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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중동 전쟁의 장기화, 한국 경제의 시험대에 섰다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2026-03-18 15:01:32
아랍에미리트 라스알카이마 북부 해안에서 바라본 페르시아만에서 유조선들이 항해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아랍에미리트 라스알카이마 북부 해안에서 바라본 페르시아만에서 유조선들이 항해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경제일보] 중동의 전쟁이 예상을 넘어 장기화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애초 국제사회는 이번 충돌이 단기간의 국지전으로 끝날 것이라는 낙관론을 내놓았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의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스라엘의 대규모 공습과 이란의 보복이 반복되는 가운데 페르시아만의 핵심 원유 수출 거점인 하르그 섬이 공격을 받았고, 세계 원유 수송의 심장부인 호르무즈 해협에서는 부분적인 봉쇄 사태까지 벌어졌다. 세계 에너지 시장은 이미 전시 체제에 들어간 것과 다름없다.
 
문제는 이 전쟁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파장이 단순한 외부 변수의 수준을 넘어선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은 에너지의 상당 부분을 중동에 의존하고 있다. 원유 수입의 대부분이 이 지역을 통과해 들어오는 구조에서 중동의 불안은 곧 한국 경제의 불안이다. 국제 유가는 이미 배럴당 100달러 선을 넘나들고 있고 원·달러 환율 역시 1500원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치솟고 있다. 유가 상승은 곧바로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이는 생산비 증가와 물가 상승이라는 이중 압력으로 경제 전반을 압박한다. 일각에서 올해 성장률이 ‘0%대’로 추락할 수 있다는 비관적 전망까지 제기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부가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국제 공조 속에서 전략 비축유를 방출하고 에너지 수급 안정에 나선 것은 불가피한 조치다. 기업들도 도입선을 다변화하고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대응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이런 대응은 어디까지나 단기적인 방어책일 뿐이다.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지금의 대응만으로는 한국 경제가 받게 될 구조적 충격을 막아내기 어렵다.
 
지금 필요한 것은 위기를 관리하는 수준을 넘어 체질을 바꾸는 전략이다. 무엇보다 에너지 안보의 개념부터 다시 정의해야 한다. 특정 지역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구조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원유 도입선을 북미, 아프리카, 중남미 등으로 과감히 분산시키는 국가 전략이 필요하다. 비용이 늘어날 수 있다면 그 부담은 정책적 지원으로 보완해야 한다. 에너지 안보는 시장 논리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국가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에너지 구조의 재설계다. 전력 생산에서 수입 화석연료 의존도를 단계적으로 낮추고 원자력과 재생에너지의 균형을 재조정해야 한다. 이미 멈춰 서 있는 원전이 있다면 안전을 전제로 가동 여부를 신속히 판단해야 한다. 동시에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의 효율을 높여 에너지 자립도를 끌어올리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에너지 믹스의 유연성이 곧 국가 경제의 회복력이다.

셋째는 공급망 대응 능력의 혁신이다. 중동 전쟁이 보여준 것은 단순한 에너지 위기가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의 취약성이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활용한 실시간 물류 관리 체계를 구축해 해상 운송 경로 변화나 지정학적 충격에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지능형 공급망’을 산업 전반에 확산시켜야 한다. 디지털 전환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경제 안보의 필수 조건이다.

마지막으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단기적인 재정 투입만으로는 위기를 넘어설 수 없다. 기업이 투자와 혁신을 통해 고유가 충격을 흡수할 수 있도록 과도한 규제를 완화하고 기술 혁신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위기 국면에서 기업의 활력을 꺾는 정책은 경제의 회복력을 스스로 약화시키는 일이다.
 
대한민국은 과거 두 차례의 오일쇼크 속에서도 산업 구조를 바꾸며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그때보다 훨씬 복잡하다. 지정학적 충돌이 상시화되고 에너지와 공급망이 전략 자산이 된 시대다. 더 이상 “곧 끝날 것”이라는 낙관에 기대어 시간을 흘려보낼 여유는 없다.
 
중동의 전쟁은 우리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에너지와 공급망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는 국가는 경제의 운명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지금이야말로 대한민국 경제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결단이 필요하다. 위기를 관리하는 데 머물 것인가, 아니면 위기를 계기로 국가 경제의 구조를 다시 설계할 것인가. 그 선택의 시간이 이미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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