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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분과 국익, 그 사이에서 한국이 읽어야 할 새 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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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분과 국익, 그 사이에서 한국이 읽어야 할 새 질서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곽형균 기자
2026-05-05 10:02:08
이미지생성-chat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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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의명분(大義名分). 난세일수록 먼저 물어야 할 것은 힘이 아니라 그 힘이 기대는 질서의 정당성이다. 전쟁에는 명분이 있어야 하고, 동맹에는 신뢰가 있어야 하며, 국익에는 계산이 있어야 한다. 셋 중 하나만 앞세우면 판단은 기울어진다. 지금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 주독미군 5,000명 감축, 유럽산 자동차 25% 관세 인상, 그리고 한국을 향한 미국의 해상안보 기여 압박은 따로 흩어진 사건이 아니다. 트럼프 정부가 군사와 통상, 에너지와 동맹을 한 바구니에 담아 새로운 질서의 규칙을 다시 쓰고 있다는 신호로 읽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외교 마찰이 아니라, 안보의 대가와 경제의 부담을 동시에 묻는 시대가 본격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 움직임은 노골적이다. 미 국방부는 독일 주둔 미군 5,000명 감축을 발표했고, 로이터는 이 조치가 이란 전쟁을 둘러싼 유럽과의 갈등 속에서 나왔다고 전했다. 같은 기사에서 익명의 미 국방부 고위 당국자는 독일의 최근 발언이 “부적절하고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말하며, 대통령이 그 반응을 보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유럽연합 자동차에 대한 관세를 다시 25%로 올리겠다고 했고, 로이터는 이 조치 역시 이란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 문제를 둘러싼 긴장, 그리고 유럽이 해군을 보내는 데 소극적이었던 상황 속에서 나왔다고 전했다. 공식 문서에 “보복”이라고 적힌 것은 아니지만, 병력과 관세가 동맹의 협조 수준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는 해석은 충분히 가능하다.

더 중요한 것은 이것이 우발적 대응이 아니라 전략 문서의 언어와도 맞물린다는 점이다. 미국의 2026 국방전략서는 유럽, 중동, 한반도에서 동맹과 파트너가 자국 방위의 1차 책임을 지고 미국은 “중요하지만 더 제한된 지원”을 제공하는 방향을 적시했다. 동시에 미국은 방위비를 충분히 쓰고 지역 위협에 “눈에 보이게 더 많이” 기여하는 이른바 “모범 동맹”과의 협력을 우선하겠다고 밝혔다. 무기 판매, 방산 협력, 정보 공유 같은 보상도 여기에 묶였다. 이를 종합하면, 트럼프 정부가 그리고 있는 질서는 가치동맹의 외피 위에 비용·기여·보상의 서열을 분명히 새기는 구조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제가 자료를 종합해 내린 해석이지만, 문서와 최근 조치들이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이 현실을 냉소적으로만 볼 일도 아니다. 국제적 도의와 명분은 여전히 중요하다. 민간 선박의 항행의 자유를 보장하고 국제 해협의 안전을 지키는 일은 국제사회의 공공선에 속한다. 어떤 국가가 해상교통로를 위협하고 에너지를 무기화한다면, 이를 문제 삼는 것은 패권의 언어이기 전에 질서의 언어다. 한국처럼 무역과 해상 운송에 의존하는 국가는 더더욱 그렇다. 명분은 허울이 아니다. 힘의 사용을 정당화하는 최소한의 울타리이고, 동맹을 단순한 거래와 구별해 주는 마지막 기준이다. 유럽 국가들이 국내 여론 때문에 이란 전쟁에 비판적이면서도, 동시에 전후 호르무즈 항행안전 임무나 기뢰제거 준비에는 나서는 이유도 그 지점에 있다.

동맹의식 역시 가볍게 다룰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5월 4일 이란이 한국 화물선을 향해 사격했다며 이제 한국이 호르무즈 임무에 합류할 때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같은 날 로이터는 한국 외교부가 선박에서 폭발과 화재가 발생했지만 원인은 조사 중이라고 밝혔고, HMM도 엔진룸 화재 원인이 불분명하다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즉 미국 대통령은 공격으로 규정하며 동참을 촉구했지만, 한국 정부와 선사는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었다. 이 차이가 중요하다. 동맹은 사실을 건너뛰는 면허가 아니다. 오히려 신뢰할 수 있는 동맹일수록 더 냉정하게 사실을 확인하고, 더 엄격하게 법적 절차를 밟아야 한다. 함께한다는 말과 성급히 뛰어든다는 말은 다르다.

경제안보의 현실은 또 다른 층위다. 한국은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에너지 흐름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는 2025년 이 해협을 통과한 원유가 하루 약 1,500만 배럴로 세계 해상 원유 교역의 약 3분의 1에 해당한다고 설명했고, 한국과 일본을 이 항로에 특히 민감한 국가로 지목했다. 해협이 흔들리면 한국이 먼저 받는 충격은 전함의 위협이 아니라 유가, 보험료, 운임, 원가, 환율이다. 그러니 호르무즈를 두고 “우리 전쟁이 아니다”라고만 말하는 것은 현실을 외면하는 일이고, 반대로 “동맹이니 자동으로 가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국가의 절차를 무시하는 일이다. 안보와 경제는 이미 하나의 계산서 위에 올라와 있다.

결국 한국이 취해야 할 태도는 세 가지를 함께 붙드는 균형이어야 한다. 첫째, 항행의 자유와 민간 선박 보호라는 국제적 명분에는 분명히 서야 한다. 둘째, 한미동맹의 책임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미국이 요구한다고 무조건 따를 일은 아니지만, 동맹의 공동 부담이라는 큰 틀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셋째, 그 모든 판단은 한국 경제의 취약성과 법적 절차를 기준으로 다시 걸러져야 한다. 국회 동의, 임무 범위, 종료 조건, 비전투성 지원 여부, 에너지 수입선 다변화와 전략비축 확대가 함께 논의돼야 한다. 동맹도 필요하고 명분도 필요하지만, 국익의 문장으로 정리되지 않은 명분은 오래가지 못한다.

맹자는 “왕하필왈리(王何必曰利), 역유인의이이(亦有仁義而已矣)”라고 했다. 어찌 이익만 말하느냐, 인과 의가 있을 뿐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오늘의 국제정치에서 이 말을 거꾸로만 읽어서도 안 된다. 인의만 말하고 이익을 외면해도 국가는 흔들린다. 지금 트럼프 정부가 만드는 질서는 바로 그 둘을 분리하지 않는 질서다. 협조하는 동맹에는 지원과 산업협력을, 비협조적 동맹에는 병력 축소와 통상 압박을 동시에 구사하는 방식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답도 분명해야 한다. 도의적 명분은 놓치지 않되, 동맹은 냉정하게 관리하고, 경제안보의 방파제는 더 높게 쌓아야 한다. 그래야 감정이 아니라 기준으로 움직이는 나라가 된다. 새 질서는 이미 오고 있다.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도덕만으로도, 거래만으로도 읽지 않는 성숙한 균형감을 갖추고 있느냐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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