 상당한 부담을 안고 있다. 새로운 생산거점을 비수도권에서 찾는 것은 산업정책 측면에서도 충분히 검토할 수 있는 선택지다. 문제는 순서다. 기업에 지방으로 가라고 요구하는 것과 기업이 지방을 선택할 만한 조건을 만들어주는 것은 전혀 다른 정책이다. 반도체 공장이 필요로 하는 것은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안정적인 전력과 막대한 양의 공업용수다. 장비와 소재·부품을 공급할 기업이 가까이 있어야 하고 국내외 고급인력이 일하고 정착할 수 있는 여건도 필요하다. 도로와 철도, 항만 같은 물류망도 갖춰야 한다. 정치와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바로 이런 조건을 만드는 것이다. 전력망과 용수시설을 제때 구축하고 교통·물류 인프라를 확충해야 한다. 대학과 연구기관, 기업을 연결해 인재를 키우고 교육·의료·주거 등 정주환경도 개선해야 한다. 인허가 기간을 줄이고 세제와 연구개발 지원의 예측 가능성도 높여야 한다. 그렇게 해서 기업이 사업성만 따져도 지방을 선택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제대로 된 균형발전이다. 지역끼리 경쟁하는 것도 나쁠 이유가 없다. 오히려 필요하다. 다만 정치적 영향력으로 기업을 끌어가는 경쟁이 아니라 어느 지역이 더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하고 인재를 확보하며 빠르게 인허가를 처리할 수 있는지를 놓고 경쟁해야 한다. 중앙정부도 심판과 지원자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특정 지역에 공장을 배정하는 주체가 아니라 각 지역이 경쟁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 기업의 선택을 지원해야 한다. 이번 800조원 투자를 정치적 성과로 앞세우는 것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 발표된 투자계획이 곧바로 집행되는 것은 아니다. 반도체 경기는 변하고 기술도 바뀐다. 글로벌 수요와 메모리 가격, 금융시장과 기업의 수익성에 따라 투자 시기와 규모가 조정될 수도 있다. 기업 역시 투자계획을 발표하면서 시장·경영상황에 따라 내용이 달라질 가능성을 열어뒀다. 수백조원의 숫자를 먼저 정치적 치적으로 만들어놓으면 나중에 기업의 합리적인 투자 조정까지 정치적 실패나 약속 파기로 몰아갈 위험이 있다. 기업의 투자는 기업이 책임지고 정부 지원에는 정부가 책임지면 된다. 특히 국민 세금이 들어가는 전력망과 용수, 산업단지, 세제지원에는 더 엄격한 경제성 검토와 투명성이 필요하다. 기업 자율을 강조한다고 해서 무조건적인 지원까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기업의 투자 결정을 존중하되 국가가 부담하는 비용과 기대효과를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국회가 할 일도 분명하다. 반도체 특별법과 관련 예산을 어느 지역이 얼마나 가져갈지를 놓고 경쟁하기보다 한국에서 반도체 공장을 짓는 데 무엇이 부족한지를 살펴야 한다. 전력과 용수, 인력과 연구개발, 세제와 인허가 가운데 경쟁국보다 뒤처진 것이 무엇인지 찾아 고치는 것이 먼저다. <관자>에는 “창고가 가득 차야 예절을 알고, 먹고 입는 것이 풍족해야 영욕을 안다(倉廩實而知禮節, 衣食足而知榮辱)”는 말이 있다. 국가의 산업정책도 경제적 토대를 무시한 채 명분만 앞세워서는 오래가기 어렵다. 균형발전이라는 목표가 아무리 옳더라도 산업이 지속될 경제적 기반이 없다면 성공하기 어렵다. 반대로 지방이 기업하기 좋은 곳이 되면 정치가 기업에 내려가라고 요구하지 않아도 투자는 움직인다. 800조원은 정치권의 전리품이 아니다. 특정 지역의 몫으로 미리 떼어놓을 돈도 아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집행하는 민간의 장기 투자다. 동시에 그 투자의 성공 여부가 한국 경제 전체에 영향을 미칠 국가적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때문에 정치의 역할은 더 절제돼야 한다. 기업이 투자할 곳을 정치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투자하고 싶은 곳을 만드는 것. 기업의 결정을 정치적 치적으로 포장하는 대신 전력망 하나, 용수시설 하나라도 제때 완성하는 것. 그것이 800조원 앞에서 정치가 해야 할 일이다. 세계 반도체 전쟁에서 중요한 것은 어느 정치세력이 투자계획에 이름을 올렸느냐가 아니다. 누가 더 빨리 공장을 짓고 더 좋은 반도체를 만들어 시장을 선점하느냐가 승부를 가른다. 정치가 800조원에 숟가락을 얹기보다 반도체가 달릴 길부터 닦아야 한다.
2026-10-07 14: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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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무역은 예고하고 온다…통상도 먼저 움직여야 한다
[경제일보] 세계 철강시장의 문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미국은 철강에 50%의 고율 관세를 매기고 있고 유럽연합(EU)은 지난 7월부터 무관세 수입 물량을 대폭 줄였다. 여기에 미국 철강업계가 최근 한국산 철강 수입 증가를 공개적으로 문제 삼고 나섰다. 지난달 28일 미국철강협회(AISI)는 미 상무부와 무역대표부(USTR)에 한국산 철강 수입 증가에 대응해 달라고 요구했다. AISI에 따르면 한국산 장척 철강제품의 미국 수입량은 2024년 7월 2만2100톤(t)에서 올해 7월 14만5300t으로 늘었다. 철근을 포함한 일부 품목의 급증세가 미국 철강산업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아직 미국 정부가 한국산 철강에 추가 규제를 결정한 것은 아니다. 업계가 정부에 조치를 요구한 단계다. 그럼에도 가볍게 볼 사안은 아니다. 미국은 지난해 철강 관세를 25%에서 50%로 올렸고, 한국이 2018년부터 적용받았던 무관세 쿼터도 지난해 3월 폐지됐다. 유럽의 장벽도 높아졌다. EU는 지난 7월 기존 철강 세이프가드를 새로운 관세할당제도(TRQ)로 대체했다. 전체 무관세 물량은 연간 3382만t에서 1835만t으로 약 46% 줄었고 쿼터를 넘어선 물량에는 50%의 관세가 붙는다. 한국은 협상을 통해 전용 쿼터 207만3000t을 확보했다. 이전보다 19.7% 줄었지만 EU 전체 쿼터가 크게 축소된 상황을 고려하면 정부가 시장 접근 기반을 상당 부분 방어했다는 평가도 가능하다. 정부는 지난 5월부터 EU 집행위원회를 상대로 우리 업계의 우려를 전달하고 협상을 벌였다. 이 대목은 분명히 평가해야 한다. 보호무역 장벽이 높아질 때마다 정부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그러나 문제는 이제부터다. 철강을 둘러싼 세계의 움직임은 개별 국가와 벌이는 관세 협상의 수준을 넘어섰다. 지난달 30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글로벌 철강 공급과잉 포럼에 참여한 28개 시장경제국은 공급과잉에 공동 대응하는 이른바 ‘밀워키 프레임워크’를 내놓았다. 반덤핑과 상계관세, 세이프가드 등 무역구제 수단을 적극 활용하고 공급과잉을 키우는 보조금에 대한 대응을 강화하는 것이 골자다. OECD는 세계 철강 과잉생산능력이 지난해 6억100만t에서 올해 7억4500만t까지 늘어날 것으로 추산했다. 중국을 중심으로 한 공급과잉에 대응하겠다는 명분 아래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주요국의 시장 방어가 한층 거세질 가능성이 커졌다는 얘기다. 한국에는 간단하지 않은 문제다. 중국발 저가 철강의 유입을 막아야 하는 동시에 미국과 유럽에서는 한국산 제품이 규제 대상이 되지 않도록 방어해야 한다. 국내에서는 보호가 필요하고 해외에서는 시장 개방을 요구해야 하는 난처한 위치에 놓여 있다. 통상당국의 능력이 시험받는 지점도 바로 여기다. 앞으로 필요한 것은 문제가 터질 때마다 협상단을 보내는 대응을 넘어 주요 시장의 정책 변화를 먼저 읽는 시스템이다. 미국 철강업계와 의회에서 어떤 요구가 나오고 있는지, EU가 탄소와 공급과잉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무역규제에 연결하는지 상시적으로 추적해야 한다. 특정 품목의 수출이 급증하면 현지에서 어떤 반작용이 생길지도 미리 살펴야 한다. 이번 미국 철강업계의 문제 제기가 좋은 사례다. 7월 한국산 철강의 미국 수입량은 55만6000t으로 전월보다 32% 늘었다. 미국 철강업계가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수준의 변화라면 정부와 업계가 수출 증가의 배경과 품목별 영향을 미리 분석해 둘 필요가 있었다. 통상은 상품을 많이 파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수출이 빠르게 늘 때 상대국 산업과 정치권이 어떻게 움직일지까지 읽어야 한다. 철강 문제를 철강만의 문제로 다뤄서도 안 된다. 한국은 미국에서 자동차와 배터리, 반도체, 조선, 방산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다. 알래스카 LNG와 에너지 프로젝트를 둘러싼 협력도 논의되고 있다. 미국 역시 한국의 조선과 제조업 역량을 필요로 한다. 철강 협상도 이 큰 판에서 볼 필요가 있다. 한국산 철강이 미국 자동차·조선·에너지 산업의 공급망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구체적인 숫자로 보여주고, 한국 기업의 대미 투자와 고용 효과까지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해야 한다. 철강 수입량 하나만 놓고 방어하는 협상보다 산업협력 전체의 이해관계 속에서 문제를 푸는 편이 협상력을 높일 수 있다. 유럽에서는 또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 EU는 단순한 수입규제를 넘어 탄소배출까지 무역의 조건으로 만들고 있다.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대표적이다. 앞으로 유럽 시장에서 철강의 경쟁력은 가격과 품질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얼마나 적은 탄소를 배출해 생산했는지도 상품 경쟁력의 일부가 된다. 결국 통상정책과 산업정책이 한 몸처럼 움직여야 한다. 정부가 기업에 시장 다변화와 고부가가치화를 주문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새로운 시장의 인증과 규제 정보를 제공하고 무역보험과 금융, 현지 투자, 통상법률 지원을 묶어야 한다. 기업도 범용재 중심의 경쟁에서 벗어나 자동차강판과 조선·에너지용 특수강 등 쉽게 대체하기 어려운 제품의 비중을 높여야 한다. 저탄소 철강 기술 역시 수출 경쟁력을 좌우할 요소가 됐다. 정부가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것도 거창한 새 조직보다 이런 변화를 조기에 포착하고 움직이는 체계다. 미국의 관세와 의회 동향, EU의 쿼터와 환경규제, 주요국의 보조금과 무역구제 조치를 상시 분석하고 국내 산업에 미칠 영향을 수치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 위험 수준에 따라 기업과 관계부처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미리 정해두는 것이 좋다. 통상에도 금융시장의 스트레스 테스트와 비슷한 접근이 필요하다. 정부가 그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EU 철강 쿼터 협상에서는 정상급과 고위급, 실무 채널을 가동해 한국 전용 물량을 확보했다. 미국 관세에도 정부와 기업이 대응해왔다. 이제 필요한 것은 대응의 속도와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일이다. 보호무역은 더 이상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다. 미국의 관세, EU의 쿼터와 탄소규제, 각국의 보조금 정책이 뒤섞이면서 새로운 통상질서 자체가 되고 있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해결하는 방식만으로는 따라가기 어렵다. 철강은 그 변화가 가장 먼저 나타난 산업일 뿐이다. 다음은 자동차가 될 수도 있고 배터리와 반도체가 될 수도 있다. <손자병법>은 “승병선승이후구전(勝兵先勝而後求戰)”이라 했다. 이기는 군대는 먼저 이길 조건을 만들어 놓은 뒤 싸움에 나선다는 뜻이다. 통상도 다르지 않다. 협상장에 앉은 뒤 대응책을 찾기 시작해서는 늦다. 상대국 산업과 정치권이 어떤 요구를 꺼낼지 예상하고 우리가 내놓을 카드와 지켜야 할 선을 미리 정해둬야 한다. 한국은 수출로 성장한 나라다. 보호무역의 파고를 피할 수 없다면 적어도 파도가 어디에서 얼마나 높게 올지는 먼저 읽어야 한다. 정부의 통상 역량도 이제 ‘얼마나 잘 수습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먼저 알고 움직였느냐’로 평가받아야 한다.
2026-10-06 14: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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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기다리는 시간도 규제다
[경제일보] 정부가 규제와 인허가에 발이 묶인 7조9000억원 규모의 기업 투자를 앞당기기로 했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의 전기차 생산라인 전환을 비롯해 청정수소, 이차전지, 첨단센서 등 현장에서 대기 중인 투자 프로젝트의 행정절차를 줄이는 것이 골자다. 반도체 공장을 지을 때 따로 발주하던 전기·통신공사의 통합발주도 허용하기로 했다. 방향은 옳다. 정부가 기업에 보조금을 주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산업정책은 이미 투자할 의사가 있는 기업의 발목을 잡는 장애물을 걷어내는 일이다. 이번 대책에서 눈여겨볼 대목이 현대차 울산공장이다. 현대차는 약 4조원을 들여 기존 내연기관차 생산라인을 자율주행 전기차 중심 공장으로 재건축할 계획이다. 문제는 시간이다. 사업계획 심의와 환경·교통·재해 영향평가, 건축·안전 관련 인허가 등을 거치면 행정절차에 3년 이상 걸릴 우려가 있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정부와 울산시는 전담 프로젝트매니저(PM)를 두고 각종 영향평가와 인허가를 동시에 진행해 이를 1년 이내로 줄이겠다고 했다. 여기서 생각해볼 대목이 있다. 필요한 심사를 생략하지 않고도 1년 안에 처리할 수 있다면 지금까지 3년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됐던 이유는 무엇인가. 환경과 안전을 무시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공장을 빨리 짓겠다고 환경영향평가를 없애거나 산업안전 기준을 낮춰서는 안 된다. 주민의 재산권과 생활환경도 보호해야 한다. 이번 대책 역시 관련 심사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여러 절차를 동시에 진행하고 사전 컨설팅을 통해 시간을 줄이는 방식이다. 없애야 할 것은 안전장치가 아니라 행정의 군더더기다. 부처와 기관마다 비슷한 자료를 요구하고 앞 단계의 절차가 끝나야 다음 심사를 시작하는 관행이 있다면 이를 그대로 둘 이유가 없다. 행정기관끼리 협의할 일을 기업이 서류를 들고 돌아다니며 해결하도록 하는 것도 정상적인 행정이라고 보기 어렵다. 규제의 비용은 행정수수료만으로 계산되지 않는다. 기업에는 시간이 곧 비용이다. 특히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배터리, 바이오처럼 기술 변화가 빠른 산업에서는 그렇다. 경쟁국 기업이 공장을 짓고 제품을 시장에 내놓는 동안 국내 기업이 인허가를 기다리고 있다면 1~2년의 차이가 시장점유율을 바꿀 수 있다. 한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산업경쟁력의 문제가 된다. 세계 각국이 기업 유치에 사활을 거는 이유다. 미국과 중국, 일본, 유럽은 반도체와 AI, 배터리 등 전략산업을 자국에 끌어들이기 위해 보조금과 세제지원, 산업 인프라를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 한국은 애국심 때문에 반드시 투자해야 하는 시장이 아니다. 인건비와 세금, 인재, 시장 접근성, 규제 그리고 정책의 예측 가능성을 따져 투자처를 정한다. 한국이 경쟁해야 할 것도 결국 이런 조건이다. 그런 점에서 규제개혁의 성적표부터 바꿀 필요가 있다. 역대 정부는 출범할 때마다 규제혁신을 내걸었다. 폐지하거나 개선한 규제의 숫자를 성과로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기업에는 규제 몇 건을 없앴느냐보다 투자 결정에서 공장 가동까지 몇 달이 걸리는지가 훨씬 중요하다. 규제개혁의 성적표를 ‘폐지 건수’보다 ‘줄어든 투자 대기시간’으로 매겨보자는 것이다. 오래된 규제를 정기적으로 다시 살펴보는 장치도 필요하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 환경, 공정한 시장질서를 지키는 규제는 엄격하게 유지해야 한다. 반면 기술과 산업구조가 바뀌었는데 과거의 이해관계나 행정편의 때문에 남아 있는 규제라면 존치 이유부터 다시 따져야 한다. 기업에 규제 철폐의 필요성을 입증하라고 요구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정부도 그 규제를 계속 유지해야 할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첨단산업의 기반시설은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책임져야 한다. 반도체 공장은 기업이 지을 수 있지만 송전망과 용수망까지 기업 혼자 해결하기는 어렵다. AI 데이터센터 역시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없다면 들어설 수 없다. 산업용지와 전력·용수·통신망, 연구개발 기반과 인재 공급은 개별 기업의 능력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정부의 역할은 이런 곳에서 더 커져야 한다. 노동시장도 달라진 산업환경을 따라갈 필요가 있다. 제조업과 연구개발, 정보기술 기업의 일하는 방식이 모두 다른 만큼 노사 합의를 전제로 업종과 업무 특성에 맞는 근로시간 선택권을 넓히는 방안을 논의할 수 있다. 생산성과 직무의 가치를 보다 잘 반영하는 임금체계에 대한 사회적 논의도 필요하다. 다만 노동 유연화가 노동자의 권리를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흘러서는 오래가기 어렵다. 기업의 인력 운용에 선택지를 넓혀준다면 실직과 전직 과정에서 노동자를 보호할 고용안전망과 재교육 체계도 함께 강화해야 한다. 유연성과 보호를 서로 반대편에 세워놓고 어느 하나만 선택해서는 개혁의 지속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세제에서는 무엇보다 예측 가능성이 중요하다. 반도체를 비롯한 국가전략기술과 연구개발에 대한 세액공제는 기업의 장기 투자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 지원 규모 못지않게 제도가 얼마나 안정적으로 유지되는지도 중요하다. 수조원에서 수십조원이 들어가는 생산시설을 짓는 기업이라면 몇 년 뒤 투자환경이 어떻게 달라질지 가늠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가 어떤 기업과 기술이 성공할지를 대신 결정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시장과 기업가의 몫이다. 정부는 기업이 공정하게 경쟁할 운동장을 만들고 민간이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기반시설과 기초 연구개발을 책임하는 데 집중하면 된다. ‘기업을 지원하는 정부’보다 ‘기업이 뛰기 좋은 정부’가 필요한 이유다. 규제완화의 목적도 기업의 비용을 줄이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된다. 기업 투자가 늘고 생산성이 높아져 좋은 일자리가 만들어져야 한다. 기업이 거둔 성과가 임금과 가계소득, 소비로 이어질 때 규제개혁은 국민의 지지를 얻는다. 기업 활력과 민생은 따로 떨어진 문제가 아니다. <한비자>에는 “법불아귀(法不阿貴)”, 법은 귀한 사람에게 아첨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규제개혁에도 적용할 만한 원칙이다. 힘 있는 대기업이 민원을 제기할 때마다 예외를 만들어주는 것이 규제개혁이어서는 안 된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같은 기준 아래 필요한 행정서비스를 예측 가능한 시간 안에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번 7조9000억원 투자지원 대책은 그런 의미에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정부가 기업 현장의 애로를 찾아 규제와 행정절차를 손보기 시작했다는 점은 평가할 만하다. 문제는 다음이다.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여러 행정절차를 동시에 진행할 수 있다면 다른 공장에서는 왜 안 되는가. 반도체 팹에서 불필요한 공정 지연을 줄일 수 있다면 다른 첨단산업에도 비슷한 규제가 남아 있지는 않은가. 기업이 정부에 어려움을 호소할 때마다 하나씩 해결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행정 시스템 자체를 들여다봐야 한다. 규제는 필요한 곳에서는 단단해야 하고 필요 없는 곳에서는 과감히 걷어내야 한다. 안전과 환경, 시장의 공정성을 지키는 기준은 낮춰서는 안 된다. 대신 투자와 혁신을 가로막으면서도 정책 목적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절차는 오래됐다는 이유만으로 남겨둘 필요가 없다. 기업에 투자하라고 주문하기 전에 기업이 투자하기 어렵게 만든 정부 자신의 절차부터 살펴야 한다. 한국 경제에 지금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거창한 성장 구호가 아니다. 투자할 기업이 제때 공장을 짓고 기술을 개발하며 사람을 고용할 수 있게 만드는 일이다. 규제개혁의 성패는 없앤 규제의 숫자가 아니라 앞당겨진 투자와 높아진 생산성, 새로 생긴 일자리로 평가받아야 한다. 7조9000억원의 현장대기 투자를 움직이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기업이 기다리는 시간을 줄이는 행정으로 바꿔야 한다. 경제의 속도를 정부의 절차가 늦추는 일부터 없애야 한다.
2026-10-02 11: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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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성장에 가려진 숙제, '반도체 다음'을 준비할 때다
[경제일보] 한국 경제가 모처럼 좋은 숫자를 받아들었다. 국회예산정책처(예정처)는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3.5%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 3월 전망보다 1.5%포인트 높였다. 수년간 1~2%대 성장에 익숙해진 우리 경제로서는 반가운 변화다. 오늘 아침 나온 수출 성적표는 더 화려하다. 9월 수출은 1209억4000만 달러로 사상 처음 월 1200억 달러를 넘어섰다. 1~9월 누적 수출도 8145억 달러로 지난해 연간 실적을 이미 웃돌았다. 무역수지는 498억5000만 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그 중심에 반도체가 있다. 9월 반도체 수출은 603억 달러로 처음 600억 달러를 돌파했다. 지난해 같은 달보다 262.8% 늘었다. 인공지능(AI) 투자 확대가 메모리 수요를 끌어올리고 수출 물량과 가격이 함께 뛰면서 한국 경제를 밀어 올리고 있다. 좋은 성적은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 반도체는 한국이 세계 시장에서 확보한 몇 안 되는 확실한 비교우위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경쟁력이 커지면 소재·부품·장비 기업으로 주문이 이어지고 설비투자가 늘어난다. 수출과 경상수지가 좋아지고 세수에도 도움이 된다. 반도체 호황 자체를 경계할 이유는 없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그다음이다. 예정처가 내다본 내년 성장률은 2.7%다. 올해보다 0.8%포인트 낮다. 2026~2030년 연평균 성장률 역시 2.7%로 전망했다. 올해 잠재성장률은 2.2%, 앞으로 5년 평균은 2.3% 수준이다. 내년 2.7% 성장을 경기침체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예정처는 수출 호조가 이어지는 가운데 설비투자와 민간소비를 중심으로 내수도 회복할 것으로 봤다. 성장률도 잠재성장률을 웃돈다. 올해의 높은 성장세가 내년에는 다소 정상화된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그런데도 3.5%와 2.7% 사이에는 한국 경제가 풀어야 할 문제가 숨어 있다. 올해 성장의 상당 부분을 반도체가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9월만 놓고 보면 전체 수출 1209억 달러 가운데 반도체가 603억 달러다. 거의 절반이다. 특정 월의 이례적으로 높은 비중을 우리 수출의 평상시 구조로 일반화할 수는 없다. 하지만 반도체 경기가 전체 수출과 성장률을 크게 좌우하는 현실만큼은 분명해졌다. 예정처도 반도체 쏠림을 별도의 위험 요인으로 짚었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늘어난 기업이익과 국민소득이 다른 산업의 투자와 일자리, 가계소득으로 퍼지는 데 시간이 걸리고 수혜 산업과 그렇지 않은 산업 사이의 격차가 커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사상 최대 수출에도 자영업자나 일부 중소기업이 경기 회복을 선뜻 체감하지 못하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첨단 반도체 공장은 수십조원을 투자해도 자동화 수준이 높다. 과거 제조업 호황처럼 수출 증가가 곧바로 대규모 고용 증가로 이어지는 구조와는 거리가 있다. 기업의 영업이익이 늘어나는 속도와 가계의 살림살이가 나아지는 속도에도 차이가 생긴다. 더 근본적인 숫자는 잠재성장률이다. 한 해 성장률은 경기와 수출 여건에 따라 크게 움직인다. 잠재성장률은 한 나라가 물가 불안을 키우지 않으면서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초체력에 가깝다. 예정처가 내다본 향후 5년 평균은 2.3%다. AI 투자와 생산성 향상으로 자본과 생산성의 기여는 커지지만 인구 감소 탓에 노동의 성장 기여는 계속 낮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저출생·고령화를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서비스업의 낮은 생산성을 끌어올려주는 것도 아니며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저절로 없애지도 않는다. 우리는 이미 여러 차례 반도체의 힘과 한계를 함께 경험했다. 메모리 가격이 오르면 수출과 설비투자, 세수가 한꺼번에 좋아졌다. 사이클이 돌아서면 세 지표가 동시에 흔들렸다.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산업을 가진 것은 한국 경제의 큰 자산이다. 그렇다고 나라 경제 전체를 한 산업의 경기 사이클에 오래 맡겨둘 수는 없다. 지금의 호황은 AI 투자 붐과도 맞물려 있다. 예정처는 미국 장기금리 상승에 따른 AI 투자 둔화 가능성과 미국의 관세정책, 중국과의 경쟁 심화를 향후 성장경로의 위험 요인으로 꼽았다. 우리가 결정할 수 없는 외부 변수가 지금의 호황을 흔들 가능성은 언제든 열려 있다. 그러니 지금 해야 할 일은 반도체 호황의 의미를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다. 반도체가 벌어준 시간과 돈을 다음 성장동력을 만드는 데 쓰는 것이다. 구조개혁은 불황보다 호황기에 하기 쉽다. 경기가 꺾이면 기업은 투자 여력을 잃고 정부의 세수도 줄어든다.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개혁에 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감당하기도 어려워진다. 수출과 기업이익, 세수가 함께 좋아지는 지금이 오히려 손대기 어려웠던 숙제를 풀 기회다. 반도체 산업에 대한 지원부터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미국과 중국, 대만, 일본, 유럽까지 국가 차원의 반도체 경쟁을 벌이고 있다. 전력망과 용수, 연구개발, 인재 공급은 개별 기업이 홀로 해결하기 어려운 국가 인프라의 영역이다. 동시에 산업정책의 시선을 그 너머로 넓혀야 한다. AI 서비스와 바이오, 로봇, 방산, 에너지, 콘텐츠 등에서 반도체의 뒤를 이을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하고 키워야 한다. 중소기업과 서비스업의 생산성을 높이고 대학과 직업교육을 산업 수요에 맞게 바꾸는 일도 서둘러야 한다. 반도체에서 생긴 자본과 기술, 인재가 다른 산업으로 흘러갈 통로가 넓어져야 반도체 기업의 호황이 한국 경제 전체의 호황으로 이어진다. <관자(管子)>에는 “일년지계 막여수곡, 십년지계 막여수목, 종신지계 막여수인(一年之計 莫如樹穀, 十年之計 莫如樹木, 終身之計 莫如樹人)”이라는 구절이 있다. 한 해를 내다보면 곡식을 심고 10년을 내다보면 나무를 심으며 평생을 내다보면 사람을 키우라는 뜻이다. 경제도 다르지 않다. 반도체 공장 하나를 더 짓는 일은 몇 년 뒤 수출을 늘릴 수 있다. 사람을 키우고 대학과 노동시장을 바꾸며 산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일은 10년 뒤 나라의 성장률을 바꾼다. 9월 수출 1209억 달러와 반도체 603억 달러는 한국 기업들이 세계 시장에서 일궈낸 값진 성과다. 기록은 기록대로 평가해야 한다. 다만 그 숫자가 한국 경제의 오래된 숙제까지 해결됐다는 증거는 아니다. 올해 3.5%와 내년 2.7% 사이에서 읽어야 할 것도 성장률의 단순한 오르내림이 아니다. 반도체가 밀어준 성장의 힘을 다른 산업과 가계, 다음 세대의 성장으로 얼마나 옮겨놓을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호황은 언젠가 끝난다. 사이클도 다시 돈다. 좋은 시절에 할 일은 축배를 오래 드는 것이 아니라 다음 겨울을 견딜 체력을 비축하는 것이다. 반도체가 벌어준 지금의 시간을 허투루 써서는 안 된다. 다음 호황에도 또 반도체 하나만 바라보고 있다면 우리는 이번 호황에서 충분히 배우지 못한 것이다.
2026-10-01 13: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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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톡에 다 넣었다…카카오, 월 4900원 통합 멤버십 출시
[경제일보] 카카오가 서비스별로 흩어져 있던 쇼핑·결제·콘텐츠·금융 혜택을 월 4900원의 통합 멤버십으로 묶으면서 유료 구독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 단일 서비스의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카카오톡을 중심으로 여러 계열 서비스의 이용을 연결해 고객의 서비스 이용 빈도와 체류를 늘리는 전략이다. 월 구독료를 네이버플러스 멤버십과 같은 4900원으로 책정하면서 플랫폼 간 멤버십 경쟁도 한층 구체화될 전망이다. 1일 카카오는 카카오톡 선물하기와 톡딜, 카카오페이, 멜론, 카카오페이지, 이모티콘, 톡클라우드, 카카오페이손해보험, 카카오페이증권 등 주요 서비스의 혜택을 결합한 '카카오멤버십'을 출시하고 선착순 가입 신청을 받는다고 밝혔다. 카카오멤버십의 월 구독료는 4900원이다. 카카오는 초기 서비스 안정화를 위해 소규모 이용자를 대상으로 선착순 가입을 진행한 뒤 가입 대상을 단계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앞서 지난달 사전 공개 당시에도 소프트런칭 이후 이용자를 확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카카오는 멤버십을 '첫 만남 혜택', '적립 혜택', '콘텐츠 혜택', '실속 혜택'으로 구성했다. 신규 가입자는 카카오페이증권 계좌에 4900원 상당의 국내 주식을 받고, 멜론에서는 총 6000원 상당의 캐시를 제공받는다. 만 19세 미만에게는 주식 대신 올리브영 할인 쿠폰이 제공된다. 이번 멤버십의 핵심 혜택은 쇼핑과 결제다. 선물하기와 톡딜 결제 시 결제수단과 관계없이 결제금액의 0.5~5%를 쇼핑포인트로 적립할 수 있으며 월 최대 2만 포인트까지 제공한다. 카카오페이머니를 이용하면 선물하기·톡딜에서 0.5~1%, 오프라인 결제에서는 0.5~2%의 카카오페이포인트를 월 최대 5만 포인트까지 적립할 수 있다. 콘텐츠 혜택은 이모티콘 플러스와 톡클라우드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방식이다. 월 3900원 상당의 이모티콘 플러스는 85만개 이상의 카카오 이모티콘을 이용할 수 있고, 톡클라우드는 카카오톡 대화와 미디어 파일 등을 보관할 수 있는 130GB 이용권을 제공한다. 카카오페이지 2000 캐시, 카카오페이증권 국내 주식 매도 수수료 최대 4900원 캐시백, 카카오페이손해보험의 휴대폰 액정 파손 보상, 멜론 스트리밍 라이트 할인 구독 등도 실속 혜택으로 포함했다. 카카오가 이처럼 여러 서비스를 하나의 구독 상품으로 묶은 것은 개별 서비스의 혜택을 넘어 카카오 생태계 안에서의 교차 이용을 늘리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선물하기에서 쇼핑하고 카카오페이로 결제한 뒤 포인트를 적립하고, 콘텐츠나 금융 서비스를 추가로 이용하는 식으로 서비스 간 접점을 촘촘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카카오멤버십은 카카오톡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기존 카카오의 서비스 확장 전략과 연결된다. 이용자가 별도의 새로운 플랫폼으로 이동하지 않고 카카오톡에서 멤버십 가입과 혜택 확인을 시작할 수 있어 카카오가 보유한 기존 이용자 기반을 다양한 유료 서비스로 연결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 월 4900원이라는 가격은 네이버와의 멤버십 경쟁에서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현재 네이버플러스 멤버십도 월 4900원에 쇼핑·예약 결제 시 네이버페이 포인트 최대 5% 적립과 매월 선택할 수 있는 디지털 콘텐츠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현재 콘텐츠 선택지는 넷플릭스, 스포티파이, PC게임패스, 네이버웹툰·시리즈 쿠키 등으로 구성돼 있다. 두 플랫폼의 가격은 같지만 서비스 구성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네이버플러스가 네이버 쇼핑을 중심으로 콘텐츠와 오프라인 제휴 혜택을 넓혀가는 구조라면, 카카오는 카카오톡을 기반으로 선물하기·톡딜 같은 커머스에 카카오페이, 멜론, 카카오페이지, 증권·보험 등 계열 서비스의 혜택을 결합했다. 네이버가 쇼핑을 핵심 축으로 멤버십 이용을 확장해왔다면 카카오는 메신저를 접점으로 여러 서비스의 이용을 하나의 구독 경험으로 연결하는 형태다. 네이버는 최근에도 콘텐츠 선택권을 확대하고 오프라인 혜택을 추가하면서 멤버십의 사용처를 넓혀왔다. 카카오 입장에서는 멤버십 가입자 수를 늘리는 것뿐 아니라 가입자들이 카카오 계열 서비스를 얼마나 자주 함께 사용하는지가 중요해질 것으로 분석된다. 멤버십을 매개로 선물하기·톡딜과 카카오페이의 결제가 늘고 콘텐츠 서비스 이용도 확대된다면 개별 서비스 이용자를 하나의 유료 고객으로 묶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전망이다. 공개된 이번 멤버십은 카카오 계열 서비스가 중심이지만 카카오는 향후 다양한 서비스와의 연계를 통해 혜택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외부 제휴처를 얼마나 확보할지, 기존 유료 서비스와 차별화되는 멤버십 전용 혜택을 얼마나 만들지가 가입자 확대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특히 카카오에는 카카오톡이라는 대규모 이용자 기반과 선물하기·톡딜·카카오페이 등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서비스가 있다는 점이 멤버십 확대의 기반이 될 수 있다. 다만 무료로 이용해온 서비스의 이용자를 월 유료 구독자로 전환하려면 단순히 혜택을 많이 제공하는 것뿐 아니라 이용자가 매달 구독료 이상의 가치를 지속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카카오는 이날부터 카카오톡 톡채널 알림과 카카오톡 '더보기 > 설정' 내 메뉴를 통해 가입 신청을 받는다. 초기 소규모 이용자 모집 이후 가입 규모를 단계적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김민규 카카오 성과리더는 "카카오멤버십은 구독부터 쇼핑, 콘텐츠, 실속 혜택까지 이용자들의 다양한 일상에 필요한 혜택을 한데 모았다"며 "향후 다양한 서비스와 연계해 혜택을 확대하고, 카카오멤버십을 통해서만 누릴 수 있는 희소성 높은 가치를 선사하겠다"고 말했다.
2026-10-01 10:5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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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G GT 55·43부터 GLE·G 63까지…서킷·오프로드 넘나든 주행 기술
[경제일보] "직선에서는 마음껏 가속하고, 코너에서는 차의 움직임을 느껴보세요." 가속페달을 밟자 AMG GT 55의 속도가 빠르게 올라갔다. 직선 구간에서 속도를 끌어올린 뒤 코너 진입을 앞두고 제동하고, 다시 방향을 틀어 가속페달을 밟았다. 메르세데스-AMG GT 55 4MATIC+와 GT 43을 같은 코스에서 차례로 주행하자 두 모델은 엔진 출력뿐 아니라 구동 방식에 따라 가속과 코너를 통과하는 과정에서도 서로 다른 주행 특성을 보였다. 먼저 AMG GT 55 4MATIC+에 탑승해 AMG 스피드웨이 주행을 시작했다. 4.0ℓ V8 바이터보 엔진을 탑재한 GT 55는 최고출력 476마력, 최대 토크 71.4kgf·m를 발휘한다. AMG 퍼포먼스 4MATIC+ 사륜 구동 시스템과 최대 2.5도까지 작동하는 후륜 조향 시스템도 적용됐다. 직선 구간에서는 강한 가속 성능을 체감할 수 있었다. 가속페달을 밟자 V8 엔진의 출력이 빠르게 올라갔고, 코너에 진입하기 전에는 속도를 낮추며 제동했다. 이어 방향을 전환한 뒤 다시 가속페달을 밟자 차량은 코너를 빠져나갔다. 코너를 통과하는 과정에서는 사륜 구동 시스템과 후륜 조향 시스템의 움직임도 경험할 수 있었다. AMG 퍼포먼스 4MATIC+는 주행 상황에 따라 앞뒤 구동력을 배분하고, 후륜 조향 시스템은 뒷바퀴의 방향을 조절해 차량의 방향 전환을 보조한다. 강한 출력을 내는 엔진과 이를 노면에 전달하는 구동 시스템이 함께 작동하면서 코너 진입과 탈출 과정이 이어졌다. 다음으로 경험한 차량은 AMG GT 43이다. 지난 7월 국내 출시된 GT 43은 2.0ℓ 직렬 4기통 터보 엔진을 탑재해 최고출력 421마력, 최대 토크 51kgf·m를 낸다. GT 55와 달리 후륜 구동 방식을 적용했으며 AMG 스피드시프트 MCT 9단 변속기와 전자식 배기가스 터보차저가 적용됐다. 같은 코스를 주행하자 GT 55와는 다른 특성이 드러났다. GT 55가 4.0ℓ V8 엔진과 사륜 구동 시스템을 바탕으로 강한 가속 성능과 구동력을 전달했다면 GT 43은 후륜 구동을 기반으로 코너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다른 주행 감각을 전달했다. 같은 코스와 비슷한 주행 방식으로 진행했지만 엔진과 구동 방식의 차이가 차량 움직임에 반영됐다. GT 43 역시 후륜 조향 시스템을 적용했다. 코너에 진입해 방향을 전환하는 과정에서 뒷바퀴의 조향이 앞바퀴의 움직임을 보조했고, 코너를 빠져나오면서 다시 가속하는 과정이 이어졌다. 두 모델 모두 후륜 조향 시스템을 갖췄지만 GT 55는 사륜 구동, GT 43은 후륜 구동이라는 차이가 있어 같은 코스에서도 서로 다른 특성을 경험할 수 있었다. 서킷 주행을 마친 뒤에는 SUV 익스피리언스 센터로 이동해 오프로드 코스를 경험했다. 자연 지형을 활용한 코스에는 오르막과 내리막을 비롯해 바위, 모래, 자갈, 범피 구간 등이 마련됐다. 일반 도로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노면을 차례로 통과하면서 준대형 SUV 메르세데스-벤츠 GLE에 적용된 4MATIC 사륜 구동 시스템과 주행 보조 기능이 실제 상황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살펴봤다. GLE로 주행한 바위 구간에서는 약 30도의 경사로를 오르내리며 차량의 접근각과 이탈각, 차체 움직임을 살폈다. 경사가 급한 구간에서는 운전석에서 바라보는 시야도 달라졌고, 서라운드 카메라를 활용해 차량 주변 상황을 파악했다. 내리막에서는 내리막길 주행 보조 기능을 활용해 속도를 제어하면서 경사로를 내려갔다. 주행 모드에 따라서도 GLE의 움직임에 차이가 나타났다. 노면 상태와 주행 환경에 맞춰 모드를 변경하면서 엔진과 변속기, 4MATIC 사륜 구동 시스템의 작동 방식이 달라지는 과정도 경험했다. 범피 구간에서는 노면 높이가 계속 달라지는 상황에서 차량이 움직였다. 바퀴가 각각 다른 높이의 노면을 통과하면서 서스펜션이 움직였고, 4MATIC 시스템은 노면 상황에 맞춰 구동력을 배분했다. 차체가 크게 흔들리는 상황에서도 각 바퀴의 접지력을 유지하기 위한 시스템의 작동을 체감할 수 있었다. 모래 구간에서는 바퀴가 헛도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때 휠 슬립 제어와 4MATIC 시스템이 작동하면서 구동력을 노면에 전달했다. 일반적인 포장도로와 달리 타이어가 쉽게 미끄러질 수 있는 환경에서 구동 시스템이 개입하는 과정을 직접 경험했다. 물을 통과하는 구간도 마련됐다. 최대 0.8m 깊이의 수심을 통과하면서 차체 하부와 타이어가 물에 잠기는 상황을 경험했다. GLE 오프로드 코스는 단순히 경사로를 오르는 데 그치지 않고 바위와 모래, 물 등 서로 다른 노면을 연속해서 통과하도록 구성됐다. 이후에는 메르세데스-AMG G 63을 이용해 G클래스 전용 오프로드 코스를 주행했다. GLE 코스보다 험준한 지형으로 구성된 이 코스에는 약 30도의 경사를 비롯해 록 트위스트, 록 크롤, 머글, 머드, 범피, 측경사 등 다양한 구간이 이어졌다. 같은 오프로드 주행이라도 GLE와는 다른 차체 구조와 구동 특성을 보다 극단적인 환경에서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된 코스였다. 특히 바위 구간인 록 트위스트와 록 크롤에서는 차축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상황이 이어졌다. 한쪽 바퀴가 높은 바위에 올라가고 다른 쪽 바퀴가 낮은 위치에 놓이는 상황에서 G 63의 서스펜션이 크게 움직였다. 이 과정에서 AMG 4MATIC+ 시스템이 각 바퀴에 필요한 구동력을 배분하면서 차량이 장애물을 통과했다. 측경사 구간에서는 G 63이 한쪽으로 기울어진 상태로 경사면을 이동했다. 평지와 달리 차체가 크게 기울어진 상황에서 차량의 움직임을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 진흙 구간에서는 노면의 접지력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주행 모드와 AMG 4MATIC+ 시스템에 따라 차량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범피 구간에서는 차체가 반복적으로 상하로 움직였고, 머드 구간에서는 타이어가 노면을 파고드는 상황이 이어졌다. 각각의 구간마다 노면 상태가 달랐지만 G 63은 AMG 4MATIC+ 시스템과 주행 보조 기능을 활용해 코스를 통과했다. AMG 스피드웨이는 2018년 6월 경기도 용인에 문을 연 4.3㎞ 길이의 서킷으로 16개 코너를 갖추고 있다. 2018년 11월 AMG 드라이빙 아카데미를 시작했으며 2024년 AMG 익스피리언스로 프로그램을 개편했다. 현재 AMG 디스커버, AMG 퍼포먼스, AMG 어드밴스드, AMG 나이트 서킷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지난해 10월 문을 연 SUV 익스피리언스 센터는 AMG 스피드웨이 인근에 약 2만6000㎡ 규모로 조성됐다. SUV 드라이빙과 G 드라이빙, SUV+G 드라이빙 프로그램을 통해 일반 고객도 오프로드 주행을 경험할 수 있다.
2026-09-30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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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조사에 잇단 법원 제동…조사권·기업 방어권 경계 다시 세워야
[경제일보]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 조사와 처분에 법원이 잇따라 제동을 걸면서 행정조사권의 범위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서울고법은 쿠팡이 제기한 현장조사 결정 효력정지 신청과 한화의 자료제출명령 효력정지 신청을 각각 받아들였다. 제지·제분업체에 대한 가격 재결정 명령도 집행이 정지됐다.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은 21일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법원 판단에 “굉장히 유감”이라며 쿠팡 조사의 경우 약 30일간 유보돼 조사 실효성이 사실상 무력화됐다고 지적했다. 이번 사안을 단순히 ‘기업 대 공정위’의 힘겨루기로 볼 일은 아니다. 쿠팡은 대규모유통업법 위반 의혹과 관련한 공정위 현장조사에 대해 사전통지 절차가 지켜지지 않았다며 법원에 취소소송과 집행정지를 신청했다. 공정위는 해당 조사는 행정조사기본법상 사전통지의 예외에 해당한다는 입장이다. 기업의 절차적 방어권과 경쟁당국의 조사 실효성이 정면으로 부딪힌 것이다. 한화 사건에서는 전자정보 조사 방식까지 쟁점이 됐다. 공정위는 계열사 간 상표권 사용료와 관련한 부당 내부거래 여부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직원 휴대전화 문자메시지와 관련된 자료제출 명령을 내렸다. 한화 측은 영장 없이 휴대전화 자료를 열람하고 휴대전화를 별도로 보관하는 등 조사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공정위는 변호인과 피조사인의 사전 동의를 받았으며 강압적인 조사는 없었다고 반박했다. 서울고법은 자료제출명령의 효력을 내년 1월 말까지 정지했다. 다만 법원이 공정위 현장조사 자체를 위법하다고 판단한 것은 아니다. 자료제출명령의 적법성은 본안소송에서 가려질 사안이다. 두 사건이 던지는 질문은 분명하다. 불공정행위를 밝혀내기 위해 공정위에 어디까지 조사권을 허용할 것인가. 동시에 조사받는 기업의 방어권은 어디까지 보장할 것인가. 공정위의 우려에는 이유가 있다. 담합이나 부당지원, 대형 유통업체의 불공정행위는 자료 확보의 적시성이 중요하다. 기업이 조사 단계마다 집행정지를 신청하고 그때마다 상당 기간 조사가 중단된다면 증거 확보가 어려워지고 조사권이 유명무실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경제적 약자와 소비자를 보호해야 할 경쟁당국의 손발을 지나치게 묶어서도 안 된다. 주 위원장이 조사 회피의 여지를 줄이는 방향으로 관련 규정 개정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배경일 것이다. 다만 그는 강제조사권이나 특별사법경찰 도입을 본격 검토할 상황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그렇다고 조사의 목적이 정당하다는 이유로 모든 조사 방식까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기업 사무실에 들어가 자료를 요구하고 임직원의 휴대전화와 전자정보를 확인하는 것은 기업 활동뿐 아니라 개인의 권리에도 영향을 미친다. 스마트폰 한 대에는 업무정보와 사생활이 뒤섞여 있다. 디지털 시대의 행정조사는 과거 서류철을 들여다보던 조사와 차원이 다르다. 조사 대상과 범위, 전자정보 확보 방법을 보다 세밀하게 규정해야 하는 이유다. 주 위원장이 법원의 판단에 공개적으로 강한 유감을 표시한 대목도 신중하게 볼 필요가 있다. 행정조사의 실효성을 걱정할 수는 있다. 그러나 행정권에 대한 사법적 통제 역시 법치주의의 한 축이다. 법원의 집행정지 판단에 이견이 있다면 정해진 사법절차를 통해 다투고 조사제도의 법적 근거와 절차를 보완하는 것이 정도다. 사법적 통제를 곧바로 조사권의 무력화와 동일시하는 인상을 줘서는 곤란하다. 법치의 힘은 권한의 크기보다 절차의 정당성에서 나온다. <논어>에는 “도지이정, 제지이형, 민면이무치(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라는 구절이 있다. 정령으로 이끌고 형벌로 다스리기만 하면 백성은 처벌을 피하려 할 뿐 부끄러움을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권력의 행사만으로 질서를 세우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오래된 경계다. 기업이라고 법의 밖에 있을 수 없고 행정기관이라고 절차의 밖에 있을 수 없다. 이번 일을 계기로 공정위 조사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사전통지를 생략할 수 있는 요건부터 전자정보의 조사 범위, 개인 휴대전화 접근 절차, 자료제출명령의 한계까지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긴급하게 증거를 확보해야 하는 사건과 그렇지 않은 사건을 구분하고, 조사 단계에서 분쟁이 발생할 경우 신속하게 사법적 판단을 받을 수 있는 절차도 검토할 만하다. 물론 기업의 절차적 권리가 정당한 조사를 지연하거나 회피하는 수단으로 이용되는 상황 역시 경계해야 한다. 공정위와 법원이 대립하는 모양새가 반복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행정기관의 권한 행사를 통제하는 것은 사법부의 역할이고, 법원의 판단을 통해 드러난 제도적 허점을 보완하는 것은 행정부와 입법부의 몫이다. 기업 역시 적법한 조사에는 협조해야 한다. 세 주체가 각자의 선을 지킬 때 경쟁법 집행에 대한 신뢰도 높아진다. 조사권이 강해질수록 절차는 더 엄격해야 한다. 기업의 방어권이 두터워질수록 정당한 조사에 협조할 책임도 커진다. 공정한 시장을 지키는 힘은 강한 권한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누구도 쉽게 시비 걸 수 없는 명확하고 공정한 절차에서 나온다.
2026-09-22 11:4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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