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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권 전환, 정치적 일정보다 군사적 조건이 먼저다
[경제일보]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이 다시 한미 안보 현안의 중심에 섰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9일 전작권을 조기에 돌려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한국군이 전작권을 행사할 능력을 충분히 갖췄으며 한미 간 협의도 대체로 긍정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취지다. 그러나 전환 시점과 군사적 준비 수준을 둘러싼 한미의 시각차도 드러나고 있다. 전작권 전환은 한국군의 자율성과 책임을 확대하는 국가적 과제다. 한국군이 한미 연합방위를 주도할 역량을 갖추는 것은 바람직한 목표다. 다만 목표의 정당성과 추진 시점의 적절성은 구분해야 한다. 안보정책의 성패는 전작권을 얼마나 빨리 넘겨받았느냐가 아니라, 전환 이후에도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고 유사시 연합작전을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최근 논란은 그 기준을 다시 묻게 한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은 북한의 미사일 위협 등 변화한 안보환경을 거론하며 전작권 전환에 필요한 평가 기준의 변화를 언급했다. 이에 국방부 대변인은 조건이 계속 달라진다면 전환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개인적 견해를 밝혔다. 다만 국방부는 한미가 합의한 조건에 따라 전환을 추진한다는 공식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양측의 발언만으로 한미동맹에 균열이 발생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평가 기준에 대한 시각차를 가볍게 여겨서도 안 된다. 군사적 조건을 무엇으로 판단할 것인지, 달라진 위협을 기존 평가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부터 충분히 협의해야 한다. 전작권 전환은 이미 한미가 합의한 조건과 검증 절차에 따라 추진되고 있다. 한국군의 연합방위 주도 능력,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대응 능력, 한반도와 역내 안보환경 등이 주요 판단 기준이다. 미래연합사의 지휘능력 역시 기본운용능력(IOC), 완전운용능력(FOC), 완전임무수행능력(FMC) 등 단계별 검증을 거친다. 국방부는 올해 FOC 검증과 전환 로드맵 마련을 추진해 왔다. 조기 전환을 목표로 필요한 능력을 신속히 확보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평가를 통과하기 위해 기준을 낮추거나 검증 절차를 형식적으로 운영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군사적 준비를 앞당기는 것과 준비가 끝난 것처럼 판단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이 지점에서 대통령과 국방부의 책임이 분명해진다. 대통령은 전작권 전환의 전략적 방향을 제시하고 한미동맹의 안정성을 유지할 최종적인 정치적 책임을 진다. 국방부 장관은 필요한 전력과 인력, 지휘통제체계를 확보할 책임이 있다. 합동참모본부와 각 군 지휘부는 실제 작전 수행능력을 전문적으로 평가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고해야 한다. 군의 판단이 정치적 일정에 맞춰져서는 안 된다. 평가 과정에서 미흡한 능력이 확인됐다면 보완 계획을 마련하고 필요할 경우 전환 시점도 조정해야 한다. 반대로 조건을 충족했는데도 정치적 논쟁만으로 전환을 지연하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 기준은 어느 정권에나 같아야 한다. 전작권 전환 이후의 지휘구조에 대한 정확한 이해도 필요하다. 전환은 주한미군 철수나 한미연합사 해체를 의미하지 않는다. 한미가 구상한 미래연합사 체제에서는 한국군 장성이 사령관을, 미군 장성이 부사령관을 맡는다. 중요한 것은 지휘권자의 국적 자체보다 양국 군이 하나의 연합작전 체계 안에서 얼마나 신속하고 정확하게 움직일 수 있느냐다. 한국군이 연합작전을 주도하더라도 미국의 정보·감시·정찰 자산과 확장억제, 전략자산 운용 및 증원전력과의 연계는 여전히 중요하다. 특히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고도화하는 상황에서는 조기 경보와 지휘통제, 미사일 방어, 연합 대응 절차를 빈틈없이 갖춰야 한다. 자주국방과 한미동맹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군의 독자적 능력을 강화하면서 동맹의 군사적 효율성을 유지하는 것이 전환의 본래 취지에 부합한다. 정부가 제시해야 할 것은 전환 시점만이 아니다. 어떤 조건을 충족했고 어떤 능력을 보완해야 하는지, 전환 이후의 연합방위태세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 설명해야 한다. 물론 군사적 평가 결과를 모두 공개할 수는 없다. 작전계획과 정보자산의 성능, 전력상의 취약점은 엄격히 보호해야 한다. 다만 평가 절차와 주요 단계의 진척, 전력 확보 계획, 예산 집행 현황 등 국민이 정책의 적절성을 판단할 수 있는 정보는 가능한 범위에서 공개할 필요가 있다. 국회도 비공개 보고 등 적절한 절차를 통해 검증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정책의 성공과 실패를 판단할 기준도 미리 세워야 한다. 우선 한미가 합의한 핵심 조건을 충족했는지가 출발점이다. 전환 과정에서 지휘·통제의 공백이 발생하지 않는지, 연합작전의 신속성과 효율성이 유지되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대응 능력과 미국의 확장억제 및 지원체계가 약화하지 않는지 역시 중요한 판단 기준이다. 핵심 전력 확보가 지연되거나 예산을 투입하고도 필요한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면 사업 관리의 책임을 따져야 한다. 평가 결과를 왜곡하거나 중대한 위험을 의사결정 과정에서 누락했다면 그 경위도 규명해야 한다. 다만 이러한 위험이 현재 모두 발생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정부의 정책 방향을 비판하는 것과 아직 확인되지 않은 안보 실패를 기정사실화하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 정치권의 태도도 중요하다. 여당은 전작권 전환을 정권의 성과로만 설명하려는 유혹을 경계해야 한다. 야당 역시 전환 자체를 안보 불안과 동일시하기보다 구체적인 군사적 조건과 검증 절차를 따져야 한다. 국가안보를 둘러싼 논쟁이라면 어느 쪽이 더 강한 구호를 외치는지가 아니라 어느 주장이 더 확실한 근거를 갖췄는지로 판단해야 한다. 전작권 전환을 늦추는 것만이 신중한 정책은 아니다. 필요한 군사능력을 갖췄는데도 결정을 미루는 것은 한국군의 책임성과 자율성을 확대할 기회를 놓치는 일이 될 수 있다. 반대로 준비가 부족한데도 정해진 일정에 맞추기 위해 전환을 서두른다면 그 위험은 군과 국민이 감당해야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속도보다 검증이다. 대통령은 정책 결정의 이유와 위험 관리 방안을 설명하고, 국방부는 전력 확보와 연합방위태세 유지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 군 지휘부는 정치적 고려에 흔들리지 않고 작전능력을 평가해야 한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사실관계와 원인을 조사하고, 직무상 잘못이 확인된 경우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전작권 전환은 정권의 자존심을 세우는 사업도, 무조건 막아야 할 정치적 논쟁거리도 아니다. 대한민국이 한미동맹의 틀 안에서 스스로 연합방위를 주도할 능력을 갖췄는지 입증하는 과정이다. 전환 시점을 앞당기는 데 성공하더라도 억제력과 연합방위태세가 약해진다면 성공이라고 할 수 없다. 반대로 합의한 조건을 충족하고 안보 역량을 강화했다면 그것이야말로 국가가 책임 있게 이뤄낸 전작권 전환이다.
2026-10-20 13:5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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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안보의 무능한 조율, 국익을 위태롭게 하는 정부의 책임을 묻는다
[경제일보] 대한민국의 생존과 번영을 떠받치는 두 축은 굳건한 안보와 개방형 통상체제다. 안보가 흔들리면 국가의 존립이 위태롭고, 통상 경쟁력을 잃으면 경제의 활력과 국방의 기반마저 약화된다. 그런데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을 위한 검증 과정에서 한미 간 이견이 드러나고,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신청도 연내 추진하지 않기로 하면서 정부의 대외 전략에 경고등이 켜졌다. 우연한 정책 차질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사전에 예상할 수 있는 쟁점을 조율하고 이해관계를 설득하는 것이 정부의 책무다. 안보에서는 동맹과의 조율이, 통상에서는 국내 갈등을 풀어낼 정치적 결단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국익을 지켜야 할 정부가 오히려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면 그 책임부터 분명히 물어야 한다. 전작권 전환은 정권의 치적을 장식하는 정치적 이벤트가 아니다. 우리 군이 연합방위체제를 주도할 역량을 확보하고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지, 한미동맹의 억제력이 전환 이후에도 유지되는지를 엄격하게 검증해야 하는 국가 안보의 핵심 과제다. 전환 시기를 앞당기는 것 자체가 자주국방의 성과는 아니다. 필요한 능력이 부족한데도 일정에 맞춰 서두른다면 자주라는 명분으로 안보 위험을 키우는 모순에 빠질 수 있다. 정부가 져야 할 책임은 분명하다. 전작권 전환 조건의 충족 여부를 놓고 한미 간 시각차가 있다면 원인이 무엇인지, 사전 협의와 검증은 제대로 이뤄졌는지, 우리 군의 핵심 작전 능력은 어느 수준까지 확보됐는지 설명해야 한다. 동맹 간 이견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핵심 조건을 둘러싼 견해차가 남았다면 협의 과정과 판단 근거를 점검하는 것이 마땅하다. 성과를 앞세워 검증을 형식화하거나 정치적 일정을 군사적 판단에 종속시켜서는 안 된다. 정부는 막연한 자주 구호나 낙관론 뒤에 숨지 말고 객관적인 평가 기준과 단계별 보완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 안보 정책의 실패는 사후 책임 추궁만으로 되돌릴 수 없다. CPTPP 가입 신청의 연내 보류는 통상 정책의 전략과 조정 능력을 시험하는 또 다른 고비다. 세계 경제가 공급망 재편과 보호무역주의의 격랑에 휩싸인 가운데 주요국들은 시장 접근성을 넓히고 자국 기업에 유리한 통상 규범을 선점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가입 논의를 미루기만 한다면 역내 경제 질서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발언권을 잃고 기업의 경쟁 기회도 제약받을 수 있다. 수출로 성장한 나라가 통상 네트워크 확장에 소극적이라면 경쟁국이 차지한 자리를 나중에 되찾는 데 더 큰 비용을 치를 수밖에 없다. 물론 CPTPP 가입에는 농수산업 등 민감 산업의 피해와 시장 개방 부담이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따른다. 정부가 공개한 경제적 영향 분석에서도 가입 이후 국내총생산(GDP) 증가 효과와 함께 농림수산업의 생산 감소 가능성이 제시됐다. 피해 우려를 무시한 채 가입을 서두를 수는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반발이 예상된다는 이유로 결정을 미루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정부는 피해 규모를 객관적으로 산출하고 보상과 경쟁력 강화, 산업 전환을 아우르는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해관계가 충돌할수록 정부가 나서 국민을 설득하고 국익과 피해 대책 사이의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가입의 편익과 비용을 충분히 설명하지도, 피해 대책을 구체화하지도 못했다면 정책 지연의 책임을 국내 반발에 떠넘길 수 없다. 결정을 미룬다고 갈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선택의 비용만 커질 수 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안보와 통상을 하나의 국가 전략으로 연결하는 정부의 조정 능력이다. 군사적 억제력과 경제적 회복력은 별개의 영역이 아니다. 에너지와 핵심 소재의 공급망, 첨단산업의 해외 시장, 동맹국과의 기술 협력은 모두 경제 안보의 일부다. 미국과의 안보 협력을 강화하면서 주요 교역국과의 경제 관계를 정교하게 관리하려면 외교·국방·산업·통상 부처가 같은 전략 목표 아래 움직여야 한다. 부처별 이해와 단기 현안에 끌려다니는 방식으로는 복합적인 국제 질서에 대응할 수 없다. 대통령실과 관계 부처는 정책의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고, 부처 간 이견을 조정하며 결정의 결과에 책임지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 이제 정부는 말이 아니라 결과로 답해야 한다. 전작권 전환의 군사적 조건과 한미 간 협의 상황을 투명하게 설명하고, CPTPP 가입 여부와 관계없이 실질적인 통상 전략과 산업 피해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 연내 가입 신청을 보류했다면 그 기간에 무엇을 검토하고 어떤 대책을 마련할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을 내놓아야 한다. 정책이 지연되거나 판단이 잘못됐다면 원인을 밝히고 시정책을 마련하는 것도 피할 수 없는 책무다. 국회 역시 정쟁에 매몰되지 말고 객관적 검증과 초당적 협력으로 정부를 감시해야 한다. 외교·안보와 통상에는 정권의 임기가 있지만 국익에는 임기가 없다. 자주국방은 동맹을 흔드는 구호가 아니라 스스로 지킬 능력으로 증명해야 하며, 통상 주권은 가입 선언이 아니라 시장을 확보하고 기업의 경쟁력을 지키는 성과로 입증해야 한다. 정부가 원칙과 실력을 갖추지 못하면 그 대가는 국민의 안전과 기업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국가 전략의 혼선을 불가피한 국제 환경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상황을 예측하고, 갈등을 조정하고, 국익을 관철하는 것이 정부의 책임이다. 그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면 지금이라도 정책을 바로잡고 국민 앞에 설명해야 한다.
2026-10-15 11: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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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야드 공항 피격이 울린 경고음…에너지 안보가 곧 국익이다
[경제일보] 중동의 불길이 세계 경제의 급소를 겨누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의 관문인 킹칼리드 국제공항이 예멘 후티 반군의 미사일 공격을 받고 운항이 중단됐다는 소식은 중동 정세의 불안정성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준다. 공항에 대한 공격이 잇따르는 가운데 석유 시설과 주요 해상 수송로까지 위협받으면서 지역의 안보 불안이 세계 경제에 미칠 파장도 커지고 있다. 민간 항공 인프라까지 위협받는 상황에서 에너지 생산과 수송의 핵심 거점 역시 안전을 장담하기 어렵다. 이번 사태를 또 하나의 국지적 무력 충돌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중동의 안보 불안이 국제유가의 변동성과 해상 운임, 보험료 상승 압력을 키우고 글로벌 공급망을 흔들 수 있다는 엄중한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무력으로 민간 시설을 위협하고 국제사회의 안정을 해치는 행위는 용납될 수 없다. 국제사회는 민간인의 안전과 국제법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긴밀히 공조해야 한다. 그러나 규탄 성명만으로 위기를 막을 수는 없다. 중동의 긴장이 고조될 때마다 국제유가는 출렁이고 해상 운임과 보험료는 상승 압력을 받는다. 원유 수송로가 위협받거나 공급 차질 우려가 커지면 에너지 가격은 실제 수급 악화 이전부터 움직인다. 시장의 불안이 물가를 밀어 올리고 기업의 생산비용을 높이며 가계의 구매력을 떨어뜨리는 연쇄 충격이 발생하는 것이다. 한국에 이번 사태가 결코 남의 일이 아닌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나라는 에너지 자급 기반이 취약하고 원유 수입의 상당 부분을 해외에 의존하는 대표적인 자원 빈국이다. 올해 들어 수입선 다변화로 중동산 원유 비중이 낮아졌지만, 여전히 전체 원유 수입의 절반을 웃돈다. 주요 해상 수송로에 대한 의존도 역시 높아 지역 분쟁이 장기화하면 충격을 피하기 어렵다. 국제유가가 오르면 정유·석유화학업계의 원가 부담이 커지고, 운송비와 생산비용을 통해 산업 전반으로 파장이 번진다. 수입물가 상승은 소비자물가를 자극하고 기업의 채산성 악화는 투자와 고용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고환율까지 겹친다면 같은 양의 원유를 들여오는 데 더 많은 원화를 지출해야 한다. 중동의 안보 위기가 우리 경제의 물가와 성장, 민생을 동시에 압박하는 구조다. 그런데도 위기가 터진 뒤 유가 동향을 살피고 임시 대책을 내놓는 데 그친다면 정부의 존재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에너지 안보는 가격이 급등한 뒤 대응하는 사후 관리가 아니라 공급 차질을 가정하고 미리 대비하는 국가 생존 전략이어야 한다. 정부는 국제유가와 해상 운송로의 위험 수준을 상시 점검하고, 비상 상황별 원유 수급 계획과 부처 간 대응 체계를 구체화해야 한다. 전략 비축유의 규모뿐 아니라 방출 기준과 실행 절차, 실제 공급까지 걸리는 시간도 점검해야 한다. 위기 때 꺼내 쓸 수 없는 비축유는 장부상의 숫자에 불과하다. 에너지 수입선 다변화도 더는 미룰 수 없다. 중동 의존도를 단기간에 획기적으로 낮추기는 어렵지만 미국과 다른 산유국 등으로 도입선을 넓히고 공급 계약과 수송 경로를 분산해 특정 지역의 위기가 국가 전체의 공급 위기로 번지는 위험을 줄여야 한다. 액화천연가스(LNG)와 핵심 원자재 역시 공급망 취약성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원전·재생에너지 등 국내 에너지 기반을 안정적으로 확충하는 일도 장기적인 대응책이다. 에너지 전환은 구호나 이념이 아니라 공급 안정성, 경제성, 환경성을 함께 따지는 현실적 원칙 위에서 추진해야 한다. 기업과 시장의 대응을 뒷받침할 정교한 정책도 필요하다. 정부는 정유·석유화학·항공·해운 등 에너지 가격과 수송 차질에 민감한 업종의 위험 노출을 점검하고, 중소기업의 원가 부담과 자금 경색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국제유가 상승을 빌미로 한 담합이나 부당한 가격 인상은 엄정하게 감시하되, 시장 가격을 무리하게 억누르는 방식으로 공급을 위축시켜서도 안 된다. 취약계층 지원은 대상을 명확히 하고 한시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위기 대응을 명분으로 재정 부담을 무작정 늘리는 것은 또 다른 위험을 키우는 일이다. 외교·안보 역시 경제와 분리해 생각할 수 없다. 한국은 한미동맹을 토대로 주요 우방국과 정보 공유, 해상교통로 보호, 공급망 안정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동시에 중동 국가들과의 외교 채널을 유지해 우리 국민과 기업의 안전을 확보하고 에너지 공급 차질을 최소화해야 한다. 어느 한쪽에 대한 정치적 구호에 매달리기보다 국제법과 원칙을 지키면서 실질적인 국익을 확보하는 실용 외교가 중요하다. 에너지 수송로의 안전은 특정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경제가 함께 지켜야 할 공공재다. 정치권도 정쟁을 멈추고 국가 에너지 안보를 초당적 과제로 다뤄야 한다. 비축 시설과 수입선 다변화, 에너지 효율 투자에는 시간과 비용이 든다. 위기가 잠잠해지면 예산과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정부는 위기 때마다 국민에게 절약을 호소하기에 앞서 얼마나 치밀하게 대비했는지부터 설명해야 한다. 리야드 공항을 둘러싼 위기는 중동의 불안이 언제든 한국의 공장과 물류망, 국민의 밥상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일깨운다. 에너지 안보를 시장에만 맡길 수도, 정치적 구호로 해결할 수도 없다. 정부는 비축과 다변화, 외교와 산업정책을 하나의 국가 전략으로 묶어야 한다.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능력이 곧 경제의 경쟁력이고, 위기 속에서도 국민의 삶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이 국가의 실력이다. 위기가 닥친 뒤 허둥대는 나라와 위기를 예상하고 대비한 나라의 차이는 평상시의 준비에서 결정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낙관론이 아니라 실행이고, 임시방편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에너지 안보 체계다.
2026-10-13 10: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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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공항 피습에 321명 사상…미국 참전 가능성에 중동 확전 우려
[경제일보] 미국이 예멘 후티 반군의 공격을 받는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군사 지원을 넘어 직접 참전할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중동 정세가 다시 격랑에 휩싸이고 있다. 사우디 방어를 둘러싼 미국의 선택이 예멘 전쟁의 확전 여부를 가를 변수로 떠오른 가운데, 홍해 해상 물류와 에너지 공급망, 사우디의 글로벌 투자 유치 전략에도 부담이 커질 전망이다. 10일(이하 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는 수도 리야드의 킹칼리드 국제공항이 테러 집단인 후티 미사일 부대의 공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로이터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사우디 민간항공청은 사망자 가운데 사우디 국민 4명과 외국인 8명이 포함됐으며, 부상자 일부는 위중한 상태로 최소 12명이 숨지고 309명이 다친 것으로 집계됐다. 공격 이후 공항 운영이 일시 중단됐고 항공편 취소와 지연이 잇따랐다. 이번 공격은 사우디의 민간 항공 인프라를 겨냥한 연쇄 공격의 일부로 분석된다. 같은 주 리야드 공항이 앞서 두 차례 공격을 받았고, 동부 담맘의 킹파드 국제공항 인근에도 발사체가 떨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후티 반군은 사우디 영공을 군사작전 지역으로 규정하며 항공사들에 해당 영공을 피하라고 경고했다. 민간 공항을 겨냥한 공격이 반복되면서 사우디의 방공 역량과 핵심 기반시설 보호 능력도 시험대에 올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공격 이후 후티 반군을 겨냥한 사우디의 군사작전에 미국이 합류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는 미국이 사우디의 공습에 참여할 것이냐는 질문에 "그럴 수도 있다"며 "검토해보겠다"고 답했다. 사우디에서 발생한 일을 용납할 수 없다며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도 대화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다만 미국의 직접 참전 여부나 구체적인 군사 대응 방식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미국의 선택에 따라 충돌 범위가 확대될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방공 지원이나 정보 공유에 그칠지, 후티 반군의 미사일 발사 시설 등을 겨냥한 직접 타격에 나설지에 따라 전황은 달라질 수 있다. 미국이 군사 행동에 나설 경우 후티 반군의 보복 공격이 사우디 내 주요 시설이나 역내 다른 목표물로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전쟁의 파장은 홍해 해상 물류로도 이어질 수 있다. 홍해와 아덴만을 잇는 바브엘만데브 해협은 유럽과 아시아를 오가는 주요 해상 운송로 가운데 하나다. 앞서 이 일대에서 공격 위협이 커지면 선사들이 항로를 우회하거나 운항을 조정해 왔고, 운송 기간과 보험료 등 물류 비용에도 압력이 생긴 바 있다. 특히 에너지 수송과 관련 산업의 공급망이 영향을 받을 경우 중동 지역을 넘어 국제 교역 전반의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 사우디가 추진해온 국제 투자 유치 전략도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사우디에서는 세계 석유업계 관계자와 정책 당국자가 모이는 세계석유회의(WPC)가 11일부터 오는 15일까지 열릴 예정이며, 오는 26일부터 29일까지는 대형 투자 행사인 미래투자이니셔티브(FII)가 예정돼 있다. 주최 측은 두 행사 모두 계획대로 진행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우디는 관광과 국제 행사, 해외 자본 유치를 통해 석유 의존도를 낮추는 경제 다변화를 추진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공항과 에너지 시설을 겨냥한 공격이 반복되면 투자자들이 사업 기회뿐 아니라 현지의 안전과 운영 위험까지 함께 따져볼 수밖에 없다. 당장 투자 위축을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군사적 긴장이 장기화할수록 사우디가 내세운 안정적인 사업 환경과 국제 행사 개최 역량을 입증해야 하는 부담은 커질 전망이다. 아랍에미레이트 외교부는 성명을 통해 "이번 공격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주권을 명백히 침해하고 안보와 안정을 위협하는 행위"라며 "사우디아라비아와 전폭적인 연대를 표명하며, 사우디의 안보와 안정 유지를 위한 모든 조치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2026-10-11 14:4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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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일, 北엔 대화 손짓·中엔 견제…비핵화·공급망 공조 강화
[경제일보] 한국·미국·일본이 북한에는 비핵화를 전제로 대화 복귀를 촉구하고 대만해협과 공급망 문제에서는 중국을 겨냥한 공조 수위를 높였다. 안보 협력을 넘어 반도체와 인공지능(AI), 에너지까지 3국 협력의 범위를 넓힌 것이 이번 회담의 특징이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과 회담하고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제81차 유엔총회 고위급 회기를 계기로 열린 회의다. 세 장관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따른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핵·탄도미사일 개발을 위한 수익 창출 차단 의지를 재확인했다. 동시에 “대화의 길은 여전히 열려 있다”며 북한에 협상 복귀를 촉구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 재개 의사를 거듭 밝힌 가운데 압박과 대화 가능성을 함께 담은 메시지다. 북한의 사이버 활동과 해외 정보기술(IT) 인력을 통한 자금 조달에도 공동 대응하기로 했다. 유엔 다국적제재모니터링팀(MSMT)의 활동을 지지하고 납북자와 억류자, 국군포로, 이산가족 문제의 즉각적인 해결도 요구했다. 대만 문제에서는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 유지, 양안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강조했다. 일방적인 현상 변경에 반대하고 대만이 적절한 국제기구에 의미 있게 참여하는 것을 지지한다는 기존 입장도 재확인했다. 특정 국가를 명시하지 않았지만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에 대한 견제 메시지를 함께 낸 것으로 해석된다. 경제안보 공조는 공급망 대응으로 구체화했다. 세 나라는 자의적인 수출 제한과 유해한 과잉생산, 경제적 강압과 비시장적 관행에 반대하고 제3국 공급망 조기경보시스템을 강화하기로 했다. 새 3국 경제안보 협의체 출범을 환영하고 반도체와 AI, 양자기술, 디지털 인프라, 바이오기술 분야의 협력도 확대한다. 지난 7월 체결한 소형모듈원자로(SMR) 협력각서의 후속 조치도 추진한다. 한미일 기업의 기술과 금융 역량을 결합해 제3국 SMR 사업을 발굴하고 규제체계 구축과 자금 조달, 인력 교육을 함께 지원하는 구상이다. 석유 비축 확대와 생산국·소비국 간 협력을 통한 에너지 공급망 안정도 공동 과제로 제시했다. 동남아시아 사기센터 등 초국가적 조직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유엔마약범죄사무소와 협력하고 해양안보·법 집행, 국제 재난구호, 북극 문제에서도 공조를 이어가기로 했다. 미국은 한국과 일본에 대한 방위 공약과 확장억제 공약도 재확인했다. 이번 회담은 7월 튀르키예와 필리핀에서 열린 회의에 이어 석 달 사이 세 번째다. 한미일 협력이 공동성명에 머물지 않으려면 대북 대화 재개의 구체적인 조건과 공급망 경보가 실제 공동 대응으로 이어지는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대만과 경제안보 문제에서 높아진 대중 견제 수위가 한국의 대중 외교·통상 관계에 미칠 영향도 향후 과제로 남는다.
2026-09-22 07: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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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 파병, 동맹 중요하지만 국익도 계산하라
[경제일보]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둘러싼 정부의 태도가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 그동안 신중론을 펴던 정부가 미국의 공개적인 압박 속에 파병 방안을 구체적으로 검토하는 단계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해상초계기와 군수지원함 등 군사적 자산의 파견 방안까지 거론되고 있다. 국가의 군사적 판단이 국제정세와 동맹의 요구에 따라 크게 흔들린다면 국민은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외교·안보에서 경계해야 할 것은 잘못된 선택 못지않게 원칙 없는 정책 변화다. 파병 여부를 결정한다면 무엇보다 대한민국의 국익이라는 기준이 분명해야 한다.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부정할 국민은 많지 않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현실인 상황에서 미국과의 안보협력은 대한민국의 핵심적인 전략자산이다. 그렇다고 동맹국의 요구라면 우리의 군대를 어디든 보내야 한다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 동맹에도 각자의 국익이 있고 각국이 부담해야 할 비용과 위험에도 차이가 있다. 미국이 자국의 안보와 경제적 이익을 최우선으로 판단하듯 대한민국 역시 국민의 생명과 국가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판단해야 한다. 무엇보다 냉정하게 따져야 할 것은 경제적 손익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한국 경제의 핵심 에너지 수송로다. 이곳의 안정과 항행의 자유가 흔들리면 국제유가와 해상운임, 보험료 등이 뛰어 우리 경제에 직접적인 충격을 줄 수 있다. 따라서 호르무즈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은 분명 대한민국의 중요한 국익이다. 그러나 해협의 안전을 지키는 것과 군사적 충돌의 당사자가 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우리 군의 파병이 실제로 항행의 안전을 높이는지, 아니면 중동의 군사적 긴장을 키워 유가와 해상보험료를 오히려 끌어올리는지 면밀한 검증이 필요하다. 최악의 경우 한국이 군사적 대립의 한쪽으로 인식되면서 이란의 보복 대상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원유 수급을 안정시키려던 파병이 오히려 에너지 안보를 위협하는 역설이 발생할 수 있다. 경제적 이해관계도 간단하지 않다. 한국 기업들은 중동 곳곳에서 건설·플랜트·에너지·물류 사업을 벌이고 있다. 수십 년간 쌓아온 경제적 관계가 군사적 선택 하나로 흔들릴 가능성을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 현지 교민과 기업의 안전 역시 정부가 우선적으로 따져야 할 변수다. 미국과의 관계에서 얻는 외교적 이익이 파병에 따른 경제적 위험과 장병의 안전 문제를 상쇄할 만큼 큰지 국민 앞에 설명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정말 파병이 국익에 부합한다고 판단한다면 무엇을 얻고 무엇을 감수해야 하는지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미국이 무엇을 요구했는지, 우리에게 어떤 외교·안보상의 실익이 있는지, 원유 수송과 에너지 안보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파병에 따른 경제적 비용과 위험은 어느 정도인지 공개해야 한다. 우리 장병의 임무와 교전 상황 발생 시 대응 범위, 교민과 기업 보호 대책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호르무즈 문제를 한미동맹의 충성도 시험으로 만들어서도 안 된다. 동맹은 일방적인 복종을 요구하는 관계가 아니다. 동맹을 지키는 것과 동맹국의 모든 요구를 수용하는 것은 다르다. 오히려 어려운 사안에서 우리의 국익과 국민적 우려를 분명하게 전달하고 협상하는 것이 성숙한 동맹의 모습이다. 지금 세계는 자국의 경제와 에너지 안보를 지키기 위해 치열한 국익 경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도, 중국도, 일본도 자국의 이익을 철저하게 계산한다. 대한민국만 동맹이라는 이름 아래 손익계산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특히 군사적 파병은 명분만으로 결정할 일이 아니다. 얻는 것과 잃는 것을 끝까지 따져야 한다. 호르무즈 해협의 안정에 기여하는 방법이 반드시 우리 군의 직접적인 군사적 개입이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외교적 협력과 국제적 해상안전 활동은 물론 원유 수입선 다변화, 비축유 확대, 대체 수송로 확보 등 다양한 수단을 함께 검토해야 한다. 에너지 안보는 군함 한 척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공급망 전체를 지키는 종합 전략에서 나온다. 무엇보다 파병 여부는 국민과 국회의 동의를 거쳐야 할 사안인 만큼 충분한 설명과 검증이 선행돼야 한다. 실제로 정치권에서도 정부가 파병 검토의 배경과 실익을 국회에 투명하게 설명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 정부는 이제 미국의 표정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손익계산서를 펼쳐놓고 결정해야 한다. 파병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국민을 설득하고 당당하게 추진하면 된다. 반대로 위험과 비용이 편익보다 크다면 동맹국에도 그 이유를 설명하고 다른 방식의 기여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주권국가의 외교다. 호르무즈 파병 논란은 정부 외교의 시험대다. 동맹을 중시하되 동맹에 끌려가서는 안 된다. 에너지 안보를 지키되 군사적 위험을 무분별하게 떠안아서도 안 된다. 무엇보다 우리 장병의 생명과 국민의 안전, 국가 경제의 이익보다 우선하는 외교적 명분은 없다. 정부는 더 이상 정치적 유불리에 흔들리지 말고 분명한 원칙과 냉정한 손익계산으로 국민 앞에 서야 한다.
2026-09-07 10:3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