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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권 전환, 정치적 일정보다 군사적 조건이 먼저다
[경제일보]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이 다시 한미 안보 현안의 중심에 섰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9일 전작권을 조기에 돌려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한국군이 전작권을 행사할 능력을 충분히 갖췄으며 한미 간 협의도 대체로 긍정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취지다. 그러나 전환 시점과 군사적 준비 수준을 둘러싼 한미의 시각차도 드러나고 있다. 전작권 전환은 한국군의 자율성과 책임을 확대하는 국가적 과제다. 한국군이 한미 연합방위를 주도할 역량을 갖추는 것은 바람직한 목표다. 다만 목표의 정당성과 추진 시점의 적절성은 구분해야 한다. 안보정책의 성패는 전작권을 얼마나 빨리 넘겨받았느냐가 아니라, 전환 이후에도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고 유사시 연합작전을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최근 논란은 그 기준을 다시 묻게 한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은 북한의 미사일 위협 등 변화한 안보환경을 거론하며 전작권 전환에 필요한 평가 기준의 변화를 언급했다. 이에 국방부 대변인은 조건이 계속 달라진다면 전환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개인적 견해를 밝혔다. 다만 국방부는 한미가 합의한 조건에 따라 전환을 추진한다는 공식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양측의 발언만으로 한미동맹에 균열이 발생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평가 기준에 대한 시각차를 가볍게 여겨서도 안 된다. 군사적 조건을 무엇으로 판단할 것인지, 달라진 위협을 기존 평가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부터 충분히 협의해야 한다. 전작권 전환은 이미 한미가 합의한 조건과 검증 절차에 따라 추진되고 있다. 한국군의 연합방위 주도 능력,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대응 능력, 한반도와 역내 안보환경 등이 주요 판단 기준이다. 미래연합사의 지휘능력 역시 기본운용능력(IOC), 완전운용능력(FOC), 완전임무수행능력(FMC) 등 단계별 검증을 거친다. 국방부는 올해 FOC 검증과 전환 로드맵 마련을 추진해 왔다. 조기 전환을 목표로 필요한 능력을 신속히 확보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평가를 통과하기 위해 기준을 낮추거나 검증 절차를 형식적으로 운영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군사적 준비를 앞당기는 것과 준비가 끝난 것처럼 판단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이 지점에서 대통령과 국방부의 책임이 분명해진다. 대통령은 전작권 전환의 전략적 방향을 제시하고 한미동맹의 안정성을 유지할 최종적인 정치적 책임을 진다. 국방부 장관은 필요한 전력과 인력, 지휘통제체계를 확보할 책임이 있다. 합동참모본부와 각 군 지휘부는 실제 작전 수행능력을 전문적으로 평가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고해야 한다. 군의 판단이 정치적 일정에 맞춰져서는 안 된다. 평가 과정에서 미흡한 능력이 확인됐다면 보완 계획을 마련하고 필요할 경우 전환 시점도 조정해야 한다. 반대로 조건을 충족했는데도 정치적 논쟁만으로 전환을 지연하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 기준은 어느 정권에나 같아야 한다. 전작권 전환 이후의 지휘구조에 대한 정확한 이해도 필요하다. 전환은 주한미군 철수나 한미연합사 해체를 의미하지 않는다. 한미가 구상한 미래연합사 체제에서는 한국군 장성이 사령관을, 미군 장성이 부사령관을 맡는다. 중요한 것은 지휘권자의 국적 자체보다 양국 군이 하나의 연합작전 체계 안에서 얼마나 신속하고 정확하게 움직일 수 있느냐다. 한국군이 연합작전을 주도하더라도 미국의 정보·감시·정찰 자산과 확장억제, 전략자산 운용 및 증원전력과의 연계는 여전히 중요하다. 특히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고도화하는 상황에서는 조기 경보와 지휘통제, 미사일 방어, 연합 대응 절차를 빈틈없이 갖춰야 한다. 자주국방과 한미동맹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군의 독자적 능력을 강화하면서 동맹의 군사적 효율성을 유지하는 것이 전환의 본래 취지에 부합한다. 정부가 제시해야 할 것은 전환 시점만이 아니다. 어떤 조건을 충족했고 어떤 능력을 보완해야 하는지, 전환 이후의 연합방위태세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 설명해야 한다. 물론 군사적 평가 결과를 모두 공개할 수는 없다. 작전계획과 정보자산의 성능, 전력상의 취약점은 엄격히 보호해야 한다. 다만 평가 절차와 주요 단계의 진척, 전력 확보 계획, 예산 집행 현황 등 국민이 정책의 적절성을 판단할 수 있는 정보는 가능한 범위에서 공개할 필요가 있다. 국회도 비공개 보고 등 적절한 절차를 통해 검증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정책의 성공과 실패를 판단할 기준도 미리 세워야 한다. 우선 한미가 합의한 핵심 조건을 충족했는지가 출발점이다. 전환 과정에서 지휘·통제의 공백이 발생하지 않는지, 연합작전의 신속성과 효율성이 유지되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대응 능력과 미국의 확장억제 및 지원체계가 약화하지 않는지 역시 중요한 판단 기준이다. 핵심 전력 확보가 지연되거나 예산을 투입하고도 필요한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면 사업 관리의 책임을 따져야 한다. 평가 결과를 왜곡하거나 중대한 위험을 의사결정 과정에서 누락했다면 그 경위도 규명해야 한다. 다만 이러한 위험이 현재 모두 발생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정부의 정책 방향을 비판하는 것과 아직 확인되지 않은 안보 실패를 기정사실화하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 정치권의 태도도 중요하다. 여당은 전작권 전환을 정권의 성과로만 설명하려는 유혹을 경계해야 한다. 야당 역시 전환 자체를 안보 불안과 동일시하기보다 구체적인 군사적 조건과 검증 절차를 따져야 한다. 국가안보를 둘러싼 논쟁이라면 어느 쪽이 더 강한 구호를 외치는지가 아니라 어느 주장이 더 확실한 근거를 갖췄는지로 판단해야 한다. 전작권 전환을 늦추는 것만이 신중한 정책은 아니다. 필요한 군사능력을 갖췄는데도 결정을 미루는 것은 한국군의 책임성과 자율성을 확대할 기회를 놓치는 일이 될 수 있다. 반대로 준비가 부족한데도 정해진 일정에 맞추기 위해 전환을 서두른다면 그 위험은 군과 국민이 감당해야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속도보다 검증이다. 대통령은 정책 결정의 이유와 위험 관리 방안을 설명하고, 국방부는 전력 확보와 연합방위태세 유지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 군 지휘부는 정치적 고려에 흔들리지 않고 작전능력을 평가해야 한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사실관계와 원인을 조사하고, 직무상 잘못이 확인된 경우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전작권 전환은 정권의 자존심을 세우는 사업도, 무조건 막아야 할 정치적 논쟁거리도 아니다. 대한민국이 한미동맹의 틀 안에서 스스로 연합방위를 주도할 능력을 갖췄는지 입증하는 과정이다. 전환 시점을 앞당기는 데 성공하더라도 억제력과 연합방위태세가 약해진다면 성공이라고 할 수 없다. 반대로 합의한 조건을 충족하고 안보 역량을 강화했다면 그것이야말로 국가가 책임 있게 이뤄낸 전작권 전환이다.
2026-10-20 13:5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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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안보의 무능한 조율, 국익을 위태롭게 하는 정부의 책임을 묻는다
[경제일보] 대한민국의 생존과 번영을 떠받치는 두 축은 굳건한 안보와 개방형 통상체제다. 안보가 흔들리면 국가의 존립이 위태롭고, 통상 경쟁력을 잃으면 경제의 활력과 국방의 기반마저 약화된다. 그런데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을 위한 검증 과정에서 한미 간 이견이 드러나고,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신청도 연내 추진하지 않기로 하면서 정부의 대외 전략에 경고등이 켜졌다. 우연한 정책 차질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사전에 예상할 수 있는 쟁점을 조율하고 이해관계를 설득하는 것이 정부의 책무다. 안보에서는 동맹과의 조율이, 통상에서는 국내 갈등을 풀어낼 정치적 결단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국익을 지켜야 할 정부가 오히려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면 그 책임부터 분명히 물어야 한다. 전작권 전환은 정권의 치적을 장식하는 정치적 이벤트가 아니다. 우리 군이 연합방위체제를 주도할 역량을 확보하고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지, 한미동맹의 억제력이 전환 이후에도 유지되는지를 엄격하게 검증해야 하는 국가 안보의 핵심 과제다. 전환 시기를 앞당기는 것 자체가 자주국방의 성과는 아니다. 필요한 능력이 부족한데도 일정에 맞춰 서두른다면 자주라는 명분으로 안보 위험을 키우는 모순에 빠질 수 있다. 정부가 져야 할 책임은 분명하다. 전작권 전환 조건의 충족 여부를 놓고 한미 간 시각차가 있다면 원인이 무엇인지, 사전 협의와 검증은 제대로 이뤄졌는지, 우리 군의 핵심 작전 능력은 어느 수준까지 확보됐는지 설명해야 한다. 동맹 간 이견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핵심 조건을 둘러싼 견해차가 남았다면 협의 과정과 판단 근거를 점검하는 것이 마땅하다. 성과를 앞세워 검증을 형식화하거나 정치적 일정을 군사적 판단에 종속시켜서는 안 된다. 정부는 막연한 자주 구호나 낙관론 뒤에 숨지 말고 객관적인 평가 기준과 단계별 보완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 안보 정책의 실패는 사후 책임 추궁만으로 되돌릴 수 없다. CPTPP 가입 신청의 연내 보류는 통상 정책의 전략과 조정 능력을 시험하는 또 다른 고비다. 세계 경제가 공급망 재편과 보호무역주의의 격랑에 휩싸인 가운데 주요국들은 시장 접근성을 넓히고 자국 기업에 유리한 통상 규범을 선점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가입 논의를 미루기만 한다면 역내 경제 질서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발언권을 잃고 기업의 경쟁 기회도 제약받을 수 있다. 수출로 성장한 나라가 통상 네트워크 확장에 소극적이라면 경쟁국이 차지한 자리를 나중에 되찾는 데 더 큰 비용을 치를 수밖에 없다. 물론 CPTPP 가입에는 농수산업 등 민감 산업의 피해와 시장 개방 부담이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따른다. 정부가 공개한 경제적 영향 분석에서도 가입 이후 국내총생산(GDP) 증가 효과와 함께 농림수산업의 생산 감소 가능성이 제시됐다. 피해 우려를 무시한 채 가입을 서두를 수는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반발이 예상된다는 이유로 결정을 미루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정부는 피해 규모를 객관적으로 산출하고 보상과 경쟁력 강화, 산업 전환을 아우르는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해관계가 충돌할수록 정부가 나서 국민을 설득하고 국익과 피해 대책 사이의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가입의 편익과 비용을 충분히 설명하지도, 피해 대책을 구체화하지도 못했다면 정책 지연의 책임을 국내 반발에 떠넘길 수 없다. 결정을 미룬다고 갈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선택의 비용만 커질 수 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안보와 통상을 하나의 국가 전략으로 연결하는 정부의 조정 능력이다. 군사적 억제력과 경제적 회복력은 별개의 영역이 아니다. 에너지와 핵심 소재의 공급망, 첨단산업의 해외 시장, 동맹국과의 기술 협력은 모두 경제 안보의 일부다. 미국과의 안보 협력을 강화하면서 주요 교역국과의 경제 관계를 정교하게 관리하려면 외교·국방·산업·통상 부처가 같은 전략 목표 아래 움직여야 한다. 부처별 이해와 단기 현안에 끌려다니는 방식으로는 복합적인 국제 질서에 대응할 수 없다. 대통령실과 관계 부처는 정책의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고, 부처 간 이견을 조정하며 결정의 결과에 책임지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 이제 정부는 말이 아니라 결과로 답해야 한다. 전작권 전환의 군사적 조건과 한미 간 협의 상황을 투명하게 설명하고, CPTPP 가입 여부와 관계없이 실질적인 통상 전략과 산업 피해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 연내 가입 신청을 보류했다면 그 기간에 무엇을 검토하고 어떤 대책을 마련할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을 내놓아야 한다. 정책이 지연되거나 판단이 잘못됐다면 원인을 밝히고 시정책을 마련하는 것도 피할 수 없는 책무다. 국회 역시 정쟁에 매몰되지 말고 객관적 검증과 초당적 협력으로 정부를 감시해야 한다. 외교·안보와 통상에는 정권의 임기가 있지만 국익에는 임기가 없다. 자주국방은 동맹을 흔드는 구호가 아니라 스스로 지킬 능력으로 증명해야 하며, 통상 주권은 가입 선언이 아니라 시장을 확보하고 기업의 경쟁력을 지키는 성과로 입증해야 한다. 정부가 원칙과 실력을 갖추지 못하면 그 대가는 국민의 안전과 기업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국가 전략의 혼선을 불가피한 국제 환경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상황을 예측하고, 갈등을 조정하고, 국익을 관철하는 것이 정부의 책임이다. 그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면 지금이라도 정책을 바로잡고 국민 앞에 설명해야 한다.
2026-10-15 11: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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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신한·하나, 1239억 쓰고도 뚫렸다…고객정보 새나간 '업무 쪽문'
[경제일보] 한 해 정보보호에 1200억원 넘게 투입한 KB국민·신한·하나은행이 업무지원 시스템을 통한 고객정보 유출을 막지 못했다. 상시 보안관제와 전문조직, 국내외 인증을 갖췄지만 고객정보를 조회하는 경로에서 허점이 드러났다. 금융당국이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자동화 공격 가능성을 조사하면서 외부에 노출된 업무 시스템의 관리 방식도 도마에 올랐다. 5일 금융감독원이 국민의힘 이양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정보보호 집행액은 하나은행 530억200만원, KB국민은행 392억9700만원, 신한은행 316억7500만원이었다. 세 은행을 합하면 1239억7400만원이다. 은행들이 공개한 보안 체계도 촘촘했다. 연합뉴스가 각 금융지주의 올해 반기보고서를 분석한 내용에 따르면 신한은행은 금융위원회 주관 ‘개인신용정보 관리 및 보호 실태 점검’에서 6년 연속 S등급인 100점을 받았다. 국내외 정보보호 인증과 내부 해킹 대응조직을 갖추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이버방위센터 주관 훈련에도 참여했다. KB금융은 올해 1월 그룹사이버보안센터를 출범시켰다. 공격자 관점에서 취약점을 찾는 ‘레드팀’과 침입을 탐지·차단하는 ‘블루팀’을 함께 운영하는 체계다. 하나은행도 그룹 통합 보안관제센터를 연중 가동하고, 업무상 필요한 경우에만 개인정보에 접근하도록 관리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공격은 대출모집인과 직원들이 사용하는 업무지원 경로를 파고들었다. 신한은행에서는 대출모집인용 간편조회 서비스, 국민은행에서는 직원용 모바일 업무지원 시스템, 하나은행에서는 영업지원시스템이 공격 대상이 됐다. 피해 규모는 신한은행 고객 약 2만5000명, 국민은행 고객·임직원 119명, 하나은행 고객 89명이다. 고객이 직접 이용하는 금융거래 서비스 밖에서도 개인정보를 조회할 수 있는 경로가 공격 통로로 악용된 것이다. 금감원은 지난 4일 긴급 점검회의에서 본인확인 없는 정보조회, 접근통제 누락, 알려진 취약점의 미조치 등을 사고 유형별 취약점으로 제시했다. AI 에이전트를 활용한 대량 자동화 공격을 추정하고 있으며, 개별 사고의 원인과 공격수법은 조사하고 있다. 이런 위협은 사고 전에도 예고됐다. 금융위는 지난 9월 3일 AI 보안 테스트 중간점검 결과를 공개하면서, 첨단 AI가 수백만~수천만 줄의 소스코드를 수시간 내 분석하는 취약점 탐색 능력을 보였다고 밝혔다. 기존 취약점을 넓은 범위에서 일관되게 찾아내는 능력도 확인했다. 당시 금융위는 외부에 노출된 전산자산의 식별·관리, 신속한 보안패치, AI를 활용한 방어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공격자가 약한 지점을 찾는 시간이 줄어드는 만큼 금융회사도 점검과 보완 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경고였다. 이번 사고가 드러낸 문제는 보안조직이나 장비의 유무와 함께 실제 통제가 적용되는 범위다. 직원용·모집인용이라는 시스템의 명칭과 관계없이, 외부에서 접근해 고객정보를 조회할 수 있다면 인증과 접근권한을 같은 수준으로 관리해야 한다. 금융위가 지난 2일 내린 점검 지시도 이 부분에 집중됐다. 대고객 서비스 여부와 서비스 종류를 가리지 않고 외부에서 접근할 수 있는 시스템 전체를 파악하도록 했다. 개인정보 조회 과정에서 인증이 누락되는 경로와 불필요한 정보 노출도 점검 대상에 포함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4일 “아무리 견고한 보안 체계를 갖추고 있더라도 관리되지 않는 하나의 빈틈이 전체 보안 체계의 취약점이 될 수 있다”며 “AI 공격은 AI로 방어하는” 체계 마련을 주문했다. 접근할 때마다 신원과 권한을 검증하는 제로트러스트 원칙에 기반한 보안체계 전환도 강조했다. 중소 금융회사의 대응 여력은 별도의 과제다. AI 도구를 도입하더라도 탐지 결과를 분석하고 취약점을 보완할 전문인력과 운영비가 필요하다. 금융위는 한 회사에서 확인된 공격수법이 다른 회사에도 활용될 수 있다고 보고 공격 IP주소와 침해시도 내역을 공유하는 공동 대응을 추진하고 있다. AI 보안 테스트 참여 기회도 확대한다. 금융위가 9월 발표한 2차 망분리 규제 긴급완화 방안은 신청 대상에 중소 금융회사와 전자금융업자를 포함해 대상 기관을 49개사에서 75개사로 늘렸다. 선정 규모는 10개사에서 최대 15개사로 확대했다. 선정된 회사는 망분리를 대신할 통제수단을 마련한 뒤 AI와 보안 서비스를 활용해 취약점을 탐지·개선하게 된다. 금융위는 이달 중 비조치의견서를 발급할 계획이며, 테스트에서 축적한 대응 요령은 참여하지 않은 금융회사에도 전파한다는 방침이다.
2026-10-05 11: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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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일, 北엔 대화 손짓·中엔 견제…비핵화·공급망 공조 강화
[경제일보] 한국·미국·일본이 북한에는 비핵화를 전제로 대화 복귀를 촉구하고 대만해협과 공급망 문제에서는 중국을 겨냥한 공조 수위를 높였다. 안보 협력을 넘어 반도체와 인공지능(AI), 에너지까지 3국 협력의 범위를 넓힌 것이 이번 회담의 특징이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과 회담하고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제81차 유엔총회 고위급 회기를 계기로 열린 회의다. 세 장관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따른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핵·탄도미사일 개발을 위한 수익 창출 차단 의지를 재확인했다. 동시에 “대화의 길은 여전히 열려 있다”며 북한에 협상 복귀를 촉구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 재개 의사를 거듭 밝힌 가운데 압박과 대화 가능성을 함께 담은 메시지다. 북한의 사이버 활동과 해외 정보기술(IT) 인력을 통한 자금 조달에도 공동 대응하기로 했다. 유엔 다국적제재모니터링팀(MSMT)의 활동을 지지하고 납북자와 억류자, 국군포로, 이산가족 문제의 즉각적인 해결도 요구했다. 대만 문제에서는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 유지, 양안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강조했다. 일방적인 현상 변경에 반대하고 대만이 적절한 국제기구에 의미 있게 참여하는 것을 지지한다는 기존 입장도 재확인했다. 특정 국가를 명시하지 않았지만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에 대한 견제 메시지를 함께 낸 것으로 해석된다. 경제안보 공조는 공급망 대응으로 구체화했다. 세 나라는 자의적인 수출 제한과 유해한 과잉생산, 경제적 강압과 비시장적 관행에 반대하고 제3국 공급망 조기경보시스템을 강화하기로 했다. 새 3국 경제안보 협의체 출범을 환영하고 반도체와 AI, 양자기술, 디지털 인프라, 바이오기술 분야의 협력도 확대한다. 지난 7월 체결한 소형모듈원자로(SMR) 협력각서의 후속 조치도 추진한다. 한미일 기업의 기술과 금융 역량을 결합해 제3국 SMR 사업을 발굴하고 규제체계 구축과 자금 조달, 인력 교육을 함께 지원하는 구상이다. 석유 비축 확대와 생산국·소비국 간 협력을 통한 에너지 공급망 안정도 공동 과제로 제시했다. 동남아시아 사기센터 등 초국가적 조직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유엔마약범죄사무소와 협력하고 해양안보·법 집행, 국제 재난구호, 북극 문제에서도 공조를 이어가기로 했다. 미국은 한국과 일본에 대한 방위 공약과 확장억제 공약도 재확인했다. 이번 회담은 7월 튀르키예와 필리핀에서 열린 회의에 이어 석 달 사이 세 번째다. 한미일 협력이 공동성명에 머물지 않으려면 대북 대화 재개의 구체적인 조건과 공급망 경보가 실제 공동 대응으로 이어지는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대만과 경제안보 문제에서 높아진 대중 견제 수위가 한국의 대중 외교·통상 관계에 미칠 영향도 향후 과제로 남는다.
2026-09-22 07: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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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로펌을 합쳐 만든 '최연소 빅6'…화우 23년의 승부
[경제일보] 2002년 12월 4일 법무법인 우방과 화백이 합병을 결정했다. 국제거래와 기업자문에 강했던 우방과 송무로 이름을 알린 화백의 결합이었다. 우방은 변호사 40명, 화백은 60명 안팎이었다. 양측은 기존 인력을 내보내지 않는 대등 합병을 택했다. 이듬해 2월 법무법인 화우가 출범했다. 이름은 화백의 ‘화’와 우방의 ‘우’를 따왔고 ‘화목한 집안’이라는 뜻도 담았다. 출범 당시 변호사는 90명을 넘어 김앤장과 광장, 태평양, 세종에 이은 국내 5위 규모였다. 작은 법률사무소가 조금씩 몸집을 키운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강점을 가진 두 조직이 한꺼번에 합쳐져 대형 로펌 시장에 들어왔다. 23년이 지난 현재 화우는 국내 대형 로펌을 일컫는 ‘빅6’ 가운데 역사가 가장 짧다. 2025년 법무법인 매출은 2812억원으로 전년보다 12.5% 늘었고 자매법인과 해외사무소를 포함하면 3012억원을 기록했다. 2023년 이후 2년 동안 매출은 약 35% 증가했다. 한국 변호사 1인당 매출은 7억6200만원으로 김앤장을 제외한 주요 대형 법무법인 가운데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화우의 성장사는 합병으로 뼈대를 만들고 그 위에 전문분야를 붙여온 과정이다. 첫 합병으로 기업자문과 송무를 묶었고 3년 뒤 두 번째 합병으로 지식재산권 분야를 보강했다. 최근에는 금융과 기업형사에 더해 M&A와 중대재해, AI·데이터까지 사람을 늘리고 있다. ◆ 자문 우방과 송무 화백이 만났다 화우의 한쪽 뿌리인 우방은 윤호일 변호사가 1989년 세운 법률사무소에서 출발했다. 윤 변호사는 짧은 판사 생활을 마치고 1970년 미국으로 건너가 노트르담대 로스쿨과 베이커앤드맥켄지 등을 거치며 19년 동안 미국에서 활동했다. 귀국 뒤에는 국제거래와 기업자문, 공정거래 분야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화백은 법원 출신 변호사들이 중심이었다. 노경래 변호사를 비롯해 판사 경험을 가진 변호사들이 송무에서 이름을 쌓았다. 우방이 계약과 거래를 다뤘다면 화백은 분쟁이 법정으로 넘어간 뒤의 대응에 강했다. 두 조직은 같은 기업 고객을 상대하면서도 맡는 일이 달랐다. 2000년대 초 국내 로펌 시장에서는 대형화 경쟁이 시작됐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 구조조정과 M&A가 늘었고 해외 거래와 분쟁도 복잡해졌다. 기업은 계약서만 검토하거나 소송만 맡기는 로펌보다 자문과 송무를 함께 처리할 조직을 찾기 시작했다. 윤호일 우방 대표와 노경래 화백 대표도 서로의 빈 곳을 알고 있었다. 우방에는 송무가 필요했고 화백에는 국제거래와 기업자문이 필요했다. 오랜 기간 독자적인 조직문화를 만들어온 두 로펌이었지만 규모와 업무 영역을 동시에 넓히기 위해 합병을 택했다. ◆ 사람을 내보내지 않은 1대1 합병 합병 과정에서 양측이 정한 원칙 가운데 하나는 기존 인력을 줄이지 않는 것이었다. 한쪽이 다른 쪽을 인수하는 방식도 피했다. 변호사 수에서는 화백이 더 컸지만 두 조직은 1대1 합병을 택했다. 규모보다 대등한 통합을 앞세운 결정이었다. 문제는 합친 뒤였다. 우방과 화백은 10년 넘게 각자 조직을 운영하면서 보수와 사건 배분, 인사 방식도 달라져 있었다. 합병 당시 윤호일 변호사도 서로 다른 기업문화와 업무 분야 때문에 협상 과정에서 적지 않은 난제가 있었다고 밝혔다. 그래도 합병을 되돌리지는 않았다. 기업자문 변호사와 송무 변호사가 같은 고객을 함께 맡도록 업무를 연결했고 서울 삼성동 아셈타워에 조직을 모았다. 한쪽의 이름을 없애는 대신 두 이름의 첫 글자를 합쳐 새 간판을 달았다. 화우는 광장보다 2년 늦게 대형 합병을 했다. 광장이 기업자문 한미와 송무 광장을 합쳐 두 축을 결합했다면 화우는 여기서 한 번 더 움직였다. 출범 3년 뒤 또 다른 로펌을 받아들였다. ◆ 두 번째 합병으로 지식재산권을 보강했다 2006년 화우는 김·신·유 법률사무소와 합병했다. 김·신·유는 1967년 설립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축에 속하는 로펌으로 지식재산권과 외국계 기업 업무에 강점을 갖고 있었다. 화우보다 역사가 훨씬 긴 조직이었다. 첫 합병으로 기업자문과 송무를 갖췄다면 두 번째 합병에서는 지식재산권 분야를 보강했다. 김·신·유 출신 변리사들도 대거 합류했고 같은 해 특허법인 화우가 출범했다. 기업의 거래와 분쟁에 특허와 상표 문제까지 한 조직에서 다룰 수 있는 틀이 만들어졌다. 2003년 우방과 화백, 2006년 김·신·유까지 세 조직의 경험이 차례로 한 법인 안에 들어왔다. 화우가 다른 빅6보다 늦게 출발하고도 빠른 시간 안에 종합로펌의 체계를 갖춘 배경이다. 기업자문과 송무에 지식재산권까지 더하면서 다룰 수 있는 사건의 폭도 넓어졌다. 이후에는 큰 로펌을 다시 합치지 않았다. 2010년 법무법인(유한)으로 조직을 바꿨고 2013년 관세법인, 2017년 세무법인을 세웠다. 해외에서는 2008년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를 시작으로 호찌민과 하노이, 자카르타에 사무소를 냈다. ◆ 화우의 오래된 두 축, 금융과 송무 화우의 업무 가운데 오랫동안 이름을 알려온 분야는 금융과 송무다. 금융에서는 금융감독원과 금융위원회, 한국거래소 등 감독기관에서 근무한 전문가를 꾸준히 영입했다. 현재 경영을 맡고 있는 이명수 대표변호사도 금융감독원에서 10년간 법무팀장과 기업공시팀장 등을 지낸 금융규제 전문가다. 이 대표는 2010년 화우에 합류한 뒤 금융회사 검사·제재와 인허가, M&A, 불공정거래 등의 업무를 맡았다. 최근에도 금융감독원과 글로벌 회계법인 출신 전문가들을 추가로 영입했다. 금융회사 검사와 제재가 복잡해지고 회계감리와 불공정거래 조사까지 얽히면서 감독기관과 회계 실무를 경험한 인력이 필요해졌다. 송무에서는 기업 경영권 분쟁과 금융소송, 기업형사 사건을 다뤄왔다. 남양유업 경영권을 둘러싼 한앤컴퍼니의 주식양도청구 소송과 한미사이언스 신주발행금지가처분, DB하이텍 의결권행사금지가처분 등에 참여했다. ELS 불완전판매 소송에서는 금융회사를 대리했고 바이오기업 메디톡스를 둘러싼 영업비밀·특허 분쟁에도 참여했다. 체임버스앤파트너스의 2026년 평가에서 화우는 국내 송무와 기업·M&A, 공정거래에서 각각 Band 2에 올라 있다. 송무에서 출발한 화백과 기업자문을 맡았던 우방의 경험이 20년이 지난 현재의 업무 구성에도 남아 있다. ◆ 송무·금융에서 M&A로 최근 화우가 힘을 더 싣는 분야는 M&A다. 2025년에는 네이버와 두나무의 포괄적 주식교환 거래와 효성화학 네오켐 사업부 매각, 한화생명의 미국 증권사 벨로시티 인수 등을 자문했다. 금융과 송무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기업자문 분야에 사람을 집중적으로 넣기 시작했다. 2026년 들어 성과도 나타났다. 네이버의 스페인 중고거래 플랫폼 왈라팝 인수, 칼라일의 KFC코리아 인수, NXC 해외 계열사 지분 매각, 하림의 홈플러스익스프레스 인수 등에 참여했다. 더벨의 2026년 상반기 M&A 법률자문 순위에서는 4위를 기록했다. 이명수 대표는 올해도 기업·금융 전문가 영입을 이어가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2025년 신입을 제외하고 80명이 넘는 외부 인재를 데려온 데 이어 M&A와 공정거래, 개인정보, 상법 관련 자문을 보강하고 있다. 방위산업과 수출통제, 에너지·인프라, AI·데이터·플랫폼 규제도 투자 분야로 잡았다. 화우가 기업자문을 키우는 방식은 처음 합병 때와 닮은 부분이 있다. 잘하는 금융과 송무를 그대로 두면서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분야에 외부 인력을 붙인다. 조직 전체를 다시 합치는 대신 사람과 팀을 가져오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 2년 동안 35% 성장…1인당 매출은 선두권 최근 숫자는 화우의 변화를 보여준다. 화우의 법무법인 매출은 2023년 2082억원에서 2024년 2500억원, 2025년 2812억원으로 늘었다. 자매법인과 해외사무소를 합치면 지난해 처음으로 3000억원을 넘어섰다. 2년 동안 총매출이 약 35% 증가했다. 절대 매출로는 김앤장과 태평양, 세종, 광장, 율촌에 뒤진다. 대신 한국 변호사 1인당 매출은 2025년 7억6200만원으로 김앤장을 제외한 주요 대형 법무법인 가운데 가장 높았다. 율촌 7억6000만원, 태평양 7억3800만원, 세종 7억2400만원, 광장 7억1300만원보다 높았다. 인력을 늘리면서 매출 증가율이 더 높았다는 점도 눈에 들어온다. 최근 5년 동안 화우의 변호사 수는 15% 넘게 늘었지만 매출은 약 40% 증가했다. 금융감독원 출신 등 비변호사 전문가를 사건에 투입하고 고부가가치 사건의 비중을 늘린 영향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2~5위 로펌과의 외형 차이는 아직 크다. 2025년 태평양과 세종, 광장, 율촌이 모두 4000억원대 매출을 기록했다. 화우가 최근의 성장 속도를 유지하더라도 매출 3000억원대에서 4000억원대로 넘어가는 과정에는 또 다른 경쟁이 기다리고 있다. ◆ 합병으로 큰 로펌, 이제는 생산성으로 승부 화우도 몸집만 키우는 방식에서는 벗어나고 있다. 2003년에는 변호사 40명의 우방과 60명의 화백을 한꺼번에 합쳤고 2006년에는 김·신·유를 다시 받아들였다. 당시에는 규모를 키우는 것이 경쟁력을 높이는 빠른 방법이었다. 지금은 수백명의 변호사를 더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문제가 중요해졌다. 2024년 경영 전면에 나선 이명수 대표 체제에서 화우는 금융과 송무라는 기존 기반에 M&A와 신산업 규제를 붙이고 있다. 2026년 9월에는 광화문 서울파이낸스센터에 강북사무소도 열었다. 삼성동 본사에서만 고객을 기다리지 않고 기업과 금융회사, 정부기관이 몰린 도심으로 접점을 다시 넓힌 것이다. 과거에는 로펌을 합쳐 규모를 만들었다면 지금은 고객과 가까운 곳에 거점을 두고 필요한 분야의 사람을 붙이는 방식으로 달라졌다. 화우는 빅6 가운데 가장 늦게 만들어졌다. 대신 출발부터 기존 조직 세 곳이 쌓은 경험을 한꺼번에 가져왔다. 우방에서 기업자문을, 화백에서 송무를, 김·신·유에서 지식재산권을 받아들였다. 23년이 지난 지금은 다른 계산을 하고 있다. 또 다른 로펌을 합치는 대신 필요한 전문가를 데려오고 기존 강점과 연결한다. 두 번의 합병으로 만든 로펌이 이제는 사람 한 명, 팀 하나의 생산성을 따지는 단계로 넘어갔다.
2026-09-21 08:4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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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정상회담 테이블에 오른 AI·희토류…한국은 어디에 설 것인가
[경제일보]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이 오는 24일 워싱턴에서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중국은 아직 정상회담 개최를 공식 확인하지 않았다. 앞서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과 허리펑 중국 국무원 부총리는 이번 주말 만나 정상회담 의제를 조율할 예정이다. 인공지능(AI)과 희토류, 무역·에너지 등 경제안보 현안이 폭넓게 다뤄질 전망이다. 한국에는 남의 나라 정상회담이 아니다. 미중이 협상 테이블에서 다루는 현안 하나하나가 한국의 주력 산업과 연결돼 있어서다. AI의 중심에는 반도체가 있고 희토류와 핵심광물은 배터리·자동차·항공우주·방위산업에 들어간다. 미국과 중국의 합의와 충돌에 따라 한국 기업의 투자와 생산, 공급망 전략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AI는 특히 그렇다. 베선트 장관은 미국이 중국과 AI가 초래할 공동의 위험을 논의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미중 AI 경쟁이 첨단 반도체와 기술 수출통제를 넘어 안전과 국제규칙의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의미다. 세계 AI 산업에서도 안전 규칙을 누가 만들고 집행할 것인지를 놓고 논쟁이 커지고 있다. 한국은 이 경쟁의 한복판에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이끌고 있고 AI 가속기에 필요한 고대역폭메모리(HBM)에서도 한국 기업의 비중이 크다. 미중 기술 경쟁이 격화될수록 한국 반도체 기업의 기술과 생산시설은 단순한 기업 자산을 넘어 경제안보의 자산이 된다. 미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 재편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로이터는 SK하이닉스가 인텔과 미국에서 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하는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고 지난 16일 보도했다. 인텔의 오하이오 공장 일부를 활용하거나 인텔·클라우드 기업 등이 참여하는 합작법인을 만드는 방안이 거론된다. 아직 초기 협의 단계이고 결정된 것은 없다. 하지만 한국 메모리 기업이 처음으로 미국에서 생산할 가능성이 논의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반도체 공급망이 얼마나 빠르게 재편되고 있는지 보여준다. 여기에는 한국이 고민해야 할 지점도 있다. 미국의 공급망 현지화와 한국의 이해가 언제나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생산시설을 미국에 두는 것이 시장 접근과 공급망 안정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핵심 제조기술의 해외 이전과 국내 산업 생태계 약화 가능성도 함께 살펴야 한다. 기업의 투자 판단을 존중하되 국가 차원에서는 어떤 기술과 생산기반을 국내에 반드시 남겨야 하는지 원칙을 세울 필요가 있다. 희토류 문제는 더 절박하다. 중국은 미국이 자국 중심의 핵심광물 공급망을 구축하는 데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있는데도 여전히 주요 핵심광물의 정제 과정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 자료를 분석한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중국의 희토류 정제 비중은 2023년 90% 이상에서 2025년 약 85%로 낮아졌지만 여전히 세계 공급망을 좌우할 수준이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희토류 원소인 이트륨은 이런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트륨은 반도체와 항공우주, 제트엔진 코팅 등에 쓰이는 전략 물질이다. 중국은 세계 이트륨 공급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고 수출통제를 통해 공급량을 조절해 왔다. 미국 제조업에서도 공급 부족에 따른 생산 차질이 발생했다. 이 때문에 이트륨 문제 역시 미중 정상회담의 주요 현안 가운데 하나로 거론된다. 한국의 취약점도 여기에 있다. 반도체와 배터리, 자동차를 세계에 수출하지만 이를 만드는 핵심광물과 소재 상당 부분은 해외에서 들여온다. 미국이 첨단기술 공급망에서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속도를 높이면 한국 기업도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세계 제조업의 거대한 생산기지이자 시장인 중국과의 공급망을 단기간에 끊는 것도 현실적이지 않다. 따라서 한국의 대응을 단순히 ‘미국이냐 중국이냐’의 문제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안보와 직결된 첨단기술 분야에서는 동맹국과 협력을 강화하되 핵심 원료와 소재는 특정 국가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최근 열린 한·중앙아시아 정상회의도 그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국과 중앙아시아 5개국은 핵심광물과 에너지, 공급망 협력을 주요 의제로 다뤘고 70건이 넘는 협정과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정부는 단순한 원료 수입을 넘어 탐사와 정제, 소재 가공, 완제품 생산까지 협력 범위를 넓히겠다고 밝혔다. 이제 중요한 것은 실행이다. 공급망 다변화는 양해각서 숫자로 평가할 일이 아니다. 광물 탐사와 개발이 실제 정제·가공과 국내 기업의 장기 구매로 이어져야 한다. 핵심광물 개발은 투자 회수 기간이 길고 가격 변동성도 큰 만큼 정부가 정책금융과 비축제도 등을 활용해 민간의 위험을 분담할 필요가 있다. 공급망은 평상시에는 비용의 문제지만 위기가 닥치면 국가안보의 문제가 된다. AI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이 메모리 반도체를 잘 만드는 것만으로 미래 경쟁력을 보장받기는 어렵다. AI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전력망, 소프트웨어와 AI 모델로 이어지는 산업 생태계를 함께 키워야 한다. 미중이 AI의 기술표준과 안전 문제까지 논의하기 시작했다면 한국도 이미 만들어진 규칙을 받아들이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국제 AI 거버넌스와 기술표준을 만드는 과정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미중 경쟁은 이제 관세 몇 퍼센트(%)를 주고받는 무역전쟁을 넘어섰다. 누가 AI의 규칙을 만들고 첨단 반도체를 생산하며 핵심광물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느냐를 둘러싼 경제안보 경쟁이다. 중국은 핵심광물 공급망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고 미국은 첨단 반도체와 AI 생태계를 중심으로 자국 공급망을 강화하고 있다. 한국의 운명을 워싱턴과 베이징의 협상 결과에 맡길 수는 없다. 어느 한쪽을 무조건 선택하는 것도, 양쪽의 눈치를 보며 결정을 미루는 것도 해법이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선택을 강요받았을 때 버틸 수 있는 힘을 먼저 만드는 것이다.
2026-09-17 10:4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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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슨재단, '바람의나라' 30년…게임 속 사신수·다람쥐, 경복궁에 들어왔다
[경제일보] 게임 ‘바람의나라’에 등장하는 도적과 사신수, 다람쥐가 옻칠과 자개, 도자, 단청 작품으로 다시 태어났다. 30년간 이어진 게임 지식재산권(IP)이 화면을 벗어나 전통공예와 신진 예술가 지원으로 활동 범위를 넓혔다. 넥슨재단은 한국전통문화대학교와 함께 ‘보더리스 크래프트판-이립의 바람, 전통을 잇다’ 사업의 결과 전시를 오는 21일까지 서울 경복궁 계조당에서 연다고 밝혔다. ‘이립’은 서른 살에 뜻을 세운다는 의미다. 1996년 서비스를 시작해 올해 30주년을 맞은 바람의나라와 전통공예 분야에서 활동 기반을 다져가는 신진 작가들의 성장을 함께 담았다. 전시장에서는 바람의나라 IP를 활용한 작품 5점과 한국전통문화대 전통미술공예학과 학생 작품 10점 등 총 15점을 선보인다. 넥슨재단은 지난 4월부터 작품 제작자를 선발하고 제작 과정을 지원했다. IP 작품을 만든 작가 5명 외에도 학생 10명에게 경복궁 전시 기회를 제공했다. 대표 작품인 ‘도적, 바람을 타다’는 게임 속 직업인 도적과 다람쥐를 건칠과 옻칠, 자개로 표현했다. ‘수호신수진 계상’은 초심자를 지켜주는 사신수를 고대 유적과 같은 질감의 도자로 형상화했다. ‘바람을 담은 옷깃’은 사신수를 전통 복식의 인물로 바꾸고 동서남북을 상징하는 방위색을 입혔다. 보스 몬스터 용전설을 단청으로 재구성한 ‘용전설만상도’, 다람쥐와 토끼를 전통 귀주머니에 수놓은 작품도 전시된다. 게임의 캐릭터를 단순히 복제하기보다 전통기법과 상징체계로 새롭게 해석한 것이 특징이다. 전시 장소인 계조당은 조선시대 왕세자가 집무하고 정무를 익히던 공간이다. 일제강점기인 1910년 철거됐다가 복원 작업을 거쳐 2023년 다시 공개됐다. 110여년 만에 되살아난 전통 공간에서 30년 된 게임과 신진 공예가의 작품을 소개한다는 점도 이번 전시의 의미를 더한다. 사업 재원에는 넥슨 임직원도 참여했다. 넥슨재단 기부금과 임직원들이 바람의나라 30주년을 기념해 자발적으로 모은 기부금을 합쳐 6718만원을 전달했다. 작품을 모티프로 제작한 굿즈 19종도 온라인에서 판매한다. 판매 수익 일부는 참여 작가의 후속 창작 활동에 지원할 예정이다. 김정욱 넥슨재단 이사장은 “한국 전통문화를 기반으로 탄생한 바람의나라가 신진 예술가들의 손끝에서 새롭게 태어났다”며 “게임과 전통이 만난 작품을 통해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발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게임사가 보유한 IP를 공연과 전시, 공예로 확장하는 사례는 늘고 있다. 이번 사업은 기업이 일방적으로 콘텐츠를 제작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전공 학생에게 제작비와 발표 공간을 제공했다는 데 차이가 있다. 작가 지원이 일회성 전시에 머물지 않으려면 굿즈 수익의 배분 기준과 후속 지원 규모, 참여 작가의 지속적인 활동 성과도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
2026-09-10 07: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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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수청 615명 철회, 준비 안 된 개혁의 대가는 국민이 치른다
[경제일보] 중대범죄수사청에 가겠다고 신청했던 검찰 인력 615명이 막판에 지원을 철회했다. 당초 2376명이던 특례임용 신청자는 1761명으로 줄었다. 신청자의 4명 중 1명꼴이다. 중수청 정원 2874명과 비교하면 최종 신청자는 61.3%에 그친다. 철회자 대부분은 검찰 수사관으로 알려졌다. 중수청이 맡을 부패·경제·마약·방위사업·사이버범죄 등은 숙련된 수사 경험이 필요한 사건들이다. 계좌를 추적하고 압수수색 자료를 분석하며 사건 기록을 다뤄온 실무 인력이 출범 직전에 대거 발을 뺀 셈이다. 정부는 경찰과 변호사, 회계사, 변리사 등을 경력채용하고 공소청 공무원을 상대로 내년 4월 말까지 추가 특례임용을 하겠다고 한다. 중수청은 오는 10월 2일 출범한다. 출범은 10월인데 인력 충원은 내년 4월까지다. 사람을 제대로 채우기도 전에 문부터 열겠다는 얘기다. 1761명도 실제 근무 인원은 아니다. 정부는 근무 희망지와 경력, 전문성 등을 따져 다시 임용 대상을 정한다. 출범 당일 중수청에서 일할 사람은 지금보다 줄어들 수 있다. 숫자를 채우는 것보다 더 어려운 문제는 경험 많은 수사 인력을 확보하는 일이다. 이번 철회 과정만 봐도 준비가 얼마나 허술했는지 알 수 있다. 검찰 구성원에게 중수청으로 갈지 공소청에 남을지 선택하라고 했지만 철회 시한인 8월 31일까지 공소청 직제는 확정되지 않았다. 어느 기관에서 일할지 결정하라면서 그 기관의 정원과 보직, 근무지, 승진이 어떻게 될지는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것이다. 철회 시한을 앞두고 공소청의 정원 감축 폭이 예상보다 크지 않을 것이라는 직제안 윤곽이 알려지자 상당수 수사관이 잔류 쪽으로 돌아선 것으로 전해졌다. 중수청과 공소청을 만드는 법은 지난 3월 제정됐다. 시행일도 10월 2일로 정했다. 그런데 중수청의 조직과 정원, 인사 기준을 담은 하위법령은 8월 18일에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출범 45일 전이었다. 형사소송법은 더 늦었다. 검사의 수사 권한을 없애고 보완수사 요구와 재수사 요구 절차를 손질한 개정법은 8월 4일 공포됐다. 시행까지 두 달도 남지 않은 때였다. 수십 년간 이어온 수사와 기소의 관계를 바꾸면서 현장에서 적용할 법을 출범 직전에야 확정했다. 형사사건은 간판을 바꾸고 사람을 옮긴다고 그대로 이어지는 일이 아니다. 사건을 누가 맡을지, 압수수색과 계좌추적은 어떻게 이어갈지, 부족한 수사는 어디에 다시 맡길지, 사건 기록과 증거물은 어떻게 넘길지 하나라도 엇박자가 나면 수사가 늦어진다. 수사가 늦어지면 피해자는 기다려야 한다. 증거가 사라질 수 있고 피의자 신병 확보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 구속 사건에서는 하루가 피의자의 신체 자유와 직결된다. 정부 조직 하나를 바꾸는 문제와 차원이 다르다. 검찰 개혁의 명분이 준비 부족을 덮어주지는 못한다. 수사와 기소를 나누겠다고 결정했다면 법과 직제, 인사와 전산, 사건 이관 절차를 먼저 갖춰 놓았어야 한다. 사람을 배치하고 실제 사건을 놓고 문제를 확인한 뒤 문을 여는 것이 순서다. 정부는 그 반대로 가고 있다. 10월 2일이라는 날짜를 먼저 정해놓고 사람과 조직, 절차를 그날에 맞추고 있다. 출범 한 달을 남겨놓고 인력이 흔들렸고 공소청 직제도 늦어졌다. 부족한 인력은 출범 뒤에도 계속 뽑겠다고 한다. 615명 철회는 우연히 튀어나온 숫자가 아니다.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선택을 재촉하자 현장의 사람들이 움직인 결과다. 정부가 중수청 출범에 필요한 조건을 먼저 갖췄다면 이런 대규모 철회가 나왔을지부터 돌아봐야 한다. 더 큰 문제는 10월 2일 이후다. 중수청과 경찰, 공소청 사이에서 사건이 오가고 보완수사가 늦어지면 피해는 곧바로 국민에게 간다. 정부는 조직을 만들었다고 발표하면 끝이지만 피해자는 사건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개혁의 성패는 검찰청 간판을 예정된 날짜에 내리는 데 있지 않다. 범죄를 제대로 수사하고 피해자를 제때 보호하는 데 있다. 수사가 늦어지고 사건이 밀린다면 이름을 무엇으로 바꿨든 실패다. 준비가 부족하면 일정을 늦추는 것이 책임 있는 행정이다. 날짜를 지키기 위해 수사기관부터 열고 부족한 사람과 절차를 뒤에서 채우는 것은 개혁이 아니다. 졸속이다. 정부가 10월 2일 중수청 간판을 다는 데 성공하더라도 수사가 늦어지고 사건이 표류한다면 그 대가는 정부가 치르지 않는다. 사건 당사자와 범죄 피해자, 결국 국민이 치른다. 615명 철회가 보여준 것은 인력 부족만이 아니다. 준비되지 않은 개혁을 밀어붙였을 때 누가 그 비용을 떠안게 되는지다.
2026-09-02 10:3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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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에어로 K9, 스페인 뚫었다…서유럽 첫 진출
[경제일보] 동유럽과 북유럽을 중심으로 영토를 넓혀온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K9 자주포가 서유럽에 처음 진입했다. 이번 스페인 사업은 국내에서 생산한 완성품을 공급하는 기존 방식과 달리 현지 업체가 K9 플랫폼을 기반으로 자국형 자주포를 개발·생산하는 구조다. 유럽 방산시장에서 현지 생산과 기술주권 요구가 강해지면서 K9의 수출 전략도 ‘제품 판매’에서 ‘플랫폼·기술 협력’으로 확장되는 모습이다. 1일 업계에 따르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전날 스페인 방산기업 인드라 시스테마스와 K9 자주포 등의 수출 실행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금액과 물량, 기간 등은 상대방의 비밀유지 요청에 따라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앞선 기본계약 공시를 기준으로 계약 규모는 6600억원을 웃도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번 계약은 지난 3월 양사가 체결한 구속력 있는 양해각서(MOU)가 실제 사업으로 이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 7월 최근 매출액의 2.5% 이상에 해당하는 상품 공급 기본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했지만 계약 상대방과 사업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이번 실행계약을 통해 당시 계약이 스페인 K9 사업과 관련된 것으로 최종 확인됐다. 스페인 육군은 노후 포병 전력을 교체하기 위한 대규모 현대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 가운데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인드라가 협력하는 분야는 궤도형 자주포 체계다. 인드라가 지난 3월 공개한 계획에 따르면 K9 계열 플랫폼을 기반으로 궤도형 자주포 128문과 탄약보급차량 120대, 지휘통제차량 11대, 구난차량 21대 등을 개발할 예정이다. 특히 이번 사업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국내에서 생산한 K9 완성품을 그대로 공급하는 기존 수출 방식과 차이가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K9 플랫폼과 관련 기술을 제공하면 인드라가 스페인 육군 요구에 맞춰 현지형 무기체계를 개발·생산한다. 인드라는 스페인에서 차량 차체를 생산하고 미션시스템과 360도 상황인식 체계, 전장관리체계(BMS), 통신시스템 등을 탑재할 예정이다. K9 플랫폼을 기반으로 스페인형 차체를 개발하고 이에 대한 설계 권한도 확보한다. 이를 위해 히혼 공장 등에 1억3000만 유로를 투자하고 직접고용 500명과 간접·유발고용 1000명을 창출한다는 계획이다. 이 같은 사업 방식은 유럽 방산시장의 변화와 맞닿아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 각국이 국방비 확대와 함께 역내 방산 공급망 구축을 강조하면서 가격과 납기뿐 아니라 현지 생산과 기술 이전, 현지 업체 참여가 수주의 주요 변수로 떠올랐다. EU의 방위산업 지원책 SAFE도 공동조달 제품의 부품 비용 가운데 EU와 우크라이나, 유럽경제지역(EEA)·유럽자유무역연합(EFTA) 밖에서 발생하는 비중을 35% 이하로 제한하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이번 계약으로 K9의 유럽 시장도 한 단계 넓혔다. 2001년 튀르키예를 시작으로 폴란드와 핀란드, 노르웨이, 에스토니아, 루마니아 등 동·북유럽을 중심으로 구축했던 시장이 스페인까지 확대됐다. 단순히 수출국을 추가하는 것을 넘어 현지 업체의 설계·생산 참여를 확대하는 방식으로 유럽 시장 공략 모델도 다변화하고 있다는 평가다. 증권가에서는 스페인 진출을 계기로 K9의 추가 수주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인도, 폴란드 등에서 후속 사업이 거론되는 가운데 서재호 DB증권 연구원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 대해 “공략할 수 있는 전체 시장(TAM) 확대 효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K-방산 베스트셀러에 기반한 기존 대형 수주 파이프라인도 꾸준한 상황”이라고 했다.
2026-09-01 10:04:57