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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하지 말라더니 합수본엔 들어오라는 검사
정부가 검사가 사건을 직접 수사하거나 경찰 수사의 부족한 부분을 다시 조사하는 권한을 없앴다. 그런데 마약과 보이스피싱, 주가조작 사건을 맡아온 합동수사본부에는 공소청 검사를 참여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공소청은 기소와 재판을 맡고 중대범죄수사청은 주요 범죄를 수사하는 기관이다. 정부는 두 기관을 나눠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합수본에서는 공소청 검사가 수사 기록을 살펴보고 영장을 청구하며 수사 과정에 법률 의견도 내도록 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검사가 법만 설명한 것인지, 실제로 수사 방향까지 정한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수사권이 없는 검사가 압수수색 범위나 계좌 추적, 공범 조사에 의견을 냈다면 피고인 측은 권한 없는 수사 참여라고 다툴 가능성이 크다. 검사의 합수본 참여 범위를 미리 정하지 않으면 수사 과정뿐 아니라 재판에서도 논란이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복잡한 범죄 맡아온 합수본 9곳 현재 전국 검찰청에서 운영되는 합동수사기구는 모두 9곳이다. 보이스피싱과 마약, 금융·증권 범죄, 가상자산 범죄 등을 맡고 있다. 합수본에는 검찰과 경찰뿐 아니라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국세청, 관세청, 금융정보분석원 등 여러 기관이 참여한다. 기관마다 따로 보유하고 있는 정보와 전문 인력을 한곳에 모아 수사하는 방식이다. 합수기구 9곳의 본부장은 모두 검사가 맡고 있다. 합수본이 필요한 이유는 대상 범죄가 한 기관의 힘만으로 쫓기 어렵기 때문이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해외에 거점을 두고 대포통장과 대포전화, 가상자산을 이용해 돈을 빼돌린다. 금융·증권 범죄는 주식 거래 자료와 계좌 흐름, 세금 자료를 함께 살펴야 한다. 마약 사건도 세관의 밀수 단속부터 국내 유통망과 범죄수익 추적까지 여러 기관이 동시에 움직여야 한다. 기존 합수본에서는 검사가 사건 초기부터 압수수색과 구속 필요성을 살피고 피의자 조사와 증거 수집에도 참여했다. 수사가 끝난 뒤 기록을 넘겨받는 것이 아니라 수사 단계부터 재판에서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자료가 갖춰졌는지 확인한 것이다. 보이스피싱 합수단은 출범 이후 2년간 628명을 입건하고 201명을 구속했다. 여러 기관이 각자 가진 정보와 권한을 모은 합동수사가 조직범죄 대응에 활용돼 온 사례다. 개정 형사소송법이 시행되면 공소청 검사가 피의자를 직접 조사하거나 압수수색을 집행할 수 없게 된다. 새 공소청법은 검사가 기소와 재판, 영장 청구를 맡고 경찰 등 수사기관에 법률 의견을 줄 수 있도록 했다. 공소청 검사가 중수청에 파견되거나 중수청의 직책을 함께 맡는 것도 금지했다. 검사를 수사 조직에서 떼어내겠다는 취지는 법에 담겼다. 그러나 합수본에서 검사가 어디까지 의견을 낼 수 있는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 “법률 의견”이 수사 방향 바꿀 수도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지난 5일 정부 업무보고에서 합수본의 운영 근거가 “매우 취약하고 사실상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수사권이 없는 공소청 검사가 합수본에 참여하면 확보한 자료를 재판에서 증거로 쓸 수 있는지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취지다. 행정안전부는 공소청과 중수청, 경찰이 함께 참여하는 이른바 ‘공중경 합수본’을 대안으로 내놨다. 중수청과 경찰이 실제 수사를 담당하고 공소청 검사는 법률 검토와 영장 청구, 수사 과정에 대한 의견 제시를 맡는 방식이다. 기관별 업무를 문서로 나누는 것은 가능하다. 실제 사건에서는 법률 판단과 수사 판단이 맞물릴 수밖에 없다. 공소청 검사가 기록을 검토한 뒤 특정 계좌를 더 추적해야 한다거나 공범의 휴대전화를 압수해야 한다고 의견을 냈다고 가정해 보자. 이 의견은 단순한 법률 설명에 그치지 않는다. 수사 대상과 범위, 순서를 바꿀 수 있다. 구속영장을 청구할 때도 마찬가지다. 검사는 혐의가 어느 정도 확인됐는지, 피의자가 도주하거나 증거를 없앨 우려가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자료가 부족하면 수사기관에 추가 조사를 요구할 수밖에 없다. 이런 요구가 법률 검토인지 수사 지휘인지는 사건마다 논란이 될 수 있다. 공식 문서가 아니라 합수본 회의나 전화 통화에서 오간 의견을 어떻게 볼지도 문제다. 피고인 측은 검사가 압수수색 대상과 조사 순서, 자금 추적 범위를 정하는 데 관여했다면 수사권 없는 검사가 사실상 수사를 했다고 주장할 수 있다. 법원이 이를 위법한 수사 참여로 판단하면 압수한 자료나 피의자 진술을 재판에서 증거로 쓸 수 있는지를 놓고 다툼이 벌어진다. 마약이나 보이스피싱 조직을 어렵게 적발하고도 재판에서는 범죄 혐의보다 수사 절차의 적법성부터 다투는 일이 생길 수 있다. ◆검사가 영장만 전달할 수도 없어 헌법상 법원에 영장을 청구할 수 있는 사람은 검사다. 경찰이나 중수청이 압수수색 또는 구속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더라도 법원에 직접 영장을 청구할 수는 없다. 검사가 영장을 청구하려면 사건 기록을 살펴야 한다. 범죄 혐의와 관련 없는 자료까지 압수하려는 것은 아닌지, 강제수사가 꼭 필요한지, 피의자를 구속할 만큼 증거가 확보됐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검사가 자료 보완을 요구하거나 압수수색 범위를 줄이면 수사 방향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고 수사 관여 논란을 피하려고 기록을 제대로 보지 않은 채 수사기관이 신청한 영장을 법원에 넘길 수도 없다. 검사를 거치도록 한 제도의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검사의 참여를 넓히면 수사권 없는 검사가 사건을 지휘했다는 논란이 생긴다. 참여를 줄이면 검사는 영장 서류를 전달하는 역할에 머물 수 있다. 정부가 검사에게 어떤 행위까지 허용할지 법률에 적어야 하는 까닭이다. 정부가 시행령이나 내부 지침으로만 역할을 정하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국회가 법률로 없앤 검사의 수사권을 정부가 하위 규정으로 다시 인정한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공소청 검사가 어떤 기록을 볼 수 있는지, 수사기관에 추가 조사를 요구할 수 있는지, 합수본 회의에 참석해 의견을 낼 수 있는지부터 법률에 담을 필요가 있다. 검사의 의견에 수사기관이 따라야 하는지, 협의 내용은 어떤 방식으로 남길지도 정해야 한다. ◆중수청으로 옮겨도 수사와 재판 연결 필요 정부는 중수청에 보이스피싱과 금융범죄, 가상자산범죄, 마약범죄, 국가재정범죄를 담당하는 합동수사과를 설치할 계획이다. 금융위와 국세청 등 다른 기관의 인력도 파견받아 현재 검찰청 합수본의 기능을 이어가겠다는 방침이다. 수사 조직을 중수청으로 옮긴다고 문제가 모두 풀리는 것은 아니다. 중수청이 수사를 마치면 공소청 검사가 기록을 검토해 기소할지 결정하고 재판에서 혐의를 입증해야 한다. 공소청 검사가 수사가 끝난 뒤 처음으로 기록을 받으면 사건을 다시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증거가 부족하거나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기록을 중수청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그 사이 범죄수익 동결이나 공범 추적이 늦어질 수 있다. 이런 문제를 줄이기 위해 공소청 검사를 수사 초기부터 참여시키면 이번에는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겠다는 원칙과 부딪힌다. 공소청 검사와 중수청 수사관이 같은 합수본에서 한 팀처럼 사건을 처리하면 검찰의 수사 기능을 두 기관으로 나눈 의미도 약해진다. 권한과 책임의 구분도 필요하다. 중수청은 수사를 제대로 할 책임이 있고 공소청은 재판에서 입증할 수 있는 사건만 기소할 책임이 있다. 누가 어떤 판단을 내렸는지 남기지 않으면 수사가 잘못됐을 때도, 재판에서 혐의 입증에 실패했을 때도 서로 책임을 미룰 수 있다. ◆검사 역할부터 법으로 정해야 마약과 보이스피싱, 주가조작처럼 여러 기관이 함께 움직여야 하는 범죄에서는 수사와 재판 준비를 완전히 떼어놓기 어렵다. 수사 초기부터 법정에서 사용할 수 있는 증거를 제대로 모으지 못하면 사건이 재판에서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공소청 검사에게 기존 검찰과 비슷한 역할을 맡긴 뒤 법률 자문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 검사가 수사 대상과 범위, 방법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줬다면 이름과 관계없이 수사 관여 논란이 생긴다. 정부는 합수본이라는 이름을 유지할 수 있는지보다 공소청 검사가 합수본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부터 정해야 한다. 검사의 참여가 필요하다면 역할과 절차를 법률에 구체적으로 담아야 한다. 검사에게 수사하지 말라고 해놓고 수사 기록을 검토하며 영장과 수사 방향을 판단하도록 하는 현재 구상으로는 권한과 책임을 가르기 어렵다. 새 수사 체계가 출범하기 전에 이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
2026-08-09 13:4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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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는 비트코인이 아니라 블록체인을 원한다"…토큰화가 바꾸는 금융 배관
한때 가상화폐 투기의 기반 기술로 여겨졌던 블록체인이 세계 금융산업의 새 인프라로 부상하고 있다. 월가의 대형 은행과 증권거래소,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은 비트코인을 사들이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현금과 예금, 채권, 펀드, 주식 등 전통 금융자산을 블록체인 위에서 거래할 수 있는 디지털 토큰으로 바꾸는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월가가 블록체인 사랑하기를 배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FT에 따르면 금융회사들은 블록체인이 거래 비용을 낮추고 결제 시간을 줄이며, 개인과 기관투자자가 하루 24시간 자산을 거래할 수 있는 시장을 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자산운용사들이 내놓은 토큰화 머니마켓펀드(MMF) 시장도 2025년 초 40억달러 미만에서 최근 160억달러 이상으로 커졌다고 FT는 전했다. 월가의 관심은 가상화폐 자체보다 ‘토큰화(Tokenisation)’에 쏠려 있다. 토큰화는 현금, 예금, 채권, 주식, 펀드, 원자재, 부동산 등 실물·금융자산의 권리를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토큰으로 표현해 거래하는 방식이다. 기존 금융시장이 은행, 예탁결제기관, 청산소, 거래소, 수탁기관 등 여러 중개기관을 거쳐 움직였다면 토큰화 금융은 거래와 결제, 권리 이전, 이자·배당 지급을 하나의 디지털 장부와 스마트계약으로 자동 처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실패했던 블록체인 거래소, 10년 뒤 다시 주류로 금융권의 블록체인 실험이 처음부터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FT는 2016년 호주증권거래소가 기존 거래 시스템을 블록체인 기반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소프트웨어 설계와 대규모 거래 처리 문제 등이 겹치며 결국 프로젝트가 중단됐다고 짚었다. 당시에는 스마트계약, 확장성, 금융규제, 기관투자가 활용 경험이 모두 미성숙한 단계였다. 하지만 10년이 지나면서 환경은 달라졌다. 블록체인 기술은 가상화폐 거래소와 스테이블코인, 디지털자산 수탁, 온체인 결제 등을 거치며 성숙했고, 금융당국도 제도권 금융 인프라로서 분산원장기술(DLT)을 다루기 시작했다. 기업 경영진 입장에서도 규제 불확실성이 줄어들면서 관련 투자를 결정하기 쉬워졌다. 미국 증권시장 청산·결제 인프라를 담당하는 DTCC도 움직이고 있다. DTCC는 올해 5월 토큰화 서비스를 개발 중이며, 2026년 7월 제한적 실거래를 거쳐 10월 서비스를 출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DTCC는 미국 주식과 채권 거래의 청산·결제를 맡는 핵심 기관으로, 금융권에서는 DTCC의 참여를 토큰화가 실험 단계를 넘어 시장 인프라 단계로 이동하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 ◆은행의 경쟁자는 은행만이 아니다 전통 금융회사가 토큰화에 속도를 내는 배경에는 경쟁 압박도 있다. 가상화폐 거래소와 핀테크 플랫폼은 이미 24시간 거래, 즉시 결제, 낮은 수수료를 앞세워 젊은 투자자를 끌어들이고 있다. 이들은 가상화폐를 넘어 주식, 채권, 원자재, 사모신용 등 기존 금융상품까지 토큰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나스닥도 토큰화 주식의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나스닥은 올해 3월 토큰화가 “항상 열려 있는 금융 생태계”의 이점을 열 수 있다며, 발행회사를 중심에 둔 주식 토큰 설계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나스닥은 이 구상이 규제된 기존 주식시장과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투명한 시장 구조를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JP모건의 제이미 다이먼 최고경영자(CEO)도 변화의 압박을 인정하고 있다. FT에 따르면 다이먼 CEO는 주주 서한에서 스테이블코인, 스마트계약, 토큰화 플랫폼을 새로운 경쟁자로 거론하며 자체 블록체인 기술 확대 필요성을 밝혔다. 비트코인을 강하게 비판해 온 월가 대표 은행가마저 블록체인 기반 인프라는 외면하기 어려워졌다는 의미다. ◆토큰화된 돈부터 커진다 현재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분야는 ‘토큰화된 돈’이다. 대표적으로 스테이블코인과 토큰화 예금이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달러나 유로 등 법정통화 가치에 1대1로 연동되도록 설계된 디지털자산이다. 토큰화 금융시장에서는 법정통화와 블록체인 자산을 이어주는 결제 매개체 역할을 한다. 은행권도 토큰화 예금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웰스파고가 올가을 기업 고객을 대상으로 토큰화 예금을 출시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토큰화 예금은 기존 은행 예금을 블록체인에서 이전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든 것으로, 은행권이 스테이블코인에 대응하면서도 예금 기반 결제 질서를 유지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국제결제은행(BIS)도 중앙은행과 상업은행이 함께 쓰는 토큰화 결제 인프라를 실험하고 있다. BIS의 ‘프로젝트 아고라(Project Agorá)’는 토큰화된 중앙은행 준비금과 상업은행 예금을 결합해 도매 국제결제를 더 빠르고 안전하게 처리할 수 있는지 검증하는 공공·민간 공동 프로젝트다. BIS는 이 프로젝트가 기존 자금세탁방지, 결제완결성, 개인정보보호 규칙을 준수하면서도 국제결제의 비효율을 줄일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효율성 뒤에 새 리스크도 토큰화 지지자들은 거래비용 절감과 결제시간 단축, 담보 활용 효율화, 24시간 거래를 장점으로 든다. 예를 들어 국채를 토큰화해 환매조건부채권, 즉 레포(Repo) 거래의 담보로 활용하면 담보가 묶이는 시간을 줄이고 자금 회전율을 높일 수 있다. 스마트계약을 활용하면 이자나 배당, 권리 행사도 자동 처리할 수 있다. 그러나 금융당국과 국제기구는 속도가 곧 안정성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고 경고한다. IMF는 지난달 발표한 토큰화 관련 보고서에서 토큰화가 금융시장 구조와 리스크 관리, 금융안정에 중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블록체인 기반 금융은 속도, 집중, 분절화 문제를 통해 금융 불안을 증폭시킬 수 있으며, 자동 실행과 연속 결제는 스트레스 상황에서 자금 유출을 더 빠르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리스크는 여러 갈래다. 첫째는 자동화 리스크다. 스마트계약이 조건 충족 시 즉시 실행되면 평상시에는 효율적이지만, 위기 때는 인간의 재량적 개입이 사라질 수 있다. 마진콜과 담보 청산이 자동으로 이어질 경우 시장 충격이 더 빠르게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 둘째는 인프라 리스크다. 퍼블릭 블록체인은 특정 금융기관이 직접 통제하지 않는 네트워크다. 해킹, 코드 결함, 검증인 구조, 네트워크 장애가 금융시장 인프라의 위험으로 전이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일부 은행은 공개형 블록체인보다 내부 통제가 가능한 프라이빗 블록체인을 선호하고 있다. 셋째는 상호운용성 문제다. 각 은행과 플랫폼이 서로 다른 토큰화 예금과 자산 네트워크를 만들면 유동성은 커지기보다 쪼개질 수 있다. JP모건 토큰이 다른 은행 시스템에서 곧바로 결제되지 않는다면, 토큰화는 하나의 통합 시장이 아니라 여러 개의 닫힌 시장을 만드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주식 토큰’은 진짜 주식인가 투자자 보호 문제도 남아 있다. 로빈후드는 지난해 유럽 이용자를 대상으로 오픈AI와 스페이스X 관련 주식 토큰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가 논란에 휩싸였다. 오픈AI는 해당 토큰이 자사의 실제 지분이 아니며, 회사와 제휴한 상품도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로이터도 오픈AI가 로빈후드의 주식 토큰과 파트너십을 맺지 않았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이 사례는 토큰화 금융의 핵심 쟁점을 보여준다. 투자자가 토큰을 보유했을 때 실제 주주권을 갖는지, 배당과 의결권은 어떻게 처리되는지, 발행회사가 이를 승인했는지, 문제가 생겼을 때 어느 나라 법과 감독당국이 관할하는지 명확하지 않으면 투자자 혼란이 커질 수 있다. 결국 월가가 원하는 것은 비트코인이 아니라 금융시장의 ‘배관’을 새로 까는 블록체인이다. 토큰화는 낡은 결제·청산 구조를 바꾸고 금융상품의 유통 방식을 혁신할 수 있다. 하지만 금융은 속도만으로 움직이는 산업이 아니다. 신뢰, 규제, 결제 안정성, 투자자 보호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 한 금융시장 전문가는 “토큰화는 금융산업의 인터넷화에 가까운 변화지만, 모든 자산을 24시간 거래하게 만든다고 시장이 자동으로 더 안전해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금융당국은 혁신을 막기보다 토큰의 권리 구조, 결제 자산, 플랫폼 책임, 위기 시 중단 장치까지 명확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2026-08-09 08:2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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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뷰티가 TSMC를 닮았다고?…닛케이가 주목한 '분업의 힘'
"K-뷰티는 대만의 TSMC를 닮았다." 일본 경제지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이 최근 한국 화장품 산업을 두고 내놓은 평가다. 처음 들으면 화장품과 반도체가 무슨 관계냐는 의문이 든다. 하지만 산업 구조를 들여다보면 두 산업은 의외로 닮은 점이 많다. 한국 화장품 산업은 지난해 수출액 114억 달러를 넘어서며 프랑스에 이어 세계 2위 화장품 수출국으로 올라섰다. K-팝과 K-드라마에 이어 K-뷰티가 한국의 대표 수출 산업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평가다. ◆브랜드는 팔고, ODM은 만든다 닛케이가 주목한 것은 화장품 자체보다 산업 생태계다. 과거 화장품 기업은 제품 기획부터 연구개발(R&D), 생산, 마케팅, 유통까지 대부분 직접 담당했다. 일본의 시세이도와 가오 같은 전통 화장품 기업들이 대표적이다. 반면 한국은 역할을 과감하게 나눴다. 브랜드 기업은 제품 기획과 마케팅, 판매에 집중하고, 한국콜마·코스맥스 같은 전문 ODM(제조자개발생산) 기업은 연구개발과 원료 조달, 생산, 품질관리를 맡는다. 이는 반도체 산업에서 설계를 담당하는 팹리스와 제조를 담당하는 파운드리의 관계와 비슷하다. TSMC가 세계 최대 파운드리 기업으로 성장하며 반도체 생태계를 바꿨듯, 한국의 ODM 기업들도 K-뷰티 생태계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공장 없는 화장품 회사'가 늘어난 이유 이 같은 분업 구조 덕분에 화장품 창업 방식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브랜드를 만들려면 생산시설부터 갖춰야 했다. 하지만 제도 개선 이후 제조시설 없이도 책임판매업자로 등록할 수 있게 되면서 브랜드 창업 문턱이 크게 낮아졌다. 덕분에 소규모 스타트업도 공장을 직접 짓지 않고 ODM 기업과 협업해 제품을 출시할 수 있게 됐다. 사업 방식도 바뀌었다.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제품을 먼저 출시한 뒤 시장 반응을 확인하고, 잘 팔리는 제품에 집중 투자하는 방식이다. 초기 투자 부담은 줄이고 성공 가능성이 확인된 제품에는 빠르게 자원을 투입할 수 있는 구조다. ODM 기업도 여러 브랜드의 주문을 동시에 생산하면서 원료를 대량 구매하고 생산 효율을 높일 수 있다. 브랜드는 브랜드대로, 제조사는 제조대로 경쟁력을 키우는 '윈윈 구조'가 형성된 셈이다. ◆아마존이 만든 K-뷰티의 새 공식 글로벌 온라인 플랫폼도 K-뷰티 성장의 또 다른 축이다. 대표 사례가 에이피알(APR)의 메디큐브다. 메디큐브는 미국 아마존을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하며 북미 시장에서 대표 K-뷰티 브랜드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코스알엑스(COSRX) 역시 아마존 스킨케어 분야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하며 글로벌 인지도를 키웠다. 여기에 틱톡, 세포라, 울타뷰티 등 글로벌 플랫폼이 더해지면서 K-뷰티는 해외 소비자 반응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곧바로 신제품을 내놓는 구조를 갖추게 됐다. 예전에는 해외 진출을 위해 현지 유통망을 확보하는 데 수년이 걸렸다면, 이제는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세계 시장에서 곧바로 소비자 반응을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품질보다 생태계가 경쟁력 물론 K-뷰티를 TSMC와 동일시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TSMC의 경쟁력은 초미세 반도체 공정과 막대한 설비투자, 제조 기술에 있다. 반면 K-뷰티의 강점은 빠른 제품 개발과 트렌드 대응, ODM 생태계, 디지털 마케팅이 결합된 산업 구조다. 닛케이가 말한 'TSMC형'이라는 표현도 제품이 아니라 산업의 분업 구조를 의미한다. 전문가들은 K-뷰티의 성공을 단순히 화장품 품질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브랜드는 기획과 마케팅에 집중하고, ODM은 연구개발과 제조에 집중한다. 여기에 글로벌 플랫폼이 소비자 반응을 빠르게 전달하면서 '아이디어→제품 개발→출시→시장 검증→성공 제품 확대'라는 선순환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한 화장품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좋은 공장을 가진 회사가 경쟁력이었다면 지금은 좋은 아이디어를 가장 빠르게 제품으로 만들 수 있는 생태계가 경쟁력"이라며 "K-뷰티의 진짜 강점은 특정 기업 하나가 아니라 수많은 브랜드와 ODM 기업, 글로벌 플랫폼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산업 구조에 있다"고 말했다. 결국 K-뷰티의 경쟁력은 '잘 만드는 기술'만이 아니다. 시장의 변화를 가장 빠르게 읽고, 가장 빠르게 제품으로 구현해 세계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생태계 자체가 한국 화장품 산업의 가장 큰 무기가 되고 있다는 평가다.
2026-08-09 08: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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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것만으론 부족하다"…유통업계, '브랜드 경험' 디자인
좋은 제품만으로는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어려운 시대다. 유통업계는 디자인과 리브랜딩, 공간 연출, 브랜드 축제 등 다양한 방식으로 소비자가 브랜드를 직접 경험하고 기억하도록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제품을 판매하는 것을 넘어 브랜드가 지닌 철학과 감성까지 전달하는 '브랜드 경험'이 새로운 경쟁력으로 자리 잡는 모습이다. 과거에는 제품의 품질과 가격 경쟁력이 소비자의 선택을 좌우했다면 최근에는 브랜드가 전달하는 감성과 경험이 구매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소비자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경험을 공유하고 브랜드와 정서적 유대감을 형성하는 소비가 늘어나면서 기업들도 제품 자체보다 브랜드를 경험하는 과정에 더 많은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9일 업계에 따르면 GS25는 '2026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브랜드&커뮤니케이션 부문에서 본상을 수상하며 올해 iF 디자인 어워드에 이어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 2관왕에 올랐다. 수상작인 '소비뇽레몬블랑하이볼'은 원물 사진을 강조하던 기존 주류 패키지와 달리 곡선과 여백만으로 제품의 특징을 표현한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단순히 상품 정보를 전달하는 패키지가 아니라 브랜드의 정체성과 프리미엄 이미지를 디자인으로 구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실제 이 제품은 출시 이후 하이볼 카테고리 판매 1위에 올랐으며 누적 판매량도 200만 캔을 넘어섰다. 이정표 GS리테일 마케팅부문장은 "디자인은 상품을 돋보이게 하는 요소를 넘어 브랜드의 가치를 전달하는 핵심 경쟁력"이라며 "앞으로도 GS25만의 차별화된 디자인 전략을 바탕으로 고객 경험을 혁신하고 브랜드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높여 나가겠다"고 말했다. 외식업계에서는 디자인을 브랜드 경험 전반으로 확장하는 사례도 등장하고 있다. 다이닝브랜즈그룹의 한우 전문점 창고43은 리브랜딩 프로젝트를 통해 '2026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브랜드&커뮤니케이션 디자인 부문에서 본상을 수상했다. 창고43은 브랜드 아이덴티티(BI)뿐 아니라 공간 디자인과 패키지, 메뉴북, 테이블웨어, 고객 동선까지 하나의 디자인 언어로 연결했다. 한옥 처마와 나이테에서 착안한 디자인 요소를 적용하고 공간 곳곳에 공예 작품을 배치하는 등 식사를 넘어 브랜드 철학을 경험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심사에서도 시각적 디자인에 머물지 않고 공간과 서비스 접점까지 일관된 브랜드 경험을 구현한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정찬진 다이닝브랜즈그룹 디자인담당 이사는 "브랜드가 오래 쌓아온 시간을 어떻게 눈에 보이는 형태로 옮길지가 이번 프로젝트의 가장 큰 과제였다"며 "앞으로도 고객이 머무는 모든 순간에 브랜드의 가치가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도록 완성도를 높여가겠다"고 말했다. 백화점도 브랜드의 헤리티지와 감성을 전달하는 경험 강화에 나서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영국 왕실 티 브랜드 '포트넘 앤 메이슨'의 국내 론칭 9주년을 맞아 한정 기획 세트를 선보이고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한다. 디카페인 얼그레이 신제품과 기프트 세트, 매장 프로모션을 통해 단순히 차를 판매하는 것을 넘어 브랜드가 지닌 역사와 라이프스타일을 함께 경험할 수 있도록 기획했다. 제품을 중심으로 고객을 모으던 방식에서 벗어나 문화 콘텐츠를 통해 브랜드를 경험하게 하는 전략도 확대되고 있다. 하이트진로는 오는 9월 송도 달빛축제공원에서 '2026 이슬라이브 페스티벌'을 개최한다. 음악 공연과 함께 브랜드 체험 프로그램, 신제품 시음, 다양한 먹거리 부스를 운영해 소비자가 참이슬과 테라 브랜드를 자연스럽게 경험하도록 구성했다. 실제 얼리버드 티켓 1000장은 판매 시작 직후 모두 매진되며 높은 관심을 모았다. 하이트진로 마케팅실 관계자는 "올해 이슬라이브 페스티벌 관람객 모두에게 특별한 하루를 선사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참이슬이 지향하는 깨끗함과 즐거움을 소비자들이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디자인이 더 이상 제품의 외형을 꾸미는 요소가 아니라 브랜드를 기억하게 만드는 전략 자산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보고 있다. 패키지와 공간, 문화 콘텐츠까지 브랜드 경험을 일관되게 설계할수록 소비자와의 접점이 넓어지고 브랜드 충성도도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유통업계의 무게중심은 이제 제품 중심에서 브랜드 경험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디자인과 리브랜딩, 공간, 문화 콘텐츠를 아우르는 통합적인 고객 경험 설계가 소비자 접점 확대와 브랜드 가치 제고를 위한 핵심 전략으로 자리매김하는 모습이다.
2026-08-09 08: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