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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칼럼] 보수의 재건은 말이 아니라 구조다…국민의힘이 해야 할 혁신
강산이 세 번 바뀌는 세월 동안 정치와 권력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안다. 정당의 위기는 선거 패배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자기 성찰의 능력을 잃는 순간, 그때부터 정당은 무너진다. 지금 국민의힘이 맞닥뜨린 상황이 바로 그렇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령 사태와 탄핵, 그리고 사법부의 중형 선고로 이어진 일련의 과정은 단순한 정권 실패가 아니다. 보수 정치 전체의 정당성이 국민 앞에서 무너진 사건이었다. 국가 권력이 헌정 질서를 위협하는 장면을 국민이 목격했다는 사실 자체가 한국 보수 정치에 치명적인 상처를 남겼다. 이제 보수 정당은 스스로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보수는 무엇을 지키는 정치인가. 그리고 국민의힘은 과연 그 역할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최근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절연을 선언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늦었지만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러나 그 결단이 정치적 부담을 덜기 위한 선언에 그친다면 아무 의미도 없다. 보수의 재건은 선언이 아니라 구조의 변화에서 시작된다. 인적 쇄신은 ‘희생’이 아니라 ‘책임’이어야 한다 정당이 위기를 맞을 때 가장 먼저 꺼내 드는 카드가 인적 쇄신이다. 그러나 한국 정치에서 인적 쇄신은 대부분 몇몇 얼굴을 교체하는 수준에서 끝났다. 그런 방식의 쇄신으로는 국민의 신뢰를 되찾을 수 없다. 이번 사태에서 국민이 분노한 지점은 단순한 권력 실패가 아니었다. 책임의 실종이었다. 헌정 질서를 흔드는 사태가 벌어지는 동안 침묵하거나 동조했던 정치인들이 아무런 설명도 없이 다시 정치의 중심에 서는 모습을 국민은 더 이상 용납하지 않는다. 국민의힘이 해야 할 인적 쇄신은 단순한 공천 교체가 아니다. 정치적 책임의 원칙을 분명히 세우는 일이다. 계엄령 사태와 관련해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발언이나 행동을 했던 인물들은 스스로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 정치는 법적 책임만으로 끝나는 영역이 아니다. 공적 책임을 외면하는 정치에는 미래도 없다. 지도부 구성 역시 달라져야 한다. 특정 계파나 권력 중심 인물들이 당을 이끄는 구조가 반복되는 한 국민의 신뢰는 돌아오지 않는다. 행정 경험과 정책 역량을 갖춘 인물이 전면에 나서야 한다. 청년과 전문가의 정치 참여 역시 형식적 구호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보수 정당이 여전히 과거의 인맥 정치에 의존한다면 미래 세대는 그 정당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정치가 세대 교체에 실패하는 순간 정당의 미래도 함께 사라진다. 보수의 가치 체계를 다시 세워야 한다 한국 보수 정치의 가장 큰 문제는 가치의 부재였다. 보수의 이름으로 특정 정치인을 방어하는 정치가 반복되면서 정당이 지켜야 할 철학은 흐려졌고, 결국 보수는 인물 중심 정치의 틀에 갇혀버렸다. 보수가 지켜야 할 핵심 가치는 복잡하지 않다. 헌법 질서, 시장경제, 책임 있는 국가 운영이다. 이 세 가지 원칙이 흔들리는 순간 보수는 존재 이유를 잃는다. 특히 이번 사태 이후 보수 정치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헌정 질서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세우는 것이다. 권력 남용과 국가 권력의 사유화에 대해 단호하게 선을 긋지 못한다면 보수의 정당성은 회복될 수 없다. 경제 정책에서도 변화가 필요하다. 과거 보수 경제 정책이 성장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성장과 공정의 균형을 고민해야 한다. 청년 세대가 체감하는 불평등 문제를 외면한 채 시장만 강조하는 정치로는 더 이상 국민의 지지를 얻기 어렵다. 보수 정치의 언어를 바꿔야 한다 정당은 정책으로 평가받지만 동시에 언어로도 평가받는다. 지금 보수 정치의 가장 큰 약점은 국민과 소통하는 정치 언어가 낡았다는 점이다. 강성 지지층만을 의식한 발언, 상대 진영을 향한 과도한 공격, 음모론적 정치 언어는 중도층을 정치에서 밀어낸다. 정당이 지지층만 바라보는 순간 정치의 외연은 급격히 좁아진다. 특히 청년 세대는 진영 논리에 쉽게 동의하지 않는다. 그들은 공정과 기회, 그리고 미래의 문제에 더 민감하다. 보수가 다시 국민적 지지를 얻고자 한다면 정치의 언어를 과거의 이념 논쟁이 아니라 현실의 삶으로 돌려놓아야 한다. 보수 재건의 조건은 ‘시간’이 아니라 ‘결단’ 역사를 돌아보면 몰락했던 보수 정당이 다시 살아난 사례는 적지 않다. 그러나 공통점이 있다. 철저한 자기 혁신이다. 정당은 위기를 맞을 때 두 가지 선택을 한다. 하나는 문제를 외부 탓으로 돌리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스스로를 해체에 가까울 정도로 혁신하는 것이다. 어느 길을 택하느냐에 따라 정당의 운명은 갈린다. 지금 국민의힘 앞에 놓인 선택도 마찬가지다. 인적 쇄신, 가치 재정립, 정치 언어의 변화가 동시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보수 재건은 결국 공허한 구호로 끝날 것이다. 국민은 이미 여러 번 기회를 주었다. 이제 남은 것은 정치의 결단이다. 보수는 대한민국 정치의 한 축이다. 그 축이 바로 서지 못하면 정치 전체의 균형도 무너진다. 국민이 기대하는 것은 완벽한 정당이 아니라 책임을 아는 정당이다. 지금 국민의힘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과거를 변명하는 정치에서 벗어나 미래를 설계하는 정치로 돌아가는 것이다. 보수의 재건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다. 결단의 문제다.
2026-03-10 17: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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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칼럼] 함영주 판결이 남긴 질문...사법의 시간은 누구를 위해 흐르는가
하나은행 채용 비리 사건으로 기소됐던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에 대한 대법원 판단은 하나의 법률적 결론에 그치지 않는다.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혐의는 유죄로 확정됐지만 사건의 핵심이었던 업무방해 혐의는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됐다. 결과적으로 함 회장을 수년간 따라다녔던 가장 무거운 사법 리스크는 일단락됐다. 그러나 판결문을 덮는 순간, 또 다른 질문이 자연스럽게 고개를 든다. 과연 이 결론에 이르기까지 이렇게 긴 시간이 필요했는가 하는 물음이다. 사건의 출발은 2015~2016년이다. 신입사원 채용 과정에서의 점수 조작과 성별 차별 의혹이 수사로 이어졌고 1심과 2심을 거쳐 대법원 판단에 이르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함영주라는 개인은 물론 하나금융이라는 조직 전체는 ‘사법 리스크’라는 불확실성을 안은 채 경영을 이어가야 했다. 무죄 추정의 원칙은 법정 안에서는 분명히 작동한다. 그러나 시장과 여론, 조직 내부의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최고경영자가 형사 재판의 당사자가 되는 순간, 그 재판의 결론과 무관하게 기업의 전략과 의사결정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사법 절차가 길어질수록 그 부담은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으로 누적된다. 대법원이 이번 판결에서 특히 문제 삼은 대목은 항소심의 판단 방식이다. 1심은 채용 담당자들의 일관된 진술과 객관적 자료를 근거로 함 회장이 합격권 밖 지원자를 합격시키도록 위력을 행사하거나 공모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반면 2심은 새로운 증거가 뚜렷하게 제시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 판단을 뒤집어 유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은 이를 두고 “합리적인 사정 변경 없이 1심의 판단을 변경했다”고 지적했다. 이는 단순히 한 사건의 결론을 바로잡는 차원을 넘어 형사재판에서 증거 판단과 심증 형성이 어디까지 허용되는지를 다시 확인한 판결이다. 형사사법의 기본 원칙은 분명하다.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돌아가야 한다. 특히 1심의 사실인정을 뒤집으려면 그 판단이 논리와 경험칙에 명백히 반하거나 중대한 오류가 있다는 점이 분명히 드러나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상급심은 판단의 수정자가 아니라 또 하나의 추정자가 될 위험에 놓인다. 이 과정이 길어질수록 사건은 법정 밖에서도 계속 살아 움직이고 사회 전체의 피로도는 누적된다. 물론 이번 판결이 모든 혐의를 부정한 것은 아니다.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혐의에 대해 대법원은 2심의 유죄 판단을 그대로 확정했다. 이는 당시 금융권 전반에 퍼져 있던 성별 채용 관행에 대해 사법부가 분명한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용인돼 왔던 차별 구조에 대해서는 더 이상 묵인할 수 없다는 선언에 가깝다. 다만 이 지점에서도 질문은 남는다. 구조적 차별에 대한 문제 제기와 특정 개인의 형사 책임을 어디까지 묻는가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1심은 관행적 구조 속에서 개인의 직접적 개입과 책임을 단정하기 어렵다고 봤고, 대법원 역시 업무방해 혐의에 대해서는 증명 부족을 이유로 제동을 걸었다. 그렇다면 이 사건은 왜 수년간 형사 재판의 궤도를 벗어나지 못했는가. 사법의 시간은 결코 공짜가 아니다. 고대 로마의 법언인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말은 피해자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피고인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무죄든 유죄든, 결론에 이르기까지 지나치게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면 그 자체로 이미 상당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 기업 경영에서 불확실성은 가장 비싼 비용이다. 투자와 인사, 중장기 전략은 모두 ‘혹시 모를 사법 리스크’를 전제로 조정되고 그 부담은 결국 시장과 경제 전반으로 확산된다. 해외 사례는 다른 선택지가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미국 연방 검찰은 대기업 최고경영자가 연루된 형사 사건에서 기소 단계부터 극도로 신중한 태도를 취한다. 유죄 입증 가능성이 충분히 높지 않다면 형사 기소 대신 민사 제재나 행정 처분으로 방향을 돌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는 무리한 기소가 사법 신뢰와 시장 안정성을 동시에 훼손할 수 있다는 경험적 학습의 결과다. 일본 역시 최근 기업 범죄에서 개인의 형사 책임을 묻는 기준을 한층 엄격히 하고 있다. 명확한 지시와 공모, 이익 귀속이 입증되지 않으면 조직 책임과 개인 책임을 구분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이에 비춰보면 우리 사법 시스템은 여전히 “일단 법정으로 가져가자”는 관성이 강해 보인다. 수사와 기소 단계에서 충분히 걸러질 수 있었던 사안이, 재판이라는 긴 터널로 진입하면서 사회적 비용을 키운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사법부의 판단뿐 아니라 그 이전 단계에서의 판단 역시 함께 성찰돼야 한다. 공자는 『논어』에서 사회가 혼란에 빠질 때 가장 먼저 바로잡아야 할 것으로 ‘정명’을 들었다. 이름과 역할이 바로 서야 질서가 회복된다는 뜻이다. 사법 시스템도 다르지 않다. 수사는 수사답게, 기소는 기소답게, 재판은 재판답게 작동해야 한다. 어느 한 단계가 자기 역할을 넘어서면 그 부담은 개인과 사회 전체로 전가된다. 함영주 회장은 이번 판결로 사법적 고비를 넘겼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소모된 시간과 비용, 그리고 사회적 에너지는 이미 지나간 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 사건을 하나의 결론으로만 남기지 않는 것이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는지, 어디에서 판단이 지연됐는지, 그리고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를 묻지 않는다면 다음 사법 리스크는 언제든 다시 등장할 수 있다. 사법의 권위는 엄정함에서 나오지만 신뢰는 속도와 일관성에서 완성된다. 이번 판결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의미는 유·무죄의 경계선이 아니라, 사법의 시간이 과연 누구를 위해 어떤 방식으로 흘러가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일 것이다.
2026-01-30 10:3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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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칼럼] 백악관에 상륙한 'K-슈퍼푸드'…트럼프의 김치 권고가 던지는 함의
2026년 새해 초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 들려온 소식은 한국인들에게 자부심과 경이로움을 동시에 안겨줬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발표한 '2025~2030 미국인을 위한 식단 지침(DGA)'에 한국의 전통 음식이자 상징인 '김치(Kimchi)'가 건강식품으로 공식 명시된 것이다. 이는 단순한 식품 유행을 넘어 미국 보건 정책과 식문화의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을 상징하는 사건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보건 슬로건인 '미국을 다시 건강하게(Make America Healthy Again)'는 이번 식단 지침 개편을 통해 구체적 모습을 드러냈다.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보건복지부 장관은 초가공식품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미국인들에게 '진짜 음식(Real Food)'으로 돌아갈 것을 강력히 권고했다. 이 과정에서 김치는 장내 미생물 생태계, 즉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 건강을 위한 핵심 식품으로 지목됐다. 미국 정부가 5년마다 업데이트하는 공식 가이드라인에 김치가 이름을 올린 것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지침은 김치를 사우어크라우트, 케피어 등과 함께 장 건강에 유익한 발효 식품의 대표 사례로 제시하며 채소 및 고섬유질 식품과 함께 섭취할 것을 당부했다. 김치가 미국 식탁을 점령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최근 미국을 휩쓴 '스위시(Swicy, Sweet+Spicy)' 트렌드도 한몫했다. 달콤하면서도 매운맛에 매료된 미국 MZ세대는 이제 김치를 단순한 곁들임 음식이 아닌 타코, 햄버거, 샐러드 볼의 핵심 재료로 활용하고 있다. 과거 '냄새나는 이국적 음식'으로 치부되던 김치는 이제 할리우드 스타들의 소셜미디어에 단골로 등장하는 '힙한' 웰니스 아이콘이 됐다. 패션 매거진 보그(Vogue)는 김치를 요거트와 콤부차를 잇는 차세대 슈퍼푸드로 평가했고, 뉴욕타임스는 직접 김치 담그는 법을 비중 있게 다루기도 했다. 이러한 문화적 저변 확대가 결국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적 추인으로 이어진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김치 권고는 경제적으로도 즉각적인 파급력을 미치고 있다. 지침 발표 직후 미국 현지에 공장을 보유한 대상(종가), CJ제일제당(비비고), 풀무원 등 한국 식품 기업들의 주가가 급등했다. 2024년 기준 6억8000만달러 규모였던 미국 김치 시장은 이번 공식 권고를 계기로 2030년까지 연평균 5.6% 이상의 가파른 성장이 예상된다. 과거 한인 마트에 국한됐던 김치 판매처는 이제 코스트코, 월마트, 홀푸드마켓 등 미국 주요 대형 유통망의 80% 이상으로 확대됐다. 미국 정부가 김치의 건강 가치를 공인함에 따라 향후 학교 급식이나 군대 식단, 저소득층 영양 지원 프로그램(SNAP) 등 공공 영역에서도 김치를 볼 수 있는 날이 멀지 않았다. 트럼프 행정부의 '김치 권고'는 한국의 문화적 저력이 미국의 심장부인 보건 정책까지 변화시켰음을 보여준다. 이는 한류가 단순한 엔터테인먼트를 넘어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건강'과 '식생활'에 깊이 뿌리내렸음을 의미한다. 나트륨 함량에 대한 적절한 조절과 현지 입맛에 맞춘 끊임없는 제품 개발은 여전한 숙제다. 하지만 이제 김치는 더 이상 '코리안 타운'의 전유물이 아니다. 2026년 미국인들은 트럼프의 권고에 따라 김치를 한 포기씩 카트에 담으며 한국의 맛과 건강을 그들의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미국 식탁 위에서 '김치의 황금기'가 열리고 있다.
2026-01-12 09: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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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칼럼] 꺼지지 않는 횃불과 낡은 단두대…이란의 '신의 적'은 누구인가
21세기 문명사회에서 ‘신(神)의 적’이라는 죄명으로 자국민을 사형에 처하겠다는 서슬 퍼런 공포정치가 다시금 세계를 경롱케 하고 있다. 2주 넘게 이어지는 이란의 반정부 시위는 이제 단순한 거리 투쟁을 넘어, 생존권과 기본권,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항쟁으로 번지고 있다. 하지만 이란 당국이 내놓은 대답은 대화나 타협이 아닌 총구와 교수형이다. 1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총장이 직접 나서 시위 참여자 모두를 ‘사형’에 처할 수 있다고 공언하는 현실은 이란 정권이 느끼는 위기감과 그들이 가진 폭력적 속성을 여실히 드러낸다. 이란 당국은 시위의 본질을 왜곡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반관영 타스님 통신을 통해 ‘작전 테러 팀’ 200명을 체포했다며 총기와 수류탄 등 무기 소지 사실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시위대가 보안군을 공격하는 장면을 반복적으로 노출하는 것은 전형적인 독재 정권의 선전 수법이다. 이는 정당한 분노를 터뜨리는 시민들을 ‘불순한 외세 세력과 결탁한 테러 분자’로 낙인찍음으로써 무력 진압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기만술에 불과하다. 과연 거리로 쏟아져 나온 수만 명의 시민이 모두 훈련받은 테러리스트란 말인가? 테헤란에서 마슈하드까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광장에 모인 이들의 손에 들린 것은 수류탄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라는 절규와 자유에 대한 갈망이다. 정권이 시위대에게 ‘신의 적’이라는 종교적 굴레를 씌우는 순간, 그 칼날은 시민뿐만 아니라 그들이 믿는 신의 숭고한 가치마저 훼손하고 있다. 모하마드 모바헤디아자드 검찰총장이 언급한 ‘신의 적’은 이슬람 율법상의 ‘모하레베’를 의미한다. 이는 신에 대항하여 전쟁을 벌인 죄라는 뜻으로, 이란 사법체계에서 가장 무거운 사형 죄목 중 하나다. 하지만 국가의 잘못을 비판하고 변화를 촉구하는 행위가 어떻게 신에 대한 전쟁이 될 수 있는가. 오히려 ‘신의 이름’으로 자국민의 생명을 유린하는 것이야말로 신의 뜻을 가장 크게 거스르는 행위다. 시위 가담자뿐만 아니라 그들을 돕는 이들까지 처벌하겠다는 경고는 사회 전체에 거대한 공포의 장막을 씌워 연대를 끊어내려는 심산이다. 이는 법의 이름을 빌린 살인이자,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신성함을 도구화하는 독성 종교 정치의 극치다. 현재 가장 우려되는 대목은 이란 당국이 인터넷과 통신을 차단했다는 점이다. 현대의 시위에서 정보의 흐름은 곧 시민의 생명선이다. 외부와의 연결을 끊는다는 것은 세계의 눈을 가리고 안방에서 ‘조용한 학살’을 자행하겠다는 선포와 다름없다. 과거의 사례를 볼 때, 통신이 두절된 암흑의 시간 동안 독재 정권의 진압 강도는 최고조에 달했다. 국제사회가 이란 내부에서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파악하기 어려워질 때, 시위대의 안전은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 지금 이 순간에도 테헤란의 어두운 골목에서 얼마나 많은 젊은 피가 흐르고 있을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전 세계를 비탄에 잠기게 한다. 이란 정권은 기억해야 한다. 총칼로 잠시 입을 막을 수는 있어도, 이미 터져 나온 자유의 열망은 결코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100명의 사망자와 사형 위협은 시위대를 위축시키기보다 오히려 더 큰 분노의 불꽃을 당기는 촉매제가 될 것이다. 시민들을 ‘신의 적’으로 규정하는 정권은 이미 스스로를 ‘인간의 적’으로 선포한 것이나 다름없다. 국제사회는 이란 당국의 반인륜적 폭압을 강력히 규탄하고, 인터넷 차단 뒤에 숨은 진실을 밝히기 위해 모든 외교적 역량을 동원해야 한다. 단두대를 높이 세운다고 해서 권력이 영원할 수는 없다. 역사는 언제나 공포로 통치하는 자들의 끝이 어떠했는지를 증명해 왔다. 이란 시민들이 외치는 목소리는 단순한 소음이 아니라, 낡은 체제가 무너지는 붕괴의 전주곡이다. 그들이 다시 세상과 연결되고, ‘신의 적’이라는 부당한 낙인 없이 존엄을 지킬 수 있을 때까지 세계의 연대는 멈추지 말아야 한다.
2026-01-12 09: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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